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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포냐”“결행이냐”이라크 무력응징/미펜타곤,군사대응 도상검토부산

    ◎공습·해상봉쇄등 4개안 마련/사우디선 이라크 자극 우려,미 파병에 냉담/“무역로 차단이 최선책” 전문가들 주장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의 무력개입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6일(한국시각 7일)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조치를 전폭 지지하면서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해 이라크 무역로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등 어떠한 군사적 대응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미국은 이날 항모 사라토가호와 전함 위스콘신호가 이끄는 16척의 함대를 지중해로 긴급 출항시켰다. 사라토가호에는 2천4백명의 전투해병을 포함한 1만5천명의 기동타격대가 승선하고 있다. 지중해에선 다른 2척의 항모가 이들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또 인도양에 배치됐던 항모 인디펜던스호는 페르시아만으로 전투기를 발진시키기에 충분한 거리로 근접했다고 군사소식통들은 말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대통령은 부시에게 친서를 보내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점령지 쿠웨이트에서 미국인 28명을 포함하여 수백명의 외국인을 체포함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위기를 높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주말 캠프 데이비드산장에서 미국의 무역사용 방안을 광범위하게 검토한 후 이라크가 사우디를 침략하면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딕 체니국방장관을 사우디에 급파했다. 체니장관 파견은 이라크의 사우디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사우디 파병을 승인받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정보관리들은 이라크가 사우디를 침공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고 백악관에 보고했다. 워싱턴은 이라크의 병력이동에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경우 미국이 사우디내 비행장과 해군시설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워싱턴은 전투기와 폭격기의 배치를 원하고 있다. 체니는 이라크의 위험한 의도와 미국의 사우디 군사시설이용 필요성을 사우디측에 강조할 다량의 정보를 휴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침공이 있기 전엔 사우디가 미군주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만일 지금 사우디가 미군주둔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그것만으로 이라크의 군사개입을 초래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미 CIA(중앙정보국) 추정에 따르면 실전 경험을 가진 1백만명의 병력을 보유한 이라크가 석유 생산시설이 산재한 페르시아만의 사우디 해안선을 따라 침공을 감행할 경우 별 저항없이 3일 만에 사우디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펜타곤이 검토중인 미국의 군사적 대응방안은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에 대한 공중 공격 ▲이라크 폭격 ▲이라크 유조선 통과를 막기 위한 페르시아만 일대의 해상봉쇄 등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라크가 과학자와 외국인들을 고용해 핵및 세균전 무기를 개발중인 비밀시설과 화학무기 지하 저장시설에 대한 폭격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와 중동분석가들은 해상봉쇄가 최선의 방안이며 다른 대안들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CIA국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슐레진저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낼 군사적 방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윌리엄 콜비전CIA국장은 『미국의 군사공격이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봉쇄와(미군이 공격받을 경우) 보복』을 주장했다. 조지 타운대 교수 로버트 리에버는 『선제 보복의 공중공격과 해상봉쇄는 지상작전 보다 선호할 만하다』면서 『지상군 사용은 아주 긴급할 때로만 국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사전문가들은 함재기인 A­6 경폭격기와 유럽 발진 제트 폭격기는 이라크내 주요 목표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같은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 부시는 유럽 맹방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1986년 리비아 폭격때 동원돼 F­111기는 영국 기지에서 발진한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지는 6일자 사설에서 『지난 주말에 부시대통령이 미국인 소개와 미대사관 보호를 위해 해병대를 리베리아에 투입한 것은 정당한 조치였다』고 평가하면서 『무력은 잘 쓰면 더 큰 폭력을 막는다』는 맺는 말로써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력응징을 은근히 종용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바그다드 봉쇄” 실효 거둘까/각국의 제재조치 현황과 전망

    ◎일등 기술·차관 중단,복구사업 타격/사태 장기화되면 유가상승 부작용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의 위기가 세계 각국의 대이라크 제재조치 강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라크응징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는 물론 미국. 이스라엘과 온건아랍국을 주축으로 하여 미국의 이익이 보장되는 중동질서를 구축해 온 미국으로서는 이라크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 더하여 탈냉전시대에 세계평화 유지의 시금석이 될 이번 사건에 소련·중국·EC각국 및 일본 등이 침략을 규탄하며 제재조치에 동참하고 있고 6일에는 유엔안보리가 전세계적인 제재조치를 결의함으로써 대이라크 제재조치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 실행됐거나 고려되고 있는 제재조치는 크게 보아 외교·경제·군사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외교적 측면에서 7일 현재 쿠웨이트의 꼭두각시 정부를 인정한 나라는 단 한곳도 없다. 세계 주요국가들이 쿠웨이트의 주권회복과 이라크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어 외교적 제재는일단 성공적이다. 외교적 제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경제제재. 이라크의 침공 후 가장 먼저 취해진 조치가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해외자산 동결. 해외자산 보다는 채무(약 7백억달러)가 많은 이라크는 이 조치로 받을 타격이 크지 않지만 1천억달러의 자산을 운용,연간 88억달러 가량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쿠웨이트로서는 외화수입의 절반이상을 잃게 된다. 쿠웨이트의 1년 석유수출수입이 77억달러 정도임을 고려하면 자산동결조치가 갖는 위력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산 원유의 수입금지조치. 이라크는 하루 2백70만배럴 가량을 터키 세이한항으로 연결되는 키르쿠크라인(1백60만배럴)과 사우디 얀부항으로 연결되는 얀부라인(80만배럴)을 통해 90%,나머지는 페르시아만을 통해 수출한다. 쿠웨이트는 하루 1백50만배럴 가운데 40만배럴을 페르시아만을 통해 수출한다. 양국의 석유수출금액은 88년에 각각 1백35억달러,77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라크산 원유의 60∼70%,쿠웨이트산 원유의 80%가 북미 유럽 일본등지로 수출된다.6일 이라크가 키르쿠크라인을 통한 원유수출을 15% 수준으로 줄인다고 발표한 것은 벌써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세계 주요국가들은 대이라크·쿠웨이트교역 전면중단의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어 공산품과 식량을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5일 발표한 투자 차관기술 공여금지는 대이라크 경제제재조치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치. 이란·이라크전쟁 복구사업,야심적인 건설계획(특히 산유 정유 시설확충)이 크게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라크가 궁지에 몰리게 될 경우 7백억달러의 외채를 상환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우려가 있다. 또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수입이 중단되면 세계원유시장은 하루 3백50만 내지 4백만배럴의 원유공급이 모자라게 된다. 과잉재고와 다른 산유국의 증산으로 메워도 하루 1백만배럴은 모자랄 것으로 뉴욕의 석유산업연구재단은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석유값이 당장 오르게 되고 연말이 돼서야 30달러선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예측도 뒤따른다. 현재 경기후퇴 우려가 높은 미국 경제는 쿠웨이트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 한 경제침체를 겪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일부 전략가들이 내놓은 대안은 군사력을 동원한 철저한 봉쇄조치로 이라크를 단기간내에 굴복시키는 것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군사조치는 지상군을 동원한 직접 개입,공군력을 이용한 이라크 공습,해군력으로 이라크·쿠웨이트의 석유수출을 막기 위한 운송봉쇄조치등이다. 이 가운데 지상군 동원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확전가능성,그리고 동원에 수주일이 필요한 시간적 제한등으로 채택가능성이 희박하다. 공군력 동원의 경우도 레스 애스핀 미하원 군사위위원장은 성공가능성을 4대1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상봉쇄는 필요하고 또 효과도 클 것으로 평가되며 실제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원유가가 급상승하고 대이라크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공동전선에 균열이 생긴다면(과거 대이란 경제봉쇄에서 보는 것처럼)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의외로 이라크의 계산대로 갈 가능성이 아주 없지도 않아 보인다. 또 제재조치가 효과를 볼 경우에도 이라크가 「옥쇄」를 감행할 가능성에 서방세계는 우려하고 있다.〈강석진기자〉 □각국의 이라크 제재조치 ●경제 유엔 전세계적인 대이라크 무역금지 결의 미국 이라크·쿠웨이트 자산동결,이라크와의 무역금지 소련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찬성 일본 이라크·쿠웨이트 자산동결,수출과 투자,기술공여 전면 중단 EC 이라크산 원유수입 중단 서독 대이라크 수출 전면금지 프랑스 이라크·쿠웨이트 자산동결 영국 쿠웨이트 자산동결 중국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지지 ●군사 유엔 무기판매금지 결의 미국 항공모함 3척 파견배치,신속배치군(RDF) 파견,B52기 배치,미군 사우디 진주 추진 소련 대이라크 무기판매 중지 EC 대이라크 무기판매 금지 프랑스 페르시아만에 군함 파견,대이라크 무기판매 중단 영국 페르시아만에 전함대기 조치 중국 대이라크 무기 금수
  • 이라크,미 공격 대비 수백만 주민 소개훈련

    ◎쿠웨이트 저항군,대규모 시가전 돌입/이라크 “금수 계속되면 철군 중단”엄포/이란ㆍ시리아,중립적태도 바꿔 즉각 철수 촉구/닷새째 접어든 「페만위기」의 현장 ○당간부에 소총 지급 ○…이라크 정부는 6일 미국의 침략에 대비해 수도 바그다드와 몇개 지방도시에서 대규모 주민소개훈련을 실시했다. 최소한 24시간에서 48시간 계속된 이번 주민소개훈련에는 수백만명의 주민이 빠짐없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앞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의 침략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와 함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집권 바트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수만명에게 자동소총을 지급했다. ○…이라크 정부는 6일 국제사회가 이라크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하면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는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날 압둘 라자크 알 하시미 파리주재 이라크 대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경고하고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어떤 위협이 있으면 이라크군의 철수는 중단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총궐기등 호소 ○…자비르 알 아메드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은 쿠웨이트 국민들에게 이라크의 점령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고 쿠웨이트의 KUNA통신이 5일 보도했다. KUNA통신 파리지부는 이날 알 사바 국왕의 말을 인용,『침략자 이라크는 쿠웨이트 국민의 단결을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은 6일 이란과 시리아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더이상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양국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로부터 전면 철수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벨라야티 외무장관은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이번 사태에 관한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전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유감스런 사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우리는 이번 침공결과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시리아의 형제들과 게속 협력하여 대처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자 철군현장 초청 ○…5일 국경을 넘어 본국으로 철수한 이라크군 장비는 73대의 장갑차 및 탱크 외에도 6대의 트럭에 실린 소련제 스쿠드 지대지미사일과 2대의 트럭에 실린 대공미사일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군 철수행렬이 북부 국경쪽으로 천천히 이동하자 상공에는 무장 헬리콥터들이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이라크 문공부는 철군장면을 목격토록 하기 위해 바그다드주재 기자 10여명을 철수현장으로 데려오기도. ○…6일 수도 쿠웨이트시에서 쿠웨이트저항단체와 이라크침공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고 중국의 신화사통신 특파원이 보도. 리 시싱특파원은 『쿠웨이트시내 번화가인 카이판지역에서 이라크군과 자체조직된 쿠웨이트저항군 사이에 시가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의 사실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보도는 저항단체들은 시내에서 반이라크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외에 확성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이라크 항전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 진주군병력의 1단계 철수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라크군 탱크와 장갑차 및 미사일 발사대의 행렬이 5일 북쪽 국경을 넘어 본국으로 귀환했다. 섭씨 50도나 되는열파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이라크병사들은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어갔으며 2백여명의 환호하는 이라크인들에게 정복자처럼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 침공을 통해 군사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을는지 모르나 이에 따른 서방 세계의 원유 금수5치가 지속되면 이라크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군내부로부터의 쿠데타를 촉발시킬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정치분석가들이 6일 밝혔다.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의 송유관을 폐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터키는 6일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 나토회의에서 페르시아만사태에 대한 종전의 중립적 입장을 바꿔 이라크 송유관 폐쇄조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일인 2백명 발묶여 ○…일본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한지 하루 뒤인 6일 현재 총 1백82명의 일본인들이 바그다드 시내의 호텔들에 발이 묶여 있다고 외무성의 한 관리가 이날 말했다. 관광객 1백40명을 포함한 이들 일본인 방문객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이루어진 지난 2일 이후부터 출국 항공기편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는 이라크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한 나라의 국민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일본 외무성의 한 관리는 이들 단기 방문자 외에 3백7명의 일본인이 업무차,또는 다른 장기 목적으로 이라크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으며 다른 한 관리는 2백72명의 일본인이 쿠웨이트에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라크강점 사흘째… 긴장의 현장

    ◎“항전 호소” 쿠웨이트 지하방송 돌연 중단/쿠웨이트 국방ㆍ내무 전투중 부상 입원/전국회의장,괴뢰정권의 내각구성 제의 일축/이라크,참전 거부 장교 1백여명 처형 ○…이라크 침략군에 항전중인 쿠웨이트 저항세력의 목소리인 지하 라디오 방송이 3일 돌연 방송을 중단했다.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이 개입해줄 것을 감정적으로 호소해온 후나 쿠웨이트 라디오 방송은 이날 상오 11시11분쯤 갑자기 방송이 중단됐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 라디오 방송은 쿠웨이트 수도 남쪽의 비밀장소에 전파를 쏘아 왔는데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 국경 근처까지 진격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군이 이 방송국을 점령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후들어 교전 중단 ○…쿠웨이트 저항군과 이라크 침공군은 3일 상오 한때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하오에 들어 양측의 교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현재 쿠웨이트시 일대에는 불안스런 긴장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가지 알 라이제스 영국 주재 쿠웨이트 대사는 이날 양측간에 치열한 교전이있었으며 저항군측이 이라크군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쉐라톤 호텔을 공격중이라고 말했으나 한 주민은 양측의 응사와 포격전이 하오들어 중단됐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통금은 없지만 아무도 거리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곳에 나돌고 있는 추측들에 의하면 지난 2일 이후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쿠웨이트의 셰이크 나와프 알 아마드 국방장관은 전투중 부상,입원해 있으며 셰이크 살렘 삽자 알 아마드 내부장관도 방어작전중 부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관자산도 몰수 ○…이라크는 3일 쿠웨이트에 대한 군사적 장악을 더욱 굳히는 한편 왕가 및 그 친인척,각료들의 재산에 대한 신속한 접수작업에 들어갔다. 쿠웨이트 임시정부는 집권 최초의 포고령을 통해 자비르 알아마드 알 사바 국왕과 사드 알압둘라 알 사바 왕세자,나와프 알아메드 알자베르 국방장관 등 왕가ㆍ각료들의 자산을 몰수한다고 발표했다. 임시정부는 미국ㆍ유엔ㆍ아랍연맹에 나가 있는 쿠웨이트 외교대표부를 『멸망한 정권의 고용인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자산도 몰수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이같은 조치들은 국왕과 그 「도당」들이 쾌락추구에 돈을 낭비하고 의심스런 상대방들에 자금을 맡겨두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비르 알아마드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이 현재 쿠웨이트 남부지방에서 이라크군에 맞설 저항세력을 규합하고 있다고 살렘 자비르 알아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왕세자가 3일 스위스 라디오 방송에 밝혔다. 지난 87년 이후 유엔주재 쿠웨이트 대사직을 맡고 있는 알 사바 왕세자는 스위스 로망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부친인 알 사바 국왕이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과 가까운 쿠웨이트 남부지방에서 이라크군에 대항할 저항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쿠웨이트군 병력의 일부와 민간인 지지자들을 규합했다고 덧붙였다. ○반이라크인사 체포 ○…침공 이틀째인 3일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데 이어 서부와 남부의 항구와 원유수송 터미널 등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목격자들은 이라크 지상군 병력이 포병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전차와 트럭을 몰고 밤새 쿠웨이트 서부 알슈와 이흐항과 알 아흐마다의 원유수송 터미널 방면으로 이동했으며 항구 쪽에서 여러차례의 큰 폭발이 있었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의 반체제 지도자로서 최근 총선을 거부한 전 국회의장 아메드 알 사둔은 이라크로부터 정부구성을 위촉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랍 외교관들은 이라크가 이라크 태생 쿠웨이트인들을 각료감으로 물색중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당국은 3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침공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던 1백20명의 장교를 처형했다고 이집트의 반관영 일간지 알 아람지가 4일 보도. 이 신문은 동사 바그다드 주재 통신원의 말을 인용,이들에 대한 사형언도가 군사재판에 의해 내려졌으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집행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에 거주하고 있던 이라크인 반정부 인사 수백명이 이라크 당국에 의해 체포돼 일부는 이라크로 이송,처형될 처지에 놓여 있다고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가 3일 밝혔다. 국제사면위는 성명을 통해 지난 2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후 이라크인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거가 진행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히고 체포된뒤 이라크로 이송된 사람들은 수감될 것이 확실하고 고문당할 위험이 있으며 일부는 처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 솜론 이스라엘 육군 참모총장은 2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 충동적이고 격렬하며 극단적이라는 인물평과 함께 유태교 국가에까지 손을 뻗칠 경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 모세 아렌스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라크 군대가 요르단으로 진격할 경우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일침. ○「침공」 4년전에 계획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1986년 계획됐다고 파키스탄의 장지가 정통한 외교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이 신문은 「쿠웨이트작전」이 지난 86년 쿠웨이트 국왕이 의회를 해산했을 때 마지막으로 성안됐다고 전했다. 이라크는 당시 의회 해산은 「쿠웨이트를 망치려는 외국의 음모」라고 비난했었다.
  • 페만 위기에 대한 미소 공동대처(사설)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군을 시작할 것이라는 보도와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등 인접국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발표된 미국과 소련의 대이라크 공동제재 합의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도전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용납치 않겠다는 두 강국의 의지표시로 보인다. 미소 양국의 공동대처는 냉전이후 지역분쟁에 대한 초강대국간 최초의 공동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것은 두 나라 관계가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얼마나 밀접해 있는가와 지역분쟁에서 서로의 이해를 초월하겠다는 확고한 의사표명으로 풀이되고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미소 양국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두 나라의 이익보호를 위해 분쟁에 개입해왔다. 그래서 이들 지역분쟁은 사실상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다. 두 나라는 분쟁의 해결보다는 경쟁적으로 분쟁국을 지원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기까지했다. 이스라엘­아랍 분쟁,아프가니스탄,베트남전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냉전체제가 공존체제로 바뀌면서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지역분쟁 해소가 절실하다는 데 미소는 공통인식을 갖게 됐다. 캄보디아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대베트남 대화용의나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풀기 위한 미소 외무장관회담 등이 새 질서 구축을 위해 보여준 그들의 실제 노력이었다. 미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이 이와같은 국제적인 평화공존무드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데에 공동인식과 함께 이를 새로운 사태발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당사국의 영토분쟁뿐만 아니라 중동정세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변화인 것이다. 이라크의 패권 야망을 억제할 수 있는 국제적인 노력의 강구가 절실히 요구됐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후 막강한 군사력 증강을 시도,최근에는 이스라엘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중거리미사일과 화학무기를 보유했고 핵 병기 개발도 목전에 두고 있어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나토회원국들에도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이번 도발을 가리켜 히틀러가 한 나라씩 점령해가며 유럽을 집어삼킨 1930년대에 비유하면서 이라크의 새로운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또 이라크가 모험주의를 앞세울 경우 페르시아만 역내에는 이에 대응할 방도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회원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이는 회원국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는 걸프협력협의회(GCC)는 있으나마나 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이라크 행동에 따라 중동은 새로운 전쟁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이 이번 사태에 함께 나서기로 한 것도 그러한 가능성에도 미리 제동을 걸려는 것이다. 미소의 공동제재가 만에 하나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화해무드로 발생한 힘의 공백을 틈타 지역분쟁이 새로 발발하거나 기존의 분쟁이 악화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두 나라의 협조체제는 지역안보,나아가서는 지구촌 평화를 위해 그 기능을 시험받는 첫 경우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미소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전제할 때 두 나라의 분쟁대처 공동노력은 우리에게도 뜻하는 바 적지않은 것이다.
  • “이라크경제 봉쇄”… 미,고심의 선택/중동사태… 워싱턴대응의 배경

    ◎전면전 우려,군사개입에 신중/해역좁아 항모출동 곤란… 자국민 안전 고려/서방에 통상중지등 동참 요청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일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 침공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부시대통령은 이라크의 행위를 「노골적인 침략」이라고 비난하고 『쿠웨이트 지도부가 정당한 장소에 복원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아침 워싱턴에서 미국내 이라크 재산을 동결하고 이라크로부터 원유를 포함한 모든 상품의 수입을 봉쇄시키는 명령에 서명한 후 콜로라도의 아스펜에서 방미중인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가진 공동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워싱턴 주재 쿠웨이트 대사가 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한 데 대한 질문에 『우리는 어떠한(군사개입) 방안도 결정하지 않았으나 어떠한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수시간적 워싱턴에서 있었던 그의 발언,즉 『군사력 사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와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은 이라크의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기에 유용한 군사적 대응 방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갖고 있는 실질적인 군사력은 전투기 80대를 탑재한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 뿐이다. 전투함 6척이 호위하는 인디펜던스호는 지금 대이라크 공격권 밖인 인도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항진중이다. 페르시아만 같은 좁은 수역에서 항모는 너무 큰 표적이 되기 때문에 펜타곤은 지금까지 항모를 페르시아만내로 진입시킨 적이 없다. 미국의 이 정책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펜타곤 관계자들은 말했다. 미국은 페르시아만에 중동 기동타격대로 알려진 8척의 전함을 파견하고 있을 뿐 지상군은 갖고 있지 않다. 가장 가까이 있는 미 지상군은 지중해의 해병상륙부대로서,이 부대는 병력이 2천명에 불과하다. 쿠웨이트 점령에 14개 사단 10여명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는 지상군 1백만명과 탱크 5천5백대를 보유하고 있다. 바꿔말해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해 신속히 파병할 수 있는 군대를 인근에 가지고 있지 않다.필요한 규모의 군대를 집결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 펜타곤의 얘기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중 공격도 시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이 항모 탑재기 80대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이라크는 5백대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나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군에 대해 공중공격을 가할 경우 이라크와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쿠웨이트는 미국의 오랜 우방이긴 하지만 미국과 쿠웨이트간에는 방위조약이 없다. 그렇다면 섣불리 개입해서 분쟁에 휘말려들기 보다 다른 방법에 의한 사태 해결을 미국으로선 생각할 법하다. 쿠웨이트내 미국인 3천8백명의 안전문제도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사정때문에 미국은 쿠웨이트의 애타는 무력개입 호소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자세로 이번 사태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우선 대이라크 경제제재와 국제적 압력을 통해 사태 해결을 시도중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이라크 정부가 이번 사태를 쿠웨이트내 임시정부의 요청에 의한 내정문제라고 주장하자 국무부는 이를 「완전한 날조」라고 반박,이라크의 침공 정당화에 쐐기를 박았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아랍권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이라크를 비난하고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을 비롯한 아랍지도자들과 전화회담을 가진 후 아랍의 자체 해결 노력에 고무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련이 이라크에 대한 무기공급을 중단했음을 상기시켰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몽고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중 모스크바에 들러 소련과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라크는 미국에 6번째로 큰 원유 공급국이다. 지난해 미국은 수입원유의 6%를 이라크에서 들여왔으며 올 상반기에 이 수치는 8%로 늘어났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서구가 이에 동참할 경우 그 효과가 증폭될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나토회원국들에게 미국의뒤를 따라 이라크 재산을 동결하고 이라크와의 통상관계를 전면 중단하도록 촉구하고 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미·소,대이라크 공동제재/양국 외무 성명

    ◎우선 통상거래·무기공급 않기로/나토에 원유수입 중단 촉구/「재산동결」 9개국으로 확산 【워싱턴·모스크바·쿠웨이트 AP AFP UPI 로이터 연합】 미국은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제재조치로 이라크와의 모든 통상거래를 중단하고 미국내 이라크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등 우방들에 대해서도 이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은 또 이번 사태와 관련,양국의 입장을 밝히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으로 있는등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동서 양진영의 공동대응조치 마련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유엔을 통한 이라크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조치의 추진을 시사했다. 소련은 이에앞서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외무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라크에 대한 무기공급을 중단했다. 서독·일본·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스위스도 미·영·프랑스가 전날 취한 경제제재조치에 이어 3일 대이라크 제안에 동참하고 나섰다. 미국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번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조시 부시 미대통령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라고 규탄하고 이라크산 원유의 수입을 포함,이라크와의 모든 통상거래를 중단시키는 한편 미국내 이라크 자산 동결조치를 내렸다. 그는 또 이번 사태 발발후 긴급히 접촉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왕 등 아랍권 지도자들이 아랍권의 중재노력이 진행될 수 있도록 미국의 자제와 잠시간의 시간적 여유를 요청해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자신은 『이번 사태가 인접국을 침공해 유엔헌장을 위반하는등 지역분쟁의 차원을 넘는 것임을 분명히했다』고 밝혔다. 미 상원은 부시대통령의 대이라크 제재조치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97대0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미 하원 역시 2억달러에 달하는 대이라크 수출입은행 차관 중단을 4백16대0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한편 나토의 한 소식통은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해 이라크산 원유 구매중단과 함께 이라크및 쿠웨이트 자산 동결조치등을 취해 줄 것을 요구한 점과 관련,나토 동맹국들이 3일 회의를 열어제재조치 실시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3일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의 방소와 때맞춰 소 관영 타스통신은 『한때 소련의 동맹국이었던 나라가 긴장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며 이라크를 강하게 비난했다. 소련의 반관영 「아프리카­아시아 연대위원회」도 이례적으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격렬히 비난하며 『즉각적인 제재조치를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 쿠웨이트,괴뢰ㆍ망명정부 대립 가능성/이라크 점령이후 어떻게 되나

    ◎얼굴없는 급조정부 통치력 의문 괴뢰정부/국제적 지원얻어 영토회복 총력 망명정부/국민들도 망명왕정 지지… 국외투쟁 장기화될듯 불과 다섯시간만에 정부가 무너져 버린 쿠웨이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쿠웨이트는 면적 1만7천8백㎢에 인구는 1백80만명. 이 가운데 쿠웨이트인은 불과 70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아랍계,혹은 스리랑카 등지로부터 취업 입국한 외국인으로 구성된 작은 나라이지만 1천억달러로 추산되는 대외자산과 9백45억배럴에 달하는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부국이다. 쿠웨이트산 석유의 공급량과 대외자산운용에 따라 세계석유시장과 금융시장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쿠웨이트 정정의 향방은 주목되고 있다. 쿠웨이트의 앞날을 좌우할 요소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이라크의 점령정책,둘째 미국ㆍ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들의 반응,셋째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투쟁 계속」을 다짐하고 있는 국왕세력의 움직임 등이다. 이라크는 점령 몇시간만에 「신쿠웨이트 자유임시정부」라는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워 성명을 발표케 함으로써 쿠웨이트정부 대신 괴뢰정권을 세워 이들을 통한 문제해결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꼭두각시정부는 2일 셰이크 자비르 알 아마드 알 사바국왕 및 그의 일족인 총리(왕세자)ㆍ전왕ㆍ재무장관ㆍ국방장관의 재산을 몰수하고 의회를 해산시켰다. 또 국경문제는 이라크와 「형제애」에 기초해 해결하겠다고 선언,이라크의 뜻대로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제원유가 상승을 꾀하고 있는 이라크정부가 쿠웨이트의 석유생산을 일방적으로 감축시키려 할 가능성도 크다. 이 꼭두각시정부는 아직은 구성인물이 단 한명도 밝혀지지 않은 실체없는 정부. 이라크의 무력지원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구성된다 하더라도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정부나 베트남침공하에 세워진 캄보디아 프놈펜정부처럼 국제적 고립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이구동성으로 이라크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도 쿠웨이트의 앞날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은 이라크의 자국내 자산을동결하는 한편 꼭두각시정부가 인출하지 못하도록 쿠웨이트자산도 동결시켰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조치로 쿠웨이트는 1천억달러가 넘는 해외자산의 상당부분을 당분간 운용하기 어렵게 됐다. 따라서 이라크의 압력하에 석유생산이 감축되고 해외자산이 동결되게 된다면 쿠웨이트의 경제사정은 현저히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우디로 피신한 국왕등은 쿠웨이트가 가까운 접경지역에 머물면서 계속 투쟁할 것을 다짐하고 외국의 군사개입을 호소하고 있다. 쿠웨이트 왕가는 2백34년전 무력이 아닌 합의에 의해 왕가를 창설,쿠웨이트를 다스려 왔으며 아랍권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언론 자유와 의회정치를 허용한 전통을 갖고 있다. 지난 75년 석유국유화를 주장하는 아랍민족주의 운동(ANM)이 결성되고 83,86,87년 친이란세력이 폭탄테러사건을 일으킨 적도 있으며 86년에는 의회가 해산되는 등 정정불안을 겪기도 했지만 쿠웨이트국민의 반왕정감정은 높지 않다. 따라서 국왕이 이끄는 망명정부에 대한 쿠웨이트국민들의 지지는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에서도 꼭두각시정부보다는 국왕의 망명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분간 쿠웨이트는 실질적 통치행위는 하지만 정통성은 결여된 친이라크 괴뢰정부와 국왕의 망명정부가 대립하는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 아랍권 맹주 꿈꾸는 후세인/대이란 전쟁 주도… 권력기반 다져

    ◎중동패권 거머쥐려 침략도 불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줄곧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 온 중동의 야심가. 자신은 스스로를 「바그다드의 기사」로 칭하고 있으나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부른다.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스강변의 티크리트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읜채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혁명당인 바트당에 입당했으며 1956년에는 친영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59년 당시의 압델 카림 카셈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귀국했으며 9개월후 바트당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자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66년 석방된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재집권하자 혁명위원회 부의장겸 부통령으로 임명되는 등 정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했다. 79년 42세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총리ㆍ총사령관ㆍ혁명위원회 위원장ㆍ바트당총재직을 모두 장악,독재권력의 기반을 확보했다. 중동패권 장악의 꿈을 가진 그는 지난 75년 이란ㆍ이라크 양국이 체결한 수로협정이 불평등하다며 1980년 혁명직후의 이란을 침공,중동역사상 가장 긴 8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란의 반격으로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미국 및 이란혁명을 두려워 하는 온건 아랍국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지원,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정치술수로 오히려 정권기반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철권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우상화를 꾀하는 등 절대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뒤에도 중동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해 군비증강을 부르짖었으며 특히 핵무기ㆍ화학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두어 왔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기간중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핵무기와 화학무기개발용 부품수입 문제로 미국ㆍ영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왔다. 그의 대통령취임후 모두 7번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다. 수니파 회교도인 그는 1963년 사촌인 사지다 톨파여사와 결혼,5자녀를 두고 있다.
  • 미,“불법 침략행위”강력 규탄/이라크침공 각국반응

    ◎소 침략군 무조건 즉각철수 촉구/중 군사행동 중지,평화해결 호소 미국은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모든 선택방안들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로만 포파뒤크 백악관대변인은 성명을 발표,『우리는 이같은 불법적인 침공행위를 규탄토록 전세계에 촉구한다』고 말하고 『미국은 이라크의 침략행위에 대한 대응조치로 모든 선택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소련 영국 및 나토도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유엔헌장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격렬히 비난하는 한편 이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유리 그레미츠키 소련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뉴스브리핑을 통해 밝힌 성명에서 『소련은 그 어떠한 분쟁도 무력사용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고 『소련정부는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가 페르시아만의 긴장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확신한다』고 논평했다. 또 영국도 이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 지역의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밝히면서 격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란이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유엔헌장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군대를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철수시킬 것을 이라크에 촉구했다. 중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군사적행동을 중지하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호소했다. 중국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라크 및 쿠웨이트는 모두 중국의 우방이라고 말하고 중국정부는 이번 사태를 크게 우려한다면서 그같이 호소했다. ◎유엔안보리 채택 결의안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유엔 안보리는 2일 아침 이라크의 대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신랄히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음은 결의안의 전문이다.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가 1990년 8월2일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한 것으로 규정한다. 1,안보리는 유엔헌장39조와 40조에 따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한다. 2,이라크는 아무 조건없이 90년 8월1일의 상태로 전병력을 즉각 철수시켜야 한다. 3,양국은 분쟁의 해결을 위해 즉각 회담을 시작해야 하며 회담을 지원하기 위한 아랍연맹등의 노력을 지지한다. 4,이같은 안보리의 결의안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만나 대책을 논의하기로 한다.
  • 3부장관 대북제의 내용

    ◎통일원/한라∼백두산 민족대행진 환영 북한이 끝내 전제조건을 앞세워 교류를 회피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교류를 성사시키려는 일념에서 그러한 것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가지고 북한측과 만나 협의할 것이다. 오는 26일의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참가를 위한 북한 대표들과 해외동포들이 우리측 지역방문을 신청할 경우 이를 허용할 것이다. 또 이 대회와 관련,오는 8월15일이전에 우리측 인사들의 북한방문을 허용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범민족대회에 우리측의 참가도 허용할 것이며,필요하다면 판문점이외의 장소를 제공할 용의도 있다. 또한 범민족대회 참가자들이 조국통일촉진대행진을 위해 백두산을 출발,판문점을 거쳐 한라산까지 가는 것을 환영하며 우리측 인사들이 한라산을 출발하여 판문점을 거쳐 백두산까지 가는 것도 허용할 것이다. 정부는 북한당국이 우리측 인사들의 입북과 행진을 조건없이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한 무사귀환과 편의제공을 보장해주기를 기대한다. 범민족대회가 그 명칭과성격에 맞는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화합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며 따라서 이 대회에 특정단체나 인사들만이 아닌 각계각층의 민족성원들이 광범위하게 참가,남북 상호간 비방하거나 자극하지 말고 상호신뢰와 이해를 증진시켜 남북 관계개선과 통일에 도움이 되는 순수한 모임이 돼야 할 것이다. ◎법무부/북한 「안전관계법」부터 철폐를 북한은 국가보안법이 남북교류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 법은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는 외부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안보형사법일 뿐이며 결코 북한을 포함한 그 누구를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법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기도하지 않고 대남 적화노선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의 어느 조항도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 없다. 또한 최근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남북간 인적 왕래나 물적 교역이 자유롭게 이어질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이제 남북교류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이와함께 북한은 밀입북과 관련하여 구속된 소위 「민주인사」의 석방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적법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북한이 우리의 법ㆍ제도나 구속자문제를 전제조건으로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을 하기 전에 주민들의 여행제한과 혹독한 안전관계형사법을 철폐하고 무차별 체포,구금으로 수용되어 있는 수많은 사상범들을 먼저 석방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일의 환경을 조성하고 남북교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남북의 법무당국자들이 만나서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위해 남북의 실무자 각 3명이 27일 상오 10시에 통일각이나 평화의 집 가운데 북한측이 원하는 장소에서 만날 것을 제의한다. ◎국방부/남북지역 자유로운 조사 보장 노태우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민족 대교류」는 기필코 실현되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그동안 북한측이 주장해온 콘크리트장벽 공동조사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겠다. 이미 국내외 통신을 통해 밝혀진 대로 우리측 장벽은 인원차단용이 아니라 남북한 공히 설치해 놓은 대전차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설치한 대전차장애물 지역은 30㎞에 불과한 반면 북한은 우리의 2배가 넘는 70여㎞의 대전차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계철조망도 우리는 2중으로 설치하였으나 북한은 고압전기철조망을 포함,5∼6중으로 설치하여 북한주민과 장병들의 귀순을 적극 차단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측은 지난 2월19일과 3월22일 두차례에 거쳐 우리측 장벽만을 조사하자고 일방적으로 제의해온 바 있다. 이에 우리측은 북한의 제의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북측이 자기들이 원하는 지역은 어느 곳이든지 와서 조사하는 대신에 우리도 형평의 원칙에 따라 북한지역을 자유로이 조사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북한이 남한에서 굴착했다고 주장하는 땅굴까지도 확대,공개적으로 조사할 것을 제의한다. 이를위해 상호 군사요원 3명으로 구성된 실무접촉을 27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갖자.
  • 판문점 통과 어떻게 하나

    ◎유엔사에 통고… 본인 여부 확인/85년 고향방문땐 양측서 사열 남북한 동포들이 판문점을 통해 자유로운 통행을 하기 위해서는 휴전협정상 협정당사자인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조선인민군·중국의용군)대표자의 판문점통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판문점 개방을 선언했기 때문에 별도의 합의는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휴전협정이후 판문점에 대한 경비와 운영은 유엔군이 맡고 있기 때문에 내외국인의 판문점 통과와 출입은 우리정부가 유엔군사령부에 사전통보해야 한다. 유엔군은 공산침략으로부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통보를 한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는 판문점에서 공산군측의 일직장교와 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비서장회의등을 통해 공산측과 접촉하며 이곳의 안전과 경비에 대한 업무를 협의한다. 1976년 8월18일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반경 4백m 총면적 15만평의 판문점 경내는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피아 각 35명의 장병(장교 5명 사병 30명)들이 10여개의 초소에 나뉘어서 공동근무를 했었다. 그러나 도끼만행사건으로 남북의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며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자 공동경비구역을 남북으로 나누어 양측 장병들이 서로 섞이지 않게 분할경비하기로 합의했다. 본회의장 건물 중간에 너비 50m,높이 5m의 콘크리트선을 만들어 공동경비구역안에 「국경아닌 국경」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판문점이 개방된다고 해도 남·북한의 모든 민간인이 이곳을 통과해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85년 9월21일 남북 고향방문단의 경우 우리측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임시로 사열실을 설치,간단한 통과사열을 했었다. 북한측의 손성필위원장을 비롯하여 기자단·수행인원·예술단·고향방문단의 순서로 시작된 사열에서 북한측 방문단은 양측 적십자사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이름·출생지·부모이름·헤어질 당시 주소와 직장·직위·상봉대상자료가 첨부된 서류 등을 확인한 뒤 평화의 집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와 우리측 안내를 받았다. 한국측고향방문단원들도 북측으로부터 이와 똑같은 사열을 받고 북한측 건물인 판문각을 통해 북측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구체적인 방북신청및 통과절차등이 마련되겠지만 남·북한이 모두 판문점 개방을 선언한 지금 앞으로는 왕래절차가 양측의 승인을 받고 통과증만 가지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이전보다는 훨씬 간단해질 전망이다.〈김원홍기자〉
  • 포르투갈 마카오통치권 누수에 곤욕

    ◎중국,99년 귀속 앞두고 사사건건 참견/“초대총독 동상 철거”요구엔 굴욕감도 현재 중국땅 마카오(오문)를 다스리고 있는 포르투갈이 약해진 국력때문에 식민지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훼손당하고 있다. 오는 99년 12월20일자로 중국본토에 귀속토록 돼있는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내정문제에 대해 요즘들어 중국당국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식으로 사사건건 깊이 참견하고 있기 때문. 두드러진 예를 몇까지 들어보면­. 중국에서 파견된 마카오 연락사무소부주임 노평은 최근 마카오정청의 카를로스 멜라치아총독에게 99년 이후 적용될 현지 기본법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포르투갈인들의 게으름 때문에 늦어진다고 호통을 쳐댔다. 또 노평은 마카오정청이 현재 설립을 허용한 대만 무역관광공사의 이름이 대만정권의 대표부같은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개인회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고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카오의 통치권을 쥐고 있는 포르투갈측이 느끼고 있는 가장 큰 굴욕감은 중국측이 마카오식민지화에큰 공을 세웠던 도아마랄 전총독의 동상 및 기념비 철거를 주장하고 나선 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아마랄은 지난 1846∼1849년에 마카오 초대총독을 지냈으며말을 탄채 칼을 높이 빼어든 그의 동상과 기념비는 마카오시내 한복판 리스보아호텔 앞에 우뚝 서 있다. 도아마랄은 당시 서구열강의 중국침략이 한창일때 뒤질세라 마카오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만든 인물이며 총독재임기간중 식민지정책에 반발한 중국농민들 손에 살해당했다. 그는 마카오정청이 만든 관광팸플릿에 뛰어난 통치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은 노평을 통해 그의 동상과 기념비가 중국땅을 짓밟은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의 상징이므로 마땅히 철거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갖가지 일에 대해 중국측에 시달리다 못한 현 멜라치아총독은 얼마전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날아가 마리오대통령과 카바코실바총리에게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포르투갈측으로선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 멜라치아총독은 『97년 중국에 귀속되는 홍콩이 현재 중국당국으로부터 받은 압력보다 10배나 더 큰 곤욕을 당하고 있다』며 마카오가 이미 포르투갈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한탄하고 있다는 것. 국제관계라는게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이며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이 이같은 최근의 마카오ㆍ중국 관계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 외언내언

    용케 도굴 안당했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난다. 김해시 대성동의 고분군에서 금관가야 왕릉을 처음으로 발굴했다는 소식에 접하면서. 열을 올린 일제가 도굴에 성공했더라면 무슨 날조를 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비문등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일본의 일부 국수주의 사관이 주장하는 소위 임나 일본부설은 이제 허구라 함이 정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는 지정학적으로 보아 대마도였다는 「탈출구」까지 마련해 준 우리 학자(부산대 이병선교수)가 있을 정도로. 그만큼 여러 증거가 이미 땅 속에서 많이 나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 왕릉발굴은 결정적 쐐기로 된다. ◆설사 허구라 해도 자꾸 입에 올리면 진실과 격이 비등해진다. 「6·25 북침설」이란 것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껴온다. 『북침설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 운운하는 말부터 우리로서는 우습기 그지없는 것. 논쟁할 가치가 없는 것을 두고 억지 논쟁을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독도는 다케지마(죽도)』라고 하는 침략주의 망령 부활론도 그 유형. 유형이 같은 임나 일본부설도이젠 한때 지껄여 본 헛소리로 쳐버리는 게 옳다. ◆그동안 가야고분은 1백여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지하의 실증물들은 사료 결여로 못밝힌 가야문화의 실상을 그런대로 우리에게 알려주어 온다. 가까이는 지난 88년 발굴조사된 합천군 옥전마을의 고분이나 경산군 임당고분도 그것. 옥전고분은 일본의 고분과 똑같은 것임을 보여 준 바 있다. 임당고분의 경우 순장풍습의 변천을 알게 해 주기도 했고. 이번 「왕릉」에서는 국내 최초의 파형동기가 출토되어 주목을 끌게 한다. 유물은 말 없는 말로써 가야를 설명하지 않는가. ◆가야가 땅속에서 드러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저 중원의 발해. 중국에서 유적 발굴작업이 활발하다고 전해지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구려 유민아닌 말갈족의 나라라 해석하는 터. 우리 학계와 함께 조사 연구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 “「시장경제」 서두른 나라가 잘산다”(차동세의 경제기행 동구:하)

    ◎헝가리,비교적 부유… 체코는 훨씬 궁핍/개방ㆍ개혁 이끌 「경영두뇌」없어 애태워 1인당 국민소득통계로 보면 폴란드가 소련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여야 하는 데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폴란드의 모습은 소련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농장의 집들도 제법 깨끗했고 길거리에 차들도 더 많았다. 만나본 사람들도 소련보다는 활기차 보였으며 어느 정도 개혁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예비지식도 꽤 축적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독 체코 헝가리 등 방문 5개국중 헝가리가 가장 잘 살고 그다음이 동독 체코 폴란드이고 소련이 가장 못사는 것 같았다. 국민의 실제 생활수준은 국민소득에 관한 통계와는 거의 정반대였다. 시장경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가 생활수준도 가장 앞서있고 시장경제도입이 늦은 나라는 가장 뒤져 있는 셈이다. 경제발전에 있어 시장의 힘이라는 것이 그토록 강한 것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방문국중에서 폴란드의 농가가 유독 잘 살아 보였고 주택도 농장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되어 물었더니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농토만은 80%가 사유지라는 것이었다. 공산주의하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어떻든 현재 폴란드에서는 식량이 오히려 남아도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동구권국가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동독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공산주의자였더냐는 듯 하였으며 그들의 머리속에는 이데올로기 대신에 독일민족의 위대함과 경제적 풍요에 대한 기대가 가득차 있는 듯하였다. 동독 사회과학원 간부급인사에게 독일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분단국의 국민으로서 대단히 기쁘다는 말과 함께 남ㆍ북한도 가까운 장래에 통일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았다. 그의 얘기인 즉,독일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비유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부모에 의해 강제로 떨어져 살아온 격이지만 남ㆍ북한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부모들이 겨우 떼어말려 놓은 것과 같지 않느냐고 했다. 또 하나 동독은 오래전부터 서독과 교류를 실행해왔고 서로 내왕이 있었으며 김일성이 같은 독재자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ㆍ북한 통일에 대해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약이 올랐지만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무안을 당한 꼴이 된 채 겨우 늘어 놓은 변명은 베를린장벽도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러니 우리의 휴전선도 어느날 갑자기 무너져 내릴지 모르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하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서독분계초소를 지나 서베를린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모처럼만에 김치를 실컷 먹고 나니 속이 얼얼하였지만 살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베를린의 번화한 모습과 바로 경제하나 넘어 동베를린의 침울하고 정체된 모습이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어 그것이 인간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의 조화인가 실로 감회가 착잡하였다. 체코에서는 19세기에 지어진 왕궁의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과학원산하 경제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서구세계 같았으면국보급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으로 써야할 왕궁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마루며 무너진 벽,망가진 화장실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사무실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획경제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천장의 화려한 벽화가 부서진 난간이나 허물어진 벽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경제가 무너지면 문화도 긍지도 자존심도 다 무너지는 것인가. 체코경제연구소의 한 경제학자는 동구권국가들의 공통된 애로사항은 시장경제를 이끌어 갈 기업인이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제건설을 위해 가장 다급한 것은 시장원리에 따라 상품을 만들어 국내에도 공급하고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일인데 막상 그일을 수행해 낼 경험있는 기업인이 없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와는 퍽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부르주아계급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회주의 국가에서 파탄에 이른 경제를 되살려 내 줄 기업인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 마지막 체류국인 헝가리에서는 서구 여느나라와 별차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상점마다 각종 소비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시내 번화가에는 세계유명브랜드 상품을 파는 패션상점도 즐비해 있어 사람사는 곳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모습도 한결 활기차고 무엇인가 하려는 의욕에 넘치고 있었다. 이번에 돌아본 동구권국가들은 모두 지금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엄청난 개혁의 물결속에 휩싸여 있었고 서방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개혁에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보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시장경제니 개혁이니 하며 떠들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끄고나면 다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로의 회귀가능성을 묻는 유도성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럴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아니었는데도 소련의 힘에 눌려 할수 없이 공산체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소련은 줄곧동구권국가들을 침략하고 괴롭혀 왔기 때문에 비록 소련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이번기회에 완전히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얘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계획경제가 참담하고 쓰라린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제도와 인간본성의 괴리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문제의 해결에 관한 한 정부관료와 정치인들의 치밀한 머리로 짜낸 그럴듯한 경제조치들이 엉성하고 결점투성이 같아 보이는 시장기능 보다 훨씬 못 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이윤추구와 개인의 욕망충족을 위해 일할 때는 보람을 느끼고 기운도 나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한낱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다.
  • 노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토론 내용

    ◎“방송·보안법 등 전향적으로 고칠 것”/분규등 사회불안 정치인 잘못… 책임 통감/재벌 문어발 경영·중기 침투 등 강력 제재/제조업체 인력난 덜게 기술훈련을 지원/반북의식 극복방안·지도층 도덕성 회복 등 촉구하기도 ▲노태우대통령=6·29 3주년을 맞아 국민 각계각층 대표들과 함께 90년대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에 대해 기탄없는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갖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편리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저 자신이 직접 사회를 보겠습니다. 왼쪽에 계신 분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곽영훈씨(건축가·환경그룹회장)=저는 6·29선언을 청사진에 비유했습니다. 87년 당시 상황으로 보아 꼭 만들어졌어야 할 멋진 작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은 제대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등 세가지 어려운 기초공사는 끝났으나 지자제·언론자유·민생치안 등은 기둥을 올리다 중단시킨 듯한 느낌입니다. 6·29 청사진대로 민주주의 위업이 완성돼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대통령=청사진은 국민의 뜻을 담는 민주주의의 전당이라는 꿈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하는 가운데 어려움도 있고 고통도 없지 않았습니다. 회고하건대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선택했으며 각계각층으로 민주화와 자유의 물결이 파급돼 나갔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시리라 믿습니다. 민주주의의 전당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완성시킬 수도 없습니다. 계속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6·29선언을 얼마나 잘 지켰나 하는 점은 역사가 평가해 줄 것입니다. ▲서경석씨(목사·경실련사무총장)=국민화합이 이뤄지려면 민주적 법질서가 확립되고 법이 공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집시법·국가보안법·노동관계법·안기부법은 민주적이 아닙니다. 경제개혁을 통한 빈부 양극화 현상도 해소돼야 하고 금융실명제 유보조치도 철회되어야 합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노대통령=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공감합니다. 6·29이후 오늘까지 비민주적으로 지적된 많은 법들은 국민이 지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고쳐졌습니다. 대강 알아보니 3당통합전 비민주적이라고 추려낸 법령이 1백47개나 됐고 이 가운데 1백37개가 고쳐졌습니다. 옛날에 악법이라는 개념에 속한 법은 고쳤거나 고쳐지고 있습니다. 방송법·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시비가 붙어 있지만 절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역행하는 법으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토론등 국민의견 수렴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에서 전향적으로 고칠 것입니다. 부동산투기 근절과 관련해 지금 정부가 취하는 조치가 미봉책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나자신으로서는 절대 미봉책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밝힙니다. 임시국회에서 부동산등기를 의무화하는 특별조치법을 마련해 토지거래를 실명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토지거래허가제와 지가가 다른 토지의 표준화를 강력히 실시하고 재산세와 양도세를 더 높이겠습니다. 재벌들의 비업무용 토지를 빨리 처분케 하고 더이상 비업무용 토지를 가질 수 없도록 행정조치를 강화하겠습니다. 우리의 택지와 공장용지가 전국토지의 2%밖에 안됩니다만 이를 더 넓히겠습니다. 부동산투기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뿌리뽑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급성장에 따라 정부가 재벌에게 경제력을 집중시켰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대기업들은 주력업종에 대해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고 문어발식 경영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중소기업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침해도 강력한 행정조치로 막겠습니다. 상속·증여·양도세도 월등히 강화시켜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해 나가겠습니다. ▲서목사=그러나 금융실명제 실시는 국민의 80%가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노대통령=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원영군(서울대인문대 철학과4년)=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반북의식을 극복해야 하며 긴장상태인 남북관계를 평화상태로 개선해야 된다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정국불안을 학생소요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여야가 당리당략에 급급해 파행적으로 정치운영을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저희가 그동안 물질적 성장에 노력하다보니 도덕성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데 도덕성 회복을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까. ▲노대통령=정국불안과 경제둔화에 대해 일부 기성세대는 학원소요,노사분규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나자신은 정치인의 잘못이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제일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그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세대를 30년간으로 보면 우리의 한 세대는 외국의 3∼4대가 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수천년간 가난과 무지와 외부침략만 당해온 민족으로 3가지 한을 품어왔습니다. 이 한가운데 아버지세대가 절대빈곤을 추방했으며 무지의 한을 풀게 했습니다. 안보·국방문제도 외국이 넘볼 수 없을 만큼 튼튼해졌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봤으면 왜 기성세대가 못났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급하게 하다보면 못한 일도 아쉬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공직사회나 가정 모두에서 도덕성의 가치관을 심어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지도층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며 호화사치 배격에 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정부도 잘 돼나가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최진식씨(풍국공업사장)=최근 우리나라는 생산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없어 웬만한 중소기업은 50%정도의 공장가동률밖에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산직이 까다롭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이를 회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모든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이 잘못된 시대적 흐름을 바로잡아 생산직 일에 충실하면 자기발전의 새로운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범국민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같은 잘못된 시대적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노대통령=공감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제조업분야 인력 구하기가 힘든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서독은 50년대 영국보다 경제규모가 뒤졌으나 60년대 들어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인력이 서비스분야에 몰렸지만 서독은 제조업분야에 인력이 보다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과거 소홀했던 제조업분야에 집중 지원,투자할 것이고 특히 수출분야에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반대로 사치스러운 서비스분야는 중과세를 매겨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조업분야의 인력난은 정부와 기업 모두가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 81년부터 89년까지 일반고등학교는 3백여개가 늘었지만 공업고등학교는 불과 4개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제조업분야의 기술훈련에 집중 후원토록 하겠습니다. ▲조영황씨(변호사)=두가지 점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6·29선언을 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의 정도라고 이해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대통령이 알기 위해 직접 국민의 의사를 들을 수 있는 민간단체 의견청취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믿지 않고 있어 정부가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6·29선언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국민과의 약속은 어느 경우에나 지킨다는 약속이 꼭 필요합니다. ▲노대통령=따가운 이야기이면서 좋은 충고로 생각됩니다. 대통령은 약속지키는 대통령,그렇게 노력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조변호사에게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반대한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각 분야마다 1주일에 5∼6회는 소관위원회로부터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근로자주택 2백만호를 짓겠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 역사상 지은 것의 3분의1 수준입니다.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에게 정성껏 얘기하면 손잡고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립니다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어떤 사람들이 이를 부정해 고맙다고 했던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집을 안 짓는다고 믿는 것이죠. 불신하는 국민들을 근본적으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더욱더 노력하고 국민을 받드는 자세로 일해 나가겠습니다. ▲이미영씨(서진전자 청주공장 근로자)=근로자 임금이 매년 인상되고 있으나 물가는 그 몇배로 뛰고 있습니다. 근로자 임금으로저축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말씀해주십시오. 여성근로자들이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살인강도·인신매매에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즐겁고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대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노대통령=물가는 저자신의 의지는 물론 정부의 의지로 금년말까지 한자리수이내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경제장관들에게도 말했지만 직분과 명예를 걸어놓고 물가를 잡도록 강력히 지시했습니다. 한가지 당부할 것은 정부 힘 하나로는 물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지난 3년간에 우리 근로자 임금도 64% 올랐고 작년의 경우 추곡가도 일반미 14%,통일벼 12%가 올랐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면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심한 압력이 들어옵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모든 경제주체가 노력해야 합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어려운 근로자에게 장학금및 학자금융자를 확충하고 이번 임시국회에 내놓은 세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 근로소득세가 20% 내리게 됩니다. 민생치안 문제는 공직자를 대표해 국민에게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부가 총역량을 경주해 성과가 다소 있지만 국민의 기대에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배석한 내무장관에게) 공단주변 폭력배 단속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강구해서 보고해 주십시오. ◎모든 경제주체 합심,「한자리수 물가」 지켜야/교원 4천명 올 해외 연수… 처우도 대폭 개선 ▲송선열씨(신한은행 인사부대리)=보통사람인 봉급생활자에게는 근로소득세 경감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담세율이 결코 높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재산소득및 사업소득,특히 불로소득에 비해서는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 2천년대에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끔 지역감정의 해소방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노대통령=근로자들의 세부담이 커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임시국회에서 근로소득세 경감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입니다. 이렇게 되면 1백만원 월급생활자(4인 기준)는 전보다 세액이 40%정도 감소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도 기성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나눠진 것만도 억울한 데 지역적으로 쪼개진다는 것은 너무 커다란 문제입니다. 서해안 개발도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지역간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광주문제도 관련법률이 현재 국회에 제안돼 있으므로 빨리 통과돼 10년전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억울함을 달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정치인을 위시해 모든 지역·계층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을 한다면 지역감정 문제는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임형재씨(휘문고 교사)=갈수록 치열해져가는 과열입시로 청소년은 창조적인 능력개발이 무시되고 좌절에 빠지고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혼탁한 범죄에 말려드는 수가 있습니다. 학부모부담 학비가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천차만별의 사교육으로 국민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교원의 사회적 위치개선 관계,과밀학급 해소 등 낙후된 교육시설에 대한 국가지원 등 보다 안정되고 확고한 문교정책이 실시돼야 합니다. 교육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교조에 참여했다 해직된 1천5백여명의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허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대통령=6공화국 들어서 국가재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범위안에서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교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매년 3천7백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사학의 재정도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교원들의 대우도 어느 정도 좋아지고 존경받는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차원에서는 흡족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1천억원을 내서 교원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하고 있으며 교원해외연수도 작년의 3천명에서 올해는 4천명으로 늘렸습니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여러 교원들이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이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군사부일체라는 우리의 뿌리와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스승은 노동자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드높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스승님들이 노조를 만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스승된 입장에서 나라의 법을 지키는 데 수범이 돼야 합니다. ▲임교사=지난 2월 국회에 제시된 여로조사 결과를 보면 교원의 80∼90%와 일반 국민의 60%가 교조를 찬성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국민여론 수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보다 깊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여론을 중시합니다. 그런 여론을 참고하겠지만 대통령은 여러 기관으로부터 여론을 듣고 있기 때문에 조금 전에 내가 말한 것이 국민의 여론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얘기도 무시하지는 않겠습니다. ▲김천재(동일재봉사 노조위원장)=노조의 정치활동이 지난 63년 12월이후 계속 금지되어 오고 있는데 90년대 정치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제개편을 통한 근로자들의 복지세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저임금 영세사업 근로자들의 내집마련과 관련,부모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평수가 건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정부의 법집행이 노동자에게는 엄하고 사용자에게는 후하다는등 법집행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노조가 탄압당하고 있다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난 3년간의 노사분규의 경험을 통해 과거와 같이 기업과 근로자가 불건전한 관계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깊이 뉘우치고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관계법은 6공출범이후 야당이 많은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관계법을 개정했습니다. 근로자와 기업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같은 배에 탄 공동운명체라는 입장에서 노력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주택과 부동산대책은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과제로,주택문제에 있어서는 오는 92년까지 근로자를 위해 25만호의 임대주택을 지을 예정이며 근로자에게 우선 배정하겠습니다. ▲신낙균씨(여성유권자연맹부회장)=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장없이는 곤란한데 제도개선을 어느 정도 구상하고있으며 구상된 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또 청소년들은 하지 말라는 것만 있고 하라는 것은 없는 실정입니다. 운동장 없는 학교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노대통령=흔히들 해놓은 것은 잊어버리고 해야 할 것을 말하는 예가 많은 데 89년은 여성들에게 참으로 뜻깊은 해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선거때 공약한 가족법의 개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여성권익 신장,직업의 확대 등이 벌써 실천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임용시험령도 바뀌어 지난 88년의 경우 9급 공무원의 합격비율이 10%에 그쳤으나 올해는 30%로 확대됐습니다. 과거에 없었던 정부제2장관을 여성전용장관으로 했으며 15개 시도의 가정복지국장도 전에는 남자로 했으나 여자로 고정시켰습니다. 여성의 힘이 크기는 큽니다. 경찰대학에서도 여성이 잘하고 있으며 철도전문대학에도 여학생이 있으며 군에서도 보면 여성인력이 우수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해 여러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청소년센터를 건립해 여가선용과 취미활동·스포츠를 즐기도록 하고 있으며 야외 종합수련장도 더욱 확대해 청소년들의 여가를 선용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체육부가 청소년체육부로 바뀌어 청소년 10개년계획을 마련하는 데 이미 착수했습니다. ▲이현복씨(경기도 양평·농민)=10년전 10개년게획으로 농촌생활을 시작했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촌문제는 현재 농어민 후계세대의 단절입니다. 또 농축산물 가격안정입니다. 농촌의 어려움은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되지 못한 데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노대통령=먼저 이번 호우에 피해는 없었습니까. (이씨가 보편적으로 없는 편이라고 대답). 농어촌의 근본문제로써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영세성,경제여건에 의한 외국농산물 수입문제입니다. 이들 문제는 그때 그때의 임시처방이 어렵고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어서 지난해에 농어촌개발종합대책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16조원을 투입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농사 하나갖고는 안되며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들어서는 공단에서 직업을 갖고 일함으로써 농외소득이 농사소득보다 많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가격안정도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가격안정기금을 조성해 농산물가격 불안을 해소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유통구조도 일대 개선을 해야겠다는 판단으로 관계기관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농림수산·재무장관에게) 특히 우유문제에 있어서는 부가가치세 문제,배합사료 문제 등을 협의해 보고해 주십시오. (문교장관에게) 초·중·고교에서 우유를 먹이고,전체는 아니지만 급식도 하고 있다지요. 얼마 전 상주출신 서울유지들이 돈을 내서 우유를 구입,상주어린이들을 모두 먹인다는 얘기를 듣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농가에게도,어린이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부총리와 문교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해서 보고해 주십시오(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26억원을 증액했다고 농수산장관이 보고). ▲유화선씨(스피드파스너업무부장)=통일을 위한 사회적 기틀이 마련되기 위해서 정신적인 뿌리와 함께 질서와 권위가 지켜지고 국민들의 뭉쳐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지금은 정신적인 뿌리도 권위도 망가진 상태라고 생각됩니다. 참다운 국가의 권위와 뭉쳐진 힘이 없는 이때 어떻게 통일을 위한 90년대가 있을 것이며 전국민은 하나로 뭉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노대통령=국민들간에는 권위주의와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권위를 서로 구별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억압을 하고 지시형으로 모든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런 권위주의는 청산돼야 합니다. 지난 87년 6·29선언을 할 때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위해 인식과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생각납니다. 이 과도기는 지나갈 것이며 멀지않아 각계에서 존경받는 권위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통일과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오늘 주된 토론이 둔화되고 있는 경제력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느냐,제2의 도약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습니다. 경제력을 길러야 하고 국민모두가 합심협력함으로써 하루라도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의 기탄없는 말씀을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 아주 유익한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오랜시간 함께 생각해 주시고 자리를 함께 해주신 각계각층의 대표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듣고 만나고 직접 눈으로 보면서 여러분들과 기쁨도 고통도 함께 나누면서 국민을 잘 받드는 대통령될 것임을 다짐합니다.
  • 바기구에 불가침선언 검토/나토사무총장 회견

    【브뤼셀 UPI 연합】 내주 런던에서 열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국 정상회담은 서방의 군사적 위협이 없음을 소련에 재확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한 불가침선언을 발표할 것이라고 나토 고위관리가 29일 말했다. 만프레드 뵈르너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토 정상회담에 언급,『여러분은 우리 회원국들의 평화적 의지와 나토내에서 지금 바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 및 우리 동맹의 비침략적 성격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뤼셀의 나토 본부를 방문한 게자 예센스키 헝가리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 기자들과 만난 그는 이와 관련해 『우리는 바로 지금 이를준비중에 있다』고 밝히고 따라서 『이러한 선언의 구체적 형태는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뵈르너 사무총장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회원국들을 바탕으로 하는 성명쪽을 선호한다』고 말함으로써 동맹 전체를 구속하는 불가침 조약을 피하는 대신 회원국들이 개별적으로 조인하는 방식을 희망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리스카시 유엔군사령관 취임

    로버트 리스카시 신임 유엔군사령관의 취임식 및 루이스 메네트리 전임사령관의 이임식이 26일 상오 용산유엔군사령부 체육관에서 거행됐다. 리스카시사령관은 취임사를 통해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나의 과업은 한반도 침략을 꿈꾸는 어리석은 자들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대비 태세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북한이 다시 공격해올 경우 이를 분쇄,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날 이ㆍ취임식에는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국대사,정호근합참의장,나중배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진삼육군참모총장,김종호해군참모총장,정용후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제21대 유엔군사령관에 취임한 리스카시대장(54)은 미 코네티컷대학에서 ROTC과정을 이수한 뒤 장교로 임관돼 59년에는 중위로 한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미 육군에서는 사단장,교육사령부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등을 역임했다.
  • 모범용사를 환영하며(사설)

    노병들이 전투복을 입고 서울의 도심지를 2㎞쯤 행진했다. 24일의 일이다. 국가 유공자,6·25참전 용사,월남귀순 용사,전쟁미망인 등 4천여명의 전흔의 당사자들이 묵묵히 걷는 모습은 색다른 무게를 주었다. 집단이기주의의 투쟁수단으로 수도 없이 거듭되는 시위를 보아온 시민들에게는 색다른 인상이었다. 그들이 전쟁을 몸으로 막아준 덕분에 우리는 살아남았고 오늘과 같은 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침략군 앞에서 국운이 경각에 이르러 한발을 바다에 담근 것 같은 형세에 몰렸을 때,낙동강물을 선지빛으로 물들이며 지켜준 「국군」덕에 조국은 회생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0년. 오늘의 우리 모습은 너무 당당하게 우뚝 섰다. 이런 형세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40년전,우리를 그 무서운 악몽속에 몰아넣고 반세기가 가까워도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이 비극의 전쟁을,묵인하고 충동하고 지원했던 당사자 나라들이 손을 벌리며 교류하기를 자청해 오는 나라로 우리는 성장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까지 젊던 병사는 노병이,새 병사는 중견이,다시 젊은 병사가 뒤를 잇는 법통이 이어져 왔다. 모범적인 국군용사.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번영을 구가하며,어떻게 이 초라한 반도의 분단국이 최강대국을 불러들여 우리 문법으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겠는가. 용사들을 믿고 그들에게 전선을 맡긴 것만으로 신뢰에 가득차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급두뇌를 양성하고 생산을 확대하고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고,국위를 떨칠 수가 있었다. 국군용사들의 그같은 공훈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서울신문이 국군 모범용사내외를 초청하여 발전조국의 현장도 찾아보게 하고 위로와 격려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그 공훈에 대한 깊은 표경이다. 표경과 관계없이 성스런 조국수호의 임무에 회의도 빈틈도 없는 것이 우리 국군용사들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에게,그들을 잊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잊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서울신문은 이 연례행사를 갖고 있다. 여기 대표로 나온 용사들만 아니라 육해공군 3군에는 이런 군인들이 가득히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우리의군은 본인이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이 땅에 남아로 태어나면 누구나가 의무로 수행해야 하는 병역에 의해 구성된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는 군인들을 지금 가족으로 가졌거나 장차에 가족으로 지닐 것이거나,옛날에 이미 가졌었거나 하게 마련이다. 내자녀,내 동기간을 적앞에 불침번으로 세워놓고 일상을 편안하게 지내고 번영을 구가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너무 평안한 나머지 육친의 노고를 잠깐씩 잊기도 한다. 사치 낭비같은 어리석은 짓도 하고 타락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의 동기간들이 겪는 시련을 다시 알리고 싶다. 말없이 맡겨진 일에만 신명을 다하는 국군의 그 면면히 이어온 정신은 언제라도 우리에겐 교훈이 된다. 나들이 나온 모범용사들의 건강한 정신이 후방의 다소 나태한 사람들에게도 자극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동하는 조국의 심장소리를 듣고 돌아간 용사들이 그들이 느낀 조국의 빛나는 모습을 전해주면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그걸 믿고 있다. 국군용사들의 나들이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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