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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남미] 아이스박스 타고 11일간 대서양 표류하다 극적 구조

    [여기는 남미] 아이스박스 타고 11일간 대서양 표류하다 극적 구조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타고 열흘 넘게 대서양을 표류한 브라질 어민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현지 언론은 “조업을 나간 어선이 침몰하면서 극적으로 탈출, 아이스박스를 타고 표류한 40대 선원이 구조됐지만 수리남에 억류됐다가 무사히 귀국했다”고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호무알두 호드리게스(44)는 브라질 북부 아마파주의 오이아포키에서 지난달 10일 출항한 어선을 타고 대서양으로 나갔다. 그가 탄 어선은 프랑스령 기아나까지 이동, 3일 일정으로 조업하고 귀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선을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침몰했다. 호드리게스는 “이유는 모르지만 (사고 당시) 균열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서둘러 탈출해야 했다”고 말했다.  호드리게스는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타고 침몰하는 어선에서 탈출했다. 성인 1명이 겨우 앉아 있을 수 있는 아이스박스를 탄 호드리게스는 장장 11일간 대서양을 표류했다.  그는 “줄곧 가족 생각이 났고, 불안한 마음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면서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면서 바다를 떠다녔다”고 말했다. 상어떼가 주변에 모여드는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는 “아이스박스 주변에 상어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공격할까 가슴을 졸였다”면서 “공격을 받았더라면 약한 아이스박스는 산산조각이 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파도가 아이스박스를 덮쳐 물이 찰 때도 있었다. 호드리게스는 손으로 아이스박스에 고인 물을 퍼내며 사투를 벌였다.  표류 11일 만에 호드리게스는 수리남 해역에서 선박에 발견돼 극적으로 구조됐다. 어선이 침몰한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450km 떨어진 곳이었다.  현지 언론은 “옷이 찢어진 채 일사병 증상을 보인 호드리게스가 탈진한 상태로 방향감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구조된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건 물(식수)이었다고 한다.  그를 구조한 선박이 선원은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상황에서 11일 동안 표류하면서 목숨을 유지한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호드리게스는 구조됐지만 즉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수리남 당국이 신분증 등 아무런 서류를 갖지 않고 자국 영해로 들어온 호드리게스를 보고 밀입국을 의심하면서 조사를 이유로 그를 잡아둔 때문이다.  호드리게스는 “어이없기도 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더 컸다”면서 “표류 끝에 목숨을 건지고 보니 견디지 못할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6일간 수리남에 억류돼 있다가 조국 브라질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호드리게스는 “작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가 내겐 생명을 건져준 신 같은 존재였다”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침몰한 어선의 생존자가 더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국가 비상상황” 중대본 가동…힌남노 경보 ‘주의’로 상향

    “국가 비상상황” 중대본 가동…힌남노 경보 ‘주의’로 상향

    강력한 태풍 ‘힌남노’가 다가오는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3일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태풍·호우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오전 10시 태풍 힌남노 대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해 태풍 대비 중점 사항을 전파하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의 태풍 선제적 대응 조치 지시에 따라 중대본 1단계를 가동하고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로 상향했다. 태풍 힌남노는 6일 오전 9시 부산 남서쪽 70㎞ 부근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태풍의 위력은 2003년 ‘매미’가 상륙했을 당시보다 훨씬 클 전망된다. 이상민 중대본부장은 “태풍에 의해 전국이 위협받는 국가 비상상황”이라면서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가용한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태풍 대비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본부장은 또 ‘힌남노’가 강력한 바람과 많은 양의 비를 동반하고 있어, 도심지 저지대 침수와 강풍 피해, 해안가 해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부산·경남 등 태풍 영향권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저지대 및 반지하 세대의 경우 우선 대피시켜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침수 취약가구에는 양수기, 차수판, 모래주머니 등 설비를 사전에 배포하고 하천 범람, 제방 유실 등이 예상되는 지역 주민을 대피소로 사전 대피시킬 것을 주문했다. 또 해안가 저지대 지하시설 등을 사전에 점검하고 필요시 영업시간을 단축하도록 권고하며, 맨홀·배수로·배수펌프장 등 배수시설을 철저히 점검해 침수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조했다. 아울러 강풍으로 인한 고층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되거나 간판이 낙하하는 일을 막고자 시설물 고정·결박을 재확인토록 요청했다. 농작물 및 과수 피해, 기중기(크레인) 전복, 선박 및 어선 침몰 등이 발생하지 않게 결박 및 고정 등도 철저히 할 것을 요청했다. 태풍 영향권 지역에서는 지역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불가피한 경우 실내 행사로 전환토록 했다. 이상민 중대본부장은 “이번 태풍은 여느 태풍보다 가장 위력이 센 것으로 예상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가 필요하다”면서 “태풍특보 발령 시에는 외출을 삼가시고, 필요하면 인근 주민센터 및 복지센터 등 대피소로 미리 대피해달라”고 말했다.
  • [나우뉴스] 수백 억짜리 요트,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러 백만장자 소유 추정

    [나우뉴스] 수백 억짜리 요트,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러 백만장자 소유 추정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인근에서 초호화 요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요트의 소유주가 러시아의 유명 억만장자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침몰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밤, 길이 39m에 달하는 초호화 요트가 시칠리아섬 인근에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 및 동유럽권 매체인 넥스타는 해당 요트의 소유주가 러시아 최대 PCI탄(작게 분쇄된 석탄) 제조 업체인 쿠르(KRU) 홀딩스 공동소유주 제나디 에이버잔(54)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요트의 선장은 21일 밤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며 조난 신호를 보냈다. 이후 해안 경비대가 도착해 승객 4명과 승무원 1명을 대피시켰고, 또 다른 승무원 4명은 수리를 위해 요트에 남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침몰이 멈추지 않자 승무원 4명마저도 요트를 포기하고 육지로 피신했다. 현지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영상은 거대한 요트가 뱃머리를 치켜든 채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 억만장자로 꼽히는 에이버잔 회장은 2019년 요트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비용은 최소 5000만 달러, 한화로 667억 원이 훌쩍 넘는다.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는 현재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소유주로 추정되는 에이버잔 회장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요트가 침몰할 당시 요트에 탑승해 있던 승객의 신원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 재벌의 호화 요트가 해외 언론을 장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3일에는 러시아 재벌의 호화 슈퍼요트 ‘악시오마’가 경매에 등장했다. 해당 요트는 이베리아 반도 남단부 지브롤터 해협에 위치한 영국령 지브롤터에 지난 3월 입항했다가 압류됐다. 지브롤터 당국은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드미트리 펌피얀스키(58)가 2000만 달러(267억 6000만원)의 대출 조건을 어겼다며 호화 요트를 압수했다. 악시오마호는 전장이 72.5m에 달하며 수영장은 물론 3D 영화관과 헬스장, 스파 등도 있다. 유명한 요트 디자이너 알베르토 핀토가 설계했으며, 가격은 7500만 달러(한화 약 100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는 세계의 부호들에게 일주일에 55만 8500달러(7억 5000만원)에 임대되기도 했다. 소유주인 펌피얀스키는 가스관용 강관을 생산해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에 납품하는 사업으로 재벌 반열에 들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인 3월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착] 수백 억짜리 요트,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러 백만장자 소유 추정

    [포착] 수백 억짜리 요트,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러 백만장자 소유 추정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인근에서 초호화 요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요트의 소유주가 러시아의 유명 억만장자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침몰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밤, 길이 39m에 달하는 초호화 요트가 시칠리아섬 인근에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 및 동유럽권 매체인 넥스타는 해당 요트의 소유주가 러시아 최대 PCI탄(작게 분쇄된 석탄) 제조 업체인 쿠르(KRU) 홀딩스 공동소유주 제나디 에이버잔(54)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요트의 선장은 21일 밤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며 조난 신호를 보냈다. 이후 해안 경비대가 도착해 승객 4명과 승무원 1명을 대피시켰고, 또 다른 승무원 4명은 수리를 위해 요트에 남았다.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침몰이 멈추지 않자 승무원 4명마저도 요트를 포기하고 육지로 피신했다. 현지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영상은 거대한 요트가 뱃머리를 치켜든 채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 억만장자로 꼽히는 에이버잔 회장은 2019년 요트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비용은 최소 5000만 달러, 한화로 667억 원이 훌쩍 넘는다.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는 현재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소유주로 추정되는 에이버잔 회장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요트가 침몰할 당시 요트에 탑승해 있던 승객의 신원도 공개되지 않았다.한편, 러시아 재벌의 호화 요트가 해외 언론을 장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3일에는 러시아 재벌의 호화 슈퍼요트 ‘악시오마’가 경매에 등장했다. 해당 요트는 이베리아 반도 남단부 지브롤터 해협에 위치한 영국령 지브롤터에 지난 3월 입항했다가 압류됐다. 지브롤터 당국은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드미트리 펌피얀스키(58)가 2000만 달러(267억 6000만원)의 대출 조건을 어겼다며 호화 요트를 압수했다. 악시오마호는 전장이 72.5m에 달하며 수영장은 물론 3D 영화관과 헬스장, 스파 등도 있다. 유명한 요트 디자이너 알베르토 핀토가 설계했으며, 가격은 7500만 달러(한화 약 100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는 세계의 부호들에게 일주일에 55만 8500달러(7억 5000만원)에 임대되기도 했다. 소유주인 펌피얀스키는 가스관용 강관을 생산해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에 납품하는 사업으로 재벌 반열에 들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인 3월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 [지구를 보다] 기록적인 가뭄에…위성으로 본 바닥 드러낸 세계 유명 강들

    [지구를 보다] 기록적인 가뭄에…위성으로 본 바닥 드러낸 세계 유명 강들

    지구촌이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고있는 가운데 세계의 유명 강 역시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말라붙고 있다. 우리나라는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소중한 생명과 삶터가 희생됐지만 반대로 북미와 유럽, 중국 등은 극심한 폭염과 산불, 가뭄 등으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는 모두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으로 탄소중립 등 전세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초래한 위기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CNN은 지구촌 이상기후로 바짝 말라버린 유명 강들의 모습을 위성 사진으로 비교 분석해 보도했다. 이 강들은 독일 라인강, 중국 양쯔강, 미국 미드호, 이탈리아 포강, 프랑스 루아르강, 유럽 10개국에 걸쳐 흐르는 다뉴브강 등으로 모두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8월과 올해 8월 강의 모습은 위성 사진으로도 극적으로 변한 것이 확인된다.먼저 알프스에서 시작해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흘러 '유럽의 동맥'으로 불리는 라인강은 현재 일부 지역의 강바닥이 수면 위로 드러날 정도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쪽 카우브 지역의 경우 수위가 32㎝까지 떨어졌다. 해운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라인강의 기준 수위를 40㎝로 보고있어 대형선박들이 이 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 운송의 동맥마저 말라버리고 있는 것. 이 모습은 위성으로도 확인되는데 지난해와 올해 사진을 보면 군데군데 모래 바닥이 드러난 것이 확인된다.7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고있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포강은 길이가 650㎞에 달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이지만, 최근 가뭄으로 상당수 지류가 마르면서 농작물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현재 유수량이 평상시의 10분의 1로 떨어졌으며 수위도 평소보다 2m 낮아지면서 옥수수, 쌀 등 농업 생산량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대마을의 유적이나 세계 2차대전 중 사용된 불발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위성 사진으로도 확인되는데 1년 전과 비해 포강 곳곳이 훨씬 더 많은 바닥이 드러난 것이 보인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양쯔강도 심각한 상황이다. 60년 만의 폭염과 전국적인 가뭄 경보로 양쯔강 지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바짝 말라버렸다. 이 과정에서 600년 전 불상이 발견되는가 하면 세계 최대 옛 석불인 러산대불(樂山大佛)이 전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밖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있는 북미 최대 인공 호수 미드호도 처음 생긴 1937년 이후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연이어 인간의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접경에 있는 미드호는 콜로라도강에 후버댐을 지으면 생긴 길이 190㎞에 달하는 거대 호수로 CNN은 호수의 수위가 현재 전체 용량의 27%에 불과해 지역 내 물 공급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또한 역시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겪고있는 세르비아의 항구도시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했던 독일 군함이 나타나는가 하면, 프랑스 서부 루아로상스 인근을 흐르는 루아르강의 지류는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 [데스크 시각] 기후 위기, 플랜 B는 없다/이순녀 수석부국장

    [데스크 시각] 기후 위기, 플랜 B는 없다/이순녀 수석부국장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알았다. 지난 8일 서울을 휩쓴 비는 상상 이상의 공포였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의 안타까운 목숨과 삶터를 삽시간에 빼앗아갔다. 지난 2주간 거대한 비구름이 남하와 북상을 거듭할 때마다 전국 곳곳이 아수라장이 됐다. 폭우가 물러난 자리엔 폭염이 사정 없이 밀고 들어왔다. 자연재해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발생의 경고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여겼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기후의 역습에 또 한 번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나라 밖 사정도 험악하다. 중국은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폭우에 때아닌 한여름 폭설까지 들이닥쳤다. 쓰촨, 충칭 등 중남부 일대는 1961년 이래 최장기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동북부 헤이룽장성 다싱앙린에선 25도 안팎의 기온에도 눈이 내려 적설량이 3㎝에 이르는 이상기후가 나타났다. 수년째 반복돼 온 유럽 지역의 폭염과 가뭄은 올해 더 상황이 악화됐다. 500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독일의 젖줄인 라인강이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면서 물류 수송에 비상이 걸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 부족으로 급수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최악의 가뭄이 가져다준 뜻밖의 발견도 있다.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의 발데카나스 저수지가 가뭄으로 말라붙으면서 5000년 전 고대 인류가 만든 거석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중국 쓰촨성 양쯔강 상류 바닥에선 6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됐다. 세르비아 동부의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했던 독일 군함도 드러났다. 이상기후가 선물한 유물과 유적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사례를 더 거론할 필요도 없이 기후변화는 엄존하는 위기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논의한 교토의정서(1997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2도 이상 상승을 막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의 단계적 감축을 결의한 파리기후협약(2016년)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간 지구온난화는 지속돼 왔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로 인한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오늘날 우리가 곳곳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미래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에 비하면 최상의 시나리오나 다름없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변화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멈춘다고 해도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늦출 뿐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부인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인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문제 해결에 급급해 시대적 사명에 역행하는 경솔한 선택을 한다. 폭염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급 위기를 이유로 중국과 유럽 국가들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독일은 한동안 사용을 중단했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했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도 석탄 발전을 재개하거나 생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탄소 배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갈등의 여파로 지구온난화 대응과 관련한 대화를 중단하기로 한 것도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을 촉구하며 “플래닛(행성) B가 없기 때문에 플랜 B도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이 전기차를 타고, 에너지를 아끼며, 식량 낭비를 줄이는 등 일상에서의 친환경 노력과 더불어 정치적 참여를 통해 기후변화 정책을 강력히 추동해야 하는 이유다.
  • 1970년대 숨진 등반객 3명 유골…‘가뭄’에 발견되는 것들

    1970년대 숨진 등반객 3명 유골…‘가뭄’에 발견되는 것들

    바닥 드러낸 유럽의 강과 저수지네로 황제 다리 등 유적 드러나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7000년 전 스페인판 ‘스톤헨지’와 청동기 시대 건물터, 로마의 네로 황제가 건설한 다리 등이 발견됐다. 21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 발데카나스 저수지에서는 이달 초 수백개의 선사시대 돌기둥이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스페인판 스톤헨지, 공식적으론 ‘과달페랄의 고인돌’로 불리는 이 유적은 이베리아반도의 건조한 날씨로 저수기 수위가 총량의 28%까지 내려가자 저수지 한쪽에서 그 모습을 완전히 노출했다.7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1926년 독일 고고학자가 최초로 발견했으나 1963년 프랑코 독재정권 치하에서 농촌 개발 프로젝트로 댐이 만들어지면서 침수됐다. 그 후로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4번밖에 되지 않았다. 30년 전 저수지 건설로 수몰된 아세레도 마을도 옛 모습을 드러내 관광객을 끌고 있다.가뭄 역사 새긴 기근석, 2차대전 침몰 선박, 동물 뼈 등도 발견 엘베강이 흐르는 체코 북부 데친에서는 ‘기근석’이 등장했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물이 메마를 때 사람들이 이 기근석을 찾아 날짜와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다. 데친의 기근석 위에 새겨진 연도를 보면 1417년과 1473년은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1616년, 1707년, 1893년 등은 아직도 분명하게 보인다.독일에서도 라인강이 흐르는 프랑크푸르트 남쪽의 보름스와 레버쿠젠 근처의 라인도르프 등지에서 기근석이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이탈리아에서는 포강의 수위가 7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고대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중국 최악 가뭄’ 양쯔강 바닥서 600년 전 불상 드러나 중국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서 강바닥에서 600년 전 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최근 러산대불의 받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러산대불은 평소에는 강 수위가 높아 받침대를 볼 수 없으며 비가 많이 올 때는 발까지 물에 잠기기도 한다. 러산대불이 자리 잡은 지역의 현재 수위는 평년보다 2m 이상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양쯔강 바닥에서 6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이 불상들은 연꽃 받침 위로 약 1m 크기의 불상이 있고 양옆으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불상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한편 빙하가 녹고 있는 유럽 산악지역에서는 반세기 넘게 묻혔던 유골 등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스위스 남부 헤셴 빙하 등지에서는 1970∼1980년대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반객 3명의 유골이 수습됐다. 또 세르비아 항구도시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는 2차 대전 때 탄약과 폭발물이 실린 채로 침몰한 독일 군함 20여척이 발견되기도 했다.
  • 독일 U보트 어뢰 공격에 침몰한 美 구축함 105년 만에 발견

    독일 U보트 어뢰 공격에 침몰한 美 구축함 105년 만에 발견

    세계 1차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일명 U보트)의 어뢰공격으로 바다에 침몰한 미국의 구축함이 105년 만에 발견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해외 주요언론은 미국의 구축함 USS 제이콥 존스(USS Jacob Jones)가 최근 영국 콘월 뉴린에서 약 96㎞ 떨어진 수심 120m 바닷속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터커급 구축함인 USS 제이콥 존스는 지난 1916년 취역해 이듬해 유럽에 배치돼 세계 1차대전에 참전했다. 미 해군에 따르면 USS 제이콥 존스는 그해 독일군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여러 선박들의 생존자들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정작 자신의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같은 해 12월 6일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이동하던 도중 U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것. 이 과정에서 총 110명의 승무원 중 64명이 그대로 바다에 수장되며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USS 제이콥 존스는 적의 공격으로 침몰한 미국 최초의 구축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게됐다. 이렇게 100년 넘게 바닷속에 가라 앉아있던 USS 제이콥 존스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영국 다이버팀인 다크스타 덕이다. 이들은 침몰한 구축함을 찾기위해 1년 넘게 노력하다 지난 11일 수심 120m 아래에 가라앉은 USS 제이콥 존스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격침으로 인해 배 일부가 손상된 것이 보이지만 어뢰발사관과 종, 보일러 등이 명확히 확인된다.구축함을 찾아낸 다이버인 돔 로빈슨은 "USS 제이콥 존스의 발견은 모든 다이버의 꿈이었다"면서 "현재 가라앉은 선체는 전혀 손대지 않았으며 차후 일정은 미국 대사관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소식을 접한 미국 전쟁기념위원회 측은 "USS 제이콥 존스처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해를 찾는 것은 우리 임무의 핵심"이라면서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이 자유를 위해 희생한 것을 결코 잊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 외국선박 허가없이 입항 운송업체 대표 무죄

    외국선박 허가없이 입항 운송업체 대표 무죄

    세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외국 무역선을 입항시킨 50대 운송업체 대표가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창원지법 형사3-1부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7)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5월 24일 세관장의 허가 없이 외국 무역선을 외국 선적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개항 지역이 아닌 경남 통영의 한 회사 인근에 무단 입항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조류가 빠르고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선박이 침몰하거나, 주변 선박과 충돌하는 등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해당 선박은 긴급 입항이 필요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은 정당하며,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 370년 전 카리브에 침몰한 보물선에서 나온 에메랄드 금목걸이

    370년 전 카리브에 침몰한 보물선에서 나온 에메랄드 금목걸이

    1656년 1월 4일 카리브해. 지금의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출항한 스페인 범선 누에스타 세뇨라 데 라스마라비야스(이하 라스마라비야스)는 잔잔한 바다에서 스페인을 향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배에는 에콰도르 앞바다에서 암초에 걸려 난파한 또 다른 범선 헤수스 마리아 데 림피아 콘셉시온에서 회수한 보물들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평온은 잠시. 라스마라비야스는 여기에서 최후를 맞고 만다. 항해오류를 범한 기함 라콘셉시온과 충돌하면서다.  당시 범선에 타고 있던 선원은 650명. 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45명뿐이었다. 생존자들은 "충돌 후 곧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며 울먹였다. 그로부터 366년이 지난 2022년 라스마라비야스에 실려 있던 보물 중 일부가 카리브해에 있는 영연방의 섬나라 바하마의 해양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보물을 건져낸 탐사단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의 대표 칼 알렌은 "라스마라비야스는 바하마 해양역사의 일부분"이라며 "보물의 의미가 특별해 바하마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물선 라스마라비야스는 17~18세기 손을 여러 번 탔다고 한다. 생존자를 통해 침몰 기록이 남아 있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보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이 보물을 건져낸 건 기적 같은 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은 370년 가까이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소중한 보물을 여러 점 발견해 건져낼 수 있었다.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은 십자가 금목걸이들이다. 중앙에 보석을 박고 산티아고 십자가를 보석 위에 붙인 형상이다.   가운데는 커다란 콜롬비아 에메랄드가 십자가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고, 주변에는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 에메랄드가 장식돼 있다.  라스마라비야스에는 1600년대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군대였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 8명이 타고 있었다. 산티아고 기사단은 특히 해상 무역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에메랄드와 금으로 만든 보물은 기사들의 소유였거나 어디선가 구해 스페인으로 가져가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사단은 워낙 무역에 밝아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남달랐다고 한다. 목걸이에 유독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편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은 "바하마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너무 많지만 분명한 건 카리브해에서 나온 보물들이 바하마 역사와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라며 바하마 당국이 허락한다면 해양박물관에 보물들을 영구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 바하마에는 약 1300년 전 섬으로 이주한 루카얀 원주민들이 살았다. 그들은 유럽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로 대륙으로 이주해 지금의 베네수엘라에서 진주 캐기 작업에 동원됐다고 한다. 얼마나 노동이 고달팠는지 5만여 명 원주민들은 30여 년 만에 모두 죽어버렸다. 카리브 해저 보물을 바하마 역사와 문화의 일부라고 알렌 익스플로레이션이 강조하는 이유다.
  • ‘공군기지 폭발’ 크림반도 확전 태세… 러시아 보복이냐, 우크라 반격이냐

    ‘공군기지 폭발’ 크림반도 확전 태세… 러시아 보복이냐, 우크라 반격이냐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로 확전될 태세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반도 노보페도리우카의 러시아 사키 공군기지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발생한 폭발로 군용기 9대가 파괴된 것을 10일 확인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 등도 이날 새로 공개된 미 플래닛 랩스의 위성사진 판독 결과 최소 8대가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흑해 감시와 우크라이나 남부 공습의 주력인 사키 기지에는 최신예 수호이(SU) 전투기와 폭격기 등이 배치돼 있다. 러시아는 사키 기지 폭발 사건을 안전 규정 위반에 따른 단순 사고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자국 군과 무관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와 달리 서방의 위성 이미지 분석을 통해 활주로에 녹아내린 전투기들의 잔해 등으로 볼 때 고의적인 군사 공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NYT는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사키 기지를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 기지는 우크라이나군 기지에서 최소 200㎞ 거리다. 군사 전문가 올레 즈다노우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침묵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사거리 200㎞인 넵튠 지대함 미사일이나 300㎞에 달하는 하푼 대함미사일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넵튠 미사일은 지난 4월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을 침몰시킨 무기다. 사키 기지 폭발의 배후가 우크라이나로 좁혀지면서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병합한 크림반도에 우크라이나가 가한 최초의 대규모 공격이자 반격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폭발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은 크림반도에서 시작됐고, 크림반도 해방으로 끝나야 한다”고 밝힌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크림반도 공군기지는 우크라이나군의 적법한 (군사) 목표물”이라고 강조했다. 헤르손 등 남부 요충지 탈환에 나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최전선이 크림반도로 확대될 위험도 커졌다. 푸틴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크림반도가 공격받으면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 [씨줄날줄] 잃어버린 핵무기/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잃어버린 핵무기/임병선 논설위원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 자리잡기 전에 미국과 옛소련은 비행기로 핵폭탄을 실어 날랐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 떨군 인류 최초와 두 번째 원자폭탄도 전폭기들이 운반했다. 보통 핵무기를 분실하면 ‘부러진 화살’(broken arrow)이라 부르며 회수 작전에 들어간다. 그런데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이 잃어버린 핵무기 셋은 지금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1958년 2월 5일 조지아주 타이비섬 상공을 날던 전투기 조종사는 안전한 착륙을 위해 핵폭탄을 떨궜다. 수면에 떨어지며 다행히 폭발하지 않았다. 숱하게 수색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965년 12월 5일 미국의 타이콘데로가급(級) 순양함에서 추락 사고로 전투기와 함께 사라진 B43 핵폭탄도 오키나와 근처 바다에 잠들어 있다. 1968년 5월 그린란드 툴레의 미군기지 화재 때 핵무기를 탑재한 비행기가 바다에 빠진 뒤 행방이 묘연하다. 1966년 1월 17일 스페인 팔로라메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은 더욱 놀랍다. 핵무기를 탑재한 두 대의 B47 폭격기가 비행훈련 도중 충돌해 네 개의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셋은 지상에서 곧바로 회수한 반면 바다에 떨어진 하나는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찾았다. 미국이 핵무기를 분실한 것은 적어도 32건, 세 건을 제외하고는 회수했다. 이런 사실은 1980년대 기밀 해제된 국방부 문서를 통해 알려졌다. 영국이나 프랑스, 중국, 특히 옛소련 사례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옛소련은 1986년 4만 5000개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었는데 소련 붕괴 와중에 상당수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것은 잠수함 침몰처럼 도저히 감추지 못해 드러난 것들뿐이다. 1970년 4월 8일 대서양 비스케이만에서 에어컨 화재로 수장된 옛소련 K8 핵잠수함이 대표적이다. 4개의 핵어뢰가 탑재돼 있었다. 4년 뒤 K129 핵잠수함도 태평양에서 자취를 감췄다. 77년 전 일본에서의 핵 참화를 목도하고도 사람들은 핵무기를 관리하는 이들과 시스템이 여느 사람보다 똑똑하고 완벽할 것이라고 마음 편하게 믿는다. 하지만 그들도 실수하고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으며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 잃어버리고 위치도 모르는 미국 핵폭탄 적어도 셋, 옛소련은 “비밀”

    잃어버리고 위치도 모르는 미국 핵폭탄 적어도 셋, 옛소련은 “비밀”

    미국이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적어도 세 개의 핵폭탄을 잃어버렸는데 아직껏 정확한 위치조차 모른다는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 기사는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왜 이렇게 무책임하지? 질문들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무지했거나 관심이 너무 없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1966년 1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스페인의 새우잡이 어민이 하늘에서 흰색 물체가 뭔가를 길게 드리우며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거의 같은 시간 근처 팔로라메스 항구의 주민들은 두 개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건물이 흔들렸고, 파편이 땅에 꽂혔다. 사람들의 신체 일부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 뒤 몇주 동안 전 세계 신문은 끔찍한 사고를 풍문으로 전했다. 두 대의 미 군 B47 폭격기가 공중에서 충돌해 4개의 B28 열핵폭탄을 떨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세 개의 폭탄은 지상에서 재빨리 회수했는데 하나는 남동쪽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110만t의 TNT 폭발력과 1.1메가t의 위력을 갖춘 탄두를 찾기 위한 사냥이 시작됐다. 사실 이 사건은 핵무기를 분실한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보통 핵무기를 분실하면 ‘부러진 화살’(broken arrow)이라고 한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게는 최소 32건이 있었다.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비상상황에 투하한 다음 회수하곤 했다. 하지만 세 개의 미국 핵폭탄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1958년 2월 5일 조지아주 타이비 섬 근처에 떨어진 폭탄이 첫 번째였다. 조종사는 안전하게 착륙해야 한다며 기체의 무게를 덜기 위해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두 번째 핵폭탄은 1965년 12월 5일 미 해군 순양함 티콘데로가 함상에에서 바다로 떨어뜨린 B43 열핵폭탄이었다. 세 번째는 1968년 5월 22일 그린란드 툴레의 미 공군기지에서다.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했고, 승무원들은 탈출해야 했으며, 비행기는 핵무기를 탑재한 채 바다에 추락했다.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 센터의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책임자인 제프리 루이스는 “우리는 대부분 미국 사례에 대해 알고 있는데 전체 목록은 1980년대 미국 국방부의 기밀 해제가 이뤄졌을 때에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영국이나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셈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소련의 핵 과거는 특히 흐릿한데 1986년 기준 4만 5000개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었는데 국가가 핵폭탄을 분실하고도 회수하지 않은 건들이 제법 알려졌다. 미국과 달리 모두 잠수함에서 발생한 점이 특이하다. 해서 접근할 수는 없지만 해당 위치가 알려져 있는 건들이 있다. 1970년 4월 8일에 소련의 K8 원자력 잠수함이 대서양 북동쪽의 위험한 물길인 비스케이 만에서 잠수하는 동안 에어컨 시스템을 통해 화재가 확산됐다. 잠수함에는 4개의 핵어뢰가 탑재돼 있었고 곧바로 침몰했을 때 방사능 화물이 잔뜩 있었다. 1974년에도 소련의 K129 잠수함이 태평양에서 의문의 침몰을 했는데 세 개의 핵미사일이 탑재돼 있었다. 미국은 곧바로 회수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결정했는데 루이스는 “그 자체로 아주 미친 얘기였다”고 말했다. 조종사와 영화감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괴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갑자기 심해 채굴에 관심을 갖게 된 척했다. 루이스는 “사실은 심해 채굴이 아니라 해저까지 내려가 잠수함을 잡아 다시 들어올릴 수 있도록 작업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조리안(Azorian) 프로젝트였는데 불행히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 잠수함이 인양되는 과정에 부서져 버린 것이다. 물론 핵무기는 다시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녹슨 무덤에 갇혀 오늘날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따금 미국의 잃어버린 핵무기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1998년 퇴역 장교 데릭 듀크와 파트너가 40년 전 타이비 섬 근처에 떨어뜨린 폭탄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두 탐험가는 문제의 조종사와 수십년 동안 폭탄을 수색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대서양 근처 바사우 만으로 수색 범위를 좁혀 몇년 동안 두 사람은 샅샅이 뒤졌고, 그들은 조종사가 지목한 지점에서 다른 곳보다 10배 많은 방사선 패치를 확인하고, 정부에 보고했다. 정부는 즉각 조사팀을 파견했는데 핵무기가 아니었고, 해저 광물에서 나온 방사선 영향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미국의 잃어버린 수소폭탄 3개와 소련 어뢰 다수가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묘비마냥 보전돼 있지만 대부분 잊혀지고 있다. 왜 우리는 이 모든 불량 무기를 아직도 찾지 못했을까? 폭발할 위험은 없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팔로마레스 폭탄 수색 과정을 장황하게 방송은 소개했다. ‘베이지안 추론’과 최첨단 심해잠수정 알빈(Alvin)을 이용하고 낚싯바늘을 이용해 폭탄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실패를 거듭하다 마침내 성공했다. 잃어버린 세 개의 핵무기가 폭발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방송은 전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초기의 것으로 비키니섬 실험 당시에도 개발자들은 에너지의 연쇄 폭발 반응이 멈출 것이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1950년대와 60년대 사용된 차세대 핵무기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방사성 수소)를 포함해 수천 배 강력해졌지만 안전장치를 더욱 충실하게 보강했다. 해서 앞의 타이비 섬 상공 9144m 지점에서 B47 폭격기끼리 충돌한 뒤 넓은 지역을 방사성 물질로 오염시켰는데도 핵분열 반응에 필요한 핵 물질을 무기 자체와 분리한 덕에 연쇄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낙하산이 펼쳐져 지상이나 바다와 접촉할 때의 충격을 줄여준다. 나중에는 핵 장치가 활성화되지 않고 꺼지지 않도록 하는 ‘원포인트 안전’ 기능이 더해졌다. 하지만 항상 안전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안전 기능을 갖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1961년에도 B52 폭격기가 노스캐롤라이나주 골드즈버러 상공을 비행하다가 두 개의 핵무기를 지상에 떨어뜨렸다. 낙하산이 잘 펼쳐쳐 핵무기 하나는 비교적 손상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4개의 안전 장치 중 3개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1963년 기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당시 국방장관은 “약간의 기회, 글자 그대로 두 개의 전선이 교차하지 못해 핵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다른 핵폭탄은 땅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부서져 결국 들판에 묻혔다. 대다수 부품은 회수됐지만 우라늄을 함유한 부품 하나는 15m가 넘는 진흙 아래에 남아 공군은 주민들이 흙을 파내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 땅을 매입했다. 어떤 사건은 너무 놀라워 거의 꾸며낸 얘기처럼 들린다. 1965년 티콘데로 함상에서 A4E스카이호크가 B43 핵폭탄을 탑재한 채 비행기 엘리베이터에 잘못 앉혀졌다. 갑판원이 조종사에게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손을 휘저었다. 불행히도 중위였던 조종사는 수신호를 보지 못했고 필리핀해로 사라졌다. 오키나와 근처 수심 4900m 아래에 여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는 잃어버린 세 개의 핵폭탄을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눈으로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고, 블랙박스나 위성위치측정(GPS) 송신 장치가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또 타이비 섬 수색 때처럼 방사능 스파이크를 찾는 것도 어렵다. 핵폭탄이 실제로 특별히 방사능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1984년에는 또 다른 소련 핵잠수함 K-278 콤소몰레츠가 노르웨이의 바렌츠 해에서 침몰했다. K8과 마찬가지로 원자력 추진력을 갖고 있으며 핵어뢰 두 발을 탑재하고 있었다. 수십 년째 그 난파선은 북극해 1.7㎞ 아래에 누워 있다. 루이스에게 핵무기 분실 얘기는 그것들이 지닌 잠재적인 위험이 아니라 위험한 발명품을 안전하게 취급하기 위해 겉보기에 정교해 보이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우리는 자신하지만 실은 취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핵무기를 다루는 이들은 우리가 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든 다르고 실수가 적거나 더 똑똑하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핵무기를 취급하는 조직이 다른 모든 인간 조직과 같아 실수를 저지르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핵폭탄이 모두 회수된 팔로마레스에서도 토양은 여전히 재래식 폭발물로 터진 방사능으로 오염돼 있다. 토양의 표면을 삽으로 떠 넣은 미군 일부는 정체 모를 암에 걸렸다. 생존자들은 미국 보훈처 장관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는데 상당수가 70대 후반과 80대다. 루이스는 냉전 기간에 일어난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핵폭탄을 탑재한 비행기가 더 이상 비행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핵잠수함이며, 오늘날에도 아찔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 14척의 탄도미사일잠수함(SSBN)을 운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4척을 운용하고 있다. 핵 억지력으로 작동하려면 이 잠수함들은 해상 작전 중 위치가 탐지되지 않아야 한다. 2018년에도 영국 군의 SSBN이 페리에 거의 부딪힐 뻔한 것을 비롯해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핵무기를 잃어버리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방송은 섬뜩한 경고로 마무리했다.
  • “총기난사는 사기극’ 음모론자에 美 법원 ”643억원 물어내라”

    “총기난사는 사기극’ 음모론자에 美 법원 ”643억원 물어내라”

    지난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정부가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꾸며낸 사기극이라고 주장해 온 극우 음모론 방송인이 무려 4520만 달러(약 589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원으로부터 명령받았다. 전날 법원으로부터 명령받은 손해배상액 411만 달러(약 53억원)와 합쳐 4930만 달러(약 643억원)을 배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실과 다른 주장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 돈벌이를 하는 극우 성향 유튜버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이만큼 단일 사건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이 법원 판결로 나온 전례가 없다. 그만큼 헛소리를 늘어놓는 음모론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여론에 법원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10년 전에 일어난 샌디 훅 총기 참사는 20명의 어린이와 6명의 어른이 한꺼번에 희생돼 이 나라에서 일어난 총기 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사건으로 꼽힌다. 그런데 극우 방송인이자 음모론자인 알렉스 존스(48)는 이 참사를 정부가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꾸며낸 사기극이라고 자신이 만든 음모론 사이트 인포워스(Infowars)에서 여러 차례 주장했다.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을 가리켜 “위기 연기자”라고까지 조롱했다. 10년 전 총부리에 아들 제시 루이스(당시 6세)를 잃은 닐 헤슬과 스칼렛 루이스(아들은 이혼한 어머니의 성을 따름)는 존스의 헛소리 때문에 오랜 시간을 지옥처럼 보냈다며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트래비스 카운티 법원에 소송을 제기, 1억 5000만 달러(약 1956억원)의 손해 배상을 명령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법원 배심원단은 2주 간의 심리 끝에 전날 손해배상 평결에 이어 5일(현지시간)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평결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이날 평결에 앞서 배심원단은 인포워스와 모회사 프리 스피치 시스템의 자산 가치가 2억 7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증언을 들었다. 다시 말해 존스의 회사들이 손해배상액을 감당할 능력이 된다는 점이 입증됐다. 아울러 그가 지난해 6200만 달러를 회사에서 인출해 어느 은행에 은닉해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원고들 청구액의 3분의 1 정도에 그쳤지만 이렇게 거액의 손해배상이 평결로 나온 것은 커다란 경종을 울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날 배심원단의 평결문은 “당신도 말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거짓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훈계했다. 또 존스의 변호인이 배상액을 8달러로 제한해 달라고 주장해 온 데다 만약 배상액이 200만 달러(약 26억원)를 넘기면 “우리를 침몰시킬 것”이라고 말해 온 점에 비춰보면 이번 평결액만으로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 재판의 1심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다른 소송들이 줄줄이 존스에게 제기돼 있기 때문이다. 코네티컷주의 한 법원 판사는 다른 희생자 유족과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한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제기한 소송에서 존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오스틴에서도 다른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존스는 전날까지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다. 그는 배상액이 크게 줄어든 것은 “대승”이라고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밝혔다. 이어 “내가 틀렸고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난 잘못된 정보를 따랐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난 가족들에게 사과했고 배심원들은 이해했다. 내가 그 가족들에게 한 짓은 잘못이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말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표현들이다. 인포워스가 앞으로도 명맥을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이미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트위터에서 혐오 발언을 이유로 이용이 금지돼 있다. 존스는 또 최후진술을 통해 벌써 파산했다는 주장도 늘어놓았는데 그의 회사는 다이어트보충제, 총기 비품, 생존장비 등을 판매해 하루 매출이 80만 달러를 기록한 적도 있어 믿을 수가 없다고 방송은 전했다.
  • 뒤집힌 보트 속 기포가 살렸다…대서양서 16시간 버틴 60대 구조

    뒤집힌 보트 속 기포가 살렸다…대서양서 16시간 버틴 60대 구조

    62살의 한 프랑스 남성이 전복된 보트 안의 기포를 이용해 대서양에서 16시간 동안 버틴 끝에 무사히 구조됐다. 3일(이하 현지시간) BBC 보도에 따르면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12m짜리 선박을 타고 출항한 이 남성은 지난 1일 늦은 저녁 대서양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스페인 해안경비대는 뒤집힌 배를 발견했지만, 바다가 너무 거칠어서 그를 구조할 수 없었고 이튿날 아침에야 구조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해안경비대 잠수부들은 이 남성의 생존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보트는 1일 오후 8시23분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인근 시사르가스 제도에서 22.5㎞ 떨어진 곳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잠수부 5명과 헬기 3대를 태운 구조선이 남성 구조를 위해 출발했다. 보트를 발견한 구조선이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윈위치로 배를 들어올리자 이 남성은 배를 쾅쾅 치며 응답했다. 그러나 바다가 거칠고 해가 졌기 때문에 구조대는 침몰을 막기 위해 부력 풍선을 배에 부착한 후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튿날 구조를 위해 배 밑으로 헤엄쳐 들어간 잠수부 2명은 구명복을 입고 뒤집힌 배 안에 형성된 기포 안에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남성은 잠수부들의 도움을 받아 바다 표면으로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이 남성은 병원으로 이송돼 진찰을 받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대론 4대 대도시도 20년 못 버텨… 지방소멸 못 막으면 ‘국가소멸’ [마강래의 함께 살아가는 땅]

    이대론 4대 대도시도 20년 못 버텨… 지방소멸 못 막으면 ‘국가소멸’ [마강래의 함께 살아가는 땅]

    수도권 밖 지역은 저출산과 인구감소, 수도권 집중화라는 삼각파도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방이 살아야 서울도 살 수 있다고 믿는 도시계획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지방소멸이라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국토를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3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컵에 물이 반이 채워져 있다.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채워져 있다고 안도하고, 또 다른 이는 반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고 불평한다. 검은 렌즈의 안경을 쓴 사람은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느끼고, 파란 렌즈의 안경을 쓴 사람은 원래부터 세상은 푸르뎅뎅했다고 믿는다. 언제부턴가 나도 내 안경이 어떤 색깔일까 궁금했다. 혹시 삐딱한 유전자가, 아니면 내 제한된 경험이 세상을 곡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불안감 때문일까. 나는 유난히 통계에 집착한다. 숫자가 보여 주는 경향성에 집착한다. 그래서 내 주변은 온통 숫자로 가득하다. 직장과 거주공간이 왜 불일치하는가를 검증한 박사 논문도 숫자로만 얘기했다. 대학에선 추론통계를 통한 가설검정 방법을 강의한다. 책을 쓸 때도 가능한 한 숫자 없이 내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니 표현하길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겠다.●인구·산업경제·건물 노후도 모두 추락 지방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느낀 것도 숫자를 통해서다. 인구뿐만 아니라 산업경제 지표, 건물의 노후도까지 어느 하나 꺾어지지 않는 게 없었다. 쇠락 추이가 20년 이상 ‘매해’, ‘어김없이’ 지속됐다. 그리고 그 추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숫자를 통한 기술적 통계는 어떤 의도도 가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줄 뿐이다. 하지만 추세를 해석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숫자와 경향성이 보여 주는 현실에 설레기도 또는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지방에 관한 통계는 내게 두려움을 줬다. 마치 조작된 통계를 보는 듯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가졌을 즈음 대학원생들과 답사팀을 꾸렸다. 주말마다 쇠퇴지역의 현실을 확인했다. 수년간 ‘월화수목금금금’이 이어졌다. 이즈음에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이 우리나라에 번역됐다. 2040년에 과반의 일본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소멸 위기를 맞을 것이란 분석을 담은 책이다. 일본도 수도권(도쿄권)의 집중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지방소멸’이란 단어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공간 쏠림 통계를 비교했다. 우리나라 수도권 쏠림의 속도와 강도는 일본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강했다. 수도권 일극화에 대한 각종 통계자료를 모아서 대중서와 논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각종 토론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접했다. 지방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특히 지방소멸이란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먼저 지방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백년간 쌓아 온 공동체의 내공이 한번에 무너질 리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도시나 마을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도시들이 있다.●주민 사라진 공간… 장소·기억도 소멸 ‘공간’이 어찌 사라질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물리적 공간 자체가 소멸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주민이 사라지면 장소와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셋째로 ‘소멸’ 지역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낙인을 찍어 사람들이 지방을 더욱 기피하게 한다는 반발도 있었다. 여기에 지금 지방이 ‘낙인효과’를 걱정할 때냐고 반문했다. 현실을 그대로 알려야, 그리고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보다 센 정책도 나오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의견을 밝혔다. 얼마 전 한 영향력 있는 인사가 쓴 칼럼을 읽었다. ‘지방소멸론이 지방소멸을 부추기고’ 있고, 그 ‘지방소멸론에는 농촌을 무너뜨리려는 음모가 있다’는 게 칼럼의 논지다. 소멸할 수도 없고, 소멸해서도 안 되는데 왜 지방소멸을 이야기하느냐며 노여워했다. 심지어 ‘지방소멸은 가짜뉴스’고 그 뒤에 위기의 지역을 중앙정부의 정책 대상에서 잘라 내려는 음모가 숨어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택과 집중’, ‘압축과 연계’ 논리에 기반한 메가시티 논의 또한 시장주의로 무장한 강자의 논리이며, 공항, 광역철도망, 도로 등의 인프라에 투자해도 지방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고도 했다. 그럼 대안이 무얼까 궁금했다. 칼럼의 일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지역경제의 실핏줄인 농산어촌이 살아야 한다. 농산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의료, 교육, 교통, 주거, 돌봄 등)를 누리고, 기본적인 소득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국토·환경·문화·지역지킴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런 주장에 일부 공감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적 공간발전의 메커니즘이 약자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위협받는 마을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짜야 할지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씁쓸한 무기력감이 밀려왔다.●4차 산업혁명으로 도시화 더 가속화 수도권 독식의 흐름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임계점을 넘어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산업구조의 변화 과정 속에서 ‘덩치 큰 도시’만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시는 덩치가 커질수록 주변 인구와 산업을 흡입하는 능력이 커지는 특성이 있다. 서울은 인근 도시의 산업과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더 큰 흡입력을 갖게 됐다. 자신이 흡수한 에너지보다 더 큰 힘을 얻은 서울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슈퍼스타 도시로 떠올랐다. 그리고 비대화된 서울 버전인 수도권은 슈퍼메가시티(super-megacity)가 됐다. 수도권은 대도시권의 이점을 살려 다른 지방이 제공하지 못하는 일거리,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 배울거리를 제공해 왔다. 이런 ‘거리’들은 청년들에게 ‘내공’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혁신기업들도 인재들을 좇아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지방 전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모가 큰 플랫폼 기업이 지배적 지위를 확보해 승자독식의 횡포를 부리듯, 도시도 크기가 중요해지는(‘size does matter!’)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게 지방위기의 본질이다. 특히 인구가 적은 지역일수록 인프라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인구 20만명 이하의 지역은 ‘응급의료센터’나 ‘고급 백화점’ 같은 상위 위계의 생활 인프라를 유지하기 어렵다. 인구 10만명 이하인 경우는 산부인과가 들어서기 힘들다. 심지어 스타벅스나 서브웨이도 인구 10만명 이하의 도시에 문을 열지 않는다. 인구가 적은 곳에 이들이 있다면, 거긴 관광객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인구증가 나주·예천도 주변인구 흡수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66곳엔 영화관이 없다. 젊은이들은 더 큰 도시로 터를 옮겼다. 인구 20만명 이하의 지자체 중 지난 10년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곳은 ‘혁신도시’가 들어선 나주시와 ‘경북도청 신도시’가 들어선 예천군으로 딱 두 곳밖에 없다. 이 두 곳은 쇠퇴의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 지자체로부터 인구가 유입됐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 이렇게 인구가 감소하니 재정자립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세입만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댈 수 없는 지자체가 절반이 넘어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울산권, 대전·세종권, 대구권, 광주권 등의 지방 4대 대도시권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주변 농어촌의 인구를 흡수하며 버텨 왔지만 이들도 한계를 맞고 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청년인구의 유출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지방 5대 광역시도 매년 1~2% 정도의 청년인구의 순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100명 중 1~2명의 청년들이 매해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방의 거점대학조차 정원을 채우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상황까지 왔다. 여기에 무슨 복잡한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이 상태가 지속되다간 지방 대도시도 20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지방 위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농어촌지역에서 지방 광역시로 옮겨 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을 되돌릴 뾰족한 대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공간쏠림으로 인해 침몰해 가고 있다. 어떤 통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든, 지방의 현실은 그보다 좋지 않다.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집값은 폭등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농산어촌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 농산어촌이 살기 위해서는 주변 중소도시가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근 대도시에 활력이 있어야 한다. 농어촌은 중소도시의 인프라를 공유하고, 중소도시는 대도시의 인프라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외면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당위론이 난무한다면, 그리고 지방의 위기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미래 세대가 지게 될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운동장이 기울수록 이를 복구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흐름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이다. 지방소멸론의 본의를 왜곡하지 말길 바란다. ●행정구역만 합친 메가시티 ‘따로국밥’ 그리고 메가시티에 대한 오해도 걷어 냈으면 한다. 메가시티란 ‘연대’와 ‘협력’을 통해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의 상생체계가 구축된 ‘공간적 그릇’을 말한다. 단순히 ‘행정구역이 합쳐진’ 혹은 ‘특별자치단체로 만들어진’ 덩치 큰 빈껍데기가 아니다. 행정구역 통합이나 특별자치단체는 연계와 협력을 위한 다양한 ‘수단’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처럼 지자체들이 따로국밥식 행정을 하는 상황에선 지역위기를 극복할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이 어우러진 광역적 공간 내에서 산업, 문화, 교육 전략을 함께 짜내야 한다. 수도권이라는 거대 공간에 맞대응할 또 하나의 대도시권을 만들어야 한다. 한두 시간 거대 생활권 구축을 위해 공간을 압축하고 연계해 양질의 의료, 교육, 문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유치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지역 인재를 붙잡아 둘 수 있다. 소지역주의로의 회귀에 솔깃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염불에 우왕좌왕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릴 수 있다. 지방소멸은 신기루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분들에게, 잠시 시간을 내서 지난 5년간 우리 국토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각종 통계를 살펴보시길 권한다. 코앞에 다가온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조만간 지방소멸이 아닌, ‘국가소멸’이라는 화두를 놓고 또 다른 갑론을박을 벌이게 될 것이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 [영상] 여객기 불나자 승객 버리고 ‘꽁무니’ 제일 먼저 탈출한 조종사

    [영상] 여객기 불나자 승객 버리고 ‘꽁무니’ 제일 먼저 탈출한 조종사

    이륙 직전 여객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비겁한 조종사는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여객기에서 탈출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더선과 데일리메일은 스페인 저가항공사 '부엘링' 조종사가 불이 난 여객기에 승객과 동료 승무원을 남겨 두고 혼자 조종석에서 뛰어내렸다고 보도했다. 2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영국 버밍엄으로 향할 예정이던 부엘링 VY8754편 여객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매캐한 연기가 기내를 가득 메우자 승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영국인 승객 앤드루 베니온(50)은 "승객 대부분은 영국인이었고, 이륙을 위해 이미 벨트까지 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뒤쪽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타는 냄새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불이 꺼지고 비상등이 켜졌다. 정말 무서웠다"고 덧붙였다.승무원들은 사태 파악을 위해 여객기 통로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위험을 알리기 위해 조종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장은 이미 조종석에서 탈출한 뒤였다. 승객 베니온은 "스튜어디스 한 명이 조종석 문을 열었을 때 기장은 이미 비행기 옆쪽으로 난 조종석 문을 열고 탈출 중이었다. 기장이 여객기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렸다"고 황당해했다. 선장이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듯, 여객기 운항을 책임져야 할 기장은 그렇게 꽁무니를 내뺐다. 조종사가 도망가자 승무원들도 모두 그를 쫓아 줄행랑을 쳤다. 승객은 "전부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비행기에는 단 한 명의 스튜어디스만 남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선 두려움이 읽혔다"고 밝혔다.혼자 남은 승무원은 최선을 다해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승객은 "스페인 승객이 비행기에 불이 났다고 통역해 줬다. 승무원은 모두에게 비행기에서 내려달라고 소리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장이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조종사는 혼자 안전지대로 달려갔고, 우리는 그저 나그네처럼 여객기에 앉아 있었다"고 분노했다. 승객들이 내리자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활주로를 에워쌌다. 승객은 "그들은 마치 테러라도 벌어진 것처럼 행동했다. 비행기에 물을 뿌리며 화재를 진압하면서도 우리와의 대화는 거부했다" 부연했다. 스페인 공항 당국은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기까지 몇 시간 동안 승객을 방치했다고 그는 덧붙였다.또 "도망간 기장은 어디로 가고, 다른 기장이 비행기에 나타나 사과했지만 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승객은 "단지 불편하게 해 죄송하다, 가능한 한 빨리 버밍엄으로 가겠다는 말뿐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아무도 비행기에 타고 싶지 않아 했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만약 이륙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재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엘링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점으로 하는 저가 항공사로, 국영 이베리아 항공 자회사다. 영국 언론은 이번 사고에 대해 항공사 부엘링 측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무공 흉탄 맞자 대신 함대 지휘…진중 온갖 일 논의 참모 중의 참모[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게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임기 초 긴장관계 빠른 시간에 극복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 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 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아홉 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 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 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 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 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참모장으로 충무공 출정명령 하달 그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 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의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하다.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 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 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노량해전에서 경상우수사로 ‘충무공의 최후’ 지키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방답진첨절제사 이순신(李純信)의 부임 인사를 받은 것은 1592년 1월 10일이다. 그런데 1월 16일자 ‘난중일기’에는 ‘병선(兵船)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답진의 군관과 관리에 곤장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 훗날의 충무공(忠武公)이 역시 무의공(武毅公)이 되는 신임 첨사의 군기를 단단히 잡은 모양새다. 무의공은 이후 충무공의 가장 충실한 참모가 되어 모든 해전의 선봉에 섰고, 노량에서 충무공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자 대신 수군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의공 이순신(1554~1611)은 태종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니 조선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친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우리말 이름이 같지만 무의공은 전주, 충무공은 덕수로 본관부터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이름이 아닌 자(字)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충무공의 자는 여해(汝諧), 무의공의 자는 입부(立夫)다. ‘난중일기’에는 ‘이(李)입부가 다녀갔다’거나 ‘입부와 무엇무엇을 했다’는 글귀가 140차례나 나온다. 무의공이 임기 초의 긴장관계를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 충무공의 ‘측근 중 측근’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무의공의 무덤은 KTX가 서는 광명역에서 가깝다. 입부의 집안은 양녕대군의 3대손인 증조할아버지 이윤의 때부터 당시의 시흥땅에 살았다. 입부는 아버지 이진과 어머니 복주 김씨 사이 다섯 아들의 막내로 태어났다. 입부 형제의 이름은 순서대로 이순인·이순의·이순례·이순지·이순신이다. 맹자가 인간 본성의 네가지 덕(德)이라 지칭한 인(仁)·의(義)·예(禮)·지(智)에 믿음을 뜻하는 신(信)을 보탠 것이다. 입부의 넷째 형 비변랑 이순지는 충무공이 한성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나왔을 때 옥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적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의공도 거쳐간 비변랑(備邊郞)은 비변사의 종6품 무관이다. 입부의 두 아들 이탁과 이숙도 1603년 계묘 정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입부의 묘갈(墓碣)에 ‘공은 젊었을 때에 유학에 전념했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25세에 알성시 을과에 급제했다’고 했다. 무의공도 처음에는 문과 급제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무과로 선회한 것 같다. 무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무의공의 둘째 아들 이숙이 아버지 만큼이나 충무공의 측근이었던 흥양현감 배흥립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을 정점으로하는 조선수군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충무공의 리더십에 무의공과 효숙공같은 참모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효숙(孝肅)은 배흥립의 시호다.  무의공은 충무공보다 9살이 적다. 충무공은 31세이던 1576년(선조 9), 무의공은 24세이던 1577년(선조10) 각각 무과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은 부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2월 8일자 ‘난중일기’에는 ‘우후 이몽구가 방답에서 돌아왔는데, 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후(虞侯)는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이다. 충무공은 2월 19~27일 전라좌수사 휘하의 순천·광양·낙안·보성·흥양과 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에 대한 검열에 나섰다. 방답진 검열은 5관 5포 가운데 마지막으로 26~27일 이루어졌다. 충무공은 ‘장편전(長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戰船)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장편전은 긴 화살인 장전(長箭)과 작은 화살인 편전(片箭)을 가리키니 ‘화살 준비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표현이다. 충무공은 검열을 마치고 북봉(北峯)에 올라 진성 안팎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외롭고 위태로운 섬이라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안의 연못 또한 지극히 엉성하여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첨사가 애는 썼으나, 미처 시설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하랴’고 했다. 한달 전 부임한 첨사가 진성의 방어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다는 것은 충무공도 잘 알고 있었다.  방답진은 여수앞바다 돌산도에 있었다. 방답진성 자리는 이제 어항(漁港)이자 여수시의 돌산읍 소재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방답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 진성 주변은 군내리로 불린다. 그러니 동헌과 군관청, 비석 등이 남아있는 방답진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내비게이션에 ‘군내리’를 입력해야 한다.  미수의 묘갈에는 ‘공은 처음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성일 공이 한번 보고는 그의 현명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 극력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학봉 김성일이라면 1590년 조선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상도초유사로 전란 수습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해 4월 13일 왜군선이 부산포앞바다에 몰려오면서 무의공의 존재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출정 직전인 5월 1일자 ‘난중일기’에는 ‘진해루에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수령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매우 분하여 격동했으며,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과연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할 만 하다’고 했다. 행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선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참모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침내 5월 3일 녹도만호 정운과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 충무공은 중위장인 방답첨사 이순신을 불러 다음날 새벽 출정한다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토록 한다.  중위장(中衛長)이라면 참모장이다. 당시는 순천도호부사 권준이 전라좌수영의 중위장이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 무의공이 대신한 것이다. 도호부사와 첨절제사는 종3품으로 품계는 같지만 순천부사는 광양·낙안·보성·흥양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전라좌수영에서는 선임이었던 듯 하다.  무의공은 옥포·합포·적진포로 향한 1차 출전에서 왜적의 대선(大船) 1척씩 모두 3척을 깨뜨리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사천·당포·당항포로 2차 출전한 5월 29일에는 권준이 중위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무의공은 전부장(前部將)으로 나선다. 6월 5일 당항포 해전에서 조선수군은 26척으로 이루어진 적 함대를 공격해 25척을 가라앉혔다. 무의공은 남은 한 척이 도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날 새벽 잠복하고 있다가 적선을 침몰시키고 100명 남짓한 왜적을 몰살시켰다. 무의공은 직접 활을 쏘아 왜장을 사살했다. 무과 시험장에서 선조의 눈에 들었던 그의 활쏘기 실력은 충무공을 앞섰다.  7월 6일 3차 출전은 한산대첩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적의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군의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데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쫒아가서 일시에 불살랐다’고 썼다. 당시 전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 곧 수급의 숫자였다. 그런데 충무공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을 분멸(焚滅)하는데 초점을 맞추되 공로를 인정받고자 무리하게 접근해 적의 머리를 베는데 급급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무의공은 충무공이 제시한 전투 원칙에도 가장 충실한 장수였다. 무의공은 1594년 4월 충청수사에 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로 줄곧 충무공을 지원한 이억기와 더불어 충무공이 가장 신뢰하는 무의공이 서·남해 방비를 책임지는 지휘부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지휘 체계를 깨뜨린 원균이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한 것은 우리가 모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다.  무의공은 통제사에 복귀한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두 달 남짓 지난 1597년 11월 다시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 19일 새벽 시작됐다. 통제사 이순신을 잃었지만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200척 남짓한 적선을 쳐부수는 대승을 거뒀다. 무의공은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올랐고 1607년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시절 군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 최악 가뭄에…가라앉은 2차 세계대전 美 상륙정 호수 위로 ‘쑥’

    최악 가뭄에…가라앉은 2차 세계대전 美 상륙정 호수 위로 ‘쑥’

    최악의 가뭄 탓에 호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1940년 대 제작된 상륙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 현지언론은 북미 최대 인공 호수 미드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제작된 히긴스 상륙정이 절반 정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접경에 있는 인공호수 미드호는 북쪽의 콜로라도 강을 막아 만든 190㎞에 달하는 거대 호수로 대부분의 물을 농업 관개용으로 쓴다. 문제는 계속되는 심각한 가뭄으로 수심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일 기준 현재 호수의 수위는 317m로, 한달 전보다 1.3m,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m, 2년 전 보다 무려 16m 이상 낮아졌다. 이처럼 기록적으로 낮아지는 수위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가뭄 때문이다.  이번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히긴슨 상륙정은 지난 1942~1945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을 수송하기 위해 제작된 수천 대 중 하나다. 실제 이 상륙정이 전쟁에 투입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전후 콜로라도 강의 측량을 위해 이곳에서 사용돼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그러나 기록적인 가뭄으로 인해 호수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현재 상륙정의 절반 정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 국립공원관리국은 "호수의 수위가 계속 감소함에 따라 침몰한 상륙정이 모습을 나타냈다"면서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싶은 방문객들을 위해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에는 호수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바닥에 잠자고 있던 신원 미상의 유골이 연이어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달 1일에는 1970~1980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상 흔적이 있는 유골이, 1주일 후에는 또다른 유골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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