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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존엄 뺏고도 망언… 日 책임져야”

    “여성 존엄 뺏고도 망언… 日 책임져야”

    무라야마 도미이치(90) 전 일본 총리는 12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여러 가지 이상한 망언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일본이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방한 이틀째인 이날 정의당 초청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한·일 관계 정립’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일본 국민 중에서도 (일본 정치권 등 일부 인사들이) 왜 이런 망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국민 전체로는 그들의 망언에 동의하지 않고, 일본이 나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 국민들도 이런 점을 인식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어 “어제 한국에 입국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보니 좀 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그에 대해 반성한 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신이 총리였던 1995년 8월 15일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를 준 것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일본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재 ‘망언의 주범’으로 지목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겨냥해 “아베 총리는 일본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하고 실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압박했다. 이어 “일본 국민 전체가 이를 계승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담화를 부인하는 각료가 있다면 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는 또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양국 정치인들이 이 공동선언 정신에 입각해 협력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강연이 끝난 뒤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독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이 섬들이 서로를 위해 좋게 활용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대화를 통해 주변국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양국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빨리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면서 “양측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면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형언할 수 없는 잘못...”무라야마 전 총리, 90세 노정치인에 경배를...”

    형언할 수 없는 잘못...”무라야마 전 총리, 90세 노정치인에 경배를...”

    형언할 수 없는 잘못 무라야마 전 총리 12일 오후 인터넷에서는 생소하게도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이 주요 검색어로 등장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90) 전 일본 총리가 일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형언할 수 없는 잘못” 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형언할 수 없는 잘못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내 네티즌들은 왜 그와 정반대인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됐는지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방한 이틀째인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한일관계 정립’ 강연회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어제 한국에 입국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보니,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내에서) 여러 이상한 망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부끄럽다”며 “일본 국민 대다수는 저희가 나빴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 국민들도 이 점을 인식해 달라”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신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와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을 담아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를 일본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표명한 바 있다”며 “이를 존중하며 그대로 실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국민 전체가 이를 계승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담화를 부인하는 각료가 있다면 각료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베 총리도 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담화를 발표할 때에도 만일 부결되면 사퇴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며 “발표 후 일본 내 일부에서 ‘매국노’라는 비판까지 들었지만, 누가 매국노인지 반문하고 싶었다. 이 담화는 일본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젊은 세대 중에는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윗 세대가 이들에게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역사교육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평화 헌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라야마 전 총리의 형언할 수 없는 잘못 발언에 대해 네티즌들은 “형언할 수 없는 잘못, 상당수 일본인은 무라야마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이렇게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형언할 수 없는 잘못 발언한 무라야마 전 총리 장수하세요” 등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위안부 할머니 손 잡은 日 전 총리의 양심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그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일본 전·현직 총리 중 위안부 피해자를 만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할머니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는 무라야마 전 총리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감사해 했다고 한다. 과거 겪었던 고통과 한(恨)이 얼마나 컸으면 응당 일본으로부터 사죄받아야 할 위안부 할머니들이 되레 무라야마 전 총리의 위로에 고마워했겠는가. 무라야마 전 총리는 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국회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은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기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위안부 망언에 대해서도 “정말 부끄럽다”고도 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서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국수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아베 총리를 향해 ‘무라야마 담화’ 계승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그가 총리 시절인 1995년 과거 일본의 주변국 침략을 사죄한 담화다. 그의 이런 발언을 보면서 일본에도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진 양심 있고 용감한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갖게 된다. 사실 한·일 두 나라가 과거사 및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에 보여준 그의 이 같은 일련의 행보는 다른 일본 정치인들과 너무나 뚜렷하게 대비된다. 최근 중국 난징 문서보관서에 보관돼 있던 위안부 관련 문건이 속속 공개되고 있는데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위안부는 없었다”는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최근 치러진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한 극우 성향의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이 20대 유권자층의 높은 지지 덕분에 2위에 오른 것을 보면 전후 일본의 젊은 세대들마저 아베의 우경화 정책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바란다면 스스로 군국주의자를 자처할 게 아니라 무라야마의 담화를 계승, 발전시키길 촉구한다. 90세 노() 정객이 일본의 ‘마지막 양심’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귀신잡는 해병대, 미국 해병대와 맞붙어 보니…

    귀신잡는 해병대, 미국 해병대와 맞붙어 보니…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8개국이 참여하는 인도적 연합훈련인 ‘2014년 코브라골드’ 훈련이 11일 시작됐다. 코브라골드 훈련은 무력 침략국에 대응한 다국적군 군사활동 수행과 분쟁 종식을 위한 각종 작전 절차를 익히는 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다. 미국 태평양사령부와 태국 군사령부의 공동 주관으로 1981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 미국, 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등 8개국에서 함정 10척과 병력 7800여명 등이 참가한다. 한국은 해군 170명, 해병대 216명 등 병력 380여명과 2600t급 상륙함(LST) 향로봉함, 상륙돌격장갑차(KAAV) 1개 소대(8대) 등으로 구성된 훈련전대(전대장 박양순 대령)를 파견했다. 오는 21일까지 태국만 일대에서 해상공급, 전술기동, 상륙돌격, 야외전술 등이 진행된다. 한국군은 연합 고공강하, 해안침투, 타격 훈련 등 활동을 벌이게 된다. 특히 해병대는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과 모기, 전갈, 뱀 등 극한의 상황에서 미국, 태국 등의 해병대와 함께 실사격, 급조폭발물 처리, 도시지역 전투 등을 실시하게 된다. 정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코브라의 피를 마시고 전갈, 벌레 등을 먹는 등 가혹한 체험도 해야 한다. 최정예 군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해병대의 특성 때문에 서로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기 위해 치열한 전투 능력과 무술, 담력 등 경쟁을 벌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시아가 G2를 대하는 자세] 中과 밀착 외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새해 첫 정상회담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엄중한 죄행’, ‘항일승전 기념식 공동 개최’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일본을 겨냥한 공동 대응에 나서 주목된다. 7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소치 동계올림픽 참석을 위해 전날 러시아에 도착한 시 주석은 회담에서 양측이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치르기로 약속한 점을 상기시키며 “이 행사를 함께 잘 치러 역사에 새기고 이를 후인들의 경계로 삼자”고 말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2015년 세계반파시스트 전쟁 및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활동’을 함께 치르기로 합의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이런 언급에 대해 “소련 등 유럽 국가들에 대한 나치 세력의 침략과 중국 등 아시아 피해국 인민들에 대한 일본 군국주의의 엄중한 죄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노력해 행사를 잘 치르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이 항일승전 기념행사의 공동 개최를 다시 강조하고 푸틴 대통령이 여기에 ‘일본 군국주의의 엄중한 죄행’까지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선 것은 양국이 앞으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적극적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양측은 또한 한반도 문제와 우크라이나 정국 위기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밝혔다. 양측은 이날 지중해에서 시리아 화학무기 해체를 위한 해상운송 연합작전을 수행 중인 러시아의 핵추진 미사일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함 함장 및 중국의 호위함인 옌청(鹽城)함 함장과 각각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도 연출해 군사협력 강화도 시사했다. 올 5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가을에는 베이징 근교에서 APEC 회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두 정상의 밀착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과거 동맹 관계까지는 아니어도 미국의 전략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상호 신뢰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외교안보 현장] 주한 日총괄공사 정보통 가고 지한파 오는데…한·일 관계 개선 시그널?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에 이어 주한 일본 대사관의 ‘넘버 2’인 구라이 다카시 총괄공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을 것 같다. 그가 지난해 우리 외교부에 초치된 횟수는 모두 12차례나 된다. 지난해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발언부터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까지 주요 사건마다 그는 일본 정부를 대표해 우리 정부의 항의를 듣곤 했다. 매달 한번꼴로 그의 경직된 얼굴 사진을 우리 언론 지상에서 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런 구라이 총괄공사가 지난 5일 주러시아 공사로 이동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2012년 3월 한국에 부임한 지 2년여 만이다. 그는 사실 러시아에서 오래 근무해 왔고 일본 외무성 내에선 ‘정보통’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국어도 잘하지 못하는 그가 한국에 부임한 것과 관련해 2012년 6월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이 주 임무였다는 풍문도 돌았다. 그 자신에게도 불행한 시기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그의 한국 체류 기간 동안 한·일 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났고 양국 기류도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달 말 벳쇼 대사의 관저에서 열린 구라이 총괄공사의 환송 만찬 때다. 그 자리에는 양국 외교관들이 참석했지만 내내 술잔만 주거니 받거니 했을 뿐 한·일 관계나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거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환송연에서 얼굴 붉힐 일은 서로 하지 말자는 이심전심이었을까. 역사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아베 총리의 도발로 한국과 일본의 고위급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양국에 주재하는 외교 채널 간에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 주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구라이 총괄공사의 후임으로 6일 임명된 미치가미 히사시 현 주한 일본문화원장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 미치가미 신임 총괄공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한국 문화에도 밝은 일본 외무성 내 ‘서울 스쿨’ 인맥이다. 한국에서만 세 번째 근무해 지한파라는 소리도 듣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일본문화원장인 그를 총괄공사로 내세운 것을 한국에 대한 관계 개선 의지의 시그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야심은 바뀌지 않겠지만….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재미 더한 팩션 사극인가 팩트 빠진 역사 왜곡인가

    재미 더한 팩션 사극인가 팩트 빠진 역사 왜곡인가

    “실제 역사를 지나치게 무시했다.” “팩션 사극이니 그저 재미로 보자.”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기황후’는 시청률 25%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극 자체로만 본다면 액션과 궁중 암투, 달달하고 애절한 로맨스가 버무려진 재미있는 드라마이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실제 역사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한 점은 꾸준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기황후’의 힘은 풍성한 이야기와 빠른 전개에 있다. 주인공 기승냥(하지원)이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남장을 한 채 살아가며 고려 세자 왕유(주진모)와 원나라 황태제 타환(지창욱)과 만나는 초반부터 승냥이 원나라 황실로 들어가 타환의 후궁이 되는 중반까지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승냥-왕유-타환의 삼각 로맨스와 승냥과 황후 타나실리(백진희)의 대립, 원 황실의 암투 등 이야기거리가 넘친다. 특히 최근에는 승냥과 타나실리의 대립이 본격화하면서 박진감을 더하고 있다. 궁녀인 승냥이 왕유의 아이를 낳았지만 타나실리가 그 아이를 데려다 자신의 아이인 양 키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승냥은 타환의 후궁이 됐고 온갖 계략으로 타나실리에게 맞선다. 점차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힘도 강하다. 지난 4일 방영된 28회는 시청률이 25.3%까지 치솟았다. 특히 연령별 시청률은 30~50대 여성(15.8~23.4%)과 40~50대 남성(13.3~13.7%, 이상 닐슨코리아 전국기준)에서 높았다. ‘기황후’의 높은 시청률은 주로 중장년층의 지지를 업은 결과다. 그러나 드라마의 재미만으로 모든 논란을 덮지는 못하고 있다. ‘팩션 사극’이라는 방패막 뒤에서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간과한 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 프로그램은 방영 전부터 기황후와 충혜왕을 미화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제작진은 “기획 단계부터 역사적 인물에서 일부만 따와 허구의 인물을 섞는 팩션으로 구상했다”고 해명했다. 그 외에도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무리하게 바꿔놓은 흔적이 적잖다.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 설정이 대표적인 사례. 고려왕은 원나라 장수에게 고초를 겪고 고려인들은 원나라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끌려간다. 그러나 실제 원의 부마국(사위의 나라)이었던 고려는 속국처럼 낮은 지위가 아니었다. 기황후의 일대기도 마찬가지. 승냥이 어릴 때 원나라 장수의 활에 맞아 죽은 어머니는 사실 그가 황후가 된 뒤 대부인 작위를 받고 고려에서 호사를 누렸다. 세부적인 사실관계에서의 오류도 지적된다. 시청자들은 8세기에 멸망한 돌궐이 드라마에서는 14세기에 원나라를 침략하고, 타나실리와 승냥이 외우는 여성 교훈서 ‘내훈’(內訓)이 중국 명대와 조선시대에 쓰였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최고 권력자의 사랑을 얻으려는 여인들의 궁중 암투는 ‘장희빈’, ‘장녹수’ 등에서 익히 봐왔던 것”이라면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전개가 드라마의 유인책이 됐던 작품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시대와 인물이었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됐겠지만 역사적 사실관계를 자의적으로 가공하면서까지 기황후라는 인물을 왜 지금 다뤄야 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드라마에서는 기황후를 드라마로 소환한 작가의 목적의식이 명료하게 설명되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씨줄날줄] 가미카제의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아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등 그의 명작은 국내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다. 하지만 그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는 많은 실망을 안겼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인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호리코시가 만든 자살 폭탄 비행기 제로센에는 적지에 갔다가 귀환할 연료를 아예 싣지 않았다. 조종사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살아서 돌아오면 안 되는 운명이었다. 죽음의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의 나이는 불과 17~24세. 한국인 11명을 포함해 3000여명의 젊은이들이 특공대원으로 공중에서 산화했다. 가미카제는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10월 필리핀 전투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필리핀 주둔 일본 공군 사령관 오니시 다카지로는 미군의 공세에 대처하기 위한 논의를 거듭해도 미군을 이길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자 입을 열었다. “폭탄 250㎏을 탑재한 전투기를 미군 함대에 충돌시켜 동반자살을 감행하자”는 제안이었다. 자살 특공대의 이름은 13세기 천하무적 칭기즈칸의 일본 침략을 물리쳐 줬다는 태풍, 신의 바람 ‘가미카제’(神風)로 붙여졌다. 가미카제의 마음은 어땠을까. 1945년 4월 12일 전사한 하야시 이치조는 “한발 먼저 천국으로 갑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기도해주세요. 어머니가 가시는 곳으로 제가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으니까요”라고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다. 1945년 3월 29일 17세 한국인 박동훈은 “몸을 던져 황국을 지키겠다”는 유서를 썼지만 떠나기 전 “군이 가족을 책임져 준다고 해 어쩔 수 없었다. 동생은 절대 군대에 보내지 말라”며 아버지를 안고 울었다고 한다. 특공대원들은 출격하기 전날 일왕이 하사한 술을 먹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꽃다운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 몬 일본이 참회는커녕 이들의 가슴 아픈 죽음을 미화하고 나섰다. 규슈의 가고시마 현 미니미큐슈시가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서와 편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이 하다 하다 이제는 세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살 특공작전까지 왜곡하는 것을 보며 과연 그들의 역사 역주행이 어디까지 이어지려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미카제를 창설한 오니시는 종전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 자결했다. 그 의미를 일본은 아직도 모르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日 아베 총리 역사왜곡·평화 위협” 정부, 안보리 공개 토의서 직격탄

    정부가 29일 일본의 역사 도발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 왜곡과 일본군 위안부 인권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 데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설인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일본을 성토했다. 외교 장관이 나눔의 집을 방문한 건 처음이다. 오준 주유엔 대사는 유엔 안보리가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 모색’이라는 공개 토의에 열 번째 발언자로 나서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 대사는 “1차 세계대전은 편협한 민족주의와 국가 간 상호 불신이 전쟁을 촉발했다”며 일본을 동아시아 내 상호 불신과 갈등의 원인국으로 지적했다. 이어 ‘일부 일본 지도자’를 그 배후로 지목해 사실상 아베 총리를 정면 겨냥했다. 우리 정부의 유엔 대표가 공개된 다자 무대에서 타국 지도자를 정면 비판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일본 지도자의 언행은 평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유엔 목표와 정신에도 정면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안보리 공개 토의는 상임이사국 등 50여개국 유엔대사가 입장을 발표하는 공식 회의다. 일본은 이른바 ‘적국 조항’인 유엔헌장 53조와 107조에는 여전히 2차대전 전범국으로 명시돼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4월 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발언과 지난해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그가 해 온 구체적인 언행을 사례로 나열하며 역사를 기만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 대사는 지난 26일 숨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를 거론하며 “일본군 위안부는 인류 양심의 문제로 일본 정부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 및 배상, 관련자 처벌 등을 명시한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와 맥두걸 보고서, 미국 및 유럽연합(EU) 의회의 결의안 준수를 재차 촉구했다. 중국 류제이(劉結一) 유엔대사도 이날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몰역사적 언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장관은 지원사격을 위해 이날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 오신 분들의 아픔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위로했다. 윤 장관은 이어 “(일본이)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도 최근 이를 부인하며 심지어 과거의 악행마저 정당화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세션’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를 위한 국제적 지지를 요청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아베 총리에게 고함/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아베 총리에게 고함/김정현 소설가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도 몇 있습니다. 그런데 격언을 뒤집으면 ‘사람은 용서해도 죄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귀국 일본의 죄는 새삼 나열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여타의 범죄는 세월이 지나면 변명과 물타기에 진상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침략전쟁이라는 범죄는 결코 그리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증언과 역사의 기록이 명백한데다 그 죄상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혹여 이즈음 일본이 쏟아내고 있는 말 아닌 소리들이 일부 이웃의 묵인에 힘 얻은 것이라면 참으로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짓입니다. 귀국과 가까운 나라일수록 지난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데, 과연 잊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오직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흔히 일본과 비교되는 국가가 독일입니다. 같은 전범국이었고 경제발전과 국제정치의 위상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양심과 신뢰에 있어서 귀국은 발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반성은커녕 국가와 개인의 구분도 못한 채 이웃과 주변을 어지럽히고, 양식 있는 많은 세계인을 여전히 불쾌하게 하니까요. 개인은 죽음으로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만 국가의 사망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죄의 책임 없는 후손에게까지 정직한 역사를 가르치고, 지도자는 사죄의 행보를 멈추지 않습니다. 부끄럽다고 감추거나 왜곡하면 싹이 다시 돋아나올 수 있음을 주지하고, 반성의 지속으로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 먼저 하는 것이지요. 바로 독일입니다. 귀국은 어떤가요. 과연 당신의 말처럼 전쟁의 의사는 없는 건가요. 불행하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세계인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가를 이어갈 후손에 대한 교육이 정직해야 하는데 아, 당장 전후세대인 귀하부터 거짓과 왜곡의 세례를 받았겠습니다. 비극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귀하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이기에 부정직한 교육의 틀부터 깨부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귀하는 아니더라도 점점 더 큰 거짓에 물들여진 후손 중에 지난날의 참화를 반복할 어리석은 이가 곧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태평양전쟁 시기 귀국의 ‘일본제국헌법’은 통치권 총괄의 권한이 일왕에게 있음을 명시했던가요. 그럼에도 쇼와(昭和) 일왕은 전쟁의 책임을 피해갔습니다. 충성스러운 전범 대신들과 전범재판국의 타협 덕분이었겠지요. 오늘날은 어떤가요. 일본국의 상징으로 국정에 관한 권한은 갖지 않는다고 하지만, 헌법 개정의 공포 등 중요 국사에 관한 권한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귀하는 총리로서 일본의 최고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귀하의 말과 행동은 곧 일본국의 상징인 일왕에게 투영되기도 합니다. 혹여 지금 내뱉고 있는 여러 말들과 그에 대한 세계의 비난이 오직 귀하만의 일이라 여기는 것인가요. 일왕에 대한 반역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왕의 뜻이 투영된 것이라 여기나요. 그렇다면 만일의 경우 일왕께서 이전처럼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기해야 할 하나만 더 들고 마치겠습니다. 1945년 귀국의 항복 이후 중국공산당의 전범재판 원칙은 ‘죄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고 인민에게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저지른 수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사형의 벌을 받지 않았고, 안전하게 돌아갔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그처럼 정리된 명문(明文)에 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 땅에서 저지른 악행을 불문하고 돌아가는 일본인을 관대히 대했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 것을 실천한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역사를 뒤져 당장 확인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일본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중에 까닭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무례함에도 관대합니다. 함께하는 이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귀하가 내놓는 망언에는 분노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원죄를 짊어진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사과의 요구가 마뜩잖다고요? 국가의 반성이 지속되어야 하는 까닭은 앞에서 말했습니다. 더구나 귀국은 여태 단 한 번도 진실한 사과를 한 적조차 없습니다. 양심을 되찾기 바랍니다.
  • “아베가 참배한 요시다 연구 전무… 한국역사가 日우경화 방조한 것”

    “아베가 참배한 요시다 연구 전무… 한국역사가 日우경화 방조한 것”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들(요시다 쇼인과 도쿠토미 소호)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이 오늘 일본의 우경화를 방조하는 행위가 된다.”(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1905년 을사늑약이나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원천무효였다고 주장하면서 일제에 의해 강박된 1907년 광무 황제의 황위 이양은 유효했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들도 좀 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김명섭 연세대 교수) 2010년 한일병합조약 무효 선언을 내놓았던 한·일 지식인들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동북아역사재단에 다시 모였다. 이날 ‘2010년의 약속, 2015년의 기대’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 참석한 지식인들은 현 한·일 상황에 대한 문제를 진단하고, 제안을 내놓으면서 발전적인 양국 관계 설정을 모색했다. ‘근대 일본 한국 침략의 사상적 기저’를 주제로 발표한 이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관과 행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시다 쇼인과 도쿠토미 소호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2013년 8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대신 요시다의 묘소를 선택한 것을 한국 언론들이 ‘개인적 취향’으로 판단한 것을 두고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요시다 쇼인은 기토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한국 침략에 수훈을 세운 인물들의 스승”이라면서 “그는 존왕양이(尊王攘夷)와 정한론(征韓論)을 일본이 나아갈 길로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정한론은 1870년대 일본정계에 일었던 조선 침략론을 일컫는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지난해 말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것에 대해서는 “기습적인 기획이 아니라 정확한 순서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요시다의 묘소를 참배한 뒤 그의 가르침으로 대외 침략정책을 수행하면서 희생된 자들을 위로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가는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일본 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평론가였던 도쿠토미 소호를 “요시다의 팽창주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간 주역”으로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의 역사관은 팽창주의 사관을 이어 가면서 “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는 역할을 해내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김영섭 교수는 국내 역사 인식과 역사교과서의 변화를 요구했다. 김 교수는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은 원천무효라면서 1910년을 대한제국의 ‘역사적 종점’으로 설정한 현행 교과서의 서술은 논리적으로 상충될 수 있다”고 했다. 한일병합으로써 대한제국이 소멸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 한일병합조약의 영향력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토론자로 나선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는 한·일 간 ‘새로운 21세기 패러다임’을 제안하면서 “아베 정권은 20세기 전반 제국주의시대 패러다임으로 돌아가 있다. 21세기 패러다임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중, 한·미, 일·중 관계가 연동되면서 한·일 관계는 더 구조적이고 어려운 상태가 됐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다. 식민지 책임론을 가지고 논쟁하면 끝이 없다. 한·일 간극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는 대상을 놓고 대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나치학살 부역’ 역사 헝가리 대통령 인정

    “아우슈비츠는 헝가리에서 수백㎞ 떨어진 먼 곳이지만, 헝가리 역사의 일부이다.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50만명에 가까운 우리 유대인 동포가 숨졌고, 당시 헝가리 정부는 나치의 학살에 부역했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일을 하루 앞두고 이례적으로 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가 독일 나치의 인종 말살을 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침략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아데르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70년 전 독일에 점령됐던 헝가리는 6개월 만에 게토(유대인 격리구역)를 완공하고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면서 “히틀러와 헝가리 파시스트들의 계획대로 전쟁이 진행됐더라면 헝가리 유대인들은 완전히 몰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44년 3월 독일에 점령된 헝가리 정부는 자국 내 유대인 43만 7000여명을 수용소에 몰아넣었고, 이들 대부분은 학살됐다. 강제 이주는 그해 7월 중단돼 유대인 수만 명이 겨우 학살을 면했다. 의회에서 간접 투표로 선출되는 헝가리 대통령은 행정적 실권은 별로 없지만 국가를 대표해 상징적 의미가 크다. 더욱이 중도 우파 집권당이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의 피해만 앞세우고 유대인 학살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과거사 인정이 더 돋보인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행정부는 최근 헝가리가 독일에 점령된 것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울 계획을 발표해 유대계와 지성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루마니아 태생의 저명 미국 역사가인 랜돌프 브라함은 대통령 성명이 나오기 직전에 헝가리로부터 받은 공로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1월 27일은 나치 정권의 가장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날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꿈에 앞서 할 일/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꿈에 앞서 할 일/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외교가 본격화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추가는 안보리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며 현행 국제협력체제의 기본 틀인 유엔 헌장의 개정을 필요로 한다. 1945년 출범한 유엔은 회원국이 51개국에서 193개국으로 약 4배 늘어났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안보리 개편 논의가 1993년 이래 20여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지역별 입장 차가 워낙 커 단시일 내 합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특히 상임이사국 개편은 더욱 요원하다. 안보리는 유엔 헌장에 따라 막강한 권위와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분쟁 해결의 권고와 비군사적 조치는 물론 군사적 조치까지도 취할 수 있다. 게다가 회원국을 구속하는 결의까지 채택할 수 있으니 유엔 안보리는 그야말로 국제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다. 안보리는 상임 5개국과 비상임 10개국의 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임이사국은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과 달리 그 지위가 영구 지속되며,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다. 상임이사국 증설은 국제정치상 힘의 균형을 변화시킬 중대사안인 만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비상임이사국 증설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검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안보리 이사국과 같은 중요한 국제적 역할을 논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요건이 바로 높은 신뢰와 도덕성이다. 이 요소들은 해당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지만, 그 나라가 그런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경우의 행동과 기여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는 식민지배와 침략역사를 부인·미화하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퇴행적 행보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크다.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뒤흔들려는 움직임이나, 미국 내 위안부 소녀상 철거 시도 등은 일본의 오도된 역사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으로 인해 아픈 역사를 강요당한 인근국들에는 우려스럽고 크게 공분을 살 일이다. 더구나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도 지난해 12월 26일에 있었던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공개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이달 중순 ‘위안부법’의 의회 통과와 오바마 대통령 서명을 통해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의 준수를 촉구한 사실 등은 이러한 문제가 안고 있는 역사적 책무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신뢰 회복은 대규모 개발원조나 경제기술 지원과 같은 돈 보따리 외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꾸준하고 진심 어린 노력으로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같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과거사의 멍에를 떨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 온 과정은 대조된다. 지난해 11월 24일 타결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6개국, 즉 ‘P5+1’과 이란 간 핵 협상 시 독일은 상임이사국과 대등하게 교섭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희망하는 나라는 이렇듯 먼저 역사를 직시하고, 진실한 반성과 사과, 화해를 통해 신뢰와 도덕성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인근 나라들의 신뢰가 더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외신 홍보술/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외신 홍보술/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지난 2012년 센카쿠열도 국유화 사건 당시 중국은 폭력적인 항일 시위로 비난을 자초했지만 신사참배와 관련해선 폭력 시위 대신 일제의 침략 역사를 국제 이슈화하고 있어요. ‘안중근 기념관’ 개관 사업도 일본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려는 선전이에요. 중국이 똑똑해지고 있어요.” 최근 중국 하얼빈(哈爾濱) 기차역에 들어선 ‘안중근 기념관’에서 만난 한 일본 여성 특파원은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두고 중국 선전 스타일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중국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로서 중국의 대외 홍보 수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과 중국이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깜짝’ 발표하면서 기념관 취재가 갑작스러운 출장이었음에도 예상외로 순로롭게 진행된 게 비근한 예다. 기념관 책임자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하얼빈시 외사판공실은 불과 20분 만에 담당자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팩스로 취재 요청서부터 보내라고 요구하던 고압적인 태도가 일상적인 것임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기념관은 역사를 직시하기 위한 의도이며, 한국과 중국은 항일투쟁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대가 강한 우호국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 소속 외신기자신문센터(IPC)가 외신 기자들에게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일본 관동군이 주둔한 동북지역 침략 현장 취재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같은 예다. 이례적으로 취재 등록 마감이 끝난 이후에 신청한 기자들까지 모두 데려갔다. 출장은 일본군이 세균 무기를 개발해 연합군 포로를 실험하던 포로수용소 유적지, 일제가 중국인 3000여명을 몰살시킨 핑딩산(平頂山) 학살사건 기념관 등 일제 만행을 공개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 밖에 각국 주재 대사들은 해당 국가 매체에 일본 비난 기고를 내고 있고, 일제 만행을 입증하는 일본 관동군 관련 문서도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 중국의 저돌적 공세 탓인지 외교부 정례 브리핑 때마다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던 일본 기자들은 요즘 침묵하고 있다. 한 주중 일본 특파원은 이와 관련, “중국 대변인의 멘트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본 비난 무대를 만들지 않으려고 질문을 자제하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해 8월 선전·사상공작회의를 주재하면서 ‘대외선전(對外宣傳·외신홍보)의 일대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세계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범주, 표현을 만들고 중국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여 중국의 목소리가 세계에 전파되도록 대외선전을 치밀하게 하라”고 말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짜서 형세에 맞게 움직이는 게 선전의 예술”이라고도 했다. 중국의 대일 비난전을 보고 있으면 시 주석의 주문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차선출해’(借船出海·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다)라는 말에 빗대 외신을 이용한 중국의 대외 홍보 강화를 주장한 연구가 쏟아졌지만 체제 안정 우선을 이유로 실행되진 못했다. 인권과 민주화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할 점이 많은 중국이 시 주석의 주문 대로 신사참배 이외의 문제에서도 외신을 상대로 홍보의 예술을 구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jhj@seoul.co.kr
  • “안중근 의사 항일 의거 알려 일제 침략의 역사 직시 의도”

    “안중근 의사 항일 의거 알려 일제 침략의 역사 직시 의도”

    “일제 침략의 역사를 회고하고 직시하려는 것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에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총설계사 겸 책임자인 쉬허둥(徐鶴東) 하얼빈시 문화·신문출판국 부국장은 20일 하얼빈 시정부 회의실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기념관의 설립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쉬 부국장은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의 항일 의거와 동양평화론을 널리 알림으로써 (일제의)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제창하고자 설계됐다”면서 “기념관 설치는 중국이 위대한 인물에 표하는 최고 수준의 예우라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기념관이 지난해 11월 시공에 들어가 불과 2개월여 만에 전광석화처럼 완성돼 개관한 것과 관련,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 표지석 설치 요청이 있은 이후 줄곧 설계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중국이 박 대통령의 요청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기로 태도를 바꿨다는 추측을 부인한 것이다. 200㎡ 규모의 기념관 내부 전시물은 중국에서 안 의사와 관련된 사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던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에서 옮겨 온 것들이다. 쉬 부국장은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안 의사의 의거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 설계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재현한 대형 수묵화 등이 걸려 있다. 모두 중국 1급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그는 기념관 개관뿐만 아니라 저격 지점인 하얼빈역 1번 플랫폼 위에 ‘안 의사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설명 문구를 눈에 잘 띄게 걸어 놓은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쉬 부국장은 안 의사가 중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한학(漢學)에 밝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항일투쟁이라는 공통분모뿐만 아니라 문화적 유대도 강하다며 양국 간 우의와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기념관에 걸려 있는 안 의사의 서예 작품은 모두 한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서 “중국 국부 쑨원(孫文)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등 중국의 옛 최고 지도자들도 안 의사의 의거를 대대적으로 칭송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의사는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영웅으로 중국인들도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다”면서 중국은 이미 2006년부터 안 의사 기념 사업을 본격화했다고 소개했다. 안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들렀던 자오린(兆麟)공원(옛 하얼빈공원)에 안 의사의 유묵비를 세웠고,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에 별도의 ‘안중근 전시실’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하얼빈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씨줄날줄]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최광숙 논설위원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安重根, 1879~1910년)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 날은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만천하에 알린 날이다. 안 의사는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여러 해 소원하던 목적을 이제야 이루게 되다니, 늙은 도둑이 내 손에 끝나는구나”라고 썼다. 응칠(應七)은 태어날 때부터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 모양의 7개 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안 의사의 아명이다. 뤼순 감옥으로 송치된 안 의사는 결국 1910년 3월 26일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며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순국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들에게 어머니는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편지를 적어 보냈다고 한다. 비록 재판 등에 참여했던 일본인들은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했지만 안 의사의 꼿꼿한 기상과 인품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토 암살 당시 함께 저격을 받은 다나카 세이지로 만주 철도 이사는 훗날 “지금까지 만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안중근”이라고 말했다. 히라이시 우지토 재판장은 “안중근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감옥의 간수로 있던 지바 도오시는 안 의사가 집필할 수 있도록 붓과 종이를 넣어주기도 했다. 이 일본인 간수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쓴 책이 바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에서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평화기구를 설립하고 나아가 공동은행, 공동화폐, 공동평화군 등을 제안했다. 한국의 자주독립을 넘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경제·군사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안 의사의 선구적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5년 전에 일찌감치 지금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제시한 것 아니겠는가.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최근 개관했다.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표지석’ 설치를 요청했는데 그보다 격을 높인 것이다. 중국이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피하면서 안중근 기념관을 통해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연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효창공원에 가면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노력으로 유해를 찾아온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묘만 있다. 안 의사 묘는 유해를 찾지 못해 비어 있다.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반지의 제왕’ 아라곤 실제 모델 ‘유골’ 발견

    ‘반지의 제왕’ 아라곤 실제 모델 ‘유골’ 발견

    영국 앵글로 족과 색슨족을 하나로 뭉쳐 사실상 잉글랜드 통일을 이룬 장본인이자 영화 ‘반지의 제왕’ 아라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알프레드 대왕(849~899년). 최근 이 전설적 인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온라인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의 1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해당 유골(골반 뼈 부분)은 최근 영국 햄프셔 윈체스터 시립 박물관 보관 상자 중 1개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 상자는 약 20년 전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하이드 애비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윈체스터 대학 연구팀에 의해 진행된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유골은 895~1017년 사이에 사망한 40대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케이티 터커 연구원은 “고대 문헌 기록상, 해당 수도원은 여러 왕족의 유골이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유골 탄소 연대 측정 시기와 가장 적합한 군주는 바로 알프레드 대왕”이라고 전했다. 만일 해당 골반 뼈가 알프레드 대왕의 것으로 증명된다면 그는 영국 고대 군주 중 실제 유골이 발견된 두 번째 왕이 된다. 첫 번째는 ‘장미전쟁’으로 유명한 ‘리처드 3세’의 유골로 지난 2012년 중부 레스터 시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알프레드 대왕은 영국 역대 왕들 중 유일하게 대왕 칭호를 받은 이다. 행정적으로 왕국을 주, 군, 10인조로 분할했고 군사적으로는 수많은 성채를 세우고 해군과 육군을 확대해 바이킹 침략을 막았다. 재판 조직을 정비하고 관습법을 집대성해 단일 법전을 편찬했으며 교육·학예를 융성시키고 스스로 라틴어 문헌을 앵글로색슨어로 번역해 문화 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사후에 전설 속 주인공으로 여러 문학 작품에 등장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반지의 제왕 ‘아라곤’이다. 한편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알프레드 대왕 유골 발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21일(현지시간) 방영할 예정이다. 사진=라이브사이언스닷컴·위키피디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반지의 제왕’ 아라곤 실제 모델 ‘유골’ 발견

    ‘반지의 제왕’ 아라곤 실제 모델 ‘유골’ 발견

    영국 앵글로 족과 색슨족을 하나로 뭉쳐 사실상 잉글랜드 통일을 이룬 장본인이자 영화 ‘반지의 제왕’ 아라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알프레드 대왕(849~899년). 최근 이 전설적 인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온라인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의 1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해당 유골(골반 뼈 부분)은 최근 영국 햄프셔 윈체스터 시립 박물관 보관 상자 중 1개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 상자는 약 20년 전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하이드 애비 수도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윈체스터 대학 연구팀에 의해 진행된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유골은 895~1017년 사이에 사망한 40대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케이티 터커 연구원은 “고대 문헌 기록상, 해당 수도원은 여러 왕족의 유골이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유골 탄소 연대 측정 시기와 가장 적합한 군주는 바로 알프레드 대왕”이라고 전했다. 만일 해당 골반 뼈가 알프레드 대왕의 것으로 증명된다면 그는 영국 고대 군주 중 실제 유골이 발견된 두 번째 왕이 된다. 첫 번째는 ‘장미전쟁’으로 유명한 ‘리처드 3세’의 유골로 지난 2012년 중부 레스터 시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알프레드 대왕은 영국 역대 왕들 중 유일하게 대왕 칭호를 받은 이다. 행정적으로 왕국을 주, 군, 10인조로 분할했고 군사적으로는 수많은 성채를 세우고 해군과 육군을 확대해 바이킹 침략을 막았다. 재판 조직을 정비하고 관습법을 집대성해 단일 법전을 편찬했으며 교육·학예를 융성시키고 스스로 라틴어 문헌을 앵글로색슨어로 번역해 문화 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사후에 전설 속 주인공으로 여러 문학 작품에 등장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반지의 제왕 ‘아라곤’이다. 한편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알프레드 대왕 유골 발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21일(현지시간) 방영할 예정이다. 사진=라이브사이언스닷컴·위키피디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귀빈 대합실 개조해 ‘그날의 의거’ 기록… “중국인도 안중근 존경”

    귀빈 대합실 개조해 ‘그날의 의거’ 기록… “중국인도 안중근 존경”

    “안중근 의사는 중국인들도 가슴 깊이 존경하는 항일 의사다.” 중국 정부가 19일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안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哈爾濱)역 내 플랫폼 바로 옆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만들었다. 기존 의거 현장에 조명이 설치되고, 의거를 알리는 안내판이 새로 세워졌다. 기념관 입구는 하얼빈역의 옛 입구 모습을 축소해 꾸몄다. 입구 외부 벽에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시간인 ‘오전 9시30분’에 고정된 대형 벽시계가 걸렸다. 이날부터 무료 개방된 안 의사 기념관의 규모는 200여㎡에 이른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 바로 옆에 배치된 안 의사의 흉상과 안 의사가 옥중 집필한 동양평화론에 대한 소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측은 동양평화론에 대해 “당시 안 의사의 구상은 특정 국가의 이익을 벗어나 지역경제공동체와 블록경제론, 공동방어론을 주장한 것이었다”는 해석을 달아놨다. 기념관에는 “안중근은 조선반도 근대사에 저명한 독립운동가로, 1879년 9월 2일 현재의 조선(북한)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그의 가족관계와 가정교육, 신앙 등에 대한 자료들도 전시돼 있다. 양쪽 벽에는 일제 침략기의 상황과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의거를 준비한 11일간의 행적이 여러 장의 그림으로 전시돼 있다. 전시물들은 대부분 중국어와 한국어로 병기돼 있다. 기념관 내에는 ‘동양평화의 창의자’라는 설명이 붙은 안 의사의 사진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기념관 안에서는 통유리창 너머로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장소를 잘 볼 수 있다. 안중근 기념관이 들어선 자리는 1930년대 일제가 이토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던 곳과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제는 안 의사 의거 현장에 이토 추모비를 세웠으나 중국 공산당이 이를 철거했다. 공산당은 추모비 자리에 안 의사 의거 개요만 적은 안내판을 세웠지만, 안 의사가 한국인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이마저도 1990년대 후반 하얼빈역 보수 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 이후 역에는 의거 현장을 표시한 바닥석만 남았다가 이번에 기념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중국은 이번에 기념관을 설치하면서 저격 현장 위에 ‘안 의사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설명 문구를 내걸었다. 기념관 관람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다. 하얼빈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식민지배 사과’ 무라야마 전 日총리 새달 방한

    ‘식민지배 사과’ 무라야마 전 日총리 새달 방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90) 전 일본 총리가 정의당의 초청으로 다음 달 방한, 국회에서 한·일 관계 해법을 모색하는 강연을 연다. 15일 정의당에 따르면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다음 달 11일 방한해 2박 3일 일정을 소화한다. 국회 방문 강연은 12일로 예정돼 있으며,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관계 개선 방안 등이 주제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199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에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와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악화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방한은 지난해 9월 일본 사민당의 방문 당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사민당 소속인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방한을 공식 요청했고 무라야마 전 총리가 지난달 이에 화답해 성사됐다. 일정은 정의당이 주최하고 한·일의원연맹,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 등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모임이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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