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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대통령과 안기부/“더이상 惡緣은 없다”

    ◎살해기도·납치·용공조작… “죽을고비 4번”/원훈석뒤 새긴 ‘대통령 김대중’ 삭제 지시 12일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업무보고를 받은 金大中 대통령은 감회가 자뭇 컸던 것 같다. 과거 4번의 죽을 고비와 납치사건을 거론하며 안기부와의 악연(惡緣)을 상기시켰다.그러나 金대통령은 거기에서 그치지않고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가정보원상을 주문했고,이에 대한 대통령의 지원과 역할을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안기부 업무보고와 직원 오찬이 끝난 뒤 떠나기에 앞서 안기부 경내 기념식수와 친필로 쓴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안기부 원훈석(院訓石) 제막식에 참석했다.안기부는 金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다년생 반송(盤松) 앞에 ‘국민의 나무’라고 씌인 작은 돌을 세워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거듭나는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원훈석 제막식에 참석,주위를 한바퀴 돌다 뒷면에 ‘1998.5.12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쓰인 문구를 발견했다.그는 곧바로 李鍾贊 안기부장에게 ‘대통령 김대중’을 지우도록 지시했다.“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정보기관은 영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안기부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金대통령이 야당시절 안기부의 감시,사찰,조사대상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73년 ‘도쿄 납치사건’과 80년대 ‘金大中 내란음모사건’ ‘徐敬元 밀입북사건’에 이은 90년대 선거때마다 불거진 ‘용공조작 사건’은 실제 金대통령과 안기부간의 오랜 악연을 역사로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金대통령은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과거 불행한 역사의 상징은 대통령인 바로 나다”면서 “4번의 살해 기도,납치,용공조작 등 별일을 다 당했다”고 비켜가지 않고 털어놨다. 金대통령의 안기부 방문은 처음은 아니다.야당 총재시절인 지난 88년과 96년 각각 안기부를 방문,북한정세에 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당시 이를 놓고 당내에서 숱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金대통령의 방문은 과거 오명의안기부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거듭 태어날 것을 선언하는 의미”라고 방문이유를 설명했다.
  • 金日成 사망직전 정상 회담 준비

    金日成은 사망 약 20일 전부터 통일문제에 집중적으로 매달려 있었다고 평양방송이 13일 소개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밝힌 것 가운데 가장 상세하게 사망 직전의 상황을 소개한 평양방송은 “94년 6월 20일부터 7월5일 사이에만 해도 조국통일과 관련한 수십차례의 간곡한 교시와 10여건의 친필교시를 주었다”고 전했다.94년 6월20일은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직후의 시점이어서 金日成이 정상회담 준비를 진두 지휘했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남북 정상회담 석상에서 金日成은 자신이 구상한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민족대단결 원칙에서의 통일 논의 등을 제의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DJ 소장품 실업기금 바자에/국민회의 4월말 개최

    ◎구두·넥타이·친필휘호·지팡이·시계 등 출품/연예인 등도 대거 참여 11억 조성 목표 ‘金大中 넥타이’‘金大中 시계’를 일반시민들이 갖게 될 듯하다.국민회의는 30일 간부회의를 열어 실업대책기금 마련 바자회를 개최,金大中 대통령의 소장품도 출품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행사는 대략 4월말쯤으로 계획하고 있다.金대통령의 양복과 구두,넥타이,지팡이,친필휘호,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책자와 서화 등도 경매에 부칠 방침이다.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소속의원들과 연예인,스포츠 스타들도 참여해 의류나 사인엽서,사인볼 등을 판매한다.국민회의는 이를 위해 車範根 월드컵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미국 및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朴贊浩,宣東烈,李鍾範 선수,그리고 국내 프로농구 선수들을 상대로 교섭중이다.가능하면 많은 ‘스타’들을 1일 도우미로 활용,시민들의 참여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국민회의는 이번 바자회를 통해 11억원 정도의 실업대책 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액수도 중요하지만 실업 극복을 위한 범국민적의지를 다지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 행사를 기획한 薛勳 기획조정위원장의 설명이다. 金대통령에게는 이같은 아이디어가 趙총재대행의 당무보고때 정식 건의될 예정.“사전 양해는 없었지만,金대통령께서도 흔쾌히 협조(?)하지 않겠느냐”는게 기조실 당직자의 기대다.
  • 北風 파장­거명된 정치인들의 辯

    ◎“조작·왜곡” 李大成 파일 내용 부인/朴尙奎 부총재­북경에 가지도 않았는데 공작원 접촉이라니/趙萬進 위원장­허동웅씨는 단순통역일뿐 北 간첩 아니다/鄭在文 의원­安炳洙 우연히 만나… 360만불 전달 턱없어 검찰이 ‘李大成 파일’에 거명된 정치인들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당사자들은 24일 문건내용이 조작 또는 왜곡됐다며 관련사실을 전면 부인했다.이들의 변을 정리한다. ◇국민회의 朴尙奎 부총재측▲문건내용=97년 8월 북경에서 북측 공작원과 수차례 접촉.▲소명=문건은 조작된 것이다.97년 8월에는 북경에 가지도 않았다.북경은 10월24일 부인과 함께 당을 대표해 구신한국당 崔炯佑 고문을 문병하기 위해 단 하룻동안 다녀온 것이 전부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측▲문건내용=97년6월 ○○○으로부터 ‘흑금성’ 朴采緖가 여의도 커피솝 등에서 9차례 鄭의원을 접촉.▲소명=제보자로 자처하며 당을 찾아와 북풍조작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해 몇차례 만났다. 그가 준 일부 정보는 사실로 확인됐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金大中 후보의 친필서신을 요구하는 등 의도가 의심스러워 거리를 두게 됐다. ◇국민회의 金弘一 의원측▲문건내용=96년8월 중국 공산당 萬里 전 전인대상무위원장 아들의 방한때 金大中 후보의 일산자택에서 통역을 가장한 북측 공작원(허동웅)과 사진촬영.▲소명=萬里 위원장 아들 일행과 일산자택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사실이나 통역원(허동웅)이 북측 공작원인 줄은 몰랐다.(안기부 조사결과 허동웅은 북측 공작원이 아닌 중국동포로 확인됨) ◇국민회의 千容宅 의원측▲문건내용=鄭東泳 의원의 소개로 97년 6월이후 여의도의 한 아파트등지에서 흑금성 朴采緖와 접촉.▲소명=북풍대책팀장으로서 朴씨가 안기부 직원임을 확인하고 몇차례 만났다.朴씨의 정보중 대우 金宇中 회장의 방북설이 사실로 판명되는 등 신빙성이 있어 양심선언을 유도했다. ◇국민회의 趙萬進 인천부평을위원장측▲문건내용=중국 조선족 허동웅씨를 金大中 후보 등에게 소개.▲소명=許씨는 96년8월 중국 만리 상무위원장 아들이 방한했을 때 단순한 통역으로 따라왔다.허씨는 간첩이아니다. ◇한나라당 鄭在文 의원측▲문건내용=지난해 11월20일 북한 安炳洙 조평통부위원장을 만나 金大中 후보에 대한 북풍을 일으켜주는 대가로 3백60만달러가든 가방을 전달.▲소명=말도 안된다.3백60만달러를 담으려면 가방이 적어도 3개는 있어야 한다.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주고 받았을 뿐이다. ◇한나라당 李明博 전 의원▲문건내용=지난해 북경에서 북한측 인사와 수차례 접촉.朴采緖 “정재문과 이명박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소명=지난해 8월 중국공산당 조직부장 초청으로 금강산개발사업 협의차 북경에 간 적은 있으나 북한측 인사를 만난 적은 없다.
  • 문건 거명 정치인 ‘유탄’ 안맞을듯

    ◎안기부 전 간부 자기방어 차원서 조작 가능성/허위내용 많고 실정법 저촉과는 상당한 거리 북풍수사가 권영해 전 안기부장 소환조사로 정점을 향해 달리면서 안기부 비밀문건에 거명된 여야 정치인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기부 문건에 거명된 여야정치인은 대략 12명선.한나라당 정재문·정형근·박관용 의원과 이명박 전 의원,국민회의 천용택 국방장관과 박상규·정동영·김홍일 의원,조만진 사무부총장,구 평민당의 최봉구 전 의원 등이다.파문의 발단이 구여권의 ‘북풍공작’여부인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권전부장 등 수사선상의 안기부내 인사들이 자기방어 차원에서 문건을 조작·변조해 유출했을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일단 진상규명 차원에서 필요할 경우 거명된 인사들을 참고인 형식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문건의 관련내용이 대부분 신빙성이 없거나 위법여부와는 거리가 멀어 형사상으로 문제될 사안은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판단이다.예로 한나라당 박의원은 구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을 문병차 중국베이징을 방문한 것이 북측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정동영 의원도 “제보자를 자처한 흑금성 박채서씨가 김대중 후보의 친필서신을 요구하는 등 행동이 수상해 접촉을 중단했다”고 밝혔으나 문건에는 9차례 접촉해 모종의 거래를 한 것처럼 묘사돼 있다.문건에 북측 인사와 찍은 사진이 실린 김홍일 의원은 “중국의 만리 전 전인대상무위원장 아들의 방한때 함께온 조선족 통역인으로 북측 공작원은 아니다”고 해명했다.360억불 수수설의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 역시 이미 안기부가 혐의없음 판정을 내린 상황이다. 결국 비밀문건은 대개의 사안을 필요에 따라 부풀렸거나 조작한 흔적이 짙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문건을 열람한 국회 정보위의 한 국민회의 의원은 20일 “문건은 북풍의 실체를 담은 것이 아니라,어떤 목적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황들을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주장을 종합할 때 문제의 문건은 일단 신빙성이 낮고 따라서 사정당국의 수사도 정치권까지는 확대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북한주민 사전접촉승인 여부 등 실정법 저촉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으나,이 역시 북풍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면 사법처리 수준으로 비화되지는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 ‘대북 커넥션’문건 어떤 내용 담겼나

    ◎96년∼올 2월 대북접촉보고 간추려/북의 대선전 평가·이인제 후보측 지원요청 포함/당시 야에 이중첩자 투입 등 믿기 어려운 내용도 안기부와 정치권의 ‘북풍공작 커넥션’의혹을 담은 극비문건이 17일 공개됐다. 이 문건은 안기부 이대성 전 해외조사실장이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 등에게 전달했다.아직 그 진위가 확실히 가려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문건은 96년부터 금년 2월까지 안기부측의 대북접촉동향보고를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이전실장이 ‘정치적 의도’ 아래 수집한 안기부 공작원들의 방대한 ‘정보보고’로 200쪽 분량이다.특히 ‘4­1’ ‘4­2’ ‘7­1’ 등의 표시로 주요 보고처에 보내는 안기부의 내부보고서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겨레신문 등에 따르면 이 ‘해외공작원 정보보고’는 몇가지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특히 안기부측이 대북 이중첩자인 일명 흑금성을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측에 침투시켰다는 대목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 공작원을 통해 김대중·이인제 후보 등 야당후보쪽이 북한과 접촉하도록 유도했다는 얘기로 귀결됐기 때문이다.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신당쪽 측근인사를 중국 베이징으로 데려가 북한쪽 인사와 상봉토록 시도했다고 한다.또 국민회의쪽 인사에게는 김대중 후보의 친필메모를 작성해 줄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케이스를 포함하고 있다.즉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과 북한 김정일측의 대선 커넥션 ▲김정일 정권의 대선과 김대중에 대한 평가 ▲이인 제후보진영의 지원요청 의혹 ▲언론인의 오익제 비디오테이프 반입 ▲96년총선 북풍의혹 등이 그것이다. 가장 구체적인 내용은 정의원이 대선전인 11월20일 중국 북경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조평통 안병수 부위원장을 만나 북풍조작을 시도했다는 주장.정의원은 이때 ‘북풍을 불게 해달라’며 3백60만 달러가 든 것으로 보이는 돈가방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측은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유보적 반응이었다고 기술돼 있다.북측의 안병수­전금철 부위원장이 커넥션에 연계됐다는 보고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문건에는 정의원이 누구와 연계돼일을 추진하는지 나타나 있지 않다.당시 한나라당에 대한 내용도 언급돼 있지 않았다. 문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특히 이인제 후보와 관련이 있는 언론인 조모씨가 안병수 부위원장 등을 만나 “이후보를 도와 달라”고 요청한 대목도 나온다.하지만 지원방식이라든가 돈을 주었다는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 부금 조선족의 깨어진 꿈(흑룡강 7천리:20)

    ◎한·중 합작 삼강평원 개발 중단으로 허탈/94년 양국 관심속 화려한 기공식/완공땐 1억1천여만평이 옥토로/한국서 투자 끊겨 중단… 폐허로 중한 합자인 흑룡강성 두흥농장(안중근 기념농장)을 찾아가는 나의 심정은 무거웠다. 지난 95년 7월 한국의 대륙종합개발주식회사 장덕진 회장과 함께 ‘중한농업협력의 상징’이던 두흥농장을 찾아갔던 한국 취재팀들의 마음이 한여름 열기처럼 부풀어 있었다면 2년후인 지난해 12월10일 농장답사를 떠나던 나의 마음은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계절 탓만이 아니었다.가도 가도 끝없는 만주벌판,저 멀리 지평선에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불타던 두흥농장이 불과 3년 후인 오늘 꺼진 석양처럼 내마음에 어둠을 몰아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하얼빈에서 가목사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승용차로 10시간 거리였고 가목사에서 부금까지는 승용차로 3시간 길이었다.하지만 지난해 하얼빈에서 부금까지 일급 도로공사가 완공돼 하얼빈∼가목사가 승용차로 4시간,가목사∼부금은 1시간30분으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상오 9시에가목사를 떠난 우리는 부금시 20㎞ 못미쳐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부금시 서안향 선풍촌으로 갔다.큰 길에서 15리 떨어진 선풍촌은 벽돌집과 초가가 반반인 22가구의 아담한 동네였다. 촌장 최학봉(31)은 말했다. “우리 마을은 77년에 섰습니다.그보다 2년 전엔 두림향으로 이주해서 집을 짓고 논을 개간했는데 그곳 땅이 염질인데다 못의 물을 관개해야 했는데 수원도 부족해 2년을 살고 이곳으로 옮겨왔지요.몇해 전에 두흥농장이 서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한·중서 5천여명 참석 성황 선풍촌의 이현준씨(42)는 자식이 둘 있는데 30리 떨어진 향소재지의 서안학교에 다닌다.66세인 노모는 셋집에 살고 있는데 그는 두집살림에 들어가는 돈보다 한식구가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 안타깝고 모친한테 불효스럽다고 했다.지난 92년 4월17일 하얼빈에서 있은 중한합자 삼강평원농업개발유한회사 개업식에서 장덕진 선생은 임직원 50%를 조선족으로 하겠다며 조선족들이 적극 성원해 주고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 말이 신문에 실림으로써선풍촌 사람들은 손꼽아 두흥농장의 개업을 기다려 왔다.선풍촌의 1인당 연간수입은 2천500원.농촌치고는 꽤나 부유한 곳이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에 부모들 마음이 쓰리다고 한다.6리 밖에 학교가 있지만 길이 없어서 논둑길로 오가는데 여름이면 진창길을 맨발로 오가야 하기 때문에 모기들의 성화에 다리가 퉁퉁 붓는다는 것이다.또 한족학교라서 조선글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는 것이다. “농장이 서면 조선족들이 많이 모일테고 한국농장이라 한국어학교도 세워줄 것이라 믿었지요.장덕진이라는 분은 부금시 한족 중학교에 10만달러를 증정했으니 동포를 위해 학교하나 못 꾸려 주겠는가 하는 생각들이었지요” 그로부터 2년 후인 94년 7월5일엔 중한합자 부금두흥농장 기공식이 있었다.부금시 중·소학교 학생과 시민 5천여명이 모인 그날 기공식장에는 흑룡강성 손괴문 부성장,중국국제상회 서대우 부회장,중국국제우호연락회 진화 부회장,그외 국가·성·가목사시와 부금시의 책임자들이 참가했고 한국측에서는 한국대륙종합개발주식회사 회장이자 중국 흑룡강성 정부의 경제고문인 흑룡강성 삼강평원농업개발유한회사 장덕진 이사장,한국대륙산업개발회사 이대영 회장,대우 이희원 대표이사,이동호 전 내무부장관,중국주재 한국대사관 조상훈 공사 등이 참가했다.그리고 중국 국무위원 진준생과 한국 이영덕 국무총리 등이 축전을 보내오기도 했다. “하오 2시에 기공식이 시작됐는데 중국 국가와 한국 국가가 울릴때 눈물이 나더라구요.시 당서기 한인이 기공식을 선포하자 수천개 고무풍선이 하늘로 날고 폭죽소리가 하늘땅을 진동했습니다” 장이사장과 손괴문 부성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인 전기운 외교부장이 친필로 쓴 ‘두흥농장’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제막했다.당시 중국정부에서는 이 합작을 대단히 중시,이붕 총리도 여러번 문의했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중국 정부와 흑룡강성 정부가 두흥농장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게 된 배경은 기존의 국영농장들의 기계화 수준이 낮고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외국과의 합작투자를 희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흥농장은 부금시에서 동남으로 약 35㎞ 떨어져 있다.두림진까지는 포장도로가 아니어도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두림진에서 두흥까지 가는 20여리 길은 험했다. 96년 11월 농장건설 완수를 선포하는 대회를 가지기로 했었는데 한국에서의 투자가 끊겨 중단됐다.원래의 계획대로 진척되었다면 눈으로는 끝을 잴 수 없는 넓디 넓은 옥토가 되었을 것이다.자그마치 1억1천4백만평,여의도의 130배나 되는 엄청난 크기다. ○‘개발사업 안내도’만 쓸쓸히 농장의 임시본부가 자리했었던 곳에 도착하자 ‘한중합자 삼강평원두흥농업종합개발사업 안내도’라고 쓴 거대한 현 황판이 쓸쓸히 서 있다.기공식을 가지면서 세웠다는 현 황판은 당시 합작자들의 뜨거웠던 머리를 그대로 시사해 주고 있었다. 거창한 사업이었다.그런데 그것은 지금 자금난 때문에 꿈으로 남았다.벽에 ‘1977년 8월1일’이라고 쓴 빨간 단층 벽돌집으로 다가갔다.문화대혁명 후기에 지은 집임을 알 수 있었다.집앞 널따란 마당에는 ‘대우’라는 빨간글자가 선명한 포클레인 7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농장 공정처가 자리했던 곳이라고안내자가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총성이 울렸던 흑룡강 땅에 의사의 이름으로 된 농장을 세운다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두흥농장­그것은 한마당의 꿈이었다.그리고 농장과 운명을 같이해 온 조해산씨와 같은 조선족들한테는 한마당 악몽이었다.
  • 김정일 일가 우상화 작업 가속/백두·금강산 등 명산 크게 훼손

    ◎눈에 잘 띄는 기암괴석 등 절경지 390여곳/찬양문구·체제선전·친필글씨 마구 새겨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북한의 명산들이 김정일 부자와 김의 생모인 김정숙을 찬양하는 우상화 작업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일 일가의 우상화를 위해 집체보다도 더 큰 글자로 김정일일가 찬양문구나 가요,친필글씨,체제선전 구호 등을 눈에 잘 띄이는 기암절벽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훼손되고 있는 산들은 백두산을 비롯 금강산,묘향산,구월산,칠보산,수양산,약산 등 북한의 명산이 총망라되고 있으며 최근까지 3백90여곳에 2만여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까지 2만여자 새겨 가장 최근의 경우만 해도 구월산의 바위에 우상 글귀가 새겨졌다.북한은 지난 23일 김정일의 구월산 시찰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김정일 찬양글귀를 새기고 제막식 행사를 가졌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이 방송은 지난 5월의 구월산 유원지 건설현장 시찰을 기념해 구월산성으로 오르는 갈림길 우측 오봉바위에 ‘서해명승 구월산 김정일 1997년 5월1일’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고 전했다.이 글귀의 글자당 높이는 13m,너비가 5.5m,획의 깊이는 0.5m이다.이와 관련,중앙방송은 “서해 명승이 자연경치에 어울리게 조형 예술적으로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된 노동당시대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 국보”라고 주장했다. 구월산에 앞서 금강산에도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 출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찬양글귀가 새겨져 지난 18일 제막됐다.국지봉의 한 바위에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이라고 씌어진 글귀의 글자당 크기는 높이 4m,너비 3m이고 김정숙이란 이름의 글자당 높이는 6m,너비는 5m라고 중앙방송은 전했다. ○글자 높이 14m나 김정일 일가의 우상화 작업으로 자연이 훼손된 대표적 사례는 백두산의 정일봉을 들 수 있다.북한은 지난 87년 김정일의 47회 생일을 맞아 해발 1천7백91m의 봉우리를 ‘정일봉’이라고 개명하고 이 일대를 ‘백두산 밀영’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88년 11월 글자당 60t의 화강석에 ‘정일봉’이라는 글자를 새겨 봉우리에 설치했다.다른 지역에서는 자연바위에 글자를 음각했으나 정일봉만은 기존바위를 깍고 다듬은 후 다른 곳의 화강석에 글자를 새겨 이곳에 붙이는 아주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설치됐다. 금강산도 지난 90년부터 훼손되기 시작했다.북한 당국이 노동당 창건 45주년을 맞아 ‘조선의 영광,민족의 자랑 김정일’이란 찬양글귀를 새긴 것이다.이 글귀의 글자당 크기는 높이가 무려 14m,너비는 9m이며 김정일이라는 이름은 글자당 높이가 18m에 너비는 13m로 새겨졌다.또 94년엔 외금강의 옥녀봉 대형바위를 가로 세로 각각 35m로 다듬은 후 사망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귀를 새겼다. ○충성 결의모임 등 개최 묘향산은 이들 산보다도 더 일찌기 훼손됐다.북한당국은 81년 5월 김정일이 묘향산을 등정한 기념해 용연폭포와 산주폭포 사이에 ‘묘향산은 천하절산입니다.김정일’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이 글귀는 묘향산에 새겨 놓은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높이 80m,너비 40m의 깍아지른듯한 절벽에 글자당 높이 6m,너비 5.6m로 크게 씌여있다.이밖에 우상화 글귀가 새겨진 산들이 북한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해주시 북쪽에 있는 수양산의한 바위엔 지난 72년 김일성의 60회 생일을 맞아 길이 96m,너비 15m 크기로 ‘김일성 동지 만세’라고 새겨져 있다. 북한은 이같은 우상화 글귀를 새겨 놓은 곳에서 해설모임이나 충성의 결의모임,노래모임 등을 갖도록 해 김정일 일가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고 있다.
  • 독도시설 준공식 참석 시도/조정제 해양수산 경고서한/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독도 접안시설 준공식에 참석하려다가 중간에 돌아오는 등 물의를 빚은 조정제 해양수산장관에게 지난 10일 경고서한을 보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17일 밝혔다. 이 고위관계자는 “조장관의 행동에 대해 문책·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김대통령은 유호근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조장관에게 친필서명이 담긴 경고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면서 “조장관이 이 서한을 받은뒤 김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안평대군 천자문 석각탁본첩 공개/강릉시립박물관

    조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의 친필 해 초서 천자문 석각탁본첩이 7일 공개됐다. 서울의 한 개인 소장가가 강릉시립박물관에 기탁한 이 탁본첩은 가로 17㎝ 세로 23㎝ 크기의 40쪽으로 해서와 초서로 쓴 다음 돌에 새긴 것을 탁본한 것이며 천자문 250구 1천자 가운데 1백구 4백여자만이 수록돼있다. 탁본 끝부분에 “애기필겁 명공각석 욕여동지자공지 청지”라고 안평대군의 자인 ‘청지’가 표기돼 있어 친필 석각 탁본임이 추정되고 천자문외에 필사자 미상의 왕희지 필진도 일부와 1540년에 필사한 ‘초결백운가(초결백운가)’등이 함께 수록돼 있어 탁본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 “이 총재­YS 틈새 공략” 평가/국민회의 청와대회동 득실 계산

    ◎“PK지역 반DJ정서 완화될 것” 기대/공정선거 신뢰속 대안모색 움직임 경계 국민회의는 24일 청와대회담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연말 대선과 관련, “김영삼 대통령의 ‘완전중립’입장을 확인했다”(유재건 총재비서실장,배기선 대선기획단팀장)는 점에서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자평이었다.김대중 총재 대세론 확산의 계기를 맞았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그 ‘중립확인’의 근거를 김총재의 탐색용 질문에 대한 김대통령의 답변에서 찾고 있다.“(새로운 정국 개편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반드시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거나 돼선 안된다는 생각이 없다”는등 두가지 답변이 그것이다. 나아가 이회창 총재와 김대통령 사이에 깊게 패인 틈을 파고든 것도 부산·경남지역의 반DJ정서를 누그러뜨리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본다. 이날 회담에 맞춰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과 함께 친필서신을 영부인인 손명순 여사에게 보낸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다고 국민회의측이 현재의 유리한대선판도의 변화,이를테면 반DJP연대 가능성에 대해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특히 김대통령이 이총재의 대안을 찾으려는 ‘무언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회의측은 김대통령의 공정한 대선관리자역에 대한 신뢰를 전파하고 있다.차제에 이를 기정사실화겠다는 태세다. 김대통령이 ‘무작위의 정치’를 통해 반DJP연대 움직임을 간접 지원할 여지마저 줄이겠다는 셈법이다.
  • 북 석탄공업부 지도원 민병균씨 귀순문답

    ◎위조달러 연루 소환받자 탈출/김정일,황장엽 망명후 고위층 단속강화 지시/인구감소 막으려 45세 이상 여자도 출산 장려 국가안전기획부는 15일 북한 정무원 석탄공업부 지도원인 민병균씨(48) 등 일가족 3명이 지난 6월30일 귀순했다고 발표했다. 민씨는 이날 안기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93년 12월부터 재러(노보시비리스크)석탄기업소 무역과 지도원으로 재직중 위조달러 환금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위부의 소환명령을 받고 월남을 결심했다“며 귀순동기를 밝혔다.민씨는 지난 5월3일 현지를 이탈,은신 중 국제고등판무관(UNHCR)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으며 부인 우옥희씨(47)와 딸 명옥양(15)과 함께 귀순했다. 다음은 민씨 일가족이 밝힌 증언내용. 북한 외교부는 93년경부터 외화난이 심각해지자 외교부 외화벌이조를 별도로 편성해 녹용·마약·코뿔소 등의 암거래를 통해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민씨는 95년 9월 한 외화벌이원이 마약 1㎏을 모스크바로 밀반출하여 판로를 모색하던중 자신에게 접근해 구매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을받기도 했다.최근 탈북자가 속출하자 95년경부터 국경경비대가 국가보위부에서 인민무력부로 소속을 바꿔 탈북자 색출과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황장엽씨 망명이후 김정일은 “이제는 믿을 사람이 없다”면서 검문이 없었던 당·정·군 고위간부나 예술인에게 특별 지급한 216번호판 벤츠차랑에 대해서도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민씨는 김정일이 과학기술 정보확보를 위해 지난 89년 ‘해외수집 과학기술정보 연구원’(일명 8·3연구소)의 신설을 친필로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일은 해외에 파견되는 외교관과 상사원들이 자녀를 고등중학생들로 제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인민학교 이하의 자녀의 경우 외국체류시 배운 어학을 귀국후에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때문이며 중고등학생들은 귀국후 외국어학원이나 대학에 편입학시켜 어학 전문가로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70년대부터 실시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징집대상이 부족해지자 96년10월부터 제대연한을 27세에서 30세로 연장했다고 한다.한편 인구감소를 억제하기 위해 96년경부터 45세이상 여자들에게도출산을 장려하고 간염·결핵 등의 환자 이외에는 중절수술은 물론 피임도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민씨 일가는 지난 7월1일 서울에 도착,그동안 안기부의 조사를 받으며 서울 모처에서 남한 적응생활을 한것으로 알려졌다.부인 우옥희씨는 평양시 용성담배연합회사 통계원 및 보위대원으로 활동했으며 딸 명옥씨는 평양시 통일고등학교에 재학중 러시아로 출국했다.
  • 치욕의 역사 되새겨 일본을 이기자/광복의 달 ‘의식있는 책’봇물

    ◎‘백범일지’ 이땅이 뉘 땅인데’ 등 잇단 출간/‘일본은 살아있다’선 제국주의의 음모 고발 광복절과 국치일이 들어 있는 8월.올해도 조국과 민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의식있는’ 책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돌베개)를 비롯,전후 일본부활의 상징적 인물인 세지마 류조(뢰도용삼)라는 인물의 행적을 통해 한일관계사를 조명한 ‘일본은 살아 있다’(프리미엄북스),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혜안) 등이 우선 눈에 띄는 책들.이밖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도 일본 사진작가 이토 다카시(이등효사)가 펴낸 증언록 ‘종군위안부’(눈빛),한국계 미국작가 노라 옥자 켈러가 쓴 소설 ‘종군위안부’(밀알),조계종 혜진 스님이 지은 감동실화 ‘나,내일 데모간데이’(대원사) 등 3권이 나와있다. 광복의 달에 더욱 그 진가가 빛나는 ‘백범일지’는 27년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조국광복투쟁사를 진솔하게기록한 책.53∼54세와 67세에 각각 쓴 상·하권과 정치논문 ‘나의 소원’ 등으로 이루어진 ‘백범일지’는 지금까지 20여종이 출간되었지만 정본이 없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이번에 나온 ‘백범일지’는 첫 출간본인 ‘국사원본’을 기점으로 올해로 출간 50주년을 맞는 이 책의 ‘결정본’임을 내세우고 있어 주목된다.주해를 맡은 창원대 도진순 교수는 ‘백범일지’의 정본화 작업을 위해 지난 4년간 본격적인 원전비평과 교감작업을 거쳤다.‘백범일지’의 경우 완벽한 의미의 원본은 없다.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는 지난 6월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된,백범의 영식 김신 장군이 소장하고 있는 친필본을 꼽을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42년 이후의 추가본과 ‘나의 소원’은 담겨 있지 않다.도교수는 원본을 중심으로 추가본을 발굴,그 내용을 누락없이 실었으며 기존 출간본들의 오류는 물론 원본의 잘못된 사항도 바로 잡았다. 일본 교토통신사 다나카 아키라(전중장)기자 등이 엮은 ‘일본은 살아 있다’(양억관 옮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음모의 역사를그대로 보여준다.이 책의 주인공 세지마 류조는 서른살의 나이에 일본 대본영의 참모로 태평양전쟁을 입안,수행했으며 종전 뒤에는 11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기도 한 악성 제국주의자.귀국 후 이토추 상사에 입사해 20년만에 회장에 오르는 등 경제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그는 ‘역대 수상의 산파역’‘정계 배후의 키 맨’ 등으로 불리며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나카소네 정권을 탄생시킨 막후인물도 바로 그다.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세지마는 60년대 대한 배상 비즈니스와 70∼80년대 한일 정상회담 등에도 깊숙히 관여했다.일본 제국주의의 음모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그 배후에는 전범 출신으로 이뤄진 ‘일본 우익’이 도사리고 있다.이는 종전 직후 승려 행세를 하며 태국 현지에 남아 권토중래의 날을 꿈꾸었던,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 참모 츠지 마사노부의 광신적 행태와도 맥이 통한다.“일본은 자존 자위를 위해 일어섰다.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86세의 노인 세지마.이 책의 지은이들을 비롯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같은 그릇된 역사인식은 ‘심각한 자기기만’이며 지킬과 하이드 같은 ‘인격분열’일 뿐이라고 꼬집는다.이 책은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신적 분열’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로 끝을 맺는다. ‘이 땅이 뉘 땅인데!’는 ‘독도 역사의 산 증인’인 고 홍순철 대장과 울릉도 청년들의 진솔한 나라사랑 이야기를 다룬 실화.최근 독도에 대한 주권선언 내용을 담은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존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또 지난 8일에는 울릉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이러한 시점에서 나온 이 책은 단순한 활자기록 이상의 실감을 안겨준다.독도를 지키고 가꾸는데는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 현대시인 애청의 금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5)

    ◎생가어귀엔 수령 500여년 느티나무가…/절강성 중심부에 위치한 비산비야/대시인 기리는 3층높이 방려 이채 이제 발걸음을 강소성에서 훌쩍 절강성으로 옮겼다.옛날 춘추때 같으면 오나라에서 월나라로 건너온 것이다. 금화는 절강성의 중부,그 수도인 항주에서도 남쪽으로 약 170㎞.그토록 멀리 깊숙이 나래를 편 것은 거기가 매력적인 작가로 명말 청초의 희곡가요,소설가인 이어와 중국 현대시 80년사에 가장 많은 독자를 지녔던 공산당 당적을 가진 시인 애청(1910∼1996·중국발음 아이칭)을 낳았기에 말이다. 애청은 필자가 맨처음 해후했던 사회주의 시인이다.아직도 냉전시대였던 83년1월,싱가포르정부가 주최한 제1회 세계중국어작가회의에서 만난뒤,우리는 여러차례 감격의 회동이 있었음에도 막상 그의 고향을 찾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65년간 시집 20여권 남겨 금화는 비산비야였다.금화시에서 북으로 30여㎞를 달렸을때 작은 소읍 부성을 만났다.부성에서 애청의 생가가 있는 반전장으로 좌회전할때 난데없이 하늘을 뚫을듯 커다랗게세워진 방려을 보고 나를 동행하던 아동문학가요,전 절강사대 총장이었던 장풍씨는 내 어깨를 쳤다. 과연 놀랍도록 높았다.족히 삼층 높이였다.필자가 문학기행하는 동안 처음 보는 시인을 위한 방려다.사실 애청이 이 나라 이 체제에 끼친 문학적인 지위는 이 방려의 높이에 상당했다.1932년부터 지난해까지 65년동안 벌써 스물몇권의 시집에,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란 감투도 그러했다.그러나 그의 외형적인 간판보다는 중국이 가장 암울했던 30년대와 40년대,50년대를 겪는 동안 중국인에게 민족의 긍지와 광명의 추구를 절규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서를 비장하게 무장시켰던 시인이다.특히 30년대,그의 출세작인 ‘따옌허,나의 유모여!’를 비롯해 ‘북방’‘횃불’‘태양에게’‘눈은 중국의 대지에 내리고 있다’‘거지’‘나는 이땅을 사랑한다’‘나팔수’ 등 중일전쟁때의 작품들은 모든 중국인에게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었던 민족의 감동이었다. 방려에서 서쪽으로 5리 남짓.편편한 농촌으로 차를 돌렸다.여기가 ‘반전장’이다.애청의 본명 장해징대로 여기는 장씨의 집성촌이다. 그는 여기 장씨 마을에서 대농이요,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8년 항주의 국립미술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8년동안 살았다. ○대농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차가 이윽고 마을 복판에 있는 공터에 닿았다.바로 그 앞 2층집 하얀 흙벽 까만 대문위에 ‘애청고거’라는 글씨가 붙어있다.필자는 왈칵 치미는 감개에 목이 메었다.우선 생전에 깊었던 교분때문이요,다음은 최근 10년동안 그는 매년 10월마다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던 석패의 주인공이었다는 점, 거기다가 그는 지방 토호의 아들이요,전위적인 화가였고,애국적인 당원이었지만 한 평생 울분과 불우속에 살다 간 비국의 화신이었다.사실 필자는 그의 뜨거운 눈물을 여러차례 보았다.다만 그의 만년이 순풍이었지만 그것은 욕된 안일이었다. 애청은 출생과 함께 미신의 희생물이었다.그의 명줄이 짧아서 남에게 출양해야 오래 산다는 점쟁이 말대로 그는 장씨 마을에서 10리쯤 떨어진 따옌허(대언하)’라는 빈촌,거기서 빈농으로 살아가는 조(1878∼1924)씨라는 아낙네에게 4년을 입양,다섯살때에야 부모의 슬하로 돌아왔다. 또 한번의 울분,1932년,그가 상해에서 ‘중국좌익미술가연맹’에 가입,‘춘지예술사’를 조직했다가 국민당 정부에 체포,4년이나 옥살이한 것이다.그는 비록 옥중에서 그의 출세작 ‘따옌허­나의 유모’등 많은 명작을 썼지만 국민당에 대한 설원이 깊어 그의 필명을 ‘애청’으로 정했는데 바로 애자는 국민당의 수령인 장개석의 장씨 그 초두를 가위표로 부정한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4년동안 옥살이도 또 한번은 중공이 건국한 뒤,‘중국문학예술가연맹’을 발족하고 중국 대표적인 문학지인 ‘인민문학’이나 ‘시간’ 등을 창간하고 그를 편집하는 등 활동을 펴던 1957년 뜻밖에 우파로 몰려 1978년 복권되기까지 20여년 흑룡강·신강 등 변방지역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다. 필자는 문안으로 들어섰다.목조 2층,약 80평의 생가는 입구자 구조,작은 마당 복판에는 우물,우물가 건넌방이 애청의 공부방이란다.그때 쓰던 홍목 책상과 걸상이 당년의 부잣집 흔적임이 역연했지만 벌써 70여년전 소년 장해징의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지 들리는 듯했다. 애청의 생가를 나와 뒷 터로 나갔다.거기는 커다란 연못에 500∼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인양 서있다.애청의 시집속에 나오는 ‘두그루 나무’나 애청의 그림속에 자주 나오는 고목이 바로 여기서부터 얻은 시상이요,화상임을 확인했다. ○무덤엔 황량한 풀더미만… 실상 필자가 애청의 생가를 찾은 것은 애청 문학의 발화점인 따옌허를 찾기 위해서였다.따옌허는 애청 유모가 살던 고을 이름이요,동시에 애청 유모의 이름이기도 했다.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시집온 아낙네를 그 친정 고을로 부르는 택호를 썼기 때문이다. 그 따옌허는 농촌 개조로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현지의 말때문에 그만 두고 그대신 따옌허의 무덤이 생가에서 불과 5리 떨어진 논가 작은 언덕에 있다는 것이다.귀가 번쩍 트였다.사실 말이지 따옌허같은 여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애청은 없었을지 모른다.애청이 그녀의 젖을 먹고 그녀의 두꺼비같은 손으로 지어준 밥을 먹고 자랐기에 겨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 무덤은 황량한 풀더미였다.하지만 그의 ‘대연하지묘’라는 묘표와 ‘따옌허는 나의 유모입니다.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하는 비명이 모두 당대 최고의 시인 애청의 친필로 세워졌다는 사실도 필자를 감동시켰다.
  • D­3 ‘박찬종 파일’ 태풍뒤의 판세 분석

    ◎여 경선 1강4중2약체제 지속/금품살포파문으로 지지도 한때 기복/1차투표 끝나야 합종연횡 구체화 예상 전당대회 D­3일인 17일.금품살포 파문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신한국당이 다소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박찬종 후보가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섬에 따라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따라서 금품살포설이 지닌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경선 구도를 새로 짜야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설을 뒷받침할 물증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약간의 기복에도 불구,현재의 판도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품살포 공방이 치열할 때만 해도 하강곡선을 그리던 이회창,박찬종 후보의 지지도는 16일 박후보가 친필서신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양상이다.변죽을 울렸던 다른 후보들도 16일 하오 대전 합동연설회 때부터는 금품살포와 관련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전당대회 3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회창 후보의 독주와 이인제 김덕용 이한동 이수성 후보의 2위그룹 혼전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이회창­박찬종 연대가 물건너간 상태에서 이회창­김덕룡,이한동­이수성 후보간 가능성을 보였던 합종연횡구도도 이들 후보 진영의 말을 종합해볼때 사실상 경선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1차투표에서 이회창 후보가 얼마나 득표를 하고 2위 결선티킷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경선 막바지 최대 관심사다.현재 각 진영은 1차투표 1,2위간 득표율이 10% 이상 벌어지면 2위 후보로의 합종연횡은 명분도 약하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는 공통된 분석을 내놓고 있다.이회창 후보는 과반수를 확보,가급적 1차투표에서 끝낸다는 목표이나 지금의 추세로 볼때 힘들다고 보고 40%대의 안정적 득표로 2위와의 표차를 15% 이상 벌여놓겠다는 방침이다.반면 2위 다툼을 벌이는 이인제 이한동 김덕룡 이수성 후보 등은 일단 결선티켓 확보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고정표에 부동표를 더해 2위를 노리고 나아가 1위와의 표차를 10% 이내로 좁혀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전략이다.결국 경선전 그렸던 합종연횡의 밑그림은 1차투표를 거쳐야 제 그림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 바쁜 일정속 투병 최종현 회장 위로

    ◎숙소인근 병원 입원 소식에 문병 준비/“감염우려 면회 불허”에 쾌유기원 친서 김영삼 대통령이 바쁜 정상외교 일정에서 짬을 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최종 현전경련회장(선경그룹회장)을 위로했다. 최회장은 최근 뉴욕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김대통령은 뉴욕도착직후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암전문센터의 중환자실에 최회장이 입원해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병문안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회장 가족들과 선경측은 김대통령의 방문의사를 전달받고 『폐수술후 감염우려가 있어 병원측이 가족들을 포함,누구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김대통령은 이에 뉴욕방문을 수행한 김호식 재경비서관을 통해 최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친서를 26일 상오(현지시간) 김영만 선경부회장(재미한국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전달했다. 김대통령이 친필로 직접 작성,서명한 서한에는 「최종현 전경련 회장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우리 경제발전에 더많은 기여를 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한국의 대표적 경제인의 한명인 최회장이 와병중이고,최회장의 부인이 병간호중 별세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서한전달 배경을 설명했다.
  • 발설자 언급 내용/엇갈리는 진술… 누구 말이 맞나

    ◎신한국당 김재덕씨­“집행액수 기억 못해… 결산보고서 폐기”/국민회의 오길록씨­“김씨가 자금 내역서 갖고 있다고 했다” ▲김재덕 신한국당 대전시부 홍보부장(29일 상오 대전에서의 인터뷰)=92년 대선때 민자당 경리실 대리로 있으면서 당의 이름으로 나간 공식자금은 전부 내가 관리했다.실제 집행된 돈의 규모는 자민련이 주장하는 2천6백억원의 반이 안된다.정확히는 기억이 안난다.선관위에 신고된 2백84억원보다는 훨씬 많다.홍보단·유세단·직능단 등 십수개의 선거조직에 수표나 현금으로 자금을 내주었다.당직원의 월급·활동비 등도 지급했다. 자금집행은 1일 단위로 이뤄졌다.매일 결산보고서를 썼고 대선직후 최종결산보고서를 작성했다.보고서 사본은 갖고 있다가 지난해 4월 폐기했다.선거직후 돈문제로 구설수에 오를지 몰라 대항자료로 갖고 있었다.라면상자 2개 분량의 영수증은 대선직후 관훈동당사에서 태워버렸다. 지난해 4월쯤 국민회의의 이종찬 부총재와 오길록 민원실장이 대전으로 내려와 「대선자금결산보고서」를 건네줄 것을요구했다.워낙 집요하게 요구하길래 김대중 총재의 각서와 30억원을 제공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해 그 자리를 피했다.사본도 그때 폐기했다. ▲김재덕 부장(29일 저녁 여의도 신한국당사 기자회견)=인터뷰에서 내가 「2천6백억원의 반이 안된다고 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기자가 「2천6백억원의 절반 정도되느냐」고 묻길래 「턱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실제 내가 대선 당시 얼마를 집행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각 선거조직에 지급했는데 많을 때는 하루에 10억원 정도였다.집행내용은 매일 이춘식 경리실장에게 보고했다.최종결산보고서 사본은 갖고 있지 않았다.선관위 회계보고서에 신고된 대선자금보다 많이 썼다고 한 것은 9월부터 지출한 돈을 합산했기 때문이다.지난해 2월에 이종찬 부총재,4월6일에 오길록씨가 접근,「5억원을 줄테니 대선자금결산보고서」를 달라」고 하길래 「김대중 총재의 친필각서와 30억원을 달라」고 했다.거절의 뜻이었다.오씨는 어제(28일)아침에도 전화해 「자료를 주면 언론에 이름이 나가지 않게 해주겠다」고 협박했다. ▲국민회의 오길록 민원실장(지난 29일 첫 폭로 및 30일 당무회의 보고)=신한국당 당직자 김재덕씨가 대선자금 3천억원의 1%인 30억원을 주면 증빙서류를 제시해주겠다는 제보를 받았다.지난해 4월5일쯤 민자당 중앙당 공조직이 사용한 92년 대선자금 3천1백27억원의 입출금 내역을 보관중이라고 했다.그래서 다음날 대전에 내려갔다.여러차례 접촉끝에 김씨를 만나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30억원의 현금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 하는수 없이 증빙서류를 입수하지 못했다.이번 한보사태 국정조사가 끝나면 다시 협상을 개시,올 12월 대선 직전인 10∼11월쯤 진상을 공개할 예정이었다.◇지출명세 추정액(국민회의측)△1천5백억∼1천7백억원 △홍보비 5백8억원 △교육비 1백억원 △TV 신문광고비용 75억원 △경로유세지원비 10억원 △이북5도 직능단체 지원비 16억원△15개 시도 대선출정식 경비 15억원 △연예인 유세지원팀
  • 3·1 독립선언서 등 7점/문화재 지정 사전예고

    문화체육부는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선언서(최남선 저) 등 독립운동사료 7점을 문화재지정에 앞서 28일 사전예고했다. 이날 지정예고된 사료는 ▲최남선의 3·1독립선언서 ▲전명운 소장 독립선언서 ▲상해임시정부 발간 대한독립선언서 ▲박치화 등이 작성한 하동독립선언서 ▲미주지역에 배포된 영문독립선언서 ▲간도 애국부인회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백범 김구의 친필 일기 백범일지 등이다.
  • 신한국/연말 대대적 조직다지기

    ◎김 대통령 당직자 35만명에 연하장/“불심껴안기” 서석재 의원 바쁜 발걸음/19일 청년당원 연수·첫 중앙당 후원회 신한국당이 연말을 맞아 대대적인 조직 다지기에 나선다.불필요한 대권논의는 자제하되 공조직의 역량을 높여 내년 대선승리를 위한 당력을 강화하려는 생각이다. 신한국당의 정지작업은 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서한으로 시작했다.김대통령은 10일 중앙당과 시·도지부,각 지구당의 주요당직자 35만명에게 연하장을 보냈다.개혁작업을 이끈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이라는 설명. 신한국당은 이어 13∼14일 청년조직인 「신한국청년연합」회원 750명을 상대로 천안연수원에서 연수를 실시한다.18∼21일엔 전국 253개 지구당의 당직자 1천여명을 대상으로 대선에 대비한 직무교육을 시행한다.국회 폐회 직후인 19일에는 국회에서 소속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갖고 귀향자료를 배포,본격적인 귀향활동을 지원한다.특히 이날 하오에는 이홍구 대표위원과 당3역,대권예비후보군이 대거참석한 가운데 여당사상 처음으로 중앙당 후원회를개최할 계획이다.전국을 돌며 시·도지부 사무처장 회의를 갖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당내 기독인회와 천주교우회,불교신도회 등 직능조직을 중심으로 종교계와의 관계증진을 위한 송년행사도 예정하고 있다.신한국당은 특히 불심을 끌어안는데 심혈을 쏟고 있다.국회 정각회 회장인 서석재 의원이 가교역을 맡았다.서의원은 지난 7일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조계종과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법화종등 5개 종단과 조계사·직지사·불국사·범어사 등 5대 사찰을 돌며 불심을 보듬을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신한국당은 전국 40여곳에 이르는 사고지구당에 대한 3차 조직정비에도 부심하고 있다.이달 중순부터 본격 정비에 나서 내년초까지 매듭짓는다는 계획이다.
  • 김 대통령 APEC 순방­정상회의 이모저모

    ◎14년뒤 꺼낼 타임캡슐 매설/각국정상 전원 비 전통의상 「파롱」차림/시위대비 수비크 연결도로 검문 삼엄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필리핀 수비크에서 개막된 제4차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참석,회원국들간의 무역·투자자유화 및 경제기술협력 강화방안,역내 경제활성화 방안등을 집중 논의했다. ▷수비크 도착◁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전용기인 공군1호기를 이용해 마닐라 빌라모어 공군기지를 출발,수비크공항에 도착.김대통령은 페이놀 필리핀대통령궁 의전장과 고든 수비크만 관리공사 총재등의 영접을 받은 뒤 정상빌라로 옮겨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정상회의를 준비. ▷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김대통령은 상오9시10분께 정상회의장인 정상관에 도착,페이놀 대통령궁 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회의장에 입장해 라모스 필리핀대통령과 반갑게 악수.김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은 모두 필리핀 전통의상인 「파롱」차림이었으며 김대통령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7번째로 회의장에 도착.김대통령은 필리핀 의전관의 안내를 받아 정상관내 리셉션홀로 자리를 옮겨 각국 정상과 잠시 환담을 나눈뒤 정상관 정원에서 각국 대표와 나란히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이어 APEC정상회의를 기념하는 타임캡슐 행사에 참석,다른나라 정상과 함께 21세기 시민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기념품을 담은 소형용기를 범선 모형에 넣었는데 이 내용물들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됐다가 오는 2010년에 개봉될 예정.김대통령은 「21세기 아태공동체를 기대하며」라는 제목의 정상회의 기조연설 발췌문과 「21세기 아태평화번영」이라고 쓴 친필휘호를 넣었다. ○…김대통령은 이어 열린 회의에서 APEC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와 아태공동체 건설을 주제로 기조연설. 김대통령은 『93년 시애틀회의 이래 APEC역내 무역투자 자유화는 큰 진전을 보였다』고 평가하고 이제 우리 지도자들은 이러한 자유화가 역내 기업인들의 경제활동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특히 『나는 작년 오사카회의에서 APEC를 통해 아태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한 「공동의 집」을 완성하는데 최선을 다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고 상기시키고 『이제는 「공동의 집」 내부를 실질적으로 채워야 할 때』라고 역설.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상오에는 아태공동체 질서와 세계화를 주제로,하오에는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APEC의 역동성에 대해 열띤 기조연설과 토론을 계속. 정상회의장은 주최국인 필리핀의 라모스대통령이 중앙에,그 왼쪽에는 지난해 주최국인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오른쪽에는 내년도 주최국인 캐나다의 장크레티앙 총리가 각각 자리잡았으며,김대통령은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세번째 자리. ▷정상회의장 주변◁ ○…필리핀 보안당국은 이날 수비크에 5만여명의 반대시위자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정보에 따라 마닐라에서 수비크로 가는 도로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 필리핀 군과 경찰은 21개 지점에 설치된 검문소에 장갑차와 소방차·순찰차 수백대와 1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차량들을 일일이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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