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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②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

    꼭 한 번은 파리‘부티크’파리에서는 꼭 한 번 부티크 호텔에 묵고 싶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좀체 들지 않았던 호기심이 고전미의 도시, 파리에서는 몽실몽실 피어올랐기 때문이다.산 레지스 호텔 곳곳에 걸린 그림의 수준만 보아도 산 레지스 호텔의 격이 드러난다파리 패션신의 한 장면으로 종종 등장했던 산 레지스 호텔의 현관●부티크 호텔의 기준 호텔 산 레지스Hotel San Regis 샹젤리제 거리의 국립미술관이자 갤러리인 그랑팔레Grand Palais 인근 호텔인 산 레지스의 게스트 중에는 유명인이 많다. 그중 한 사람은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물로’ 회장이다. 23년 동안 페라리를 이끌었던 그는 어떤 인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마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뉴욕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브 몽탕을 만났는데 그가 슬쩍 ‘산 레지스’를 알려 줬어요.”몬테제물로나 이브 몽탕처럼 산 레지스를 각별히 여긴 셀러브리티는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광고 아닌 친분을 통해 산 레지스를 알게 되었고, 비밀의 장소처럼 산 레지스를 간직했다.지난 시절 산 레지스에는 영화감독 루이 말,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배우 진 켈리 등 여러 배우와 유명인이 드나들었다.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는 산 레지스를 한동안 자기 집처럼 사용했다. 한 번은 그녀가 어느 신진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뉴 룩New Look’이란 신조어로 소개했는데 그 디자이너가 바로 크리스찬 디오르다. 카멜 스노와 크리스찬 디오르로 인해 산 레지스는 고전적인 파리지엥 스타일의 정수를 간직한 파리 패션 신의 주요한 스폿으로 등장했다. 지난 시절, 유명인들이 숨어 지내기를 좋아했던 산 레지스에 요즘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느냐는 질문에 산 레지스의 매니저 사브리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요즘도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오지만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이 먼저 미디어 앞에서 말하기 전까지는요.”사브리나는 15년째 산 레지스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 다른 호텔에서 일한 기간까지 합치면 27년째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는데 산 레지스의 분위기와 꼭 닮았다.“사브리나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호텔 브로슈어를 살펴보다 그녀에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머리를 단정히 모으고, 하얀색 투피스를 입은 그녀는 산 레지스처럼 기품 있고 우아했다.딜럭스룸의 붉은색 커튼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은 순식간에 19세기로 돌아간다파리의 고전미가 강렬한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럭셔리 부티크 호텔이지만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 메뉴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Paris-Breast’가 맛있다산 레지스에서 머무는 동안 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산 레지스는 호텔이라기보다 저택에 가깝다. 19세기의 타운하우스를 1923년 호텔로 개조했다. 방의 컬러는 밝은 노란색에서 진한 붉은색까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딜럭스룸, 프레스티지와 스위트룸에선 아름다운 옷장,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화장대, 윙체어 같은 유니크한 걸작품을 볼 수 있다. 산 레지스는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모던한 편의성을 더했다. 신중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디테일에 집중해 ‘Home away from home’, 말 그대로 ‘내 집처럼 편안한 호텔’이다. 나로선 1857년에 지은 타운하우스가 159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 럭셔리 부티크 호텔로 온존해 왔다는 사실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1980년대 중반 산 레지스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이는 엘리 조르주Elie Georges라는 남자다. 1984년 산 레지스 호텔을 인수한 그는 호텔리어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업가였다. 엘리 조르주는 처음 산 레지스 호텔을 방문한 후 이렇게 말했다.“신고전주의 파사드와 실내 공간, 그리고 그때까지 여전히 남아있던 고가구가 서로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매혹됐어요.”1985년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피에르 이브 로숑Pierre-Yves Rochon에게 호텔의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의뢰했다. 타운하우스의 성격을 살리면서 동시에 각각의 방을 유니크하게 꾸미기 위해 모든 소품을 결정한 사람이 바로 피에르였다.산 레지스는 지난 해 다시 한 번 리노베이션을 시작했다. 샤워 부스를 별도로 만들었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발을 쭉 뻗어도 발끝이 닿지 않을 만큼 욕조가 커졌다. 클래식이란 명목으로 설비의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늦은 밤, 차를 마시고 싶어 룸서비스에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새하얀 린넨에 묵직한 금색 포트와 꿀, 찻잔을 들고 나타난 이는 깨끗하게 차려 입은 노년의 신사였다. 차 한 잔을 마시는 게 매우 행복했던 밤이었다. 오후에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서빙해 준 웨이터, 조제는 33년째 산 레지스서 일한다고 했다. 어쩌면 조금 전 포트를 가져다준 그도 조제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에서 파리지엥처럼 하룻밤을 보낸다. 꿈같은 시간이다.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내려가니 손님의 수는 채 열 명이 안 됐다. 산 레지스의 객실은 전부 42개뿐이다. 내게 산 레지스는 파리의 멋, 파리의 색, 파리다운 완벽한 호텔로 기억된다.“Merci, San Regis, Au revoir고마워요, 산 레지스, 또 만나요.”여담 한 가지. 산 레지스 레스토랑의 지붕은 유리다. 체크인 후 유리를 통해 떨어지는 햇살을 맞으며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마셨다. 진하지만 달지 않아 좋았다. 맙소사, 그 자리에서 쇼콜라쇼 세 잔을 내리 마셨다. 며칠 후 다시 산 레지스를 찾았다. 며칠 동안 내내 첫날 마신 쇼콜라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호텔 산 레지스★★★★★ 12 rue Jean Goujon 75008 Paris, France +33 1 44 95 16 16 www.hotel-sanregis.fr러시아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간직한 나폴레옹 호텔나폴레옹 로비 한 편에서 호텔 오너였던 프랑스 여자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나폴레옹 호텔의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룸. 창밖으로 개선문을 볼 수 있다●러시아 남자, 파리 여자의 사랑 호텔 나폴레옹Hotel Napoleon 1920년대 후반, 파리의 프랑스문학클럽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남자는 러시아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였고, 여자는 아름다운 파리지엔느였다. 남자는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파리로 온 것 같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들었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특별한 결혼 선물을 준비했다. 이 선물을 통해 여자가 파리 상류층의 사교계에 들어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를 원했다. 남자가 준비한 선물은 파리 8구에 있는 ‘호텔’이었다. 개선문에서 가깝지만 샹젤리제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자리 잡아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7층짜리 건물이었다. 호텔의 7층, 스위트룸에선 한쪽 창문으로 개선문이, 다른 한쪽 창문으로 에펠탑이 보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서도 개선문과 에펠탑이 동시에 보이는 방은 거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이 방에서 파리의 유명인들을 만나고 파티를 즐겼다. 이 호텔의 이름은 나폴레옹Napoleon이다.체크인을 하고 잠시 로비와 레스토랑을 둘러보는데 소파를 장식한 루비색과 황금색 스트라이프 패턴이 강렬하다. 러시아 남자와 파리지엔느 여자의 뜨거운 사랑 같다. 로비 한 편에 한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텔을 선물받은 바로 그 여자다.긴 세월이 흘렀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을 떠났고, 남자의 아들이 호텔 오너가 되었다. 이제 아들의 나이도 여든에 이르렀다. 2층의 내 방으로 가는 복도에서 스트라이프 패턴과 다시 만난다. 복도 양편을 장식한 붉은 컬러의 패브릭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마법의 패턴이다. 아직 방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복도의 패브릭과 레스토랑의 소파만으로 나는 거듭 감탄한다.내 방은 주니어 스위트 애비뉴. 창밖으로 개선문이 슬쩍 보인다. 방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세이프티 박스 전원 플러그다. 전원 플러그를 가진 세이프티 박스는 처음 봤다. 나폴레옹은 클래식한 부티크 호텔이지만 아이팟 스테이션 같은 모던한 서비스와 균형을 맞춘다.호텔의 어떤 방은 향기로 기억될 때 가장 강렬하다. 나폴레옹 호텔은 록시땅의 향기로 상기된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단순한 샴푸와 바디 젤이 아닌 호텔의 향기다.나폴레옹 호텔은 지난 해 6월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무리했다. 건물이 낡았다고 해서 재건축 운운하며 바로 헐어 버리고 새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설업자의 개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과 달리 100년, 200년 넘은 건물이 즐비한 파리에서 지은 지 30년 정도 되었으면 ‘새’ 건물이다.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지난 해 9월21일, 나폴레옹 호텔은 입구에 붉은 카페트를 깔고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였다. 파티의 제목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손님들은 활기와 자신감에 넘쳤던 1920년대 사람들 모습으로 분장하고 파티를 즐겼다. 그날, 시간은 2015년에서 1920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그런데, 왜 하필 이름을 나폴레옹이라 했을까? 나폴레옹은 남자의 조국 러시아를 침략한 장본인 아닌가? 호텔 매니저 오드리는, “러시아 남자가 ‘남자’로서 프랑스 남자, 나폴레옹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1806년 자신의 군대를 기리기 위해 개선문을 세운 나폴레옹은 인근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치렀는데 호텔 이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증표 같다.파리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서랍을 여니 록시땅 핸드크림이 있다. 선물로 받았지만 좀체 쓰지 않았었다. 록시땅을 손에 발라 본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기에 문득 나폴레옹 호텔의 욕조에 몸을 담고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호텔 나폴레옹★★★★★ 40 avenue de Friedland 75008 Paris, France +33 1 56 68 43 21 www.hotelnapoleon.com리도쇼를 보며 식사를 즐기는 ‘디너 앤 쇼’. 좀 비싸긴 해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90분 동안 펼쳐지는 리도쇼는 관능적이고 몽환적이며, 우아하고 낭만적이다●리도쇼가 파리다 파리의 카바레에는 물랑루즈만 있는 게 아니다. 리도Lido de Paris도 있다. 물랑루즈의 쇼를 보지 못했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리도쇼는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리도쇼를 오해했다. ‘여자가 가슴을…’ 운운하는 누군가의 말을 얼핏 듣고, 늘씬한 여자가 가슴을 드러내거나 엉덩이를 세련되게 내밀거나 흔드는 공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이 펼쳐진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얼이 빠진 듯 기분 좋은 전율에 빠져 들었다. 내 상상이 일천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이제껏 ‘내 인생의 쇼’라는 걸 꼽는다면 2006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델리리움DELIRIUM>이었다. 공연 타이틀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황홀경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탓인지 나는 내심 공연보다는 영화의 표현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음악과 춤, 비주얼 이미지가 하나로 합쳐져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 델리리움을 보면서 무대가 영화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난생 처음 알았다.리도쇼는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했을 때 규모는 작지만 무대 사이즈와 상관없이 ‘내 인생의 쇼’ 리스트에 오를 만큼 굉장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경험한 것 같다.리도쇼는 영화적인 장면에서 불현듯 연극적인 장면으로, 뮤지컬 같은 장면에서 느닷없이 서커스 같은 장면으로 끊임없이 무대를 바꿔 간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몸짓 다음에 태연자약하게 등장하는 거위나 스케이트 링크는 또 어떤가? 춤, 노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온갖 이미지들의 실루엣으로 관객들은 소인국과 거인국을 오간다. 공연을 본다는 게 마치 그림책을 읽거나, 몽환 속을 헤매는 것 같다. 때로는 현실과 4차원 세계를 넘나들고, 때로는 관능적이었다가 순결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낭만적이다. 나는 리도쇼에서 하나의 무대가 아닌 열 개, 아니 백 개의 무대를 보았다.무대가 춤추듯 변하는 덕분이다. 내가 이제껏 보았던 무대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질투가 날 만큼 이들의 상상력이 부러웠고, 기분 좋은 전율감이 온몸을 감쌌다. 저마다 파리를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리도쇼가 파리다. 나는 리도쇼에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파리지엥 또는 프랑스와 유럽의 상상력을 보았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여기는 파리, 파리라는 걸.리도쇼를 만든 이는 프랑코 드래곤Franco Dragone이다. 뜻밖에도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인데 세계적인 공연 연출자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 초기 공연의 일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가 뉴욕이나 도쿄, 뮌헨이 아닌 파리이기 때문에 그가 리도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매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쇼를 보는 ‘디너 앤 쇼Dinner and Show’는 이른 저녁인 7시, 라이브 뮤직과 댄스 공연으로 시작한다. 가격은 1인 165유로부터 자그마치 300유로까지. 매우 비싸다. 하지만 샹젤리제의 전설적인 카바레 리도에서 ‘저염 버터에 살짝 구운 가리비와 시트러스 버터를 발라 조리한 바삭바삭한 엔다이브’ 하는 식의 메뉴 이름도 이해하기 어려운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풀코스로 이 세상 최고의 쇼와 함께 즐긴다 생각하면 한 번은 기꺼이 치를 가치가 있다. 식사를 하지 않고 음료와 함께 쇼를 보는 옵션도 있다.카바레 리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당신을 맞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여기는 파리입니다. 자, 리도쇼를 볼 준비가 되었나요? 더없이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리도Lido de Paris 116 bis, avenue des Champs-Élysées 75008 Paris, France 9:00~20:30 +33 1 40 76 56 10 www.lido.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한 조각 글이 영웅·악마 가른다

    [고전으로 여는 아침] 한 조각 글이 영웅·악마 가른다

    조선 후기 명재상이었던 채제공이 붓을 사용할 때 경계해야 할 일에 대하여 적은 글입니다. 붓을 사용한다는 것은 글을 쓴다는 말인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글을 통해 소식을 듣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며,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공자는 ‘춘추’라는 역사책을 쓰면서 의리를 기준으로 인물을 평가하여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문인은 자신이 쓴 글이 빌미가 되어 죽음을 맞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죽은 뒤에 문제가 되어 관이 파헤쳐지고 시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부관참시의 형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기에 백성을 계몽시키는 수단도 글이었고 일제 침략기에 일본 제국주의를 선전하며 백성을 현혹시킨 것도 글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대사에 들어선 독재 권력은 언론을 통제하고 왜곡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정권에 비판적인 글을 썼던 수많은 지식인을 탄압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글을 생산해 내는 역할이 언론인과 지식인 정도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은 각기 영향력은 달라도 읽고 쓸 줄 아는 모든 사람이 글의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한 조각의 글로 인해 평범한 사람이 순식간에 영웅도 되고 악마도 되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그 글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글은 그만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매 순간 쏟아지는 글자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붓놀림은 과연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채제공(蔡濟恭·1720~1799)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본관은 평강. 71세에 좌의정이 되었을 때에는 정조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우의정과 영의정 없이 혼자 3년간 정승의 자리에 머물면서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였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전한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책’ 코너에서는 다른 고전 명구나 산문, 한시 등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전개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전개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교육위원장 김문수)는 2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를 개최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1994년부터 작업하여 2009년 11월 출간한 인명사전으로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찬양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한국인들을 정리・분류하여 수록한 책이다. 이 사전에는 1905년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의 주요 행적이 담겨 있다. 이날 행사와 관련하여 김문수 교육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북2)은 “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취지는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며 가슴깊이 기억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 2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심의관이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고, 위안부는 조작된 것이며 위안부가 20만명에 달한다는 것도 착각에 따른 오류이고,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개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일본이 아직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필요성이 큼을 역설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에는 조약체결 등 매국 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 등의 민족반역자(반민족행위자)와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서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된 자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지식인 문화예술인과 같은 부일협력자가 수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시민들께 바로 알림으로써 국권침탈시기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고, 최근 위안부 졸속 합의의 문제점 등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고취시켜 일본의 참된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이번 범국민운동을 3.1절부터 8.15 광복절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누구나 1인 1명씩 4,389명이 참여하는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에 국민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참여방법과 관련해, 김문수 교육위원장은 4,389명의 참여자와 대상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김문수 교육위원장 블로그(blog.daum.net/soomoonjang2, log.naver.com/soomoonjang2)와 SNS, 이메일(soomoonjang2@naver.com ), 팩스(02-3705-1451~2), 우편(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15 서울특별시의회 의원회관 6층 교육전문위원실)로 신청을 받고 이름을 게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수원 화성 축성 과정 직접 볼 수 있어 서예박물관에 영·정조가 쓴 어필첩도새달부터 박물관 3곳 야간 관람 가능 경기 수원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한 곳이다. 팔달산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있는 화성은 성문, 누대 등 건축양식이 동양 성곽의 웅대함과 서양 성곽의 아름다움, 실용성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수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고 있다. 그런데 수원을 찾는 쏠쏠한 재미가 더 생겼다. 바로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수원시 박물관 3형제와 최근 문을 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덕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박물관의 불모지였던 곳에 볼거리로 가득 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수원이 역사·문화·체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화성에 관한 모든 것… 수원화성박물관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화성의 축성과 정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문을 연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화성축성실, 화성문화실, 기획전시실 등 3개 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을 갖췄다. 보물 1477호 번암 채제공(1720~1799) 초상화를 포함해 252건 740점(기증 147점, 구입 593점)의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화성축성실은 화성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준다. 정조가 화성행차 때 입었던 황금갑옷, 축성 보고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 정조가 화성 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 규장각과 화성박물관만 소장하고 있는 정조문집 ‘홍재전서’ 완질본, 국내 2점뿐인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유훈교서 등도 전시하고 있다. 화성문화실에서는 1795년 윤2월 정조의 8일간 화성행차를 팔폭 병풍에 그린 ‘화성능행도병’ 모사도, 화성유수 채제공의 영정과 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낸 어찰, 필사본 번암선생집, 정조의 정예 친위부대 장용영의 복식과 무기 등을 볼 수 있다. ●수원의 과거~미래 한눈에 수원박물관 2008년에 개관한 수원박물관은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보여 주는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서예박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역사시대의 변천사’, ‘수원로의 개설’, ‘60년대 수원 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 등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현재·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보여 준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초로 건립한 한국서예박물관은 60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예의 이해’, ‘서예의 감상’, ‘문방사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요 작품으로는 영조와 정조가 친히 쓴 어필첩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야외전시장에는 수원에서 관리를 지낸 인물들의 업적을 나타내는 선정비, 의장석물, 묘제석물, 생활 유물 등을 곳곳에 배치했으며 ‘어린이체험실’에서 다양한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소개했다. ●‘어린이체험실’ 갖춘 수원광교박물관 2014년 3월 개관한 수원광교박물관은 수원시의 세 번째 공립박물관으로 영통구 광교역사공원에 들어서 있다. 1층 광교 역사문화실에서는 광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다. 개발 전 광교 골짜기 마을에 대한 민속, 문화, 생태, 생활사 자료도 한데 모아 옛 정취를 보존했다. 수원 출신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과 학창 시절을 수원에서 보낸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이 기증한 유물도 별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운 이종학실에서는 2004년 유족이 기증한 충무공 이순신과 독도 포함 영토 관련 사료, 일제 침략사 등 2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소강 민관식실에 전시한 3만여점은 민관식 선생이 국회의원, 문교부 장관, 국회의장 직무대리 등을 하며 평생 수집한 것으로 2010년 기증받았다.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놀면서 접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도 갖춰져 있다. 시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다음달부터 수원박물관과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지역 내 박물관 3곳에서 야간 관람을 실시한다. 관람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로 연장하며 휴관일인 매달 첫째주 월요일과 토요일, 공휴일은 제외된다. ●4개월 만에 관람객 5만명 돌파 아이파크미술관 화성행궁광장 옆에 들어선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관 4개월 만인 지난달 말 현재 누적 관람객 5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수원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연면적 9661㎡에 5개의 전시실, 예술전문 도서관, 교육실, 카페테리아 등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통과 현재가 소통하는 곳’이란 주제로 건립된 이 미술관은 화성의 전통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변 경관과 어울리면서도 기하학적인 현대미를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미술관 전면에는 확 트인 투명창을 설치해 관객들이 전시품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화성행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미술관 안에는 ‘포니정홀’도 마련했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한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인 정세영 명예회장을 기리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지난해 11월 나혜석(1896~1948)의 유족으로부터 ‘자화상’, ‘김우영초상’ 등 나혜석의 미공개 유작 2점을 기증받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유화가인 나혜석의 두 작품은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미술관은 오는 4월 나혜석 탄생 120주년을 맞아 나혜석 기념 전시를 개최한다. 염태영 시장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와 수원화성 완공 220주년을 맞아 특색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수원화성과 수원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화성박물관, 전통시장 등 기존의 자원과 함께 관광 인프라를 확대해 연계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중대성명’ 발표 이틀만에…북한 軍부대에 무슨일? ‘충격’

    ‘중대성명’ 발표 이틀만에…북한 軍부대에 무슨일? ‘충격’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최근 중대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150여만명이 자원입대 의사를 나타냈다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은 일꾼들과 근로청년들, 학생들에게 지난 27일 보낸 감사문에서 “(중대성명 발표 후) 이틀 동안에 전국적으로 150여만명에 달하는 일꾼들과 근로청년들, 대학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인민군대에 입대와 복대를 열렬히 탄원하였다”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감사문에서 “우리의 일꾼들과 근로청년들, 학생들은 최고사령부 중대성명에 접하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모임을 열고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과 멸적의 의지를 토로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적들은 우리 인민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다”며 “우리 당은 적대세력의 온갖 도발책동을 여지없이 분쇄해 버리고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기어이 안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제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들이 끝끝내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다면 혁명군대의 노호한 불세레로 적들의 아성을 완전소탕해 버리고 강성번영하는 통일조선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감할 환희로운 전승의 날을 안아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3일 사상 처음으로 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의 중대성명을 발표, “1차 타격 대상은 동족 대결의 모략 소굴인 청와대와 반동통치기관들”이라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1차 타격 대상은 청와대…선제 작전 돌입”

    북한의 제4차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한·미 동맹 중심의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자 북한이 청와대를 ‘1차 타격 대상’으로 지칭하며 ‘선제적 작전 수행’에 돌입한다고 위협했다.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23일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혁명 무력이 보유하고 있는 강위력한 모든 전략 및 전술 타격 수단들은 이른바 ‘참수작전’과 ‘족집게식 타격’에 투입되는 적들의 특수작전무력과 작전 장비들이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경우 그를 사전에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선제적인 정의의 작전 수행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이날 ‘우리 운명의 눈부신 태양을 감히 가리워 보려는 자들을 가차없이 징벌해 버릴 것이다’라는 제목의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 등을 거론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성명은 “1차 타격 대상은 동족 대결의 모략 소굴인 청와대와 반동통치기관들”이라고 지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또 한·미 연합 훈련을 겨냥해선 “우리의 중대 경고에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어리석은 군사적 망동에 매달린다면 그 근원을 깡그리 소탕해 버리기 위한 2차 타격 작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2차 타격 대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제 침략군의 대조선 침략 기지들과 미국 본토”라면서 “우리에게는 미국 땅덩어리를 마음먹은 대로 두들겨 팰 수 있는 강력한 최첨단 공격 수단들이 다 있다”고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한·미 군의 강력한 응징 의지에 북한이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라며 “만반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정부 고위급 적극 참석해야” vs “독도 분쟁화 안 돼”

    “정부 고위급 적극 참석해야” vs “독도 분쟁화 안 돼”

    日은 다케시마 행사 차관급 참석… 경북도 지방 차원 규탄대회 대조 경북도와 지역 민간단체 등이 일본 시마네현의 22일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맞서 개최한 규탄대회에 정부 인사 참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이날 경북도에 따르면 시마네현은 무도관에서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과 다케시마·북방영토(쿠릴 4개 섬) 반환 요구 운동 현민 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정부에서 파견한 사카이 야스유키 내각부 정무관을 비롯해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 회장 신도 요시타카 자민당 중의원 등 의원 10명, 시마네현 및 현의회 관계자, 시민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란 표현이 들어간 2016년판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특별 전시회도 열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 들어 4년 연속 이 행사에 차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이날 경북도가 울릉군 도동부두에서 개최한 다케시마의 날 규탄대회는 정부 인사가 참석하지 않는 지방행사로 열려 대조를 보였다. 행사에는 경북도 및 도의회, 울릉군 및 군의회, 울릉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경북도 출자·출연기관인 독도재단과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회가 주최하고 경북도, 울릉군, 울릉군의회가 후원했다. 경북도청 신청사(안동)에서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독도 관련 단체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도민 규탄 결의대회가 열렸다. 정부는 지난 18일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영토관리대책단이 주관한 다케시마의 날 행사 대응 관련 비공식 회의를 열고 지방정부 차원의 규탄대회를 여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장호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 회장은 “독도 영토 문제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면서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 문제에 수수방관하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도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중앙정부 고위급 인사를 계속 참가시키는 것은 독도 영토 침략에 대한 강경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휘영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우리가 일본에 맞대응하면 그들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으로 자제해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라도 독도 분쟁화는 막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적극 대응한다”면서도 “지방정부 차원의 규탄 행사에 중앙정부 인사를 파견하면 일본의 독도 분쟁화를 도와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마네현은 대한제국 침략기인 1905년 독도를 강제 편입한 것을 근거로 2005년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조례로 제정했다. 2006년부터 매년 다케시마의 날 기념행사를 열어 올해로 벌써 11년째다. 최재익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 등 한국인 4명은 지난 21일 일본을 방문해 주오사카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이날 행사장 인근에서 항의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일본의 ‘독도 영토론’ 깬 서구 지도

    일본의 ‘독도 영토론’ 깬 서구 지도

    “해도상에 없는 두 개의 작은 섬을 보았다.”(미국 포경선 체로키호의 항해일지 중에서) 독도를 서구 세력이 최초로 포착한 건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포경선 체로키호의 선장인 제이콥 클리블랜드는 1848년 4월 16일 독도를 발견하고 항해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학계에서는 클리블랜드 선장이 독도를 발견한 첫 서양인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독도가 세계지도에 표기된 건 1850년 4월 프랑스 리앙쿠르호의 항해 보고서가 제출되면서다. 이때부터 독도는 배의 이름을 딴 ‘리앙쿠르 암’으로 명명됐다. 일본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오늘날의 독도 영유권을 논하는 데는 서구 세력의 기록이 중요한 단초가 된다. 왜냐하면 일본이 19세기 내내 독도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장인 이상균 박사가 쓴 ‘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북스타)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일본인의 독도에 대한 무지는 그들이 서구 지도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서구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독도가 없었고 울릉도와 울릉도 북서 해상에 의문의 섬 아르고노트만 표현됐다. 일본은 서구 지도를 베끼는 과정에서 울릉도를 아르고노트로 여겼고, 독도를 울릉도로 오인했다. 독도 자체를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던 근거다. 일본은 러일전쟁 시기인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라는 이름으로 허둥지둥 불법 편입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일본인이 원래 독도를 부르던 마쓰시마(松島)라는 이름이 울릉도의 명칭이 되고, 독도 명칭이 별안간 다케시마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는 게 저자의 연구 결과다. 일본 정부는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해 독도 영유권 도발을 벌인다. 저자인 이 박사는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일본 측에서는 일관되게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오늘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투쟁도 아닌, 일본 제국주의적 망령이 되살아나는 또 다른 형태의 침략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다케시마의 날 규탄 행사에 정부 인사가 안 가는 이유

    경북도와 지역 민간단체 등이 일본 시마네현의 22일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맞서 개최하는 규탄대회에 정부 인사 참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이날 경북도에 따르면 시마네현은 무도관에서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과 다케시마·북방영토(쿠릴 4개 섬) 반환 요구 운동 현민 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정부에서 파견한 사카이 야스유키 내각부 정무관을 비롯해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 회장 신도 요시타카 자민당 중의원 등 의원 10명, 시마네현 및 현의회 관계자, 시민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란 표현이 들어간 2016년판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특별 전시회도 열었다. 일본은 아베 정권 들어 4년 연속 이 행사에 차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이날 경북도가 울릉군 도동부두에서 개최한 다케시마의 날 규탄대회는 정부 인사가 참적하지 않는 지방행사로 열려 대조를 보였다. 행사에는 경북도 및 도의회, 울릉군 및 군의회, 울릉 주민 등 500여명이 참가했다. 경북도 출자·출연기관인 독도재단과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회가 주최하고 경북도, 울릉군, 울릉군의회가 후원했다. 경북도청 신청사(안동)에서는 김관용 도지사와 독도 관련 단체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도민 규탄 결의대회가 열렸다. 정부는 지난 18일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영토관리대책단이 주관한 다케시마의 날 행사 대응 관련 비공식 회의를 열고 지방정부 차원의 규탄대회를 여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장호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회장은 “독도 영토 문제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면서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 문제에 수수방관하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도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중앙정부 고위급 인사를 계속 참가시키는 것은 독도 영토 침략에 대한 강경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휘영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우리가 일본에 맞대응하면 그들의 전략에 말려 드는 것으로 자제해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라도 독도 분쟁화는 막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적극 대응한다”면서도 “지방정부 차원의 규탄 행사에 중앙정부 인사를 파견하면 일본의 독도 분쟁화를 도와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마네현은 대한제국 침략기인 1905년 독도를 강제 편입한 것을 근거로 2월 22일을 조례로 2005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꽃구름의 남쪽 윈난雲南

    진작 왔어야 할 곳인데 많이 늦었구나. 리장麗江에서 샹그릴라香格裏拉로 가는 길 위에서 느낀 소회다. 겨우 3박 4일이란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윈난雲南, 즉 구름 남쪽이란 이름은 ‘꽃구름의 남쪽彩云之南’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에게는 차마고도茶馬高道로 유명하지만 쿤밍昆明-다리大理-리장-샹그릴라로 이어지는 윈난 여행코스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꼽힌다. 구름의 남쪽에서 잠시 머물다 여정은 쿤밍에서 시작됐다. 쿤밍은 얼핏 중국의 여느 대도시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발고도 1,890m, 고원지대에 불쑥 솟아난 도시다. 쿤밍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다. 사계절이 봄과 같은 사계여춘四季如春의 도시다. 중국의 피서 관광지 중 일등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쿤밍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 한 해 쿤밍을 찾은 관광객은 무려 6,000만명에 달한다. 한편, 쿤밍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중국인들에게 쿤밍은 동남아 여행의 허브 거점이다.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리해발 2,000m로 갔고, 다리에서 다시 리장해발 2,400m으로 달려 해발 5,596m의 ‘위룽설산玉龍雪山’과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인 샤시沙溪 마을을 만났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일까. 위룽설산의 만년설이 푸르게 빛났다. 리장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서 장족티베트족 자치주인 샹그릴라해발 3,500m로 갔다. 쿤밍에서 샹그릴라까지 총 650여 킬로미터. 여정은 거기까지였고 돌아서야 했지만 다시 오리라는 다짐은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윈난성 윈난은 여행자의 천국이자 대자연의 보고다. 윈난의 고산지대는 전체 면적의 94%를 차지한다. 고원호수가 40여 개나 있고 호수면적은 1,100km2에 달한다. 아열대, 온대, 고원기후까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여 준다. 이를 반증하듯 3만여 종이 서식하는 ‘식물의 왕국’이자 ‘꽃의 왕국’이 바로 윈난이다. 윈난에 사는 소수민족 인구는 1,53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에 달한다. 중국의 25개 소수민족 중 15개 소수민족이 8개 자치주를 이루고 윈난성에서 살아간다. ‘땐’은 윈난성의 약칭이다. ●다리大理 바람, 꽃, 눈, 달 본격적인 여정은 윈난 서북부, 다리에서 시작된다. 다리는 리장과 더불어 윈난을 대표하는 고대도시다. 칭짱고원靑藏高原의 동남부 언저리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다리의 풍광을 ‘풍화설월風花雪月’이라 표현했다. 바람과 꽃, 눈과 달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 다리라는 말이다. 다리는 해발 4,122m의 창산苍山을 뒤로하고, 앞으론 해발 1,972m의 고원호수인 얼하이洱海, 이해를 굽어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도시다. 창산과 얼하이라는 두 개의 보석이 다리를 만든 셈이다. 다리의 소수민족은 바이족白族, 백족이다. 이름대로 흰옷을 즐겨 입고, 흰벽으로 지은 집에서 산다. 다리는 바이족 자치주의 수도이고, 중국 정부가 지정한 24개 역사문화 도시 중 하나다. 다리의 주인이었던 바이족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남조와 다리국으로 존재하며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한족의 당나라, 송나라의 맹렬한 기세에 굴하지 않고 독립국의 지위를 당당하게 지켜냈었다. 이름大理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좋은 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대리석이 유래한 곳도 바로 다리다. 다리에서는 제일 먼저 숭성사崇聖寺 삼탑을 찾았다. 중원의 권력과 맞섰던 다리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삼탑 중 가운데 탑의 높이는 60m, 16층 건물의 높이다.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했지만 중앙탑 맨 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지진 때문에 기울어졌다는 양편의 탑의 높이는 40m다. 삼탑 옆 취영지聚影池에서 연못에 비친 삼탑을 보는 것도 즐겁다. 당대에 지어진 삼탑은 다리고성에서 서북쪽으로 1km 떨어진 창산 잉러봉 기슭에 위치한다. 중국의 4대 명탑 중 하나이자 중국 남방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탑이라고 불린다. 삼탑 뒤 금빛 찬란한 숭성사는 중국에서 불교 사원 중 가장 큰 건축물로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나 1980년대를 전후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숭성사에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에 올랐다. 3,500m가 넘는 봉우리를 열아홉 개나 갖고 있으니 산의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최고봉은 해발 4,122m의 마룽馬龍봉인데 산꼭대기에는 항상 눈이 쌓여 있다. 아쉽게도 케이블카는 2,900m 지점에서 멈췄다. 바람이 너무 센 탓이다. 케이블이 흔들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2,900m 지점에서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이미 운행을 멈춘 채 케이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열아홉 개의 산봉우리 아래 창산 계곡물은 다리고성을 거쳐 얼하이 호수로 흘러간다. 창산 아래 다리고성은 1,000년 역사를 가진 고성이라지만 새로 지은 게 많다. 몽골에 함락된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탓이다. 고성의 높이는 8m 정도, 성 안의 집들은 작고 예쁘고, 지붕을 잇대고 있다. 다리의 역사에 대한 다리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다리고성의 성문 현판에 쓰여 있듯 다리는 예로부터 ‘문헌명방文獻名邦’으로 불렸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헌명방을 느끼기엔 관광객이 너무 많다. 한 블록만 거리를 벗어나면 또 다른 다리를 만나겠지만 시간이 없다. 결국 다리에 갔지만 다리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룹 투어로 다리를 보자니 아쉬움이 진하다. 상하이에서 게임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하다 다리에 정착해 객잔(客棧, 중국의 여관)을 운영한다는 가이드 이설영씨 말대로 다리의 가장 상업적인 거리를 한두 시간 둘러보았을 뿐이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그려 온 다리는 없었다. 다시 다리에 가야 할 이유다. 다음에 다리에 온다면 풍화설월의 다리를 떠올리며 얼하이 호수에서 보름달을 보고 싶다. ●샤시沙溪 차마고도 카라반이 쉬어 가던 곳 다리를 떠나 리장으로 가는 길,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접어든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윈난 산속의 마을, 샤시에 도착했다. 샤시는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쉬엄쉬엄 둘러보아도 한 시간이면 족할 듯싶다. 내게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윈난의 보석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샤시를 꼽겠다. 샤시는 고대 무역로인 차마고도茶馬高道를 오가던 상인들 행렬인 마방馬幇이 쉬어 가던 작은 마을이다. 높은 산을 쉴 새 없이 넘어가기에 차마고도를 ‘하늘에 난 길’이라 부른다면 마방은 ‘하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마방들은 푸얼차(普洱茶, 보이차)를 싣고 달그락달그락, 떨거덩떨거덩 말방울 소리를 울리며 다리와 리장을 지나 진샤강金沙江을 건너 라싸로 갔다.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싸에서 한숨을 돌린 마방들은 라싸를 떠나 시가체를 지나 시킴과 네팔, 인도로 향했다. 윈난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 초원에서 자란 말이 차마고도를 통해 교환되었다. 하지만 그 길을 오가기란 쉽지 않았다. 과거의 차마고도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길, 어쩌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차마고도의 카라반隊商들은 산을 넘고 넘어 중국과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를 오갔다. 그 험한 길을 어찌 조랑말 하나에 의지해 넘었을까? 이제와 생각해 봐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과거에 샤시는 차마고도의 요충지로 때로 큰 장이 섰지만 지금은 산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샤시 마을의 시간은 왠지 차마고도의 조랑말이 걷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간혹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의 꼬질꼬질한 모습마저 정겹다. 다리나 리장과 달리 다행히 이곳엔 관광객이 적다. 진입도로가 좁은 데다가 그마저 구불구불한 산길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개발 열풍에서 빗겨난 중국 서남부의 모래알 같은 샤시 마을은 개발이 더디기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이곳을 잠시 스쳐 지나는 여행자의 감상일 뿐이지만 도로가 확장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마방 대신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샤시를 찾고 차마고도 여관, 민트 카페 등 여행자를 위한 객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는 피자도 팔고 스파게티도 판다. 깊은 산속 여행자의 천국이다. 샤시 마을은 2002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950년대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고속도로가 뚫렸다. 차마고도와 마방의 존재의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차마고도와 고속도로 구간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방은 진작부터 중국에서 티베트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장에서 샤시를 가기 위해선 일단 젠촨剑川까지 가야 한다.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린다. 요금은 20위안. 새로 난 고속도로로 달리면 요금은 25위안이고, 한 시간이 걸린다. 젠촨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45분 정도 달리면 샤시에 도착한다. 쿤밍에서는 버스로 대략 10시간 거리다. 샤시에도 게스트하우스는 있다. 오픈 예정인 어느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등풍, ‘바람을 기다리며’다. 샤시의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리장麗江 산과 눈의 도시 깊은 산속 마을 샤시를 떠나 리장으로 왔다. 종종 ‘산과 눈의 도시’라 불리는 리장은 샹그릴라香格裏拉의 입구이자 히말라야 산맥의 시작점인 위룽설산에 둘러싸였다. 리장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눈을 돌릴 때마다 종종 위룽설산을 보았다. 리장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언제나 만년설의 풍광과 함께하는 도시, 이렇게 높은 산이 늘 옆에 있다면 살아가는 데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혹자는 리장을 보고 ‘동양의 베니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다. 리장은 리장 그 자체일 뿐 유럽의 한 도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외형만 봐도 리장과 베니스는 전혀 닮지 않았다. 다리가 바이족의 나라였다면 리장은 나시족納西族의 홈타운이다. 나시족의 홈타운이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리장의 한족 인구가 적은 건 아니다. 리장에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비율은 6:4 정도이고, 나시족은 전체의 23%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에 나시족 거주지이자 고원의 옛마을이었던 리장은 쓰촨四川성의 야안雅安과 더불어 차마고도의 근거지이자 무역 중심지였다. 리장에서 생산된 가죽 제품은 차와 말과 함께 티베트 라싸, 인도 등지로 팔려 나갔다. 리장고성은 남송 말기에 지어져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성 안에선 100여 채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데 다리고성과 다르게 성벽은 없다. 리장고성은 좁은 골목과 수로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명청 시대의 거리 모습도 잘 간직하고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만 아니라면 리장고성의 운치는 2015년이 아닌 몇 백 년 전의 거리 같다. 세계문화유산인 리장고성보다 더 강하게 나를 리장으로 이끈 건 한 친구의 사연이다. 그녀는 10년 전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호주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당시 남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내 짐작에 그는 아마 결혼 같은 건 별반 생각해 보지 않은 여행자였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 결국 두 사람은 운명처럼 리장에서 맺어졌고, 딸을 낳고,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이런 사연 때문에 내게 리장은 아주 로맨틱한 여행지로 여겨졌지만 실제 마주한 리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리장에는 수로와 함께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이 많다. 사실 관광객만 바글대지 않는다면 리장은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보인다. 가히 연인들의 여행지다. 한데 화장이 너무 진하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예쁜 얼굴에 과하게 화장을 한 것 같다. 좋건 싫건 밀려드는 관광객의 영향이다. 지난해 인구 100만의 도시, 리장에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매달 리장 전체 인구보다 거의 두 배 많은 관광객이 리장을 휘젓고 다닌 셈이다. 윈난을 여행하며 관광객이 북적이는 다리고성이나 리장고성보다 고산지대의 설산을 바라보며 달렸던 길 위의 시간이 더 좋았던 이유다. 한편, 1996년 리장에 규모 7.0의 지진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304명이 숨지고, 1만6,000명이 다쳤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시족의 거주지인 구시가지는 무사했다. 그때부터 나시족의 목조주택은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받기 시작했다. 1996년 지진이 아니더라도 윈난에는 지진이 잦다. 작년에도 지진이 발생했다. 윈난은 쓰촨성과 함께 칭짱고원 지진대에 자리 잡고 있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유라시아판 대륙과 인도판 대륙이 충돌하는 지반 사이에 위치한 탓이다. 윈난을 여행하고자 할 때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리장고성에서 나와 잠시 황룡담 공원에 들렀다. 황룡담에서 단풍진 가을을 맞는다. 연못 넘어 위룽설산이 아름답다. ●위룽설산玉龍雪山 당신은 옥색의 용을 볼 수 있을까 리장고성의 북쪽, 위룽설산은 리장시 위룽현에 위치한다. 해발고도는 5,596m로 한라산보다 대략 세 배 높다. 거대한 백옥 같은 용의 형상옥룡을 하고 있다고 해 옥룡산이라 부른다. 위룽설산은 나시족이 믿는 씨족신 ‘싼둬’의 화신이라고 전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위룽설산에 나시족의 ‘사랑의 신’이 산다고 믿는다.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고 위룽설산의 4,500m 지점까지 올랐다. 여기까지는 쉽다. 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다다른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 계단을 따라 두 발로 걸어 180m 더 높은 4,680m 지점까지 올라가야 한다. 지대만 낮다면 이 정도쯤 오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사람들은 손에 제각각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거나, 몇 걸음을 떼지 않고 종종 걸음을 멈춘다. 나도 채 몇 걸음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바로 숨이 벅차다. 가이드가 준 산소통이 배낭에 있었지만 아직은 쓰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온전히 내 힘으로 올라 보고 싶다. 마음은 빨리 오르고 싶지만 몸은 느리다. 숨을 헉헉거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하얀 빙하가 보인다. 위룽설산은 빙하가 서린 백옥 같은 산이다. 새파란 하늘 때문에 하얀 눈이 푸르게 빛난다. 30~40분쯤 올랐을까. 마침내 4,680m 지점에 올랐다. 어제 창산에서 강풍 때문에 2,900m 지점에서 멈춰 선 아쉬움을 여기 와서 말끔히 씻어 낸다. 위룽설산의 정상을 올려다본다. 이름 그대로 옥색의 용이 춤을 춘다. 위룽설산을 내려와 샹그릴라로 출발하기 전 장강長江의 상류지역인 호도협虎跳峽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건너뛴 협곡이란 말인데 위룽설산과 하바설산哈巴雪山 사이의 협곡이다. 중국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총길이 6,380km의 장강은 그 길이가 워낙 큰 탓에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윈난의 400km 구간에선 황금모래강이란 의미의 진샤강金沙江이라 불린다.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티베트의 만년설에 이를 것이다. 멀리서 호도협 물줄기를 보았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진샤강가로 점점 다가가자 물줄기가 포효하듯 거세다. 거대한 호랑이가 쩌렁쩌렁 산을 울리며 포효하는 것 같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호도협이란 이름은 허명무실하지 않다. 지구의 지각운동이 만든 호도협의 길이는 30km에 달한다. ●인상리장印象麗江 설산 아래서 꾼 한낮의 꿈 “우리는 농민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 마음을 바쳤습니다.” 위룽설산을 뒤로하고 출연자들이 관객을 향해 외쳤다. 드디어 <인상리장印象麗江>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상리장>은 리장의 소수민족이 만든 공연으로 공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열 개의 소수민족, 500여 명의 농부들이 공연을 펼친다. 출연자 수가 워낙 많은 탓에 때로는 관객보다 출연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인상리장>은 하늘과 땅, 아직 누구도 오르지 못한 해발 5,100m, 위룽설산의 영기를 느껴 보는 공연이자 설산의 영웅들 그리고 농부들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헌사다. 원형의 거대한 노천극장은 위룽설산의 12개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 아래 만들어졌다. 해발 3,100m의 <인상리장> 공연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공연은 360도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출연자들은 때때로 말을 타고 공연장의 이곳저곳을 달린다. 윈난의 말은 조랑말이라 크진 않다.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가파른 산길은 잘 다닌다. 덩치는 작아도 좁고 험한 오솔길을 쉽게 오른다. 차마고도의 마방은 조랑말 없이 일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이곳 사람들이 말을 숭배하는 이유다. 둥근 객석을 휘몰아치는 말발굽 소리에 붉은 색의 대형무대는 더욱 뜨거워진다. <인상리장>은 총 6개의 무대로 나뉜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장은 ‘고도마방’. 차마고도는 하늘 위를 걸어 다니는 길이다. 100여 명의 마방이 길을 나서는 모습과 홀로 남은 나시족 여인들 모습을 통해 고생을 견디고 원망하지 않는 아내와 모성의 감정을 표현한다. 2장은 ‘술잔을 들고 설산을 향한다’. 윈난의 소수민족 사람들은, 친구가 오면 술을 마시고, 친구가 가면 또 술을 마신다고 할 만큼 친구를 아끼고, 가무를 즐긴다. 3장은 ‘천상인간’. 여기는 연인들의 극락세계인 위룽설산이다. 순정의 산, 위룽설산은 윈난의 연인들이 숭배하는 산이며 위룽설산에서 청춘은 영원히 지속되고 세상의 고통은 사라진다. 4장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북을 치듯 두드리는 건 리장 사람들의 오락이다. 사람들은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춘다. 나시족 사람들은 ‘아리리’, ‘다로리’라는 춤을 추기 좋아하고, 청춘남녀는 춤과 노래로 감정을 교류한다. 5장은 ‘북을 치며 춤추며 하늘에 제사를’. 하늘에 대한 나시인들의 경배를 보여 준다. 나시족은 하늘의 아들, 자연의 형제라고 선언한다. 6장은 ‘기도의식’. <인상리장>의 대미는 출연자와 관람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위룽설산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숙연해진다. “위대한 위룽설산 앞에 선 우리들은 하늘에서 보내 주는 염원을 경건하게 받아들여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연자들의 의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윈난 여유국의 슬로건인 ‘컬러풀 윈난’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인상리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장예모 감독, 왕차오거, 판웨 세 사람이 만들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나치독일과 美FBI…80년 시차로 반복되는 평행이론?

    나치독일과 美FBI…80년 시차로 반복되는 평행이론?

    평행이론일까. 제국의 속성일까. 1930년대 후반 나치 독일이 만든 '어린이용 영국 침략 보드게임'과 2016년 미국연방수사국(FBI)가 만든 '청소년용 반 IS 게임'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 7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뛴 만큼 보드게임과 인터넷게임이라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형식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나 미 FBI나 당시 청소년들이 가장 즐겼던 오락물을 사상교육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또한 두 게임 모두 적과 나를 구분지으며 이분법적인 단순 논리를 강요하려는 제국의 속성 또는 철학의 부재를 드러냈고, 게임의 구성과 방법 역시 조악한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FBI가 10대들을 겨냥해 제작한 반(反) 이슬람 극단주의 교육용 웹사이트 “돈 비 어 퍼펫”(Don’t be a puppet: 꼭두각시가 되지 마세요)가 기대 이하의 완성도로 인해 언론, 게임 전문가 등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시각적 디자인과 메시지 전달방식이 각종 신식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감각에 부합할 만큼 충분히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해외 언론은 이 사이트가 ‘IS의 영향력으로부터 10대를 보호한다는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지 크게 의심 된다’고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평가했다. IT 전문 매체 기즈모도는 이 게임과 웹사이트 전반에 대해 “90년대에나 존재했던 수준 이하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연상시킨다”고 평했으며 게임 전문 웹진 코타쿠 또한 “FBI에서 게임을 출시했는데 한 마디로 형편없다(sucks)”며 직설적 비판을 가했다. 가디언은 이번 웹사이트에 대해 “청소년을 설득하는 문제에 있어서 국가기관이 얼마나 무지한지 다시금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며, 젊은 세대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IS의 행보에 크게 뒤쳐진다고 분석했다. 나치 독일의 '영국 침략 보드게임' 역시 ‘우리는 적에 맞서 싸운다’(Wir Kampfen gegen den Feind)라는 제목에 걸맞게 단순함을 넘어 조악한 수준이다. 말판과 말, 돌림판, 설명서로 구성된 이 게임의 주목적은 세 사람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말을 움직여 말판 위에 그려진 영국 영토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다. 말판에는 영국 전도가 그려져 있으며 노스요크셔 주 스카보로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동심원들이 마치 과녁처럼 일정 간격으로 배열돼있다. 플레이어는 돌림판을 돌려 나오는 숫자대로 말들을 맨 바깥쪽 원에서 안쪽 원으로 진격시키면 된다. 각 원에는 영국 공군 및 해군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다음 원으로 진행하면 이들 영국군을 격파한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영국 공군과 해군을 무력화하고 가운데 원까지 도달하면 게임은 끝난다. 이 보드게임은 다음달 영국의 경매기업 멀록스(Mullocks)에 의해 경매에 오를 예정이다. 멀록스 사업관리 담당자 벤 존스는 “이 게임은 당시의 독일인들, 특히 아이들로 하여금 독일군이 질 수 없으며 영국이 끝내 함락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독일 국민들이 협조해 준다면 빠른 시일 안에 손쉽게 가능하다고 설득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FBI 사진=ⓒ멀록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동남아 韓流산타… 태권도로 국제사회봉사 ‘기부 하이킥’

    동남아 韓流산타… 태권도로 국제사회봉사 ‘기부 하이킥’

    지난달 29일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퀴노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미(24·여·필리핀)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이미가 다음날 마닐라 국군회관에서 열린 부영그룹 이중근(74·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회장의 디지털피아노 및 칠판 기증식에 참석하는 한국 취재진을 위해 고용된 현지 코디네이터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를 하기에는 유창한 영어에 비해 한국어가 많이 서툴렀다. 아이미는 “한국 유학생 시절만 해도 한국어가 괜찮았는데 필리핀에 돌아와서 많이 잊어버렸다”며 쑥스러워했다. 아이미는 이 회장이 국내로 유학 온 아시아·아프리카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2008년 자신의 아호를 따 설립한 우정(宇庭)교육문화재단의 장학생 790명 중 한 명이었다. 아이미는 2011년부터 3년간 한국의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에서 에너지시스템공학을 공부한 뒤 2년 전 고향 마닐라로 돌아와 한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현재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잡은 아이미는 이 회장이 기부를 위해 필리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휴가를 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러다가 회사 잘리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수력발전 관련 전공을 했는데, 내 전공은 수요가 많아 갈 곳이 많다. 괜찮다”고 여유 있게 받아쳤다. 아이미는 첫날 이른 아침부터 이튿날 오후 기증식 행사가 끝나는 동안 한시도 한국에서 온 일행 곁을 떠나지 않고 통역부터 행사 진행 등을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아이미뿐만이 아니었다. 이 회장이 필리핀 정부에 교육용 디지털피아노 5000대와 칠판 5만개를 기증하기 위해 치러진 기증식 행사에서는 필리핀의 또 다른 우정교육문화재단 출신 장학생들이 통역과 사회를 맡았다. 평소 “교육에 투자하면, 한번 사용하고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가 최고의 기부 활동”이라고 말해 온 이 회장을 기증식이 끝난 뒤 만났다. “음악과 태권도처럼 아무런 마찰 없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게 어딨습니까.” 이 회장은 동남아시아에서 ‘산타클로스’로 통한다. 2003년부터 교육 시설이 열악한 동남아 14개국에 디지털 피아노 6만대와 칠판 60만개를 기증했고 학교가 부족한 캄보디아, 라오스, 동티모르, 스리랑카, 태국 등에는 600개의 초등학교 건립을 지원했다. 이 중 부영그룹이 사업적으로 진출한 곳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세 나라뿐이다. 이 회장이 기부한 피아노와 칠판만 돈으로 환산해도 5000억원이 훨씬 넘는다. 부영 관계자는 “현재 베트남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이 회장이 기부한 칠판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어릴 적 고향 사람들과 우물물을 나눠 마시고 자랐어요. 교육 관련 기부는 우물을 파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성장 밑거름이 되는 제일 가치 있는 투자가 교육이니까요.” 이 회장은 기부를 하는 것을 ‘우물 파는 일’에 비유했지만, 이 ‘우물’에 한국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디지털피아노를 기증할 때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아리랑’ ‘고향의 봄’ 등 반드시 한국 노래가 녹음 돼 있는 피아노를 보낸다는 겁니다.” 2009년 6월 한·아세안 정상회의때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부아손 라오스 총리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졸업식 노래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이 회장은 디지털피아노를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이왕이면 동남아 각지에 한국 노래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한국의 졸업식 노래를 녹음해 피아노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 노래가 들어간 피아노를 기부하는 것이 자칫하면 문화 침략이 될 수도 있어서 항상 현지 교육부의 승인을 받은 뒤 피아노를 보냅니다. 동남아 학생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여러번 봤지만 볼 때마다 감동적입니다.” 지난달 6일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로 취임한 이 회장은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로 국제 사회에 봉사를 하는 일이 평소 해 온 ‘기부를 통한 한류 전파’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총재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은 ‘태권도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상생에 이바지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2009년 9월 출범해 현재까지 337개국에 1579명의 단원을 파견했다. 그동안 이 회장은 교육 기부뿐만 아니라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에 태권도훈련센터를 건립해주고 이들 국가에 태권도협회 발전 기금을 지원하는 등 꾸준히 동남아 지역에 태권도 기부 활동을 펼쳐 왔다. 이러한 지원 덕에 캄보디아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년 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글로벌 스폰서 협약을 맺고 태권도 세계화를 위한 적극적인 후원에 나서고 있다. “제가 능력은 없는데 저 보고 (총재를)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웃음). 현재는 (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 예산도 더 확보해서 제대로 한번 해볼 예정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인프라가 없어 태권도를 배우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을 찾아 더욱 지원을 늘려 나가고 싶습니다. 음악이나 태권도를 전파하는 것처럼 순수한 국위선양은 없으니까요.” 이 회장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피아노, 칠판 등 교육 기자재 기부도 교육재단을 만들어 앞으로 더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같은 경우는 디지털피아노를 기증하기로 협약까지 맺었는데 현지 운송 사정이 좋지 않아 보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6·25전쟁 때 얼마나 많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로 성장했으니 나눠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업 오너로서는 이례적으로 6·25전쟁 요약본 등 3질의 역사서를 직접 쓰기도 한 그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르완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의 6·25 참전국 학생들에게도 피아노와 칠판을 기증하고, 장학생을 선발해 배움의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아이미와 같은) 장학생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엘리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견해요. 저의 기부 활동을 통해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었음을 전 세계에 알려주고 싶습니다.” 마닐라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이중근 회장은…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1992년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 ▲1994년 ㈜ 부영그룹 대표이사 회장 ▲1999~2001년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제20대 이사장 ▲2000~2004년 한국주택협회 회장 ▲2012년 (재)우정교육문화재단 이사장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부의장 ▲2016년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1995년 금탑산업훈장 ▲1996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9년 전경련 IMI경영대상 사회공헌대상 ▲2009년 대통령표창 ▲2007년 캄보디아 국왕 수교훈장 ▲2007년 베트남 우호훈장 ▲2007년 라오스 일등훈장 ▲2011년 동티모르 공훈훈장 ▲2013년 캄보디아 국왕 대십자 훈장
  • 게임으로 정치를…나치독일과 美FBI의 평행이론?

    게임으로 정치를…나치독일과 美FBI의 평행이론?

    평행이론일까. 제국의 속성일까. 1930년대 후반 나치 독일이 만든 '어린이용 영국 침략 보드게임'과 2016년 미국연방수사국(FBI)가 만든 '청소년용 반 IS 게임'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 7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뛴 만큼 보드게임과 인터넷게임이라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형식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나 미 FBI나 당시 청소년들이 가장 즐겼던 오락물을 사상교육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또한 두 게임 모두 적과 나를 구분지으며 이분법적인 단순 논리를 강요하려는 제국의 속성 또는 철학의 부재를 드러냈고, 게임의 구성과 방법 역시 조악한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FBI가 10대들을 겨냥해 제작한 반(反) 이슬람 극단주의 교육용 웹사이트 “돈 비 어 퍼펫”(Don’t be a puppet: 꼭두각시가 되지 마세요)가 기대 이하의 완성도로 인해 언론, 게임 전문가 등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시각적 디자인과 메시지 전달방식이 각종 신식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감각에 부합할 만큼 충분히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해외 언론은 이 사이트가 ‘IS의 영향력으로부터 10대를 보호한다는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지 크게 의심 된다’고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평가했다. IT 전문 매체 기즈모도는 이 게임과 웹사이트 전반에 대해 “90년대에나 존재했던 수준 이하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연상시킨다”고 평했으며 게임 전문 웹진 코타쿠 또한 “FBI에서 게임을 출시했는데 한 마디로 형편없다(sucks)”며 직설적 비판을 가했다. 가디언은 이번 웹사이트에 대해 “청소년을 설득하는 문제에 있어서 국가기관이 얼마나 무지한지 다시금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며, 젊은 세대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IS의 행보에 크게 뒤쳐진다고 분석했다. 나치 독일의 '영국 침략 보드게임' 역시 ‘우리는 적에 맞서 싸운다’(Wir Kampfen gegen den Feind)라는 제목에 걸맞게 단순함을 넘어 조악한 수준이다. 말판과 말, 돌림판, 설명서로 구성된 이 게임의 주목적은 세 사람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말을 움직여 말판 위에 그려진 영국 영토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다. 말판에는 영국 전도가 그려져 있으며 노스요크셔 주 스카보로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동심원들이 마치 과녁처럼 일정 간격으로 배열돼있다. 플레이어는 돌림판을 돌려 나오는 숫자대로 말들을 맨 바깥쪽 원에서 안쪽 원으로 진격시키면 된다. 각 원에는 영국 공군 및 해군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다음 원으로 진행하면 이들 영국군을 격파한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영국 공군과 해군을 무력화하고 가운데 원까지 도달하면 게임은 끝난다. 이 보드게임은 다음달 영국의 경매기업 멀록스(Mullocks)에 의해 경매에 오를 예정이다. 멀록스 사업관리 담당자 벤 존스는 “이 게임은 당시의 독일인들, 특히 아이들로 하여금 독일군이 질 수 없으며 영국이 끝내 함락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독일 국민들이 협조해 준다면 빠른 시일 안에 손쉽게 가능하다고 설득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FBI 사진=ⓒ멀록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교육부 “친일인명사전 구매 강제는 학교 자율권 침해”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배포를 추진 중인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교육부가 “학교의 자율적인 도서 구입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예산 사용 등이 적절한지 점검에 나섰다.  교육부는 최근 서울시교육청에 친일인명사전 구입과 관련해 교육자료를 선정하거나 구입할 때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규정을 지켰는지를 29일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12일 밝혔다.  교육부는 특정 민간단체에서 발행하고,내용 면에서도 논란이 있는 책을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각 학교에 구매하라고 예산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예산 사용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보고를 받은 뒤 문제가 있으면 그에 따른 조처를 할 계획이다.  현재 학교 도서를 구입할 경우 학교도서관 진흥법에 따라 구입 전 1주일간 공포를 하고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무조건 예산을 내려 보내 논란이 있는 책을 구입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학교의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이나 학부모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교운영위나 도서관 운영위를 거치면 친일인명사전 구입 예산을 반납한 서울디지텍고교와 비슷한 사례가 더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이달 2일 서울의 중·고교 583개교 도서관에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을 한 질(전 3권)씩 배포하기로 하고 학교당 구입예산 30만원을 교부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찬양하거나 독립을 방해하고 수탈·강제동원에 앞장선 것으로 파악된 4천389명의 친일행적을 수록했다.그러나 편향성 문제로 2009년 발간 당시부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학교 배포 방침에 대해서도 보수 교육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서울 용산의 사립 특성화고인 서울디지텍고는 최근 내부 검토와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쳐 관련 예산 30만원을 교육청에 반납하기로 했다. 또 보수 성향의 교육시민단체인 자율교육학부모연대는 11일 서울행정법원에 서울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위한 예산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율교육학부모연대의 조진형 대표는 가처분 신청 이유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의 친일행위 범위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에 규정된 친일행위를 광범위하게 넘어서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자료는 친일행위 규명이나 일제청산을 위한 교육자료가 아니라 끊임없는 정치적 혼란과 국론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나치가 만든 어린이용 ‘영국침략’ 보드게임 공개

    나치가 만든 어린이용 ‘영국침략’ 보드게임 공개

    나치 독일이 자국민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제작했던 ‘영국 침략’ 보드게임이 대중에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 달 영국의 경매기업 멀록스(Mullocks)에 의해 경매에 오를 이 보드게임의 제목은 ‘우리는 적에 맞서 싸운다’(Wir Kampfen gegen den Feind)이며 현재 가치는 약 52만 원 정도로 파악된다. 말판과 말, 돌림판, 설명서로 구성된 이 게임의 주목적은 세 사람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말을 움직여 말판 위에 그려진 영국 영토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다. 말판에는 영국 전도가 그려져 있으며 노스요크셔 주 스카보로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동심원들이 마치 과녁처럼 일정 간격으로 배열돼있다. 플레이어는 돌림판을 돌려 나오는 숫자대로 말들을 맨 바깥쪽 원에서 안쪽 원으로 진격시키면 된다. 각 원에는 영국 공군 및 해군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다음 원으로 진행하면 이들 영국군을 격파한 것으로 간주한다. 말은 세 종류이며 각각 전투기, 폭격기, 잠수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돌림판 역시 동일하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돌림판을 첫 번째로 돌려서 나온 숫자는 공격력, 두 번째 숫자는 명중률을 의미한다. 두 가지 수치가 충분해야만 다음 원으로 진격할 수 있다. 모든 영국 공군과 해군을 무력화하고 가운데 원까지 도달하면 게임은 끝난다. 게임은 영국과 독일의 대결이 아닌, 독일군들 사이의 경쟁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결국 독일은 영국을 점령하게 돼있다. 이는 독일 국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멀록스 사업관리 담당자 벤 존스는 “이 제품은 순수한 선전선동용(propaganda)으로, 나치가 전쟁에 승리할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이 게임은 당시의 독일인들, 특히 아이들로 하여금 독일군이 질 수 없으며 영국이 끝내 함락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며 “독일 국민들이 협조해 준다면 빠른 시일 안에 손쉽게 가능하다고 설득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오락물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추종자들은 유명 FPS 게임 ‘ARMAⅢ’를 개조, 온라인상에 무료 배포해 똑같은 시도를 했다. 이 게임은 IS 테러리스트가 돼 미군, 시리아 정부군, 야지디 전사들과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멀록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시론] 일왕 필리핀 이어 한국도 방문해야/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시론] 일왕 필리핀 이어 한국도 방문해야/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최근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다. 일왕으로선 사상 첫 방문이다. 필리핀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장이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일본군 사망자가 약 52만명, 필리핀 희생자가 무고한 시민 등 약 111만명에 이른다. 아키히토 일왕은 황태자 시절인 1962년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마닐라 시내 무명용사의 묘를 찾아 참배, 당시 격렬했던 필리핀인들의 반일 감정을 완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번 방문에서도 일본인 전몰자 위령비에 헌화하기 전 먼저 필리핀 희생자 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대통령궁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필리핀인 희생자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 일본인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가 전쟁에 대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등 원론적이지만 일본의 전쟁 책임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일왕의 필리핀 방문 뉴스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우리로서는 간과해선 안 될 점이 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과해도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이를 뒤집는 각료 등의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행동이 반복돼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총리보다 오히려 일왕(1945년 일본 패전 후 일왕은 ‘상징 천황’으로 격하됐지만)으로부터 받는 것이 우리로서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아키히토 일왕은 옛 일본군 통수권자이자 대원수로 일본의 침략전쟁을 진두지휘했던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아들이다. 일본인 사망자 약 310만명을 포함해 약 2300만명의 희생자를 낸 침략전쟁의 정점에 있었던 히로히토 일왕은 한국 대통령이 처음 공식 방일(전두환·1984년)했을 때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는,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발언으로 끝냈다. 아키히토 일왕도 1990년 방일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 못한다”는 사전에도 없는, 유명 작가가 만들어 준 말로 유감의 뜻을 표했을 뿐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가장 고통을 받은 나라는 35년간 식민 치하에서 신음한 한국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미 일본의 침략전쟁(만주사변, 중일전쟁) 당사국인 중국을 방문했고(1992년) 이번에 최대 격전지였던 필리핀도 방문했다. 이제 남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의 ‘마지막 과제’는 한국 방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중 일본을 공식 방문해 일왕 방한을 정중히 요청하고 아키히토 일왕이 답례로 방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일왕의 방한이 성사돼 그가 필리핀 무명용사묘를 참배한 것과 같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항일순국선열 묘역에 참배하고 만찬 석상에서 식민지배에 대해 보다 진전된 형태의 사과 발언을 하는 것을 기대해 본다. 거기에다 일왕 부처가 시간을 내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만나 사과하고 위로한다면 양국 간 과거사 문제를 결자해지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일 양국은 교역, 문화, 인적교류 등에서는 괄목상대할 만한 진전을 이뤘으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는 계속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해 말 양국 정부가 어렵사리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이후에도 냉담한 반응이다. 일본에선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다는 주장을 유엔에 보내는 등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악화된 한·일 관계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물론 일왕의 한국 방문은 당사자의 의사와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결정될 것이다. 무엇보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은 양국에서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고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일왕의 방한은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 구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80대 초반인 아키히토(1933년생) 일왕의 해외여행이 가능할 때 방한이 성사될 수 있도록 특히 양국의 지도자는 물론 사회지도층이 그 같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지난해 12월 31일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비판했던 사람이 법원으로부터 5년의 시베리아 유배형을 정식으로 선고받았다. 시베리아 유배형은 원래 동방을 침략한 러시아제국이 시베리아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자국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면서 탄생한 것이다. 이후 건국된 소련은 이 형벌을 더욱 강화했지만 소련이 붕괴됐음에도 유배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은 문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배 캠프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기센시는 문제 청소년들을 9개월간 시베리아로 보내 갱생교육을 받게 하는데 섭씨 영하 55도의 극한지에 TV도 인터넷도 없고 가이드와 함께 외딴집에 살면서 빨래와 취사를 직접 한다. 이 프로그램은 과도한 소비문화 유혹에서 청소년들을 격리시킨다는 취지로 진행 중이다. 독일 청소년 선도 단체는 한 해 600여명의 문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갱생교육을 하고 있지만 유배 캠프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유배로 악명 높은 10개의 섬’이라는 주제로 유배 관광을 안내하고 있다. 영화 ‘빠삐용’으로 유명한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을 비롯해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섬’ 등 이색 관광지로 유배지를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유배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령 노퍽섬을 중심으로 매년 ‘유배의 섬’ 콘퍼런스가 개최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뉴칼레도니아, 괌, 사할린 등 여러 섬들이 참여해 유배지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방문 장소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덕분에 주요 ‘유배의 섬’들이 현재 세계유산 등재 신청 리스트에 올라갔다. 보다시피 유배라는 주제는 이렇게 전 세계에 걸쳐서 형벌이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또는 이색 관광지, 세계문화유산 등으로 활발하게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최고의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는 이와는 좀 다르게 전개돼서 흥미를 끈다.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 미디어 블룸버그는 제주도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다. 제주 경제가 국가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이 순유입 인구 증가와 이전기업 효과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주요 도시 인구가 감소세인 반면 제주도에는 매달 평균 1000여명이 넘게 유입되고 있는 점을 중요한 성장 배경으로 봤다. 이렇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필자는 ‘자발적 유배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한 조선시대 300여명의 유배인들과는 전혀 다른 헬조선 시대의 유배인들이다. 그들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육지부의 도시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제주도로 들어가 삶의 시계를 좀 늦추고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추사는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도 행복하고 제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최근의 현실은 땅값이 뛰고 살 집이 없어지는 등 제주마저 급격히 ‘헬조선’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그들도 불행하고 제주도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간 조만간 그들은 돌아설 곳이 없는 유배인이 될지도 모른다.
  • [사설] 대통령 수행 이란 사절단 감동 주도록 꾸려야

    기아자동차의 1세대 프라이드는 1987년 출시돼 2000년 단종됐다. 지금 이 차를 서울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지만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다르다. 국영 자동차회사 사이파가 1993년부터 기아차와 협력해 400만대 이상 생산했기 때문이다. 세단형은 사바, 해치백은 나심이라 이름 붙였고, 우리나라에도 없는 픽업모델 사바141(S141)을 개발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의 대(對)이란 완성차 수출은 2010년 2만 2734대를 정점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에 따라 2012년 완전히 중단됐다. 하지만 이란 국산화율 97%로 경제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바와 나심은 지금도 팔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청와대가 어제 밝혔다.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된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테헤란을 방문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란 방문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이날 관계 부처의 ‘대이란 태스크포스(TF)’ 회의도 열었다고 한다. 오일 달러가 넘쳐나는 인구 8000만명의 대형 시장이 열리면서 국제사회의 경쟁이 본격화된 마당에 발 빠른 대처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프라이드 혈통인 사바와 나심이 20년 이상 ‘이란의 국민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이 관계는 그리 간단치 않다. 고대에도 신라와 페르시아는 실크로드를 사이에 두고 교류했다. 이란의 고대 서사시 ‘쿠시나메’는 7세기 아랍의 침략으로 중국에 망명한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이란의 영웅이 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이 2006~2007년과 2008~2009년 이란에서 최고 시청률 85%를 기록하고, 이후에도 ‘해신’, ‘상도’, ‘바람의 화원’ 등이 잇따라 인기를 끈 것도 오랜 교류사에서 형성된 문화적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이란 국민의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제재 이전까지 경제협력의 활성화로 이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한때 서먹했던 관계를 되살리는 차원을 넘어 두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을 동반 향상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감동을 주려면 이란이 우리에게 원하는 산업 분야를 망라해 사절단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란 특수’는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옛 친구의 마음을 돌리려면 대통령이 주도하는 범정부적 노력과 함께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 한국만화 탄생 여기서 시작됐다

    한국만화 탄생 여기서 시작됐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한국 만화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간이 생긴다. 종로구는 삼봉로 수진궁터에 만화탄생지 기념 조형물과 만화거리 바닥 동판 등을 설치한다고 25일 밝혔다. 수진궁터에 있던 ‘대한민보’는 창간호(1909년 6월 2일)에 이도영 화백의 만화를 게재했다. 이 만화가 최초의 시사만화로 꼽힌다. 구는 지난해 3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제안했고 업무협약을 체결해 민관 협의로 진행하게 됐다. 구는 기념공간을 마련해 정기적인 만화축제, 만화 아트마켓, 캐리커처전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 만화의 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만화탄생지 기념 조형물은 이도영 화백의 계몽 만화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다음달 말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이 만화는 일제 침략의 야만성을 꾸짖으며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위를 비판하는 풍자만화였다. 동판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추천한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의 만화 캐릭터를 새긴다. 구는 앞으로 ‘만화 몽마르트르 거리’를 조성해 만화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방문객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이벤트도 벌여 작가와 시민이 문화예술로써 소통하는 시간도 만들 계획이다. 오는 6월 2일에는 만화 탄생일을 기념해 아트카툰전, 캐리커처전, 작가사인회 등으로 꾸민 축제도 벌인다. 김영종 구청장은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담긴 만화 산업을 더 알리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아시아의 힘(조 스터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프롬북스 펴냄) 폭락하는 중국 증시는 꺼져 가는 버블의 증거일까 아니면 극복 가능한 성장통일까. 중국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때 고속 성장했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빈곤해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 한국과 같은 성숙 경제로 나아갈 것인가. 이 책은 비즈니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개발 경제학에서 중요한 두 가지 질문, 즉 일본, 한국, 중국 같은 국가는 어떻게 고도성장을 했는가와 왜 다른 나라들은 그런 성장이 드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동북아시아 성장의 승패를 좌우한 요인을 파악하고 전략을 제시한다. 504쪽. 2만 3000원. 법륜 스님의 행복(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나무의 마음 펴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살아간다. 열심히 살지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행복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오늘 우리가 사는 방식과 가치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금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면서도 타인을 억누르지 않고, 경쟁에서 지면서도 패배감 없이 사는 비결을 소개한다. 280쪽. 1만 4000원. 몸은 기억한다(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분야를 30년 이상 연구한 미국의 의학 박사가 쓴 트라우마 안내서다. 트라우마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멈춰 과거의 일을 반복해 경험한다. 트라우마의 후유증은 정신뿐 아니라 몸에까지 비극적 경험의 상흔을 남긴다. 몸이 그 상처를 기억해서 반응하는 것이다. 책은 PTSD라는 진단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치료법의 발달,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소개한다. 책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이들을 품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며 마음을 여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660쪽. 2만 2000원. 량치차오 평전(셰시장 지음,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펴냄)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 계몽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에 관한 1000쪽이 넘는 평전이다. 중국어 원문 70만자·한글 번역 130만자에 달하는, 지금까지 출판된 량치차오 전기 중 가장 두껍다. 량치차오는 계몽적 잡지 발행, 신사상 소개 등과 같은 혁신운동과 법을 통해 부국강병을 모색한다는 의미의 ‘변법자강운동’을 주창해 중국 개화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혁명을 지연시켜 역사의 전진을 반대한 ‘반동 인물’이라는 혹평도 뒤따른다. 저자는 책에서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절 지식인으로서 량치차오가 겪은 고뇌와 발자취, 이 과정에서 맺은 대표적 인물들과의 교류를 촘촘하게 엮어냈다. 1304쪽. 5만 4000원. 산척, 조선의 사냥꾼(이희근 지음, 따비 펴냄) 영화 ‘대호’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호랑이 사냥꾼의 활약상을 그린 책. ‘산척’이라 불리던 이들은 뛰어난 무예 솜씨로 백성들의 파수꾼 역할을 도맡았으며 임진왜란 같은 큰 전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임진년 왜군의 침략에 속수무책 패하기만 할 때 거창 우현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친 의병이 바로 이들이 주축이 된 부대였다 .책은 우리 역사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산척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나가면서 조선시대 일상과 군사 제도, 임진왜란 등 국가적 환란과 구한말 의병 투쟁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232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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