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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까지 반세기 걸렸소”/탈북 김경호씨 일가 입국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 지난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61)·최현실(57)씨 일가족 16명과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 등 17명이 9일 하오5시17분쯤 대한항공 618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씨 일가족은 김포공항에 도착,5시45분쯤 17번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와 서울에 사는 김경호씨의 친형 경태씨(70)와 조카 흥석씨(33),최현실씨의 작은아버지 최전도씨(78)와 사촌조카 최철욱씨(43·서울 베델의원원장) 등 가족 7명과 눈물로 상봉했다. 김씨 형제는 6·25가 일어난지 얼마후 경호씨가 인민군에 징용되면서 헤어졌고 최현실씨도 10살때인 50년 월남한 아버지 최영도씨(79·미국 뉴욕거주),작은아버지 최전도씨와 헤어졌다. 최현실씨는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따뜻하게 받아줘 정말 감사하다』면서 『일행 17명이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행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북한에는 상당수 주민이 생활고 등을 이유로 중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나당국의 검거를 두려워해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탈북경위 등에 대해서는 『적당한 기회에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이들은 44일동안의 대탈주기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관례에 따라 귀순동기 등을 조사받고 귀순절차를 밟기 위해 하오6시쯤 서울시내 모처로 출발했다. 공항 관계당국은 이날 김씨일행의 신변안전을 위해 공항경찰대 5개 중대를 배치,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등 경비를 강화했다. 김씨일행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6일동안 머물던 홍콩 상수 보호감호소를 출발,하오1시쯤 홍콩 카이탁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홍콩정청 이민국 직원의 안내로 공항보안구역을 통과,서울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한 뒤 우리측 호송요원에게 정식으로 인계됐다. 김씨 일가족은 부인 최현실씨의 부친인 재미교포 최영도씨의 도움으로 지난 10월26일 새벽 함경북도 회령의 집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재미 친척들이 고용한 조선족의 안내로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28일만인 지난달 23일 홍콩에 밀입국,한국망명을 요청하며 상수보호소에 수용돼왔다. 김씨는 6·25당시 인민군에 강제징집돼 월북,평양에 거주하다 최씨와 결혼했으나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회령으로 추방되는 등 심한 억압을 받고 식량난까지 겹치자 탈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명박 의원 “버린 카드”/냉담한 반응 보이는 신한국

    ◎“본인 믿고 옹호했다 당 망신” 배신감/검찰조사 혐의 드러나면 출당 고려 신한국당이 이명박 의원에게 고개를 돌린 듯 하다.24일 회견에서 이의원은 전비서관 김유찬씨의 해외도피에 개입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여권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25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강삼재 사무총장이 전날 이의원의 회견내용을 간략히 보고했을 뿐이다. 실제 신한국당의 기류는 냉담한 차원을 넘어 강한 배신감마저 느껴진다.한마디로 이의원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김씨출국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믿지않는 기색이다.신한국당이 이처럼 이의원을 불신하면서 일정거리를 두려 하는 데는 그의 말을 믿고 옹호했다가 「망신」을 당한 경험말고도 사건이후 이의원이 취한태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이의원은 김씨출국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 23일 당 고위인사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이의원은 자진탈당을 권유받고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나아가 자신에 대한 당의태도를 원망하면서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등 거의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한다.당의 한 관계자는 『이의원 본인이 일을 그르치고도 마치 희생양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는 듯 하다』고 전했다.이후 24일엔 친형인 이상득 정책위의장이 이의원을 만나 자제를 당부했고 이의원은 하오회견에서 김씨출국 개입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탈당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당은 한때 검토하던 이의원 출당조치를 거두고 일단 검찰수사를 관망하는 쪽으로 선회했다.한 관계자는 『선거비용 초과에 따른 처벌은 감수하더라도 김씨를 도피시켰다는 도덕적 비난만은 면하고 싶은 게 이의원의 생각인 듯 하다』고 말했다.이어 『이런 마당에 막다른 상황에 놓인 이의원의 격앙된 감정을 굳이 돋울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검찰수사로 진실이 가려질 때까지 관망하면서 이의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다만 이의원이 혐의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거취를 정하지 않을 때는 출당등의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방침이다.이홍구 대표위원은 25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이의원 스스로 현명한 판단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창업지원금 2백억 사취/2명 구속/공무원 관련여부 수사 확대

    ◎군수·세무서장 직인 위조… 땅투기 【창원=강원식 기자】 경남지방경찰청은 9일 군수와 세무서장등의 직인을 위조한 뒤 허위공문서를 만들어 2백여원의 중소기업 창업지원금을 받아 가로챈 함안군 칠원면 용정리 대세산업 대표 이종구(43),전무이사 이기갑(39)씨 등 2명을 사기 및 공문서위·변조혐의로 긴급구속하고 상무이사 이기을씨(39)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씨등은 친형제 사이로 지난 94년12월 함안군 칠원면 영동리에 이미 창업승인을 받아 가동중인 5개 공장을 다른 지역에서 옮겨와 협동화단지를 조성하는 것처럼 허위사업승인신청서를 만든 뒤 함안군수와 창원세무소장의 직인을 위조해 중소기업진흥공단 경남지역본부로부터 1백53억4천5백만원의 지원금을 받아내는 등 지금까지 같은 수법으로 2차례에 걸쳐 모두 2백1억2천만을 가로챈 혐의다.이들은 지원금으로 함안·창녕·거제지역 일대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해당 군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공무원도 관련됐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국가경쟁력 강화 국회 사령탑 장재식 의원(오늘의 인물)

    국민회의 장재식 의원(서대문을)은 당내 손꼽히는 경제통으로 통한다.재무부 세제과장과 국세청 차장,한국주택은행장을 거쳐 실무에도 무척 밝다.대정부 질의나 상임위에서 장의원의 송곳 같은 논리력이 늘 빛을 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장 의원은 30일 출범한 국회 국제경쟁력 강화 및 경제제도개선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24명의 의원들이 포진된 총괄소위 등 4개 소위를 이끌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내 총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장 의원은 취임 일성에서 『국가의 경쟁력 향상은 모든 부문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단편적인 대증요법으로 특정분야의 문제점만 개선하는 것으로 불가능하다』며 특유의 「조화론」을 피력했다.아마 7단으로 한국기원 이사장을 역임한 그의 바둑철학(조화와 순리)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에 관심이 높다.『자금난과 인력난 기술난,정부규제 등 중소기업의 4중고를 해소시킬수 있는 특단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얼마나 확고한 의지와 애정을 가지고 접근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의원은 80년 당시 친형인 영식씨(현 뉴욕주립대 교수)가 김대중 총재의 정책자문역으로 활동한 관계로 공직에서 물러나는 아픔도 있었다.그러나 그후 논설위원(서울경제신문)으로 필봉을 휘두르며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14대 민주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했다.국회 연구단체인 조세정책 연구회를 이끌며 한·EU의원 외교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 “교육이 기가막혀…”/서울시 교육감 선거 매수 파문

    ◎뇌물선 풍조 교육계까지 만연/수표추적 피하려 만원다발 전달 소문으로 떠돌던 서울시 교육감 선출과정의 금품수수설이 검찰의 수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미래의 주인공인 2세 교육을 책임진 교육위원들마저 돈으로 표를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뇌물풍조가 교육계에도 독버섯처럼 퍼져있다는 단면을 극명히 보여줬다. 교육개혁의 와중에서 터져 나온 것이어서 교육계에 대한 사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지난 6월말 서울시 2대 민선 교육감 선출을 둘러싼 선거과정에서 금품수수설에 대한 정보를 입수,내사에 착수한 끝에 서울시 교육위원 5명을 구속했다. 교육감으로 당선되기 위해 거액을 뿌린 진인권 교육위원은 신정여상 등 4개 학교를 운영하는 인권학원의 전이사장이나 실질적인 경영주이다.지난 해 9월 서울시 교육위원으로 선출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의 겸직금지 조항에 따라 이사장 자리를 친형에게 물려줬다. 진씨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6명의 교육위원에게 각각 5천만원을 건넸다. 돈을 건네는 수법도 지능적이었다.금융실명제에 따른 수표추적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모두 1만원짜리 현금으로 마련,쇼핑백에 담아 교육위원들에게 직접 건넸다. 뇌물을 받은 교육위원 중 2명은 처음 책인줄 알고 받았다가 이튿날 돌려줘 처벌을 면했다. 돈을 받은 4명의 교육위원 가운데 심영구씨는 5천만원을 안방에 고스란히 보관하다가 검찰에 압수 당했다. 그러나 진씨가 교육감후보에 출마했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돌연히 후보를 사퇴한 점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진씨는 그러나 투표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돌연히 『이같은 혼탁한 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후보를 사퇴했다. 진씨가 갑자기 사퇴한 배경에는 후보들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진씨는 지난 6일의 교육감 선거 1차투표에서 2표를 얻었다. 구속된 5명은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교육위원직이 박탈된다. 검찰은 진씨의 이러한 뇌물제공이 교육감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진씨가 사퇴하며 특정인을 밀어주고 대가를 받은 혐의 점을 적발하지 못했으며,따라서 교육감 선거 무효소송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으로 비리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 수사를 확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김정일 측근 전진배치/호위사령관에 사돈 장성우 전격 발탁

    ◎동생 김경희 경제정책검열부장 임명 북한의 김정일이 혁명1세대인 이을설 호위사령관을 최근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 관리총책으로 보임하고 후임에 장성우3군단장을 발탁하는 등 일부 친위세력을 권력핵심에 전진배치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혁명1세대로서 지난해 10월 원수로 승진한 이을설 호위사령관이 최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 총책임자라는 상징적 직책으로 밀려났으며 김정일의 경호실장역할을 하면서 평양주변 군지휘권까지 가진 막강한 자리인 호위사령관의 후임에 장성우 3군단장이 보임됐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조직을 재편,기존의 당산하 22개 부서를 18개 부서로 개편했는데 경공업부와 경제계획부가 통합된 경제정책검열부장에 김일성의 장녀이자 김정일의 친동생인 김경희 전 경공업부장이,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는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임명되는 등 김정일 친위세력이 권력핵심에 포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장성우는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의 친형으로 알려져 있다.〈구본영 기자〉
  • 말의 반환/이강숙 예술종합학교 교장(굄돌)

    『고향의 만수아저씨가 돌아가셨대요』 집사람의 전화 목소리는 떨렸다.만수아저씨는 먼 친척이다.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라 아내의 가슴은 떨렸다. 일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가까운 인척이 죽었다고 해도 신경이 쓰여지지 않을 정도로 바쁠 때가 있다.그래서 만수아저씨의 부고소식을 듣고 나는 그냥 『응,알았소』라고만 했다.사람이 죽었다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던지 아내는 『고향으로 무슨 연락 같은 것을 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다.나는 『알아서 하겠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만수아저씨의 죽음에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나,사람이 죽었다고 할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지금 어쩌겠나」 싶었다. 하던 일을 끝내고 집무실에서 혼자서 눈을 감았다.만수아저씨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생전에 자주 만나지 않던 얼굴이지만 확연히 기억되었다.제사때나 명절때 가끔 만날 수 있었는데,만수아저씨는 언제나 주변에서 맴돌다가 사라져버리는 사람이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만수아저씨의 친형은 아직도 살아 있다.동생이 먼저 죽은 셈이다.죽음에는 선후배가 없다는 농담이 생각났다. 나는 근년에 어머니의 죽음,장모님의 죽음,사돈의 죽음,후배·친구의 죽음 등을 경험했다.생각하면 모두가 기막히는 사건들이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수아저씨의 죽음이 다른 어떤 죽음보다 나를 슬프게 한다. 만수아저씨의 죽음 앞에서 그의 삶을 유추해보았다.만수아저씨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삶은 말로 요약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의미 있는 삶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인간 일반의 입장에서 보면 만수아저씨의 삶은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삶이 된다.태어나서 웃고 울고 먹고 자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한 세상 살다 간 삶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나는 그의 삶을 말로 요약되는 삶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말로 요약이 될 수 없는 그의 삶을 축복해주고 싶어서 하늘에다 말의 반환권을 요구하고 싶었다.
  • “북한경제 파탄… 체제붕괴 시간문제”/귀순 정갑렬·장해성씨 문답

    ◎주체사상에 환멸… 지식인들 귀순 필연적/식량 구하려 중국행 열차타기 “전쟁 방불” 북한 과학자 정갑렬씨와 방송작가 장해성씨는 7일 상오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귀순경위와 북한의 생활실태 등에 대해 낱낱이 폭로했다. ­김정일의 동생 평일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인민들 불만 팽배 ▲장=72년 김일성대학에 입학,김평일과 대학을 함께 다녔다.그러나 그는 경제학부,나는 철학부에 다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고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김평일은 곁가지」라는 등의 주변예기로 보아 김평일과 김정일이 정상적인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남한은 대통령선거 등을 통해 국가수반을 바꿔왔는 데 북한은 김일성의 장기집권에 이어 김정일이 집권하고 있다.북한 주민은 남한의 이같은 정치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장=북한 주민은 생활고와 식량난으로 정치에 대해 생각 할 겨를이 없다.그러나 예년보다 생활이 더 어려워지자 사람들 사이에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김정일체제에서는 못 살겠다는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 ­최근 북한 상류층의 귀순이 늘고 있는 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허튼소리가 반세기동안 지속됐다.이젠 일반인도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북한체제가 반인민적이며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다.스스로 올바르게 판단 할 수 있는 지식층의 귀순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94년 7월 김일성사후 북한이 남한 정부와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는. ○새달 승계 가능성 ▲장=김일성사후 남한에서「조문단 파견」「김일성분향소 설치」「갑호 비상경계령 선포」등의 문제가 대두되자 이에 화가 난 북한 지도부가 지시한 것으로 안다. ­권력승계 시기는 언제로 보는가. ▲장=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김일성사후 추대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했으나 지금까지 연장됐다.김정일이 3년상은 치러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올해 7월에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경제적인 상황이 워낙 좋지않아 어려움이 있다.공식 승계는 안했지만김정일이 현재 모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도 공식승계가 늦어지는 이유다. ­북송교포 출신으로서의 생활 및 통제상황은 어떤가. ▲정=나는 지난 59년 제1차 북송때 처음 북으로 갔다.당시 북송은 일본 적십자사에서 주도했으며 아버지가 조총련 일을 맡고 있어 우리 가족7명은 본보기로 1차로 귀국했다.북송교포는 정치·경제적으로 차별대우가 심해 처음에는 군복무도 불가능했다.조총련 간부자녀만 일부 사회진출이 가능했다.70년대 이후 일본에 있는 교포가 북한을 방문해 가족들의 생활을 보고 조금 나아지기도 했으나 일본에서 돈을 보내줄 친척이라도 없는 사람은 원주민보다도 궁핍한 생활을 했다. ­북한 붕괴시기와 반체제 움직임은. ▲장=북한은 틀림없이 붕괴된다.왜냐하면 상층부와 인민간의 모순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북한체제를 이끌어온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인민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그동안 주체사상을 믿어왔지만 지금까지 나아진 것은 없고 인민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고위군관을 국가 보위부에 보냈다는 이야기나,6군단과 7군단이 교체되는 것 등이 반체제 움직임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중국을 거쳐 탈출했는 데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인민의 생활상은. ▲장=중국으로 가는 열차는 식량을 구하러 나오는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열차를 타기 위해 차창을 깨고 들어가기도 하고 변소칸 조차도 5∼6명이 들어 서 있다.과학자인 나도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쌀이나 강냉이배낭 위에 앉아 있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중국인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시피하는 사람 얘기도 들었다. ­구체적인 귀순동기는. ▲장=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찬양하는 고정 연속드라마를 위해 취재를 하던 도중에 김정일의 출생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으며 그가 백두산이 아닌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는 것 등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이러한 행동이 국가보위부에 적발돼 남한으로의 귀순을 결심했다. ○꿈도 휘망도 없다 ▲정=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다만 생명의 위협을 느껴 귀순한 것은 아니며 수십년동안 북한에 살면서 북한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에 환멸을 느꼈다.먼저북한의 귀국동포에 대한 차별대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경우 일본에서 열과 성을 다해 조총련 활동을 한 뒤 북한에 송환돼 귀국 30년동안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친형도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우수한 성적을 얻고도 귀국동포의 자녀라는 이유로 불합격했다.나 역시 김일성대학 물리학부 교수들의 추천으로 이 학과 교원이 될 수 있었는 데도 같은 이유로 임용되지 못했다.또 현 북한체제아래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과학자로서 꿈도 희망도 장래도 없다고 판단했다.〈이지운 기자〉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박갑천 칼럼)

    옛날에는 시묘풍습이 있었다.어버이가 돌아가면 상주가 묘서쪽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모셨던 일이다.윤국형의「문소만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한이후 조선조로 와서도 효심 깊은 사람들이 본받았다고 써놓고 있다.시묘하는 효성에는 호랑이가 감동한다는 설화도 적잖다.상주와 친구가 돼주면서 등에 태워 심부름도 가고 기운 잃지않게 산짐승을 잡아다 바치기도 한다. 설사 시묘는 않더라도 부모상을 당하면 3년동안 검소하게 살아야 했다.먹는 것도 죽 뿐이니 애통함과 영양부족으로 죽는 경우도 생겼다.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그런 얘기들이 적혀있다.영의정을 지낸 홍섬도 그런사람.그는 어머니가 아흔이 되자 돌아갈날에 대비하여 미리부터 먹는 것이 가년스러워졌다.3년상을 치르자 이내 죽는다. 유극신도 그렇게 죽고 필자 유몽인의 생질인 최은도 어머니 여의고서 비실비실 죽는다.그걸 해망쩍다고 탓할 일이겠는가.그래서 정승지낸 정광필이『우리집은 효자를 원치 않노라』고 말함으로써 성현한테 죄를 지었다는 비난도 일었던 모양이다.하지만 이 얘기를 소개하는 유몽인은 『부모된자 이 말이 없지못하리라』면서 정광필을 편들어주고 있다. 「지나친형식」이라는 시비가 따를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효의시절이 있었다.이색도 그의「목은집」에서 휴가(상을 치르게하면서 조정이 주는 말미)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무를 보았다』고 자탄하고 있는데 하물며 오늘날 부모상 때문에 공무를 오랫동안 젖혀둘수 있겠는가.다만 시묘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효의 정신이 희미해져 있는 오늘을 되돌아 보자는데 그뜻이 있을 뿐이다.공원묘지의 어버이 누운자리를 묻고선 가보지 않았다는 얘기도 듣는 세태 아닌가. 「효경」에는 오형의 종류는 3천가지이지만 그죄에 있어서는 불효보다 더 큰게 없다고 써놓고 있다.「부모은중경」은 그「큰죄」에 대한 징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아비무간지옥에서 무쇠뱀과 구리개에 의해 받는 고통등등….그건 믿거나 말거나로 친다더라도 효를 그렇게 공리적 눈길로 볼일은 물론 아니다. 8일은 어버이날.카네이션 달아드리는 날이 아니라 3백65일이 이날 같아야 한다는 뜻을 갖는 날이다.『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지나간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송강정철〈칼럼니스트〉
  • 8순 노파의 목메인 절규/박성수 전국부기자(현장)

    ◎“산불 경계령에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23일 하오 4시.동두천시청 3층 상황실. 이날 낮 발생한 동두천 소요산 줄기 산불로 순식간에 직원 7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실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상황실 복도 한켠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온 한 노파가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한채 실성한듯 그대로 바닥에 나딩굴고 말았다. 『아이구 어떻게 키운 손잔데…』 이날 희생된 녹지과 산림계 이강욱 계장(39·임업6급)의 할머니 임상천씨(88)의 목메인 절규였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잠까지 설치며 일을 하더니 끝내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군사지역으로 둘러싸인 동두천지역은 곳곳에 지뢰나 불발탄이 묻혀 있어 산불이 났다 하면 거의 손을 쓰지 못하기가 일쑤다. 지난해 1월 진급과 함께 산림계장으로 임명된 이씨는 그동안 불을 끄기 위해 5차례나 산을 누벼왔다. 평소 친형처럼 직원들을 아끼고 책임감이 강한데다 어려운 살림에 조부모까지 봉양하는 등 효성까지 극진해 부하직원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한 동네 사는 김국한씨(39)는 『이계장은 매일 새벽마다 조부모들을 모시고 약수터를 찾아 이웃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칭송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산림과장 김준만씨(59)는 『이달들어 산불경계령으로 직원들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만원권 과일상자 25개에 담겨/전씨 비자금 61억 검찰 압수

    ◎쌍용양회 창고에 보관/친인척 1천여명 명의 비자금 분산 예치·무기명 금융상품 구입·골동품 등 투자도­비자금 은닉 수법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감추기 위해 금융전문가 뺨치는 수법을 동원했다.무기명 고수익 금융상품의 구입,1천여명의 친인척 명의 차용,골동품 투자,현금보관 등이다. 기업체를 동원한 현금은닉은 이번에 새로 드러났다.검찰이 지난 2월 서울 중구 저동 쌍용양회 경리부 창고에서 압수한 현금 61억여원이 대표적이다.25개의 과일상자에 1만원권으로 담겨있었다. 이 돈은 전씨의 부탁에 따라 쌍용그룹이 93년 12월부터 94년 2월까지 협력사인 남양사 등 12개사의 대표 명의로 무기명 채권 88장,1백43억5천8백여만원을 현금화한 것 중 일부이다. 전씨는 채권이 만기가 돼 쌍용이 현금으로 찾아온 이후 93년 12월 10억,94년 6월 20억원,95년 7월 42억원 등 필요할 때마다 뭉칫돈을 갖다 썼다. 무기명 금융채권 매입은 전씨가 88년 퇴임이후 주로 이용했다.퇴임 직전인 87년 3월16일부터 89년 2월14일까지 9회에 걸쳐 산업금융채권 2백9억원을 매입하는 등 92년 5월까지 12년동안 50여회에 걸쳐 1천4백4억9천여만원어치를 사들였다. 금융채는 수익률이 높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점이 있다.만기가 되면 이자는 현금으로 찾고 원금으로는 채권을 다시 샀다.퇴임직전인 87년말쯤 금융채를 가장 활발하게 사들였다.실명제 전후인 93년 6∼8월에는 친인척의 명의로 대부분 현금으로 찾았다. 채권의 단위는 대부분 5년 만기 1억원짜리였고 한번에 20억∼30억원씩 샀다.구속 직전인 95년 10월 중순에도 5년만기 장기채권 28억원어치를 구입했다. 실명제 이후에는 채권의 현금화에 측근의 친척이나 사채업자·금융사 직원 명의를 사용했다. 93년 6∼8월엔 10억원어치의 고서와 고화도 샀다.1점당 3억여원짜리 고화도 있다.모두 선물용으로 산 것들이라,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전씨의 진술이다. 검찰은 전씨가 실명제에 대비해 1천여명의 친인척을 동원해 비자금을 감췄다고 밝혔다.친형 기환씨는 물론 이모,사돈,사돈의 매형·누이동생 등 줄이 닿는 친척은 거의 모두 포함됐다. 전씨의딸 효선씨의 시어머니는 지난 92년 8월 23억여원어치의 장기신용채권을 맡았다.나머지 친인척들에게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맡겼다. 전씨의 비서관이던 손삼수·장해석씨 등도 전씨의 비자금을 인출하는데 자신들의 친인척을 동원했다.손비서관의 경우 93년 10월 자신의 장모·형수·외가친척 등의 명의로 14억여원의 채권을 현금화했다. 전씨는 비자금을 『필요에따라 다 썼다』며 남아있는 돈은 없다고 진술했다.〈박상렬 기자〉
  • 택은 행장 신명호씨

    정부는 지난 9일 한국주택은행장에 신명호 재경원 제2차관보를 임명했다. ◎얼굴/신명호 신임 주택은행장/OECD가입 위해 금융협상 활약 행시 6회로 옛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재무관료 출신.세계은행 이사자문관,국제금융국장 등을 지낸 국제통으로 세련된 매너의 신사다.OECD 가입과 관련,금융분야 등의 협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66년 한국은행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어 30년만에 금융계에 돌아오는 셈이다.신선호 전율산그룹 회장의 친형.부인 김상희씨(46)와 1남2녀.취미는 등산. ▲전남 고흥(52세) ▲경기고 서울법대 ▲구 민자당 전문위원
  • 악역 맡은 조순형 공천심사위장(정가 초점)

    국민회의 조순형 사무총장(60)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DJ(김대중 총재)의 20억원 수수 시인으로 여야가 날마다 극을 오가는 설전을 벌일 때도,그리고 『당직자들도 해당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발표하고 대항하라』는 DJ의 엄명이 내려와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의원이다. 그런 그가 야당에선 말도 많고,탈도 많은 공천심사위 위원장을 맡았다.친형(조윤형의원)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터에 1일 저녁부터 서울 모처에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부총재급 심사위원들과 공천작업을 위한 합숙에 들어갔다. 그는 『잘 봐달라』고 찾아오는 공천희망자들에게 『나는 위원들의 이견을 조정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슬쩍 한발짝 물러서기 일쑤다.그런데도 그를 특별히 욕하는 인사는 없다.그만큼 중립적이고 전면에 나서길 꺼린다. 고 유석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그의 정치역정을 꼭 「친DJ」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그러나 구민주당 부총재로 DJ의 신민당과 통합때 합류해 「말보다는 행동을,소리)보다는 명분을 따르는」 고지식함이 DJ의 신임이유라고 한다.공천심사위원장은 꼭 총재의 신임만으로 끌고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당내 중진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으며,공천당사자의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계보간 「힘겨루기」의 혈투장이다.때로는 악역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가 이번 공천에서 어떤 조정역할을 할 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 “도박빚 받아 주겠다” 경관이 폭력배 동원/4명 구속

    【의정부=박성수기자】 경찰관이 친형의 도박빚을 받아 주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채무자를 납치해 폭행,감금했다가 검찰에 붙잡혔다.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형사 3부 이용복 부장검사는 7일 인천 부평경찰서 소년계 강현환경장(35)과 형 현기씨(41·전당포업),강경장의 사주를 받고 폭력을 휘두른 이강한(33)·나덕근씨(35) 등 4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강경장은 지난 달 21일 하오 5시 쯤 도박판에서 뒷돈을 대주던 형 현기씨가 조모씨(40) 등 도박꾼들에게 3천7백여만원을 떼이자 평소 알고 지내던 이씨 등 2명을 시켜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전치 8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다. 강경장 등은 또 조씨 등을 22일 하오 6시까지 인천시 숭의동 뉴인천호텔 객실에 감금하기도 했다.
  • 비자금 규모·세탁수법 노씨보다 “한수위”/전씨 수뢰혐의 기소안팎

    ◎1백80여계좌 조사 불구 잔액은 못밝혀/비리로 처벌된 친인척 사법처리서 제외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12일로 사실상 일단락됐다.검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지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사건 수사 결과 전씨의 비자금 조성 수법 등은 노태우전대통령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전씨 역시 노씨와 마찬가지로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주변 인물들에게 기업총수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주선케 하거나 성용욱전국세청장,사공일전청와대경제수석,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 등에게 지시해 기업인 등으로부터 한번에 2억∼50억원씩의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가 조성한 비자금은 일해재단,새세대육영회 등의 성금을 포함해 무려 9천5백억원을 웃돈 것으로 나타나 액수만을 단순 비교해 봐도 전씨가 노씨에 비해 비자금 조성에 더 적극적이었음이 입증됐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노씨 비자금 사건과 마찬가지로 군사정권 시절 정경유착의 골과 뿌리가 어느 정도 깊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검찰이수사 발표문을 「전두환전대통령 수뢰 및 부정축재 등 사건」이라고 밝힌 것도 이번 사건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에서는 기업인들의 진술에 의존,수사를 진행해 왔다.검찰은 지난달 15일부터 김종상전청와대경호실 경리과장 등이 관리·운영해 온 전씨의 1백80여개 계좌를 추적했으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수사를 계속하더라도 전씨가 보유한 잔액을 밝히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계좌 추적 수사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난도의 기법을 필요로 하는 데다 검찰의 수사의지 또한 그리 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검찰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노씨 비자금 사건 때와는 달리 언론은 물론 국민들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여러차례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전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이다.더욱이 김종상씨보다 더 많은 비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진 전청와대총무수석 이재식씨가 지난달 14일 캐나다로 도피 출국한 것도 수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전씨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핵심 측근들과 친형 전기환씨,처남 이창석씨,동서 홍순두씨 등 친인척들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전씨가 구속돼 있는 상황에서 처벌하는 것은 법 감정에 맞지 않으며 5공 비리 청산 당시 이미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장세동씨는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기업인들과 전씨와의 면담을 주선해 모두 2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한 혐의가 확인됐지만 지난 84년 12월 이전의 일이어서 공소시효가 완성돼 불입건 조치됐다. 그러나 전씨 측근 가운데 일부 인사는 축재 등 개인 비리로 5·18 사건을 기소할 때 함께 처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고속도 시속 140㎞ “과속귀향”/전씨 소환 불응­합천행 스케치

    ◎“국민위해 일했다” 선영입구 즉석 연설/영장발부 소식에 측근행동 오락가락 전두환 전 대통령은 2일 검찰의 「12·12」재수사에 결코 협조하지 않는 것은 물론 현정권과 정면대결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대국민담화문을 전격 발표하고,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전씨는 이날 상오9시 검정색 오버코트에 흰 목도리 차림으로 1백50여명의 취재진이 대기중이던 연희동 자택 앞길에서 측근들이 밤새 작성한 담화문을 낭독.전씨는 이원홍 허문도씨 등 측근이 둘러싼 가운데 8분남짓 계속된 발표 중간중간 입을 굳게 다무는 심각한 표정을 보이며 시종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발표문 낭독을 마친 전씨는 장세동,안현태씨 등 20여명의 측근·수행원과 함께 강경순국립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아 현충탑에 헌화·분향.5분여 참배를 마친 전씨는 방명록에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서명한 뒤 9시38분쯤 승용차를 타고 고향인 합천으로 쫓기듯 황급히 출발. ○…전씨의 대국민담화문은 1일 하오 2시쯤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고 16시간동안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준비작업 끝에 나왔다.전씨의 법률고문인 이양우변호사는 소환통보를 받고 장세동씨 등 측근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며 측근들은 택시 등을 이용,스위스 그랜드호텔에 집결.가명으로 예약된 호텔의 방에 모인 이변호사,장씨,안현태 전 경호실장,허문도 전 문공장관,정관용 전 총무처장관,이학봉 전 의원,박영수 전 청와대 비서실장,민정기비서관 등은 소환에 응할지를 토론한 끝에 「불응」쪽으로 결론.성명서 작업 「실무팀」은 사안별로 초안에 관한 윤곽을 제시하는 공동집필 형식으로 담화문을 작성. 이 가운데 김대통령의 역사관 제시 요구 등 「좌파운동권」 부분은 허씨가 기초적인 틀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밤 10시까지 개별적으로 연희동 전씨집에 복귀한 뒤 2일 새벽 1시30분까지 전씨와 담화문의 강도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묘지를 떠나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을 통과한 전씨의 승용차는 7대의 수행차량의 경호를 받으며 평균시속 1백40㎞의 과속으로 질주. 전씨는 하오 2시30분쯤 합천군 율곡면 기리 선영에 도착,5백여명의 주민들과 친인척들의 마중을 받고 『최근 정치상황이 복잡해져서 잘못하면 고향을 찾아보지 못할 것 같아 오늘은 선영에 인사나 하고 귀경할 생각』이라며 고향방문 배경을 설명.고향마을 청년단체인 율곡청년회 등이 내건 플래카드가 나붙은 선영입구에서 즉석 연설에 나선 전씨는 관광버스 등으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환영인파에 다소 고무되기라도 한 듯 『나는 합천 출신으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친형인 전기환씨 등과 함께 선친 묘소에 성묘를 마친 전씨는 이어 핵심측근들을 거느리고 내천리 생가에 도착,5촌 장조카인 규명씨 집에 여장을 풀었다.측근들이 합천읍내로 나간 사이 전씨의 동생 경환씨가 하오 10시20분쯤 형의 숙소로 들어가 밀담.이날밤 11시30분쯤 장씨는 읍내에서 전씨에 대한 영장발부 소식을 듣고 『역사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는 등 김영삼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말을 하고 기자들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제의했다가 『그냥 잠이나 자자』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
  • “창간 50돌…” 장기 애독자 2인의 감회

    ◎서울신문이 세상보는 눈 키워 줬지요 서울신문이 22일 창간 50돌을 맞았다.그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국언론을 앞장서서 이끈다는 자부심을 지켜왔다.21세기 초일류 신문으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신문의 발돋움은 한국 언론에 새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오늘의 발전을 이루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울신문을 아껴준 독자들의 성원이 절대적이 힘이 됐다.서울신문과 희로애락을 같이 한 독자들의 「서울신문 찬가」를 들어봤다. ◎“28년 독자” 부산 대동 신금회장 이재헌씨/가장 정확한 기사·긍정적 논평에 매료 『서울신문이 변화를 꾀할 때 저도 탈바꿈을 시도했고,도약할 때 함께 비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28년 동안 서울신문을 애독해온 부산의 대동상호신용금고 이재헌(70·부산 서구 동대신동 2가) 회장.이미 미운 정,고운 정이 듬뿍 들어 삶의 마디마디가 서울신문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서울신문 기사가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며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전해주는 점도 마음에 꼭 든다고한다. 서울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8년.이웃에 살며 친형제처럼 믿고 지내던 서구 보급소 이종수 소장의 권유로 처음 구독했고,읽자마자 빠져들었다.『매사를 긍정적으로 다루는 서울신문의 제작 태도가 다른 신문들과는 확실하게 다릅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희대학의 전신인 신흥대학 법대를 57년에 졸업하고 경찰간부로 10여년간 일하다 61년 운수 사업가로 변신했다.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거의 절망하던 무렵 서울신문과 만났다. 『새벽마다 문간에 떨어지는 서울신문을 읽으며 하루의 계획을 세웠습니다.서울신문을 구독한 이후부터 사업도 이상하리만큼 잘 풀렸습니다』 77년에는 부산시의 버스운송사업 조합장으로 뽑혀 11년간 조합장을 맡았다.30여년간 키운 굴지의 5개 시내버스 회사는 장남에게 물려주고 요즘은 81년에 세운 대동상호신용금고만 직접 경영한다. 88년에는 조합원 버스회사에 5백여부의 구독을 권유,구독료의 일부를 할애받아 버스회사 직원 자녀들의 장학기금도 만들었다. 『서울신문 창간 50주년이 내 일처럼 기쁘다』는 이 회장은 『앞으로도 국가를 생각하고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달라』고 당부한다. ◎“34년 독자” 강릉 교2동 김진영씨/공직생활 25년의 귀중한 생활 동반자 『정말 축하합니다.벌써 창간 50년이라니….오랫동안 서울신문을 구독했지만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34년째 서울신문을 구독하는 김진영(55·강원도 강릉시 교2동)씨는 서울신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듯 지긋이 눈을 감는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변화가 많았지요.차분히 옛날 신문들을 뒤적일 때는 그런 생각이 더 합니다』 서울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2년 5월.군에서 제대한 뒤 강릉시 담산동에서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였다. 어느 날 다른 동네로 시집갔던 처녀가 신랑과 함께 친정을 찾아왔는데,신랑이 바로 서울신문 강릉지국장이었다.그의 권유로 서울신문 독자가 됐다. 하지만 지국이 있던 금학동에서 김씨의 담산동까지는 시오리나 돼,우편으로 하루나 이틀 뒤에야 받아봤다.당시만 해도 「깡촌」이라 마을에 신문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그 구문마저도 커다란 뉴스였다.반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는 즐거움도 컸다. 『그때부터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습니다.서울신문을 통해서 깬 것이죠』 64년 지방행정 사무관 5급 시험(현 9급)에 합격,강원도 명주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71년 강릉시로 이사했다.지국과 가까워져 비로소 「신문」을 받아보게 됐다. 불행하게도 지난 85년 출장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돼 89년 명예퇴직했다.『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신문 보는 재미와 서울신문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습니다』 그동안 지국의 총무가 10여차례나 바뀌고 지국장도 네명이나 거쳐갔지만 서울신문 사람들은 그를 언제나 어른으로 모신다.
  • 증권사 근무 아우와 공모/회사자금 빼내 주식투자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지검 특수부는 23일 김병용씨(31·교보증권 직원·광주시 북구 문흥동)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4월 삼양사 광주지점의 총무과에 다니는 친형 김병태씨(39·광주시 북구 두암동)가 빼낸 삼양사의 돈 1억1천만원을 받아 자신이 관리하는 모 증권사 광주지점 손모씨 계좌에 입금한 것을 비롯해 모두 7차례에 걸쳐 8억1천만원을 횡령,주식에 투자한 혐의이다.병태씨는 중국으로 달아났다.
  • 검찰 「인사태풍」 예고/김기수 총장 내정 안팎

    ◎송차장 등 사시 1·2회 6명 거취 관심/서울지검장 등 요직 벌써 하마평 무성 ○…검찰주변에서는 11일 하오 김기수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내부의 대체적인 예상이 적중했다』고 이번 인사를 평가. 검찰관계자들은 아울러 김고검장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송종의 대검차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 ○…사시 2회의 김고검장이 고시선배인 사시1회의 송차장을 제치고 검찰총장에 내정됨에 따라 조만간 검찰의 대규모 인사태풍을 예고. 이는 후배 기수가 검찰총장에 기용되면 선배기수의 퇴진은 물론 새 총장과 동기생들도 후속인사 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대부분 용퇴하는 것이 검찰인사의 오랜 관행이기 때문. 현재 검사장급 이상 가운데 사시2회 출신 이상은 1회의 송차장이 있고 ,김검찰총장 내정자와 동기생인 2회에는 황상구 대구·김택수 부산·김정길 광주고검장과 신상두 창원·박인수 전주지검장(사법연수원은 6회수료)등이 포진하고 있어 이들의 거취가 주목. ○…검찰관계자들은 이번 총장내정인사보다 후속인사에 더 신경쓰는 눈치. 이에 따라 이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어느 어느 요직은 누가 유력하다더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아 본격적인 인사철을 맞은 느낌. 「검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서울지검장에는 사시5회의 이원성 대검중수부장과 사시6회의 최환 법무부검찰국장이 강력히 거론되고 있고 또 다른 요직이자 「검찰의 핵」으로 불리는 검찰국장에는 사시 7∼8회 선두주자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 ○…검찰총장 내정자가 발표된 이날 하오 김도언 총장을 비롯한 대검간부들은 전원 서초동 대검청사 테니스장에서 그동안 미뤄 오던 대검구내 테니스장 개장기념테니스행사에 참석. 그러나 김총장이 복식조의 멤버로 직접 띈 이 자리에는 송차장만 빠져 대조를 이루기도. 대검간부들은 이날 일부 방송과 신문을 통해 김고검장의 총장내정사실이 이미 보도됐는데도 『오보가 아니냐』며 송차장의 낙마를 애써 숨기려는 분위기를 연출. ◎김기수 검찰총장 내정자/업무 빈틈없고 글솜씨 뛰어나 털털한 외모에 유머감각이 뛰어나다.아랫사람들에게 「친형」같이 대하나 업무에는 「빈틈」이 없다.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독서와 글쓰기를 즐긴다.부산고검장으로 있으면서 신문 고정란에도 등장,당당한 문장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89년 서울지검 1차장때 고 문익환 목사·임수경양·서경원 전의원의 밀입북사건을 수사지휘했다.법무부 교정국장때는 교정사상 처음으로 재소자 가족 집단면회제를 실시했다.부인 이상애씨(49)와 1남1녀. ▲경남 양산(55) ▲고대 법대졸·사시2회 ▲춘천·부산지검장 ▲부산고검장 ▲법무연수원장
  • 급류에 흽쓸려 입북/이종근씨 어제 귀국

    지난달 31일 두만강변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친형을 만나려다 급류에 휘말려 입북한 뒤 북한측의 조사를 받고 중국에 인도된 이종근(54·경남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씨가 17일 하오 북경발 아시아나항공 332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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