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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과 공포…내용 살펴보니 ‘잔인’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과 공포…내용 살펴보니 ‘잔인’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내용 살펴보니 ‘잔인’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 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은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고 있다. 이밖에 문건은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며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내용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내용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가 충격을 주고 있다.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여성 2천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일본군 문서 폭로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일본군 문서 폭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대만 “日, 역사 직시를”… 美·필리핀·인도네시아 “긍정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에 대해 각국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당한 구원(舊怨)이 여전한 국가들은 비난 수위를 높였고,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이 중요한 국가들은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15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및 대만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에서 “아베 총리가 침략으로 고통받은 이웃국가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담화를 발표했지만 전임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침략 주체가 일본이란 점을 빼고) 발언했다”고 평가한 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보다 진정성을 갖추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대만 외교부는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과거 행동을 반성하기 바란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반면 아베 담화에서 거명된 동남아 2개국 정부는 담화에 호의적이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관련 담화를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비가일 발테 필리핀 대통령궁 부대변인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담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일본이 가한 고통에 깊은 후회를 표현한 것을 환영하고,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일본의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中 “日 진정한 사과” 촉구 속 차분한 대응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과거형 사죄’와 ‘주어 없는 반성’으로 일관한 것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교활한 말장난”이라고 맹비난했지만, 중국 정부는 차분한 반응을 보여 중·일 관계 개선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4일 자정쯤 발표한 아베 담화에 대한 공식 논평에서 “역사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일본과 아시아 주변국 관계 개선의 기초가 되며 미래를 여는 전제”라면서 “군국주의 침략 전쟁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신화통신의 ‘물타기 사죄’와 차이나데일리의 ‘교활한 레토릭(수사)’ 등의 비판보다 훨씬 정제되고 차분했다. 관영매체를 동원해 국민의 반일정서를 대변했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뜻은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베이징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16일 “중국 정부가 아베 담화에 대해 차분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지난해 11월 이후 자리잡은 과거사와 지금의 중·일 관계를 분리대응한다는 중국의 입장이 더욱 선명해졌다”면서 “담화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 개선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중국 학자들도 담화가 나온 직후에는 비판으로 일관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아베 담화로 인해 중·일 관계가 악화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펑자오쿠이 교수는 “담화는 아베 총리 개인의 신념과 주변국 관계, 일본의 정치 지형 등을 고려한 대단히 복잡한 외교·정치적 산물로 ‘침략’, ‘식민 지배’, ‘반성’, ‘사죄’ 등의 단어가 부자연스럽게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담화가 불충분하다고 중·일 관계 개선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하이사회과학원 국제연구소 수비취안 교수도 “중국과 한국의 압박으로 그나마 이러한 담화가 나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일 관계는 아베 담화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실질적인 정책과 행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승전 70주년 기념활동을 통해 일본과 최대공약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위안부로 끌고 가” 계급별 오락시간까지 적혀있어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여성 2천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밝혀졌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이밖에 문건은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문건 내용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내용 자세히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내용 자세히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일본 요리점으로 꼬셔”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일본 요리점으로 꼬셔”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일본 요리점으로 꼬셔”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 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은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고 있다. 이밖에 문건은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며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王 “전쟁 반성” 아베는 ‘不戰 외면’… 반전·극우 ‘두 얼굴의 도쿄’

    日王 “전쟁 반성” 아베는 ‘不戰 외면’… 반전·극우 ‘두 얼굴의 도쿄’

    패전 70주년을 맞은 일본에서 추모 열기 속에서 반전과 반성의 목소리와 야스쿠니 집단 참배 등 국수주의 목소리가 뒤엉켜 나타났다. 아키히토 일왕은 종전 70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앞선 대전(大戰)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아베 신조 총리는 이 행사에서 “전후 70년을 맞아 전쟁 참화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의 가해 사실을 거론하지 않았고, 역대 총리가 추도식에서 언급한 ‘부전(不戰) 맹세’를 3년 연속 외면했다. 정치에 간여하지 못하는 일왕의 ‘깊은 반성’ 발언이 이날 아베 총리의 추도사나 전날 담화보다도 더 돋보였다. 일왕이 우회적으로 아베 총리의 태도를 견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왕의 이번 메시지는 일본의 가해 행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안보법안을 밀어붙여 위헌 논란을 겪는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등 현직 각료 3명과 국회의원 66명이 이날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전날 발표한 아베 담화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무색하게 했다. 아베 총리는 참배하지 않고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 특보를 통해 공물인 다마구시 비용을 냈다. 아베 총리는 “영령에 대한 감사와 야스쿠니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는 등 역시 의식과 전날 담화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했다. 야스쿠니 주변은 군국주의 세력의 집결장 같았다. 군대 보유를 주장하며 헌법 개정 주장이 담긴 유인물이 뿌려지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 보도를 선도한 아사히신문에 항의하고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목소리도 들렸다. 안보법안이 일본을 침략으로부터 지켜 줄 것이라는 내용의 유인물 등도 나돌았다. ‘일본은 침략 국가가 아니다’라는 구호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사람, 군복을 입고 행진하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반면 시민단체들의 평화 기원 집회 등은 조용하게 진행됐다. 안보법안 등에 반대하는 학자, 작가들이 많은 ‘시민포럼’은 도쿄 국회회관 등에서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전쟁 이전 정책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며 “아베의 정책이 전쟁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법학자 히구치 요오이치 도쿄대 명예교수는 “아베 정권의 방식은 인류의 지식 축적을 부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는 “안보법안이 (우리를) 70년 전으로 돌리게 하지 않도록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호소했다. 반전과 자성의 목소리는 나지막한 가운데 가해 사실은 사라지고 피해와 희생만을 부각시키며 역사 해석을 고쳐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국수주의 선동 물결이 두드러졌던 패전 70주년 날이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여성 2천명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가” 어떤 내용 적혔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여성 2천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요리점 연다고 해놓고 강제로..” 위안부 관련 문서 충격

    일본군 문서 폭로, “요리점 연다고 해놓고 강제로..” 위안부 관련 문서 충격

    ‘일본군 문서 폭로’ 중국의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서를 폭로했다. 17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는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서를 공개하면서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 등지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인 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문서를 폭로한 기록보관소는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 징용된 2000여 명 중 일부’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이 문서에는 일본군이 강제 징용된 한국여성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 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적혀있다. 공개된 문서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있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주요 쟁점인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언급했지만 이를 일본이 저지른 사실로 명시하진 않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금의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어떠한 역사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비판적 평가를 내놨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간 미결 과거사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 일본군 문서 폭로 사진 = 연합뉴스TV 캡처 (일본군 문서 폭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이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겨있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겨있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겨있나 보니?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한·일 관계, 역사와 미래의 기로에 서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시론] 한·일 관계, 역사와 미래의 기로에 서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국제정치의 영향력에 의해 5개의 분단 국가가 탄생한다. 독일, 베트남, 중국, 예멘, 그리고 한국이다. 물론 이들 국가의 분단에는 외세만 탓하기 어려운 내부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5개 국가 중 독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2차 대전 종전 이전에 모두 식민지를 경험했다. 중국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서구 국가들로부터 본 피해는 식민 상황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과 대만 관계를 체제 경쟁적 관계로 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전제한다면, 5개 국가 중에서 한국만이 아직 분단 상태로 남아 있다. 식민 상황의 종식이 통일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식민과 분단은 복잡하고 견고하게 연결돼 있다. 종전 70년을 맞이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담화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우선 모두의 평가처럼 진정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진정성 여부는 소위 ‘식민, 침략, 사과, 반성’으로 축약된 수위 조절의 차원보다 훨씬 심도 깊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베 총리의 입장 정리는 역사 인식에 관한, 향후 70년의 방향성 제시를 시도한 것으로 이해된다. 만주사변까지 거론하면서, 침략 행위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의 반성으로 ‘나름’ 충분하니 과거에 더는 얽매이지 말자는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어도 역사로부터의 단절은 불가능하다. 물론 아베 담화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우리의 국익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미래 지향적’ 스탠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물론 중국을 더 배려한 점, 미흡한 사과에 물타기 차원에서 미래를 걸치고 있는 점 등과 같은 전략을 우리는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한마디 덧붙이면 일본은 이번 담화에 대한 미국의 우호적인 평가를 처음부터 고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8·15 경축사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모습이 역력하다. ‘과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겠지만 역사로부터의 정의와 교훈은 영원한 것이니 일본이 살짝 손을 내민 미래지향적 협력에 우리 나름의 방점을 찍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언키는 어려우나 앞으로의 한·일 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양한 절차와 어젠다 세팅 방식을 통해 ‘역사와 미래’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국가 이익이 충분히 구현될 수 있도록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럴 거면 왜 지난 2년 반 동안 대일 관계를 엄격하고 어렵게 끌고 왔느냐는 내부의 비판도 제기될 수 있으니, 이 점 역시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베트남이 경험한 냉전형 통일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산업화와 현대화에 매진했다. 독일이 보여 준 탈냉전형 통일이 두려웠던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무모한 게임을 포함해 특유의 생존 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성공했지만 북한의 선택은 실패할 것이다. 우리의 선택과 전략이 지속적으로 성공해 분단 종식과 통일을 이루려면 제한적이지만 우리가 보유한 국가 자원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안정적인 동북아 환경, 한국이 국제사회에 심어 줄 ‘평화지향 국가’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의 지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정의와 교훈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의지와 공고하게 결합하고 있다. 광복 후 지금까지의 70년이 자랑스러운 성장과 성숙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듯이 앞으로의 70년은 통일된 한국의 새로운 성공 스토리로 채워 나가야 할 것이다. 아베 담화가 지닌 부족한 부분과 가능성 부분을 전략적으로 잘 분리해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새로운 한반도의 역사가 쓰이기를 희망한다.
  • [광복 70년] 냉철하게 살펴본 동북아 군사력 -가공할 일본

    [광복 70년] 냉철하게 살펴본 동북아 군사력 -가공할 일본

    일본 제국주의의 군홧발 밑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빛을 되찾은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일제의 군홧발이 물러가고 곧이어 공산주의자들의 총칼이 우리 민족을 또 한 번 유린했지만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며 세계 10위권 선진국의 문턱까지 달려왔다. 5,000만이 넘는 인구와 3만 달러에 육박하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2위의 국방예산 규모와 63만 명에 달하는 상비병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명실 공히 ‘선진국’이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65년간 전쟁이 없었고 눈부신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태평성대 속에서 국민들은 불과 100여 년 전 있었던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치욕과 일제 치하 35년간의 고통을 잊어버린 듯하다. - 일본 연이은 군국주의 부활 선언 서양 격언에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는 말이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그렇다. 100년 전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대한제국이 열강의 총칼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주변국을 침략해왔던 국가였고, 이러한 침략행위가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가였다. 일본 군국주의라을 붙잡아 놓고 있던 것은 미국과 평화헌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라는 맹수가 등장하자 미국은 일본을 붙잡고 있던 줄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고, 일본은 평화헌법이라는 족쇄를 아예 끊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패전 70주년과 관련해 3가지 의미심장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주에 일본 해상자위대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神風) 공격으로 유명했던 제로센 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복원 비행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선봉에 섰던 이 전투기는 우리나라에만 사과를 거부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했으며, 일본 태평양 침략의 상징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자존심과 같은 항공기이다. -인과관계 외면하고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만 8월 하순에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코마키 미나미(小牧南工場) 항공기공장이 있는 나고야 공항에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 ATD-X(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or-X)의 첫 시험비행 일정이 계획되어 있으며, 8월 27일에는 요코하마에 있는 전범기업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石川島播磨重工業) 조선소에서 24DDH로 명명된 항공모함 진수식 일정도 잡혀있다. 일본은 앞서 건조한 항공모함 22DDH의 함명을 독도를 관할구역으로 삼는 행정구역의 옛 지명인 이즈모(いずも)로 삼아 논란을 일으켰는데, 24DDH의 유력한 함명으로 제국해군의 상징과도 같았던 야마토급 전함 3번함시나노(しなの)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함으로 건조된 시나노는 추후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는데, 27일 공개되는 실제 함명이 시나노로 확정될 경우 해상자위대는 과거 제국해군으로의 회귀를 드러내놓고 선언한 격이 된다.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재래식 군사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재래식 군비 강화는 물론 핵무기 보유를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 지난 6일, 아베 신조 총리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추모식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자신들의 태평양 침공과 전쟁범죄, 그리고 옥쇄 전략 때문이었다는 피폭에 앞선 인과관계는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중했다. 그는 지난 19년간 역대 총리들이 매년 언급해왔던 비핵 3원칙(핵무기의 생산ㆍ보유ㆍ반입 금지)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추모식 하루 전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핵무기를 일본으로 들여올 수도 있다”고 발언한 내용과 맞물려 일본의 비핵 3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것을 시사했다.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47톤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다. 명분은 플루토늄 혼합산화물(MOX : Plutonium-uranium mixed oxide)을 연료로 사용하는 플루서멀(Plu-thermal) 방식의 신형 원자로 연료 확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보유한 전체 원전 48기 가운데 플루서멀 방식은 불과 4기에 불과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이 방식의 원자로는 추가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어 추가적인 플루토늄 소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밀어 붙이고 있다. 심지어 핵탄두 8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640kg 가량을 은닉해 보관하다가 IAEA에 적발되기도 했다. -다음 수순 '핵무장' 준비 착착 일본의 핵무장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족쇄는 핵확산방지조약(NPT :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국제사회의 동의하에 합법적으로 이 족쇄를 풀 수 있는 방안도 준비해 놓고 있다. 일명 ‘센카쿠 트리거'(Senkaku trigger)와 ‘북한 트리거'(North Korea trigger)가 그것이다. 일본은 최근 중국과 영유권 마찰을 빚고 있는 센카쿠 지역 분쟁에 대비해 오키나와 나하(なはし) 비행장에 전투기와 정찰기 전력을 2배 이상 증강 배치시켰으며, 이 일대를 초계하는 군함의 수도 대폭 늘리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군함이 일본 정찰기를 사격통제레이더로 조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조성되기도 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며 ‘북한 미사일 또는 미사일 파편의 일본 열도 추락 가능성‘을 들고 나와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것도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2년 북한이 은하3호 로켓을 발사할 당시 도쿄 시내 한복판의 공원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극대화시켰다. 중국과 북한을 이용한 의도적 긴장 조성을 통해 일본이 노리는 것은 바로 NPT 탈퇴이다. NPT는 제10조에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당사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결정된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센카쿠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하거나,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가 일본 영토 또는 영해에 떨어지면 일본은 이를 일본에 대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비상사태를 이용해 NPT 탈퇴를 선언하고 즉각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막대한 양의 플루토늄이 확보되어 있으며,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구면 폭발 기술이나 중성자 제어에 관련한 제반 기술 여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H-II/III는 물론 M-V 등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 가능한 대형 로켓도 구비되어 있다. 정부가 핵무장을 선언하면 한 달 이내에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핵강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나 있다는 것이다. -日 군국주의 칼날이 겨눈 대상은... 점차 봉인이 풀려가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것은 한반도다. 동북아시아 최약체인 대한민국은 부활한 일본 군국주의가 ‘복귀전’ 상대로 유린하기에 가장 만만한 국가 중 하나이며, 일본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도발 명분도 충분하다.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이 격화되고 한미 동맹이 약화되었을 때 미국만 용인해준다면 군사력 과시를 통한 대중국 경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도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후 최초로 건조한 항공모함형 호위함인 휴우가(ひゅうが)를 독도를 관할하는 제3호위대군에 배속시키고 여기서 미 해병대의 MV-22B 수직이착륙 수송기를 이용한 강습상륙훈련도 실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제3호위대군이 보유하고 있는 7척의 구축함 가운데 6척을 최신형 중대형 구축함으로 교체했으며, 이 가운데는 1만톤급 이지스 구축함 아타고(あたご), 7,000톤급 ‘일본판 이지스함’ 후유즈키(ふゆづき)도 있다. 독도에서 불과 157km 떨어진 오키(隱岐) 제도의 도고(島後)섬에는 일본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3등급 공항인 오키 공항이 건설되어 있다. 오키 제도 180여개 섬 전체 주민은 1만 5000여 명, 이 제도를 왕래하는 인원은 연간 15만 명에 불과해 공항에 취항 중인 노선은 75인승 여객기 1대 뿐이지만,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자를 부담하면서까지 노선을 유지시키고 지속적으로 비행장 확장 공사를 실시해 왔다. 취항 중인 노선이 없고, 인근 지역에 대한 대규모 관광산업 개발 계획도 없는 곳에 대형 활주로와 주기장을 정부 주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비행장이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재 오키 비행장의 활주로와 주기장에 일본 항공자위대의 전투기를 전진 배치할 경우 1개 비행단급 수준인 60대 이상의 전투기 전개가 가능하다. 평시 독도를 관할하는 우리 해군 제1함대는 압도적인 전력 열세 때문에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교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군이 출격하더라도 독도 인근에 전진 기지를 마련해 놓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전자전기의 지원을 받으며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하는 항공자위대를 제압하는 것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공격부대의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세팅해 놓은 일본은 최근 한국해군의 증원 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준비까지 마무리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최신형 12식 지대함 미사일 16기 전량을 규슈(九州) 지역의 구마모토(熊本)현 겐군(健軍) 기지의 제5지대함 미사일 연대에 모두 배치하고, 쓰시마섬 남단의 후쿠오카(ふくおかし) 공군기지에 공대함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F-2A/B 전투기로 무장한 제8전투비행단을 배치했다.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했지만, 미사일의 사정거리와 기지 위치를 고려할 때 이들이 노리는 곳은 '대한해협'이다. 유사시 부산과 진해, 그리고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동해 독도로 향할 우리 해군 증원함대를 대한해협에서 대량의 미사일로 수장시켜 버리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이 한창인 시기에 대외정책 기조가 중국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리게 된다면 미국은 11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한반도를 포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과의 안보 협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시퀘스터 여파에 따른 군비삭감 속에서 주한미군 전력은 지속적으로 감축시키고 있는 반면, 주일미군 전력은 점차 증강시켜 나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남들이 총칼을 갖추며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릴 때 공자 왈 맹자 왈만 외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지킬 힘은 기르지 않은 채 내부 정쟁에만 여념이 없었던 조선은 왕과 왕비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국권을 유린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105년 전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주변국이 최신예 전투기를 대량으로 구매하든 항공모함을 건조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국방예산을 삭감해 지역구 챙기기 선심성 예산과 포퓰리즘적 복지놀음에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적 내용 “잔인하고 악랄”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적 내용 “잔인하고 악랄”

    일본군 문서 폭로, “위안부 한꺼번에 2000명 끌고가” 충격적 내용 “잔인하고 악랄”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 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은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고 있다. 이밖에 문건은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며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한국 여성 2000여명 한번에 끌고가” 무슨 내용 담겼나? ‘일본군 문서 폭로’   1940년대 일본군이 한국 여성 2000명을 한꺼번에 위안부로 끌고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안국(기록보관소)은 최근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공개하고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쑤이양(綏陽) 한충허(寒蔥河)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0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高橋)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綏芬河)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000여 명 가운데 일부’라고 밝혔다고 기록했다. 특히 이들 문건은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오락시간’까지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일제가 이주침략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1906~1945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일본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헤이룽장성에만 13만여 명이 이주해 농토를 차지했다. 헤이룽장성 당안국은 “이번에 공개한 위안부 서류 등은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에 전달했던 문서 가운데 발굴한 것”이라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한 성노예 제도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육체·정신적으로 약탈한 점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당안국은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양심 발전을 위해 일본의 전쟁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굴, 발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기정사실화…외교 주도권 쥐고 ‘위안부 해결’ 압박

    정부가 아베 담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수위 조절에 나서면서 한·일 관계는 하반기에 관계 개선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정부는 특히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를 통해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현안인 위안부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아베 담화 발표 하루 뒤인 지난 15일 조심스러운 정부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아베 담화가 교묘한 화법을 사용해 정부가 정색하고 비판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여지를 남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초 외교부 대변인 성명이 아닌 한 단계 격이 낮은 대변인 논평으로 대신했다. 수위 면에서도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어떤 역사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지 지켜보고자 한다”고 말해 미래를 향한 정부의 입장을 부각했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기존 담화보다 후퇴한 내용도 있지만 정색하고 비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며 “정부가 갖고 있던 대일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국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아베 담화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라서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인식과 같은 과거사 문제는 그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되 북핵과 경제, 사회문화 협력 같은 분야는 대일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역내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음달 3일 개최되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해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다.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아베 담화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과 같은 기회를 이용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소극적인 중국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우리만의 외교적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일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다면 한·일 관계 악화에 따라 한·미·일 3각 공조가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을 안심시키면서 정부의 입지를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부는 다만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협력과는 별도로 원칙에 따라 분명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만큼 한·일 관계 역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와는 별도로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변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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