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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亞·유럽 이어 美 진출 나서는 이호철

    [이사람] 亞·유럽 이어 美 진출 나서는 이호철

    문단활동 49년. 향수와 이산의 아픔, 그리고 분단문제를 필생의 화두로 여기며 살아온 이 시대의 작가 이호철(72)씨. 칠순을 넘기면서 더욱 왕성한 필력을 발휘하는 그가 요즘 국내외를 넘나들며 필명을 높이고 있다. 특히 여러 나라의 출판사와 각종 문학단체 등에서 ‘이호철 모시기’에 적극 나서 아직껏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 문단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미국 시장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 합니다. 현지 반응도 좋고요. 열심히 알려야지요.” ●‘남녘사람 북녘사람’ 이미 獨·中선 대서특필 이씨는 지난 7월 프랑크푸르트 등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작품 독회 및 TV출연 등의 행사를 가졌다. 현지에서 한국전쟁 참전 체험을 다룬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왔기 때문이다. 이때 독일 예나대학은 독일어로 번역된 ‘남녘사람 북녘사람’으로 이씨에게 ‘프리드리히 실러’ 메달을 수여하는 등 극진하게 예우했다. 이 메달은 유럽학술문화협력위원회가 1974년부터 국제 학술·예술 교류에 공로가 있는 국내외 저명인사에게 주는 공로패. 이씨는 한반도 분단에 따른 남북 민중의 고통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에 앞선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에서 ‘남녘사람∼’의 출판기념회를 가졌을 때 예상 밖으로 중국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문학보(文學報)’를 비롯해 19개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이씨의 작품세계를 앞다퉈 보도했다. ●美투어중 하버드·버클리大 등서 출판기념회 이런 그가 이제 유럽과 아시아 무대를 뛰어넘어 미국 무대를 노크한다. 그는 오는 26일 부인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남녘사람∼’의 영어판 ‘Southerners, Notherners’와 분단을 형상화한 단편 13편을 모은 영어판 소설집 ‘Panmunjom and Other Stories by Lee Ho-Chul’의 출간(이스트브리지 출판사)에 맞춰 ‘문학투어’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소설이 미국에 본격 소개되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의 ‘미국투어’는 뉴욕을 시작으로,12월 중순까지 포틀랜드·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5대도시에서 이어진다. 출판기념회는 하버드대와 버클리대, 그리고 워싱턴주립대 등지에서 계속된다. 이뿐만 아니다. 내년 4월에는 시카고·워싱턴·보스턴 등지에서도 출간기념 및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는 현재 타진 중인 멕시코 등 중남미 6개국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주요 언론은 이미 지난해 이씨의 작품을 대서특필할 정도로 관심을 보여왔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지요. 경기도, 문예진흥원, 또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미국 투어를 도와주더군요. 저 개인이 아닌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영어판 출간을 시작으로 그의 단편집 또한 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판 등으로 잇따라 출간되며, 장편 ‘소시민’은 다음달 중 스페인어와 독일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했다. 이후 줄곧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작품에 몰두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베를린 국제문학페스티벌에 초청 받은 것을 계기로 해외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것. 이같은 해외반응은 노벨상 수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폴란드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중국에서는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면서 “그 이유는 남북관계, 특히 해방 이후 1950년까지 북한의 실정, 또 인민군에서 국군포로로 넘어가는 과정 등에서 많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문학인생 50주년 ‘남녘사람∼’은 1950년 7월,19세의 나이로 인민군 의용군에 징집됐다가 한달여 만에 울진지구 전투에서 남측에 포로로 잡히는 과정 등을 담은 자전적 소설. “당시는 고교 2학년 이상은 무조건 인민군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따발총을 지급받았으나 제대로 쏜 적이 한번도 없었지요.” 그는 아직도 북쪽에 사는 누이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저리다고 했다. 제3국을 통해 지금도 북쪽 소식을 가끔 접한다고 귀띔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3년 전 이산가족 방북 때 감격적인 상봉을 나누었다. 이후에는 ‘누이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지금의 남북 대치상황과 관련,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한국 화학공장에서는 북한 근로자 200명이 남한 기술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한솥밥을 먹는 일이 늘어나야 자연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소설 쓰기는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해 그는 등산과 요가 등으로 꾸준히 건강을 챙긴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열렬한 문학청년이었다.‘어느날 부산 부둣가에 떨어진 네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탈향’은 24세 때의 작품으로 ‘문학예술’을 통해 데뷔했다. 지금까지 거의 매년 5∼6편의 중·단편을 발표하는 등 소설가 박완서·최일남씨 등과 함께 드문 ‘70대 현역’으로 후배 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3년 전 칠순기념 때 문학선집 7권과 통일칼럼집 1권을 내 그동안의 문학적 성과를 일차 정리했다. 내년에는 문학인생 50년을 맞는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5대째 막걸리 제조 박관원 배다리 박물관장

    5대째 막걸리 제조 박관원 배다리 박물관장

    ‘막걸리 막걸리/우리나라 술/삼천리 강산에/우리나라 술∼’ ‘간다간다/나는 간다/막걸리 두잔에/나는 간다/칠월 홍사리에/횡재를 하고∼’ 1980년대 대학가 주변에서 많이 들어봤음직한 노랫말이다.전자는 ‘무궁화꽃’이라는 전래동요이고 후자는 각설이타령 등 전래민요의 후렴구에 자주 등장한다.풍성한 수확철을 맞아 하루 농사일을 끝내고 막걸리 한 사발을 벌컥 들이켠 다음 ‘크’하는 통렬한 트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막걸리는 이처럼 토속적인 냄새로 향수에 젖게 한다. 한평생 ‘막걸리와의 춤을’ 추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특히 그가 빚어낸 막걸리는 청와대에 14년 동안 배달됐다.또 북한의 주석궁에 3차례에 걸쳐 들어가 까다로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맛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10·26사건 당일 2차로 막걸리 주문 #상황1.박정희 전 대통령은 살아 생전에 막걸리를 무척 즐겼다.1979년 10·26사건 당일에도 양주 시바스리갈 파티가 끝나면 2차로 막걸리를 마시게 돼 있었다.그날도 외부로부터 막걸리를 주문했던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만약 1차부터 막걸리를 마셨다면 상황은 어땠을까.쓴 양주와 새콤달콤한 막걸리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2.2000년 6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방북한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에게 “막걸리 약속 어케 된 기야요.”하면서 다음 번 방북 때에는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막걸리를 꼭 갖다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얼마 뒤 김 위원장은 주석궁에 도착한 남한의 막걸리를 마셨다.그는 “과연 소문대로구먼.”하며 크게 웃었다. 역사의 현장을 오고간 막걸리는 어디에서 빚어질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1동,원당 전철역 6번 출구로 나와 북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길가 오른쪽에 ‘배다리박물관’이 나온다. ‘배다리’는 ‘주교(舟橋)’의 토속어.이 박물관은 ‘배다리 술도가’(능곡양조장)의 4대째 가업을 잇는 박관원(72) 사장이 지난 7월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건축가로 활동 중인 아들 상빈씨가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이후 박 사장은 박물관 관장으로,아들 상빈씨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5대째 대물림이 된 셈이다.국내에서는 유일한 ‘막걸리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애주가들의 관심이 높다. 3공화국 시절 10년 동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박 대통령이 특별보좌관과 청와대 식당에서 회식을 할 때 술은 주로 경기도 원당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마셨다.박 대통령에게 막걸리는 술 이상의 의미가 있다.농촌에서 자란 박 대통령은 막걸리가 단순한 술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박 대통령이 시해 당한 궁정동 만찬장에는 시바스리갈이 있었지만 그렇게 양주를 마시는 술자리는 청와대내에 별로 없었다.’ ‘원당에서 가져온 막걸리’가 바로 배다리의 막걸리다.자세한 사연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초여름의 어느날.능곡양조장에 낯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사장 좀 바꾸시오.” “예,제가 사장입니다.” “여기 청와대요. 곧 갈테니 좀 기다리쇼.” 이때 박관원 관장이 능곡양조장 사장이었다.청와대에서 갑자기 왜 온다는 것일까.그의 궁금증은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본 뒤에야 풀렸다. 그해 봄날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은 김현옥 서울시장 등 일행과 함께 원당의 한양컨트리클럽에서 골프라운딩을 했다.청와대로 돌아가는 길에 박 대통령 일행은 삼송리 ‘실비옥’ 앞에서 갑자기 멈춰섰다.목이 컬컬해 막걸리 한사발을 마실 생각이었다.‘실비옥’은 주변 20호 가운데 납작한 양철지붕으로 된 허름한 실비식당으로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김 서울시장이 앞서 들어서면서 주인을 불렀다. “오늘은 안 합니다.할망구가 일요일이라 예배당에 갔어요.” 칠순이 다 된 할아버지가 귀찮은 듯 대답했다.그러자 김 시장은 낮은 목소리로 “주인 어른,밖에 대통령 각하께서 와 계시오.”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 대통령이 오긴 왜 와.일 없어요.” 때마침 교회 갔던 할머니가 막 들어왔다.그제서야 할어버지가 밖으로 나와 대통령 행차를 확인했다.박 대통령은 갈색 작업복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노부부는 부랴부랴 대통령 일행을 안으로 들게 했다.이어 박 대통령의 주문대로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북어 두 마리,고추와 된장이 놓여진 주안상이 급히 마련됐다. 박 대통령은 막걸리 한사발을 쭉 들이켜더니 “막걸리 맛이 참 좋습니다.어디 양조장에서 가져오나요.”하고 물었다.할머니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쪽,원당양조장.”이라고 대답했다.원당양조장은 능곡양조장을 말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실비옥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빚 20만원 때문에 문닫을 위기에 놓여 있던 ‘실비옥’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또 능곡양조장의 박 사장은 한달여 후에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 14년동안 거래가 이루어지게 됐다. ●김정일위원장 “과연 소문대로구먼” “대통령이 마시는 술은 별도의 사양실에서 빚어졌습니다.일반 상품과 섞어 만드는 것이 송구스러웠지요.청와대에도 그렇게 알렸더니 허락을 하더군요.막걸리는 일주일에 한두 말씩 정보과 형사를 통해 청와대에 꼬박꼬박 배달됐습니다.” 박 관장은 대통령 술 전용 사양실을 아담하게 조성했다.그런 다음 잠금장치를 하고 술을 빚어 넣은 뒤에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다.열쇠는 자신이 관리했다.이쯤 되자 박 관장은 ‘현대판 양온서(釀署,궁중에서 술을 빚던 관청)’를 떠올리며 혼자서 웃는 일이 많아졌다.이 사실을 함부로 외부에 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4년 능곡양조장이 고양탁주합동제조장으로 편입됐지만 대통령 막걸리의 제조·관리는 박 관장이 계속해서 맡았다.10·26사건이 있던 날 오후까지 그가 빚은 막걸리는 계속 청와대로 배달됐다. “무슨 특혜나 이권은 전혀 없었습니다.그저 대통령이 좋아하는 술을 만든다는 보람이었죠.나중에 입소문이 나자 인근 군부대에서 장병들 회식때 자주 이용했다는 것뿐입니다.” 박 관장은 시달림도 많았다고 한다.기관의 정보 담당자들이 수시로 들러 정보수집을 해갔으며 나중에는 관할 경찰서 정보과장이 열쇠관리를 해 사양실 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 관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능곡양조장 김진석 공장장의 각별한 정성이 있었기에 14년 동안 일관된 술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특히 공장장은 10·26때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는 사양실 촛불을 켜놓고 두문불출 혼자 앉아 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1999년 겨울이었지요.정주영 현대회장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이 대화도중 ‘박 전 대통령이 마셨던 막걸리를 맛보고 싶다.’고 요청했답니다.그후 정몽헌 회장 방북때 다시 거론됐지요.그래서 2000년 6월부터 8월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60말 분량의 막걸리가 현대측에 의해 주석궁으로 배달됐습니다.” 북으로 가던 날 박 관장은 ‘통일막걸리’로 상표를 붙여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이때서야 ‘고양막걸리’가 14년 동안 청와대에 납품됐던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청와대 납품됐던 술 한 주전자 1500원 박 관장은 1915년 배다리 지역에서 술도가인 ‘인근상회’를 창업했던 박승언 사장의 4대손.그는 자신의 막걸리에 대해 “다른 막걸리처럼 살균주가 아닌 보존기간이 5일 정도의 생주로 쓴맛·단맛·신맛과 시원한 맛 등 7가지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자랑했다. 박물관 야외공간에는 ‘막걸리 카페’가 있으며 청와대에 납품됐던 막걸리를 한 주전자에 1500원이면 마실 수 있다.주말에는 300여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으며 박물관 입구에 있는 100년 된 대형 술통이 눈길을 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임영숙 칼럼] 박생광, 김금화, 김이환…

    [임영숙 칼럼] 박생광, 김금화, 김이환…

    박생광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지난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1주기 회고전에서였다.무속과 불교를 소재로 한 강렬한 단청색 그림들 앞에서 느꼈던 충격을 미술평론가 이경성(전 국립현대미술관장)씨의 고백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이씨는 호암갤러리보다 5년 앞선 백상기념관 전시회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이 전람회에 들어선 나는 커다란 힘에 눌려 질식하고 말았다.”고 썼다.신문사 문화부 기자였음에도 그의 작품은 물론 화가를 생전에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부끄러웠다. 지난 주말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의 개막식이 열렸다.서해안 배연신 굿 및 대동굿의 인간문화재 김금화씨의 진혼굿도 함께 펼쳐졌다.인가도 드문,시골 좁은 골짜기에 100여대가 넘는 자동차가 전국에서 몰려들었다.화가의 고향 진주에서는 천리길을 멀다 않고 대절한 버스가 올라왔다. 전시작품은 화가 스스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 견주었던 ‘명성황후’,동학농민운동의 순결한 넋을 힘있게 형상화한 ‘전봉준’,친구였음에도 부처님처럼 존경했던 청담 스님의 열반기와 고행기를 통해 불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청담 대종사’ 등 박생광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대표작들과 만신 김금화를 소재로 한 여러점의 ‘무속’시리즈,소품 등 100여점이었다.이영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들이다. 이날 이영미술관은 ‘민족혼의 화가’로 꼽히는 박생광의 작품에 행복하게 젖어들게 했지만 예술가의 삶과 정신,그것을 꽃피게 하는 토양에 대해 생각하게 한 자리이기도 했다.박생광이 한국화단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일흔일곱에 가졌던 백상기념관 전시회 이후다.20년이 넘는 일본생활과 진주 지방에 묻혀 중앙화단에서는 소외됐던 그는 여든 한살에 타계하기까지 몇년 동안의 폭발적인 작품활동으로 ‘한국화의 전설’이 됐다. 여든살 무렵 그는 인도의 정신과 프랑스의 예술을 순례하는 여행을 하고 경주 남산전을 열기 위해 산을 오르고 색채 도자기 공부를 하겠다며 일본을 찾는다.그리고 필생의 대작인 ‘명성황후’와 ‘전봉준’ 등이 발표된 문예진흥원 개인전을 갖고 이듬해 파리 그랑팔레의 르살롱전에 초대 받는다. 작품이 팔리지 않는 가난한 화가의 해외여행과 전시회 경비 등을 지원한 사람이 바로 김이환(70) 이영미술관장이다.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고향 후배로서 만년의 화가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운 그는 팔순의 화가를 등에 업고 경주 남산을 오를 만큼 헌신적이었다.미술관을 세워 고인의 작품을 사회에 환원한 그는 미술관을 더욱 잘 운영하기 위해 예순의 나이에 와세다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고인의 발자취를 더듬었다.지난해에는 고인이 염원했던 ‘명성황후’의 스페인 전시회를 열었고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시회와 함께 고인과의 인연을 담은수필집 ‘수유리 가는 길’도 발간했다. 이 아름다운 인연을 김금화(72) 만신의 천도굿은 더욱 빛나게 했다.지켜보기만도 힘든 굿을 작두타기까지 하며 주재한 칠순의 인간문화재는 고인과의 인연을 풀어내며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25년째 그의 굿을 보아왔다는 한 퇴직 교사는 김씨가 그토록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칠순·팔순이 되도록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 가며 감동적인 예술과 인간관계를 이어간 세 사람의 만남-그런 만남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김이환 관장 같은 예술후원자들이 또 나타나 제2,제3의 박생광이 빛을 볼 수 있게 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또 다른 예술가가 계속 함께 가는 길을 꿈꾸어 본다. 주필 ysi@seoul.co.kr
  • 철인3종경기 화제의 참가자들

    칠순의 할아버지가 지난 통영대회에 이어 27일 속초에서 열린 2004 설악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도 완주,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주인공은 올해 77세로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김홍규씨.이번 대회에 최고령으로 참가한 김씨는 이날 속초항 신수로 교량 앞바다와 엑스포공원에서 펼쳐진 철인 3종경기 수영 1.5㎞와 사이클 40㎞,마라톤 10㎞를 3시간8분12초에 달려 또 하나의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3일 찌는 더위 속에 열렸던 통영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비해 구름이 낀 서늘한 날씨 탓에 기록도 통영대회의 3시간34분53초보다 많이 앞당겼다. 김씨가 처음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한 것은 지난 93년.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대회에 처녀 출전한 김씨는 이후 100여 차례나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했다.김씨는 “청년시절 복싱으로 기초체력을 다진 데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몸을 다듬고 있다.”며 “이번 대회는 코스가 평범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 참가한 오세훈 변호사(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는 이날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뒤 “철인 3종경기가 이렇게 힘든 경기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기록은 3시간25분50여초. 오 변호사는 “수영,사이클,마라톤 중 사이클이 가장 힘들었으며,참가자들의 몸이 서로 부딪치며 파도와 싸워야 했던 수영도 만만치 않았다.”고 설명했다.그는 “나 스스로와 싸워 이기고 도전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철인 3종경기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선일씨 살해 충격] 김씨부모 “왜” 오열·실신

    “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23일 새벽 김선일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부산 동구 범일동 김씨의 본가는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했다.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김씨의 부모와 가족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정부 차원의 석방협상이 큰 진전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져 있던 상황이라 갑작스런 김씨의 살해소식에 부모들은 비탄에 빠졌다. 아버지 김종규씨와 어머니 신영자씨는 TV 긴급뉴스를 통해 아들이 처형됐다는 외교통상부의 공식발표가 나왔지만,믿기 어렵다는 등 처음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다가 끝내 서로 껴안으며 대성통곡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이들은 “지금까지 나쁜 짓 한번 하지 않은 착한 우리 아들이 왜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느냐.”며 오열했다.더구나 숨진 선일씨는 외아들로 다음달 아버지 김종규씨의 칠순잔치를 앞두고 당초 지난달 말쯤 귀국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한편 선일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부산 김씨의 본가에는 김씨의 친지들이 찾아와 뜬 눈으로 밤을 함께 지새웠고,취재진 100여명도 몰려들었다.˝
  • [김선일씨 살해 충격] 김씨부모 “왜” 오열·실신

    [김선일씨 살해 충격] 김씨부모 “왜” 오열·실신

    “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23일 새벽 김선일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부산 동구 범일동 김씨의 본가는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했다.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김씨의 부모와 가족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정부 차원의 석방협상이 큰 진전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져 있던 상황이라 갑작스런 김씨의 살해소식에 부모들은 비탄에 빠졌다. 아버지 김종규씨와 어머니 신영자씨는 TV 긴급뉴스를 통해 아들이 처형됐다는 외교통상부의 공식발표가 나왔지만,믿기 어렵다는 등 처음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다가 끝내 서로 껴안으며 대성통곡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이들은 “지금까지 나쁜 짓 한번 하지 않은 착한 우리 아들이 왜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느냐.”며 오열했다.더구나 숨진 선일씨는 외아들로 다음달 아버지 김종규씨의 칠순잔치를 앞두고 당초 지난달 말쯤 귀국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한편 선일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부산 김씨의 본가에는 김씨의 친지들이 찾아와 뜬 눈으로 밤을 함께 지새웠고,취재진 100여명도 몰려들었다.
  • [피람 김선일시 참수위기] 충격 휩싸인 김씨 가족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랍된 김선일(33)씨의 소식을 접한 아버지 김종규(70)씨와 어머니 신순자(63)씨는 “내 아들은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선일이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씨 부부는 며칠 전 충남 천안에 있는 딸 정숙씨 집에 다니러 갔다가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대전에서 고속열차 편으로 낮 12시20분쯤 부산역에 도착한 김씨 부부는 개찰구에서 30∼40여명의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놀란 표정이었으나 이내 안정을 되찾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김씨는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아들은 나의 전부다.욕심도 없고 성실하게 살아온 내 아들이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며 애타는 부정을 보였다. 당초 외교통상부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부산으로 왜 왔느냐고 묻자 “외교통상부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해 집으로 왔다.”며 “기차 안에서 외교통상부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현재 협상이 진행중이며,아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일본처럼 적극 협상에 나서 살아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가족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모아 상의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신씨는 “지난 4월 ‘안전하게 있다.’는 연락이 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때 아들이 ‘나는 후방에서 통역일만 담당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선일씨는 오는 7월 귀국할 예정이었다.가족들은 9월인 아버지 김씨의 칠순잔치를 앞당겨 이때 치르기로 하고 선일씨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신씨는 “선일이는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닌 착실한 아들이었다.”며 “신학공부도 해 곧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김씨 부부가 살고 있는 부산 부산진구 범일6동 속칭 ‘안창마을’은 영세민 밀집지역이지만 평소 이웃간의 정이 돈독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 마을 통장인 박순식(59)씨는 “효자인 선일이가 좋은 직장에 취직돼 외국에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사고를 당해 무척 마음이 아프다.”며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와 기자 양반들이 힘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단층 슬레이트집인 김씨의 본가는 방 2칸에 세간살이도 별로 없을 만큼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다.지난 87년부터 아버지 김씨가 새어머니인 신씨와 함께 살아온 탓에 조촐한 살림살이였다.자식들과 관련된 물건이라고는 납치된 아들의 대학교 졸업앨범과 졸업증명서,군시절 사진이 전부였다.이웃 주민들은 “아버지 김씨가 아들을 굉장히 아껴 아들의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천안 김정한 이천열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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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ulite’는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로 꾸려지는 면입니다.득남·득녀·결혼소식,돌·환갑·칠순잔치,동창·동문회 등 각종 모임 정보를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전화(02-2000-9182∼5)와 이메일(metro@seoul.co.kr),팩스(02-2000-9189) 등으로 접수합니다.
  • [전문기자 시각] 금강산에 미래가 있다/김인철 통일안보

    “금강산 다녀왔다.”는 인사말에 주변의 반응이 영 심드렁하다.1998년 11월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린 후 남한 관광객이 60만명을 넘었으니 당연한 일.“육로로 다녀왔다.”는 말도 관심을 못 끌기는 마찬가지.“어제 새벽에 서울을 떠나 금강산에 갔다가,어젯밤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하루치기 관광’을 애써 강조하자 일본 등 외국도 하루에 왔다갔다 하는 세상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핀잔이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용천’을 봤다.” 예상했던 대로 금방 반응이 왔다.“어떻게,어땠어….” 질문이 쏟아졌다.정말이었다.금강산 당일관광을 한 지난 15일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서 폭발사고 직전의 용천과 진배없는 제2·제3의 용천을 만났다.군사분계선을 넘은 지 10분여만에 관광버스 차창 너머로 처음 마주친 봉화리마을을 비롯해 장전항 인근 양지마을,온정리마을 등등.단 한번도 페인트 칠을 한 적이 없는 듯 회색 일색의,낡은 1자형 단층주택과 3∼4층짜리 공공건물은 얼마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 평북 용천의 모습,그대로였다. “새마을운동을 하기 전인 1970년대 이전 우리 농촌을 보는 것 같다.” 구룡연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칠순 관광객의 촌평은 단순하면서도 적확했다.그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의 옷차림새나 소로 쟁기질을 하는 등 낙후된 영농방식은 그들의 생활수준을 미뤄 짐작케 한다고 주장했다.그렇다.금강산으로 가는 동해선 임시도로에는 우리가 걸어온 자취가 있다.오늘의 북한 주민은 20∼30년전의 우리이며,그들의 가난은 우리가 겪은 바로 그 가난이다. 이렇듯 금강산행 도로는 북한 경제의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33분의1,국민소득은 15분의1이다.전체 경제규모가 남한의 3% 정도이며,1인당 국민소득은 818달러에 불과하다는 통계수치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동해선 임시도로다.그리고 그 체험은 남북간 경협이 왜 긴요한지를 생각케 한다. “기자 선생,묻지만 말고 물건 좀 사시라요.” 유명한 삼록수 약수터에서 만난 북측 여성판매원의 상혼이 제법 그럴듯했다.북측은 한달여전부터 구룡연 등산로 4곳에 간이판매대를 설치하고 남측 관광객에게 ‘봉학맥주’‘은하수귤사탕’‘향사탕’ 등 10여종의 물건을 직접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등산로 초입 목란관 앞 대여섯개의 파라솔에는 관광객 20여명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 등을 마시느라 소란스럽다.서울시내 유명 유원지 어귀에서 흔히 보는 정경과 다를 바 없다.북한이 자본주의 경제에 눈 떠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강산은 남북간 평화를 만들어내는 관광지가 될 것이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금강산 당일관광을 축하하는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그렇다.금강산은 북한에 자본주의 경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남북경협의 실효성을 확인시켜주는 성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여름 휴가철 설악산 등 강원도를 찾을 피서객들에게 권하고 싶다.부모 형제 자녀와 함께 당일관광이든,1박2일이든 금강산에 다녀오라고 말이다.동해선 도로에 우리가 살아온 자취가 있다면,금강산엔 남과 북의 후손들이 함께 개척해야 할 미래가 있다.금강산 가는 길에서 기성 세대가 있는 힘을 다해 헤쳐온 역경을 확인하고,또 남북간 화해와 협력,나아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보자.현대아산을 위해서도,화해·번영이란 거대담론을 주창하는 참여정부를 위해서도 아니다.바로 우리와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다. 김인철 통일안보 ickim@seoul.co.kr˝
  • [Seoulites]모임 소식 보내주십시오

    ‘Seoulite’는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로 꾸려지는 면입니다.득남·득녀·결혼소식,돌·환갑·칠순잔치,동창·동문회 등 각종 모임 정보를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전화(02-2000-9182∼5)와 이메일(metro@seoul.co.kr),팩스(02-2000-9189) 등으로 접수합니다.˝
  • [독자의 소리] 생계형 신용불량자 구제해야/황선미(경기 가평군 의서면)

    신용불량자 문제가 곪아터져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지경이다.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배드뱅크라는 제도를 내놓기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의 이웃에 사는 젊은 부부도 성실한 사람들인데 칠순 넘은 노 어른의 병 수발과 치매를 치료하다가 졸지에 빚을 많이 져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취업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경제회생이 멀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개인들이 돈도 없어 소비가 안 돼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내수가 늘지 않아 경제가 부양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배드뱅크이건 또 다른 정책이건 새로 출범한 17대 국회를 중심으로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기를 바란다. 상당수의 신용불량자들이 회복불능 상태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경기의 동력이 완전히 끊어지게 될 것이다. 황선미(경기 가평군 의서면)
  • ‘아버지와 만남’ 펴낸 강인숙교수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삶의 이정표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주변의 어른들입니다.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어른인 부모는 삶의 모델이지요.그들을 모본(模本)으로 인간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강인숙(71·건국대명예교수) 영인문학관장.문학평론가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부인으로 역시 문학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17년전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독특한 평전인 ‘아버지와의 만남’을 최근 펴냈다. 강 관장은 ‘삶의 첫머리’에 한 어른(아버지)을 만났고 그 어른은 쾌락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박애주의자였다고 회상했다.때문에 자기철학과 박애정신이 공존한 한 인간을 연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교직생활중 매달린 기본적인 화두는 인간이었다.”면서 “나의 인간연구는 아버지를 중심축으로 회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흔들림없는 모성을 지닌 지모신 같은 어머니는 이해하기가 쉬웠다.그러나 아버지를 독해하는 일은 지난한 과제여서 칠순이 지난 나이에도 ‘아버지와의 만남’을 되씹어보게 한다.”고 덧붙였다. 강 관장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첫 모습은 7세때.3·1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통화성에서 두번째 옥살이를 한 뒤였다.‘국민복에 헬멧 쓴 차림’이었다.동생들은 달려가 아버지의 품에 안겼지만 강 관장은 선뜻 달려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독립운동으로 16년간 강 관장의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가 ‘해주댁’으로 불렸던 둘째부인을 데리고 나타났던 것이다. 강 관장은 “독립운동에 연루돼 대학진학을 못하고 사업가로 나선 아버지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특히 여자를 사랑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그는 또 “아버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 86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책을 놓지 않아 박학다식했으며 남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희귀종’이었다.”고 부연했다. 3년 전에 원고를 완성했으나 아버지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이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어왔다는 그는 “삶의 한 토막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용단을 내렸다.”고 토로했다.아울러 그는 “서로 유형은 다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가족과의 사랑과 갈등을 기반으로 삶을 형성해나간다.”고 덧붙였다. 김문기자 km@
  • [세상속으로] 동네 사진관의 변신

    “사진관 팝니다.” 누구나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동네사진관도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디카’가 필름카메라의 자리를 빼앗으면서 행사 촬영이나 사진현상 주문이 최근 크게 감소해 사진관 주인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사진작가협회의 홈페이지에는 사진관을 정리한다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남은 사진관들은 이벤트 행사를 만들거나 앨범 및 엽서 제작,아기·동물전문사진 촬영 등으로 ‘살아남기’에 나섰다. ●“인화 수입 줄고 행사 사진 주문 뚝 끊겨” “예전에는 사진사가 없으면 생일잔치도 빛이 안 났는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잔치나 행사 촬영 나가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25일 서울 영등포 H스튜디오 주인 고정기(53)씨는 컴퓨터 바둑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5년 동안 사진관을 운영해 왔지만 일감이 너무 줄어 버티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한달에 서너건씩 돌·칠순 잔치,유치원 재롱잔치 등 행사사진 주문이 들어와 그럭저럭 월 100여만원을 벌었는데 지금은 주문이 뚝 끊겼다.고씨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뒤 인화 수입도 한달 평균 150만원에서 40만원으로 70∼80% 줄었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15년간 사진관을 지켜온 박윤수(35)씨는 “전문가용 ‘디카’가 싼 가격에 보급되면서 디카로 행사사진을 찍어도 사진사가 촬영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대한프로사진가협회 조홍국(51) 사무국장은 “경기 불황,인화 수입·촬영의 감소로 협회 홈페이지나 협회보에 사진관을 팔겠다는 광고가 매월 10여건씩 올라온다.”고 말했다. ●차별화와 전문화로 활로 모색 일부 사진관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단지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면서 ‘살길’을 찾고 있다.전문가가 찍은 사진을 전시하면서 질적인 차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강남구 논현동 A사진관은 ‘뉴욕에서 인물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작가의 기량이 담겨 있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유럽풍으로 장식한 사진관 내부에서 멋진 기념사진을 찍으라며 손님을 끌고 있다. 전문적인 수정작업을 통해 외모의 단점을 가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내세운다.경기 일산의 K스튜디오는 최근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다는 점에 착안,‘애완동물 촬영 전문’이라고 홍보하고 있다.‘아기사진모델 선발대회’ 같은 이벤트를 마련하는가 하면,CD-ROM으로 앨범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일부 사진관은 아예 전업을 시도한다.동대문구 이문동에서 I스튜디오를 13년간 운영한 정성근(52)씨는 “인화장비가 팔리는 대로 업종을 바꿀 것”이라면서 “호프집이나 식당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푸념했다. ●광고사진도 디카로 전문가용 디카가 보급되면서 광고사진의 영역도 위협받고 있다.광고 기획사에서 간단한 제품사진은 직접 찍기 때문이다.600만 화소급 전문가용 디카로 찍은 사진은 A4용지 크기로 확대,인화해도 기존의 필름 카메라와 화질에 별 차이가 없다.고급 기종은 전문가용 수동 카메라에서나 쓸 수 있던 망원·광각 렌즈를 장착,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지난해 초만 해도 수백만원대였던 전문가용 디카 가격은 이제 100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떨어졌고,업계에서는 이같은 고급 디카가 이미 1만 5000대 이상 보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N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10년 경력의 광고사진가 나일규(38)씨는 “생활용품 광고사진 수입이 30% 이상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한국광고사진가협회 이일(48) 사무국장은 “문을 닫는 스튜디오가 늘고 있다.”면서 “전문가용 디카가 보급되면서 경기불황,일반 디카의 보급에 이어 광고 사진계에 세번째 시련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004 판소리 완창’ 국립극장 김영자의 ‘수궁가’로 27일 막올라

    ‘토막소리’가 판치던 소리판에 완창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판소리사설을 집대성한 신재효의 100주기를 맞은 1984년 박동진·성창순·조통달·오정숙 명창은 나흘에 걸쳐 완창공연을 가졌고,그 성공의 여세를 몰아 이듬해부터 상설화한 것이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다. 완창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이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5∼6시간에 걸쳐 판소리 한 마당을 모두 부르는 것.당시만해도 소리애호가의 주류를 이루던 노년층 관객들은 삶은 달걀 몇알과 사이다 한병씩을 들고 국립극장이 있는 남산을 오르게 마련이었다. 이제는 판소리 관객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삶은 달걀보다는 햄버거가 더 친숙하겠지만,완창판소리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최고 명창이 줄지어 무대에 오르는 ‘2004 완창판소리’는 27일 오후 3시 김영자의 정광수제 수궁가를 시작으로 11월까지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완창판소리는 어느 해보다 다채롭다.김일구와 부부명창으로 잘 알려진 김영자는 지난해 작고한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직접 배웠다.‘보성제 심청가’를 들고 4월 무대에 서는 방기준(82)은 마흔이 넘어 북채를 잡고,환갑이 되어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칠순이 넘어 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열정의 소리꾼이다. 5월에 박봉술제 적벽가,6월에 박녹주제 흥보가를 각각 부를 송순섭과 박송희는 설명이 필요가 없는 판소리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9월 김세종제 춘향가를 들려줄 박계향은 정응민 문하에서 강산제 김세종판 춘향가를 물려받았다.11월에는 남해성이 박초월제 수궁가를 부른다.그는 젊은시절 창극배우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는데,특히 수궁가의 토끼 역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8월은 국립창극단 초대 단장을 역임한 동초 김연수의 30주기 기념공연이다.동초제 다섯바탕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간문화재 오정숙이 제자 이일주·조소녀·민소완과 동초제 춘향가를 들고 14일 오후 9시부터 하늘극장 야외무대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심야공연을 갖는다.조소녀는 10월에 동초제 심청가로 완창판소리에도 참여한다.(02)2274-3507. 서동철기자 dcsuh@˝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아주 작은 학교/이금이 글

    아빠와 함께 시골 친척할아버지 칠순잔치에 가게 된 정우는 시골에 가는 게 못마땅해 뾰로통해 있다.아빠는 그런 정우를 달래려 모교인 송화초등학교 자랑을 늘어놓지만 막상 학교는 폐교되었다.다음날 정우는 문 닫은 학교에서 혼자 놀고 있는 윤재를 발견하고,둘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금세 친구가 된다. 어렸을 때 자주 놀러갔던 시골 학교에 대한 추억을 마음속에 담고 있던 지은이는 이 동화를 쓰기 위해 강원도 한 분교를 직접 취재했다.교사 한명에 전교생이 4명에 불과한 시골 작은 학교의 실상을 둘러보며 지은이가 느꼈던 쓸쓸함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한발 나아가 버려진 교실을 화가인 아빠와 아빠 친구들의 작업실로 활용하도록 한 결말에서 시골 작은 학교에 대한 지은이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초등학생용.7800원. 이순녀기자˝
  • [맛바람 늦바람]

    가끔 방송을 통해 100살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하셨을까?’보다는 ‘하루하루가 무료하시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습니다.요즘은 젊게 사는 어른들도 많아졌지만 칠순이 넘으면 사회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게 쉽지 않고,아흔을 넘어서면 거동도 쉽지 않으니 그때부터는 집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안에서 일상이 이루어지니 아무래도 생활 자체가 단조로워질 거라는 추측을 합니다.하물며 100살이 넘으면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테이블웨어 페스티벌 2004에 갔다가 평소의 그런 추측이 주제넘은 것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올해 102살이 되신 이다 미유키(飯田深雪) 선생님의 테이블 세팅을 보았거든요. 이다 미유키 선생님은 일본에서 유명한 식공간(食空間) 연출가입니다.식공간 연출가라 하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직업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푸드 스타일리스트(푸드 코디네이터라고도 부르지요.)보다 좀더 큰 의미인데, 말 그대로 음식이 있는 그 공간 전체를 연출하는 사람입니다.그러니 요리도 잘해야 하고,그릇 고르는 감각도 있어야 하고,꽃도 알아야 하고,조명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한 분야를 잘하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여러 가지 재주를 하나로 아우르는 일을 수십년 동안 해왔고,또 많은 제자들을 키워왔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런 분들을 큰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테이블웨어 페스티벌은 일본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그릇들과 세계 유명 제품들을 전시하고,테이블 세팅 콘테스트도 하고 100개가 넘는 관련 업체들이 부스를 만들어 참가하는 박람회입니다.장충 체육관의 서너 배쯤 되는 도쿄 돔의 가운데 전시장을 만들어 관람석에 서면 전시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그 정 가운데에 이다 미유키 선생님의 테이블이 있습니다.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선생님의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연분홍 컬러로 화사하게 차려진 그의 테이블은 전시장의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주위로 다른 큰 선생님들의 테이블이 전시되고,그 다음으로 일본의 이름을 세계에 떨친다는 노리다케 전시장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한테 놀라는 건 이런 겁니다.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는 사회인 거죠.같은 유교 문화권이라도 우리보다 성숙한 모습입니다.어른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고,존경하는 사회라면 100살,아니 200살을 살더라도 무료하기는커녕 즐거운 노년생활이 되지 않을까요? 신혜연 월간 favor편집장˝
  • 할머니 춤꾼 7인의 삶·예술 오롯이…12~13일 국악원 예악당서

    세상이 알아준다해서 영화로울 것도,알아주지 않는다해서 서운할 것도 없었다.그저 춤이란 제 멋에 겨워 허공에 그리는 자화상이며,돌아서고 나면 사라지는 허망한 꿈 한조각에 불과하지 않던가. 12·13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이는 ‘여무(女舞),허공에 그린 세월’은 세간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한평생 전통춤을 품고 살아온 일곱 여성 춤꾼들의 고집스러운 삶과 예술이 오롯이 담긴 무대이다.평균 연령 70대 중반.이들중 절반은 기녀로,무녀로 혹은 스님으로 남다른 인생을 살면서 춤을 삶의 동반자로 삼았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진옥섭씨는 “승무나 살풀이 등 1∼2종의 유파가 전통춤의 본류인양 취급되는 세태속에서 우리 춤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풍부한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출연자들 대부분이 70대 고령인지라 이들의 춤을 한자리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에 삼고초려의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지난 2002년 가을 ‘남무(男舞),춤추는 처용아비’로 남성 전통 춤꾼들의 호방한 춤사위를 선보였던 그로선 여성 춤꾼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무대이기도 하다. 최고령 출연자는 올해 팔순이 된 강선영.태평무 예능보유자인 그는 이번 무대에서 스승인 한성준에게 직접 사사한 승무를 선보인다.승무는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이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고,후에 이매방의 호남류가 지정받았다. 민살풀이춤을 추는 장금도(76)는 `먹고 살기 위해 소리 배우고,춤 배운’군산 소화권번 출신의 춤꾼.서울 종로 요정가에서 탁월한 춤솜씨로 인기와 재물을 모으기도 했으나 전쟁통에 군산에 내려가 이집저집 잔칫상을 떠돌다 세월에 묻혔다.민살풀이춤은 수건없이 맨손으로 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주 명무 김수악(78)이 추는 교방굿거리춤의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칠순을 넘기면서 허리가 굽고,키가 줄어 공연 때마다 치맛단을 잘라내야 하지만 춤의 `태’만은 여전히 정정하다. 만신 김금화(72)는 황해도굿 가운데 큰거리에 해당하는 거상춤을 선보인다.황해도 출신의 김금화는 황해도굿의 예술성을 널리 알려 주목받은 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서해안 풍어제 보유자이다. 최연소 출연자인 한동희(59)는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이수자로,비구니로서는 처음 범패승 계보에 올랐다.지난 95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불교의식을 최초로 무대화한 작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서울 돈암동 자인사에서 수행하며,범패 전수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이번 무대에서 나비춤을 춘다. 대구 춤꾼 권명화(70)와 최희선(74)은 대구 전통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박지홍류의 살풀이춤과 달구벌 입춤을 춘다.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추던 허튼 춤에서 발전한 살풀이춤은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달구벌 입춤은 박지홍류의 춤을 최희선이 추면서 붙여진 이름으로,춤을 배울때 첫 발을 떼는 춤이기도 하다.(02)3446-6418. 이순녀기자 coral@˝
  • 儒林(유림)속 한자이야기

    유림(3)에는 絶命(절명)이 나오는데,絶(끊을,뛰어날 절)은 실()을 칼(刀)로 자른다는 뜻으로 命(목숨,명령 명)과 결합되어 ‘목숨을 끊다’가 된다.죽음에 다다른 것은 臨終(臨 임할 림,終 끝날 종)이라 한다.‘죽는다’를 은유적으로 ‘북망산(北邙山)에 가다’라고도 하는데,이는 중국 하남성 낙양 북쪽의 북망산에 한나라 이후 역대 제후 등 귀족들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있다 하여 ‘人命(인명)은 在天(재천)’이라고 한다.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함은 동서고금(東西古今:동양이나 서양,옛날이나 지금을 통틀어 일컫는 말), 남녀노소(男女老少) 똑 같다.그러나 옛날에는 오늘날보다 일찍 죽었기에 두보의 시 곡강(曲江) 중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稀 드물 희) 즉,70세까지 산 경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라고 했다.그래서 오늘날 칠순잔치(七十이 되는 날 하는 잔치) 축의금 봉투에 ‘축 고희(祝 古稀)’라고 쓴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伯牙絶絃(伯 맏 백,牙 어금니 아,絶 끊을 절,絃 줄 현)이 있다.이는 중국 춘추시대에 ‘백아’라는 거문고 명수와 그가 어떠한 연주를 하더라도 무엇인지를 척척 알아 맞히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어느 날 ‘종자기’가 병으로 죽게 되자 ‘백아’는 더 이상 자기의 연주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는 일에서 유래되었다.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인 知音(知 알지,音 소리 음)’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상용어 중에는 매우 급박한 경우를 뜻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이 있는데,이를 절대절명(絶對絶命)으로 잘못 쓰는 사례가 있다. 유림(4)에는 首(이수)가 나온다.(뿔없는 용 리)는 과 (괘이름 리)가 결합된 한자로 가 들어간 한자의 음은 璃(유리 리),離(떼놓을 리) 등과 같이 대부분 ‘리’로 발음된다 은 머리를 바짝 치켜든, 머리가 큰 한 마리 독사를 본 떠 ‘훼’라고 발음했으나,언제부터인가 몇 마리 벌레가 한 곳에서 오글거리는 모양인 蟲의 약자로서 ‘벌레 충’이라 불리었다.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류(蚊모기 문,蜂 벌 봉),기어다니는 지렁이와 뱀 종류(蚓 지렁이 인, 살무사 훼),갑각류(蛤 조개 합,蝦 새우 하,蟹 게 해) 등에는 대부분 자가 들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蛇足(사족,뱀의 다리)이란 말에도 자가 들어간다. 蛇足은 초나라 재상인 ‘소양’이 위나라를 격파하고 이어서 제나라를 치려 하자,제나라에 사신으로 와 있던 진(秦)나라의 ‘진진’이 ‘소양’을 만나 다음과 같은 蛇足 일화를 들어 ‘당신은 지금 재상이기에 더 이상 공을 쌓아도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고 회유하여 돌려보낸 일에서 유래되었다. “어떤 사람이 종들에게 한 사발의 술을 주었다.그랬더니 조금씩 나눠 먹는 것보다는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이 모두 마시기로 합의하였다.그런데 한 사람이 뱀의 다리까지 그리고는 술잔을 잡아들고 으쓱거리자 다른 한 사람이 ‘뱀은 다리가 없네 ,자네의 그림은 틀렸어.’라고 하며 술잔을 빼앗아 마셨다.” 이는 史記(사기, 한나라 사마천이 지은 역사책)에 나오는 일화로 ‘쓸데없는 일을 함’을 뜻한다. 首는 頁(머리 혈)과그 위 머리털을 본 뜬 글자로 신체 중 제일 윗부분이기에 ‘머리,먼저,시초’등을 뜻한다. 예를 들면 首尾(수미:머리와 꼬리),首相(수상:내각의 우두머리),首邱初心(수구초심: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을 향한다.즉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로 ‘예기’라는 책에 나옴),首(비석머리,도장,궁전의 돌 등에 뿔없는 용의 모양을 새겨 장식한 것) 등이 있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사설] 50년만에 귀국한 국군포로

    국군포로 전용일씨가 50년동안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조국으로 돌아왔다.20대 초반 청년으로 포로가 됐된 그가 늦게나마 귀국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그러나 칠순 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과 분단의 비극이 배어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특히 지난 6월 함께 탈북한 아들이 중국 공안에 발각돼 강제 북송됐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아들의 강제 북송과 많은 위기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전씨의 귀국과정은 분단으로 인한 뒤틀린 현대사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다. 전씨의 힘겨운 귀국에는 불성실하고 미온적인 대응을 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국방부는 아주 간단한 국군포로 확인조차 제대로 못했다.주중 대사관과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탈북 국군포로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홀대했다고 한다.조국을 위해 몸바친 사람을 국가가 돌보지 않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는 전씨의 귀국을 계기로 국군포로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추산되고 있다.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탈북 국군포로들을 위한 정부 부처의 협조체제와 중국과의 협력 강화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귀국한 탈북 국군포로 30여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북한은 국군포로가 한 명도 없다는 거짓 주장을 중단하고 진지하게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 나와야 한다.정부도 북한과의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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