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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독도주권 침해] 계산된 도발… ‘조용한 외교’ 더이상 없다

    [日 독도주권 침해] 계산된 도발… ‘조용한 외교’ 더이상 없다

    정부가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에 대해 강력 항의하고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했으나 일본으로부터는, 적어도 한동안은 무대응이 예상된다.“늘 그래왔듯, 들끓는 한국의 여론이 식기를 기다릴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정부의 대응 방식이 더욱 치밀하고 끈질겨야 하는 이유이다. 독도 문제는 이번 일로 긴장도가 한단계 더 높아졌다. 긴장도는 김영삼 정부 시절 독도에 접안시설을 설치한 이후 대폭 상승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 각국에 ‘일본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국제 분쟁화를 시도했다. 실제로 이 일은 세계가 독도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부로서는 이번 일로 훨씬 높은 난이도의 ‘상황 관리’ 능력이 필요해졌다. 일본은 향후 이전보다 훨씬 자주 독도를 분쟁화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를 마련했다. 예컨대 시마네현이 매년 독도의 날 행사를 열 때마다 우리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선거 등을 앞두고 극우세력이나 정치인들이 행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정부가 새 한·일관계 원칙 등을 거론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날 외교부 송민순 차관보가 우라베 주한 일본대사 대리를 불러 한 항의에는 심각성에 대한 정부 인식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우리 국민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조치에서 비롯됐으며, 시마네현의 이번 조치도 이런 시각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국민의 시각’을 빌려 표현했지만,“국민들의 인식을 정부도 엄숙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정부는 이번 일로 일본 정부에 대단한 불쾌감을 갖고 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지자체가 한 일로 중앙정부가 간여하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일본의 대외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웃나라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면 당연히 조치를 취했어야 옳은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규형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 “앞으로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일측에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는,‘험악한’ 표현이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정부가 준비중인 대일 성명에는 기존의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위해 가급적 과거사 문제는 외교 쟁점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선회, 일본측의 주권 침해와 영토권 침해에 대해서는 전면적 외교전도 불가피하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대응은 다소 ‘차분’하고 단계적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는 당장 북핵 6자회담에서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는 일부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경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실질적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독도 관련 부처나 유관기관들이 1차로 내놓은 대응책에는 이같은 현실적 한계가 반영됐다. 국회는 우선 ‘독도수호·일 역사왜곡 대책특위’를 구성했다. 한나라당이 예산 182억원 배정을 약속하며 내놓은 7가지 대책과 여당 차원의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새 한·일관계 원칙 수립을 마련 중이고 문화재청은 독도 관광을 전면 허용했다. 경북도 정도가 이날 시마네현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등 강경책을 시행했으며 독도 유인화, 독도해양과학연구기지 설치 등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日 독도주권 침해] ‘독도수호·역사왜곡 대책특위’ 가동

    [日 독도주권 침해] ‘독도수호·역사왜곡 대책특위’ 가동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16일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여야는 비난 논평을 내고 ‘독도 수호·일본 역사왜곡 대책특위’ 구성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다.‘공동의 적’ 앞에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오전 회동,‘독도수호·일본 역사왜곡 대책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열린우리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고, 한나라당 의원 117명은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오히려 한국이 불법점거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를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명백한 침략적 저의로 간주한다.”며 “당정은 국토 수호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도 “시마네현의 조례 확정은 전쟁도발”이라고 규정한 뒤 “독도의 국권을 확인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경비대원들을 격려하라.”고 촉구했다. 여야 의원들은 장단기 독도 대책을 앞다퉈 발표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울릉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던 독도의용수비대를 지원·예우하기 위해 ▲기념사업회 설립 ▲묘역 조성 뒤 국립묘지 안장 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과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소속 의원들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한·일 우정의 해’관련 공식행사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예결위원 20명은 ▲독도역사포켓책자 1000만부 발간 ▲독도영구거주민 모집 ▲해군 독도함 건조 등 ‘독도 문제 종합대책’ 7대 과제를 발표하고 관련 예산 182억원을 새해 예산안에 반영하도록 정부에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 독도 영유권 공고화사업 예산 증액과 관련 “외교통상부와 협의해 필요하다면 증액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정의화 의원은 “독도를 완전히 개방하자.”고 촉구한 뒤 구체적 방안으로 ▲울릉도·독도 패키지 관광상품 개발 ▲외교통상부내 독도 전담과 신설 ▲대마도(쓰시마섬) 여행 잠정 중단 등을 제안했다. 같은 당 대구·경북 의원 20명은 오찬 모임에서 조례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철회 등을 담은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종수 문소영기자 vielee@seoul.co.kr
  • 한·일교원 ‘교과서 왜곡’ 공동 대응

    일본 히로시마(廣島)현 교직원조합과 전교조 대구시지부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 채택 움직임에 공동 대응키로 했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자매 교직원 조합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과 연대, 후쇼사(扶桑社)역사교과서 검정 및 채택 저지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일본의 극우 보수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 날조한 교과서를 만들고 이를 채택하려는 데 맞서 ‘한·일 역사교과서 부교재 제작 사업’을 벌이고 있는 두 단체는 오는 19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대응 심포지엄(부제 한일역사공통인식만들기)’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두 단체는 새달 18일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문부과학성을 방문, 후쇼사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내 각 교육위원회가 이 책을 교과서로 채택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키로 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교류 끊어라” 전국 분노의 함성

    “교류 끊어라” 전국 분노의 함성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16일 전국 곳곳에서 반일 시위가 잇따랐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조례안 파기와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정부에 적절한 대응책을 주문했다. ●일본대사관 앞 무기한 촛불시위 통일연대와 전국민중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일반 시민 등 70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갖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극우 국수주의와 군국주의의 부활로, 우리 민족과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일본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17일부터는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광화문빌딩 앞에서 무기한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황금주(86)·길원옥(78)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참석했다. 통일연대 한상렬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영순 국회의원 등 대표자 6명은 일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대사관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사관 정문에서 서한을 던져 넣기도 했다. 앞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독도수호대는 이날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마네현의 결정은 두고두고 아시아 각국의 지탄을 받는 올가미가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 사무국장은 “독도 주권수호를 위한 공개적·전면적 외교가 시급하다.”면서 “지난 1900년 독도가 대한제국의 고유 영토임을 재확인하는 칙령을 공포한 10월25일을 ‘독도의 날’로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일반 시민 3∼4명은 1인시위를 벌였다. 북핵저지시민연대와 활빈단 등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표지를 붙인 종이상자 6개를 대사관쪽으로 던지고 3개를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고모(45)씨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경찰의 제지로 별다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는 인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든 1999년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찰은 일본대사관과 대사관저, 일본문화원 등 관련 시설에 8개 중대를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진보·보수 떠나 성토 목소리 시민·사회단체는 진보·보수를 떠나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양미강 운영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책임회피일 뿐”이라면서 “정부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되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대화단절 등 감정 대응보다는 적극적인 대화와 교류로 일본 국민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협의회는 성명에서 “조례 제정과 교과서 왜곡 등은 일련의 도발 행위이자 선전포고”라면서 “정부는 미봉책이 아닌, 과거사 진실규명을 포함한 철저한 종합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도 성명을 내고 “주권 침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재향군인회도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난하며 “독도에 국군을 상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광복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잇따라 규탄 성명을 냈다. ●경북도·진주시, 교류중단 선언 경북도는 이날 시마네현과 자매결연을 철회하고 단교를 선언했다. 경북도는 성명에서 “1989년 자매결연한 이후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수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신뢰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라고 규탄했다. 도의회는 궐기대회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고 일장기를 불태웠다. 도의회는 “군국주의 망령에서 비롯된 침략 근성을 보여준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울릉군청 직원 150여명도 군청 광장에서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일본의 공식 사죄와 조례 파기를 촉구했다. 경남 진주시도 우호교류 협정을 맺은 시마네현 마쓰에시와 교류를 전면 중단키로 하고, 이를 통보했다. 시는 오는 20일 마쓰에시에서 열리는 여자마라톤대회의 공무원 파견과 7∼8월 공무원 교환근무 계획을 취소키로 했다. 이효용 박지윤·진주 이정규·울릉 김상화기자 utility@seoul.co.kr
  •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

    서울신문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16일 국제법 전문가인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로 부터 조례의 부당성,우리 영토인 독도의 법적 근거,향후 우리의 대응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영토 문제는 우리나 일본이나 내부에 서 쉽게 하나로 의견이 통일된다.그 러다보니 학술적으로는 국민 감정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먼저 시마네현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 말해보자.시마네현 영토편입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지역 차 원에서 할 것이 아니다.시마네현 관할에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정부의 영토이어야 하는 것이다.1905년 1월 28일 일본 중앙정부에서 독도를 영토에 편입했다.영토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이 냐.이전에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었으니까 영토를 편입하는 것 아니겠느냐.즉 당시 1월 28일 영토 편입은 이전까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한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전제가 이미 모순이었고,때문에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역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예전에 일본의 한 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이 당시 현대국제법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길래 “그럼 일본은 독도 말고 다른 섬은 없느냐.다른 섬은 왜 당시 영토편입을 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아무 대답도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럼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를 따져보자.일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꼭 한국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먼저 최소한 제3국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는 영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그래서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다음은 한국의 영토인 근거에 대해 따져보자.먼저 고문서상의 문제다.서 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적혀 있다.거기에는 양국 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이다.일본은 1849년 프랑스 선박에 의해서 독도가 발견됐을 때 ‘량꿔(liancourt·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즉 당시 독도가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으며 먼저 선점하게 되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하지만 앞서 말했던 고지도나 일본 문서에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즉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를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가 되고 이는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인데 일본이 편입시켰다면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했다는 게 된다.그래서 국제법 위반이다.그럴 때 일본 측이 한국 땅인 줄 몰랐다고 나오는데 우리가 줄기차게 다녔고 지도에도 나왔으니 몰랐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시마네현 영토에 관한 문제를 따져보자.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어업을 가려한다고 하자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다음에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이는 일본에서 맨 처음으로 유권해석한 것이다.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따져봐야 할 문제가 국가가 변할 때는 영토가 같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발해가 우리 영토였지만 승계를 못 받아서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것과 같다.하지만 독도는 고려 를 거쳐서 세종실록이라든지 연산군 왕조실록들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울릉도와 우산이 다같이 우리 영토로서 승계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영토로서 증거력을 가지고 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영토 문제 다루는 비변사에도 기록이 있다.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 조선왕조에는 계속 승계되어 왔다. -일본이 문제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1430년 세종 때부터 우리나라가 300년정도 동안 공도정책을 썼던 것이다.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일부 섬이 조세 면탈자,병역기피자들이 가서 살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 이 되기도 해서 아예 그 섬에 사람 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그래서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비워뒀다.당시에는 변방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지대였기 때문이다.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거기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보고선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그러면서 다시 우리 주민들도 많이 들어갔다.우리가 비워 두는 사이에 왜구들이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가고 했었다.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하고 직접 적극적인 관할을 하기로 한다.그래서 적극적으로 관할하려면 도감을 두는 수준보다 격상시켜서 1900년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이 관할하지 않고 군수를 두겠다고 한다.울진군과 격상시켜서 독립된 군으로 만든다.이때 독도인 죽도를 석도로 표현한다.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데 이는 터무니없다.공도정책이라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자체가 바로 통치권 행사의 증거다. -또 고종 황제가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이니 측량을 하자며 1898년 양지아문을 만든다.서양 지도 전문가를 불러서 지도 전문가 30명을 양성한 뒤 대한여지도와 대한전도를 만든다.1899년 나왔다.그 지도에 울릉도,우산 이렇게 섬이름까지 넣어서 조선 영역을 표시했다.우리 관에서 만든 영토 지도다.고종 황제가 직접 관할하려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래서 우리의 땅을 법령상에 표기한 것이다. -1953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망뀌에 및 에끄레 후(Minquiers and Ecrehos) 영토분쟁이 있었다.당시 영국의 영토로 결정됐는데 서로의 주장을 가른 근거는 국가가 영토로서 그 주권을 행사한 직접 증거로 입법을 했다든지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든지 영토지도를 가지고 있다든지 등의 증거였다.우리에겐 대한전도가 대표적인 영토지도였으며,칙령 41호가 입법조치이다.군수 를 파견한 것이 행정조치이다.즉 우리는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측이 자꾸만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일본은 1905년 영토 편입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영토가 아니기때문에 편입한 것이므로 근거가 되지 못하고 고기잡으러 남의 땅에 간 것이 자기 네 땅이라는 증거도 아니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일본 국가 기록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막부 시절 다카하시,이 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포함된 것이 없다.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됐다.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를 볼 때는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오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 례로 결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 조치를 합법조치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시마네현 문제는 국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일본은 문서 자료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 역사 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 리가 불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국제 사법재판소 가도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리고 시비건다고 다 국제사법 재판소 가지 않는다.우리는 국제사법 재판소 갈 일이 없다.우리는 100% 우리 것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일본이 센카쿠열도 등 은 죽어도 자기들 것이니까 국제사법재판소 가자고 말하지 않지 않느냐.일본이 독도 문제에선 유독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려고 의도하는 것은 결국 독도 문제에선 우리가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 하는 것이다. -2차대전 끝나고 나서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건 문제가 없다.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물론 지금 정세를 이해는 하지만 이번에 국회에서 너무 감성적으로 ‘독 도 이용 특별법’ 만든다고 하던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오면 되는 것 아니냐.변방 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때문에 못갈 수도 있지만 제주도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하겠느냐.독도를 특별취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국민정서는 당연히 이해한다.하 지만 이번에 외교부에서도 반기문 장 관이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고 주권 문제니까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경하게 천명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야한다. -일본이 자꾸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분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전략에 불과하다.일본 측의 한 마디만 나오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가서 화형식하고 하면 NHK 등에서 몇 시간식 방영해서 일본 내에서 이용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적으로 감정이 격앙되고 있는데 물론 그 감정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국제사법 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 ‘자원富國’ 콩고의 16일과 17일

    케이블·위성채널 아리랑TV는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18일 오후 9시 특별다큐멘터리 ‘안녕!콩고’를 방영한다. 콩고는 국민소득 600달러의 빈국이지만 아프리카 최고의 자원부국이다. 엄청난 규모의 금과 다이아몬드, 구리, 석유 등이 매장된 축복받은 땅을 갖고 있으며, 콩고강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막대한 수력발전 용량까지 보유한 무한한 잠재력의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자원을 탐낸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노린 벨기에의 식민통치 이후 경제개발 정책을 펴왔지만 서구 열강의 개입으로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려 왔다. 1997년 로랑 카빌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름을 자이르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꿨고, 이후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 체제에서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의 정착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방송은 과거 상처를 치유하며 경제개발에 힘쓰고 있는 콩고의 현재 모습을 비춘다.1992년 선교활동을 하러 들어가 교육사업에 힘쓰고 있는 김경식 목사의 성공담도 들려준다. 경제뿐 아니라 콩고만의 고유한 문화도 조명한다. 콩고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리듬과 춤이 있는 곳으로,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아프리카 음악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과 밀착된 콩고 음악은 다른 지역의 전통문화와 달리 계승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실제로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 음악은 서구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콩고의 크리스토프 머준구 문화부 장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음악산업의 인프라를 구축, 세계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는 콩고 음악인의 활동도 알아본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일 독도 파고] 與野 “독도특위 구성…中·比의회와 연대”

    대북, 대미 문제에 있어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온 여야가 일본의 망동(妄動)에 대해서는 한몸처럼 손발을 맞추고 있다. 격앙된 국민감정을 의식한 듯,15일에도 대일 비판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는 이날 신임 인사차 당사를 방문한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와 일본 역사왜곡 및 독도 문제에 공동 대처키 위해 국회에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장은 “지금까지는 (일본 행위에 대해)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해 왔으나 국회가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입사시험에 국사시험 비중 높여야” 강 원내대표도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입사시험이나 승진을 할 때 국사시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상북도가 일본과 자매결연을 끊었는데 울릉군 의회도 의결하고 경상북도 의회도 의결해서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매주 의원 2명씩 독도를 릴레이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도개발특별법 새달 처리키로 한나라당은 특히 독도를 종합개발해 유인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독도보전에 관한 특별법을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적극 처리키로 했다. 여야의원 100명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과 ‘과거사 청산을 위한 의원모임’은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 제정 조례안을 처리하는 즉시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17일 독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달말에는 일본 문부과학성을 방문, 역사왜곡에 항의할 계획이다. 또 중국과 필리핀 등 일본 침략에 피해를 당한 아시아 국가 의원들과의 국제적 연대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독도·교과서 왜곡] ‘日강력대응’ 손잡은 정치권

    독도 지키기와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 정치권이 ‘봉기’했다. 한·일의원연맹은 일본에 항의단을 파견했고 여야 의원 5명은 독도를 전격적으로 방문키로 했다. 오는 16일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또 대책 특위를 구성하는 등 ‘공동의 적’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모처럼 손을 잡았다. 한·일의원연맹(회장 문희상)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여야 의원 5명(홍재형 변재일 권철현 이성권 이낙연)으로 구성된 항의단을 14일 일본에 파견했다. 회장인 문 의원은 “의원연맹은 그동안 과거 한·일 양국간 분쟁에 가급적 침묵해 왔지만 독도문제는 주권의 문제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면서 항의단 파견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번 사태는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아픈 역사로 고통을 겪은 한국인의 가슴에 또다시 깊은 상처를 입힌 역사적 퇴행”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항의단은 1박2일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비롯해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 등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을 만난다. 특히 16일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 조례안 통과 저지를 위해 힘을 쏟을 작정이다. 단장인 홍재형 의원은 “항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권철현 의원도 “통과 자체가 대한민국 주권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자 사실상의 침략행위로, 이후 사태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와는 별도로 열린우리당 강창일·김태홍·유기홍, 한나라당 고진화,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 등 5명이 오는 17일 독도를 방문한다. 강 의원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규탄하는 동시에 ‘독도의 날’에 대한 항의의 뜻을 국내외에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 직접 독도로 찾아가겠다.”면서 “현지에서 항의 성명을 낭독하고,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는 한편, 독도수비대원도 격려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열린우리당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김태홍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 특별위원회’를 당내에 구성, 가동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도 국회에 ‘대한민국 주권지키기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일본교과서 왜곡 파장] 점입가경 ‘우익 국수주의’

    일본의 ‘극우 국수주의’ 움직임이 점입가경이다. 특히 올 들어 한·일관계를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언행이 집중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 논란으로부터 일본 해경 해상초계기가 독도를 근접 비행한 사건 등으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11일에는 일본내 대표적 극우 보수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이 검정신청한 중등교과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자위대의 외국 군대파견과 평화헌법 개정, 야스쿠니 신사참배 정당화 등 일본의 국수주의 내지 극우보수화 흐름은 국·내외를 관통하고 있는 추세다. ●日정부의 ‘공격적 독도정책’ 독도 문제만 해도 일본은 지난 1995년부터 정부 차원의 정책적 변화가 감지된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본격화하고 나선 것이다. 김영구 전 국제법학회장은 “일본은 1965년부터 30년 동안 ‘200해리 보전수역’선포 당시에 독도를 보류할 정도로 ‘겸손’정책을 폈지만 1995년 이후부터는 영토 관할권을 의식해 공격적인 독도 정책을 주장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11일 공개된 ‘새역모’교과서 내용분석 결과를 보면 2001년 후소샤 교과서의 ‘왜곡’ 중심에서 자국의 침략과 만행 등 잘못을 숨기고 은폐, 자국의 피해만 강조하는 교과서로 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일본 정부는 교과서 검정 기준을 지난 2001년에 눈에 거슬리는 것을 통과시키지 않는 검정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검정으로 바꾸었다.”면서 “2001년 채택률 0.039%를 만회하고 한국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체제나 서술 등에서 교묘해져 정부 차원의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새역모’ 주된 칼날은 中 동북공정 윤의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은 “새역모 교과서의 주된 칼날은 중국을 향해 있다.”면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의도가 맞물려 한·중·일 어느 쪽도 편이나 적이 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이 계속되면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일본 내 이같은 움직임은 단지 극우세력뿐만 아니라 정부내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되는 흐름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일민족문제학회 정혜경 박사는 “북한과 일본 사이에 논란이 됐던 유골 문제도 일본 정부가 사전에 알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고의성이 농후해 보인다.”면서 “특히 ‘전후 60년’이라는 시기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본내 ‘군국주의’부활을 노리는 측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일본교과서 왜곡 파장] 개악된 후소샤 교과서

    구체적 서술만 단편적으로 따지자면 2005년판 후소샤 교과서는 4년 전에 비해 개선된 곳도 있고 악화된 곳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찬찬히 뜯어보면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나아졌다고 볼 만한 부분은 고대사 왜곡이 다소 줄었고 근·현대사에서 일부분이 빠졌다는 정도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전향적인 서술의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분량을 조정하다 보니 그냥 줄거나 빠진 것에 불과한 측면이 크다. 오히려 일제 침략과 관련된 근현대사 부분은 근거자료가 보강되고 분량이 늘어나는 등 더 악화됐다. 부분적인 첨삭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제국주의 군국주의 일본의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기름기와 군살’만 뺐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2005년판 후소샤 교과서 내용이 알려지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2002년 4월 일본 문부성이 개정한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10년에 한번씩 개정되는 학습지도요령은 교과서 검정의 기준으로 쓰인다.2002년 개정 때는 ‘국민으로서의 자각’과 ‘역사에 대한 애정’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문구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001년 후소샤 교과서 파문이 일어난 뒤 2002년에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 추가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상 문부성이 일본우익진영의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을 수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전체적인 역사교과서 편제의 변화도 의미심장하다. 주입식·암기식 공부를 지양하고 역사에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하라는 게 학습지도요령의 요구다. 이는 고등학교·대학교 때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으니 중학교 수준에서는 현재의 일본과 관련있는 사항을 위주로 서술하라는 의미다. 이 요구는 ▲대항목 소항목 통폐합을 통한 전체적인 역사교과서 분량의 축소 ▲고대사 부분 축소 및 근현대사 부분 강화 등으로 고스란히 반영됐다. 독도문제가 언급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2005년판 후소샤교과서에 어떻게 침투했는지는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분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반도는 대륙에서 일본으로 뻗어있는 팔뚝 같아서 위협적이라는 1903년 당시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의 ‘팔뚝론’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것은 조선 강제병합과 대동아전쟁은 어쩔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덕분에 근대화됐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는 꼭꼭 숨겨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4월초 검정결과 공개 8월까지 학교별 채택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교과서 검정은 출판사측이 ‘검정신청본’을 제출하면 문부성이 해당 도서가 교과서로 적합한지 여부를 1차적으로 심의한 뒤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의 자문을 거쳐 합격여부를 최종 심의한다.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는 문부성 조사관의 사전 조사결과를 기초로 심사하며 심의회가 수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결정을 보류한 채 출판사에 ‘검정의견’을 보내 수정토록 한다. 이어 각 출판사의 수정본에 대해 문부성이 다시 검정조사심의회의 자문을 받아 합격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문부성은 검정계획을 공고할 때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기준을 관보에 미리 발표하지만 내용은 개략적이며 실제 지도는 검정과정에서 이뤄진다. 현행 검정기준에서는 특히 인근 아시아 제국간 현대사 취급시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의 견지에서 배려하라는 근린제국조항이 있다. 교과서 채택권한은 중학교의 경우 국립과 사립은 학교장, 공립은 지역별 교육위원회다. 고등학교는 모두 학교장이 채택권한을 갖고 있다. 이달말이나 4월초 검정결과가 공개되며,5월에는 견본책이 발행된다.6월 교과서 전시회가 열리는 동시에 채택을 위한 교과서조사연구가 시작된다.7월에도 교과서조사연구가 계속된 뒤 같은 달 말 채택이 시작되며 8월 모든 학교의 채택이 종료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후소샤의 왜곡 역사교과서 제작을 주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은 1997년 도쿄대 후지오카 노부카쓰 교수와 전기통신대학 니시오 간지 교수,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등이 중심이 돼 만든 우익단체다. 자유사관에 입각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 중심역할을 한 단체로 결성전부터 일본의 독자적 관점에서의 역사기술을 주장했다. 후지오카 등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에 의해 진행된 일본의 전후개혁을 ‘자학사관’으로 규정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등 과거의 일본 역사를 정당화하는데 몰두하며 좌익적 시각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건전한 민족주의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밝은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자학사관을 제거한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했고, 그것이 일본 민족의 우월성을 왜곡, 강조한 후소샤 교과서다. 새역모는 집권 자민당 내 우익 의원 모임이나 기업, 우익 언론 등 일본내 우파의 지원을 받고 있다. taein@seoul.co.kr
  • [사설] 日정부 교과서왜곡 책임지고 막아라

    독도 및 역사왜곡과 관련한 일본의 움직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잇단 도발에 이어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 극우단체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식민통치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판 교과서를 만들어 문부성에 검정을 요청했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고, 국가적으로 우경화를 추구하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준에 이르렀다. 새역모 교과서는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는 기술을 하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조선을 구했다고 강변하며,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싣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는 다음달 초 나올 예정이지만 올바르게 고쳐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지난 2001년에도 새역모 교과서 파문으로 주일 한국대사가 소환되는 등 한·일 관계가 경색됐었다. 이번에는 독도 문제까지 겹쳐 상황은 더욱 나쁘다. 수교 후 40년만에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민간 출판사가 주도하는 교과서 개정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도 지방정부의 일로서 철회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성의의 문제라고 본다.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기준에는 근린 고려조항이 있다. 규정을 떠나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일본이 그래선 안된다. 새역모의 교과서 왜곡과 시마네현의 망동은 중앙정부가 나서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일본의 자숙이 없으면 주일대사 소환, 문화교류 제한 등 추가조치가 예상된다. 한·일 우정의 해 행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11월 부산 APEC정상회의에 고이즈미 총리가 참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벌써 커지고 있다. 북핵, 한류 열풍, 경협에 차질을 빚더라도 일본을 혼내야 한다는 한국민의 여론이 비등점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문화마당] 시인과 제국주의/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는 침략주의적 경향을 일컫는 용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폭력을 가장 우선시한다. 이 제국주의의 폭력에 시인 윤동주가 희생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1945.2.16)한 지 올해로 60년이 된다. 시인은 옥중에서 잔혹한 생체실험을 당했고, 이 사실에 대한 기록과 함께 옥중에서 쓴 시작품을 담은 노트를 남겼는데, 일제는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노트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그토록 잔혹한 일을 저지른 일본은,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침략적 성향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모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본고사 문제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중 부랑노동자 두 명과 술집 여자 한 명이 헤어지는 끝부분을 제시하고, 이들이 삼년 뒤 다시 만나는 장면을 소설로 쓰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런데 답안을 보니, 술집여자가 성폭행을 당해 상대방을 살해해서 감옥에 갔다든가, 부랑노동자가 조직 폭력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든가 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살인, 폭력,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빠진 답안은 극히 드물었다.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는 데 아버지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폭력적이면 아이도 그렇게 되고, 아버지가 순결한 심성의 소유자이면 아이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라나는 아이가 어떤 문화적 성향을 띠는가는 아버지가 만들어가고 즐기는 문화의 색깔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 세대의 문화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학생들의 답안은 아버지가 만든 문화가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학생들의 답안처럼 폭력, 살인, 성폭행, 불륜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운 아버지의 문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구촌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본의 대중문화가 아무런 제재 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문화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본문화 중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잔인하면서도 엽기적인 폭력을 앞세운 일본의 사무라이식 문화가 우리 문화를 강력하게 침탈해 들어 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그런 제국주의적 일본 문화의 마수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할 아버지들이 앞 다투어 그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입해서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어떤 아버지는 일본이야말로 우리의 구세주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퇴폐적이고 선정적이면서 폭력적인 일본문화를 숭배하고 선전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자라나는 세대가 침략적인 제국주의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과 같은 이가 될 것인지는 순전히 오늘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어떤 문화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폭력적인 일본문화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윤동주가 남겼을지도 모르는 옥중 노트를 돌려 받는 일은 이 땅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숙명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서정시인이 제국주의적 폭력에 희생되어 구천을 떠도는 일이 없도록, 현 단계 우리 문화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뼈아픈 반성이 요청된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 [사설] ‘일제지배가 축복’이라는 역사인식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 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는 매우 다행스럽다. 원망하기보다는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그는 당시 동북아의 정세상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지 않았으면 러시아에게 넘어갔을 것이므로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고 강변했다. 이어서, 그러므로 한국을 침략한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또 일제강점기에 한국 민족문화가 더 성장·발전했느니, 일본군위안부 문제 제기는 수준 이하라느니 억지 주장으로 일관했다. 우리는 한 정치학자의 넋나간 주장에 일일이 반론을 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궤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집안에 강도가 들어 가족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가산을 모두 날렸더라도, 목숨만은 살려주었기 때문에 강도가 고맙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 졸렬함과 반인륜성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양식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터이다. 우리는 다만 한 교수와 비슷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일정 부분 남아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친일청산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한 교수가 소속을 둔 자유시민연대와 고려대가 이번 발언 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의 주시하고자 한다. 자유시민연대에서는 청년회원들이 주축이 돼 그의 회원 자격 박탈을 요구하고 있다. 고려대도 오늘 임시 처장회의를 연다고 한다. 한 교수의 ‘소신’이 잘못이라면 엄중한 처리로써 사회에 답해야 할 것이다.
  • 美·中 인권전쟁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미국과 중국간의 ‘인권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28일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2004년 연례 인권보고서’에 맞서 중국은 3일 ‘2004년 미국 인권기록’을 발표키로 했다고 관영 신화사가 2일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인권보고서에서 중국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고 종합적으로 규정했다. 중국 내에서 성행하는 탈북여성 인신매매와 반체제 인사 탄압, 탈북자 강제북송 등 중국 당국의 비인도적인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 인권기록’을 통해 상세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미국의 ‘위선’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태세다. 주요 내용은 미국의 외국 침략과 수감자 학대 및 생명ㆍ자유ㆍ신체의 안전, 정치권리와 자유, 경제ㆍ사회ㆍ문화적 권리, 인종차별, 부녀와 아동상황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 등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올해로 다섯번째인 중국의 미국 인권침해 사례 발표는 미국의 인권외교에 대한 중국의 뿌리깊은 불신감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측은 미국이 인권을 앞세워 내정에 간섭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 장기적으로 미국의 인권외교 무력화를 위해 공세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인권보고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강력하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이 중국 인권의 부단한 발전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데 대해 중국은 강력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항의했다. 이어 “미국은 스스로 다른 나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되돌아 봐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또 중국 인권연구회 둥윈후(董云虎) 부회장은 “지난해 자행된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가 미국의 이중적 인권 잣대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미국의 인권 ‘거울’엔 왜 자신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느냐.”고 비아냥댔다. oilman@seoul.co.kr
  • [기고] 망언·망발과 역사전쟁/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3·1절을 앞두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외교관의 단순한 망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발표한 음모와 비슷한 충격적인 발언이다.‘한국 침략’을 ‘진출’로 바꾸고 종군 위안부, 대학살, 경제 수탈 등 일본의 침략 사실을 축소·삭제했던 2001년 일본 ‘신편 교과서 파동’에서 한걸음 더 나가,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자유주의 사관’과 국가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안팎곱사등이가 됐다. 중국은 한국 고대사의 시원인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 근·현대사를 날조해 한국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중국·일본이 도발한 역사 전쟁은 단순한 과거사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중·일 관계사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망언이 나올 때마다 항의나 하는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2005년은 을사국치 100년, 광복 60돌이 되는 해다. 중국·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앞서서 치욕과 영광이 겹쳐진 이 100년의 역사 정리는 민족의 새 진로 설정을 위해서도 서둘렀어야 할 과제다. 건국 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거사 정리와 한국사 체계화가 시도되긴 했으나 전통문화와 현대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 중심으로 접근, 혼란만 가중되고 중국·일본의 역사 전쟁 도전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한국 역사에 관한 의도적인 왜곡과 망언은 이제 극우 일본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한일본대사가 언론회관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틈새를 한국 정부·학자·지식인이 보여 주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을 수탈만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보자는 경제학자의 망언을 비롯하여 정신대에 관한 경제사학자의 망언, 고구려사는 중국동북아사라는 동양사학자의 망언, 일본의 작위까지 받은 구한말 고관대작과 일제 밀정의 후손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나서는 망언 등 망언이 만발하고 있다. 최근 경제사학계에는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한국 지배 침략기에 깔아 놓은 경제성장의 연장이라는 일본학자의 중진자본주의론이 무시못할 학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도 전에 일본 극우파 학자들의 식민지배 미화론에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일제 침략이후의 한·일 관계사에 관한 무지와 적절치 못한 발언까지 남발돼 참으로 딱한 형국이다. 1998년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에 앞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제 침략의 실체와 친일 세력의 죄악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나온 한국 대통령의 통큰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에서는 한국 침략사를 왜곡한 ‘신편교과서’가 정식 교재로 채택되었고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한 작태를 방조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정치인의 발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시혜론에 동조하는 친일 인사들의 증가다. 광복 후 한국 역대 정권의 문화 정책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일본·중국의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아줄 학술원·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 중앙연구원·독립기념관 등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27년전 국학 연구 총본산으로 출범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총리나 장관 등 여권 중진들의 퇴임 후 보직처로 전락했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도 한·일 역사 전쟁 논의에서 비켜서 있다. 국학 관련 중요 기관을 설립 목적보다 정치 목적으로 운영해온 파행 행정이 중국의 역사 전쟁 도발에 또 하나의 연구소를 서둘러 만드는 모순을 드러냈다.2005년 일본 교과서 검인정 작업을 둘러싸고 더욱 첨예화될 일본의 한국침략사 왜곡을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박석흥 대전대 문화사학과 겸임교수·명예논설위원
  • 용인 10월까지 3개구 신설

    오는 10월까지 용인시에 3개구가 신설된다. 시는 최근 현재 인구 64만명으로 지방자치법이 정한 인구 50만명 이상의 구 설치요건을 갖추고 있다. 또 대규모 택지개발로 2010년 인구가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3개구 설치를 위한 ‘일반구 및 행정동 설치 승인신청서’ 를 도에 제출했다.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거쳐 늦어도 오는 10월까지는 3개구가 설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는 23일 지명위원회를 열고 처인구(處仁區), 구흥구(駒興區), 수지구(水枝區) 등 3개의 일반구와 11개 신설동 명칭을 결정했다. 구 용인읍 지역을 비롯한 시의 동부지역인 처인구는 용인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옛 지명을 복원, 역사성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채택됐다. 처인구는 또 고려시대 몽골 침략 때 원정군인 몽골군 사령관을 살해한 처인성의 자주독립과 항전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포함됐다. 구흥구는 이 지역이 원래 용흥(龍興)이었는데 역참의 이름으로는 과하다는 당시 정승 하륜(河崙)의 지시에 따라 구흥으로 바꿨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지명 유래를 근거로 했다. 구흥구는 또 기흥과 구성의 읍 명칭에서 한자씩 채택한 의미도 담고 있다. 앞으로 구성지역과 기흥지역이 분구될 경우 기흥과 구성 명칭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수지구는 갑오경장 때 수진면(水眞面)과 지내면(枝內面)이 합쳐진 이름으로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고 해당지역 개발 당시부터 쓰이고 있어 쉽게 결정됐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3·1절에 맞춰 발간된 책들

    을사조약을 전후해 본격화한 일제 침략과정과 그동안 은폐축소됐던 승려들의 친일 행적,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일본의 실체 등을 다룬 책들이 눈에 띈다. 그중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펴냄)은 친일 및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일제 침탈의 과정을 소상히 기술한 책. 을사조약은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늑약(勒約)’이라는 일관된 사관을 갖고 있는 그는 1910년 한일합병이 아닌 1905년 을사늑약을 국권침탈의 원년으로 보고 그 전후에 일어났던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정을 그리고 있다.1만 9500원. 친일승려 108인(임혜봉 지음, 청년사 펴냄)은 은폐·축소되었던 친일 승려 108인의 행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31대 본사에서 말사 주지들까지, 불교 언론계와 학계, 중앙교무원과 총본산의 승려들까지 일제 강점기 초와 중일전쟁기, 태평양전쟁기로 나누어 시기마다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던 승려들의 친일 행적을 상세히 다뤘다.3만 8000원. 항상 가깝고도 먼 나라로 묘사되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 저력과 한계, 발전과 퇴행의 역사를 들춰낸 책 일본, 두 얼굴 이야기(이규배 지음, 학민사 펴냄)도 나왔다. 정확한 문헌근거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의 연원과 뿌리를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추적하고, 반일 또는 극일이라는 일방으로 흐르던 한·일 관계 설정을 통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또 1세기가 안 되는 세월에 내려진 두 나라간 애증의 뿌리를 어떻게 치유할지도 모색해 본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 지음

    2005년 을유년은 한민족에게 오욕과 환희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해다. 정확히 1세기 전인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본격화됐고,60년 전, 바로 전 을유년이었던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참혹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십년 만에 거대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경제강국이란 지위에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역사적 죄악을 희석하는 망언을 툭툭 던지며 주변국들에 파시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듯한 일본 파시즘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본 군부의 광기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졌을까.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 군국주의 태동 3·1절을 앞두고 일제 침탈과 파시즘, 을사조약, 친일문제 등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중 침략전쟁의 뿌리인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과 파시즘의 형성과정, 일본군 특유의 정신문화와 병리적 군사문화 등을 분석한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흥망사’(이창위 지음, 궁리 펴냄)를 중심으로 신구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1974년 일본 국민과 언론은 오노다 희로라는 육군 소위의 귀환에 열광했다. 그는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4년부터 30년간 필리핀 루손섬 정글에서 일본의 패망을 부인하며 유격전을 계속해온 인물이었다. 죽지 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 하나만을 믿고 산속에서 30년을 버틴 그의 눈동자는 광채가 번득였고, 총검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를 찾으려는 일본인들, 심지어는 가족의 모습까지 먼 발치에서 보았던 그는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았고, 결국 30년 전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직접 투항명령서를 전달받고서야 1974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무 완수를 위한 30년 전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뿐,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도리어 일본전쟁이 모두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듬해 브라질로 이주했다. ●진주만기습·가미카제등 상세히 소개 오노다 소위는 극단으로 치달았던 일본 군국주의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은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을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찾는다. 그 이전에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고는 있었지만, 러일전쟁 승리 후 지나친 자신감과 착각에 빠졌으며, 그후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조선병합,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통하여 군부 파쇼체제를 확립하고 대미 개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는 광신적 군부가 이끌고 우중이 지지한 일본을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주요 국면인 진주만 기습,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가미카제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자결을 앞둔 일본군 장교들은 일왕에 대한 충성과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비장함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국력의 확연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무모한 항전 뒤엔 군인의 정신자세와 행동규범을 규정한 ‘군인칙유’‘전진훈’이 있었다. 특히 일왕이 발한 군인칙유(軍人勅諭)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명분 하에, 태평양 전쟁 도발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가 공포한 전진훈(戰陳訓)은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아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전진훈은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 최고의 명예라고 강조함으로써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시켰고, 특히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제2장 제8조)는 조항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헛되이 죽어갔다. 생명을 경시하는 무모한 전술과 자결 각오 뒤엔 전진훈에서 강조한 도착적 군사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전진훈’ 통해 전체주의 사고 주입시켜 지은이는 책 말미에서 패전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치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현재의 일본은 패망한 일본의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이라고 본다. 그 밑그림이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다시 복원돼 서글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지은이는 소망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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