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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이상한 미국·한국의 찰떡궁합

    부시정권이 출범했다.미국 법원의 이상한 판결에 의해 이상하게 대통령이 되었다.선거라는 것은 국민의 자유스러운 선택에 의해 권력이창출되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적 수단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의 본질이 선거에서 올바로 관철되려면 국민 다수의 선택이 제대로 반영되는선거제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본질은 외면하고 기계적인 법 해석에만 매달리는 법 형식주의,원칙은 저버리고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라는 편의주의,투표에서는 이기고 선거에서는지는 제도와 한표만 이겨도 독식하는 제도가 뒤범벅인 오가잡탕주의,여전한 흑인계에 대한 선거권 억압,그러면서도 자성은커녕 자기 정당화 궤변을 일삼는 오만주의 등으로 미국 유권자의 자유선택이 무시되었다.그러면서도 언제나 자유와 민주주의의 화신이란 간판을 내걸고세계를 강압한다.이러한 오만한 제국의 모습은 ‘미국제일주의’와‘힘의 정치’를 강조하는 부시정권이 출범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릴것으로 보인다.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한반도가 이러한 표적의 0순위로 떠오른다는 데있다.부시정부는 북한에 대해 ‘당근보다는 채찍으로’와 엄격한 상호주의를 표방했다. 채찍은 끔찍하다.국방차관 내정자 아미티지가 주도한 ‘아미티지 보고서’는 북한의 선박나포,해상봉쇄,핵과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등을 제안했다.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을 빌미 삼아 NMD 미사일방어체제를 추진한다.국무장관 파월 역시 NMD를 역설하고 “군사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좌우되도록 만들자”는 군사결정론자다.뉴 리퍼블릭지(誌)의 카플런은 미국이 파나마를 침략했듯이,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파월은 걸프전 당시처럼 미군의 총력을 집중해 북한을 단숨에 분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부시는 취임사에서 “도전을 받는 것 이상으로 방위력을 구축”하고 “새로운 공포에 시달리지 않도록 맞설 것”이라면서 세계 모두가 반대하는 탄도미사일체제 구축을 강행하고 냉전구도를 되살릴 것을 노골화했다.동시에 북한 등을 겨냥해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을 ‘불량국가’로 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끊임없이 획책하는 미국을 ‘불량 대국’으로 봐야 한다는 동북아 전문가인 찰머스 존슨의 지적이야말로 전적으로 객관적이다.부시집단은 지구촌을 마치 황야의 무법자가 횡행하는 서부활극 무대쯤으로 착각하는 듯하다.가공할 군사무기 개발과,세계 2위의 군사비 투입 국가보다 3∼4배가 넘는 연 2,800억 달러의 군사비로 지구촌에 새로운 공포를지속적으로 자아내면서 남에게 ‘새로운 공포’운운하는 것은 노골적인 위선과 협박이고 깡패논리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보자.북·미 관계의 원형은 지난 94년 6월‘몇십분 늦었더라도’한반도 전쟁이 일어났을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긴 뒤 체결한 ‘10·21 북·미협정’이다.협정에서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2003년까지 완공,핵무기 불위협과 불사용의 공식문서화,정치 및 경제제재 해소,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중유 연50만t 공급 등을이행하게 돼 있다.대신 북한은 NPT잔류와 핵사찰 및 동결 등을 이행하기로 했다. 미국 관리 말대로 북한은 거의 100% 협정을 준수했다.그러나 미국은중유공급 정도의 약속만 겨우 이행하고 나머지는 깡그리 위배했다.이러고도 엄격한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이런데도 이곳 한국 땅에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부시의 대북강경책을 찬양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극우신문,남북공조를 취해한반도 전쟁위협 제거를 자주적으로 도모해야 하는데도 한·미안보공조만 읊조리는 사대주의 쓰레기 안보전문가,어느 큰스님이 시원스레 일갈하였듯이 상생정치는 말뿐이고 상극정치 행로로 치닫고 대북강경책만 일삼으면서 ‘씨를 말리겠다’고 벼르는 야권 수뇌가 난무한다.무조건 반DJ주의로 치닫는 맹목적 지역분열주의 집단과 이에 기생하는 정치세력이 맹위를 떨친다.이 모두가 부시정권 출범으로 더욱기승부릴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이상한 나라 미국과 이상한 한국사람의 찰떡궁합이 이루어질까두렵다.깡패국가를 이상국가로,엉터리 민주를 참 민주로 착각하는 착란증,죽고 사는 문제를 이상한 나라에 맡기는 자폐증을 극복하고 자생·자존을 되찾고 일구기 위해 우리 모두 일어서야겠다. △강정구동국대 교수·사회학
  • [네티즌 칼럼] 정치인 정신 차려라

    최근 대한매일 인터넷 사이트(www.kdaily.com)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는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은가”라는 설문이 있었다.여론조사 결과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않다는 답이 전체 응답자의 75%에 이르렀다.대부분의 응답자들이 20~30대일 터인데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첫째는 정치판의 이전투구가 한심하고 그 다음이 지도층 꼴보기가 싫어서라고 이유를 꼽았다.민초들은 금 내놓으라면 내놓고,금강산 댐 짓자면 돈 내놓고,참으라면 참는데 반해 고소득층,고위 공직자 등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위해 한 게 없다는 불만인 셈이다. 또 거짓말 잘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출세하는 불공평한 사회가 싫다고 지적했다.온 사회가 거짓말과 위선이 판쳐서 정직하고 부지런한사람은 손해만 본다는 것이다.이러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물론 동의하는 이도,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이 현재 어떤 환경에 있는지 한번 보자.가장 먼저 정치는 어떤가? 정치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다.국회,대통령,야당 총재에 대한 평가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특히 국회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의원 빌려주기,안기부 국가예산의 선거자금 전용등 일련의 사건이 정치혐오를 키우고 있다. 한편 경제는 IMF 이후 체감 경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경제회생의 핵인 구조조정도 이런 저런 이유로 미진하다.손가락에 끼던 금가락지와 장롱 속에 숨겨둔 금붙이를 팔아서 경제를 회생시키려 노력한서민들은 외면한 채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들이 자기 잇속 챙기기에급급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서민들은 빈부격차의 극대화로 상대적 빈곤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넘쳐나는 노숙자와 실업자들은 공동체의 기본인 가정마저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삶의 질도 점점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같다.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 의료환경에 대해 불만을갖고 있고,복지수준도 형편없다고 평가하고 있다.심지어 20대 한국인의 62%는 “이민가고 싶다”고 한다. 현재 한국은 의료파업,정치불안,경제악화,실업문제,물가인상,노사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을 헤쳐가야 한다.그 모든 것이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위협하고 있으며,바로 이러한 악순환의 상승작용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답을 만들어낸 것이다.그런데 정말 한국은 절망적인 상태인가? 정말 한국은 붕괴 직전인가?대한매일 인터넷 사이트의 여론조사에서 25%의 한국인들은 그래도 “한국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고 응답했다.이들은 “비록 작은 나라이고 경제는 어렵지만 따뜻한 정으로 다시 힘을 합쳐 일어나자”고말했다. 외세의 끈질긴 침략에도 불구하고 반만년 역사를 지킨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말한 젊은 네티즌들도 많았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 미래를 믿는 한국인들이 아직 많다. 우리는 이것을 큰 동력으로 해서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야 한다.우선정치 지도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가장 먼저 국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어야할 것이다.그러자면 책임질 것은지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권력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권력을 가져도 될 자격과 능력이있는지 스스로 뼈저린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그러지 않으면 국민은정치를 외면한다.국민없는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국회 무용론에다 정치 무용론이 예사말이 아니다.스스로의 영역이 깨끗하고 최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은 자숙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정에 약하고 혈연과 지연에 익숙하지만 정의롭다.우리의선조들,선배들이 외세와 불의에 끈질기게 항거해서 우리의 자존을 지켰던 것을 기억한다면,정치인들은 더 이상 한국인을 부끄럽게 만들지말아야 할 것이다. 김찬영 부산대도서관 멀티미디어센터 cykim1@hyowon.pusan.ac.kr
  • “100년뒤 인류 他행성 지배자”

    “인류는 100년 내 다른 행성을 지배하고 1,000년 내에 개량인간을고안해 낼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59) 박사가 14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국제물리학회 ‘스트링스 2001’에 참석,‘과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3,000여명의 일반인이 참가한 강연에서호킹 박사는 영화 스타트렉을 소재로 세계인구,분자물리학,그리고 외계인 침략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과학발전과 미래생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우주생성이론을 다룬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의 저자인 그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향상시켜 우주여행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만약 100년안에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태양계행성 내외의 다른 별들로 퍼져나가 그곳에서 지구보다 원시적이거나혹은 진보한 생명체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주상에 인간보다 진보한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는것이 호킹 박사의 주장.만약 인류보다 진보한 생명체가 있다면 벌써그들이 지구를 방문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그는 “어쩌면월등한그들이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유전자 조작 문제로 화제를 돌린 호킹 박사는 유전자 조작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싫든 좋든 간에 1,000년 안에 유전자 조작에 따른 개량인간이 출연하게 되고,태아가 엄마의 자궁 밖에서도 자랄 수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이어 “DNA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기초이며 인류와 인류의 DNA는 급격히 복합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40년을 주기로 2배씩 불어나고 있는 세계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며 “2600년까지 지구 인구가 크게 늘고 이들의 전력소비로 지구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진아기자 jlee@
  • [대한광장] 어두운 세기 초, 불안한 새해

    지난해 2000년은 새 천년이 시작하는 해이고 금년은 21세기 새 세기를 여는 해라고 일단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떨까. 1세기 전 1900년대 초를 되돌아 보면 그때도 오늘 못지 않게 불안했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한반도에는 일제 침략의 말발굽 소리가더욱 거세져 갔다.1900년은 중국에서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고 유럽열강에다 일본이 북경에 진격한 해였다.그처럼 아시아도 세계도 격동에 휩쓸려 앞날은 어둡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후의 세계사는 두번의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로 이어졌다.그렇다면21세기 초 오늘을 뒤덮고 있는 이 어둠과 불안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묻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초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한 유럽 열강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그래도 희망을 품었을는지도 모른다.이에 비하면 오늘은 미국만이 세계에 군림한다고 안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군사적인 위기보다는 경제적인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3년 전에 시작된 IMF위기 이래로 우리는 경제적인 움직임에 지나치리만치 민감해졌다.신문이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경제 위기를강조하고 돈벌이를 위한 안내에 열을 올리고,조그마한 부라도 축적하면 그처럼 찬양해 마지 않는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경제주간지도아닌 일반신문에서 말이다. “불붙는 美 증시…한국은 구경만” “본질가치 밑도는 ‘바닥株’잡아라” “집 사기는 그렇고…임대아파트 해봐?” “‘돈 왜 안도나’기업들 비명” “나도 부자 될 수 있을까?” “기업 돈줄이 막혔다…이 은행 저 은행…‘피말리는 구걸’” “휴대전화만 있으면 건설社 ‘뚝딱’” “올 겨울 모피제품 경향,화려하게 다양하게…20대를잡아라”등 어느 신문 하루의 타이틀만 뽑아보아도 이처럼 선동적인경제정보로 가득차 있다. 그러다가 거친 말로 너무나 자극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한 구석에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필립 골럽교수가 ‘세계화는 허구…맞서 싸워야’라고 했다고 전한다.한국의 IMF위기도 잘못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론의 산물’이고 미국이 그 ‘단독적 패권을 앞으로 계속 유지하기위해’전파하는 이데올로기 탓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 소식으로는 시인 김승희씨의 새로운 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이 ‘자본주의 무자비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고 전해준다.그는 이제 자본주의 권력이 ‘여성·소수·변방’을 떠나서 ‘남성·다수·제국’으로 치닫는 현실에 김수영적인 자조(自嘲)를 던진다는 것이다. 자조의 웃음으로 무서운 권력에 저항하면서 자기방어를 시도하는 셈이다.그러나 이 현실은 그런 시정(詩情)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고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이미 20세기 초에도 자본주의 사회란 ‘거대한 국제적인 도박장’이라고 뜻있는 사람들은 개탄했다.(바르터 벤야민 ‘파사주論’ 참조)도박장에서는 성공과 실패는 예견할 수 없는 것이다.주가가 오르거나 내리는 것,달러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누가 예견할 수 있겠는가.그러니까 ‘자본가란 직업적인도박꾼’이라고 했다. 설혹 20세기와 같은 전쟁·혁명·반혁명은 없어졌다고 해도 도박장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는 계속되고 있다.저 신문의 지면마다 무질서하게 난무하는,경제를 다루는 품위 없는 제목들이란 바로 이러한 도박장의 언어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거기에 대한 지혜는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시인들처럼 자조의 웃음으로 우리 자신을지켜야 한다고도 하겠고 학자들처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의 투쟁을고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런 현실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정치와 경제는 포기할 수가 없다.그처럼 현실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우리의 불안이 있고 어둠을 더듬는 듯한 모색이 있다고 하겠다. 새로운 세기 새해 초에 참으로 어렵고 불투명한 현실을 합심해서 견디어내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명관 한림대 교수·문화사
  • “논개 표준영정 제작 시급”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침략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순국한 의기(義妓) 논개(論介·?∼1593)의 표준영정 제작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93년 진주에서 ‘논개영정 폐출운동’이 있은지 7년만의 일이다. 진주문화시민연대(대표 배영선)는 최근 문화관광부,국회,진주시, 장수군,화순군 등에 보낸 ‘건의서’에서 “겨레의 충절의 상징인 논개의 표준영정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논개와 관련있는단체들이 공동으로 표준영정 제작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연대측과 진주시 당국,논개의 출생지로 알려진 장수군 등이 서로 입장 차이가 있어 표준영정 제작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93년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이 ‘논개영정 폐출운동’을 벌인 이유는 그동안 논개의 영정으로 사용돼온 진주 남강변 의기사(義妓祠·일명 논개 사당) 소장 ‘미인도 논개’가 영정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것이었다. 우선 이 영정을 그린 이당 김은호(金殷鎬)는 일제하 친일화가로 알려진 인물인데다 그가 그린 논개의 영정이 고증이 전혀안된 것은 물론 화법 역시 일본화풍을 본뜬 작품이라는 것.당시 이같은지적은 진주지역사회는 물론 문화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으나 ‘영정 폐출’로 이어지지는 못한채 논란 끝에 97년 진주시 의회는 현재의 영정을 유지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한편 논개의 표준영정 제작문제가 다시 거론된 것은 논개의 상징물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빚고있기 때문이다.논개의 대표적 상징물인 진주 의기사의 영정을 비롯해 전북 장수군 의암사의 영정과 논개 기념관의 기록화,또 장수군 계내면 생가 인근 백화여고에 건립된동상 등이 모두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며 최근 진주시와 장수군이 제작한 논개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진주시는 최근 진주문화원과 공동으로 논개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시민연대측은 “표준영정이 없는 상황에서동상을 새로 건립하는 것은 또다시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김계현 진주문화원장은 “표준영정이 없어도 전문가들의 자문·고증을 받아 표준동상 제작이가능하다”며 “금년 상반기중 공모를 통해 하반기쯤 발주할 계획”이라고말했다.진주시청 관계자는 “진주 이외의 타지역에서 논개의 연고를들어 상징물을 제작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타지역 관계자들과 논개의 동상건립 문제를 상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시민연대측은 “장수,화순 등에서도 이미 선양사업을 하고있는 상황에서 진주 단독으로 동상을 건립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며 “전문가 동원,경비모금 등을 공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동서 껴안고 남북 손잡으면

    개인이나 국가나 상승곡선이 있고 하강국면도 있게 마련이다.음지가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것은 음양설 이전에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20세기가 식민지와 분단시대의 하강곡선이었다면 21세기는 통일과 한반도 중심의 신문명 국가를 이끌 상승곡선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지금 비록 경제가 어렵고 얽히고 설킨 정쟁과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사회가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역사의 큰 흐름은 민족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상승곡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시대를이끌어갈 중심세력이 형성되고 시대정신에 투철한 지식인 집단의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국가를 상징하는 정신이 있고 지도 그룹이 존재한다. 영국의 기사도 정신,미국의 청교도 정신,프랑스의 국가정신,독일의융커 정신,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중국의 중화사상,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이 대표적이라면 우리의 민족정신은 무엇일까.박은식의 국혼(國魂)사상,신채호의 낭가(郎家)사상,문일평의 조선심(朝鮮心),정인보의 조선의 얼,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중심사상은 신라의 화랑정신,고구려의 조의선인(衣仙人),고려와 조선의 선비사상으로 이어지고,국난기에는 고려의삼별초,조선시대의 의병,일제 망국기의 의·열사와 독립운동가, 해방후에는 통일과 민주세력의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려시대 이래 민족 정통세력은 역사의 주류가되지 못하고 항상 변방의 소외그룹이었다.반면 주류세력은 권력주의·외세지향·반민중적인 특성을 갖는다. 불행하게도 고려중기 이후 한국사는 이들 후자가 주도세력이 됨으로써 반도국가로 쪼그라들고 외세침략과 식민지 그리고 분단상태로 오늘에 이르렀다. 민족의 시련기에는 어김없이 양심세력이 구국·해방·통일운동에 나섰다.그대신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우리는 20세기 초에 망국을 겪고 분단의 대가로 해방이 됐지만,동서이데올로기 싸움의 대리전을 치르고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그동안 분단이 빚은 냉전시대의 민족적 희생과 낭비는계량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반도는독일처럼 전범국가의 죄값도,중국처럼 내전에 의한 것도,베트남처럼 반식민지투쟁 과정에서 갈라진 것이 아닌,순전히 외세의작용과 이에 놀아난 못난 정치지도자들 때문이었다.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한 것이다.다행히 지난해 남북정상이 만나고 6개항의 합의문 도출에 성공했다.외세가 토막낸 강토를 우리 손으로 다시 잇는다는 상징성과 남북 동질성 회복,상호 의존성을 높이면서 경제적 실익을 얻자는 것이다.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자는 민족사적 염원이 모아졌다.통일의 전단계 과정으로 평화공존의 신뢰체제가 구축되고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데까지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지금은 민족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분단 반세기 만에 통합의 상승곡선을 맞게 됐다.국가의 운명 역시 분열과 통합의 변증법적과정이라면 우리는 통합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문제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주변은 여전히 4강의 국제역학적 작용과 역작용이 한반도를 휘감고내부적으로는 정치권의 끝없는 정쟁과 일부 언론·지식인들의 대북적대감정과 냉전논리,여기에 지역감정과 집단이기주의,이념적 간극,빈부격차,경기침체 등이 겹치면서 국운 상승곡선의 덜미가 잡히게 됐다. 우리는 더이상 동족끼리 적대와 대결로 민족의 역량을 소진시킬 시간이 없다.더이상 시대착오적 적대감과 냉전논리로 화해와 협력관계를 역류시킬 여유가 없다.내부에서 정파간·지역간·계층간 갈등으로국력을 낭비하고 화합을 깨뜨리다가는 영원히 20세기적 공간에 머물게 된다. 국민 통합과 국가의 비전을 상실한 채 정쟁만 일삼는 ‘불임(不妊)의 정치’를 생산과 통합의 정치로 고쳐야 한다.신뢰받는 여당과 존경받는 야당이 건강한 두 날개로 정책대결을 하고 민족의 새 날을 열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동서가 껴안고 남북이 손잡으면서 모처럼 주어진 한반도상승곡선의 운세를 지켜내야 한다.이것이 21세기 첫해 벽두의 화두이고 시대정신이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편집위원 칼럼] 미래의 프리즘으로 일본을 보자

    ‘해가 후지산 너머로 진다고 해서 일본의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80년대 경제대국 일본을 예찬하던 말이다.그 당시 일본기업은 지구촌 곳곳으로 진출했고 일본 상품은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다.엔화는 달러의 지위를 넘볼 정도로 강력했다.엔화로 세계를 사들인다는 말까지나왔다.일본은 경제발전 모델의 ‘교과서’였다. 일본경제는 그러나 90년대 접어들며 하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요란하게 떠들던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도 조용히 사라졌다.그 자리를 미국이 주도한 신경제가 메웠다.그러나 최근 신경제의 원동력이었던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의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 미국 IT업계의 수익감소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야심적인 IT혁명을준비하고 있다.80년대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는 전략이다.일본은 그동안 미국에 뒤떨어진 IT산업 발전을 위해 관련 법을 만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일본 버전 IT혁명의 키워드는 인터넷 세계표준과 정보 가전(家電)이다.일본은 인터넷 세계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올 봄 세계 최초로 차세대 인터넷 통신수단인 IPv6 서비스의 대규모실험을 실시한다. NTT도코모는 이른바 ‘i모드 신화’로 휴대전화 인터넷을 일반화시켰다.NTT도코모는 또 동영상 전송이 가능한 휴대전화 서비스를 올 봄시작, 세계 최초로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을 상용화한다.일본의전자메이커 소니·마쓰시타·도시바·히타치 등은 가정내 네트워크의중심을 PC에서 TV로 옮기기 위해 TV를 통한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일본은 2005년까지 미국을 뛰어넘는 초고속 인터넷 대국을 이룩한다는 야심적인 국가전략을 세워놓고 있다.IT 분야에서의 미·일 역전을노리고 있다. 일본은 또 세계 과학기술 분야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웅대한 첨단기술개발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일본의 이러한 국가전략은 미국의 정권교체와 맞물리며 미·일 관계강화와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의부시 대통령 정권은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베이츠 길 동북아시아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예측한다. 부시는 중국과의관계를 클린턴 정권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는 달리‘전략적 경쟁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면 일본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일본의 부상이 대내외적으로 성숙되고있는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부상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한국은 ‘감정과 과거라는 프리즘’으로 일본을 보아 왔다.일본이 잔혹한 식민지 통치와침략행위를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진정으로 사죄했다면 한국과 일본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그러나 일본은 과거사를 사죄하는 데 너무나 인색했다.그러면서도 냉전시대에는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한·일간의파트너십이 강요돼 왔다. 냉전도 끝나고 세상은 경제전쟁 시대로 바뀌었다.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21세기에는 일본을 ‘이성과 미래의프리즘’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그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우리는 결코 과거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에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일본과 경쟁할 만한 힘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경쟁력을 키우려면 어쩔 수없이 ‘과거사라는 강’을 건너 일본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한국경제의 일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일본과의 협력을 유지하며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한국이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면 언제 또다시 과거와 같은 불행이 되풀이될지 모른다.일본에는 약한 자를 집단적으로 학대하는 이지메라는 관습이 있다.일본은 과거사를 사죄하라는 주변 국가들의 요구에조금은 멈칫하는 시늉은 하지만 결국 경제대국·군사강국이라는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그런 일본과 정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일본이 얕잡아 볼 수 없도록 국력을 키우는 일이다.그래야탐욕의 해가 후지산 위로 다시 떠오르더라도 그 검은 야심의 그늘이우리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이창순 위원 cslee@
  • 대한매일 신년특집/ 대한매일의 어제 오늘 내일

    구한말 항일·민족언론의 필봉을 드날린 대한매일신보는 격동의 한세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질곡과 영욕의 역사로 얼룩져 왔다.일제하에서는 총독부 기관지로 친일보도에 앞장섰으며,해방후 독재정권 하에서는 권력의 대변지로 충실했다.그러나 반세기만의정권교체를 계기로 창간 당시의 제호를 되찾고 다시 태어났다.소유구조 개편을 통한 공익정론지로의 변신을 꾀하는 대한매일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을 정리한다. *어제. 대한매일은 구한말 대표적 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정신을 계승한 국내 최고(最古)의 공익 정론지다.1904년 7월18일 영국인 베델(한국이름 裵說)과 애국지사 양기탁(梁起鐸)선생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잘 알려져 있듯이 구국항일운동의 구심점이었다.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임을 만천하에 밝혔고,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처처의병(處處義兵)’이란 고정란을 두어 항일의병투쟁을고무했다.암울한 시기에 국권수호의 보루이자 민족자존의 희망이었던 것이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8월일제가 이 땅을 강점하면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가 되는 치욕을 겪었다. 해방후 매일신보는 미군정청을 거쳐 정부로 귀속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이후 서울신문사의 주주총회 및 간부 인사는 공보처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1952년 4월 정관개정에 따라공보처장이 공식적으로 서울신문사 회장에 앉게 되었다.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은 1960년 자유당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됐다. 이승만 독재정권 시기 서울신문은 우리 현대사와 영욕을 같이 했다. 이승만 정권 초창기 한때는 좌경·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특히 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구성한 반민특위의 활동을 극구 지원·옹호하는 등 민족문제에 관해 여타 어느 신문보다도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정권의 대변지로 전락한 이래 역대정권의 ‘홍보지’노릇을 해왔다.이런 연유로 ‘4·19’당시 성난 시위군중에게 사옥이 불탔으며,민주화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에는 한동안 대학가·재야진영으로부터 취재거부를 당하기도했다. 이로 인해 서울신문의 구성원들은 만성적인 정체성 위기에 시달려 왔으며,해바라기성 언론의 전형으로 불리기도 했다.결국 집권자가 경영진을 임명하는 구조하에서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신문사 경영 역시 악순환을 거듭하였다.이는신문 판매·광고에 바탕을 둔 신문사 경영원칙이 시장논리보다는 정부의 계도지 보급정책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러한 서울신문이 50여년 굴절의 역사를 접고 새로 태어났다.1998년 11월11일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제호을 바꾸고 재창간을 선언했다.▲공익을 앞세우는 신문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이라는 다짐을 실천해가며 대한매일은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고 있다. 제호를 회복하며 다시 태어난 대한매일은 지난 2년여동안 공익 우선의 민족정론지로서 언론의 소임을 다했다.그것은 먼저 지면을 통해나타났다.특히 근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고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일련의 장편 기획기사들은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제하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각을 자료와 증언으로 고발한 ‘친일의군상’,독재정권과 맞서 민주·인권투쟁을 벌이다 민주제단에 몸을바친 민주투사들의 투쟁사를 조명한 ‘민주열사 열전’,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시민들이 세운 장면 정권을 재조명한 ‘제2공화국과 장면’,일제하 단신으로 침략자를 처단하거나 총독부 등 일제 침략기관에 폭탄을 던지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열사들의 항일투쟁기를 복원한 ‘의열 독립투쟁’,재미언론인 문명자씨의 40년간에 걸친 극비 취재파일을 단행본 출간에 앞서 발췌연재한 ‘문명자회고록’,그리고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지의 항일유적지를 현지답사·증언을 통해 재조명한 ‘해외 항일유적지를 찾아서’등은 최고의 민족정론지에 값하는 뜻깊은 시리즈였다고 할 수 있다. 재창간 이후 거듭된 일련의 ‘정직한 역사 되찾기’작업은 각종 출판사업으로도 구체화했다.지난 99년 창간 95년과 백범 김구선생 서거 50주년을 맞아 펴낸 ‘백범 김구전집’(전12권)이 그 대표적인예이다.백범 암살 반세기만에 나온 이 전집은 백범에 관한 국내외 문헌자료를 총망라한 역작으로 꼽힌다. 대한매일의 또 하나의 얼굴은 ‘행정뉴스’면이다.공직사회의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하는 ‘행정뉴스’면은 맨 뒷면에 넣어,1면과 같은 체제로 편집해 ‘1면이 둘인 신문’으로 자리잡았다. 특화된 내용이 돋보여 지난 98년 5월 선 보인 이래 열독률이 꾸준히높아지고 있다. 행정뉴스 면은 단순히 공직사회 소식을 전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의 구조적 문제점과 애환·비리 등을 낱낱이 짚어 건전한공직사회를 선도하는 지면으로 평가받았다. *내일. 지난 한세기 동안 ‘영욕의 역사’를 밟아온 대한매일은 이제 새로운 한 세기를 맞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우선 ‘원죄’와도 같은 공적 소유매체로서의 틀을 벗고 ‘독립언론’‘공익언론’으로 거듭나고자 몸부림 치고 있다.99년 12월30일 자매지 ‘스포츠서울’이분사되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끄는 ‘스포츠서울21’로 새 출발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편집국장을 편집국 기자들이 직선하는 등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본사 편집국장은 편집인을 겸한,신문편집의 실질적인 총책임자로 편집국장 직선은 공정보도를 가능케 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편집국장 임기는 1년으로,임기가 끝난 뒤에는 중간평가를 통해 연임할수 있도록 해 편집권 독립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편집국장 직선제를 관철한 대한매일은 이제 위상 재정립 작업의 핵심이라 할 소유구조 개편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균등 무상감자후 유상증자’등을 골자로 한 소유구조 개편안은 언론개혁 차원에서범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가운데 정부가 언론사를 소유한 곳은 없다.정부의 언론사 소유는 시대에도 맞지않을 뿐더러 오히려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연합뉴스와 대한매일의 정부소유 구조개편 문제는 현정권의 공약사항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대한매일은 소유구조 개편을 통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과감한 지면혁신을이뤄나갈 계획이다.그동안 대한매일 지면이 독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제작자 위주의 ‘일방적 제작방식’이었다면,앞으로는 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쌍방향식 제작태도’로의 일대전환을 가져올 것이다.특히 남북관계 개선으로 종래의 적대적 대북보도 태도는 일대 전환을가져왔다.아울러 지방화시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인한 지면의 다양화 역시 시대적 요청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한매일은 98년 재창간을 계기로 ‘공익정론지’를 지면제작의 모토로 표방했다.이는 국내 대다수의 언론이 사주나 정치권 등 언론사 내외의 압력으로 인해 공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자성에서 나온 것이다.향후 소유구조 개편을 계기로 대한매일은 명실공히 공익정론지로 거듭나 시대를 이끌고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고급지로 발돋움할 것이다. 정운현 김종면기자 jwh59@
  • 조선일보 ‘이규태코너’…”사실 왜곡” 비판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고문이 조선일보에 고정연재하고 있는‘이규태코너’가 인터넷사이트에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내용인즉 12일자‘이규태코너’에 실린 ‘러시아의 복고(復古)’는 사실과 다른 왜곡기사라는 것.이 글은 옐친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이 ‘강국 러시아’에 향수를 갖고 그 이미지 부활에 발벗고 나선다는 내용이 요지다.이에 옐친 대통령이 폐지한 호전적인 옛 국가(國歌)도 환원하고, 망치·낫·별 문장의 붉은색 옛 국기(國旗)를 군기(軍旗)로부활했다는 것.이 외에 프랑스·중국·독일의 국가가 모두 침략적이고 호전적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한편 영국과 타이완에서 역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두 유학생은 최근 안티조선 사이트인 ‘우리모두’(www.urimodu.com)의 해외방에 올린 글에서 ‘이규태코너’의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우선 ‘스탈린시대의 호전적인 국가’와 ‘볼셰비키 혁명전 19세기에 불렀던 평화적 애국가’라는 평가는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것.이들은 소련 국가를 원문번역한 내용을 통해 ‘평화적 애국가’에는 ‘전사’‘피’‘주먹’‘내리쳐라’ 등의 낱말이 포함돼 있는 반면,‘호전적 국가’에는 실제로 그런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기사에 언급된 ‘단련된 나라 우리 강자여/적을 무찔러 무찔러…’라는 부분은 소련 국가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중국 국가와 관련,“중국 국가엔 이고문이 언급한 ‘적과 부딪쳐라’‘진격하며 적과 부딪쳐라’는 구절이 없다”고 반박했으며,독일국가가 ‘인근국가들을 자극시키는 침략적인 가사’라는 기사에대해서도 “3절 가운데 1절은 전투적 내용을 담고 있으나,현재 독일정부는 문제의 1,2절을 제외한 채 3절만 국가로 삼고 있다”고 반박했다.‘이규태코너’는 지난 94년 일본 아사히신문의 칼럼을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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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나무 김대중(오수 글·그림,도서출판 MK 펴냄)김대중대통령일대기를 두권으로 엮은 전기만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김대통령관련 책으로는 첫 주자가 될듯. 1권에선 가난한 섬마을 소년이 정치에 입문하기까지,2권은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끝에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 역정을 소개했다. 김대통령 측근인사 및 고향인 전남 하의도 주민들 현장취재를 바탕으로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한화갑 최고위원,최재승·설훈 의원등이 감수했다.지은이는 현재 한 스포츠지에 스포츠만화를 연재중.각권 7,000원. ■명화로 읽는 성서(고종희 지음,한길아트 펴냄) 성서 내용을 다룬그림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라는소재를 마사초(1401∼28)는 영감 넘치게 묘사한 반면 그의 선배 마솔리노는 무미건조하게 그려 대조된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에로틱한 여인으로 둔갑하는 등 르네상스시대의 베네치아에서는 성화에서조차 에로티시즘을 추구했으나 천박하지 않게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한다.6세기 이전까지 태양의 신아폴론의 모습으로 수염 없이 그려진 예수,천사 등의 주요부분을 가리도록 수정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등 흥미진진한 일화들을쉽게 풀어썼다.2만5,000원■베트남의 신화와 전설(무경 엮음)/베트남의 기이한 옛이야기(완서지음,박희병 옮김,돌베개 펴냄)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고전들.민간 전승 신화와 전설을 15세기에 한문으로 기록한 ‘영남척괴열전’과 16세기 걸작 고전소설 ‘전기만록’(傳奇漫錄)을 번역했다. 앞의 책은 베트남 민중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녹아 있는 건국신화와풍속,영웅 등에 관한 이야기 22편으로,우리의 ‘삼국유사’와 견줄만한 베트남의 역사·문화적 자료의 보고다.뒤의 책에는 중국의 침략주의와 현실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단편소설 20편을 실었다.우리의 ‘금오신화’에 비견된다.8,500원 1만5,000원■거대기계지식(플로리안 뢰처 지음,박진희 옮김,생각의나무 펴냄)사이버 시대의 올바른 지식사회 구축을 위해 첨단지식정보의 형성과정에 도사린 도전과 위험을 점검한 책.사이버 공간으로 인한 우리 생활의 변화를 살피면서,모든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거대지식보고의건설 가능성을 인터넷 기술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상업화와 검열 강화,선·후진국간 정보 격차 등을문제점으로 지적한다.로베르트 베르졸라는 제조비 3달러인 CD롬을 30달러에 파는 선진국 거대기업과,설탕을 제조원가에도 못미치는 파운드당 15센트에 파는 개발도상국을 비교하며 파행적인 시장구조속의새로운 식민주의를 염려한다.1만5,000원
  • 신간 맛보기

    ◆새 근원수필/조선미술대요(김용준 지음,열화당 펴냄) 화가이자 미술사학자,미술평론가인 근원(近園)김용준(1904∼67)의 문화예술론이집약된 글모음집.5권으로 기획된 ‘김용준 전집’중 먼저 1·2권이나왔다. ‘새 근원수필’에는 1948년 출판된 ‘근원수필’에 수록된 글들을비롯,근원의 첫 수필인 ‘서울사람 시골사람’,월북 몇달 전인 50년발표된 ‘십삼급(級)기인(碁人)산필(散筆)’등 53편의 글이 실렸다. ‘조선미술대요’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국권상실기 조선미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비교미술사학의 관점에서 기술한 인문교양서다.각권 1만5,000원◆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임길진 등 13명 지음,백의 펴냄) 굴절된한미관계사와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현상을 분석. 1부는 한미관계사와 한국의 미국적 가치를,2부는 우리 교육을 둘러싼미국주의를 다뤘다.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관련,미국의 침략행위를 은폐하는 등 미국 찬양과 반공주의의 논리가 횡행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내용을 비판했다.3부는 일본과 북한,러시아의 미국관,또 미국의 일본관을 짚었다.4부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배경을 주제로 전문가 좌담을 실었다.미국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해준다.1만3,000원◆미녀와 야수,그리고 인간(김용석 지음,푸른숲 펴냄) 미국 디즈니의애니메이션(저자는 만화영화가 아니라 魂畵·얼그림이라고 표현)작품4편을 철학적으로 분석.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마법을 푸는 통상적 스토리와 달리,마법에 걸린 왕자 스스로가 사랑을 배우고 실행해서 여자의 사랑을 받아야 마법이 풀리도록 돼있는 ‘미녀와 야수’의 차별성을 진단. 여주인공의 머리색깔 등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찰.‘자유와 진리’를주제로 한 ‘알라딘’,햄릿과 유사하다는 ‘라이언 킹’,원작을 해피엔딩으로 수정한 ‘인어공주’도 다양한 각도로 해부.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면서 컨텐츠가 부족한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이 참고할 만 하다.1만5,000원◆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 지음,시공사 펴냄)제목이 너무 도발적이다 싶다가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 할듯한 위기감에휩싸이게 하는 책.‘…엄마 모임’은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에서 떨어져나온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주부 모임. 아이들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헤매다 거꾸로 식탁오염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만 확인했다.책은 이들이 울리는 절박한 사이렌.라면,냉동식품은 물론 믿고 먹던 우유 콩 생선 등도 식품첨가물에 환경호르몬 범벅이라는 주장.믿고싶지 않은 현실에 넋두리만 늘어놓는게 아니라 이모저모 대안을 챙겨본 점이 돋보인다.8,500원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남북 공동정부 5년내 출범 희망”

    올해 남북한 관계에 주목할 만한 관계개선이 이뤄져 평화와 안정의전망이 50년 만에 최고로 밝아졌지만 남북통일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 어려운 목표라고 스티븐 보즈워스 주한 미국대사가 6일 주장했다. 보즈워스 대사는 이날 일본의 교토(京都)에서 개최된 ‘한국 및 동북아 평화 탐구에 관한 연례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통해이같이 말하고,남북한은 통일보다는 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해 계속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나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북한의김명철 대표는 회의장 밖에서 기자들에게 통일은 남북한의 최고목표라면서,국방 및 외교정책에 관한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는 남북한 공동의 중앙정부가 5년 내에 출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보즈워스 대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6월 평양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하고 오랜 긴장과 반목을 완화하는 큰 조치들을 취했지만,미국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한국에 강력한 군사력을 배치한다는 장기적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일본) AP 연합
  • ‘北변화 아직 미흡’ 정책기조 유지

    ‘2000 국방백서’는 남북정상회담과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 이후달라진 한반도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국방백서는 1967년 첫 발간 이래 통상 9월말 혹은 10월초 발간됐으나 올해 2개월 가까이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컬러사진이처음으로 등장하고 북을 자극하는 일부 용어가 완화되거나 사라지는등 편집 및 표현상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논란을 빚은 ‘주적(主敵) 개념’과 장병 정신교육 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는 점이다. 국방부 차영구 정책기획국장은 “국방목표와 국방정책 기조의 측면에서 ‘주적개념’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남북관계가 일부 진전되고있기는 하지만,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 개념을 폐기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장병 정신교육 부분에서는 유연성이 엿보인다.99년 백서에서는 “우리 장병들은 확고한 주적개념과 대적관을 갖고 유사시 위국헌신하는 군인정신을 행동화해야 한다”“…북한노동당 및 그 추종세력,정규군 및 준 군사부대가 현실적인 주적”이라고 표현했으나 올해 판에서는 구체적인 주적을 명시하는 대신 “주적개념을 포함한 장병정신교육을 강화…”로 적시,정신교육의 논리를 제공하는 쪽으로 다듬었다. 용어사용도 많이 달라졌다. 남북관계의 진전에 걸맞게 ‘김정일’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정부 공식문서로는 처음으로 공식직함을 표기했다. 북측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온 ‘대북 포용정책’도 ‘대북 화해·협력 정책’으로 바꿨다. ‘벼랑끝 전술’‘유훈통치’‘무장간첩 침투 지속’‘통미봉남 정책’등 자극적 용어는 삭제됐다.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군이 다른 정부부처에 앞서 바꾼 데 대해 다소 의아해하는분위기다. 우리 군의 대북정책이나 국방목표 그리고 국방정책의 기조 등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됐다.특히 대북정책면에서 남북해빙무드와 관련,“현재 단계에서 우리의 국방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로 “우리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북한의 군사적 능력을 비롯한 군사적 실체가 아직 변하지 않은 점”을 백서는분명히 못박고 있다. 국방목표도 그대로 유지,‘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의 대상 즉주적(主敵)을 북한으로 명시했다.5가지 국방정책 기조도 그대로 유지했다.군비통제문제와 관련,99년 판에서는 “우리는 지속적인 군사력정지를 통해 대북억제력을 유지해 나감과 동시에…”라고 적시했으나올해 판에서는 “북한이 군사적 신뢰구축,군비제한, 군비축소를 포함한 남북간 군비통제에 응할 경우 능동적으로 협의,추진해 간다”며신축성있는 자세를 보였다. 노주석기자 joo@. * 국방백서로 본 남북 군사력 비교. 한국은 육군 장비와 공군 전력을 증강한 반면 북한은 지상군의 사단,야포,공군 전투기 등의 전력을 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 국방백서’에 따르면 남·북한의 전체 병력은 각각 69만명,117만명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나 지상군 부대 규모는 상호 조정됐다.우리가 1개 사단이 줄어든 49개 사단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북측은 4개가 증가한 67개 사단을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초 북측이 창설한 미사일 1개 사단은 전시에 전방군단급 이상 부대로 편성되는 대연합부대의 화력지원을 주임무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여단 수는 남측이 1개가 감소한 19개,북측은 5개가 축소된 78개이다. 하지만 북측의 경우 30여개의 포병 여단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 실제로는 남측의 5배에 이른다. 북한은 또 사거리 50∼70㎞의 지대지 로켓, 사거리 250㎞의 지대공미사일,240㎜ 방사포 등의 지상군 야포 장비를 500여대 증강했고 이중 방사포를 최근 서부 4군단과 동부 1군단 지역에 추가 배치시켜 놓고 있다. 한국도 이에 대응,지상군 장비중 전차와 장갑차 각 100여대,야포와헬기를 각 20대씩 늘렸다. 해군 전력에서는 우리가 수상전투함 10척을 줄이고, 항공기 10대를늘린 반면 북측은 잠수함 90여척(잠수정 40척 포함) 등 지난해와 동일한 전력을 유지했다. 특히 공군 전력에서는 남측이 전투기 20대, 지원기 10대 등 30대를,북측은 전투기 20여대를 각각 늘렸다. 한반도 유사시 전개되는 미군 증원전력이질과 양 두 측면에서 대폭증강된 점이 눈에 띈다. 미군 증원전력은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포함, 모두 69만여명으로 90년초 48만여명,90년대중반 63만여명에서 6만명이 늘어났다. 육군 사단, 최신예 전투기를 탑재한 항모전투단, 전투비행단 등으로구성돼 있다. 일본 오키나와 및 미 본토의 해병기동군을 비롯해 각종 함정 160여척,F-18 전폭기 등 항공기 1,600여대도 함께 투입된다.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국방백서는 밝히고 있다. 노주석기자
  • [외언내언] 천주교의 참회

    가장 큰 과오는 과오를 범하고도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슨 일이 잘못된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잘못한사람이 없는 데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도 바로 이 부분에서 꼬였는지 모른다.IMF,5·16,5·18-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의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 누구도 진심으로 용서를 빈 적이 없기 때문이다.참회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데서 오는 갈등이 오늘우리가 처한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뿐이랴.오직 ‘네 탓’만 있는 것이 인간들이 경영하는 세계의특징이다.서구 강대국 어느 나라도 오늘 제3세계 국가들의 내전과 굶주림이 자신들의 침략과 식민지배 후유증임을 고백한 나라가 없지 않은가.대희년을 맞아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 사건은 그래서 신선하다. 3일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될‘쇄신과 화해’라는 7개 항의 반성문은한국 천주교 200년사 전체에 대한 참회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3월 카톨릭교회가 2천년 역사에서 잘못한 점에 대해 전 세계를 향해 용서를 청한데 따른 것이다. 반성문은 구체적인 사건을 적시하진 않았다.그러나“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병인양요사건 당시 외세에 의존하고,안중근(安重根)의사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하며,독립운동을 홀대한 과오 등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반성문은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과오에 대해서도 진솔한고백을 담았다.분단 극복과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에 소홀했으며 지역과 계층,세대간 갈등 해소,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노력도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주교회의 반성문에 대해 “참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해 파문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모호하고,천주교에서 특히 심한 여성 차별문제 등의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교황청은 절대 무오류,절대권위의 상징이었다.다른 종교에서도 절대권위에 둘러싸인 교회와 성직자가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범하고 있는오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그런 의미에서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교회의 과거사 참회는 대사건이다.부모도 과오가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가족간의 신뢰가 두터워지듯 교회의 참회가 인류사에 커다란전환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이집트, 駐이스라엘대사 소환

    [카이로 연합]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1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를 이유로 모하메드 바시우니 이스라엘 주재 이집트 대사에게 귀국령을 내렸다. 아무리 무사 이집트 외무장관은 이날 “고의적인 무력사용을 비롯,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이 고조됨에 따라 바시우니대사를 즉각 소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무사 장관은 바시우니 대사로부터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에 대한 보고를 듣고 다른 아랍국가들과 다음 단계의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며유엔 안보리에 이번 사태의 논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바시우니 대사의 소환이 일시적인 것인지 이스라엘과의 단교를 위한 사전조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집트 외무부 관리들은 무사 장관의 언급 이외에 더 이상의 공식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슐로모 벤아미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대사 소환은 위험한 결정이며 중동의 정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는 이집트의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 [발언대] 日 ‘구석기 날조사건’ 국수주의의 산물

    다시 한번 일본의 가식역사를 본다.“초초하던 끝에,심리적인 압박이 심해 마가 끼였다” 그래서 구석기 발굴을 날조했다는 것이 일본인 후지하라 신이치의 양식이다.그렇게 해서라도 일본열도의 고고학인문사를 60만∼70만년 전으로 끌어올려야 했나.그런데 이런 국수주의자의 ‘신의 손’ 놀음으로 그간 100여건의 발굴 성과가 발표될 때마다 일본은 서둘러 교과서를 개편하곤 했다.한국이라면 웬만한 발굴도 수년간,심지어 수십년간 검정을 거쳐 겨우 교과서에 싣는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의 동광진 구석기 유적 발견 이래 상원 검은모루봉,덕천 승리산,연천 전곡리,공주 석장리 등 허다한 지역에서 30만년 전,50만∼60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그런데도 일제관학은 한국에는 구석기시대가 없다고 통설화했다.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구석기 유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후해서 일본 역사학에는 독일계통의 랑케사학을 변형도입한 실증사학이 풍미했다.랑케사학은 역사란 국가와 개인의 가치,이념에 따라 통일적인 발전원칙,발전과정을 전제로 각 민족(국가)의 역사적 필연성을 설정하는 것이다.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 필연에 맞추어 역사를 구성한다.그것이 황국사관이고 식민사관이다.그러자니 역사에 가식과 조작이 붙는다.없는 자료도 필요하면 만들고 있는 자료도 무시하거나 고쳐 특정가설 하에 역사서술을 꿰맞추는 것이 그들 실증사관이다. 그러다 보니 왜곡이 심해진다.‘일본서기’라는 픽션에 광개토대왕비·칠지도의 조작과 임나일본부라는 허구같은 가식에 왜구활동,침략,강탈,전쟁놀이,강자지배 논리의 미화 등.그들은 이를 왜곡으로 여기지 않으며 역사란 그런 것이란 인식이 일본인 일반의 심성이다.지금일본에는 국수주의가 팽배하고 있다.2차대전 종전 50년을 지나며 부쩍 그 도가 심해진다.82년의 역사왜곡 등으로 한국 등의 반발이 거세자 참회,수정하겠다던 것은 잠시고 90년대 들어서는 다시금 과거 영광을 되살리자는 분위기다.일본 문교당국자는 이번 ‘후지무라 날조사건’을 계기로 고고학 기술을 재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일본인의 가식성은 또다른 각도로 역사를 호도할 것이 뻔하다.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매스컴이 폭로한 해프닝의 하나 정도로 여긴다.오히려 일본 구석기시대가 단축되지나 않을까,일본의 고고학·고대사 체계의 허구가 노출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진행을 지켜볼 뿐이다. 곽창권[한국사회정보연구소 대표]
  • [대한시론] 친미와 반미의 허구적 인식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이의제기를,한국의 매카시스트는 “반미는 용공이고 좌경이며 결국 빨갱이”라고 물아붙여왔다.국제관계에서 각나라가 국가이익을 겨루는 경우에는 냉정하여 인연이나 정리에 구애되지 않는다.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이 우리에겐 통하지 않은 채 친미일변도의 가치기준이 독판무대가 되어 왔다. 미국이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준 은인이고 1950년 전쟁에서 구원해준 혈맹이란 사실이 우리 대미관의 전부로서 압도하다시피 해왔다.그런데 미국뿐이 아니라 어느 외국에 대해서도 그런한 자세와 정서는 유치한 정치인식이다.나라 사이에는 영원한 벗도 없고 적도 없다.이 현실에 눈을 크게 뜨고 땅에 발붙이고 서야 한다.이것이 실리주의 이전에 아주 정상적인 정치인식이다. 우리의 국제관계 인식이나 외교감각이 감상적 굴레에 얽혀 친미와반미의 인식에 머무르게 된 연유를 따져보면,우선 서양열강과의 교류이전에 중국 중심의 사대교린(事大交隣)에 머물렀던 국제실정 인식수준에서 철저하게 탈피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조선시대의 중국이현재론 미국으로 대체된 격이다. 조선때 명나라가 쇠망해가고 새로이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될 당시, 우리는 임진난리에 은혜를 입고 유교 모국이란 명분 때문에 시세를 거슬러 청나라로부터 두번 침략당했다.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아 국제질서가재편되는 시기에도 조선 양반지배층은 소중화를 자처해 위정척사를고집하다 서양 앞잡이가 된 일본 제국주의에게 침략당했다. 이전에 우리는 아셈이란 거창한 국제회의를 치러냈고 그 성과도 평가할 만하다.그러면서도 외국 정상 등 귀빈에게 잘 보이려고 지나치게 허식을 부리는 무리는 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도 있다.국제거래에서는 외교도 결국 장사 이상의 실리 챙기기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국제관계 인식은 봉건적 정서에 젖어 있어도 안되고 냉전시대의 매카시스트적·친미일변도식의 편파된 시각으로 쏠려도 안된다.그러한 정치인식은 유아적 인식수준이고,심하면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의 지능수준으로 전락되어 결국은 나라 일을 망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지도층의 국제관계 인식의 유아적 순진성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일은,1905년 러·일전쟁 당시 미국이 필리핀 보존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팔아넘긴 사정을몰랐던 비극적 사건을 들 수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아시아 민족의 해방이라고 또 한번의 크나큰 착각에 사로잡혀서 미국을 짝사랑했다.당시 미 국무부 주변을 맴돌며 외교를 통한 독립에 앞장선 이승만식 친미 일변도의 외교가 그후 우리의 국제관계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결국 외국에 대한 정치인식이 바르게 깨어나는 계기가 된 것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겪으면서다.참으로 수업료치곤 막대한 희생의 대가였다.당시에 미국정부는 자기의 국익기준으로 신군부집단에 손을들어주고,한국민족의 민주화투쟁은 불안하다고 봐서 묵살한 것이다. 여기서 일부 학생이 미 대사관 건물을 점거·방화하는 등 반발하지만이 문제는 국제관계의 인식차원에서 냉정하게 미국의 실체와 입장을분석해볼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에서 제 나라 이익을 지키고 주장하느라 미국과 갈등을 빚는 일은 언제고 있을 수 있다.우리 정부는 그런 일을 극력 피하려는나머지 입지를 양보해선 안된다.또 다른 문제는,미국 비판을 모두 위험시해서 용공으로 몰아붙여 공격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못된다는 점이다.물론 매카시스트들은 지금은 정권의 밖에서 오히려 정권측을 때리는 수단으로 친미정서를 이용한다.그래서 현직 대통령에게까지도 반미적이란 딱지를 붙이려 해서 여당대표가 진땀을 흘리며항변해야 하는 실정이다.오히려 DJ의 친미성이 지나친 것 아닌가 걱정인데 말이다. 어쨌든 색맹(色盲)의 국제관계 인식이나 함량미달의 한정치산적 또는 유아적 지능으로 정치를 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선 실격이다.정치는 장난이 아니다.그리고 정치는 개인의 분풀이 무대가되기엔 너무나 중대한 나랏일이기 때문이다. 한상범 동국대교수·헌법학
  • 삼국사기 ‘진실’인가 ‘사기’인가…KBS1 ‘역사스페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는 진실인가,사기(詐欺)인가. 1145년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 등 11명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는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유일한 책.고대 삼국연구에 기초가 돼 ‘고대 역사로 들어가는 창’,‘고대사의 바이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내용이 틀린다’,‘편찬자 김부식이 사대주의적이다’등의 비판을 받으며 끝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8일 오후8시 KBS 1TV ‘역사스페셜’은 이같은 학계의 논란을 조명하면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국내 사학자들의논쟁은 바로 280년경 중국 사람 진수가 쓴 ‘삼국지 한전’과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고대 삼국의 모습을 다르게 그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삼국지 한전’에 따르면 3세기 한반도는 70여개의 소국으로 나눠졌고 권역별로 소국들이 연맹을 해 마한 진한 변한으로 묶여있었다.이것은 이제껏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통설이다.반면 ‘삼국사기’에의하면 백제와 신라는 이미 1세기 후반에 여러 지역을 통합하고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어 정면 배치된다. ‘역사스페셜’ 제작팀은 “풍납토성의 탄소 동위원소를 통한 연대측정 실험결과가 기원전후로 밝혀지면서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제와 신라가 3세기 이전 강성한 고대국가로 성장해 있었다’는‘삼국사기’초기 기록에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일본 역사계의 대부라 불리는 ‘츠다 소이치’씨.그가 논문을 낸 1919년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되고,천황 중심의 역사관이 정립되던 때이다.그는 왜 이러한 주장을 했던 것일까? 혹시 고대 왜국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합리화 하기위한 포석은 아니었을까?제작팀은 이밖에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일식,월식 등 수많은 천문기록 조작주장에 대해 “최근 천문학계가 최첨단의 기술로 연구한 결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보다 ‘삼국사기’에 적힌 천문기록이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반론을 편다. 제작을 맡은 우종택PD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고 조선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책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허윤주기자 rara@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4)항일운동 총본거지 上海·嘉興

    필자가 상해를 찾기는 이번이 네번째이다.홍교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를 향해 달리는 동안 눈길을 끈 것은 30∼40층짜리 신축빌딩들이었다.거의 수직으로 치솟고 있는 중국경제를 상징하는듯 했다.이도시에 숱하게 많은 우리의 항일유적들이 또 몇개 사라졌겠구나 생각하며 곧장 옛 프랑스 조계(租界)인 회해중로(淮海中路)를 향해 달렸다.우리의 항일운동 유적들이 그 거리와 근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상해는 국제교통의 요충지이며 각 국의 조계가 설정돼 국제정세 파악이 쉬워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우리 항일투사들은 최우선의 활동근거지로 삼았다.취재팀은 마당로(馬當路) 보경리(寶慶里)의 임정청사부터 찾아갔다.전체면적 16평.공간은 비좁지만 당시 집무실이 복원되어 있다.주중(駐中) 한국대사관 인터넷 홈페이지 ‘중국내 독립운동사적 안내’를 보면 98년 한해동안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무려 8만여명이라고 한다.대부분 이곳이 첫 임정청사라고 생각하고독립운동의 성지(聖地)처럼 여기는 듯하다.그러나 이곳은 임정이 여덟번째로 자리잡아,1926년부터 1932년까지 머문 장소이다. 임정청사에서 5분쯤 걸어 옛 흥륭다원(興隆茶園)을 찾아갔다.윤봉길 의사가 김구 주석과 의거를 밀의한 장소였다.건물은 그대로인 듯하고 ‘상청(常靑)식품’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헐리지 않고 70년이지나도록 남아 있는 게 고마워 취재팀은 그 집에서 생수를 사 마셨다. 차를 타고 윤봉길 의사의 열혈이 서린 홍구공원(현재의 노신공원)을 항해 달렸다.임정은 1919년 4월 13일 조직된 이후 모든 항일세력을결집하지 못했다.김구 주석은 임정의 침체를 극복하고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암살과 폭파 전문의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이 조직의 첫 성공이 이봉창 의사의 동경 사쿠라다몬(瓔田門) 의거였다.일왕의 마차에 폭탄이 미치지 못해 근위병들만 죽고 말았지만 적에게준 충격은 컸다. 다음 의거의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였다.고향의 아내에게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장부가 집을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상해로 망명한 윤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일제가 전승기념행사겸 일왕의 생일축하 행사를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구 주석의 명을 받고 의거를 결심하였다.1932년 4월 29일 11시40분,행사장의 전원 묵도시간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져 상해 점령 일군 총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 등 침략의 원흉들을 폭살했다. 1개 군단이 한달동안 저항하고도 상해를 일본군에 빼앗겨 치욕감에빠져있던 중국인들은 일제히 환호를 올렸다.중국군 총사령관 장개석은 “중국의 백만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하였다”고 극찬했다.중국인들은 때로 일제의 눈치를 보며 비협조적이었고 만보산사건 이후 한인들에게 악감정을 가졌으나 이 때부터 한인 애국지사들을 동지의 정으로 포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임정은 침체국면을벗어나 강력한 투쟁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교통체증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한 뒤에 노신공원에 도착했다.윤 의사의 의거현장에는 중국 근대사상가인 노신의 동상이 드넓은 잔디광장을 바라보며 앉아있다.기록을 보면 동상자리가 단상,그리고 그 앞잔디밭이 시작되는 곳이 윤 의사가 물병폭탄을 던진 곳이다.의거현장에서 가까운 언덕에는 윤 의사의 충혼을 기려 1994년에 세운 ‘매정(梅亭)’이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그곳에서 묵념하고 있는 한국관광객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경남 창원에서 온 교사들이었다.진영고교 성정수 교사(40)는 “자랑스런 항일전쟁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며화단에 핀 상사화(想思花)를 바라보았다.윤의사의 단심(丹心)을 상징하는 걸까.석양을 받아 상사화는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윤의사의거 이후 악에 바친 일제는 광란하듯 임정인사들을 쫓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은 60만원의 현상금이 붙은채 아슬아슬하게 피신했고,임정은 이후 여러 곳을 이동해야 했다. 취재팀은 상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김구 선생의 피신처였던 가흥으로 향했다.중국이 독일 폭스바겐사(社)와 합작생산한 산타나 승용차는 항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질풍처럼 내달렸다.장강(長江)으로 통하는 운하의 수로가 띠를 두르듯 뻗어있고 이따금 물소들이보이는 비옥한 평야가 스쳐 지나갔다.가흥이 호수를 낀 조용한 농촌일 것이라고 짐작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6차선이 넘는 큰길이 뻗어가고 깨끗한 신축건물이 임립하고 있었다. 김 주석은 전 강소성장(江蘇省長) 저보성의 목숨을 건 비호 아래 그의 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이 반 양식으로 지은 호반별장에 은신했다. 낮에는 뒷문으로 나가 여자 뱃사공 주애보(周愛寶)가 젓는 거룻배를타고 남호(南湖)로 나가 거미줄같은 운하망을 타고 오르내리며 피해다녔고 밤이면 별장에 빨래가 널린 안전신호를 보고 들어가 잠을 잤다.배를 타고 남경까지 간 적도 있었다.김 주석이 은신했던 매만가(梅灣街) 76호 별장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남호를 동남쪽에 등지고 앉았는데 호수 쪽으로 큰 들창이 나있고 뒷문이 만들어져 있다. 차를 돌려 남호 선착장 유원지로 가보았다.1935년 10월,15명의 임정 지도자들이 유람선을 타고 비밀의정원 회의를 열었던 남호는 그리깨끗하지는 않았지만 풍광은 아름다웠다.바람에 밀려오는 물비린내를 맡으며 캔맥주를 사 마시는데 ‘중국혁명의 요람’이라 쓴 안내판이 보였다.1921년 모택동이상해에서 공산당 창당대회를 열려다가 정보가 새 나가자 이곳 남호에서 유람선을 빌어 대회를 마쳤다는 기록이다. 상해로 돌아온 취재팀은 황포탄(黃浦灘) 의거현장을 찾아갔다.황포탄은 수천리를 흘러온 양자강이 황해로 빠져나가는 하류로 바다나 다름이 없다.1922년 3월,의열단원들은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저격하였다.필리핀에서 오는 기선에서 내리는 순간을 노렸다.명사수인 오성륜(吳成崙)이 권총을 발사했으나 그 자가 갑자기몸을 숙이는 바람에 뒤따라 내리던 영국인 여자가 맞았다.이어 김익상(金益相)이 또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이종암(李鐘岩)도 폭탄을던졌지만 다나카는 마차를 타고 피신했다.이종암은 현장탈출에 성공했으나 김익상과 오성륜은 체포당했다.김익상은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의 주인공.의거에 성공하고 수십 개의 포위망을 뚫어 중국으로 탈출해온지 반 년만에 다시 나섰으나 이번엔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혀 20년을 복역했다. 의열단원들이 수천 명의 일본군과 인파들 속을 달리며 용맹을 떨친의거현장은 지금의외탄(外灘)공원의 북단이다.상해에서 황포탄 풍광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중국이 자랑하는 포동(浦洞)개발지구가 건너다보인다.거기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육삼정(六三亭) 의거현장으로 갔다.무정부주의 계열의 비밀결사 남화(南華) 한인청년연맹의 백정기·이강훈·원심창·이규창 등은 여기서 아리요시(有吉) 주중 일본공사를 폭살하려다가 사전 누설되어 모두 옥에 갇혔다.당시 유명했던 육삼정은 헐리고 그 자리에 방향(芳香)·영안(永安)·부옹(富翁)등주점들이 들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상해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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