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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한미 SCM 공동성명 채택

    한미, 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한미 SCM 공동성명 채택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28일 “어떠한 형태의 북한의 침략 또는 군사적 도발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49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그 어떤 도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 나간다는 결의를 표명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모두 18개항으로 이뤄진 공동성명에서 매티스 장관은 미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능력,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해 한국을 위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강화할 것이라는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은 또 “양 장관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 및 한반도 인근에 대한 미 전략자산의 순환배치 확대와 연계해 미 해군 및 공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 및 강도가 증가되고 있음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송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확장억제 공약의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미 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확대하고, 다양한 억제 방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또 공동성명에 “미사일 지침상 탄두 중량을 해제하자는 양국 정상의 합의를 가장 빠른 계기에 이행키로 했다”고 적었다. 송 장관은 “한·미 양국이 우리 군의 방위역량 확충을 위해 미사일 지침 개정과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개발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 장관이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최첨단 군사자산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으로 추정된다. 공동성명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된 입장도 담겼다. 양 장관은 한국 국내법에 따라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종결될때까지는 사드 배치가 임시적임을 재확인한 뒤 “사드 체계가 오직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방어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어떠한 제3국도 지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장관은 또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가능하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양 장관은 전날 열린 한미군사위원회의(MCM)으로부터 미래연합군사령부 편성 방안을 보고받고, 연합 연습 및 검증을 통해 보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전작권 전환후 현재의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대신 설치되는 미래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승인한 것으로, 전작권 논의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양 장관은 내년 SCM까지 조건에 기초한 전환 계획을 공동 보완키로 했다. 이와 관련, 송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중견선진강국으로 거듭나는 상황에서 전작권을 (우리 측에)전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다만 시기를 당긴다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빨리 성숙시켜 그 시간이 되면 전환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송 장관은 또 “전작권이 전환돼도 한미동맹은 더욱 더 강력해 질 것”이라고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양 장관은 일본까지 포함한 3국 안보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양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한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이 3국의 안보와 번영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 뒤 3국간의 정보공유 증진과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 3국간 안보협력을 증진시키기로 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한미 국방장관 “북한 도발 더는 용인 안해”…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한미 국방장관 “북한 도발 더는 용인 안해”…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28일 서울에서 열린 제49차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에서 “어떠한 형태의 북한의 침략 또는 군사적 도발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한미 양국 국방부 장관은 이날 SCM 회의에서 채택한 18개 항의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그 어떤 도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 나간다는 결의를 표명했다”면서 이와 같이 밝혔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매티스 장관은 자국 또는 동맹국에 대한 그 어떤 공격도 격퇴될 것이며 그 어떤 핵무기 사용의 경우에도 효과적이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지속적인 정책을 재확인했다. 또 미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 능력,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해 한국을 위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강화할 것이라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양 장관은 특히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 및 한반도 인근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순환배치 확대와 연계하여, 미국 해군 및 공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 및 강도가 증가되고 있음에 주목했다”고 공동성명은 전했다. 이와 관련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SCM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미 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확대하고 다양한 억제 방안에 대해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또 “한미 양국은 우리 군 방위역량 확충을 위해 미사일 지침 개정과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을 위해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전시작적통제권 전환 문제와 관련 “조건에 기초한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가능하도록 한다는 2017년 6월 양국 정상의 합의를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면서 “송영무 장관은 현재 추진 중인 국방개혁과 연계해 핵심 능력 획득 등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따라 전작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강조했다”고 공동성명은 전했다.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군사위원회(MCM)로부터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보고 받고, 연합연습 및 검증을 통해 보완·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면서 “전작권 전환 이후 보다 굳건한 연합방위태세 발전을 위한 추진지침을 발전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동맹의 능력 확보계획, 전략문서·작전계획, 연합연습·검증계획 등 이행계획을 재점검하고, (내년) 제50차 SCM까지 조건에 기초한 전환계획을 공동으로 보완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태국인들이 ‘세기의 장례식’ 치르는 까닭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태국인들이 ‘세기의 장례식’ 치르는 까닭

    2016년 10월 13일 세상을 떠난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전임 국왕의 장례식이 지난 25일 시작돼 29일까지 진행된다. 1년의 애도 기간을 거쳐 치러지는 차크리 왕조 ‘라마 9세’의 장례식에는 덴마크 왕세자, 영국과 일본의 왕자 등 전 세계 왕족들이 운집해 나름 화제다. 이 장례식이 세계적인 화제인 이유는 또 있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재현하기 위한 장례식장이 마련됐는데, 물경 338억원을 들여 9층 황금탑(큰 사진)을 세웠다. 국왕의 시신은 황금탑 내부에서 화장을 거행하는데, 외신으로 전해진 탑의 모습은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다.태국은 동남아 여행이 일상화되면서 친숙한 나라가 됐지만 여전히 낯설다. 당장 1년의 애도 기간과 ‘세기의 장례식’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의식이 거행되는 이유조차 모른다. 푸미폰 국왕, 길게는 차크리 왕조가 세워진 배경을 알아야 오늘의 태국을 이해할 수 있는데, 태국 역사를 알려 주는 책은 실상 거의 없다. 찾고 찾아 발견한 책은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조흥국 교수의 ‘근대 태국의 형성’이다. 저자는 태국의 근대가 차크리 왕조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14세기 중반부터 태국 중부를 중심으로 건재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1767년 톤부리 왕조에 의해 전복됐지만, 톤부리 왕조는 15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1782년 태국 일대를 통일한 것이 방콕을 중심으로 일어난 차크리 왕조 라마 1세다. 책은 18세기 후반 차크리 왕조의 시작부터 1930년대 라마 7세, 즉 푸미폰 국왕의 삼촌 시기까지 왕들의 재위 기간 동안 사회상의 변화를 세세하게 설명한다.푸미폰 국왕이 오랜 시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일이나 사후 세기의 장례식의 주인공이 된 데는 라마 왕조 전체의 공이 크다. 라마 1세는 미얀마, 캄보디아 등 주변 국가의 무력 침략을 막고 왕조를 세웠고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라마 2세와 3세는 유럽 등과의 과감한 교류 정책을 펼치며 국력을 키웠다. 라마 4세는 문호를 완전히 개방하며 근대화의 시작을 알렸고, 5세는 이를 대폭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서양의 침입을 막고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 라마 6세는 근대화 개혁을 이끌면서도 ‘타이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마 7세는 태국이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는 데 일조했다.전임 왕들이 확립한 나름의 긍정적 결과들이 푸미폰 국왕에 대한 애도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푸미폰 국왕이 후광만 입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땅에 떨어진 왕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70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쿠데타가 셀 수 없이 일어나는 와중에 침묵과 행동을 병행하며 중재에 나섰다. 오랫동안 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민주화의 바람을 넣기도 했다. 왕실의 자금을 낙후 지역 발전을 위해 내놓기도 했다. 푸미폰 국왕에 대한 태국 국민의 깊은 애도는 과거의 영광과 그의 일관된 행적이 낳은 산물이다. 혹시 태국을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 정도로, 혹은 3박4일 여행지 정도로 생각했다면 말 그대로 오산이다. 태국은 지금도 변화, 발전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혹시 우리만 제자리에 안주하며 낡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화려한 황금탑 사진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사설] ‘내각제 독주’ 위험성 보인 아베 총선 승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연립 정부의 한 축인 공명당의 여권이 지난 22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약체화하고 있는 야당이 이번에도 대안 세력으로 선택받지 못하면서 여당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결과다. 아베 총리는 내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면 2021년까지 총 9년간 총리로 재직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중의원을 해산할 특별한 재료가 없었는데도 돌연 치러졌다. 이유를 찾자면 연거푸 터진 사학 스캔들에 아베 총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권 지지율이 총리 교체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20%대까지 떨어진 ‘아베 위기’다. 3세 정치인으로서 정치 달인답게 승부수를 던져 승리를 건졌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한국 선거에서는 약효가 떨어진 북풍(北風)을 구사해 해산 전과 비슷한 의석을 확보하고 정권을 위협했던 스캔들도 날려 버렸다. 문제는 더 강해진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다. 아베 총리는 내각제의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권력을 확장하면서 대통령처럼 군림하고 있다. 실적도 적지 않다. 양적완화를 근간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5년 전 취임 때와 비교해 두 배나 뛰었고, 5%이던 소비세도 8%로 올려 악화된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도쿄여름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반발에도 전수방위만 허용하는 헌법 9조의 해석 변경을 강행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고, 자위대의 역할을 넓히는 안보 관련법도 정비했다. 수정주의 역사관을 지닌 아베 총리는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면서 손보려고 했다. 그러나 국내외 반발에 부딪혀 검증팀을 만들어 담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선에서 그치는 등 번번이 역사 인식 문제로 주변국과 충돌해 왔다. 실리를 좇아 온 그의 대외 정책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변수는 북한 핵·미사일이다. 지금은 대북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나 빅딜로 한반도가 술렁일 때 일본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정밀하게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2050년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중국의 정치·경제·군사대국화를 선언한 시진핑 국가주석, ‘세계적 리스크’로도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아베 총리까지 주변국 스토롱맨들과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엄중한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분발이 촉구된다. 또 하나의 관심은 의회 찬성 세력이 80%에 육박한 개헌이다. “2020년에 개정된 헌법이 시행됐으면 한다”는 아베 총리가 본격적인 개헌에 착수한다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과거 침략을 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민감하다는 현실, 일본도 잘 알 것이다. ‘내각제 독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몸소 실천해 보인 아베 총리에게 주변국도 보면서 달릴 것을 주문하고 싶다.
  • “정치인들 권력 잘못 쓰면 5000만이 촛불 들어 바꿔야”

    “정치인들 권력 잘못 쓰면 5000만이 촛불 들어 바꿔야”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걸 잊어버리면 안 된다. 정치인들의 부정·불의를 용서해선 안 된다. 정치인들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잘못 행사했을 땐 거둬들여야 한다. 5000만이 촛불을 들어 바꿔야 한다.”한국 문단의 거목 조정래 작가가 ‘국민주권론’을 설파했다. 16일 서울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주제로 열린 ‘제106회 성동명사특강’에서다. 강당을 가득 메운 500여 청중은 조 작가의 힘 있는 ‘연설’에 열렬히 환호했다. 조 작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다 대한민국이다. 주인의식을 잊으면 안 된다”며 “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자유롭게 드는 정권을 만들고 그 정권이 잘못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쓸 소설 주제가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다. 과연 우리는 주인인가, 법적으로 주인 권한을 보장받고 있는가, 주인 자격을 행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등으로 역사적 울림을 주었던 조 작가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운명은 역사를 기억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반도는 대륙으로부터 끝없이 괴롭힘을 당한다. 우리는 섬나라 일본에도 괴롭힘을 당했다. 한반도 5000년 역사 동안 931번 침략당했다. 80%는 중국, 20%는 일본이고 병자호란, 임진왜란이 큰 사건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리면 다시 5000년 동안 931번의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미래 과제다.” 조 작가는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강대국은 민족주의를 시대착오적, 반인류적이라고 한다. 강대국이 식민통치가 아닌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약소국을 억압·핍박할 때 약소국은 민족주의로 뭉쳐야 한다. 약소국일수록 민족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유대인 600만명을 죽인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히틀러 민족주의’를 들어 민족주의를 나쁘다고 매도한다. 하지만 ‘약소국 민족주의’는 개방적, 타협적, 방어적 민족주의다. 이른바 신민족주의다. 줏대를 세우면서 가면 우리 민족의 앞날엔 과거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성동명사특강’은 2008년 9월 박동규 서울대 교수의 강연으로 시작, 누적 청중 6만명이 넘는 인기강좌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메이지시대’ 부활 꿈꾸는 아베 정권

    ‘메이지시대’ 부활 꿈꾸는 아베 정권

    아베는 누구인가/길윤형 지음/돌베개/480쪽/1만 9500원일본의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리 스캔들로 흔들리던 아베 정권이 북핵 위기를 명분으로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는 꼼수를 발휘했다. 그런데 현지의 각종 여론조사와 선거 판세 분석을 보면 아베의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제 일본은 헌법을 개정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회귀하는 게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듬해인 2013년부터 3년 반 동안 일본에서 아베 정권의 부상을 목도한 일간지 특파원이 아베를 통해 오늘의 일본을 읽는 책을 썼다. 저자는 한국과의 역사 갈등이 불거지고 한국이 중국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불신이 생기면서 일본이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친구가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 사이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현재 자민당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이 과거 침략전쟁을 주도했던 기득권 세력의 후손인 2~4세 세습 의원들이라고 분석한다. 2012년 4월에 발표된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을 보면, 이들이 꿈꾸는 바람직한 일본 사회의 모습은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이 세계를 향해 위세를 떨쳐 가던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다. 과거 메이지 시대를 거친 일본은 동아시아를 집어삼키지 않았던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독립 100주년, 라트비아/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독립 100주년, 라트비아/오일만 논설위원

    발틱해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는 여러 모로 한반도 운명과 닮았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까닭에 13세기 이후 줄곧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야 간신히 독립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호시탐탐 발틱해의 부동항을 탐냈던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됐다가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라트비아인에게 20세기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는 면적(6만 4500㎢)이 남한의 3분의2에 불과하고 인구는 200만명 안팎이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인구의 3분의1이 죽거나 독일로 끌려가는 재앙을 당했다. 소련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13만명의 라트비아인이 해외로 망명했고 1953년까지 12만명의 라트비아인이 죽거나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 800년 이상 혹독한 역사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라트비아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지켜 낼 정도로 자주 의지가 강하다. 공용어로 사용하는 라트비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의 갈래로 옛 형태를 잘 보존한 언어로 평가받는다. 라트비아인들의 자유 의지는 독립전쟁 당시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표출되기도 했다. 라트비아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난 사연도 극적이다. 1989년 독·소 불가침조약 50주년을 맞아 발트 3국 국민 200만명이 탈린(에스토니아)~리가(라트비아)~빌뉴스(리투아니아) 등을 잇는 ‘인간사슬’을 만들었다. 장장 620㎞의 거리에서 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발틱의 길’을 외치며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소련의 강점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주권을 되찾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4년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각각 가입하며 친서방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되찾은 라트비아가 내년 독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강소국을 꿈꾸는 라트비아는 정보기술(IT) 산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라트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80%에 웃돌고 인터넷 속도도 세계 17위에 기록될 정도로 IT 바람이 거세다. 라트비아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드라우기엠을 조성할 정도로 의욕이 넘친다. 지난달 28일 만난 라이몬츠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은 “IT 산업을 통해 경제 발전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혹독한 역경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우리처럼 라트비아가 ‘발틱의 기적’을 만들어 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씨줄날줄] 당진 합덕제/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당진 합덕제/서동철 논설위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냇물과 연못은 농업 진흥의 근본이니 수리 행정은 성왕(聖王)도 중히 여겼다’고 했다. 더불어 ‘바닷가에 조수를 방지하는 제방을 쌓고 안에 기름진 농지를 만들면 이것을 해언(海堰)이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당시에도 간척과 수리 시설의 중요성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실제로 우리 간척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강화도가 넓은 농토를 가진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도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왕조가 임시수도로 삼은 이후 지속적으로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다. 농업용 수리 시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 방죽(저수지)의 역사는 더 깊다. 흔히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를 우리나라 3대 방죽이라고 하는데, 모두 삼국시대 지어졌다. 별도로 김제 벽골제, 연안 남대지, 당진 합덕제는 조선시대 3대 방죽으로 부르기도 한다. 충남 당진의 합덕제는 특히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광범위한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한 대형 수리 시설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개(灌漑)의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합덕제는 흔히 소들강문들이라 부르는 삽교천 하구의 우강평야(牛江坪野)에 자리 잡고 있다. 소들(牛坪)을 거쳐 바다로 흐르던 강을 막아 새로 생겨난 넓은 농토를 가리킨다. 공주 유학자 이병연(1894~1977)은 지리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350여년 전 토정 이지함이 아산현감 시절 한진 앞바다가 크게 터졌는데 이후 100년 남짓 토착민이 둑을 쌓아 논을 만들어서 큰 들이 되었다’고 적었다. 합덕제는 후백제 견훤이 후고구려와의 결전을 앞두고 군마에게 물을 먹이고자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1473년 ‘성종실록’에는 ‘합덕제는 고려 때 쌓기 시작한 것을 조선조에서 다시 축조했는데 길이 2700척에 일곱 고을이 혜택을 입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간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제방 규모를 키웠을 것이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장녹수가 합덕제와 황해 연안 남대지를 하사받아 경작했다는 ‘중종실록’의 기록은 흥미롭다. 주변 농토가 가뭄 피해를 입건 말건 저수지 물을 빼고 벼를 심었다는 뜻이니 백성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합덕제는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준공됨에 따라 수리 시설로 기능을 하지 않게 됐다. 상당 부분 농토로 바뀌었지만, 방죽으로 기능을 되돌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때마침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총회에서 합덕제가 수원 만석거와 함께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반갑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기고] 안보와 평화가 공존하는 용산공원/서주석 국방부 차관

    [기고] 안보와 평화가 공존하는 용산공원/서주석 국방부 차관

    지난 7월 11일 미8군사령부가 용산시대를 마감하고 경기도 평택에서 신청사 개관식을 열었다. 60여년간 용산에 주둔해 온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용산공원 조성 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이제 용산이 민족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용산은 우리나라 국방의 중추 지역이다. 국방부와 소속기관, 합동참모본부 등 국군의 최고 지휘부가 용산에 모여 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은 지 50여년이 됐고 2000년대 들어 청사를 신축해 오늘에 이르렀다. 육군본부가 있던 자리에 1994년 들어선 전쟁기념관은 국민 안보교육 및 관광의 중심지로 연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군의 최고 지휘부가 용산에 있고 국방부가 반세기 넘도록 도심을 벗어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수도 사수의 의지를 보여 주고 군 통수권자를 근접 보좌한다는 점에서 군사전략적 의미와 함께 현실적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국방부도 통수권자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정부 부처들이 세종시로 이전할 때에 외교안보 부처들이 서울에 남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 조성을 위해 국방부 이전이 거론돼 조금 안타깝다.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이 땅의 평화와 안보를 지켜 온 우리 군의 최고 지휘부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복원과 치유를 위해서는 숱한 역경과 국난을 극복하며 ‘국민의 군대’로 성장한 우리 군과 국방부의 역할도 함께 기억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 이전은 실제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방부 부지 내에 있는 국방부와 합참 청사 등 대형 건물들은 최근에 신축 또는 개축된 데다 일반 건물과 달리 각종 군사지휘시설, 지휘통제체계, 방호시설 등 최첨단 설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의 위협이 급증해 안보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국방부 이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장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국방부는 용산공원을 ‘반쪽짜리 공원’으로 만드는 장애물이 아니라 용산의 역사로 간직하고 함께 어우러져야 할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 완공된 공원의 모습을 그려 보아도 평화를 상징하는 용산공원이 안보의 보루인 국방부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뒷산이 개방되고 내부 투어가 시작된 것처럼 장차 공원이 조성될 때 적절한 보안 조치를 통해 군사시설로서의 폐쇄성도 극복될 수 있다. 2006년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씀했듯이 장차 “용산공원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희망의 광장”이 될 것이다. 튼튼한 안보가 진정한 평화를 견인하듯 국방부와 함께 자리할 때 용산공원이 상징하는 평화의 의미가 더욱 특별해질 것이다. 용산공원이 안보와 평화가 공존하는 화합과 치유의 미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 [씨줄날줄] 쿠르드 독립국가의 꿈/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쿠르드 독립국가의 꿈/이순녀 논설위원

    1차 세계대전 승리로 오스만제국이 물러난 이라크를 위임통치하게 된 영국은 이라크 국가 형태와 국경 획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식민청 장관인 윈스턴 처칠은 고고학자 겸 탐험가이자 아랍인들에게 ‘사막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거트루드 벨에게 자문을 했다. 벨은 남부의 시아파, 중부의 수니파, 그리고 북부 산악지대의 쿠르드를 하나로 묶는 국가 건국을 강력히 주장했다. 세 분파가 서로 견제하는 힘의 균형을 꾀하고, 통치를 효율화하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비극적 내분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실시한 분리·독립 주민 투표에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나오면서 이라크는 물론 터키, 이란 등 주변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투표 결과 찬성표는 무려 91.8%에 이르렀다. 마수드 바르자니 자치정부 수반은 곧바로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을 총리에게 제안했지만 중앙정부는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라크와 터키군은 KRG 자치 지역과 인접한 국경지대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약 4000년 전 지금의 이란 고원, 이라크 북부 일대 등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서 터전을 잡은 쿠르드족은 중세 때 아라비아의 통치를 받은 이후 지속적인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겪은 비운의 민족이다. 300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유랑 민족이지만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라크, 이란, 터키, 시리아 등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의 기회가 왔으나 열강 제국의 이해 충돌로 무산됐다. 이후 쿠르드족은 끊임없이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특히 험난한 삶을 감내해야 했다. 1987~89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쿠르드족 거주지인 할아브자 지역에서 화학무기로 인종 청소에 가까운 학살을 자행했다. 2003년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이들은 KRG를 수립해 자체적으로 대선과 총선을 치르며 독립국가의 꿈을 키워 왔다. 이번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지만 독립국가 탄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는 쿠르드족의 독립 추진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화약고인 중동 지역의 안정을 해칠 우려 때문이다. KRG도 일단은 자치권 강화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투표 결과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우리로선 그들의 독립국가 소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된다면 그 또한 불행일 것이다.
  • 北, 각국에 공개서한 “반미” 여론전에 나서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간 대결구도가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외국 정당과 국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미 행정부를 비난하는 공개서한을 보내며 대내외에 반미 감정을 고취하려는 여론전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세계 여러 나라 정당들에 보내는 공개편지’를,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는 ‘세계 여러 나라 국회들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당 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가 지난 24일자로 발표한 이 편지와 서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핵 보유가 이러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한 자위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 중앙위는 편지에서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핵무력 건설구상은 철두철미 세기를 이어 계속되어 오는 미국의 핵위협을 근원적으로 끝장내고 미국의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전쟁 억지력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최종 목표는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주와 정의, 평화를 귀중히 여기는 세계 여러 나라 정당들이 세계를 핵참화에 몰아넣으려는 미국의 무모한 책동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반미공동행동, 반미공동전선에 한 사람같이 떨쳐 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의회외교 창구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도 같은 날 서한에서 자신들의 핵 보유에 대해 “미국의 핵위협과 공갈에 맞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수호하자는 데 있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이 대상하려는 진짜 적은 바로 핵전쟁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주, 평화, 정의를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국회들이 이 기회에 세계를 무서운 핵참화에로 몰아넣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극악하고 무모한 책동에 각성을 가지고 국제적 정의와 평화에 대한 인류의 념원을 실현해 나가는 데서 자기의 응당한 사명과 본분을 다해 나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北, 10만 군중 집회…“최고 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北, 10만 군중 집회…“최고 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북한은 미국에 대해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을 선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성명을 지지하는 집회를 잇달아 열고 반미의지를 다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반미대결전에 총궐기하여 최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평양시 군중집회가 23일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며 10만여 명의 각계각층의 군중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집회에서는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이 김정은 성명을 낭독했다. 리일배 노농적위군 지휘관은 연설을 통해 “악마의 제국 미국을 이 행성에서 송두리째 들어낼 최후결전의 시각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혁명의 붉은 총창으로 침략의 무리를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이어 군중시위가 이어졌으며 중앙통신은 “조선 인민의 쌓이고 쌓인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괴멸’이요, ‘완전파괴’요 하며 악담질을 하는 천하 무도한 미국 깡패무리들을 씨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릴 기세에 충만한 시위 참가자들의 함성이 광장에 메아리쳤다”고 밝혔다. 이날 인민문화궁전에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성, 중앙기관 집회도 열렸다. 집회에서 신영철 내각 정치국장은 연설에서 “만약 미제가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온다면 전민항전으로 침략자, 도발자들을 가장 처절하게, 가장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년동맹도 같은 날 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청년학생들의 집회를 개최했다. 북한은 평양시와 중앙기관, 청년동맹에 이어 김정은 성명을 지지하는 집회를 앞으로 각 지역과 직능단체별로 잇달아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간부들은 22일 김정은 성명에 호응하는 집회를 열었다. 우리의 경찰청 격인 인민보안성에서도 23일 최부일 인민보안상과 간부들, 인민내무군 장병 등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트럼보와 매카시즘 그리고 그 기시감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트럼보와 매카시즘 그리고 그 기시감

    근래 북핵 다음으로 가장 뜨거운 단어가 ‘블랙리스트’가 아닐까. 전 정부에서 비롯된 블랙리스트가 이제 전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소위 ‘요주의인물’이라는 뜻의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 대중문화예술계를 망라한다는 것은 문화예술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계가 과도하게 정치화됐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블랙리스트의 면면에 영향력도 인지도도, 예술적 성과도 부족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정신 나간 이가 이런 리스트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대명천지에 있어서는 안 될 이런 이야기는 이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시초는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 할리우드에서 1940~50년대 있었던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고 공산당에 가입했거나 특정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 성향을 내비쳤던 연예산업 종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활동을 제한당했다. 유명 극작가와 배우, 감독, 영화 음악가가 모두 대상이었다. 1·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과 구소련은 동맹이었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로 나뉘어 냉전이 본격화했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기 위해’, 소련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기 진영의 결속과 단속을 시작했다. 외부로는 냉전이, 내부에서는 경제공황 때문에 생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묘책이 필요했다. 이때 홀연히 조지프 매카시가 등장해 미국 정부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사실 1930년대 이전부터 소련과 동맹이었던 탓에 많은 이들이 공산당원이었고, 공무원 중에도 사회주의자들이 꽤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공산당을 척결해야 한다는 매카시 열풍은 곧 할리우드에도 몰아쳤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며 1937년 임시로 만들어졌던 미 하원비미활동위원회(HUAC)를 1945년 상임위로 격상시켰고 1947년 본격적으로 영화인들을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위원회는 청문회를 통해 극작가 아서 밀러나 배우 찰리 채플린 등 324명을 리스트에 올려 영화계에서 퇴출시켰고 이후 1만여명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당대 최고 극작가였던 달톤 트럼보도 소환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영화인들이 청문회에 나와 동료들을 ‘고자질’했지만 트럼보를 포함한 10명은 증언을 거부해 이들을 ‘할리우드 텐’이라 부른다. 이들은 1960년대 초까지 영화계를 떠나야 했는데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B급 영화사의 ‘고스트 작가’가 되어 밥을 벌어먹어야 했다. 그가 11개의 가명으로 쓴 시나리오 중에 ‘로마의 휴일’(1953), ‘더 브레이브 원’(1956)이 오스카상을 받았다. 1960년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을 맡고 커크 더글러스가 출연한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그는 얼굴과 이름을 다시 알렸다. 영화 ‘트럼보’는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가 겪었던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사건을 그의 일대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재능 있는 많은 사람이 이념 때문에 아니 이념을 빙자한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희생되어야 했던 역사적 비극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에서 트럼보는 순진한 공산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는 “모든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전쟁에 종사하며 문학적 게릴라전을 벌인다”며 선전을 위해 영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투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언할 정도로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다는 설도 있다.정치적 입장이 어떠했던 간에 트럼보를 돕는 친구들도 많았다. 특히 당대 최고의 갱스터 배우이자 미술품 컬렉터였던 에드워드 G 로빈슨은 지금은 파리 로댕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신의 애장품인 고흐의 ‘탕기영감의 초상’을 팔아 소송비용을 건네준다. 몽마르트르의 클로젤가에서 물감과 캔버스를 팔던 화방주인으로 어려운 화가들에게 재료를 공짜로 주기도 하고 때론 그림으로도 받았던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는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은인이었다. 그의 화방에는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흐, 고갱 등의 그림이 걸려 있어 컬렉터들에게 소개됐다. 동생 테오를 통해 탕기를 알게 된 고흐를 유독 아꼈는데 고흐도 그를 좋아해 3점의 탕기 초상을 그렸다. 로빈슨이 소장했던 그림은 3번째 것으로 탕기영감 뒤로 후지산과 벚꽃나무 그리고 우타카와 카가와 구니사다의 일본기녀가 새겨진 우키요에가 가득 들어차 있다. 배경이나 탕기의 재킷을 보면 이제 자연의 색을 버리고 고흐 특유의 원색을 대담하게 구사함으로써 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사실 묘사가 아니라 표현주의적인 화풍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렇듯 귀한 작품을 소장했던 로빈슨은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으로 흑인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요구하며 1930~40년대 문화, 교육 및 종교단체와 전쟁 구제 관련 850개 이상의 단체에 25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자선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중 11개 단체가 공산당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청문회에 소환됐지만 무혐의로 밝혀졌다. 사실 그는 자선가이기 전에 1953년 자신의 소장품 40점을 가지고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를 열 정도로 매우 중요한 미술품 컬렉터였다. 아끼던 그림을 팔아 거액의 소송비용을 전했던 로빈슨을 트럼보는 후에 당시 소극적으로 처신했다며 힐난했다. 동료들이 실업자가 되어 고통받는 그 척박한 시대에 그가 아무렇지 않게 활동했다는 이유로. 로빈슨은 트럼보에게 “너는 영화에 얼굴이 안 나오지만 나는 배우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도 나를 숨길 수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사실 같은 상황과 생각이라도 처지에 따라 처신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누가 로빈슨을 비난할 수 있을까. 6·25 전쟁 때 서울수복 후 피난 못 갔던 사람들을 비도강파라 해서 부역했다고 몰아세운 일이 문득 떠오른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매카시즘의 적폐인 정적 말살과 인권탄압의 방법을 새로운 정적이나 다른 진영 사람들을 때려잡는데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문득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기시감이 들어 하는 말이다.
  • 일왕 부부, 일본 내 고구려 마을 고마신사 첫 참배

    일왕 부부, 일본 내 고구려 마을 고마신사 첫 참배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20일 일본 내 옛 고구려 유민 및 그 후손들이 유지해 온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高麗)신사(사진)를 참배한다. 역대 일왕이 고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마신사는 19일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일왕 부부의 20일 신사 방문 소식을 알렸다. 아키히토 일왕의 고마신사 참배 배경 등은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내년 퇴위를 앞둔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전에 한반도를 상징하는 고마신사를 방문해, 반성과 화해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기간동안 여러 차례 한국 방문을 희망해 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의 방문을 만류하는 일본 보수세력과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측 입장 등이 엇갈려 그의 방문의 발목을 잡아왔다. 일왕의 고마신사 방문은 한국 방문을 대신한 측면도 있다.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입장을 강조해 왔고, 특히 퇴임을 앞두고 아베 신조 총리의 헌법 개정 등에 부정적인 입장도 간접적으로 전달해 왔다. 일왕은 지난달 15일 태평양전쟁 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3년 연속 ‘반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퇴위 의사를 밝힌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는 올해 특별법으로 인정돼 내년 말 이전에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다.  고마신사는 고구려 마지막 임금 보장왕의 아들인 약광(若光)이 세운 자치지역인 고마(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려의 음역)군 (현 히다카시)에 세워졌다. 고마신사의 대표인 궁사는 성을 고마씨를 쓰고 있는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1)로 약광의 60대 후손이다.  약관은 고구려 멸망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민들을 모아 716년 고마군을 세우고, 수장을 맡아왔다. 고마신사는 730년 약광의 사망 이후 그를 모시기 위해 설치됐다. 고마군은 창설 이후 1000년 이상 유지되다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군에서 폐지됐고, 1955년 행정구역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고마신사를 중심으로 한 히타카시 일대는 하천, 언덕 등 여러 지명에 고구려란 뜻인 고마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지난해 4월 23일에는 고마신사에 고마군 창설 1300주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당시 기념시 건립 행사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 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의 부인인 히사코, 하세 히로시 일본 문부과학상, 야가사키 테루오 히다카 시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 2010년 6월에는 고마군과 약광을 기리기 위해 재일교포들이 중심이 돼서 고마약광회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 고마신사는 고이소 구니아키·와카쓰키 레이지로·하토야마 이치로 등이 이 신사에서 기도한 뒤 총리대신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내에서 영험하기로 이름이 나 있는 신사로 꼽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특파원 칼럼] 더이상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마라/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더이상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마라/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북한이 지난 3일 6차 핵실험과 15일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미국의 전방위 대북 제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백악관 안보사령탑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대북 군사적 옵션을 강력하게 시사하면서, 한반도에는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운’이 감돌고 있다.20여년째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북·미 간 갈등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때리고 어르는’ 협상의 기술은 걸음마를 띤 ‘아이’용이다. 6차 핵실험에 대한 잠정적 평가에서 드러났듯이, 이미 북한은 원자폭탄을 넘어서 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는 수소탄 개발에 근접한 ‘성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머리 굵은 어른의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속 깊은 ‘대화’뿐이다. ‘묻지마’식 대북 경제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집착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북한의 ‘생명줄’이라며 미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대북 원유 금수 조치조차도 북한 전문가 대부분은 효과에 고개를 젓는다. 미 노틸러스 연구소는 “북한은 석유제품의 대체재인 석탄이나 바이오매스 등이 충분하다”면서 “원유 금수 조치는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인지 잠잠하던 대북 군사 옵션 타령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누군가 (전쟁 시작) 30분 안에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 서울 시민 1000만명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방정식을 풀어서, 내게 보여 줄 때까지 군사적 해법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미국의 대북 군사 행동은 한반도의 공멸을 의미한다. 선제타격이나 예방타격 등도 지하 벙커에 있는 수많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다 파괴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낮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동거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선제공격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의 조언처럼 미국은 선제공격이 아닌 북한과 동거를 위한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벤 카틴(민주·메릴랜드) 미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지난 14일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대북 제재 이행과 별도로 북한과 핵·미사일 시험 동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 조야에서도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대화의 조건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핵폐기’라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핵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폐기가 되는 것”이라고 제시한 ‘선(先)핵동결, 후(後)핵포기’가 적절한 대안이라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은 또 ‘4노(No)’(북한 정권 붕괴 및 전환, 미국 침략, 통일 가속화 등에 나서지 않는다) 등 말뿐인 당근이 아니라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북·미 국교정상화’, ‘유엔 제재 해제’ 등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구체적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보다는 현실적 타협을 위한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이라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가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hihi@seoul.co.kr
  • 적 사살 게임 즐기는 北소년들…“입대해 원수 美와 싸울 것”

    적 사살 게임 즐기는 北소년들…“입대해 원수 美와 싸울 것”

    “나 미국인이라면 쏠 거냐”에 “네” 미사일 질문엔 “올라가는 것 통쾌…방위 차원인데 美는 왜 제재하나”“미사일이 올라가는 모습이 정말 통쾌했다.” “미국 땅을 파괴하고 싶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CNN방송이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특별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CNN 해외판인 CNN인터내셔널은 ‘미지의 국가: 북한 속으로’라는 제목의 1시간짜리 특별 다큐멘터리를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 11시 방송했다. CNN 특파원 윌 리플리 등 취재팀 3명은 지난 7월 북한을 방문해 보름간 머무르며 북한 감시원이 동행한 가운데 대도시 평양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지인 강원도 원산, 비무장지대(DMZ), 백두산 등을 찾았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북한 주민들은 순박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정권에 충성심을, 미국인에게는 적개심을 드러냈다.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발사지로 이름이 높지만 북한에서는 낚시와 해산물로 유명한 북한의 다섯 번째 도시 원산에서 만난 한 남성은 “미사일이 올라가는 모습을 다 봤다. 정말 통쾌하다”며 “방위 차원인데 미국은 왜 제재를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이곳에서 만난 14~15세 소년들은 총으로 적을 죽이는 전자오락을 즐겼다. 여기서 상정된 적은 미국인으로, 리플리 기자가 “내가 만약 미국인이라면 쏘겠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대번에 “네”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언젠가 군에 입대해 철천지원수인 미국인과 싸우겠다”, “그들이 우리를 침략하고 학살했다”고 앞다퉈 말했다. CNN은 북한이 자국민들에게 미국이 한국전쟁을 도발했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판문점을 안내한 북한 군인은 최근 DMZ에서 긴장이 고조된 것은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곡은 ‘김정은 장군 찬가’다.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판문점 기념품 가게에서는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미국이 분별없이 덤벼든다면 무자비한 징벌을’ 등 과격한 문구가 새겨진 엽서를 팔기도 했다. 황해도에서 만난 한 여성은 ‘북한을 떠나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국”이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은 이유에 대해 “미국이 왜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가서 보고 싶다. 왜 우리가 지금 고통을 겪는지 아는가? 바로 미국인들 때문”이라며 “미국인을 저주한다. 그들의 땅을 파괴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업에 종사한다는 한 남성은 ‘로동신문에 나온 것을 전부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린 100% 믿는다”고 답했다. CNN은 “북한의 누구한테 물어봐도 똑같이 답할 것”이라며 “북한에는 ‘가짜 뉴스’가 없다”고 전했다. CNN은 이번 특별 다큐멘터리를 ‘스페셜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의 톱뉴스로 소개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이제야 왔구나…사할린, 72년 만의 귀향

    이제야 왔구나…사할린, 72년 만의 귀향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귀국하지 못한 한국인 노무자의 유골 12위가 72년 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다. 행정안전부는 14일 지난 10~13일 사할린에서 한인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12위를 발굴했고, 이날 현지의 추도·환승식 이후 15일 충남 천안에 있는 국립 망향의 동산 납골당에 안치한다고 밝혔다.2013년 한국과 러시아 양국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인 유골의 발굴과 봉환에 합의한 뒤 2013년 1위, 2014년 18위, 2015년 13위, 2016년 11위에 이어 이번에 12위를 봉환하게 됐다. 앞으로 고국의 땅에 다시 묻히기를 희망하는 유골은 330위다. 행안부는 러시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2005년부터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피해 및 묘지 실태를 조사했다. 2011~2015년 사할린에서 한인묘지 조사사업을 벌여 1만 5110기의 한국인 묘지를 확인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인 사할린에는 1938~1945년 일제에 의해 약 3만명의 한국인이 끌려가 탄광, 토목공사현장, 공장 등에서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 한인들은 다시 일본으로 강제 전환 배치돼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됐으며, 전쟁 말기에는 한인에 대한 집단학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의 방치로 사할린 지역의 한인들은 귀국하지 못하고, 1990년 한·러 수교 전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생을 이국땅에서 마감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된 이들은 6289명이다. 우리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외교부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사할린 한인들의 귀국 사업을 추진해 재작년까지 영주 귀국한 사람들의 숫자는 4376명이다. 14일 사할린에서 열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추도 및 환송식에는 러시아 외교부, 사할린 주 정부, 사할린 각 시장, 각 지역 한인회장, 유족 등이 참석했다. 15일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열리는 추도식 및 안치식에는 사할린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단체와 유가족, 정부부처 관계자, 국회의원, 주한러시아대사관 및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망향의 동산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망국의 서러움과 갖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교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1976년 세워진 곳으로 3800여명이 안장되었다. 윤종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정부는 강제동원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앞으로도 유골봉환 사업을 착실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뉴욕 콜롬버스 동상은 왜 반달리즘 대상이 됐을까?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의 명물인 콜롬버스 동상이 누군가에 의해 크게 훼손된 채 발견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현지언론은 콜럼버스 동상이 붉은색 페인트와 글로 도배된 채 이날 오전 7시 쯤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실제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콜럼버스의 한 손은 붉은색 페인트로, 또 동상 아래에는 '증오는 용인되지 않는다'(Hate will not be tolerated)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씌여져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보면 누군가의 ‘반달리즘‘(vandalism·문화·예술 및 공공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판 '역사 논쟁'과 맞닿아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다. 세계적인 모험가로 어린이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현지에서의 역사적인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미국 내 일부 역사학자들은 콜럼버스의 탐험을 계기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 학살, 노예제도, 문화 파괴가 일어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중미 국가들은 콜럼버스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학살을 촉발한 침략자’로 규정짓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곳곳에 '영웅'으로 세워진 콜럼버스 동상은 일부 시민들에 의해 반달리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에 훼손된 센트럴파크의 콜럼버스 동상은 지난 1892년 세워진 유서깊은 문화재로 그간 일부 시의회 의원들은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나 이번 반달리즘을 계기로 또 한번 콜럼버스 역사 논쟁이 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1492년 10월 12일을 기념해 매월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하고 있어 이 시기를 즈음해 동상 훼손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하와이 등 미국 내 일부 주에서는 아예 이 날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로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 실제로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 등 9개 도시가 이름을 ’원주민의 날‘로 바꿨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세계는 지금 新냉전시대] 카슈미르 영토분쟁…核실험쇼 치킨게임

    [세계는 지금 新냉전시대] 카슈미르 영토분쟁…核실험쇼 치킨게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지난 6월 27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인도 정상회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회담에 앞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진정한 친구’라며 치켜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디 총리를 직접 ‘레드 카펫’ 의전으로 극진히 맞았다. 모디 총리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을 와락 껴안으며 “당신과 가족을 초청하고 싶다”며 친밀감을 드러냈다.●남아시아, ‘적의 적’은 친구 이는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었다. 회담에서 양국이 특히 군사협력 부문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C17 군용 수송기 인도 판매를 승인했으며 미 행정부는 인도양의 감시 활동을 돕기 위한 미국산 비무장 무인기 ‘가디언’ 22대를 인도에 판매하기로 했다. 총 24억 달러(약 2조 7000억원) 규모다. 앞서 4월에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인도를 방문, 마노하르 파리카르 국방장관과 만나 군수지원협정 체결에 합의하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 중국은 파키스탄과의 남다른 관계를 과시했다. 지난 3월 21일 중국은 파키스탄의 서남부 발루치스탄주 허브시에서 중국·파키스탄 합작 석탄발전소 건설 기공식을 가졌다. 이틀 뒤 수도 이슬라바드에서 열린 국경일 열병식에선 중국군 3군 의장대 참여와 함께 중국제 전투기들을 선보였다. 맘눈 후사인 파키스탄 대통령은 중국군의 열병식 참가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신냉전 시대, 남아시아 지역을 두고 미국과 중국은 ‘적의 적’을 친구로 삼는 방식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중국과 영토분쟁으로 오랜 갈등을 빚어 온 인도는 남아시아에서 중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이다. 인도는 ‘숙적’ 파키스탄과도 종교분쟁으로 수차례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남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굴기를 인도를 통해 견제해 이 지역의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적의 적’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미국과 인도, 중국과 파키스탄. 이 밀월관계의 속내는 무엇일까. 복잡한 관계의 뿌리는 인도·중국 간 영토분쟁이 촉발된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접경 지역에 ‘맥마흔 라인’을 국경선으로 그었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여전히 이 라인을 국경선으로 봤고, 중국은 영국 침략 이전의 전통적 경계선을 국경선으로 주장하면서 양국은 마찰을 빚었다. 이 와중에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중국 공산당 정권의 종교탄압과 말살 정책에 반발하면서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와 중국의 갈등은 더욱 증폭됐고, 양국은 마침내 1962년 10월 카슈미르 동쪽 지역(아크사이친),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국경선을 놓고 한 달간 전쟁까지 치렀다. 중국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아크사이친의 실효 지배를 얻어냈지만 여전히 국경선을 확정짓지 못해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인도는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세 차례나 전면전을 펼쳤다. 카슈미르는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고원지대로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주, 파키스탄 동부 길기트 발티스탄주와 아자드 카슈미르 주, 그리고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지역인 아크사이친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쪼개졌다. 이후 카슈미르에선 인도로부터의 독립이나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주장하는 분리주의 활동이 이어졌다. 카슈미르는 힌두교 인구가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인구가 과반인 곳이다. 이 카슈미르를 두고 양국은 1949~1971년 1~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분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앙금만 깊어졌다. 중국·인도,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상호 갈등과 불신은 이 지역 핵 경쟁으로 이어졌다. 1964년 첫 핵실험을 한 중국이 ‘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얻자 이에 자극받은 인도는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로 나아갔다. 인도와 ‘숙적 관계’인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을 하면서 인도와 더불어 ‘비공인 핵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세 나라가 연쇄적으로 핵보유국이 된 것이다. ●인도vs파키스탄-中vs인도 영토 분쟁 미국과 소련이 패권 대결을 펼쳤던 과거 냉전 시기 인도는 소련과 가까운 나라였다. 소련과 ‘인도의 적’인 중국이 공산권의 맹주 자리를 두고 다퉈 왔고 사상노선 갈등으로 대규모 국경분쟁이 벌어진 이후에는 사실상 적국으로 지내 왔기 때문이다. 인도가 1998년 5월 5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전 세계로부터 핵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미국 등으로부터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이유도 냉전 당시 소련과 가까웠던 인도에 대한 서방의 견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인도의 전략적 가치는 급상승했다. 특히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은 인도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은 인도와 전략적 동맹관계 수립에 합의했으며 2008년에는 원자력 협력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미국은 인도의 원자력 시설을 핵폭탄을 제조하는 군사용과 발전 등에 이용하는 평화적 시설로 분류했다. 원자력 시설 22개 중 14개를 평화적 시설로 분류하고 이에 대해서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받도록 했다. 인도가 서방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인도에 미국의 동맹이나 가장 가까운 우방처럼 핵심 방산기술에 대한 공유와 접근이 가능한 ‘주요 국방 파트너’ 지위를 부여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올해 트럼프 정부는 양국 국방·외교 장관들 간의 새 대화 채널을 수립하기로 했다. 반면 중국은 파키스탄과 손을 잡았다. 중국은 미국의 후원하에 중국의 남쪽 국경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는 인도를 견제하려면 파키스탄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파키스탄은 9·11테러 직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하지만 2011년 파키스탄 영토 안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라덴을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를 따돌린 채 사살하고 사후 통보만 한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됐다. ●인도 “파키스탄·중과 전쟁 대비해야”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들어 노골적으로 파키스탄 편을 들었고, 양국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2011년 5월 중국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매번 어려운 상황마다 파키스탄을 지지해 주는 중국에 감사한다. 중국은 진실한 친구이자 오랜 세월을 통해 입증된 전천후 친구”라고 말하며 미국에 잽을 날렸다. 이 지역의 긴장은 최근 더욱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 6월부터 중국·인도·부탄 3국이 접경하고 있는 둥랑에서 중국군이 인도 국경 방향으로 도로를 낸 데 반발한 인도가 무장 군인 등을 투입해 공사 진행을 막으면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라와트 인도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6일 중국을 ‘북쪽의 적’이라고 지칭하며 오랜 앙숙인 파키스탄뿐 아니라 중국과의 전쟁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난달 16일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을 향상하기 위해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2+2회의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 같은 압박은 파키스탄을 중국과 더욱 가깝게 만들고 있다. 중국 공군은 지난 7일부터 오는 27일까지 파키스탄 공군과 중국 내 상공에서 올해 여섯 번째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문제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 지역의 핵 경쟁이 점점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 국가가 새 미사일을 개발하면 다른 국가가 이를 무력화하는 다른 미사일로 맞대응하는 ‘장군 멍군식’ 핵 경쟁을 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핵병기 경쟁을 둘러싼 우려가 남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거울처럼 닮은꼴 한국·오키나와

    거울처럼 닮은꼴 한국·오키나와

    두 섬-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이명원 지음/삶창/376쪽/2만3000원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는 풍광이 유려한 휴양지로만 익숙하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과 오키나와가 ‘마주 보고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일본제국주의가 남과 북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극’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는 전진기지로 삼았던 오키나와는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된 조선과 숙명적으로 닮았다. 과거 ‘식민주의의 양극’이라는 관점에서 비극적으로만 조망된 두 섬은 현재는 ‘저항의 양극’으로 역동적인 주체화를 꾀하고 있다. 저자는 두 섬에서 현재진행형의 연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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