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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말련 등 축하행사…일에 사과 촉구/종전50주년…아태국 표정

    ◎학살고발 영화전·폭죽 터뜨리며 행진­중·대만/“경제대국 일 눈치”… 조용하게 보내 대조­동남아 2차대전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은 일본에게는 패배의 날이지만 많은 아시아국가에게는 일본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환희의 날이다.종전 50주년를 맞아 한국·대만·호주 등은 이날 일본의 패전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벌이거나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과거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등 일본의 패전의 의미와 잔학상을 부각시켰다.하지만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국가는 의도적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등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에서는 수리눙 장군(74)을 필두로 20여만의 대만인이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고 폭죽을 터뜨리며 시가를 행진,일본통치 종식 50주년을 기념. 이등휘 총통의 보좌관인 하우페이춘씨는 『50년전 오늘이야말로 중국인에게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회고. 행진자중에는 「나는 중국인이다」란 표어를 내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부와 남부대만으로부터 올라온 이들도 끼어 있었다. ○…중국은 잔혹한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상영과 우표전시회,신문사설등으로 일본항복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주요우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않기 위해 신중한 반응. 특히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발간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일본군에 의해 3천5백만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나라의 수뇌치고는 용의주도한 발언을 해 주목.『나는 모든 일본인과 정치인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중·일관계의 정치적 기조를 지켜나갈 것으로 믿는다』 한 중국관리는 사적으로 『일본 항복 50주년을 맞아 중국이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 있는 마당이므로 일본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폴 키팅 호주총리는 14일 일본에 대해 2차대전중의 군국주의와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어린이에게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교육시키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촉구. 키팅총리는 이날 호주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인 15일을 맞아 『일본이 군국주의정책으로 이웃국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를 대표해 이에 대한 유감표명을 해주길 바란다』고 언급. 그는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였는데도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메시지를 일본인에게 남겼다』면서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 만큼 전쟁은 일본의 사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 ○…2차대전중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동남아국가들이 말레이시아의 국지적인 행사개최를 제외하고는 종전 또는 해방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동남아국가들의 이같은 반응은 이 지역 최대의 경제협력 파트너이자 원조제공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아시아를 위한 일본으로(해외사설)

    겐셔 전독일외무장관은 독일통일을 실현한 전후독일을 대표하는 외교전략가다.그는 유럽의 긴장완화를 추진,독일통일을 실현했다.겐셔외교가 미국은 물론 유럽으로부터 신뢰를 받은 최대의 이유는 그가 역설한 외교이념이었다.그는 『선량한 유럽인이 되는 것은 선량한 독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나치독일은 유럽의 독일화를 꾀했지만 전후독일은 독일의 유럽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유럽과 미국을 향해 되풀이 말했다. 일본과 독일은 똑같은 패전국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점하는 지위와 세계로부터 받는 경의는 크게 다르다.독일은 유럽의 경계감을 해소했다. 한국 및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일본이 진실로 과거를 반성했는가에 의문을 품고 있다.일본에서는 얼마나 사죄해야 하는가라는 반발도 들린다.하지만 정부의 사죄표명후 과거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가 깊이 의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국회의 전후 50년 결의를 둘러싼 혼란은 아시아여러 나라에 대일 불신을 크게 증폭시키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구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15일 시작된다.구총독부건물은 아시아를 일본화하려던 역사의 유물이다. 철거는 전후 50년의 교훈에는 다소 구애되는 점이 있지만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를 꾀하려는 한국지도자들의 뜻이 반영돼 있는 것이다. 일본은 미·일관계를 외교의 기본으로 해왔다.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강화는 아시아로부터 일본을 멀어지게 하는 국제역학으로 작용했다.독일의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의 관계강화와 직결돼 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이 국제적으로 보다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일본은 미국과의 대립을 격화시키지 않고 태평양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아시아의 이웃나라와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외교능력과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독일의 지혜로부터 배운다면 과거 전쟁과 침략이 아시아를 일본화하려 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일본이 장래 아시아의 해양국가로 남으려면 아시아를 위해 노력한다는 새로운 이념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 오늘 광복 50돌/대대적 경축 행사

    ◎5만명 「환희의 그날」 기념식/구 총독부 중앙돔 첨탑 제거/세종로/김 대통령,대북 메시지 발표 15일은 제50주년 광복절.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새 나라를 세운지 반세기를 맞는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21세기 새시대로 접어든다는 감격을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특별한 날이다.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을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에서 김영삼대통령과 3부요인및 각계대표,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한다. 「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경축식에서는 특히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이 크레인으로 철거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남북한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등에 관한 기본입장을 천명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 가운데 치러지는 경축행사는 식전·식후 행사까지 포함,15일 상오9시에서 2시간10분간 계속되는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수 있다. 본행사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정명훈씨 등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4인의 축가 「동방의 빛」 연주와 합창,독립유공자 포상,김대통령 경축사,참석자들의 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축하비행 순으로 진행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
  • 책으로 되새겨보는 광복 50주년/대형서점 「특별코너」를 살펴보면

    ◎항일투쟁사·일제만행 고발 서적 많아/해방후 현대사 다룬 책도 눈여겨 볼만 광복 50주년을 맞은 오늘 관련서적들을 읽으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이 시대를 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대형서점이 정리한 관련도서 목록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주요서적들을 골라 본다. 올해는 한일관계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져나왔다.게다가 내용과 형식이 아주 풍부해 특정 사건·인물의 평가에서 양국 역사·문화의 본질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연구서·소설·수기·비평 등 갖가지 형태로 선보였다. 올해 나온 관련도서들을 살펴보면 먼저 일제의 국토강점에 대항해 해외에서 벌인 항일독립투쟁을 소개한 것들이 돋보인다.독립유적지 기행을 비롯,독립운동가의 수기와 전기 등을 통해 자칫 세월에 묻힐뻔한 귀중한 증언들을 수록했다.또 일제의 침략정책을 분석한 연구서,친일파의 모습을 까발린 책도 여럿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만행도 집중 조명했다.종군위안부·징병·징용 등의 강제동원,한국인 원폭피해자의참상,관동대지진 때의 집단학살 등의 실상을 폭로하고 일본이 보상해야 할 부분은 하루빨리 해결하도록 촉구했다.이 가운데는 가해자측인 일본인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뜻에서 낸 책들과 제3국인이 객관적 시각으로 일제를 비판한 것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일본은 없다」로 촉발된 일본비평서 붐은 올해에도 이어져 한·일 양국의 상대국 비평서가 많이 출간됐다.상대방의 약점만을 들춰내 비난으로 일관한 책들이 여전히 섞여 있지만 역사·문화를 깊이있게 분석한 책들도 여럿 나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이밖에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지적한 책도 여러권 나왔다. 광복이 「일제 마수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광복은 곧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출발을 뜻하기도 한다.이런 점에서 광복이후 현대사를 다룬 책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미군정 3년의 공과를 평가하거나,해방공간에서 남북의 어느 한켠에 서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통일 노력을 기울인 남북협상파의 궤도를 추적한 연구서들이 돋보인다.
  • 광복절 경축 예행연습 이모저모

    ◎「새아침의 소리」 연주 이어 화려한 “폭죽”/전통국악대 연주… 장병 바라꾼도 눈길/「통일 환타지」서 모두 「우리의 소원」 합창 총무처는 13일 광화문앞 세종로 일대에서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 예행연습을 가졌다.이날 연습한 부분은 식전행사인 「새아침의 소리」와 「다시 찾은 빛」,그리고 식후행사인 「통일환타지」등 3개. ○…「새아침의 소리」는 이날 상오 국립국악원에서 나온 대고수 5명,육군 60사단에서 차출한 장병으로 구성된 멜북꾼 2백4명,육군 71사단에서 나온 장병으로 이루어진 바라꾼 2백9명등 모두 4백18명이 참가했다.중앙식단 전면에 위치한 전통군악대는 「새아침의 소리」 연주에 이어 세종로 중앙분리대에서 큰북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폭죽이 터지면서 충무공동상앞에 대기하고 있던 멜북꾼·횃불수·바라꾼들이 북과 바라를 두드리면서 광화문으로 입장했다.「새아침의 소리」 연주는 과거의 어둠을 향한 초혼의 나발을 의미하며 북과 바라 소리는 역사의 문을 여는 소리,그리고 폭죽은 어둠에 눌렸던 과거의 빛을 상징하는것이라고 총연출을 맡은 표재순sbs프로덕션사장이 설명했다. ○…「다시찾은 빛」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속에 국립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단원들의 무용이 횃불수 멜북꾼 바라꾼과 한데 어우러진 「구시대의 유물인 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사라지니 찬란하고 새로운 빛이 비쳐온다」는 내용.국악인 김성녀,성악가 신동호씨와 3백명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의「천둥소리」합창이 이어졌다. ○…「통일환타지」는 한국현대무용단 서울시립가무단과 육군 56사단에서 차출된 군인들로 이루어진 무용단,서울 미동국교 어린이들의 무용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행사.미동국교 어린이들이 식장 전면으로 춤추며 등장한데 이어 현대무용수들이 동·서 양쪽에서 합세해 「한반도」와 「무궁화」를 무용으로 표현하고 세종로 중앙분리대쪽에서 어린이 독창자를 태운 리트프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모든 출연자와 참석자들이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행사장 주변은 차량 통제로 매우 한산했으나 북과 바라,그리고 합창이 광화문 일대에 울려퍼져 광복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미리본 광복 50돌 중앙 경축식/옛 총독부 첨탑철거부터 행사 시작/시민·해외동포 등 5만명 축제 참여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이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일대에서 각계대표와 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등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날 경축식은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의 식전행사,10시부터 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동안 진행된다.정부는 특히 식전행사에서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을 크레인으로 철거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에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국민들은 경축식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고 창덕궁을 제외한 5대궁과 능원,현충사,국·공립공원등이 이날 하루 무료 개방되며 광복회원및 동반가족 1인에게는 철도및 시내버스 무임승차 혜택이 주어진다.
  • 광복 50년의 반성과 과제/이만열 숙대교수·한국사(특별기고)

    ◎일제탓 그만하고 통일 힘쓰자/「식민콤플렉스」 벗어야 참된 극일/힘 커진만큼 「세계봉사」 눈돌려야 며칠전 지난 50년간의 우리 나라의 성장과정을 비교하여 작성한 「통계로 본 광복50년」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이 괄목할 만한 성장발전의 터전이 우리 세대의 피땀어린 노력 못지 않게 조국광복을 위해 바친 선조들의 희생에 있음을 알고 먼저 감사드린다.어떤 열매에는 반드시 이를 위해 씨뿌린 선각자들과 그것을 가꾸는 데 땀과 눈물로 헌신한 봉사자들이 있게 마련이다.해방 당시 우리가 식민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은 내적으로는 빈곤·좌절·무지·무비였고 외적으로는 외세와 거기에 얽힌 분단·갈등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성장·발전한 것은 조국이 광복을 맞아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우리 민족이 노예민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발전요인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광복을 위해 투쟁하신 선조들이었다.여기서 우리는 조국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민족의 생존·발전과 관련하여 다시 되새기게 된다. 광복 당시 우리는 신생 조국을 향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그것은 분명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통일된 조국이었다.정직과 근면,신의와 절제의 정신이 빠져버린 자본주의체제도,빈곤의 평등을 전제로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시켜 버린 사회주의체제도 아니었다.치열한 경쟁이 인간성을 마비시키고 개인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러한 사회를 꿈꾸지도 않았다.우리의 이상은 넉넉하지 않더라도 서로 나누고 여유가 없더라도 서로 도우며 고통과 슬픔 중에서도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두레정신의 실현과 그러한 공동체의 건설이었다.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갈갈이 찢어지고 무너진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두레공동체정신의 회복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한편 해방 당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던 선조들은 멀리는 문화국가의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를 원했고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우리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다.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하였다.오직 한없이 갖고 싶어한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었다.광복 당시의 이같은 이상으로 지난 50년간의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볼 때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그러나 그 이상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우리의 목표가 되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며칠전 일본의 신임 문부상 시마무라(도촌의신)의 「망언」이 또 우리를 분노케 했다.일본 지도자들이 「치고 달아나고」「뱉고 사과하는」수법은 오랫동안 보아온 터이지만 그것을 일본인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우리는 분통이나 터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자세인지 적어도 광복 50주년의 이 시점에서는 좀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묻는다.우리 안에는 일본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자세를 보여준 소위 지도자들이 없으며 지금도 식민주의사관에 젖어 있는 지식인들이 없는가.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 침략 사실을 인정·사죄·배상하라고 강박해 왔다.이 요구의 정당성은 「공소시효」를 무시하도록 만들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안에 있는 친일·반민족자들에게 얼마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었으며,일제의 잔재를 스스로 청산하려고 애썼는가.우리 안의 이같은 문제를 두고 일본에 대한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까.또 분단을 식민지의 유산이라 하면서 일제를 원망해 왔지만,36년보다 긴 50년동안 그것도 같은 동족끼리 분단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왔는가.냉전시대에는 강대국 때문에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자.그러나 얄타체제는 무너졌고 남북이 주체를 외쳐온지가 벌써 수십년이 되었는데도 분단문제는 민족 전체의 염원과는 달리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이 부끄러움을 우리 세대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런 점들을 알고 있는 일본이기에 그들은 자주 계산된 발언을 한다.그들은 우리가 잊을 만하면 망언으로 「경고」하면서,역설적으로 우리의 「역사의식」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지난 50년은 분단과 민주화의 시련이 겹친 시기였지만 그 연륜만큼의 성숙을 위해 애쓴 시기이기도 했다.정치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졌고 경제성장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교육·문화와 과학·기술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그럼에도 이러한 성장에 알맞은 성숙을 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우선 대일관계에서 식민지 잔재청산의 요구 못지 않게 식민지 피해의식의 심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 측에서만 보면 그런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일본이라는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식민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제는 경제·문화의 성장만큼이라도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자로서의 책임에 눈뜨고 앞장서는 성숙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언제까지 제국주의 세력에 비판만 가하면서 세계를 향한 자신의 봉사적 책임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과거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민족을 차별·학대했던 역사를 상기하면서 이런 정도의 성장에 도취된 듯 벌써 그런 못된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매우 안타깝다.쉬운 예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분노에 가깝다.나눔과 섬김이 없는 부와 명예는 자신을 부패하게 만들고 이웃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광복 50년은 또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50년간의 성장·발전에 가려져 있는 그늘진 부분들이 우리 공동체의 고민이요 과제다.21세기를 몇년 앞둔 우리는 대내적으로 정의와 인권에 바탕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대외적으로는 열린 민족주의에 근거하여 자주국가를 공고히 하면서 민족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수행해야 하는 민족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이 시대적인 소명에 제대로 부응할 때 우리는 민족사에 부끄럽지 않은 세대로 남게 될 것이다.
  • 일제 「쇠말뚝」 영구 보관/내무부/전국 유명산서 17개 뽑아

    내무부는 12일 전국 유명산에서 뽑아낸 일제의 쇠말뚝을 내년 광복절부터 국·공립박물관에 옮겨 영구보관키로 했다. 이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풍수침략까지 자행한 일제의 만행을 후손에게 길이 전해 민족정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내무부는 광복 50주년인 올들어 전국 유명산을 대상으로 일제의 쇠말뚝 뽑아내기작업을 벌여 17개를 제거하고 강원도 영월군 조울재 정상바위의 쇠말뚝은 오는 14일 뽑기로 했다. 이들 말뚝들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차령산맥,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각각 뻗어나는 이른바 맥에 박혀 있었다.
  • 일 총리/“과거 전쟁은 침략” 인정/일 언론 보도

    ◎8·15회견 때/“아 국민에 많은 고통 줬다” 【도쿄=강석진 특파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오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전후 50주년에 즈음한 총리담화」에서 과거 전쟁이 침략이었음을 명백하게 인정할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이 12일 보도했다. 총리 담화문 초안은 과거 전쟁에 대해 『국책을 그르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명기하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초안은 또 과거의 교훈을 살려 「독선적인 내셔널리즘(국수주의)을 배척」함으로써 일본이 국제협조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잘못을 두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도록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젊은 세대에게 강조해야 하며 일본과 아시아 국가의 근현대사 역사연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는 15일 열리는 각료회의에서 이 담화를 확정한뒤직접 발표할 예정이며,자민당 일각의 보수·우익세력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들은 덧붙였다. ◎“망언 문부상 파면”/일 공산당 촉구 【도쿄 연합】 일본 공산당은 12일 과거 전쟁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망언을 늘어놓은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문부상을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지위화부)서기국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건성으로 발언을 철회함으로써 속임수가 통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하고 시마무라 문부상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노골적으로 합리화했고 문부상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파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일 각료 망언 분노/중 외교부 논평

    【북경 연합】 중국정부는 10일 일본의 신임 시마무라 요시노부 문부상의 일제 침략전쟁 부인 망언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시했다.
  • 망언 일 시마무라 문부상/발언철회 여부 불분명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문부상이 망언 파동과 관련,해명에는 나서면서도 정작 발언은 철회하지 않고 있어 말썽을 빚고 있다. 시마무라 장관의 망언 파동 조기진화에 부심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10일 노사카 고켄(야판호현)관방장관이 11일 두번째로 시마무라 장관을 총리관저로 불러 「침략인가 아닌가는 생각해 볼 문제」라는 문제의 발언에 대해 엄중주의를 주었다. 노사카 장관이 시마무라 장관을 다시 주의를 준 것은 시마무라 장관의 10일 해명에 대해 여당 내부로부터 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뒤 노사카 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시마무라 장관이 「발언을 철회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마무라 장관은 그 뒤 기자회견에서 『설명이 부족해서 진의가 전달되지 않아 오해를 불렀다』면서 10일에 이어 「발언 철회」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 또 망언인가(외언내언)

    일제가 조선강점이후 첫번째 착수한 전국 규모의 사업이 「토지조사」였다.합방직후 토지조사국을 만들었고 1918년말까지 계속된 이 조사작업은 식민지 경제수탈의 근간이었다.수많은 조선인 지주가 땅을 빼앗기고 더 많은 소작인들이 농토를 잃었다.역둔토 14만5천정보가 국유화되었고 4만6천여정보의 민간인 농토가 총독부소유로 바뀌었다. 토지조사 7년만에 조선에서 일본인의 토지경영은 10배로 늘어났고 면적도 4배나 증가한다.1930년 조선의 쌀생산고는 1천3백51만섬,이중 40%인 5백42만섬을 일본으로 빼돌렸다.조선인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좁쌀과 콩깻묵을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농업생산이 경제의 대종을 차지하던 때였으니 조선의 경제전체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뿐인가.6백여만명의 노동인력을 징용이란 이름으로 끌고갔으며 태평양전쟁중에는 50만명의 젊은이를 징병으로 사지에 몰아넣었다.심지어는 부녀자와 어린 여학생까지 종군위안부로 끌어간 일제다.그 만행을 조선인들은 36년동안 겪고 지켜 보았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후 과거역사에 대한 사죄는 건성으로 해넘기고 기회있을 때마다 식민지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망언을 되풀이해왔다.「식민지 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됐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각료까지 등장했으니까. 우리에겐 광복50년,일인에겐 패전50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문부상에 취임한 시마무라(도촌의신)는 「망언행진」을 또 되풀이했다.『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니며 따라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보수 우익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그런 망언을 들으며 「일본인의 왜소한 심리」에 분노와 함께 연민을 느낀다. 『전쟁에서의 죄악과 옳지 않았던 일을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역사의 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는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의 최근 일본방문 강연은 옹졸한 일인의 망언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 시마무라 망언/일,조기진화 총력/무라야마 총리 “유감”표명

    ◎한국에 진의 설명… 파문 최소화 노력/“과거 반성” 공식입장 거듭 강조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신임 문부상의 망언 파동과 관련,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10일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한편 한국정부에 발언의 진의 등을 설명,파문을 조기진화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노사카 고켄(야판호현) 관방장관과 대책을 협의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면서 『내각의 방침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말해 지난해 총리가 소신표명 연설에서 밝힌 전쟁관과 과거반성이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시마무라 문부상은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대전에 있어 우리나라의 침략행위나 식민지 지배 등이 수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초래한데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침략성을 부인한 9일 망언을 일부 수정했다. 그는 이어 『나 자신은 경험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인간을 어리석게만드는가,그 결과는 지극히 비참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와 관련,노사카 관방장관은 이날 시마무라 장관의 기자회견에 앞서 그를 총리관저로 불러 『진의가 어떻든 아시아 여러나라가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아시아제국과 일본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된다.유의해 주기 바란다』고 엄중 주의를 주었다. 노사카 장관은 그러나 시마무라 장관의 진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어 사임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
  • 일 문부상의 망언 추태/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을 방문중인 독일의 바이츠재커 전대통령은 최근의 도쿄강연에서 일본은 과거에 대해 눈을 닫지 말라고 충고했다.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되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8월 한 여름에 던져진 그의 말은 일본에게는 적지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이 8월 일본이 침략사에 있어 첫 과실로 한국을 병합했는가 하면 끝내 침략 한길을 걷다가 연합군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그의 말도 일부 일본인에게는 「쇠귀에 경읽기」인 듯하다.특히 9일 상오 새 각료로 임명된지 하루도 안돼 망언을 내뱉은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새 문부상의 경우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2세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문부상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심하다.그렇지 않아도 망언을 걱정한 무라야마 총리는 과거를 반성한다는 취지의 소신표명발언을 복사해 8일 저녁 신임각료에게 나눠주면서 언동에 조심을 당부했던 터였다. 시마무라의 발언은 「거듭해서 사죄할 필요가 없다.194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일본인구의 70%를 넘는다」 「서로 침략하는 것이 전쟁이다.일본만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잘못했다면 국제공헌하든가 보상하는 것이 전향적인 것 아닌가」라는 말로 요약된다. 회사 사원이 70%가 넘게 바뀌었다고 회사의 권리 의무가 변동되는가.잘못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의 진심과 성의있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이 방법으로 이만큼 하면 되는 것이라고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문이 확대되자 그는 10일 「설명이 부족했다.발언이 오해를 받아 한국을 자극한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가 많은 사람에게 참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준데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명했다. 올해들어 망언으로 한국인들을 분노케 했던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파벌소속인 그는 하루 사이에 1백80도 말을 바꾸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그가 변명으로 늘어 놓은 말이 진심으로 믿기길 바란다면 「기민함」보다는 자신의 망언소동에 대해 단호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 일 전·현 각료/잇단 「침략 미화」 망언

    ◎오쿠노 전 법무·시마무라 문부상 발언 파문/“동아 해방전쟁” “사과 불필요” 강변/“대일신뢰 저해행위… 유감”­우리 정부 【도쿄 외신 종합】 일본의 전현직 각료들이 또다시 2차대전당시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망언을 해 비난을 사고 있다.오쿠노 세이스케 일본 전법무상(82)은 9일 2차대전중 일본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미국의 세뇌로 인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결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쿠노는 지지통신과의 회견에서 『일부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이(전쟁중 일본군에 의해 당한 고통과 관련해) 말하는 것에 동정을 보이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 참전자이며 지난 80년 법무상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미국­영국 동맹군에 의해 전쟁 선포를 강요당해 방어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백인에 의해 식민지화된 대동아를 해방,안정된 삶을 가져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연정의 내각개편으로 새로 취임한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문부상(자민당)도 9일 과거 전쟁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망언을 늘어 놓았다. 시마무라 문부상은 무라야마 총리로부터 임명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로 침략을 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전제한뒤 『전쟁에서 이긴 측이 상대방을 침략했다고 말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강변했다. 한편 이에 앞서 무라야마 일본총리는 새로 입각한 각료들에게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관련해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줄 것을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외무부 “우려” 표명 외무부는 9일 시마무라 일본 문부상의 침략전쟁 호도 발언에 대해 『일본 정치인에 의한 거듭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아시아 근린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신뢰를 크게 저해하는 행위』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외무부 당국자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에 불가결한 요소임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상이 이러한 역사인식을갖고 있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쿠즈바스 탄전/주인구 2백만… 절반이 광부(시베리아 대탐방:28)

    ◎석탄생산 연 1억2천만t,러 최대 산지/「광부파업」은 연례 행사… 생산량 감소 상오10시(현지시간은 하오1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가기 위해 노보시비르스크역을 출발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부터는 동시베리아가 시작된다.월요일 이어서인지 아니면 1주일 전부터 기차요금이 1백50%로 인상된 영향 탓인지 침대칸에는 취재팀 외에 다른 승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옆의 일반칸으로 가보니 그곳엔 빈자리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인상된 요금이 큰 부담을 준 게 틀림 없는 듯하다. 3시간여를 달려 열차는 서시베리아의 마지막 주인 케메로프스크주로 진입해 첫번째 역인 유르가에 도착했다.케메로프스크주는 러시아의 최대 석탄산지이다.주인구 2백만명중 절반이 광부이고 연간 생산량이 1억2천만t에 달하는 러시아 최대 석탄산지다.케메로프스크는 행정구역상의 이름이고 경제적으로는 「쿠즈네초프 바신」,줄여서 「쿠즈바스」탄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소연방 해체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의 돈바스가 1천명의 광부를 거느린 최대 석탄산지였으나 우크라이나가 떨어져나간 뒤 러시아산업에 있어 이 쿠즈바스의 중요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석탄산업 중요성 실감 유르가역은 톰강에 위치한 석탄교역로의 도시다.케메로보시,노보 쿠즈네츠크시 등 남부 쿠즈바스탄전에 위치한 모든 유명한 광산들이 모두 이 톰강을 끼고 있다.북부의 톰스크는 톰강에서 따온 이름이다.유르가역은 톰강이 교차하는 외에 시베리아 순환철도가 톰스크∼쿠즈바스탄전을 잇는 산업철도와 만나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존재하는 순수 철도역이다.쿠즈바스 탄전에서 캐낸 석탄들은 일부는 이 유르가역을 거쳐 노보시비르스크 등으로 수송되고 나머지 일부는 남부 탄전쪽에서 서쪽으로 직접 연결되는 산업철도를 이용해 곧바로 노보시비르스크로 운반된다. 주경계를 넘기 전 노보시비르스크시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까지는 시외곽과 도심을 연결하는 순환철도가 교외의 절반이상을 감싸고 있었다.다차에 다녀오는 시민들이 역마다 모여서 교외선을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모두들 크고작은 보퉁이를 잔뜩 들고 있다.나무 묘목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노보시비르스크 시민들에게 이 교외순환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바로 동쪽에 접한 케메로프스크주에 있는 러시아최대의 석탄산지 쿠즈바스탄전 때문이다.이곳에서 생산된 석탄의 수송열차들과 알타이공화국등 주변 동서시베리아의 산업지대에서 드나드는 화물열차들 때문에 기존의 시베리아철도는 거의 포화상태가 돼있어 시민들이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그래서 시외곽 반경 1백여㎞를 따라 이 반원형 순환선이 건설된 것이다. 주경계를 넘고 유르가역을 지나 톰강을 건너기 직전,푯말에 쓰인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3천4백49㎞를 가리키고있다.케메로프스크주는 19 43년까지는 노보시비르스크주의 일부였다.그러다 2차대전중 이곳의 전시 석탄수송체계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분리시킨 것이다.케메로보를 행정수도로 삼아 남부 탄전에서 캐낸 석탄을 신속히 서쪽의 노보시비르스크등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지금도 이 케메로프주의 행정수도는 케메로보이다.그러나 실질적인 산업수도는 남쪽의 노보쿠즈네츠크다.주민수도 그쪽이 더 많다. 노보쿠즈네츠크는 주산업이 석탄채광이지만 대규모의 메탈 콤비나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1차로 메탈 콤비나트가 건설된 것은 스탈린시절이었다.당시 노보쿠즈네츠크의 이름은 스탈린스크시였다.스탈린은 이곳에 「우랄스크­쿠즈네츠크」메탈 콤비나트를 건설해 우랄로 연결시켰다.그뒤 2차대전 종전 후 2차로 메탈 콤비나트가 추가로 건설됐다.따라서 현재 시베리아의 메탈수도는 바로 이 노보쿠즈네츠크다. ○2차대전때 행정 분리 그외 케메로보시와 동쪽의 메주두레친스크시(톰강과 우사강 등 두 강을 낀 도시라는 뜻)에도 메탈 콤비나트가 건설돼 있다.따라서 쿠즈바스지대는 석탄중심지일 뿐 아니라 메탈,화학,낙농,임업 등의 주산지로 러시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산업지대인 셈이다. 유르가 다음 역은 타이가역이다.실제로 타이가지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다.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왼쪽 차창으로 타이가의 남단 경계가 펼쳐진다.타이가는 이곳에서 북으로 2천㎞나 계속 이어진다.오른쪽 차창으로는 멀리 곳곳에 탄전과산더미 같이 쌓아놓은 석탄더미들이 지나간다.기차는 쿠즈바스탄전의 북부지대를 관통해 지나간다.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1시에 도착한 유르가역에는 남부의 노보쿠즈네츠크에서 출발한 석탄화물차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역시 화차수가 1백개는 됨직하다.유르가역은 북부 톰스크와 남부의 석탄산지를 잇는 남북 철도가 시베리아철도와 만나는 교차역이어서 항상 이렇게 대기하는 석탄차들이 있고 역의 규모도 마을 규모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크다. ○엄청난 역 규모에 놀라 지금은 기능이 크게 떨어졌지만 1900년부터 혁명전까지 쿠즈바스탄전 전체 석탄생산량의 98%를 차지했던 곳이다.남쪽의 노보쿠즈네츠크지대가 본격개발되면서 지금은 탄광기능을 거의 잃고 열차역 구실만 하는 정도가 됐지만 한때 중부의 케메로보,남부의 노보쿠즈네츠크와 함께 쿠즈바스탄전의 중추를 이루었던 곳이다. 이렇듯 중요한 탄전지대이지만 쿠즈바스는 러시아의 만성 광부파업으로 유명하기도 하다.채탄기계와 기자재의 부족,광부들의 누적된 임금체불,거기다 개선되지 않는관료들의 병폐,세금제도 등이 겹쳐 80년대 이후 줄곧 생산량 감소를 겪고 있기도 하다. 옛날 타타르인들의 이름이 분명한 「야야」라는 이름의 작은 강이 지난다.폭 30m의 야야강 맑은 물에 낚시를 드리운 마을 남자들의 모습이 한가롭다.체료무하꽃이 마을어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맞은편 철로위로 1백개는 됨직한 화차에 석탄이 가득 실려 지나간다.이어서 칭기즈칸의 러시아 침략사를 쓴 작가로 유명한 치빌리헨의 출생지인 마린스크역이 지나간다.주민 4만2천명에 불과한 소도시이나 16 98년에 건설돼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케메로보주의 마지막 큰 역이다.
  • 중,반체제인사 검거 착수/유엔 여성회의 앞두고/통젱 등 3명 연행

    【북경 AP 연합】 중국 경찰은 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를 한달 남짓 앞두고 북경에서 반체제 인사의 검거에 착수했다고 반체제 인사의 측근들이 9일 밝혔다.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입은 중국인들의 피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통 젱씨는 8일 하오 자택에서 3명의 경찰에 연행됐으며 9일 상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단식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여성관계 회의에 참석해 정신대문제를 제기하는 일을 중국정부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유엔에 도움을 요청한 바 있다. 중국 당국은 최근 몇주 동안 통씨와 기타 인사들이 배상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8일에는 기자회견을 하지 못하게하고 이들의 여권을 압수했다.
  • “일 침략전쟁 진정 반성해야/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가능”

    ◎김 대통령,일지 회견 【도쿄 연합】 김영삼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과 과거 역사의 직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식민지 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만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8일 아사히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전후 50년을 맞는 양국 관계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일왕의 한국방문 성사 여부에 대해서도 『양국민,특히 일본측의 노력이 중요하며 일부 정치가나 일본국민이 한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또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과 관련,『북·일 협상이 남북대화보다 너무 앞서가면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반대하지 않으나 미·일 양국의 북한과의 협상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조화및 병행」을 유지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원칙은 이미 합의돼 있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체제가 정비되면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국간 협의의 테두리 속에서 북한을 개방체제로 유도하면서 남북한 협의를 추진할 의향을 표명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 서울까치/파도/광복 50돌 의미 되새기는 무대

    ◎서울시립무용단·국립음악원,세종문화회관서 창작무용극 공연/서울까치­정도 6백년 시대적 흐름 재조명/파도­일에 끌려간 한 도강의 생애 담아 국립국악원과 서울시립무용단이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형 공연을 마련한다. 특히 국립국악원은 드물게 전 공연을 무료 무대로 꾸민다. 서울시립무용단이 오는 10∼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무용극 「서울까치」.서울정도 6백주년을 맞아 서울의 역사를 조선의 성립·일제의 침략·남북분단·산업화에 이르는 시대적 흐름속에서 재조명해본다.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지켜온 정신과 꿈의 상징으로는 의인화된 소나무와 까치가 등장한다.국제무대를 겨냥한 올 하반기 정기공연작품으로 이 무용단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국제화를 겨냥하고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한국춤의 범주를 벗어나 춤사위에도 현대적 기법을 가미했다.음악도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한다.현대적 무대기법으로 서정미 넘치는 춤사위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 배정혜 단장이 직접 안무를 맡고 중견 연극 연출가인 오태석씨가 대본을 썼다. 국립국악원도 18∼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형 창작무용극 「파도」를 공연한다. 일본에 끌려가 온갖 역경을 이기며 예술혼을 지켜가는 한 조선 도공의 생애를 그린 작품으로 70분동안 8장으로 꾸며진다.「파도」는 격동의 역사를 상징한다. 지난해 7월부터 1년여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2억원 가량의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다.50명의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현장연주를 하는 대형무대이다. 도공들의 힘찬 춤사위를 비롯해 조선민중의 저항춤 「무명저고리춤」「수건춤」「허수아비춤」「약속의 춤」 등 대형군무가 대형무대를 뒷받침해준다.대형무대답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호리전트막도 올릴 예정이다. 풍랑장면과 도자기 제작과정을 슬라이드 컷과 조명을 이용한 특수효과로 처리하며 금기시됐던 일본춤을 과감히 도입한 것도 특색이다. 중견 연극연출가 차범석씨가 대본을 썼고 문일지 무용감독이 안무를 맡았다. 광복 50주년 공연인만큼 7∼12일 국립국악원에서 원하는 일반인 누구에게나 무료 초대권을 나누어준다.
  • 일본에선…/달라지는 대한인식(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7)

    ◎한국인 폄하·우월감 아직도 곳곳에/경제발전·교류 확대 따라 인식 개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천년 이웃나라를 침략,온갖 박해를 가하고도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악담을 해대던 일본사회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겪은 차별과 악감정의 피해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재일동포 1세들은 비교적 민족의식을 꿋꿋이 지켜왔으나 2세들은 상당수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북송교포로서 올해초 월남한 오수용씨의 누나 오모씨(63).그녀는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아이들이 일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기자들의 방문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밝혀져)아이들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취재를 거부했는데 주위의 일본인이 혹시 알게 될까봐 주의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동행한 민단지부 관계자는 『그녀가 국적을 바꾸지 않고 민단비를 꼬박꼬박 내는 것으로 보아 한국이 좋든 싫든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면서 『그녀의 태도는 일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신대지진때 민단과 조총련은 동포 사망자를 집계하는데 애를 먹었다.상당수가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살면서 「이지메」를 각오하고 본명을 쓰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오기를 필요로 한다.바꿔 말하면 그들이 쓰는 일본식 이름에는 눈물어린 사연과 애환,콤플렉스,사랑과 미움 그 모든 감정이 응어리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뒤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신거주자」들도 일본사회의 거부 반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들이 부딪힌 첫 시련은 집을 임대할 때부터 찾아온다.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진짜 거부 이유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아파트를 재임대한다」,「친구들을 불러들여 밤늦게까지 떠든다」,「방이 불결하다」,「마늘 냄새가 난다」는 따위의 말을 듣기 일쑤였다.(거품경제가 꺼진 뒤 집 빌리기가 쉬어져 최근엔 집을못빌리는 예는 거의 사라졌다) 롯데관광(주) 도쿄지사장 황종걸씨는 최근 일본검찰로부터 엽서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엽서의 내용은 황지사장이 고소한 한 일본인을 기소했다는 내용.그는 얼마전 일본인이 운전하는 택시로부터 충돌당했다.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상대가 한국인임을 알자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느닷없이 「마늘냄새 나는 조센징」 운운하면서 길 한복판에 서서 모욕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일본인 운전사를 고소하고 말았다.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생각만을 모아 놓은 「추한 한국인」 1·2편은 30만부가 넘는 빅 히트를 치고 있다.일본인에게는 한국을 폄하하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물론 우리에게도 일본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있지만 추한 한국인이 가해의 역사를 미화하고 저자를 숨기는 등 비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냉랭하고 하늘만큼 우월감이 도도했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게 바꾸었다는 것이다.일본의 발전도 이바지했다.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너그러워질 여유를 갖게 됐다.세계각국의 문물을 가감없이 즐기려는 경향이 자리잡게 됐고 한국도 한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경멸감,증오심을 굳게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한국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마음에 한국이라는 그림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업무상 40대 이하의 샐러리맨을 많이 만나는 대우증권 도쿄지점의 박기홍 차장은 『이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잘 모른다.이들을 만나면 한일간에 감정이 없는 듯 느껴진다.또 한국을 잘 아는 일부 사람들은 「한국이 올림픽 뒤 질서를 지키려고 하고 서비스도 개선됐더라」는 말도 한다』고 전한다. 한일간에 사람들의 왕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94년 1백60만 명 돌파,올해 목표 2백만명)도 한국에 대해 상대적 편견을 불식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회사원 가와나베씨는 지난 5월 한국을 한번 여행다녀온 뒤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부인과 함께 한글책도 사서 보기 시작했다.한국을 더 알고 싶어 가을에 한국을 또 다녀올 생각이다.대한항공 김인진 일본본부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지방도시에 잇달아 취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취항 후 바로 한글 안내판이 붙고 안내서가 나온다.지방에서도 한국 관광붐이 분다.인지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인다. 지난달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마치는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이 전시 군수공장용 굴을 뚫었던 곳에서 「도깨비대회」를 열려다가 계획을 바꿨다.현내 고등학생들이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에서 열다니 무신경한 처사」라고 반발,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이번 일을 놓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지나치지 않다고 믿고 싶다.일본인들의 얼음처럼 차가운 한국에 대한 인식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미풍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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