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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독도 특별담화] 특별담화 주요 내용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땅이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역사의 땅이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망루와 전선을 가설해 전쟁에 이용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이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우호관계는 바로 설 수 없다. 어떤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문화적인 교류도 이 벽을 녹이지는 못할 것이다. 배타적 수역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 해역의 해저지명을 부당하게 선점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일본이 동해해저 지명문제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도 더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결국 독도문제도 더 이상 조용한 대응으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우리에게 독도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이다. 이제 정부는 독도문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 독도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다.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사의 어두운 향수로부터 과감히 털고 일어서야 한다.
  • “대한매일은 항일 본산이었다”

    배설(베델),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심에 있는 이들 네 인물의 공통점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라는 점이다.‘사현’(四賢)으로 불리는 이들의 독립투쟁 업적은 꾸준히 조명받아왔지만 언론활동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사단법인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는 독립운동 선구자인 이들 사현의 항일언론투쟁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25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항일언론투사 베델’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한말 최대의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창간해 항일언론을 펼친 주역이 배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설은 신문을 통해 일본 침략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문사를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로 만들었으며, 항일 비밀단체 신민회는 신문사를 본거지로 삼았다.”고 밝혔다. 김창수 동국대 명예교수는 ‘백암 박은식의 사학과 민족운동’이란 주제발표에서 “박은식은 1898년 독립협회 기관지인 황성신문이 창간되자 주필에 취임해 언론을 통한 구국운동에 투신했다.”며 “이후에도 대한매일신보, 대한자강회월보 등에 국권회복을 위한 논설을 쓰고 한민족 실력배양을 목표로 하는 활동을 전개했다.”고 소개했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이란 주제발표를 했다.그는 “단재는 1905년 대한매일신보 주필 취임후부터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 가장 화려한 전성시대를 보냈다.”며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면서 역사를 논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고 말했다.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우강 양기탁의 항일 독립투쟁과 교훈’이란 주제발표에서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우강은 특히 민족운동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여야 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며 “이를 위해 이동녕, 안창호 선생 등과 뜻을 모아 신민회를 결성하면서 국외에 독립전쟁 기지 설립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엔 허동현 경희대 교수, 이용원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환 수원대 교수, 정영희 인하대 교수, 김삼웅 독립기념관장도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노대통령 독도 특별담화] 침략사 반성·유럽평화 상징물로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 문제를 거론할 때면 독일과 폴란드의 ‘오데르-나이세 국경’을 사례로 들곤 한다. 지난 18일 여야 지도부 만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도 문제를 풀기 위한 일본의 자성과 결단을 촉구하려는 의도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청와대는 25일 ‘일본의 독도 침탈사’와 ‘오데르-나이세 국경 획정 일지’를 내놓았다. 노 대통령이 특별담화에서 밝혔듯 일본의 독도 권리 주장은 과거 식민지 영토권의 주장이나 다름없다는 게 자료의 결론이다. 일본은 1903년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우선권과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우선권을 인정하려는 이른바 ‘만한(滿韓) 교환’제의가 거부당하자 러시아를 먼저 공격했다. 러·일 전쟁이다.2년 뒤 1905년 1월 일본은 독도의 전략적 가치를 절감, 시마네(島根)현에 독도를 멋대로 편입했다.대한제국을 비롯, 어느 나라와도 미리 협의나 통고가 없었다. 일본은 독도에다 망루를 만들고, 일본 마쓰에(松江) 사이에 해저전선을 놓기도 했다. 반면 독일이 통일 후 ‘오데르-나이세’ 선을 폴란드와의 국경으로 인정한 사실에 비쳐 일본의 과거사 청산 방식은 독일과 사뭇 다르다. 노 대통령이 자주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데르-나이세 국경 문제는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을 경계로 2차 대전 때 소련이 점령한 폴란드땅 18만㎢를 편입한 대신 독일땅 10만㎢를 폴란드에 넘겨준 데서 비롯됐다.통일 전 서독은 서방국가와 함께 강하게 반발하다 과거 침략사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이 국경을 인정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결국 1989년 독일은 통일 논의 과정에서 이 국경을 존중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해 양 독일은 2차 대전 전승국과의 회담에서 통일독일의 조건으로 현 국경선을 영구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오데르-나이세 선은 유럽평화와 안전 질서의 상징물이 됐다.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식민지화 과정에서 획득한 영토를 2차 대전 이후 돌려줬다가 다시 내놓으라고 한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마찰 극복 좋은관계로” 후진타오 이백 시구 인용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2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식 및 정상회담에서 중·미간의 공통이해와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 발전에 대한 강한 희망을 나타냈다. 환영사 답사에서 후 주석은 “2차대전당시 파시스트 침략에 함께 대항했다.”,“안보, 에너지, 환경보호 등 국제문제와 양자 관계 등 각 분야에서 두나라는 공통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두나라의 협력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며 협력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두 나라의 건설적인 협력관계의 전면적인 발전을 희망했다. 무역역조와 중국의 군비확장 등으로 커진 ‘중국위협론’을 무마하고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진력하는 모색이었다. 앞서 후 주석은 당(唐)나라 때 시인 이백(李白)의 시구와 미국 사상가 랠프 에머슨의 명언을 인용, 미국과의 관계 발전에 대한 강한 희망을 밝혔다.19일(현지시간) 첫 기착지인 시애틀에서 열린 워싱턴주와 시애틀시 기업계·우호단체들이 공동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후 주석은 “1200년 전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은 ‘창펑퍼랑후이유시, 즈괘윈판지창하이(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라고 썼다.”면서 이백의 ‘행로난(行路難)’ 3수 가운데 첫 수의 마지막 두 구절을 인용했다. 후 주석은 “이 구절은 어려움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미관계가 마찰과 이견도 있지만 이를 극복, 안정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또 “전진은 오늘의 활력이고 내일의 보장이다.”란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며 “인류 사회는 언제나 앞을 향해 발전해왔다. 앞을 바라봐야 정확한 방향을 찾을 수 있고 확고한 전진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긴장속 독도] “日, 역사 미래에 대한 도발” 판단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우리측 동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수로를 측량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상황 인식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일본의 EEZ 도발행위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이미 3차례 관련 회의를 열었지만 공개 회의는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조용한 외교’라는 지금까지의 대일 외교 기조를 변경, 일본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책을 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강하게 내비쳤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한 상황인 셈이다. 노 대통령의 시각은 크게 두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의 잇단 국수주의적 행태, 또다른 하나는 ‘독도 문제’라는 현안과 연관지었다.‘EEZ 경계를 둘러싼 한·일 양국간 분쟁’이 사태의 본질이자 전부라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이 EEZ 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에 대한 도발행위 등을 종합하면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정권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이자 미래 동북아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과거 앙금을 털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동북아 질서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에 대해 ‘책임있고 성의있는 실천’을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반응은 막무가내식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EEZ 문제를 접하면서 “역사의 문제이자 미래 안보전략의 문제”라면서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당장 ‘전면적인 대일외교 기조 수정’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지금의 문제는 일본이 먼저 작용하는 것이고 우리는 반작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일본의 조용하지 못한 조치에 우리도 조용히 대처할 수 없다.”고도 했다.‘기조 변화’가 이번 EEZ 문제에 한정되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또 EEZ 수로 탐사의 철회라는 일본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 점이다. 분명한 점은 송 안보정책실장이 밝혔듯 일본의 행동 여부에 따라 우리의 정책 기조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긴장속 독도] 여야 강경대응 한목소리

    여야 지도부는 18일 일본의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수로 측량 계획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 간담회에서 ‘정부의 단호한 대처’라는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여야의 목소리가 따로 없었다. 저녁 6시30분부터 8시20분까지 진행된 간담회의 분위기는 비장감이 돌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의례적인 의전인 건배사도 생략됐다. 노 대통령이 만찬 분위기에 대해 “일본이 직접 봤으면 일본도 생각을 달리하고 조용하게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간담회는 노 대통령에게는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가통치권자로서의 인식을 밝히는 한편 판단과 결정을 가다듬기에 앞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지도자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노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에게 “한국의 주권과 나아가 동북아 미래평화 질서를 어떻게 유지할지 기탄없는 의견을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 여야 지도부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조용한 외교’ 기조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노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전폭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행동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도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라면서 “지금 정부가 준비중인 대응 방향은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민노당 문성현 대표는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 참석자는 한국이 처한 상황을 골프에 비유,“공이 홀컵을 지나갈지라도 퍼팅을 해야 한다. 미흡하게 대응하기보다 단호하게 대응해 완전히 일본을 제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국민중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리가 (일본의 시도를)실력행사를 통해 막았을 경우, 그 뒤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사후 대책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간담회에 불참한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여당의 김 원내대표를 통해 “수렴된 의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의견을 미리 보냈다. 한편 노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에 대비하기 위한 외교전의 일환으로 ‘동북아 역사재단’을 설립, 일본의 침략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박홍기 구혜영기자 hkpark@seoul.co.kr
  • “독도 조용한 외교 재검토”

    “독도 조용한 외교 재검토”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은 18일 일본 정부의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내 수로 측량 계획과 관련,“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에 대한 강경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만찬 간담회를 갖고 “조용하게 대응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맞지 않는다.”며 지금껏 취해온 조용한 외교의 변화 기류를 분명히 했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만찬 간담회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조용한 외교를 유지할 사안이 아니다. 그 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송 실장은 “일본이 계획을 철회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것을 방지하는 실효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일본의 분쟁지역화 의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대응을 절제하는 조용한 외교를 수년간 해오는 동안 일본이 하나둘씩 공격적으로 상황을 변경하고 있다.”며 조용한 외교 기조에 대한 변경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에 대한 도발행위 등을 종합하면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정권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이자 미래 동북아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라면서 “즉 역사의 문제이자 미래 안보전략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19일 오전 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외교 안보 관계 장관 대책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반기문 외교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참석,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다시 공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독도 기점 사용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독도 조용한 외교 재검토한다”

    “독도 조용한 외교 재검토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은 18일 일본 정부의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내 수로 측량 계획과 관련,“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에 대한 강경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만찬 간담회를 갖고 “조용하게 대응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맞지 않는다.”며 지금껏 취해온 조용한 외교의 변화 기류를 분명히 했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만찬 간담회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조용한 외교를 유지할 사안이 아니다.그 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송 실장은 “일본이 계획을 철회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것을 방지하는 실효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일본의 분쟁지역화 의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대응을 절제하는 조용한 외교를 수년간 해오는 동안 일본이 하나둘씩 공격적으로 상황을 변경하고 있다.”며 조용한 외교 기조에 대한 변경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또 “지금은 EEZ 문제이지만 기점에 관한 것이 핵심이며,결국 독도문제에 부닥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역사교과서 문제,독도에 대한 도발행위 등을 종합하면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정권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이자 미래 동북아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라면서 “즉 역사의 문제이자 미래 안보전략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19일 오전 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외교 안보 관계 장관 대책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반기문 외교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참석,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다시 공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독도 기점 사용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사설] 日, 역사 왜곡도 모자라 영토 넘보나

    일본이 해양탐사선으로 독도 인근 해역에 들어와 해저수로를 탐사하겠다고 한다. 탐사할 수역에는 울릉도 동방 약 30∼40해리 지점의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포함돼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해저수로탐사 계획을 국제수로기구(IHO)에 통보했다. 고대로부터 일본은 우리에게 숱한 노략질과 침략의 만행을 저질러 왔다. 근세에는 제국주의의 화신이 되어 세계인을 전쟁의 고통속으로 몰아 넣었다. 최근에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 위험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3월 문부성이 고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령으로 명기하라고 지시하더니 이제 탐사선을 보내 측량을 하겠다고 한다. 그 노략질 근성이 다시 발동한 것인가. 독도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현재도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한국 땅이다. 그 인근 해역은 한국의 독자적 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이다. 유엔 해양법 246조는 ‘다른 나라 EEZ 안에서 해양탐사를 할 경우 연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정선·검색·나포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허가 없이 우리 수역내에 들어와 측량을 하겠다는 것은 분쟁을 유발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저의가 분명하다. 올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우익세력의 단합을 끌어내 보자는 우파 정치인들의 국내정치적 정략도 숨어 있다. 우리 정부의 신중하고도 단호한 대응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일본인들의 노략질 근성은 불치병이다. 최소한 현재의 일본 지도층을 구성하는 보수우익 정치인들의 DNA에는 그런 유전인자가 들어 있다. 이들이 교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세계인의 불행이자 지구촌의 재앙이다.
  • 日역사교육 비판 면직 ‘양심교사’ 새달 내한

    日역사교육 비판 면직 ‘양심교사’ 새달 내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을 비판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해 3·1절 기념사를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역사교육을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로 도쿄도 당국에 의해 면직된 일본의 중학교 교사가 한국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방한, 강연에 나선다. 도쿄 지요다구 구단중학교의 마스다 미야코(56) 교사는 다음달 11∼12일 부산시민단체협의회의 초청으로 부산을 방문, 일본의 역사교육 문제점과 면직 경험 등을 소재로 강연한다.11일에는 중·고교 교사,12일에는 일반시민에게 각각 강연한다. 마스다는 1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지난해 3월 한국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했었다는 마스다는 지난해 3학년들을 상대로 한 공민(公民) 수업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한 정치인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3월 말 도쿄도 교육위원회에 의해 면직 처분됐다. 그녀는 지난해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감명받아 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와 3·1절 기념사를 학생들에게 배포, 보조자료로 활용했다. 편지에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부정한 자민당 도쿄도 의회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도쿄도 교육위는 “부적절한 문구를 기재한 자료를 수업에 사용했다.”며 경고처분한 데 이어 지난해 9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연수를 받도록 했다. 지난달 말에는 태도불량을 이유로 교단에서 내쫓았다. 마스다 교사는 면직처분에 불복, 도 인사위에 심사를 요청했다. 그녀는 “반드시 소송을 해 면직조치의 부당함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식민지 과거사가 한·일 기본조약으로 법적으로는 결론이 났을지 몰라도 진정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노 대통령의 기념사에 감동받았다.”면서 “일본인의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마음에서도 결론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수의 동료교사들이 침묵하는 것과 관련,“문제를 느껴도 행동할 수 있는 선생들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극우이고, 도쿄도 교육위가 이시하라 지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taein@seoul.co.kr
  •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7) 영상물의 구조와 법칙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7) 영상물의 구조와 법칙

    ●생각 열기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재벌 2세이거나 부유하고, 공부 잘하고, 잘 생겼으며, 운동에도 뛰어나다. 반면 여주인공은 착하지만 평범하다. 그리고 항상 예쁘다. 이상하게도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고, 둘의 관계는 삼각관계로 얽혀든다.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다른 여자는 여 주인공을 미워하고 두 사람 사랑을 방해한다. 결국 두 주인공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 주인공은 신데렐라가 된다. 때로는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기도 하고, 여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아끼고 도와주는 새로운 남자가 등장해서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악당은 막강한 힘과 능력으로 주인공을 쉽게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넋 놓고 있다가 주인공에게 당한다. 공포영화에서 자기 혼자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항상 죽는다. 드라마, 공포 영화, 애니메이션 등 우리가 즐기는 여러 매체의 영상물들은 이야기 전개에서 이처럼 특정한 법칙을 따른다. ●생각에 날개달기 액션영화에서 시한 폭탄이 터지려 한다. 주인공은 폭탄을 찾아 멈추려 하지만 쉽지 않다.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가슴 조린다. 폭탄은 결정적인 순간 몇 초 혹은 0.01초의 시간을 남기고 멈춘다. 비로소 관객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만화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심하게 얻어맞거나 곤경에 처한다. 어린 시청자들은 마음 졸이며 주인공을 응원한다. 결국 주인공은 변신, 합체, 마법 등으로 한순간에 상황을 반전시키고 악당은 보복을 다짐하며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늘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보면 어떨까? 폭탄은 곧 멈춰질 것이고, 주인공은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별 긴장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를 많이 시청한 분들 중에서는 드라마의 다음 장면을 예언하는 분들이 있다. 그 예상은 대부분 들어맞지만, 신기하게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다. 무엇 때문일까?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고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게 되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드라마와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낯설고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즐기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미디에도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같은 전개방식과 대사가 반복되면 관객들은 다음 대사를 따라 하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 관객은 극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너무나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선하던 코너도 곧 식상해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생명력이 긴 코너는 대체로 연기력이 바탕이 되거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트 영화는 쉽고 재미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별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간단하며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세기 가까이 영화를 제작하다 보니 이야기 소재가 고갈되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 위기는 소재의 고갈, 아이디어의 고갈이다. 외국에서 새로운 감독을 끌어오고, 아시아 영화의 판권을 사와서 리메이크작을 만드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영화를 수 천편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대체적인 이야기 구조와 인물유형을 여기 저기 영화에서 따오면 초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할리우드에는 시나리오를 대신 써주는 소프트웨어가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영화감독들이 약진하는 데는, 그 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신선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기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은 하나의 상품으로 제작된다. 제작자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제품보다는 익숙한 기성품을 제공한다. 대량으로 만들어 팔려면 일정한 틀과 장르를 만들어 찍어내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반복과 정해진 틀에 안주하다 보면 작품은 정체되고 퇴보한다. 독립영화와 단편 애니메이션처럼 독특한 아이디어를 담고 기존의 이야기 구조만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할리우드 영화밖에 없다면 영화산업은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영화의 작품적 완성도는 떨어지며, 산업적으로도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의 세계화와 발전이 지배와 침략이 되지 않으려면 다양성을 존중하고 키워줄 줄 아는 의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모호한 예술 영화를 보고 재미를 느끼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없이 전형적인 이야기만 양산된다면, 창조적인 사고를 펼치고 포용할 줄 아는 문화는 점점 위축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은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 주머니 넓히기 (1)기존 구조를 벗어난 신선한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았다면, 무엇이 달랐는지 이야기해 보자. (2)여러분이 작가라면 삶의 어떤 면을 표현하고 싶은가? (3)친구에게 추천할 만한 독립영화나 단편 애니메이션 등이 있는가? 인터넷에서 독립영화와 다양한 공연 정보를 찾아보자.
  • [서울의 문화재] (6) 삼전도비

    [서울의 문화재] (6) 삼전도비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열강의 틈에 끼여 있다. 따라서 국력이 약해지면 침략을 당하기 십상이다. 외침을 당할 때 민족이 하나가 돼 극복하기도 했지만 굴욕적인 순간을 맞은 적도 있다. 인조가 청태종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세 차례 큰 절을 하고 아홉 차례 머리를 땅에 박았다는 항례(항복의 의식)는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다. 당시 조선은 청의 강요로 청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웠다. 당시 비석명은 대청황제공덕비이었지만 현재는 사적 101호인 삼전도비이다. 지난 7일 삼전도비를 찾았다. # 찾아가는 길 지하철 8호선 석촌역 6번 출구로 나와 3분 정도 걸으면 삼전도비 안내판이 보인다. 그 골목을 따라가면 삼전도비 어린이공원이 나온다. 삼전도비는 그 뒤에 있다. # 아픔과 교훈을 함께 줘 삼전도비 옆에 동판에 조각된 그림이 있다. 인조가 청 태종과 대신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1982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 그림을 세웠다고 한다. 주민 박병희(50·여)씨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면서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전도비는 높이가 4m쯤 된다. 비석은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대)에 올려져 있다. 비석 위엔 하늘로 올라가는 용 두 마리가 있다. 세 나라 문자가 한 비석에 적혀 있는 건 삼전도비가 유일하다고 한다. 앞의 왼쪽엔 몽골 글자로 오른쪽엔 만주 글자로, 뒤엔 한자로 적혀 있다. 내용은 청나라가 출병한 이유와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태종이 피해를 안 끼치고 회군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용은 왜곡됐다. 글자는 상당 부분 훼손돼 있다. 관리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당시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이은석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자연풍화로 인해 내용이 훼손되도록 일부러 잘 지워지는 돌에 글을 새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석 전문은 글을 쓴 이경석 문집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한편 옆엔 비석이 없는 귀부가 또 하나 있다. 이 귀부에 대해선 문헌상 알려진 바가 없다. # 주민들 삼전도비 얽힌 내용 몰라 정작 주민들 가운데 삼전도비의 내용과 얽힌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적다. 통장인 유미현(47·여)씨는 “주민들은 문화재가 있다는 걸 알 뿐 그 내용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헤어숍을 운영하는 김진구(37)씨는 “처음 6개월 동안 비석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면서 “주변에 삼전도비길과 삼전도비놀이터 등 ‘삼전도비’가 들어가는 명칭이 많아 손님한테 물어 앞에 비석이 있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백제 고분하고 관계있는 것 아니냐.”면서 다소 엉뚱한 답을 했다. # 삼전도비 널리 알려야 하나? 대학에서 삼전도비에 대해 들은 뒤 자주 온다는 손원호(29)씨는 “잘못된 역사도 의미있다면 알려야 한다.”면서 “당국에서 무관심한 것 아니냐.”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영우 한림대 교수도 “삼전도비가 부끄러운 역사인 건 맞지만 열강 틈바구니에 있는 한반도의 숙명 때문에 언제든지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면서 “좀 더 알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송파구청 박춘화 문화재팀장은 “우리의 전승비도 아닌 청의 강요로 만든 것이고 청태종이 백성에게 피해를 안 끼쳤다고 적힌 내용과 달리 세자와 왕자 등을 볼모로 잡고 백성 수만명을 납치했다는데 알릴 필요까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주민들이 문화재에 관심이 적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 알면 더 보인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지국의 맹약을 해 양국관계는 일단락된다. 그러나 1632년 더 강성해진 후금이 양국관계를 군신지의로 고칠 걸 요구하고 1636년 2월 사신을 보내 신사를 요구했지만 인조는 접견을 거절한다. 이에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은 10만 대군을 끌고 칩입한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가다가 이미 청나라 군한테 막혀 남한산성에 들어간다. 하지만 청나라군에 의해 남한산성은 포위, 고립된다. 당시 남한산성엔 식량도 부족했고 봉림대군이 있던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결국 항복한다. 청나라는 소현세자 등을 볼모로 잡고, 척화 주모자인 신하 3명를 잡아 철군을 시작했다. 인조가 삼전도비의 비문과 글씨를 쓸 신하들을 뽑으면 다들 사직을 했고 결국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이경석과 오준은 죽어서도 두고두고 탄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16) 結草報恩(결초보은)

    儒林(564)에는 ‘結草報恩’(맺을 결/풀 초/갚을 보/은혜 은)이 나오는데,‘죽은 뒤에라도 恩惠(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이르는 말’이다. ‘結’자는 意符(의부) ‘’(가는 실 멱)에 ‘吉’(길할 길)이 音符(음부)로 결합되어 ‘맺다’의 뜻을 나타냈다.用例(용례)로 ‘結社(결사: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함),結束(결속:한 덩어리가 되게 묶음) 등이 있다. ‘草’자는 풀이 자라는 모습을 그린 ‘艸’(초)로 쓰다가 音符인 ‘早’(새벽 조)를 덧붙였다. 본 뜻은 ‘풀’이고,‘거칠다’‘처음’의 뜻이 생겼다.‘三顧草廬(삼고초려: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草野(초야:풀이 난 들이라는 뜻으로, 궁벽한 시골을 이르는 말)등에 쓰인다. ‘報’자는 죄인의 손이나 발에 채우던 形具(형구)를 뜻하는 ‘幸’(다행 행)과 꿇어앉은 죄인의 목을 손으로 누르는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본 뜻은 ‘죄를 판정하다’이며,‘갚다’‘알리다’는 뜻이 생겨났다.‘朗報’(낭보:기쁜 기별이나 소식),‘報本反始’(조상의 은혜에 보답함) 등에 쓰인다. ‘恩’자는 ‘베풀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意符인 ‘心’(마음 심)과 音符의 ‘因’(인할 인)을 결합하였다.用例로는 ‘恩功(은공:은혜와 공로를 아울러 이르는 말),恩師(은사: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恩寵(은총: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들 수 있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晋(진)의 위무자(魏武子)는 병이 들자, 아들 위과(魏顆)에게 妾室(첩실)을 改嫁(개가)시켜 殉死(순사)를 면케 해달라고 하였다.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여인을 殉死시켜 자신의 옆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과는 ‘병이 위중하면 정신히 혼미하여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여겨 妾室을 改嫁시켰다. 훗날 진환공(秦桓公)이 晉을 침략하여 보씨(輔氏)의 領地(영지)에 駐屯(주둔)하였다. 위과(魏顆)는 晉의 장수로서 秦(진)과 일전을 벌여야 했다.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한 노인이 나타나 풀을 잡아매어 놓았다. 두회가 탄 말은 거침없이 달려오다 여기에 걸려 곤두박질을 하였고, 이내 捕虜(포로)가 되었다. 그날 밤 꿈을 꾸고서야 그 노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改嫁를 허락하여 목숨을 살려주었던 여인의 아버지 亡魂(망혼)이었던 것이다. 최자(崔滋)의 補閑集(보한집)에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한 義狗(의구) 說話(설화)가 전한다.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縣) 사람으로,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무척 귀여워하였다. 하루는 外出(외출)을 하자 개도 따라 나섰다. 주인이 술이 취해 길모퉁이에서 잠이 들었는데 火災(화재)가 발생하여 주인이 잠든 곳까지 번지자 개는 냇물에서 몸을 적셔 주인 곁을 연신 오가며 불길의 接近(접근)을 막았다. 불길이 멎어갈 무렵 개는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김개인은 술에서 깨어 그간의 행적을 알고 몹시 안타까운 心情(심정)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그곳에 개의 무덤을 만들고 막대기를 꽂아두었더니 큰 나무로 자랐다. 이런 연유로 그곳의 地名(지명)을 오수(獒樹)라 하였다고 한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씨줄날줄] 王의 힘/한종태 논설위원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요한 장소에는 언제나 푸미폰 아둔야뎃(78)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거나 관련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것을 쉬이 알게 된다. 태국민들은 외국인들에게 통상 두 가지를 자랑한다. 하나는 1900년대 초반 서구열강의 아시아 침략때 태국은 한번도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국왕의 존재다. 입헌군주제에 따라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국왕에 대한 태국민들의 존경심과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향력 측면에선 왕정시대의 전제군주에 버금갈 정도로 푸미폰 국왕의 말 한마디는 법 이상의 효력을 발휘한다.2달여의 퇴진 시위와 정국 불안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던 탁신 치나왓 총리가 지난 4일 항복 선언을 한 것도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직후였다. 그야말로 ‘왕(王)의 힘’이 발현된 것이다. 물론 푸미폰 국왕도 국민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게끔 행동해왔다. 오는 6월 재위 60주년을 맞는 그이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부정부패나 스캔들과 연관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국왕뿐 아니라 왕실 가족 누구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하니 푸미폰 국왕의 높은 도덕성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일가가 19억달러어치의 주식을 팔면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탁신과는 크게 대비된다 하겠다. 국민을 끔찍이 생각하는 푸미폰 국왕의 ‘위민부모(爲民父母)’ 사례는 숱하게 많다고 한다. 왕궁에서 각계각층 국민들을 두루 만나 어려움을 청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나라에 가뭄이 들면 백성과 고통을 함께한다며 아예 식음까지 전폐한다고 하니, 한 나라의 군주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엄청난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지난날 절대권력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인물치고 ‘내가 그런 도덕성을 가졌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불행히도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브로커와 ‘게이트’가 난무하고 학연·지연과 같은 연줄이면 안 통하는 게 없는 사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스스로 모든 국민의 좌표가 될 만한 ‘큰 어른’을 모시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박태호교수가 말하는 ‘유목주의’

    박태호교수가 말하는 ‘유목주의’

    최근 ‘노마디즘(Nomadism·유목주의)’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들고 있다. 어딘가에 머무르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는 얘기는 참 좋은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는 반문에서 출발한다. 한마디로 먹물 깨나 든 선진적인 지식인 그룹의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게 비판의 요체다. 또 하나는 몰라서든, 잘못 이해돼서든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할 위험이다.‘먹튀’ 논란이 일고 있는 론스타도 자칫 자본의 노마디즘으로 포장될 판이다. 얼마 전 출간된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천규석 지음·실천문학사 펴냄)는 지나친 감이 있지만 이 대목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소장학자들의 연구집단 ‘수유+너머’의 핵심 멤버이자 국내의 노마디즘 대중화를 이끌었던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를 만나 노마디즘의 진정한 뜻을 물었다. 마침 지난달 29일 서울대에서 프랑스 소르본5대학 미셸 마페졸리 교수와 노마디즘을 놓고 토론했고, 또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펴냄)라는 책도 낸 터였다. ▶노마디즘 개념이 혼란스럽다. 명쾌하게 해달라. -‘유목’하면 자꾸 ‘떠난다’는,‘이동(移動)’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엥리쉬는 ‘잡노마드’에서 유럽을 떠도는 한 독일인 여선생의 삶을 노마디즘이라 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노마디즘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 독일인 여선생이 어느 순간 연구실에 파묻혀 책만 봐도, 전공을 넘나드는 연구 등 새로운 일을 벌인다면 그것도 노마디즘이다. ▶토론회에서 노마디즘에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많이 배우거나 여유있는 사람들의 얘기라는 의미냐. -대단한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외려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일수록 전공, 분야, 직위에 매여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데 서 오는 습관·습속·버릇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수유+너머’가 단적인 예다.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 대단한 사람 없다. 퇴직하신 어르신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그냥 공부하고 싶어 온다. 그리고 ‘수유+너머’는 ‘촉발’에 의미를 둔다는 점도 알아달라.‘너희가 그렇게 잘났냐.’보다는 ‘우리도 저런 거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먼저 해줬으면 한다. ▶월급쟁이들이 사무실이나 공장을 버리기는 어렵다. -굳이 버릴 필요없다. 거기서 나름대로 변화를 꾀한다면 그게 바로 노마디즘이다. 다만 정말 안 되겠다면 그때는 박차고 나와야 한다.‘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것처럼 한심한 말은 없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니 마음먹기가 어렵다. 또 단순하게 버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한다. 그런데 창조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이번 책에서 코뮌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운 것도 그런 의미인가. -마르크시즘을 재구성하는 게 책의 목표다. 그러려면 국가단위로 생각하는 습성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PT) 계급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래서 ‘코뮌’이라는 단어를 썼다. 예전에 PT 하면 공장노동자였다. 지금은 그들마저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주류화됐다. 대신 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 문제가 생겨났다. 이제 PT는 공장노동자가 아니라 이들의 집합이다. ▶누구나 안락한 삶을 바란다. 그런 면에서 노마디즘은 인간본성에 반하는 것 아닌가. -인간본성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안락한 삶’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적이다. 다시 말해 그걸 지향하는 순간 부르주아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런 부르주아적 욕망을 인간본성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근대의 사고방식이라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사실 근대 이전에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이게 내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축소됐다. 이걸 정확히 알아야 한다. 노마디즘은 바로 그런 부르주아적 욕망, 돈과 가족에 대한 욕망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버리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수유+너머’ 사무실 임대료가 월 800만원 정도다. 사람들은 스폰서가 있겠거니 하는데 순수한 회비만으로 운영한다. 회비 내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 없다. 그 사람들이 왜 돈 내겠나.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돈을 그렇게 내는 대신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기서 오는 기쁨, 토론으로 얻는 지식과 능력을 만끽한다. 확 버려야 더 크게 얻는다. 그걸 잘 모른다. ▶거기까지는 인정해도, 그게 변혁의 힘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나.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문제다. 이번 프랑스 사태를 봐라. 부르디외는 68혁명 뒤 사람들이 TV나 보면서 마비됐다고 했지만, 바로 지금 혁명적인 상황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일제 침략전쟁 비판교사 도쿄도 교육위, 면직처분

    |도쿄 이춘규특파원|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일제 침략전쟁을 비판한 수업보조자료를 활용한 중학교 교사를 면직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도쿄신문이 4일 보도했다. 도 교육위는 지난해 공민 수업에서 일제 침략전쟁을 비판하는 수업보조자료를 사용하고 도쿄도의회 의원의 실명을 들어 ‘역사위조주의자’로 비판한 한 중학교 교사를 계고처분했다.이어 지난달 말에는 “연수 중 반성하지 않았다.”며 ‘분한(分限) 면직’ 처분했다. ‘분한 면직’은 ‘공무원에는 부적격’하다는 판단으로 기본적으로 면직과 같지만 교사면허는 유지되는 징계다.교사는 “도 의회를 비방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관을 비판한 것”이라며 처분에 불복, 도 인사위에 심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면직처분을 받은 중학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냈던 편지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교사는 이 편지에서 일제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자민당 도의원의 실명을 들며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역사인식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또 역사왜곡 교과서로 비판받은 후소샤판을 “역사위조로 유명한” 등으로 설명, 도 교육위의 징계를 받았다.taein@seoul.co.kr
  • 北 “한미 군사훈련 자위적 행동조치로 대응”

    북한 외무성은 23일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대북 핵선제 공격연습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자위적 행동조치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이번 전쟁연습은 철두철미 공화국 북반부(북한)를 반대하는 침략적이고 모험적인 핵선제공격 연습”이라면서 “우리는 미국의 대조선(대북) 압살기도가 명백한 조건에서 그에 보다 강력한 자위적 행동조치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자위적 행동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강자·약자의 진화로 양극화 해소를/박맹수 원광대교수·교화과장

    2006년 화두 가운데 하나로 양극화 문제가 있다.IMF사태로 불렸던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왔다. 기업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으며,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었다. 국내 기간산업은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아래 개방을 강요당하여 많은 기업이 외국 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작년에는 농업 분야마저 완전 개방 쪽으로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국내 농업은 거의 빈사지경이 되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위기는 이미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사회 구석구석에는 경제위기가 빚어낸 생채기가 치료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농업회생 문제, 절대빈곤층과 차상위계층 문제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양극화 문제는 과연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IMF사태 이후에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구호아래 경쟁력 있는 회사, 경쟁력 있는 인재만 남기고 그 외는 모두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도태시킨 총체적 결과가 결국은 양극화라는 현실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양극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를 풍미했던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을 그 이름만 바꾼 것과 다름없다.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속에서 적자(適者)만이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과, 경쟁력 없는 회사나 인간은 도태시킬 수밖에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말만 바꿨을 뿐 강자의 논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물음을 던진다. 지난 세기의 사회진화론이 인류사에 과연 어떤 결과를 안겨주었던가. 서양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정당화하여 수천만 명에 이르는 제3세계 민중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끝내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초래하여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사회진화론의 리바이벌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역시 또다시 대참극을 불러오지 말란 법도 없다. 여기에 바로 우리 사회가 지혜를 발휘하여 신자유주의라는 무자비한 바람을 막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사회는 끝내 그 강자마저도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우주자연의 정칙이요, 인류사의 보편적 법칙이다. 일찍이 사회진화론이 난무하던 20세기 초반에, 서양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제3세계 국가와 민중들이 잔혹하게 유린당하던 시대에 소태산 박중빈(1891∼1943) 선생은 “강자는 약자로 인하여 강의 목적을 달하고,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고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였느니라.”라고 가르쳤다. 약자(弱者)들이야말로 강자(强者)들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 바탕이라는 것, 즉 이 우주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 떠날 수 없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소태산 선생의 이 가르침 속에는 강자만을 섬기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신자유주의적 세계는 끼어들 틈이 없다. 약자와 강자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세계, 강자와 약자가 서로 진화하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계이자 앞다투어 실현해야 할 이상세계요, 진여실상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소태산 선생은 강자들에게 늘 ‘영원한 강자’ 즉 진정한 강자가 될 것을 촉구했다.“약자라고 항상 약자가 아니라 점점 그 정신이 열리고 원기를 회복하면 그도 또한 강자의 지위에 서게 될 것이요, 약자가 깨쳐서 강자의 지위에 서게 되면 전일에 그를 억압하고 속이던 강자의 지위는 자연 타락될 것이니, 그러므로 참으로 지각 있는 사람은 항상 남이 궁할 때에 더 도와주고 약할 때에 더 보살펴 주어서 영원히 자기의 강을 보전하나니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소태산 선생의 가르침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제대로 숨쉬고 살 수 있어야만 강자들도 비로소 제대로 숨쉬고 살 수 있게 되는” 원리를 얼마나 절실하게 자각하고, 얼마나 절실하게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박맹수 원광대교수·교화과장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전 2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우치다 시게루가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가구와 조명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설치 작품 등을 선보인다.(02)395-0331. ■ 로버트 인디애나 11일부터 4월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층.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이자 ‘LOVE’의 작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인디애나의 1960년대 이후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회고전. 작가의 대표 조각작품인 ‘LOVE’, 아트와 숫자 시리즈들로 이루어진 입체작품,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회화 및 판화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02)2124-8938. 뮤지컬 ■ 아이다 4월16일까지 LG아트센터 화려한 무대와 주옥같은 노래,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로 사랑받고 있는 디즈니뮤지컬. 제작비 130억원을 들여 지난해 8월부터 장기공연중인 초대형작으로 최근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옥주현 문혜영 이석준 출연. 화∼금 7시30분, 토·일 3시·7시30분.4만∼12만원.1588-7890. ■ 명성황후 30일까지 화∼금 7시30분, 수 3시·7시30분, 토 3시·7시, 일 2시·6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구한말을 배경으로 격동의 역사를 그린 국민뮤지컬. 윤호진 연출, 이태원 이상은 출연.3만∼12만원.(02)575-6606. ■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4월9일까지 화∼금 8시, 수 3시·8시, 토·일 3시·7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줄거리에 대중가요, 팝을 입힌 편집뮤지컬. 이원종 연출, 이휘재 춘자 안정훈 등 출연.3만∼12만원.1588-7890. 어린이 ■ 노노이야기 16일부터 무기한 화∼금 3시, 토·일 1시 상상나눔시어터. 춤과 노래로 배우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 서승만 작·연출.(02)762-0810. ■ 시계 멈춘 어느 날 19일까지 화∼목 3시·5시30분, 금 5시30분, 토·일 1시·5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전쟁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1만5000∼2만원.(02)382-5477. 클래식 ■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독주회 17일 오후 8시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25일 오후 5시 고양 어울림극장.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등 연주. ■ 이연희 가야금 독주회 21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연주. ■ 오혜숙 첼로 독주회 2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쇼스타코비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등 연주. 연극 ■ 날 보러와요 17일~4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초연 10주년을 맞아 최용민, 권해효, 김내하, 류태호 등 원년 멤버들이 출연한다. 화성연쇄살인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는 4월2일이다. 김광림 작·연출.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3시.2만∼5만원.1544-5955. ■ 상당한 가족 17일∼4월16일 화∼목 7시30분, 금·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배우 인생 45주년을 맞은 전무송이 딸(현아), 아들(진우)과 함께 서는 무대.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았다.1만5000∼3만원.(02)741-6779. ■ 주공행장 17∼26일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3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금주령을 내린 왕에게 술을 권하는 소년 주공의 이야기. 배삼식 작·손진책 연출, 윤문식 김종엽 출연.1만5000∼3만원.(02)747-5161. ■ 선착장에서 4월2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소극장 축제.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박근형 작·연출, 엄효섭 이규회 등 출연.1만2000∼2만원.(02)741-3934.
  •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가슴이 탁 트인다. 서울이 오색찬란한 빛을 한껏 뽐낸다. 상큼한 봄바람이 소곤거린다. 소나무 향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나그네의 발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른다. 서울성곽 야경은 오감을 즐겁게 한다. 덕분에 직장과 일상사에서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고단한 삶의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밤나들이를 떠나보자.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친 오늘을 위로받고, 내일을 설계하다 보면 어느새 성곽 끝자락에 닿는다. 이끼와 넝쿨에 뒤덮여도 어느 한 곳의 기초가 내려앉지 않았다.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옛 조상의 발자취와 닮았다. 조선 600년 세월을 지켜온 성곽이 일제침략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무너지고, 찢겨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2008년까지 성곽을 복원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역사의 숨결을 다시 느낄 날을 기대해본다. 최근 성북구가 밝힌 성곽의 야간 조명은 또 다른 볼거리다. 길이 1㎞짜리 금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서울성곽 아래 놓인 조명이 기지개를 켠다. 성곽과 그 사이로 뻗은 나무줄기가 황금 빛으로 태어난다. 나무는 눈꽃처럼 반짝인다. 밤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서울성곽 9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 빛을 밝혔다. 성북초교에서 삼청터널까지 1095m. 서울시는 총 연장 1만 8127m 중 복원된 1만 566m에 2008년까지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할 예정이다. 점등한 서울성곽 성북지구를 토박이 하두호(78)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봤다. 할아버지는 1952년부터 54년 동안 성북 2동에서 살고 있다.6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아들과 며느리와 지금도 살고 있다. 건축 일을 해온 터라 주변 환경과 건물에 조예가 깊다. ●오후 4시 한성대 입구역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빠져 나온다. 길을 건너 마을버스 3을 타고 서울성곽 입구까지 올라간다. 마을버스는 낡은 집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힘겹게 달린다. 성곽이 마주보이는 공터에 버스가 멈춘다. 종점이다. 중앙에 자리한 공중화장실 뒤로 북정노인정이 보인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오후 4시20분 출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을 걸으며 성북동을 ‘양과 음이 만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높은 담을 쌓아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호화 주택에 살고있는 부유한 사람과,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숟가락 수까지 공유하는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동네란다. 성곽과 맞닿은 가난한 동네는 일제시대부터 초가집이 하나둘씩 들어선 곳이다. 사적지여서 개발이 제한된 탓에 집이 많이 낡았다. 반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개발된 성북초교 뒤편에는 호화주택이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없이 잘려나간 뒤였다. ●오후 4시30분 성곽 도착 성곽이다. 돌로 만든 성곽은 단단해 보인다. 일제침략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가 1970년대 복원됐다. 성곽 바닥에는 1m 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해가 지면 켜졌다가 밤 12시쯤 꺼진다. “은은한 불빛이라 잠잘 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성곽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눈·비가 많이 오면 질퍽해져 산책이 힘들단다. 3분쯤 걸어가자 성곽을 뚫은 문이 보인다. 성곽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와 성북구로 나뉘는데 이 문이 통로 역할을 한다. ●오후 4시35분 와룡공원 종로구로 들어서자 와룡공원이 펼쳐진다. 돌과 시멘트로 닦은 길이 탄탄하다. 종로구 쪽으론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북구 쪽엔 북한산이 뻗어 있다. 봄이 오면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해 절경을 이룬다.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돌계단을 올라가자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공원 정자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정겹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찾았다지. 저 정자에 앉아서 찍은 사진도 있더구만.” ●오후 4시50분 전망대 2년여 공사끝에 만들어진 계동산길. 이 곳은 전망대와 같다. 좌우로 서울이 한 눈에 보이고, 성곽이 낮아 아기자기하다. 종로구쪽을 바라보면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 길로 내려가면 감사원과 만난다. 중간에 종묘의 녹지를 감상할 수 있다. 성북구로 향하면 출발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위쪽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 군부대가 주둔한 탓이다. 부대 뒤로는 청와대가 있고, 그 청와대를 인왕상과 북한산이 감싸고 있다. ●오후 5시20분 명륜지구로 내려가기 서울을 내려다 보며 올라오던 길을 내려간다. 한결 여유롭다. 사진을 찍는 연인이 눈에 띈다. 꽃밭에선 푸른 새싹이 고개를 빼들었다. 곳곳에 긴 의자가 있어 한숨 돌리기 좋다. 노부부가 다정히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쉬운 점은 성곽에 적혀 있는 낙서들이다. 누군가의 이름도, 욕설도 있다. ●오후 5시30분 선잠담지 과학 고등학교 뒤에서 성곽은 끊어진다. 성북지구가 끝나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둑해져 성곽 조명이 켜질 때까지 이웃한 문화재를 구경하면 된다. 성북초교 앞 교차로를 건너면 큰 길가에 선잠단지가 나온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뽕나무가 한가득 심어져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오후 5시50분 성락원 성북초교와 선잠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성락원이 보인다. 조선말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만들어진 별서(別墅)정원이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심속의 청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구청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6000평이 넘는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낮은 담장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오후 6시 ‘성북동 비둘기’를 찾아 오르다 보면 호화로운 주택단지가 나온다. 대사관 관저가 모여있는 ‘꿩의 바다마을’이다. 이 일대는 북한산 줄기로 수목이 울창하고 바위가 늘어서 있어 산새, 까치, 비둘기, 꿩들이 많이 살았단다. 시인 김광섭이 이곳 풍경을 주제로 ‘성북동 비둘기’를 지었다. 대사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스웨덴·칠레·슬로바키아 대사관이 곳곳에 숨어있다. 상당히 넓은 곳이라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와야 힘들지 않다. ●오후 6시30분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고 전형필 선생이 1938년,33세 때 세웠다. 대지가 4000평이라 도시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하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모은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속기관으로 발족했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곳이라 일년에 두 차례,5월과 10월에만 박물관을 개방한다. 국보급 문화재도 10여 점 소장하고 있다. 허 할아버지는 “경기 광주 부자였던 간송 선생이 한국전쟁 때 가난한 주민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이태준가 성북동길로 내려오면 ‘쌍문다리’를 만난다. 이 길은 예전에 다리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냇가였다. 냇가는 차도로 바뀌었지만 쌍문다리라는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북2동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붙은 찻집이 보인다. 바로 이태준가다. 이 집은 1900년대 지어진 건평 23.2평의 건물로 개량 한옥의 요소를 잘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되는데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집약시킨 형태다. 감나무, 사철나무로 꾸민 정원은 아담하다. 찻값은 7000원 안팎. ●오후 7시5분 이재준가 성북동 길을 횡단하면 덕수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으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이재준가를 만난다. 이 곳도 199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바깥마당의 우물가 등 집터 주위에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울려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교회가 관리하는 터라 주로 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오후 7시30분 야간 성곽나들이 어둑해지자 조명이 성곽을 은은하게 비춘다. 성곽에서 1m 떨어진 지점 바닥에서 성곽 위쪽으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이다.3억원을 들였다. 출발점에 다시 오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의 모든 빛이 성곽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가로등 역할도 해 산책하기 좋다. 성곽을 가로질러 종로구로 넘어가자 서울 야경이 펼쳐진다.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집으로 향한다. 종로구쪽 성곽은 조명이 없지만, 가로등이 많다. 허 할아버지가 꿩의 바다마을에서 성곽을 내려다 보라고 추천했다. 승용차를 타고 주택단지 위쪽으로 단숨에 올랐다. 길이 1㎞짜리 금 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마디와 닮았다. 금빛 성곽이 성북동의 음과 양을 조용히 비춘다. ●서울성곽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석축 건축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대문과 홍화문(동소문·혜화문), 소덕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자하문) 등 4소문으로 이어져 있는 서울의 울타리다.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고 있다. 형태는 타원형. 조선 6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한 곳의 기초 부문도 내려앉지 않아 우리 조상의 건축 기술을 증명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끼와 넝쿨이 뒤덮인 성곽은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견뎌온 옛 조상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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