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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미화 논란 中 영화 ‘나의 전쟁’ 관객 외면과의 전쟁

    한국전쟁 미화 논란 中 영화 ‘나의 전쟁’ 관객 외면과의 전쟁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을 미화한 중국 영화 ‘나의 전쟁’(我的戰爭)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홍보영상 때문에 한국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한국 관광에 나선 중국 노인들의 여권에 처음으로 한국 입국 도장이 찍힌 사실을 발견한 한국 가이드가 “한국을 소개하겠다”고 하자, 노인들이 “우린 60여년 전에 이미 와 봤어. 여권은 필요 없었지. 대신 붉은 깃발을 들고 왔지”라고 말하고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자)를 외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지난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초반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개봉 6일간의 박스오피스 수입은 413만 달러(약 46억원)에 머물러 박스오피스 9위에 그쳤다. 주요 국유 영화배급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3D, IMAX 영화관 개봉 등 여러 우대에도 관객이 모이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 및 정부 기관 내 선전부가 조직적으로 영화 관람을 독려하고 있지만, 효과가 별로 없다. ●일부 항미원조 선전전에 보이콧 오히려 일부 누리꾼은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하얼빈사범대 역사학 교수 린치는 웨이보에 “일본 노인 단체관광객이 난징에 와서 자신들이 70여년 전 난징대학살 때 욱일승천기를 들고 왔었다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베이징의 변호사 자오후도 “셀 수 없이 많은 중국인이 죽었지만, 한국이 남과 북으로 분단됐고 북한 김씨 일가 3대에 혜택을 줬는데도 여전히 자랑스러운가”라고 지적했다. ●中매체들 “위대한 승리” 영화 엄호 영화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자 중국 매체들이 영화 엄호에 나섰다. 중국국방보는 22일 “항미원조 전쟁을 일본의 중국 침략과 빗대 정의성을 의심하는 것은 반역행위”라면서 “그 전쟁은 미군으로부터 중국을 지킨 위대한 승리였고, 시진핑 주석도 전쟁 60주년 당시 ‘평화를 보호하고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관찰자망도 평론을 통해 “전쟁 당시 한국이란 국가는 엄밀하게 말하면 없었으며, 미국을 추종하고 항일투사들을 살해한 매국적 괴뢰정권만 있었을 뿐”이라면서 “북한이 미국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도와 조선 남쪽을 해방시키려 한 전쟁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군부의 힘과 시민의 힘이 맞서고 있던 1987년 6월 13일 밤이었다. 성당 내부에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건넨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온화한 경고는 결국 가장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가 되어 명동의 신화를 만들게 된다. 결국 경찰은 병력 1500여명을 철수하게 되고 1987년 6월 15일 오전 11시, 시위대는 해산한다. 이로써 6월 10일부터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은 6월 항쟁의 신호탄을 명동에서 청와대로 쏘아 올린 기폭제가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종루(鐘樓)의 역할을 하던 명동성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당 앞뜰과 언덕을 숨 가쁘게 뛰어 오르던 낯빛 붉은, 꽃병(화염병) 쥔 청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DUTY FREE' 로고 한 가득, 흰 비닐가방 서너 개 든 외국인 관광객의 셀카봉에 명동성당 첨탑 십자가는 그윽한 서울의 배경으로 내려 앉았다. 삼일대로와 서울로얄호텔에서 명동성당 앞까지 밀려오던 사복경찰(일명 백골단)들이 즐겨 입던 청재킷은 어느덧 4만9000원 가격표를 달고 매장 앞 옷걸이에 ‘가을 신상’으로 걸려 있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중심에서, 2016년 서울 투어의 중심이 되었다. 명동성당이다. ●1898년 5월 29일 축성, 봉헌된 고딕 양식의 성당 2016년 9월, 명동은 24시간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지극히도 붐비는 곳이자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바로 이 곳,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2가에 자리 잡은 명동성당(明洞聖堂)은 현재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이자,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이며 고딕 양식의 기독교 교회당이라는 역사적 의미 역시 깊은 곳이다. 성당은 높이가 23m, 종탑의 높이는 46.7m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성당 내부에는 아치형 복도,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이런 종교적, 건축적 의미들로 인해 1977년 11월 22일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니 처음부터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인 곳이었다. 우선 이곳에 신앙공동체가 처음으로 형성된 시기는 1784년 명례방 종교 집회였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천주교 박해가 풀리고 1883년 조선 교구는 침계 윤정현(梣溪 尹定鉉)의 집과 땅을 사들여 1887년에 성당 건립을 위한 땅다지기 공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성당의 터가 종현(鐘峴·진고개) 지역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있어서 왕궁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저택 역시 고종이 직접 하사한 것이었다. 이에 고종은 작업 중지와 토지권의 포기를 요구하고 결국 후일 금교령까지 내려진다. 하지만 천주교회측은 공사를 강행하여 1898년 5월 29일 작업을 완료하고 성당의 축성식을 연다. 그리고 성당 이름은 지역 명을 따서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이 곳에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모시게 되었고, 현재까지 지하성당에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일제 침탈 시기인 1930년대의 명동 성당의 역사에는 전시총동원(戰時總動員) 협력이라는 아픈 기록도 분명히 남기고 있다. 중일전쟁 발발 여드레 만인 1937년 8월 15일의 성모승천축일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는 등의 일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당시 천주교 선교의 도움을 받고자 한 이런 비정치적 행동이 결국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천주교회가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여 지금까지도 명동성당 기억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겨져 있다.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아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는 이름은 명동대성당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1970, 80년대 근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으로 명동성당이 한국 근현대사 정치의 중심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성당 측은 4·19 학생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자세를 드러내었고 천주교 신자였던 장면에 대한 애정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후 5·16 쿠데타에 의한 장면 정권의 교체는 명동 성당으로서 뼈아픈 일이었다. 이 시기 서울 대교구와 성당측은 적지 않은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경향신문을 군사정권에 탈취당하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본격적으로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성당측은 가지게 된다. 드디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는 역량을 키우게 된 것이다. 1980년 6월 25일 김수환 추기경은 시국관련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후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피의자들이 원주교구에 피신을 요청하게 되고, 최기식 신부가 이를 받아들여 구속된다. 이에 김수환 추기경은 1982년 4월 7일 강론을 통해 ‘가톨릭 사제로서 정당하고 합당한 행동’이라고 인정한다. 이제 군부정권은 뜻하지 않게, 조선시대 이후 역사의 ‘산전수전'(?) 다 겪은 명동성당이라는 지독한 상대를 만나는 불운(?)을 겪기 시작한다. 이후 명동성당 본당 사목회 산하 ‘사회정의위원회’가 신설되고, ‘청년연합회’의 활발한 정치적 활동, ‘카톨릭 민속연구회’의 창설 등 민주화 운동을 향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난다. 결국 1987년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이루어진 ‘명동농성’을 통해 시위대, 정의구현사제단과 수녀단, 명동성당의 평신도들의 삼각협력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그 빛을 발한다. 당시 시위대의 안전한 귀가와 그 어떤 문책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군부정권으로부터 받아냄으로써 명동성당은 어느 순간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정치참여 활동은 순수한 종교적 구원을 추구하는 일반 신도들에게는 또 다른 불만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 아고라(Agora)의 위상 유지와 순수 가톨릭 정신의 구현이라는 본래의 역할 수행이라는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1990년대를 맞이한다. 이후 현재까지 명동성당은 한국사회의 변동이라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의 적절한 역할을 향해 끈임없이 고심중이다. 현재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 속에서 80년대와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명동성당의 풍경은 항상 역사적으로 남아있음은 분명하다. <명동성당에 대한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인가? -당연하다. 굳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입장이어도,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방문의 가치는 충분하다. 경건한 종교 시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명동을 방문할 일이 있는 누구에게나. 쇼핑으로 무겁고 힘든 짐을 진 자들부터 성지순례를 원하는 가톨릭 신자까지 누구나 열려 있다. 3. 건축학적인 의미는 어떠한가?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으로 전주의 전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4. 시간은 많이 걸리나? -그리 넓지는 않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본당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5. 명동성당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공간은? -성당 내부 곳곳에 있는 성화와 성상,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리화. 6.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mdsd.or.kr/ 7. 미사시간은? -평일미사는 오전 6시 30분, 오후 6시, 7시. 주일미사(일요일)는 오전 7시, 9시(영어미사), 10시, 11시, 12시(교중미사), 오후 4시, 5시, 6시, 7시(청년미사), 9시/ 자세한 시간은 홈페이지 참조 8. 성당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박물관, 평화화랑-1898 아케이드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은? -지하성당. 엄숙한 종교적 공간이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명동성당은 결코 관광지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여행지임에는 분명하다. 바티칸의 거대함보다 우리 삶의 현장에 있는 명동성당의 가치를 느껴보는 것도 종교를 떠나 가치있는 일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美연합군 시리아 오폭으로 62명 사망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17일(현지시간)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진행하던 도중 시리아 육군 기지를 오폭해 최소 60여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부상당했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미국은 오폭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시리아와 러시아 등은 강력 반발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에 공습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러시아는 시리아 휴전협정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사건의 확대를 경계했다. AP는 “F16 전투기 2대와 A10 전투기 2대가 4차례에 걸쳐 폭격을 단행해 시리아 정부군 62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군 탱크와 보병 전투차량, 박격포, 대공포 등이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미 중부군 사령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로부터 연합군이 시리아 정부군과 차량 등을 타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받은 후 폭격을 중단했다”며 “연합군이 시리아 정부군이란 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폭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연합군의 오폭에 반발한 시리아와 러시아는 즉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시리아 외무부는 이번 공습을 미국의 ‘침략’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에 시리아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北 “다른 공격 개시할 준비 돼 있다” 추가 도발 가능성 제기

    北 “다른 공격 개시할 준비 돼 있다” 추가 도발 가능성 제기

    북한 측이 미군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와 관련해 “다른 공격을 개시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위협함에 따라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마르가리타 섬 포르라마르 시에서 열린 제17차 비동맹운동 각료회의 연설을 통해 “북한은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투입한 미국의 도발에 맞서 다른 공격을 개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비동맹운동은 주요 강대국 블록에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려는 국가들로 이뤄진 국제조직으로, 120개 회원국과 17개의 옵서버 국가로 구성돼 있다. 1975년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북한은 1976년 제5차 회의부터 대표단을 파견, 체제 선전과 지지세력 확보의 장으로 활용해왔다. 리 외무상은 비동맹운동 각료회의에서 미군 전략폭격기 B-1B의 한반도 전개를 도발로 규정하고 보복 공격을 시사한 셈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지난 14일 미군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제놈(미국)들의 침략 야망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써먹어 보려는 흉악한 속심으로부터 미제는 핵전략 폭격기들을 남조선 지역 상공에 계속 들이밀면서 그 과정에 핵 선제 타격의 기회를 마련해보려 하고 있다”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미군 전략자산 전개에 대응해 북한이 도발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예상 가능한 도발로는 ▲지대공 미사일 시험발사 ▲추가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이 꼽힌다. 북한은 최대 사거리가 260㎞에 달하는 KN-06, SA-5, SA-2, SA-3 등 지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전방과 동·서해안 지역, 평양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해놓고 있다. 지대공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미군 전략폭격기가 북한 상공에 진입하면 요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북경고 차원에서 전개하는 미군 전략 폭격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대응해 추가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1~3번 갱도 중 그간 한 차례도 핵실험을 하지 않았던 3번 갱도에서 언제든 핵실험을 감행할 준비를 마친 정황이 최근 포착됐다. 한미 정보당국은 3번 갱도에서 추가 핵실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4차 핵실험 때 ‘핵탄두 폭발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한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 노동·무수단·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 북방한계선(NLL) 및 비무장지대(DMZ) 긴장조성 ▲ 대남 사이버테러 등도 북한의 예상 가능한 도발 유형으로 꼽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알카에다, 여성 테러리스트 반대… IS는 부추겨

     수니파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서방 내에서 여성 혼자 테러를 저지르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AQAP는 최근 온라인 선전물 인스파이어 가이드에서 “무자히딘(이슬람 전사) 형제라면 우리의 무슬림 자매가 혼자서 어떤 지하드(이슬람 성전) 작전에 가담하도록 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AQAP의 이번 지침은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여성 4명이 이달 초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겨냥해 가스통으로 테러를 벌이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AQAP는 이들 여성이 ‘무슬림의 적’인 프랑스를 공격하려 한 점은 칭송했으나 “우리의 고결한 무슬림 자매의 명예를 침략자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지하드의 뜻을 깨닫기 위해 여성이 지하드에 참여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프랑스는 테러리즘 격퇴를 명분으로 한 무슬림 자매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며 “프랑스의 무슬림 형제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프랑스를 향한 지하드 작전을 거행하라”고 선동했다.  반면 IS는 여성의 테러도 부추기는 모습이다. IS의 선전 매체인 아마크통신은 최근 케냐에서 여성 3명이 경찰서를 공격한 데 대해 “IS의 여성 지지자들이 십자군을 공격하라는 부름에 응답했다”고 13일 전했다.  프랑스 검찰은 9일 노트르담 성당 테러 미수와 관련해 시리아의 IS가 이들 여성에게 직접 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시론] 조건부로 전술핵 재배치하자/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론] 조건부로 전술핵 재배치하자/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의 기습적인 5차 핵실험으로 핵탄두 제조 능력과 타격 수단 보유가 임박하자 이를 억지·방어하는 게 우리 안보의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2008년 12월 이후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한 번도 열지 못한 데다 북핵 능력이 고도화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우리의 독자적인 억지·방어력을 구비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최우선적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고 국가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바람 분다고 못 뜨는 미군 폭격기에 우리의 생명을 맡길 순 없다. 이제라도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민주주의 체제의 통일 한국을 최소 비용으로 달성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북한의 핵공격을 억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핵 개발이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한국 전력 수요의 30% 이상을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의 주원료인 농축우라늄 취득이 어려워지고 미국이 한·미 동맹을 파기하겠다는 정도로 반대할 가능성이 크며, 대외 의존도가 110%가 넘는 우리 경제도 국제 제재로 무너질 수 있다. 선결조건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부터 미룬 게 현실이다.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은 남한 전역을 가격할 수 있는 북한 미사일 1000기에 비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요격미사일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미사일 도착 시간도 5분 내외이므로 한계가 분명하다. 킬체인 등 선제 타격력은 2023년에야 구축되는 데다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발사차량이 150대 이상이어서 이를 모두 감시하기 힘들고 단순 이동인지 우리를 공격하는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더구나 선제 공격은 우리를 침략자로 몰 수도 있고 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지므로 실제로 실행하기는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주변국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충분한 안전보장이 되며 대북 협상력도 강화하는 방안으로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안이 부각된다. 먼저 북한 핵이 10개 내외지만 미국 핵은 5000개 이상이므로 미국이 한국을 미국 영토처럼 방어해 주는 것이 분명하다면 핵 공격을 확실히 억지할 수 있다. 현재는 미 국방장관이 연례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한 번 ‘구두로’ 약속한 상태다. 그런데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의 침략 시 미국은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도와줄 가능성은 크지만 반드시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해서만큼은 ‘자동적·즉응적으로’ 북한에 핵 보복을 할 것임을 확약하는 내용의 한·미 핵안보조약을 체결하고 미 의회의 비준을 받아 우리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더 가시적인 방안은 1992년 철수한 전술핵을 한시적·조건부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미국이 이에 소극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최근 국내에서 제기되는 핵 개발 주장을 최대한 선용해 협상력을 강화하면서도 핵 개발 자제를 약속하고 미국의 동의를 얻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고 운용은 한·미 최고지도부가 협의하며 한국 항공기와 조종사도 작전에 참여시켜야 한다. 또한 사드 배치 이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가능성이 크므로 약 2년 정도의 북핵 협상 기간을 정해 그때까지 북핵 포기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에만 배치하며, 배치 이후에도 협상을 적극적으로 지속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재철수할 것임을 공약함으로써 양 강대국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물론 한국의 독자적인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능력 보유도 조속히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수전 수송기와 특수 헬기, 무인정찰기부터 구비하고 김정은의 동선을 24시간 파악하는 능력과 대량·정밀 타격 능력도 꾸준히 갖춰야 한다. 대북 억지력 확보로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정부는 북핵 협상을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로 열세에 처한 남북 비대칭 전력의 균형을 회복해 우선적으로 국가 안보를 확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첫째 목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협상력을 강화해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며 호혜적인 경협을 촉진시켜 대박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北 “적들이 조금이라도 움쩍거리면 핵 선제타격할 것”

    북한은 최근 감행한 제5차 핵실험의 축하 행사를 13일 열고 ‘핵 선제타격’을 거론하며 미국과 우리나라 등을 위협했다. 윤동현 북한 인민무력성 부상은 이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핵탄두 폭발시험 성공을 경축하는 평양시 군민연환대회’에서 “우리는 고도의 격동 태세에서 날강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무모한 반공화국 침략전쟁 책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그러면서 “적들이 존엄 높은 우리 국가의 자존과 권위를 해치려고 조금이라도 움쩍거린다면 단호하고도 강력한 핵선제 타격으로 세기를 이어온 반미 대결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또 “우리 군대는 하늘땅이 열백번 뒤바뀐다 해도 최고사령관 동지 한 분만을 굳게 믿고 따르며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와 금수산태양궁전을 결사옹위하는 억척의 무쇠방패가 되겠다”고 충성을 다짐했다. 이어 연설대에 오른 장철 국가과학원장은 “핵탄두들이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우리의 핵무기 병기화는 핵분열탄이든 핵융합탄이든 그 어떤 운반수단에도 다 장착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수준에 확고히 올라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당당한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똑똑히 보고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국가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하며 가중되는 미제를 비롯한 적대 세력들의 핵위협을 정의의 핵으로 총결산하려는 우리 당과 인민의 신념과 의지는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의 주석단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박봉주 내각 총리,최룡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당·정·군 간부들이 자리했다. 연합뉴스
  • [‘北 핵 도발’ 日·美·中 전문가 진단] “北 핵실험은 협상용 아닌 핵 능력 수집용”

    [‘北 핵 도발’ 日·美·中 전문가 진단] “北 핵실험은 협상용 아닌 핵 능력 수집용”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관련,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핵프로그램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와 차기 정부가 북한을 더 제재해야 하는지, 협상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국제연구소 객원교수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의 5차 핵실험은 북한이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무기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며 “이는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를 생각하는 데 중대한 변화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루이스는 “북한이 이번 핵실험 이후 낸 성명을 보면 단순히 핵 능력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김정은이 만든 ‘전략로켓사령부’에서 탄도미사일과 핵탄두가 상당한 규모로 만들어지고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북한은 핵무기가 미국의 공격을 억지하는 것을 넘어, 억지가 실패할 경우 침략을 격퇴하기 위한 수단임을 확인함으로써 (침략) 위기 초기에 핵무기를 항구나 공항을 상대로 사용해 미국의 병력 집결을 막아 한국을 도우러 오는 것을 차단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미국의 공격을 막는 등 생존을 위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사일·핵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5차 핵실험은 협상을 위한 외침이 아니다”며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억지할 수 있는 실제 핵 능력을 수집하기 위한 심각한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은 2020년이면 핵탄두가 장착된 ICBM 제조 기술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며 “이때쯤이면 핵탄두를 최대 100기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핵물질을 축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북한이 멀지 않아 시카고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실험 도발은 오바마 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부에 엄청난 짐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외교협회(CRF)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핵을 묵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강제 조치 등 강경한 대북 정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김정은은 북한의 핵 보유 의지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해 왔던 김정일과 다르다는 점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여지가 적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제재로 북한에 고통을 가하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분명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강 남가주대(USC) 교수는 “8~9개월 전만 해도 제재가 북한을 굴복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북한은 압박에는 압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언론은 대북 제재에 의견이 엇갈렸다. NYT는 “오바마의 추가 제재를 낙관할 수 없다”며 “오랜 해법은 거의 예외 없이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화를 촉구했다. 반면 WSJ은 “뻔한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제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세컨더리 보이콧’을 이행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직접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임진왜란1592’ 김응수, 도요토미 히데요시 완벽 소화 ‘소름 돋는 명연기’

    ‘임진왜란1592’ 김응수, 도요토미 히데요시 완벽 소화 ‘소름 돋는 명연기’

    배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완벽 변신했다. 9일 KBS1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1592’에서는 ‘침략자의 탄생,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방송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적은 이번이 처음으로, 제작진은 역사의 기록에 충실해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이날 ‘임진왜란1592’ 3부에서 김응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강렬하게 등장했다. 김응수는 비주얼 뿐만 아니라 실제 일본인 같은 발음을 구사하며 리얼리티를 살렸다. 김응수는 역할을 위해 일본어 원서 역사책을 읽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야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 일본 주군이 된 모습부터 그려졌다. 임진왜란 6년 전으로, 당시 그는 명나라 정복에 열중해 있었다. 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열등감도 보였다. 사진=KBS ‘임진왜란1592’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임진왜란1592 PD 김한솔 “철저한 팩트 검증..대본 수정만 228번 했다”

    임진왜란1592 PD 김한솔 “철저한 팩트 검증..대본 수정만 228번 했다”

    ‘임진왜란1592’ 김한솔 PD가 완벽한 대본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전했다. KBS1TV 팩츄얼드라마 ‘임진왜란 1592’ 김한솔 PD가 “대본 수정을 228번 했다”며 드라마 제작과정의 노고를 털어놨다. ‘임진왜란1592’ 김한솔 PD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타워동에서 진행된 ‘임진왜란 1592’(극본 김한솔 김정애, 연출 김한솔 박성주) 제작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임진왜란1592’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김한솔 PD는 극본을 직접 쓴 과정을 설명하며 “컴퓨터 폴더를 확인해보니 대본 파일이 228개가 나왔고 수정을 228번 했다”며 “그만큼 팩트 체크를 여러 번 했다. 팩트를 발굴하고 전문가들의 고증을 받고 스토리를 짜고 다시 체크를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김한솔 PD는 “하루동안 믹스커피 28잔을 먹었다”며 쉽지 않았던 극본 탈고 과정을 털어놨다. 5부작인 ‘임진왜란1592’는 지난 3일 1편을 방송했으며 8일 목요일 오후 10시 2편 ‘조선의 바다에는 그가 있었다 하’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어 9일 오후 10시 3편 ‘침략자의 탄생, 도요토미 히데요시’, 22일 오후 10시 4편 ‘삼국대전, 평양성’, 23일 오후 10시 5편 ‘검은 바다, 노량’이 방송된다. 사진=K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임진왜란 1592’ 측 “2편 ‘한산대첩’에 제작비 많이 들어”

    ‘임진왜란 1592’ 측 “2편 ‘한산대첩’에 제작비 많이 들어”

    ‘임진왜란 1592’ 2편에서는 한산대첩으로 채워진다. 8일 방송되는 KBS1 ‘임진왜란 1592’ 2편에서는 좁은 수로 견내량에서 돌격, 육박전을 펼치는 거북선의 거침없는 활약상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옥선 부대의 대규모 학익진이 펼쳐지면서 조선 수군의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일본 수군을 궤멸 직전으로 몰고 가는 역대급 해상전투의 장관이 펼쳐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린 전투인 만큼 이는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제작진 측은 “제작비의 대부분을 2편에 쏟아 부었다”고 말할 만큼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산대첩은 전선의 손실은 전혀 없었지만 조선 수군에 사상자가 발생했던 만큼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필사적인 사투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KBS와 중국 CCTV 합작으로 제작된 ‘임진왜란 1592’는 임진왜란 당시 한, 중, 일 삼국의 상황을 5부작 드라마로 재구성한 국내 최초 팩추얼 드라마로, 이날 오후 10시 2편이 방송된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북한 김정은, 미사일 발사 훈련 직접 지도…“핵무력 계속 확대해야”

    북한 김정은, 미사일 발사 훈련 직접 지도…“핵무력 계속 확대해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의 탄도로켓 발사 훈련을 직접 지휘했다고 북한 언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의 6일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일 성공적인 훈련 진행에 만족하며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의 뇌성으로 장엄한 서막을 열어제낀 역사적인 올해에 다계단으로 일어난 핵무력 강화의 기적적 성과들을 계속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은 구체적인 훈련 일자는 밝히지 않았으나 전날 한·중 회담 직후 동해상에 3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훈련으로 보인다. 이날 발사장에 도착한 김정은은 훈련 계획과 탄도로켓의 기술적 제원을 파악한 다음 훈련 명령을 내렸다. 이어 김락겸 전략군 대장의 구령에 이어 탄도로켓이 발사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이번 훈련에 참가한 ‘전략군 화성포병부대’에 대해 “유사시 태평양작전지대안의 미제침략군 기지들을 타격할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성포병들은 우리의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조치를 걸고들면서 함부로 입부리를 놀려대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게 섬멸적인 핵불소나기를 들씌우고 승전포성을 높이 올릴 전투적 의지에 충만돼 있었다”고 위협했다. 또 “탄도로켓 발사훈련을 통해 최고사령관 동지의 현명한 영도 밑에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적들에게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군종으로 강화 발전된 화성포병부대들의 군사적 위력에 만천하에 과시됐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이번 발사 훈련은 실전 배비한 성능개량된 탄도로켓의 비행 안전성과 유도명중성을 비롯한 신뢰성을 재검열하고 화성포병 부대들의 실전 능력을 판정 검열하기 위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훈련에서는 화성포병부대들의 로켓 실전운영 능력과 탄도로켓들의 전투적 성능이 완벽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훈련은 김정은 이외에 리만건 당 중앙위 부위원장, 리병철 제1부부장, 김정식 부부장 등이 참관했다. 현지에서 김락겸과 박영래 전략군 중장이 김정은을 맞이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지난 5일 낮 12시 14분쯤 황해북도 황주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노동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들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1000㎞ 내외로 파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習 “항저우는 韓 임정 활동한 곳” 朴 “그런 인연 소중하게 생각”

    習 “항저우는 韓 임정 활동한 곳” 朴 “그런 인연 소중하게 생각”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5일 오전 8시 27분 중국 항저우시 서호(西湖) 국빈관. 박근혜 대통령을 맞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통령님 다시 만나 뵙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친밀한 인사를 시작으로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어진 시 주석의 발언 내용은 다소 뜻밖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얘기를 꺼낸 것이다. “항저우는 한국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30년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3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유명한 지도자인 김구 선생님께서 저장성에서 투쟁을 하셨고,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님을 보호했습니다. 김구 선생님 아들인 김신 장군님께서 1996년에 항저우 저장성 옆에 있는 하이옌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습니다. … 중·한 양국은 가까운 이웃으로 공동 이익을 가진 만큼 우리가 지금 가진 정치적인 협력 기초를 소중히 여기며,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하고 중·한 관계가 올바른 궤도에서 안정되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시인 유신(庾信·513~581)이 패망한 조국 양(梁)나라를 그리워하며 쓴 징조곡(徵調曲)이 출전이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 즉 ‘근원을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결국 한·중 간 깊은 인연과 우애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이 중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공치사를 곁들인 뼈 있는 덕담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과 연결 짓는다면 ‘중국이 과거에 도움을 준 만큼 한국이 사드 등의 문제에서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다. 물론 시 주석의 음수사원 언급을 순전히 압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시 주석이 곧이어 한·중 관계의 발전과 협력 기초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는 한국과 우호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희망을 발언의 근간으로 해석할 만하다. 이에 박 대통령도 뼈 있는 화답으로 응수했다. 박 대통령은 “아까 임시정부가 이곳에서 활동한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런 중국과의 오래전 소중한 인연에 대해서 중국이 독립 투쟁을 잘 도와주고 그런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또 그런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로 한반도와 이 지역의 평화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한·중 관계 발전에도 도전 요인이 되고 있다”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어 “그러나 저와 우리 정부는 한·중 관계를 중시하면서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우호관계 유지를 강조했다. 회담은 당초 예정된 30분을 넘겨 46분간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항저우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한중 정상회담서 시진핑 ‘구동존이·음수사원’ 언급…속뜻은?

    한중 정상회담서 시진핑 ‘구동존이·음수사원’ 언급…속뜻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해 그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위 두 사자성어를 언급한 것이 한일 접근 및 한미일 공조에 대한 우려와 견제, 한중 밀월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 등을 담은 메시지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구동존이’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먼저 찾는다’는 뜻으로, 통상적으로 미국을 비롯해 체제와 가치관이 확연히 다른 서방국가와 관계 개선을 추진할 때 자주 사용돼 온 표현이다. 특히 구동존이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우리 편’이라고 보기 어려운 나라에 사용하는 표현이란 점에서 시 주석이 이 말을 사용한 배경을 놓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 주석이 취임 후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구동존이’를 거론하고 중국이 이런 사실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한중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한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한일 군위안부 합의가 최근 본격 이행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이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북한 핵·미사일 도발 속에 한미일 안보 공조가 진전되는 상황에 대한 경계심과 사드 문제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었다. 음수사원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으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시인 유신(庾信·513~581)이 패망한 조국 양(梁) 나라를 그리워하며 쓴 ‘징조곡(徵調曲)’에서 나온 구절이다. ‘근원을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라’는 의미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회담에서 시 주석이 “일본의 침략”을 거론한 점, 중국이 독립운동 지도자 김구 선생을 도운 사실 등을 소개한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항일의 역사를 공유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의 인연을 강조함으로써 한일간의 접근에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음수사원’의 의미에 대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의 번영에 중국이 기여했다는 의미를 담았거나 한국 현 정부의 근간인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구동존이’의 의미와 관련, “한중간 일부 사안에 대한 이견이 있음에도 공통점을 확대하자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통상 다른 나라와 관계를 잘 해보자는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드와 연관지어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진왜란1592’ 최수종, 발랄한 점프샷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누구?’

    ‘임진왜란1592’ 최수종, 발랄한 점프샷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누구?’

    ‘임진왜란1592’ 최수종의 발랄한 점프샷이 눈길을 끌었다. 배우 최수종이 이순신으로 분하는 KBS1TV 드라마 ‘임진왜란1592’가 첫 방송을 앞둔 가운데, ‘임진왜란1592’의 공식 인스타그램 속 스틸컷들이 화제다. ‘임진왜란1592’는 KBS와 중국 CCTV 합작드라마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의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 기록들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최수종이 이순신 장군 역을, 김응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았다. 귀선(거북선) 돌격장 이기남 역은 이철민이, 막둥아 아빠 역은 조재완, 탐망꾼은 백봉기가 연기한다. 이외 다케다 히로미츠(와키자카 야스하루 역), 손종학(오다 노부나가 역), 박노식(김윤방 역), 박동하(고니시 유키나가 역) 등이 출연한다. 지난 7월 ‘임진왜란1592’의 대본 사진 게재로 운영이 시작된 ‘임진왜란1592’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출연 배우들의 명연기 장면부터 촬영 현장 분위기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많은 병사들이 피투성이로 쓰러진 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바다에 띄워진 귀선의 모습도 담겨 방송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촬영 현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최수종은 이순신 복장을 한 채 점프샷을 찍어 웃음을 자아낸다. 제작진은 “이순신 장군도 뛰었다 #점프샷 장군의 살아있는 각선미 #반전매력 영원한 원조 #하이틴스타 #최수종 최고!!”라고 적어 폭소를 유발했다. 한편 ‘임진왜란1592’는 3일 오후 9시 40분 1편 ‘조선의 바다에는 그가 있었다 상’ 방송을 시작으로 8일 오후 10시 2편 ‘조선의 바다에는 그가 있었다 하’, 9일 오후 10시 3편 ‘침략자의 탄생, 도요토미 히데요시’, 22일 오후 10시 4편 ‘삼국대전, 평양성’, 23일 오후 10시 5편 ‘검은 바다, 노량’이 차례로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핀란드화’의 종언/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핀란드화’의 종언/구본영 논설고문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말이 유창한 핀란드 여성이 등장했던 껌 광고 탓일까. 필자에게는 지금도 핀란드 하면 사우나나 충치 예방에 좋다는 감미료인 자일리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선입견은 2001년 이만섭 국회의장의 ‘의장단 외교’를 취재할 때는 깨졌다. 휴대전화 생산 세계 1위 기업 노키아를 방문, ‘강소국 핀란드’의 면모를 확인하면서다. 당시 새삼 놀라운 발견은 우리와 핀란드가 지정학적 환경이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인접한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큰 나라들에 국토를 유린당한 핀란드의 슬픈 역사가 묘한 동병상련을 불러일으키면서다. 우리 또한 중·일이라는 이웃 ‘공룡’들에 시달려 왔으니…. 1155년 스웨덴에 병합됐던 핀란드는 1809년 러시아의 자치령이 됐다. 이후 1917년 러시아혁명 후 독립을 선언했으나 동서 냉전기에 옛소련과 국경을 맞댄 게 악몽이었다. 1948년 스탈린 치하 소련과 ‘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한 핀란드는 외교 주권을 일부 포기해야 했다. 미국의 유럽 경제원조계획인 ‘마셜 플랜’의 수혜도 입지 못했다. 냉전기 핀란드의 외교적 행보를 일컫는 국제정치 용어가 ‘핀란드화’다. 여기엔 긍정적 의미가 없진 않다. 핀란드가 옛소련과 국경을 접했던 나라 중 위성국으로 전락하지도,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지도 않은 유일한 나라란 점에서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초강대국을 옆에 둔 약소국이 자국의 이익을 조금씩 양보하는 ‘사대 외교’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마침내 ‘핀란드화’에서 벗어나는가. 타스통신은 그끄저께 “핀란드와 미국이 핀란드 남부에서 ‘가상 적군’의 공습에 맞대응하는 합동 공군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핀란드가 더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자세다. 옛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와 표면적 우호관계는 유지해 온 핀란드가 이제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런 ‘탈(脫)러시아 외교’는 재작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게 결정적 계기라는 관측이다. “러시아의 ‘침략 본능’에 불안을 느낀 핀란드가 멀리 떨어져 있어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을 생존의 새 파트너로 선택한 것 같다”(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는 분석도 그 일환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우리를 음양으로 압박하고 있는 요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한·미 동맹 균열 가능성을 일축하며 중국과 손잡으면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고 했단다. 하지만 진즉 중국과 손잡았지만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려 온 북한에서 배고픔을 못 이긴 탈북 대열이 꼬리를 무는 현상은 뭘 뜻하나. 핀란드가 ‘핀란드화’의 종언을 선언한 배경을 곱씹어 볼 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한국·북한·일본의 ‘경계인’ 재일조선인, 또 다른 이름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

    한국·북한·일본의 ‘경계인’ 재일조선인, 또 다른 이름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

    자이니치의 정신사/윤건차 지음/박진우 외 옮김/한겨레출판/ 928쪽/4만 5000원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동포, 재일교포 등의 용어가 일정한 정치성과 이데올로기성을 띠고 있는 반면 197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한 ‘자이니치’(在日)는 단지 ‘일본에 있다’는 뜻의 보통명사다. 한국, 북한, 일본 세 나라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이니치의 정신사’는 자이니치 2세이자 한·일 현대사상사 연구가인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 대학 명예교수가 온 삶을 걸고 쓴 역작으로,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재일조선인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에 잔류한 조선인을 의미하는 역사적 용어다. 하지만 그 출발은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이다. 1911년 2527명에 불과하던 재일조선인은 1945년 해방 당시 230만명으로 늘었다. 생계를 위해 밀항한 이부터 일본 본토의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강제 연행된 이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해방 이후 귀환을 서둘렀지만 결과적으로 60만~70만명이 일본에 남게 됐다. 저자의 경우 1930년 도일한 부모 밑에서 1944년 12월 태어나 다섯 살 무렵 귀환하려다 한국전쟁 발발로 무산돼 일본에 머물게 됐다. 이처럼 많은 재일조선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내몰려지곤 했다. 책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라는 세 국가의 틈바구니에서 자이니치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신음하고 고뇌해 왔으며 일본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해 왔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각종 학술자료와 20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저자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이니치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책의 제목에는 ‘정신사’를 내세웠지만 내용은 재일조선인의 사상·정신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자이니치가 가지는 의미를 역사·정치·사회·문화·문학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 해방 이후 점령 공간의 재일조선인, 조총련의 탄생과 민족갈등, 북한의 귀국사업과 한일조약에 이어 자이니치의 사상·사회운동사와 재일 문단, 자이니치와 결혼한 일본인 아내의 삶 등 여성·젠더 문제까지 다뤘다. 저자는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적 체질과 남북 분단의 현실 앞에서 절대적 소수자인 자이니치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되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법원 “日 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9천만원씩 배상하라”

    법원 “日 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9천만원씩 배상하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우리나라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추가로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7부(부장 최기상)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14명의 유가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 1인당 9000만원씩 배상하라고 25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과거 일본 정부의 한반도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한 강제적인 인력동원 정책에 적극 동참해 피해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강요했다”면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경기 평택과 용인에 살던 홍모씨(소송 중 사망) 등은 1944년 9월 일본 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의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이듬해 8월 원자폭탄 투하로 재해를 입은 뒤 돌아왔다. 귀국 후 이들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피폭 후유증에 시달렸다. 홍씨 등 일부 생존자와 사망 피해자 유족은 2013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 1인당 1억원씩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이에 “당시 미쓰비시중공업과 지금의 회사는 법인이 다르고, 이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같은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으므로 한국에서의 청구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95년~1998년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금과 미지급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1월 한국 피해자들의 청구를 최종 기각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손해배상 채권도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현 미쓰비시중공업과 구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고, 일본 판결의 효력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판결은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는데, 이는 우리 헌법 가치와 정면 충돌하는 만큼 승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부산에서도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된 피해자 5명이 소송을 제기해 2013년 7월 말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이 사건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파기환송심 결과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광주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일부 배상 판결을 받은 사건도 대법원에 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균열 조짐 北의 을지훈련 중 도발 경계를

    중립국의 참관 아래 해마다 실시하는 한·미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지훈련)이 어제부터 12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남북 간의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에서 실시되는 훈련인 만큼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정부는 판문점에서 북측에 을지훈련이 비도발적 훈련이라는 점을 대면 통보했다고 한다. 이번 을지훈련은 북한의 기습 침공, 핵과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작계 5015’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유력 인사의 탈북 등에 따른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해 핵 선제 타격 운운하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어제 자신들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에 사소한 침략 징후라도 보이는 경우 가차 없이 우리식의 핵 선제 타격을 퍼부어 도발의 아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이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을 북침 소동이라고 왜곡하고, 선제 핵 타격 등 굉장히 위협적인 언사를 하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유감스런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도발적인 행태에 비하면 정부의 대응 수위가 다소 한가한 느낌이다. 북한이 을지훈련 때마다 대남 도발과 위협적인 망발을 남발해 왔다고 해서 우리의 대응이 예전과 같아서는 안 된다. 특히 올해는 북한 내부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상황에 맞게 경계 태세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 체제 내부의 동요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주재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최근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북한의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고 국면 전환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무엇보다 도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면 을지훈련이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 남한 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동해상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전략 폭격기를 전개한 것도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 을지훈련을 통해 상시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사이버테러나 GPS 전파 교란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군사도발과 납치 등 북한의 성동격서식 대남 도발에 대한 경계 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나아가 어떠한 형태의 북한 도발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하고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
  • 조선의 도예혼·소박한 멋…60가구 日마을에 年4만명 북적

    조선의 도예혼·소박한 멋…60가구 日마을에 年4만명 북적

    산림이 면적의 70%를 넘는 일본 남단 오이타현. 지역경제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경쟁력을 유지할까. 조선 시대 도공의 전수 기술을 유지하며 지역문화의 보고로 만든 산골 도자기마을, 사양산업 게다 제조를 현대적 디자인 감각으로 부활시킨 젊은 장인, 공동 시설과 작업장 등을 모아 활로를 찾은 임가공업 등을 통해 오이타현의 지역경제 활성화 노력과 전략을 지난달 25일 현지를 방문해 살펴봤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1시간 30분가량 차로 달리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산골 마을이 펼쳐졌다. 계곡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차의 힘으로 물방아가 연신 흙을 빻고 있었다. 디딜방아는 도자기 굽기에 적합한 고운 흙을 위해 쉬지 않았다. 비탈길 층계형 가마에선 도자기 굽는 열기가 새어 나왔다. 400여년 전 도자기 기술을 전해 준 조선 도공의 기법과 분위기가 전해져 온 곳이다. 일본 남단 규슈의 오이타현 내륙, 히타의 온타야키 도자기 마을이다. 10곳의 도자기 공방과 20여명의 장인을 중심으로 60여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기계를 안 쓰고, 손으로 만든 도구만 고집하며 400년을 이어 왔다. 조선 도공이 가르쳐 준 조선도자기 원형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도예가 사카모토 코지(47)는 “밑그림 없이, 눈대중과 힘찬 솔질, 손가락 자국 등으로 단순한 듯, 거침없이 힘차고 고졸한 멋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듯 오묘한 기하학적 문양이나, 흐르는 물을 느끼게 하는 무늬 등이 도자기를 감싸며 흘렀다. 일본 정부는 온타야키 도자기를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조금을 주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편벽한 산골마을이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온타야키 도예관’이란 도자기 박물관이 이곳 도자기의 유례와 발전 과정, 주요 작품들을 보여 주고 있다. “하치야마(八山)라는 조선 도공을 후쿠오카 번주가 데려오면서 이 마을이 시작됐다”는 설명도 눈에 들어왔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구로다 나가마사가 끌고 온 조선 도공에게 17세기 초부터 도자기를 굽게 한 것이 연원이다. 사카모토는 “세월과 대가 지나면서 조선 도공의 후예라는 사람들은 찾을 수 없게 됐지만, 우리는 도자기 기술을 전해 준 조선 도공에게 감사하고 그 기술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 명의 아들에게만 기술을 넘겨주면서 전통을 유지해 왔다. 사카모토의 아들 타쿠마(21)도 “고교 졸업 뒤 아버지에게서 대대로 이어 온 도예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18세기 이곳을 중흥시킨 사카모토·쿠로키 가문 등 4가문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사카모토는 이 마을 도자기 협동조합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각각의 공방이나 장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온타야키 도자기라는 공동 브랜드를 쓰고 있는 점도 이곳의 특징이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협동조합의 공동 가마에서 조합원들이 도자기를 굽고 있었다. 사카모토는 “한 해 도자기 애호가 4만여명이 마을을 찾는다”며 “각 공방에서 도자기를 각각 판매하지만 도쿄 등 대도시 판매를 대행하는 공동 판매가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한 점에 수백만원 또는 그 이상의 고가품도 있지만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찻잔이나 접시, 그릇 등 다양한 작품들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돗토리현의 유명 도예가 밑에서 2년 동안 도제 생활을 하다 돌아와 작품 활동 중인 사카모토 소우(26)는 “일반 직장 생활보다 수입은 적지만 수백년 이어 온 전통 방식으로 ‘큰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자기를 빚고 있었다. 일본 민예연구의 태두 야나기 무네요시가 1931년 이곳의 진가를 알린 바 있고, 세계적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1954년 한달 남짓 머물며 도자기를 만들며 이곳을 알렸다. 오이타현 관계자는 “전통 공예의 진흥과 계승은 정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면서 “판로 개척과 홍보 등을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4만 2000여평에 달하는 이 마을 전체는 국가 문화경관으로 지정돼 있고, 5월 3·4일과 10월 두 번째 주말에 도자기 축제도 열린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히타(오이타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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