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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총 원혼 “4백년만의 환국”/어제 일 교토서 김해공항에

    ◎임란때 우리양민 코·귀 12만6천개 베어가/법회등 행사뒤 오늘 부산 동명불원에 안치 4백년 통한의 12만6천여 귀무덤(이총) 원혼이 24일 일본으로부터 고국의 품에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 귀무덤호국영령환국봉안위원단은 23일 하오6시 김해공항을 통해 4백여년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영령들을 위해 김해공항에서 환국환영법회를 가진데 이어 이들을 꽃차에 모셔 부산시내를 지나 부산시 남구 용당동 동명불원에 안치했다. 우리측 봉환위원단은 이에 앞서 지난22일 일본 교토 귀무덤에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지장기도를 밤새워 한데 이어 스님들의 범패와 소복단장한 불음합창단의 찬불가 등으로 이어진 엄숙한 봉송의식을 가졌다. 위원단은 봉안장소를 제주도로 하려 했으나 부산으로 정한 것은 임진왜란때(1592년4월) 왜군이 부산에 그 침략의 첫발을 디뎠고 양민의 귀 12만6천여 혼을 배에 싣고 떠난 곳도 부산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귀무덤은 교토의 풍신수길 전승기념관앞에 초라한 비석과 함께 버려두었던 것을 지난 82년 박삼중스님이 안본형무소 교화사업차 이곳에 갔다가 발견,한일이총영혼환국봉송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우선 영혼만이라도 환국시키게 된 것이다. 귀무덤은 임진왜란때 왜군들의 전공을 평가하는 자료로 삼기위해 풍신수길의 명령에 따라 우리병사들뿐 아니라 양민들의 귀와 코까지 잘라 일본으로 가져가 묻었던 무덤. 풍신수길이 죽자 그동안 그의 무덤앞에 전리품으로 초라한 비석하나만 세워 방치해 두었다. 이번 영령의 환국에는 고 이방자여사와 친동생인 이본덕언이 일본측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선임된 가운데 8만여 신사가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환국은 일본의 조선침략과 만행을 일본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이를 참회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 리투아공,세계에 지원 호소/민족단체/정부엔 위기종식조치 촉구

    ◎EC,소에 제재해제 촉구 【모스크바 AFP 연합】 모스크바 당국이 에너지와 식료품 공급중단등 대리투아니아공화국 경제 제재조치를 강화한 뒤 공화국내 공장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자들은 21일 「세계각국」에 대해 독립을 추구하는 리투아니아를 망각하지 말아 줄 것을 촉구했다. 공화국 수도인 빌나에 본부를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 민족운동단체인 사유디스는 이날 총회를 개최,현재 더블린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EC(구공체)외무장관들이 소련연방정부와 리투아니아공화국간 대화를 촉구하는 한편 소련의 경제제재 조치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을 상기하면서 세계각국에 이같이 호소했다. 이 결의문은 ▲소련연방정부의 경제봉쇄조치는 리투아니아로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요조건들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지만 공화국 시민들은 이같은 상황에 절대로 당황해서는 안되며,특히 공화국 정부는 현재의 위기를 종식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고 ▲소련의 「강점과 침략」으로 발트해 연안공화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세계각국이 망각하지 말고 지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더블린(아일랜드) AP UPI 연합】 더블린에서 회의를 열고 있는 EC(구공체)12개국 외무장관들은 소련이 최근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공화국에 가하고 있는 석유와 가스공급중단 등 「고압적」인 경제제재조치를 즉각 해제할 것을 21일 촉구했다.
  • 미 상원군사위 청문회 내용

    ◎작전권 한국이양은 92년께 가능/주한군 10%이상 감축할 땐 위험/유지비부담 13%… 총3억2천만불 미 상원군사위(위원장 샘 넌 의원ㆍ민주ㆍ조지아주)가 19일 부시 행정부의 아태지역 전략평가보고서 제출과 관련,국방부와 국무부의 고위관리 4명을 출석시켜 2시간여동안 개최한 청문회의 주요 질문과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샘 넌 위원장=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한 양국정부의 유지비 부담은. ▲앨런 홈스 대사(국무부 방위비분담 문제담당대사)=한국정부의 부담률은 13%가 조금 넘으며 일본정부의 부담률은 직접비 35%를 포함,41%이다. ­넌=한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유지비 부담률이 증대될 전망은. ▲폴 울포위츠 국방차관=한국의 국방비가 지난 10년사이에 3배가 증가했다. 우리는 이에 힘입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할 수 있게 됐다. 체니 국방장관이 지난번 서울방문때 이 문제를 거론했으며 앞으로 협상이 계속될 것이다. ▲홈스=한국은 연합방위증강계획으로 89년 4천5백만달러,90년에 7천만달러를 증액했다. 미군유지비로 90년에 3억2천만달러를부담하고 있으며 유지비증액과 유지비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는 것 등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넌=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한 양국정부의 유지비 부담률 인상목표는. ▲홈스=우리는 목표를 설정해서 협상중이다. 공개석상에서 말하기는 어렵다. ­존 워너 의원(공ㆍ버지니아주)=지난 51∼52년의 한국전때 유엔군과 함께 전투한 한국군은 가장 훌륭한 군대였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군이 왜 주도적인 방위역할을 맡지 못하는가. ▲울포위츠=북한은 40년전 에치슨 국무장관의 발언을 오판,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한국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내놓으면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 ­워너=그렇다면 주한미군 감축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은. ▲울포위츠=10%정도의 감군은 괜찮다고 본다. 그 이상의 감축은 현재로서는 북한에 위험한 신호를 보내게 될지 모른다. ­워너=북한 지도층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주한미군감축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윌리엄 펜들리 해군소장(미태평양사령부 기획국장)=김일성이 많은 일상업무를 김정일에게 넘겨주고 있다. 남북대화의 진전이 미군감축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존 매케인 의원(공ㆍ애리조나주)=유엔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사체계를 만들어 지휘권을 한국 장성에게 넘기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펜들리=지휘체계가 어느 정도 조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휴전이 유엔사에 의해 성립돼 존속되고 있으며 북한의 위협이 크다는 점이다. ­티모디 워스 의원(민ㆍ콜로라도주)=팀 스피리트 훈련때 소련을 참관단으로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울포위츠=한국과 소련의 수교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칼 레빈 의원(민ㆍ미시간주)=작전지휘권의 한국군 이양과 한국정부의 미군 유지비 증액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칼 포드 부차관보(국방부 국제안보국 동아태국)=조만간에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평시에는 한국장성이 지휘권을 갖게 될 것이다. ­레빈=언제쯤 이루어질 것인가. ▲포드=체니 장관이 한국방문에서 거론한데 따라 논의중인데 우리는 1단계중인 92년경에지휘권의 조정이 있기를 원한다. ­레빈=앞으로 왜 2년이 더 필요한가. ▲포드=한국에는 미군의 존재,그리고 미군장성의 지휘가 북한의 침략저지에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종종 작전지휘권의 이양문제가 제기됐지만 안전하게 이양되려면 2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레빈=FA­18전투기 1백20대를 확보하는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구매계획(KFP)은 일본의 전투기개발계획인 「FSX의 아들」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 계획으로 한국이 항공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울포위츠=공동생산이기 때문에 FSX와는 달리 새로운 기술이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워스=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는. ▲울포위츠=북한과 같이 조그만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는 결코 없다고 본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 가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 북한의 침략성 입증/역사의 산증인 고려/최공보처

    정부대변인 최병렬공보처장관은 김의 특별사면과 관련한 발표문을 내고 『김은 KAL기 폭파사건의 진상을 증언해줄 유일한 생존자로서 수사와 재판이 허위ㆍ날조된 것이라는 흑색정치선전을 분쇄하고 북한 공산집단의 폭력성과 침략적 근성을 생생하게 입증할 역사의 산 증인이란 점이 고려돼 특별사면 했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김을 대한민국의 품안으로 과감히 수용함으로써 북한의 대남적화책동을 폭로,저지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대열에 동참시키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장관은 『김이 뒤늦게나마 북한 공산집단으로부터 기만당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범행을 깊이 뉘우치면서 수사단계에서부터 재판이 끝날때까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자백하고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속죄하고 있는 점도 사면결정에 고려됐다』고 말하고 김은 이 사건범행에 투입된 북한의 꼭두각시에 불과할뿐 이 사건의 실질적 주범은 김일성부자라고 덧붙였다.
  • “정통기마민족”…5∼6세부터 말타기훈련(깨어나는 몽고:3)

    ◎초원의 유목생활/사람보다 많은 말…2백50만마리 방목/울란바토르시민의 42%가 「게르」에 거주/양고기ㆍ말젖으로 만든 치즈ㆍ우유가 주식 몽고수도 울란바토르의 모습은 한마디로 황량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제 막 민주개혁바람이 불기 시작한 곳이란 생각이 그나마 적막함을 덜어주는 것 같다. 시내 한 가운데 종합청사를 중심으로 한 빌딩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한국의 시골과 같은 풍경이 나타나고 좀 더 떨어진 외곽지대엔 아파트단지와 몽고 원형천막이 모여 이룬 주택가가 눈에 들어온다. 한창 붐벼야 할 출퇴근 시간에도 그리 많지 않은 행인들이 무궤도 버스정류장에 띄엄 띄엄 모여 있을 뿐 바쁜 모습은 찾기 힘들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위에 세워진 도시에 고작 50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게다. 전체 인구라야 2백만명 밖에 안되는데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7배나 되니까 다른 곳을 가 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것은 구경하기가 힘들다. ○우리 농촌풍경 비슷 또 울란바토르 시민의 42%가 전통적인 원형천막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구식 도시생활에 젖은 이방인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 유목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70km 떨어진 테레지 마을도 거의 모든 주민이 원형 천막에서 살고 있었다. 흔히 몽고 「파오」라고 불리나 이는 포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몽고어로는 게르라고 한다. 보통 직경 4∼6m 정도의 이 천막내부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에 침대가 있고 정면엔 주인석이 놓여 있다. 손님은 주인석 오른쪽의 자리에 앉게 돼 있다. 기자가 방문한 테레지마을의 한 원형천막집은 밖의 날씨가 영하13도인데도 가운데 피워 놓은 난로와 천막을 덮은 양가죽들 때문인지 매우 훈훈했다. 줄친관광회사 직원 만라이(26)의 소개에 4개월된 체렌바트란 이름의 손주를 안은 할머니가 『한국사람은 처음 본다. 생긴 것이 우리들과 똑같다』며 큰소리로 웃는다. 윗 옷만 걸친 체렌바트 어린이의 엉덩이엔 예외없이 푸른 몽고반점이 퍼져 있었다. 잠시 후 한국기자가 손님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이 마을촌장인 77세의 잠발브레흐노인이 말을 타고 찾아왔다. 몽고족 고유의 복장(델)에 털모자(톨초그)와 긴 가죽장화(구톨스)차림의 그는 허리에 칼까지 차고 있어서 활과 화살만 있다면 영락없이 정한한 옛 몽고기병의 모습이다. ○전체인구2백만명 고령이지만 생기넘치는 눈빛,강건해 보이는 몸동작들은 양고기와 말젖으로 만든 치즈,우유를 주식으로 한 때문이라고 한다. 또 몽고 초원의 강한 바람을 맞으며 일망천리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말위에서 다져진 건강이라고도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도 옛 복장에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더러 볼 수 있었다. 역시 몽고인의 삶은 말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의 초원지대는 물론 도시의 사람들도 말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초원의 사람들은 『말 안장 위에서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말과 가깝게 지낸다. 보통 5,6세가 되면 새끼말 위에 타기 시작하며 말을 못타면 사람대접도 못받는다. 전국적으로 총인구보다 많은 2백50만마리의 몽고말이 방목상태로 사육되고 있으며 야생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깨높이 1.5m안팎에 턱뼈가 길고 넓적하며 발목뼈가 굵고 튼튼한 이 몽고말이 바로 칭기즈칸의 제국건설을 가장 크게 도운 초원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비록 몽고사회는 여러가지 요인으로 오늘날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칠줄 모르는 지구력과 강인함을 유지한채 대초원을 누비고 있다. 품종이 우수하다는 아라비아산이나 서양의 경주말이 하루 50km를 달리는 데 비해 몽고말은 처음 출발 때 속력은 다소 뒤지나 1백∼1백2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 사람들이 사료를 주는 일은 전혀 없으며 겨울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서도 눈에 덮인 마른 풀을 찾아 먹고 들판에서 그대로 잠을 잔다. 칭기즈한의 군대는 이런 몽고말을 병사 한명당 7∼10마리씩 끌고 전쟁에 임했다. 끝없는 초원을 말을 바꿔타고 경쾌하게 달리며 사정거리 3백m이상의 몽고활을 쏘면서 진격하는 기동성과 용맹에 철갑으로 중무장해서 몸놀림이 둔할 수 밖에 없는 유럽의 기사들이나 중국 등 농경민족의 군대는 아예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몽고 활은 성능과 모양이 한국의 국궁과 똑같으며 중국이 한국을 가리켜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뜻으로 동이라고 부른 것도 대단했던 활의 위력 때문이었다. ○활모양,국궁과 흡사 테레지마을에서 털털거리는 소제승용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에 질풍같이 말을 몰아 달리며 야생마 몇마리를 길들이는 두명의 말몰이꾼과 만났다. 이들은 갓 사로잡은 야생마가 무리에서 떨어져 달아나자 긴장대에 반원형으로 밧줄을 묶은 우라크라는 연장으로 말들을 잡아들였다.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즐겨쓰는 라쏘란 밧줄은 짐승에게 던져 실패할 경우 다시 줄을 둥글게 감아 던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반면 몽고인들의 우라크는 실수할 확률이 거의 없는 효율적인 것이었다. 만약 야생마가 밤중에 도망갈 우려가 있을 땐 앞발과 뒷발 하나씩을 끈으로 묶어 놓는다고 했다. 제대로 뛸 수 없으므로 결국 몰이꾼에 의해 순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원의 말처럼 강인하고 표한했던 몽고인들이 그동안 역사의 뒷전으로 철저히 물러나고 무기력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공산주의로 침체기 갖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극소수만 믿고 있는 라마교 때문이라는게 지배적인 풀이인것같다. 원나라를 세웠던 쿠빌라이가 13세기 중엽 티베트를 점령했을 때 현지 라마교 고승 파스파를 제사(황제의 스승)로 삼은 이후 교세가 강화되면서 몽고인의 정신이 타락하게 된것으로 지적된다. 라마교가 몽고제국에서 막강한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궁중법회를 한번 열 경우 4만명의 승려가 7일 밤낮 종교의식을 거행했으며 이로인한 막대한 재정부담은 점차 제국의 기반을 흔들거리게 했다. 게다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옛 라마교는 음란성이 짙은 밀교여서 몽고인들의 강건 소박한 기풍을 썩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울란바토르 교외에 지난 21년 소련지원에 의한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보그드 한의 궁전을 가보았다. 그도 대단한 라마교광신자여서 방마다 라마교 불상이 안치돼 있었다. 『역대황제나 지배자들이 종교에 너무 미쳐 있었고 국민들에게도 이를 강제로 믿게 했다. 외세가 침략을 해도 싸울 태세는 안갖추고 그저 기도만 열심히 드렸다. 나쁜 일이 생기면 현실적으로 고칠 생각은 않고 역시 기도만 했다. 지난 70년 동안 몽고사회를 지배했던 공산주의도 이런 종교만큼이나 국가와 국민을 침체케 했다』 현재 몽고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몽고민주당(MDP)당원이기도한 젊은 안내인의 설명은 자조와 미래를 향한 신선한 반항심이 섞인 것이었다.
  • “위대한 몽골리안”… 칭기즈칸 복권운동 한창(깨어나는 몽고:2)

    ◎민족혼 “재점화”/민주화 바람 타고 “민족적 영웅” 추앙/“침략자”로 격하 70년만에 명예회복/배지ㆍ달력등 기념품 불티…묘찾기 작업 본격화 영하 15도에 매서운 한풍까지 심하게 몰아치던 4월1일 정오 울란바토르 시중심가에 자리한 야달트(승리) 극장앞. 약 5백명의 군중이 마이크 앞에서 외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사장마다 추모행렬 군중이나 연사 모두가 추위에 아랑곳 않는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우리 몽고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2백만 몽고 인민공화국 국민은 물론 중국의 내몽고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이제 칭기즈칸의 정신밑에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연사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연사가 등장. 『늑대를 잡으려고 초원 한 곳에 불을 질렀으나 그 늑대는 다른 넓은 초원으로 달아 났습니다. 소련은 칭기즈칸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그에 관한 책이나 사적을 없애고 한낱 전쟁 미치광이로만 선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몽고인의민족적 자긍심은 초원을 끝없이 달리는 늑대처럼 굳세고 힘차게 우리 가슴속에 살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을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칭기스칸 만세!』 『만세!』 ○“칭기즈칸 정신” 강조 곧이어 쇼열엘덴(발전하는 사회)이란 록그룹이 등장,칭기즈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자 군중들도 모두 따라 합창을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계속된 이 집회는 「칭기즈칸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것이었다. 연단앞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몽고의 저명작가 도초도르치를 비롯,시인ㆍ언론인ㆍ학자 등 지식인들이 주관했다. 흔히 외국인들이 「칭기즈칸」(Khan)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몽고 사람들은 틀린 발음이며 「칭기즈한」(한)이 정확하다고 했다. 칭기즈는 몽고말로 강성하다라는 뜻이며 한은 왕ㆍ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요즘 몽고인들의 칭기즈칸 추모 열풍은 대단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폐기시킨 민주화가 민족혼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국민적 영웅인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으로 점화된 것이다.○관련서적ㆍ사적 없애 추모사업회를 이끄는 작가 도초도르치는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ㆍ기념탑등을 건립하고 그의 무덤을 찾아내 기념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두 곳 뿐인 관광호텔과 단 하나의 외국인 백화점에선 칭기즈칸 배지ㆍ달력 등 그에 관한 기념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1921년 몽고가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칭기즈칸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몽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소련으로선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에 대해 매우 굴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러시아를 1240년 멸망시킨 것이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이며 이들 몽고 기병은 불과 일주일만의 맹공으로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킵차크한국을 세워 무려 2백40년 동안이나 러시아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것이다. 몽고의 지배로 러시아는 서구의 르네상스ㆍ종교개혁 등 근대화에 필요했던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정체의 역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고 국립역사박물관장 다바삼부는 『칭기즈칸을 극도로 혐오한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몽고의 민족 영웅인 칭기즈칸이 지나치게 천대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그의 유물과 유적을 모으고 보관하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역사 박물관에는 3층 맨구석에 칭기즈칸의 초상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더 이상 그에 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상ㆍ기념탑 건립계획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튤스양에 따르면 몽고라는 표기도 현재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한자권의 국가에서만 쓸 뿐 다른 곳에선 몽골(Mongolㆍ용감하다는 뜻)로 부른다고 했다. 몽고의 정식 국명도 몽골인민 공화국이다. 몽고란 명칭은 원래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주변 이민족을 몽매한 야만인라고 경멸하는 뜻에서 붙인 것이라 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이 속했던 부족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테무친(철목진)으로 불렸던 그가 타타르,나이만 등 다른 부족을 평정,대초원에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몽골이란 말이 국명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초상하나만 덩그렇게 튤스양은 또 역사상 모스크바를 점령한 사람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두 명 뿐이나 나폴레옹은 그나마 며칠 후 퇴각하면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된다며 칭기즈칸을 추켜세웠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거쳐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칸은 1227년 여름 서하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재 중국의 감숙성 진주 육반산에 갔다가 그해 9월 65세로 풍운 가득찬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땅으로 옮겨져 울란바토르 동북쪽 케룰렌강 주변에 묻혀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몽고에선 그의 묘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가는 아직 어림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몽골리아지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고인들이 과거 봉분의 풍습이 없었던 데다 후세 이민족이 시신을 훼손할 것을 우려,칭기즈칸의 묘지 소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칭기즈칸이 묻힌 자리를 1천마리의 말이 밟아 흔적을 없앴으며 그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3년동안 몽고기병들이 파수를 보았다고 했다. 또 묘지 넓이는 직경이 30리에 이르고 귀중한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 노래 유행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몽고대제국을 킵차크ㆍ오고타이ㆍ차가타이ㆍ일한국등으로 나눠 통치했으며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세워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대제국도 원의 멸망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칭기즈칸/우리는 당신의 어두운 면만을 얘기했답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당신을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칭기즈칸 노래의 내용이다. 비록 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조국에서 조차 제국주의자ㆍ전쟁광으로 낙인 찍혀 멸시 당했던 칭기즈칸. ○낙후 몽고에 새 활력 그러나 초원을 휩쓸고 있는 민주개혁의 열풍으로 다시 몽고 국민들의 우상이 된 그가 공산주의로 찌들리고 낙후된 이 나라의 내일에 어떤 형태든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울란바토르=우홍제특파원〉
  • 기미가요 제창 의무화에 거센 반발 (특파원 코너)

    ◎“군국주의 부활 기도”… 교원노조 비난/나가노시선 일장기 끌어 내리기도/“일본인 자신의 문제다” 재일교포들 무관심 『기미가요와 치요니 야치요니 사자레 이시노 이와오토 나리데 고케노 무스마데』­일본의 국가 기마가요(군□대)의 전문이다. 고대 황실의 노래 모음인 고금집에 실려 있던 노래로서 매우 짧다. 의미는 천황제도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기미가요」란 「황실」 또는 「군주가 통치하는 시대」 「일본이라는 국가」라는 의미를 갖는다. 『네가 나의(천황) 대신이다』라는 직역도 가능하다. 전문의 풀이는 『일본 천황은 천년만년 영원히,작은 돌멩이가 큰 바위덩이가 되어,다시 이끼가 낄때까지…』이다. 일본의 국기로 인식되어 있는 히노마루(일□환)도 사실은 황실의 문장 이었다. 이 일장기는 제2차대전때 까지는 일본의 국기였으나 전후 일본은 법제화된 의미에서의 국기는 갖고 있지 않았다.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와 국제회의,또는 각종 행사때 국기처럼 쓰이고 중앙정부나 일부 지방 자치단체,또는 개인 단체 등이 그 의사에 따라 국기로 대접해 줄 뿐이다. 이같은 기미가요와 히노마루가 최근 다시 말썽을 빚고 있다. 일본 문부성이 「신학습지도요령」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일본의 초ㆍ중등학교에 개학식 등 학교의 중요행사때 히노마루를 게양하고 기미가요 제창을 준의무화 했기 때문이다. 문부성의 지도요령에 따르면 이것은 의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권장사항도 아니다. 『…할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의무에 가깝게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이행하지 않는 교사들은 교칙위반에 준해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강제적 색채를 더욱 강하게 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뜻하는 히노마루와 국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기미가요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ㆍ아시아 각국에는 과거 침략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민감한 주제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지식인과 강력한 파워를 갖는 전국 교사노조로 부터 군국주의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일본의 민족주의를 부활시킬지 모른다는 이유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호리 고스케(보리보) 문부상은 최근 『학교에서 의무에 준해 시행될 국가제창과 국기게양 의식은 일본 어린이들에게 조국을 보다 잘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문부성은 지난해 2월10일 유치원으로 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 까지의 각급 학교에 대한 새로운 교육내용을 담은 「신학습지도요령」을 작성,발표했다. 그 내용은 개성있는 교육을 목표로 수업에 탄력성을 부여 하면서도 도덕 교육 및 「국기국가」의 지도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이 지도요령이 발표되고 나서 지난해 11월 문부성은 전국의 초ㆍ중ㆍ고교를 대상으로 졸업식과 입학식 등에서의 이행여부에 대해 일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국기」의 게양률은 졸업식에서 국민학교의 94.7%를 최고로 중학 93.7%,고교 85%로 80∼90%가 게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입학식에서도 거의 같은 비율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제창률은 이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비교적 실시율이 높은 졸업식에서도 국민교가 75.8%,중학 71.3%,고교 56.1% 였다. 입학식에서는 더욱 낮아 국민교 58.8%,중학 68.3%,고교 54.2%로 나타났다. 이처럼 교육현장에서의 저항감은 강하다. 지난 4일에도 한 국민학교 입학식장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상오 10시쯤 나가노(장야)시의 마메시마(대두도) 시립국민학교(교장 환산헌)의 입학식장에서 단장에 걸려있던 히노마루를 신입생의 한 아버지(31)가 끌어내렸다. 학교측은 여벌로 준비했던 기를 다시 달아 혼란은 없었다. 이 학부형은 식이 끝난 뒤에 떼어낸 히노마루를 교장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는 히노마루 기미가요에 반대하는 단체의 회원이었다. 이처럼 일장기와 기미가요에의 「저항」은 일본 국내에서도 심하다. 그러나 많은 재일 한국인들은 의외로 이면에 대해서는 대범하다. 일본은 독립국가이며 주권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의 「국기」와 「국가」에 대해 경애심을 갖게하는 것을 굳이 시비할 건 못된다고 성숙한 반응이다. 권투시합장에서 자국선수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일본이 과거의 군국주의로 되돌아 가지 않는 한 히노마루 게양ㆍ기미가요 제창은 일본국내의 문제로서 남겨두는 것이 보다 대국적인 국제 사회인의 도량이라는 의견인 것이다.〈도쿄=강수웅특파원〉
  • 범죄조직의 한ㆍ일연계 충격(사설)

    버젓한 공공기구인 연예인협회간부가 한국여성을 일본에 접대부로 송출하는데 주동역을 한 사실이 드러나더니 잇따라 일본 「야쿠자」를 상전으로 모시는 한국 폭력조직이 검거되었다. 이웃으로서의 일본이 우리에게 끼치는 악연의 숙명성을 느끼게 한다. 못되고 고약한 것은 모두가 그쪽으로 닿아있다. 철들기 전의 가난한 여자들이 꾐에 넘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란 쉽다. 그런 딸들의 행로에 덫을 놓아 타락의 함정으로 빠뜨리는 어른이 있다면 그건 그 어른이 지탄받을 일이다. 그런 일을 명색이,연예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공동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자율기구로 결성된 협회의 전현직 간부들이 했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강제로 징용ㆍ징병된 과거때문에 아직도 악몽의 세월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포가 있고,치욕스런 정신대의 상흔이 민족의 자존심에 그토록 깊이 새겨져 있는데 멀쩡한 얼굴로 이런 짓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자괴할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범죄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이런 길로 일본 유흥가에 취업한 한국여성이 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공해수출인 셈인데 그걸 돈벌어가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부가 돈을 내고 들어와 준 격이다. 일본남성들의 환락용 대상으로 인력공급하고 인건비 착취를 하고 있다. 그 하수인 노릇을 한국의 「연예협회」대표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은 아주 오래되었고 여러번 물의도 빚어 적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소행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별달리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도 없는 채 이런짓만 하고 있는 「협회」고 간부라면,이런 조직은 없는이만 못하다. 폭력계가 일본폭력과 연계되었음의 실체가 드러난 사실은 더욱 암담하다.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 일본으로서는 한국을 악행의 동반자로 삼는 것은 일석수조의 이득이 있다. 저희 세력을 확장하고 손발노릇같은 허드렛일을 시킬수 있으며 한국을 범죄로 침략하여 유린할수 있고 조직의 국제화를 위해 제 일단계를 갖출수 있게한다. 폭력의 세계란 원색의 힘이 얽혀져 있으므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질기고 무서운 관계가 된다. 한번 묶이면 벗어나지도 못한다. 나라보다도,가족보다도 상위에 있는 복속의 질서로 묶여져 버린다. 아무리 폭력배라지만 한국인이 일본에다 대고 충성을 맹세하며 부하가 되어 종속되기를 자청하고 「야쿠자연수」따위를 하고 그 하부조직을 구성하고,폭력활동을 본격화시켰다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암흑가의 정지작업을 해놓고 「야쿠자」가 우리나라에 진출할때에 그들은 척후병이 될 것이고,마약이나 밀수를 공범할 것이며,문화재 반출이나 재산도피,검은돈의 유통들을 위해 심부름하고,행동소조로 공헌할 것이다. 한국땅이 더럽혀지고 찬탈당하기 위해 장물아비가 되고 범인 은닉처가 되고 교사자가 되기를 집요하게 포기하지 않는 일본이 곁에 있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시련이다. 소경 개천나무라듯,이 어쩔수 없는 운명을 자책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성하여 그 함정에 안 빠지는 길밖에 없다. 단속하고 또 단속하면서 범죄를 줄여가는 일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 외언내언

    일본정부는 연전에 학생교육용으로 일본 역사상의 10명의 위인을 선정한바 있다. 그중 근대편에는 길전송음,서향륭성,이등박문등 조선침략의 원흉들이 모두 들어있다. 일본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의식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군국일본의 팽창정책은 처참한 패전으로 좌절한다. 그래서 이상한 얘기지만 일본엔 지난 80년대까지 국기나 국가가 없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뜻하는 히노마루(일장기)는 「대일본제국」의 이미지가 강하고 국가였던 기미가요(군가대)는 천황의 통치를 찬미하는 내용이라 민주주의에 맞지않는다고해서 공식(법적)으로 인정치않는 것이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1천년전 고가집에 수록된 화가에서 따온것이다. 그 내용이 그야말로 황당무계하다. 천황이 통치하는 시대가 작은돌멩이 바위되어 이끼가 낄정도로 천대만대로 영원히 계속대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흰바탕에 빨간 동그라미 일장기 또한 태양이 나오는 곳(일본)이라는 국호에 합치된다고해서 16세기부터 국기로 사용됐다. ◆그런나라 일본이 최근 슬슬 문제를 제기하더니 급기야각급학교 행사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부르도록 의무화했다. 군국주의 부활을 뜻한다는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을 뿐더러 이를 이행않는 교사들은 교칙위반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했다.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과 강력한 전국교사노조의 계속적인 반발에 미리 쐐기를 박았다는 해석도 된다. ◆패전후엔 그토록 믿었던 힘을 버리고 30여년만에 졸부가 된 일본이 다시금 축적된 힘에 대해 자신과 오만을 갖게된 것같다.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쓰고 북방의 소련만을 가상적으로 여겨왔던 일본인 사회에 「대동아전쟁 긍정론」이 대두된지는 오래다. 전후의 일시적 평화주의에서 국수주의적 국권론자로 회귀한 정치인ㆍ지식인이 얼마든지 있다. 역사왜곡 검정교과서가 합헌이라는 판결도 나왔다. 정말 일본은 그것밖에 안되는가.
  • 헌재 「보안법 한정합헌」결정의 의미

    ◎국가안보ㆍ국민기본권 “고심의 절충”/남북분단 현실 중시…국익위해 존치/추상적용어의 「부분위헌」가능성도 지적/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확대해석에 제동 헌법재판소가 2일 그동안 끊임없이 위헌시비를 일으켰던 국가보안법 제7조1항(반국가단체의 찬양ㆍ고무ㆍ동조등)과 5항(이적표현물소지ㆍ탐독ㆍ반포등)에 대해 「한정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의 남침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이상 이 조항들을 완전히 폐기하기보다는 존치시켜놓은채 「현실」에 맞도록 운용하는 것이 더 국가적 이익에 부합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번 결정은 남북대치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할때 아무런 대체법률없이 이 조항을 포함,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위태롭게 할수 있다는 국민적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결정은 국가보안법이 그 해석이나 적용과정에서 「일부위헌」의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구성원ㆍ활동ㆍ동조ㆍ기타의 방법ㆍ이롭게 한자등 5군데 용어는 지나치게 다의적이고 그 적용범위가 광범위하다』고 지적해 대상범위를 축소하도록 하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위헌」결정을 내려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법률을 확대해석 해서는 안된다고 제동을걸었다. 다시말해 이번 결정으로 수사기관의 엄정한 수사를 재촉구하고 법률구성요건을 보다 강화하도록 함으로써 구속요건에만 해당되면 무조건 구속수사해왔던 관행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은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정부측입장과 「기본권보장」을 앞세우는 재야법조계의 주장을 동시에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당초 지난해 12월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정기국회에 이어 지난2월 3당합당이후의 임시국회에서도 국가보안법개정 법률이 민자당의 당내 이견및 평민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자 더이상 선고를 미룰 명분이 없어 이날 이같은 「한정적 합헌」결정을 하게된 것이다. 임시국회 때 평민당은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하고 「자유민주수호법」이란 대체입법을 제정해야한다고 촉구한 반면 민자당은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 이들 조항의 목적범만을 처벌하자는 내용의 개정법률안을 내놓았었다. 한편 이와같은 당과 국회의 개정방향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은 『당리당략에 의한 법개정은 있을수 없다』면서 『현행 법률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는만큼 계속 유지돼야할 것』이라고 현행법 고수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국가보안법은 보다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나 개정될 전망이다. 실무관계자들은 법개정방향을 놓고 『의원입법이든 정부입법이든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때는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중시한 가운데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려 개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9명가운데 변정수재판관처럼 이 조항에 대해 「전면 위헌」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법조인이나 관계자들의 의견을 입법당국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겨지고있다. 재판부가 이날 「단순한 찬양ㆍ고무ㆍ동조행위」를 형사처벌대상에서 배제시키도록한 결정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의사와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관계없거나 우리의 체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을 때에는 표현의 자유등 기본적 인권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않는다는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분단상황등을 고려해 「한정합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공산침략을 막고 체제를 수호하는데 본뜻을 두고 있는 현행 국가보안법의 기본취지를 인정해준 셈이다. 그러나 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스스로 광의 또는 확대해석을 통한 오ㆍ남용을 막고 인권보장원칙을 철저히 지켜 공무를 수행해 나가는 자세를 확립하는 일이 선결과제로 남는다. 그렇게 할때 비로소 일부에서 「반민주 악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체제유지를 위한 법률로 제몫을 다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함께 법원도 재판을 할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이 인권의 침해를 당했는지,또 올바르게 법률이 적용됐는지를 신중히 심리한뒤 만약 수사기관에서 법을 오ㆍ남용 했음이 확실할 경우 과감하게 「무죄」등을 선고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1항의 적용에 대해 『반국가단체를 고무ㆍ찬양ㆍ동조 그리고 이롭게 하는 행위 모두가 곧바로 국가의 존립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행위일체를 어의대로 해석하여 모두 처벌한다면 합헌적인 행위까지도 처벌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또 『그가운데서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무해한 행위는 처벌에서 배제하고 이에 실질적인 해악을 미칠 위험성이 명백한 경우로 처벌을 축소ㆍ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일 것』이라고 말해 「한정합헌」과 「일부위헌」론을 접목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우리가 지금대로 북방외교와 대북외교를 강화할 경우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한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같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위헌결정」이 아닌 「한정합헌」결정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제7조1항 또는 5항 위반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나 재판에 계류중인 피고인과 이미 형이 확정된 사람들은 아무런 혜택이나 실익을 볼 수 없다.
  • 미,평화적 해결 촉구

    【모스크바ㆍ빌니우스 AP 로이터 연합】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최고 평의회의장은 27일 소련군의 군사작전과 관련,크렘린당국이 리투아니아에 무력을 사용키로 결정한 것으로 우려한다면서 서방측에 지원을 호소했다. 란츠베르기스는 이날 성명을 발표,『민간생활이 위협받을 때에만 무력을 사용할 것』이란 고르바초프의 발언은 곧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의사표시라고 말했다. 란츠베르기스는 소련군의 리투아니아탈영병 검거는 「공공연한 침략행위」라고 비난하고 이는 『소련군이 폭력사용을 허가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리투아니아인들이 「납치」됐다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란츠베르기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리투아니아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미국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더 이상의 군사행동은 미소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영국등 서방국가들도 평화적 해결방안을 촉구했다.
  • 3ㆍ18 총선이후의 국제환경 변화(통독으로 가는 길:4ㆍ끝)

    ◎서방엔 안도감… 소련엔 위기의식/“EC가입ㆍ나토잔류 가능성 제고”간주/“중립화”요구 소,「2+4회담」서 고전할듯/바르샤바기구의 약화ㆍ해체 촉진 시킬수도 혼자서만 갈수없는 길이 바로 통독으로 가는 길이다. 외부적여건이 허락되지 않는한 좀체로 목적지에 도달하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3ㆍ18총선이 통독에의 길을 단축시켜 놓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조기통일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기민당에 표를 모아주었다는,그리하여 통일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는 내부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만 가지고서도 설명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결과가 통독논의와 관련한 국제적 여건에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에 대해 유럽언론들은 한결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2+4」회담의 쾌속진행이 보장됐다』(영 더 타임스지),『이제 통독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불 르 몽드지),『통일독일의 EC가입문제 자동해결』(불 리베 라시옹지)등의 분석이 그것이다. 이번 3ㆍ18총선은 서방지도자들의 통독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계기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선거결과가 드러나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서독 헬무트 콜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중도 우파의 굉장한 승리의날이며 콜총리에게 최대의 가능성이 보장됐다』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특히 런던과 워싱턴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이번 총선의 결과는 바로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잔류 가능성을 높여준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독일의 통일논의가 진척되면서 관심사로 떠오른 부분은 바로 통일독일의 국제정치적 위상이다. 즉 「거대독일」이 앞으로 유럽의 안보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될 것인가가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통일독일의 나토잔류여부로 이어진다. 이문제와 관련하여 콜총리는 총선직후 중립화통일에 반대하며 통일독일은 나토에 든든히 닻을 내리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동독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로타르데 마이치레 기민당당수 역시 나토 회원으로서의 통독방식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소련의 입장은 다르다. 중립화통독을 희망하고 있으며 나토잔류는 용인하지 못하겠다는 자세이다. 서방측과 소련의 상이한 입장은 앞으로 동서간 세력균형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면에서 유럽 최강국가가 될 독일의 중립화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게 서방측의 입장이며 그렇다고 통일독일이 나토에 남는다는 것은 동서세력불균형을 초래,유럽안정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게 소련측 주장이다. 과거 통일독일로부터의 쓰라린 침략의 상처를 안고 있는 프랑스 영국 등 주변의 서방국가들은 통일독일을 나토에 잡아둠으로써 통제의 가능성을 높여 보자는 것이고 소련은 통일독일의 중립화를 통해 나토 및 독일의 군사적 위협을 줄여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러나 총선의 결과로 동독에 보수우파정권이 들어서게됨에 따라 앞으로 통독을 위한 기초적 국제협상의 자리인 「2+4」회담에서 소련은 혼자서 고군분투해야할 입장에 처하게 됐다. 소련은 이같은 불리한 입장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듯 아직은 바르샤바조약 회원국이 분명한 동독의 조급한 통일시도에 대해 경고를 보내면서 중립화통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번 동독의 총선결과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약체화 내지는 해체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우파정권의 동독은 분명 바르샤바조약기구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 이를 받아 개혁을 추진중인 다른 모든 회원국들도 같은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콜총리는 이같은 상황을 고려,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함께 포용하는 새로운 유럽안보질서의 구축을 주장하면서 이를위해 유럽안전보장회의(CSCE)정상회담을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3ㆍ18동독 총선은 통독과 관련한 유럽안보논쟁에 새로운 변수를 제공한 셈이다. 콜총리나 동독의 새 정치지도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유럽통합 안에서의 통독」론은 통일독일의 유럽공동체(EC)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유럽국가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경제를 지배하게 될것이라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통독은 EC의 시장통합 이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서독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주변국들의 시각이 통독작업에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판단,주변국들의 우려를 덜어주고 앞으로 통독논의에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통독작업은 유럽통합이라는 큰 범주안에서 진행될 것임을 거듭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양독의 통일작업이 진척되면서 새로이 부각된 문제가 바로 폴란드와 동독의 경계인 오데르∼나이세 국경선 문제이다. 이 문제는 헬싱키 조약에 따라 현 유럽의 국경선은 불가침성이 인정되고 있으나 그동안 콜총리가 애매한 자세를 보여 당사국인 폴란드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러나 서독측은 국제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현 국경인정을 확약하는 자세로 바뀌었고 동독의 새집권당인 기민당도 선거공약을 통해 오데르∼나이세 국경을 인정한다고 약속했다. 또한 지난 14일 개최된 「2+4」회담에서도 국경논의에 폴란드를 참석시키기로 결정이 나 앞으로 이 문제는 통독협상과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처리될 수 있는터전이 마련된 셈이다. 이와 같이 이번 3ㆍ18총선은 주변 여건에 무관할 수 없는 동서독의 통일논의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다는 측면에서도 그 의의는 매우 크다.
  • 부산 미 문화원 방화/북한,기념 군중집회

    【도쿄 AFP 연합】 북한은 17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8주년을 맞아 평양시내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개최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관영 중앙통신(KCNA)는 이날 집회에 연사로 참석한 최수일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부위원장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남한국민들의 적의와 억압된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 「땅굴」 시인한 북의 겉과 속(사설)

    마약을 밀수출하는 북한선박이 인도네시아에서 적발,억류되고 있다는 1단짜리 외신이 전해지던 날 판문점에선 남침용 땅굴과 「장벽」문제를 놓고 남북한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간단명료하다. 도대체 북한은 휴전선 전역에 걸쳐 그 많은 땅굴을 왜 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그들의 대남방송을 통해 땅굴 굴착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고는 엊그제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는 다시 시치미를 떼고 부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우리측의 제4땅굴 공동조사 제의를 걸고 들어 자기측 조사단 60명을 4대의 헬리콥터에 태워 땅굴조사차 보낼 테니 당장 이를 허용하고 신변을 보장하라고 했다. 역습에 적반하장도 이쯤되면 할말을 잊는다.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장벽논쟁 따위 소모적인 입씨름을 원치 않았다. 제4땅굴 역시 그 굴착경위와 실재를 파악하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남침용」이라는 사실만을 내외에 알리려 했다. 땅굴은 분명히 침략용이지만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전쟁수단으로서의 땅굴은 세상에 폭로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남방송에서 땅굴을 판 사실은 시인했지만 그것은 남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 놨다. 최신무기와 현대장비를 갖춘 「정예병력」이 땅굴을 통해 일거에 휴전선을 돌파하여 40여km 지근거리에 있는 서울을 겨냥하는 데도 그것이 평화통일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은 묻기에도 쑥스럽다. 사실은 사실이어서 워낙 속일 수는 없으니까 대남방송으로는 시인하고 그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연히 병인원을 비무장지대 공중에 띄워 샅샅이 이쪽을 정찰해 보겠다는 속셈이 분명하다. 그런 모습이 본래 그들의 속성이고 실체라고 보면 그만이지만 아무래도 제4땅굴이 퉁겨질 때 이상으로 안타깝고 놀랍다. 지난 70년대초 월남전이 한창일 때 월맹측의 지원을 받는 베트콩이 활용한 것이 이 땅굴이었다. 미국측의 융단폭격으로도 파괴시킬 수 없었던 이 땅굴을 이용한 베트콩들의 기습작전엔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 무장하지 않고 교전하지 않는다는 비무장 산악지대 북쪽의 지하 1백45m에서 남으로 2km나 파내려온 땅굴이 침략용 아닌 평화통일용이라면 그것을 누가 믿겠는가. 땅 위에서는 대화를 하자면서 땅 밑으로는 두더지처럼 땅굴이나 파는 음흉한 계략으로는 이 땅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고 남북관계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상대방의 이해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자신을 열고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대화의 요체이다. 앞과 뒤,겉과 속이 다르면 금방 속셈이 폭로되고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대화에 나서 미소를 보이지만 그 미소와 대화 속에 항상 상대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비수가 감춰져 있다면 협상과 대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4땅굴로 우리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흔들릴 수는 없다. 북한의 어떤 대남전략에도 빈틈없이 대비하되 꾸준히 대화하고 교류하여 신뢰의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 “중국공산당의 들러리”8개 민주당파/홍콩 명보가 밝힌 정당의 실태

    ◎“다당제”구색 맞추기 위한 「형식상의 야당」/당원 30만뿐… 문혁후 사실상 활동 중단 소련과 동구국가들이 공산당 일당전제 포기 방침을 밝히고 민주개혁의 발걸음을 빨리하고 있는 가운데 강택민 당총서기를 비롯한 중국지도자들도 얼마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당제 실시를 강조하고 있다. 또 오는 20일 개막되는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주요의제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다당 합작정치제도 확립방안이 들어있다. 그러나 중국지도층은 『우리의 다당제는 다른 사회주의국가나 서방세계의 것과는 달리 중국현실에 맞는 공산당 영도의 다당제』라고 밝힘으로써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제도임을 쉽게 알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중국에는 공산당 이외에도 형식상의 야당격인 이른바 8개 민주당파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민주당파는 모두 중국정부수립(1949년) 이전에 결성됐고 당원들은 대부분이 지식인ㆍ소자본가들로 국ㆍ공내전당시 민주쟁취의 명분을 내걸고 활약했었다. 장개석이 이끄는 민주당의 부패에 반발,공산당편에 섰던민주당파 인사들은 중국정부 수립당시 고위직에 임명되기도 하는 등 그런대로 정치적 기반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러나 50년대 중반 모택동의 반우파 운동으로 큰 타격을 받은 데 이어 문화혁명과정에서 또 한번 곤욕을 치른 뒤 사실상 활동이 정지됐던 것. 8개 민주당파의 당원수는 모두 30만명으로 공산당원 4천7백만명에 비하면 형편없는 열세이다. 89년말 현재 14명의 민주당파 인사가 행정부처 차관이나 부성장ㆍ부시장직 등을 맡고 있다. 중국당국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어느정도 순응하는 듯한 제스처로 향후 민주당파 인사들을 보다 많이 요직에 임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모든 분야의 주역은 공산당이어서 겉치레의 들러리 신세인 민주당파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론 믿어지지 않고 있다. 홍콩의 중립지 명보가 밝힌 중국내 8개 민주당파의 명세는 다음과 같다. ▷중국 국민당혁명위원회(민혁)◁ 손문의 삼민주의를 계승하기 위해 1948년 국민당에서 이탈한 인사들이 홍콩에 망명,결성했다. 손의 미망인 송경령이 명예주석이던 민혁은 문화혁명때 와해됐다가 78년 다시 조직됐다. 현재 전인대 상무위원회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주학범이 주석. ▷중국민주동맹(민맹)◁ 1941년 당시 중국청년당ㆍ중화민족 해방운동위원회 등을 규합,결성. 50년대 반우파운동에 따른 박해로 많은 인사들이 당직을 버리고 떠났으나 현재 당원이 10만명으로 8개 민주당파 가운데 가장 많다. 주석인 비효통은 중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며 부총리 물망에 올라 있기도 하다. ▷중국민주건국회(민건)◁ 당원은 경제계 인사 및 경제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1945년 중경에서 창당대회를 가진뒤 국민당과 공산당의 항일투쟁을 위한 자금공급에 힘썼으나 국ㆍ공 내전때에는 공산당을 도와 중국 정부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 때문에 중국당국으로부터 박해를 적게 받은 편. 민건의 당원들은 공업ㆍ상업ㆍ운수등 경제 각분야에서 두드러지며 개방ㆍ개혁정책 추진 이후 외자도입의 공로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석 손기맹,당원 5만명 ▷중국치공당◁ 청나라 말기 미국의 중국인들이 결성했던 홍문치공당이 전신이다. 홍문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반대하던 한족의 비밀결사조직. 192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고 일본의 중국본토 침략때 해외화교들로 부터 자금을 모아 중ㆍ공합작에 의한 항일전쟁을 지원. 중국공산당 정부수립후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주석 황인초. ▷중국민주촉진회(민추)◁ 당원가운데 교육ㆍ문화ㆍ출판계에 종사하는 지식인이 많다. 1945년 상해에서 일당전정 폐지ㆍ국민자유권보장 등을 내용으로 한 시국선언과 함께 창당됐다. 주석 뇌결경. ▷중국농공민주당(농공당)◁ 40년대 초반의 중화민주정치단체 연맹 구성원 가운데 의약ㆍ보건위생ㆍ과학기술관련 전문지식인들이 따로 떨어져 나와 결성. 주석 노가석. ▷구삼학사◁ 구성원은 대부분 과학기술ㆍ문화ㆍ교육ㆍ의학계통의 고급 두뇌들. 1944년 창설한 「민주과학좌담회」의 후신. 주석 주배원. ▷대만민주자치동맹(대맹)◁ 대륙에 거주하는 대만계 중국인들의 정당. 1947년 홍콩에서 결성된 뒤 처음에는 국민당을 지지하다가 공산당 노선에 참여했다. 중국내에서 대만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임을 표방.
  • 인구 3백70만중 리투아니아인 80%/오늘의 리투아니아

    ◎단결력 강해 발트3국 독립운동 선도 탈소 독립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이웃 강대국인 독일ㆍ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정복에 저항,폴란드와 연맹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4세기에는 현재 백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상당히 장악,통일된 군주국을 형성시켜 나갔으며 14세기에는 중세유럽의 대표적 제국의 하나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1796년 러시아에 의해 대부분 점령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중인 1915년 9월부터 전쟁말기까지 독일의 발굽아래 지냈다. 독일군이 철수한뒤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포,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39년 8월23일 히틀러­스탈린의 독소밀약으로 다음해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소연방으로 합병되는 등 끝없는 약소국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3백70만 국민가운데 리투아니아인들이 80%를 차지,소연방내의 다른공화국보다 응집력이 강해 단결이잘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내에서 소수집단인 러시아(9%),폴란드(8%),백러시아(2%)인들은 공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마찰 또한 빚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스탈린치하에서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41년 지식인 3만명을 포함,4만5천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된것을 비롯,49년까지 모두 30여만명이 반당분자라는 누명으로 조국을 떠났다. 소련내 리투아니아인들은 3백40만명 정도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인들의 해외이주가 본격화되어 미국과 유럽등지에 약 2백만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조국의 반소ㆍ민족주의운동을 돕고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동질성을 높여주는 또다른 요인은 언어와 종교로,88년 10월 리투아니아의회는 리투아니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톨릭을 신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영토는 6만5천㎢로 한국의 충정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약간 작다. 주산업은 조선ㆍ화학ㆍ제지ㆍ전자ㆍ직물 등이며 감자ㆍ사탕무ㆍ육류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 “휴전선에 장벽은 없었다”/소ㆍ동독등 외신기자 18명 현장확인

    ◎“남침탱크 저지용 구조물”수긍/“이런건 북에도”타스기자 “끄덕” 휴전선 남쪽에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는 이른바 「콘크리트 장벽」은 없다는 사실이 외신기자들에 의해 다시한번 확인됐다. 소련 타스통신의 블라디미르 쿠츠코,동독의 라이너 콜러 등 동구권 기자들을 포함,18명의 외신기자들은 9일 중부전선 ○○부대 OP를 방문,약 30분동안 브리핑을 받은뒤 「장벽」을 직접 살펴본뒤 이 장벽은 김일성이 올 신년사에서 지적한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기 위한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 북한의 기습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대전차용 장애구조물임에 모두가 공감을 표시했으며 또 이 장벽이 휴전선 전체에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외신기자중 가장 주목을 끌었던 사람은 타스통신 도쿄 지국장인 블라디미르 쿠츠코기자. 두툼한 회색 스웨터를 입은 그는 브리핑을 받는 동안 열심히 메모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간간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 북쪽에는 이 지역에 어느정도의 기갑전력이 배치되어 있는가. ▲8개의 전차대대가 포진해 있다. ―남쪽은 어느정도인가. ▲북쪽의 3분의1 수준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장벽은 78년에 구축됐다. 북쪽에도 이런 장벽이 있는가. ▲물론이다. 북쪽은 76년에 콘크리트로 대전차용 장애구조물을 1.2km에 걸쳐 구축했고 80년에는 2.45km에 달하는 또하나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었다. ―방어용 장벽이라면 휴전직후에 만들것이지 왜 20여년이 지난뒤 구축했는가. ▲북한은 해마다 전투력을 증가해왔고 70년대 후반부터는 전체화력의 65%이상을 휴전선 근처에 전진배치해 놓고 있다. 따라서 뒤늦게나마 이같은 방어용 구조물을 만들지 않을수 없었다. ―북한이 기습남침을 시도하리라고 보는가. ▲그렇다. 북한은 틈만있으면 기습남침을 시도할 것이며 또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휴전선 근처에서 지금까지 4개의 남침용 땅굴을 발견했는데 이것도 좋은 증거의 하나이다. 브리핑이 끝난뒤 발아래에 펼쳐져 있는 대전차용 구조물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당신에겐 저것이 베를린 장벽처럼 보이는가,아니면 단순한 방어용 구조물로 보이는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어쨌든 장벽은 장벽아닌가. 남북이 합의하에 양쪽의 장벽을 하루빨리 허물기 바란다. 긴장완화처럼 좋은 정책은 없기 때문이다. 불라디미르기자는 남북에 대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퍽 애쓰는 눈치였고 이 때문에 휴전선 남쪽의 구조물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표정이면서도 자신의 속마음은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 “주한미군 감축계획에도 영향” “제4땅굴,남침도구 확실”

    ◎“미ㆍ일외신 지적 한반도 긴장상태 불변 입증”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와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의 휴전선 부근에서 4일 제4땅굴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서울발로 크게 보도하고 한미군 관계자들은 모두 이 땅굴이 북한측에 의해 남한 침략준비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군 정보총책임자 제임스 그랜트소장의 말을 인용,이번에 발견된 땅굴이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파헤쳐져 온 분명한 물질적 증거가 있다고 밝히고 『북한측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파내려온 것이라는 증거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임스는 이번 제4땅굴이 74년과 75년,78년에 발견됐던 3개의 땅굴보다 더 깊숙이 패어진 땅굴이라는 관계자들의 말을 보도하면서 양구 동북쪽 26㎞쯤에 위치한 군사분계선 근방에서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미 합동조사팀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날 북한이 남침용으로 판 제4땅굴 발견에 관한 기사를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미 양국은 북한이 남침시 이용하기 위해 수년전에 판 비무장지대의 땅굴을 발견했음을 이상훈국방장관이 전국 TV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고 전했다. 【도쿄=강수웅특파원】 일본 언론들은 4일 휴전선부근에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됐다는 한국 국방부 발표내용을 주요기사로 다루고 관심을 표시했다. 도쿄(동경)신문은 이날 북한의 새로운 남침용 땅굴 발견으로 한국의 일반여론이 굳어져 남북대화 분위기를 냉각시키는 한편 주한미군삭감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을 외신면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한 도쿄신문은 새 땅굴 발견이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에 곧바로 이어질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소련및 동유럽의 개혁등 세계적인 긴장완화 무드속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변하지 않고 있음을 새삼 되새겨준다고 말했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제4땅굴 발견 발표와 관련,해설기사에서 『남침땅굴 발견은 한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한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이 신문은 그러나 남침용 땅굴이 20개이상으로 추정되며 이번에 발견된 땅굴에서 최근까지 모터소리가 들렸다는 점에서 지금도 땅을 파고 있을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 “명백한 도발… 즉각 폐쇄를/이국방 담화,전전선 걸친 굴착 판단”

    이상훈국방부장관은 3일 강원도 양구에서 북한의 남침용 제4땅굴이 발견된 것과 관련,『북한이 남침용 땅굴을 휴전선 넘어 비무장지대안에 판 행위는 정전협정 위반임은 물론 명백한 침략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남한은 한반도의 공산화 목표를 포기하고 지금까지 판 남침용 땅굴을 모두 공개하고 자발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장관은 이 담화에서 『오늘 발견된 땅굴 등 북한이 전전선에 걸쳐 판 것으로 판단되는 20여개의 남침용 땅굴은 개전초에 은밀하게 아군 후방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침투시켜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여 그들의 속전속결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장관은 이어 『북한은 비인도적인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폐기하고 핵무기 개발 역시 중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전차부대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한 대전차 방어용 장애물을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기만선전하는 선동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 북한 기습남침 저의 다시 입증/제4땅굴발견 계기로본 속전속결 전략

    ◎시간당 수만명 후방 침투 가능/거의 대규모… 20여개 모두 DMZ에 판 듯 동부전선에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이 또하나 발견돼 우리 국민은 물론,온세계에 다시한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잇단 무장공비의 침투,휴전선에서의 충격,푸에불로호의 납치,판문점에서의 도끼 만행 등 갖가지 도발을 일삼았고 그들이 판 땅굴 또한 이미 3개나 발견돼 우리들의 감각을 상당히 무디게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7년동안은 눈에 두드러진 도발 행위가 별로 없었고 때마침 공산권의 개혁바람을 타고 동서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우리 또한 북방정책의 성공적 진전으로 남북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에 엉뚱하게도 제4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은 지금까지의 3개와 마찬가지로 병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남침용 땅굴로 북한군의 기습 침략 작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방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1백55마일에 걸친 휴전선 남쪽 2㎞ 안에 모두 20여개가있는 것으로 추정,그동안 탐색작업을 꾸준히 벌여오다 이번에 하나를 찾아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남방 한계선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판다음 그곳에서 여러갈래로 분산시켜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땅굴은 차량ㆍ탱크ㆍ야포 등 중장비까지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중무장한 전투병력이 3∼4열로 행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철원의 제2땅굴은 한시간에 3만명의 무장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규모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것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71년 9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에게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파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이른바 「9ㆍ25교시」를 통해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법을 도입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하라』고 지시,1대에 40억∼1백억원에 이르는 스웨덴제 고성능 암반굴착기 16대를도입,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2∼3개의 땅굴을 파도록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용 땅굴을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음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중국산 고성능 폭약을 사용하기도 하고 콤프레셔 등으로 바위를 깨뜨려가며 굴을 뚫었다고 한다.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과 바위 등은 야간에 포장트럭으로 운반,아군측의 SR71이나 U2기 등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땅굴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초 전방의 일산ㆍ문산ㆍ판문점ㆍ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나 민통선 북쪽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땅속에서 대포소리가 나며 화약연기와 안개 등이 피어오르는 등 비무장지대안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하면서 였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북한군측과 지상및 지하의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그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는 굴착기나 착암기 등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국군장병들은 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땅에 대고 소리를 듣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침용 제1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15일 상오 7시35분 경기도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에서 였다. 휴전선 군사분계선 남쪽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던 국군 민경대원들이 지상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나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46m 아래 지하에 거대한 땅굴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어 제2ㆍ제3의 땅굴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는 3일 네번째 땅굴이,그것도 내외신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북한측의 기습남침 의도가 다시한번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김원홍기자〉 □남침용 땅굴 관계 일지 ▲74년11월15일=중서부 전선 고랑포 동북쪽 8㎞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1땅굴 발견 ▲74년11월19일=국회,비무장지대 땅굴발견과 관련 북한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문과 대유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채택. ▲74년11월20일=유엔군,비무장지대 감시조가 북한 터널 정밀탐색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폭발. 김학철해병소령과 벨린저미해군중령 사망 ▲75년3월19일=중부전선 철원 북쪽 13㎞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제2땅굴 발견 ▲75년3월21일=귀순용사 김부성씨(전 남파간첩 호송원)와 류대윤씨(전 북한군 소위)가 육군회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땅굴공사 전반에 걸친 진상 폭로 ▲75년4월1일=제2땅굴 내부전모 내외보도진에 첫 공개 ▲78년10월17일=판문점 남쪽 4㎞에서 제3땅굴 발견 ▲88년9월8일=한미합동 탐사팀이 7개 지역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 시추를 했으나 자연동굴로 밝혀짐 ▲90년1월=동부전선 양구지역에 땅굴 징후 발견 ▲90년3월3일=국내외 보도진 참관아래 제4땅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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