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침략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허리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입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막춤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사저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72
  •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vs 양의 탈 쓴 미학자… 야나기 작품전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vs 양의 탈 쓴 미학자… 야나기 작품전

    “반항하는 그들보다 어리석은 것은 압박하는 우리다.” 1919년 3월 2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는 낯선 글이 실렸다. 전날 조선의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무력 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은 모두 5차례나 이어졌다.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도 실렸다. “조선과 조선민족에게 느끼는, 누를 수 없는 애정은 예술에서 받은 충동에 의한 것”이란 고백이었다. 글쓴이는 30대의 젊은 미학자였던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일본 공예운동의 아버지로 불린 그는 조선의 공예를 조선인보다 더 사랑했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세운 뒤 시야를 가린다며 광화문을 없애려 하자 반대하는 글을 발표해 철거를 막았고, “조선 물품은 조선에 있어야 한다”며 경복궁 집경당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개관했다. 세상을 떠난 그에게 한국정부는 1984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야나기에 대한 평가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갈렸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이냐, ‘양의 탈을 쓴 일제의 조력자’이냐의 논란이다. 1940년을 전후해 일제에 협력하는 그의 글과 행동이 잇따랐던 탓이다. 그의 아버지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해군 중장 출신. 작고한 최하림 시인은 야나기를 가리켜 “(조선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그 애정을 올바르게 활용할 사상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조선인을 수동적인 민족으로 도식화하고, 조선의 미를 ‘비애의 미’라고 부른 것을 놓고도 비판했다. 지난 25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막 올린 ‘야나기 무네요시’전은 이런 점에서 다분히 ‘논쟁적’인 전시다. 아베 총리 등 일본 지도층의 식민침략을 정당화하는 언행이 잇따르는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큰 기획전이다. 류지연 덕수궁관 학예연구사는 “야나기는 한국 근대미술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며 “수년째 기획만 하다가 숙제처럼 미뤄놓은 일을 펼쳐 놨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작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가 수집한 공예품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7월 21일까지 계속된다. ‘논쟁적’ 예술가의 수집품을 얼마나 깊이, 어떤 시각으로 감상하느냐는 관람객의 몫이 됐다. ‘민예(民藝)’를 미술 장르로 끌어올린 작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조선 공예와 미술, 문학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미학자. 그를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인 건 분명하다. 1부 ‘서유럽 근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선 도예가 버나드 리치와 교류하며 시야를 넓힌 그의 젊은 시절을 조명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에 심취하고 종합예술지 ‘시라카바’를 창간해 조선예술계에 영향을 주던 당시 야나기의 수집품이 공개된다. 2부 ‘조선과의 만남’은 소박한 조선 공예품들로 채워졌다. 개다리소반과 담배상자, 화각화문빗, 철사운죽문항아리 등이 나왔다. 조선의 막사발을 두고 ‘무기교의 기교’라 부르던 야나기가 소장했던 조선백자들이 볼 만하다. 야나기는 27세 때 처음 떠난 조선여행에서 백자를 접한 뒤 21차례나 현해탄을 건너왔다. 3부 ‘주변에 대한 관심과 민예’에선 일본 오키나와, 중국, 만주로 확장된 작가의 관심 영역을 엿볼 수 있다. 민예론 정립의 단초가 된 일본의 목조불상 허공장보살상과 오키나와 지방의 직물 문양 등이 전시된다. 야나기는 ‘일상 공예품에서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원칙에 따라 공예품을 수집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일본 도쿄에 설립한 일본민예관에서 옮겨온 139점이 선보인다. 한국 관련 전시물은 30점 안팎. 야나기는 평생 2만여점의 작품을 모았는데 이 가운데 2000여점이 한국 관련 작품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시론] 일본의 역사인식, 우리의 역사교육/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시론] 일본의 역사인식, 우리의 역사교육/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얼마 전 하네다 공항을 통해서 들어간 도쿄는 새로운 활기가 엿보였다. 엔저 정책으로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뉴스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공사가 끝난 하네다 공항은 말끔해 보였다. 전철 환승역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활황을 향해 나아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하룻밤을 묵게 된 요코하마의 뉴그랜드 호텔은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점령군 사령부를 차린 곳이다. 그때, 일본의 주전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고 했다. 이미 숱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그들이었다. 1945년 8월 14일 밤이 되어서야 항복하기로 최종 결정을 했고 이를 연합국 쪽에 통보했다. 8월 15일 정오, 일본 국왕의 목소리가 라디오 방송을 탔다. 일본인들은 그때 처음으로 일왕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날 텔레비전에서는 오사카의 젊은 시장 하시모토 도루에 관한 기사가 흘러나왔다. 위안부 관련 발언으로 지지도가 추락했다고 했다. 젊은 시장으로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유신회라는 ‘고풍스러운’ 정당을 만든 인물이었다. 그의 의식구조가 젊은 정치인답지 않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 텔레비전 보도조차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시모토 발언을 “어불성설”이라고 한 미국 쪽 반응에 당황한 일본 언론이 급조해낸 여론조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이 발언 탓에 옹색한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비유한 아베 신조 총리,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한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위안부를 매춘부에 비유한 정신없는 의원까지, 일본은 지금 시대착오적인 우익들이 그득하다. 경제 회복 때문에 이들은 더 자신 있어 한다. 국민 지지를 업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야 어떤 비판에 시달릴지언정 이들은 뼛속 깊이 우편향이다. 유신회 같은 ‘새끼’ 정당의 지지도는 출렁거릴지언정 자민당 지지세는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주도권을 잃었을 뿐 일본은 다시 자민당 체제로 귀결되어 버렸다. 일본 안에도 비판적 지식인, 양식을 가진 시민은 있다. 그러나 자기 신조를 평생 버리지 않는 것이 덕목일 뿐, 대중들로부터는 고립되어 있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자민당과 아베 신조를 따른다. 미국의 반응에는 불안해한다. 그러나 한국을 향해서는 자신만만하다. 그동안의 한류에 자존심 다친 젊은이들은 인터넷 공간 같은 곳에서 한국인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한국을 생각하면, 역사교육이라는 한 단어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본인들을 향해 정신 차리라고 한들 한가한 푸념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바짝 정신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중·고등학교 과정의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에서 ‘국사’는 선택과목이다. 수능시험 사회탐구 영역의 선택 가능한 11개 과목 중 하나일 뿐이다. 이마저 시험공부가 까다롭다고 생각한 나머지 응시 학생수가 해마다 격감하고 있다. 왜들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국어’와 ‘국사’를 잊어버리면 나라가 반드시 위태롭게 되는 법이다. 일본도, 중국도 모두 무서운 자기 논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10여년간 학계에서는 민족주의 비판이 능사가 되었다. 대학에서도 ‘국어’와 ‘국사’를 추방해 나가고 있다. 그런 필수 교양과목이 왜 필요하냐고들 한다. 민족주의 비판이 곧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늘 자기 논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은 이사벨라 비숍의 여행기를 읽으며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했었다. 이 역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웃한 나라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를 부단히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 “위안부 할머니들, 진실 밝혀질까봐 하시모토 면담 취소”

    “위안부 할머니들, 진실 밝혀질까봐 하시모토 면담 취소”

    일본군 위안부 정당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공동대표로 있는 일본 유신회의 나카야마 나리아키 중의원이 하시모토 대표와의 면담을 취소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향해 도발적인 망언을 늘어 놓았다. 26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나카야마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할머니들에게 “하시모토씨에게 강제연행의 내용을 날카롭게 추궁당할 것이 두려웠는가” “속임수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장소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적었다. 나카야마 의원은 할머니들이 면담을 취소한 데 대해 “면담을 신청한 것도, 이제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것도, 상대 쪽(피해자 측)”이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당초 24일 ‘위안부가 당시에 필요했다’는 하시모토의 망언에 대해 철회와 사죄를 요구할 계획으로 면담 일정을 잡았지만 하시모토의 ‘사죄 퍼포먼스’에 이용당할 뿐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만남을 취소했다. 일본 정치권의 망언, 역사 왜곡 등에 대해 서방 언론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조너선 테퍼먼 편집장은 25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의 긴장 상황은 역사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다”면서 “가장 좋은 해법은 일본이 과거 독일 총리처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테퍼먼 편집장은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위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주변국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사안에는 야만적인 일제 침략의 역사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탓에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도 지난 24일 ‘일본의 고독’이라는 사설을 통해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북한과 개별 협상을 하는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궁지 몰리자 말 바꾸는 아베

    궁지 몰리자 말 바꾸는 아베

    역사 인식에 대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일본의 아베 신조(얼굴) 총리가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를 줬다는 반성이 전후 일본의 출발점”이라며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전날 도쿄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의 미래 국제교류회의 만찬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는 과거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면서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전후 일본의 원점”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포함된 문구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부정하는 주장을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무라야마 담화 중 ‘결과적으로 피해를 줬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병 주고 약 주고’식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침략의 정의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파문을 빚은 바 있다. 한편 아베 정권의 헌법 96조 개정 움직임에 맞서 평화헌법을 사수하려는 호헌(護憲) 세력의 결집도 가시화되고 있다. 개헌 발의 요건을 완화하는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이 지난 23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6조 모임’을 결성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독도로 간 일본의 양심들 “한국땅” 3번 제창

    독도로 간 일본의 양심들 “한국땅” 3번 제창

    일본의 역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다케시마의 날을 다시 생각하는 시민모임’ 회원 3명이 23일 독도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선언했다. 2005년 3월 독도가 내외국인에게 개방된 이후 지금까지 70여명의 일본인이 독도를 찾았지만 일본인이 독도 현지에서 공개적으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은 구보이 노리오 모모야마 학원대학 전 교수, 구로다 요시히로 오사카 쇼인 여자대학 전 강사, 이치노헤 쇼코 아오모리 운쇼사 스님 등 3명이다. 이들은 동도 선착장에 내려 먼저 마중 나온 이광섭 독도경비대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이어 관광객과 독도경비대원 등과 한데 모여 ‘일본 지식인과 함께하는 독도 탐방단’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는 한국 땅”이란 구호를 세 번 외쳤다. 구보이 전 교수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문헌을 보고 연구하고 있는데 실제 와 보니 (독도가 한국땅임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면서 “일본에 가서 회원 400여명과 함께 다케시마의 날 제정 반대 운동을 더욱 적극 펼치는 동시에 제대로 된 역사 부교재를 만들어 독도가 한국땅임을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행한 김문길(68)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에게 “일본이 러·일 전쟁 승전 이후 힘을 과시하기 위해 독도를 침탈했듯이 지금도 우경화 사상을 높이기 위해 독도 침략을 시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 일행 가운데 사카모토 유이치 규슈 국제대학 전 교수는 사동항에서 독도행 배에 오르기 전 “독도를 한국땅으로 볼 수 없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작은 소동이 있었다. 그는 이어 “독도를 한국땅으로 볼 수 없다. 나는 독도 연구를 하러 왔다”며 독도학당이 마련한 ‘Dokdo is Korean Territory’(독도는 한국땅이다)라고 적힌 티셔츠 단체복 착용을 거부했다. 이에 독도학당 관계자가 그에게 승선권을 주지 않자 무단으로 배에 오르려다 해경 관계자 등에 제지당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착잡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람의 복부를 사무라이 칼로 가르고 파헤쳐 내장을 드러나게 하는 천하의 무뢰배들. 난도질은 부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육과 폭력의 조종으로 조선을 울린 흉포한 무뢰한들. 매화꽃을 찾아 떠난 길에 들른 목포의 ‘근대역사관’에서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이었다. 식민지의 피와 땀을 착취하려고 1920년 6월에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 건물에 전시된 일제침략의 실증적 유적·역사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시대를 살면서 부끄럽게도 오랜만에 우리 역사를 자각했다. ‘임산부와 노약자 관람 주의’라는 권고문에 예상은 했다. 사람을 포박하여 땅바닥에 앉혀 놓았는데, 방금 잘린 목이 붙어 있던 부위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쳤고, 강제동원됐을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항일조직 간부들은 무릎을 꿇리고 뒤에서 머리를 쏘아 사살했다. 짐승만도 못할 짓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우는 아기와 동생을 안간힘으로 안고 있는 어린 형. 그 시대와 사람들의 지옥 고통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처참했다.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사진으로 찍어 식민지 무단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인면수심의 범죄자들. 일제 침략자들의 후예는 오늘도 침탈을 대한민국 근대화로 견강부회한다. 동양척식의 서양식 건물은 앞선 세계건축양식을 조선에 도입했다는 식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원을 수탈하려고 만든 신작로와 철도를 교통의 근대화라고 억지를 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담은 사진촬영기는 문명사진술로 강변된다. 이러니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민족과 문명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게 위장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총리 아베는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망언과 망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총리의 책무다”(2005년 4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2007년 3월), 2012년 12월 26일 총리 취임 이후에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내용이 포함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2013년 4월 22일),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2013년 4월 23일). 이쯤 되면 아베의 심신은 조선의 무고한 양민의 배를 가르고, 목을 자르고, 머리에 총을 쏘고, 어린 자식 앞에서 부모를 죽이던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하수인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12일 아베는 731이라는 번호가 붙은 자위대의 항공훈련기 조종석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731 세균부대’는 수많은 한국·중국·몽골·러시아인들을 마루타(통나무)로 취급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행위이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서든, 영혼 없는 집단최면의 발로에서든 망언을 제조하고 있는 아베와 일본 정치인들은 제2의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사죄한 브란트 전 독일 총리 같은 정치인이 일본 풍토에서 나오기는 불가능한가.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68년이 지나서도 93세의 나치 용의자를 찾아 기소하는 독일 국민의 반성을 일본 사회에서 기대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역사에 대한 건망증을 경계하며 자기반성을 상실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현재와 미래에 반영하는 사회, 동시에 지구촌 세계의 일원으로서 보편적 가치와 양식을 공유하는 국가로 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야만을 부정하고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반인륜적·반문명적 저질행태를 지속하는 일본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이기도 할 것이다.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수백만년 전 유인원 루시Lucy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으며,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는’ 나라. 전설과 신화, 역사가 뒤엉킨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 흡사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 속을 유랑하는 것만 같았다. 랄리벨라에 있는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사의 모습 곤다르 교회의 천장에 새겨진 천-사들의 얼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Axum악숨 에티오피아의 처음을 더듬어 보다 와인처럼 깊은 향기가 매혹적인 예가체프Yirgacheffe 커피를 제외하고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별다른 호감이 없었다. 가난과 기근,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원시 부족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이런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굳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할 이유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에티오피아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자부심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고대에는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일대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도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19~20세기 열강의 침략을 뿌리친 나라. 이처럼 화려했던 에티오피아의 과거를 더듬어 보는 여행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이번 여정은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출발해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바하르다르Bahar Dar, 곤다르Gondar, 악숨Akxum, 랄리벨라Lalibela를 거쳐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기원을 만날 수 있는 곳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악숨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실 악숨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눈이 심심한 도시였다. 가는 곳마다 유적은 폐허였거나 발굴 중이었기에 ‘볼거리’ 측면에서 영 시덥지 않았다. 그러나 시바Sheba 여왕과 성경에 얽힌 전설 혹은 신화(그들은 ‘역사’라 한다), 악숨왕국의 명성 등은 여행자로 하여금 무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여행 후에도 그 잔상은 오래 남았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시바는 기원전 10세기경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 일대를 다스렸던 나라로, 시바의 여왕이 이스라엘의 솔로몬과 사랑에 빠져 낳은 아들이 바로 에티오피아 최초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메넬리크Menelik’다. 시바 여왕과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에서는 단순히 국가의 시조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들에 얽힌 신화는 주변국인 수단, 에리트리아, 예멘 등도 공유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자신만의 역사로 편입시키며 국가의 뿌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러한 역사가 서린 악숨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시바 여왕의 존재를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여기지만 악숨에는 여왕의 궁전터와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악숨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시바 여왕의 목욕탕에서 세례의식을 치르며 그녀를 잊지 않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악숨에 자리한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바로 옆에 있는 ‘구교회’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모세의 법궤가 있다고 한다 2 정교회에서는 에티오피아 고대어인 ‘기즈어’로 쓰인 성경을 본다 3 교회 앞마당, 보라색 꽃이 핀 자카란다 나무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모세의 법궤에 얽힌 수수께끼 신화가 서린 도시 악숨에서도 가장 믿기 힘든 이야기는 모세가 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법궤, 그러니까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에서 각별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역시 시바 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메넬리크는 아버지 솔로몬을 만나고자 예루살렘으로 갔고, 부자는 감격적인 해후를 나눴다. 솔로몬은 메넬리크에게 왕권을 물려주길 원했으나 메넬리크는 고심 끝에 거절하고 에티오피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를 아쉬워 한 솔로몬은 유대교 사제 64명과 1만2,000명의 젊은이들을 함께 보내 줬다. 그런데 한 신실한 사제가 신의 법궤와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그것을 훔쳐 왔고 법궤의 힘으로 메넬리크와 무리는 ‘순식간에’ 악숨까지 이동해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주변국에 점령을 당해 수천년간 비참한 국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궤를 잃은 탓이라 한다. 법궤는 지금까지도 악숨의 ‘시온의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4세기 무렵 악숨의 이자나Ezana 왕이 세운 것으로,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법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정교회 수도사뿐, 그것도 1년에 단 한차례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교회 옆, 오래된 박물관에는 고대, 중세 왕들의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다채로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군대가 이 유물들을 갈취하러 왔다가 법궤의 기운에 압도되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화 같은 전설들을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의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악숨에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내시에 관련된 유적도 있다. 예수 사후, 초대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스라엘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직접 세례터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세례터가 악숨에서 발견됐다. 시온의 성 메리 교회 주변에는 오벨리스크Obelisk 수십 개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높이 30m, 무게 500톤이 넘는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만으로도 강력했던 당시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 묻혀 있던 유물들은 모두 도굴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4세기 악숨의 이자나 왕 시절에 전파됐다.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단성론을 믿으며, 20세기 초까지 이집트 콥트교회의 분파였다가 독립된 체제를 갖추게 됐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43% 가량이 정교회 교인으로,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강력한 사회문화적 토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Lalibela 랄리벨라 천사가 함께 만든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영토에서는 다양한 국가가 명멸을 거듭했다. 고대에 위세를 떨쳤던 악숨 왕국은 홍해와 아라비아 지역의 무역 중개권을 무슬림에 빼앗긴 뒤 붕괴됐고, 이후 수백년간은 암흑기로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12세기에 이르러 악숨에서 400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랄리벨라Lalibela 지역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자그웨 왕조Zagwe Dynasty가 들어섰고, 건축사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독특한 암굴교회를 남겼다. 랄리벨라 공항에 내려 암굴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흡사 인디애나 존스가 법궤를 찾아가는 여정을 연상시켰다. 해발 2,800m, 산악지대에 건설된 도시는 모래먼지가 휘날리며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눈에 띌 리가 없는 암굴교회는 미로 속을 헤짚어야 나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교회는 마을 중심가에서 멀지 않았고, 입구에는 유럽에서 온 성지순례 여행객들로 바글거렸다. 순례객들은 11개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연신 ‘언빌리버블!’을 외치기에 바빴으니, 이는 기이한 건축물의 위용에 압도된 것도 있겠지만 약 천년 전 교회가 만들어진 과정도 믿기 힘든 마술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위세를 떨치던 12세기, 랄리벨라 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난 뒤 자신의 땅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왕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무슬림에 공격을 당하더라도 화재의 위험이 없는 암굴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약 4만명을 동원해 23년에 걸쳐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 유럽의 중세교회 하나를 짓는 데 수십년에서 100년 이상 걸린 것을 감안하면 ‘눈 깜짝할 사이’라 할 만하다. 전승에 따르면 인부들이 일을 하다가 잠을 자거나 쉬는 사이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사를 도와줘 시간이 단축됐다 한다. 천사가 일꾼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바위를 쪼개가며 30m 이상의 깊이로 바위를 파내가며 예술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불가사의한 건축물임에는 틀림 없다. 11개의 교회들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한덩이의 암석으로 이뤄진 교회가 있는가 하면, 몇 개의 거대 암석을 덧대어 만든 것도 있고 동굴 형태도 있다. 가장 큰 규모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는 한덩이 암석으로 72개의 기둥을 갖췄을 정도로 세밀하게 고안됐는데 형태는 악숨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졌다. 가장 유명한 교회는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된 ‘성 조지 교회Bet Giyorgis’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의 십자가형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형태가 완벽히 보존돼 있다. 실내는 다른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화살촉 문양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쪽의 ‘아바 리바노스 교회Bet Abba Libanos’는 랄리벨라 왕의 부인이 천사들과 함께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요르단의 페트라를 연상시킨다. 11개의 교회들은 크게 북쪽 그룹과 남쪽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간에 흐르는 강은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Jordan river’, 교회 곁을 지키고 있는 야트막한 산은 예수가 거룩한 모습으로 변했던 ‘다볼산Mt.Tabor’으로 불린다. 메드하네 알렘 교회 내부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무덤이 꾸며져 있어 ‘제2의 예루살렘’을 꿈꿨던 랄리벨라 왕의 신앙심 혹은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11개 교회에는 지금도 수많은 정교회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사진을 요청하거나 귀중품을 보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수도사들에게 정중하게 팁을 건네는 것은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랄리벨라 11개 교회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 조지 교회.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암석을 위에서 파내려가며 만들었다 2 정교회 수도사들은 친절하게 여행객을 맞아준다3 교회 내부에는 예수의 제자들과 정교회에서 추앙하는 성자들을 새겨 기념하고 있다4 랄리벨라는 유럽 성지순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일본 지식인들의 양심… “독도는 한국땅”

    일본 지식인들의 양심… “독도는 한국땅”

    일본 지도층의 역사 망언과 우경화 발언이 잇따른 가운데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반(反)다케시마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를 한국 영토로 규정했다. 구보이 노리오(70·전 모모야마학원대 교수), 구로다 요시히로(78·전 쇼인여대 교수), 사가모토 유이치(68·전 규슈국제대 교수) 등 ‘다케시마를 반대하는 시민모임’ 회원 4명은 21일 부산시청에서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라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구보이 전 교수는 “우리는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지정을 재검토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다”며 “일본이 러·일 전쟁 때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독도를 점령했으며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영토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토 문제로 보면 상대국(한국)과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다”며 “반성은커녕 한국 침략을 미화하는 것이며 ‘독도의 날’ 지정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본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어린이를 비롯한 일본 국민을 위해 역사 인식 문제를 고쳐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본여지로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라는 고지도가 있다”며 사본을 공개했다. 이들은 “지도 원본은 일본 정부로부터 압수당할 것을 우려해 현지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구보이 전 교수는 “‘나가구보’라는 인물이 1775년 제작했다가 조선 땅인 독도와 울릉도를 일본 땅으로 잘못 표기했다는 이유로 막부에서 1779년 회수한 뒤 개정판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본인들에게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역사 부교재를 내년 3월까지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라며 “오는 9월 대대적인 모임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민주학교 독도학당(이사장 김희로) 초청으로 부산을 찾은 이들은 한국에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 10명 등과 함께 22일 독도를 방문해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상황을 알릴 계획이다. ‘다케시마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은 대부분 대학교수로 구성된 지식인 단체로 지난달 창립해 도쿄와 오사카에서 ‘평화헌법 개정 반대’ ‘다케시마 반대’ 등의 시위를 벌였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쉼없는 망언… 아베 “야스쿠니와 美알링턴 다를 바 없다”

    최근 왜곡된 역사 인식을 드러내 국제적 파문을 일으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질문에 “미국 국민이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국립묘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도 그곳(알링턴 묘지)에 가고, 나도 일본 총리 자격으로 방문했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 대해 기도하는 것은 일본 지도자로서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안장된 이후 중국과 한국은 몇 년간 이곳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나는 앞으로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사를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또 최근 논란이 된 ‘침략 해석’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나는 한번도 일본이 침략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침략에 대해 얼마나 잘 정의하느냐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북한의 도발 위협 등을 언급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는 외국의 다른 묘역들과는 전혀 다른 시설”이라며 “전범들을 참배하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법인시설로 정치인들이 이를 참배하는 것은 정경 분리 원칙인 일본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자민당 “확정된 사실만 교과서에 싣겠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교과서에 이른바 ‘확정된 사실’만 기술토록 하는 방안을 7월 참의원(상원) 선거 공약에 넣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이견’을 제시한 자민당 정권이 이 방안을 확정해 시행할 경우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사를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는 이유로 삭제토록 하는 등의 ‘교과서 왜곡’에 나설 우려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의 교과서검정 특별부회는 전날 ‘일부 역사 교과서의 편향적인 기술을 시정한다’는 명목으로 ‘확정된 사실 이외에는 교과서 본문에 기술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당의 참의원 선거 종합정책집인 ‘J파일’에 명기하기로 했다. 산케이신문은 자민당 방침에 걸릴 ‘미확정 사실’의 예로 일제의 대표적 만행 사건 중 하나인 난징(南京) 대학살(1937년 12월∼1938년 1월)의 사망자 수를 들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주장하는 ‘30만명 사망설’이 일부 교과서에 실려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다만 특별부회는 교과서 집필자의 재량을 전면적으로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교과서 본문이 아닌 참고자료 등에 특정 사건과 관련한 이견을 소개하는 것은 인정하기로 했다. 특별부회는 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배려할 것을 요구하는 ‘근린제국 조항’에 대해서는 지난해 중의원(하원) 선거 공약과 마찬가지로 ‘수정한다’는 입장을 정책집에 싣기로 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 우경화에 담긴 심리/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열린세상] 일본 우경화에 담긴 심리/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침략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아베 총리의 망언 이후 일본 정치권은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나서 아베 총리의 망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아베 정권은 한·일 관계의 악화가 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뭇매를 맞고도 최근 아베 정권의 핵심 간부가 식민지 지배와 주변국에 대한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서 ‘침략’이라는 표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이어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망언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미국의 여론조차 일본에 대한 비난을 거세게 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베 정권의 행동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아 황당하기 그지없다. 올 초만 해도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제일 먼저 특사를 보냈고, 자민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주최하는 것을 연기하는 등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필요하다는 전략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아베 총리가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작심을 한 듯이 망언을 쏟아내고, 일본 정치권도 일제히 이를 옹호하는 망언들을 이어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현재 아베 정권의 행동을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선거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또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헌법 개정과 집단적인 자위권 해석 변경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과거사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먼저 제기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베 망언 이후 우익 신문인 산케이신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 매스컴들이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을 질타하는 점을 상기하면 결코 망언이 지지 표를 확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본 보수 세력의 망언을 허용하는 정치적인 상황과 우익이 갖고 있는 심리가 서로 상승작용하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전후 체제는 천황제가 지속되면서 제국주의 청산이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현재 일본 정치권은 양심 세력이 없어지면서 전후 금기시됐던 우익적인 사상이 여과 없이 표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일부 보수 세력들 사이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아시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리에 아키라 교수의 지적처럼 전전(戰前)의 일본 외교는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본 국익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기에 세계의 보편주의 사상과 철학은 통용되지 않았다. 즉 제국주의 당시 일본의 보수 세력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일본 국익을 위해 아시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고려는 도외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까지 이어져 일부 보수 세력은 제국주의 전쟁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베 정권의 ‘전후 체제 탈각’ 노력에는 이런 심리가 근저에 깔려 있기에 주변 국가들과의 충돌은 필연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 우익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심리적 배경에는 한국은 무엇을 해 주어도 항상 불만이라는 것과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서로 결착을 보았음에도 한국은 다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펴져 있다. 이를 선거에서 악용하려는 것이 아베다. 아베는 선거에서 한국과 중국에 과거사에 대해 양보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과도한 요구’뿐이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 결과 일본 정치권에는 동북아 국가들이 과거사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면 할수록 반성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항변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건전한 시민 세력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일본의 미래를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아베 총리의 발언과 삼국유사

    [최동호 새벽을 열며] 아베 총리의 발언과 삼국유사

    일본 아베 총리의 좌충우돌 발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삼국유사 독후감 토론회를 찾았다. 일본 의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싸이의 젠틀맨에 대해 묻는 거냐’고 되묻는 젊은이가 있다는 말을 들은 터에 아직도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는 게 대견해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들은 진지하게 토론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 인식은 상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베 총리가 대의를 망각하고 소의를 위해 발언하고 있다는 상식적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 총리가 왜 그런 발언을 계속하고, 일본 국민들 상당수는 왜 그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는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아베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입장에서 일방적인 비난이나 항의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침략의 정의는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자신은 정치가로 그 해석은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아베 총리는 발언했다. 그의 이 발언에는 분명한 목적이 내포돼 있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육성하겠다는 것, 통화를 무제한 방출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수출을 늘려 일본 경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그가 얼마나 강하게 작심하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미국에서 일본의 극단적 우경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제기되기 시작한 지난달 말 아베 총리는 발 빠르게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나섰다. 이는 그동안 일본이 치밀하게 준비한 국제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타이완과 러시아를 잇는 국제전략은 중국과의 영토분쟁에서 물러서지 않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일 것이다. 북에서 핵 위협을 극대화하자 이를 빌미로 평화헌법을 폐기할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적 후원자였던 미국이 한국과 밀착하자 그 틈새를 일본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20세기 초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벌이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정치군사집단이었다. 한반도 식민 지배에 만족하지 않은 일본은 중국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중일전쟁(1937)을 촉발하고 나아가 미국과 태평양전쟁(1941~1945)을 일으킨 나라다.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역사의 왜곡뿐 아니라 전쟁도 불사하는 나라다. 역사교과서 왜곡으로부터 시발된 일련의 사태는 임진왜란(1592~1598) 이후 일관되게 진행된 일본의 정치적 책략의 하나다. 여기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해답은 자명해진다. 일본은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일부를 변조·왜곡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 왔다. 이미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 가야지역에 진출해 일본의 지방정부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1980년 천관우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의 노력으로 그 허구성이 대부분 밝혀졌지만 아직도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하고 그러한 역사 해석은 아베 총리가 말하는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제공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젊은 세대의 역사인식 부재다.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다. 한국사 교육은 세계화의 걸림돌이 아니다. 다민족 국가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나 동북아 정세 파악을 위해서나 한국사 교육은 필수적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과거를 부정하거나 모르는 민족과 국가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아베 총리는 우리에게 한국사의 참다운 길과 그 맥락을 깊이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는 살아 있는 교사다. 한국사를 제대로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아베 총리의 생생한 교훈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을까 두렵다.
  • 美 언론 “아베, 나치 유니폼 입은 것과 같다”

    美 언론 “아베, 나치 유니폼 입은 것과 같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차세계대전 당시 악명을 떨친 관동군 731 세균전 부대를 연상시키는 비행기에 올라탄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2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 히가시 마쓰시마시의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해 곡예비행단 ‘블루 임펄스’를 시찰하면서 ‘731’이라는 편명이 적힌 훈련기의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 포즈로 사진을 촬영했다. <서울신문 5월 13일자 25면> 미국에 본부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13일(현지시간) ‘아베가 우익 정권을 위해 731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단순한 숫자 이상인 731과 아베의 행복한 표정이 함께 담긴 이 사진은 일본 우익이 (침략 역사 왜곡에) 더는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의 정치·외교 정보지 넬슨 리포트도 “(731이라는 숫자가 전면에 부각된) 아베의 이 사진은 독일 총리가 ‘재미로’ 나치 친위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는 것과 동급”이라며 “독일에서는 (나치 유니폼 착용 등이) 불법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도덕적 반감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역사왜곡’에 日보수대연합 균열

    ‘역사왜곡’에 日보수대연합 균열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돌출 발언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 헌법 개헌을 위한 연대 대상으로 거론됐던 일본 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 공동대표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아 보수연대가 깨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당내의 불협화음은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지난 12일 기자단에 “무라야마 담화 중 ‘침략’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해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이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뿐만 아니라 고무라 마사히코 당 부총재,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까지 나서서 비판하는 등 파문 진화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신조 내각의 각료들도 “일본군 위안부는 필요한 제도였다”, “주일 미군이 풍속업(매춘)을 좀 더 활용해 주면 좋겠다”, “인간, 특히 남자에게 성적 욕구 해소가 필요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14일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을 대표하는 사람의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성인 이나다 도모미 행정개혁상도 “위안부 제도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시모무라와 이나다가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왜곡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이런 인사들조차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을 비판한 것은 역사 인식 논란이 더 이상 국내외에 확대되는 것을 피하려는 아베 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역사 인식에 대한 망언으로 한국과 중국의 공분을 샀던 아베 총리 자신도 최근 바짝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96조 개헌을 쟁점으로 삼아 참의원 선거를 치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한 TV 프로그램에서 “96조에 대해 국민적인 논의가 심화됐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발언하고 나설 정도다. 이는 자민당 정권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신중을 기하기 위한 태도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 보수층과 여성층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속셈인 셈이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유신회 대표, 아베 침략정의 지지… “전쟁 중 위안부 필요했다”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망언을 일삼은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번에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주장을 두둔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13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오사카 시청에서 취재진에게 일본의 과거 전쟁에 대한 역사인식과 관련, “침략에 학술적인 정의는 없다는 것은 총리가 이야기한 그대로다”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서도 “그 정도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어 “왜 일본의 종군 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 당시는 세계 각국이 (위안부 제도를) 갖고 있었다”면서 “폭행, 협박을 해서 납치한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했다. 앞서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해 8월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며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하시모토 시장은 또 아베 내각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정치인은 외교적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등 역사 인식에 있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전쟁 혹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여성이나 약자의 인권을 짓밟고 성노예화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하시모토의 망언은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희생자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초 국가와 군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 같은 범죄를 자행했다고 스스로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며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인들이 역사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 의회조사국이 미·일관계 보고서에서 자신을 ‘강경한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 데 대해 “우리나라의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며 “정확하게 이해되도록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의 입장을) 발신하겠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자민당 공약도 한발 물러서 ‘헌법 96조 개정’ 명시 안한다

    日자민당 공약도 한발 물러서 ‘헌법 96조 개정’ 명시 안한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서 헌법 개정과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이견이 분출하고 있다. 자민당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 공약에 개헌 발의 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을 명시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했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 공약을 담은 종합정책집 원안에 ‘개헌안의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한다’는 표현을 넣어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 때 공약한 내용을 답습하기로 했다. 당초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은 헌법 96조 개정을 참의원 선거 공약의 핵심으로 내세울 방침이었으나 최근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이 신중론을 내세우고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자 핵심 쟁점화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내에서도 헌법 96조 개정에 대해 이견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일 열린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 회의에서는 96조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국민이 이해하는 상태에서 개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과 ‘헌법의 구체적인 내용 개정에 앞서 개헌 절차 규정인 96조 개정부터 진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대론도 제기됐다. 한편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후쿠이시에서 취재진에게 무라야마 담화와 관련, “나 자신은 ‘침략’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무라야마 담화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무라야마 담화 중 ‘침략’이라는 표현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다카이치 정무조사회장은 앞서 NHK 프로그램에서 아베 내각이 태평양전쟁 전범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결과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베 신조 총리의 국가관, 역사관은 (역대 내각과) 다른 점도 있다”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미국도 ‘극우 아베’에 우려

    미국도 ‘극우 아베’에 우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에 관한 발언이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나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아베 총리의 극우적인 행동에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마저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미·일 관계 보고서’에는 아베 총리의 국수주의적 발언과 행보가 주변국들과의 외교 갈등을 불러오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해칠지 모른다는 지적이 곳곳에 언급됐다. 33쪽에 이르는 보고서는 지난 1일 마크 매닌 등 4명의 아시아 전문가와 국제 무역·금융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보고서는 미국 상·하원의 외교담당 의원들에게 제출된 상태다. CRS는 보고서에서 “많은 분석가들은 아베 총리의 2기 정부가 지역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며 “동아시아 지역의 무역 통합을 해치고 지역 안보 협력을 위협하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침략의 정의와 관련해 “(1974년) 유엔총회가 침략의 정의에 대해 결의한 것은 안보리가 침략 행위를 결정하기 위한 ‘참고’ 사항”이라며 “(유엔 안보리의 침략 행위를 판단하는 권한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침략인지 여부는)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밝혔다. 유엔 총회는 1974년 침략을 ‘다른 국가의 주권, 영토 보존,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행사’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를 ‘참고’ 사항이라고 강변하면서 다시 한번 침략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진심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 의회의 보고서는 일본 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일자 석간에 ‘총리의 역사 인식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 의회 조사국이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미국 의회가 아베 총리를 강경한 국수주의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미 의회 조사국이 아베 총리를 ‘강경한 민족주의자’로 평가한 데 대해 “오해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압박·참의원 선거 속도조절용?

    美 압박·참의원 선거 속도조절용?

    최근 잇따라 역사인식 문제를 일으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일 침략 정의를 둘러싼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한·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한 미국의 압력과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속도 조절에 나서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아베 총리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 정의와 관련해 “학문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어 절대적인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했던 것으로 정치가로서 (이 문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3일 참의원 답변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먀 담화와 관련,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내각은) 아시아 제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과거 내각과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와 역사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넘어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미국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또 가미 도모코 참의원 의원(공산당)이 ‘정부가 조사한 범위 안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 문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증거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의에 대해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할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정부 답변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잇단 과거사 해명 발언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과거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움직임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사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에 대응하고 북한 도발을 억지하려는 미국이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따른 한·일 간의 갈등을 우려해 일본에 ‘옐로 카드’를 꺼내 든 점도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세종연구소의 진창수 일본연구센터장은 “미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신사참배·역사왜곡 日총리·의원에 항의서

    일본 극우 의원 연맹에 대응하는 초당적 여야 의원 모임이 7일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역사 왜곡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에게 보내는 항의서를 채택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은 이날 국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일본 각료와 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사과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승인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항의서를 채택했다. 이들은 항의서를 외교부를 통해 일본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또 일본 극우 의원모임인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의원모임’에 양국 의회 간 공개토론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 모임은 해마다 야스쿠니 집단 참배를 되풀이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해,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새누리당 48명, 민주당 46명, 진보정의당 1명 등 여야 의원 9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창립총회에서 새누리당 원유철·김을동 의원, 민주당 강창일·유기홍 의원을 공동대표로 추대하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이재오 의원, 민주당 정세균·문희상 의원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태환·길정우 의원 등 한·일의원연맹 관계자 3명은 이날 일본을 방문, 연맹의 일본 측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 등과 도쿄 도내 한 호텔에서 만나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 등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日 관방 “고노담화 수정 언급한 적 없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사과한 고노 담화 수정론에 대한 봉합에 나섰다. 아베 정권이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기존 정부의 방침과 기조를 같이한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7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해 “수정을 포함한 검토를 거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노 담화 수정이 일본 국익을 해칠 것이라는 토머스 시퍼 전 주일 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해 질문받자 이같이 답하고 “아베 정권은 이 문제를 정치·외교문제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현 단계에서 고노 담화 수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시퍼 전 대사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관계 심포지엄에서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경우 “미국에서의 일본 국익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경선 과정에서 “일본이 고노 담화 때문에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며 담화 수정 의사를 밝혔다. 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제의 침략을 부정하는 듯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비판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사설과 관련해 “일본은 한때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 국민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고 운을 뗐다. 기시다 외무상은 이어 “지금까지 정부는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재차 통절한 반성과 진정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고, 모든 피해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해 왔다”며 이에 대해 “아베 총리도 같은 인식”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사설에서 “일본은 왜 그렇게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라며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바 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