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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사고 난 헝가리 다뉴브강…보트 충돌로 2명 사망·5명 실종

    또 사고 난 헝가리 다뉴브강…보트 충돌로 2명 사망·5명 실종

    18일(현지시간) 오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북쪽으로 50㎞ 떨어진 도시인 베로체를 흐르는 다뉴브강에서 보트 2대가 충돌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고 헝가리 당국이 19일 밝혔다. 헝가리 국영방송에 따르면 소마 세치 헝가리 국가안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어젯밤 보트 충돌 사고로 부상한 남성이 발견됐고 현장 수색 과정에서 파손된 보트와 남녀 1명씩의 시신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세치 대변인은 한 호텔이 소유한 보트와 소형 보트가 충돌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소형 보트에는 8명이 탑승했는데 이 가운데 남성 3명과 여성 2명이 실종돼 집중 수색을 벌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당국은 과실치사 용의점을 두고 이번 사고를 조사 중이다. 현지 경찰은 호텔 측 보트와 소형 보트 운항에 관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사고 위험을 예견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다뉴브강은 2019년 5월 한국인 관광객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한국인 관광객과 가이드 등 33명을 태운 유람선이 야경 투어에 나섰다가 돌아오던 중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 후미에 들이받혔다. 바이킹 시긴호 선장 유리 카플린스키는 수상교통법을 어겨 추돌 사고를 유발한 혐의로 작년 9월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 박유진 서울시의원 “세월호 참사 10년 책임, 더 안전하고 투명한 나라 되는 것”

    박유진 서울시의원 “세월호 참사 10년 책임, 더 안전하고 투명한 나라 되는 것”

    박유진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3)이 지난 4일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년 ’책임을 묻다‘ 출판기념회 및 북콘서트’에 참석해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다짐을 전하는 인사말을 했다. 이번 행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변호인단이 지난 10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해 온 과정들을 기록한 책 ‘책임을 묻다’ 출판을 기념하고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박유진 의원과 4·16안전사회연구소, 굿플러스북,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촛불행동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책임을 묻다’는 8명의 공동저자가 세월호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보고서, 판결문 등의 방대한 자료를 모아 정리한 책으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지난 4월 16일 출간됐다. 이날 박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세월호의 진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되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사회 구조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덧붙여 “세월호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온 국민의 슬픔과 분노는 과연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되묻게 한다”면서 “참사 유가족들의 슬픔을 아직도 조롱하고 책임을 피해자로 돌리는 특정 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정치권력을 다시는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국가의 기강이며, 언제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주권자들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 그것이 선출직 공직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기억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또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시의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국민주권당, 민생경제연구소, 전대협동우회, 주권자전국회의, 촛불전진도 함께 했으며, 참가자들 모두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끝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 “더 멀리, 더 정확히”…국산 軍감시장비 개발 주역 홍석민 박사

    “더 멀리, 더 정확히”…국산 軍감시장비 개발 주역 홍석민 박사

    1998년 12월 17일 오후 11시 15분 전남 여수시 방죽포해수욕장 부근에서 북한 반잠수정이 심야를 틈타 해안 침투를 시도했다. 그러나 2㎞ 떨어진 임포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김태완 이병이 열상감시장비(TOD)를 통해 반잠수정을 발견해 보고했다. 북한 반잠수정은 일본 쪽으로 도주를 시도했으나 결국 우리 해군 함정에 격침됐다. 침몰한 반잠수정 안팎에서는 북한군 6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반잠수정 침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성실히 경계근무를 선 김 이병의 공로와 함께 당시 새롭게 배치된 국산 TOD가 성능을 충분히 발휘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국산 TOD 개발을 이끈 이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홍석민 전자광학기술부장이다. 충남대 전자공학과 박사 출신의 홍석민 부장은 국산 TOD 등 군의 주야간 영상장비 개발에 40여년간 몸담았다. 특히 직병렬 주사방식의 TOD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TOD는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밤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감시장비다. 생물·물체의 열에너지를 감지해 영상으로 변환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병렬 주사방식은 영상이 불균일이 심하고, 직렬 주사방식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단점이 있는데, 각각의 단점을 해소한 것이 직병렬 주사방식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직병렬 주사방식을 개발했고, 우리나라는 뒤늦게 독자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초반 전방 철책선을 뚫고 침투하는 북한의 무장공비 3명을 TOD로 탐지해 사살, 격퇴했던 것을 계기로 군에서는 TOD의 효용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당시 군에서 사용 중이던 TOD는 외국에서 도입한 모델이었다. TOD 수요가 급증했지만, 외국 회사는 장비 가격을 2배 이상 올리고 정비 유지를 위한 주요 부품 가격을 최대 4배까지 부풀려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미 핵심기술 과제로 TOD 기반 기술을 연구 중이었는데, 육군과 국방부가 TOD 국내 독자 개발을 긴급 지시하면서 홍석민 당시 수석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국산 TOD 개발에 속도를 내야 했다. 홍석민 부장은 “열악한 예산·인력 배정 등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원들이 한마음으로 실험실에서 직접 전자회로기판을 뜨고 광학부를 조립하는 등 장비 제작에 최선을 다했다”면서 “이른 시일 안에 목표한 성능을 낼 수 있게 돼 연구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군 운용시험 수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 훈령상 무기체계 외 핵심기술은 군 운용시험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면서 “결국 육군과 합동참모본부의 지원으로 군 운용시험 평가를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양산 시기를 1년 앞당기라는 방침에 연구원들은 거의 매일 자정이 돼서야 퇴근하고, 주말도 반납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1996년 말부터 국산 TOD가 배치됐고, 1998년 북한 반잠수정 침투를 막아낼 수 있었다. 국산 TOD의 성능은 당시 도입돼 있던 외국산 TOD 대비 3배 이상의 선명도로 전방 철책선과 해안선 감시 능력을 대폭 향상시켰다. 또 꾸준한 성능 개선으로 개발 초기 수㎞ 수준에서 수십㎞ 이상의 장거리까지 영상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단순한 감시정찰 기능에 더해 표적 추적과 타격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확장해 육군의 전차·장갑차나 헬리콥터의 조준경, 해군 함정 및 공군 전투기 탑재장비로 발전시켰다. 홍석민 부장은 TOD 외에도 무인정찰기용 열상모듈 개발, K-2 전차 포수·전차장 조준경, UH-60 및 수리온 헬기 전방관측 적외선 장비 개발, 해군 함정 및 공군 전투기 탑재 전자광학 추적·정보수집 장비 개발 관리 등을 담당했다. 홍석민 부장은 “미래 무기체계의 핵심 3대 요소인 ▲감시정찰 ▲지휘통제 ▲정밀타격 능력의 증강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먼저 보고 멀리 보고 정확하게 보는 독자적 영상 정보 능력의 배양이 절실히 필요하다”면서 “이제는 주야간 영상정보 획득에 더해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정보의 신뢰성과 판단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하이마스·에이태큼스에 러 군 수십명 사망…美 무기, 우크라전서 성능 과시

    하이마스·에이태큼스에 러 군 수십명 사망…美 무기, 우크라전서 성능 과시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2년 넘도록 양측 모두에 잔인하고 크나큰 손실을 안겼으나, 특히 러시아군에는 더욱 그렇다고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I)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까지 러시아군 45만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추정한다. 이는 지난달 27일 존 힐리 영국 예비내각 국방장관의 질문에 레오 도체티 영국 국군장관의 답변에서 나온 정보다. 그러나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는 모두 군사 기밀을 이유로 병력 손실 규모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전략 거점이자 서쪽으로 향하기 위한 관문이기도 한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하는 데 병력과 무기를 쏟아부어 지난 2월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양측은 더 서쪽의 차시우 야르와 같은 주변 지역에서 싸우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최근 새롭게 승인된 미국의 608억달러(약 84조원) 규모 군사지원이 조만간 전선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인구는 높은 병력 손실에도 우크라이나 인구의 약 3배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가 계속해서 병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러시아가 오는 6월까지 30만명의 병력을 추가 동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를 부인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전에서 일반적으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보다 거의 3 대 1의 비율로 많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공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이하 하이마스)과 같은 무기와 서방의 순항 미사일을 사용해 러시아군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다음 사례는 지금까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가장 치명적인 단일 공격 순간을 BI가 나열한 것이다. 에이태큼스에 러 군 100명 전멸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일 러시아 점령지인 동부 루한스크 최전선에서 80㎞ 떨어진 러시아 군사 훈련장에 미군이 지원한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했다. 오신트(OSINT·공개정보)와 군사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러시아 군인 100여 명이 몰살했다. 미 해군분석센터와 연계된 오신트테크니컬은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지원한 M39 에이태큼스 전술 탄도 미사일 3발로 러시아 훈련 지역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오신트테크니컬은 항공 위치 정보 영상을 사용해 미사일 중 한 발이 100명이 넘는 러시아군 집단을 공격했으며 수백 개의 M74 에이팜(APAM) 폭탄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오픈소스 위치 정보 전문 프로젝트인 지오컨펌드(GeoConfirmed)는 당시 에이태큼스 미사일은 4발이 발사됐으나 첫 번째는 실패였다고 보고했다. 이 공습은 루한스크주의 로호베 마을을 겨냥했다. 이후 십여 초 만에 러시아 훈련장에 두 번째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다. 러 장군 방문 기다리다가…하이마스에 최소 60명 사망 지난 2월 우크라이나의 하이마스 공습으로 야외 집결해 있던 최소 60명의 러시아군이 사망했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전쟁 내내 반복해서 무시해온 주요 전시 규칙을 어겼다. 이 러시아 대대는 두 발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당시 러시아가 점령한 동부 도네츠크주 트루도브스케 마을 인근 훈련장에 집결해 있었다고 BBC 방송은 보도했다. 사건에 정통한 소식통은 BBC에 당시 군인들은 상급 지휘관의 도착을 기다리기 위해 모여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지난해 11월 최전선 근처에서 열린 야외 시상식에서 러시아의 미사일에 우크라이나 군인 19명이 사망한 비슷한 시나리오로 비난을 받았다. 전선서 20㎞ 떨어진 헤르손 공격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11월 헤르손주의 흘라드키우카 마을에 대한 공습으로 러시아군 70여명을 제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 국방부는 당시 밝혔다. 호송대를 겨냥한 당시 공격은 최전방에서 22.5㎞ 뒤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러 상륙함 노보체르카스카 격침 지난해 12월 26일 러시아 해군의 상륙함 노보체르카스크의 대규모 폭발 사진이 소셜미디어상에 급속히 퍼졌다. 러시아 독립 언론 매체 아스트라의 텔레그램 채널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 반도의 포도시아 부두를 공습할 당시 노보체르카스크호에 선원 77명이 탑승했으며 이 중 33명이 실종되고 19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외신과 오픈소스 정보 채널들은 정박한 해당 선박의 불타는 잔해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게시해 장거리 정밀 타격 무기로 평가되는 영국 스톰 섀도우 순항 미사일들이 이 배를 공격했다는 우크라이나 측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선박에는 공격 받을 당시 이란제 샤헤드 공격 드론이 탑재돼 있었다는 일부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군 200명 섬 훈련 중 공격받아 사망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의 일부인 흑해의 40㎞ 길이 모래톱인 자릴하흐섬에서 훈련하던 러시아 군인들이 하이마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공격으로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찍힌 드론 영상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공격을 받기 전에 섬의 모래 해안에서 스트레칭하고 운동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크림 반도서 지휘관 연설 중 타격 우크라이나의 하이마스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사령관의 연설을 보기 위해 2시간 동안 집결해 서 있던 러시아 군인들을 강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 러시아 군사 블로거가 처음에 주장한 것으로, 이후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군 지도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망자 수는 100명, 총 사상자 수는 200명으로 보고된 보고도 있다. 익명의 우크라이나 관리는 키이우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지휘관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가만히 서 있었기에 웃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탓? 연말 마키이우카 공습 러시아 관리들은 대부분 손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의 작은 도시 마키이우카에서 발생한 지난 2022년 12월 31일 공습으로 89명의 병력이 사망했다고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사상자가 훨씬 더 많아 400여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공격에 하이마스를 사용했다고 밝혔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6발의 로켓을 발사했으며, 이 중 4발이 러시아군을 타격했다고 말했다. 전쟁연구소(ISW)는 이 공격이 러시아군 지도부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을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 고위 관리인 세르게이 세브류코프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한 탓으로 돌렸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시베르스키도네츠크강 도하 실패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북동부 시베르스키도네츠강을 건너려는 러시아 대대를 전멸시켰다. ISW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포병은 여러 러시아 부교를 파괴했으며,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이미지 분석을 기반으로 러시아인 사망자 또는 부상자 수를 약 485명으로 추정했다. 그들은 80개 이상의 장비가 파괴됐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대대를 타격하기 위해 M777 곡사포를 사용했다. ISW는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이 이 사건에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며 러시아군의 무능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러 순양함 모스크바호 격침 러시아의 부당한 침공이 있은지 두 달 만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해군 흑해함대의 주력 순양함인 러시아 군함 모스크바를 침몰시킴으로써 초기 성공을 거뒀다. 2022년 4월 14일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그들의 군대가 적어도 하나의 넵튠 미사일로 선박을 공격했다고 밝혔고, 미 국방부는 이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는 승선한 선원 500명 거의 모두가 사망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는 이 배가 침몰하기 전에 거의 모든 선원들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후 러시아는 선원 1명이 사망하고 27명이 실종됐다고 압력을 받아 인정했지만 나머지는 대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스크바 선원들의 몇몇 가족들은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적어도 40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 ‘골 폭풍’ 인천, 5경기 만에 승전보

    나란히 프로축구 K리그1 7위와 8위에 자리하며 상위권 반등 기회가 절실했던 전북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 승패를 가른 건 결국 절실함과 뒷심이었다. 인천이 1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24 K리그1 10라운드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 3-0으로 이겼다. 최근 네 경기 동안 2득점에 그치는 빈약한 득점력으로 2무2패에 그쳤던 인천은 후반 23분 델브리지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후반 45분 김도혁, 추가시간 스테판 무고사까지 골 폭풍을 몰아치며 5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인천은 승점 13점(3승4무3패) 리그 5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전북은 10점(2승4무4패) 8위로 떨어졌다. 한때 최하위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세 경기 2승1무로 분위기 반등 기회를 잡았던 전북은 9라운드 후반 추가시간 연속 실점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친 데 이어 이날 원정경기에선 무득점 참패까지 당했다. 지난 시즌 38경기 35실점으로 리그 최저 실점 팀이었던 전북은 이번 시즌에선 10라운드까지 단 한 차례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지 못하는 등 수비 조직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전북은 최근 물오른 공격력을 뽐내던 송민규와 전병관을 앞세워 인천을 공략했지만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51분에 제르소에게 역습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인천은 후반 19분 해리슨 델브리지가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킥이 선언돼 위기를 맞았으나 비디오판독(VAR) 끝에 무효가 되며 한숨을 돌렸다. 곧이어 4분 뒤 코너킥 상황에서 터진 인천의 선제골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델브리지였다. 전북은 실점 이후 공격수들을 잇따라 투입하며 역전을 노렸지만 짜임새 있는 공격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 43분 이재익이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고 2분 뒤 김도혁에게 추가골까지 얻어맞았다. 후반 51분에는 무고사가 쐐기 골로 전북을 완전히 침몰시켰다.
  • 세계 각국 초대형 무인잠수정 공개…점점 뜨거워지는 바닷속 드론 전쟁

    세계 각국 초대형 무인잠수정 공개…점점 뜨거워지는 바닷속 드론 전쟁

    드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앞으로 현대전의 양상을 바꿀 주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값싼 드론에 폭탄만 달면 최신형 미사일이 부럽지 않은 유도 무기가 될 수 있고 값비싼 정찰기 없이도 드론으로 전장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크라이나군이 무인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의 군함을 연이어 침몰시키면서 해전에서도 드론이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무인 수상함은 물론 무인 잠수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무인 잠수정은 승무원이 탑승하지 않기에 그만큼 작게 만들 수 있다. 한 달 동안 작전할 수 있는 초대형 무인 잠수정이라고 해도 크기는 유인 잠수함보다 훨씬 작다. 잠수함은 작을수록 숨기 쉬워 생존성이 우수하다. 가격이 저렴해지고 승조원이 없어 비용이 추가로 절감되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침몰해도 아군의 희생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미 해군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 전부터 시작한 초대형 무인 잠수정(XLUUV·Extra Large Uncrewed Undersea Vehicle) 프로그램을 통해 오르카(Orca)라는 대형 무인 잠수정을 개발했다.지난해 미 해군에 인도된 오르카는 이제까지 취역한 무인 잠수정 가운데 가장 큰 길이 26m의 대형 무인 잠수정으로 디젤/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최대 1만 500㎞를 항해할 수 있다. 구체적인 임무나 무장 탑재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무인 잠수정은 본격적으로 독자 임무 수행이 가능한 인공지능(AI) 무인 잠수정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오커스 동맹을 맺은 영국과 호주 역시 비슷한 초대형 무인 잠수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국의 세투스(Cetus) XLUUV는 길이 12m, 직경 2.2m, 무게 17t급으로 오르카보다 작지만, 장시간 자율 작전이 가능한 대형 무인 잠수정으로 2022년부터 개발에 들어갔다. 역시 2022년부터 개발을 진행한 호주 해군의 고스트 샤크(Ghost Shark)는 정확한 제원과 크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오르카나 세투스 같은 대형 무인 잠수정으로 먼 거리를 자율 항해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주 해군은 이를 초대형 자율 잠수정(XL-AUV·Extra-Large Autonomous Undersea Vehicle)으로 분류한다. 고스트 샤크는 내년까지 개발 예정이었으나 의외로 개발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최근 시제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주 해군은 내년에 3척을 추가 도입해 이를 전력화 할 계획이다. 고스트 샤크는 오커스 동맹이 공동 개발하고 건조하는 차세대 핵 잠수함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형 잠수정 개발에 뛰어든 국가는 이들만이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대형 무인 잠수정을 건조했고 일본 등 주변국 역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연구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주변국의 무인 잠수정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군의 노력도 시급해 보인다.
  • 타이태닉호 탔던 최고 부자…아내는 구명정 태우고 그는 남았다

    타이태닉호 탔던 최고 부자…아내는 구명정 태우고 그는 남았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한 미국 사업가 존 제이컵 애스터가 남긴 회중시계가 그동안 타이태닉호 유물 경매 가운데 가장 비싼 120만 파운드(약 20억원)에 낙찰됐다. 영국 가디언은 27일(현시지간) 타이태닉호 탑승객 가운데 최고 부호로 추정되는 애스터가 찼던 시계가 이날 경매업체 ‘헨리 알드리지 앤드 손’이 주관한 경매에서 한 미국인 수집가에게 팔렸다고 전했다. 이전에 타이태닉호 유품 중 최고가는 2013년에 경매에 나왔던 바이올린(110만 파운드)으로 침몰 10분 전까지 찬송가를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47살이었던 애스터는 당시 임신 중이던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본인은 배에 남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한다. 애스터의 시신은 침몰 일주일 뒤 대서양에서 발견됐고, 회중시계는 그의 주머니에 있었다. 그의 재산 규모는 8700만 달러(약 1190억원)로 현재 가치로는 수십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경매업체 대표 앤드류 알드리지는 “빙하와 충돌해 침몰한 호화 여객선에 탔던 2200여명 승객의 이야기는 112년이 지난 오늘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 타이태닉 최고 부자 탑승객이 찬 금시계, 경매 나온다

    타이태닉 최고 부자 탑승객이 찬 금시계, 경매 나온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한 미국 재계 거물 존 제이컵 애스터 4세가 남긴 금시계가 경매에 나온다. 애스터 4세는 타이태닉호의 가장 부유한 탑승객이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애스터 4세가 차고 있던 금시계가 27일 영국 경매업체 ‘헨리 알드리지 앤드 손’이 주관하는 경매에 매물로 나온다. 경매업체 측은 금시계 낙찰가를 10만~15만 파운드(약 1억 7000만~2억 6000만원)로 예상했다. 이 금시계는 타이태닉호 침몰 후 애스터 4세의 시신이 수습될 때 금 커프스단추, 다이아몬드 반지, 돈, 수첩 등 다른 소지품과 함께 발견됐다. 이 유품은 유족 측에 전달됐고, 애스터 4세의 아들 빈센트 애스터는 수리 후 이 시계를 1935년 애스터 4세의 비서실장이던 윌리엄 도빈 4세의 아들에게 세례 선물로 줬다. 윌리엄 도빈 4세의 가족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 시계를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미국인 수집가가 경매에 나온 이 시계를 사들인 뒤 여러 박물관에 전시품으로 대여하다가 이번 경매에 내놨다고 CNN은 전했다.
  • 거함 ‘황선홍호’ 잡고 이변 신태용 “행복하지만 처참” 왜?

    거함 ‘황선홍호’ 잡고 이변 신태용 “행복하지만 처참” 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황선홍호를 꺾고 파리 올림픽행에 가까워진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은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참한 기분”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26일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을 합쳐 120분 승부를 2-2로 마친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12번째 대결까지 가는 혈투 끝에 11-10으로 승리했다. 인도네시아는 사상 첫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에 도전하던 한국을 누르고 극적으로 4강에 올랐다. 지난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이후 68년 만에 인도네시아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FIFA랭킹 132위 인도네시아를 이끌고 100계단 이상 앞서는 한국(23위)을 잡아 이변의 주인공이 됐지만, 신 감독은 경기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조국인 대한민국을 꺾고 승리를 잡은 부담감 때문이다. 경기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장에도 무거운 표정으로 등장한 신 감독은 “(지금은) 기쁘고 행복하지만 너무나 처참하고 힘들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 감독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승부는 갈라져야 하고,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처지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해 준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실력 차이를 극복하고 한국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신 감독은 “지난 4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기부여만 제대로 된다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서 “선수들에게 ‘우리가 우승을 못 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 나는 분명히 결승까지 갈 수 있으니 믿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계속 심어줬던 게 4강 진출을 이끌었다”고 말했다.인니 언론 “소유권, 패스, 슈팅 등 우리가 모든 면에서 우세” 한편, 인도네시아가 승부차기 끝에 아시아 축구 강국 한국을 침몰시키고 파리행 전망까지 밝아지자, 현지 주요 언론은 “한국의 올림픽 진출 기록을 막아 세웠다”며 대서특필했다. 인도네시아 일간 콤파스는 “인도네시아 U-23 대표팀이 한국의 올림픽 본선 진출 기록을 깼다. 이 결과는 (23살 이하) 연령대에서 압도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한국 U-23 대표팀에 엄청난 충격”이라며 자국의 올림픽 본선 진출 가능성보다 한국의 올림픽 본선 진출 탈락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매체 ‘안타라’도 “인도네시아 U-23 대표팀의 승리는 통계적으로 한국보다 우세했기 때문에 단순히 운의 영향이 아니었다”면서 “공 소유권, 패스 정확도, 슈팅 수 등 인도네시아 U-23 대표팀이 모든 면에서 우세한 모습을 보여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도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았다”고 극찬했다.
  • 인도네시아에 충격패…한국축구, 파리올림픽 무산

    인도네시아에 충격패…한국축구, 파리올림픽 무산

    황선홍호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충격패를 당하며 10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무산됐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2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2-2 무승부에 그치고 승부차기에서 10-11로 졌다. 2024 파리올림픽 남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하는 이번 대회에서 1~3위는 파리행 직행 티켓을 얻고 4위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행 여부를 가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매번 본선 무대에 올랐던 한국은 이날 8강에서 탈락하면서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U23 대표팀 간 대결에서 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까지 5전 전승을 기록했다. 2021년 9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과 더불어 이번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황 감독은 당연하게 여겼던 올림픽 본선행에 실패하며 지도자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2017~2018년 한국 A대표팀을 이끌었으며 2020년부터는 인도네시아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지휘해온 신태용 감독은 한국을 침몰시키며 지도력을 과시했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이날 경기에 앞서 신 감독과 2027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는데 신 감독은 값진 승리로 신뢰에 보답했다.한국은 전반전 45분 동안 단 1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답답한 경기를 펼치며 1-2로 끌려갔다. 전반 15분 선제골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엄지성이 전반 45분 홍시후의 크로스를 받아 귀중한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동점을 만든 지 3분 만에 골키퍼 백종범과 수비수 이강희가 공을 미루는 실수를 범해 추가골을 헌납했다. 후반전 선수 교체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이영준과 황선홍 감독이 퇴장 당하며 어수선한 경기가 이어졌다. 후반 막바지 정상빈의 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한국은 추가 득점을 못 내고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도 무승부로 끝나 승부차기를 하게 됐고 선수들이 모두 차고 다시 한 바퀴 도는 팽팽한 접전 끝에 2번 키커 이강희의 슈팅이 상대 골키퍼에게 막히며 희비가 엇갈렸다. 인도네시아 마지막 키커 아르한 알리프가 득점에 성공하며 한국의 올림픽 도전도 함께 좌절됐다. 인도네시아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이후 68년 만의 본선 진출에 도전한다. 인도네시아는 우즈베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 승자와 29일 오후 11시 결승 진출을 다툰다.
  • [씨줄날줄] 유류분과 ‘구하라법’

    [씨줄날줄] 유류분과 ‘구하라법’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한 법 중 ‘구하라법’이 있다. 양육 책임을 실행하지 않은 부모가 죽은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자는 민법 개정안이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씨의 친모가 12년 만에 나타나 상속재산의 일부를 받아 간 것이 알려지면서 마련됐다. 천안함 침몰 사고, 세월호 사고 등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샀다. 일부 직역에서는 구하라법이 작동하고 있다. 공무원재해보상법과 공무원연금법은 2021년 6월 23일부터 양육 의무를 따지도록 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재해유족급여가 전혀 지급되지 않거나 15%만 지급된 경우가 있었다. ‘군인 구하라법’은 다음달 1일부터, ‘선원 구하라법’은 오는 7월 2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유족 등이 신청해 관련 기관에서 심사받는 구조다. 이 경우도 유족급여나 보상금 등에 해당할 뿐 재산 상속과는 무관하다. 민법은 혈연 중심이어서 피상속인과의 혈연 관계가 중요하다. 그래서 상속인에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가 포함된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법정 상속분에 따라 상속한다. 유언을 남겼어도 자녀·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1,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1을 보장하는 유류분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형제자매 유류분은 위헌이며, 다른 가족에 대한 유류분은 상실 사유를 규정하지 않아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유류분에 대한 규정은 내년 말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국회가 그때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상속 상실사유 보완도 시급하다. 법무부는 2021년 6월 상속권 상실 제도를 신설하고 박탈 여부를 가정법원에서 다투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은 결격 사유에 ‘양육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어느 법안도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헌재는 어제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육 책임을 방기한 부모는 재산 형성 기여는커녕 자식의 안위를 포기한 패륜 행위자일 뿐이다. 민법을 속히 개정해 이들이 이득을 보는 행위를 막자. 21대 국회가 끝내야 할 일이다.
  • 난형난제… ‘68년생’ 황선홍 vs ‘70년생’ 신태용 ‘AFC U23’ 8강서 韓축구 전설들의 지략 대결

    난형난제… ‘68년생’ 황선홍 vs ‘70년생’ 신태용 ‘AFC U23’ 8강서 韓축구 전설들의 지략 대결

    한국 축구의 ‘전설’들이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향한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황선홍(56) 감독과 인도네시아를 지휘하는 신태용(54) 감독이 펼치는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전 지략 대결에서 한 명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황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은 지난 22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일본을 1-0으로 침몰시켰다. 후반 30분 이태석이 왼발로 차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김민우가 머리로 받아 천금 같은 결승골을 뽑아냈다. 이태석은 이번 대회 세 번째 도움을 기록했다. 이로써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B조 1위에 오른 황선홍호는 A조 2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와 한국시간으로 오는 26일 오전 2시 30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8강전을 펼친다. 신태용호는 ‘강호’ 호주와 요르단을 차례로 꺾고 A조 2위(2승1패)로 8강에 진출했다. 신 감독은 올해 AFC U23에 데뷔한 인도네시아를 사상 처음 8강에 올려놓으며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양 팀엔 8강전에 걸린 게 많다. 대회 3위 팀까지는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진다. 4위는 202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위 기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이겨야 파리행 항공권을 확보할 수 있다. 올림픽 진출을 위해서는 8강전에서 승리해야 한다.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40년 연속 진출, 인도네시아는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68년 만의 출전에 도전한다. 한국이 진출에 성공하면 세계 처음으로 10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는 역사를 쓴다. 인도네시아가 진출하면 자국 축구사에 기록될 기념비적 사건이 될 터다. 한때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두 지도자는 얄궂은 운명의 맞대결을 한다. 객관적인 전력은 조별리그에서 한 골도 실점하지 않은 안정적 수비의 한국이 앞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황 감독은 이날 경기 직후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인도네시아는 만만한 팀이 아니다. 준비를 잘해 목표한 것을 이루도록 하겠다”며 “(인도네시아는) 준비해야 승리할 수 있는 팀”이라고 경계했다. 신태용호는 잘 짜인 조직력에다 스피드가 좋은 공격수를 앞세워 날카로운 역습을 펼쳤다. 요르단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마르셀리노 페르디난이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무기’는 신 감독이다. U20과 U23 대표팀, A대표팀을 모두 지휘한 경험이 있어 한국 축구를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안다. 한국으로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의 목표는 8강, 4강이 아닌 올림픽 본선 진출권 획득”이라던 신 감독은 조국과의 경기 소감을 묻는 현지 매체들의 질문에 “코멘트하지 않겠다. 인터뷰는 경기 후에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 112년 된 ‘푸틴의 보물’ 불타오르네…러 군함, 우크라 미사일에 또 당했다[포착](영상)

    112년 된 ‘푸틴의 보물’ 불타오르네…러 군함, 우크라 미사일에 또 당했다[포착](영상)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역사적인 군함이 화염에 휩싸였다.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잠수함 구조함인 코뮤나함을 순항미사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코뮤나함은 러시아제국 시절인 1913년에 진수해 1915년에 취역한 구조함이다. 러시아혁명부터 1·2차 대전, 냉전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격변의 현장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약해 온 ‘세계 최장수 군함’으로 꼽힌다. 공개된 영상은 코뮤나함으로 추정되는 군함이 화염에 휩싸인 채 시뻘건 불꽃과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담고 있다. 목격자들은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입을 모았다.세바스토폴 주지사는 “항구에서 적의 미사일을 격퇴하던 중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떨어지는 파편이 화재를 일으켰고, 이후 빠르게 진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코뮤나함 등 군함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러시아 해군의 다른 선박들이 표적이었다”면서 “이번 순항미사일 공격에 타격을 입은 코뮤나함은 작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가치 지닌 코뮤나함, 우크라 전쟁에서도 활약 코뮤나함은 냉전 시기인 1954년 당시 최신직 엔진으로 교체했고, 1967년에는 잠수함 운반을 위한 대대적인 개조에 들어갔다. 1993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러시아 해군의 자산으로 꾸준히 임무에 투입됐다.2009년에는 영국산 잠수함 구조잠수정인 ‘판테라 플러스’를 탑재하면서 최대 수심 1000m까지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코뮤나함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여러 활약상을 남겼다. 전쟁 초기인 2022년 4월 유도미사일 순양함인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흑해에서 침몰했을 당시 직접 인양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코뮤나함이 당장 퇴역한다 할지라도 러시아 해군 전력에 큰 차질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파손 정도에 따라 러시아 해군의 전통을 상징하는 코뮤나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은 있다. 우크라이나 공격에 군함 3분의 1 잃은 러시아 해군 러시아가 올봄 대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등 러시아 흑해 함대가 주둔하는 곳을 목표로 하는 공격을 강화해 왔다.실제로 지난달 23일 우크라이나군은 세바스토폴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흑해 함대 소속 전함 4척과 다양한 기반 시설 타격에 성공했다. 지난달 초에는 크림반도 페오도시아 항구를 공습해 러시아군의 세르게이 코토프함을 파괴했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로 플레텐추크 우크라이나 해군 대변인은 AP통신에 “항구의 장벽과 승조원들의 무장, 항공기 순찰 등 흑해 함대에 대한 위협을 억제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현재까지 러시아 군함의 약 3분의 1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러시아는 흑해함대가 주로 주둔하는 서부 노보로시스크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항구 입구에 바지선 4척을 배치한 사실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러시아 군함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이어지자, 러시아 해군이 주요 항구에서 군함을 모두 철수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해군 대변인은 이달 초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지난달 30일 러시아 해군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거의 모든 주요 군함을 철수시켰다”고 전했다.
  • “세월호 친구들아… 비 와도, 별 많아도, 꽃 펴도 기억할게”

    “세월호 친구들아… 비 와도, 별 많아도, 꽃 펴도 기억할게”

    희생자 304명 호명에 객석 눈물불참한 尹대통령 “심심한 위로”재판 간 이재명 “헛된 희생 안 돼” “너희를 한순간도 잊은 적 없단다….” 304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만 10년이 된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김지애(27)씨는 추모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친구들아, 나는 그저 잘 살아 낼 필요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 집에 무사히 돌아오는 게 최선이란 생각으로 살아”라며 편지를 낭독했다. 이어 “참사가 너희를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너희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멋진 청춘이었겠지. 비 올 때 너희를 기억하고, 별이 많은 날 기억하고, 꽃이 피면 너희를 기억하며 살아갈게. 보고싶다 친구들아”라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이날 기억식은 304명 희생자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사회자가 당시 단원고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학생들의 이름과 선생님, 일반인 희생자들의 이름 모두를 호명하는 동안 객석에 앉은 유족과 시민들은 차오르는 눈물을 소리 없이 닦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의 뜻을 드린다. 10년이 지났지만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상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주최 측이 마련한 윤 대통령의 자리는 행사 내내 비어 있었다. 여야 지도부는 나란히 기억식에 참석했다. 국민의힘에선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기억식을 찾았다. 이날 오전 열린 22대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묵념을 진행했다. ‘대장동 재판’으로 기억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304개의 우주가 무너졌던 10년 전 오늘,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온 국민이 되묻고 또 곱씹어야 했다. 다시는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민의 목숨이 헛되이 희생되지 않도록 정치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적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지난 1월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21대 국회 내 처리도 약속했다. 앞서 오전엔 세월호 침몰 해역인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열렸다. 1600t급 해경 경비함정을 타고 해역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떠나갔어도 떠나보낸 적이 없다”고 울먹이던 한 희생자의 아버지는 하얀 국화 한송이를 망망대해에 띄웠다. 같은 날 오후 광주 5·18민주광장에서도 지역 예술인들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또 오후 4시 16분에는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 기억식’이 진행됐다. 기억공간에는 시민 1000여명의 추모 행렬이 종일 이어졌다.
  • “트라우마 아동 돕고 상처 극복”… 그날의 생존자, 치유자가 됐다

    “트라우마 아동 돕고 상처 극복”… 그날의 생존자, 치유자가 됐다

    비영리단체 ‘운디드 힐러’ 활동인형극으로 마음 대처방법 공유“얘들아 우리 이젠 잘살고 있어” “시작은 ‘세월호’였지만 다양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주는 단체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겨우 빠져나온 송지인(27·가명)씨와 윤현서(27·가명)씨는 단원고 동창 3명과 함께 비영리단체인 ‘운디드 힐러’(상처 입은 치유자)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운디드 힐러를 만든 송씨는 “참사 생존자로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트라우마 대처법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운디드 힐러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윤씨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우리의 상처도 치유하고 있다”고 했다.운디드 힐러는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인형극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나눈다. 송씨는 “인형극이 끝나고 나서 한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인형을 붙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봤다”며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하는 일이 그래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또래의 다른 이들처럼 대학을 졸업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굳이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한 이유도 그동안 세월호, 단원고 출신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상처와 오해가 컸기 때문이다. 송씨는 “참사 이후 10년간 사회가 참사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사회적 체계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운디드 힐러 활동을 통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그래서 ‘우리 그래도 이제는 잘살고 있다’고 (먼저 간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 딸의 편지, 아들의 면도기 챙기며… 세월호 가족은 10년을 버텼다

    딸의 편지, 아들의 면도기 챙기며… 세월호 가족은 10년을 버텼다

    딱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476명 탑승자 가운데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누군가는 이제 잊으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억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남긴 물건들 속 추억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며 남은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견뎌 내고 문 밖으로 나왔다. 단원고 학생 37명의 가족은 그렇게 보관해 왔던 희생자들의 생전 물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신문은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3명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봤다.2학년 9반 조은정양은 사고가 난 그날 “제주도에서 엄마 생일 선물을 사 올게”라며 집을 나섰다. 엄마 박정화(57)씨는 그 후로 생일만 되면 은정이가 고1이던 2013년 마지막으로 써 줬던 편지를 꺼내 본다. 박씨가 늦게 일을 마친 뒤 집에 들어서자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딸이 건넨 편지다. “엄마, 식당 일하느라 마음도 아프고 몸도 쑤실 텐데 집에 와서 또 집안일 해야 하니까 힘들지?…나중에 취직하면 첫 월급으로 엄마한테 명품 가방 사 줄게. 효녀 은정이가.” 약사가 되어 자신은 약국을 열고 엄마는 같은 건물에 미용실을 차려 주겠다던 은정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주말이면 식당 일을 도왔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몰래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정이는 고2 땐 부반장도 맡았다. 은정이가 떠난 후 가족들은 종교를 떠났고, 참사 이듬해 겨울엔 고향 같던 안산도 떠났다. 그러다 4년 만인 2019년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다. 은정이의 흔적이라도 회상하며 살고 싶어서였다. 박씨는 2018년부터는 가족들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공원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고, 수해 현장 등 곳곳을 갔다가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로 마주쳤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박씨는 말한다. “은정이와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는 게 안타까워요. 다음 세대들은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이 물건들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10살이나 어린 동생의 끼니를 챙기던 이태민(2학년 6반)군. 그 영향인지 태민이의 꿈은 요리사였다. 태민이 엄마 문연옥(52)씨는 ‘불 앞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며 걱정했지만 아들은 “고등학교 가서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요리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늘 동생들 먼저 챙기느라 또래들이 입는 유명 브랜드 옷에 눈길 한 번 안 주던 태민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한 부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 줬다. 고1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닌 태민이는 곧바로 한식 자격증을 땄다. 어느 날 “프라이팬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조리 연습하느라 바닥이 군데군데 긁힌 프라이팬을 몇 년이나 쓰다 머뭇거리며 꺼낸 말이었다. 마음껏 지원해 주지 못해 미안한데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대견해 엄마는 새것을 사 주고도 그 낡은 프라이팬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가 간직한 물건들은 우리에게는 아이들 그 자체예요.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도 여기 담겨 있어요.” 태민이가 떠난 후 엄마는 오랫동안 하던 미용실 일도 그만뒀다. 태민이 또래의 아이들 머리를 만지면 마음이 무너질까 봐서였다. 문씨는 세월호 가족끼리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나누기 위해 만든 공간인 ‘4·16공방’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먼저 간 자녀들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고 한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의 노란색 팬지도 얼마 전 심었다. 참사 후 5년 넘게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문씨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다시 힘을 내겠다고 했다.친구와 놀다가도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일곱 살 어린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던 임경빈(2학년 4반)군은 그렇게 속 깊은 아들이었다. 엄마 전인숙(52)씨는 “첫째라는 이유로 너무 강하게만 키웠나 싶다”며 울먹였다. 학년이 끝날 때마다 방을 정리하던 습관 때문에 경빈이의 방 안은 원래도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참사 직후 가족들이 엄마가 너무 고통스러워할까 방을 깨끗이 치웠다. 하지만 전씨는 나중에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 경빈이의 흔적을 그러모았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찾은 경빈이의 면도기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경빈이가 아빠에게 면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아빠를 따라 거품을 바르며 웃던 경빈이의 얼굴을, 그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전씨는 2017년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인양된 뒤 휴대전화 등 유류품과 미수습자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지켜보는 감시단 활동을 하다 대상포진에 걸렸다. 2021년 초까지 청와대 앞에서 1년 이상 피켓 농성과 석 달 노숙 농성을 마치고 수술까지 했다. 경빈이가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밝힐 증거를 놓칠까 봐 교통사고를 당해도 쉬지 못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여전히 이어 가고 있는 전씨는 말했다.“참사 이후에 선박안전법 등도 개정됐고 안전의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명예가 정말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트라우마 아동 도우며 상처 극복”…치유자가 된 생존자들

    “트라우마 아동 도우며 상처 극복”…치유자가 된 생존자들

    “시작은 ‘세월호’였지만, 다양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트라우마)를 어루만져주는 단체로 성장하고 싶어요.” 10년 전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겨우 빠져나온 송지인(가명·27)씨와 윤현서(가명·27)씨는 단원고 동창 3명과 함께 비영리단체인 ‘운디드 힐러’(상처 입은 치유자)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을 위한 공간 ‘쉼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지금도 4월이 되면 쉽게 잠들기가 어렵다”며 말문을 열었다. 운디드 힐러는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인형극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공유한다. 송씨는 “인형극이 끝나고 나서 한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인형을 붙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봤다”며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운디드 힐러를 만든 송씨는 “참사 생존자로서 느낀 트라우마를 대하는 법을 비슷한 상처를 갖게 된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운디드 힐러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윤씨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우리의 상처도 치유하고 있다”고 했다.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또래의 다른 이들처럼 대학을 졸업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굳이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한 이유도 그동안 세월호, 단원고 출신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상처가 컸기 때문이다. 참사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묻거나 4월만 되면 돌아오는 ‘이제 그만하자’, ‘지겹다’는 냉소적인 반응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윤씨는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어떤 순간엔 그만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며 “살아남았다는 건 죄가 아닌데, 생존자라는 게 알려지면 ‘세월호’, ‘단원고’라는 단어가 모든 걸 재단하곤 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참사 이후 10년간 사회가 참사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사회적 체계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운디드 힐러 활동을 통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그래서 ‘우리 그래도 이제는 잘살고 있다’고 (먼저 간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가 비난받는 현실 여전“‘당당한 피해자’로 살겠다” 살아남은 이들의 10년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이제 ‘당당한 피해자’로 살겠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스무살이던 10년 전 박보나(30)씨는 동생 성호군을 떠나보낸 뒤 혼란을 겪어야 했다.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 인근에서 만난 박씨는 “가족들이 빨리 치유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지만, 유가족들이 ‘잘 살아도 되느냐’는 비난도 있었다”며 “비슷한 참사 때마다 피해자가 비난받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 나라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을 찾아본 박씨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사회적 참사에 대해 공격적인 사람이 있는 건 우리 사회가 상실을 애도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면서 “일상에서 떠난 이들을 충분히 추모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박씨는 “이제 제 삶에 더 집중하고 싶다”면서도 “틀린 건 계속 틀리다고 말하면서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어른으로 살고 싶다”고 답했다.
  • 면도기·프라이팬·마지막 편지…물건에 담긴 기억과 ‘세월호 10년’

    면도기·프라이팬·마지막 편지…물건에 담긴 기억과 ‘세월호 10년’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476명 탑승자 가운데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누군가는 이제 잊으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억이었다. 아이들이 남긴 물건 속 추억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며 남은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고 문밖으로 나왔다. 단원고 학생 37명의 가족은 그렇게 보관해 왔던 희생자들의 생전 물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신문은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3명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한번 밖에 쓰지 못한 경빈이의 면도기 한 학년이 끝나면 방에서 필요 없는 물건 한 아름을 꺼내 버리던 2학년 4반 임경빈군의 방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참사 직후 가족들은 엄마 전인숙(52)씨의 고통이 커질까 봐 방을 깨끗이 치웠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도와 친구와 놀다가도 7살 어린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가던 경빈이는 전씨에게 각별한 아들이었다. 전씨는 “첫째라는 이유로 너무 강하게 키웠나 싶다”며 기억을 더듬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전씨가 참사 직후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 경빈이의 흔적을 찾아모은 것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찾은 면도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TV를 보던 경빈이는 아빠에게 “나도 면도를 해야 해”라고 물었다. 수염이 아직 자라지 않았던 경빈이의 얼굴을 본 남편이 망설이자 전씨는 “아빠가 가르쳐주면 되겠네”라고 했다. 아빠를 따라 거품을 바르며 웃는 경빈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전씨는 회상했다. 그 후로 경빈이는 이 면도기를 쓰지 못했다. 목포신항부터 광화문 광장까지엄마는 아들 위해 싸우고 연대했다 경빈이가 떠난 뒤 전씨는 지난 10년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2021년 초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년 이상 피켓 농성과 세달 가까운 노숙 농성을 마친 뒤엔 수술을 받아야 했다. 2017년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인양된 뒤 휴대전화 등 유류품과 미수습자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지켜보는 감시단 활동을 하다가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다. 경빈이가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밝힐 증거를 놓칠까 봐 교통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습된 유류품을 씻어 보존하는 일도 전씨를 비롯한 부모들이 도맡았다.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할 줄 몰랐다”는 전씨는 경빈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왔다’며 시간을 쪼개 힘을 보내주는 이들을 만나다 보니 다른 참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하게 됐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자나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거리로 나설 때면 곁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도 지켰다. 경빈이와 같은 반 엄마들이 경빈이의 동생을 돌봐준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선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전씨는 “참사 이후에 선박안전법 등도 개정됐고 안전의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다”며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 꿈꾸던 태민이의 첫 프라이팬 2학년 6반 이태민군의 꿈은 요리사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의 끼니를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꿈이 생겼다. 태민이의 엄마 문연옥(52)씨는 ‘불 앞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며 걱정했지만, 태민이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요리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늘 동생들을 먼저 챙기느라 또래들이 입는 브랜드 옷에는 눈길 한번 안 주던 태민이가 처음으로 문씨에게 한 부탁이었다. 고1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닌 태민이는 곧바로 한식 자격증을 땄다. 어느날 문씨와 함께 마트에 간 태민이는 머뭇거리면서 “프라이팬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음식 만드는 연습 하느라 바닥이 군데군데 긁힌 프라이팬을 쓰다 겨우 말을 꺼낸 거였다. 태민이에게 새 프라이팬을 사준 뒤 문씨는 태민이가 원래 쓰던 프라이팬을 줄곧 간직해왔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태민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껏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그 마음을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어느덧 태민이만큼 자란 막내“사랑하는 마음도 전해지길” 태민이의 막냇동생은 어느덧 태민이와 같은 고2가 됐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문씨는 아직 단원고를 보는 바라보는 게 편치만은 않다. 기억교실이 단원고를 바라보는 곳에도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게 가족들에겐 상처로 남았다. 막내딸이 단원고에 떨어졌을 땐 내심 다행이라고 문씨는 생각했다. 문씨는 “태민이와 같은 교복을 입은 막내딸을 보면 태민이가 생각나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까 봐 딸에게도 미안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하던 미용실 일도 그만뒀다. 문씨는 “처음엔 태민이 또래의 아이들 머리를 만지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면서 “손님들이 갑자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꺼내면 대처를 못 할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고 전했다. 요즘은 4·16공방에서 활동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유가족들을 위로하러 찾아온 자원봉사자로부터 자수 등을 배웠던 엄마들과 함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의 노란색 팬지를 심기도 한다. 참사 이후 5~6년 동안은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한 문씨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간직한 물건들은 우리에게는 아이들 그 자체에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물건들을 꺼내 보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어요. 세월호의 아픔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은정이가 엄마에게 보낸 마지막 생일 편지 10년 전, 제주도에서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 오겠다던 2학년 9반 조은정양은 돌아오지 못했다. 은정이의 엄마 박정화(57)씨는 그 후로 생일만 되면 은정이가 고1이던 2013년 마지막으로 써준 편지를 읽는다. 박씨가 늦게 일을 마친 뒤 집에 들어서자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건넨 편지다. “엄마, 식당 일하느라 마음도 아프고 몸도 쑤실 텐데 집에 와서 또 집안일 해야 하니까 힘들지?…(중략)…나중에 취직하면 첫 월급으로 엄마한테 명품 가방 사줄게. 효녀 은정이가.” 은정이는 늘 엄마와 아빠가 먼저였다. 약사가 되어 자신은 약국을 열고 엄마는 같은 건물에 미용실을 차려주겠다던 은정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주말이면 식당 일을 도왔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몰래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정이는 고2 땐 부반장이 됐다. 안산 떠났다 은정이 찾아 돌아온 엄마봉사로 위안…“생명안전공원에서 기억하길” 그런 은정이가 사라지고 나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믿었던 종교를 떠났고, 참사 이듬해 겨울에는 안산을 떠나기도 했다. 다니는 곳곳에서 은정이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가족 모두가 괴로워서다. 등굣길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은정이가 손을 흔들면서 “엄마!”라고 부를 것 같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산을 떠났다가 4년 만에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다. 조금 남은 은정이의 흔적이라도 그리워하며 살고 싶어서였다. 박씨는 2018년부터는 가족들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이후 “이제는 우리가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공원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하고, 수해 현장 등 곳곳을 가다 보면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로 마주쳤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박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은정이가 박씨에게 썼던 편지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2학년 부반장 임명장이 전시된 곳을 연신 바라봤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은정이의 추억들이 잊힌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음 세대들이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이 물건들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 빛바랜 팽목항 리본… 노란 물결이 살아났다

    빛바랜 팽목항 리본… 노란 물결이 살아났다

    “아직도 딸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10년이나 지났지만, 금방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세월호 참사 희생자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이제 빛을 잃어 색깔조차 구분이 힘든 노란 리본을 고쳐 달거나 새로 가져온 샛노란 리본에 ‘미안하다’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1997년생 학생들과 동갑인 자녀가 있다는 차연순(60)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슴 한편이 저린데 자녀를 떠나보낸 유가족의 아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들은 전남도에서 연 추모제에 함께해 검푸른 빛의 바다에 하얀 국화 여러 송이를 바다에 띄우기도 했다. 인근 공터에 마련된 ‘0416팽목기억관’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1997년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추모객은 검은색 펜으로 ‘10년 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을 적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가 2017년부터 거치 중인 전남 목포신항에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미수습자 5명의 영정 사진 옆에는 생전 고인들이 좋아했던 음식물이 가지런히 놓였다. 지난 13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침몰 해역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최로 선상 추모제가 열렸다. 희생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 조은화 학생과 허다윤 학생의 부모는 이날 추모제에서 먼저 간 아이들을 위해 빌었다.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지금까지도 (자녀를) 찾지 못한 분들은 몹시 (마음이) 아플 것”이라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찾아서 ‘그래도 돌아왔구나’라는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년 넘게 팽목항을 지켜 딸의 주검을 찾은 그는 미수습자 가족 생각을 먼저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서울과 진도, 광주,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진행된다. 4·16재단은 1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선상 추모식을 연다. 또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노란 리본 공작소와 노란 종이배 퍼포먼스 등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됐다.
  • 세월호 참사 ‘열번째 봄’ 전국 추모제…“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열번째 봄’ 전국 추모제…“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내 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금당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어처구니없을 때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지난 13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의 침몰해역에서 10년 전 잃어버린 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이씨의 곁에는 남편 조남성씨, 또 다른 희생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부모인 허흥환·박은미씨 부부가 함께 했다. 조은화, 허다윤 학생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2017년 봄 육상에서 다시 시작된 수색 끝에 뼛조각이 되어 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사흘 앞둔 이날 맹골수도 침몰해역에서는 조은화, 허다윤 학생의 유가족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선상 추모제가 엄수됐다.유가족과 스님들은 불교식 제례와 기도회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애도했다. 또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과 남현철·박영인 학생, 일반인 승객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 등 행방불명된 미수습자 5명의 넋을 기렸다. 제례와 기도회를 마친 유가족과 스님들은 세월호 침몰 해점을 표시하는 노란색 부표 주변에 국화를 띄우며 더이상 아픔이 없는 세상을 염원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서울과 진도 그리고 광주,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노란 리본 공작소와 노란 종이배 퍼포먼스 등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됐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협)와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는 13일 오후 5시 30분부터 중구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4·16 기억문화제’를 열었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5000여명(경찰 추산 3000여명)이 참가했다.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광주청소년기억문화제가 열린 지난 13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는 안전 사회를 염원하는 집회가 열려 노란 물결이 일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304명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문화 체험 부스 10여 개도 마련됐다. 광주시봉선청소년문화의집의 청소년들이 부른 구슬픈 추모곡이 광장을 울렸다. 또래 청소년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세월호 참사 기억’ 문구가 적힌 노란 풍선을 손에 든 채 추모에 동참했다. 이날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전북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문화제는 참사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고 유가족과 함께 미공개 정보 공개, 추가 진상조사 실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 책임자 엄벌 등을 요구했다. 인천시청 애뜰광장에서도 ‘열 번째 봄, 내일을 위한 그리움’ 이라는 주제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인천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준 과제를 시민들과 함께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세월호가 출항했던 인천에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45명 중 44명의 유골과 영정이 안치된 ‘4·16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 전남 목포와 여수, 순천 등에서도 문화제와 음악회 형식의 지역 추모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특히 천주교 단체와 성당이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오는 15일 오후 2시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를 봉헌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선태 주교가 미사를 주례하고 광주대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와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 등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다. 이날 미사에서는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오는 16일을 전후로 전국 교구별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와 추모 행사를 하고 광주대교구에서는 16일 성당별로 추모미사를 열기로 했다. 참사 당일인 16일 침몰 해역에서 4·16재단 관계자와 희생자 가족들이 선상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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