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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필과 칠판] 교실 붕괴?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어요

    엊그제,고등학교 졸업반 때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까까머리 말썽꾸러기들이 50대 중반의 의연한 사내들이되어 칠순 가까운 은사님을 모신 자리는 정말 흐뭇하고 따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은사님 앞에 서니 자꾸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오늘은 태운이와 희도를 많이 꾸짖었다.과제물 처리에는 무관심한 녀석들이다.전후 사정이라도 듣고 따로 개별지도를 하고 싶어도 녀석들은 줄행랑을 치기 일쑤다.3년 동안의 글쓰기 학습 결과물을 모아 ‘내 책 만들기’를 하고 그것으로 졸업 자축 기념물을 삼자는 마지막 수행 과제마저 녀석들은 그냥 뭉갤 모양이다. 그 아이들이 몹쓸 짓을 하거나 불량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주관과 주장이 뚜렷해서 토론 시간엔 단연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다만 워낙 구속을 싫어해서 좀 제멋대로 구는 게 흠이다.잘하든 못하든 일단 정성을 기울여 도전해 보라고 기한을 연장해 주는 것으로 오늘 얘기를 접었다.마지막까지 기다려 보자고 내심 다짐하며. 교실 붕괴나 교육 유해환경,교육정책의 난맥상 등이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무엇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게 우리의 교육풍토요 현실이다.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의문 앞에서 나는 우선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삶과 현실로 돌아가서 문제를 보면 그 핵심이쉽게 드러나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교실에는 가장 설득력 강한 주체인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는 것이다.이보다 더 강력한 희망의 징조가 있을까? 내가 이십여년간 아이들과 고락을 함께 해온 서울 변두리의 이 작은 학교.이 곳엔 적어도 살벌한 학교 폭력이나 ‘왕따’ 따위란 없다.따뜻하고 정겨운 아이들과 천진한 개구쟁이들이 섞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추적거리고 있지만 교실 안에서는 마치 미명의 어둠 속을 소리없이 밟아오는 새벽빛처럼,아이들의 눈망울이 쉴새없이 초롱대고 있다.교실은아직 어른들 세상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밝고 희망적이다. 이명주 고명중학교 교사
  • “칠순 아내 만나면 무슨말부터 해야”

    “손한번 잡아주지 못하고 눈빛으로만 인사한 것이 영영이별일 줄이야…” 제4차 이산가족방문단에 포함된 흥분에 간밤을 지샌 안용관옹(80·경기도 안산시 사동)은 아내와의 이별 당시를 떠올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 당현리에서 태어나 포목 장돌림을하던 안씨는 한국전 막바지인 1953년 5월 옹진반도의 작은섬 수니도로 아내 윤분이씨(75),장인과 피난길에 나섰다.당시 2살이던 아들 시복씨(50)와 백일도 채 되지 않아 이름조차 없던 딸(48)은 너무 어려 부모에게 맡겼다. 그러나 섬을 장악하고 있던 미군이 휴전을 앞두고 갑자기퇴각했고 인민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섬을 지키던 청년방위대는 노약자와 여자들은 남긴 채 젊은 남자들만 쪽배에 태워 인근 오화도를 거쳐 백령도로 긴급이동시켰다. 안씨는 “배를 구해 곧바로 아내를 보내겠다”는 장인의말한마디를 믿고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않았다.안씨는 “곧 만날 줄 알고 온다간단말도 없이 쪽배에 오른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후 전남 해남에 정착한 안씨는 품팔이와 어물장사 등을전전하며 현재의 부인 박종순씨(77)와 결혼,5남매까지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 안씨는 “아내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다”면서“아내와 자식들에게 뒤늦게나마 속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안산 김학준기자 kimhj@
  • 제19전투비행단 부사관들 박봉 쪼개 소년소녀가장돕기 6년

    충북 충주시 공군 제19 전투비행단 부사관들이 6년째 매달한 차례씩 소년소녀 가장들을 방문,격려하면서 삶의 용기를불어넣어 주고 있다. 비행단 부사관단들은 96년 소년소녀 가장들과 인연을 맺은이후 2가구씩을 선정,매달 박봉에서 쪼개 모은 10만원씩을전달해 왔으며 설과 추석,연말에는 선물까지 별도로 구입해전달하고 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도 주임원사실 원정식(45) 원사 등 부사관단 대표들이 부대인근의 소년소녀 가장 가구인 동량면 함모양(16·고1)과 충주시 교현동 박모군(14·중2) 집을 방문,따뜻한 격려와 함께 생활보조금과 푸짐한 생활용품 세트 등을 전달했다. 이 가운데 함양은 칠순의 할머니와 중학교 2학년 남동생과함께 생활하고 있고 박군도 할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고 있어 이들이 지원해 주는 도움은 두 가정에 큰힘이 되고 있다. 충주 김동진 KDJ@
  • 北남편 만나는 안정순 할머니

    반세기 만에 들려온 남편의 생존 소식을 담은 편지 1통.그리고 50여년이라는 깊고 넓은 세월의 강을 수절(守節)로 견뎌온 칠순의 아내에게 어느날 전해진 남편과의 상봉 소식. 이제 새하얀 머리에 곱던 얼굴도 많이 상해버린 칠순의 할머니는 지긋이 눈을 감은 채 한맺힌 눈물만 쏟아냈다.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여름 시내에 나간다며 그길로 사라져버린 남편 김강현씨(78)와 상봉하게 된 안정순씨(75·서울 성동구 금호2가)는 26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자식들과 제사를 지내며 잊고 지냈는데…이제서야.”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8살 나이에 시집을 가 남편만 의지하며 살았던 안씨는 둘째 아들 재혁씨(50)를 낳은지 석달만에 남편과 헤어졌다.군대를 제대한 남편를 따라 고향인 전북 거창을 등지고 서울로 상경했던 안씨에게 전쟁은 단란했던 가정을 빼앗고 인고의 세월만 남겼다.어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평생 부정(父情)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다. 고혈압으로 몸이 불편한 안씨는 “살아 생전에 한번 만나봤으면 했지만 평생 꿈에서도 보이지 않아 죽은 줄로만 알았다”면서 “오직 자식들이 버팀목이 돼 살아온 인고의 세월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3월 이산가족 편지 교환 때 남편의 소식을 처음 접했던 안씨는 “남편을 만나면 평생 부르지 못했던 ‘여보’라는 말을 맘껏 불러보고 싶다”고 말하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디자이너 이철우씨 자서전 출간

    패션디자이너 이철우(70)씨가 칠순을 앞두고 자서전 ‘비단이 보이는 포구’를 출간했다. 이씨는 46년 전 의상실 ‘마담 포라’의 문을 열어 전후(戰後) 국내 여성복 패션을 주도했으며 지금까지 디자이너로활동하고 있다. 자서전은 고향인 전남 고흥군 녹동에서 약사였던 어머니와 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풍요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그녀의 호(號)이자 브랜드명이 된 포라(浦羅)는 소록도가 내다보이는 녹동의 비단결같은 바다를 그리며 지은 이름이다. 광주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던 중 패션계의 대모였던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 원장으로부터 ‘지금은 초승달이지만 머지않아 보름달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큰힘을 얻었던 사연,자선사업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와의 인연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송하기자
  • 이어령 梨大석좌교수 42년 강단 고별강연

    “항상 정치적 입장을 밝히라고 종용받았고 그 때마다 외로웠다.가파르게 이어온 한국 현대사는 중간지점 즉 그레이 존(grey zone)을 불허했다.이 지대를 열어보고자 한게 내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일 오후3시 서울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대회의장에서 이어령(李御寧·67)이화여대 석좌교수의 고별 강연이 열렸다.강단 생활 42년을 마감하는 소감으로 ‘회색 지대’를 강조했다.주제는 ‘헴로크를 마시고 무엇을 말해야 하나-정보,지식,지혜’로 였다.‘아이디어 맨’다운 기발한 발상이다. 헴로크(hemlock)는 독미나리이다.그 즙을 짜내 담은 독배를 마신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그런데 이 독은 마신 뒤 바로 죽는게 아니고 계속 이야기를 하면 더 천천히 죽는다.한국의 석학이 ‘헴로크’를 매개로 던진 마지막 강연은 이분법적의 흑백논리가 풍미한 우리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OX로 답할 수 없는 ‘그레이 존’에서 소월의 시가 탄생했다”고 말을 열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의 국민운동은 일어나도 ‘시 바로 세우기 운동’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국 풍토를 비판했다. 이어 ‘가위 바위 보’의 비유를 통해 항상 닫힌 바위와늘 열린 보의 극단적 사고를 피하는 ‘가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교수는 강의 마침표를 찍었다.“헴로크를 마신 사람처럼 온 몸으로 점점 냉기가 퍼지는 겨울을 맞아야 합니다.외로운 섬처럼 어딘가에 있을 내 작은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예정된 50분의 강의시간을 넘긴 뒤 ‘고별 강연’에 얽힌뒷얘기를 들려주었다.“친한 국악인들이 내년에 칠순 잔치를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이제 일선에서 떠날 때가 됐구나하는 생각에 원래 조촐하게 마지막 수업을하려고 했는데 후배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이렇게 커져버렸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단체 생활을 마치는 것이지 개인적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강연회·독서 등 내 시간을 많이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개인 이어령’은 더 바빠질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이날 강연회는 장상 이화여대 총장,이강숙 예술종합학교교장 등 학계와 문화계 인사들,제자등 700명이 회의장을꽉 채우고 복도까지 이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뤄 에어콘 바람마저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후학들은 퇴임 기념저서 ‘상상력의 거미줄 - 이어령 문학의 길찾기’를 헌정했다. 한편 장상 총장은 인사말에서 “상상력의 날개에 아이디어를 실으며 따뜻한 정을 불어 넣어온 이어령 교수님의 오늘이 자리는 은퇴·고별이 아니라 새천년을 맞아 새 것을 찾아가는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포커스/ 칠순 피아니스트 바두라-스코다 내한 연주회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중 한명으로 꼽히는 폴 바두라스코다(74)가 1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연주회를 갖는다.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와 ‘코리오란 서곡’,프랑크의 교향곡 라단조를 원숙한 테크닉으로 서정감 넘치게 연주한다.(02)580-1300.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2차대전 후의 음악가로서는1세대인 셈이다. 취입한 음반만 LP 200여장과 CD 수십장.지난 73년 독주회이후 여러차례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협연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는 스위스의 보리스 페레누. 김주혁기자 jhkm@
  • 55년만에 부르는 “아! 스승님”

    “선생님,반세기가 지나도록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칠순을 앞둔 충북 제천시 백운초등학교 28회 졸업생 10여명은 14일 55년 동안 소식을 알지 못했던 담임선생님 민홍기(閔弘基·76·서울 종로구 삼청동)옹과 만난다는 생각에 악동(惡童) 시절로 돌아가 얘기꽃을 피웠다. 이들은 98년 초부터 동기생 정연성(鄭然聖·68·서울 동작구 흑석동)씨의 제의로 백방으로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다음 부임지인 인근 동명보통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의 회고와 선생님이 살았던 거주지를 샅샅이 쫓은 끝에 13일 옛스승의 근황을 확인했다. 당시 4년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광복을 눈앞에 둔 45년 봄 백운보통학교에 부임한 민옹은 46년까지 2년간 근무하다가 동명보통학교로 옮겨가 교감,교장 등을 거쳐 서울에서 노년을 지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제자들은 민옹이 해방 무렵 제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위해 애썼던 모습들을 빼놓지 않고 기억했다.민옹은 붓글씨 쓰기나 음악 시간이면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주눅들어있던 학생들에게 “창의력이 엿보인다”며 높은 점수를주었다. 점심으로 보리밥을 싸온 민옹이 찐 고구마나 감자를 싸온 가난한 학생들과 돌아가며 “고구마,감자를 먹고 싶으니도시락을 바꾸자”며 웃음짓던 속뜻도 훨씬 후에야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학생들이 교사들을 외면하는 요즘 세태에 대해 “당시에는 사제(師弟)간의 나이 차가 열살 안팎이었지만 하늘처럼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15일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 은사(恩師)에게 만수무강을 비는 황금 열쇠를 증정하고 뒤늦게나마 용서를 빌며 회포를 풀 예정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윤주영 전 문공장관 베트남서 사진전시회

    [하노이 연합] 칠순의 윤주영(尹胄榮·73) 전 문공장관이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틈틈이 모아온 베트남 사진전시회를 갖는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5공화국 시절 문공장관까지 지낸 윤 전장관은 10~17일까지 하노이의 항바이전시장에서 ‘윤주영이 본 베트남의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베트남에서의 첫 사진전시회를 개최한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전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윤 전장관은 이번 전시회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다음해인 93년부터 4차례 베트남을 방문해 찍은 사진 중 여자들과 관련된 사진만 골라 94점을 베트남 애호가들에게 소개한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베트남 여인들의 고뇌와 생활상을 조명함으로써 베트남인들에게는 격려를,한국인들에게는 교훈을 주기 위해 전시회를 갖는다”는 윤 전장관은 이번 전시회에 고엽제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과 베트남의 신앙,여인들의 근면 협동,여인들의 문화축제,발랄한 아오자이의 모습 등을 주로 내놓았다.
  • 40년 최장기 근무 김만석씨 칠순 맞아

    지난 40년간 청와대에서 목수로 일해온 김만석(金萬石·70)씨가 29일 칠순을 맞았다.김씨는 이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잔치를 가졌다. 윤보선(尹潽善) 대통령 재임 당시인 지난 61년 온실담당임시직원으로 첫 근무를 시작한 김씨는 그 뒤 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7명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걸쳐 총무비서실 소속기능직 직원으로 근무해 왔다.역대 청와대 직원 가운데 최장기 근무자이기도 한 김씨는 92년 61세로 정년퇴직했으나 계약직원(일용직)으로 다시 채용돼 지금까지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가족으로는 부인 이민순씨(62)와 2남 1녀가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씨줄날줄] 간접 화법

    지난해 8월 미국 방문중 CBS-TV 대담프로에 출연한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독립선언서와 에이브러햄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줄줄 암송해 미국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칠순 노정객이 TV 출연을 위해 원문을암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의 기억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장쩌민 주석의 이날 TV 출연은 중국의 WTO 가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미 공화당 소속 상·하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였다. 장 주석이 이번에는 쿠바 방문중 특유의 간접 화법으로미국을 공격했다.‘강 건너 비바람 미친 듯 거세나,푸른솔의 강직함은 산처럼 굳건하다(隔岸風聲狂帶雨 靑松傲骨定如山).’ 이백(李白)의 시를 개사한 칠언율시다.홍콩 진후이(浸會)대학 황즈롄(黃枝連)교수는 “군용기 충돌 사건과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을 천명한가운데 장 주석의 시는 중국과 쿠바가 함께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시구중의 ‘강 건너(隔岸)’는 대만해협,중국과 미국간의 태평양해협,쿠바와 미국간의 플로리다해협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풀이다.중국과 쿠바가 공동으로 부시 행정부의 패권주의,즉 ‘미친 듯 거센 비바람(風聲狂帶雨)’에 맞서 ‘푸른 솔(靑松)처럼 의연하고 산처럼 굳건하게 임하자(傲骨定如山)’는 뜻이다. 중국 정치 지도자들은 간접 화법에 능하다.1994년 중국을방문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요담하는 자리에서 첸치천(錢其琛) 당시 외교부장(현 부총리)은 난데없이 자기방에 걸린 시 한편을 소개했다.‘산 막히고 물 막혀 길이없는가 했더니,버들잎 푸르고 복숭아 꽃 만발한 마을이 나오네(山窮水盡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중국 남송시대 시인 육방옹(陸方翁)의 명작으로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는 뜻이다.당시 북한 핵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무렵 중국측의 역할을 요구한 우리측에 보내는 간접 메시지였던 것이다.그날 YS가 뭐라고 화답했는지는 알려지지않았으나 첸치천의 말대로 북한 핵 문제는 막다른 길목에서 극적인 해결책을 찾아내 북·미 제네바 핵기본합의로이어졌다.정찰기 문제를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미·중 관계도 육방옹의 시처럼 잘 풀리기를 기대한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칠순할머니 장학기금 1억 쾌척

    70대 할머니가 딸이 교사로 재직하던 고교에 장학기금으로1억원을 쾌척했다. 이계홍(76·여·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씨는 13일 제주고산상고에 장학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원을 전달했다.이씨가 이날 전달한 장학기금에는 지난 72년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큰딸에 대한 모정이 듬뿍 담겨있다. 당시 고산상고 교사로 재직하던 딸이 지병으로 숨진 뒤 이씨는 남은 두 남매를 어렵게 키우면서도 큰딸을 그리는 마음으로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돈을 모아왔다.이씨가 목표로 잡았던 1억원이 다 마련된 것은 지난해 초.지난해부터올해 입학식 때까지 고산상고생 6명에게 장학금 450여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던 이씨는 이날 학교측에 적립한 돈을 모두 맡겼다. 이씨는 “딸이 못다한 제자 사랑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게 먼저 간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조동걸교수 고희기념 ‘自選논문집’출간

    원로사학자 조동걸(趙東杰·70)국민대 명예교수가 고희를맞아 책 두 권을 펴냈다. 그동안 우리 학계의 관행대로라면 대개 후학이나 제자들이 고희를 맞는 스승에게 ‘고희헌정 논문집’형태로 바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조 교수가 펴낸 책은 반대다.‘자선(自選)논문집’ 형태다.“생일은 회갑이나 칠순이나 어느 것이라도 개인적인 것이고,가정의 문제이므로 ‘사회화’시킬 이유가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고희인 지난 23일을 사흘 앞두고 미국에 있는아들을 보러간다며 훌쩍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모르긴해도 아마 주위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에 조 교수가 펴낸 두 권 가운데 한 권은 97년 정년퇴임후 2∼3년동안 발표한 논문을 모은 논문집(‘한국 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이고,또 한 권은 이 기간동안에쓴 잡문을 모은 역사평론집(‘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격이다.두 권의 책에서 조 교수는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역사관·세계관 등을 가감없이,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평론집은 그렇다고쳐도논문집인 ‘한국근대사의…’마저도 그렇다.우선 두 권 모두 머리말이 있고,그 뒤에 또 ‘서설’이 따로 있다.어쩌면 저자는 본문보다 이부분에 더 힘을 줬는지도 모른다. 평소 크고 작은 학회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온 것으로이름이 난 조 교수는 또 역사학자로서 세상사를 외면치 않고 살아왔다.그는 99년 여름 ‘박정희기념관’건립문제가논란이 되자 역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한 역사학 잡지에원고지 100매가 넘는 장문의 글을 써서 우리시대의 몰역사성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번 ‘서설’에서 그의 비판은 주로 정치분야로 모아진다. 문민정부를 ‘93정권’,국민의 정부를 ‘98정권’으로 표현하면서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함을 질타하고 있다.한 예로민주당의 ‘국회의원 꿔주기’와 지난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안기부 자금유용 의혹 등을 열거하며 정치인들을‘협잡꾼’으로, 정치개혁을 정치판의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용어로 혹평했다.지식인에 대한 비판도 예외가 아니다.그는 “도덕적 장치가 없는 지식은 금력이나 권력에못지않은 폭력을 낳을것이며,나아가 인류사회를 어지럽히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이사람] 여성원로과학자 신영애박사

    국내 생명과학계가 미국과 교류를 시도할 때나 거꾸로 미국 과학계가 한국 사정을 알고자 할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통하는 길이 있다.재미 원로 여성과학자 신영애박사(辛英愛·69)를 만나는 것이다. 미국립보건원(N I H)에서 35년간 연구원과 과학행정가로활동해 온 신박사는 워싱턴D.C.주변 과학계는 물론 정계,관계에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있는 마당발. 그가 미국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 위해 한국에왔다.공직을 은퇴하고 고국의 젊은 과학도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누고자 영구 귀국한 것이다. 한발 먼저 들어와 서울 청담동에 빌라를 마련해 놓고 그를기다린 남편은 “노인네가 은퇴까지 하고 한국에 와선 뭘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느냐”며 제발 편하게 좀 살자고 충고를 한다.하지만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국제협력실상임자문관이라는 공식 직책에 연세대,서울대,이대에서강의까지 맡은 그는 “바쁘게 사는 건 내 천성”이라며 슬쩍 빠져나간다. 6·25전쟁 통에 도미해 대학을 졸업한후 2년 간격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 2년만에 종신연구원직을따내며 과학행정가로 자리잡기까지는 그의 이런 천성이 큰몫을 했다. 대학원때부터 ‘뻔뻔한’ 성격에 조직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동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교수나 디렉터를 대리하는 일이 많았고 외부 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되면서 뛰어난 대인관계 수완을 발휘해 마침내 행정쪽으로 방향전환을 권유받기에 이른다.그가 마지막 10년동안 맡았던 연구평가담당관은 국내외에서 들어온 각종 연구지원신청과제에 대해 적절한 관련전문가를 찾아내고 평가단을 구성해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자리다.자연히신진 연구자들을 키워주기도 하고 실력있는 전문가를 사귈수도 있어 광범한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또한 연방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의회 설득작업을 통해서는 관계와 정계 인사들과도 빈번한 접촉을 갖게 돼 인맥 구성은 더욱다양해진다.신박사는 이곳서 쌓은 연구관리 노하우를 모국에 아낌없이 전수하는 한편 타고난 근면함,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미간 교량역을 도맡아 왔다.워싱턴D.C에서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미과학기술포럼은 그의 역할이 숨겨진 대표적 사례. 지난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시작한 ‘과학커뮤니케이션’강의는 그가 귀국후 가장 즐겁게 몰두하고있는 분야다.“NIH는 연간 80%의 연구비가 외부에 개방돼있다.한국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비를 따낼수 있다.나의 목표는 유망한 고국의 과학도들에게 NIH 평가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의사소통기술을 가르쳐맘껏 연구를 펼칠수 있게 하는 것이다”과학자들끼리,혹은 과학자와 대중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수 있도록 글쓰기, 발표력 등을 훈련하는 이 분야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사실 과학자들은 어렵고 폐쇄적인 전문용어로 대중들을 소외시켜 왔다.그러나 이는 오직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과학자의 사명에 어긋나며 실제로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더 이상 과학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을 상황에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이라는게 그의 소신이다.영어로 진행되는 이 강의는 반응이 좋아 출강 요청이쇄도하고 있다. 그는 미국대학 경제학교수로서 역시 은퇴한 남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자녀들은 프린스턴 스탠포드 다트머스등 명문대와 예일등 대학원을 나와 법률 금융분야에서활동한다. 일과 결혼,가족을 모두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이었을까.“남들이 안할 때 일찍 시작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는 그래도 한가지만 들어달라고 하자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능성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가 귀국함으로 해서 미국의 유용한 한 거점을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NIH는 은퇴한 나에게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 직책을 주며방까지 마련해 주었다”며 “언제든 내역할이 필요한 때면 달려가겠다”고 말한다.나아가 미국의 친구들을 국내에끌어들여 합동강의를 꾸밀 계획도 갖고 있다고 들려 주었다.과학계의 맏누이 같은 그에게 칠순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가 느껴져왔다. 신연숙편집위원 yshin@. *신영애 박사는. ■32년 서울출생(본명 임영애,‘신’은 남편의 성)■53년 도미■56년 미국 머서대(조지아 메이컨 소재)졸업(화학전공)/58년 오하이오주립대(콜럼버스 소재)석사(무기화학전공)/60년 〃박사■61∼63년 일리노이대·65∼67 미국립보건원(NIH)산하 노인학연구센터 박사후과정■67∼89년 NIH 노인학연구센터 분자세포생물학연구실 무기생화학부 연구원■89∼91년 NIH 노화연구소 분자세포생물학 프로그램관리담당관/일반의학연구소 질환세포및 분자기초 프로그램 담당관/당뇨 소화 및 신장질환연구소 신진대사질환연구프로그램 담당관■91∼99년 〃 구강및 두개안면연구소 연구평가담당관■99년12월31일자로 NIH은퇴■2000년 5월 영구귀국■∼현재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정책평가원 국제협력국 상임자문관/NIH 포가티국제센터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한국과학기술원·이화여대등 출강. * NIH와 한국인 과학자들. 미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소재)은 미국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인류건강증진을 위한 의학연구의 세계적 메카라 할 만하다.연구영역만도 미국인들에 많은 심장병에서부터 AIDS,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전(全)지구적이며 새로운 지식의 싹이 보이는 곳이면 국적,소속,신분,연령을 불문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유명하다. 이같은 사실은 연간 203억달러(2001년기준)의 예산 중 자체 연구소에서 쓰는 돈은 10%에 불과한 반면 일반 대학및민간연구소,외국기관에 지원하는 연구비는 82%나 되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나머지 8%는 행정비용).국립암연구소등 26개의 산하 연구소와 센터에 4.000명의 박사급연구진을 포함한 1만5,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NIH밖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0개 연구소,5만명에이른다. 지난 2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것을 비롯, 22년 사이 미국내 심장병사망율을 36% 감소시키고 5년간 암환자생존율을 60% 증가시켰으며 90년도 세계최초로 유전자치료를 실시하는등 연구성과도 눈부시다. 이곳에서 연구를 하거나 연구비를 지원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97명이나 될 정도다. 외국인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열려있어 이곳서 연구하는한국인 과학자는 250명에 이른다.이는 중국(300명)에 이어두번째. 연구자로서 최고지위인 랩 치프(Lab Chief,세포신호전달연구실장)에 오른 이서구박사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정신의학연구소 진혜민박사·생명공학정보센터 장원희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 화제가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서울대 연구처장을 맡고 있는 의대 박상철교수가 이곳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는등 학계,연구계 인사가 많아 동창회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미국인들의 NIH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높아만 가고 있다.NIH는 99년과 2003년사이에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으며올해도 약 6%,10억달러의 예산 증액이 이뤄져 이 계획은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신연숙편집위원
  • [조약돌] 육순 꽃뱀에 넋나간 칠순노인 퇴직금 2억 뜯겨

    60대 할머니가 70대 할아버지를 상대로 꽃뱀 행각을 벌이다 12일 경찰에 붙잡혔다. 구모씨(60·여)는 지난 96년 밍크코트와 다이아몬드 반지등으로 귀부인처럼 꾸민 뒤 시외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전 건설회사 이사 김모씨(74)에게 접근,“남편과 별거중인데 사귈 수 있느냐”며 여관으로 유인해 한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김씨는 구씨의 세련된 화술과 매무새에 반해 그 자리에서 잠옷을 사라며 50만원을 빌려줬다. 구씨는 그뒤 “교통사고로 성불구된 남편과 곧 이혼할 예정”이라면서 “위자료 12억원을 받으면 새살림을 차리자”며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생활비를 요구,378회에 걸쳐 2억5,000여만원을 뜯어냈다. 피해자 김씨는 아내가 살아 있음에도 단한번 본 구씨에게반해 퇴직금으로 받은 전 재산을 날리고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으며,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구씨를 서울 마포경찰서에 신고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고충처리위, 민원처리 수기집 내

    “무더운 날이었는데도 현장 곳곳을 땀흘리며 돌아본 직원들 덕분에 장기간 공사중단으로 겪은 어려움과 고통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朱光逸)가 8일 펴낸 고충민원처리 체험수기집 ‘아픔도 보람도 국민과 함께’에 실린 내용이다.위원회 직원들이 어렵고 힘든 민원의 해결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과 거기서 나타난 국민들의 고충과 현장의 애환,민원인의 감사의 목소리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사례를 모은 제1부 ‘아픔과보람의 사연’에서는 1급 장애인 어머니,고등학생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초등학생의 애절한 사연이 눈에 띈다.이 학생은 ‘대통령 할아버지께’라는 편지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추운 곳에서 생활하다가 얼마전 영구 임대아파트 입주자로 선정됐지만 입주금이 없어 포기했다”는 가슴아픈 사연을 적었다.이를 접한 직원들이 나서 이 학생 가족에게 아파트를 임대하도록 협조를 받아냈다. 또 장애인 어머니를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취업시켰고,뜻있는 직원들끼리 성금을 모금,전달하기도 했다. 3개월 전의 민원을 애써 찾아내 해결해준 경우도 있다.한제주도민은 직계가족의 재산평가액이 군복무 면제기준보다 100여만원 많아 아들을 군에 보낸 뒤 생활고를 겪고 있는 한칠순 할머니의 사연을 보냈다.하지만 이것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아 위원회 직원도 해결할 수 없었다.얼마후 전국 공시지가 하향 조정으로 이 할머니의 재산평가액이 줄었다는 것을 확인한 담당 직원은 스스로 민원을 접수하고 조사해 아들을 조기 전역시켰다. 2,3부에는 직원과 민원인이 고충민원 해결과정에서 겪은 안타깝거나 보람된 사연,해결 후의 고마움이 실려 있다. 최여경기자 kid@
  • 통영현대음악제, ‘그들만의 축제’ 탈피는 숙제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두번째 귀향을 반기는 고향의 인정이었을까.서울이 30여년만의 폭설과 잿빛 하늘로 짓눌려 있던 지난 16일,통영의 햇살은 거짓말처럼 눈부셨다. 윤이상을 기리고자 16일부터 3일동안 마련된 ‘통영현대음악제’.지난해 제1회 음악제가,이국땅을 떠돌던 그의 영혼을이곳에 첫발 딛게 했다면 올해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번듯한 안식처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있으리라. 생가가 있던 도천동 일대에서 해저터널까지를 포함한 ‘윤이상거리’선포식에는 독일 일본 등지에서 찾아온 외국 음악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참가해 흐뭇한 박수를 보냈다.칠순을넘긴 두 누이는 그의 얼굴과 생애를 새긴 표석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고마워했다. 이번 행사는 ‘여성과 음악’이라는 주제에 충실했다.첫날오후7시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개막공연에서는 이신우곡 ‘시편 20’과 러시아 출신 구바이둘리나의 바이올린협주곡 등 여성작곡가 작품과,고통받는 아시아 여성을 위해작곡했다는 윤이상의 ‘교향곡 제4번-어둠 속에서 노래함’이 창원시향(김도기 지휘)협연으로 초연됐다.이밖에 비디오댄스 상영,워크숍,여성작곡가 작품 발표회,베를린 윤이상앙상블 내한연주회도 열렸다. 통영시와 국제윤이상협회 한국사무국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처럼 통영을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키우겠다며 의욕을 과시한다.2002년부터는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대가들,유명 연주단체를 초청해 10일에 걸친국제음악제로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통영이 ‘음악적 성지(聖地)’로 도약하는 앞날을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현대음악이 갖고 있는난해함은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큰 걸림돌이다.개막연주회를포함해 이번 음악제에서 연주된 10여곡이 모두 처음 연주되는 곡.지방오케스트라인 창원시향이 넘치는 의욕만으로 소화해내기엔 힘겨운 시도였고 청중 또한 그리 즐거워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첫회라는 후광 효과가 사라진 탓인지 지역축제 치고 주민참여도 드물었다.거리에는 축하 깃발만 간간히 눈에 뜨일 뿐주민들은 남망산에 자리한 시민문화회관까지 올라갈 엄두를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좀더 많이,좀더 편안하게 즐기도록 하는 배려는 내년 음악제의 숙제로 남았다. 통영 허윤주기자 rara@
  • 화분 하나로 맞은 칠순

    유인종(劉仁鍾)서울시교육감이 소문없이 고희(古稀)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유교육감은 지난 8일 칠순을 맞았으나 이를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고 가족에게조차 별다른 행사를 준비하지 못하게 한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출근한 유교육감은 지방교육청 기관장회의를 비롯,일상 업무에 열중해비서실 직원들조차 이를 까맣게 몰랐다가 이튿날 유교육감의 한 제자로부터 칠순 축하화분이 교육감실에 도착하고서야비로소 주위에 알려졌다. 그는 환갑 때도 별다른 행사없이 평소처럼 보냈고 명절 때는 대전에 사는 큰 아들 집으로 내려가 직원이나 외부인의인사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유교육감은 “다른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거나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외부에 알리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평소처럼 지내도록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올 칠순 소설가 이호철 ‘이산타령‘펴내

    1955년 등단,46년간 작품활동을 하며 올해로 칠순을 맞는 소설가 이호철의 다섯번째 소설집 ‘이산타령 친족타령’(창작과비평사)이 출간되었다. 이 작가만큼 한국전 및 월남민 이야기와 분단 문제를 일관되게,그리고 다층적으로 이야기한 소설가는 드물다.32년생인 작가는 고향 원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50년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내려왔다가 국군 포로가 되었고 고향인근서 풀려나 그해 12월 월남하였다.작가는특히 지난해 남북정상회동 직후인 8월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의 기록담당 지원요원으로 방북해 50년 만에 북의 누이동생을 만나기도 했다. 이번 소설집은 누이동생을 만나기 전까지의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지난해와 1999년에 씌어진 단편 세 개,91년부터 97년 사이의 세 작품,그리고 60년대 발표했다가 최근에 개작해 재발표한 작품 등 모두 9편이다.이호철은 “이 소설집을 엮기 위해 지난 십여년간 발표한 단편가운데 쓸만한 것으로 네다섯 편을 골라 보니,하나같이 남북관계에맥이 닿아 있었다”면서 “1955년부터 내가 써왔고,앞으로의 여생 동안혼신으로 써나갈 내 소설의 총량은 ‘탈향에서 귀향에 이르는 도정’으로 압축될 수 있으리라는,내가 그동안 여러번 했던 언설이 이작품집부터 쏙 들어맞아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말한다(작가의말). 독자들은 이 작가가 분단이니 남북관계니 하는 말보다 탈향과 귀향이란 말에 마음을 더 바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포로에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십대(틴에이저) 신세,20여년 후의 간첩 누명 등 작가 자신이 맞은 역사의 유탄을 고집스레 매만지며 끙끙 앓은 모습 대신 비인간적인 역사가 자신에게 준 우여곡절을 역사를 초월하는 인생살이의 보편적 궤적으로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런 만큼 소설집 안의 최신작 세 편은 40년전의 이호철의 분신인 ‘판문점’이나 ‘닳아지는 살들’이 자랑하던 팽팽한 절제력과 공격적인 치열함은 찾기 어렵다.대신 자신에게 할당된 고통과 고뇌의 마당을 한번 다 쓸어본 사람의 여유로움이 있다.어떤 독자는 그의 중언부언하고 만연적인 노인성 어투의 늘어짐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으나전쟁상황이나 이산 문제를 시사적, 평면적으로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깨우쳐 주는 ‘높은 시선과 넓은 마음’이 돋보인다. 단편 ‘비법 불법 합법’에서 독자는 월남한 극우청년단원으로 여러악행을 했다는 원상사의 남성적이며,인간적인 전쟁 중 행태에 매혹되곤 한다.나쁘다거나 좋다고 가볍게 양단할 수 없는 이 인물이 내보이는 역사와 인생 시각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다.나머지 두 작품중 ‘사람들 속내 천야만야’가 다소 구태의연하고 정돈이 덜된 작품인 반면표제작 ‘이산타령 친족타령’은 이산 스토리도 가슴아프고 스토리가담고 있는 정치나 역사를 웃도는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함의도 가슴깊이 와닿는다. 김재영기자 kjykjy@
  • [희망 2001] 1급뇌성마비 채경선씨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요.” 1급 뇌성마비 장애인 채경선(蔡敬善·41·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씨는 요즘 마음이 들떠 있다.3월이면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이 시작되기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5명을 뽑는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학 사회과학부고령자 특별전형에서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혼자서는 대·소변이나 식사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중증 장애를 안고 있는 그가대학입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주위를 매우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느 장애인과 마찬가지로적잖은 고민과 방황 속에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누워서 생활해야 했던 그에게 학교 생활은 남의나라 얘기.한글도 17살이 되어서야 깨쳤다.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성경을 읽거나 소일거리로 소설 책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항상 자신의 손발이 돼주는 칠순의 부모를 대할 때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95년 충남 논산에있는 사회복지법인 ‘성모의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가톨릭 단체가뇌성마비 환자들을 위해 설립한 이 곳에는 채씨보다 장애 정도가 훨씬 심한데도 나름의 목표를 세워 향학열을 불태우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자극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이 대열에 합류했다.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책을 봐야 하기 때문에 목과 어깨가 아파 30분 이상은 책을 볼 수 없었다.하지만 타고난 집중력과각고의 노력 끝에 97년 중입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지난해 4월에는 대입 검정고시 자격까지 취득하고 이어 대학 입학시험까지 통과했다. 채씨를 2년째 돌봐주고 있는 ‘성모의 마을’ 재활교사 황성업(黃成業·32)씨는 “채씨는 각종 프로그램 사이사이의 틈새시간에도 책을놓는 법이 없을 정도로 노력파”라고 말했다. 채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해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신체의 장애보다는 마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치료해 줄 계획이다. “아마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일에도 부닥칠겁니다.하지만 겁은 안나요.지금보다 조금더 노력하면 될 테니까요.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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