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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총재연설 반응…여 “잘했다”-야 “무슨소리”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21일 대표연설을 놓고 여야는 확연한 시각차이를 보였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치개혁안에 공감을 표시했다.반면 한나라당은 ‘중선거구제 주장은 박총재 개인의 생존차원 목소리’라고 깎아내렸다. [여권] 국민회의 황소웅(黃昭雄)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야당은 중선거구제도입,선거공영제 강화 등을 위한 정치개혁 협상에 즉각 호응하라”며 박총재대표연설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우회적인 합당반대 표시에는공식적인 언급을 피했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온화하면서도 할 말은 모두 포함돼 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충청권의원 등 일각에서는 “중선거구제 주장은 영남권 살리기 차원으로 해석된다”며 미심쩍어했다. [한나라당] 중선거구제 주장을 집중 비난했다.이사철(李思哲)대변인은 성명에서 “중선거구제 채택시 정경유착과 파벌정치 강화의 부작용은 필연적”이라며 일본의 예가 이를 입증한다고 꼬집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침몰돼가는 난파선의 선장이 ‘신대륙을 찾아나서자’고 부르짖는 격”이라며 “국가 대사를 논하기 전에 당의 정체성부터 회복하라”고 비난했다. 최광숙기자 bori@
  • [대한광장] 지진피해 타이완 지원 이유

    일본의 한신 대진재,터키 지진재난에 이어 타이완 전 섬이 몽땅 침몰하는듯한 대참사가 일어나 세계가 경악과 비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최근에는 멕시코에서도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지구촌이 지진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구의 재앙은 천재만은 아닌 것같다.60억 인구의 자연훼손,오염,산업폐기물 투기,불법 매몰,마구잡이 간척및 굴착 등 인재에 자연이 노한 것이 아닌가하는 여론도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타이완은 9월 21일부터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과 10일 동안의 크고 작은여진으로 사망 2,060명,부상 8,672명,실종 및 매몰 189명으로 집계됐으며 건물 6,100동이 붕괴·반파되고 5,398동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그러나 실제이 숫자는 정확치 않고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사망이 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니 얼마나 심각한가를 체감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타이완당국은 지진 구호를 위해 약 3조원(800억 타이완 달러)을 투입하고전국에 6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리덩후이 총통이 재난구제책을 발표하면서 재난지역에 군경파견,생필품 사재기 엄벌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고 있다.국민들도 재해구호기금으로 630만달러를 내놓았고 유력한 대선후보도 내년 대선자금 600만 달러를 전액 쾌척하였다고 한다. 이에 맞춰 우리의 119구조대가 현지에 급파되어 매몰돼 있던 소년을 무너진 건물속에서 구조했다.또 우리 국민 22만명이 모금한 성금을 주한 타이완대표부에 전달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에 가졌던 타이완 국민들의 감정도 좋아져 타이완간의 항공협상이 재개되리라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정부도 9월25일 각의에서 5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밖에 각종 구호장비와 식량,가설주택,발전기 18대,그리고 건물 안전진단 전문가들과 훈련받은 개까지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은 1992년 중국대륙과 수교하면서 매우 성급하고도 미숙하게,일방적으로 사전 통고도 없이 쫓기듯 매정하게 타이완에 대해 단교조치를 취했다.금싸라기같은 서울 명동의 대사관 자리도 중국측 외교관이 급작스럽게 짐을 챙겨가지고 입주케 했다.이에 대한 울분과 응어리가 가시지 않아 타이완내 한국유학생들은 고통을 당해야 했고,교민들은 고개를 떨구고 골목길로만 다녀야 했다.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신규식,이동녕,김구 등 40여명의 우리 애국지사는 상하이로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를 수립하고 27년간 국민당과 함께 중국대륙을 이동하며 독립투쟁을 했다.이때 국부 쑨원(孫文) 총통이 임시정부 청사와 식량을 마련해줬고,그가 작고한 1925년부터 45년까지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우리 임시정부가 일제 강점하에서대표성을 갖고 국내외 독립운동을 통합할수 있었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지장에서 순국한 이동녕 주석은 유언으로 이런 말씀을 남겼다.“우리가 일제에게 완전 점령당하지 않고 나라를 우리손으로 찾을수 있게 적극 지원한 것은 국민당 총통과 중국민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장 총통은 광복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까지 수백만원의 건국준비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김구 주석은 환국할 때 장 총통에게 “27년 동안 도와준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예의가 바른 우리나라는 두고두고 갚을 것”이라며 그가 마련해준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장 총통은 이봉창의거(1932년 1월 8일)에 이어 윤봉길의거(1932년 4월 29일)를 본 뒤 임정을 적극 지원하면서 “두 나라의 우정과 신의,교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 타이완은 섬 자체가 침몰할지도 모르는 대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제하의 어려운 시절,우리를 도와줬던 타이완의 재난과 참사를 결코 남의 나라 일로만 바라보고 있어선 안될 것이다./이현희 성신여대교수.현대사
  • 연안 침몰선박 1,400척

    우리나라 연안에 유조선을 포함,1,400여척의 선박이 침몰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침몰선박 대부분이 처리주체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데다 처리 예산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연안어장 및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이우려된다. 30일 해양수산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연안에 침몰해있는 선박이 1,400여척에 이르며 이중 상당수는 해양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대량의 연료기름이 실려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95년 7월 부산 다대포 북동쪽 1.9마일 해상에서 침몰한 액화가스 운반선인 제13삼부호(592t)에 대한 위치·해역조사를 지난 5월 한 결과 부탄가스 380t이 적재된 탱크 2개 중 1개는 유실됐고 1개는 그대로 남아 있다.해양부는 부력으로 인해 탱크가 배에서 이탈할 경우 다른 선박과 충돌,대형 폭발사고가 우려되나 사고선체 주변에 2척의 침몰 선박이 있는데다 통발 어장이 형성돼 있어 정밀조사 및 처리작업에 장애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88년 2월 경북 영일군 대보등대 동쪽에서 벙커C유 2,560t을 싣고 침몰한 유조선 경신호는 사고당시 기름유출구를 막았으나 선체부식으로 기름이 유출되고 있고,96년 12월 충남 태안군 안도 서쪽해상에서 침몰한 화물선 태양자스민호도 잔존유 유출 가능성이 높아 인근 해수욕장과 어장에 피해를 줄것으로 분석됐다. 해양부는 오는 2008년까지 56억원을 들여 침몰선박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침몰선박 등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함혜리기자 lotus@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9)동해를 건넌 발해인

    *동해를 건넌 모험가-발해인 1998년은 발해가 건국한지 13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구려가 멸망하자 만주는 무주공산이 됐다.그러나 대조영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고구려인들은 옛땅을 되찾고 발해를 세웠다.발해는 문화가 뛰어났으며,주변의 나라들과 교역을 활발하게 하였다.영토가 한창 때에는 남은 대동강부터 원산,서로는 요동반도(한규철 설),북은 연해주와 하바로브스크일대까지 뻗쳤다.‘해동성국’이라는 칭송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발해의 국력을 국제적으로도 인정한 것이었다. 발해가 강성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어받은 고구려정신과 지정학적으로 만주지역을 차지하였다는 것,남북경쟁이라는 현실,뛰어난 해양력을 잘 활용했기때문이다.732년 발해는 육군으로 요서지방,수군으로 산동반도 등주와 래주를 공격했다.당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질서에 위협을 느낀 발해는 북방의 흑수말갈을 토벌하였다.이어 돌궐 거란 등과 연합해 당을 공격하기로 하였다.장문휴(張文休)는 수군을 거느리고 등주성을 습격하여 자사(刺史)인 위준(韋俊)을 죽이고 점령하였다.등주는 중국의 수군세력이 고구려를 공격할때 사용하였던 묘도군도 끝에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이 공격은 발해가 수군을 이용해 당의 후방을 공격할수 있다는 경고성 행위였다.그후 당과 화친,황해북부 연근해항로를 이용해 교섭과 교역을 활발하게 했다.특히 산동지방의 고구려계 이정기세력과는 해로로 말 교역 등을 하였으며,심지어 발해 배들이 황해를 종단해 절강지역까지 내려갔다. 발해는 신라와는 적대적이었지만 일본과는 관계가 돈독했다.727년 첫 사신을 파견한 이후 926년 멸망할 때까지 200여년 동안 공식사절만 34번을 파견하였다.무왕(武王)은 국서에서 발해가 고구려의 후신임을 선언하였다.이는고구려의 국제적인 위상과 명분,실리를 계승하겠다는 대외적인 의지표방이었다.반면 일본은 13차로 발해보다는 소극적이었으나,정치적으로는 신라를 견제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치를 상승시켰다. 두 나라는 동맹을 맺어 신라를 남북에서 압박하였으며,8세기중반에는 신라에 공격을 시도해 국제전의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그러나9세기 들어 두나라 간의 교섭은 문화,경제적인 형태로 변화되었다.특히 중요한 것은 무역이었으며,발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발해인들은 담비가죽,호랑이가죽,곰가죽,말가죽,꿀,인삼을 수출했고,일본에서는 면 비단 수은 석유 등을 수입하였다.한번에 몇 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동해를 건너와 곳곳에 세워진 객관이나 객원에 머무르면서 장사를 하였다.일본화폐를 수십만전씩 갖고 귀국하는 경우도 생겼다.그러나 심각한 무역역조 현상이 나타나자 일본 조정은 일본인들의 사무역을 금했으며,발해의 배가 들어오는 오는 횟수와 장소를 제한하고,어길 경우 추방까지 하였다. 발해 사신선에는 수령과 상인들이 타고 와서 중계무역도 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그리고 상인들을 태운 민간배들도 독자적으로 왔으며(746년에는 1,100여명이 일본으로 온 것으로 돼 있다) 기록되지 않은 민간 상인들간의비공식적 교역은 일본의 동해안 곳곳에서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내륙국가로 알려진 발해인들은 언제 어떻게 동해를 건너왔으며,어떤 배를 이용,항해를하였을까? 1998년 1월 24일 새벽,4명의 젊은이들을 태운 뗏목 ‘발해 1300호’가 일본 오키제도의 도고섬 앞에서 전복되면서 전원 희생됐다.사람들은 그들이 무모하게 왜 한 겨울에 그토록 험난한 동해를 건넜느냐고 비판했다.그들의 선배였던 필자는 그들 대신에 항변을 하면서 발해의 해양활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발해배가 일본열도에 닿으려면 한 겨울 북서풍을 받아야 한다.때문에 11월부터 2월 사이에 떠난다.돌아올 때는 반대로 봄철에 일본을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겨울 동해바다는 수온이 매우 낮고,늘 바람이 거세며,파고는 보통 2∼3m다.폭풍이 몰아칠 때는 풍속이 20m/sec 이상 된다.악조건속에서 동해를건너던 발해선들은 무수히 표류하거나 침몰해 숱한 사람이 수중고혼이 됐다(776년에는 120여명이 죽었다).그러나 ‘발해 1300호’처럼 오키제도에 도착한 사절선도 3번이나 있었다. 발해인은 항해술과 조선술이 매우 뛰어났다.동해는 망망대해지만,신라 때문에 안전한 연근해 항로를 포기하고 동해북부 사단항로를 이용해야만 했다.때문에 발해배들은 원양항해를 해야 했으며,지문항법 뿐 아니라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그래서 천문생(天文生)이라는 항법사가 타고 있었다. 한겨울 거친 파도와,강한 바람을 견뎌내려면 조선술이 발달해야 한다.평온한 계절에 내해에서 연근해 항해를 하는 신라나 당,일본배와는 구조나 강도에서 차이가 있다.발해배는 크기는 약간 적고,돛은 사각에 가까웠으며,평저선에 첨저선의 구조를 일부 보완한 형태였을 것이다.발해배들은 러시아의 크라스키노,두만강 하구,청진,북평 등에서 출발해 일본열도의 동북인 아키다(秋田) 니이가타(新潟) 노토(能登)반도,쓰루가(敦賀),이즈모(出雲) 타자이후(太宰府)등 여러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시 항해조건과 연해주를 차지한 발해의 영토 등을 고려할 때 발해인들은 봄 여름에 남서 계절풍을 이용하여 짧은 거리인 동해북부와 타타르해협을 건너 홋카이도나 사할린에도 진출했을 것이다.일본열도로 항해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항해다.최근에 홋카이도 남부지역인 오타루(小樽),오가와(大川)유적에서 7세기대 고구려계 유물과 발해말혹은 여진초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됐다.이것은 고구려나 발해인들이 연해주 항로를 이용,북방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을 높혀주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처럼 대륙뿐 아니라 동해와 황해북부를 장악하여 동아지중해에서 중핵 조정역할을 잘 수행하였고 해동성국이 되었다.결국 8∼9세기는 발해와 신라가 동아지중해를 나누어 운영하면서 분단의 한계를 해양으로 일부나마 극복한 시대였다. 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
  • 돈 부시 美MIT대교수 ‘오마에 한국경제 비판’ 반박 요약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루디거 돈부시 MIT대 교수가‘십자포화 속의 한국개혁’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내용을 간추린다. 한국의 개혁에 대해 크게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면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오마에 겐이치로의 한국 경제 비판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많은 한국인에게조차도 충격을 줬다. 오마에가‘사피오’지(誌)에 게재한 2개의 논평을 통해 주장한 내용은,한국은 미국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회수하고 미 투자은행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한 충격요법과 개혁을 받아들임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굴복했으며 이를 수용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해체해 나라를 망친 지도자’라는 것이다. 한국의 올바른 전략은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상품을 가려내 여기에 집중하고,재벌을 강제로 해체할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퇴출시켜야 하며,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일본 투자자에게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돼야 한다 등이며 나는 이런 주장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가 제조업에서 수직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학의 기본개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개방의 길을 택하고 중앙집중방식을 버리는 한편 시장경쟁의 원리로 자원을 분배하는 나라들은 모두 큰 발전을 했다.일본처럼 빈사상태의 체제를 방어하려고 매달리는 나라는 기력을 잃고 금융난을겪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침몰하게 될 것이다. 나는 부품제조에 관해서는 모르지만 이것이 경제성장이나 무역수지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나는 저명 경제학자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가운데 정부가 단일산업을 선정해 국가전략으로 삼을 것을 종용한 예를 보지 못했다.만일 그들이 50년대에 그런 주장을 했다면 이를 실천한 신흥시장들의금융 붕괴나 일본을 통해 큰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현재 한국이나 일본에서 대차대조표상 위기의 초점은 자본의 낮은 수익성이며 지난 10여년간 이를 초래한 것은 바로 관료와 대기업의 유착이었다.오마에의 통렬한 비난이 담고 있는 일관된 주제는 한국을 일본에 팔아 넘기라는것으로 대동아공영권의 핵심내용을 반영하고 있다.아시아문제는 아시아로 하여금 고유의 치료법으로 해결하게 하라는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한국의 주요 채권은행이 미국이 아닌 일본 은행이란 점이다.한국 정부는 일본 금융기관에 은행간 채무를 보증하는 형태로 가장 큰 양보를 했으며 일본은 채권 규모가 큰 일본 은행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 IMF합의안에이 조항을 포함시켰다.일본 자동차부품에 시장을 개방한 것도 또 하나의 중요한 양보였다. 지난 97년 12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었는가? 한국은 외채상환 불능상태에 빠져 통화와 국내 금융의 전면 붕괴를 허용하거나,늦었지만 결국 치유법이 입증된 IMF전략에 협력하는 방안밖에 없었다.후자 쪽이 효과를 봐 통화는 회복되고 금리는 미국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은사실상 위기 이전의 생산 수준을 회복할 만큼 높다.미국의 서비스산업이 한국을 ‘독점’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서비스산업의 치열한 경쟁이 독점으로 비춰지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운동장이 열려있는데 일본이 서비스산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이 오마에의 충고를 잊어버리고,그의 무지를 용서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뉴욕연합]■루디거 돈부시 교수 약력 ▲42년 6월8일 독일 출생 ▲71년 시카고대학 경제학박사 ▲78년 MIT 경제학과 교수 ▲세계은행,뉴욕 및 보스턴연방은행 자문위원 ▲국제경제연구소,브루킹스연구소 자문위원 ▲‘거시경제학’(스탠리 피셔 공저),‘국제경제정책:이론과 실제’,‘부채와 적자’등 저술
  • 해양부 Y2K 미해결 선박 입출항 통제

    오는 8일과 9일 이틀간 Y2K(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선박은 입·출항이 통제된다.해양수산부는 항만시설 및 입출항선박의 Y2K 오류로 인한 항만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99버그’가 예상되는 8일과 9일이틀간 국내 28개 무역항에 대해 입·출항을 통제한다고 2일 밝혔다. ‘99버그’는 99년 9월9일을 컴퓨터가 파일종료표시(9999)로 잘못 인식,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항만내에서 컴퓨터 오작동으로 제어에문제가 생기면 충돌·좌초·침몰 등 선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양부는 우리 무역항을 입출항하는 100t 이상 모든 선박을 대상으로 공인된 검사기관으로부터 받은 확인검증서를 요구하거나 체크 리스트에따라 안전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확인결과 Y2K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돼있거나 미흡한 선박은 입출항시 주요기기를 수동전환하고 도선사·예인선 등으로 보강한 뒤 입출항토록 할 방침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현대전자 주가조작/재계 반응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확대가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있다. 가뜩이나 8·15 정·재계간담회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재벌개혁으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재계는 검찰 수사가 현대그룹 실세인 이익치(李益治)·박세용(朴世勇)·김형벽(金炯璧)회장에게까지 확대되자 개혁의 칼날이 대우에이어 현대로 향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 재계는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이 실정법 위반으로 재벌정책과 차원이 다른것으로 보면서도 당초 예상보다 수사가 확대된 데 대해 당혹해하고 있다.재벌정책과 검찰 수사를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해석하면서도 “대우그룹 다음은 현대”라는 저간의 설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현대는 이날 ‘현대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내고 “현대전자가 인위적으로주가를 올릴 이유가 없으며,현대 계열사의 현대전자 주식 매입은 투자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특히 “현대전자의 주식 매입으로 현대가이익을 취한 것이 없으며 일반투자자들에게도 손실을 발생시키지 않았다”며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현대전자 주가조작사태와 재벌개혁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느냐”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그러나 다른 그룹 관계자는 “현대와 같이 현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해 온 그룹이 이 정도라면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재계는 특히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회장의 외화유출 및 공금유용 혐의가국세청 조사로 드러나고 있는데다 세계일보의 경영진 개편에 통일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일조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아 현대에 대한 수사확대를 재벌개혁 촉진을 위한 전방위 압력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바이 코리아(Buy Korea)가 마침내 침몰하고 있다”고도평했다. ‘바이 코리아’는 현대그룹의 금융주력사인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취임후 ‘종합주가지수가 6년 안에 6,000포인트까지 간다’며 증시에 붐을 일으켜 10조원을 돌파한,전무후무한 주식투자펀드.이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돼 바이코리아펀드가 쇠락의 길로 들어서면 증시도 침체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어쨌든현대 주가조작사건이 현대그룹 최고위층까지 확대됨에 따라 삼성 LGSK 등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룹에도 비상이 걸렸다. 박선화 추승호기자 psh@
  • “군산앞바다 日보물선 찾아라”

    ‘과연 침몰된 보물선이 있을까’ 다음달부터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보물선 인양작업이 펼쳐질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물선 찾기에 나선 이는 군산에서 어선업을 하는 조수찬(趙秀贊 43·군산시 삼학동)씨.조씨는 최근 군산시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에 공유수면 점용 허가와 매장물 발굴 허가를 각각 신청했다. 조씨에 따르면 2차대전이 종전으로 치닫던 1945년 5월8일 인체실험으로 유명한 일본군 731부대의 253t급 병원선이 중국 상하이에서 금괴 100여t을싣고 들어오다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고군산열도 앞바다에 침몰했다.또 같은해 6월에는 충남 서천군 장항제련소에서 금 9t과 은 30t,구리 300t을 싣고 항해하던 화물선이 침몰했다.이때 수장된 보물을 시가로 환산하면 1조3,000억원에 이른다는 것.장항이 고향인 조씨는 10여년 전 동네 노인들로부터보물선 얘기를 듣고 인양작업에 나섰다.자료를 구하기 위해 10여년간 수십차례나 일본을 오갔으며 일본의 모대학에선 신빙성이 높은 자료도 입수했다.조씨는 “수중레이더 등을 이용해 탐사한 결과현재 바닷속에 가라앉은 300여척의 선박 가운데 보물선으로 보이는 선박 2척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군산 조승진기자 redtrain@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3)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598년 2월 영양왕이 이끄는 1만명의 고구려와 말갈 혼성부대가 요서지방의중심지였던 영주(營州)를 공격한다.이어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이끄는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수륙양면으로 침공한다.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나라를 바꾸어가며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다가 거의 80년만인 676년에 이르러 대단원의막을 내린다.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이 전쟁에는 모든 종족과 국가들이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이었다.전쟁의 목적도 영토확장이나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 지역 양대질서의 대결이었고,문명의 충돌장이었다.특히 숱한 해양전이 벌어졌으며,해양질서가 본격적으로 작용한 동아지중해의 국제대전이었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국제대전의 서막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었다.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 중부이북,동해와 황해의 중부해상권을 장악하였다.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분단된 중국을 대상으로 실리추구를 하는 세련된 등거리외교를 추진하였고,백제 신라 가야 왜 말갈 등 주변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충실히 수행하였다. 또 경제적으로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의 동부지역과 흥안령 산맥 등 북부지역,요서지역 등을 이어주면서 북방교역망을 형성하였고,해양을 통해서 일본열도,양자강유역의 남조정권과 교역을 하는 등 해상교역망을 운영하였으며북방과 남방을 이어주는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무역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수나라가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계질서는 뿌리채 변화하기 시작했다.수나라는 운하를 파고,남방교역을 활발하게 추진해 국가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권을 회복하고,동남아,동중국해,황해,대한해협을 이어주는 등 교역의 물류체계를 장악하여 강국이 되고자 하였다. 두 강대국간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서서히 전쟁의 기운이 싹터가기 시작했다.전쟁을 일으키려는 당사자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나라였다.강력한 국력을 지닌 고구려는 사절을 파견하는 등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를 하였다. 598년 2월 영양왕은 친히 고구려와 말갈 혼성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넘어 공격을 개시하였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문제는 598년 6월 30만의 수륙군을 발진시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수나라의 육군은 요하를 돌파하지 못한채퇴각하였다.주라후(周羅侯)가 이끄는 6,000명의 수군은 육군과 합동작전을목표로 산동반도 동래(東萊:현재의 래주)를 출발,요동반도를 우회하여 평양성으로 향하였다.그러나 중간에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전선들이 침몰하였다고 한다.그러나 그보다 주라후의 수군은 요동반도일대에 구축된 고구려의 해양방어체제에 걸려 풍비박산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수양제(煬帝)는 대 고구려전을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먼저 남방의 임읍(林邑:현재의 베트남 동남부) 유구(琉球:대만)등을 정벌하고,돌궐을분할시켰으며,고창국 등 서역국가들을 지배하에 넣었다.그러는 한편 고구려에 적대적이던 백제와 신라를 끌어들이고 왜와도 외교관계를 맺는 등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국내에서는 대운하를 완성해 남북을 연결시킴으로써 군수물자와 노동력의 징발을 용이하게 했고,해양전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조선공사를 벌였다. 612년 드디어 수양제가 이끄는 세계전 사상 유례없는 113만3,800명의 대군이 북경 근처의 탁군( 郡)을 출발했다.그런데 당시 수양제는 해양전에 많은비중을 할애하였다.원정군을 좌우 총 24군 편제로 구성하였는데,그 가운데 11개 군이 수로군 편제이다.수군의 작전범위를 보면 압록강하구,대동강 하구는 물론,심지어는 한강하구인 황해중부 전체를 작전범위 속에 넣고 있다.이로서 수군은 이제 군량미의 보급뿐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장거리 이동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배후를 치는 독립작전까지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양제는 적함(赤艦) 루선(樓船)등 수만척의 배들을 건조하였다. 특히 주력전선인 오아(五牙)는 루(樓:다락)가 5층이고,군사 800명을 태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래호아(來護兒)가 이끄는 이러한 군선들의 규모는 길이가수백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얼마나 해양전을 중시하였는가를 알수 있다. 수의 친정군은 요하전선의핵심 거점인 요동성(현재의 요양시)을 공격하였다.엄청난 군대와 신무기 등을 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나 수양제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한편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30만명의 별동대는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에게 살수(薩水:압록강설과 청천강 설이 있다.)에서 대패,전멸했다.래호아가 이끄는 수군은 황해를 건너는데 성공하고,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대담하게 수군을 이용해 후방 깊숙이에 있는 평양성으로 직공작전을 감행한 것이다.하지만 평양성 60리밖에서 고구려군에게 궤멸당하였다.결국 고구려와 수나라간에 벌어진 격돌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다음해인 613년과 614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해왔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618년에는 당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동아지중해의 종주권과 교역권을둘러싸고 벌어진 수나라와 고구려의 1차전쟁에서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만약 고구려가 이 전쟁에서 졌다면 우리민족의 생존권은 이때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가정치 외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확인시켜 주었고,이미 대규모의 선박이 동원되고,상륙작전이 수행되는 등 본격적인 해양전쟁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준다.이와같은 양상은 수나라를 이어받은 당과고구려의 전쟁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윤명철 동국대겸임교수
  • [이것이 문제다]-지휘체계 혼선…재난관리 ‘구멍’

    집중호우와 태풍은 해마다 찾아들고 있다.그리고 피해는 반복되고 있다.화재와 대형건물 붕괴같은 대규모 재난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피해의 불안감도떨치지 못하고 있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재난관리법이 만들어지고 중앙 119구조대가 창설된 지도 4년이 지났지만 재난관리체계의 취약성은 거의 고쳐지지 않았음이 이번 수해에서 드러났다.재난대책이 발전하기는 커녕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고질화됐다고까지 말하여지는 국가재난관리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재난관리업무는 부처별로 따로 놀고 있으며 중복돼 있다.부처간 긴밀한 협조체계도 찾아볼 수 없었다.경찰(112)과 소방(119),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응급환자정보센터(129) 등으로 흩어진 응급구조 및 신고체계는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다.긴급대응 및 구조재난은 피해확산을 막고 사회적·경제적 파장을차단하는데 중요한데도 구조장비와 인력은 부족한 상태이다. 이재민 구호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내의 행정자치부와보건복지부·기상청·소방본부 등은 제각각 업무를 처리했다.행정자치부 장관과 각 부처의 차관들이 참석하는 재해대책위원회에는 정작 기상청장은 끼지도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효율적인 재해대책을 가로막는 한 원인으로꼽힌다.중부 수해는 재난과 재해에 종합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관리체계수립이 시급함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수마(水魔)가 잇달아 찾아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구호 준비도 소홀,이재민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인 허점 못지 않게 공무원이나 국민들의 의식전환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대구 가스폭발,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서야 재난관리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한동안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자 재난관리 조직과 법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다.정부 구조조정 과정에서 총리실의 안전관리심의관 자리가 없어지고,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가 3국 11과에서 2국5과로 크게 줄어들었다.소방인력의 상당수도 감축됐다. 하지만 조직이 축소되는 만큼 재난관리에구멍이 생길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이번 수해가 나고서야 뒤늦은 지적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 양성은 기대조차 어려웠다는 게 관료들의 설명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난관리의 문제점을 영화 ‘타워링’에 비유했다.미국식의 최첨단 설비와 장비들이 들어간 초고층 빌딩 타워링이었지만 몇 푼의돈때문에 불량전기부품을 사용하는 안전불감증이 있는한 대형참사를 피하기어려웠다는 얘기다. 재해의 사후대책과 관리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책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재해대책 예비비를 재해대책비로 바꿔 예방설비에투자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립방재연구소의 심재현(沈在鉉)연구관은 “재해복구비의 3분의 1정도를예방에 투자하면 재해복구비 전체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재난 예방 시설 설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10년간 연평균 재해피해액을 재해대책비로 편성해 지출하면 엄청난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동철기자 dcsuh@ *민방위 재난통제본부 수습 총괄 ‘안전사고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는 것’이라는 군(軍)의 격언이 있다. 안전관리를 강조하는 말이다.대형재난은 사회적 충격이 큰 만큼 국민경제에미치는 악영향도 클 수 밖에 없다. 각종 재난·재해 가운데 풍수해가 가장 많은 재산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재난을 예방하고,피해를 수습하는 행정체계는 국무총리 직속의 중앙안전대책위원회를 정점으로 한다. 예방기능은 각 부처로 분산되어 있다.민방위·화생방·자연재해·재난관리·소방안전·수난구호는 행정자치부,산업재해는 산업자원부,수질 오염은 환경부,방사능 재난은 과학기술부,산림재해는 농림부,해양오염은 해양수산부,전염병 관리대책은 보건복지부가 맡는다. 그러나 일단 재난이 일어나면 수습은 행자부의 민방위재난 통제본부가 실무적으로 총괄한다.각 지방자치단체에도 비상기구가 편성되어 있다.그러나이들 기구는 종합적이고 강력한 집행기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받고 있다. 구조·구급 기능은 119 구조대가 맡는다.첨단장비를 갖춘 중앙 119구조대는 대형재난에 대비한 조직으로 최근 첨단 구조체제를 갖춘 새 청사가 마련되기도 했다.전국 132개의 소방서마다 구조·구급대가 배치되어 있다.이번 수해에서는 119구조대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했다.또 여천공단의 화학구조대와 지리산 국립공원 등의 산악구조대,한강·청평·충주·통영의 수난구조대등 특수구조대도 운영되고 있다. 서동철기자 * 대안은 무엇인가…업무 단일화 통합기구 필요중부 수해에서 재난·재해대책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대책이 각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데다 행정자치부장관이 본부장인 중앙재해대책본부도 적절한 대책마련보다는 상황집계에 치우쳤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종합적이고 강력한 재난대책기구가 없었다는 것이다.정부의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줄어든 재난관리조직은 효율적인 대책에 역부족이었다. 까닭에 대통령 직속의 재난관리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감사원장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부방위)가 최근 제시한 재난관리체계의 3가지 모델도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부방위의 방안은 재난 관리청이나 소방청을 신설하거나 기존의 조직을 보완하자는 것이다.재난관리청 신설안은 행정자치부 산하에 독립청을 신설해 수해를 비롯한 모든 재난의 사전 예방과 사후 대책을 총괄하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소방기능을 중심으로 재난관련 조직과 업무를 일원화하자는 소방청 신설안은 자연재해와 인위재해가 원인만 다를 뿐이고 인명과 재산피해를 끼치며 복구과정도 비숫하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마지막 보완방안은 민방위 재난통제본부 체제를 유지하되 재난 종류별로 돼 있는 것을 단계·기능별로 업무를 분담시켜 조직을 재편한다는 것이다.부방위는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재난체계에 통합관리기능을 부여하고,장기적으로는 소방청같은 독립기구 신설이 바람직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동철기자 @*대형 재난·사고 일지■93.1.7.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93.3.28. 구포열차 전복사고■93.7.26. 아시아나 여객기 해남 추락■93.10.10. 서해 위도 여객선 침몰■94.10.21. 성수대교 붕괴■94.10.24. 충주 유람선 화재■94.12.7.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95.4.28. 대구 도시가스 폭발■95.6.29. 삼풍백화점 붕괴■96.4.3. 남한강 버스 추락■96.4.23. 강원도 고성 산불■96.7.25.∼7.28. 서울·경기 북부·강원 집중 호우■97.8.6.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98.7.31. 지리산 폭우■98.8.3.∼8.6. 서울·경기 북부 집중호우■98.10.29. 부산냉동창고 화재■99.6.30. 씨랜드 화재■99.7.31.∼8.3. 서울·경기 북부·강원 집중호우·태풍 * 외국의 재난관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황성기기자 미국은 수해나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한 모든 재난관리는 전화번호 911의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70년대 전까지 비상 방송은 대통령실,화재는 상무부,국민방위는 국방부,범죄는 경찰과FBI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이런 비효율적인 체계는 대통령 직속으로 연방비상관리처(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가 설립되면서 일원화됐다. FEMA는 LA 대지진과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사고가 터졌을 때 사태와 혼란을 효율적으로 수습하고 일사분란하게 피해를 복구하는 데 강력한 기능을 발휘했다. 수해나 토네이도가 발생,인명피해가 나면 1차적으로 911신고를 받은 지방관리소는 응급구호팀이나 재해복구팀에 즉각 연락해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는동시에 지방행정기관장을 거쳐 주지사에 알린다.주지사는 FEMA와 중앙정부에 연락하며,피해정도에 따라 대통령은 재난지역을 선포하게 한다.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긴급대응팀이 구성돼 의료,위험물관리,복구,소방,식량 등의 종합적 대책이 세워져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FEMA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직접 비상관리연구소라는 비상대비담당 공무원및 전문가 교육부서를 운영하는 것.연방과 지방정부의 소방요원,경찰과 민간업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는 실기위주의 토의식 교육으로 효과적인 대응책이 몸에 배도록 한다. 일본에서는 지진같은 대형 재해가 많은만큼 방재체계가 잘 발달돼 있다.지진피해 판독이나 화재확대 예측 등에 첨단 컴퓨터 영상시스템 등을 통한 정보전달체계의 첨단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95년 고베(神戶)지진때 재난대책에 일부 허점이 드러나 미국의 FEMA를 본뜬 비상대책기구 설립을추진중이다. 프랑스는 긴급 재난사태에 5분내에 소방대원이 출동,군경과 공조로 응급조치를 한다.26만6,000명의 소방대원이 전국 1만여곳의 비상센터에 20개의 비행장을 갖추고 출동태세를 갖추고 사뮈(SAMU)라 불리는 의료서비스기관과 함께 응급조치를 취한다. hay@
  • 자민련‘합당론’후유증

    자민련 한영수(韓英洙)부총재와 강창희(姜昌熙)총무가 26일 총재단회의에서 얼굴을 붉히며 설전(舌戰)을 벌였다.합당론을 둘러싼 마찰음이다.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당의 위상을 반영한 갈등이다. 강 총무가 공세를 펼쳤다.강 총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박태준(朴泰俊)총재가 합당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 부총재가 어제(25일)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합당 주장을 했다”며 “합당 얘기를 하려면 당을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부총재도 후퇴하지 않았다.그는 “수도권의 96개 선거구의 경우 소선거구제라면 대단히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소선거구제로 되면 합당해야 한다”고 반격했다.이에 대해 강 총무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연합공천을 하면되지 않느냐”며 맞받아쳤다. 한 부총재와 강 총무가 회의장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고성(高聲)을 주고받자 박철언(朴哲彦)부총재가 나섰다.그는 “두 분 모두 당을 걱정하여 하신말씀으로 안다”고 운을 뗀 뒤 “(당을 나가라 하는) 극단적인 표현은 피하는 게좋다”고 한 부총재를 거들었다.그도 합당 찬성론자다. 마무리는 박태준 총재의 몫이었다.박 총재는 “지금은 당이 생긴 이후 최대 위기”라며 “당이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박 총재는 “(자민련이 침몰할 것처럼) 심하게 쓰는 언론도있다”며 “이럴수록 당이 단합하고 한발씩 양보해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폐수 무단방류 16곳 적발

    환경부는 26일 폐수배출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남 밀양시 (주)보훈기업 등 16곳을 적발해 11곳에 대해 고발 조치하고 5곳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등을 내렸다. 환경부는 지난 5월 한달 동안 상수원 등을 오염시킬 우려가 큰 전국의 하천골재 채취장 151곳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했다. 보훈기업 등 5곳은 폐수배출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무허가로 설치,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 구일종합건설은 폐수배출허용기준(120㎎/ℓ)의 2배 이상되는 폐수를 마구 하천에 버려 개선명령을 받았다. 환경부는 “올들어 충남 공주시 면화산업 등 2곳의 골재채취선이 침몰,선박연료용 경유가 유출돼 부근 취수장 등을 오염시켰다”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
  • ‘南沙群島분쟁’ 악화 조짐

    필리핀 해군이 19일 남중국해상 스프라틀리 군도(남사군도) 부근에서 조업중인 중국 어선 1척을 격침시켰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인터넷홈페이지를 통해 20일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군함은 조업중인 중국 어선 2척에 대해 발포하면서추격,1척은 충돌해 격침시키고 다른 1척은 나포했다. 어선이 침몰한 곳은 북위 10도51분,동경 114도52분으로 중국,필리핀,베트남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분쟁해역이다. 인민일보는 침몰된 배의 선원 11명의 생사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필리핀 해군 당국은 어선 격침 직후 주 필리핀 중국대사에게 침몰사실을 통보했다. 양국은 최근 스프라틀리 군도내 미스치프 산호초 지역에 중국측이 설치한건조물 확충공사를 둘러싸고 최근 대립이 격화되어 지난 3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같은 해역에서 필리핀 해군이 조업중인 어선 6척을 나포한데 이어 올 5월23일에는 루손 섬 앞바다에서 필리핀 해군이 검문하려던 중국어선이 도주하다 침몰하는 등 마찰이 잇따르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 재벌기업 ‘염라대왕’ 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은 정부입장에서는‘재벌개혁의 전위대’, 기업에는‘염라대왕’이다. 서울에 대부분 몰려있는 법인 본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모두 이곳에서이뤄지기 때문이다.80년대 명성 및 범양그룹이 특별세무조사를 받은 뒤 ‘침몰’한 것을 비롯,90년대 들어 현대그룹에 이어 이번에 한진그룹이‘쑥대밭’이 됐다. 국세청의 조사기능은 본청 조사국이 세무조사대상 선정 등 기획업무를 맡고지방청 조사국은 일반 정기세무조사나 특별세무조사를 수행한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정기세무조사를,조사2국은 특별세무조사 및 음성탈루소득조사를 담당토록 업무가 분장돼 있다. 조사2국은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김성호(金成豪)서울지방국세청장-유학근(柳鶴根)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의 지휘체계에 따라 움직인다.유국장은 전북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육사를 나왔다.사관특채1기로 국세청에 들어와조사2국장으로 중용되기 전까지 중부지방국세청 징세조사국장을 지냈다.통상본청 조사국장은 국세청장의 오른팔, 서울청 조사2국장은 왼팔로 꼽히는 핵심참모이다. 조사2국의 조직과 업무내용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국세청 내부의 불문율이다.국장과 과장의 이름외에는 모든 사항이 ‘대외비’로분류돼 있다.심지어 조사2국 요원이 몇명인지도 베일에 싸여있다.단지 조직표상 과장(특별조사담당관) 2명 아래 각각 10명씩의 사무관(반장)이 있으며사무관 아래 5∼7명 정도의 요원을 배치,140∼160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오는 9월 국세청조직개편에 따라 조사2국 업무는 조사4국으로 옮겨간다.조사국의 인력이 2배가량 늘어나 2국이 4국체제로 확대·강화되면서 1국은 음성탈루소득조사,2국과 3국은 정기법인조사,4국이 특별세무조사를 맡기 때문이다. 노주석기자 joo@
  • ‘서해교전’ 승리 부대·장병 포상

    북한 경비정과의 서해교전을 승리로 이끈 부대 및 장병들에 대한 포상식이7일 인천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렸다.이날 포상식에서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킨 2함대 256편대장 최용규(41)소령 등 7명이 1계급 특진했다.564명의 장병에게도 국방부장관 등의 표창이 수여됐다.군장병들이 그동안 대간첩작전공훈 등으로 훈장을 받은 사례는 있었으나 1계급 특진한 것은 6·25와 월남전 이후 처음이다. 특진자는 다음과 같다. ▲(소령→중령)최용규 ▲(하사→중사)조준행 서득원 이경민 이춘근 ▲(일병→상병)이상혁 이명근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대한광장] 마비된 안전의식

    동네에 도시가스가 시설되고 난 몇달 후였다.무엇이 잘못 됐는지 배관이 묻혀 있는 대문앞 4미터 도로가 걸핏하면 파헤쳐져 차량출입이 금지되고 길에서 파낸 시멘트 파편들이 길을 메워 통행을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시멘트를 부수는 굴착기 소음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먼지또한 집주변을 덮쓰듯 해서 참지 못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그리곤 “처음부터 철저하게 잘했으면 이렇게 두번 세번 파헤치지 않을 것 아니냐”하고 음성을 높였다. 그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미안하다는 말도,자기들이 첫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의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주민들의 질책에 면역이되어버린 사람들처럼 무표정에 무반응이었다.순간,섬뜩한 느낌이 왔다.YS정부 때의 엄청난 대형사고들이 떠오르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르짖던 ‘안전’이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저렇듯 무감각 면역만 생기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열차탈선,비행기 추락,배 침몰 거기다 땅속 가스폭발까지 하늘 땅 바다를 넘쳐 캄캄한지하로까지 뻗쳐지는가 싶더니,이듬해에는 멀쩡해 보이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아파트가 종이 구겨지듯 붕괴하는,그야말로 귀신도 경악할 대형참사가 터지면서 수백명의 소중한생명이 비명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사건이 연발할 때마다 모든 입달린 사람들은 안전을 부르짖고,또한 피맺히게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성토했다. 성토의 기세가 워낙 크고 절실했기 때문에 이후부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제반 시설물에는 안전규칙이 필히 지켜질 것이라 믿었다.안전불감증에 고질화된 중증환자라 해도 나라가 흔들릴 만큼의 대형사고를 겪었으니 스스로 깨달아 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또다시 가슴을 에이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돈독이오른 어른들의 상혼(商魂)과 행정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처리로 가건물 컨테이너가 철골조 정상건물로 둔갑되어 억만금 같은 어린 생명들을 화염으로 앗아가게 하고 말았다. 고사리손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숨막히고 뜨거웠을 것이며 공포에 떨었을까 생각하면 명치께가 난자당하듯 저며지고 그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죄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싶으면 그만 말이 막힌다. 그간 우리들의 안전불감증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불과 수년전의 참사들을 TV드라마 시청하듯 건성으로 구경하고 세월따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인지,아니면 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으로 전신을 마비시킨 것인지실로 멍할 뿐이다. 세계의 방송 언론들은 한국을 당연히 교통사고 세계 1위에다 대형사고 1위국으로도 부상시켜 놓고 있다.누구의 자조(自嘲)처럼 과연 우리 민족은 북한의 게릴라 수출,마약밀매 기술 등과 함께 세계에서 유별난 특성의 종족인 것인지 새삼 음미해 보게도 된다. 물론 안전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새로 태어나듯새 삶을 시작하듯 기초부터 완벽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다지기교육’을 받을 자세만 되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변화·완치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횡포로 비명에 스러진 어린 원혼들의 피울음을 이번에야말로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는 생각이다.얼굴을 붉혀 부끄러워하면서 최소한의 어른 자존심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음은 아직도순수한 인성(人性)을 지녔다는 것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됨으로의 여백이 있다.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의 가능성 또한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무감각 무반응의 섬뜩한 마비와 납빛 면역현상은 지구의 황폐화 초래와 인간되기 거부의 자초 외에 더는 아니기에 씨랜드 아기들 참사사건은 어른들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자기 단근질의 철퇴로 영원히 살아 남았으면 싶다. 필자만의 바람일까만은. [김지연 작가]
  • [기고] 6·25 유일의 海戰이야기

    “1950년 7월2일 새벽 미국 군함들이 주문진 앞바다에서 10척의 소형 운반선을 호위하는 북한 어뢰정 네척과 조우했다.어뢰정들은 어뢰 한발 발사할 시간 여유도 없이 모두 격침되었다” 이것은,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6·25전쟁 백과사전이 전쟁기간의 유일한해상교전이라고 서술한 대목이다. 한편 북한 신문들은 그해 7월10일 미 순양함 한척을 격침한 어뢰정 분대의위훈을 칭송하는 김일성(金日成)사령관의 방송내용을 보도했다.18일자 보도는,7월5일 주문진 앞 약 10마일 해상에 나타난 미 해군 순양함 두척과 구축함 한척 가운데 순양함 한척을 격침한 반면 제 21·22·23·24호 어뢰정 가운데 두척을 잃은 것으로 서술했다.이 해전을 지휘한 김군옥 제2정대장은 생환하여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고 북쪽 해군의 전설적인 영웅이 됐다. 미국측 백과사전의 기술이 옳은가,북한측 보도가 옳은가? 사실은 둘 다 잘못이 있다.특히 ‘미 순양함 격침’이란 아예 없었다.군함들의 항해일지를보면 안다. 주문진 앞바다를 순찰한 군함은 북한 보도대로 순양함 두척과 구축함 한척이었다.즉 미 순양함 ‘주노’와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영국 구축함 ‘블랙 스완’이다.‘주노’의 항해일지를 보면 아침 6시17분 해안선 가까이에서 선단을 호위하는 어뢰정 네척을 발견했다.포격을 가해 먼저 한척을 격침하고 해안으로 피신한 두척마저 격파했다.김군옥 정대장이 지휘하는 어뢰정은 교묘하게 지그재그 운항을 해 외해(外海)로 달아났다. 영국측 기록에는 어뢰정들이 “지극히 용감하게 돌격했다”고 칭찬했다.다음날인 7월3일 오후 북한 공군기 두대가 이 해역에 날아와 기총소사를 퍼부었다고도 기록했다. 이상이 내가 조사한 주문진 해전의 내용이다.6·25전쟁에서 미 군함 66척이 피격되고 6척이 침몰했지만 육지에서의 포격과 기뢰에 의한 것일뿐이지 북한 해군과의 해상전투는 주문진 해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결국 6·25때 바다에서 북한 해군에게 격침된 미 함정은 한척도 없었다.그런데도 주문진 해전에서 북쪽이 미 순양함을 격침하였다는 전과는 시간이 갈수록 부동(不動)의 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김일성수상이 사망한 뒤 북쪽에서 출판한 ‘김일성전집’은 그가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에게 주었다는 ‘미제침략군 전투함선 집단을 소멸할 데 대하여’라는 장문의 지시문을 수록했다. 1950년 6월30일에 시달하였다는 지시문에는 “적의 순양함은 뱃머리가 높기 때문에 어뢰정이 가까이 접근하면 함포사격을 할 수 없다”“이번 해상전투에서 주타격대상은 적의 순양함 ‘빨찌모르’호이다.해군사령관 동무는 속초항에 가 7월2일 새벽3시에 공격을 개시해야 하겠다”등의 구절이 들어 있다. 나는 2,000자가 넘는 이 지령문의 진위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아마도 전후세대인 ‘김일성전집’의 편집자들이 역사적인 사실로 교육을 받아 스스로확신하고 있을 미 순양함 ‘빨찌모르’호 격침 사건,그 쾌거의 영광을 전적으로 수상에게 돌리려고 한 결과일 것이다.이 ‘우물 안 개구리’식 공작은오히려 고인이 된 수령을 모독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 좋겠다. 내가 알기에는 미국 전사관(戰史官)들은 북한 전사관들과 무릎을 맞대고 6·25전쟁의 실상을 진지하고 화기애애하게 토론하고 싶어한다.가령 그 대상은,미 24사단이 북한군과 맞붙어 딘 사단장이 포로가 되는 등 대패했던 50년7월의 대전(大田)지구 전투가 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 공문서관은 이 제2어뢰정대에 관한 북한측 문서도 대량 보존하고 있다.인민군 전사관들이 미국 수도를 방문하여 허심탄회하게 6·25전사(戰史)를추구하는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6·25를 맞이하여 하나의 감상을 적는다. [方善柱 在美 사학자 한림대 객원교수]
  • 국군 모범용사 청와대 다과회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2일 모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대한매일신보사가주관한 국군모범용사 부부 초청 청와대 영빈관 다과회 자리에서였다.스스로도 “오늘은 대통령으로서 기쁜 날”이라고 표현했다.여러차례 박수가 터져나왔고,이례적으로 김대통령이 직접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자리를 더욱 빛낸 것은 서해안 교전 당시 부상을 입은 해군 9명 가운데 보행이 가능한 6명이 자리를 함께한 것.이들은 김대통령과 차일석(車一錫) 대한매일신보사장,김진호(金辰浩)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초청 모범용사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애정의 박수를 받았다.특히 김대통령 내외는 이들과 즉석단체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이들을 위해 떡과 과일,포도주스를 내놓았다. 김대통령은 먼저 모범용사들에게 오랜 군생활 동안 핵심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를 위해 공헌한 것에 대해 치하했다.그리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자식교육을 위해 힘쓰고 좋은 가정을 꾸린 데는 부인들의 공이 컸다”며 부인들에게도 똑같이 공을 돌렸다.강한 군대는 가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어 서해 교전에서 해군의 승리를 언급했다.김대통령은 “배 1척을 침몰시키고,파손시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우리 국군이 유사시 결코 패배없는승리를 쟁취한 것”이라면서 “승리는 군의 사기가 높고 전투 역량,장비 현대화와 실력 등을 갖추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평가했다.또 “참으로 군의사기와 신망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국민들도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그실례로 교전 이후 국민들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안보와 화해·협력병행’정책의 실증이었다는 점에 보다 큰 의미를 두었다.“안보의 뒷받침없는 평화는 유화”라고 표현한 김대통령은 “철통같은 안보태세만이 자신을갖고 북한을 대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돌발행위가 마음에 걸리는지 “북한은 이해할 수도,납득할 수도 없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가능하면 전쟁으로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그리고 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을 포용하려고애쓰고 있다”고 대북 포용정책의 본질을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미·소 데탕트와 베트남의 개방 등을 예로 들며 포용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다짐했다.“공산주의는 바깥정보가 없어 국민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따르게 되므로 봉쇄하거나 몰아붙이면 더욱 강해진다.외부사정을 알려주면 약해진다”며 “여유있고,힘있는 자만이 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또 “룰을 어기고 무도한 짓을 할 때 응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진정한 포용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이 길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천명,지속적인 대북포용정책의 추진을 분명히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격려사가 끝난 뒤에도 10여분 동안 자리에 남아 다과를들었다.헤드테이블에 앉은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차대한매일사장,모범용사들과 환담을 나눴다. 김대통령은 조국방장관이 떠나기에 앞서 예정에 없던 건배를 요청하자 짤막하게 건배를 제의했다.김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항상 여러분을 생각하고있고,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달라”며 중산층과 서민지원 대책을 소개했다.그리곤 “앞으로도 하나가 돼 한반도에서 감히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고,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자”고 당부했다. 부인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에도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의 건배사가 끝나자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면서 45분간의 행사가 끝났다. 이에 앞서 차 대한매일사장의 인사말과 모범용사 대표 김갑용원사의 건배제의가 있었다.차사장은 “모범용사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돼 IMF 충격에서벗어나 경제회복을 이룰 수 있었다”며 “최근 일련의 사태는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교훈”이라고 강조했다.특히 서해안 교전 부상장병들에대해 “보석같다”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목숨을 아끼지않은 여러분은진정으로 국민의 보배”라고 치하했다.차사장은 “내년에는 더욱 성대한 행사로 여러분을 모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판문점 장성급회담 성과없이 끝나

    북한의 서해 영해 침범과 남북 함정간 교전사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주한유엔사령부와 북한군간 장성급 회담이 21일 오전 판문점에서 열렸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유엔사측은 1시간45분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 지난 15일 북한 함정의 선제공격으로 교전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측에 사과와 관련자 처벌,재발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 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측이 지난 46년간 유지돼온 북방한계선(NLL)을 더이상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하고 NLL상에서의 우발적인 충돌 방지를 위해 ▲남북 함정간 신호규정 체결 ▲유엔사와 북한군 비서장간 직통전화 설치 ▲장성급 회담의 지속적인 개최 등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12해리 영해’를 거듭 주장하면서 교전사태와 관련,남한측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사과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또 유엔사 및 군사정전위원회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미국과 북한,남한간 3자 군사회담을 요구했다. 유엔사 관계자는 서해 교전 피해와 관련,“북한측은 남한의 선제사격으로인명이 희생되고 함정 1척이 침몰했다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면서 “우리측은 이에 맞서 시간대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북측의 선제공격에 따라 자위권을 행사했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회담에는 유엔사측 대표로 마이클 던 소장(미국)과 금기연 준장(한국),존베이커 준장(영국) 등 4명이,북한은 이찬복 중장과 조동현 소장,박임수 대좌등 3명이 참석했다. 김인철기자 ickim@
  • [오늘의 눈] 日 밀리언 셀러와 정치 보수화

    불황의 일본에 올해의 밀리언 셀러로 단연 문화상품이 돋보인다. 영화의 ‘타이타닉’,음반의 ‘단고 3형제’,장애인 수기 ‘오체불만족’,TV드라마 ‘스즈랑’이 그렇다. 세계적 화제작 ‘타이타닉’은 1,700만명이 관람했고 비디오만 510만개 팔렸다.NHK 유아프로그램 주제가 ‘단고 3형제’는 지난 3월 CD로 출시되자마자 300만장이 판매됐다.한국에도 번역된 선천성 사지절단장애인 와세다대생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은 작년 10월 출간 이후 387만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유례가 드문 ‘메가 히트현상’에 대해 일본의 문화비평가들도 관심을 갖고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 비평가는 “대중(大衆)에서 소중(小衆)의 시대로 치닫는 현대에서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다는 의식이 표현된 것”이라고 진단했다.메가 히트상품을보고 듣고 읽음으로써 안도감을 느낀다는 분석이다.어떤 전문가는 개성의 상실,가족 붕괴라는 환경에 놓여진 현대인의 ‘유행집착병’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이런 엇비슷한 해석을 버리고 ‘센티멘털리즘’과 ‘옛것에대한 향수’(노스탤지어)라는 관점에서 히트작을 보면 어떤가. 희망의 상징 타이타닉,그의 침몰과 비련(悲戀)에의 아련한 추억과 집착.대가족제의 끈끈한 가족애를 강조한 ‘단고 3형제’의 과거회귀적 정서. 2차대전 중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루고 있는 일본 시청률 1위의‘스즈랑’(NHK)도 향수와 감상(感傷)의 뒤범벅이다.심지어는 이 드라마에서는 젊은이들이 ‘천황군’으로 자랑스럽게 출정(出征)하는 장면들도 여과없이 다뤄진다.‘오체불만족’은 약간 다르지만 ‘강한 정신력’을 독자들에게 팔고 있다. 센티멘털리즘과 노스탤지어에 기울고 있는 일본인들의 심상(心象)은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나타날까. 대표적 보수논객 이시하라 신타로의 도쿄도지사 당선,자민 자유당에 이은공명당의 보수연립정권 가세움직임,기미가요,히노마루의 국가·국기 법제화추진 등 몇년 전이면 어림도 없었을 일본 열도의 거센 보수화 물결. 과거 회귀와 감상이 지배하는 문화의 메가 히트현상과 강한 일본을 그리워하고 추구하는 정치의 보수화를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황성기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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