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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에서 칠순어르신까지 얼쑤! 좋~다!” 김포한옥마을에 부는 판소리 열풍

    “10대에서 칠순어르신까지 얼쑤! 좋~다!” 김포한옥마을에 부는 판소리 열풍

    “여봐라 흥보야~ 니가 요새 밤이슬을 맞고 다닌다지! 놀보가 화초장을 지고가며 잃어버릴까봐 외고 가는디~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도랑을 건너뛰다 아차 내가 잊었다~~~.” 중중모리장단의 판소리 흥보가 한 대목이다. 부자가 된 흥부집에 놀부가 찾아와 대접을 받고 화초장 하나를 얻어 돌아가는 장면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저녁노을이 서산에 지고 어둠이 깔릴 즈음 경기 김포시 운양동 한옥마을에서는 우리 전통 판소리가 구수하게 울려퍼진다. 10대 초등학생부터 칠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우리소리를 배우는 시민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명창 선생님이 가르치는 소리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소리높여 따라부르다 보면 어느새 90분이 훌쩍 지나간다. 5일 김포문화재단에 따르면 판소리 불모지인 김포에 전통소리를 확대 보급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판소리교실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김포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김포아트빌리지 전통문화체험관에서 낮반과 저녁반으로 나눠 일주일에 한 차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리수업을 맡고 있는 강사는 김포 마산동에 거주하고 있는 원진주 명창이다. 원 명창은 전국국악판소리대회인 임방울국악제 제21회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일찍이 36세때 김세종제 춘향가 중 ‘십장가′ 대목을 불러 판소리 최고봉에 올랐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다. 칠판까지 설치해 판소리의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며 90분동안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덕에 수강생들의 소리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풍무동에서 온 수강생 박수진씨는 “김포아트빌리지에서 원진주 명창한테 소리를 배울 수 있게 돼 영광이며, 아무나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판소리가 재밌고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배울 수 있도록 김포문화재단이 내년에도 계속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아트빌리지에서 처음 진행되고 있는 판소리교실에 김포에서는 보기 드물게 입소문을 듣고 배우려는 시민들이 50여명에 이른다. 김포시뿐만 아니라 이웃 인천과 부천, 서울에서도 배우러 찾아온다. 이는 김포문화재단의 적극적인 프로그램 지원정책이 크게 한몫했다. 문화시범사업으로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옥동과 수강료를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도아리랑을 시작으로 흥보가중 화초장대목, 개고리타령 등을 익혔다. 현재는 남원산성과 산타령, 놀보심술타령 수업이 진행 중이다. 오는 24일에는 배운 곡을 개인별, 단체별로 선정해 한옥마을에서 수강생들이 첫 발표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판소리교실 중학생 꿈나무인 정윤아(16)양은 “정통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김포에는 없었는데 아트빌리지에서 소리를 즐겁고 신명나게 부를 수 있어 좋다”며,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이나 이론을 다른 곳보다 더 잘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수강생 중 막내인 유하령(13)양은 “교실바닥에 앉아 수업하면 허리도 아프지만 선생님의 재미있고 열정넘치는 수업으로 90분이 금세 지나간다”며, “함께하는 어르신들이 저를 귀여워해주고 맛난 간식도 챙겨줘 판소리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문을 연 지 5개월밖에 안됐지만 최근 전국 국악대회에서 김포아트빌리지 판소리교실 학생들의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제27회 전국청소년예술제에 유하령양과 정윤아양이 출전해 초등부와 중등부에서 각각 최우수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또 60대의 유복귀씨는 지난달 3일 펼쳐진 영남소리제전 경상감영 어전명창 판소리가왕전 전국대회 신인부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다. 초등학생부에 출전한 초등학생은 우수상을 탔다. 오강현 김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은 “주로 민요활동이 활발한 김포인데 판소리교실에 5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열띤 분위기를 이어 우리소리가 김포에 활성화되도록 소리한마당 상설공연장 설치 등 의회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전했다. 이 밖에 지난 10월 13일 김포금쌀 전국 국악 대제전에 아트빌리지 판소리교실반에서 출전해 ‘진선미’팀이 장려상을 받았다. 김포대회는 민요부문만 경연이 마련되고 판소리부문이 별도 준비되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는 목소리다. 이날 대회 참가자들은 인구 40만명을 넘어선 도시인데 판소리대회가 전무해 내년부터라도 전국대회 규모의 판소리경연대회가 신설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사인 원진주 명창은 “전라도 지역에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다면 경기·충청도에는 중고제 판소리가 전승돼 왔다. 고음반 기록에 남아있는 단가 ‘경기가′를 복원해 김포에 가장 먼저 보급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그러려면 김포문화재단에서 마련한 판소리교실 프로그램 운영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원 명창은 한옥마을 정취와도 잘 맞는 판소리가 앞으로 김포에 뿌리내려 가치있는 김포문화예술로 널리 확산되는 게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한 컷 세상] 엄마의 여고 시절

    [한 컷 세상] 엄마의 여고 시절

    전북 군산 기차마을에서 칠순을 넘긴 자매가 옛날 교복을 빌려 입고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리는 하얗게 변했어도 그 시절 그 추억과 젊음은 아직도 그대로인 듯하다. 독자 박진영씨 제공
  • 북녘의 향기 그리워 고향의 온기 그리다

    북녘의 향기 그리워 고향의 온기 그리다

    인민군·국군으로 살아야 했던 미술학도 6·25전쟁의 아픔 잿빛 화폭에 담아 통일 염원은 화려한 색채로 그려내 매번 다른 상상 속 어머니 담은 작품도“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서도….”고향을 떠올리던 여든여섯의 화가는 말 중간중간 젊은 기자들의 눈치를 봤다. 이동표 화가의 고향은 황해도 벽성군 동운면 주산리. 고향 땅 저수지를 떠올리며 비슷한 풍경의 경기도 양평 땅에 자리잡았다는 화가다. 해방 소식도 고향 저수지에서 멱 감다가 봤다는 화가는 한국전쟁 이래 이날 입때껏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2일까지 열리는 이동표 초대전 ‘달에 비친’전. 북녘에서 태어나 해방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60여년 실향민으로 살기까지, 노 화가의 삶이 오롯이 담긴 전시는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오랜 시간 어머니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산후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됐다. 어머니와 일면식도 없는 그는 오로지 상상에 의지해 어머니를 그렸다.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손이 유독 크고 두껍다. 화가는 “자식과 차마 헤어지지 못하겠는 마음에 손이 이렇게 커졌다고 누가 그러대”라고 했다. 화폭 속 어머니는 그날그날 상상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다. 미술학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6·25전쟁을 소재로 한 역사화는 유독 잿빛이다. ‘일인이역 골육 상쟁’(2000) 속 국군과 인민군은 모두 화가 자신이다. 1947년 해주예술학교 미술과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1·4 후퇴 때 월남해 수용소 생활을 거친 후 이번에는 국군으로 입대해 신산한 삶을 이어 갔다. 머리에 지게에 짐을 이고 지고 떠나는 ‘6·25전쟁과 피난 행렬’(2004), 총부리를 앞에 두고 부르짖는 ‘고향에 가고 싶다’(2005)는 모두 그때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10년 전서부터는 톤이 좀 바뀌었다. “6·25만 그리면 뭐하냔 말이야. 집에 가야 하는데.” 칠순 중반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통일이다. 고향 가자’라는 제목의 연작 시리즈는 색채부터가 빨강, 주황 일색으로 화사하다. 인물들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다함께 모여 옛집 찾아가세’, ‘만세 부르며 이날을 기뻐하세’ 등 깨알같이 글귀도 많다. “습관적으로 그러는데, 평론가 김윤환 선생이 보고 ‘더 표현하고 싶은 말을 글로 했다’고 하더라고. 내 마음을 더 쏟아내고 싶은데 (그림만으론) 한계가 있잖아.” 통일이 코앞인 양 일견 다급함도 느껴지는 그림. 최근의 남북 해빙무드가 화가의 마음을 더 들뜨게 한 걸까. “예술가들은 뭐 어느 시기에도 좋고 나쁘고가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고향 가는 길목에서 한 거지 뭐.” 화실 한켠에 고향 땅을 확대한 구글 어스 지도를 두었다는 그. 생전에 고향 땅에 갈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화가는 말했다. “어쩌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가면 늦지 않잖아. 건강하고 그러니까. 실은 (꿈에서) 엊저녁에 고향집에 갔어. 집은 없는데 석류가 이렇게 큰 게 있어 가지고 가서 까먹고….” 고향의 추억이, 실향의 아픔이 그에겐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런 그가 눈치를 보게 하는 젊은 사람이라는 게 되레 미안해졌다.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수미네 반찬’ 한국인 입맛에 딱 얼큰 육개장 레시피 공개

    ‘수미네 반찬’ 한국인 입맛에 딱 얼큰 육개장 레시피 공개

    ‘수미네 반찬’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인 얼큰한 육개장의 초특급 레시피가 공개된다. 24일 tvN 예능 ‘수미네 반찬’에서는 양지머리, 고사리, 토란대, 대파, 박고지 등을 듬뿍 넣어 칼칼한 양념장까지 더한 김수미표 육개장이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김수미는 제철을 맞아 아삭하고 맛 좋은 얼갈이를 넣은 얼갈이열무된장찜 또한 선보인다. 얼갈이열무된장찜을 맛본 미카엘 셰프는 본능적으로 “얼큰하다”라는 멘트를 날리며 진정한 대한불가리아인(?)의 면모를 보여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특히 이날 ‘수미네 반찬’에는 출연자들도 인정한 초특급 식재료 ‘박대’가 등장했다. 못생겨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생선인 ‘박대’는 김수미의 손끝에서 구이, 조림으로 맛있게 변신했고, 마침내 문전‘환대’로 변신했다는 후문. 장동민은 박대구이를 시식한 후 “매일 먹고 싶다”라며 감탄을 연발했고, 최현석 셰프 역시 “맛있는 생선이 많이 나왔지만, 박대가 1등이다”라며 극찬하기도.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김수미의 깜짝 칠순 잔치가 펼쳐진다. 제작진과 제자들이 준비한 어설픈 서프라이즈 파티에 김수미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이며 잠시 당황했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기도. 특히 시청자들이 보낸 많은 편지와 선물을 받은 그는 말을 잇지 못하며 연거푸 감사를 표했고, 화룡점정으로 김수미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온 손님이 등장하는 등 파티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는 후문. 셰프들은 칠순을 맞은 김수미를 위해 다양한 축복의 의미를 담은 스페셜한 요리를 준비한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셰프들의 음식을 맛본 김수미는 황홀한 듯 행복해하다 “엄마가 생각난다.”며 이내 눈물을 보이며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오늘은 뭐 먹지?”라는 인류 최대 난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tvN ‘수미네 반찬’ 21회는 이날(24일) 밤 8시 10분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버지 칠순 여행경비 마련하려고 여비 수백만원 가로챈 식약청 공무원 징역형

    아버지 칠순 여행경비를 마련하려고 허위 전자기록을 만들어 여비 수백만원을 빼내 가로챈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빈태욱 판사는 14일 공전자기록 등 위작과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모(36)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23일 자신의 누나가 청소년수련시설 불량식품 합동점검에 참여한 것처럼 전자회계시스템에 허위 공전자기록을 입력해 누나 명의의 계좌로 여비 38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같은달 25일에도 같은 수법으로 학교급식 합동점검에 참여한 것처럼 속여 여비 100만원을 타냈다. 김씨는 법정에서 “아버지 칠순 여행 경비를 마련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빈 판사는 판결문에서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불량하다”며 “다만 잘못을 반성하고 편취금을 반환한 점과 지인들이 선처를 탄원한 것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형량이 과하다”고 항소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월드피플+] 자전거 타고 10년간 23개국 세계여행한 칠순 노인

    [월드피플+] 자전거 타고 10년간 23개국 세계여행한 칠순 노인

    중국의 한 70대 노인이 10년간 자전거를 타고 23개 국가와 중국의 33개 성을 여행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화상보(华商报)는 최근 허난 난양시에 사는 쉬위쿤(徐玉坤, 71)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33개 성과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의 23개 국가, 총 10만km를 자전거로 달렸다. 다음 목적지인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최근 정저우의 거리에서 기행고사전(骑行故事展)을 열고 있다. 그는 젊어서부터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꿈을 꿔왔다. 하지만 자식들을 키우고, 농사일을 하느라 꿈을 찾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50대 후반, 꿈에 대한 열망이 강렬해지면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식구들 모두 그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그의 여행을 강렬히 반대했다. 결국 2007년, 60살이 된 그는 ‘더는 꿈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식구들 몰래 집을 나섰고, 이튿날에야 식구들에게 여행 사실을 알렸다. 난양에서 베이징까지 1000여 km을 12일 동안 자전거로 달렸다. 이후 북쪽으로 이동해 다롄, 단둥, 장백산, 모허(漠河) 등지까지 간 뒤 하얼빈, 창춘, 선양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 2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7번의 자전거 여행길에 올라 전국 33개 성을 돌았다. 하루 최소 10시간, 100km가량을 자전거로 달렸다. 대부분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가져간 냄비에 라면이나 만두를 덥혀 먹었다. 그는 여행 내내 ‘최소한의 돈을 쓰고, 최대한 많은 길을 간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2010년 이후부터 2016년 11월까지는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23개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 한밤중 곰을 만나 한참을 도망쳐 달리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 또한 많았다. 2014년 독일 여행 중에는 한 독일인이 노숙하는 그에게 아침 식사를 주며 집으로 초대했다. 유럽 여행 중에는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길을 잃고 서 있는데 여학생 두 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학생은 그에게 보조 배터리와 목도리를 선물로 건넸다. 그는 “큰일은 아닐지라도 길에서 만난 사람의 작은 친절은 큰 감동이었다”면서 “여행 중 이런 감동을 느낀 순간이 부기지수였다”고 전했다. 그는 여행 중 ‘환경보호, 저탄소생활’이라는 깃발을 꽂고 자전거 여행을 한다. 비록 최종 학력은 중졸에 불과하지만, 세계를 돌며 생생한 삶의 지혜를 쌓고 있다. 그는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한다. 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중 한 페이지만을 본 것과 같다”면서 “여행을 하면서 시야와 가슴이 넓어졌고, 지식은 풍부해졌으며, 지병이었던 심장병과 위장병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완쾌했다”고 전했다. 또한 “마음의 크기에 따라 무대의 크기도 달라진다. 생명은 한정되었고, 난 내 생명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살아야 한다면, 멋지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남겼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감사원 지적 수년째 나 몰라라… 한국은행의 도 넘은 ‘방만 경영’

    감사원 지적 수년째 나 몰라라… 한국은행의 도 넘은 ‘방만 경영’

    공무원 규정없는 휴가… 연차 13억 보상 한국은행이 과거 감사원의 수차례 지적에도 과도한 복리후생과 유급휴가제도 등 ‘방만 경영’ 행태를 고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본부 지원업무 인력 149명… 금감원의 2배 감사원은 이런 내용의 ‘한국은행 기관운영 감사보고서’를 18일 공개했다. 앞서 감사원은 2009년 기관운영감사를 통해 한국은행의 과도한 유급휴가를, 2010년에는 본부·지원업무 인력 낭비를, 2014년에는 지나친 복리후생제도를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말 ‘방만 경영 정상화 지침’을 내놨고, 다른 공공기관 302곳은 모두 이 지침에 맞춰 개선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여전히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노조와 협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감사원이 지적한 16개 복리후생 항목 가운데 7개 항목을 유지해 2015∼2017년 3년간 모두 98억 8000여만원을 집행했다. 여기에는 가족 건강검진(10억 5000만원)과 직원·가족 의료비(34억 4000만원), 직원·가족 단체보험(20억 3000만원) 등이 포함됐다. 또 이사와 형제자매 결혼, 4촌 이내 기타 친족 사망, 부모 회갑과 칠순, 탈상, 사회봉사활동 등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없는 사유에도 유급휴가제도를 적용했다. 이 덕분에 직원들은 2014∼2017년 복무규정에 없는 사유로 특별휴가와 유급청원휴가 5021일을 썼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연차휴가를 아껴 총 13억 2000여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받았다. 감사원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급여성 경비 예산 삭감 등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은행은 2011년 조직개편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총무·재산관리·직원교육 등 지원업무 인력이 본부에만 149명이나 돼 금융감독원(69명)과 산업은행(79명)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상하이사무소 작년 자료 요청 0… 주재원 3명 또 2011년 중국 상하이에 해외사무소(주재원 3명)를 신설하는 등 해외 근무 인원을 2007년 47명에서 올해 3월 55명으로 늘렸다. 미국과 영국 중앙은행에는 해외 사무소가 없고 일본이나 독일 중앙은행도 한국은행보다 적은 수의 해외사무소를 운영한다. 지난해 본부가 상하이 해외사무소에 자료를 요청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고 주요 인사와의 면담 실적도 한 번밖에 안 돼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 밖에 한국은행은 현직 임직원 단체인 행우회가 지분 100%를 소유한 업체에 화폐금융박물관 내 뮤지엄숍 운영권을 수의계약으로 넘겨 지적받았다. 감사원은 한국은행 총재에게 “과다하게 운영되는 지원 업무를 통폐합하고 상하이 주재원을 인근 베이징사무소와 통폐합하는 등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라”고 통보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람이 좋다’ 백일섭 “졸혼 3년차, 초창기엔 우울해 술만 마셨다”

    ‘사람이 좋다’ 백일섭 “졸혼 3년차, 초창기엔 우울해 술만 마셨다”

    ‘사람이 좋다’ 백일섭 “졸혼 3년차, 달라진 점은..” ‘사람이 좋다’ 배우 백일섭이 졸혼 이후 생활을 공개했다. 3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에서는 칠순 넘어 40년 만에 졸혼을 선언하며 화제가 된 백일섭의 3년차 싱글 라이프가 그려졌다. 독립 3년 차인 백일섭은 ‘혼밥’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내일 뭐 해 먹지?”라며 “옛날에는 밥을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바뀐 일상을 털어놨다. 이날 백일섭은 독립한 이유에 대해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면서 “그냥 언젠가부터 혼자 나가서 살아야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백일섭은 졸혼 초창기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바람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집을 나와서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그런데 두 달을 못 견디겠더라”면서 “답답하고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았다. 술만 마셨다”고 고백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기는 중국] 16년 만에 가족과 상봉한 중국 노숙자 사연

    [여기는 중국] 16년 만에 가족과 상봉한 중국 노숙자 사연

    1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노숙자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고 광저우르바오 등 현지 언론이 16일 보도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 51세의 천잉(陈颖). 천씨는 30년 전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해당 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는 평범한 남성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을 하면 생계를 이어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던 당시 상황에 따라, 천씨의 가족들은 그가 취직을 한 것에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천씨에게는 그리 행복한 시간이 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사회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2002년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평범한 삶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 뒀고, 절망으로 가득 찬 마음 탓에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천씨의 가족은 2008년 천씨로부터 단 한 차례 연락을 받았을 뿐이며, 당시에도 천씨가 자신의 소재지를 밝히지 않아 그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지 16년째이던 지난 5월, 천씨의 가족은 현지에서 노숙자의 가족을 찾는 봉사활동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광둥성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는 천씨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봉사활동 단체에 따르면 발견 당시 천씨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자신이 대학에서 배웠던 영어 등을 잊지 않기 위해 바닥에 글씨를 써서 연습하는 등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6년 만에 천씨를 만난 가족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천씨의 동생은 “형을 찾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노력해 왔다. 예전과 달라진 형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흘렀다”면서 “형은 생각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만났다. 자신이 가족 및 세상과 인연을 끊게 됐던 당시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천씨의 사연은 그가 노숙자가 되기 직전 일했던 대학에까지 전해졌다.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직접 천씨를 찾아왔고, 천씨는 옛 동료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끝에 마음에 품고 있던 응어리를 내려놓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노숙자를 위한 봉사활동단체의 보호를 받던 천씨는 지난 13일, 동생과 함께 16년 만에 칠순 노모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떠났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회생 절차 ‘조기 졸업’ 이훈 “좌절하고 계신 분들, 저를 보고 부딪혀 보세요”

    회생 절차 ‘조기 졸업’ 이훈 “좌절하고 계신 분들, 저를 보고 부딪혀 보세요”

    “망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스스로 부서지곤 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밟아 가며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헬스클럽 사업 실패로 30억원대의 빚을 지고 일반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배우 이훈(45)씨가 15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기자와의 만남을 자청한 것은 “저처럼 채권자들이 공포의 대상이고, 재기 못할 것 같다고 좌절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텐데, 혹시 제 기사를 읽으신다면 한번 부딪혀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은 이씨는 지난해 2월 일반회생 절차를 시작했다. 일반회생은 채권자 동의를 얻어 10년간 번 돈으로 빚을 나눠 갚고 이자 등을 탕감받는 제도다. 이씨는 스스로 회생 계획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줘 불과 5개월 만에 법원의 관리·감독을 ‘조기 졸업’했다. 자율적으로 회생 계획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회생 절차? 빚 안 갚고 도망간다는 거야?” 오해와 불신들 많은 사람들에게 법원의 회생절차를 밟는다는 것이 곧 파산신청을 한다거나 더 이상 빚을 갚지 않고 면책을 받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다. 이씨도 그런 오해를 숱하게 받아왔고, 회생절차를 밟지 않고 빚을 갚는 다른 연예인들과 종종 비교를 당해야 했다. “저도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낸 김구라·이상민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동료들을 언급한 이씨는 “저도 처음에는 방송일을 하면서 금방 갚고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저도 참 열심히 했는데 저는 안 되더라고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2년 헬스클럽이 문을 닫은 직후부터 이씨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매달렸다. “지방 다니면서 돈만 준다고 하면 돌잔치, 칠순·팔순 행사, 정육점 오픈 행사, 결혼식도 솔직히 잘 모르는 분이어도 돈 벌려고 가서 친한 것처럼 사회본 적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을 가리지 않고 있을 했는데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인간적으로도 모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구라형이나 상민이처럼은 안 되더라”는 것이다. 원금만 10억여원이었던 빚은 금세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30억여원이 됐다. 게다가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빚을 꼬박꼬박 갚을수록 채권자들의 독촉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가뜩이나 “연예인이니 분명히 숨겨 둔 돈이 많을 것”이라는 의심을 잠재울 수 없었는데, 빚을 갚을수록 “역시 돈과 능력이 있네”, “내 돈부터 빨리 갚아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채권자들의 채근이 심해졌다. 그는 “매일 ‘제발 전화가 안 와 있길’ 기도하면서 잠에서 깨면 수십 통의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방송사로 가압류 내용증명 등을 보내면서 방송 일마저 줄어들었고, 몇 년간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렇게 버티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엔 “회생 절차가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채권자 1명당 20~30번씩 만나 설득”…인간적 신뢰 쌓여 채권자 70%의 동의를 얻어야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데, 채권자들에게 말을 꺼내자마자 “당신, 빚 안 갚고 도망가려는 거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10년을 거쳐 빚을 갚게 되고 일부는 탕감된다는 회생절차에 동의해 줄 리도 만무했다. “채권자를 설득하는 게 그냥 돈을 갚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전국에 있는 10여명의 채권자를 찾아다녔다. 어떻게 설득했느냐 묻자 “일단 만났다. 계속 만났다”고 전했다. 회생절차를 언급하면 즉각 거부감을 갖는 채권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거절당하면 또 찾아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골프장에 있는 채권자를 만나 서울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모셔오기도 하고, “당신을 내가 만날 이유가 없다”는 채권자들에 끝까지 매달렸다. 한 명당 적어도 20차례 이상 만나 재기 계획을 설명하자 결국 채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자주 만나니 채권자들과 형, 동생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동안의 독촉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분들에게 오히려 격려를 받으면서 재기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악 물고 부딪혀 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채권자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보며 진심으로 자신의 신뢰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회생 절차를 시작하자 채권자들의 추심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에서 지정한 통장에 이씨가 번 수입들을 입금하고, 이 통장에서 들어온 돈을 채권자들에게 매년 분배해 주기 때문에 이씨를 독촉할 일이 줄어든 것이다. 회생 절차를 진행하며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실패 원인을 복기하는 것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회생 절차를 악용하는 채무자들을 막고 앞으로 회생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실패 이유에 대해 합리적인 소명을 해야한다. 이씨는 “왜 망했는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패의 과정을 10년 전 서류까지 찾아내 판사님께 설명을 해야 하니 정말 지옥 같았다”고 돌이켰다. 그런데 사업에 실패할 당시에는 정작 눈에 안 보이고, 그저 남 탓을 하기에 바빴던 실패 요인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씨는 “실패한 분들은 그냥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세상은 지옥 같고 결국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회생 절차는 감정적으로는 할 수 없더라. 어떤 실수를 해서 실패했는지 이성적으로 깨닫게 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씨는 회생 절차를 시작한 지난해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닭꼬치 푸드트럭’을 선보이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만든 닭꼬치를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왜 실패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봤으니 이젠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회생법원에 올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청취자 울린 ‘울산 노무현’ 송철호와 노무현의 대화

    청취자 울린 ‘울산 노무현’ 송철호와 노무현의 대화

    8번 낙선 끝에 울산시장 당선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같이 출마하자” 선거 그만 두려 몰래 이사했더니문재인 찾아와 “형, 다시 이사 가소”6·13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에 당선된 송철호(69) 당선인의 인생 역정이 세간의 화제다. 송 당선인은 1992년 이후 모두 8번의 선거에서 떨어지고 9번 만에 당선됐다. 송 당선인은 울산 지역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울산의 노무현’으로 불렸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인권·노동운동을 같이 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송 당선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활동 근거지를 울산으로 옮겨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변호하며 이름을 알렸다. 송 당선인은 먼저 정계에 진출한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2년 14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8전 9기의 도전을 시작했다. 15대 총선, 2회 지방선거, 16대 총선, 3회 지방선거, 17대 총선 등 국회의원 선거 6번, 울산시장 선거 2번 등 모두 8번 고배를 마셨다. 그러는 사이 26년이 흘렀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던 40대 청년은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송 당선인은 몇 번이나 선거를 그만 두려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선배로 부르는 노 전 대통령과 후배인 문 대통령의 만류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송 당선인은 1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저를 불러 ‘내 대통령 퇴임 끝나고 나서 우리 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송 당선인이 “대통령님, 지금 무슨 말씀 하십니까? 그동안 대통령님이나 저나 그렇게 깨지고 이제 대통령까지 하셨으면 명예도 있고 그만하셔도 안 되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무슨 소리하나? 우리가 지역주의를 극복했나? 지역주의 하나도 극복된 게 없는데 우리가 대통령 배지 하나 했고 당신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인데 그거 한 번 했다고 만족한다 이 말이가? 또 부딪혀서 지역주의 극복할 때까지 싸워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송 당선인이 “대통령님, 임기 마치고 (선거) 나가시면 분명히 떨어집니다”라고 잘라 말했더니 노 전 대통령은 “떨어지기도 해야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전 세계인들한테 대한민국 민주주의 이것밖에 안 된다고 (알려야지)”라고 응수했다. 이에 질세라 송 당선인이 “그럼 해외 토픽에 나옵니다”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은 “해외 토픽에 나오면 더 좋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송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떨어지니 송 당선인은 다시는 선거판에 얼씬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2011년 자신의 선거구를 떠나 몰래 이사를 했다고 한다.그러자 이번엔 문 대통령이 이호철 전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송 당선인을 찾았다. 송 당선인은 “(문 대통령을) 만났더니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 가소’라고 하더라. 이사한 지 넉달 밖에 안 됐는데 또 이사를 가라는 거다”라고 회상했다. 송 당선인이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라고 했더니, 문 대통령 입에서는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라는 말이 나왔다.송 당선인은 그 말에 다시 집을 옮기고 선거판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송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무서운 분들한테 딱 트랩(덫)에 걸려 있었다”면서 “운명적으로 참 희한하게 걸렸다”고 말했다. 이날 라디오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각 나 눈물이 났다”며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영상 설명: 2014년 7월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울산 남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 야권연대 후보로 출마한 송철호 후보를 돕고 있다. 송 후보는 이 선거에서 44.18%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맹우 새누리당 후보에 석패했다. (출처: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블로그)
  • [서울광장] 정시 낭인, 변시 낭인/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시 낭인, 변시 낭인/황수정 논설위원

    요즘 정말 해보고 싶은 실험이 한 가지 있다. 준비물이 좀 버겁다. 불경이라면 여러 권 있는데, 소가 없다. 소 귀에 경 읽기. 아무리 경을 읽어 줘도 소는 과연 눈만 끔뻑할 것인가. 정말 가 보고 싶은 곳도 있다. 임금님 귀 당나귀 귀라 외쳤다는 전설의 도림사 대숲이다. 이즈음 많은 학부모들이 달려가고 싶을 곳이다. 담양 소쇄원 대밭이라도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님, 솜뭉치로 틀어막은 그 귀 좀!” 묵은 체증 내리게 소리 질러 볼 자리, 있을지 모르겠다. 대입제도 개편안에 조용할 날이 없다. 대학의 수시 전형이 교육부의 당근책에 해마다 자라더니 어느새 80% 선이다. 정시 비율을 제발 좀 늘려 아이들 숨통을 터 달라고 학부모들은 숨이 넘어간다. 입시안은 누가 어떻게 손봐도 시비 붙지 않을 재간은 사실상 없다. 툭하면 말썽인 덕에 교육부는 맷집이 좋아지고 눈치만 빨라졌다. 그 뜨거운 감자를 여론의 뭇매를 맞아 가면서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로 ‘하청’을 줬다. 뜨거운 감자는 국가교육회의한테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그들도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재하청’을 줬다. 전국을 돌며 현장 의견을 들어 보라는 특명과 함께다. 먼저 조직된 대입제도개편특위와 새 공론화위가 어떻게든 8월까지 입시 개편안을 주물러 내야 한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 국가교육회의는 다시 그 아래로. 입시안은 ‘방판’ 치약처럼 다단계 주문생산 중이다. 이러니 원색적인 의구심마저 쏟아낸다. “칠순 넘은 신인령(국가교육회의 의장)씨와 외곬 법률가 김영란(공론화위원장)씨가 정시, 수시를 고민해 본 적 있겠나.” 조마조마하다. 새로 생긴 공론화위는 무슨 위원회를 또 새끼 치겠다고 할지. 8월에 최종 입시안의 책임은 대체 어디서 지겠다는 것인지. 입시 개편 작업의 주체를 알 수 없다. 누구한테도 책임을 묻지 못할, 기막힌 사발통문 시스템이다. 변호사시험(변시) 합격률이 로스쿨 도입 10년 만에야 처음 공개됐다. 예상대로 후폭풍은 거세다. 법무부가 발표한 순위에 로스쿨들은 입장 따라 전부 불만들이다. 입학생, 졸업생, 누적 합격률 등 서로 유리한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달라고 핏대 세운다. 하위권 지방 로스쿨들은 끙끙 앓는다. 바닥권 서열이 들통났는데 누가 제 발로 찾아오겠냐는 하소연이다. 그 입장에서야 엄살이 아니다. 법무부와 로스쿨은 변시 합격률을 이러니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숨기고 싶었다. 합격률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영원히 비공개였을 것이다. 음서제 지탄이 끓을수록 똘똘 뭉쳤던 로스쿨들은 이제 서로 할퀴고 있다. 지방의 로스쿨 교수한테서 “합격률 떨어질까봐 성적 나쁜 학생을 유급시키는 편법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위권의 어느 학교가 심한지 다들 안다”는 말을 들었다. 다 죽어 가던 사법시험 부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변시 합격률이 로스쿨 도입 이래 처음 50% 아래로 떨어졌다는 발표에 여론은 오히려 놀란다. “대한민국에 경쟁률 2대1인 자격증이 있느냐”며 냉소한다. 변시를 통과하지 못해 로스쿨 낭인이 계속 늘 거라는 걱정에 사람들은 같이 걱정해 주지 않는다. “사시 낭인 없애겠다더니 변시 낭인은 웬말이냐”며 싸늘하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변되는 수시와 로스쿨이 서민들과 불화하는 이유는 언제나 간단하다. 기회의 불균형, ‘배경’이 없으면 출발선에서 낙오되는 불공정 게임이라서다. 이건 개천 용이 되고 말고의 이야기가 더이상 아니다. 로스쿨 문제가 시끄러우면 도입에 앞장섰던 조국 민정수석은 반드시 세간의 뒷담화에 오른다. 이즈음도 한창이다.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조 수석이 한때 SNS에 올렸던 글이다. 학생부 관리에 한 발만 삐끗했다가는 바늘구멍 정시를 뚫어야 하는 소년 낭인이 되고야 만다. 기회의 문턱 자체를 넘지 못하는 청춘들의 눈에는 변시 낭인이라도 부럽다. 조 수석의 ‘낭만 개천’에 살고 있는 붕어, 개구리, 가재들이 지금 너무 고단하다. sjh@seoul.co.kr
  • [길섶에서] 사월의 꿈/황수정 논설위원

    산책길 가다 말고 자작나무 새순에 매달리는 것은 언제나 중장년들이다. 밀물로 돋는 여린 물상들을 가로세로로 휴대전화에 담느라 바쁘다. 가지마다 유록빛이 발광한들 지나는 청춘들에게야 “고작 새순” 싱겁기만 한데. 그새 반쯤은 시든 명자나무 꽃을 쓸어 보고 톺아 보는 것도 어르신들이다. 봄비 맞아 호졸근하게 목이 꺾인 황매화한테도 그렇다. 난생처음 본 꽃인 양 곁을 주며 오래 눈 맞추는 것은 눈 침침한 어르신들이다. 눈 밝은 청춘들에게는 “그래 봤자 꽃”인데. 칠순의 어느 시인은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시를 썼다. 아무것도 아닌 한 줄 문장에 삶의 심연이 들어 있다. 때늦게 알아챈다. 가만 오래 보자니 꽃보다 잎이 고맙다. 한바탕 소란한 꽃의 일보다 몇 계절을 건너도 뭉근할 잎의 일이 덕스럽다. 먼 데 보는 눈은 흐려져도 봄마다 깊어지는 눈이었으면 한다. 겨우겨우 꽃이나 알아보는 눈 말고 우물처럼 깊은 눈. 만물이 다 유심해지는 눈. 오래 볼 줄 아는 근력만은 팽팽해져서, 해마다 잎이 더 감사해져서, 봄꽃의 생이 짧거나 말거나 애태우지 않는. sjh@seoul.co.kr
  • 칠순 넘긴 포크 대부 ‘울릉천국’ 열다

    칠순 넘긴 포크 대부 ‘울릉천국’ 열다

    150석 규모 공연장·카페 조성 ‘동방의빛’ 멤버들과 주 3회 공연 “이것저것 해봐도 음악이 1순위 후배 뮤지션들 보금자리 됐으면”‘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난 어떤 사람일까. … 그때도 꿈이 남아 있을까.’ 가수 이장희가 1974년 작사·작곡한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부르며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40여년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하는 그는 올해 ‘일흔하고도 하나’다. 한국 포크음악 1세대이지만 잊힌 가수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다시 기타와 마이크를 잡은 계기는 다음달 8일 울릉도에 개관하는 ‘울릉천국 아트센터’다. 이장희는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 70에 이러는 게 잘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 음악을 하게 돼 너무 기쁘고 설렌다. 제자리에 와 있다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1971년 ‘겨울 이야기’로 데뷔한 이장희는 ‘그건 너’, ‘한 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의 히트곡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과 함께 국내에 포크 열풍을 불러일으킨 ‘세시봉’ 멤버이기도 하다. 직접 작사, 작곡을 하며 노래를 부른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는 1976년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한 뒤 라디오 DJ,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1980년대 말 미국으로 넘어가 레스토랑, 라디오 방송 등의 사업을 했다. 미국 이민 생활을 접고 2004년 귀국한 그는 울릉도로 낙향해 농사를 짓고 살았다. 울릉천국 아트센터는 그가 기증한 농장 부지 1652㎡(약 500평)에 울릉도가 공연장을 만든 것이다. 1996년 울릉도를 방문했던 그는 자연경관에 매료돼 2004년부터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터를 잡고 ‘울릉천국’이라 이름을 붙였다. 현재 그가 사는 집 앞마당에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울릉천국 아트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에 150석 규모의 공연장, 카페 등의 공간으로 꾸며진다. 그는 이곳에서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트스 조원익 등 옛 ‘동방의빛’ 멤버들과 함께 4개월간 일주일에 세 번씩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송창식, 윤형주 등 세시봉 멤버들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요즘 서울도 극장 운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울릉도 중에서도 시골인 이곳에서 잘 될까 의심스럽지만 3000명의 관광객 중 100명만 와 줘도 좋겠다”면서 “울릉도의 독특하게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보시고 오신 김에 아트센터도 들러 달라. 관객들이 물밀 듯이 오면 공연을 더 늘리겠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공연은 1976년 이후 공식적인 가수 활동은 하지 않았던 이장희가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는 “오랜만에 동방의빛 멤버들이랑 같이 연습을 하다 보니 학창 시절에 공부는 안 하고 음악에 푹 빠져 살 때가 떠올랐다”면서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역시 나에겐 음악이 1순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힙합이 대세이길래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닥터 드레(힙합 가수)나 리듬앤드블루스를 다시 듣는데 여전히 좋고 옛날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더라”면서 “내가 좋아하던 장르들을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뮤지션들의 보금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맨 처음 극장을 짓겠다는 안을 가져왔을 때 정말 작고 아름다운 소극장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후배들이 이곳에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는,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연 티켓은 오는 20일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9월 15일까지 매주 화·목·토 3만 5000~4만원. 울릉도 주민은 1만원.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위대한 음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위대한 음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71년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걸작 음악 영화다.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관능과 서정의 극한을 추구하다 결국 좌절하고 마는 듯한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작곡가 말러와 흡사한 풍모를 지닌 주인공 아센바흐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통해 완전히 통제된 감정만이 최고의 예술작품을 낳는다고 여기지만, 우연히 베니스에서 마주친 미소년 타지오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아센바흐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자유롭고 불규칙한 인간의 감정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의 예술이라고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동료가 짐짓 비아냥대며 아센바흐에게 던지는 대사가 있다. “자네, 주류의 바로 아래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나? 바로 평범함이야!” 만인과 공감하고자 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간 자칫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그저 그런 존재나 개념이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만약 그 ‘평범함’을 ‘일상의 안일함’이나 ‘현실과 타협함’ 등으로 폭을 넓혀 생각하면 예술가에게 가장 위험한 상태는 움직임 없이 정체돼 있을 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각자 분야의 일가를 이룬 대가들은 결코 멈추거나 지치는 일 없이 역동적이다. 지난 3월 73세의 나이로 첫 내한 공연을 한 러시아 피아니스트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의 독주회는 피아노 마니아들뿐 아니라 흘러가지 않은 그녀의 전성기를 확인하려는 애호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내한 직전 지면 인터뷰를 진행했던 나는 공연 후 무대 뒤에서 그녀와 만났는데, 그녀는 청중의 높은 집중도와 훌륭한 음향 시설의 공연장에 만족해했다. 최근 신보 ‘그리움’(Saudade)에 사인을 부탁하니 “사인은 해 줄 수 있는데, 이미 무대의 불을 다 꺼서 연주해 주긴 어렵겠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을 담은 이번 앨범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호쾌한 타건과 예민한 음악적 센스는 젊음 그 자체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동시에 새로움에 대해 반짝이는 호기심까지 느껴지는 슈베르트 리사이틀도 완성도 높은 호연이었다. 레온스카야보다 한 살 아래인 우리나라의 국민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건재함도 반갑다. 올해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중 4월 5일 대만 국가 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웅대한 스케일과 여유로운 악상, 당당한 거장성으로 훌륭히 요리해 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그에게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 이상의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백건우의 성실함은 늘 새로운 경지, 지금껏 찾아내지 못한 음악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에 대한 글을 많이 썼지만 새로운 레퍼토리를 기대하는 팬의 요구에 백건우는 늘 한발 앞서간다. “요즘 쇼팽의 소품들에 다시 관심이 가고 있어.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왜 전엔 몰랐을까?” 평생을 함께해 온 악보들, 그 행간을 들여다보다 새롭게 반짝이는 영감을 얻은 대가의 행복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칠순의 나이, 무려 33번째의 앨범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감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내게 ‘레전드’라고 할 때마다 몸이 근질거리고 부끄러워져요.” 겸손의 표현이지만, 내겐 그녀의 ‘근질거림’이 아직도 찾고 있는 더 높은 음악의 경지를 향한 의욕의 증거라고 여겨진다. 오랜 망설임 끝에 최초로 녹음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의 긴밀한 호흡과 섬세한 뉘앙스로 상큼하게 마무리됐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도 재녹음됐는데, 달관의 노련함 속에 들어 있는 새초롬한 수줍음은 그녀가 아직 ‘젊은’ 현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진정한 가치의 음악은 늘 새로운 창조성을 띠며, 그것을 만들어 내는 음악가의 에너지는 시간과 나이를 온전히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 정경화 “‘레전드’ 소리 들으면 몸이 근질해요”

    정경화 “‘레전드’ 소리 들으면 몸이 근질해요”

    “제 이름 앞에 자꾸 ‘레전드’를 붙여 주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레전드 정도가 되면 뭘 해도 쉽게 쓱쓱 나올 것 같은데 전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바이올린 여제’라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칠순을 맞아 27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33번째 앨범 발표를 겸한 자리다. 6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정경화는 1967년 당시 최고 권위의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에 이어 1970년 영국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며 유럽 클래식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공기를 벨 듯한 예리함과 무대를 압도하는 강렬한 사운드로 ‘동양의 마녀’ ‘아시아의 암호랑이’ 등으로 불렸다. 그는 “본인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 속에서 함께 흔들리고 미움도 받고 사랑도 느끼는 게 바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라며 “그런 걸 관객에게 주고 싶어서 평생 1만%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2005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왼쪽 손가락 부상이었다. 그는 이 부상으로 5년간 바이올린 연주를 중단하고 줄리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다시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된 것을 늘 ‘기적’이라고 부른다. 무대 위로 돌아온 그는 2016년 평생 숙원으로 남아 있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한 데 이어 올해 33번째 정규 앨범 ‘아름다운 저녁’을 발매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포레와 프랑크, 드뷔시의 작품들로 채운 앨범이다. 그는 “33번째 앨범을 낸다니까 익숙한 일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녹음할 때마다 힘들어서 다신 못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온 기력과 정성을 다했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도 수년째 호흡을 맞춰 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했다. 이전에 사용했던 1734년산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데’ 대신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킹 맥스’도 그와 ‘친해지고 있는’ 새 친구다.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연합뉴스
  • [월드피플+] 20대로 보이는 ‘최강 동안’…알고보니 68세

    [월드피플+] 20대로 보이는 ‘최강 동안’…알고보니 68세

    20대로 보이는 ‘최강 동안’ 60대 중국 남성이 큰 화제다. 올해 68세의 후하이(胡海)씨는 내일모레면 칠순의 나이지만, 외모와 신체 조건은 물론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 감각까지 갖췄다. 여기에 노래와 춤 실력도 수준급이다. 키 180cm, 체중 68kg의 늘씬하고 단단한 몸을 지닌 그는 평소 요가와 거꾸로 매달리기를 즐기는 것이 ‘방부제 동안’의 비결이라고 전했다. 또한 평소 음식은 소량씩 자주 먹는 습관이 있다. 아침 식사는 충분히 하고, 점심은 사과와 달걀로 소식을 한다. 저녁은 주식을 제외한 채소와 탕 위주의 식사를 한다. 그는 요즘도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끼면 30대 청년으로 오인당하기 일쑤다. 그런 그도 젊은 시절에는 공장 생활과 해외 무역 업무를 하며 ‘틀에 박힌 삶’을 살았다. 결혼 후에는 성실한 가장의 역할에 전념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추구한 것은 퇴직한 예순의 나이부터다. 자신의 꿈을 좇는 ‘인생 후반전’을 시작한 셈이다.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전문 강사에게 노래를 배우고,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세계 중화권 댄스 경연대회에서는 자신보다 36살이나 어린 파트너와 댄스 실력을 뽐내 1등을 차지했다. 2016년 상하이에서 열린 ‘가장 세련된 할아버지’ 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이후 각종 TV 프로그램에 참여해 ‘최강 동안’ 할아버지의 춤과 노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젊음은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마음이 젊고, 열정과 호기심을 지녔다면 인생의 수많은 가능성을 맛볼 수 있다”면서 “꿈을 실현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그저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전했다. 사진=소후닷컴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현장 행정]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현장 행정]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지난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청 강당에서는 특별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평범한 지역 노인 8명이 출판 기념회의 주인공이었다. 강당 뒤쪽에는 8권의 각기 다른 자서전과 저자들의 사진, 기념품, 육필 원고 등이 놓여 있었다. 자서전 집필자 외에도 집필자의 가족, 친구 등 150여명이 모여 출판을 축하했다. 구는 2011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어르신 자서전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간 출판된 자서전만 58권에 이른다. 이날 출판 기념회를 연 노인들은 지난해 사업에 참여, 자전적 글쓰기 법 등을 배웠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 지구의 역사가 들어가 있듯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담겨 있다”며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모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유 구청장은 또 “어르신들께 칠순, 팔순 잔치 때 수건 같은 기념품 대신 자서전을 선물하라고 권한다”며 “결정적 순간에 어떤 고민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자녀나 배우자에게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병철(83) 할아버지는 ‘북풍은 남풍이 되어’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내용,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조선족’으로 힘겹게 살아간 가족사를 엮어 냈다. ‘일곱 개의 보석’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구귀순(71) 할머니는 1971년 큰딸을 낳은 뒤 1987년까지 7명의 딸을 낳아 기르며 맏며느리로 병든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구 할머니는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며 “자식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말년에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8권의 자서전 저자 중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삶’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서진율 할아버지는 참석하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을 마친 뒤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지난해 10월 별세했기 때문이다. 대신 참석한 서 할아버지의 아들은 “자서전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 구청장은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똑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어르신들이 글을 쓰면서 본인 인생에 감동하는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평범한 인생도 역사가 됩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지난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청 강당에서는 특별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평범한 지역 노인 8명이 출판 기념회의 주인공이었다. 강당 뒤쪽에는 8권의 각기 다른 자서전과 저자들의 사진, 기념품, 육필 원고 등이 놓여 있었다. 자서전 집필자 외에도 집필자의 가족, 친구 등 150여명이 모여 출판을 축하했다.구는 2011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어르신 자서전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간 출판된 자서전만 58권에 이른다. 이날 출판 기념회를 연 노인들은 지난해 사업에 참여, 자전적 글쓰기 법 등을 배웠다.유종필 관악구청장은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 지구의 역사가 들어가 있듯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담겨 있다”며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모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유 구청장은 또 “어르신들께 칠순, 팔순 잔치 때 수건 같은 기념품 대신 자서전을 선물하라고 권한다”며 “결정적 순간에 어떤 고민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자녀나 배우자에게 일일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서병철(83) 할아버지는 ‘북풍은 남풍이 되어’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내용,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조선족’으로 힘겹게 살아간 가족사를 엮어 냈다. ‘일곱 개의 보석’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구귀순(71) 할머니는 1971년 큰딸을 낳은 뒤 1987년까지 7명의 딸을 낳아 기르며 맏며느리로 병든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간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구 할머니는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며 “자식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말년에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8권의 자서전 저자 중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삶’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쓴 서진율 할아버지는 참석하지 못했다. 자서전 집필을 마친 뒤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지난해 10월 별세했기 때문이다. 대신 참석한 서 할아버지의 아들은 “자서전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유 구청장은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똑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어르신들이 글을 쓰면서 본인 인생에 감동하는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친절한 기사단’ 마이크로닷 “윤소희, 웃을 때마다 설레” 진심담은 고백

    ‘친절한 기사단’ 마이크로닷 “윤소희, 웃을 때마다 설레” 진심담은 고백

    ‘친절한 기사단’ 마이크로닷이 윤소희에 애정을 드러냈다.24일 오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케이블채널 tvN ‘친절한 기사단’ 제작발표회에는 이수근, 김영철, 윤소희, 마이크로닷이 참석했다. 이날 마이크로닷은 윤소희에 대해 “거짓말 못하는 성격이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떨리고 있다. 예쁘고 착하다. 순수하다. 보이기로는 안 그렇지만 벽 같은게 있는데 금방 없어지더라. 웃을 때마다 설렌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에 윤소희는 “저런 말을 할 때마다 당황스럽긴 한데, 깨끗하고 순수하게 말해주더라. 웃음소리를 자꾸 얘기하면서 음원으로 쓰겠다고 하더라. 예쁘게 봐주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닷은 또 다시 마이크를 들어 “곧 칠순이 되시는 덕화 형님, 수근이 형님과 동엽이 형님과 수근이 형님, 영철 형님 등과 함께 해왔다. 그런데 여성도 그렇지만 동갑내기와 이렇게 처음 출연해본다”며 “나는 솔직한 편이고 시청해주시는 분들이 잘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소희에게 편한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어필했다.‘친절한 기사단’은 여러 외국 손님들의 하루를 에스코트하며 그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와 특별한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한 외국인 에스코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24일 오후 8시 10분 첫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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