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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이스 “日 교과서에 인권유린·침략사 넣어야”

    로이스 “日 교과서에 인권유린·침략사 넣어야”

    혼다 前의원, 수교훈장 광화장日영사 “위안부는 매춘부” 망언 에드 로이스(왼쪽·캘리포니아)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일본은 (한국)점령, 그리고 위안부 등 침략과 인권유린의 역사를 젊은이들이 배우는 역사책에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는 이날 워싱턴DC의 의회 청사에서 열린 ‘재미 한인지도자대회’ 환영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겨냥해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하고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우 대회 조직위원장은 “재미 한인지도자들은 미국의 지역구 상·하원 의원들과 상당한 친분이 있다”면서 “정부도 재미 한인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미 정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쉽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지킴이’로 알려진 마이크 혼다(오른쪽·캘리포니아) 전 미 연방 하원의원은 한·미 동맹에 기여한 공로로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안호영 주미 대사는 워싱턴DC 대사관저에서 우리 정부를 대신해 혼다 전 의원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그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혼다 전 의원은 “동료 의원들, 지역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노력해 ‘위안부 결의안’의 미 하원 통과를 이끌어 냈던 것이 가장 보람됐다”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해 공분을 사고 있다.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근 시노즈카 다카시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대부분 한국에서 온 여성들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그 여성들은 돈을 받은 매춘부였다”고 말했다. 이에 건립위는 즉각 비난성명을 내고 “위안부를 인정하지 않고 성노예가 됐던 여성들을 ‘사례받은 매춘부’로 부른 것은 일본 외무성 공직자로서는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中 교육법 논란…부모가 범죄자면 자녀 입학 불허?

    中 교육법 논란…부모가 범죄자면 자녀 입학 불허?

    중국 광둥성 주저우시 서교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공 류(44)씨. 그는 타지역에서 광둥성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농민공 출신 근로자다. 일자리를 찾아 온 그에게는 함께 이주해 온 초등학교 입학 연령의 아들이 있다. 여러 해 동안 거듭된 이주 끝에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놓친 류씨의 자녀가 올해 처음 주장구에 있는 한 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학교 측에서는 류씨의 과거 무범죄기록증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했다. 단지 그가 타 지역에서 이주한 농민공 출신이라는 점 탓에 학교 측은 자녀의 학교 입학 접수를 위해서는 반드시 류씨의 무범죄 기록 및 범죄 종류와 형량 등이 상세하게 기록된 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토록 한 것이다. 류씨는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이주해야 하는 농민공의 처지와 적절한 시기에 공교육을 받지 못했던 자녀의 사정이 안타깝다”면서 “부모의 범죄 경력 유무와 자녀가 가진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도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이냐. 범죄 경력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박탈당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번 사건은 현지 유력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 지금껏 매년 이 시기 중국 전역에서 일제히 진행되는 초·중고등학교 입학 접수와 관련, 대도시로 이주한 농민공 출신의 자녀의 입학 시 빚어지는 차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지난 2012년 재정된 ‘외래 취업근로자 자녀의 의무 교육 과정에 대한 공립학교 신청 방안'(외래근로자 자녀 입학방안)에 따르면, ‘의무교육과정 중의 학생은 그의 부모가 외지에서 이주한 농민공일 경우, 본적지가 아닌 이주 거주지역에서 가까운 공립학교에서 교육 받을 수 있다’며 농민공 자녀에 대한 공교육 기회의 폭을 넓히는 규정을 포함,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단서 조항 역시 해당 외래근로자 자녀 입학 방안에 포함돼 있어 논란이다. 논란이 된 무범죄기록 증명을 뒷받침하는 단서 조항에는 ‘농민공 자녀는 이주 지역에 소재한 공교육 기관에 대한 입학 신청 시 반드시 부모의 무범죄기록 및 위법 경력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며, 해당 증명서는 공안기관에서 인증 받은 것이어야 한다’는 문장이 규정돼 있다. 해당 법규에 근거한 각 지역 공교육 기관은 농민공 출신의 외래 근로자의 과거 경력과 그의 자녀에 대해 인권 침해적인 요소를 배제한 체 자체적인 심사를 실시한다. 이 때 농민공 출신의 범죄 기록 내역서는 곧 그의 자녀가 해당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 측은 제출받은 자료 내역에 기록된 범죄 종류에 따라 1회 최대 20점의 감점을 하는데, 감점 점수가 총 30점을 초과한 신청자의 자녀는 해당 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학생과 부모가 직접 과거의 사건에 대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농민공과 그의 자녀에 대한 인권침해적인 행태에 대해 중국 현지 인터넷 토론장에서는 교육부의 처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가장 많은 수의 공감을 얻은 네티즌(아이디 环球网友***)은 “과거 일본군이 중국 대륙을 침략했을 당시 우리를 지켰던 이들이 농민이었던 사실을 잊었느냐”면서 “범죄 기록 여부를 운운하며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과 엑스레이(x-lay)로 입학자 전원의 몸을 구석구석 탐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힐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아이디 自由自***)은 “(중국)교육부는 농민공의 자녀가 대대로 농민공으로 성장해 빈곤이 악순환 하기를 원하는 것이냐”면서 “지금 교육부가 하고 있는 짓이 얼마만큼 어리석은 짓인지를 교육부 관계자는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시론] 한·미 정상회담은 국제정치 주체 부상 기회/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론] 한·미 정상회담은 국제정치 주체 부상 기회/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9일 앞으로 다가온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지만, 북한의 핵 보유 임박과 지속적인 도발, 복잡한 동북아 정세 등 여러 난제들로 인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마라라고 정상회담에서 성공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회담의 목표를 현안 해결보다는 지도자 간 우호 관계와 신뢰의 기반을 다진다는 정도로 설정하고 진지함과 실용주의적 전략관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면, 한·미 우호관계를 강화하고 현안 해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역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북핵 문제다. 이에 대한 한·미 간 정책 조율과 역할 분담의 성공 여부는 우리 민족의 장래 그리고 한?미 동맹 자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우리는 한국의 최우선 국익은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맺어 왔고 현재도 국가 대외전략의 중추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국가 안보가 목적이고 동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자 우리의 선택 사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드는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방어에는 상당한 기여를 하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을 억지하기에는 매우 제한적인 효용을 가질 뿐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이를 한국 안보의 필수 무기라고 규정했다. 그로 인해 전략적 손실을 입은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경제 보복을 당한 것은 우매한 일이었다. 물론 사드도 약간의 효용은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을 전략적 적국으로 간주해 경제 보복을 지속하고 향후 북핵 문제 해결, 북한 급변사태 수습, 통일 등 중대한 사안에서 협력을 주저할 경우 막대한 국익 손실로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큰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양해받은 환경영향평가 시행을 확인받고, 만약 추후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에는 미국이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 악화를 유발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다짐받아야 한다. 또한 사드 배치의 원인이 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양국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향후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를 철수할 것임을 합의해야 한다. 이 밖에도 사드가 북한 핵 위협을 억지하는 데 제한적인 역할만 하므로 보다 근원적인 억지책으로서 미국이 나토(NATO)에 보장해 준 것처럼 한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침략국을 핵으로 공격해 준다는 핵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차선책으로 미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나 전술핵의 ‘한시적·조건부’ 재배치를 얻어 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끊어진 남북 대화 채널을 재개하고 대북 인도 지원과 민간 교류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최종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전달해야 한다. 북핵에 대해서는 한·미가 스마트한 대북 제재를 지속하면서 북한을 북핵 협상 틀로 끌어내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초 몇 달 동안 여러 차례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다가 한 달여 전부터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적절하다면 영광스럽게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말하는 등 미국이 군사공격에서 정상회담까지 정책의 재량 여지를 폭넓게 상정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한국의 위상을 국제정치와 민족 운명 결정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시킨 남북 관계 단절을 조속히 시정하고 대북 정책 지렛대를 만들며 북핵 문제 해결을 선도적으로 주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 것이고 한국 경제력이나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국제 여망에 따라 핵개발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 강북 “딱딱한 근현대사, 그림으로 쉽게 배워요”

    졸고 있는 청나라 아이로부터 러시아 소년이 만두를 훔치자 일본 어린이가 돌려 달라고 당차게 저항한다. 만두는 만주(滿洲)를 상징한다. 서양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풍자화다. 1936년 일본에서 발행한 화첩에 실렸다. 조선 어린이는 일본의 다리에 매달려 두려움에 떨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일본을 서양 열강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이자 한국의 보호자로 묘사해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청소년 역사체험교육 ‘풍자화로 보는 근현대사 기막힌 한 컷’ 교실을 마련했다고 15일 밝혔다. 복잡하고 딱딱한 근현대 역사를 그림 한 장으로 쉽게 배워 보는 자리다. 오는 18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열린다. 강북구에 거주하는 청소년 15명이 대상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사건을 압축한 풍자화들을 통해 개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상과 이에 맞서 일어난 민초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있고 알찬 역사교육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번동 소재 강북문화정보도서관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딱딱한 인문학을 재미있는 강연에 탐방, 체험을 결합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권오준 생태동화작가가 ‘사람이 되고 싶은 새’를 주제로 18일 고양 백로마을을 답사차 방문한다. 탐방은 15가족을 선착순 모집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경북 고령의 한 공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제작한 왜군(倭軍)의 충절을 기린 순절비를 그 학교의 교훈비로 세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순절비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서기’를 출처로 한다. 이에 고령군의 향토사학자들은 “교육 현장에 일제 침략 잔재가 버젓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역사교훈의 도구로 쓰자고 제안했다.14일 고령의 원로 향토사학자 등에 따르면 고령군 대가야읍의 고령중학교의 교훈비에는 원래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였던 쓰키노기시 이키나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비 앞면의 ‘조이기난순절지(調伊企難殉節址) 남차랑(南次) 서’에서 알 수 있다. 뒷면에는 쓰끼노기시 아내 오오바코의 하이쿠(일본 고유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쓰끼노기시는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드는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당시 출병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순절비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와 함께 세웠다. <서울신문 6월 13일자 13면 참조> 이런 기념물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과거에 경영했으니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러다 순절비는 광복이 되자 고령초교 내 대가야시대 우물터 인근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고령중학교의 관계자가 1947년 11월 개교하면서 이 순절비의 앞면을 모두 깍아내고 교훈을 새겨 교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에 ‘굳세고 참되고 부지런하자’라는 교훈을 새겼으나 뒷면의 하이쿠는 대충 지운 탓에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비록 비석의 앞면 글씨는 모두 지워 없어졌지만, 근대기 일제 침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며 “새정 부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니, 이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일제 침략과 역사 왜곡의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역사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일공동역사연구를 하던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고령 역사학계 “일제 임나대가야국성지비 제자리로”

    고령 역사학계 “일제 임나대가야국성지비 제자리로”

    1939년 조선 총독 세운 비석 1986년 천안 독립기념관 반출 “주민 서명운동 등 추진할 것”대가야의 도읍지 경북 고령에서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반출된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를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고령군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인 1939년 미나미 지로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를 세웠다. 고대 일본이 대가야국을 세웠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비석은 가로 103㎝, 세로 210㎝ 크기다. 앞면에는 임나대가야국성지비 남차랑 서, 뒷면에는 ‘소화 14년 4월 29일’이 새겨졌다. 하지만 광복 후인 1947년 비석의 비문 일부가 훼손됐다. 고령 군민들이 ‘임나’라는 글씨와 조선 총독의 이름을 지운 것이다.그러나 이 비석과 받침돌은 1980년대 중반 고령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1986년 5월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이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이 비석을 이듬해 개관할 독립기념관으로 긴급히 철거 이관하도록 조치한 결과다. 문화재관리국은 경북도에 공문을 보내 “임나대가야국성지비는 일제가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임나대가야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립한 역사 왜곡·날조시설로, 독립기념관 일제 침략관에 필수적인 전시자료”라며 이를 철거해 독립기념관에 이관, 전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고령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정부가 고령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강제적으로 비석의 반출을 결정했으며, 비석은 결국 1986년 12월 5일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사학자들은 이어 “현재 비석은 독립기념관 내 건물 환풍기 앞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지시한 이후 고령지역에서는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전두환 정권 당시 강압적으로 반출된 임나대가야국성지비를 되찾아 오기 위한 주민 서명운동 등 환수 운동을 적극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종환 대가야박물관장은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더욱 존재 가치가 빛난다는 게 문화유산계의 오랜 금언”이라며 “국가보훈처 산하의 독립기념관은 선의의 반환을 통해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섬 위 관음의 권능,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보듬다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섬 위 관음의 권능,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보듬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에게 부처를 대신해 대(大)자비심을 베푸는 존재다. 관세음보살, 혹은 관자재보살이라도고 한다. 불교경전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세존이시여. 관음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관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까.” “만약 무량한 백 천 만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 관음보살에 대해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觀)하여 모두 해탈시키기 때문이니라.”●중요 관음성지 바닷가 섬이나 산에 자리 관음보살은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존재다. 옛날 할머니들이 뭔가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되뇌인 것도 관음이 가진 이런 권능 때문이다. 당연히 관음의 신통력은 개인의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불교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관음에 의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또 다른 불교경전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기서 남으로 가면 보타락가(補陀洛迦)산이 있고,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관자재니라. 그에게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그다음 보타락가산의 정경을 묘사했는데 ‘바다 위에 산이 있고 갖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매우 깨끗한 곳에 꽃과 과일나무가 가득 차고 샘과 연못, 시냇물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관음보살이 ‘남쪽 바닷가의 아름다운 산이나 섬에 머물고 있다’는 믿음은 여기서 비롯됐다. 보타락가는 산스크리트어의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이다. 흔히 낙가산이나 낙산이라고 줄여 부른다.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로 양양 낙산사와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을 꼽는데, 여수 향일암을 합쳐 4대 성지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중요한 관음성지들이 모두 바닷가의 산이나 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강화~석모 ‘연륙교’ 빠르면 이달 내 개통 오늘 찾아가는 보문사는 이름부터가 관음성지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담긴 끝 간 데 모를 관음보살의 권능이 이 땅의 모든 중생에 미치기를 소망하며 발원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관음도량인 보문사가 낙가산에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섬 안의 섬이다.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가 놓인 것은 벌써 오래전이지만, 보문사에 가려면 아직은 배를 타야 한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는 지금 마무리 단계다. 빠르면 이달 안에 개통될 것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지만, 역설적으로 탐방객이 ‘배 타는 재미’까지 맛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강화 외포리 포구에서 카페리에 오르면 석모도까지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배에 오르기 전 새우과자 한 봉지쯤 준비하면 입맛을 다시며 몰려드는 갈매기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된다. 석모도 선착장에서 보문사까지는 다시 8㎞ 남짓 차를 달려야 한다. 자주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버스도 오간다. 주차장에 내리면 ‘낙가산 보문사’라는 편액이 달린 일주문이 보인다. 보문사의 창건과 관련해서 ‘전등사본말사지’에 ‘신라 선덕여왕 4년(635) 금강산에서 옮겨온 회정대사가 세웠다’는 대목이 보인다. 하지만 ‘유점사본말사지’의 보덕굴조에는 ‘회정선사가 고려 의종 10년(1156) 고구려 보덕화상이 창건한 금강산 보덕굴을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계에서는 두 회정을 같은 인물로 보고 고려시대 창건설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대장경 3질 봉안 기록… 관음도량의 중심지 ‘전등사본말사지’에는 ‘신라 진덕여왕 3년(649) 마을사람들이 보문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부처와 나한 등 22구의 돌조각을 그물로 걷어올려 절의 석굴에 모셨다’는 설화도 실어놓았다. 그 석굴이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석실(石室)이다. 천연동굴에 3개의 문을 만들고 석가모니와 나한을 모셨으니 일종의 나한전(漢殿)이다. 하지만 모셔진 불상의 연대는 그리 오래지 않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석굴 좌우로는 극락보전과 용왕전, 삼성각, 범종각, 선방 등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 지은 것들이다. 관음도량으로 보문사의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절 뒤편 바위 절벽에 새겨진 관음보살좌상이다. 높이 9.2m, 폭 3.3m의 당당한 관음보살이 절 앞에 드넓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관음보살은 지붕처럼 앞으로 내민 눈썹바위 아래 좌정하고 있다. 부처님이 새길 자리를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게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다. 불교신자라면 그만큼 관음보살의 영험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관음보살상은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문화재적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갈 것이다. 관음도량으로 보문사의 역사적 의의가 극대화된 것은 고려시대다. 고려는 고종 19년(1232) 몽골에 대항하고자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강화는 원종 11년(1270) 환도하기까지 38년 동안 피란 수도 역할을 했다. 강화경(江華京) 시대다 이른바 강도고려(江都高麗)가 부처의 가피를 입어 몽골군의 살육과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팔만대장경을 판각하고 선원사에 보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나라 간섭기의 문인 민지가 지은 ‘고려국대장이안기’(高麗國大藏移安記)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1304년 고려에 왔던 원나라 승려 철산(鐵山)이 강화 보문사에 봉안한 대장경 3질 가운데 1질을 중국 강서행성(江西行省) 대앙산(大仰山)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대장경의 안타까운 유전(流轉)이기도 하다. ●가는길목에 ‘고려 대찰’ 선원사터도 볼만 보문사(普門社)라는 표현도 눈길을 끈다. 고려시대에는 사(寺)보다 격이 낮은 도량을 사(社)라 불렀던 듯하다. 하지만 두 표현을 뒤섞어 쓴 사례도 적지 않다. 어쨌든 보문사가 팔만대장경을, 그것도 여러 질 봉안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절의 위상이 크게 높았음을 의미한다. 고려를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국가적 관음도량’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려 말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최씨 정권의 문객 이수는 칠언시 ‘보문사’에서 ‘장엄한 전각들은 천세계를 다 삼키고 높이 솟은 누대는 허공에 달려 있네’라고 읊었다. 당시의 보문사가 한적한 섬의 작은 암자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에는 이수를 비롯한 최씨 정권 인사들이 정기적으로 보문사를 찾아 재를 올렸음을 짐작게 하는 내용도 있다. 팔만대장경의 비장처였던 보문사를 찾는 길에는 강화읍에서 멀지 않은 선원사 터도 들르면 좋을 것이다.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최우가 창건한 선원사는 당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양대 사찰로 손꼽히던 대찰(大刹)이었다. 오백불상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 걸음 한 걸음… 순국선열의 숨결을 찾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순국선열의 숨결을 찾아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이 땅을 지켜낸 옛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스민 곳들을 돌아볼 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6월의 걷기 여행길’ 가운데 몇 곳을 골랐다. ‘걷기 좋은 길’이라기보다 ‘걸어야 할 길’이라 보는 게 좀더 정확하겠다. 남의 나라 순례길을 빠삭하게 꿰는 만큼 제 나라의 순례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지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북한산둘레길 2코스-서울 강북구 순하고 아기자기한 숲길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온 가족이 함께 걸을 만하다. 민주화의 성지 4·19국립묘지를 비롯해 3·1운동, 임시정부, 헤이그특사 등 역사책에서나 봤던 민주, 독립운동사의 주인공들이 이 길 곳곳에 잠들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된다. 코스는 솔밭 근린공원~4·19 전망대~이준열사묘역 입구까지다. 거리는 2.3㎞,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인천 강화 강화는 예부터 외세의 침입을 막는 방파제이자 외국의 문화가 들고나던 관문이었다. 남과 북에서 흘러온 강물은 바다에서 모이고, 이 바다를 따라 돈대가 늘어서 있다. 호국돈대길은 이 돈대들을 따라가는 길이다. 몽골과의 항쟁, 병인·신미양요 등 국난 극복의 이야기가 스몄다. 코스는 강화역사관을 출발해 갑곶돈대~화도돈대~광성보 등을 돌아보고 초지진에서 마무리한다. 거리는 17㎞, 약 6시간 쯤 걸린다.‘토영 이야~길’ 1코스 예술의 향기길-경남 통영 조선 선조 38년부터 300년 가까이 남해를 지키던 삼도수군통제영, 이순신 장군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충렬사 등을 돌아보는 길이다. 예부터 도보꾼들을 통영으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동기가 됐던 길이기도 하다. 길은 통영의 문화유산 대부분을 거치며 걸을 수 있게 설계됐다. 화가 이중섭과 소설가 박경리 등 예술가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코스는 문화마당~동피랑벽화마을~통영세병관~중앙시장이다. 거리는 10㎞, 4시간 정도 걸린다.마곡사 솔바람길 1코스 백범길-충남 공주 1896년 열혈 청년이었던 백범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황해도 안악에서 처단하고 붙잡힌다. 그리고 1898년 백범은 탈옥을 감행해 마곡사로 숨어든다. 백범이 거닐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절집 뒤편의 산길이 바로 ‘백범길’이다. 소나무 빽빽한 숲길을 걸으며 백범의 마음을 느끼고 명상에 잠기기 좋다. 천왕문을 출발해 대광보전~삭발바위~군왕대를 거쳐 천왕문으로 돌아온다. 거리는 3㎞,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오방길 2코스 산성길-전남 담양 담양호, 금성산성 등과 연계돼 있어 주변 경치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금성산성은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꼽힌다.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의병과 녹두장군 전봉준, 그리고 동학농민군의 애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트레킹 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코스는 담양리조트에서 금성산성까지 오가는 단순한 구조다. 거리는 10.5㎞,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구불길 6코스 달밝음길-전북 군산 구불길은 모두 11개 코스로 나뉜다. 그 가운데 6코스 달밝음길은 금강과 서해를 한눈에 굽어보며 걷는 길이다. 길 곳곳엔 일제강점기의 흔적과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들머리는 은파관광안내소다. 이어 월명호수~3·1운동기념탑~해망굴(홍천사)~째보선창~경암동철길~군산역으로 이어진다. 군산의 어지간한 볼거리는 죄다 꿰며 간다. 거리는 약 16㎞, 6시간 정도 걸린다.상당산성길-충북 청주 상당산성은 둘레 4㎞가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백제와 신라를 거쳐 조선까지 내려오면서 겪은 수많은 국가적 위기를 당당히 버텨낸 곳이기도 하다. 성벽을 따라 걷는 내내 청주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굽어볼 수 있다. 높낮이가 별로 없어 가족단위 나들이에 그만이다. 코스는 상당산성 입구에서 공남문(남문)~서장대~미호문(서문)~진동문(동문)을 거쳐 다시 산성 입구로 온다. 거리는 4㎞, 2시간 정도 걸린다.제주올레 18코스 산지천~조천 올레-제주시 산지천마당에서 조천만세동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제주 4·3사건 때 마을 전체가 불탄 곤을동 마을터,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환해장성의 흔적 등을 볼 수 있다. 조천 만세동산엔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항일기념관이 있다. 코스는 산지천마당~김만덕 객주터~사라봉 정상~곤을동 마을~삼양검은모래해변~조천만세동산이다. 거리는 약 19㎞, 6시간 정도 걸린다.
  • [열린세상]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로/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문명의 등장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문명의 종말이다. 인더스, 마야, 잉카 등 수천년 전에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예가 비일비재하다. 인더스 문명의 경우 과거에는 초원에서 밀려온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몰살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갑작스런 물길의 변화로 교역로가 끊기면서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문명을 버리고 숲으로 살길을 찾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20만년 전 번성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은 지나치게 추운 환경에 적응했던 그들의 특성에 있다고 한다. 추운 환경에 최적화된 네안데르탈인의 진화가 정작 온난해진 기후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돼 현생 인류와의 생존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아마 후대의 역사가들은 지금을 커다란 문명의 전환기로 기록할 것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브렉시트와 알파고의 쇼크로부터 시작해 한국 대통령의 탄핵과 미국 트럼프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그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은 다시 부상하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미국 중심의 세계 판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등 엄청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활에는 제4차 혁명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사람만큼 능청맞게 번역하는 구글 번역기를 쓰다 보면 문득 수십년간 힘들게 익혀 온 외국어 지식이 곧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다. 전환기의 생존 전략은 결국 정보의 다양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한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따른 변혁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지나치게 이전의 사회나 문화에 머물러 획일화된 시스템을 유지하면 네안데르탈인처럼 낙오될 수 있다. 지난 60여년간 한국 사회는 미국이라는 하나의 정점을 중심에 두고 형성됐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판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 와중에 유라시아를 대표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세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둔감하다. 변혁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고, 그것은 바로 다양한 정보력에서 나온다. 100여년 전 시베리아의 수도였던 톰스크는 철도가 등장할 때 말과 마부의 기득권을 생각해 철도를 반대했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서 변방 도시로 전락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기성 세대들은 고도성장의 기억을 어제처럼 하고 있다. 그 기억은 소중하지만, 그사이에 바뀌어 버린 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화기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굳이 이동을 하지 않아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매체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관광 수요는 매년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편리함은 증가해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고 대체하는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구글 시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감성이다. 변혁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미신이나 허황한 사실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 한다. 요즘 유독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르고, 허황하고 부풀려진 고대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역사의 변혁이 있었다. 그사이를 돌아보면 허황한 미신이나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며 주변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외면한 집단이 살아남은 적이 없다. 이만큼 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 있을까. 지난 몇 달간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경험하기 어려운 변혁을 거치고, 또 그 과정에 서 있다.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의 삶을 지켜 내는 것은 결국 다양한 변화에 대한 유연성, 그리고 인간성의 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미래에 대한 필요한 답변은 바로 고대 문명의 멸망 과정에 있는지 모른다.
  • 마이웨이 김정은… 한·미 첫 정상회담 겨냥해 더 세게 나오나

    마이웨이 김정은… 한·미 첫 정상회담 겨냥해 더 세게 나오나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위한 대북 접촉을 승인하는 등 남북 교류를 재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9일 또다시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선 것은 남한의 대북 정책과 무관하게 핵·미사일 개발은 계획대로 해 나간다는 뜻을 대내외에 명백히 하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정부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지만 북한이 뜻을 꺾지 않으면서 결국은 북핵을 상수로 두고 남북 관계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지난 2월 중거리미사일 ‘북극성2형’ 발사로 올해 전략적 도발을 시작한 북한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난사’ 수준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날 도발은 올해 들어 아홉 번째이며 새 정부 출범 이후에만 세 번째다. 남북 교류·협력 재개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이 제재 국면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도발을 자제할 것이란 관측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특히 이날 도발은 지난 26일 정부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대북 접촉을 승인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일어났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접촉 재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계획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번 도발에는 또 미국을 겨냥해 ‘강대강 구도’를 이어 간다는 전략적 의미 역시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다음달 초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 해역에서 핵추진항공모함 2대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벌일 것으로 알려지자 북한은 ‘군사적 망동’이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명국 외무성 부상은 지난 26일 담화에서 “방대한 전략자산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여 우리에 대한 기습선제공격을 노린 합동군사연습들을 끊임없이 벌여 놓고 있는 것으로 조선반도 핵전쟁의 위험은 실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위협했다. 이날 도발은 더불어 대북 규탄 메시지를 담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대한 불만도 담은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잇단 도발로 미뤄 볼 때 북한의 향후 행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미국의 고강도 경고에 대해 북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은 BBC 인터뷰에서 “매주, 매월, 매년마다 더 많은 미사일 시험을 실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 부상이 공언한 대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핵·미사일 고도화 작업을 이어 가며 ‘몸값’을 최대한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적절한 시점에 북·미 대화 테이블에 앉겠다는 북한의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당장 북한은 다음달 정부 출범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새로운 형태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주요국 특사단 활동을 알리고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경과를 보고했다. 정 실장은 이날 오전 방한 중인 맥 손베리 미국 하원 군사위원장 등과 면담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미 상·하원 대표단을 만났다. 아울러 한·미, 한·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도 통화로 북핵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틸러슨 미 국무장관 “북한 침략·정권교체 안해···믿어달라”

    틸러슨 미 국무장관 “북한 침략·정권교체 안해···믿어달라”

    미국 행정부가 북한 체제를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 북한이 핵·미사일 무기 개발을 중단할 것을 함께 촉구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홍석현 대미 특사와 약 40분 동안 면담을 했다. 틸러슨 장관은 홍 특사에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기조를 설명해며 “북한에 대해 정권 교체도 안하고, 침략도 안 하고, 체제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면서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보인다면 미국도 북한에 적의를 보일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 특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한을 향해 “뒤에서 물어오지 말고 우리를 한번 믿어달라”면서 “미국은 공개적으로만 메시지를 보낸다. 핵 실험, 미사일 실험 중지를 행동으로 보여야지 뒤로 북한과 대화를 해나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어 “선제타격, 군사 행동 옵션으로 가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면서 “지금 가진 (대북 정책과 관련한) 모든 수단은 외교·안보·경제적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덕일의 역사의 창] 대륙사관, 반도사관

    [이덕일의 역사의 창] 대륙사관, 반도사관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룡, 성재 이시영의 공통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라는 점이다. 백암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고, 석주 이상룡은 임시정부가 1925년 정치체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꾼 뒤 초대 총리인 국무령을 지냈고, 성재 이시영은 초대 법무총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이들에 단재 신채호를 더하면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역사학자’라는 점이다. 백암 박은식은 ‘한국통사’(韓國痛史) 등을 저술했고, 석주 이상룡은 신흥무관학교의 국사 교재를 썼다. 성재 이시영은 중국학자 황염배(黃炎培?1878∼1965)가 ‘조선’(朝鮮)을 저술하면서 조선총독부와 일본인이 연구한 자료로 한국을 비하하자 1934년 ‘감시만어’(感時漫語)로 이를 논박했다. 황염배가 중국이 제2의 조선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조선’을 저술했지만 왜곡된 내용이 많자 역사서를 저술해 이를 반박한 것이다. ‘조선상고사’의 저자 단재 신채호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네 분의 독립운동가가 역사학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독립운동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내면의 논리가 한국사에 대한 이해와 확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감시만어’에는 무원 김교헌의 저서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김교헌은 고종 때 성균관 대사성과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런데 박은식·이상룡·이시영·신채호·김교헌의 공통점이 또 있는데 모두 대륙사관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반도사관의 틀에 맞춰 한국사를 왜곡할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일관되게 대륙사를 주창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고대사에 대해 저술했는데, 한결같이 현재의 한국 사학계 주류에서 잊혔거나 지워졌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들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고대사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한국 고대사에 집착했던 것이 현재의 침략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한국 고대사는 곧 현대사이자 독립운동사”라는 확신 속에서 고대사를 연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중요 쟁점의 하나가 고대 한(漢)나라의 식민지라는 한사군의 위치였다. 조선총독부는 아무런 사료적 근거 없이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이 있었고,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철저한 사료적 근거를 가지고 이를 반박했다. 조선총독부는 ‘대동강 유역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있었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들어섰다’(‘조선반도사’)라고 주장했다. 즉 기자조선 자리에 위만조선이 있었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들어섰다는 것인데, 아직도 한국 고대사학계 다수는 이 설을 추종한다. 반면 백암 박은식은 1911년 만주로 망명해 지은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에서 “영평부(永平府)는 기자조선의 경계”라고 서술했다.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蘆龍)현 지역인 청나라 영평부가 기자조선 자리라는 것이다. 청나라의 역사지리학자 고조우(顧祖禹)는 역대 지리지를 참고해 편찬한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의 ‘영평부’ 조에서 “영평부 북쪽 40리에 조선성이 있는데 한나라 낙랑군 속현이다”라고 했다. 낙랑군 조선현이 영평부 경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1911년 백암 박은식이 “영평부는 기씨 조선의 경계”라고 말한 것이 정확하다는 뜻이다. 낙랑군 조선현은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에 있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아직도 반도사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국 고대사학계 일부가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우기니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망언한 것이다. 낙랑군이 지금의 허베이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계속 쏟아지는 반면 평양이 낙랑군이라는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겸 역사학자들이 대륙사관을 주창한 것은 중국 고대 사료에 대한 객관적 해석의 결과다. 중국은 국가 주석까지 나설 정도로 역사 강역 문제를 국시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국가의 존속 문제로 확대될지 모른다. 역사를 빼앗긴 민족이 훗날 강토까지 빼앗긴 것은 역사에서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日, 외국기자 매수해 한국 침략 왜곡 홍보…年 22만엔, 당시 내각 기밀비 2배나 썼다

    日, 외국기자 매수해 한국 침략 왜곡 홍보…年 22만엔, 당시 내각 기밀비 2배나 썼다

    “1906년 2월 설치된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통감부가 매년 지출한 기밀비는 일본 내각 기밀비의 두 배인 22만엔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중급 공무원 월급이 10엔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천문학적 수준이죠. 이완용 같은 매국노를 매수하는 데도 썼지만 일본의 한국 병합에 대한 국제적 왜곡 보도와 홍보에 막대한 비용을 썼어요. 서구 사회의 식민주의 역사관이 잔존하고 오늘날까지 다수의 일본인이 한국 병합을 합법으로 알고 있는 이유입니다.”●“한국 황제가 합병 요구” 날조 퍼뜨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연구실에서 신간 ‘끝나지 않은 역사’(태학사)에 담아낸 병합 전후의 기록들을 설명했다. 통감부 기밀비의 규모는 이 명예교수가 찾아낸 일본의 도쿄니치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의 1910년 8월 12일자 기사에 적시됐다. 용처로 통감부의 ‘외국신문 기자 조종’ 등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일본 신문들은 1910년 8월 한국병합조약 체결을 앞두고 ‘합방’이라는 단어를 쓴 기획기사를 쏟아냈고, 그중에는 한국 황제가 통감 관저를 방문해 합방을 요구했다는 왜곡 보도가 적지 않았다. 이 명예교수는 일본 측의 병합 찬성 기사들이 로이터통신 등 서구 언론을 통해 전파된 배후로 통감부의 홍보 공작을 꼽는다. 이번 책은 지난 1월 펴낸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후속작이다. 전작이 을사늑약(1905년 11월)부터 한국병합조약까지 조선 국권을 강탈한 조약들의 불법성을 낱낱이 파헤쳤다면 후속작은 당대 일제 식민지배를 청산하기 위한 역사적 인식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본 침략주의의 사상적 기원이다. 이 명예교수는 원류로 요시다 쇼인(1830~1859)을 지목한다. 요시다는 ‘유수록’(幽囚錄)을 통해 이웃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주장하며 메이지유신 세력을 키운 사상가 겸 교육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숭배하는 인물이다. ●침략 설파 요시다… 아베는 사상적 제자 요시다가 고향인 조슈번(야마구치현)에 세운 사설학원 쇼카손주쿠에서 육성한 1세대 제자들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다카스기 신사쿠,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이다. 이 책에서는 요시다 평전를 쓴 군국주의 언론인 도쿠도미 소호도 조명된다. 그가 요시다의 침략주의를 전파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 감독으로 식민지 언론 통제의 총책 역할을 했다는 걸 밝힌다. 이 명예교수는 “요시다가 침략 지역으로 열거한 순서가 타이완, 조선, 만주, 중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이었고 훗날 일본이 침략 전쟁을 벌인 순서와도 거의 똑같다”며 “요시다의 3세대 제자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며 4세대 제자가 아베 총리”라고 말했다. 기시 전 총리와 아베 총리(본적지) 모두 요시다와 동향으로, 이 명예교수가 일본 우익의 사상적 성지로 꼽는 야마구치현 출신들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침략주의를 국가선으로 본 요시다에게서 발단된 것”이라며 “아베 총리가 전쟁 범죄인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고 인정하지 않는 건 사상적 스승인 요시다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중대 하자 가능성” 이 명예교수는 이를 한·일 양국이 2015년 12월 28일 발표한 위안부 합의에도 아베 총리가 문서로 공식 사죄하지 않는 이유로 본다. 아울러 양국 위안부 합의가 ‘효력이 없거나 중대한 하자가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명예교수는 “국가 간 기초적 합의인 ‘각서’(memorandum)일지라도 합의문과 서명이 존재한다”며 “정부가 지금까지도 합의 문서를 공개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무엇인가 떳떳하지 않는 사안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당나귀 후보자는 골라내야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당나귀 후보자는 골라내야

    세상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혜성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외양은 그럴듯하나 정작 보잘것없는 기량을 보여 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주위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되는데 이런 서투른 짓거리를 두고 검려지기(黔驢之技)라고 한다. 그 쥐꼬리만 한 기량마저 바닥이 난 것을 검려기궁(黔驢技窮)이라고도 했다. 중국 검주(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끌고 와 산 아래서 길렀다. 덩치와 목소리가 큰 이 낯선 동물을 본 호랑이가 혹시 산신령이 아닐까 두려워 가까이 가질 못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큰소리치고 뒷발질하는 것 외엔 별 재주가 없음을 알고, 달려들어 잡아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검주는 지금의 귀주(貴州)로 고구려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 연남건의 유배지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서로 도우며 국사를 돌보던 세 아들은 주위의 이간질로 내분이 일어난다.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는 내분까지 겹쳐 결국 당나라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보잘것없는 기량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야말로 검려지기의 당사자였다. 이렇듯 하찮은 재주를 믿고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고 화를 자초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우선 겸손함이 없다.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된 김굉필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인 조광조를 가르치게 된다. 어느 날 김굉필은 어머님께 보내려던 꿩고기를 고양이에게 도둑맞자 하인을 심하게 나무란다. 이를 본 조광조가 군자의 말씀이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직언하자 “네가 나의 스승이구나”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이다. 이런 겸손함이 있어야 “전하의 좌우에는 오직 내시들과 궁녀들만이 있을 따름이니 전하께서 평소에 무슨 책을 보고 계시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어떤 말을 듣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이율곡의 만언봉사 같은 직언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독선과 독주만 있을 뿐이다. 겸손함은 곧 애정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덮인 나무들을 보고 제주 유배인 추사는 “시원찮은 나무들이 모두 매화가 되었다”(雜樹園村倂是梅)고 했다. 참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인데 시원찮은 것들을 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힘이 바로 애정인 것이다. 겸손함과 애정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함과 애정이 없으면 사람이 천박하고 경솔해진다. 그것이 바로 검려지기요 검려기궁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번만은 잘 뽑아야 한다. 정치인을 믿느니 사기꾼을 믿는 게 낫다고 하지만 최근에 우리가 겪은 국정 농단의 참담한 비극을 생각하자면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모자람이 없다. 큰소리나 치고 뒷발질이나 하는 후안무치의 검려지기 후보자들은 반드시 골라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함과 애정으로 이 사회의 어려운 계층들을 위할 줄 알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세계만방에 줏대를 세움으로써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바람이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와 달리 지난 시간이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단초만은 마련돼야 한다. 혹한의 광장에서 우리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갈등했던 것도 이런 바람 때문이지 않았는가. 이런 바람이 남의 일이 아니라면 당나귀의 재주밖에는 없는 검려지기의 후보자를 골라내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인 것이다.
  • 美 B1B 1일 한반도 상공서 폭격훈련

    美 CIA국장 지난달 연평도 방문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편대가 지난 1일 한반도에 기습 출격해 핵항공모함 칼빈슨호와 함께 북한 도발 억제를 위한 무력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 소식통은 2일 “괌 앤더슨기지에서 이륙한 B1B 2대가 1일 정오쯤 동해 상공에 도착해 우리 공군 F15K 및 칼빈슨호 함재기 등과 합동 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B1B 편대는 이어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으로 이동해 연습탄 투하 등을 통해 정밀폭격 훈련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B1B 편대의 기습 전개 사실은 북한 매체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핵전쟁 위험을 더욱 증대시키는 미제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 망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일 B1B의 전개 사실을 전하며 “핵폭탄 투하훈련”을 했다고 비난했다. 통신은 “미제는 5월 1일 침략적인 ‘키리졸브’, ‘독수리 17’ 합동군사연습이 막을 내린 지 하루도 못 되어 악명 높은 핵전략 폭격기 B1B 편대를 남조선 지역 상공에 끌어들여 핵폭탄 투하훈련을 벌여놓는 용납 못할 군사적 도발을 또다시 감행하였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3월에도 B1B 편대의 비공개 훈련 내용을 먼저 전하며 강력 비난한 바 있다. B1B 편대가 비공개로 한반도에 긴급 출격해 칼빈슨 항모전단 및 우리 공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한 것은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예상되는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고강도 압박으로 풀이된다. B1B는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 가운데 하나로 백조를 닮은 외형 때문에 ‘죽음의 백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최대속도 마하 1.2로 유사시 괌 기지에서 출발해 2시간이면 한반도에서 작전할 수 있다. 한편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을 방문 중인 미국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말 서해 연평도를 방문해 북한의 포격 도발 현장을 둘러봤다고 이날 밝혔다. 폼페오 국장은 연평도에서 북한 동향과 해병대의 군사 대비 태세를 보고받았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어제, 美폭격기 한반도 상공서 핵폭탄 투하훈련”

    “어제, 美폭격기 한반도 상공서 핵폭탄 투하훈련”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가 지난 1일 한반도 상공에 전개돼 ‘핵폭탄 투하훈련’을 했다고 북한 관영매체가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핵전쟁 위험을 더욱 증대시키는 미제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 망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제는 5월 1일 침략적인 ‘키리졸브’, ‘독수리 17’ 합동군사연습이 막을 내린 지 하루도 못되어 악명높은 핵전략 폭격기 ‘B-1B’ 편대를 남조선 지역 상공에 끌어들여 핵폭탄 투하훈련을 벌여놓는 용납 못 할 군사적 도발을 또다시 감행하였다”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괌에서 이륙한 B-1B 편대가 ‘은밀히’ 동해 상공에 진입한 뒤 ‘이미 조선 동해에 전개된 핵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비롯한 전략적 타격수단’들과의 협동작전 절차와 방법을 숙련했다고 밝혔다. 통신이 언급한 ‘핵 항공모함’은 지난달 29일 동해에 진입한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핵잠수함’은 같은 달 25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출항한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 미시간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중앙통신은 “(이후 B-1B 편대가) 남조선 지역 상공에서 우리 중요 대상물들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을 벌이면서 전쟁 광기를 부려댔다”고 주장했다. B-1B 전략폭격기가 지난 1일 한반도 상공에 출격해 핵항모 등과 훈련한 것은 한미 군 당국이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다. 한미 양국 군의 연례적인 대규모 연합훈련인 독수리훈련은 지난달 30일 끝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 죽어도 신문은 살려라” 신념 물려준 베델

    “나 죽어도 신문은 살려라” 신념 물려준 베델

    대한매일신보 만들어 항일 투쟁 본지 승계… “언론 본연 역할 충실” 英대사 “한·영 표현의 자유 노력” 구한말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창간하고 이를 중심으로 항일구국운동을 벌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1872~1909) 선생의 108주기 경모대회가 1일 오전 선생의 묘역이 있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성지공원에서 광복회, 헌정회 등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배설(베델)선생기념사업회(회장 최도열) 주최로 열린 이날 대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면 경모사를 통해 “베델 선생은 어떤 한국인 못지않게 독립을 위해 싸우셨던 언론인이자 항일투사”라며 “일제의 만행과 침략을 폭로함으로써 항일투쟁 전개에 크게 기여하셨다”고 추모했다.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은 “베델 선생은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해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겨 조국 광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 주셨다”며 그의 뜻을 기렸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는 닉 뒤비비에 대변인이 대독한 경모사를 통해 “선생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언론인에게 참언론인으로 각인되고 있다”며 “한국과 영국은 공동의 신념으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만 서울신문 사장은 이경형 주필이 대독한 경모사에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 창간정신과 지령을 계승한 서울신문은 올해로 113주년을 맞는다”면서 “초대 발행인의 정신을 되새겨 언론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 속에 진행된 이날 경모대회는 성악가 허양, 장영애의 송가, 순국선열유족회 소속 대한독립군가선양회 합창단의 독립군가 합창, 헌시 낭독, 진혼무 ‘님이시여’ 공연,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이어졌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카자흐 정착 80년… ‘한민족의 얼’ 결코 잊지 않았다

    [해외에서 온 편지] 카자흐 정착 80년… ‘한민족의 얼’ 결코 잊지 않았다

    올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의 정주(定住) 80주년이 되는 해다. 고려인 동포의 이주 역사는 1860년대 궁핍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해 간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1930년대 일본의 극동 침략이 본격화되고 고려인들이 일본군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갖게 된 소련 당국은 1937년 9월 중앙아시아 농업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주시켰다. 그렇게 역사의 희생물이 된 고려인 동포들이 이제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임 뒤 첫 일정으로 고려인협회 방문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난 것은 2015년 12월 29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부임한 바로 다음날 고려인협회를 방문했을 때다. 연말이라 개인 일정이 있었을 텐데도 새로 온 총영사가 방문한다고 하니 고려인협회장, 고려문화중앙회장, 고려극장장, 고려일보 편집장 등 원로들이 사무실에 나와 환영해 줬다. 이러한 환영을 늘 고맙게 여기는데, 고려인 동포들도 내가 부임 후 첫 일정으로 자신들을 만난 것에 대해 볼 때마다 고맙다고 한다. 현재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동포는 48만명으로 추산되며 카자흐스탄에만 10만명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 사연을 듣다 보면 어떤 이야기든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카자흐스탄 이주 후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둘째는 카자흐스탄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며, 셋째는 온몸을 바쳐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려인 동포는 정체성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 그 중심에는 고려극장과 고려일보가 있다. 고려일보는 1923년 연해주에서 창간된 ‘선봉’의 맥을 잇는 신문으로, 고려인 동포들이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설립돼 올해 창립 85주년을 맞는 고려극장 역시 카자흐스탄 이전 후 수차례 장소를 옮겨 다니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통문화 및 언어 계승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고려인 동포들은 이렇게 지난 80년 동안 갖은 고난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지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상·하원 의원은 물론 법조계, 경제계, 학계, 문화계 등 주류사회에 진출하며 영향력 있는 민족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내가 만난 알마티 시장, 주지사, 대학 총장 등 주요 인사들은 모두 고려인 동포의 근면성과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주 3·4세대로 넘어가면서 많은 고려인 동포가 한국어를 잊어 가고 있는 사실은 아쉬운 부분이다. 언어는 정체성 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에 고려인 동포 자신은 물론 우리 정부도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3·4세들 한국어 교육에 정부 관심 가져야 고려인 동포는 현지의 법과 제도, 문화를 잘 알고 있고 또한 1992년 한·카자흐 수교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많이 경험했다. 고려인 동포들은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양국의 우호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는 물론 앞으로 전개될 유라시아 협력시대에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열린세상] 동북아 안보평화체제 갖춰야 할 때/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동북아 안보평화체제 갖춰야 할 때/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위한 이슈가 대선 후보들 간에 논쟁이 뜨겁다. 안보와 평화의 길은 세 갈래다. 첫째는 자주국방으로 나라를 지켜낼 만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다. 상대국 즉 북한처럼 핵무기를 갖고 있어도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 핵전쟁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고, 군함과 탱크와 같은 재래식 무기를 압도적으로 많이 갖고 있을 때 자주국방력으로 평화와 안보를 성취하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의 첨단 기술적 측면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핵무기가 없어 미국과 함께 나라를 지켜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두 번째는 동맹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기에 다른 나라들이 쉽사리 넘보지 못한다. 미군이 주둔해 있는 만큼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이나 연평도 포격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면전을 절대 할 수 없다. 내용이 진실인지 따져 봐야 하겠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미군이 없었을 때 중국이 한국을 과거의 중화사상으로 다루려 할 것이다.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하는 미국은 크고 작든 전 세계에 170개가 넘는 미군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군 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는 동맹관계로 그 국가의 안보와 평화를 유지하려 하고 미국은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한다. 세 번째는 외교다. 군사력 증강이 하드웨어적 방식이라면 외교는 소프트웨어 방식이다. 한국의 평화와 안보 그리고 동북아 안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제 동북아에는 어떤 형태이든지 평화와 안보 협의체를 위한 대화가 시작되어야 할 때가 됐다. 그 어떤 대선 후보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같이 유럽 내의 전쟁을 방지하는 목적의 안보협력체가 동북아에도 필요할 때가 온 것이다. 지난 7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으나 북한은 공산체제 국가가 들어섰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미국의 원조로 국가 재건에 나섰다. 1949년 중국은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빈곤의 국가에서 미국과 힘을 겨루겠다는 G2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돈을 모은 중국은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항공모함 전투군단을 발진시키고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는 물론 남중국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며 미국의 서태평양 접근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이에 맞서 잠수함을 16척 체제에서 22척 체제로 늘리면서 중국 군함과 잠수함의 동향을 면밀히 탐색하고 있고 중국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심신(心神)이라는 스텔스 전투기를 자국의 기술로 개발하고 있다. 일본은 군사비 증강의 기록을 해마다 갈아 치우며 2017년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동북아 국가의 군비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져 해당 국가들의 교육비와 고령화에 따른 복지에 써야 할 돈이 무기 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한국도 군비경쟁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군비경쟁에 불을 댕긴 결과다. 언제까지나 군비경쟁을 바라만 보고 그 누가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한국이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하며 자격도 충분하다. 첫째는 한국은 침략을 당하면 당했지 다른 나라를 침략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평화를 주창하며 동북아 평화와 안보를 외칠 자격이 있다. 두 번째는 한국의 국격이 동북아의 평화를 말할 수 있는 위상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의 국민들이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한국전쟁의 참화로 미국이 원조한 옥수수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던 한국이 동북아 평화체제를 만들어 보자고 말하면 그 누가 귀를 귀울여 줄 것인가? 한류로 퍼진 대한민국의 브랜드와 질 좋은 한국의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전 세계에 깔려 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스스로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불가사의라 할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드높다. 기초 군사력을 갖춘 한?미동맹과 동북아 평화외교로 한국의 미래를 열어 가야 하겠다.
  • 北매체 “美, 침략·살인에 미친 나라…우리에게 미치광이 전략 안통해”

    北매체 “美, 침략·살인에 미친 나라…우리에게 미치광이 전략 안통해”

    북한 매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협상술로 거론되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 전략도 핵을 가진 자신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29일 주장했다.북한의 대외 선전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이날 ‘미치광이 전략도 통할 수 없다’는 기사에서 “미치광이 전략이 다른 나라들에는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자위의 핵을 틀어쥔 조선(북한)에는 추호도 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체는 “조선은 원래부터 미국을 침략과 살인에 미친 나라로 보고 있다”며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 미국의 행동 자체가 ‘미치광이 짓’이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 정·관계에서 나오는 대북 압박 언사들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요란한 폭언과 군사적 움직임에 세계가 놀라 ‘전쟁위기’ 등 불안스러운 목소리들을 내고 있지만 당사자인 공화국(북한)은 어디 꿈쩍이나 하고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을 향해 “미치광이 전략을 쓰고 있든, 아니면 실제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전쟁 도박판에 뛰어들려는 미친 짓을 하고 있든 조선의 의지를 추호도 꺾을 수 없고 엄청난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위협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등이 구사했던 ‘미치광이 이론’ 전략은 상대에게 미치광이처럼 비침으로써 공포를 유발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것을 말한다. ‘폭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허 면모도 이런 전략에 기반을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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