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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과 전몰의 애국정신(사설)

    우리에게 6월이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어느 달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뜻깊지 않은 달은 없다.그렇지만 우리가 6월을 더욱 각별히 마음에 새겨두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달은 현충일과 6·25가 들어있는 호국·보훈의 달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세월의 연속이었다.글자그대로 형극의 길이었다.일제의 식민통치가 그랬고 6·25가 그랬다.특히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은 처참하기 비길데 없는 동주상잔의 비극을 가져왔다.그 뒤 남과 북은 분단됐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은 이산의 쓰라린 아픔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물론 조국광복의 길을 열기 위해,그리고 공산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고귀한 희생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고 본다.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전제가 붙는다.정확한 인식과 평가라는 전제이다.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조국과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분들의 희생이 갖는 의미이다.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달라질 수가 없다.언제 누가 어떤 이유로 발휘했든 순국정신은 숭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국민 모두에게 자성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어야 겠다.오늘 우리가 민주주의 나라에서 이렇게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순국 선렬과 전몰장병들의 자기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분들의 애국충정을 되새기고 그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밖으로는 아직도 핵개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북한이 적화야욕을 불태우고 있다.안으로는 오도된 이념의 사슬에 얽매인 친북성향의 학생운동권이 반국가적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위기의 순간이 국제사회와 우리의 외교노력으로 현명하게 잘 극복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북한정권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고 6·25라는 범죄적도발행위를 한 장본인도 아직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자유와 독립의 번영된 민주통일 한국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호국선열들께 크나큰 죄를 짓는 일이 될것이다. 김영삼대통령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어제 발표한 담화문에서 지금은 우리의 안보의식과 안보태세를 굳건히 다져야할 때라고 강조했다.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그 길은 투철한 안보의식의 국민적인 단결을 통한 힘뿐이라고 생각한다.
  • 일 극우세력이 움직인다/호소카와 저격… 드러나는 폭력성

    ◎「침략」 발언 반발… 테러활동 등 조직화/12만명 추산… “군국정당회의 전위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전일본총리가 30일 우익세력의 테러를 당했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이번 테러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우익단체의 폭력성과 일본사회 변화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우익단체 「송혼숙」의 전단원으로 알려진 범인은 호소카와 전총리의 「전쟁발언」에 반발,권총을 발포했다고 밝혔다.호소카와 전총리는 지난해 8월 총리취임 직후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고 발언한후 우익단체의 협박과 규탄을 받아왔다. 우익단체들은 「호소카와총리의 발언은 국가를 모독한 행위」라며 선전차등을 동원,활발한 규탄활동을 해왔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발포는 이러한 규탄활동의 일환이며 최근 늘어나고 있는 우익단체의 정치인,언론등에 대한 테러사건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익단체들의 테러·게릴라사건은 최근 10년간 약 1백10건으로 나타났다.그중에는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다』고 말한 모토시마 히도시 나가사키 시장과 가네마루 신 전자민당 부총재에 대한 저격사건도 포함되며 올해만도 아사히(조일)신문 침입사건,월간잡지 문예춘추사 사장집에 대한 발포등 4건의 테러사건이 발생했다.일본의 우익단체는 또 지난 92년 한국TV드라마의 일왕저격 장면에 대한 불만으로 요코하마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난입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전전의 우익활동을 계승한 우익본류와 60년대말 신좌익운동에 대항,새로 만들어진 신우익으로 구별된다.일본우익은 좌익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는 세계의 우익과 이념적 배경이 같다.그러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파시스트적이며 특히 일왕숭배론자들이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80년대 나카소네총리 취임이후 많이 늘어났다.매년 20∼30개 단체가 새로 생겼으며 현재는 약 9백80개 단체 12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일본경찰은 추산하고 있다.우익단체중에는 단원이 1천명이 넘는 경우도 있지만 1명으로 구성된 단체도 있는등 그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그중에서 활동이 활발한 이른바 「행동우익」은 1백50개 단체의1만5천명정도. 일본우익단체들은 공산주의세계의 붕괴에 따라 종래의 반공일변도 운동으로 부터 반체제·국가혁신운동으로 전환하고 있다.우익세력들은 국가혁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왕중심의 정치 ▲자본주의경제의 개혁 ▲공산주의 배격 ▲아시아민족의 해방등을 강조하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우익단체들은 그러나 우익적 사고를 가진 세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우익적 사고와 논리를 가진 세력들은 일본의 정계·학계·언론계등 일본사회 지배층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이들은 적극적인 우익활동은 하지않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우익의 논리를 옹호·지원하고 있다. 우익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결국 이러한 얼굴없는 우익세력들이 지향하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사회분위기를 잡는 전위대적인 역할이라 할수 있다.일본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으며 국제변화에 기동적으로 대응할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개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김 대통령의 북방카드/최평길(시론)

    야당총재로 89년 최초로 사회주의 소비에트연방을 방문한후 그 여세로 통합집권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90년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나 지금의 한­러외교의 장을 연 김영삼대통령의 이번 6월1일 국빈방문은 그에게는 자못 감회가 깊다.8명의 공산당 서기장이 76년간 지배해온 15개 연방공화국이 해체되고 대표주자인 러시아가 자유시장 개방으로 체질개선하는 이순간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은 북방이 개척된 단군이래 최초의 자주북방외교의 활동 시험대가 된다. 외교에서 갖고있는 경제·군사력 두가지 카드가운데 경제카드를 가지고 김영삼대통령이 이번 러시아를 방문한다.핵무기제조로 말썽이 되고있는 북한 무기의 8할이상이 러시아제이고 아직도 북한이 무기부품을 제공받아야 되는 러시아에 생필품 경제원조를 해주러 가는 것이다.스스로 소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자부하는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우랄산맥 서쪽의 대서양 유럽권에서 국가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나 경제회복을 위해서 우랄동쪽에 눈을 돌려 극동의 동북아시아 한국에까지 손을 내밀게 되었다. 자체경제회복에 여념이 없는 미국은 밑빠진 항아리에 물붓기 식인 러시아에 내밀성 있는 경제원조에 선뜻 나서지 않고,북해 4개 섬을 반환하지 않으면 경제협력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 일본때문에 러시아가 한국에 기대하는 경제협력은 자못 크다.옐친대통령의 외교군사안보보좌관인 부루린 박사는 『우리는 그저 김대통령이 실질적이고 강도높은 경제협력의 청사진만 갖고 오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불과 1주일전 크렘린 대통령궁의 사무실에서 들려준 바 있다. 러시아국민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본 연구팀의 6개월전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정부나 국민이 모두 해내야할 당면과제로 물가고,시장경제개혁,생필품 적기공급,사회보장의 개선등 경제분야가 6할이 넘고 대학생은 열악한 기숙사개선,생활비 인상등을 더욱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우리 대학생이 주장하는 도덕·개혁정치 구호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한국이 역사상 군사력으로 원정군을 대규모로 파견한 것은 월남전 파병이고,경제적으로 15억달러라는 큰 돈을 원조한 것은 러시아차관이다.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에 제공할 수 있는 경제카드가 소진되기 전에 한단계 높은 경제카드를 만드는 일이고 이를 군사력카드 강화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이 작업은 국제경쟁력이 높아 러시아가 내놓을수 있는 첨단과학기술,특히 국방과학기술의 한국이전과 시설도입,상호 공동생산으로 한국의 과학기술을 한단계 높이는 일이다.이 과정에서 한국이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전환하는 러시아에 기술,자본을 제공하면 상호공동협력은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러시아는 국가 기초자원인 원유,희귀광물,어획량등은 차관변제로 하는 것과 더불어 국방과학기술 이전을 더욱 선호하고 있어 경제상황 악화로 그나마 이 정책이 변하기전에 우리도 차관변제와 연계하여 러시아자원과 국방차관,기술이전과 시설도입 생산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만 하다.러시아정부의 한국 담당자들은 이런 말을 자주한다.『15개 연방국이었던 소련이 15억달러를 빌렸는데 남아있는 러시아공화국만이 유독 채무를 갚아야 된다면 한국 주도로 통일될 통일코리아가 북한에 빌려준 러시아의 30억달러 빚도 갚아야 할 것 아닌가.그렇게 되면 우리는 나머지 15억달러의 채권국이 된다』 러시아와 국방과학기술협력은 지금 한창 시끄러운 북한 핵개발에 쐐기역할도 할 것이다.아울러 내친김에 1961년7월6일 스탈린과 김일성이 맺은 조소우호협력과 상호원조조약의 수정보완 제의를 해야 할 것이고,제1조에 명기된 조약당사국인 러시아·북한 양국중 일방이 어떠한 국가 혹은 국가연합에 무력침략을 받아 전쟁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북한·러시아 당사국은 상대방 국가의 재량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즉각 군사,혹은 기타의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즉각 개입의 협약은 이번 방문기회에 수정하도록 협의되어 북한 핵개발 즉각 중단과 전쟁도발 억제에 대한 러시아의 단호한 안보카드를 받아와야 될 것이다. 러시아는 통일된 코리아의 군은 비핵무장,비공격형 군사력을 갖추되 해공군만은 일본을 비롯한 남방세력의 북방공략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다소 공격형 무력체계를 갖추기 바라고,현재 한국이 유지하고 있는 미일과의 군사협력체제와 동등한 수준의 군사외교관계를 유지하기 바라고 있다. 21세기에 대비하는 통일 한국이 남북방 세력권의 힘있는 동반자,균형조정 국력을 갖는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김대통령의 방러는 경제와 군사카드를 한단계 높이는 북방외교면에서 획기적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호소카와 암살 모면/일 전총리/우익청년,호텔서 권총저격… 빗나가

    ◎“침략전쟁 발언 관련 죽이려 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전 일본 총리(56)가 30일 하오 7시쯤 도쿄 (동경) 시내 니시 신주쿠 (서신숙)에 있는 게이오 플라자(경왕) 호텔에서 한 우익 단체의 청년으로부터 저격을 받았으나 무사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신주쿠 경찰서에 따르면 범인은 이날 게이오 플라자 호텔 본관 3층에 있는 로비에서 호소카와 총리를 향해 단총을 발사했다. ◎범인현장서 체포 호소카와 전 총리는 게이오 플라자에서 열린 일본 신당 주최 파티에 참석한후 돌아 가는 도중 이같은 변을 당했다. 그러나 일본 신당 관계자는 범인이 호소카와 총리를 향해 단총을 쏘려는 순간 경찰이 이를 눈치 채고 덮치는 바람에 단총은 천장을 향해 발사됐다고 말했다. 신주쿠 경찰서는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호소카와 전 총리의 전쟁 책임에 대한 발언과 경제 실책에 화가 치밀어 그를 살해하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경찰은 또 범인은 자신의 이름이 노조에 마사가쓰 (야부정승) 이며 소속된 우익단체는 「송혼숙」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위로전문 김영삼대통령은 30일 하오 동경에서 우익청년의 저격을 모면한 호소카와전일본총리에게 전문을 보내 위로했다.
  • 바그다드·암만/하트라의 축제(아랍서 지중해까지:2)

    ◎「저항의 역사」 신전을 무대로 재현/로마군 물리친 베드윈족 그려… 제사땐 양을 제물로 우리가 모술의 호텔 현관으로 들어설 때 아가씨 몇명이 나와서 일행들의 가슴에 빨간 장미 한송이씩을 달아주었다.가이드로 나온 사람,호텔 종사원들이 달려나와 박수까지 쳐줬다.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인데 이 장면은 약간 어색했다.환영하는 그들도,꽃을 받은 우리도 우리가 완전한 동지라는 확신은 아직 갖지 못했던 것이다.몇사람의 아랍계 사람을 제외하면 일행은 대부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인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모술시로 두시간 내겐 그 꽃선물이 「동지가 되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기 보다 지루한 기차여행을 견디고 모술까지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바그다드 정거장에서 모술역까지는 꼬박 9시간이 걸렸다.호텔 만수르의 어떤 가이드는 간밤에 모술까지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서너시간이 9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이곳 사람들의 시간개념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은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 바그다드 정거장은 우선 그 구역이 매우 넓고 복잡한 선로와 플랫폼이 질서정연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시설은 아주 낡았지만 최초의 설계가 매우 치밀했음을 알 수 있었다.이 정거장이야말로 독일제국이 3B 정책의 상징으로 건설한 바그다드 철도의 시발점이 아닌가.비잔티움·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에서 모술도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다.우리는 독일제국이 식민쟁탈의 수단으로 건설해 놓은 이 고색 창연한 철도를 이용해 모술로 가는 것이다. 넓고 긴 플랫품에는 북쪽에서 귀환하는 많은 군인들과 고향으로 가는 많은 민간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특히 군복을 느슨하게 입은 젊은 군인들이 아주 많았다.해가 진뒤 스산한 저녁나절에 군인들과 검은 차드르 혹은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부녀들이 한데 뒤섞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피난길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객차 좌석에 앉아있는 부녀자들은 거의 표정이 없었다.군인들도 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그들은 골격이 크고 윤곽이 분명해서 희노애락을 드러내기가 한층 쉬울텐데 마치님루드궁전 입구의 돌조각처럼 시종 무표정이다.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자궁핍과 낙후된 생활환경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을까? 혹은 유구한 역사가 현재와 혼재되어 그 역사의 숨결을 하루하루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야 어떻든 그들이 우리 이방인의 시각에서 보면 놀라울만큼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그점은 그들의 투명하고 매혹적인 눈빛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바그다드∼모술간 철도주변은 대부분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밤에는 못봤지만 새벽이 되자 차창 밖으로 크게 자란 옥수수밭과 밀밭,감자밭들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러나 농지관리는 산만했고 구획이 정해진 농지보다 버려진 초지가 많은걸 볼 때 경작방법은 아직 원시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들에는 천막 가득 모술에는 아시리아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성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이 도시 자체가 유적이었다.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북부 최대도시로 알려졌지만 현대도시란 느낌보다 역사의 시간속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고대도시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우리가 묵은 모술호텔은 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호텔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모술 유적관람을 뒤로 미루고 축제가 열리는 하트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술에서 하트라까지 버스로 다시 두시간 반이 소요되었다.가는 길목에서 이따금 언덕위에 설치된 포대와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이 포대는 아마 터키 국경부근에 출몰하는 무장 쿠르드족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양떼나 놀고 있어야 할 한가로운 언덕위에 견고하게 구축된 포대와 병사들,이것은 오늘날 이라크가 처해 있는 복잡한 내외환경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상징물로 보였다. 대상도시 하트라는 AD 1세기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흘러온 베드윈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유명한 하트라 성도 베드윈의 캐러밴들(대상)이 세운 신전이며 하트라 부근에는 베드윈의 분위기,그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검은색 아라비아 의상을 걸치고 쿠트라란 이름의터번을 쓴,말을 탄 용감한 병사들이 많이 등장한다.골격이 뚜렷한 얼굴,멋진 수염,날카로운 눈빛이 이 용맹한 무사들의 공통된 특징이다.하트라에는 이런 복장,용모를 지닌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길가에 천막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앉아 있었다.수염을 멋지게 기른 베드윈의 촌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수십명 천막아래 나란히 앉아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천막안에도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는 한가운데 걸려있었다.한쪽에서는 산채로 양의 목을 베어 큰그릇에 그 피를 쏟아붓고 있다.사람들이 양의 피를 마시려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축제때면 알라신에게 살아있는 양의 피를 바친다는 베드윈의 관습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멀리서 온 극동의 손님에게도 친절하게도 한 양푼의 양의 피를 권한다.우리가 질겁하고 뒤로 물러서자,촌장들은 점잖고 인정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이런 천막들 숫자가 하트라성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늘어났다.들에는 흰 천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축제의 본무대인 신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헬레니즘의영향을 받은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의 화려한 원기둥들이 즐비하며 벽면의 조각품에도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양식이 도입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얼핏 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많이 닮은 꼴이었다.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인 메두사의 머리가 전면 벽에 크게 부조된 것도 좋은 증거물이었다.무대로 사용되는 신전의 회랑에는 아무런 장식물도 설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무대가 너무 썰렁하고 보잘것이 없었다.그러나 개막프로인 「사막의 힘」(춤과 노래가 혼합된 무용음악극)이 펼쳐지면서 붉고 푸른색 조명이 비쳐지자,지금까지 그늘진 폐허로만 보였던 그 무대가 갑자기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 것 같은 지극히 환상적인 무대로 돌변했다.투구와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든 고대 로마군의 진격과 거기에 맞서는 베드윈 용사들의 항전­이것은 AD 2∼3세기 로마군이 하트라 성채를 공략했으나 주민의 저항으로 퇴각했던 실제 역사를 재현한것­이같은 극의 전개와 무대배경이 된 하트라 신전의 전면 회랑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저음의 합창 장엄 이 무대는 역사물을 다룬 어떤 오페라 무대보다 더 장엄하고 더 환상적이며 더 실제적이었다.유적현장을 장식없이 그대로 무대로 사용한 착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그러나 주최측이 심혈을 기울인 「사막의 힘」은 구성과 춤동작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볼쇼이의 명품 「스팔타카스」처럼 춤동작이 좀 더 다양하게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환상적인 무대는 좀 더 빛이 났을 것이다.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 아랍인의 합창­이것은 하트라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다.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소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한 합창이었다.저녁 어스름에 뒤덮인 하트라의 평원을 찌렁찌렁 울려줬던 아랍 남성들의 저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어떤 비원을 담고 있는 듯한 그 노래가락은 군중에게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이 합창을 듣고 나는 하트라의 축제가 소기의 목적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했다.왜냐하면 거기 모인 군중들­대부분이 차를 가졌거나 차에 편승이 가능한 중류층 이상이며 이들은 지배이데올로기 편에 서있을 가능성이 많지만­의 표정이 노래가 들리는 순간 하나같이 엄숙해졌기 때문이다.그들은 그 순간에 침략자를 상기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민족이 더욱 뭉쳐야 한다고 다짐한건 아닐까. 하트라 축제의 포스러를 보면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 카드 네자르 2세(BC 605∼562년)와 나란히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나와있다.네부 카드 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재건자이며 특히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태인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린 장본인이다.이 포스터가 말하는 것은 후세인이 바로 그의 계승자란 사실이다.후세인은 아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빌려 그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그는 역사의 복원을 외치며 국민에게도 역사와의 동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 “일제,싱가포르 화교 대량 학살”/일 전언론인 수기「대본영…」폭로

    ◎한번에 2백여명씩… 손묶은채 “참수”/침략사 잇단 부인은 진실 모르는 탓/“사실대로 보도할 수 없는 전쟁” 깊이 참회 제2차대전 당시 일본군 종군기자였던 한 원로 언론인이 종군시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과 함께 참회의 심정을 담은 수기를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4일 보도한 화제의 주인공은 도야마(부산)시에서 발행되는 기타니혼(북일본)신문의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장 임원을 거쳐 현재는 자문역을 맡고 있는 올해 82세의 마쓰모토 나오지(송본직치)씨. 그는 나가노 전법상이 『남경학살은 날조됐다』고 망언,사임한 것을 비롯해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걸핏하면 과거 침략사를 부인하는 발언으로 이웃나라의 분노를 자아내곤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팔순을 넘긴 나이에 최근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신념과 참회의 마음을 담아 「대본영 파견 기자」라는 제목의 수기를 출판사 계서방에서 펴냈다. 수기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싱가포르 함락직후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화교들이 학살됐다는 설과 관련된 「화교학살」 목격담.이는 학살이 자행된 뒤 반세기가 넘어 처음으로 나온 증언이다. 『하루는 젊은 중위 하나가 「같이 가자.취재거리가 있다」하고 권유해 동료들과 함께 갔다.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그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패어 있고 구덩이 앞에는 손을 뒤로 묶인 2백여명의 화교가 무릎을 꿇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차례로 눈이 가려졌다.머리를 흔들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일본도가 공중을 가르고 머리가 떨어졌다.피가 솟구치고 몸이 구덩이로 떨어졌다.10여명이 잘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진실을 보도하지 못한 곡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국민징용령에 따라 동원돼 육군 감독하에 놓여 있었다.원고는 일본에 보내져 군의 검열을 받은 뒤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보도전사」라고 불리기도 했다.해군에도 이같은 보도반원이 있었다.하지만 나도 매스컴의 말단에 있으면서 펜을 들어 전쟁 수행을 거들고 부추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반성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군이 아시아 전역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던 1941년 도쿄신문의 전신인 국민신문기자였던 그는 국민징용령에 따라 육군보도반원으로 편성돼 제1진으로 말레이시아반도에 파견됐다.제1진은 작가·신문기자·화가·사진작가등 2백여명으로 현지에서 군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전과 보도및 선무공작등을 담당했다. 싱가포르 점령시에는 야마시타 도모유키(산하봉문)일본군사령관이 아더 퍼시발영국군사령관에게 「예스냐 노냐」며 무조건 항복하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을 취재해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수기는 말레이시아반도에 파견된 1년여에 걸친 현지 체험을 담은 것이다. 마쓰모토씨는 『수기를 쓰게 된 것은 지난 92년 미야자와 전총리가 한국인 종군위안부문제에 공식으로 사죄하고 지난해 호소카와 총리가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인정하면서였다』고 말한다. 『이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를 생각했다.2차대전의 실상을 국민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기억을 더듬어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언젠가 진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신념도 작용했다. 마쓰모토씨는 수기를 앞에 두고 『전쟁이 시작되면 사실을 쓸 수 없다.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일의회 하타정권 안보론 공방/「보편적 안전보장」 개념 논란

    ◎“자위대 임무 한계 불분명”/북핵빌미 군사적역할 강화 의혹 「보편적 안전보장」.일본국회에서 연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하타정권의 안보론이다.일본에서는 요즘 북한의 핵의혹문제등을 빌미로 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는 이러한 안보론및 유사립법 논쟁과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대응연구등이 한창이다. 문제의 「보편적 안전보장」이라는 말은 지난 4월22일 연립여당이 하타정권 출범을 위한 기본정책 협의에서 「일본헌법은 유엔에 의한 보편적 안전보장을 이념으로 한다」는 안보정책에 합의함으로써 처음 등장했다. 하타총리는 「보편적 안전보장은 유엔에 의한 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한 총체적 조치」라고 말했다.그러나 군사적 역할이 포함되는지 유엔의 집단적 안전보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은 가운데 하타총리는 23일 보편적 안전보장은 집단적 안전보장 개념과 같다고 설명했다.집단적 안정보장은 유엔헌장 41조의 비군사적 조치(경제제재)와 42조 이하의 군사적 조치를 총괄한 개념이다. 일본은 이미지난 90년 걸프전때 유엔가맹국이 국제사회전체로서 침략행위등에 대항하는 「집단적 안전보장」은 헌법상 인정된다고 밝혔다.이같은 집단적 안보의 관점으로 볼때 유엔의 결의가 있을 경우 자위대의 해상봉쇄 등 군사제재 참가도 헌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군사활동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보편적 안전보장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구분이 애매하다는 점이다.일본의 역대 내각은 지금까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위반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침략을 받았을 경우 공동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권리다. 하타내각도 이러한 헌법해석의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가키자와 고지외상은 취임초 『헌법상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가키자와외상은 야당등의 반발로 결국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그의 발언은 일본이 현재의 헌법해석을 변경,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집단적 자위권의 인정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이 아닌 전쟁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될수 있는 것으로 일본의 군사·안보정책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의미한다. 일본의 이러한 정책적 대전환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헌법의 확대해석과 안보논쟁 등을 통해 군사적 역할의 강화를 모색해 왔다.일본에서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자위대의 대응도 연구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 법무성산하 공안정보청에 올해초 「한반도 전담반」을 별도로 구성했으며 이들을 미국에 보내 CIA의 특별교육을 받게했다.방위청도 정보수집을 강화하고 항공자위대 뿐만아니라 육상·해상자위대도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암보다 무서운 것들/서지문(일요일 아침에)

    암을 정복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캐나다 어느 대학의 연구소에서는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는 효소를 발견했는데,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만 하면 암세포분열을 막을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한다.또 미국 유타주의 어느 유전공학연구소에서는 암세포에는 세포의 비정상성장을 차단하는 유전인자의 사본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그래서 이 결여를 시정할수 있게되면 암의 진행을 막을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AIDS예방약 개발가능성 발견등 최근에 의학계의 낭보가 적지 않았다.이런 소식은 암이나 AIDS에 걸릴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쁘고 감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끈기가 드디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에서 구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주고 인류의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한다. 바로 얼마전에는 암의 정복보다도 더 오래되고 중요한 인류의 숙제를 푼 사건이 있었다.3백50년의 백인통치를 종식시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총선이그것이다.우리의 일제강점기의 열배나 되는 세월을 침략자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이하의 생존을 강요받아왔던 남아공의 흑인들이 오랜 필사적인 투쟁 끝에 드디어 시민권을 얻고 민주적인 투표로 자신들의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기적은 단순한 정의와 민중의 힘의 승리이상의 인간개가이다.흑인들의 목숨을 건 긴 투쟁이 세계의 안목을 남아공에 집중시키고 백인들의 안전을 위협해서 백인통치종식의 토대를 마련했다.그러나 총선의 성공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처절한 원한에도 불구하고 수백년간 그곳에서 삶을 이룩한 백인들도 남아공의 국민이라고 인정을 했고,또 백인을 중오하는 이상으로 서로를 증오하는 흑인종족들이 그들사이의 적대감을 접어두고 민주국가수립에 함께 참여하기로 양보와 수용을 했기에 가능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고 우리의 주위를 보면 인간에 대해서 절망하고 정의의 실현가능성을 불신하게 될때가 많다.금세기에 들어서만도 양차대전과 수차례의 인종말살,대 숙청과 탄압,탈 식민지 투쟁과 영토분쟁등 수많은 인류사적 범죄와 살상이 있었다.그런가하면 평화시의 민주사회에도 갖가지 범죄와 비리는 그치지 않는다.그래서 현대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믿는 사람은 감수성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같이 보이게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건설적인 노력이나 성실한 삶의 자세 같은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다.물론 이런 정신적 풍토를 틈타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적 실존주의를 표방하며 이기적,반사회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2중인격자들도 무더기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과 인종말살,독재,그리고 질병과 재해때문에 거듭 퇴행을 했으면서도 수천년간 인류는 꾸준히 발전을 해서 20세기 말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리고 사는 사람의 비율이 부족국가시대 보다 몇십배 증가했다.그러니까 역사적 비관주의는 오히려 근시안적 사고라고 할수 있다. 우리민족도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생존을 했고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환난이 많았던 만큼 탁월한 지도자,뛰어난 인물도 많았었고 이름없는 영웅도 많이 있었다.그런데 이제 UR협상으로 상품시장 뿐아니라 서비스시장까지 개방되면 우리나라는 또한번 존립자체에 위협을 받을수 밖에 없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제대로 되어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가망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즉 기계나 제도나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효율적으로 운용할 두뇌와 정성과 치밀함이 없다는 말이다. 역사·문화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설명이 될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은 세심하지 못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면밀하게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앞날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하는 것이 사실이다.독재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항거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공동사회의 안전을 위해 간단한 안전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한 역설인데 그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이제 반독재투쟁을 벌일때 보다도 더 큰 용기와 각오로 우리 국민성의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타성과 적당주의와 부주의와 요행심리는 암보다도 더 치명적인 적이다.정체도 모르는 암을 잡아내어 굴복을 시키는 사람도 있는데,우리의 각오가 철저하다면 정체를 잘 아는 우리 속의 장애를 제거하지 못하겠는가. 한 세대의 과오가 열세대의 불행을 몰아 온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배웠다.우리는 열세대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세대가 되어야겠다.
  • 일,안보에 군사조치 포함/연정,헌법 새해석… 논쟁 일어

    【도쿄 연합】 일본 연립여당은 20일 『안전보장을 위한 일본의 대응에는 군사적 조치도 포함될 수 있다』는 새로운 헌법의 해석을 뜻하는 안보에 대한 통일견해를 밝혀 앞으로 여야간에 논쟁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20일 참의원에서 제시한 「집단적 안전보장과 보편적 안전보장에 관한 통일견해」를 통해 (지금까지 국제법상 확립돼 있지 않은) 「보편적 안전보장」의 개념은 『유엔에 의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기본틀은 국제사회 전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타총리는 또 집단적 안전보장은 『침략행위 등에 대해 국제사회가 협력,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평화를 회복하려는 것으로 유엔헌장에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규정돼 있다』고 말해 군사적 조치까지 포함된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한후 『일본이 그같은 유엔활동에 참가할 때는 헌법의 테두리안에서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 일,교과서에 “전후보상” 수록 허용

    ◎“위안부등 개별보상 필요” 문제 제기/「청구권」등 기술한 교과서 검정 합격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검정심의회는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지리·역사·사회 교과서에 전후 보상문제와 관련해 「종군위안부등 새로운 문제에 관해 검토여지가 있다」는 표현을 인정키로 하고 검정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에 따라 개인의 보상청구권은 물론 희생자에 대한 보상요구 필요성을 기술한 많은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했다고 전했다. 검정심의회가 이같이 적극적인 역사기술을 인정키로 한 것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전총리가 태평양전쟁에 관해 『침략전쟁이었다』고 발언한데다 『국가간의 보상 문제는 법적으로 매듭지어졌으나 개인 차원에서의 인도적 대응은 별도로 고려한다』는 정부의 견해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교도통신은 분석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검정에 합격한 한 일본사 교과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필리핀등에서 제기된 보상요구와 소송내용,일본측 대응을 일람표로 엮었다. 또 다른 출판사의 정치·경제 교과서는 「일본외교의 과제」라는 항목에서 『우리나라의 침략과 점령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성실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고 기술하고 법적으로는 이미 매듭이 지어졌다는 정부의 입장을 각주로 게재했다. 「전후보상을 생각한다」고 제목을 붙인 한 일본사 교과서는 2쪽에 걸쳐 과거 경위를 설명,『국가간의 문제로서 해결은 되었다고 하지만 이로써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과서는 보상에 관해 『법적인 입장을 재검토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정부의 공식 견해보다 한발 앞선 역사 기술이라고 교도통신은 설명했다. 교과서 검정심의회는 일본사,세계사,정치·경제등 다수 교과서의 검정신청본이 보상문제에 관해 언급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 작년 10월부터 「전후보상 기술의 취급방법」에 관해 검토한뒤 『정부가 대응을 모색하고 검토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면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검정심의회의 한 위원은 『국가간에 매듭이 지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칙론』이라며 『위안부등 개별적인 문제는 지금부터 연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교과서 편집자는 올해 처음으로 전후보상에 관한 표현이 인정된데 대해 『검정과정에서 절반이상 허용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전후보상 표현이 인정돼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금년까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부 교과서는 종군위안부등 문제에 관해 기술은 하고 있으나 모두 사실의 지적에 그치고 있다.
  • 하타 일총리 “나가노 발언 사과”/김 대통령에 전화

    ◎식민통치·침략행위도 사죄 하타 쓰토무(우전자)일본총리는 10일 하오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나가노(영야)전법상의 망언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하타총리는 『이번 나가노법상의 발언으로 한국국민등 아시아 근린 여러나라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자신이 이날 일본의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행한 소신연설내용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대해 『총리가 국회에서 소신연설을 통해 과거식민지통치를 반성하고 내각이 새로운 각오로 새 역사인식의 토대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평가한다』고 밝히고 『이번 나가노 법상의 발언은 우리국민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입혔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가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전제,『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각료가 다시 과거사에 대한 왜곡으로 역사를 오도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우리국민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하며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10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전법상의 망언과 관련,김영삼대통령과 이붕 중국총리에게 각각 전화와 친서를 통해 유감의 뜻을 나타내고 식민지지배와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 북핵 등 긴급사태/한·미와 긴밀대응/하타총리,의회 연설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10일 국회에서의 소신표명연설을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겠다』고 밝혔다. 하타총리는 또 『(과거침략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위에 평화창조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래건설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일본의 갈길이며 이를 정치신조로서 언제나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호소카와정권의 역사인식의 계승을 분명히 했다.
  • 침략전쟁 반성/불전결의 공표/하타 일총리 검토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9일 일본은 과거전쟁에 대한 반성과 불전의 결의를 다음세대에 전하지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타총리는 이날 임시각료회의가 끝난후 95년의 태평양전쟁종결 50주년과 관련,『각종 행사를 포함하여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방침을 내외에 명확히 하고 후세에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과 불전의 결의를 내외에 밝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타총리는 8일에도 『과거역사를 반성,솔직히 사죄함과 동시에 이를 다음세대에 전달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2차대전 관련 발언주의 경고/하타

    【도쿄·싱가포르 AFP AP 연합】 하타 쓰토무(우전자)일총리는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전법상의 2차대전관련 발언이 무리를 일으킨후 내각각료들에게 전쟁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적절한 발언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고 일정부대변인이 9일 말했다. 정부 대변인인 구마가이 히로시(웅곡홍)관방장관은 하타총리가 지난주 모든 각료들에게 경고서한을 보내 2차대전과 관련,총리가 이미 밝힌 입장을 고수하도록 경고했다고 말했다.나가노전법상은 마이니치신문과 회견에서 남경대학살은 날조이며 일본이 침략국이 아니라고 발언했다가 지난 7일밤 해임됐다.
  • 한국근대 유교 개혁운동사/유준기 지음(화제의 책)

    ◎구한말 유림들 유교 개혁운동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인 구한말에 선각적인 유림들이 국가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유교개혁운동을 벌인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민족운동의 하나로 엄연히 존재했던 유교개혁론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 민족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는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박은식·이승희·이병헌등의 유학자와 강화학파를 분석,이들이 전통유교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공자교·대동교등의 종교적 형태를 갖춘 뒤 이를 통해 국가의 중심사상을 재정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하려는 과정을 보여준다. 총신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몰두해온 지은이의 역작이다. 삼문 9천원.
  • 나가노법상 사퇴/일총리 사표수리/후임에 나카이

    【도쿄=이창순특파원】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라는 등의 망언으로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던 일본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7일 사임을 밝혔다. 나가노법상은 자신의 발언이 심각한 외교문제화됨과 동시에 국내에서도 정치문제화되자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이날 사의를 표명했으며 하타 쓰토무 총리는 그의 발언에 대한 인책으로 사표를 수리했다. 후임에는 민사당의 나카이 히로시(중정흡·52)의원이 임명됐다. 하타총리는 7일 하오 유럽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구마가이 히로시(태곡홍) 관방장관등과 만나 나가노법상 문제를 협의한후 한국 중국 등 아시아국가들의 강력한 반발과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국회심의등을 고려,법상의 교체를 결단했다. 나가노 법상은 후지오 마사유키(등미정행) 전문부상(86년),오쿠노 세이스케(오야성량) 전국토청장관(88년)에 이어 전쟁책임 망언과 관련,물러나는 3번째 각료가 된다.후지오 전문부상은 끝내 사임을 거부,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총리에 의해 파면됐다. 그는 전후 정치사에서 두번째로 짧은 취임 10일만에 사임을 밝혔으며 이에따라 그러지않아도 불안한 출범을 한 하타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 일 법무,망언취소·사죄/3일만에/아주국들 반발… 파면 요구

    ◎한 외무,주한대사 불러 향의 한승주외무부장관은 6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법무상의 망언과 관련,고토 도시오(후등리웅)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우리 정부의 항의의 뜻을 전하고 일본정부의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한장관은 이날 상오 고토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나가노법상의 태평양전쟁 관련 발언은 『한국 정부및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밝히고 『이는 왜곡된 역사관으로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장기호외무부대변인이 전했다. 한장관은 이어 『일본정부는 진상을 규명하고 자국의 입장을 확실히 표명하는 한편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긴급기자회견 자청 【도쿄=이창순특파원】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며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라는 망언으로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던 일본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을 전면적으로 철회하고 사죄했다. 나가노법상은 이날 자신의 발언이 중국·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의 강력한 반발로 외교문제화됨과 동시에 국내에서도 정치문제화되자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자신의 과거역사에 대한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남경대학살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며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중국국민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3일만에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사건』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진퇴문제와 관련,『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임명권자인 하타 쓰토무(우전자) 총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일 중진법조인들 나가노망언 비난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을 방문중인 일본법조계의 중국사법제도조사단(단장 소전성광변호사)은 남경대학살의 조작설등 나가노 일법무상의 망언소식을 듣고 분개,6일 나가노장관의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뒤 성명서를 주중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방중활동중 남경대학살의 역사현장을 둘러본 우리들로서는 법률가적 양심에 따라 과거 침략의 역사적 죄과를 왜곡하려 한 나가노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게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변호사 법학교수등 18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지난달 28일부터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중,중국의 사법제도에 관한 조사활동을 벌이던중 나가노 망언소식을 듣고 5일밤 북경호텔에서 전체회의를 소집,이같은 내용의 성명문안을 작성했다. ◎나가노 망언 규탄/일 정부 사과 촉구/여야 논평 여야는 6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일본 법무상의 태평양전쟁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논평을 각각 내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책임있는 태도표명을 촉구했다.
  • 나가노망언/일 정부의 후속조치 주시/우리정부 대응과 양국관계 전망

    ◎북핵공조 고려,필요이상 「강수」 자제/결자해지로 외교마찰 최소화 기대/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엔 큰 영향 없을듯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 법상의 망언에 대해 우리정부는 두나라 정상이 어렵사리 길을 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 지도층의 망언이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난데 없이 터져 나와 두나라의 관계를 냉각시키는 데 대해 못마땅하고 불쾌하게 여기는 쪽이다. 한승주외무부장관이 6일 고토 도시오(후등리웅)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유감의 뜻을 전하고 고위당국자가 논평을 통해 『잘못된 역사인식』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이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기본적인 한일관계,두나라의 새정부가 쌓기 시작한 동반자적 관계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두나라 새정부가 애써 쌓은 탑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성격이 짙다.한장관은 이날 『지금까지의 관계를 보다 확대해 나가려는 두나라 정상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경고했다.우리정부 관계자들은 되도록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우선은 일본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 같다.일본정부의 각료가 문제를 만들었으므로 스스로 사태를 푸는 것이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도 처음엔 공식 성명을 발표하려다 이를 취소하고 한장관이 일본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일단 공식대응을 마무리지었다.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한일관계가 두나라 국민의 정서와 여론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강한 점을 고려,문제가 더이상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하타 쓰토무(우전자)총리가 이미 유감을 표명했고,나가노 법상도 6일 하오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한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이보다 더 치고 나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두나라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이 당국자는 또 『북한핵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여론에 앞서 필요 이상의 「강수」를 두게되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두나라 새정부가 구축해놓은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돈독한 우호협력 관계를 손상 없이 그대로 유지해 보려는 계산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전총리의 「진사」 발언에도 불구,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드러나진 않지만 느닷 없이 튀어나온 나가노의 망언이 일본 지도층의 전반적인 역사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유병우외무부아주국장은 유감을 표시한 뒤 『일본정부의 반응과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비록 두나라 정상이 과거사 문제를 뛰어넘었지만 실무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앞으로의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대응책을 구사하겠다는 뜻이다. ◎「나가노 망언」 주용내용 한국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 각국등에 큰 파문을 일으킨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 법상의지난 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평양 전쟁의 위치 부여=침략전쟁이라는 정의 부여는 지금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전쟁에 동반하는 침략적 행위 즉 갖가지 피해,잔학한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폐를 끼치는 것,이것은 절대로 나쁜 것으로 전쟁 그 자체가 악이다.다만 일본에서 말하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것이 침략 목적으로 했던 것인가.일본이 무너질 것같아 살기 위해 궐기한 것으로 동시에 식민지를 해방한다,대동아 공영권을 확립한다고 하는 것을 신중히 생각했다.(일본의 상황을)여기까지 가져 오게 한 제외국이 문제다.전쟁 목적 그 자체는 당시로서는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것이었다. ▲남경대학살=(전쟁에 동반)일본군대가 여기저기서 행한 학살,방화,파괴를 하거나 위안부 문제 등은… 나는 남경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날조라고 생각한다.나는 남경 사건후에 남경에 있었다.어쨌든 그러한 것은 전쟁에 동반하는 악으로 그것이 『절대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말 그대로다.그것을 침략적 행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글쎄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은 그 곳을 일본 영토로 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그러한 곳을 점령했던 것도 아니다.
  • 망언의 배경을 경계한다(사설)

    새일본정부의 법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식민지와 대동아공영권 해방」을 위한 정의의 전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고 한다.수십만의 무고한 중국민간인을 살해한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며 식민지 부녀자를 강제연행한 정신대도 일제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강변했다고 한다.정말이지 어이가 없고 기가 찬다고 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새삼 부정할 가치도 없는 망언이 아닌가 한다.침략전쟁등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는 그 주도자인 일왕자신이 이미 외국을 방문하거나 일본을 찾는 외국정상들을 맞을때마다 형식과 정도야 어떠했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왔다.역대총리도 마찬가지다.특히 최근 연립여당의 호소카와 전총리는 보다 솔직한 침략전쟁 인정과 사과로 아시아 이웃나라들의 환영까지 받은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이따위 부정의 오만불손하고 건방진 망언들이 일부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입을 통해서지만 왜 한두번도 아니고 기회있을때마다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인가.그많은 인정과 사과및 반성에도 불구하고 일제의만행을 만행으로 생각치 않는 일본인이 많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이번 망언이 개혁정치를 표방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기여를 강조하는 신생당등 연립여당 정부 각료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을 특히 주목한다.연립여당은 일본이 과거사를 솔직히 인정·사과하고 새출발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번 법무장관의 망언은 그것이 결국 말만의 사탕발림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본인은 발언을 취소했으며 연립여당정부는 일단 나가노장관의 단순한 개인적 실언임을 강조하고 있다.물론 그럴수도 있다.그러나 그는 일제침략전쟁에 앞장섰던 군국주의자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망언에서 보듯이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그런 그가 어떻게 새 일본연립정부의 그것도 법무장관에 기용될수 있었단 말인가.일본과 연립연정및 그 반성의 실체와 한계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다. 탈냉전이후 일본에서는 신일본민족주의가 크게 고개를 들고 있다.연립여당은 물론 일본정국재편을 주도하는 오자와 신생당 대표간사도 바로 그러한 신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그가 지향하는 일본「보통국가론」은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위한 과거사인정과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나가노망언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라 할수 있다. 결국 새일본도 경계하지 않을수 없게 하는 망언해프닝이 아닐수 없다.우리는 그동안 과거사에서 해방된 미래지향적인 새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우리의 그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번 망언의 뒤처리를 특히 지켜볼 것이다.
  • 일본 나가노 망언/규탄시위 잇따라

    태평양전쟁은 정당방위이고 대동아공영권 해방목적이었다는 일본 나가노 시게토법상의 망언을 규탄하는 시위및 성명서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공동대표 양순임)소속 회원 1백여명은 6일 하오1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앞에서 집회를 갖고 나가노 법상의 즉각 해임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이창복)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이번 나가노 장관의 발언은 태평양전쟁범죄인정및 이에대한 법적 처벌과 보상을 백지화시키려는 일본 내각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가노 법상의 사죄와 전쟁피해에 대한 보상을 촉구했다. 광복회(회장 김승곤)도 이날 하오 성명에서 『일본 법무상이 지난날 일제가 저지른 군국침략의 야만적 행위를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중국등 기타 피해국가에 대한 모독이며 이 속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모색이라는 저의가 담겨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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