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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호’와 닮은 그리스

    그리스는 ‘제2의 히딩크호(?)’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유로2004 돌풍의 핵은 그리스.지난 26일 새벽 8강전에서 후반 20분 안겔로스 카리스테아스의 헤딩 결승골로 지난대회 챔피언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프랑스를 1-0으로 침몰시켜 축구 이변의 역사를 다시 썼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때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을 차례로 집으로 보내며 4강 신화를 일궈낸 ‘붉은악마’ 한국과 닮은 꼴이다.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과 한국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스타일.둘은 강한 카리스마와 체력,조직력 등을 강조한다.취임 초기 성적이 바닥을 기었다는 것도 똑같다.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맨,카이저스라우테른 등을 우승으로 이끈 ‘오토 대제’ 레하겔 감독은 일정한 체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는 과감히 대표팀에서 퇴출시켰다.히딩크가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종수 이동국 등을 제외시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저조한 성적표로 비난을 한몸에 산 것도 똑같은 점.레하겔 감독이 팀의 대수술을 단행한 직후 그리스는 2002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핀란드에 1-5로 크게 졌다.언론의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한 일.히딩크가 부임 초기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5로 대패한 뒤 ‘오대영’으로 불리는 수모를 당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스와 한국이 ‘축구 약소국’이었던 점도 유사하다.이번 대회 전까지 그리스는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 등 메이저대회에 단 두차례 출전한 게 전부였다.물론 1승도 건지지 못했다.월드컵 1승에 목말라한 2년전 한국의 처지를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세계무대에서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게 가장 큰 닮은꼴.그리스와 한국 두 ‘이란성 쌍둥이’는 전통의 강호들을 무너뜨리며 ‘지각변동’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그리스는 다음달 2일 새벽 덴마크-체코전 승자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타이타닉 유물 뉴욕서 경매

    1912년 침몰한 영국의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의 잔해에서 수거된 유물들이 뉴욕에서 경매된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9일 보도했다. 이번 경매를 주관하는 건지 경매소는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만찬 메뉴판 가격은 80달러에서 1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구명조끼는 30∼4만달러,갑판의자는 6만달러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합˝
  • 청자운반선 1000년만에 ‘햇빛’

    고려청자 운반선 가운데 가장 앞서고 온전한 형태의 선체가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특히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선체 부분이 처음 발견돼 고려청자 운반선의 구조와 이동경로를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해 10월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근해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에 대한 수중해체 작업과 2차발굴조사를 벌여 소나무와 참나무로 건조된 선체 14편을 인양하고,청자 35점을 포함한 도자기 2184점을 새로 수습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십이동파도’ 고려청자 유물선 선체의 3분의1이 인양됐으며 1차 발굴작업 때 확인된 5266점을 포함,모두 8739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해양유물전시관이 이날 공개한 선체는 바닥판(저판) 6조각을 비롯해 뱃머리재목인 이물비우(선수재),배밑과 바깥 판목을 연결하는 만곡종통재,양뱃전을 묶는 가룡목,호롱받침대,나무닻이 잘 가라않도록 하기 위해 매다는 닻돌,배 밑 연결용 가쇠와 외판의 연결용 나무못 등 모두 14편.이 가운데 뱃머리재목인 이물비우는 1983∼84년 전남 서해안에서 조사된 완도선(12세기초)과 1995년 목포시 해역에서 조사된 달리도선(14세기)등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시대 한선(韓船)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기록상으로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선체의 부분으로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칡넝쿨로 만든 닻줄도 처음 발견됐다. 해양유물전시관은 해저에 깊숙이 파묻힌 나머지 선체를 마저 발굴해 탈염시켜 경화처리한 뒤 복원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모든 선체가 복원돼 공개되기까지는 약 10년이 소요된다. 해양유물전시관은 “운반선의 갑판 등 상부 부분이 남아 있지 않으나 확인된 다른 부분의 구조로 볼 때 최고 길이 10m,폭 2.5m 규모로 추정된다.”며 “청자 등 유물의 상태로 미루어 11세기 말∼12세기 초 해남에서 청자 등 도자기를 싣고 개성으로 가던중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양유물전시관이 새로 수습해 이날 공개한 유물은 청자완과 시저받침을 포함해 소접시와 대접 등 주로 중상류층에서 사용하던 생활용기가 대부분으로 이 가운데 톱날이빨 모양의 ‘청자음각거치문화형접시’와,‘청자음각국화당초문접시’는 종전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양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로마의 거리에 서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로마의 거리에 서면 나는 침묵하게 된다.그냥 침묵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 뿐이다.도대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일까? 진리란 무엇일까? 로마의 찬란했던 문명을 보면,역사는 그저 순환하는 것일 뿐 반드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또,로마의 기독교 유적들을 바라보면,서양 문명은 기독교 문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눈에 목격하게 되고,기독교의 원형(原型)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로마는 수메르와 그리스를 잇는 문명이었다.수메르는 지금부터 7000여 년 전 이라크 지역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명이다. 설형문자,성경의 창세기와 유사한 창조설화,교육제도,법 등 인류 최초의 39대 사건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어,인류문명의 고향으로 간주되곤 한다.새뮤얼 크레머 교수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 수메르 문명은 그리스에 의한 에게해(海)문명으로 이어졌다.그리스는 기원전 1050년 경 철기 문화를 발전시키면서,소아시아의 서해안과 이탈리아 남부까지 지배하였다. 에게해 문명을 지중해 문명으로 바꾼 주인공이 바로 로마였다.로마는 기원전 27년 그리스 본토를 지배하고,3년 후 이집트를 정벌하면서 서양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로마가 이룩한 과학,예술,군사력의 수준은 여행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게 한다.시멘트를 이용한 2,3층짜리 집,판테온신전,콜로세움,포로 로마노,40㎞ 길이 14개로 이룩된 상하수도 시설,조각과 예술품은 현대의 과학과 예술을 무색하게 한다. 당시 로마는 경부고속도로 200개의 길이에 해당하는 8만 5000㎞의 도로를 닦아서 사용하였고,군대는 그리스,이집트,마케도니아,스페인,영국,프랑스,아프리카를 휩쓸었다.군대,과학,예술이란 면에 있어서 로마는 하나의 완결된 수준을 이룩하고 있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에 무릎을 꿇고,서양이 기독교 문명권으로 전환된 사건은 313년 일어났다.베드로가 로마에 기독교를 전한 지 246년 만이었다.그는 어부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고향으로 가 다시 고깃배를 탔다.바다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베드로는 로마로 전도를 하러가기로 결심하였다.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로마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종교와 가치체계,진리에 대한 도전은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네로의 핍박 속에 베드로는 AD 67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베드로가 순교한 지 246년만인 313년 로마는 그리스도교에 무릎을 꿇는다.군대,예술,과학이라는 면의 진리에 있어서는 세계를 지배했지만,암살과 음모로 황제가 평균 1년에 한 번 바뀌고 노예에 대한 끝없는 착취 위에 군림하던 제국이었다.그런 로마가 베드로에 의해 전파된 사랑이라는 진리 앞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었다. 가장 처참하게 죽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성당이 서있다.그 어떤 왕궁도 베드로성당만큼 아름답진 못하다.한 인간이 가진 신앙,그리고 그 믿음이 바꿀 수 있는 역사의 규모와 엄숙함은 순례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로마가 꽃피운 지중해 문명은 15세기 대서양쪽으로 이동한다.800여년 간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은 스페인은 1474년 이사벨라 1세가 즉위하면서 독립과 에스파냐 국가통일을 이룩하였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의해 침몰되면서,문명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훨씬 가까워 졌다.이후 300여년 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명의 중심은 미국으로 넘어왔다.그 방향으로만 친다면,태평양의 시대가 예견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열린다던 태평양의 시대는 1990년대 한국의 IMF경제위기,일본의 부진을 겪으면서 지연되고 있는 느낌이다.로마의 거리에 서서,로마 문명의 찬란함과 그 문명의 이동행로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마니아]옆집 아저씨 축구 ★ 되다

    ‘뚝도축구회(회장 김근홍)’가 성동구청장기 생활체육축구대회 청년부(30대) 3연패를 달성했다.이로써 뚝도축구회는 대회규정에 따라 우승기를 영구 소지하게 됐다. 제26회 성동구청장기 생활체육축구대회가 지난 6일(일) 18개 동호회가 참가한 가운데 미사리 축구장에서 치러졌다.청년부·장년부(40대)·노년부(50대)로 나뉘어 치러진 이날 결승 경기는 종로구·성북구 경기와는 달리 잔디구장에서 열려 선수들이 평소의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었다. 24·25회 대회 청년부를 2년 연속 석권한 뚝도축구회 김 회장은 “이번 기회에 꼭 3연패를 달성해 우승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전통의 강호 ‘마장축구회’장재흥 회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뚝도의 3연패만은 막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양팀의 결승전은 전·후반 50분 내내 불꽃튀는 접전이었다.전반은 뚝도의 공격수 이병낙(35·의류업)·양철의(39·IT업) 선수의 빠른 발을 이용한 왼쪽 돌파가 주효했다.지속적으로 왼쪽 돌파를 시도하던 뚝도는 전반 12분 마장의 수비가 잘못 걷어낸 공을 양철의 선수가 오른쪽 구석으로 강하게 때린 슛으로 첫골을 뽑아냈다. 전반을 1대0으로 마무리한 뚝도는 후반전에도 우세한 경기를 펼쳐갔다. 후반 5분 전반부터 활기찬 경기를 펼치던 뚝도의 이병낙 선수가 왼쪽에서 올라오는 센터링을 가볍게 방향을 바꿔 추가골을 성공시켰다.2대0으로 끌려가던 마장은 후반 8분 김영주 선수가 만회골을 터뜨렸으나 기쁨도 잠시,바로 1분 뒤 다시 뚝도의 이병낙 선수에게 20m 이상 단독 드리블 찬스를 허용,추가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전체적인 경기 분위기는 뚝도 쪽으로 급선회했다.뚝도는 여세를 몰아 후반 종반무렵 마장의 오프사이드 작전을 뚫고 김행진(33·상업) 선수가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 골키퍼를 제치고 가볍게 마지막 골을 성공시켰다.경기결과는 4대1.뚝도팀이 청년부 3연패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치러진 노년부 결승에서는 금일축구회(회장 장이식)와 무학축구회(회장 한창우)의 경기가 있었다.양팀은 전·후반 50분,연장 전·후반 30분 동안 결판을 짓지 못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결과 금일축구회가 무학축구회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이날 마지막 경기로 치러진 장년부 결승에서는 응봉축구회(회장 이영기)가 마장축구회를 2대1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마장축구회는 청년부·장년부 모두 결승에 올랐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뚝도’의 힘은 인터넷 구청장기 3연패를 달성한 ‘뚝도축구회’는 성수2가 1동에 있는 경수초등학교 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축구 동호회다.현재 60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김근홍·이재균씨가 각각 회장과 총무를 맡고 있다. 뚝도팀이 3연패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던 점도 있지만,다른 팀들과는 달리 인터넷 홈페이지(www.ddsoccer.pe.kr)를 통한 회원 상호간의 교류가 잦았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프로경기가 아닌 ‘동네축구’에서는 개인의 경기력보다는 특히 회원 상호간의 신뢰와 팀워크 등이 승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밥먹고 뛰면 백전백패” “아무리 이웃사촌끼리 모여 만든 팀이라도 전략부재로 결승전에서 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성동구 생활체육 축구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른 청년·장년·노년 등 3개 부문 감독들은 모두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청년부와 장년부 모두 결승전에 올려 놓은 마장축구회의 김영래(43) 감독은 “체력과 패기를 무기로 뛰는 청년부는 3∼4명의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힘의 경기를 펼치겠다.”면서 “불혹을 넘긴 장년부는 아무래도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지니 모든 선수가 공을 협공하는 ‘동네축구 방식’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김 감독은 특히 올해는 동계특별훈련까지 받았으며 팀의 허리인 미드필드를 튼실하게 재배치했다고 밝혔다.하지만 이날 마장 청년부는 뚝도에 4대1로,장년부는 응봉에 2대1로 모두 졌다.마장 청년부를 침몰시킨 뚝도축구회 김명수(55) 감독은 경기전 인터뷰에서 “운이 많이 작용하는 동네축구의 수준은 차이가 크지 않다.”고 겸손해했으나 마장을 대파하자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투톱체제’를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팀의 비밀병기인 30번과 37번 선수를 가리켰다.김 감독은 또 마장 청년부가 오프사이드 작전을 구사하다 기습골에 맥없이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김형식(54) 무학축구회 감독은 경기전 “50대 초반의 체력이 무궁무진해 문제 없다.”면서 자신감을 보였으나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아깝게 패하자 “심판이 경기 운영의 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우리 선수 1명을 퇴장시키는 바람에 팀 전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면서 아쉬워했다. 승부차기로 우승컵을 거머쥔 이재철(62) 금일축구회 감독은 “지난 경기에서 식사한 뒤 바로 뛰는 바람에 무학팀에 패배했다.”면서 “이번 경기에서 팀 차원에서 식사량을 조절한 것이 승리의 1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장년부에서 우승한 응봉축구회의 이인현(52) 감독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이 비결”이라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젊어진 한국축구 ‘부활 희망’ 쐈다

    한국축구가 부활의 날개를 폈다. 한국은 지난 5일 대구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위 터키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2-1로 역전승하며 월드컵 4강의 위용을 어느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끝없는 추락을 거듭하던 한국축구는 침몰 일보직전에서 기사회생,침체탈출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특히 이전 경기까지 맞대결에서 1무4패로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강호 터키를 상대로,그것도 역전승한 점을 높이 살 만하다.지난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의 첫 맞대결 대패(0-7)를 50년 만에 설욕했고,2002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의 빚도 갚았다. 한국축구는 지난 2일 터키와의 1차전까지만해도 극심한 난조를 보였다.올해 초 약체 오만전(5-0,2월14일)과 레바논전(2-0,2월18일)은 무난하게 치렀다.그러나 움베르투 코엘류 전 감독의 중도하차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2006독일월드컵 지역예선 몰디브전(3월31일) 무득점 무승부를 비롯해 파라과이전 무승부(4월28일),그리고 지난 2일 터키전 패배(0-1)로 이어지면서 침체의 터널에서 허우적거렸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월드컵 지역예선마저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그러나 5일 터키전 승리는 한국축구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특히 올림픽대표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신예들의 맹활약으로 세대교체 성공 가능성도 확인했다. 1차전에서도 비록 패하긴 했지만 최성국 조병국 등 신예들의 패기로 체면치레를 했다.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오래만에 한국 특유의 압박축구를 선보이며 활력소가 됐다.결국 이들의 과감한 플레이가 후반 대역전 드라마로 이어졌다.신예들의 맹활약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아테네올림픽 본선무대에서의 선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더욱 고무적이다. 박성화 감독대행은 오는 9일 베트남과의 독일월드컵 지역예선 3차전에서 “기존 성인대표팀 선수들을 주로 기용하겠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는 과감히 제외시키겠다.”고 말했다.기회가 오면 다시 한번 ‘신예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현대·기아차 4000여대 선적 車운반선 싱가포르서 침몰

    |싱가포르 AFP 연합|싱가포르 남부 해역에서 22일 밤 현대·기아 자동차 4000여대를 싣고 가던 자동차전용선 ‘MV 현대105’호와 유조선이 충돌,현대105호가 침몰했다고 싱가포르 해운항만청(MPA)이 23일 밝혔다. MPA는 자료를 통해 “현대105호와 약 28만t의 원유를 수송중이던 유조선이 싱가포르 휴양지인 센토사 섬 동남쪽 6㎞ 지점 해상에서 충돌했다.”고 밝혔다.이 충돌로 현대105호 좌현에 가로 50m,세로 20m의 대형 구멍이 생겼으며 23일 오전 침몰했다고 MPA가 덧붙였다. 자동차전용선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원 4명과 필리핀 선원 16명 등 20명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이 배는 현대상선이 유럽계 해운업체 유코카캐리어스에 판 선박 중 하나다.유코카캐리어스 관계자는 이 사고로 선박 1700만달러,화물 5700만달러 등 7400만달러(88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으나 “모두 보험에 가입돼 있어 실제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자동차 화물에 대해서는 현대차에서 보험에 가입했다.”고 덧붙였다.˝
  • 서울에 온 北위안부 할머니

    북한의 종군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가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방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 2차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이 행사에는 남북한과 중국,타이완, 필리핀,미국,일본 등 7개국 피해자와 관련 단체 인사 94명이 참가했다. 위안부 피해자 2명을 비롯,모두 9명으로 이뤄진 북한 대표단은 이날 오전 11시20분 중국국제항공 CA123편으로 도착했다.북한 대표단장인 홍선옥 ‘조선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연행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행사장인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도착 기자회견을 갖고 “이념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일제의 인권유린은 더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면서 “피해자가 더이상 고령화되기 전에 일본이 잘못을 인정케 하고 사죄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강제연행 피해자인 황종수(78)씨는 1944년 5월 강원도 창도군 오천리에서 강제 징용된 뒤 일본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같은 해 7월 징용된 1000여명과 함께 수송선을 타고 사할린으로 가던 중 배가 미국 어뢰에 맞아 침몰,간신히 살아남아 또다시 홋카이도 군용비행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위안부 출신 이상옥(78·여)씨는 황해도 신평군 출신으로,1943년 17세때 같은 동네 또래 처녀 2명과 함께 평남 순천 부근 산골짜기의 군 위안소에 끌려가 1년 남짓 치욕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하다 가까스로 탈출했다. 일본 대표로 참석한 쓰치야 고겐 변호사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죄를 그대로 방치하고 오늘날에 이른 것이 부끄럽다.”면서 “일본 정부는 전후 청산을 바르게 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올림픽여자배구 러시아전 이어 3-2로 이탈리아에 대역전승

    정말 기적 같은 승리였다. 엄청난 높이의 차이를 불 같은 투혼과 끈끈한 조직력으로 극복하며 어렵게 2-2로 세트 균형을 맞췄지만 마지막 세트의 스코어는 11-14로 절망적이었다.1점만 더 내주면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대영의 공격과 김미진의 블로킹,김사니의 서브 에이스로 내리 3득점,극적인 듀스를 이뤘다.이후 30대의 노장들이 해결사로 나섰다. 구민정(31)의 두 차례 공격으로 16-16으로 듀스를 이어간 뒤 최광희(30)의 대각선 강타에 이은 장소연(30)의 블로킹으로 피를 말린 대접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응원단 모두 도쿄 하늘 아래 뜨거운 눈물을 뿌렸다. 김철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이 전날 세계 5위 러시아전에 이어 또 대역전승을 연출하며 사실상 아테네올림픽 출전 티켓을 손에 움켜쥐었다. 한국은 12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체육관에서 벌어진 아테네올림픽 최종 예선 4차전에서 세계 4위 이탈리아에 먼저 2세트를 내준 뒤 내리 3세트를 따내 3-2(17-25 10-25 25-17 25-18 18-16)로 역전승했다. 4연승을 거둔 한국은 3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사실상 굳혔다.한국 일본 타이완 태국 등 아시아 4개국을 포함해 8개팀이 풀리그를 벌이는 이번 예선에서는 아시아 상위 1개국과 전체 3위까지 모두 4개국에 티켓이 주어진다. 세계 8위인 한국은 일본(7위) 나이지리아(38위) 푸에르토리코(17위) 등과 3경기를 남겨 두고 있으나 역대 전적 47승46패로 앞선 숙적 일본과의 자존심 대결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발 앞서 승리가 예상된다. 한국은 첫 세트에서 13-11까지 앞서 나가다 상대 주포 센토니에게 내리 5개의 스파이크와 블로킹을 허용하며 17-25로 빼앗긴 뒤 2세트에서도 182∼185㎝의 탄력 넘치는 장신 공격수들을 앞세운 상대의 고공 포화에 휘말려 힘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전날 2m대의 장대군단 러시아를 침몰시킨 한국의 저력은 3세트부터 발휘됐다.강혜미를 세터로 투입한 3세트 12-12에서 연속 3득점으로 앞서간 뒤 최광희의 배짱 넘치는 공격이 가세하면서 한 세트를 만회했다. 한국은 4세트에서 이탈리아의 잦은 범실을 틈타 리드를 잡은 뒤 정대영이 중앙과 오른쪽을 오가며 강타를 꽂아 승부를 마지막 세트로 몰고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지음

    실학의 완성자,개혁군주 정조의 오른팔,500여권의 방대한 저술,문학·역사·철학·과학기술 등 온갖 학문을 섭렵한 르네상스적 인물,행정의 최일선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다산 정약용의 이름은 곧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다.그러나 실제로 다산은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에 가까웠다. ●정조 보좌 조선 근대화 이끌어 그가 성균관에 입학한 지 6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정조가 꾸중을 했다는 일화는 다산의 이같은 일면을 잘 보여준다. 역사평론가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가 펴낸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전2권,도서출판 김영사)은 실학과 선진 과학문물,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으로 침몰해가는 조선사회를 구하려 했던 다산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다. 다산은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에 둘러싸인 정조를 현명하게 보좌하며 합리적 행정과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역사상 최초의 계획도시인 화성의 대역사를 이룩했으며,암행어사로 민생을 살피거나 지방관으로 근무하며 개혁사상을 현실에 접목하는 데 매진했다.곡산부사로 일할 때 베푼 선정은 나중에 그가 국문을 당할 때 지배층이 민심이 두려워 그를 사형에 처하지 못했을 정도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남인 계열인 다산과 그 형제들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1800년 급서하면서 다산이 누린 영광은 막을 내렸다.다산의 집안은 1801년 신유박해로 풍비박산이 났다. 정조 치세에서 억눌려 있던 노론 벽파가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를 앞세우고 남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 것이다.한국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교리연구가인 막내형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고수하다 장남 철상과 함께 사형됐으며,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매형 이승훈 또한 순교했다.다산과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이 제사 문제 등 성리학과 충돌되는 점 때문에 천주교를 저버린 것과 대조적이다.다산의 이복맏형 정약현은 그의 사위가 황사영인 탓에 갖은 고초를 겪었다.정조 사후 멸문지화에 가까울 정도로 몰락한 집안에서 다산과 정약전이 목숨을 건졌지만 그들은 각각 전라도 강진과 흑산도에 유배됐다.두 형제는 살아선 다시 만날 수 없었다.다산은 무려 18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지배권력 집중공격에 만신창이 삶 책은 다산은 물론 박해로 점철된 삶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정약전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룬다.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부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에 동화됐고,‘복성재’라는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저자는 사대부들이 모두 경전 연구에 매달리는 현실에서 민중의 삶에 직접적 도움을 주는 어류생태를 연구한 정약전이야말로 진정한 실학자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 완결편 이 책은 저자의 조선 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1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선 사후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송시열과 노론이 조선사회를 주자학 유일사상 체제로 만들고 이를 명분으로 노론 일당독재를 구축하는 과정을 그렸으며,2부 ‘사도세자의 고백’에선 사도세자가 정신병자여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노론 일당의 전제에 맞서 싸우다 살해된 것임을 밝혀냈다.이번에 펴낸 3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선 주자학 유일사상과 노론 일당독재 체제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 했던 정조와 다산 형제들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다뤘다.저자는 다산과 그의 형제들을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의해 경직화된 체제로 치닫던 조선후기라는 시대를 거부하고 열린 사회를 지향한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각권 1만2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우리금융그룹배]금호 신인 정미란 챔프전서 훨훨

    “이 만한 신인선수 봤습니까.” 여자농구 ‘만년 꼴찌’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1승 만을 남겨놓은 금호생명 김태일 감독은 요즘 루키 정미란(19·182㎝) 칭찬에 침이 마른다. 여고 시절 아무리 출중한 선수라도 프로무대에서 3∼4년은 뛰어야 제자리를 잡는 게 보통이다.특히 최하위 성적 덕택(?)에 항상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차지했지만 대어가 없어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금호로서는 그야말로 ‘복덩이’를 만난 셈이다. 삼천포여고를 졸업한 정미란 역시 이번 겨울리그에서 전체 1순위로 금호에 입단했지만 ‘스포츠 얼짱’ 신혜인(신세계)이 뜨는 바람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다른 신인들에 견줘 한 수 위의 기량으로 정규리그 신인상을 차지했지만 어디까지나 식스맨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부터 정미란을 주전으로 내세우는 모험을 걸었고,대성공이었다.챔프전 첫승을 거둔 지난 17일 2차전에서 정미란은 막판 천금 같은 쐐기 3점포를 연속 2개나 꽂아 넣으며 ‘국가대표 군단’ 삼성생명을 침몰시켰다. 33분이나 뛴 19일 3차전에서도 과감한 골밑 돌파와 빼어난 어시스트로 분위기를 잡았다.삼성의 센터 김계령을 수비하는 것부터 용병들에게 수비가 집중된 틈을 타 외곽슛을 날리는 능력이 팀 선배들보다 낫다는 평가다. 신인 가뭄에 시달린 여자농구에서 정미란의 등장은 단비와도 같다.신인답지 않은 침착함을 갖췄고,고교 시절 센터 플레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드 못지않은 센스를 지녔다.승부근성도 대단하다.창단 이후 7시즌 동안 꼴찌만 한 금호는 21,22일 2경기에서 한 번만 이기면 드디어 챔프가 된다.금호가 이루려는 ‘꼴찌 신화’는 신인 정미란이 있어 더욱 극적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JP퇴장… ‘3金시대’ 종식

    자민련 김종필(JP) 총재가 19일 “국민의 선택은 조건없이 수용해야 한다.”며 총재직 사퇴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마포당사에서 김학원 총무 등 17대 총선 당선자들과 만나 “패전의 장수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모든 게 나의 부덕한 탓으로 깊이 반성한다.”며 “오늘로 총재직을 그만두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김 총재가 17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재직 사퇴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따라 ‘3김 정치시대’의 종식이 이뤄졌으며,자민련은 본격적인 ‘포스트 JP’ 시대를 향한 진로 모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이봉학 사무총장에게 4월중 전당대회를 열어 새 총재를 선출토록 지시했다. 김 총재는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지난 43년간 정계에 몸담아왔고 이제 완전히 연소돼 재가 됐다.”며 “여러분들이 지혜를 모아 당을 수습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자민련은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총재를 선출키로 했으며,전당대회에는 김학원 총무와 이인제 부총재의 출마가 예상된다. 자민련은 또 전대와는 별도로 김 총무 등 당선자를 주축으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6월 재보궐선거에 대비하면서 당의 정체성을 재확립함으로써 ‘포스트 JP’ 시대에 걸맞은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3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정계은퇴를 전격선언함으로써 이미 카운터 다운에 들어갔던 3김시대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그는 35세때인 지난 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며 한국 정치사의 주역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현실 정치를 떠난 뒤에도 ‘마지막 3김’으로 의지를 불태웠다.그러나 김 총재는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10선고지와 내각제 도입을 이루지 못한 채 긴 그림자를 끌며 정치를 떠나게 됐다.5·16 쿠데타로 등장한 그가 40여년간의 정치인생을 접은 날이 우연하게도 4·19 혁명 44주년 기념일이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케 한다. 김 총재는 61년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40여년간 ’자의반 타의반‘ 외유,정치 규제,3당합당과 민자당 탈당,자민련 창당,DJP엽합 및 공조 파기,16대 총선 참패 등숱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정치적 입지를 유지해왔다. 물론 김 총재가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충청권이란 텃밭이 있었기 때문이다.매번 침몰직전까지 몰렸던 JP에게 충청권은 아낌없는 지지를 해 줬다. 그러나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하고 소속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한데 이어 그해 16대 대선에서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에 텃밭을 잠식당하면서 충청권 맹주로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 김 총재는 지난해 10월 자민련이 충청지역 기초단체장 재·보선에 모처럼 승리,이번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복원을 꿈꿨지만 ‘한·민 공조’의 대통령 탄핵 추진에 뒤늦게 가담하면서 ‘탄핵폭풍’에 치명타를 맞아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렸다. 더욱이 총선 결과는 충남지역 4석이라는 사상최악의 성적를 기록한데다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자기 자신 조차 낙선하면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 결국 총선후 사흘간을 청구동 자택에 머물며 장고(長考)를 거듭하던 그는 이날 오전 당사에 출근,당선자들과 만나 “패전의 장수가 무슨 말이 있겠느냐.모든게 저의 부덕한 탓”이라며 “오늘로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씨줄날줄] 1회용 대표/강석진 논설위원

    이번 총선에는 다섯번이나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손가락이 다섯개니 세기도 좋다.꼽아보자.탄풍(彈風),박풍(朴風),추풍(秋風),노풍(老風),정풍(鄭風)이다. 이중 사람 성씨 딴 바람 뒤에는 세 명의 위기에 처한 남자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요즘 이름조차 듣기 어려운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따스한 눈길 주는 이 드문 대구 바닥을 신발이 다 닳도록 훑고 다니는 민주당 조순형 대표,그리고 ‘4년 배부르려고 사흘 굶는다.’는 빈정거림을 들으면서 단식하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다. 2003년 6월 대표로 선출된 최병렬씨는 수락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며 사자후를 토했다.11월에는 열흘 단식으로 특검법 정국을 돌파,당을 장악했다고도 했다.하지만 한나라당이 선거를 앞두고 먼저 침몰 조짐을 보이자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들은 최 대표를 꽁꽁 묶어 바다에 던지듯 비례대표 자리조차 주지 않고 내쳐 버렸다.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선출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도,힘도 다 잃을 처지가 됐다. 정 의장은 노인 유권자 자극하는 말 한마디 했다가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권기홍 전 노동부장관 등 대구 출마자들이 백의종군하라며 ‘탄핵’하자,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당 대표라는 자리가 어느덧 쓰고 버리는 1회용 자리가 됐다.어제 대표를 뽑은 손으로 오늘 대표의 목을 떨구는 1회용 증후군이 주요 정당을 휩쓴다.왜일까.무엇으로 이 변화를 설명하나.대표들의 용렬함,한국 정치의 변화무쌍함,보스 정치의 종언.여기에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정당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더하면 충분한 설명이 될까.앞으로도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컵’ 당 대표가 계속 나오게 되는 걸까.1회용품을 많이 쓰는 것은 환경에 좋지 않다는데…. 예전에는 총리가 주로 1회용 쓰고 버리기 인사의 대상이었다.정치적 위기가 오면 민심을 수습한다고 학계나 법조계 등에서 덕망있는 이들을 모셔 왔다.그러다간 다시 민심 수습할 일 생기면 온갖 책임과 오명 뒤집어씌워 물러나게 했다.그 병,그 사고 방식,그 수법이 주요 정당에서 도지고 있다.그래서일까.가벼움이 바람되어 날아간 휑뎅그렁한 자리,또 다른 가벼움이 차례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조그만 어려움도 참지 못하고,조그만 책임도 나눠 갖지 못하는 사이 정치는 늘 바람으로 왔다가 간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기로에 선 ‘땡처리’ 건설업체

    유럽계 UBS컨소시엄이 동아건설의 인수의사를 피력하면서 위기에 빠진 건설업체들의 회생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동아건설은 청산이 확실시되는 기업으로 분류됐었다.이런 기업이 M&A를 추진한다는 얘기에 건설업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M&A 실패로 상장이 폐지된 건영 등 다른 업체들도 인수자 물색에 나서고 있다. 동아건설은 2000년 11월 부도가 난 이후 러일전쟁때 보물을 실은 채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돈스코이호 인양설 등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다.또 최원석 동아건설 전 회장도 자신이 경영을 맡게 되면 회생가능성이 있다며 한 때 경영복귀를 추진하기도 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동아건설은 이미 2001년 파산신청을 하면서 토건면허가 실효됐다.인수가 성사되면 면허는 살아나지만 그동안 수주실적이 없어서 M&A가 성사되더라도 중견업체로 전락할 전망이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것도 동아건설이 아닌 당시 보증을 섰던 대한통운이 진행 중이다.받을 공사비는 5억달러이지만 지체보상금 등은 2배가 넘는 1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미 마친 공사에 대한 하자보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엄상호 전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대구지역에서 출발,수도권에 입성,주택건설 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졌던 건영도 존폐기로에 서 있다.지난 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2002년 8월 오현-레마코 컨소시엄과의 M&A 불발에 이어 2003년 라인원개발 컨소시엄과의 매각협상 무산으로 지난해 10월 상장이 폐지됐다.새로운 인수 대상자가 나서지 않으면 청산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국제플러스] 타이타닉 식사메뉴 1억에 팔려

    |런던 AFP 연합|1912년 빙하에 부딪쳐 침몰했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서 맨 처음 제공됐던 식사의 메뉴가 2일 영국에서 실시된 한 경매에서 5만 1000파운드(약 1억 700만원)에 팔렸다. 이는 타이타닉호의 유물 가운데 최고 가격에 해당한다. 이 메뉴는 타이타닉의 모항(母港)인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열린 영국타이타닉협회 정기총회 때 경매로 나온 4건의 유물 가운데 하나다.
  • [토요영화] 블루

    ●블루(KBS2 오후 11시10분) 해군 특수부대 ‘SSU’를 소재로 잠수함을 인양하는 해난구조대 대원들의 일과 우정,사랑을 그린 영화.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제작 기초 자료뿐 아니라 실제 구조선과 헬기 등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잠수함 영화였던 ‘유령’에서 쌓았던 국내 기술을 한층 발전시켜 실제 수중촬영을 통해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해 냈다. 잠수와 해난구조 분야에서 대한민국 해군 잠수부대 SSU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 왔다.김준 대위와 이태현 대위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해군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나란히 장교가 된 유능한 인재들이다.한편 새로 부임한 훈련교관 강수진 소령은 김준의 옛 연인으로,3년만에 돌아와 두 사람과 만나게 된다.정과 사랑으로 얽힌 세 사람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강수진 소령의 지휘 하에 해군 합동 훈련이 시작된다.그러나 훈련 도중 첨단 장비를 싣고 있던 한반도함이 심해로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한다. 생존자들과 장비를 되찾기 위해 잠수정을 타고 구조에 나선 강수진 소령과 이중사는 한반도함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잠수정의 인원 초과로 둘만 한반도함에 남기로 한다.그러나 구조를 기다리던 두 사람을 태운 한반도함은 다시 침몰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김준 대위와 이태현 대위는 동료와 연인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수심 187m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구조작업이 시도된 적이 없는 위험한 지역.그러나 두 사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계에 도전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V-Tour 2004]현대건설 5연패-구민정 통산 두번째 MVP

    여자 실업배구 최강 현대건설이 겨울리그 5연패를 일궈냈다. 관록의 현대는 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V-투어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마지막 5차전에서 창단 34년 만에 첫 우승을 노린 패기의 도로공사에 3-1(20-25 25-14 25-20 25-18)로 역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3승2패를 기록,지난 2000년 슈퍼리그 이래 통산 다섯번째 정상을 밟았다. 올 시즌 6개 투어대회를 전승으로 장식한 현대는 챔피언전에서 투지로 똘똘뭉친 도로공사에 2·4차전을 내준데 이어 이날 첫 세트도 허용,침몰의 위기에 몰렸지만 강혜미 장소연(이상 30) 구민정(31) 등 30대 노장들의 부상 투혼과 ‘조커’ 이선주의 깜짝 활약에 힘입어 정상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반면 도로공사는 지난 1970년 창단 이후 첫 패권의 꿈을 부풀렸지만 중반 이후 현대의 노련미에 휘말려 정상 정복에 실패했다. 현대는 레프트 윤혜숙의 부진과 연속 범실로 1세트를 먼저 내줬지만 장소연의 이동공격에다 윤혜숙의 자리를 훌륭히 메운 이선주가 점수를 착실히 보태 균형을 맞춘 뒤 3·4세트에서 서브리시브 난조에 빠진 도로공사를 거세게 몰아붙여 승리를 낚았다.팀 최다득점을 한 ‘맏언니’ 구민정은 지난 2000년에 이어 개인 통산 두번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사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바란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체제가 어제 출범했다.박 대표는 오는 6월 정기 전당대회까지 당권을 쥐고,자신의 책임 아래 4·15 총선을 치르게 됐다.박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탄핵정국으로 침몰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견인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고 하겠다.민심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박 대표가 할 일이다. 이번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는 결선투표 없이 1차 투표에서 승부가 났다.한나라당 당원들과 민심이 박 대표에게 거는 기대를 반영한 결과로 본다.이런 기대를 바탕으로 박 대표는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수구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한나라당은 불법과 기득권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보다는,힘으로 밀어붙이기와 대결의 정치로만 치달아 왔다.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반성보다는 숫자로 의회를 지배하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탄핵정국을 초래하고 그 역풍에 흔들리게 된 것도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살피지 못한 결과다. 이제 박 대표의 한나라당은 건전한 정당,책임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박 대표가 수락 연설에서 “보수와 진보를 넘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실용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듯이 한나라당의 살 길은 변화와 실천뿐이다.천막당사에 나앉겠다는 각오대로 후진정치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는 건전한 정책정당으로 총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감성과 선동의 정치,힘의 정치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이성과 정책으로 국정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그런 점에서 박 대표가 ‘대결과 상극보다는 타협과 상생의 정치’ ‘당리당략보다는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치’를 다짐하고 “구태정치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한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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