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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일정상회담서 분명히 해야 할 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다. 양국 정상회담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정상간의 만남이 끊긴 지 1년4개월 만이다. 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 것인가 주목된다. 이에 앞서 아베 총리는 어제 중국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수뇌부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일간 정상회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중단돼 왔던 터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핵실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지만, 역사 문제는 양국간 신뢰 구축을 위해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식민지 지배의 잘못을 부인하는 경우 양국 관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본 측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취임후 식민지배와 침략 역사의 잘못을 인정한 일본 정부의 종전 입장을 수용했다. 하지만 전범에 대해서는 “국내법상으로 전범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언급을 피하는 모호한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모호성 전략’은 언젠가는 파경에 이를 수밖에 없으며 양국 관계에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한·일 양국 관계는 최근 들어 일본 총리의 무분별한 행동과 양국에서 일고 있는 과도한 민족주의,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영유권 주장 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어 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복원의 길로 접어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과거 행적으로 말미암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경계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 회담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 양국의 신뢰 관계 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가 어디까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지 지켜 볼 것이다.
  • [韓·中·日 ‘북핵 조율’ 연쇄 정상회담 돌입] 오늘 서울서 盧대통령·아베 회담

    9일 열릴 한·일 정상회담의 당초 최대 의제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 맞춰졌다. 하지만 지난 3일 북한의 핵실험 천명이 국제적인 돌출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공동 대응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의제의 비중에서 다소 시각차를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 쪽은 일단 일본의 역사인식 변화와 함께 이에 따른 실천 요구를 견지할 방침이다. 물론 북핵 해법도 타진할 계획이다. 반면 일본은 조율과정을 거친 역사인식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지만 북핵 쪽에 무게를 둘 것 같다. 어쨌든 한·일 정상회담은 막힐 대로 막힌 한·일 관계를 뚫는 계기가 될 성싶다. 무엇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뤄진 ‘실무방문’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회담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지난해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의 ‘짧은 만남’ 이래 중단된 상태다. 매년 두 차례 양국을 오가며 갖는 실무회담격의 ‘셔틀외교’도 지난해 6월 서울회담 이후 단절됐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 가운데 하나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과거사 문제를 어떤 수위로 정리하느냐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한·일 정상회담 협의과정에서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요구했다.”고 밝혔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도 “정상회담은 일본에 성의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양국간의 관계 복원을 전제로 삼으면서도 국내의 정치적 사정을 고려,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도 영유권 및 역사왜곡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신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히는 수준의 성의를 보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국의 조율이 쉽지 않을 듯싶다. 양국의 온도차가 커 북한에 상황을 악화시키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6자 회담의 조기 복귀를 촉구하는 선에서 그칠 전망이 적지 않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좋은 나라를 일구는 데는 반드시 그런 나라를 가꾸게 하는 정신문화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다. 좋은 정신문화의 밑바탕이 없이 좋은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불가능하다. 우리도 우리 나라를 좋은 나라로 가꾸기 위하여 그 바탕이 되는 정신문화의 터전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조선조 500여 년을 지탱해 온 주자학적 정신문화가 더 이상 21세기적인 정신문화의 기틀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그 주자학적 정신문화의 뿌리는 깊이 땅에 박혀 있어서 주자학이 심어 놓은 순수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흑백적 사고를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체로 은연중에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와는 정반대로 경제와 기술을 전담하고 있는 기업과 실업계에서는 주자학적 도학사상보다 실용적이고 실사적인 실학적 사고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한국사회에서 좌파적 도덕주의가 높이 흔들고 있는 깃발로 상징되고 있고, 후자는 우파적 실용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프랑스의 파리가 센 강을 끼고 좌안에는 대학가를 지배하는 좌파적 사상이, 우안에는 금융실업가를 석권하는 우파적 사상이 각각 우세하고 있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 사회에는 우리보다 격돌이 훨씬 덜하다. 좌파든 우파든 정신문화가 깊어야 고요히 사색하면서 좋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지혜가 나오지, 철학적 사유를 결여한 감정적인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세상을 더욱 불행하게 한다. 좌파는 우파를 미워해 극좌적 공산주의와 한 통속이 되거나, 우파는 좌파를 싫어해 극우적 파시즘을 동경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의 좌파와 우파의 사상적 근원이 외래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자학적 도학(道學)과 반(反)주자학적 실학(實學)의 유학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도학사상의 원조는 맹자(孟子)고, 실학사상의 원류는 순자(荀子)라는 데 이의가 없겠다. 나는 우리의 정신문화가 21세기에는 맹자류의 도학적 도덕주의와 순자류의 실학적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서 나는 19~20세기에 걸친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의 이론(프랑스의 사회학자 쥘리앵 프뢴드의 저서 ‘막스 베버의 사회학’에 의거)에 잠시 의존하고자 한다. 맹자의 도덕주의는 베버가 말한 가치합리성(rationality of value)에 연관되고, 순자의 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rationality of goal)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합리성은 돈벌기의 목적, 승진하기 위한 목적, 집짓기의 목적 등과 같은 결과에 성공적으로 이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행위를 분명히 조직하고 자각하고 있는 합리성을 말한다. 가치합리성은 자기의 합리적 행위의 결과에 따라 가시적 결과를 얻으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동기적 가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행위다. 즉, 행위자가 자기의 신념을 집행하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도 불사하는 행위다. 죽어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하여 단지를 한 옛 효자의 행위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바친 애국열사의 행위가 가치합리성이다. 이것은 목표합리성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위처럼 보이나, 행위자 당사자의 판단에서 보면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의 가치에 합리적으로 봉사했을 뿐이다. 맹자의 사상이 가치합리성이라는 이유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不忍人之心)인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바탕하여 모든 행위를 도덕적으로 발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정치마저도 측은지심과 연관되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치함’(不忍人之政)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맹자의 도학사상과 도덕주의는 인의충신(仁義忠信)과 같은 ‘하늘의 벼슬’(天爵)을 버리고, 세속적 인간의 벼슬(人爵)을 탐하는 인간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면서 저 ‘하늘의 벼슬’을 불변의 황금률로 마음에 간직할 것을 권장한다. 그런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도심이고,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을 그는 도학정치라고 여겼다. 이것은 순자의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 순자도 유가이므로 인의충신의 덕목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 덕목이 내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그 덕목들이 유효한 사회적 결과를 낳게 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덕목들은 현재의 인고(忍苦)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각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결과의 목표성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여 노후에 편하게 모시려는 목표가 인간에게 각자의 일에서 현재를 참아가며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내면적 도덕가치의 계발보다 사회적 제도를 예법(禮法)의 이름으로 잘 만들어 제도의 목표합리적 경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맹자와 순자의 각각 다른 합리성은 다른 윤리의식을 심어준다. 이 다른 윤리의식은 합리성의 차이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베버에 의하면, 맹자적인 도덕이상주의는 가치힙리성의 정신을 잇는 신념윤리(ethics of conviction)에 상응하고, 순자적인 현실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의 정신을 존중하는 책임윤리(ethics of responsibility)와 상관적이다. 그리고 이런 각 윤리의식의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자로서 베버는 신념윤리에 칸트를, 책임윤리에 마키아벨리를 대입시켰다. 마키아벨리는 고향 피렌체 도시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신념윤리로서 비난받을 수 있는 수단을 사용했다. 이것은 행동인에게 필요한 목표달성적 책임윤리의 의미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칸트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타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높은 도덕적 신념을 설파했다. 칸트의 신념윤리는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행동인의 윤리라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도덕적 양심의 차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이 두 가지 윤리의식이 극단적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서로 대립적으로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종류를 다 적절하게 병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두 가지 합리성과 윤리의식이 불가양립적인 모순은 아니지만, 그러나 서로 궁합 좋은 일치를 이룩하는 것은 아니라고 베버가 이미 밝혔다.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가 너무 넘쳐나 조선조 도학 정치시대처럼 실용적인 현실주의가 거의 숨을 죽이고 살았을 때에는, 순수성이란 선의 탈을 쓴 악마가 세상을 지배한다.‘순수성의 악마’라는 말은 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자인 무니에가 쓴 말로서, 순수의 명분으로 사회를 도덕적으로 지배하려는 사회의 도덕화 사상과 상통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도덕주의적 지배의지가 얼마나 악마적인가를 모른다. 그냥 순수한 도덕적 선의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동기의 순수성이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지키는 도심 자체가 되어서 국가사회를 살리기 위한 거짓말과 변칙을 자행하는 것을 불순하고 잡스러운 것으로 비난한다. 조선조 중종 때의 조광조는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는 조선 유학사에서 올곧은 선비로 높이 숭앙받는다. 그러나 그는 여진족 추장 막고내가 침략해 오는데, 위계를 써서 그를 생포하려는 군사전략을 맹렬히 비난한다.‘어찌 군자의 나라에서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거짓부리인 위계를 쓸 수 있는가?’ 하고. 이 조광조의 고사를 ‘순수성의 악마’와 같은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색당쟁의 대부분이 나의 순수가 상대방에게 악마로 둔갑하여 나타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20세기 프랑스의 토미즘 철학자인 마리탱은 그의 ‘인간과 국가’에서 맹자적인 도덕이상론과 왕도사상을 ‘정치의 도덕적 양식’이라 명명했고, 순자적인 실용현실론과 패도사상을 ‘정치의 기술적 양식’이라고 언명했다. 전자의 특징은 국가사회를 물질적으로 번영케 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도록 하여 인류의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국민정신을 유도해나가는 정치형태라고 규정하고, 후자의 특징은 국가의 대외적 외교성공과 안보역량 강화, 국민생활의 물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정치에 주력하지만, 그 성공을 가져오는 수단이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정치형태라고 마리탱은 설파했다. 그는 전자의 형태는 과잉도덕주의(hypermoralism)의 위험성을 늘 안고 있고, 후자의 형태는 사리사욕의 부패와 그 위험성을 은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도덕주의는 독선주의의 표독한 독재를 초래하기 쉽고, 사리사욕의 부패는 금권정치의 타락상을 가까이 하게 된다. 순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능을 대신한 친본능적 인간지능의 경제기술적 능력과의 연결마디에서 세상과 인간을 보았고, 맹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성을 대신한 인간의 반본능적 도덕주의와의 연결마디에서 인간과 세상을 보았다. 경제주의와 도덕주의는 다 철저한 지성주의(39회 글 참조)의 작품이고,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다. 경제기술적이거나 사회도덕적으로 인간이 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그 기본에 깔려 있다. 순자적 예법주의나 맹자적 도덕주의는 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인간지성의 두 가지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그 동안 두 가지 지성주의의 택일로 세상을 다스리려 했다. 두 사상이 서로 이율배반적인데, 그나마 서로 덜 배척적으로 동거시키는 나라는 흥융했고, 우리처럼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으로 적대시하는 나라는 위기를 맞았다. 영국이 프랑스보다 근대화의 시작에서 훨씬 상호 덜 배척적인 정신문화의 길을 갔기에, 영국이 프랑스보다 후발국이었는데, 드디어 프랑스를 능가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프랑스의 문인 사학자 모루아가 그의 ‘프랑스사’에서 통탄의 슬픔을 안고 기술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도덕적 명분주의가 지나치게 공허하여 내용이 없는 형식적 사고방식의 형해(形骸)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정반대로 현실주의는 너무 맹목적으로 타락하여 속물주의적 사고방식에 천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공허한 명분주의와 맹목적 속물주의의 두 극단을 피하는 것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양극단에 젖지 않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묘용(妙用)을 존중하면서도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동시에 노출하고 있다. 최근의 경향은 쏠림 현상을 더 많이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신문화의 자기 함정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아베, 식민지배·위안부 반성할 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9일 열리는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3일 전했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깊은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표명했던 무라야마 담화와 이를 이어받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지난해 8월15일 ‘전후 60년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중 양국에 역사 공동연구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중의원 본회의 답변을 통해 “(태평양 전쟁이)국내외에 큰 피해를 주었던 사실에 관해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면서 “종군위안부가 옛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정신을 잇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출신 군인과 군속의 유골반환을 포함한 ‘과거를 둘러싼 문제’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계획임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11월 중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과 다시 회담을 갖는 등 정상간 교류를 본격 재개하는 방안을 이번 회담에서 합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아베 총리가 “개인으로서 좀더 생각해야 할 사안”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정상회담에서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전했다.taein@seoul.co.kr
  • 아베 韓·中방문 연쇄 정상회담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서울에 와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도쿄의 외교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이번 주말과 다음주 초를 이용, 한국과 중국을 연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게 되며 한국엔 9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중국과는 앞서 8일 베이징(北京)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된 상태며 세부 사항은 최종 조율 중이라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아베의 한·중 방문 외교가 이뤄지게 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퇴장하고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변화를 기대하는 한·중 양국과 아시아 외교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아베 내각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방문 효과를 극대화하기위해 ‘한·중 세트 방문’의 성사를 위해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국민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뭔가의 ‘선물’이 있을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 대한 지지 표명 가능성도 그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달 하순 도쿄에서 열린 외무차관급 회의에서 중국측이 아베 총리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야스쿠니 문제에 관한 한 ‘애매한 전술’을 취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해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중국 입장을 배려, 아베 총리가 역사인식 등에 대한 대(對)중 담화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담화에는 야스쿠니 참배 자제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중국이 우려하고 있는 역사인식 문제 등을 배려하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이번 연쇄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22일 2개 선거구에서 실시되는 중의원 보궐선거가 있다. 모두 자민당 의석이었던 곳으로, 둘 중 하나만 놓쳐도 아베 정권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한편 아베 총리는 2일 중의원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일본 정부의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taein@seoul.co.kr
  • 日 ‘국수주의 작가’ 인생과 사상의 정수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자기 나라 지폐에 얼굴이 등장할 만큼 그는 일본인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역사의 전환점에 설 때마다 그의 사상은 어김없이 재조명됐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문제로 일본 열도가 들썩였던 2003년 말에도 일본의 국영방송은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특집을 내보냈다. 사회가 불안할 때일수록 그는 일본인의 정신적 등대 구실을 해온 셈이다.‘국민작가’ 대접을 받고 있는 그의 주요 작품들은 국내에도 거의 다 소개돼 있다. 지난달 ‘나는 소세키로소이다’라는 평전이 출간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장편 ‘길 위의 생’(김정숙 옮김, 이레 펴냄)이 나왔다. 소세키가 죽기 일년 반 전에 쓴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로 꼽히지만 엄밀히 말해 자전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인’ 방법으로 쓴 창작물이다. 주인공 겐조의 유년기는 곧 소세키의 과거이며, 겐조의 현재는 소세키가 런던에서 돌아와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길 위의 생’에는 ‘칙천거사(則天去私)의 완성’이라는 평이 따른다. 칙천거사는 나를 버리고 하늘에 따른다는 선적(禪的)인 의미의 조어. 그만큼 만년에 이른 소세키 자신의 인생과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그의 사상과 문학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문학적 자율성과 순수성을 온전히 지켜온 작가가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로서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소세키 문학이 일제의 한국침략, 식민통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는 군국주의적 발상, 독단적인 사회진화론적 사고, 호전적인 정치적 요소들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미하게 녹아들어 있다.‘길 위의 생’은 다행히 그런 혐의에서는 벗어나 있다. 소세키는 죽을 때까지 조선과 조선인을 천시하고 경멸했다. 문학평론가 이보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그처럼 집요한 민족적 적대감은 세계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소세키의 국수주의적 애국심, 자기모순을 지적한다. 대문호의 작품도 배경을 알고 읽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1만 2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아베 패밀리 일색” 日 새내각 비판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당·정 인사를 통해 출범시킨 ‘아베 사단’에 대한 언론과 야당의 비판이 벌써부터 거세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당·정 핵심 인물의 여성 편력과 주벽, 사람을 깔아뭉개는 언사 등을 들춰내며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야당에서는 자질 문제를 따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27일 사설에서 내각의 논공행상이 지나칠 정도라며 “아베 총리는 아시아 외교 정상화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 인사를 보면 과연 진심인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카가와 쇼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을 거론하며 “그는 1997년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을 결성해 회장을 지냈다. 이 모임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했다.”고 꼬집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해설 기사를 통해 “(그들만의) 단짝 내각에 대해 불안의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다양함과 배려가 없다.”는 다니가키 다사카즈 재무상의 발언도 소개하면서 혹평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도쿄신문은 “아베 패밀리 일색이란 지적이 있다.”면서 단짝친구 내각이라는 비아냥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아베 총리가 백악관식 정부를 실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며 평가를 유보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은 “중량감이 떨어진다.”며 강경 매파 일색인 점을 우려했다. 공산당은 “매파 단짝 클럽”이라고 깎아내렸고, 사민당은 “개헌 준비 내각”이라며 경계했다. 야당은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간사장의 여성 문제, 나카가와 정조회장의 주벽 등을 공세 재료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사람을 깔보는 언동이 잦은 것으로 알려진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이 정부 대변인역을 맡게 돼 설화(舌禍)가 잦을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 나오고 있다.taein@seoul.co.kr
  • [사설] 기대와 우려 교차하는 아베 정권 출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오늘 일본 제90대 총리에 취임한다. 아베 새 총리는 올해 52세로 전후 태어난 첫 총리이며,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가장 젊은 총리이다. 아베 새 총리가 단지 젊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한·일, 중·일 관계의 회복을 희망해 왔다는 점에서 일단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기대를 걸고자 한다. 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당내 총재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분간 안정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방향을 잘 잡는다면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들과 안정된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향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는 평화헌법의 개정과 집단자위권 확보를 주장했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북한 미사일기지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는 등 대북 강경론도 주도했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를 공표하지 않음으로써 이웃나라를 자극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는 속임수일 뿐이다. 어제 구성된 자민당 지도부의 면면을 보아도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정조회장(정책위 의장)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망언을 일삼은 나카가와 쇼이치 전 농림수산상을 임명하는 등 강성 라인을 전면 배치했다. 오늘 발표될 내각 인선에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침략사를 부인하고 이웃나라를 무시하는 것은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이즈미 외교 노선을 되풀이한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지도력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새 총리는 핵심 외교 문제를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버리고, 이웃나라와 선린 우호 관계를 복원하는 데 진지한 자세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데스크시각] 서울시장님,그거 문화재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육조(六曹)거리였던 세종로에서 조선시대 관아(官衙)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67년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원군 시대에 부활된 삼군부(三軍府)의 청헌당(淸憲堂)이 남아 있어 옛 체신부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 이 청헌당을 공릉동의 육군사관학교로 옮기고 지은 것이 정부중앙청사이다. 문화재를 몰아낸 자리에 관청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요즘 같은 ‘보존 지상주의’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시 정부는 아예 청헌당을 건축자재로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자칫 붐을 이루던 일본인 기생관광용 요정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조선초기 삼군부에서 예조(禮曹)로, 다시 삼군부로 역사를 이어온 터에 중앙청사가 지어지는 과정을 몰문화적 군사정권의 횡포로만 보고싶지는 않다. 개발시대에도 개발시대 나름의 논리는 있게 마련이다. 당시 청헌당 보존과 중앙청사 건립을 국민투표에 부쳤다면 ‘조국 근대화’시대에 걸맞은 현대식 정부청사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국민이 아마도 더 많지 않았을까. 요즘 경복궁이 단계적으로 복원되어 옛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조선시대 육조거리도 복원하면 더욱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2000년 역사도시 서울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찾기를 바라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세종로 주변의 정부기관들이 옮겨간 이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황당한 꿈만은 아니라고 날개를 편다. 물론 문화예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벌써부터 정부기관이 떠난 세종로는 문화공간과 열린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중앙청사까지 매각해 행정도시 건설비에 충당하겠다는 완강했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 길 건너편의 문화관광부 청사만 매각한다는 수정안을 최근 내놓았다. 문화재로 떠받들어지는 건축물이라고 지을 때부터 후세의 인정을 받겠다고 벼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궁궐도 아닌 관아는 쓰임새에 충실하면 되지 않았을까. 청헌당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조선시대 조정의 관아라는 희소성이 먼저 작용한 것은 틀림없다. 나아가 지금도 날선 듯 치켜올라간 청헌당의 처마선에서 열강의 침략이 가시화되던 시기, 문약(文弱)해진 조선의 분위기를 추슬러 보겠다는 의지를 읽었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깊은 뜻은 몰라도, 중앙청사라도 보존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중앙청사의 보존은 20세기 후반기 대한민국 정부의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조거리가 복원되면 참 멋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흔쾌하지 않았던 것도 한 시대를 조금 더 되살리기 위해 다른 한 시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앙청사는 예술품일 수 없지만 ‘정부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개발독재시대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비난은, 한편으로 이 건물에 내포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같은 차원에서 이조(吏曹)터에 자리잡은 문화부 청사를 팔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관가(官街)’라는 세종로의 역사성이 훼손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청사를 보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도 이렇듯 골치가 아픈데, 고유한 건축양식마저 완전히 생명력을 잃어버린 마당에 상징성있는 관청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정말로 큰 일이다. 21일 아침 서울신문은 서울시가 새청사를 세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판에 박힌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문화시장’이 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것만은 묻고 싶다. “시장님, 새로 짓는 건물이 훗날 문화재가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dcsuh@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나라 공식국명은 대한민국이 아니다/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하고 만 참담한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를 열망하던 민족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도둑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온 해방의 감격도 잠시뿐 미국과 소련이 펼친 냉전의 덫에 걸려 민족은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냉전이 깨진 지 오랜 오늘, 통일은 해방처럼 어느 날 눈앞에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둘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아니 지금도 왠지 ‘대한민국’이 풀뿌리 시민사회를 이룬 우리의 현재를 대표하는 국명으로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던 새 나라의 국호는 아니었다. 당시 ‘고려공화국으로 하자.’, 아니 ‘조선공화국이 좋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국명이 나쁘다고 독립이 잘 안 되는 게 아니니, 차차 국정이 정돈되고 나서 대다수의 결정에 의해 그때 법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해 잠정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를 삼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지 두 달 뒤에 터진 거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 이후 나라를 앗긴 황제의 존재는 기억의 저편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웅변하듯, 그때 이미 우리는 왕정복고를 거부하고 공화국을 꿈꾸지 않았었나? 그렇기에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 대한 단절의식을 함축하는 반어적 국명이다. 역설적이게도 제헌국회에서 국명을 논의할 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보자.’며 ‘대한민국’을 최초로 제안했던 신승우 의원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소극(笑劇)을 연출한다. 대한제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종속국이 아니라 자주국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국호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기도를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일으켜 막은 후 이루어진 러·일 두 나라 사이의 세력 균형 위에 세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모습보다 크게 보이려 소 앞에서 억지로 배를 부풀리다 소에게 밟혀 죽는 이솝우화 속 개구리를 떠올려 보라. 인간이건 나라건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는 자화자찬은 듣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법. 대한제국은 외세에 기대어 명맥을 이으려 한 왕조의 유약함을 상징한다. 개구리 배 부풀리기 식의 자대(自大)나 타력을 빌리려는 책략만으로는 덩치 큰 포식자들이 날뛰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돌아온 열강쟁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 큰 포식자들에 맞서 배 부풀리기를 하는 자대도 아니고, 강자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는 굴종도 아닐 것이다. 우리의 번영과 생존을 지켜줄 현명한 책략과 견실한 자강,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줄 자긍이 더없이 요청되는 오늘이기에, 허장성세의 대한제국을 연상케 하는 대한민국보다는 제헌국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던 고려공화국이란 국명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란의 침공에 맞서 나라를 지킨 강감찬의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세치 혀만으로 침략군을 물러서게 한 서희의 협상력에 목마르기 때문이요, 세계제국 몽고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60년 항쟁을 벌여 나라를 지킨 고려인의 불굴의 의지가 그립기 때문이요, 밖을 향해 활짝 열린 국제무역항 벽란도와 남녀 간의 자유연애를 노래한 고려가요의 개방성이 한 마을이 된 지구에서 양성평등사회를 꿈꾸는 우리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요, 세계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문명이라고 뽐내는 중화(中華)에 맞서 높고 아름답다며 또 다른 문명의 빛임을 자긍한 고려(高麗)의 함의가 오롯이 다가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외적 공식명칭 Republic of Korea와 합치하는 고려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 [시론] ‘아베 일본’의 출범과 한·일관계/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국제정치 교수

    [시론] ‘아베 일본’의 출범과 한·일관계/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국제정치 교수

    ‘아베 일본’이 출범한다. 평화헌법으로 집약되는 전후 일본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전면에 내세운 전후세대(1954년 출생) 첫 총리의 탄생이다. 아베는 ‘헌법 개정’ 대신 ‘신 헌법의 제정’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에 아베의 정치적 입장과 역사관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현행 헌법은 미 점령군에 의해 강요된 것이며,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1993년의 첫 당선 직후부터 아베가 ‘활약’한 것은 당시 호소카와 및 무라야마 총리가 추진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청산과 사죄’등에 대한 비판 활동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베는 새 역사교과서 추진운동에 적극 관여했다. 그가 정치가로서 주목받는 존재로 부상한 납치문제의 강경자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이같은 역사관, 가치관이 정책으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단기적으론 현실적 자세로 아시아외교를 타개하면서, 중장기적으론 대내적으로 원리적인 국가체제 정비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문제에 대해선 ‘전략적 애매성’이 하나의 지침이 될 것 같다. 애매한 표현을 통해 쟁점화를 피하면서 실질적인 돌파를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야스쿠니참배에는 이미 이 방식이 적용됐다. 지난 4월 은밀하게 참배한 후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공표하면서 본인은 언급을 회피하는, 편법이다. 사실상 참배를 계속하면서 외교적인 비판의 근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둘째로 이처럼 야스쿠니문제는 애매하게 뚜껑을 덮으면서 한국·중국 등 아시아외교의 수복을 추진할 태세다. 이미 수면 아래서 다양한 접촉을 시도 중이며, 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베는 대중 외교에 관해 ‘정경분리’를 내걸고 있다. 고이즈미 시절 등한시한 동아시아 FTA 등 경제외교를 활성화하는 것은 재계의 요망에 부응하는 동시에 당장 내년의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에서 과시할 업적을 손에 넣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로 아베 자신의 염원인 개헌과 교육기본법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 과제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문제의 ‘애매화’와 아시아외교의 ‘정경분리’는 이 과제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다. 역사문제와 아시아외교의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 개헌으로 집약되는 전후 체제 개편작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헌의 초점은 제9조의 개, 폐이며 실질적으론 집단적 자위권, 즉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기반으로 한 항시적인 해외파병의 기틀 마련이다. 헌법 개정이나 집단적자위권은 일본의 주권적 사항이다. 그러나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의 유산으로 상호불신이 뿌리깊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지역의 불안정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역적인 신뢰구축이 선행 내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고이즈미 5년동안 한·일관계는 야스쿠니문제로 크게 흔들렸다. 애써 쌓아올린 토대도 많이 손상됐다. 일본의 총리 교대는 외교적으로 국면전환의 계기이다. 상황이 간단치는 않지만 단기적으론 외교적 수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방향성을 둘러싼 갈등은 보다 크게 나타날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의 대응도 중장기적 전망을 포함해 보다 체계적인 전략적 틀이 필요하다. 개헌과 같은 국내문제가 쟁점이 될 경우 밖으로부터의 비판은 불충분하며 오히려 부작용만 부를 수도 있다. 원칙적 비판과 함께 다양한 관계확대를 통한 ‘관여’전략의 재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국제정치 교수
  • 무슬림들 ‘反교황’ 폭력사태 우려

    교황의 이슬람 관련 발언이 무슬림들을 자극해 지구촌 폭력사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초 덴마크의 ‘만평 파문’처럼 중동과 서아시아를 휩쓴 폭력사태가 재현되고 교황과 가톨릭을 겨냥한 이슬람 전체의 ‘보복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15일 AP 등에 따르면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이날 “교황이 지하드 및 지하드에 관한 이슬람인들의 생각을 파헤치려 한 것이 아니며 이슬람 신자들의 감정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교황은 이슬람을 포함한 다른 종교·문화에 대한 존경과 대화의 자세를 갖기를 바라며 종교적 동기를 이유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밝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교를 구실로 폭력을 행사하고 테러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온 교황이 9·11 테러 5주년을 맞아 우익·민족주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고향 독일에서 종교의 이름을 빌린 폭력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마호메트 관련 비판이 무슬림들을 격분시켰다. 무슬림의 성역을 건드린 때문이다. 이슬람권은 교황의 사죄를 요구하며 강력히 비난하는 등 강경한 자세다. 단순 해명 정도로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파키스탄처럼 외교부가 유감 성명을 내고 의회가 발언 철회 성명을 낸 것은 개별 국가까지 종교 싸움의 주체로 가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슬림들에게 마호메트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종교와 생활이 하나로 결합된 삶을 살아가는 이슬람 교도들은 마호메트의 생전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종교의 신성한 영역이 침해됐다고 생각됐을 경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보복을 시도한다. 또 이런 행동을 신성한 의무며 영광으로 여긴다. 이슬람회의기구(OIC)는 이날 유감을 표시하면서 “이 발언이 바티칸의 새 흐름을 반영하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며 “바티칸측은 이슬람을 정말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본부를 둔 OIC는 57개국으로 구성된 이슬람 대표기구다. 인도 종교간 화합을 도모하는 기구인 ‘국립소수위원회’의 하미드 안사리 위원장도 “교황의 언사는 마치 십자군 원정을 명령한 12세기 교황의 말처럼 들린다.”고 가세했다. ●지하드란‘무슬림들의 이교도에 대한 싸움’을 일컫는다. 흔히 성전(聖戰)으로 번역된다. 이슬람 경전 코란은 “이슬람을 전파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과 이에 필요한 금전적 기부행위”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지하드는 역사적으로 중세 유럽 기독교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중요성이 강조됐다. 근세 들어 서구 열강의 이슬람권 침략으로 이에 맞서기 위해 폭력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과 이슬람 국가 아프간에 대한 옛 소련의 침공(1979년)을 거치면서 극단적인 양상을 띠게 됐다.9·11 테러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지하드의 하나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신사참배는 나치무덤 헌화 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의회가 일본측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나왔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공개청문회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가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악화의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일본의 주변국 관계:백 투 더 퓨처?’란 제목으로 열린 이날 청문회에서 톰 랜토스(민주당) 의원은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핵심인사의 무덤에 헌화하는 것과 같다.”며 “전범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은 도덕적 파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과거사를 정직하게 다루지 못함으로써 자신들도 폐해를 보고 있고, 동북아 다른 핵심국가들로부터 공격받으며 미국의 안보이익도 훼손하고 있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역사적 망각행위”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가 난징학살을 부인하고 일본의 아시아 국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교과서를 승인하는 것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헨리 하이드(공화당) 위원장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임을 상기시킨 뒤 “날로 커지는 북한의 위협이 동북아지역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때에 핵심동맹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미국 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며 청문회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공개청문회에서 의원들과 증인들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개발 등 대량살상무기(WMD) 대처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을 위해 일본의 건설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불러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퇴임이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마련할 것을 기대했다. ‘외교적 간섭’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의회가 청문회란 제도를 이용해 논의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이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 역행하는 일본에 대해 잇따라 미국 정치권이 외교적 압박을 행사한 것으로 해석된다.하원 국제관계위는 앞서 전날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 관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처음 통과시키며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규탄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일 두 나라의 전략적 협조체제 붕괴는 북한이 핵실험을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득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dawn@seoul.co.kr
  • 징용도 서러운데 영혼까지 죽이나…

    일본 우익인사들이 태평양전쟁을 미화한 기념비를 세우면서 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새겨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은 관련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계획이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이시카와 호국신사에 있는 ‘대동아성전대비(大東亞聖戰大碑)’에 한국인 8명과 한국계로 추정되는 6개 단체의 이름이 무단으로 각명된 사실이 14일 최초로 확인됐다. 폭 4m, 높이 12m인 이 비는 2000년 8월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주축이 된 건립위원회가 1억엔을 들여 세웠다. 정면에는 일장기 ‘히노마루(日の丸)’ 모양의 붉은 원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전 세계는 천황 아래 한 집안’이라는 뜻의 ‘팔굉위우(八紘爲宇)’가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이 비는 건립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이름이 새겨진 한국인 중 7명은 모두 1945년 종전 직전에 전사한 사람들로 가고시마현 특공기념관에 있는 한국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이름 중 한국 이름이 확인되는 7명과 일치한다. 한국인의 이름을 새겨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의도가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에도 합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6개 단체의 이름도 의친왕(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의 손자인 이근의 위령현창회, 조선출신특공대전몰자현창회 등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우익들은 국내 유족의 동의를 전혀 받지 않았다.7명 중 한 명인 최정근씨의 동생 최창근(78)씨는 “형은 군에 입대한 후에도 일왕을 위해 죽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침략전쟁에 동원돼 죽음을 당했는데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이 영혼까지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전비가 세워질 당시 일본인 중에서도 ‘소년철혈근황대’‘히메유리학도대’ 등 본인 동의 없이 이름이 올려졌다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져 건립위원회가 “지원자 외에 새롭게 이름을 추가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성전비의 철거를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대동아성전대비의 철거를 요구하고 전쟁 미화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철거회)의 쓰루조노 유타카(56) 공동대표는 “우익단체들이 후원금을 대납하고 본인·유족 동의 없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타이완, 브라질, 하와이 출신들도 수십명의 이름이 무단으로 각명됐다.”고 말했다. 철거회는 성전비가 세워진 2000년 결성돼 매년 8월 건립회가 성전비 기념제를 전후로 반대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건립위원회의 세력은 점점 커져 올 기념제에 400명 이상이 참석한 반면 철거회 모임은 참여율이 저조해 올해 100명이 채 안됐다. 쓰루조노는 “1995년 처음 일부 우익인사들이 성전비를 세운다고 했을 때 장난 수준으로 보고 얼마 못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면서 “2000년대 들어 나타난 급격한 우경화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7명의 유족들은 철거회의 도움을 받아 성전비 건립을 허가한 이시카와현 지사와 건립위원회, 호국신사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계획이다. 쓰루조노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일깨워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38) 牽强附會(견강부회)

    儒林(697)에는 ‘牽强附會’(끌 견/강요할 강/붙일 부/모을 회)가 나온다.‘理致(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에게 有利(유리)하게 함’을 이르는 말이다. ‘牽’자는 원래 고삐를 ‘끌어당기다’의 뜻을 나타냈으며 ‘牽聯(견련:서로 얽히어 관계를 가짐),牽引(견인:끌어서 당김),牽制(견제:상대편이 지나치게 세력을 펴거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억누름)’등에 쓰인다. ‘强’은 본래 ‘바구미’를 나타냈으나 점차 ‘彊’(굳셀 강)의 의미로 假借(가차)되었다.‘强硬(강경:굳세게 버티어 굽히지 않음),强奪(강탈:남의 물건이나 권리를 강제로 빼앗음),博聞强記(박문강기:사물을 널리 알고 이를 잘 기억함)’등에 쓰인다. ‘附’자는 ‘언덕’을 뜻하는 ‘阜’(부)와 앞사람을 툭툭 쳐서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뜻을 가진 ‘付’(부)가 결합,‘작은 흙산’의 의미를 나타냈다.用例로 ‘附近(부근: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附與(부여:권리 명예 임무 따위를 지니도록 해 줌),附和雷同(부화뇌동: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등이 있다. ‘會’자의 본 뜻은 ‘합하다’인데, 세 번째 획까지는 그릇의 뚜껑, 가운데 부분은 그릇에 담긴 물건, 아랫부분은 그릇의 몸체를 나타낸 것이다.‘모으다’‘만나다’ 같은 여러 뜻이 파생하였다. 用例로 ‘機會(기회: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會同(회동: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임),會稽之恥(회계지치:회계산에서의 수치라는 뜻으로, 전쟁에 패한 치욕을 이르는 말)’같은 것이 있다. 我田引水(아전인수:제 논에 물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漱石枕流(수석침류: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음),推舟於陸(추주어륙:배를 밀어 육지에 댐)도 牽强附會와 의미가 통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메이지 시대를 전후해 일왕과 군부가 조선침략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분석한 나카쓰카 아키라 같은 양심적인 학자가 있는 반면, 일련의 학자들은 광개토대왕비의 이른바 ‘辛卯年條’(신묘년조) 등을 근거로 4세기경 한반도 남단에 任那日本府(임나일본부)를 설치해 식민지를 경영했다는 虛構(허구)를 주장한다. 일부 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鐵道(철도)와 灌漑施設(관개시설)을 정비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해 근대화에 노력했다.’거나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해준 조선통신사의 역할을 ‘일본의 장군이 바뀔 때마다 방일한 축하사절단’으로 적고 있다. 우리의 古代史(고대사)를 송두리째 왜곡하려는 中國(중국)의 ‘동북공정’또한 도를 넘은 牽强附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牽强附會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 도읍 영에서 燕(연)나라에 보낸 편지내용에 ‘擧燭’(거촉)이란 말이 있었다.韓非子(한비자) 外儲(외저)편에 의하면 편지를 쓴 사람이 날이 어두워 하인에게 등촉을 들라고 명한 다음, 무의식적으로 편지에 ‘擧燭’(거촉)이라 쓰고 말았다. 이것을 읽은 연나라 대신은 擧燭을 明哲(명철)함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賢者(현자)를 많이 등용하여 治績(치적)을 올렸다는 故事(고사)가 있다. 이를 書燕說(영서연설)이라 하여 牽强附會와 같은 의미로 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이 한권의 책] ‘혼세의 삼국’ 균형을 잡다

    요즘 TV사극들의 턱없는 민족주의와 사실왜곡에 황당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영웅을 그리되, 어깨에서 힘을 뺀 담백한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문장이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다. 저자는 김춘추의 집권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그만큼 사실(Fact)과 상상(Fiction)을 구분해 보이고 있다. 과장과 오류로 독자를 오도하는 흔한 팩션(Faction)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돌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책은 얼핏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외교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비친다. 김춘추는 약소국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제압하고 통일대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던 당(唐)과의 연합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와 왜(倭)를 방문해 외교담판을 시도하고 당 태종을 찾아 나당동맹을 완성해 내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과제였던 당시 상황에서 실리주의 외교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김춘추 조명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진골에 속해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던 한맺힌 가족사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마침내 왕위에 오르고 통일의 초석을 놓는 인간 김춘추의 모습에 더 많은 애정을 보인다. 책은 김춘추의 인간적 고뇌와 열정을 사랑하는 딸의 죽음 장면에서부터 풀어나간다. 문희와의 숙명적 인연의 결과 출생한 딸 고타소는 백제 의자왕이 일으킨 침략군에 의해 일가가 몰살한다. 수급(首級)이 잘려나간 처참한 주검 앞에 격분한 김춘추는 고구려행을 결심하며 통일의 의지를 불태운다. 조부 진지왕의 폐위와 가문의 몰락, 아버지 비형의 아들을 위한 희생 또한 김춘추가 절치부심하는 배경이 됐다. 비형은 아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고 신라와 왜의 당 유학생을 집안에 초치하여 국제감각을 키워주는 데 전력하는 ‘선진적’ 인물이었다. 진지왕과 유부녀 미도부인의 사랑, 집권 후 소원해진 김유신을 회유하기 위해 예순이 넘은 그와 어린딸을 혼인시키는 장면 등은 제도와 권력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비견되기도 하지만, 개별 국가의 내부사정 또한 물고 물리는 권력다툼의 연속이었다. 동생과 아비를 죽이고 집권하는 당태종,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한 연개소문, 친백제 정부를 제거하고 개혁을 추구하던 중대형 등이 모두 김춘추의 협상 상대자였다. 이들과의 조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국 이야기도 대중에겐 새롭다. 전반을 통하여 적절히 삽입되는 당시의 생활상은 배경에 불과한 듯싶지만 현대 역사학이 추구하는 중요한 탐구 목표이기도 하다. 대략의 둘레만 1023보에 이르렀다는 왕궁 월성의 풍경과 신라군단의 직능·계급별 군장 묘사, 온돌과 바둑·공차기가 등장하는 고구려 풍속 묘사 등은 당시 사람들이 눈앞에 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삼국사기’‘삼국유사’‘송서’‘양서’‘구당서’‘일본서기’‘동경잡기’ 등 사료를 인용한 각주 때문에 무조건적 몰입보다는 거리두기가 유지된다. 까다로운 문장과 어려운 단어들이 눈에 띄지만 이는 지식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또한 고대 분위기 재현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춘추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그의 죽음과 함께 삼국통일의 여정이 끝나버리는 것은 조금 아쉽다. 에필로그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1만 5000원.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인천이 원조] (18) 철도

    [인천이 원조] (18) 철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경인선이라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착공식을 두번이나 치를 정도로 건설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인철도는 1897년 3월 착공돼 1899년 9월18일 개통됐다. 인천역(당시 제물포역)에서 노량진까지 32.2㎞에 걸쳐 건설된 철도는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놀라운 대사건이었다. 인천∼서울은 걸어서 12시간씩 소요됐다. 그러나 경인철도 건설에는 조선이 처한 질곡과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이중성이 깃들여 있다. 조선 정부는 자체적으로 철도를 놓을 만한 돈과 기술은 물론 의지마저도 없었다. 이로 인해 처음 경인철도 부설과 운영권 등을 획득한 것은 조선이 아닌 일본이었다. 하지만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킨 이후 철도부설권은 미국인 모스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때가 1896년 3월. 모스는 착공은 했지만 자금부족과 일본과의 갈등 등으로 완공을 못하고 1898년 12월 다시 일본측에 철도부설권을 넘긴다. 일본은 경인철도합자회사를 설립한 뒤 1899년 4월 착공식을 갖고 잔여 공사를 재개해 마침내 개통을 시켰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연기는 하늘로 치솟아’인천역에서 개통식이 있은 다음날인 1899년 9월19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이 기사가 당시의 놀라움을 대변한다. 열차는 하루 4회 운행됐다. 인천에서 오전 7시, 오후 1시 노량진으로 출발했고 노량진에서 오전 9시, 오후 3시 인천으로 떠났다.1등실은 외국인이,2등실과 3등실은 내국인 남성과 내국인 여성이 각각 이용할 수 있었는데 요금은 각각 1원50전,80전,50전이다. 조선인들은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과 비싼 요금 때문에 처음엔 기차를 거의 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철로 위에 돌, 쇠붙이 등을 놓아 운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철도회사는 고심 끝에 ‘노선순사’(路線巡査)를 배치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철로 주변의 초가집들은 때 아닌 날벼락을 맞기도 했다. 기관차에서 연료로 때는 석탄의 불티가 날아들어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 이러니 철도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었다. 승객이 너무 적자 회사측은 신문에 광고를 내고 역마다 사람을 풀어 승객과 화물을 끌어모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삐끼’인 셈이다. 그러나 철도의 신속성과 편리함이 입소문으로 퍼져 점차 수요가 늘어났다.1907년에는 한해 승객이 7만 1515명에 이르렀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정치권 ‘동북공정’ 비난

    여야는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역사왜곡 기도에 대해 ‘또 다른 침략행위’‘민족 말살 기도’ 등 거친 표현까지 동원한 고강도 비난을 한목소리로 쏟아냈다. 특히 한나라당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6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동북공정은 역사 후퇴와 동북아 미래의 먹장구름을 가져올 뿐”이라며 “중국 정부에 역사 왜곡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어 “역사 왜곡은 또 다른 침략행위로 역사 왜곡과 공동 변영은 양립할 수 없으며, 어떤 희망도 만들 수 없다.”며 “(동북공정을 지속하는)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규탄하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강도높게 비난한 뒤 “노무현 정부가 자주를 주장하는 정부인데 왜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 하느냐.”면서 “과거사진상규명에 수 천억원씩 낭비하면서 민족 역사 훼손에는 왜 미리 대비하지 않느냐.”며 정부·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붉은 수수밭(시네마TV 밤1시) 베를린영화제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런저런 국제영화제에서 상받으면서 중국영화계 5세대의 등장을 국제적으로 알린 수작. 동양적인, 이국적 취향에 기댔다는 반론도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초기작으로 1920∼30년대 중국의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장이머우 감독만의 관능적인 색감도 넘친다. 가난이 죄라서 쉰살 먹은데다 문둥병까지 걸린 이웃 동네 영감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는 주얼. 웃통벗은 일꾼들이 멘 붉은 가마에 올라탄 주얼은, 그러나 일꾼들의 탱탱한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주얼은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되돌아가던 중에 서로를 눈여겨 봐왔던 일꾼과 정을 통한다. 정작 합방날 신랑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주얼은 자신을 범한 일꾼을 끌어들여 신랑이 운영하던 양조장에서 고량주를 만들어 판다. 그러나 곧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그들은 군대 이동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량주의 원료가 되던 수수밭을 없애려 든다. 이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고 마침내 주얼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비장하게 죽고 만다. 어떻게 보면 항일민족주의 영화 같지만 그보다 더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주얼이 웃통벗은 가마꾼에게 욕정을 느끼고 결국 그와 가정을 꾸리는 것이나 산간벽지에서 살다와 멋모를 것 같던 소녀가 어엿한 양조장 사장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다. 맥락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릴 법한 캐릭터다. 술로 상징되는 질펀함도 영화 내내 여과없이 소개된다. 봉건폐습과 외세침략이라는 두겹의 문제가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세상에서 고량주는 일종의 해방구다. 이제는 세계적 스타가 된 궁리가 주얼역을 맡았다.1988년작,90분. ●스케어 크로우(MGM 오후11시20분) 연방정부의 돈을 훔쳐 달아난 다섯명의 탈영병. 화물비행기까지 빼앗아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그런데 원래 목적지와 달리 조금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 그다지 잘 가꾼 것 같지 않은 옥수수밭인데 발에 걸리는 건 모두 허수아비들. 알고보니 이 허수아비들은 좀비처럼 쫓아와 죽이려 든다. 희생자까지 허수아비로 다시 태어나 동료들을 죽이려 든다. 살해 묘사가,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찬’이라 불릴 정도로 잔혹한 편이다. 그러나 진정한 압권은 이 흉칙한 장면들이 지루해질 무렵, 그 때 마지막 20여분이다.1988년작,88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BooK Review] 일제에 근대화도 박탈당했다

    대한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에 반짝 얼굴을 내비친 불운한 존재였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남다르다. 대한제국의 국새를 소재로 한 영화 ‘한반도’에서 우리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의 기미를 어렵잖게 느낄 수 있다.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나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한제국에 관한 한 우리는 너무나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계에서도 대한제국은 감정 섞인 논쟁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란이 벌어지면 으레 친일파니 국수주의자니 하는 비난의 언사가 동원된다.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긍정하는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이견은 여전하다.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푸른역사 펴냄)는 이같은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보다 생산적인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근대성을 규명해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책이다. 저자는 한영우(한림대)·서영희(한국산업기술대)·이윤상(창원대)·전봉희(서울대) 교수 등 7명. 지난해 한림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주최한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라는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완해 단행본으로 묶었다. 일부 경제사가들은 대한제국과 고종의 전진적인 개혁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부정하며 대한제국을 ‘부패타락한 봉건적 가산국가’ 혹은 ‘봉건적 구체제’로 깎아내린다. 대한제국은 그 부패성과 전근대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국사에서의 ‘근대개혁’은 을사늑약 이후의 일제시대에 들어서이고, 해방 후의 ‘산업화’도 일제시대에 이뤄진 ‘식민지 근대화’의 성과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한 대한제국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탈민족주의로 포장하려는 움직임을 한껏 경계하는 한영우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해방 후 학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실증사학의 성과”라며 “일제시대는 근대화 시기가 아니라 ‘근대를 박탈당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서영희 교수는 국가론적 측면에서 대한제국의 성격을 살핀다. 서 교수는 대한제국은 신분제 사회를 뛰어넘은 정권이란 점에서 조선왕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개항 이후 분열된 위정척사파나 급진개혁파도 대한제국기에는 정권에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대한제국은 보수적 유교정권도 급진개화파적 정권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제국은 전통과 근대를 절충한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중도적 정권으로 우리식 근대화를 추진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대한제국의 근대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이 대한제국이 부국강병과 산업진흥을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성과가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윤상 교수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황실 직속의 궁내부 내장원 산하에 여러 산업기구들을 둬 식산흥업과 징세사업에 힘을 쏟았다. 특히 국가 세입의 근간이 되는 지세(地稅)를 늘리기 위해 1899년 이후엔 양전지계(量田地契) 사업도 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사업은 러일전쟁으로 중단돼 원래 계획된 사업의 3분의2를 수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 교수는 대한제국의 산업정책이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실패한 본질적인 이유를 일본의 침략과 방해에서 찾는다. 대한제국은 아직 학술적으로 성격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대중의 기억 속엔 우울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연구가 미진한 만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대한제국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해석만큼은 극복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적어도 대한제국에 ‘중세적 가산국가’니 ‘무너져야 할 앙시앙 레짐’이니 ‘부패무능한 정권’이니 하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다.1만 6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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