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해외로 해외로’
‘은행 대전’이 해외로 ‘확전’되고 있다. 한정된 파이를 놓고 ‘제살깎아먹기식’의 출혈이 아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시도다.
시중은행은 물론 산업·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고, 농협까지 해외점포망 개설에 나설 태세다.
은행들은 올 하반기에 해외 지점이나 사무소, 현지법인 등을 집중 개설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해외 영업망 확충도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이라면서 “하반기가 해외 진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가 분수령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외 점포가 16개였던 우리은행은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와 위튼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중국
상하이 포서지역에도 지행(支行·출장소)을 개설해 올 들어서만 3개의 해외 영업점을 추가로 열었다. 연말까지 중국 선전과 미국 애틀란타에도 지점을
낼 계획이다.
7개의 해외 점포를 운영해온 하나은행도 하반기에 2∼3개 지점을 신설하고, 기업·신한은행도 연말까지 1개씩 늘릴 계획이다. 해외 영업망이
가장 넓은 외환은행은 칠레,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에 새 지점을 내기로 했다.
국책은행도 예외가 아니다.11개의 해외 점포를 보유한 산업은행은 다음달 중국 광저우와 태국 방콕에 지점을 신설하고, 내년 초에는
브라질에까지 진출한다. 수출입은행도 올해 파리와 두바이에 지점을 설립해 해외 영업점이 16개로 늘었다.
●최대 격전지는 중국
최근 금융권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농협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아직 해외 점포가 없지만 최근 중국,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에 조사단을 파견해 타당성을 검토하는 등 지점 개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농협 금융전략팀 관계자는 “저금리와 예대마진의 축소 등으로 국내
영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다른 은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해외영업점 개설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신한·기업·우리 등 시중은행들이 추진하고 있는 해외 영업점도 한결같이 중국에 쏠려 있다. 지역도 상하이, 칭다오, 톈진 등 동부해안
도시를 탈피해 선양이나 선전 등지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이 교역량 1위 국가로 올라선 데다 기업들의 해외투자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이어서 더 이상 국내에 앉아 중국 진출
기업을 상대할 수 없게 됐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은 대부분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면서 “막대한 대출을 다른 은행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저마다 중국지점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최근 월례조례에서 포서지행 개설과 관련,“국내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푸둥지구를 벗어났다.”면서 “비록 상하이 지점
개점 10주년 기념으로 개설된 지행이지만 영업 범위의 확대 차원에서 보면 획기적인 일”이라고 자평했다.
●한국기업 위주 영업 탈피 못해
그러나 국내 은행들의 해외 영업은 대부분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현지 금융시스템을 좌우하는 ‘글로벌
금융’과는 동떨어져 있다. 하나의 국내 기업을 놓고 여러 은행이 해외에서 경쟁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국민·하나은행은 각각 인도네시아의 BII은행과 중국의 칭다오은행을 인수해 직접 경영에 나섰고, 외환은행도 오는 20일부터 베이징 지점에서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로 위안화 업무를 취급하는 등 영업 범위를 다각화하고 있긴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국제영업은 아직 걸음마단계”라면서 “현지 금융기관을 인수하거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거액을 챙기는 세계 수준의
투자은행(IB)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