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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에 와닿는게 없는 「전후50년 결의」(해외사설)

    단어는 나열돼 있지만 가슴에 와닿는게 없다.이 정도의 문안을 정리하는데 왜 이만큼 시간이 필요했을까.연립여당이 작성한 전후 50년 결의안을 훑어보면 이런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문안이 되길 바랐고,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주문해 왔다.그러나 결의안은 매우 애매해 감동이 결여돼 있다. 결의안을 정리하지 못해 세계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라도 정리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그렇더라도 합격점과는 거리가 먼 결의안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핵심표현인 「식민지 지배」 「침략행위」 「반성」을 다룬 방식에 있다.결의안에는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많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행한 이런 행위와 타국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이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는 표현으로 3개 단어가 모두 들어있지만 잘 읽어보면 식민지 지배와 침략 행위는 일반적인 역사흐름으로서 이해됐을 뿐 주체적으로 일본은 무엇을 했는지 언급돼 있지 않다. 3당측은 그 뒤의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한 이런 행위」란 문장으로 일본에 해당되는 경우가 표현돼 있다고 설명하지만 불명확하다.자민당 간사장은 『문맥상 간접적인 표현이라는 비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애매성을 인정한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 결의안으로 아시아 각국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는 것같지만 세계의 반응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과 중국의 언론 논평을 보면 결의안에서 부전이나 사죄 요소가 빠져있다는 실망과 불만이 팽배해 있다. 자민당내 결의 반대파의 압력으로 상징되는 국회의원간의 역사관의 차이,어떻게 해서라도 연립정권을 유지해 정권의 약체화는 피해야 한다는 정치적 우려와의 사이에서 계속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타협에 이른 것같다. 아무튼 이번 결의를 종군위안부 문제를 위시해 많이 남아 있는 전후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으면 결의의 취지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결의만 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심에 부끄러움을 주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행위는 과거를 직시하는 작업을 빼고는 불가능하다.이번 결의는 역사교육 문제를 포함해 무거운 숙제를 우리에게 남긴다.
  • 일 전후결의안/“전쟁만행 사죄 회피”/NYT 비판

    ◎“모호한 표현으로 의미 축소” 【뉴욕=이건영 특파원】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7일 일본 연립정부가 합의한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 내용이 진정한 사죄라기보다는 뜻을 모호하게 만들어 해석하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도록 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이 결의안이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을 안심시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일본정부가 결의안 문안에 과거의 침략행위와 관련해 「후회」와 「사죄」라는 용어를 빼고 「반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반성」은 일본에서 어린아이가 숙제를 잊어버렸을 때 갖는 느낌 정도로 사소한 의미라고 지적했다.이 신문은 와타나베 미치오 전일본외상의 망언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한편 일본의 침략행위를 뉘우치지 않는데 대한 반감이 한국과 중국국민이 일본을 불신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다수의 아시아국가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원치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보도했다.
  • 「부전」등 알맹이 뺀채 “겉치레반성”/일여당「전후결의안」합의 의미

    ◎침략·식민지 지배 범죄책임 회피/연정붕괴 우려 「물타기 결의」 변질 산고 끝이라고 꼭 옥동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연립여당이 6일 밤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을 열어 오랫동안 논란이 벌어져온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에 합의했다.자민당내 우익정치가를 비롯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될 뻔한 결의가 연립여당 안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사회당이 강공을 펼치고 연립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자민당이 양보한 결과다.또 와타나베의원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게 반발한 것도 합의를 촉진시켰다.이제 남은 절차는 야당인 신진당과 협의를 거쳐 중·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안이 산고 끝에 나왔지만 그 내용은 피해당사국 주민에게 실망스러운 것들이다.합의안에는 자민당이 반대해온 「침략행위」·「식민지지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당초 내건 「사죄」나 「부전결의」라는 말은 모두 빠졌다.결의안의 제목은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가 돼버렸다.「침략행위」라는 말도 「침략적 행위」라고 바뀌었다.외무성이 영어로 번역하면 「Acts of Aggression」으로 똑같다고 유권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어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물타기수법」에 불과하다.많은 역사가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총리들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형태다. 또 일본의 책임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켜나갔다.일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일본 국회의 결의안이 서구 제국주의국가보다는 아시아국들을 향한 선언이라는 성격이 강한데도 책임부분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결의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결의는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단지 선언일 뿐이다. 결의내용이 비록 형편없어도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따른다면 일본이 어느정도 반성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당안을 마련하는 논의과정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에는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두껍게 포진하고 있다.후속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 침략 사죄관련 주요 발언 ▲히로히토(유인) 일왕=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명인) 일왕=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만찬사) ▲가이후(해부) 총리=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회담) ▲호소카와(세천) 총리=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명한 매듭을 짓고 평화와 국제협조를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갈 생각이다.(93.8.10 취임기자회견) ▲하타 쓰토무(우전목) 총리=일본은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품을 가져다 줬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94.5.10 참의원 본회의 소신표명연설) ▲무라야마(촌산부시) 총리=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반성에 입각,부전 결의하에서 세계평화창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94.8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
  • “아시아지배”일야욕 변하지않았다/이창순 국제1부·차장급(서울논단)

    일본의 역사인식은 늘 세계적인 불신을 받아왔다.그 불신의 원류는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일본은 아시아국가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을 안겨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역사인식의 윤리적 불감증이 보편화되어 왔다. 일본의 윤리적 불감증은 연립여당이 6일 합의한 국회의 「부전결의안」에서 다시 입증됐다.연립여당 대표들은 이날 많은 논란을 벌여온 국회부전결의 「여당안」에 합의했다.그러나 합의내용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사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던 당초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당안은 부전이라는 말 자체를 빼버려 부전결의는 이미 아니다.사죄라는 말도 연정내 협의과정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과거사를 그대로 덮어둔채 미래만을 강조하려는 책략임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책략이 논의되던 같은날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이스라엘 학살기념관을 방문한 후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치학살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콜 총리는 나치의 학살을 둑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악한 행위라고 인정하고 스스로 역사앞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는 침략과 잔악행위 등을 은폐하려는 끈질긴 작업을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일부 세력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미화하기까지 한다.우리는 그러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본다.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한 일은 없다』는 망언을 공식석상에서 서슴없이 밝혔다.그러나 역사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그의 발언은 와타나베 한사람의 생각이 아니다.그는 일본 보수세력의 유력한 지도자중의 한명이며 대부분의 보수세력들이 그와 같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그러한 보수세력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친한파임을 내세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일본의 전후사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러한 망언의 역사라할 만큼 일본 지도층들의 망언은 계속 되풀이돼 왔다.일본의 망언은 1953년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다.그는 한·일회담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으며 한국점령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일본의 전형적인 「식민통치 은혜론」을 편 것이다.그의 발언은 당시 일본정부와 지도층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았다. 구보다 발언을 능가하는 망언은 65년 한·일회담 대표인 다카스기 신이치에 의해 행해졌다.그는 『식민지 지배를 20년쯤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너무나 파렴치한 망언을 했다.일본지도층의 망언은 84년 당시 문부상이었던 후지오 마사오와 88년 국토청장관이었던 오쿠노 세이스케에 의해 이어졌다. 일본지도층의 망언은 90년대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나가노 시게토 당시 법상은 94년 5월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정당행위였으며 남경대학살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일본의 망언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일본의 되풀이되는 이러한 망언은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다.그 밑바닥에는 아시아를 경시하는 일본인들의 위험한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일본은 그러한 망언을 통해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정당화하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일본민족의 우월주의를 심어주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역사인식은 「치고 빠지기식」의 망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나타난다.일본의 정치·경제·학계 등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분담」으로 망언을 되풀이하고는 그것이 문제가 되면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유감표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리한 이중적 태도를 반복해오고 있다. 일본 지도층과 보수세력들의 이러한 배타적 민족우월주의는 앞으로도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그러한 일본은 지금 종전 50주년을 맞아 전후청산을 마무리하고 아시아와의 새로운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위에서만이 참된 선린관계는직도 먼 미래의 일로 남아있는 듯하다. 전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오늘의 아시아 현실은 또 하나의 비극일지 모른다.그러나 더 큰 비극의 위험은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욕은 오늘도 크게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일본의 변화를 냉정히 인식하고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일본은 여전히 먼나라처럼 느껴진다.
  • 역사도 수치도 모르는 와타나베/일본 아사히신문 사설

    ◎「조잡한 발언」으로 한일 우호 해쳐 슬프다 자민당 실력자의 인식수준이 이 정도라면 과거를 반성하는 국회결의를 논할 계제가 못된다.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맺어진 국제조약이므로 법률적으로 식민지배가 아니며 전후 50년 국회결의에 「식민지」와 「침략」이란 문구는 필요없다는 것. 여기엔 초보적인 오류가 있다.한일합방은 한 나라가 독립을 잃고 이웃나라에 의해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지배당한 역사적 사실이다.이러한 상태를 통상 「식민지」라고 부른다. 합방조약이 원만히 맺어졌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다.일본은 1895년 민비를 살해,한국지배권 확립을 노렸다.합방까지는 몇단계를 거쳤지만 가장 악명높은 것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다.조약체결을 거부한 대한제국 황제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거부하면 더 곤란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고 협박했다.일본군의 감시 아래 열린 각의에서 이토는 황제의 조인이 없는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합방 과정은 「원만」과는 거리가 멀다.와타나베가 이런 경위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함부로 말하는 정치가로서 이번에도 「원만」이란 표현만은 나중에 취소했지만 외상까지 지낸 사람의 발언치고는 조잡하다. 한·일 국교정상화 기본조약이 조인된지 이달 22일로 만 30년이 된다.걸핏하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일본인의 의식도 점차 변해 최근에는 피해자의 기분을 헤아리는 겸손과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 93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의 발언은 그런 추세를 상징했다.한국으로부터도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자』는 말이 자주 들려오게 됐다.그로부터 2년도 못돼 정치가들의 문제 발언과 국회결의 반대로 인해,잘 진행되던 양국간 우호기운이 엉망이 됐으니 슬프고 분하다. 아시아와의 우호를 진지하게 고려해 역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지못한 정치가가 아직까지 활개치고 있다.이게 바로 전후 50년을 맞는 일본의 부각된 모습이다.
  • 북 「38선 퇴각」 전후(6·25내막 모스크바 새증언:11)

    ◎김일성,전황 불리해지자 “소군 파병” 급전/“연합군 북진 저지할 공군력 지원 절실” 호소/소 국방,“서울이남 모든 병력 신속 철수” 명령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밀리는 가운데 슈티코프 대사는 9월 30일 모스크바 본부에 대사관인원의 철수요청을 하기에 이른다.(N182sh.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서)『미군기의 공습으로 북조선내 거의 모든 공장이 파괴됐음.이런 상황하에서 업무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 군사고문단과 대사관 직원 거의 전부를 본국귀환토록 허락해주기 바람』 이에 대해 그로미코외상은 『평양에 불안감을 배가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철수는 불가하다』고 답했다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지도부는 마침내 소련의 직접개입 없이는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내용의 스탈린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준비했다.이 서한은 9월 29일자로 김일성·박헌영 공동명의로 작성돼 이튿 날인 9월 30일 슈티코프 대사에게 전달됐으며 슈티코프대사는 이를 같은 날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문으로 보고했다.(19 50년 9월 30일 스탈린앞으로 보내는 슈티코프의 전문.전문번호 N60 03 08sh) ○박헌영과 공동명의 『스탈린 동지께. 조선노동당을 대신해 우리는 조선해방자이시고 전세계 노동자의 최고지도자이신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당신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는 조선인민들에게 끊임없는 동정과 원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서한을 통해 우리는 조선민족이 미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는 해방전쟁의 전선상황에 대해 보고드리고자 합니다.인천(제물포)지역에 상륙작전이 있기 전까지는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민군들은 진격하는 적부대를 맞아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그러나 상황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적의 공군은 약 1천대에 달하는 각종 비행기를 갖추고서 공중을 완전장악해 우리의 저항을 용납치 않습니다.전선에서는 적의 기갑부대들이 전투기 수백대의 엄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작전을 펴 우리 병사와 장비에 막대한 손실을 가하고 있습니다.동시에 적의 폭격기들은 철도,도로,전화·전신망,수송수단등 모든 시설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있습니다.이로 인해 아군은 정상적인 보급이 안되고 제때 작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런 어려움은 모든 전선에서 공통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적이 서울을 완전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이 때문에 남조선 남부전선에서 싸우던 인민군은 북쪽에 있는 적에게 봉쇄당했습니다.남쪽전선에 있는 병력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탄약,무기,식량을 공급받지 못합니다.어떤 부대들은 부대간 통신도 안되고 적에게 포위됐습니다. ○보급로 끊겨 전선 마비 적들은 서울을 점령한 뒤 북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이 분명합니다.따라서 우리는 이런 불리한 상황이 계속돼 미군침략자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으로 믿습니다.병력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공군력이 필요합니다.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훈련된 병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이 우리에게 계획을 실행에 옮길 여유를 주지 않고 신속한 작전으로 북조선으로 진격해온다면 그 때는 우리 힘으로 적을 막을수 없습니다.따라서 경애하는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지원을 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다시말해 적이 38도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소련의 직접 무력원조가 정말 필요합니다. 만약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중국을 비롯한 여타 인민민주국가의 군대내에 국제의용군 부대창설을 지원해 주십시요.그리하여 우리의 투쟁에 무력지원을 해주도록 하십시요.위의 요청에 대해 당신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존경을 표하며.조선노동당중앙위. 김일성·박헌영』 이 서한이 보여주듯이 김일성은 애당초 소련군 파병을 요청했다.이 요청을 받은 스탈린이 여러 구실을 달아 소련군파병을 거부하고 대신 중공군을 보내라고 모택동을 설득한 것이다. ○“6개사단 창설 지시” 한편 소련당국은 9월 27∼30일자로 마트베트 장군이 연이어 보낸 전문에 대한 답신을 9월 30일 평양으로 보냈다.마트베트 장군의 전문은 김일성이 인민군총사령관과 국방상직은 겸직하고 남조선 사람들로 6개사단을 새로 만들고 싶으니 필요한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의 보고서였다.소련당국은 이 답신에서 김일성의 군직접통제를 위한 겸직과 남조선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6개사단을 새로 만드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소련공산당정치국 결정.전문번호 NP78­118).아울러 6개 사단창설에 필요한 무기,탄약,기타장비는 10월 5∼20일 사이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이 전문은 중국 운전병을 파견해주도록 소련이 중국에 말해달라고 한 부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그런 부탁을 중국동지들에게 직접 하는 것은 무방하되 소련을 핑계로 되지는 못하게 하라』고 못박았다. 한편 이 시기에 소련은 전황이 크게 불리해짐에 따라 한반도 전략에 있어 몇가지 시나리오를 동시에 검토하기 시작했다.이 시나리오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진다.ⓛ북조선에 전술적인 충고와 지원을 계속하는 것 ②북조선의 소련대표부 철수 ③북조선공산정권과 북조선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는 방안 ⑤철수후 반격을 위해 북조선군을 훈련시키는 방법 ⑥중국이 전쟁에 개입토록 압력을 가하는 것.결국 마지막 ⑦의 방안이 채택되기는 했지만 당시 모스크바와 평양간 오간 전문들은 나머지 네가지 방안 모두 심각하게 논의됐음을 보여준다. 문서들을 근거로 이 방안들을 하나하나 재구성해본다. ⑧전술적 충고. 9월 28일 서울수복과 함께 소련은 서울 이남에 남아있던 인민군을 북으로 철수시키는 문제가 첫째 과제로 떠올랐다.이 전술적 충고에서 소련당정치국은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가능한한 신속하게 병력을 북으로 철수시킬 것을 군사고문단에 지시했다.50년 10월 2일 불가닌 국방장관은 평양의 마트베트 소련군사고문단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포위된 병력을 철수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거듭 귀하에게 강조했음.남쪽에 포위된 인민군을 북쪽으로 철수시키는 일을 최우선 임무로 간주할 것.남쪽에 남아있는 병력들,특히 지휘관들에게 그룹이든 개별적으로든 어떤 수를 쓰더라도 북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할 것.전선이 따로 없음.그들은 자기 영토에서 싸우는 것임.인민들도 그들을 지원하고 있음.중화기들도 미련없이 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신속히 북으로 철수할 것.야음을 이용하고 적이 아직 점령치 않은 지역을 이용해 철수할 것.어떻게든 포위망을 벗어나 가장 귀중한 자산인 병력만은 빼내올 것.이 임무수행을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 ○소 개입사실 탄로 우려 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10월 5일 상황이 긴박하니 대사관직원 및 그 가족,군사고문단등 소련에서 파견된 인원 모두를 본국으로 철수시키자는 긴급전문을 본부에 타전했다.이에 대해 당정치국은 같은 날 답신전문을 채택 이튿 날 이를 슈티코프 대사에게 보냈다.소련대표부를 철수시키라는 내용이었다.(당정치국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문.N14 05sh) 『①소련 대표부 파견 인원과 고문단들을 귀국시키는 결정은 10월 5일자로 보낸 전문 N18 909에 의해 이미 지시한대로임.②재소한인들의 가족을 귀국시키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대사가 결정할 것.③공군기술자 가족과 군사고문단 가족은 조선영토에서 반드시 철수시킬것.④필요한 경우 재소한인을 포함,모든 소련시민은 소련과 중국영토로 철수시킨다는 대사의 제안에 동의함』소련군의 개입사실이 탄로날것을 두려워한 결정이었다. ◎새로 밝혀진 사실/소,국군38선 넘기전 「평양공관 철수」 거론/중국군 개입등 다섯가지 시나리오 검토 먼저 50년 9월30일 슈티코프가 모스크바 본부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인원의 철수를 요청하고 있는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처음 밝혀진 것이다.10월1일에 국군이 38선을 넘었음을 생각할 때 매우 빠른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미군의 공습 때문이었다.그러나 평양의 불안감을 이유로 그로미코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진 것이다. 전황이 크게 불리해지면서 소련이 다섯가지의 한반도전략 시나리오를 검토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이번에 밝혀진 많은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의 하나일 것이다.즉 여기에서 소련은 북한에 대한 지원의 계속,소련대표부의 철수,북한정권의 한반도에서의 철수,반격을 위한 북한군 훈련,중국의 개입압력 등의 다섯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음이 최초로 밝혀진 것이다.이는 앞으로 전체 내용이 공개된다면 한국전쟁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점을 규명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이번 자료에서 우선은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얻은 셈이다. 9월28일 유엔군의 서울수복과 함께 북한군이 위기에 처하자 소련 국방상 불가닌이 직접 명령을 내려 가능한한 빨리 전원이 북한으로 돌아 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처음 밝혀졌다.가장 귀중한 자산인 병력을 데려오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10월1일 국군이 38선을 넘자 소련은 자국 소련대사관 인원과 군사고문단들을 철수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전쟁에는 소련 공산당이 최고위 수준에서 직접 개입하고 결정을 내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회의 연재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이 「미소간의 전쟁」으로 넘어가면서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는 소련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것 이상 군사적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박명림
  • 일 연립여당 「종전 50년」결의안

    일본 연립여당이 전후(전후)50년에 즈음한 국회결의안이란 것을 마련했다.작년 6월 자민·사회당등의 연립정권 발족당시 채택키로 합의한지 1년만의 일이다.그러나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결의를 다짐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결의안 같다는 것이 우리가 받는 인상이다. 우선 이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지난 1년동안 일본에서 전개된 우여곡절은 한마디로 불쾌하고 실망적인 것이었다.누구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사회당본부 화염병투척 등 우익들의 반대는 완강했으며 결과적으로 마련된 결의안은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자민당을 비롯,일본정계에 일제)와 침략전쟁이 정당했다고 신봉하는 우익세력이 얼마나 뿌리깊게 남아 있는가를 재확인하는 역설적인 기회였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기대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그동안 국왕과 총리등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수없이 해왔으며 그 이상이 나올 수 없는일본의 속성과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우리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의 수준에서도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결의안 내용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사죄 및 다시는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한마디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변명과 정당화에 급급하고 있다.그당시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은 세계열강 모두가 추구한 보편적 시대상황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인 자기변명과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의라면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그것은 한국 등 아시아 이웃들의 지난 상처를 달래고 공존공영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일본국회의 전후 50주년 결의안에 걸맞는 내용은 아니다.와타나베망언과 함께 일본제국주의·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와타나베 사과와 사실/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올해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가 응징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국민들은 올해가 「밝은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가장 쓰라린 경험을 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개척하자』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온 터이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의 움직임은 주변국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만큼 거꾸로 가고 있다.지난해 연립정권을 세우며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회에서의 부전결의는 우익세력의 반대로 이미 그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자민당 등 일부 우익세력이 반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말들을 보면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어서 윤리적 불감증은 지난 3일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친한파라는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은 없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와타나베는 5일 파문이확산되자 서둘러 사과했다.그의 「코멘트」는 이렇다.『원만히라는 단어를 취소하고 사과한다.일본이 36년동안의 조선반도 통치기간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점을…인정한다.내 발언의 취지는 한일합방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65년도 한일기본관계조약을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일본어로 오와비라는 말로 사과한다고 했다.오와비는 사죄에는 못미친다.미안하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하다.일본에서 사과한다고 할 때 오와비라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하지만 내용을 보자.그는 그저 「원만히」만 취소했다.무력에 의하지 않았다는,사실과 다른 말은 그대로다.또 식민지지배가 아니라 통치했을 뿐이라는 기본 인식도 그대로다.그의 「사과」는 과거 여러번 되풀이됐던 망언들과 마찬가지로 말만의 사과일 뿐이다. 와타나베식 사과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은 과거 침략의 역사,만행의 역사를 반성,새출발을 위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강조한다.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다시 과거사를 뒤집으려 하곤한다.바로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때문에 여러가지 낙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긴장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와타나베 전일 외상 만언을 듣고/신희석(기고)

    ◎일 신보수주의의 한심한 역사왜곡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외상이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의 근거가 되었던 한·일합방조약은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결되었다고 발언하여 또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파문이 커지자 「평화적」이라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의 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역대 일본의 총리나 각료,국회의원등 지도급 인사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를 비롯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이런 발언을 되풀이해 왔다. 그들의 발언양상은 마치 휴화산과도 같다.조용해질까 하면 또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발언을 되풀이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중요성,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한·일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임을 감안할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와타나베전외상의 발언은 세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시기적 문제점이다.일본정부가 전후청산을 위해 노력해왔고 일본국회가 중·참 양원에서 부전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강력히 대처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겠다. 전후 50주년을 맞이해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일본 연립정권의 노력이 진행되는 시기에 이런 도발성 발언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겠다.더구나 일본과 북한의 수교교섭 재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왜냐 하면 일본의 경제협력과 자본,기술,그리고 쌀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시기적으로 와타나베 발언에 강력 대응하기에는 불리한 입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둘째,발언내용의 문제다.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이 없다니 도대체 와타나베전외상의 역사인식과 양식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애국주의적인 감상주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국내에 신보수주의 내지는 신민족주의 사조가 있음을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일본 국내의 사상사적 흐름과 배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와타나베 발언은 한·일관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매우 한심한 노릇이다.한·일합방은 전전의 일본이 제국주의 대륙침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강화도수호조규 을사보호조약등의 불평등조약 역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까지 지낸 일본의 지도급 정치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솔한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규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등 역대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일본의 기존 자세로부터도 크게 후퇴하고 있다.이같은 여건 속에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셋째,상황적으로도 적당하지 못하다.와타나베전외상이 도치기현 자민당지구대회라는 공식 장소를 빌려서 이런 발언을 경솔하게 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향후 일본 수상을 바라고 있는 지도자가 이같은 상황 판단을 한다면 대국 일본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한다.아·태 협력시대에 제일 중요한 동반자는 한·일 양국이다.이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지도급 인사의 경솔한 발언은 우리를 다시 슬프게 하고 있다.우리는 두 민족 모두를 위해 오로지 평화스러운 한·일관계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 일 연정 국회결의안 전문

    일본 연립여당이 채택키로 한 국회결의안 전문은 다음과 같다. 『국회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세계 전몰자 및 전쟁희생자에 대해 추도의 「성」을 바친다. 또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많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한 이런 행위와 타국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이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 우리는 과거 전쟁에 관한 역사관의 차이를 넘어 역사의 교훈을 겸허하게 배움으로써 평화스러운 국제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국회는 일본 헌법이 내건 항구평화의 이념아래 세계 국가들과 손을 맞잡고 인류공생의 미래를 개척해나간다는 결의를 여기서 표명한다』
  • 우호적 강도(외언내언)

    일본의 한국강점은 1870년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된 「정한론에서부터 비롯된다.대륙진출의 침략정책을 주장한 「정한론」은 청일·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고 1905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체결로 이어진다.1910년 한일합방 이전 나라의 외교권·자주권을 빼앗기고 일본 통감부 설치를 허용한 을사5조약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1905년 11월16일 일본 칙사 이토(이등박문)는 한국정부 대신들을 그의 숙소에 납치해놓고 조약체결을 강요했다.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음날 덕수궁에서 군신회의를 개최토록 했다.궁궐 안팎은 완전 무장한 일본군이 몇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서울시내 전역을 철통같이 방비한 일군은 각 성문에 야포와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있었다. 삼엄한 무력시위 속에 대신회의는 하오 8시까지 계속됐으나 일본의 제의를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이토와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폐회후 돌아가는 대신들을 위협,강제로 회의를 열게 한뒤 11월18일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고종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채로. 조약이 체결된 4일후 고종은 미국인 헐버트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한다.이 밀서에서 고종은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을사조약 체결이후 이를 반대하는 순국항쟁이 국내외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은 조약체결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은 불과 90년전의 역사적 사실이다.그런데도 와타나베 전일본 외상은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원만히 체결됐다』고 망언을 늘어놓았다.남의 집에 침입한 강도가 『우호적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일본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사왜곡이 언제 바로잡힐 것인지 한심하다.
  • “아시아 침략·식민지배 깊은 반성”/일 연정,국회결의안 합의

    ◎「부전」 빠져 한국 등 아주국 반발 클듯 【강석진 특파원】 자민당과 사회당 등 일본 연립여당은 6일 간사장과 서기장급 고위회담을 비롯한 연쇄절충을 벌여 전후 50주년에 즈음한 국회결의 여당안에 합의했다. 연립여당측은 7일부터 통합야당인 신진당 등과 여야협의를 벌여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열리는 서방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 출국하기 직전인 14일까지 국회에서 결의를 정식으로 채택할 방침이다. 여당결의안은 먼저 전세계 전몰자와 전쟁희생자에게 추도를 표시한 뒤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많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했던 이같은 행위와 타국민,특히 아시아 여러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은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마라톤식 절충과정에서 자민당의 모리 요시로(삼희랑) 간사장은 『일본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행했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구보 와타루(구보선) 사회당 서기장이 이 말을 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맞서 일반적 상황을 열거한뒤 「우리나라도 과거에 행한 이런 행위」라는 표현으로 절충이 이루어졌다. 역사관이 뚜렷이 다른 양당간 절충으로 자민당 일당지배시절 총재인 내각총리가 여러차례 아시아국가에 되뇌었던 「사죄」라는 표현과 무라야마 총리가 늘 강조해온 「부전」이라는 말은 빠져 한국을 비롯한 중국등 아시아국가의 반발도 예상된다.
  • 일제침략사 미화/정치인 망언 비판/중 광영일보

    【북경 연합】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앞두고 일부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제 침략행위를 미화하고 있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겨냥,중국관영 광명일보는 6일 『어떤 호도와 개변으로도 일본 군국주의의 죄행부가 공로부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광명일보는 이날 「죄행부가 어떻게 공로부로 바뀔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유명정치인인 오쿠노(오야성량)와 나가노(영야무문)가 지난달 29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렸던 이른바 「아주공생제전」에서 또다시 일제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망언을 늘어놓은 것을 비판했다. ◎와타나베 전외상/역사·수치도 몰라/일지 사설 【도쿄 연합】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은 6일자 사설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원만하게 체결됐다고 밝힌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의 망언을 역사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정치가의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아사히는 이 사설에서 와타나베의 발언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자민당 실력자의 인식수준이 그 정도라면 과거를 반성하는 국회결의를 할 계제가 못된다고 지적했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일 국회 「침략반성 결의」 서둘라(해외사설)

    자민당 귀하 자민당이 사회당위원장을 총리로 모시기로 결단한지도 1년이 됐습니다. 전후50년 국회결의가 연정3당의 정권합의 내용에 포함돼 있었음에도 불구,구체화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가 추구하는 것처럼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명기하는게 왜 「역사의 일방적인 단죄」입니까? 그같은 자민당의 주장은 아시아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며,아시아 해방전쟁이라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자민당내에서도 귀를 닫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전쟁관이 자민당내에서 아직 뿌리깊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패전은 「미국의 기술과 물량에 진 것」이라고 규정해 아시아에 민중에 대한 가해의식이 희박한 상태에서 전후 보수정치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자민당에는 이시바시처럼 전쟁전부터 영토확장주의를 엄하게 꾸짖은 논객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그 뒤를 이은 사람은 만주국의 고관을 지냈고,도조내각의 각료로서 A급 전범용의자로 수감돼 있던 기시였습니다.냉전에 따른 미국의 방침전환이 「반공」주의자인 그의 석방을 가능케했지만,기시를 최고권좌에 취임시킨 것은 자민당이었습니다. 그러한 경위에서부터 생각할 때 「침략」과 「식민지」를 반성하지 않는 자민당의 체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그러나 냉전이 끝난 것처럼 시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최근에는 자민당총리도 「침략적 행위」와 「식민지」란 말을 종종 입에 담았습니다.역사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아시아의 평화·우호가 중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겠지요. 자민당내에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습니다.만장일치 결의가 어렵다면 생각이 같은 의원들이 당파를 초월해 결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무라야마총리는 끊임없이 「중대결의」를 말해왔습니다.책임지고 수습하겠다고….고노총재,이번은 당신이 「중대한 결단」을 할 차례입니다.
  • 일 우익 「한·중 수탈사」 왜곡입증/일 귀족원 비밀회의록 공개의미

    ◎태평양전쟁에 조선인 징용 준비 확인/“공격대상 미·영” 논리 허구성 드러내 일본참의원의 전신인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추밀원) 비밀회의록이 5일 모두 공개됐다.비밀회의록은 24건으로 A4판 4백70쪽 분량.그 가운데 전후 미점령군 사령부가 가져간 「미국의 일본 공습 및 상륙에 관한 질의」는 공개대상이지만 자료는 입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중의원이 갖고 있는 비밀회의록의 공개가 과제로 남게 됐다. 비밀회의록의 공개는 대부분 한국에서는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등에 의해 널리 확인돼 왔으나 일본에서는 극우주의자나 일부 보수정치인등에 의해 제멋대로 왜곡돼 왔던 과거의 침략수탈사가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41년 1월 회의록에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1년전 이미 영미와의 전쟁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전쟁수행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할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이는 뒤에 징용으로 나타난다. 또 고노에 당시총리는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관련,「대동아 각 민족을 구미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한다」면서 「(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고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즉 구미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분리시켜 자원을 강탈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정치권에서 부전결의등의 채택을 둘러싸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와 싸운 것이 아니고 영·미와 싸우다가 본의아니게 아시아인에게 폐를 끼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미가 일본의 생명선인 유류등의 금수조치를 실시해 전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일본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논리가 엉터리라는 점이다.고노에총리는 『영·미는 중일사변과 관련,9개국조약에 기초해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대륙침략정책을 포기하지않자 영·미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가솔린등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고 말해 모든 원인이 한반도와 만주에 이어 중국까지 마구잡이로 침략을 자행한 일본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밖에 비밀회의록에는 1894년(한국의 동학농민전쟁에 일본이 개입,청일전쟁이 벌어진 해) 청일전쟁 임시군사비를 심의하는 귀족원 회의가 히로시마에 건설된 대본영의 가의사당으로 의원들이 집합해 열리는가 하면 심의도중 군사비에 관한 사항이라며 속기까지 정지돼 기록이 남겨지지 못하게 되는 등 군의 문민정치원리에 대한 훼손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45년 3월 도쿄대공습 직후 열린 비밀회의에서는 이미 공습사망자가 5만5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이와관련,한 전쟁작가는 당시 일본이 전쟁을 포기했다면 일본은 원자탄 투하도 피할 수 있었고 일본인 사망자 3백10만명 가운데 2백만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침략에 눈이 먼 지도자들이 일본국민과 아시아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회의록 내용을 살펴본 도쿄도립대 사사키 류지교수등은 「고노에내각은 절망을 선택했다」,「무책임한 체계의 공허함을 본다」면서 침략의 역사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일제 비밀회의록 요지 일본 참의원은 18 91년부터 19 45년까지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에서 행해진 비밀회의록을 5일 공개했다.다음은 비밀회의록 가운데 한반도 및 침략전쟁과 관련된 부분들의 주요내용. ▷태평양전쟁과 조선인 노동력 착취 계획◁ 1941년 1월 고노에 후미마로총리의 「국내외정세에 관한 보고」.…제국장래의 생명인 대동아 공영권건설 문제에 관해 독일·이탈리아 양국은 일본의 지도권을 인정한다고 함이 명료하다. 독·이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 말고는 길이 없다.전쟁은 독일측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믿는다.영국과 미국은 중일사변에 대해 우리의 지금까지의 대륙정책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제국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장래의 발전이 되지 않는다.그 결과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장개석정권을 원조하고 있으며 가솔린등의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 (영·미와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면서)특히 노동력 보급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곤란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지금의 탄광종사자 30수만명에 더해 시급히 약 4만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다른 산업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쉽지 않다.국내 노동자 모집,조선 노동자 도입등에 관해 현재 응급 특별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아시아각지의 침략과 관련)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 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 ▷중일전쟁◁ 40년 2월 요나이 미쓰마사총리(해군장관출신) 상황보고.중경정권(장개석정권)이 항전을 계속하는 한 사변은 계속된다.(왕조명정권의 목적은)중경정권을 약화굴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국제연맹탈퇴◁ 1933년 2월 사이토 마코토총리(조선총독역임)의 보고.(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립튼보고서를 국제연맹이 채택하면)동양평화의 확립에 대해 연맹과 소신을 달리하게 되므로 연맹과 협력할 여지가 없게 된다.…최후의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이 회의는 연맹이 보고서를 채택한 2월 24일보다 사흘 앞선 21일 열렸다).
  • 와타나베망언 강력 대처/당정방침/“파렴치한 역사왜곡”… 취소 요구

    정부는 4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중의원 의원의 한일합방 조약 망언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은 우리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음이 명백하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히고 『특히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은 다시한번 일제 36년 식민지 지배의 쓰라린 역사를 상기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으로 부총리겸 외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부는 이와 관련,일단 일본정부의 조치여부를 지켜본뒤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망언을 즉각 취소하고 사과하라』면서 『일본의 일부 지도층이 망언을 계속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지역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일 합방조약 우호적 체결/식민지지배 한적 없다”/와타나메 망언 물의 【도쿄=강석진 특파원】 와타나베 미치오(자민) 전회상은 3일 일제의 한반도 강점(1910∼1945)의 근거가 됐던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체결됐으며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한 적은 없다고 망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4월 연립여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북한에 대한 쌀 제공을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 의원은 이날 도치기현의 한 강연우 기자회견에서 『한일합방조약은 무력으로 한 거서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립됐으며,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는 전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등 어떤 공적 문서에도 씌어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부전결의」 깨기 의도적 도발/와타나베 망언 왜 나왔나

    ◎「전후50년」 일 사회 보수화기류 팽배/자민 등 세확대 노려 「침략미화」 경쟁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의 망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일본의 총리나 각료 등 지도자들은 50년대 이후 망언을 되풀이해 왔다.최근 들어서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연립정권 수립 당시의 약속을 깨기 위해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우리만 했느냐,그말을 넣으면 배상요구가 다시 나올 것이다,전쟁희생자들을 욕되게 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공공연히 해대고 있다.일본에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이 있지만 삐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이웃나라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 만큼 많다.전후 50주년을 맞아 그들은 더 많은 망언을 쏟아놓을 가능성도 높다.와타나베의 망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 등을 주장하면서 호시탐탐 한반도 강점을 노렸던 사실,무력을 동원한 강압적 합병,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 기도,징병·징용에 이어여성들을 데려다가 위안부로 삼고 전쟁말기 대부분 살해한 사실 등은 외면한다.그들은 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 등 역대 총리가 국회답변 등 공식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사실로부터 후퇴하고 있다.이들은 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말한다.가해의 역사는 땅에 묻어버리자는 속셈이다. 와타나베는 특히 외상까지 지낸 인물로서 평소 친한파로 여겨져왔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부전결의를 반대하는 자민당내 의원들가운데는 평소 친한파로 행세해 온 인물들이 많다.이같은 사실은 이제까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뒤편에서 늘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엉뚱한 짓을 전개해 왔다.지난해에는 인체실험을 했던 부대터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인골 1백여구를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검사도 않은 채 화장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이를 막기 위해선 그들의 가해의 역사,반인류의 만행들에 대한 확실한 뒤처리를 일본에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와타나베는 지난 3월 연립여당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국교정상화교섭 재개를 합의했고 지난달에는 북한대표단을 만나 쌀문제 협의를 주도하기도 했다.그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무라야마의 연립정권은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 부전결의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어떤 면에서는 일본에서 거세지는 보수화 바람에 편승한 자민당이 이같은 연정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3일 와타나베의 망언도 이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 “6·25승리 정당평가 받아야”/참전용사 값진희생 누구도 훼손못해

    ◎김 대통령,국가유공자 초청·다과 김영삼 대통령은 2일 『6·25 한국전쟁은 침략자들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켜낸 값진 전쟁,승리한 전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날 하오 윤재철 상이군경회장을 비롯한 국가유공자단체 간부 3백여명을 청와대로 초청,다과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한국전 참전 기념 조형물을 제막할 때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한번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한때 국내외에서 6·25전쟁의 실상을 왜곡하고 참전용사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진실이 있는 한 여러분의 명예를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쟁을 잊지 않은 국민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며 평화는 그것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힘이 있어야만 누릴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전제,『국가안보야말로 모든 것에 앞서는 최우선의 가치요 과제임을 국민 모두가 더욱 확고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광복 50주년,6·25전쟁 45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 세계 11위,수출 1천억달러,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선진경제권에 들어서게 되고 6·25전쟁때 유엔군 파견을 결의했던 바로 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당당히 이사국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면서 『전몰 호국용사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처럼 보람찬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 일 「부전결의」 합의 실패/자민·사회·신당사키가케

    ◎「전쟁책임」 사고 이견 【도쿄=강석진 특파원】 전후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에서 채택할 예정이었던 「부전결의」 문안을 놓고 연립여당인 사회당·신당사키가케와 자민당이 2일 전후프로젝트팀 회의를 열어 의견조정작업을 벌였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연립 3당은 다음주 간사장급 고위회담을 열어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으나 이번 회기안에 일본 국회가 부전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날 실무선인 여당 전후프로젝트팀 교섭에서 자민당은 그동안 반대해 오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라는 단어의 포함에 동의해 왔으며 사회당은 사죄라는 단어를 고집하지 않기로 해 한때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양당은 그러나 사회당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일본이 행했다고 표현해 책임을 분명히 인정하자고 주장한 반면 자민당은 일본만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책임을 명확히 하는데 반대,합의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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