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침략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7월 1일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점자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남한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호우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52
  • 공로명 전 주러시아 대사 귀국 인터뷰

    ◎러­북한,실질협력관계 급속 냉각/한국서 준 차관상환능력은 충분 『구소연방에 대한 경제협력차관의 상환은 러시아연방의 외환사정으로 다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러시아는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기때문에 상환능력은 충분하고 경제질서가 확립되면 외채 해결이 가능하리라 봅니다.따라서 대러시아 관계는 단기적 차원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신임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발령받아 지난 3일 귀국한 공로명전주러시아연방대사는 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러시아관계,북한·러시아관계,구소연방에 대한 경협자금 상환문제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동안 모스크바 생활에 대한 소감은. 『지난 90년 3월 주소영사처장으로 부임한뒤 2년가까이의 기간은 4∼5년이 되는 것처럼 굉장히 밀도있는 시간들이었다.특히 지난 90년 9월 역사적인 한·소수교는 북방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했다.이같은 성과가 남북대화의 진전을 가져올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옐친러시아연방대통령은 언제쯤 방한할 것으로 보는지. 『현재로서는 유동적이다.상반기내 방한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후반기로 연기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북한의 구소연방과의 우호친선상호원조조약은 어떻게 되어 있나. 『러시아는 계속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그 조약은 북한이 제3국의 침략을 받았을때 적용될 것이다.북한도 시대상황 변화에 수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 ­앞으로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전망은. 『군사관계는 시대상황에 따라 희석됐고 이제 남은 것은 경제협력 문제이다.그러나 최근 북한의 경화부족으로 상호 교역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구소연방과 북한은 양국이 체결한 통상협정에 의해 매년 1백만t의 원유를 북측에 공급키로 되어 있으나 지난해 대북원유공급량은 10만t에도 미달되는 등 경제사정으로 인해 실질협력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 대만도 첫 군축 추진/중국의 공격엔 적극 대처 방침

    ◎새달 국방백서 발표 【대북 AP 연합】 대만국방부는 사상처음으로 내달중 군에 관련된 사항을 공개하면서 군규모의 축소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중시만보가 2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음달 공표될 대만국방부의 백서를 인용,대만은 점차 군대규모를 축소할 것이나 중국의 어떠한 도발에도 대처하기 위해 무기와 기술은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이 신문은 국방백서에서 대만의 병력이 48만5천이며 이중 육군이 31만2천,해군이 6만8천,공군이 6만8천으로 밝히게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시만보는 이어 대만의 국방비가 93회계연도의 총예산중 24.6%인 2천7백21억 대만달러(미화약 1백억88만달러)라고 말하고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정치적인 소요에 직면,또는 군사적으로 약해져 외국의 개입을 요청할 경우 대만을 침략할 것이라고 국방백서의 내용을 인용,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수 있는 다른 이유로 대만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든가 중국정부나 지도부에 도전할 경우도 꼽았다. 이 백서는 이와함께 중국군규모가 4백70만이며 이중육군이 2백20만,해군이 36만,공군이 38만,야포가 약 10만문이라고 덧붙였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의 풍기(명사의 고향:23)

    ◎죽령 넘어서면 눈아래 확투인 들판/할아버지대에 십자거리에 터잡아/희방사 스님졸라 훈민정음 탁본도/구한말 이강년·신돌석등 의병의 본거지… 척박했던 땅이 이젠 인삼·능금의 명산지로 나의 고향 풍기를 가려면 죽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기야 남으로 봉현고개,동으로 단산고개,북으로 잠뱅이고개를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서울과 직통하는 국도나 중앙선이 모두 죽령고개를 넘게 마련이다. 해발 1천3백14m의 도솔봉과 희방사를 품에 안은 비로봉,그리고 풍기군수시절의 이퇴계가 나라일을 근심해서 축지법(축지법)으로 한달음에 올랐었다는 1천4백21m의 거봉­그래서 이름이 국망봉인 웅장한 소백산줄기 중에서 그나마 서산에 지는 해를 안고 넘을 수 있는 길이 죽령고개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어서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설화로 유명한 온달장군은 한강이남의 고구려땅을 수복하겠다고 죽령을 묵표로 진격하다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고 삼국사기 온달조에 있다. 죽령고개를 38선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서 밀고 당기던 국경마을,그 시절에는 기목진으로 불리던 풍기만이 고구려에 저항해서 신라의 국경을 지켰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은 풍기사람들을 평해서 이 고장은 기질이 강하고 사납다고 기록했다. 어쩌면 풍기사람의 억센 기질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저항정신의 전통일는지 모른다. 무엇이고 해내는 억센 기질,청량리의 왕초도 풍기사람이라지 않는가. ○억센 저항의 고장 이왕조의 실정으로 나라가 기울고 군대마저 침략국의 강요로 해산 당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전개 되었을 때 소백산의 깊은 골짜기들을 근거지로 삼아 풍기 사람의 저항정신에는 또다시 불이 붙는다. 영주 순흥 봉화 등 인근 고을과 힘을 모아 게릴라전을 군대해산에서 망국까지 3년동안이나 전개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의 조선군 사령부가 1913년 3월에 발행한 비밀문서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7년 8월부터 1910년 12월까지의 전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지도를 곁들여 기록하고 있다(우리 의병을 폭도로 지칭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토벌지」는 1907년 8월27일 약3백명의 우리게릴라부대가 경찰지서를 습격,일경 1명을 참살하고 29일에는 순흥,31일에는 봉화의 경찰지서를 습격,불태워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데서 시작한다. 그 게릴라부대의 리더­즉,의병장은 이강년,신돌석. 그러나 그 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지만 그들의 무장봉기는 소백산을 근거지로 3년을 견디어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학정이 시작된 1910년 일인이 임명한 조선인 군수들의 행위로 종말을 맞는다. 「토벌지」에 기록된 게릴라대장의 이름을 「열사」로 모시기 위해 기록해보면 최성천 한명만 김상태 정경태 윤국범 문성조 김성운 유시영.그 중에서 조선인 군수들의 밀고로 4월에는 최성천 한명만이 체포,처형되고 12월에는 윤국범 문성조가 역시 잡혀서 처형당했다. 다행히 이 무렵까지 저항운동을 계속한 이강년 신돌석의 체포기록은 없다.아마 그뒤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의 선봉장이 되지 않았을는지. 「조선 폭도 토벌지」는 경상북도의 부장봉기에 대해서(비밀문서인 탓일까)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안동에는 약 50명의 진위대가있었으나 군기가 해이하여 거의 토벌의 임무를 못했음』 ○국립천문대 위치 서울에서 경기·강원·충청의 3도를 지나 죽령재마루에 오르면 질펀한 들판이 확 트여 경상도의 첫 고을은 우선 시원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에는 그 경관이 너무 아깝다. 오른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천문대가 있고,왼편으로는 희방사와 희방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이 낳은 인물로 세종때의 김담은 일영대라는 그당시 천문대의 대장을 지낸바 있으니 천문학과는 일찍부터 인연이 깊다 하겠고 주위의 아늑함이 속세를 잠시 잊게 하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는 1568년에 개판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의 판본 2백개가 있던 곳이어서 더구나 잊을 길없는 곳이다. 일본이 패망하던해 7월,나는 병요양을 위해 이 절에 머물면서 사고에 판목을 발견하고 주지를 설득해서 「훈민정음」과 「월인천강지곡」만의 탁본을 했었는데 6·25가 터진 이듬해 1월13일,유엔군이 작전상의 이유로 휘발유를 뿌려 이 절을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귀중한 문화재는 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가곡 「성불사의 밤」의 노래말처럼 노승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고! 글깨나 하는 늙은이라면 예언서로 믿었던 「정감록」에는 삼재­즉,흉년 악질 병화가 없는 십승지지의 첫째로 「풍기」를 꼽았건만,동족끼리 살륙전을 벌인 6·25는 깊은 산속의 문화재마저 불태웠으니 그 황당무계를 알만하다. ○6·25 동란중 소실 그러나 죽령재에서 구곡량장의 고갯길을 내려오면 밋밋한 언덕에는 능금밭,그 자락에는 인삼밭들이 타관사람의 눈을 끌게 마련이다. 뚜렷한 4계절과 낮과 밤의 기온격차,그리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토질탓으로 예부터 풍기인삼은 개성인삼과 쌍벽을 이루었다. 38선으로 「개성인삼」을 맛볼수 없게된 오늘,「풍기인삼」은 6연근의 홍삼재배구역으로 지정되고 해마다 9월에 5년근을 채취하는 유일한 명산지가 된 셈이다. 아마도 6·25의 실향 월남민으로 개발이 시작된 능금재배는 66년의 7만그루가 76년에는 1백75만그루를 기록했으니 「풍기능금」의 시장점유율을 짐작할만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풍다 석다 황다의 「삼다」로 황폐했던 풍기가 지금엔 산나물 인삼 능금의 「삼다」로 넉넉하고 윤기가 흐르는 고을이 되었으니 그 까닭은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그 황폐했던 「삼다」로부터 풍기를 탈바꿈시킨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황당한 「정감록」에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뒤숭숭할 무렵,『풍기읍내 십자거리에 5분만 서있으면 조선팔도의 사투리를 들을수 있다』는 속담이 유행했다. 「십자거리 박약국」으로 알려졌던 우리집도 사실은 월남민이요,나는 3세인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억센 저항기질과 월남민들의 실향의식이 오늘의 풍기를 있게한 것이 아닐까. 죽령을 요람으로 자란 내게 반골정신같은 것이 바닥에 있다면 아마도 「자랑스러운 풍기사람의 기질」탓이리라. ▷약력◁ ▲1914년7월2일 경북풍기출생 ▲1946년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1950년 동경소목발레단 문예부장 ▲1966∼70년 예그린 악단장 ▲1981년 예술평론가 협의회장 ▲1986년 88올림픽개폐회식 기획단장 ▲1989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남북 정상대좌 “시간표 짜기” 돌입/정부,공식추진의 언저리

    ◎비해화선언등 이미 분위기 성숙/평양회담서 시기·의제 본격절충 정부가 오는 2월18일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협의키로 방침을 세움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본격화하게 되었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논의를 수면위로 떠올리는 것은 그 분위기가 충분히 성숙되었으며 북측이 최근 명확한 정상회담 개최 희망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남북한은 평화공존과 통일의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최대 위협요소일뿐 아니라 첨예하고도 본질적인 문제인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로써 남북은 사실상 통일의 과도단계인 「연합」단계로 돌입,최고위당국자가 함께 대좌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는 인식이 정부내에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용순 북한로동당국제부장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의 조기개최 희망발언을 하면서 특히북측의 상대자가 김일성주석임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또한 김주석은 방북했던 김우중대우그룹회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노대통령과 꼭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이같은 북한의 일련의 정상회담 희망발언은 그동안의 원칙론적인 수준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성숙하고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다는 시점에서 나오고 있다.또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정상회담에 대한 욕구를 북측이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대목이라고 해석된다.북측이 정상회담을 하려는 이유와 목적은 후계세습체제의 완료·경제난 타개·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 등에 있음은 물론이다.이 가운데서도 모든 이유가 후계세습체제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북한은 오는 4월15일 김주석의 80회생일을 전후해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을 물려줄 것으로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오진우로동당정치국상무위원겸 인민무력부장이 27일 군부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것도 후계세습완료가 임박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노대통령의 상대역이 김주석이라는 김용순의 발언과 4월15일을 전후해 김정일에 대해 세습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은 정상회담의 시기가 언제일지를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즉 늦어도 4월중순 이전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남북 쌍방이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만큼 6차고위급회담에서 그 원칙에는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시간표를 마련하는데는 쌍방간 협의를 거듭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6차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북측과 본격 협의하게 되면 시간적으로 한달후 쯤이면 가능하다.따라서 3월말에서 4월초 사이가 정상회담의 가장 적절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정상회담의 장소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경호상의 문제 등을 감안하면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제3의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과 김주석이 만나면 남북간 구체적인 현안보다는 통일문제 등에 대한 큰 줄거리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즉 사실상 남북연합단계에 들어선 남북한관계를 확인하고 서로 침략 또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정신대 만행/「사과」엔 높은 소리… 「배상」엔 미온적

    ◎두 얼굴의 일본사람들/“다끝난 일” 정부·시민 소극자세 일관/일부선 “과거죄악 청산,새 출발 해야” 한일간 비극적 역사의 한부분인 종군위안부(정신대)문제가 서울과 도쿄에서 이슈화되고 있다.그러나 강제연행의 당사자인 일본의 대응은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20일 『종군위안부문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때 참기 어려운 문제』라고 전제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그러나 가토(가등)관방장관은 『한일간 보상의 문제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끝났다』며 정부의 보상가능성을 배제했다.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이같은 이중성은 일반 시민들의 여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도쿄의 한 시민단체가 개설한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화응답자중에는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제와서 일본의 치부를 폭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의 일부 양식있는 사람들은 과거침략에 대한사죄와 보상을 적극 주장한 자,종군위안부문제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한 사람도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길견)교수였다. 요시미교수는 『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앞으로 4년간이 과거침략사를 청산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하고 사죄와 보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출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에는 이같이 양식있는 목소리가 있다.그들은 일부 교수 변호사 언론인 사회단체 등이다.이들은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종군위안부 110번」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도 보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일부는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식있는 소수」에 불과하다.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없다.정부도 그들의 정당한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것은 군의 관여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보상문제로 발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은 전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일부에서는 민간차원의 보상을 주장하기도 한다.그러나 일본정부의 기본입장은 김학순씨 등이 제소한 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사법적 판결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판결의 결과는 알 수 없으며 또 언제 판결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본정부가 사과를 하면서도 보상에 소극적인 것은 그들의 전형적인 2중적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일본은 말로는 사죄하면서도 행동은 또 다르다.일본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2중적 행동때문이다. 일본의 보상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한일간의 외교마찰로 비화될지 모른다.한국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문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만약 한국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본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양국간의 관계는 악화될 우려마저 없지않다. 미야자와 총리는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한일협력관계를 강조했다.그러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는 진정한 과거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과거없는 미래는 없다. ◎“나는 죄인” 세 일인의 증언/“숨돌릴 틈도없이 「다음」 받으라” 강요/“몸 좋고 가난한 학생 중점선발” 특명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지난 14일부터 3일간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당시의 경험담 및 관련정보를 수집했다.종군위안부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사히(조일)신문은 21일 이 프로그램 내용과 함께 그동안 들어온 2백30건의 제보가운데 3명의 증언을 보도했다.증언내용을 소개한다. 남경주둔 일본군 부대에 소속되었던 나는 3회정도 위안소를 출입했다.위안소에는 고참병사가 차례를 무시하고 새치기하는 것을 막기위해 별도의 감시병이 배치되었다.한사람당 15분이 할당되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때는 『빨리 끝내고 나오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위안부들이 허리띠를 채 매지도 못한채 다음 사람을받는 경우도 있었다.위안소출입은 일반병·하사관·장교등 계급에 따라 시간대가 달랐다.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나는 군연금을 받고 있다.전위안부들에게도 어느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한다. 당시 19세였던 나는 2차대전 말기 해남도의 해군병원에서 종군 간호부로 일했다.매월 1회정도 종군 위안부들이 3대의 트럭에 실려 성병검사를 받으러 왔다.트럭 1대에는 보통 7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일본인·대만인도 있었다.의사가 검진을 했지만 매독증상이 있을 때는 간호부가 선정했다.나보다 한두살 많은 언니들에게 『아프냐』고 물으면 『슬프다』『아이고』라며 눈물을 흘렸다.임신한 사람들도 있었다.나는 지금도 간호부로 계속 일하고 있다.환자중에는 재일 한국인도 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국민학교교사로 일했었다.6학년 담임이었던 1943년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가능한 한 체격이 좋고 집이 가난한 여학생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8명을 선발했다.그들은 도야마(부산)에 있는 비행기부품공장으로보내진것 같았다.일본에 돌아와서도 당시 선발됐던 어린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4년전 한국을 방문,나에게 배운 제자 몇명을 만날수 있었다.그러나 내가 선발한 8명은 누구하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제자들로부터 『그들은 위안부가 됐다.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행방불명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 나치수용소 유태인에 “죽음의 전주곡”/바그너음악 이스라엘공연 논란

    ◎바렌보임 연주무산후 찬반논쟁 가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바그너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단원 및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는 지난 19 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팔레스타인 심포니의 연주 이후 공연계획표에서 사라졌다. 그 뒤 지난 81년 인도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주빈 메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금기를 깨기 위해」앙코르곡으로 연주하다 청중들의 흥분으로 중단됐다. 10년이 흘러 지난 해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연주계획을 발표하며 바그너를 포함시키자 또다시 소동이 일어 오케스트라 회원 및 단원들은 투표끝에 연주를 거부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6년전이고 권력을 잡기 무려 반세기전인 18 83년에 죽었다.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들을 쓰기도 했고 그의 작품속에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는 유대인의 모습처럼 구체적이지는 않다.사실 바그너적인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나치선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따라 나치침략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데 있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당시 수용소의 나팔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바그너의 음악이 곧 「죽음의 전주곡」으로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잭 스턴과 이츠하크 펄먼,슐로모 민츠,그리고 수용소 생존자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부악장 데이비드 아번 등은 바그너의 음악으로 히틀러가 힘을 얻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바그너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반대하는 쪽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메타나 바렌보임과 같은 노력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수용소 생존자의 한 사람인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 데이비드 조더,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 등도 그런 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미하적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지 청중의 경험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며 바그너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의 연주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유대인들도 흥분이 아닌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자는 것이지 과거를 잊자거나 나치의 역사와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관대한 쪽의 유대인들도 막상 텔아비브에서 바그너음악회가 열리면 대부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고통의 상징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일본은 「이웃」이 없는 나라”/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일본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늘 착잡하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바로 이웃이다.그러나 역사적 갈등을 경험한 한국인의 정서는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다.일본의 2중적 역사의식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킨다.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한국방문으로 과거 일본의 어두운 역사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다.반인륜적 전쟁범죄인 종군위안부 문제가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미야자와총리는 일본의 한국인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사과했다.그러나 일본은 보상등 차후 대책에는 미온적이다.종군위안부문제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한 단면을 다시 보여주었다. 일본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일본군의 관여를 부인해왔다.그러나 군의 관여를 증명하는 자료가 보도되자 이를 인정했다.그들의 2중성을 잘 나타내주는 뚜렷한 증거다. 일본의 일부 보수 지식인들은 일본 식민지통치의 필연성과 정당론까지 거론하고 있다.그들은 식민통치가 조선의 개화와 발전에 기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그들은 한민족의 고통과 비참함은 외면하고 있다. 일본은 이같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 부족하다.어쩌면 일부러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일본은 과거 한국및 중국침략과 만행에 대한 진정한 반성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공원은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일본은 평화공원에 원폭피해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했다.일본은 피해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평화공원을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며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역사의식은 일본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일본이 아무리 침략자로서의 과거를 부인하려해도 역사적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될수는 없다.어느 누구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냉전이후 경제력이 중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일본의 역할은 증대되고 있다.그러나 일본이 진정한 지도국이 되기위해서는 주변국의 신뢰와 존경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일본에대한 주변국의 신뢰는 거의 없다.슈미트 전서독총리는 『일본은 이웃이 없는 나라』라고 지적한바 있다.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친절하다.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적 이미지는 다르다.일본은 과거 어두운 역사의 진정한 청산을 바탕으로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 “과거침략사의 부담 현장서 확인”/미야자와 방한… 일 각계 반향

    ◎한국측 예상밖 강경에 일 수세/「행동계획」 합의 긍정평가… 실효엔 의문 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의 방한은 한국에서 아직 일본의 과거 어두운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고 일본언론들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야자와총리는 가이후(해부)전총리가 구축해논 양국 협력관계를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를 희망했었으나 종군위안부와 무역적자로 상징된 과거및 현재의 문제가 부각되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새로운 시대는 과거청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양국정상회담에서 종군위안부와 무역적자등 「과거와 현재」문제가 예상밖으로 주요이슈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일본언론들은 노태우대통령이 매우 강경하게 이들 문제를 제기했으며 미야자와총리는 수세적 입장에서 어려운 대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일부 일본언론들은 이같은 문제화는 한국매스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아사히신문은 『역사의 진실을 부인하려는 일본의 역사의식』때문이라며 『겸허한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외무성은 『한일양국이 한국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의 협조강화및 문화·인적교류에 합의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위한 진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미야자와총리의 사죄와 성실한 진실규명 약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하지만 보상등 구체적인 대응조치에는 소극적이다. 일본은 양국간 무역불균형 개선문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회의적이다.일본은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는 설비및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한후 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언론들은 미야자와총리가 민간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관점의 한일판 「구조협의」를 제의한 것과 양국의 「행동계획」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는 회의적이다.일본 통산성은 일본기업에 한국의 부품산업육성,산업구조개선 지원및 기술이전,특허제도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민간기업들이 어느정도 적극적일지는 의문이다.더욱이 통산성은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지만 무역불균형의 책임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와총리의 한국방문은 자신의 아시아중시 외교정책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이번 방한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힘겨운 방문』이었다. 미야자와총리는 「미래」를 구상하며 한국에 갔으나 한국에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가 있었다.따라서 미야자와총리는 과거 침략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외교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일언론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야자와총리는 동북아의 번영을 위한 한일양국간의 협력을 강조했다.그러나 노대통령은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며 「경제적 공헌」을 강조했다.일본언론들은 일본에 대한 경계는 과거 역사적 경험때문이며 이는 한국및 아시아에서 일본의 과거역사 청산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미야자와총리의 이번 방한은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아시아정책 구상이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는 부시 미대통령 방일에 따른 대미 경제협조에 새로운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 계속되는 북의 대남 비방 중상(사설)

    남북사이의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는 신뢰를 쌓는 일이다.신뢰의 바탕없이 화해는 있을수 없으며 대결상태만 지속될 뿐이다.신뢰를 쌓기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야하며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중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상식이다.그런데도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남북사이의 불가침·화해·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된 이후에도 대남비방과 중상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국방부와 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남북사이의 기본합의서가 채택되기 이전에는 대남비방방송이 매주 평균 2백40건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매주 평균 2백65건으로 늘어 났다고 한다.이를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시국관련비방및 선동 45건,우리정부의 통일정책비난 37건,반미감정조장 35건 등으로 되어 있다.새해에 들어서도 대남비방방송은 줄지 않고 있다.방송 뿐만 아니라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로동신문은 지난4일 노태우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통일의 희망이 아니라 실망만 안겨주는 것으로 진실성이 결여된 내용」이라고 비난하면서「올해의 남조선 사회는 민주세력과 파쇼세력,통일세력과 분열세력,민족자주세력과 침략세력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정세흐름의 기본이 될것」이라고 중상을 일삼고 있다.그러면서 재야및 일부 운동권학생들을 대상으로한 반정부투쟁을 선동하고 있다.조선중앙방송은 지난 7일 「노태우파쇼일당은 무자비한 총칼정치로 애국민족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방했다. 우리는 김일성주석이 올 신년사에서 예년과는 달리 대남비방을 자제하고 남북사이의 합의서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바 있다.그런데도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노대통령의 신년사를 비방·중상하고 「군사깡패」,「파쇼도당」등의 격렬한 용어로 매도하고 있는 것은 선을 악으로 갚는 파렴치한 짓이 아닐수 없다.김일성주석이 유연한 자세를 보인데 반해 선전매체들이 정반대의 경직된 자세를 보이고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남북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남비방과 선동을 일삼고 있는 것은 인민들의 사상동요를 막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내용으로 볼수 있지만 대남전략목표가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렵게 움터지고 있는 화해의 싹을 짓밟아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며 체제유지에도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남북사이의 합의서에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않기로 명시되어 있다.북한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합의서의 정신을 살려나가는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해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할수 없다.북한은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점철된 대남비방과 중상,그리고 격렬한 선동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 북한,「합의서」 채택이후도/대남 비방방송 계속/국방부 밝혀

    국방부 당국자는 16일 북한은 지난해 연말 남북합의서채택과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이후에도 대남 비방방송을 계속하고 있어 대남적화통일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유엔동시가입이후 표면적으로는 평화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는 개방·개혁시 체제붕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올 연초 북한의 평양방송과 조선중앙방송,휴전선지역의 확성기방송은 지난해와 똑같이 한국을 『남조선 괴뢰도당』『미제국주의 침략국』『괴뢰파쇼도당』이라고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비방하고 있으며 대통령·국무총리·대법원장등 특정인에 대한 비난이나 선동발언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은 지난해 12월13일 남북화해기본합의서를 채택(2월19일발효)했는데 이 합의서 제1장 제3조에는 남북은 상호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고 돼있다.
  • 3인 의견/드러나는 정신대 만행에 국민분노 폭발/특별기고

    ◎“말로만의 사죄로는 안된다”/인간존엄성에 걸맞는 보상 뒤따라야/오선주 법박·청주대교수 지난 수세기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왔고 일반국민의 윤리·도덕도 삼강오륜에 바탕을 두어왔다.유교는 남성우위·남성중심사상이 중핵을 이루고 있음으로하여 남성의 혼외성관계에는 매우 관대하였으나 여성의 경우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가혹하리만큼 엄격하였다. 여성에게는 자의에 의한 혼외정사란 있을 수 없고 불가항력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병자호란·임진왜란등 외적의 침입으로 몸을 더럽히게된 많은 여성들이 죽음으로 그 인생을 마감하였다.자결하지 못한 경우 주위의 죽음에 대한 권고가 성화 같았고,구차히 목숨을 유지하려면 죽음을 능가하는 사회적 멸시와 천대를 감당하여야 했었다. 그 순결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던 시절인 1940년대초 일제는 우리나라 여성에게 육체적·정신적 학살을 자행하였다.일제가 저지른 갖은 만행중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장 못된짓은 우리여성을 동아침략군의 성적노예로 만든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면 총을 쏘았고,만삭임신부에게도 성폭력을 일삼았다.열두살 어린이까지도 정신대로 끌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총리는 그간 「민간인이 한 일이므로 정부의 채임 밖」이라던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양심이 살아있는 일본인교수가 종군위안부는 군부의 직접 지휘 감독하에 있었음을 방위청관련 기록문서를 들어 입증하였다.또 열두살 제자를 달래 정신대로 보냈던 일인녀교사의 참회어린 고백도 이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국내에서도 각종 증빙서류들이 발굴·공개되어 정신대의 실체는 더 이상 외면할 수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학교 재학중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징집된 여자가 벌써 1백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전국 각학교의 학적부를 통해 확인되었다.해방이후 징집된 자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들끓던 비탄의 소리를 감안하면 정신대 수는 이의 열배 백배 혹은 그 몇배가 넘을지 모른다. 그 숫자는 계속 조사되어 근사치만이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그러나 육신이 살아서 돌아왔을지라도 당사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그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가족 상봉의 기쁨도 잠시뿐,침략군을 상대했던 과거가 부끄러워 산사의 공양주로 일하면서 남의 눈을 피하다가 평생을 마친 슬픈 사연도 들었다.감히 엽렵한 낭군을 맞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부둣가 주모로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기구한 운명의 여성을 만난 일도 있다.그들은 지금 모두 할머니가 되었다.그 백발의 할머니들이 「내 열일곱 청춘을 돌려달라」고 절규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있다.그래서 전범 일본이 일찍이 세계의 양심앞에 부끄럽게 여겨야 했을 비인도적 만행을 다시본다. 일본은 이번 총리 방한에 즈음하여 「정신대문제는 사법처리에 의하여」해결한다는 입장이라는 소식도 들린다.일본인들은 어린이에서부터 「혼네」(본음=주의·방침)와 「다데마에」(건전=진심)를 배우며 자란다고 한다.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어디서부터가 수식어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외교적 성공을거둔다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술협력이라는 명분으로 기술이전 문제를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기술이전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기술을 개발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경제 향상을 도모하였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그들은 근대화과정에서 우리를 수탈하였고,한국을 식민지화 한데서 온 우리의 분단은 결국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살찌웠다. 정신대문제는 천인공노할 비인륜적 인간수탈이다.따라서 정신대보상문제는 결코 「사법처리」운운으로 회피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해진다.일왕의 「통석의 염」에서 그랬듯이 총리의 「사죄와 반성」역시 한갖 「다데마에」에 지나서는 안된다.또 일본관방장관이 최근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공식담화에서 「한반도」란 말을 거침없이 되풀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혼네」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여러 사정으로 미온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정부도 정신대실태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우리 정부의 대응책을 기대하면서 일본에는「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걸맞는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독의 대유태민족 사죄 본받아야/이태영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일본인 자신들이 문화국민이라면 비인간적인 과오에 대해 가슴 아프게 느끼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바이츠제커대통령은 통일독일 취임식에서 조상들이 이스라엘민족을 살해하고 주변 국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해 언제나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많은 독일 청년들이 지금도 여름이면 이스라엘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등 과거에 대해 사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어린 국민학생까지 강제로 끌고가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던 일제만행에 대해 명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방법이 무엇이던간에 최대한의 위로를 보내야 한다.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과오는 백번 천번 사과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정부는 떳떳하게 보상 요구하길/이계경 여성신문 발행인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군인들의 성욕처리의 수단으로 한국의 어린 여성들을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이같은 행위의 이면에는 여성천시 사상도 깔렸지만 그보다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이러한 이유로 여성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대 문제를 거론해 왔다.다만 국가적인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 너무 늦은감이 있다.하나의 사례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일본정부 상대의 보상청구소송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계뿐 아니라 정부도 떳떳하게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서 사례수집과 자료발굴등 진상조사가 계속되길 바란다.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행동 절실/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명예회장 정신대문제가 한일간의 주요쟁점으로 떠올랐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늦었다.국민학생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일본인 담임선생이 한국에 와서 그렇게 사장됐던 자료를 찾아내고 사죄하는 이 마당에 한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우리 정부가 전후 보상문제를 철저히 매듭짓고 물심양면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면 대일 무역적자문제도 오늘날처럼 심각해지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생존해있는 피해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용기를 갖고 나서서 생생한 목소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부·민간차원 모두가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할것이다.
  • “정신대 규탄” 반일시위 확산/일 총리 방한 맞춰

    ◎보상 요구… 일왕 화형식도 미야자와 일본총리가 방한한 16일 「정신대」문제 등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 등이 잇따랐다.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유족회」등 40개 단체로 구성된 「대일본국침략청산촉구 한민족회」소속회원 1백여명은 이날 상오11시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앞에 모여 『미야자와 총리는 애국지사를 탄압한 서대문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일본국왕의 화형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일본대사관 앞으로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이를 막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연맹회장 이옥동씨(72)가 땅바닥에 넘어져 머리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6·3동지회」「태평양전쟁유족회」「사할린조선인이산가족회」「고려노인회」등의 회원 4백여명도 이날 상오9시30분쯤 탑골공원과 주한일본대사관으로 옮겨다니며 미야자와 총리의 정신대문제 사죄와 충분한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국여성정치연맹」소속회원 4백여명은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 프레스센터 20층 기자회견장에서 「정신대문제실상과 대처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일제만행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벌였다. 한편 재야의 이른바 「전국연합」과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 18명은 성명을 통해 『일본총리는 정신대 등 과거 일제의 죄상에 대해 엎드려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도 같은 종류의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 외언내언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스스로 「성전」이라 미화시켜 표현했다.전쟁포고문인 소위 「선전의 조서」에 그 구절이 보인다.­『… 억조일심국가의 총력을 다하여 성전의 목적을 달성함에 위산없도록 하라』◆「성전」이란 「거룩한 목적의 전쟁」이라는 뜻.그들의 속담에 따른다면 『배꼽으로 다를 끓일』만큼이나 웃기는 궤변이다.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지 합리화에 「강제동원」돼야 했던 「성전」이라는 단어.이 거룩하지 못한 목적의 전쟁에 우리 겨레도 강제동원되어 많이 죽어갔다.그중에서도 뼈아픈 것이 이른바 정신대.그런데 12살짜리 여자국민학생들도 그 정신대로 끌려갔던 사실이 밝혀진다.「근로정신대」라했지만 결국 「위안부」가 되는.◆그런 비인도적인 짓이 「성전수행」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졌다.그 잘못된 일에 그 역시 「동원」된 처지였던 한 일본인 여교사의 양심이 「소녀 정신대」의 진상을 밝히는 계기를 지어줬다.어린 제자를 동원한 죄책감에 가슴아파 해온 50년 세월.하지만 그일에 동원됐을 때의 그의 나이라야 고작 20세안팎이 아닌가.「거룩한 목적의 전쟁」임을 믿었을 그런 나이이다.◆일본의 미야자와 총리가 오늘 우리나라에 온다.하필 「국민교생 정신대」로 시끄러운 터에.일본쪽에서는 정신대 문제에 대해 공식으로 사죄하면서 보상할 뜻도 비치고 있다.중요한 것은 건성이 아닌 진실.『쓰라린 고통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충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한다』는 표현이 「성전」과 같은 수사에 머무르지 않는 진실로서 나타나게 돼야 한다.그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인지.◆본인들이 쉬쉬해 그렇지 「소녀 정신대」로 동원되었던 경우는 더 있을 것이다.교육부에서는 전국적 규모의 자료조사는 않을 뜻을 비쳤다.해봤자 조사결과를 마음대로 까발릴 수 없는 것이 이 일의 성격이기는 하지만….
  • “정신대 징발,최악의 전쟁범죄”/증빙자료 발굴한 요시미교수

    ◎“일정부 한때 부인,양국민 모독/피해보상·자료공개·반성 마땅” 『일본의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 강제연행은 제2차 대전중 저질러진 최악의 전범행위로 일본인들은 이같은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한국여성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군자료를 최초 발굴한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 요시아키(길견의명) 교수는 14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요시아키 교수는 당시 일본군은 중국 등지에 파견된 일본군이 빈번하게 강간사건을 저질러 반일감정이 악화되자 자구책으로 정신대를 모집했음이 이번 방위청 자료를 통해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번 자료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진 비밀이었다. 일본정부만이 이를 부인해왔을 뿐이다. 그러던중 지난해 한국인 종군위안부였던 김학순(67)씨 등 3명이 처음으로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적극 자료발굴작업을 펴오다 이번에 방위청 도서관에서 당시 보병 제41연대 진중일지,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문서 등 5가지 군자료를 발견케 된 것이다. ­일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일본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은 이 문제가 일정부로서는 그만큼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역사왜곡 행위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대정부 불신감만 증폭시켰다. ­일 정부는 이번 군자료 발굴을 계기로 일군이 정신대문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인정했다. 이같은 자세전환에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담겨 있다고 보는가. ▲일본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자료발견자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정부가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군자료가 발견됐지만 외무성,후생성,노동성들에 보관돼 있는 자료는 아직도 미공개로 남아있다. 외무성에는 30년이 지난 자료는 공개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침략행위 및 보상관련 자료는 30년이 지났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보상 등을 포함,앞으로 어떤 후속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정부는 진정한 사죄와 함께 물리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성의있는 보상을 해야한다. 양국 정부간의 보상문제는 마무리됐지만 개인에 대한 보상책임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 로가초프,중·북한 주내 방문/러시아연특사 자격

    ◎북 핵사찰문제등 논의 로가초프 구소연방 외무차관이 러시아연방의 특사자격으로 이번주중 중국과 북한을 연쇄방문할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로가초프 특사는 먼저 이번주초 중국 북경을 방문,중국측과 북한의 핵사찰 문제 등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뒤 15일 평양을 방문,김영남 외교부장 등과 회담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로가초프 특사는 러시아 연방이 구소연방정부의 모든 국제적 권리와 의무를 승계함에 따라 북한과 체결한 모든 조약은 유효하며 특히 조·소 선린우호협력조약의 확고성을 북한측에 확인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로가초프 특사는 그러나 선린우호협력조약 가운데 상대국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을때 지동개입토록 규정돼 있는 군사동맹 부분은 냉전시대의 산물인만큼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통보할 것으로 전해졌다.
  • 창작오페라 「환향녀」를 보고(객석에서)

    ◎역사의식 잃은 「국제감각 쫓기」 이종구씨(한양대교수)가 대본과 작곡을 맡은 창작오페라 「환향녀」 공연(9·10일 세종문화회관)은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가장 보편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환향녀는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전통에 바탕을 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국내 관객들에게 그리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이번 공연을 가진 한국창작가극단이 당초 밝혔듯 『이번 국내공연은 독일순회에 앞서 선을 보이는 것』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말은 「환향녀」 원작 자체는 가장 한국적인 내용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려 의도되었던데 비해 이번 공연은 「외국인들의 보편적 시각」을 미리 판단해 그 수준으로 한국적 재료의 질을 조정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전쟁통에 적군에 붙잡힌 부녀자들이 겪는 수난의 역사이다. 작품 자체에는 그것이 임진왜란이라는 것을 그 어느곳에도 언급하고 있지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객이면누구나 임진왜란을 연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작품은 이 「임진왜란」을 침략아닌 「전쟁」으로 묘사했다. 「왜군」에 납치된 부녀자들은 「포로」로 불린다. 「왜군」에게 추행당한 「우리부녀자」가 자결한 뒤 「왜군」의 무리는 방금 전의 광란상태에서 돌변해 우습게도 반전주의적이고 숭고하기까지 한 장송행진곡을 합창한다. 이러한 설정은 비록 받아들이기 거북하지만 특정 상황을 보편화시키기 위한 작자의 의도라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판소리 「적벽가」가 조조군사들의 처참한 죽음을 자진모리 장단에 얹어 희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왜군」에게 살륙당하는 「조선군사」의 모습을 오페라 「환향녀」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착각한 결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론적으로 「환향녀」는 가장 한국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작품이지만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 밀랍인형 철거요청/유족회서 반박성명

    【천안】 독립유공자유족회 충남도지부(지부장 유병성)는 9일 하오 일본측의 독립기념관내 일제 만행 장면 밀랍인형 철거요청과 관련,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족회는 이날 천안시 영성동 유족회 사무실에서 긴급 임시회의를 열고 『일본의 독립기념관내 일제 만행 밀랍인형 철거요구는 한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내정간섭이며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한 망언』이라며 『일본의 이러한 요구는 최근 일고 있는 정신대의 진상규명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 “남북관계 진전은 자유에의 거보”/부시 대통령 만찬 답사

    오늘밤 우리에게는 축하할 일들이 많으며,그중에 으뜸은 우리의 공고한 동맹관계가 아닌가 합니다.많은 이들이 우리의 동반관계는 침략에 대항하여 힘을 뭉쳤던 48년전 그때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사실 1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한국이 외교와 교역의 기회를 찾아서 외부로 눈을 돌렸을때 미국은 그 첫 대상이었습니다.오늘날 우리의 동맹관계는 정치·경제·안보면에 있어서의 동반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우리의 이러한 의지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여러분께 다짐하는 바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백악관을 방문하셔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상궤도에 올라 굽힘없이 전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근면과 의지를 통해 한국은 과거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날 이처럼 번성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북쪽 형제들과의 이견을 해소함에 있어서 한국이 이룩한 진전은 한국 전부가 자유롭게 되는 날에 이르는 여정에 있어서 큰 발걸음입니다.본인은 평화적 해결을 향한 여러분의굳건한 의지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개선,북한과의 활발한 대화 등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자유의 그 날은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만약 북한이 진정으로 핵무기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그 호전성도 버린다면 38도선에 있는 분단의 띠가 이 나라를 더이상 갈라 놓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각하의 영도력에 경의를 표하며,그리고 모든 한국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면서 축배를 들고자 합니다.
  • 소­북한 「30년 군사동맹」 막내린다

    ◎러공의 “조소조약 개정시사”가 뜻하는 것/남북 등거리외교 탈피… 「친서울」로/북한의 국제적 고립 더욱 심화될듯 러시아 공화국은 구소연방과 북한이 체결한 조소상호우호협력조약 승계문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북한과 더이상 군사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지난 21일 알마아타 선언에 따라 구소연방정부가 체결한 모든 국제적 의무와 권리를 모두 승계했다.그럼에도 유독 북한과의 우호협력조약을 계승해야할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레그 소콜로프주한러시아 대사가 28일 조소우호협력조약의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이에앞서 구소연방 대외관계부 북한담당참사관인 발레리 예르몰로프도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개정의 이유는 지난 61년 체결한 북한과의 동맹조약에 따라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온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냉전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소우호협력조약은 군사동맹조약이다.상호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군사적 지원을 하고 일방에반대되는 다른 군사동맹에 가입할수 없다는 것이 그 주요내용이다.따라서 이 조약의 개정은 곧 군사지원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소연방은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와 수교이후 경제적으로는 한국과,군사적으로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거리 외교를 전개해 왔다.또 이같은 등거리외교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및 민주화를 향한 고르바초프소대통령의 노력으로 상대적으로 한국에 치우쳐 있다는 체감을 느끼게 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이제 러시아와 북한사이에 남은 것이 없게 되는 셈이다.또 그만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독립국공동체 가운데 그 위치나 비중에 따라 연방정부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나라다.따라서 러시아의 이같은 방침은 곧 나머지 11개 독립공화국의 입장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결국 이같은 움직임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러시아가 군사협력관계를 청산하더라도 북한과의 관계를 아주 단절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러시아­북한간 우호협력조약 파기는 곧 북한이 6·25와 같은 대남침략을 할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아무튼 북한은 이제 탈냉전이라는 시대사적 흐름을 직시하고 핵무기개발을 완전 포기하는등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콜로프대사 강연내용 요지/“내년 옐친방한 계기 양국교류 크게 늘것” 소콜로프 주한러시아공화국대사가 28일 상오 서울 롯데호텔에서 발표한 「소련사회의 변화와 한소경제협력의 전망」이란 강연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공동체의 전망◁ 소련은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 있다.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소련사변의 원인은 사회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태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태도의 변화는 자유경제를 도입하려는 경제개혁에서 확연히 알수 있다. 국가공동체의 새로운 탄생은 물론 옐친이 주도했지만 각 국가의 자주성을 기초로한 자의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이다.「알마아타협정」선언에 따라 국가독립·자결권·자주권의 원칙에 의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상호협력을 강화할 것이다.공동체 선언국들은 그 자체가 국제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니므로 조정기구가 필요할 것이다.이들 선언국들은 기존의 모든 국제적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러시아공화국이 승계국으로 나설 것이다. ▷군사문제◁ 모든 군사문제를 비롯,특히 핵문제에 관한한 선언국들은 공동통제를 계속하고 통합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공화국들은 핵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소련의 핵버튼은 옐친에게 넘어갔으나 핵버튼이 결코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들 공동체는 아울러 핵무기를 절대로 먼저 사용하지 않을 방침임을 천명,국제적인 공동체 인식에서 출발한 안정희구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개혁◁ 경제문제는 오늘날 소련의 모든 어려움의 근본원인이 되어 있다.따라서 소련은 이제 급속한 시장경제로의 이행작업을 수행해야 된다.이에따라 새로운 경제법안들이 제정되었고 이는 주로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재산의 사유화,소유권의 인정 등이 골자로 되어 있다.이미 러시아공에서는 토지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풀기 시작했고 이러한 토지를 각 개인들이 유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한·소경제협력◁ 양국의 통상협정체결은 매우 필요하다.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협조는 원유·석탄자원 등의 교역에서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러시아는 현재 한국이 소련에 제공키로 한 경협자금을 계속해 집행키로 한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우리는 기존의 한·소관계를 러시아·한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다.기존의 협정·협약을 비롯,차관의 보증문제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더욱이 내년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옐친대통령 공식 한국방문 요청도 양국발전의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 「안보상황」 변화있나/「핵부재 선언」이후(상)

    ◎미의 대한 방위공약 전쟁억지 충분/대북 군축협상·신뢰구축에 큰 도움(상) 노태우대통령이 18일 핵불재선언을 함으로써 그동안 우리나라에 배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던 핵무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주한미군의 전술핵은 그동안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에 대응한 전쟁억지력이 되어 왔다.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함으로써 우리의 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이를 우려하는 국민도 있으나 국방관계자들은 재래식무기와 미국의 대한안보공약만으로도 한국의 방위와 안보는 이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신핵정책과 노태우대통령의 비핵화선언에 이은 핵부재선언은 한국방위에 전술핵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전략적인 판단에 의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종구국방장관은 지난 10월 국회 본회의 답변에서 『미국의 핵우산보호공약은 핵선제공격이 아니며 동맹국이 적대세력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핵무기로 방어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으로 그 자체가 큰 억지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전술핵철수이후에도 우리의 안보태세와 대북억지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장관은 『한미간의 안보협의는 정상회담·국방장관회담·합참의장회의 등을 통해 긴밀히 협의해 왔으며 안보공약에 대한 재확인과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도 지난번 걸프전쟁에서 경험했듯이 정교한 첨단무기와 재래식무기만으로도 한국을 방위하는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고 전술핵철수이후에도 대한방위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57년 처음으로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할 당시의 목적은 북한의 침략으로 인한 제2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으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련과 중국 등에 대한 군사적인 견제의 「태평양전략」으로 확대되었다. 90년대에 들어와 소련공산당이 와해되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는 등 소련과 중국의 위협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도 태평양을 위시한 세계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게 됐다. 한반도의 핵불재선언이후 전쟁억지력의 약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재래식무기의증강과 첨단무기의 개발이 불가피하며 이 경우 남북한의 군비경쟁 가속화를 우려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재래식무기와 병력보유면에서 북한보다 열세인 한국의 전력을 보완하기 위한 기능장치로 작용해왔기 때문에 핵부재선언이후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력증강사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전투기와 잠수함보유를 늘리고 재래식무기와 첨단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국방예산도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반해 한반도의 핵부재선언은 이 지역안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며 핵은 강대국의 협상카드일뿐 군사적으로는 무용지물이 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부시대통령의 신핵정책이 ▲소련을 무장해제시키고 ▲북한등 제3세계국가들의 핵확산을 막고 ▲핵에 관한한 미국이 계속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뿐 한반도안보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한반도문제전문가 스칼라피노교수와 뉴욕 타임스 등은 올해 봄부터 한반도의 핵철수를 주장해왔다. 국방당국자들은 정부의 핵부재선언이후 한국의 안보가 크게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없고 이로인해 국방전략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핵부재선언이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을 막고 우리 정부가 신뢰구축과 군축문제에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임할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국방관계자는 『핵무기가 없어도 북한의 남침은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으며 국가규모의 전쟁수행능력을 기준으로 볼때 한국의 실질국방투자가 북한보다 높아 우려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핵부재선언이 남북화해의 후속조치로 군축협상과 남북교류에 크게 기여하게 될것으로 보이나 이것이 국방·안보의식의 이완으로 연결되어 환상적인 평화무드에 휩쓸려서는 안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