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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이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 고발

    ◎가람기획,광복51주년 맞아 「조선총독 10인」 펴내/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죄목 낱낱이 밝혀/김삼웅·정운현씨 등 친일문제연구가 7인 공동집필 지난 6월 일본 문부성은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국가간 전후 보상문제는 완전 해결됐다』고 기술토록 저자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위안부 문제 등은 그 후에 나온 개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끝없는 침략전쟁 미화 발언·독도망언 등 일본의 이같은 역사몰각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그 후안무치함의 뿌리는 일단 그들의 극도로 이기적이고 편협한 애국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적 애국심(충성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춰낸 연구서 「조선총독 10인」(가람기획)이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총독 10인」은 일제하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의 행적을 연구·조사,그 실태를 공개해온 친일문제연구회(회장 김삼웅)가 「일제잔재 19가지」「친일변절자 33인」「반민특위」「일제침략사 65장면」에 이어 펴낸 역사자료집.특히이 책은 광복 51주년을 맞은 오늘의 시점에서 광복의 의미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짚어보고,일본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총독은 일제강점기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조선의 제반 통치행정을 책임졌던 장본인이자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처단 제1호」의 대상이었다.이들은 마치 식민지 이전의 조선국왕과 같은 지위를 누리며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까지 장악한채 조선을 포괄적으로 통치했다. 친일문제연구가 김삼웅·정운현,국사학자 조명철씨 등 7명이 공동 집필한 이 연구서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서부터 마지막(9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에 이르기까지 일제 조선통치의 최고책임자 10인의 행적을 더듬는다. 1905년 초대 조선통감에 부임해 1909년까지 4년여동안 통치한 이토는 제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그는 경운궁의 호칭을 덕수궁으로 고쳐 이곳에 고종을 유폐하고,순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창덕궁에 안치시켰다.또 고종이 귀여워한 왕자 은을 인질로 일본에 끌어가기도 했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만행 또한 이토에 못지않다.데라우치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 데 중추세력을 이뤘던 조슈 번(장주번) 군벌을 계승한 대표적인 무사였다.1910년 10월 초대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무사출신답게 헌병경찰제도와 조선주차군을 도구삼아 무단정치를 강행,조선인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었다.그는 통감부시대의 각종 악법위에 다시 조선민사령,조선형사령,조선보안법,조선태형령,범죄즉결례 등을 제정해 조선인의 민족운동을 압살했다. 1916년 조선에 온 제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의병운동과 3·1운동을 무차별 탄압해 결국 1919년 총독직에서 물러났으며,이어 제3대 총독에 오른 사이토 마코토는 이른바 「문화정치」로 포장된 강압통치로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을 분열시켰다.이와 관련,김익한씨(배재대 강사)는 『사이토 총독이야말로 일본사회의 「혼네」(속마음)·「다테마에」(겉으로 나타내는 표현방식)구조를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현상적 「다테마에」의 측면보다는 「혼네」의 측면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이 책은 황민화정책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해 광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조선을 「결전체제」로 끌어올려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한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 등의 만행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다. 일제시대사 특히 일제침략사는 조선총독에 대한 연구를 빼놓고는 첫 장을 써나갈 수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백지상태」인 형편이다.이같은 반성에서부터 비롯된 「조선총독 10인」은 독립운동사연구에만 매달릴 뿐,정작 침략원흉에 대한 인물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에 보내는 하나의 경종이 될 만하다.
  • 국가보안법 존립의 당위성/장수련 통일연수원 객원교수(특별기고)

    ◎“북한의 적화야욕 막는 마지막 보루” 우여곡절을 겪고 존립하는 우리의 현행 「국가보안법」은 분단이후 지금까지 남로당과 북한노동당에 의한 고차원적인 대한민국 전복전술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일반형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입법상의 문제점이 감안되어 한시적인 특별법으로 제정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국가보안법을 두고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북한이다.그래서 저들은 남한의 국내법인 국보법을 사사건건 물고드는가 하면 갖가지 방법의 국보법 무력화전술도 구사하고 심지어는 「남조선 국보법철폐대책위원회」까지 결성하여 유엔과 세계 각국의 정부·정당·단체들을 상대로 「국보법 고발장」이란 괴문서까지 보내면서 국보법철폐를 위한 영향력행사를 촉구하는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최근 국가보안법 관련사건에 대한 판결기사가 일간신문에 일제히 게재되면서 우리국민의 머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그 이유는 같은 법률전문가인 율사임에도 불구하고 동일사건을 다루는 시각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점때문이다.이 사건의 담당검사는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는데 담당판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본 필자는 법률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건의 판결내용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입장도 못되거니와 전혀 그럴 생각조차 없음을 분명히 해둔다.그러나 사안의 국가적인 중대성때문에 필자의 전공분야에 해당하는 공산당의 행동규범인 전략·전술적 발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식 연방제방안과 평화협정제의의 정체에 대한 소견만을 밝혀두는 것이 국민된 입장의 책무일 것만 같다. 문제의 국보법관련 사건의 담당판사는 이 사건을 판결함에 있어 『사건내용중에는 연방제통일,대미 평화협정 등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인 취지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북한제의에 대한 필자의 전문지식으로 볼땐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논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아마도 그같은 발상의 원인은 북한의 각종 제의를 서방적 통념이나 교과서적 기준으로만 판단한데서 기인되는 것같다. 북한은 저들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제의함에 있어 남한과 북한을 「정」(자본주의)과 「반」(공산주의)으로 삼고 양자를 「합」(민족)으로 묶어서 통일하자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저들의 설명은 형식적인 것으로서 명분은 일단 이념적 통일방안같이 위장하지만 내용은 적화통일의 걸림돌인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을 제거하기 위한 전술적 위계인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의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그 인식방법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은 타협적 공존논리인 헤겔변증법식,「정·반·합」적 연방제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비타협적 정복논리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내놓은 「민족 및 식민지·반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 제7항에서 연방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함으로써 저들이 급조한 14개 소수민족공화국을 볼셰비키정권 속령(촉령)으로 소비에트화하는데 성공하였다.그 내용을 보면 매개의 상의한 민족사회에서 공산당이 지배적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과도적 정권형태」가 연방제란 것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공산당이 비공산 목표지역을 적화하는데 가장 용이한 방법이연방제라고 하는 과도적 조치라는 뜻이다.북한도 저들끼리의 비밀회의나 전략문제에서는 연방제란 과도적 대책이고 임시적 연합으로서 연방제에 부여된 전술적 임무는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의 제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평화협정체결제의도 같은 맥각의 전술로서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남한은 어디까지나 적화통일의 대상지역이니까 남한을 배제시킨 바탕위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6·25전범국으로서의 누명도 벗고 미국을 침략자로 몰아부쳐 전쟁배상금 명분의 경제원조도 짤대로 짜내고 비평화적 방법에 의한 적화통일의 장애물인 주한미군도 철수시키자는 심산인 것이며 이를 위한 새로운 「중심고리」전술로서 개발한 발상이 다름아닌 「핵무기」제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연한다면 공산주의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순수학문이 아니며 적화혁명을 위한 위장학문으로서 공산당의 언동은 언제나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할때 저들의 언동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되고 교과서적으로 해석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이같은 문제점이 올바로 인식될때 파란만장한 국가보안법도 그 입법취지에 합당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 일 군국주의 부활하는가(사설)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일본 도쿄는 사뭇 추모와 경배의 분위기였다고 한다.6명의 현직각료와 1백83명의 현역의원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뿐 아니라 야스쿠니신문(신문) 입구에는 불타는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특공대의 모습등 섬찍한 전쟁기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또 군국일본군의 제복에 대형 일장기를 앞세운 2차대전 참전병사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 규모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86년이래 중단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지난달 29일 재개된 데다 전후 한때 금기시돼오던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가 이제 공식화돼가고 있다. 『일본사람이 일본의 가미사마(신)를 참배하는 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일본인이 있으나 2차대전의 A급전범이 추모의 대상이 된다면 그 전범으로부터 참략을 받고 수없이 죽어간 피해국민은 어떻게 되는가.『태평양전쟁이 백인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면 백인 아닌일본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아시아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도쿄의 「8·15」분위기가 일본의 모든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74%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정책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서가 아니라 소수 강경론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에 있다.도조(동조)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이를 비판하던 세력이 일본내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대국의식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고 이것이 일본의 경제력과 결부돼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일본의 보수화 내지 군국화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 “하시모토 「위안부 사죄」는 허언”

    ◎일 아사히 신문,서한 정면반박 사설/도의만 강조… 국가보상 않으려는 얄팍한 속셈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 총리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민간기금과 내용이 모호한 「사과」 편지로 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아사히신문은 총리서한과 관련,16일 「총리는 누구에게 사과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서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다음은 사설 요지. 하시모토 총리의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과편지」가 공표됐다.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이 훼손한 문제입니다』,『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힙니다』 편지에는 「사과와 반성」,「여성의 명예와 존엄」이 2번 나온다.「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며」라는 문구도 있다.정부로서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성의와 반성을 보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문면에서 떠오르는 것은 사과와 반성의 성실한 뜻이 아니라 「국가보상」에의 길을 열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인 주도면밀함이다.「도의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좋다.그러나 문제는 국가로서의 「법적 책임」은 없다고 하는 주장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확고한 역사인식에 서서 피해자에 사죄하기 보다 재판 등에의 배려를 우선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의 근본에 있는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에는 언급하지 않은 채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강조한 자세에도 그 의도가 엿보인다.똑같이 국가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구식민지 출신의 군인·군속에의 대응 등 다른 전후처리 문제에 파급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93년 당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모집 등에 강제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했다.총리의 편지에는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다.필리핀에서는 종군위안부 3명에게 총리의 편지와 일시금이 전달되는 식이 열렸다.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한국과 대만의 위안부가 「위로금」의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일부 위안부에 지급을 선행함으로써 지원단체를 포함한 관계자의 사이에 골이 더 깊어져 사태가 한층 악화될것으로 예상된다. 밖을 향해서는 실질적인 개인보상이라는 듯이 설명하고 국내에서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되풀이하고 있다.이는 모처럼의 지출의 의미를 잃게 만들고 있다.
  • 중,일 군국주의 부활 경고/정부·언론

    ◎“신사 참배 등서 야욕 노골화” 비난 【북경 로이터 AFP 연합】 중국은 일본의 일부 각료들이 2차대전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고했다. 심국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부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된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각료들이 참배한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은 중국 인민들의 감정을 또다시 심각하게 손상시켰다』며 분노를 표시하고 『우리는 일본이 진지하게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 회복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관영 차이나 데일리지도 『일본에서의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뒤늦게 그것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한 얄팍한 사죄마저 군국주의자들의 망언 횟수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은 많은 일본 전범들이 정계에 진출해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에 군국주의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며 『그들은 강한 민족적 우월성을 감추고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신념에 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통신은 또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초강국」이라는 인식이 팽창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부활과 확산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일본이 2차대전 당시 위안부 배상을 위해 국가기금이 아닌 민간기금인 「평화를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을 이용하는 것도 『이중적인 얼굴』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의 전쟁배상 요구 위원회의 한 지도자는 『진정으로 배상할 의사가 있다면 정부가 직접 해야 하며 하시모토 총리가 위안부에게 개인적으로 사과서한을 보낼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쟁 희생자에 깊은 반성­애도”/하시모토 일 총리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 일본 총리는 패전기념일인 15일 정부 주최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시아 등 전쟁 희생자들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재작년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처음으로,하시모토 총리는 자민당 출신으로서는 처음 일본의 가해 책임을 언급했다고 일본언론들은 평가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당시 전쟁으로 많은 국가,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의 국민들에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면서 『이같은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깊은 반성과 함께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많은 평화 시민단체들은 이와 별도로 각각 기념식과 시가행진 등을 갖고 반전평화를 촉구하고 다시는 과거의 침략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의를 다짐했다.
  • 광복절 아침에/국가·민족의 진로 다시 점검하자/박유철(특별기고)

    제51주년 광복절을 맞이한다.우리에게 광복절의 의미는 무겁다.이날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질곡속에서 광명을 되찾은 환희와 감격의 날이다.우리는 이 날을 통해 자유로운 삶과 독립된 나라의 축복을 기뻐하며,이를 영원히 지켜갈 결의를 다진다. 이 날은 감사의 날이다.나라를 되찾기까지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눈물이 있었다.그분들은 총칼의 위협속에서 주저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만주로 연해주로,하와이로 버마로,벌판과 골짜기로,감옥과 형장으로 조국광복의 길이면 어디든지 두려움 없이 멀고 험한 길을 걸었다.그분들은 식민지배의 긴 어둠과 질곡속에서 3·1운동으로 민족공동체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근대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이 날은 경계의 날이다.간계와 무력으로 우리국권을 유린하고 우리민족에게 씻을수 없는 치욕과 측량할 수 없는 고통,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안겨주었던 과거 일본의 침략주의를 경험하였던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되새김으로써 침략주의에 대해 끊임없는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더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일본의 일부 지도층들이 일본 국민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류평화에 책임있는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야 할 처지에 있음에도 과거 침략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수시로 망언을 일삼으며 국민을 오도하려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한·일우호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광복절의 의미는 감격하고,감사하고,경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해방 3년뒤인 1948년 이날,대한민국이 수립됨으로써 광복절은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의 의미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 날을 맞을 때마다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국가적·민족적 진로를 다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우리는 광복50주년을 경축했다.지난 50년간을 되돌아볼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고 한 한용운 선생 시의 일절이 진리로 느껴진다.근대사의 질곡속에서 우리민족이 겪었던 고통이 생명력으로 승화된 것을 보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분단된 국토,빈약한 자원,동족상잔의 상처,어지러운 정치속에서 이룩해낸 경제발전,민주화의 성취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다.우리는 35년간 식민지 지배하에서 움츠러들고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에서 이제 비로소 제대로 당당하게 펴진 자신의 모습을 찾게된 것이다.그렇다.지난 반세기동안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진정한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쫓기며 이러한 것을 찾았다.「식민지 지배의 고통으로부터」,「빈곤의 고통으로부터」,「독재의 고통으로부터」숨이 턱에 닿도록 쫓기며 광복과 번영과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새로 시작되는 반세기의 첫해,우리가 이제부터 가야할 길을 「제2의 광복」이라 부르자.그 길은 고통으로부터 쫓김의 길이 아니라 반세기동안 헐었던 상처를 치유하는 길,갈라진 것을 맞추는 길,거친 것을 다듬는 길,삐뚤어진 것을 바르게 하는 길,흐트러진 것을 간추리는 길이 되게하자.그리하여 우리국토에 드리워진 철책선을 걷어내고,분단으로 멍울진 한을 씻으며,미움이 있었던 곳에 사랑을,원한이 있었던 곳에 용서를,대립이 있었던 곳에 일치를 이루어,우리들 마음은 끝없이 자유롭고,생각과 행동은 세계로 향해 달려가며,화목한 눈길과 명랑한 웃음이 꽃피는,해같이 빛나고 달같이 아름다운,하나된 민족,강력한 나라,유덕한 사회를 이루어 가자.
  • 광복 51돌과 한일관계(사설)

    광복 51주년과 한·일국교수립 31주년을 맞는 올해 한·일양국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유치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의 큰 발판을 마련했다.앞으로 양국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진지하게 공동노력해 나간다면 양국간에 켜켜이 쌓인 반감과 편견을 털어버리고 국민적 화해를 통해 진정한 선린의 신시대를 열수 있을 것이다. 한·일양국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냉전체제하의 국제질서 속에서 꾸준히 상호협력관계를 다져왔다.특히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 현안으로 등장한 이후 양국이 미국과 함께 3각공조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한 협력관계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불행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착실히 가꿔 나가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일본을 안심할 수 있는 이웃으로 신뢰하기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일만 상기해보자.하시모토(교본용태낭)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참배는 우리에게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재일교포를 잠재적 적으로 표현한 가지야마 관방장관의 극언은 어떤가.한국인을 속죄양으로 삼았던 70여년전 관동대학살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한·일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문제 해결의 큰 책임이 가해자인 일본쪽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그럼에도 과거의 침략을 합리화하거나 피해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망언소동이 빈발하고 있다는 건 일본 지도층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그 속에 감춰져 있는 팽창주의의 반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선린관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을 것이다.
  • 일인 74% “우리나라는 침략자”/아사히 자매지 여론조사

    ◎“식민지배 피해국에 추가보상 필요” 76%/절반가량이 “전후세대라도 마땅히 사죄” 일본인의 대부분은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으며 침략행위에 대해 일본은 새로운 국가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아사히신문 발행)가 최근 독자 1천64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4%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는 대답은 5%,「어느쪽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21%였다. 또 「과거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해 일본의 새로운 국가보상을 할 필요가 있는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33%,43%가 각각 「필요하다」,「일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데 배해 「필요하지 않다」는 대답은 16%에 불과했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태평양전쟁은 자존자위전쟁이었다는 보수우익세력의 역사관과 전쟁피해 보상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토대로 한 일본과 피해국간의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정부의 입장과 판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전쟁후 태어난 일본인도 과거의 전쟁에 대해 사죄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전후세대인 50세 미만 응답자의 52%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일 망정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되고 있다. 사죄에 반대하는 응답자는 32%,「모르겠다」는 16%였다. 특히 전전세대인 50세 이상에서도 전후세대라도 사죄해야 한다는 응답이 33%에 달했다.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은 55%였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직업별 비율은 사무직(30%),학생(28%) 등의 순이었으며 연령별로는 20대(44%),30대(23%),50대(10%)의 순이었다.
  • 일,태평양전쟁 또 정당화/도쿠이치로 전 방위청

    ◎“미국에도 책임있다” 【도쿄 연합】 일본 자민당의 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 전 방위청장관은 태평양전쟁은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태평양전쟁의 침략성을 도외시한 채 망발을 늘어 놓았다. 10일 일본언론들에 따르면 다마자와 전 장관은 9일 자민당본부에서 개최된 일본상이군인회 전국대표자회의에서 태평양전쟁에 언급,『일본에게만 원인을 돌리는 역사관이 있으나 미국도 과오가 있다.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여 자국민을 고무시키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일안보체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1,2년에 끝내려 했으나 4년이나 계속됐다.다시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했다.미국에는 일시 개정론도 있었으나 일본에 공업력과 단결력이 있기 때문에 다시 사투를 반복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안보조약을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의 초석으로 하려했다』고 말했다. 중의원 6선의원인 다마자와 전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태평양침략 전쟁을 미화,정당화하려는 보수 우익의 발상을 대변하고 있는것이다.
  • 「역사적 인물 20인」 이색 전시회

    ◎수묵화가 김호석씨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전 13일부터/동양적인 초상화풍에 현대적 표현 조화/역사상황 묘사 풍경화 18점도 함께 전시 「가을 등불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되새기니/세상에 선비구실 어렵기만 하구나」­.일본침략에 자결로 항거한 선비,매천 황현이 자살전 남긴 절명시다. 일본침략에 선비정신으로 맞선 황현을 비롯,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민족해방과 국토통일을 위해 치열하게 살거나 외곬 인생을 꿋꿋이 지킨 역사적 인물 20명의 인물화를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1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동산방화랑(733­5877)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김호석(39)의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전. 홍익대 출신인 김호석씨는 전통초상화에서 집요하고도 오랜 훈련을 거쳐 정확한 묘사력과 발묵,먹의 농담처리에 뛰어나 이 시대의 장인이란 평을 받고 있는 수묵화가.주로 역사적 현장의 인물을 가려 리얼리즘 계통의 초상화에 치중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김씨가 지난 86년 황현 그림을 처음 그린 뒤 전통 초상화 기법을 변형시켜 최근5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한 인물화중 엄선한 작품 20점과 이 인물들과 관련한 역사적 상황을 나타내는 풍경화 18점 등 모두 38점을 보여주는 자리.황현외에 국가개혁의지의 선구자 김옥균,농민전쟁 지도자 전봉준,항일의병운동의 선도자 최익현,독립운동의 거목인 안창호 신채호 홍범도,해방직후의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현대 종교계에 우뚝선 존재인 성철 스님 관응 스님 김수환 추기경,문화예술계를 빛낸 최순우 임창순 윤이상 박경리,남북화합을 시도한 문익환목사,민중시인 김남주,민주화투쟁의 기수인 국회의원 김근태의 초상화와 무명 농민상이 나온다.이가운데 생존자는 김수환 추기경과 관응 스님,토지의 작가 박경리,한학자 임창순,김근태 의원 등 5명. 김씨는 이 인물들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동양적인 초상화풍인 전신사조 양식으로 그리면서도 현대적 표현성을 창의적으로 조화시킨 점이 특징이다.전신사조란 대상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인품과 정신 등 내면세계까지를 담아내는 것.인물묘사에 정확성을 주기위해 김옥균 관응 스님 성철 스님의경우,한지에 들기름을 먹인 밑그림 형태의 유지초본 양식으로 그렸고 박경리 윤이상 문익환 목사 김근태 의원은 한지 뒷면에서부터 30여차례 색을 덧칠해 앞면에 배나오도록 배채로 처리한게 눈에 띈다. 이번 전시는 김씨가 민족의식과 외길인생에 투철했던 우리 역사의 대표적 인물들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형상화했는가와 함께 전통초상화의 현대적 접목형태를 정리해보는 자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위안부문제 당당히 풀라

    종군위안부문제가 일본군국주의 침략전쟁이 낳은 범죄중에서도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한 반인륜적인 죄악이었음은 시비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아직도 엄연히 살아 있는 수많은 피해자가 알고,그들을 괴롭힌 가해자가 알고 있으며,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4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반세기가 지난 이 사건과 관련,이른바 「쿠마라스와미보고서」를 내고 일본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유엔은 또 이 보고서에서 일본정부는 특별행정재판소를 설치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하고 개별적으로도 공식적으로 사죄해야 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위안부문제는 이처럼 국제적으로 이미 심판이 끝난 사안이다.그런데 일본은 처음에는 이 문제가 날조된 허위사실이라고 버티다 사태가 어렵게 되자 지난해에야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란 민간단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민간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이 단체가 지난 월말께 관계자들을 서울에 보내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접촉,개인적인 배상을 시도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등 관련단체의 항의를 받고 돌아간 것으로 보도했다. 유엔은 물론 한국·필리핀·대만 등지의피해당사자들도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배상문제는 일단락된 것이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배상이나 사죄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첫단추를 한번 잘못 끼운 인과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침략전쟁책임을 회피하려던 첫단추 때문에 일본은 반세기를 넘기고도 일의 고비마다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기회는 아직도 남아 있다.지금이라도 일본은 전쟁책임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용서를 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그렇게 되면 위안부문제도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 일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한다(박화진 칼럼)

    『근대 일본사의 일관된 목표는 일본민족의 우월의식을 바탕으로한 아시아 제패였다.도쿠가와 막부 말기에는 「아시아 연대」로,메이지 시대에는 「대아시아주의」로,그리고 쇼와 시대엔 「동아연맹­대동아 공영권」이란 모습으로 나타났다.이름만 다를뿐 그것은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 건설이었고 일본의 번영을 위한 아시아의 희생을 의미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목표의 추구가 결국 2차대전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인의 희생을 가져오는 좌절의 결과를 낳았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의 「일본의 국가주의」란 저서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다시 8월이고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기념일인 51번째의 「8·15」를 맞으면서 점점더 공공연해지고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민족주의 부활을 상징하는 총리·각료 및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및 종군위안부 대응,극우파의 독도영유주장 한국대사관 자동차테러 그리고 계속되는 각종 망언소동 등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고 음미하게 되는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수 없다. 야스쿠니(정국)신사는 무엇이며 우리와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정치인들은 해마다 기어이 그곳을 참배하려드는 것인가.야스쿠니신사는 도쿄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2백50여만명의 일본전몰자 위패가 안치된 말하자면 일본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메이지 유신 이듬해인 1869년 「초혼사」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야스쿠니신사로 개명된 것은 그 10년 뒤로 「국사로 죽은자」를 이곳에 합사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일본총리및 각료들의 참배가 아닌가.그런데도 해마다 이웃나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문제가 되는것은 그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배후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를 비롯 군국일본을 주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패전후 연합군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단죄당한 7명의 A급전범 위패도 지난 78년부터 합사되어 있다.현직총리나 각료가이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군국일본의 침략전쟁을 공인하고 그 주모자들을 추도·추앙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히틀러와 나치스를 공인하고 추모·추앙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특히 48년 처형 당하기전 45년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도조는 군국주의 일본이 범한 과오와 지은 죄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이 다음과같은 독기어린 유서를 남긴 인물이다.『일본은 힘이 모자라 졌을 뿐이다.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하지만 영미국인 당신들은 원자탄으로 죄없는 무수한 비전투원을 죽였다.나는 이 사실을 고발하지 않을수 없다.일본국민은 힘이 모자라 졌지만 조국은 불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일본은 앞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시아를 위한다는 구실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했는가 하면 그를 통해 확립한 아시아패권을 지키기위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에 참을수 없는 재난과 희생을 강요한 일제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너무도 당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아닌가.그러한 그의 78년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사실상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곧 그들 전범과 그들의 생각,그들이 이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참배요 공인이며 「공식사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일본총리와 각료의 끈질긴 야스쿠니신사 참배노력은 입만 열면 사죄를 하고 곧바로 망언으로 그것을 뒤집는 오늘의 일본도 결국은 지난날의 군국주의·제국주의를 내심으로는 결코 잘못된 과오로 생각지 않고 있으며 도조가 지적한 것처럼 힘이 모자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행동의 증거라 할수 있다.과거를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그러한 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나 정황증거로 미루어 일본은 정치·군사대국화와 새로운 아시아지배의 패권추구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어쩔수없는 방향으로 보인다.구미의 장벽에 막혀 탈구입아로 돌아선 일본은 다시한번 아시아를 기반으로 51년전의 좌절을 설욕해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갖게한다.이미 중국과의 아시아 패권경쟁은 시작된 조짐이다.우리에게도 냉전시대의 자유우방은 아닌 느낌을 주고있다.일본민족주의에 희생당한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않고 우리와 아시아의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지킬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오로지 정확한 일본파악과 부국강병의 빈틈없는 자강노력임을 명심해야 할것이다.총리·각료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최근 일본이 보이고있는 변화는 그것을 일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 독립운동사연·독도학회 「독도문제와 민족의식」 심포지엄

    ◎“일 독도영유권 주장은 제국주의 발상”/1905년전에는 「무주지선점론」으로 영유권 주장/한국영토 밝힌 고문헌발견후 “고유영토다” 억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독도학회(회장 신용하 서울대교수)와 공동으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개최한 「독도영유 문제와 민족의식」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에서 신용하,송병기(단국대)교수와 김명기 명지대 대학원장,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등 참석학자들은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분쟁,특히 일본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신용하 교수는 『일본정부는 「무주지선점론」(무주지선점론)에 따라 독도를 일본땅임을 주장하다가 독도가 1905년 2월 이전에도 주인없는 무주지(무주지)가 아니라 한국영토였다는 사실이 고문헌으로 증명되면서부터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고유영토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1905년 2월 일본 정부의 소위 「영토편입」과 전적으로 모순된다고 말했다.신교수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면 왜 일본이 1905년 뒤늦게 독도가 무주지라고주장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신교수는 특히 『일본정부는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할만한 실증자료를 갖지 못하는데도 최근 경제전관수역 2백해리 선포에 맞춰 또다시 영유권을 주장함은 1905년 독도 침략당시의 일본 제국주의 외교를 계승 연장하려는 팽창주의 속셈에 따른 것』이라면서 정부에 독도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수립을 촉구했다. 송병기 교수는 독도가 한국영토로 편입된 과정을 자료에 바탕해 추적하면서 특히 1900년 대한제국이 발표한 「칙령」41조를 통해 일찍부터 우리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재확인한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켰다.송교수는 율도군수와 강원도 관찰사서리가 1905년과 그 이듬해 각각 일본이 독도를 강제로 자국 영토로 편입한 사실을 보고했음에도 대한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통감부 지배라는 당시 상황에서 항의할 길이 막힌데 따른 것이지 결코 일본정부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명지대 김명기 대학원장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은 무효이기 때문에 권원이 없는 불법지배이며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문서와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부지령(SCAPIN)677조에 의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법적분리가 아니라 사실상의 분리가 이루어졌으므로 일본이 독도를 자국땅으로 우길만한 정당한 근거가 없음』을 강조했다.현재 일본이 독도문제로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자극함은 영토보존의 원칙을 규정한 국제연합헌장 제2조4항에 위배되고 특히 주권존중의 원칙을 선언한 한일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를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윤병석 명예교수는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볼때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영토』라면서 『독도수호를 위해 학계와 정부 국민 모두가 적극적인 대처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일 총리 「평화헌법」을 「일본국헌법」으로 발언

    ◎2차대전 침략행위 간접 부인/히로시마 피폭 51돌 연설서 【도쿄 연합】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6일 히로시마(광조) 피폭 51주년 행사 인사말에서 당초 원고에 쓰여있던 「평화헌법」이라는말 대신 「일본국헌법」으로 고쳐 읽어 일부 피폭자단체로부터 평화를 염원하는 정신이 희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일본 우익세력 사이에서는 「평화헌법」이라는 표현이 2차대전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신문은 하시모토 총리가 일본유족회 회장을 역임한 점을 고려할 때 이같은 「평화헌법」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하시모토 총리의 처사는 최근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 강행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보수 우익적 색채를 다시 한번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한국전 기록영화 중서 “대히트”/지난주 광동성서 첫 개봉

    ◎미공개 필름 편집… 미 오락물 인기 앞질서/선전활동 주 내용… 한국 이미지 실추 우려 한국전쟁의 기록영화가 중국에서 최근 개봉,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교량」(힘을 겨룬다는 의미)이란 제목으로 광동성 광주에서 첫 개봉된 이 작품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중국정부의 미공개 기록필름을 편집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지난 7월 마지막주 광동성 광주에서 첫 개봉되자 이와함께 동시 개봉된 미국의 애니메이션 오락영화인 「완구들의 총출동」보다 수배이상의 관중을 끌어모으며 공전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광주시에서 발행되는 양성만보는 보도했다. 이 영화에는 26만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를 침공하는 중국측의 미공개 필름에서부터 워커중장이 도피하다 차가 뒤집혀 사망하는 장면,중국·북한 연합군이 평양을 재점령하고 서울을 공격,다시 점령하는 과정,중국공군의 영웅 장적혜가 미국 공군의 영웅 데이비스 기장의 전투기를 떨어뜨리는 전투장면 등,한국전쟁관련 미공개 희귀 필름을 몽타주 방식으로 재구성해 화면에 선보이고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영화 및 TV 등을 관할하는 광전부가 지난1일 중국인민해방군 창군 69주년을 기념,준비해 왔으며 10편의 우수추천영화에 선정돼 북경 등 전국 상영을 앞두고 있다.이 영화와 별도로 중국정부는 북경의 혁명군사박물관에 『북한을 침략,중국의 안전을 위협한 미국을 응징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기념관을 북경의 혁명군사박물관에 설치할 계획이다.이같은 애국주의 교육의 강화경향과 중국·북한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부각하는 선전활동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한국의 이미지 실추가 우려되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중 “개전선포권 전인대 이양 추진”/전쟁법 초안 작성

    ◎당 우위 원칙 파기… 군 통수권 큰 전환 【홍콩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PLA)은 전쟁선포를 비롯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결정권을 당에서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회(전인대)에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전쟁법」 초안을 작성중이라고 홍콩의 명보가 2일 북경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법제국이 작성중인 전쟁법 초안은 중앙군사위가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전인대에 개전,국가비상사태,외국의 침략에 대한 반격 등에 대한 결정을 요구할 경우 전인대가 이를 결정,국가주석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고 국가주석은 중앙군사위 주석에게 집행을 명령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앙군사위는 전쟁 등 비상사태에 대한 규정을 헌법에 근거해 명확히하기 위해 조만간 관련부처 전문가들을 소집,세부적인 연구·검토에 착수할 계획이다. 중국은 건국이후 지금까지 당우위의 원칙에 따라 사실상 당총서기가 겸직하고 있는 당중앙군사위 주석이 전쟁 등 국가비상사태에 대해 당 정치국상무위와 협의해 결정해 왔기 때문에 이 전쟁법 초안이 법제화 될경우 중국군 통솔권에 대한 일대 역사적 전환이 이뤄지게 된다.
  • 하시모토와 군국일본 망령(사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 참배는 우리에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일본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건설적 협력관계를 지향하려는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기도 하다.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 있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팽창주의의 상징일 따름이다.거기엔 청일·노일전쟁·만주사변의 전몰자로부터 태평양전쟁의 A급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에이키(동조영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위패가 안치돼 있지 않은가.그런 신사를 참배한다는 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또한 피침국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측면을 헤아려,하시모토 총리는 참배를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지난 85년 나카소네(중증근강홍) 당시 총리가 처음 강행했다가 국내외의 심한 반발에 부딪쳐 중단했던 것이다.그걸 11년만에 재개한 의도가 무엇인지 하시모토총리에게 묻고 싶다.특히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역사인식의 후퇴를 보여준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우리는 하시모토 총리가 2년전 통산장관시절 『2차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번 참배에 대해 자신의 59회 생일을 맞아 개인자격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우리에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다.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이라고 기입한 것이나 오는 10월 다시 참배할 계획이라는 발언은 그동안 금기시되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서서히 공식화하려는 기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내 상황을 보더라도 하시모토의 참배는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기가 어려워 착잡하다.특히 일본의 정치대국 추구와 더불어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독도및 첨각열도 영유권주장 등 팽창주의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 같아 우리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 일 총리,야스쿠니신사 참배/총리취임후 처음

    ◎주변국 반발·비난 예상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 총리는 29일 태평양 침략전쟁등의 전몰자 위패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정국)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상오 야스쿠니신사 인근의 과학기술관에서 개최된 한 기념식전에 참석한 뒤 귀로에 야스쿠니신사에 들러 「내각총리대신」이라고 기입한 후 참배했다. 총리 취임후 처음인 이날의 전격 참배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전쟁피해 국가들의 시선을 의식,패전 기념일인 오는 8월 15일을 피해 이루어진 것이나 일본유족회 회장을 역임했던 하시모토 총리의 역사관등을 둘러싸고 피해국들의 반발과 비난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하시모토 총리의 참배강행은 매년 되풀이돼 온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를 앞두고 자민당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현 연립정권내에도 적잖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총리가 재직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지난 85년 8월15일 국내외의 강력한 비난과 반발을 무릅쓰고 공식 참배를 강행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 이후 처음이다. ◎정부,일 총리 비난 정부는 29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일본이 인근 국가들과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의 감정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국 비난 논평 신한국당 김충근 부대변인은 29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행위와 관련,성명을 내고 『진솔하게 반성하고 참배저의를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 중·대만 협력 일 군국주의 막자(해외사설)

    일본의 우익인사들이 최근 조어도(일본명 센카쿠열도)에 대한 주권의 소유를 주장하며 등대를 설치했다.이 사건은 조어도를 둘러싼 중·일 사이의 해묵은 분쟁을 재연시켰다.중국과 대만,홍콩 등에선 반일 시위가 있었고 중국인들은 분노했다. 지난 72년 미국정부는 불법적으로 조어도의 관할권을 일본에게 넘겨주었다.당시 홍콩과 대만,해외 중국인들도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었다.중·일수교가 이뤄진뒤 북경정부는 영토분쟁을 밀어두었지만 일본은 조어도 문제로 소란을 일으켰다.이같은 일들은 일본 군국주의적,팽창주의적 야심을 드러낸 것이며 그저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일본 우파인사들의 조어도 등대설치사건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일본은 이 섬을 2백해리 경제수역의 범위안에 포함시키려 노력중이다.게다가 그들은 중국대륙에 이어진 사주에 대한 관할권 확보도 시도하고 있다.조어도의 등대사건직후 일본정부는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곧 발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일본정부와 우익이 함께 「쇼」를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5월 미국과 새로운 안보조약을 경신한뒤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증대에 관한 시도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 지지에 고무받은듯 보인다.그러나 일본의 이같은 행동은 중국과 대만사이의 관계 악화를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경제원조를 필요로 하는 중국과 독립및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는 대만….이 틈바구니를 일본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고 있다.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처하는 길은 무엇인가.지난날 일본의 침략을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합작으로 분쇄했듯이 새로운 시기의 중국과 대만의 합작,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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