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침몰
    2026-02-09
    검색기록 지우기
  • 방조
    2026-02-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814
  • 연극연출가 孫振策(이세기의 인물탐구:177)

    ◎‘전통의 창조적 파괴’ 마당극 지킴이/“지금 우리의 삶 즐겁게” 마당정신 올곧이/‘서울말뚝이’ ‘오장군…’ 등 숱한 화제작 양산/우리 연극의 세계화 끊임없는 연구·정진 동양철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도올 김용옥 박사는 연극연출가 孫振策을 향해 ‘항상 공부하는 손진책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야 말 것은 믿어 의심할 바 없다’고 단언해왔다. 한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친밀한 교분을 잇고 있는 도올은 지난 86년 손진책이 자신의 극단을 창단할 때 극단 이름‘미추(美醜)’를 지어주었다. 큰 ‘대(大)’위에 양(羊)을 쓰는 미(美)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양’,추(醜)역시 ‘술병을 놓고 춤춘다’는 ‘제의식과 놀이’의 의미가 함축되어 이름에서부터 흥겨운 마당놀이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다. 창단 선언문에서 손진책은 ‘마당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이자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 인습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통’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추의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며 ‘마당’이란 시간적으로 ‘지금’,공간적으로는 ‘여기’, 즉 지금 이곳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유도한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현대극에다 우리 가락과 몸짓을 집어넣고 고전과 현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접목하여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인간다운 삶을 엮어내기 위해 전통을 창작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전통에 바탕을 두지않고는 우리 문화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그는 ‘전통의 창조적 파괴’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셈이다. 그래서 소재도 시대의 아픔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우리의 한맺힌 소리와 흥청의 몸짓이 곁들여진다. 그의 공연양식에 대해 연극계 일각에서는 ‘전통의 왜곡’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만 ‘치열한 자기개혁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전통’이 그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극단명 ‘미추’,김용옥이 지어 초기엔 극단 산하의 연출부에서 수습시절을 보내다가 73년 원로연출가 허규씨를 만나 극단 민예를창단,다음해 ‘서울 말뚝이’를 첫 연출로 그는 ‘배비장전’‘꼭두각시 놀음’‘한네의 승천’‘허생전’등 일련의 전통극의 현대화로 자신의 연극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 MBC 후원으로 ‘마당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멍석을 깔고 탈춤을 추는 복고풍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 이 광장에서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깬 오늘의 춤, 오늘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킴이’‘오장군의 발톱’‘신이국기(新二國記)’‘영웅만들기’‘시간의 그림자’‘남사당의 하늘’등이 그 예이며 이러한 민족적 기상을 살린 연극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미국등 해외무대에 진출, 그때마다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을뿐 아니라 해마다 중요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민족연극 해외서 더 호평 그동안 90여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작품의 ‘완성도’에 치중하여 1년에 한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신념은 ‘문화는 흐르는 물과도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막을 수도 없고 또는 수세적인 자세도 문화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의다. 국내는 물론 바깥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무엇을 내놔야 부끄럽지 않은 경쟁력을 지니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해학성, 예술성을 치밀하게 복합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물론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되고 그가 연출한 어떤 작품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손진책은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미청년의 모습이다. 천재성을 번뜩이지도 않고 난삽한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밝히기위해선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한다. 경북 영주에서 사업을 하던 孫秉吳씨와 黃鳳漢씨의 8남매중 넷째이자 장남, 위로 누나셋중 큰누나인 손정숙은 서양화가이고 셋째누나인 손봉숙은 한국정치연구소장이다. 서울에서 대광고에 다닐 때는 연극무대가 있는 명동에 드나들었고 한 때는 클래식음악,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아서 밀러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의 길로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패인 남운용옹을 비롯 동해안 별신굿의 김영달,한국 가면연구회의 이근성씨등 전통연희의 장인들을 만나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를 전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가족은 75년 극단 민예시절에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로 만난 金星女와의 사이에 남매. 김성녀는 창과 춤솜씨가 뛰어난 중견배우다. 배고프고 외롭던 연극초창기에 그는 극단 민예의 아현동과 이대앞 대현동 시절을 거쳤고 지난 90년이후 장흥부근인 경기도 양주군 백석에 그의 오랜 염원이던 300석규모의 ‘미추산장’을 개관했다.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연극을 만들면서 연극 워크숍과 공연은 물론 연극학교도 열 계획이다. 그와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국악작곡가 박범훈은 ‘손진책은 가무악(歌舞樂)이 함께하는 우리 토착예술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며 만약 고향 영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농토를 지키는 멋진 지킴이가 됐을 거라고 조언한다. ○전통연회 장인들에 전수 그의 연극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질주해 왔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해도 일목요연한 발전만으로 모든 파란은 침몰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학구파인가는 그가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천여권의 연극대본과 연극학 한국학 국악 철학관련 서적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각오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험로(險路)다. 그러나 도올의 단언대로 그는 ‘남사당의 하늘’‘시간의 그림자’같은 주옥편을 탄생시켰고 이제는 사방이 확 트인 자연속에서 불멸(不滅)의 명작을 잉태하기 위한 흥과 정취,긴 신명을 도저하게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47년 경북 영주출생 ▲1970년 서라벌예대 연극과 졸업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입단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창단동인 ▲1974년 ‘서울말뚝이’ 연출데뷔 ▲1881­현재 마당놀이 ‘허생전’‘‘이춘풍전’등 서울및 지방공연중 ▲1982년 런던로열셰익스피어극단연수 1982­86년 극단민예극장 대표▲1986년 극단 미추창단대표,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 ▲1987년 극단 미추창단기념공연 ‘지킴이’연출, 국악관현악단 지도위원 ▲1989년 ‘심청전’ 유고공연 ▲1990년 ‘아리랑’ 소련순회공연 ▲1992년 태평양국제연극제 참가 ▲1993­현재 LG복지재단주최 전국고교순회 마당극 ‘이춘풍전’등 공연 ▲1994­현재 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 부회장, ‘심청전’ 미국순회공연 ▲1995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1996년 오늘의 작가전­최인훈 연극제 및 베세토국제연극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참가 ▲1997년 세계연극제 국내공식초청작 ‘오장군의 발톱’공연 참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75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작품상(86년) 서울연극제연출상(87년) 예술평론가제정 ‘최우수예술가’선정(87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88·89·91·93년)
  • 정부 사용 아래아한글 거의 “복제”/업계 주장

    ◎“총 24,800대중 정품은 6,930건 불과” 정부 부처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물을 다량으로 사용,아래아 한글 제조업체인 ‘한글과 컴퓨터’의 침몰에 상당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23일 한글지키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민간단체가 조사한 ‘행정부처별 PC 보급 대수 및 소프트웨어 사용 현황’에 따르면 장관이 통할하는 16개부(국방부 제외)의 98년 6월 현재 PC 보유대수는 총 2만4,800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행정부처의 ‘아래아 한글’ 구입 건수는 6,930건에 불과하다. 아래아 한글 정품 구입 건수가 PC 보유 대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8%에 그친 셈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정부부처 PC들이 불법 복제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이단체의 주장이다.실제로 정부 부처의 거의 모든 컴퓨터에는 아래아 한글이 깔려 있고,이를 통해 문서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정부부처들이 앞장서 불법복제물을 사용함으로써 한글과 컴퓨터의 침몰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들의 주장도 비슷하다.한업체 관계자는 “정부 부처를 돌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 청사 안에 아래아 한글 불법 복제물이 많이 나도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간단체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보관 문서나 보고용 문서가 대부분 한글로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행정 부처 공무원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한글을 쓰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관·보고용 문서가 100% 한글로 처리되지 않고,문서 대부분이 출력된(프린트 용지) 상태로 보관되기 때문에 다른 워드 프로그램이 쓰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공무원들 대부분이 한글 소프트웨어를 깔아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자문서 비율이 가장 높다는 한 행정부처의 전산업무 담당자는 “정부 문서가 반드시 한글로 보관·보고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40% 정도만 한글로 처리되고 나머지는 아리랑,하나 워드,MS 워드 등으로 처리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몇몇 행정부처 관계자들은 대개 문서의 80∼100%를 한글로 처리한다고 밝혀 민간단체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정보통신부는 행정 부처들이 대통령 주재 ‘정보화전략회의’ 등에서 소프트웨어 사용 실태와 구입계획을 보고토록 추진할 방침이다.실제조사에서 정부부처가 아래아 한글의 불법복제물을 다량으로 사용했음이 확인될 경우 한글과 컴퓨터사에 대한 보상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파업 자제 외자유치 협조를/羅道成(발언대)

    지금은 자기 몫을 찾기 위해 서로 싸우고 앞서 나설 때가 아니다.파업은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성장을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한국은 아직 외환위기의 급박한 와중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작은 실수도 대한민국호(號)를 침몰시킬 수 있다. 위기극복의 첫 걸음은 내딛었다.정부와 기업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수출증대와 외자유치에 발벗고 나섰다.대내적으로는 기업 금융 공기업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해 무한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국가체제를 갖추느라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지 않는 부문이 어디 있겠는가.노동자는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 고용이기에 아픔이 더 클 수 있다.그러나 지금의 아픔은 인내로 보상받을 수 있지만 투쟁으로는 안된다. ○투쟁보다 인내 필요 우리 산업자원부도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고 있다.미국 유럽 등 현지로 직접 가 우리의 변화된 환경을 설명해가며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많은 성과가 있었다.일본엔 지난 5월 투자환경조사단이 방문했다.7월에는 큐슈지역에 투자유치단이 파견된다.8월에는 싱가포르,그리고 10월에는 한일정상회담에 맞춰 대규모 투자유치단이 일본에 간다. 미국과 유럽기업들도 그렇지만 일본기업은 한국의 노사문제에 정말 민감하다.80년대 후반 노사분규에 못이겨 수출자유지역에서 철수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정부가 투자유치를 위해 뛰어도 민노총의 대규모 집회하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외자가 안들어 오면 누가 우리의 고용을 창출해 줄 것인가.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전선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젊은이는 어찌할 것인가.파업은 일부 조합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 공무원들도 물론 반성할 점이 많다.그러나 공직사회도 구조조정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우리부처 아주협력과를 예로 들자.과거 아주1,아주2,아중동 등 3개 과가 하나로 줄었다.대신 업무는 투자유치때문에 2배로 는 느낌이다.10명의 직원이 밤낮으로 뛰고 있다. 파업은 안된다. ○노사관계 안정 절실 실업의 아픔은 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실업을 줄이는 길은 파업이 아니라 구조조정과외자유치에 있다.특히 일본의 투자형태는 소위 신·증설(그린필드) 투자다.기업 인수합병(M&A)보다도 고용창출에 도움이 된다.이들이 우리나라에 다시 투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노사관계가 필요하다.우리의 전투적 노동운동의 이미지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돼야 한다. 당장의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21세기 정보화시대의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유연한 노동시장의 확보가 절실하다.정보화 시대에는 개인의 창의력과 사업장의 자유로운 진입 및 퇴출이 없는 한 산업의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다.
  • 경쟁사회 신사협정 지키자/李京子 한국방송개발원장(기고)

    미국 이민사회에서 농담처럼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한국인들이 유태인 상권(商圈)에 진입했을 때 초기에는 유태인들이 매우 긴장하고 경계를 했다는 것이다.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부지런하고 성취동기가 강해 사업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힘겨운 경쟁상대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난 후부터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왜냐하면 한국인들이 상권에 들어와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나면 반드시 다른 한국인들이 몰려와 서로가 망할 때까지 무한경쟁을 하여 스스로 도태되기 때문이란다. 스스로 도태될 뿐 아니라 한국인들간에 적당히 경쟁을 붙여놓으면 앉아서 꿩먹고 알먹는 어부지리(漁夫之利)까지 얻을 수 있으니 전혀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척박한 이국생활에서 어느 한사람이 한 분야를 땀흘려 개척하고 키워나간다면 적어도 그것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것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이민생활을 하는 이민사회의 ‘신사협정’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두가 사는 길일테니까.신사협정이란 결국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고,게임에서 공정한 규칙이 준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다를 뿐 미국 이민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신사적’ 경쟁은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해외 주요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국내 방송사간의 무원칙한 경쟁의 결과로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최근의 일이다.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다.원칙이 지켜지는 경쟁일 경우만 그러하다.현재 우리 사회에 고통스러운 부담으로 안겨지고 있는 ‘거품’이니,‘중복투자’니 하는 것들이 바로 무원칙한 경쟁의 결과들이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방송분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지금 방송계가 구조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에는 방송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하여 모든 방송사가 똑같은 방향으로 경쟁적으로 중복투자한 결과임을 외면할 수 없다.방송의 내용 역시 공영방송,상업방송,지역방송,전국방송의 역할에 대한 원칙이 무시된채시청률이라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경쟁해 왔다.그 결과 우리 방송의 내용은 창의적 프로그램의 개발이 외면된 채 모방과 저질(低質)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오랫동안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라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경쟁을 한 것이 아니고 남의 발목을 잡고 같이 침몰하는 복제와 모방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에 몰두해왔던 셈이다.소모적인 경쟁은 너와 내가 공멸(共滅)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통해 확인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어라”라고 말했다.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의 파괴 본성(本性)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바로 문화고,도덕이고,규범이란 것이다.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크고 작은 관계에서 ‘신사협정’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경쟁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인해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해낸 인간의 지혜이다.이것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보호장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은 아닐지.
  • 합참 “작전실수론” 반론 제기

    합동참모본부는 26일 북한 잠수정 예인 및 수색 작전 경과를 종합 발표하면서 그동안 언론 등에서 제기한 해군의 작전 실수와 의혹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합참은 우선 잠수정 예인장소 변경이 침몰의 한 이유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 “예인 당시 선체의 5분의 4 정도가 물에 잠기고 80도까지 급격히 기울어지는 등 침몰 우려가 있었고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가장 가까운 항만으로 신속하게 옮기려 했다”면서 “예인 중 잠수정의 상태가 안정적으로 회복돼 넓은 해역과 구조장비 지원 등 작전 여건이 좋은 동해항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발견 지점에서 즉각 인명구조 작전을 실시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잠수정이 발견된 장소가 수심이 1,000m가 넘는 곳이며 잠수정이 침몰 직전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신속히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인도적 차원에서 승조원을 구조하기 위해 망치 신호와 수중통신기 호출을 계속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해항으로부터 1.8㎞ 떨어진 지점에서잠수정이 침몰된 원인에 대해서는 “잠수정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오랜 시간 예인되는 과정에서 부력이 약화돼 가라앉았다”면서 “잠수정과 예인선 2척에 연결된 로프 가운데 한줄은 인양을 준비하기 위해 잠수사가 풀은 것으로 인양 중 잘못으로 절단된 것이 아니 다”고 주장했다. 합참은 “우리 해군 역사상 최초로 실시한 잠수정 인양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해군 수중폭파대(UDT)와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이 세계 최초로 수심 33m 해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잠수작업을 실시해 공기주머니로 침몰한 잠수정을 인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강조했다.특히 예인,인양,잠수정내 탐색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군 당국의 이같은 해명성 설명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의혹들은 남아있다.북한 잠수정의 임무,예인 중 탈출자 여부 등은 규명해야 할 과제 가운데 일부다. 특히 군 당국은 불과 2년만에 두번씩이나 잠수정 침투 사건을 겪으면서 해상경계망이 뚫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잠수정사건 처리의 허점(사설)

    동해에 침투한 잠수정을 예인하다 침몰시킨 사건은 한심하다못해 안보태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침몰 50여시간만에 잠수정을 인양하긴 했지만 승조원은 모두 사망한채 발견돼 사건처리를 복잡하게 만든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어부가 잡아준 잠수정을 해군이 바다속에 빠뜨려 침투의도나 목적을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게 만든 것은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지탄을 면할 수 없고 관계자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해안경계가 1년9개월전 강릉 잠수함침투사건 때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허술했다는 사실은 그만 두고라도 출동한 군이 잠수정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허술함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잠수정을 예인하기 전 잠수정의 상태와 내부에 생존 승조원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하지않은 점은 물론 예인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여러가지 상황에 충분히 대비해야 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조치들이라 할 것이다. 당시의 여러가지 상황이 항구로 신속히 예인해야만 할 형편이었다면 처음부터 적당한 목적지를 정해 바로갔어야 하지 예인도중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목적항을 바꾸어 한시가 급한 판에 필요이상의 시간을 끌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예인 도중 잠수정에서 비상연락을 위한 통신안테나가 나와 이것을 끊었다고 했다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한 것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생존 승조원을 예인중 침몰로 사망케했다는 얘기가 되며 이것은 앞으로 북한과 잠수정문제를 다룰때 엄청난 쟁점이 될 수 있는 사항이다. 이런 일이 없게하기 위해서라도 예인 전에 반드시 생존자 유무를 확인하고 생존자가 있었다면 그들의 신병부터 확보해야 했을 것이다. 잠수정은 이미 우리 손에 잡혀있는 상태고 침투목적과 의도등을 조사하는 데는 생존자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에서 군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물론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반 선원도 아닌 해군이, 그것도 합참까지 지원한 대규모 작전에서 그물에 걸려 달아나지도 못하는 잠수정 한척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여 쩔쩔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보는국민들은 당혹스럽고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관계가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시점이다. 잠수정 사건의 성격여하에 따라 남북관계가 계속 화해로 가느냐 다시 긴장이냐로 갈릴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도 안보태세가 튼튼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경계태세의 허점을 보완하고 안보를 더욱 굳건히 하기위해 이번 사건은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대서양서 원양 어선 침몰/한국인 선원 등 3명 실종

    지난 23일 하오 9시30분쯤 라이베리아의 몬로비아 인근 대서양 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시에라리온 국적 원양어선 토요5호(371t·선장 尹석환)가 다른 선박과 충돌한 뒤 침몰,한국인 선원 등 3명이 실종됐다고 선원 송출회사인 세우해운이 25일 하오 부산해경에 신고했다. 실종된 선원은 조기장 金대욱씨(42·경북 구미시 고아읍 이래리 318)와 조선족 2명 등 3명이며,선장 尹씨 등 나머지 선원 26명은 인근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에 의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 인양 지휘 曺富根 준장/잠수정 묶는데 어려움/경험모자라 인양지연

    북한 잠수정의 예인과 인양을 진두지휘했던 제1전단장 曺富根 준장(50)과 해군 작전사령부 55구조전대장 陳敎仲 대령(46)은 25일 하오 동해시청 상황실에서 작전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양 작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잠수정을 묶는 작업이었다. 해군 해난구조 요원들이 50㎏이 넘는 작업공구와 로프를 가지고 수심 34m까지 들어가 작업했다. 잠수 제한 수심에 근접해 한번 잠수에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8∼9분에 불과해 작업이 무척 어려웠다. ­인양작전이 지연된 이유는. ▲인양작전 자체도 어려웠지만 솔직히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 부담감 때문에 능력 밖의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또 해군 사상 처음 실시되는 인양작전 이어서 경험도 부족했다. ­승조원의 구조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우리의 임무는 이들의 구조가 아니라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군인으로서 북한 승조원은 인도적으로 구조돼야 할 대상이 아니라 포로로 잡아야 할 적이다. 또 특공훈련을 받은 이들을 살리려고 섣불리 문을 열었다간 우리측의 피해가 우려돼 어쩔 수 없었다. ­예인 장소를 기사문항에서 동해항으로 바꾼 이유는. ▲처음 목적지가 동해항이었으나 잠수정의 상태가 좋지 않아 가장 가까운 해군기지인 기사문항을 택했었다. 하지만 기사문항은 잠수정이 침몰할 경우 인양 작전을 할 수 없어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다시 동해항으로 옮긴 것이다. ­북한 승조원이 예인 도중 비상통신용 안테나를 올리며 통신을 시도했다는데. ▲22일 하오 11시 비상통신 안테나를 발견하고 통신을 막기 위해 수면위로 나온 안테나를 잘랐는데 예인속도를 4노트로 높이자 나머지 부분이 또 나와 추가로 절단한 것이다.
  • 北 잠수정 인양에서 내부수색까지

    ◎두번째 해치 견고… 맨홀 열고 진입/선수·선미에 에어백 4개 달아 인양/軍警 무장상태·침투목적 밤샘 조사/크레인 이용 방파제 위로 올릴 채비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의 내부 수색작업은 25일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부슬부슬 내리는 장마비도 잠수정 주변을 감싼 긴장감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잠수정 내부의 폭발물 설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군도 더욱 신중하게 작업을 했다. 수색 현장은 각종 서치라이트로 대낮같이 밝았다.그러나 늦게까지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만 나돌 뿐 몇명의 사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쉽게 확인되지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수정 개방 및 내부조사=예인된 잠수정은 하오 6시쯤 동해항 북방파제에 설치된 250t짜리와 150t짜리 두대의 대형 크레인에 의해 마침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냈다.이어 대기중이던 대 테러 전문요원 8명이 2중으로 돼있는 잠수함 해치(Hatch)를 열고 들어갔다.첫번째 해치는 예상과 달리 손으로 쉽게 열렸으며 저항의 기미는 없었다.두번째해치가 열리지 않아 대 테러 요원들은 선수쪽 맨홀을 열고 잠수정 내부로 들어가 차례 차례 정밀 수색을 실시했다.이 과정에서 대 테러요원들이 폭발물이 설치됐을 경우에 대비해 탐지작업을 하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육상 인양=밤 늦게까지 해상에서 1차 조사를 마친 잠수정은 크레인에 들려 방파제 위로 옮겨질 예정이다.대기 중인 군과 안기부,경찰 등 합동신문조 요원들은 육상에서 잠수정의 제원,성능,무장상태,침투목적 등에 대해 정밀조사한다. ▲예인 및 접안=이에 앞서 동해항에서 1.8㎞ 떨어진 침몰지점에서 수면으로 끌어 올려진 잠수정은 하오 3시37분쯤 예인보조선(YTL) 2대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부두로 예인됐다.잠수정은 앞부분 2m 정도를 물밖으로 드러낸채 YTL에 이끌려 하오 4시45분쯤 동해항 북방파제 내항으로 접안됐다.대기하고 있던 대 테러요원들이 잠수정 내부 진입을 위한 탐지작업을 시작했다. ▲부상=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상작업은 동해 앞바다에 정박중인 4,300t급 잠수함 전문구조함 ‘청해진함’의 주도 아래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맡았다.SSU요원 70여명은 24일 상오 9시부터 34m 해저로 들어가 잠수정 선수와선미에 지름 4.1㎝ 철제 와이어를 감은 뒤 잠수정의 연결고리에 20t 짜리 공기주머니 4개를 차례로 연결했다.이어 25일 하오 1시50분쯤 청해진함에 연결된 호스로 잠수정에 부착해 놓은 공기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한 시간만인 3시쯤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잠수정 예인 일지 ▷22일◁ ▲하오 4시33분=속초 동남방 11.5마일 해상서 북한 잠수정 발견·신고 ▲하오 4시40분=경계태세 1급 발령 ▲하오 5시30분=1함대 소속 초계함 1척 등 현장 도착 ▲하오 7시25분=군산함 예인 시작 ▷23일◁ ▲상오 0시20분=기사문항으로 들어오다 동해항으로 예인 장소 변경 ▲하오 1시=동해항 앞바다 1.8㎞ 해상에서 잠수정 침몰 ▷24일◁ ▲상오 5시=잠수정 인양작업 착수 ▲하오 8시30분=공기주머니 부착에 필요한 철선 연결후 작업중단 ▷25일◁ ▲상오 5시30분=인양작업 재개 ▲하오 3시=공기주머니 이용 잠수정 부양 성공 ▲하오 4시45분=동해항 방파제 바지선까지 예인 완료 ▲하오 6시16분 수중폭파대 잠수정 투입 시작 ▲하오 6시30분=사체 발견
  • 北 잠수정 승조원 전원 사망/海軍,내부수색

    ◎사체 강릉병원 이송 사인조사/인원수는 안밝혀져 【동해=특별취재반】 동해항 앞바다 1.8㎞ 지점에 침몰한 북한 잠수정을 예인한 해군은 25일 밤 잠수정의 내부를 수색해 사체를 확인했다. 잠수정에는 최소한 4∼5명 가량 승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하오 11시 현재 정확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군은 사체를 국군 강릉병원으로 옮겨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해군 수중폭파대(UDT)는 하오 6시16분부터 15분동안 1차 수색에 들어가 오리발 3세트와 롯데 칠성 페트병,사각 사각 복숭아 페트병 1개를 발견했다.침투 장비인 미제 아쿠아제품의 개방회로 잠수기와 보자기 1개도 나왔다. 확인결과 1차 해치(수밀문)와 2차 해치 사이는 빈공간으로 밀폐돼 있었으며,함교의 1차 출입구와 2차 출입구의 공간 크기는 높이 2.5m,폭 0.75m로 30㎝ 정도의 물이 차 있었다. 수색조는 하오 10시43분쯤 함교 오른쪽 옆에서 길이 2.5m,폭 1m 크기의 맨홀을 발견,민간인 전문가를 동원해 뜯어냈다.하오 10시35분쯤에는 함교 2m 뒤쪽으로 길이1.5m,폭 70㎝ 크기의 철판을 제거했다. 군은 96년 잠수함을 타고 강릉 앞바다로 침투했다가 생포된 李광수씨가 “잠수정 안에 폭파장치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수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 “26일중 잠수정을 육지로 끌어올린 뒤 합동신문조를 투입,2차 정밀 조사를 하면 침투목적과 경로,잠수정 기관고장 여부 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해군은 하오 3시쯤 잠수정을 물밑 3m까지 끌어올린 뒤 3시47분부터 예인작업을 시작,하오 4시45분쯤 동해항 방파제로 끌고 왔다. 합동참모본부는 “상오 5시30분부터 재개된 인양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하오 3시쯤 잠수정을 매단 20t 용량의 공기 주머니 4개가 물위로 떠올랐다”면서 “잠수정의 선체가 3분의 1 가량 뜬 상태로 방파제까지 예인했다”고 말했다.
  • 햇볕론 有用性 싸고 공방전

    ◎한나라 “잠수정 드나드는데 정부 소극대응”/국민회의 “도발 저지·교류 병행가능” 반박 여야는 24일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햇볕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공격은 한나라당이 먼저 했다.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을 의제로 다룬 총재단회의에서다. 金哲 대변인은 회의후 브리핑을 통해 강한 톤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지금 대단히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운을 뗀뒤 “북한 잠수정은 우리의 해상 방어망에 포착되지 않고 꽁치잡이 어선에 의해 발견되었을 뿐만아니라 침투의 유일한 증거물인 잠수정이 예인 중에 침몰한 것은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난했다. 金대변인은 “화해정책은 상호주의를 기본으로 한다”면서 “명백한 침투행위에 걸맞게 대응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의 대남전략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햇볕론’의 기조가 흔들릴까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7·21 재·보권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 비판적인 보수 희구층을 겨냥한 전술적 측면도 엿보인다. 나아가 이처럼 중대한 사태를 국민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할 국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후반기 원구성을 거듭 촉구하는 압박 전술도 전개하고 있다. 金대변인은 별도의 성명에서 “잠수정이 드나드는데 금강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민회의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햇볕론’은 국민의 지지와 기대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辛基南 대변인은 논평에서 “통일은 정파를 떠나 초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요하다”며 “여기에 정치공세가 끼여서는 안된다”고 통박했다. 辛대변인은 “잠수정은 잠수정대로, 금강산은 금강산대로 병행시켜 나갈 역량이 우리에겐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국민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자제하기 바란다”고 훈수했다.
  • 칠흑속 높은 파도로 작업 차질/北 잠수정 인양 현장

    ◎잠수요원들 공기주머니 달기 물속 진땀/경비정 7척 주변 순회… 삼엄한 경비·경계/“산소통 충분히 보유” 승조원 생존 추측도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 인양작업이 한창인 동해항 앞바다는 24일밤이 되자 조류가 빨라지면서 파도도 높게 일었다.칠흑같은 어둠이 밤바다를 감싼 가운데 작업현장은 인양선박에 설치된 수십개의 라이트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았다.긴장감은 어느덧 적막감으로 바뀌었다. 인양작업은 어둠이 내린 하오 8시30분쯤 중단됐다.34m 깊이의 바다 속을 오르내리며 잠수정에 밧줄을 묶느라 구슬땀을 흘렸던 SSU(해양구조대) 요원들도 잠수복을 벗고 함상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오 8시쯤이면 물위에 모습을 보이리다던 북한 잠수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하지만 25일에는 인양·예인작업이 끝날 것이라고 해군 관계자는 전했다. 작업은 이날 아침부터 시작됐다.산소통을 등에 진 SSU 요원들이 연거푸 자맥질을 할 때마다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의 속도는 늦어졌다. 잠수정 인양작업에는 해난 구조를위해 특수제작된 3,000t급 청해진함과 예인바지선 2척이 동원됐고,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비정 7대가 주변을 맴돌았다. SSU요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부양용 공기주머니 4개를 잠수정의 양측면에 부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작업인데다 파도까지 일었기 때문이다. 이날 군은 이례적으로 북한 잠수정의 인양 현장을 내·외신 기자 50여명에게 공개했다.취재진들은 북한 잠수정을 동해항으로 예인했던 1,200t급 군산함을 타고 상오 11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침몰현장을 돌아보았다. 함상에서는 북한 승조원의 생존여부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군 관계자는 “예인 도중인 23일 상오 1시와 3시 두 차례에 걸쳐 잠수정밖으로 안테나가 나온 것으로 미루어 북한과 교신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승조원들은 어떤 악조건 아래서도 열흘 가량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산소통과 보조장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잠수정 내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생존여부를 단언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들이 내부에 있으면 살아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세계기업과 한국기업의 흥망(崔澤滿 경제평론)

    대기업의 부침(浮沈)은 실로 무상하다. 레슬리 해나 런던정경대 교수가 저술한 세계기업사를 보면 혜성처럼 나타나 화려한 각광을 받다가 유성처럼 사라져간 거대기업이 많다. 지난 1912년 세계 100대 기업에 속했다가 95년까지 살아 남은 거대기업은 25%에 불과하다. 한국 대기업의 수명은 세계 거대기업보다 훨씬 짧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지난 65년 매출액 기준으로 100대 기업에 들었던 업체 가운데 지난주 퇴출한 기업을 포함,살아남은 기업은 불과 10여개에 불과하다. 세계 거대기업은 83년동안 생존율이 2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3년동안 생존율이 10%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단명이다. 세계기업사를 보면 핵심역량 배양보다 독점추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거대기업이 공통적으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에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둔 거대기업은 다른 기업과 구별되는 독특한 경영기법을 통해 역량을 키워 산업내 경쟁에서 우위를 지켜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문어발식 경영 단명 초래 한국 대기업의 침몰은 대부분 과다한 차입경영과 문어발식 경영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주력기업의 핵심역량을 키우는데 힘쓰지 않고 주력기업이 부실한 계열사에 지급보증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서 지원하다가 주력기업마저 부실화되어 마침내 그룹전체가 공중분해되는 비운을 맞는다. 또하나 한국 대기업의 생존율이 짧은 것은 대외적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데 있다. 동서간 냉전종식후 국제경제의 경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는 국경없는 경제전쟁을 의미한다.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세계는 마침내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했다. 세계화를 위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미국기업은 정말로 뼈를 깎는 아픔속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국의 최대 통신회사인 AT&T는 비메모리 부분에 손을 댔다가 실패작으로 판단이 나오자 과감히 매각했다. 전자사업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던 웨스팅 하우스는 주력사업인 전자부문을 송두리째 팔아 버리고 방송사업을 주력사업으로 바꾸는 일대 혁신까지 단행했다. 미국기업의 구조조정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컴퓨터부문에서 독보적 위치를 지키고 있는 IBM은 지난주 연간 매출 20억달러에 달하는 프린터사업부문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프린터 사업은 현재 흑자를 내고 있는데 미래의 전략형 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은 이미 7∼8년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구조조정을 착실히 진행,한때 일본기업에 뒤지고 있다는 비판을 말끔히 씻어 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지난 17일에야 55개 대기업을 퇴출키로 결정했다. 정부가 IMF로부터 긴급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과 채권은행이 수개월동안 작업 끝에 이들 기업을 퇴출시킨 것이다. ○자발적 구조조정 결단을 기업은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고 한다. 한국 대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부실기업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매각 또는 청산절차를 통해서 정리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이 뒤진 기업은 국내 다른 기업에 넘기거나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상위재벌간 빅딜(사업간 교환)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불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21세기에는 기업의 생존연령이 더욱 단축될 것이다. 상위 재벌기업이라고 해서 지금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시장원리에 의해서 자연히 퇴출되는 비운을 맞게 될 것이다.
  • 北 잠수정 인양작업 지연/빠르면 오늘 동해항 예인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의 인양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합참은 당초 24일 중으로 동해항 1.8㎞ 앞바다에 침몰한 북한 잠수정 선체에 밧줄을 연결하고 공기주머니를 달아 물 위로 끌어 올리려 했으나 선체에 밧줄을 묶는 작업조차 마치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잠수정을 물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해 24일 하오 3시부터 선체를 밧줄로 묶는 작업을 진행했으나 수심이 깊고 잠수정 꼬리부분이 해저에 닿아 있어 ‘구멍을 설치’하고 밧줄을 연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은 25일 날이 밝는 대로 잠수정 선체를 밧줄로 묶는 작업을 재개해 공기주머니 4개를 밧줄에 연결,잠수정을 물 위로 끌어올린 다음 동해항에 접안시킬 계획이다. 합참은 25일에는 비가 내리는 등 기상이 악화되더라도 파도가 2m를 넘지 않으면 예정대로 인양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북상중인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4일 하오부터 26일까지 호우와 함께 파도가 다소 높게 일 것으로 보여 잠수정의 인양작업에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합참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잠수정을 물 위로 끌어 올려 동해항 부두로 예인한 뒤 대형 기중기로 육상으로 끌어올려 승조원의 사망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나 25일 하루동안 모든 작업을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영해 침투 목적과 경로 등 합동신문조의 조사결과도 빨라야 26일 또는 27일에나 나올 전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잠수정 승조원들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승조원들이 침투공작 실패에 대한 죄책감 또는 잡히면 정보를 빼낸 뒤 죽인다는 북한 당국의 교육 때문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잠수정이 처음 발견된 22일부터 지금까지 생존 징후가 전혀 포착되지 않았으며,잠수정 머리부분의 축전지에서 새 나온 유독가스에 의해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잠수함은 침하 때 내부 격실이 차단되고 내부에 산소 재생액과 예비산소 등이 적재돼 있어 작전기간보다 3∼4일 정도 더 버틸수 있기 때문에 일부 격실에 1∼2명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北 잠수정 예인중 침몰/동해항앞 로프 끊어져… 오늘 인양

    ◎승조원 자폭 등 전원 사망 가능성 높아 【동해=특별취재반】 우리 영해에 침투했던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 예인되던 중 23일 하오 1시쯤 최종 목적지인 동해항 방파제로부터 1.8㎞ 지점에서 가라앉아 예인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22일 하오 7시30분부터 16시간 동안의 예인작업 끝에 동해항 앞까지 끌고왔으나 잠수정이 부력을 잃고 완전히 가라앉았다”면서 “해군 수중폭파대(UDT)와 잠수사를 동원해 작업을 하면 24일 중 잠수정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수정이 가라앉은 지역의 수심은 30∼40m 가량이다. 합참은 선체에 구멍이 생겼거나 부양장치인 밸러스트 탱크의 밸브가 고장나 선체가 가라앉은 것으로 보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林鍾千 합참 작전부장은 승조원의 생존여부와 관련,“예인 도중 여러차례에 걸쳐 수중 음향 탐지기를 동원하고 잠수사들이 망치로 선체를 두들겼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면서 “현재로서는 승조원들이 자폭 등으로 모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잠수정 내부에 물이 차 익사나 산소 부족으로 질식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예인에 앞서 잠수정 내부로부터 나온 굉음을 우리측이 탐지했다”고 전하고 “승조원들이 자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한편 군 당국은 북한 잠수정의 승조원은 5∼6명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잠수정 눈앞 침몰에 ‘당혹’/동해항 인양현장 르포

    ◎수중폭파대 물밑 투입… 긴급 부양작업/예인 18시간… 한때 투항 권유 방송도 【동해=특별취재반】 23일 하오 1시쯤 강원도 동해항.이날 새벽부터 양양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예인돼 오던 북한 잠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진초록색 얼룩무늬의 선체도 육안으로 희미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잠수정을 삼엄하게 호위하는 우리 구축함과 경비정 7척도 시야에 들어왔다.해군의 초계함 ‘군산함’이 예인에 나선 지 18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해군은 잠수정을 끌고 오면서 지난 96년 강릉 앞바다에 잠수함으로 침투했다가 붙잡힌 李광수씨를 데려가 투항 권유 방송을 계속했다. 100여명의 주민들과 군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 쇠줄에 묶여 이끌려 오던 잠수정은 순조롭게 해군기지로 들어오는 듯했다. 30분쯤 지났을까. 3노트를 유지하던 항해속도가 항구로 접근하면서 줄어들자 잠수정의 뒷부분이 조금씩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다.동해항에서 1.8㎞ 떨어진 지점이었다.북방파제 300m 앞까지 끌어오겠다는 것이 군 당국의 계획이었다. 잠수정이 가라 앉자 이른 아침부터 방파제에 나와 예인을 기다리던 군 관계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침몰 원인이 무엇인지,승무원들이 살아 있는지를 알아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수정을 끌고 오던 로프를 큰 배에서 작은 배로 옮기던 중 부력을 잃고 잠수정이 수심 30m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해군측은 설명했다. 승무원들의 생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군 관계자는 예인 도중 투항 방송도 하고 망치로 잠수정을 두드려 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전했다.몇차례 교신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잠수정의 표류 현장에 우리 군 헬기가 도착하기 전 잠수정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결국 군은 적어도 3명 이상인 승무원들이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잠수정이 가라앉자 해군은 수중폭파대(UDT) 요원들을 물속으로 들여보내 선체 확인과 부양작업을 서둘렀다.요원들은 선체에 손상이 없고 탈출한 흔적도 없다고 알려왔다.그러나 다시 물위로 끌어올리는 데는 24일 하오까지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였다.
  • 합참관계자 문답/“잠수정 부력 상실해 침몰”

    ◎해군 접근때 이미 기울어져/24일 상오에나 인양 끝날듯 합참 朴인용 해상작전과장은 23일 “북한 잠수정이 하오 1시 동해항 동쪽1.8㎞ 해상에 도착했을 때부터 부력을 상실해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 앉았다”고 말했다. ­부력을 잃게 된 원인은. ▲22일 하오 7시30분부터 16시간여 동안 진행된 예인 작전 중 서서히 잠수정에 물이 들어가 23일 하오 1시쯤 잠수정 내부가 완전히 잠겼다. ­승조원의 생존 가능성은. ▲장수정 내부에 물이 가득 찼다면 살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처음에는 살아있었더라도 익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 ­잠수정이 언제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는가. ▲22일 하오 7시쯤 우리 해군 군산함이 잠수정에 다가갔을 때 이미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당시 잠수정이 5분의 3이상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잠수정에 물이 들어갔다는 말인가. ▲그렇다.(해군이 도착했을 당시 승조원들이 이미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뜻) ­현재 어떤 작전이 진행 중인가. ▲해상 폭발물 처리반과 잠수사 요원들이 잠수정의 부양 가능성과 부양 방안을 조사하고 있다. ­언제 부양이 끝나 내부 조사가 가능하겠는가. ▲내일 상오에나 가능하다.
  • 공기주머니 매달아 浮揚/北 잠수정 나포­인양 어떻게

    ◎구조함 2척 船首·船尾 묶어 이동/실패땐 구조선 설악호 투입키로 【특별취재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북한 잠수정은 어떻게 인양될까. 합참에 따르면 북한 잠수정은 23일 하오 1시쯤 동해항 방파제로부터 1.8㎞지점에서 가라앉기 시작해 40분 후 깊이 33m 해저에 침몰했다. 잠수정의 선미 부분을 묶었던 로프는 끊겼고 선수 부분에만 로프가 연결돼 있다. 수면을 향해 머리쪽이 들린 형태이며 선미쪽 스크루 5개 중 2개가 해저에 묻혔다. 군 당국은 선체의 일부가 수면 위에 떠있을 때는 압축 공기를 잠수정 안에 넣어 부양시킨 뒤 자세를 바로잡아 내항으로 옮기려 했으나 선체가 완전히 침몰함에 따라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침몰 현장에는 해군 수중폭파대(UDT)와 잠수사가 투입돼 잠수정이 파손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등 인양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인양은 24일 상오 시작된다. 군 당국은 공기주머니를 선체 양편에 부착시킨 뒤 팽창시켜 수면에 떠오르게 한 다음 2척의 구조함을 잠수정의 앞뒤에 배치,선수와 선미를 각각 로프로 연결해자세를 안정시킬 계획이다. 이 때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쏠리면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군은 공기주머니에 의한 인양작업에 실패하면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때 투입됐던 구조선 설악호를 투입할 계획이지만 설악호는 부산에 정박 중이어서 이동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잠수정이 항구에 도착하면 수중폭파대 요원들이 투입돼 선체 내부를 정밀수색한다. 이어 15명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가 조사작업에 들어간다. 합참의 朴仁鎔 해상작전과장은 “공기주머니에 의한 선체 인양은 외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방법이지만 잠수정은 선체가 둥글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 부착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 첼리스트 鄭明和(이세기의 인물탐구:173)

    ◎사색을 길어올린 웅숭깊은 음색/선율마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넉넉한 여유/테크닉보다 음의 조화 이뤄내는 경지 터득/80년대 음악 멀리하다 “삶의 목적” 깨달아/드로브자크 협주곡 백미… 제자양성에 보람 첼리스트 鄭明和의 손은 남자손보다 크다. 어깨도 남자처럼 넓다. 잘 생긴 용모에다 목소리도 밝고 건강하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때문인지 음악도 스케일이 크고 넓고 심오하다. 단순히 넓고 클뿐만 아니라 톤에는 힘이 살아있고 음의 마디마다엔 유연하고 확고한 뼈대가 꿈틀거린다. 그에게선 발톱을 세운것 같은 독이나 과시감은 찾아볼수 없다. 단지 무르익은 서정성과 육화된 음악의 포도주가 내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너그러움으로 남의 잘못을 가려줄 줄 안다. 초면이라도 구면같이 굴고 좋은 환경에서 잘자란 숙녀답게 반듯한 예의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만사에 대범한 편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치열성과 철저성이 대단하다. 승부근성이 투철하여 그가 이화여중에 다닐때는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한채 낮과 밤은 온통 첼로연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에서 첼로부문 1등상, 서울예고 재학중에 이미 두번의 개인독주회를 가졌고 고2때인 60년에는 한국학생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순회연주등 그의 이름은 ‘첼로의 천재’로서 소녀시절에 음악계의 중앙에 우뚝서는 존재였다. 오랜 연주경력탓에 그의 음악은 언제부턴가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하게 되었고 테크닉보다는 음과 음의 연결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란한 경지를 터득하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이강숙씨는 ‘정명화의 음악은 팽팽한가 하면 느슨하고 여유로운가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무리와 과장이 없이 음악의 ‘순리’를 존중하며 음악의 도리에 순종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기교에 침몰하거나 장식음으로 청중을 혼도시키기보다 음과 음으로 보석타래를 꾸미듯이 장구하고도 값진 음악을 그때마다 선사해준다. 화사하게꽃가루를 뿌려대는 바이올린의 변화무쌍과는 달리 첼로만의 사색과 철학은 마치 동굴에서 길어올린 갖가지 원석처럼 장중과 비장미마저 풍긴다. 정명화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울 명동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고려정의 정준채씨와 이원숙씨 사이의 7남매중 딸로 둘째.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첼로의 거장 피아티골스키를 사사했고 60년대 중반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연주를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보배로운 첼리스트’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이 찬사는 그를 따라다니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때까지 동생인 바이올린 정경화나 피아노를 치던 정명훈보다 정명화의 이름은 그들을 리드하고 있었고 그만의 음악적 매력으로 해 세계 첼로계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명성을 쌓던 시기인 66년, 고국에 돌아와 첫리사이틀을 열었을때 음악계의 대부이던 평론가 유한철씨는‘예의 타고난 활달함과 연주가다운 낙천성이 몸에 배어 다이내믹한 역성감(力性感)을 실감시켜주는 연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수 있는 젊은이’로 정명화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도 그 무렵이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등상을 수상하던 71년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시 AP통신 기자이던 具三悅씨와 결혼, 부군은 유엔 50주년 총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에는 유니세프총재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꽃별과 꽃샘. 장녀 꽃별이 지난주 뉴욕에서 결혼했다. 80년대 로마에 머물던 시기에는 잠깐이지만 첼로연주를 멈춘 적이 있으며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마저 낯설게 느껴지자 문득 ‘좌절의 시간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 ‘첼로야말로 무덤까지 끌고갈 동반자이자 삶의 목적 자체임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94년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해 8월 그는 실로 12년만에 고국에서의 독주회를 가졌고 작곡가 이영조가 그를 위해 작곡한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1’ 연주는 또한번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농현을 뜻하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높은 음역에서 낮은 음으로 급격히 낙하하는 소리의 대비, 명상적인 지속음과 장식음등 우리만의 얼이 담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과 아쟁이 할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첼로로 펼치면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음악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한국 첼리스트의 자존심과 실력을 마음껏 과시한 자리로 그가 연주를 끝냈을때 객석에서 길게 이어지는 박수갈채는 그칠줄을 몰랐다. 조용하게 데뷔한 연주자가 있는가하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깊은 것은 아니며 센세이셔널은 그만한 화제성과 가치성을 지닌다. 일찍이 세계의 매스컴으로부터 ‘발군의 테크닉과 명쾌한 해석, 특히나 그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은 보헤미아의 향수가 사무친 연주’라는 평과 함께 그의 연주는 지금도 고국의 땅을 밟는 순간의 탄성과 향수와 사랑이 간절하게 얼룩져 듣는 이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어릴때는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사이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방황했고 20대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장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30대에 이르자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40대가 넘자 비로소 모든 치열성과 명성에서 벗어나 그는 진정한 음악인의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되어 조국과의 연대를 끈끈히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게된것을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음악을 관조하고 무르익은 예술성을 내면에 삭이는 시기에 서서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만의 서조와 광채를 여전히 잃지않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서울예고 졸업, 도미 ▲1961부터 줄리아드음악원 및 남가주립대졸업, 거장 레오나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골스키 사사 ▲1969년 미 닉슨 대통령 초청 백악관연주,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협연 ▲1971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 최우수연주상 수상 ▲1972년부터 런던 BBC교향악단을 비롯, 런던필, 베를린 R IAS, 스위스로망드, 로테르담 워싱턴교향악단등과 협연(지휘 주빈메타 루돌프 켐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등) ▲1976년 뉴욕 링컨센터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과 ‘ 3남매’연주,전미순회연주, 파블로 카잘스탄생 100주년기념연주 1982년 KBS교향악단초청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1년부터 정트리오 음악축제 ▲1994년 국악과의 만남독주회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1( 이영조작곡)’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995년 UN창설 50주년 UN마약퇴치 친선 사절로 세계순회 연주 ▲1997년 뉴욕에서 유니세프주최‘북한 어린이돕기 모금음악회’ ▲1998년 워싱턴 케네디홀 뉴욕 카네기홀서 ‘나라사랑’음악회, 미국 버몬트 국제음악제연주, 이착펄먼 서머프로그램 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미국 ‘엑설런트 2000’상(92년) 청소년 차이코프스 키콩쿠르 최고지도자상(97년) 아름다운 소리 ‘한·꿈·그리움’(96년 CMI음반레이블 )출반
  • 6·4 지방선거 D­8/서울시장 후보 2차 TV토론

    ◎“7대 불가사의” “5대의혹” 설전/고 후보­무리한 추진력은 ‘위험한 독단’ 낳아/최 후보­말썽 두려워 피하는것은 복지부동/시정 우선 순위엔 의견일치… 진행방식 불만토로도 26일 서울시장후보 TV 합동토론회를 시작으로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간의 2차 안방대결이 재개됐다.국민회의 高建후보와 한나라당 崔秉烈후보는 이날 상대방에 대해 ‘5대 의혹’과 ‘7대 불가사의’시비를 주고받으며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정치 공방은 서울시정에 대한 정책과 비전제시를 뒷전으로 밀어냈다. ○…두 후보는 기조연설부터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었다.국민회의 高후보는 한나라당이 ‘高후보의 7대 불가사의’라는 제목의 신문광고를 낸 데 대해 “이성을 잃은 흑색선전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고 선공했다.高후보는 수서사건으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한 것과 관련,“소신을 지키다가 압력에 밀려 물러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崔후보는 환란(換亂)책임 문제와 관련,“高후보는 총리때 경제대책회의도 여러차례 주재했고,관련보고도 여러차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압박했다.高후보는 “경제대책회의는 IMF(국제통화기금)사태 뒤 구성된것”이라고 반박했다. ○…高후보는 崔후보에 대해 서울시장때의 단국대 풍치지구 해제건으로 반격에 나섰다.高후보는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의 예를 들어 ‘위험한 독단’으로 연결지으려고 했다.崔후보는 “말썽이 두려워 피하는 것이 고쳐야 할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라고 맞받아쳤다. 高후보는 崔후보의 현대아파트 분양건과 관련해서도 “유력신문사의 유력한 자리와 관련이 있느냐”며 조선일보 재직때의 특혜 시비를 제기했다.崔후보는 “그 사건이 공직시절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을 다룬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崔후보는 高후보의 병역문제에 대해 “우리 나이 또래의 시민들은 高후보가 갑종 판결을 받고도 군대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확전을 시도했다.이에 대해 高후보는 “당시 영장이 발급되지 않은 사람이 18만명으로 나는 이들 가운데 1명이었다”면서 “병역이 문제가 됐다면 어떻게 군사 정부에서 공무원에 임용됐겠느냐”고 반문했다. ○…崔후보와 高후보는 서울시정의 우선 순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崔후보는 실업문제와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교통·공기·물·안전문제,시정개혁 등 3가지를 들었다.이에 대해 高후보도 실직자를 위한 생활안정대책,교통지옥·환경문제해소,범죄로부터 해방을 제시했다. ○…토론도중 崔후보가 진행방식에 강한 불만을 토로해 몇번이나 토론이 정상궤도를 이탈했다. 崔후보는 맺는 말에서도 거듭 유감을 표명한뒤 “호남대통령,호남 서울시장,호남 구청장 일색이 되면 오만한 정권을 또 다시 맞이 할 수 있다”며 야당 지지를 호소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