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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사회 노인모시기/「효행 대행센터」 이용하기도

    ◎농촌 70%·도시30%이상 자식과 떨어져 생활/주말엔 아이들과 부모찾아 고독감 덜고/매일 일정한 시간에 전화 문안 드리도록 외아들 내외가 홍콩지사로 전근돼 3개월전부터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는 조동민 할머니(68·삼성노인대학장)는 요사이 거처를 비슷한 연배의 친척들이 많은 고향 경주로 옮길까 생각중이다. 『그동안 아들가족과 지내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아 솔직히 불편할 때도 많았어요.그래서 혼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되고보니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조할머니는 이런 생각이 며칠전 자식과 떨어져 혼자 지내던 한 노인이 사망후 1주일만에 발견된 사건이래 더욱 강렬해졌다고 밝힌다. 오래전부터 노인대학을 맡아 운영,노인들의 심리를 비교적 잘 안다는 조할머니는 『노인들은 자유롭게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혼자 또는 노인부부만 살게되면 고독감에 사로잡혀 자식 생각만한다』고 들려준다. 부모부양의 1차적 책임이 아직은 자식에게 있는 우리사회에서 이유야 어떻든 최근 혼자 지내던 75세의 할머니가 시체로 발견된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있다. 이 사건은 함께살며 관심과 사랑을 나눌 여건이 안되는 현대사회속에서의 가정의 실상과 문제점을 드러낸 한 예로 고령화 사회에서의 현명한 노인모시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0세이상 노인인구는 총인구의 7.6%이다. 이들의 생활형태는 농촌에 사는 경우 70%이상이,대도시의 경우에도 30%이상이 홀로 살거나 노부부끼리 자식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이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내 일같이 여기며 『우리도 자칫하면 큰 망신 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나이 드신 부모님,어떻게 모시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김금래 사무총장은 85세가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혹시나 싶어 낮에도 누군가를 반드시 함께 있게한다고 말한다.또 혼자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싶어 하기때문에 특별히 할 얘기가 없으면 할머니가 즐겨 보는 TV 드라마를 화제삼아 얘기한다고 밝힌다. 또한 주부 김인자씨(42·서울 목동아파트)는 남편이 외아들이지만 칠순이 넘은 시부모가 떨어져 살기를 원해 따로 살면서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안부전화를 드리고 주말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아이들과 부모님을 방문하는것을 원칙으로 세워 결혼이후 15년이 넘도록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인문제 전문가 박재간씨는 자신도 70이 넘은 노인이지만 『산업화 사회에서 부모·자식이 떨어져 사는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모시지 못하는데 너무 죄의식을 느끼지 말라고 한다.그러나 멀리 떨어져 살게되면 급한 일이 발생해도 손을 쓸 수 없는만큼 그 대안으로 사회사업기관이나 여성단체등의 「효행대행센터」를 이용,대신 노인들을 찾아보게 하며 전화나 매일 빠짐없이 하라고 조언한다.또 『노인들은 겉으론 건강한 것 같아도 모두 2∼3종류의 질병은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형편이 여의치 못한 노인들은 효도하지 않는 자식들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혼자 혹은 노부부만 사는 이웃의 노인들이나 가까운 친척들과 연계를 맺어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며느리 여성운동 시어머니가 적극 후원”(훈훈한 우리가정:13)

    ◎“사회정의 위한일” 신문스크랩까지 챙겨줘/남편도 YMCA 활동하는 「동지적 부부」 『우리 내외는 애초부터 며느리를 맞는게 아니고 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해왔어요.집안일은 가족이 서로 조금만 도우면 별일 아니죠.가진 능력을 사회를 위해 붓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며느리인 이미경씨(43·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하는 일이 자신과 같은 여성을 위한일,사회정의를 위한 일임에 자부심을 가지고「뒤를 밀어준다」는 시어머니 김옥은씨(67)의 말이다. 험난했던 유신시절 사회운동을 하면서 만나「군림하는 남편,순종하는 아내」가 아닌 서로의 일을 사랑으로 동료처럼 북돋워주고 살아가는 이른바 「동지적 부부」이미경·이창식씨(47·부천YMCA 총무)가족.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 바로 아래 진달래·철쭉이 가득한 정원만큼이나 포근한 사랑을 두딸 아람(16)과 나래(13),아이들의 할아버지(이동규·72)·할머니 6식구가 나누며 살고 있다. 이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73년.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한국신학대학에 다니던 이창식씨와 이화여대 졸업후 이대 여성연구소에 다니던 이미경씨는 당시 기독교청년활동이 활발하던 제일교회서 만나 76년 결혼했다.함께 고초를 겪으며 해낸 일도 많았다. 이미경씨가 여성평우회,여연의 상임부회장,정신대대책협의회 총무일 등으로 끊임없이 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해결해나가는 동안 이창식씨는 도시산업선교회활동,YMCA중앙회 차원에서 많은 지역의 주민자치와 시민운동을 위해 자리를 닦아놓는 역할을 해왔다. 『정신대문제로,남북여성토론회 등으로 집을 비울때가 많은데도 더욱 힘내라고 도와주는 남편이 항상 고맙습니다』『Y일을 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니고 또 이사까지 가야했을 때도 마다않고 항상 함께해주는 아이들 엄마의 힘이 더 큰 것이지요』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들의 자랑은 결국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로 돌아간다. 이미경씨의 시부모는 칠순 전후의 「옛날」사람이지만 여성관·사회관등은 요즘 젊은이들 못지않게 진보적이다.지난 91년 김부남여인 사건이 계기가 된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 뿐만 아니라 최근의 성희롱사건에 까지 아들내외 못지않은 관심을 갖고 있다.바빠서 못 챙긴 관련 신문기사도 며느리에게 챙겨줄 정도다. 엄마·아빠의 사회활동을 하는 모습과 이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할머니·할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아람·나래 두 아이들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고는 곧잘 올바른 해석을 해내고 학교의 궂은 일도 자진해서 하는 정의감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 선암사/낙안성/송광사/문화유적답사 조상숨결 체험

    ◎최대의 전통측간 특별히 볼만/선암사/임경업장군 때의 석성 원형 보존/낙안성/신라말 창건… 조계종의 중흥 도장/송광사 싱그러운 녹음이 아름다운 계절.주말쯤 취미를 같이하는 이들끼리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때 절등 우리 문화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하고 싶지만 낯선 길을 선뜻 떠나기란 쉽지 않아 망설이다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길손을 안내하는 각종 특색 살린 여행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속에 지난 주말인 23,24일에는 전국의 유적을 찾아다니며 역사의 숨결을 체험하는 「두레문화여행」(회장 김재일)단 40명이 1박2일 일정으로 전남 승주일대의 사찰답사에 나섰다. 선암사.송광사등 유명사찰과 낙안민속마을을 돌아보며 우리문화 유산을 「보고」「 느끼고」「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자」는 뜻이 담긴 이 여행에는 부부·주부·어린이·대학생·칠순노인등이 동행이 되었다. 복잡한 서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기 5시간. 전남 승주군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요란한 굉음속에서 곡성∼순천간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고 한편에서는 담배 모를 내는 농촌아낙네들의 모습등이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일요일 새벽6시30분.싱그러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답사일정에 들어 갔다.승주군청에서 8㎞떨어진 조계산(해발887m)내 태고종 사찰인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니 겹벚꽃·철쭉등으로 절 전체가 온통 꽃밭이다. 이 절은 신라말 도선이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정유재란때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존 건물은 순조 25년(1825년)에 중건된 것이며 대웅전·원통전·팔상전 등 20여개동이 남아있다.삼층석탑과 입구의 승선교가 보물 제395호와 400호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광주민학회소속 향토사학자 강정환씨(53)는 『선암사에는 보물등 유적도 많으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측간이 특히 볼만하다』고 설명했다.서양식 화장실에 어느새 익숙해버린 우리에게 사찰의 측간형태는 자연을 귀히 여기며 훼손시키지 않고 살았던 생활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교육장이기도 했다. 선암사의 지허 주지스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낸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며 지나가는 길손을 위해서도 설법을 들려줬다. 마음속에서 자신의 화두를 찾으며 일행이 발을 돌려 들른 곳은 승주군 낙안면 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 민속마을」. 낙안성은 인조때 임경업장군이 군수재직중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한 곳.1.4㎞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성내에는 현재 원형을 그대로 유지,민속보존자료로 지정된 초가 9채등 민가와 관아·주막등이 당시의 마을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이곳에는 임장군의 영혼이 마을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정월 보름에는 면민대제를 지낸다.때마침 영화「태백산맥」의 촬영이 한창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었다. 군청에서 28㎞ 떨어진 다음 답사 코스인 송광사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신도들과 행락객들로 무척 붐볐다.다음달 18일의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연등이 일찌감치 경내 곳곳에 내걸려 불심 큰 불자들이 많이 찾는 큰 절임을 쉽게 느낄 수 있게한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중흥도장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승보(승보)사찰로 유명하다.신라말 창건돼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크게 일으켰다. 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송광사는 특히 국보 제56호로 16국사의 영정을 봉안,일반에 공개하지않는 국사전을 두레기행단을 위해 특별공개,직접볼 수있는 기쁨을 주었다. 문화기행에 참가한 전재현씨(43.출판사대표)는 『처음 여행에 참가했던 이들중 절반이상이 다음 행사때도 참가한다』면서 『이런 답사를 따라 나서면 문화유적을 보고 느끼는 안목을 갖게된다』고 유적답사를 따라 나서는 장점을 꼽았다.「두레문화기행」문의전화는 02­712­5813.
  • 일가 7명 합작… 현대판 고려장 “충격”

    ◎딸 사업자금 거절에 칠순노부 수도원 3년 감금/인감 강제로 받아 행상하며 번 1억재산 나눠가져 사업자금을 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칠순의 아버지를 정신질환자등이 수용된 사설수도원 지하병동에 강제로 감금한 비정의 일가족이 쇠고랑을 찼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 송세빈검사는 9일 3년동안 수도원에 갇혀 있다가 경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이모씨(73)의 부인 최모씨(66)와 아들(31·구로구 오류2동))등 2명을 불법감금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조사결과 이들은 91년 4월 이씨의 생일날 열린 가족회의에서 사업실패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둘째딸을 도와주자는 요구를 거절해오던 아버지를 수도원에 가두기로 결정,수면제를 소화제라고 먹여 서울 종로구 구기동 E수도원에 감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인과 2남2녀에 사위까지 가세한 7명의 일가족은 아버지를 수도원에 감금시킨뒤 강제로 인감도장을 받아내 이노인이 행상과 제과점을 하며 어렵게 마련한 7천만원짜리 아파트와 예금 3천만원등 재산 1억원을 처분해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이노인은 지난 3월 경찰의 불법기도원 일제 단속 당시 억울함을 호소,만 3년 만에 풀려났다. 발목을 쇠사슬에 묶여 감금생활을 하면서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이노인은 그러나 담당검사에게 『옛날일은 다 잊어 버렸다.이제는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고 싶다』며 선처를 호소,검찰은 일가족 7명 가운데 죄질이 나쁜 부인과 큰아들만 구속했다. 이노인은 가족들이 구속된 뒤에도 끈질기게 검찰청에 찾아와 『내잘못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처벌을 원치 않으니 석방해달라』고 눈물로 탄원,부모의 「내리사랑」을 실감케 하고 있다.
  • 독창적 작품세계 80점 선보여/원로 서예가 월강 칠순전

    ◎9∼15일 덕원캘러리서 서예의 보급과 중흥에 평생을 바쳐온 원로 서예가 월정 정주상씨의 칠순전이 9일부터 15일까지 덕원갤러리(723­7771)에서 열린다. 경남 함양출신인 정씨는 「법고창신」을 모토로 고전을 깊이 연구한 끝에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재야작가로 필명을 날렸으면서도 국전등 공모전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은 서예의 대가. 초등교사로 교편을 잡아 20년간의 교직생활을 하면서 초등글씨본에서부터 현행 중고교 서예교과서까지 직접 지은 장본인이고 한국 최초의 서예전문지 「월간서예」의 창간인이기도 하다. 지난 88년이후 6년만에 갖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행초를 잘 섞어쓰는 주특기와 함께,대소강약 장단광협의 조화가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그의 작품세계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작 80점이 선보인다.
  • 아들부부 다투자 가출 칠순할머니 동사

    【부산】 30일 상오11시쯤 부산시 북구 덕천2동 628 경부선 철로변 10m아래 야산에서 신인자할머니(74·북구 덕천동 주공아파트)가 숨져 있는 것을 부산지방철도청 선로검침원 윤선길씨(50)가 발견했다. 신씨는 지난 29일 상오11시쯤 함께 살고 있는 셋째아들(38)부부가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가출한뒤 이날 동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4남2녀를 두고 있는 신씨가 자식들이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해 현재 3남집에서 살고 있다는 이웃의 말과 평소 경로당 친구들에게 『자식들이 함께 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 점등으로 미뤄 자식들의 냉대를 비관해 가출했다가 동사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 급류휩쓸린 국교생 구하고 칠순앞둔 목사 탈진해 위독(조약돌)

    ○…칠순을 앞둔 목사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2명의 국교생을 구하고 탈진,생명이 위독하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2일 하오 5시20분쯤 경북 의성군 금성면 명덕1리 쌍개천에서 강을 건너던 김태수(10·금성국교4년)·박은선군(10·〃)이 급류에 떠내려가자 이 마을 경애교회 목사 오동희씨(68·사진)가 뛰어들어 이들을 구했으나 자신은 급류에 휘말리면서 하천 바위에 머리를 받혀 1백여m쯤 떠내려가다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영남대병원측은 『오목사의 허파에 물이 차 소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이만희작 「피고지고 피고지고」/배금주의 세태 통렬히 풍자

    ◎칠순 앞둔 세 노인의 보물탐사 묘사 연극계 화제작인 「불 좀 꺼주세요」와 「돼지와 오토바이」를 쓴 극작가 이만희씨의 또 다른 작품 「피고지고 피고지고」가 오는 20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국립극단은 지난 90년부터 창작극 개발을 위해 중견극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공연해오고 있는데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그 다섯번째 무대이다. 이 작품은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왕오(이문수반),천축(김재건반),국전(오영수반)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노인의 이야기.순탄치않은 인생을 살아온 노인네들의 순진무구한 얘기로 인물성격과 극적 상황에 따른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노인은 왕년에 사기,절도,밀수등 한가락씩했던 전과범들.어느날 혜초여사(손봉숙반)로부터 보물이야기를 듣고 신라시대의 값진 유물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골짜기 옛 절터를 몰래 파기로 마음을 정한다.절터가 주요군사시설이어서 삼엄한 경비에 도굴이 쉽지 않자 궁리끝에 산아래에 화원을 만들어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꽃을 재배하며 연명하는 것처럼 위장한다.그리고 거기서 나온 흙은 서울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혜초여사에게 보내 3년동안 감쪽같이 도굴작업을 해왔다.보물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도 하고 백만장자 꿈도 꾸며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해오던 이들 세노인은 그러나 세상일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에 젖어든다.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불 좀 꺼주세요」등에서 작가 이만희씨와 콤비를 이뤘던 강영걸씨가 연출을 맡았다.이번 공연은 국립극장의 상설공연장화라는 취지에 맞춰 국립극단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20일까지 장기공연을 한다.공연시간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4시).문의 274­1151.
  • 우즈베크공(중앙아의 한인사회:중)

    ◎국회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민족화합정책으로 이민초기 고충 해소/극면성 바탕 경제발전 기여… 자긍심 높아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약45만명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그들 가운데 3분의2에 달하는 30여만명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1937년,18만여명에 달하는 연해주 거주 동포들이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온 이후 그들은 황량한 박토 중앙아시아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역이었다.강제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형제들,아들 딸들이 죽었지만,그리고 이주된 후 창문도 없는 토굴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우리 동포들은 천부적인 근면성과 탁월한 농사 기술로 콜호스(Kolkhoz)라고 하는 수많은 협동농장을 건설했고 지역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농사를 지어냈다. 현재는 그곳의 정부나 공·사기업에 진출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포도 많이 있고 대학교수 등의 전문 인텔리들도 그곳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그들은 지금까지의 중앙아시아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고 대체로 중류 이상의 다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카자흐공화국에서 동포지도자들을 직접 만났을때 그들의 표정에서 한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마아타에서의 일정을 끝낸 우리 조사단은 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했다.우즈베키스탄의 국기가 선명히 그려진 아에로플로트기는 기내 방송을 러시아어에 앞서 우즈베크어로 시작하고 있었다.우즈베크공화국은 TV나 라디오 방송,상점의 간판이나 공문서 작성 등을 이미 우즈베크어로 공식화했다.총인구 2천만명중 70%에 달하는 우즈베크민족의 비율과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독재가 급속한 탈러시아화 및 우즈베크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사회발전 모델은 카자흐공화국과 마찬가지로 터키식의 발전방식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종교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인접한 이란 등지의 회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는 달리 온건하고 대중적인 성격의 종교문화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민족화합 정책과도 잘 부합하고 있었다.그러나 현지의 우리나라 교회들이 십자가를 옥외에 걸지 못할 정도로 타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통령 민족문제 담당 비서관 사이도프와 우즈베크 공화국 의회 국제외교위원장 지야모프를 차례로 면담했다.그들은 한결같이 한인들의 우수성과 근면성에 대해 칭찬하고 한인들은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으로서 다방면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잘 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민족화합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들은 올해 초 일부 국내언론에 보도된 우즈베크 민족주의자들이 금년내로 한인들에게 이 지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이에 대해 대단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또한 「재CIS 고려인연합회」가 자치주 추진과 관련하여 우즈베크 안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민족화합정책이 다민족국가에서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그들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족분규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한인인 블라디미르박이 회장으로 있는 치르치크시의 비철금속내열합금 공장과 지모페이황이 회장인 타슈켄트주의 폴리타젤 협동농장을 방문했다.그곳을 방문케된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우즈베크 정부의 배려때문이었다.우리동포들은 한결같이 몸집이 크고 건장해 보였다.지도급 인사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몸에 밴 듯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특히 우리는 폴리타젤 농장에서 1937년 강제이주후 눈물겨운 노력으로 정착지를 개간하고 훌륭한 터전으로 변화시킨 동포 1세들을 만날 수 있었다.칠순이 넘었음에도 아주 건강한 모습이던 그들은 인심 또한 후하여 농장에서 재배한 갖은 과일과 고기를 보드카와 함께 대접해 주었다. 사실 필자는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강제이주 초기의 파란만장한 신산고초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단,술자리에서의 어우러짐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마저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이유없이 즐겁고 흥겨운 마음을 확인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일일 것이다.안무혁 의원과 필자는 합금공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 칼을,폴리타젤 농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상을 선물로 받았다.우리 문화와 우리 풍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었으면 더 좋았으리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이미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인 것이다.
  • 젊은노인(외언내언)

    경남 고성군 회화면 동촌리.53가구 1백88명 가운데 60세이상 노인이 61명으로 전체의 3분의1에 이른다는 장수마을이다.70∼80대노인이 많아 60세정도는 담배도 제대로 못피울 정도로 「젊은오빠」신세라는 것.이같은 「동촌마을」현상은 지금이니까 화제로 되는거지 갈수록 일반화할 것이다.그만큼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환갑잔치라는건 거의 없어진 상태다.자녀들이 하자고 우겨도 본인들이 거절하는 세상이 되었다.대체로 10년후의 칠순잔치를 기약하면서 여행을 다녀오는 정도로 정착되어 나간다.대학교수들의 경우는 화갑기념논문집을 내면서 증정식을 가져오는 경향이지만 일부에서는 그에 대해서까지 못마땅해한다.정 그러려거든 5년후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이 어떻겠느냐면서.하여간 60세는 「노인」축에 못끼는 세상으로 돼간다. 그렇건만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보자면 60세는 노인이다.사실은 60도 안된 50대후반부터서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아래 노인으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나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오빠」다 하고 소리쳐봤자 메아리는 공허하다.「60세노인」은 사회정책이 새로운 일자리도 마련못해준 상황에서 옛일자리만 뺏겨버릴때 갑자기 70세를 느낀다.실제로 정년퇴임하고 나서 심신이 한꺼번에 버썩 늙어버린 사례들을 주변에서 보아오는것 아닌가. 지금 일본에서는 텔레비전 스타로 부상한 1백살 쌍동이할머니가 화제다.나리타 긴,가니에 긴이란 이름의 이 쌍동이할머니는 지난해 1천만엔정도 벌었고 올핸 5천만엔쯤 벌리라는 전망이다.그경우야 노인에의 일자리라기보다는 쇼맨십 아이디어의 산물이라고 함이 옳겠다.하지만 우리의 「노인아닌 60세」를 「노인60세」로 몰아가는 현실은 첫째 나라로 봐서도 「능력의 누수현상」이라 할수 없을 것인지.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실태분석」에 60세를 끼워넣은데 대해 입을 삐죽인 「젊은오빠」들이 있었을 법하다.내가 늙은이냐면서.
  • 도지사 할아버지/윤오숙 방송위 홍보부장(굄돌)

    지난해 12월초 텔레비전에서 칠순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방송프로그램을 봤다. 그분은 전남 도지사를 끝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퇴직하신 분으로 퇴직후 전남 장성군내의 향리로 돌아와,고희의 연령에도 불구하고 농부의 길을 새롭게 시작했다고 한다. 연로하신 분이 귀향하여 농촌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흔히는 조용하고 신선한 전원생활에 자족하며 간간이 국내·외 관광등으로 소일하고 지내는 유복한 노인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분의 생활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1년 내내 질긴 긴바지에 운동화를 착용하고 논과 밭을 돌보는 틈틈이,동경유학 시절의 안면을 더듬어 일본에서 농사관련 서적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을 구입해 과학농사법을 스스로 공부할 뿐아니라,그 내용을 번역하고 더빙해서 이웃에게도 시청각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한편 화학비료대신 거름을 삭혀 만든 비료로 무공해 채소재배와 땅의 보존에 앞장서거나 병충해에 강한 새 품종재배에 열의를 보이는 등 마을 젊은이들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제공하여 이들이 농촌을 이끌어 갈 기둥임을 스스로 깨달아 농사꾼의 긍지를 갖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 이론적 지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일평생 농사만을 지은 마을 노인들의 산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론과 경험의 조화를 꾀하는 지혜로움도 보여 주신다. 도시에 살고 있는 재롱둥이 손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시는 이분의 검소한 일상은 내게 여운이 오래남는 감동을 주었다.직업의 정년은 있으되 인생살이에는 정해진 정년이 따로 없으며,늘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두려워 하지않는 한 삶은 언제나 값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생의 목표를 잃어버려 부유하기 쉬운 우리 현대인들은 이분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이분이 만일 얼마전 막대한 개인재산과 함께 남다른 건강과 의욕을 우리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 놓고 우리를 부끄럽게한 어떤 분처럼,세상에서 더 크고 의미있다고 일컬어지는 어떤일에 남은 여생을 걸고 새출발을 하셨다 한들 이렇듯 생기있고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추만 아니라면 나이 먹어 늙어 간다는 것이 삶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가꾸어 가는 과정임을 생활 전체로 보여 주시는 이 분의 여생을 건강이 염려된다는 노부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속되시기를 바랄 뿐이다.
  • 노점상살해 30대 검거

    60대 폭행치사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구로경찰서는 2일 차호임씨(32·서울 양천구 신월4동 516)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폭행치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차씨는 지난달 31일 하오9시30분쯤 고향친구들과 함께 서울 신정동 친구 아버지의 칠순잔치에 갔다가 2차로 구로6동 313 구로시장안 K갈비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다 튀김노점상인 장귀순씨(56·여)로부터 튀김 1천원어치를 산뒤 『식었다』고 욕설을 하며 다투다 이를 나무라는 장씨의 남편 홍성식씨(63·구로구 구로 4동 765의 40)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아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시 현장주변에 5∼6명의 양복차림을 한 청년들이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시장안 식당등을 탐문수사한 끝에 차씨의 신원을 알아내 검거했다.
  • 단칸방서 이룬 「서울대의 꿈」/소년가장 최창렬군,기계공학과 합격

    ◎부친병사뒤 어머니 가출/동생 돌보며 외로운 싸움 한 소년가장이 6년여동안 눈물겨운 각고의 노력끝에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올 93학년도 대입시에서 서울공대 기계공학과에 합격한 최창렬군(18). 최군이 소년가장이 된 것은 87년 1월. 81년 아버지 최륜성씨가 36살의 젊은 나이로 폐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단란했던 최군의 가정은 급격히 기울어졌다.87년에는 어머니 김옥례씨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끊어졌다. 몇달 동안 사방으로 어머니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무런 연락도 받을수 없었다. 이때부터 중학교 1학년인 최군은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여동생 정희양과 단둘이서 힘겨운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다. 먼 친척이 빌려준 세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역시 생활이 어려운 큰 아버지와 칠순의 할머니 엄명자씨(75)의 도움을 받아가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국민학교 때부터 전교 1·2등을 다투어온 최군은 고난을 공부로 이겨내리라 거듭 다짐했다. 89년 1월부터 성북구청에서 소년·소녀가장으로 지정돼 지원받은 월 3만여원의 보조금과천주교 회화동성당 사도회에서 보내주는 후원금등 한달 20여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최군은 『공부가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학업에만 매달렸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90년 최군은 서울 대원외국어고 일어과에 수석입학한뒤 줄곧 전교 10등안에 들어 이번에 보란듯이 서울대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어려운 형편때문에 하루빨리 사회에 진출,자립하고자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최군은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동생과 나의 학비를 마련,열심히 공부해 사회의 일꾼이 되겠다』고 말했다.
  • 여객 전무/서울열차사무소 최종관씨(이런자리 저런일)

    ◎“남들이 쉬는 명절땐 더 바빠요”/하루 8시간 승무… 식사·잠 열차서 해결/술주정 승객도 신경써 안전사고 예방 최종관씨(50·철도청 서울열차사무소)는 시민들이 모두 쉬며 축제를 벌이는 연말연시와 설날·추석등 명절이 되면 더욱 바빠진다. 「여객전무」가 그의 직책이며 새마을호 열차가 자신의 일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부산간 새마을열차에서 하행 4시간10분 상행 4시간10분씩 모두 8시간20분간 승무를 해야한다. 1개 열차당 평균 승객은 5백12명인데 특별수송기간에는 이른바 장대형 열차를 운영하기때문에 최전무가 돌보아야하는 승객은 1천여명이 넘는다.벌써 10년째 이일을 하고 있다. 열차는 그의 직장이자 「가정」이기도 하다.식사도 대부분 열차에서 해결하며 침대차를 타고 잠을 자기도 하기때문이다. 여객전무의 임무는 출발역에서 타 승객들을 무사히 종착역까지 모시고 가는일과 철도건널목의 인명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고가 났을경우 선임승무원으로 사후처리를 해야하는것 등이다. 『객차안에서 술에 취한 승객들이 소리를지르며 주정을 하는가 하면 기물을 부수며 행패를 부리기도 합니다.철도공안원과 합세해서 하차시킨뒤 경찰에 인계,즉결심판을 받게 할 수도 있지만 친절봉사를 사명으로 하는 공무원이라 가혹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통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유도4단으로 전국체육대회와 학생대회 등을 휩쓸었던 최전무는 열차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인명구조에도 늘 앞장서왔다. 『나이가 50이 넘으니 야간열차를 장시간 타면 허리도 아프고 소화도 잘 안되지만 근무수칙에 있는대로 20분에 한번씩 꼭 열차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무전여행풍조는 사라졌으나 열차표를 구하기 힘들게되자 차표없이 기차에 타는 사람이 많아 이들에게 정상운임의 3배를 받아야하는 부과금을 받는것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키1백76㎝ 몸무게 81㎏의 우람한 체격의 최전무는 『남북통일이 된뒤 중국과 소련을 연결하는 대륙열차의 여객전무가 되어 국위를 선양하는것이 일생일대의 꿈』이라고 말했다. 최전무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칠순이 넘은 부모님의 생일잔치도 한번 못차려드리고 자녀들에게도 외식 한번 못시켰는데 남부럽지 않게 자라준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 따뜻한 동포애/최갑석 재향군인회 중앙이사(굄돌)

    우리나라 해외동포들의 수는 약5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미국·소련·일본에는 물론 캐나다·브라질·오스트레일리아·아르헨티나·독일·스페인·영국·이탈리아등 세계 어느나라에 가도 교포사회가 있고 한글학교와 교회가 있고 신문과 방송사도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민을 많이 보낸나라는 중국으로 화교가 2천2백만이고 유태인이 1천5백만 이탈리아가 5백50만 인도가 4백80만 팔레스타인이 2백50만 일본이 1백74만으로 우리나라의 해외동포가 이탈리아 다음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본국의 인구와 대비한 해외동포 비율로는 우리나라가 단연코 세계 제1위에 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는 구한말인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이민을 효시로 멕시코와 브라질까지 진출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게되가 고향을 등진 유민들이 만주와 시베리아등으로 떠나면서 대규모이민이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일본에 강제로 징용되어 일평생을 노예처럼 광산과 벌목현장,남방개발에 투입되었던 20∼30대의건장한 청년들이다. 그들은 식민지백성의 서러움을 맨몸으로 받으며 역악한 노동현장에서 고국의 산천을 그리워하다 종전을 맞았다. 사할린에 있던 동포들은 그나마 국적을 잃고 47년간이나 조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죽어서 뼈만이라도 고향산천에 묻히고 싶어 한다. 칠순·팔순을 넘긴 할아버지·할머니들은 『호랑이도 죽을때는 자기가 태어난곳을 돌아본다』는 속담대로 고향쪽을 바라보며 망향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중 국내에 연고자가 없는 76명이 대한적십자사와 기독교단체,외무부,보사부등 관계당국의 노력으로 지난10월 영구귀국하게됐다. 우리민족의 서글픈 역사의 상처를 보는듯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연고 사할린동포를 조국의 품에 안기게 하는 따뜻한 동포애는 앞으로도 지속돼야 하겠다.
  • 정책토론… 개편대회… “표몰이 연결”/3당후보의 대권행보 이모저모

    ◎“안정속 개혁 위해선 다수당 집권해야”/민자/부동표 겨냥… 토론회서 청년역할 강조/민주/상이군경회 등 직능단체 잇따라 방문/국민 ○“달동네 없애겠다” 공약 ▷민자당◁ 김영삼총재는 이날 상오 서울 종로지구당개편대회(위원장 이명박전국구의원)에 참석,안정속의 개혁을 통한 경제재도약을 위해 원내 다수당인 민자당집권의 당위성을 역설. 김총재는 이 지역에 안정지향적인 이북5도민과 서민층이 다수 거주하고있는 점을 의식한듯 『40여년간 민주화투쟁에 바친 그 정열을 부정부패 척결등 한국병치유와 우리 경제를 바로 잡는데 바치겠다』는 등 정치안정을 통한 경제안정을 유난히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 김총재는 또 『우리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전제,『국회에서 안정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자당만이 안정속에 변화와 개혁을 이룩해 낼 수 있다』고 강조. 김총재는 특히 미국의 대선에서 현직대통령인 부시공화당후보의 가장 큰 패인으로 『다수당인 미 민주당과 의회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빚은탓』이라고 지적하면서 『클린턴당선자의 집권이후 예상되는 무역마찰과 주한미군 주둔비 추가부담 요구에 맞서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회와 하나가 되어 힘있게 대응해야 한다』며 예의 다수당집권논을 거듭 피력. 김총재는 이어 과거 탈당한 이종찬의원의 지역구임을 의식한 듯 『종로구는 정치1번지라고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달동네가 많다』면서 『능력있는 이명박동지와 힘을 합쳐 우리당은 앞으로 달동네를 일소하겠다』고 공약. 이날 행사에는 이북출신의 정일권상임고문과 정원식선대위원장을 비롯,현역의원 60여명이 대거 참석했는데 행사장인 수운회관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당원 5백여명이 행사장밖에서 이동 멀티비전인 점보트론으로 김총재의 연설을 지켜보는등 열기가 고조. 이날 행사에서 신임 지구당위원장으로 뽑힌 이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정직하고 깨끗한 지도자』라고 김총재를 평가했으며 정선대위원장도 『포용력과 아량을 갖춘 신실한 지도자』라고 지원사격. 한편 김총재는 이날 행사를 마친뒤 교보문고에 들러 정치·경제분야서적 매장등을 둘러본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새뮤얼슨 교수의 「새뮤얼슨이 바라본 한국경제」라는 책을 구입하기도. ○“민자당 개혁의지 없다” ▷민주당◁ 김대중대표는 11일 마포가든호텔에서 당간부들과 조찬간담회를 시작으로 하루일과를 열고 이어 모방송사와의 후보인터뷰,당무회의를 주재. 하오9시에는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주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밤늦도록 참석자들과 열띤 토론. 김대표는 당간부들에게 『민자당은 예산심의를 하면서 원안대로 통과만 고집,개혁의지가 전혀 없는 것같다』면서 『중소기업이나 농어민이 사는 길은 정권교체의 길밖에 없다』고 주장. 김대표는 「청년과 정당대표들의 정책토론회」에서『미국에서 20∼30대의 청년들이 일어서서 정권을 바꿨듯이 우리의 청년들도 역사를 새로이 창조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 그는 이어『일부에서 양금배제론이 제기되는데 나는 40년동안 독재와 특권경제에 대해 싸웠고 그런 정치에 희생이 되어왔다』면서『따라서 정치적으로 책임질 아무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양금차별론을 들어 태봉을 피해 나가기도. ○“사재 1백억 내놓겠다” ▷국민당◁ 정주영대표는 11일 당원행사 일정이 비어있는 틈을 이용,이날 상오 상이군경회,전몰군경유족회,전몰군경미망인회등 보훈처 산하 3개단체를 잇따라 방문한데 이어 하오에는 체육인동우회 소속 원로들의 합동칠순잔치와 「전국 청년단체연합」주최의 정책토론회에 참석,직능단체를 상대로 득표기반 다지기에 분주. 정대표는 이들 보훈단체 간부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현행 27만4천원인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이 50만원선은 돼야 최저생활이 된다』며 『이를 위해 정기국회기간안에 원호예산을 증액하도록 하고 안되면 사재 1백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속. 이어 정대표는 이날 저녁 종로5가동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청년과 정당대표들의 정책토론회」에 참석,통일문제와 관련된 답변에서 『군을 정예화,특히 고학력자를 빠짐없이 복무케하고 무기를 현대화하면 복무기간을 20개월로 줄일수 있다』고 설명. 특히 정대표는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을위해서는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대통령이 된다면 내각제개헌을 임기중이라도 수용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는 한편 선거공영제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언급.
  • 상무에서 일약 발탁/대림산업 이정국씨(새 사장)

    ◎“조직 활성화… 건설업계 정상복귀” 『기업의 발전은 조직능력의 총화를 전제로 하는 만큼 조직 활성화에 모든 능력을 쏟아 건설업계 최정상의 위치를 다시 찾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회사내 서열 14위의 상무에서 일약 대표이사에 발탁돼 주위를 놀라게 만든 대림산업 건설사업부의 신임 이정국사장(49)은 『타성에 젖어있는 회사분위기를 쇄신,재도약을 위한 충격요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이달말쯤 2천년대에 대비한 장기계획안이 완성됩니다.우선은 건설업계에서 도급 5순위까지 밀려난 회사내의 잘못된 분위기부터 바로 잡아 나가겠습니다』 이사장은 이를 위해 전임직원에게 지난 60년대와 같이 현재의 건설업계에서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이원현사장이 건강때문에 갑자기 자리를 내놓자 그룹에서는 당초 계열사나 외부에서 사장을 영입해오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건설현장에서 9년간이나 근무했던 경험과 10여년간의 관리능력 그리고 인생을 모나지 않게 살겠다는 평소의 철학등을 인정해 이사장을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이사장을 임명하자 대림산업건설노동조합은 「노조의 입장」이란 유인물을 통해 「신임사장은 참신한 이미지를 끝까지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87년 4월 강원도 화천 평화댐 건설 현장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가장 보람이 있었고 추억에도 남습니다』 이사장은 당시 평화댐의 토목공사공기가 1년으로는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이를 그대로 밀어붙여 1년만에 완공시킨 저력도 지녔다. 이사장은 앞으로 가능한한 간부들보다 현장에 있는 평사원들을 중심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어 중지를 모아나겠다고 말했다. 지난 66년 서울대공대를 졸업하고 73년 대림산업에 입사해 19년만에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이사장은 경기고 57회로 이준용그룹부회장의 고교 5년후배이기도 하다. 80년 토목기술사 자격을 취득,81년에는 토목부장으로 승진한뒤 고속도로 댐공사현장과 기획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아왔다. 86년 대림산업 이사로,91년 상무이사로 승진했다. 칠순노모를 모시고 있으며 부인 민병위(45)여사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 “도봉의 긍지 높인 조윤정만세”/주민들,올림픽2관왕 열렬히 환영

    ◎농악대와 거리행진… 격려인파/“산동네사람에 자신감 심어줬다” 18일 하오4시 서울 도봉구 미아7동 동북시장앞. 신명나는 꽹과리와 징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상인들이 일손을 멈추고 한데 모여 덩실덩실 춤을 춘다. 코흘리개 어린 꼬마들에서 부터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들까지 손을 맞잡고 「윤정이 만세」「산동네 만세」를 외친다. 도봉구 미아7동 주민들이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양궁에서 두개의 금메달 따내고 금의환향한 조윤정선수를 맞아 환영회를 마련한 것. 조선수의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잘했다.잘했다』를 연발하며 열심히 등을 두드려 주는 할아버지.좁은 틈을 헤집고 노트를 들이밀며 사인공세를 벌이는 어린학생들. 조선수는 확실히 미아7동의 「개선영웅」이었다. 동장 윤장희씨(57)는 『조선수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면서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을 다 해낸 윤정이는 바로 우리 어려운 사람들이 서고자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고 감격해 했다.13년무명의 설움을 딛고 마침내 세계정상에 우뚝 선 모습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박순례씨(53)는 『윤정이는 이제 나만의 딸이 아닌 우리동네의 딸』이라고 되뇌이며 눈물을 흘렸다. 조선수는 『대표팀의 맏언니이면서도 항상 후배들에 밀려 남모르게 흐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을 것이며 오늘 우리 마을에 울려 퍼진 함성을 영원히 간직하고 더욱 꿋꿋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분명 조선수에게 있어 생애 최고의 해이기도 하지만 미아7동 주민들에게도 결코 잊지 못할 한해가 됐다.형편이 어려운 이곳 주민들에게 『조선수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과 희망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 외로운 노인 80여명에 점심도시락 대접 7년(이사람)

    ◎독립문공원서 남다른 경노 김종은씨/“셋방살아도 나누는 기쁨 더 크죠”/양복 원단 행상… 수입 60% 떼어 선행/고아원서 불우한 성장… 노모 굶주렸던 사연듣고 결심/보증 잘못으로 전재산 날리고도 돕기 계속해와 넉넉하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한 소상인이 7년째 하루도 거르지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양복원단을 마이크로버스에 싣고 다니며 기성복제조업체에 납품해 버는 수입으로 그날 그날 살아가는 김종은씨(44·서울 중구 순화동1의97). 그는 고달픈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낮12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 독립문공원을 찾아 이곳에 나와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80여명에게 김밥이며 빵등을 담은 도시락을 대접한다. 행여 도시락사정이 여의치않아 음식을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어김없이 나타나 7백원씩의 음식값을 노인들의 손에 쥐어주며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그날 형편에따라 수입이 다르지만 김씨의 한달평균 벌이는 2백50만원 정도. 이가운데 하루 5만∼6만원씩의 도시락값 1백50만∼1백80만원을 빼면 80만∼90만원정도가 8순노모와 부인(43),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등 다섯식구의 생활비가 된다. 그나마 두칸짜리 셋방의 방세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김씨의 생활비는 5인가족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계지출비 1백만원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김씨가 이처럼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남달리 노인공양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린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때문. 그는 충남부여에서 태어나 네살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그리고는 국민학교 6학년1학기만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색근처의 농가굴뚝을 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개천옆의 공중변소 한켠에 판자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풍선장사·신문팔이등을 하며 겨우겨우 끼니를 이었다.그러다 61년 남대문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이 되던 67년부터는 재단사가 됐다. 마침내 79년에는 18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미싱 10대를 받아 독립했다.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름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물로 남대문시장 일대에 짜하게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경사가 겹쳐 어머니도 찾게 됐다. 성공한 아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칠순의 백발노모를 반갑게 맞은 김씨는 어머니 또한 수도없이 배를 굶주리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기본생활비」만 떼고는 모든 수입을 털어 양로원과 고아원등을 찾아 김씨 모자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는게 습관화됐다. 지난 85년말부터는 날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소문공원을 찾아 외로운 노인들의 찬손을 어루만지며 김밥이나 떡 빵등을 대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서소문공원의 지하주차장 건설공사로 이 노인들이 독립문공원으로 옮겨가자 함께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시련은 또 닥쳤다.지난해말 공장직원이 부탁한 한문투성이의 은행융자보증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줬다가 5천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때 1천만원짜리 전세방마저 비워야 하는 빈털터이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노인을 돌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요즈음엔 고아원시절 이웃 불량배에게 돌로 얻어맞은 왼쪽다리가 부쩍 쑤셔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김씨는 『부모같은 노인들에게 좀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수입이 크게 늘지않아 늘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다. 김씨에게 한달째 점심신세를 지고 있다는 진모씨(66·서대문구 천연동)는 『친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요즘 세상에 콘크리트숲사이에 버려진 늙은이들을 이처럼 보살펴주는 김씨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맙다』고 대견해 했다.
  • 6순 두 노인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조약돌)

    ○…서울시교육청이 20일 발표하는 검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칠순을 앞둔 이근복씨(69)와 안원희씨(68)가 고입 및 고졸부문의 최고령 합격자로 밝혀졌다. 경기도 강화출신인 이씨는 가난탓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막노동,남의집살이 등 온갖 궂은 일을 해왔으며 일제때는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노동자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배움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지난 89년부터 책과 연필을 잡아 3년만에 소원을 풀게 됐다. 평북 용천출신의 안씨는 한때 소설가를 지망한 꿈많은 소녀였지만 국민학교밖에 마치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다 자녀들을 출가시킨뒤 지난 89년부터 뒤늦게 학원에 나가기 시작,「못배운 한」을 마침내 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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