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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덕화, 기권한 류시앙에게 그림으로 격려

    유덕화, 기권한 류시앙에게 그림으로 격려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난 18일 중국 육상의 꿈 류샹(劉翔)이 남자 허들 110m경기를 앞두고 부상을 이유로 기권하자 중국인들의 격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스타들의 격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아시아 최고 스타 류더화(劉德華·유덕화)는 류샹이 경기를 포기한 18일 저녁 11시 경, 류샹의 팬카페에 직접 그린 그림으로 류샹을 격려하고 나섰다. 류더화는 그림을 통해 “우리 13억 중국인에게는 금메달보다 당신의 건강이 훨씬 중요합니다.”라며 “걱정하지마세요, 우리는 영원히 당신, 류샹을 응원할겁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림 아래에는 허들을 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는 돼지가 그려져 있으며 한켠에는 류더화의 친필 사인도 포함돼 있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역도 금메달을 차지한 천샤오민(陳曉敏)선수도 “류샹은 이미 최선을 다했다.”며 “안타깝지만 마음에 담아두어서는 안된다. 힘내라.”는 격려의 글을 남겼다. 이밖에도 중국 유명인들의 격려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중국 언론도 한 마음으로 “류샹은 이미 최선을 다했다.”, “류샹이 어서 부상을 딛고 일어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응원하고 있다. 한편 류샹은 기권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기대에 못미쳐 죄송하다. 끝까지 뛰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사진=163.com(류더화가 류샹에게 보낸 응원의 그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비틀즈의 ‘최초 계약서’ 경매 나온다

    비틀즈의 ‘최초 계약서’ 경매 나온다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Beatles)의 최초 계약서가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져 수집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EMI의 자회사 팔로폰(Parlophone)과 최초 계약할 당시 작성한 이 문서는 비공개 수집가가 소장했다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존 레논 등 비틀즈 멤버 4명의 친필사인이 적힌 이 계약서에는 멤버 4사람의 수익 배분 뿐 아니라 비틀즈의 ‘제 5의 멤버’ 역할을 했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슨타인(Brian Epstein)과의 계약도 명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링고스타가 멤버로 합류하기 이전인 1962년 1월, 드러머 피트 베스트와 함께 활동했던 비틀즈는 EMI와 첫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피트 베스트를 내보내고 ‘비틀즈 역사’를 쓴 링고 스타를 영입한 뒤 새 계약서를 작성, 진정한 비틀즈의 출범을 알렸다. 특히 비틀즈의 재능을 최초로 알아본 브라이언 엡슨타인(Brian Epstein)도 이날 정식으로 매니저 계약서에 사인해 한 가족이 됐다. 비틀즈에게 청바지와 가죽재킷 대신 특유의 상징인 정장을 권한 것으로도 유명한 엡슨타인은 계약서를 통해 “비틀즈의 의상·메이크업 및 음악활동에 관한 모든 부분을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엡슨타인은 비틀즈가 한 주에 200파운드(약 39만원)이상을 벌 경우 수익의 25%를, 100~200파운드를 벌 경우 20%를, 100파운드(약 20만원) 미만을 벌 경우 15%의 수익을 챙기겠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경매 진행업체의 관계자 테드 오웬(Ted Owen)은 “음악 역사상 매우 중요한 문서 중 하나”라며 “비틀즈 역사의 소중한 단편”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최소 25만 파운드(약 4억 8400만원)이상의 고가에 낙찰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두 아들 사인도 추가돼 있는 이 계약서는 다음달 4일 런던에서 공개 경매를 통해 새 주인을 찾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암 투병 이해인 수녀 “원더우먼될 수 있기를”

    암 투병 이해인 수녀 “원더우먼될 수 있기를”

    암 수술 후 투병중인 이해인 수녀의 희망찬 메시지가 담긴 병상 편지가 또다시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뒤 요양 중인 이해인 수녀는 출판사 샘터 직원들에게 알록달록한 편지지에 손수 쓴 글씨로 안부와 덕담을 전했고 이 내용이 월간 샘터 9월호를 통해 공개됐다. 그는 글에서 “앞으로 험난한 길(항암+방사선…)이 두렵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용기를 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는 돌아가신 모친을 떠올리며 “앞으로 저도 어머니처럼 단순,지혜로운 ‘원더우먼(Wonder Woman)’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현재의 심경을 전했다. 이해인 수녀는 “사실 너무 아프니까 좋은 생각도 잘 안 나고,기도도 잘 안 되어 세상엔 대신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을 했답니다.”는 글귀를 통해 힘든 투병생활에 대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편지는 이해인 수녀와 샘터가 맺은 특별한 인연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올해로 서원(誓願) 40주년을 맞은 수녀는 샘터에서 ‘사랑할 땐 별이 되고’,‘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꽃삽’ 등을 냈고,‘흰구름 수녀’라는 애칭으로 2005년 4월호부터 2006년 12월호까지 2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한편 이해인 수녀는 지난달에도 자신의 팬카페 ‘민들레의 영토’에 자신을 격려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친필로 남기며 근황을 알린 바 있다. 지금은 부산의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요양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민들레 시인’ 이해인 수녀,암 투병 편지 공개> 기사 보러가기
  • “고려말~조선조 인쇄문화 한눈에 보세요”

    “고려말~조선조 인쇄문화 한눈에 보세요”

    전직 경찰관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재급 유물(고미술품)들이 공개된다. 12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역사박물관은 경찰 원로인 홍두선(왼쪽 사진·80)옹이 40여년간 수집했던 전적(典籍)류 등 유물 967점(470건)을 13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홍옹은 고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모은 유물을 지난 2월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측은 수개월에 걸쳐 이에 대한 평가, 정리 작업을 마치고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육군사관학교 7기 출신인 홍옹은 중령으로 전역한 뒤 진주경찰서장, 안동경찰서장, 서울 북부경찰서장 등 전국 경찰서에 재직하면서 매달 봉급을 쪼개 문화재를 수집해 왔다. 그는 “초기에는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골동품을 수집하다 진위가 애매하고 상인에게 속는 경우도 생기면서 가짜가 거의 없는 전적류, 그중 활자본 위주로 수집했다.”고 전했다. 어릴 적 조부모에게 한학을 배운 그는 자신이 모은 전적을 박물관 유물카드와 유사한 정리용 카드에 꼼꼼하게 적어 서지학자(書誌學者)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유물에는 고려 말부터 조선조까지 인쇄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자료가 포함돼 있다. 당나라 현각(玄覺)의 수행 지침서인 영가진각대사증도가(오른쪽)는 조선 세조 때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찍은 것으로, 박물관 유물평가위원회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희귀한 점을 들어 보물 지정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송나라의 예묘행이 선(禪)을 닦는 스님들의 명언과 시문 등을 모아 작성한 도서로 1472년 간행된 진실주집(眞實珠集), 추사 김정희와 18세기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명필가들의 친필 유묵 30여점도 포함돼 있다. 박물관측은 “홍옹은 조선 최초의 활자본인 계미자본을 값이 비싸 구입하지 못했다며 여전히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금속활자, 목판본, 목활자본 등 다양한 방식의 고인쇄 문화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기증한 그의 바람처럼 그가 평생 수집한 귀중한 문화재들이 흩어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2010년 기증유물특별전을 열고 홍두선 컬렉션 도록(圖錄)을 간행하는 등 홍옹의 유물을 전시, 교육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오늘 한·미정상회담] 부시, DJ·盧와 대립 MB와 우의

    [오늘 한·미정상회담] 부시, DJ·盧와 대립 MB와 우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번째다.2002년 2월 처음 방문해 김대중(얼굴 왼쪽)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2005년 11월 방한해 노무현(오른쪽)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번 방한이 사실상 임기 중 마지막이고 보면 부시 대통령은 8년의 재임 기간 세차례 방한해 세 명의 한국 대통령과 회담하는 셈이 된다. 지난 6년에 걸쳐 3년 간격으로 이뤄진 부시 대통령의 방한은 한·미 관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의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두 정권에서의 방한은 북핵 및 한·미 안보동맹의 변화와 맞물려 양국 모두에 적지 않은 긴장과 부담을 안겨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미국 우익을 대변하는 보수정권의 낯선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질감이 적지 않았고, 한·미 양측은 현안에 앞서 정권간의 이런 심적 거리를 좁히는데 진력해야 했다. ●DJ·부시 ‘악의 축´ 발언 양국 급랭 2002년 2월 이뤄진 부시 대통령의 첫 방한은 앞서 그가 연두회견에서 북한을 겨냥해 한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전체가 급속히 얼어 붙는 상황에서 이뤄졌다.2박3일의 방한 일정을 끝내고 부시 대통령이 떠난 뒤 김 대통령은 “유난히 힘들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심적 부담이 컸다.“북한과 전쟁할 의사가 없다.”는 말로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등 나름대로 한국 정부의 우려를 달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선(先)변화를 요구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한반도는 좀처럼 해빙의 계기를 잡지 못한 채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盧·부시 두 정상 심적 거리감 실감 2005년 11월 방한에서는 주한미군의 지위변화,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문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특히 주한미군을 유사시 역외지역에 파병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회담의 긴장도를 높였다. 회담은 그러나 의외의 성과를 냈다. 북핵 해결을 전제로 6자 회담을 역내 다자안보협의체로 전환하고,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방한을 마치고 돌아간 부시 대통령이 다음 달 노 대통령에게 방한 기간의 환대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친필서한을 보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례적인 서한은 그만큼 한·미 관계와 두 정상간 심적 거리를 반증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권교체와 함께 등장한 이명박 대통령을 찾는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이런 점에서 앞서 두 차례의 방한과는 차이가 있다. 보수정권의 가치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인생철학의 공유는 두 정상의 발걸음을 비교적 가볍게 하고 있다. 다만 한·미 동맹 미래비전 채택을 다음으로 미룬 데서 보듯 임기말 대통령의 방한이라는 외교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상간 거리는 크게 좁혀졌으나, 주고 받는 웃음만큼 회담의 실질적 성과까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강진, 정약용家 유물 41점 공개

    강진, 정약용家 유물 41점 공개

    전남 강진군이 청자문화제(9∼17일)에 앞서 4일 조선후기 다산가(茶山家)의 천주교 교리서 등 미공개 유물 41점을 일반인에 공개했다. 공개 유물 가운데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의 둘째형인 정약종(1760∼1801년)이 지은 ‘주교요지(主敎要旨)’가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한글로 지어진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로 상·하권 2권이다. 글씨는 조선후기에 완성된 궁체여서 한글 서예 변천사의 흐름도 가늠할 수 있다. 또 다산의 친필인 사후묵상(死後默想)을 비롯, 요리강령 등 희귀 필사본 성경과 간찰(편지), 실학자인 이가환(1742∼1810년) 등 신유사옥 박해 인물들의 필적과 자료 등이 함께 전시됐다. 다산은 1801년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유배돼 18년 동안 살면서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발표자인 이동국 예술의전당 차장은 “이번 특별전은 조선후기 새로운 학문이자 신앙으로 도입된 천주교의 종교적 입장을 다산가를 중심으로 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다산가와 천주교’라는 특별전은 강진 다산 유물전시관에서 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열린다. 강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국가중요기록 한 자리에” 대한민국특별전 개막

    국가중요기록 자료들을 한데 모아 건국 이후 우리나라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대한민국’ 특별전이 개막됐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5일부터 서울 종로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에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제헌헌법과 중요사진, 대통령기록물 등의 원본 200여점이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특히 ‘조선법전편찬위원회’ 유진오위원의 친필 제헌헌법 초안을 비롯, 일본의 평화선 침범에 대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해양평화선 옹호에 관한 지령’ 등을 볼 수 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원고와 지시사항 등이 메모되어 있는 새마을운동과 월남파병에 관한 문서들과 대한민국 전・현직 대통령의 원본 기록물과 사인 등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밖에 지난 60년간의 생활사 기록 및 영상, 유엔에서 수집한 한국관련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이달 31일까지 계속된다. 글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민들레 시인’ 이해인 수녀,암 투병 편지 공개

    ‘민들레 시인’ 이해인 수녀,암 투병 편지 공개

    암 투병중에도 이해인 수녀의 글은 찬란하고 영롱했으며 따뜻한 기운으로 넘쳐났다. 최근 암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해인 수녀는 지난 24일 자신의 팬카페 ‘민들레의 영토’에 자신을 격려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친필로 남기며 근황을 알려왔다. 이해인 수녀는 “2주 만에 퇴원을 하고 다시 보는 저 하늘·거리·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고 심격의 일단을 밝힌 뒤 “갑자기 깊은 병 판정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입원 수술하는 동안 큰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승을 하직하는 영원한 작별인사는 아니지만 당분간은 (어쩌면 더 길게)오직 병과 동반해야 하므로 여러분을 글로만 만나고 직접 뵙지 못하더라도 용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더 의미있고 아름다운 재충전을 위한 ‘흰 구름 민들레수녀’의 조금 긴 잠수기간이라 여겨달라.”며 “그리(그렇게) 기도 중에 기억만 해주시면 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안위보다 주위를 사랑하는 그답게,팬들에게 ‘삶에 감사하며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해인 수녀는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는 말도 다시 기억하면서 순간순간을 충실히 삽시다.”,“‘삶이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기간이다.’라는 A.삐에르 신부님의 말씀도 다시 기억합시다.”라며 큰 수술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초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지난 28일 오후 이 카페에는 이해인 수녀의 ‘사랑하는 민토 가족들께’라는 친필 서신도 공개됐다. ‘사랑하는 민토 가족들께 사랑의 관심과 기도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잠시 작별인사 드립니다. 이별은 기도의 출발 이별은 만남의 시작… 사막을 걷다 보면 오아시스도 만날 희망이 있겠지요? 민들레 솜털 같은 희망을 온 누리에 전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하면서….안.녕.히! 2008.7.28 병원에서’ 늘 밝은 빛을 잃지 않고 희망을 찾는 그의 고귀한 영혼이 느껴지는 글귀였다. 이 서신을 팬카페에 올린 네티즌 ‘들국화’는 “보약 등을 보내주시는 것은 정말 감사하나 병원의 지시에 따라야 하므로 마음만 받겠다.보내지 말아달라.”는 이해인 수녀의 특별 당부도 함께 전했다. 이에 대해 팬카페 회원들은 댓글을 통해 그의 빠른 쾌유를 빌었다.‘호박꽃’은 “7월 가장 슬펐던 소식 수녀님이 편찮으셨던 것,가장 기뻤던 소식은 퇴원”이라며 “많은 분들의 조용한 기도와 수녀님의 강한 의지는 곧 활짝 웃는 수녀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겠죠.”라는 글을 남겼다.‘Da*^^mianisiS~’는 “타인의 아픔을 짊어지며,자신 안에 또 다른 이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여정이 아닐까 한다.”며 “그렇기에 더욱 수녀님을 위해,내 안의 또 다른 십자가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해인 수녀는 지난 10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 수술 및 치료를 받은 뒤 최근 퇴원,30일부터 부산의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요양할 계획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이준기, 미니홈피에 서태지에 받은 싸인 공개

    이준기, 미니홈피에 서태지에 받은 싸인 공개

    이준기가 서태지의 친필 싸인을 공개했다. 이준기는 29일 오후 1시경 자신의 미니홈피에 ‘그의 컴백에 열광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준기는 “처음 서태지 컴백스페셜 프로그램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내가 한 한마디가 바로 ‘당연히’였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싸인을 부탁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준기는 “바보같이 애장품에 싸인을 받으려 했는데 깜박했다.”며 “그래서 결국 핸드폰 케이스에 싸인을 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하루 종일 서태지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며 “내 젊은 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을 만났다. 대장님의 컴백을 축하 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당초 8월 15일 ‘ETPFEST 2008’에서 팬들과의 첫 만남을 예고했던 서태지가 일정을 앞당겨 8월 1일 게릴라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만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요계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이번 게릴라 콘서트를 통해 서태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8집 음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며 8월 6일 오후 11시에 방송될 이번 컴백 스페셜 방송을 통해 서태지는 이준기와 함께 로드무비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태지는 오는 9월 27일 영국 로열필하모닉 협연과 11월부터 전국투어 등이 예정돼 있어 주로 공연을 통해 팬들과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이준기 미니홈피 서울신문 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있는 그대로의 김구선생 읽기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대가리 싸움’, 곧 헤게모니 싸움으로 말썽이 많았다.…해방 후 우리나라에서도 머리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머리가 되려고 머리가 부서져라 싸움만 하고 누구 하나 발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1949년 1월,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한국독립당 당원들에게 전한 신년연설사의 일부다.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요지부동 세태 앞에서 백범의 큰 발자국 소리는 변함없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백범일지는 그동안 여러 자료들을 저본으로 출간됐다. 백범이 1929년과 1942년에 탈고한 친필본이 1990년대 들어 뒤늦게 공개됐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97년(돌베개)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번역본들은 필사본을 바탕으로 씌어진 셈이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김구 지음, 배경식 해설·엮음, 너머북스 펴냄)는 필사본에 기초한 번역본들의 오류를 두루 바로잡았다는 데에 출간 의의가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백범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백범 모습을 풀어쓰고자 했다.”고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전에 나온 백범일지들에서 미처 언급되지 못한 백범의 삶을 새롭게 소개하는가 하면, 그가 잘못 기억한 내용까지 교정해준다. 예컨대 백범이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集安)일대를 여행하고서도 고구려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밝힌다.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광개토대왕비의 발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 번역본들이 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원전의 텍스트적 가치를 훼손한 사례들도 적시한다. 대부분의 출간본들이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로 시작되는 이유는 1947년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해방 후 국사원 출간본)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책은 원전대로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로 시작돼야 옳다고 주장한다. 기존 번역본들의 번역 오류도 바로잡는다. 백범의 유년시절, 어머니 곽낙원 여사, 안중근 집안과의 각별한 인연 등 백범사상을 여물린 주변이야기들도 연대기순으로 상세히 실려 있다.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Metro] 배재학당 동관 역사박물관으로

    [Metro] 배재학당 동관 역사박물관으로

    서울 정동길에 있는 배재학당 동관(東館)이 역사박물관으로 바뀐다. 18일 학교법인 배재학당에 따르면 1916년에 완공된 이 건물(서울시 기념물 제16호)은 상설전시관, 기획전시관, 체험교실,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재단장돼 오는 24일 개관식을 갖는다. 상설전시관에서는 1930년대 사용된 석칠판(石漆板) 등을 이용해 배재학당 교실을 재현하고 당시 수업장면을 담은 영상물을 상영한다.1886년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은 ‘培材學堂’(배재학당) 현판, 유길준의 친필서명이 담긴 ‘서유견문’, 협성회회보, 독립신문, 김소월의 진달래 꽃 시집(1925년), 주시경의 친필 이력서 등 유품도 볼 수 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해리포터 8편’ 줄거리 원고, 5000만원에 낙찰

    현재 7편까지 발간된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8편의 줄거리 원고를 경매에 부쳤다. 롤링이 친필로 쓴 이 원고는 지난 10일 영국 대표 서점인 ‘워터스톤스’에서 경매됐다. A5 사이즈 카드에 800자 분량으로 씌여진 해리포터 8편은 치열한 경쟁 끝에 2만 5000파운드(약 5000만원)에 낙찰됐다. 롤링은 “카드에 스토리를 쓰는 것은 매우 재밌는 작업”이라면서 “이 카드의 가격이 2만5000파운드까지 오르다니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8편의 짧은 줄거리는 해리가 태어나기 3년 전으로 돌아가 해리포터의 대부였던 시리우스 블랙과 해리포터 부모가 마법을 이용해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롤링은 이 카드의 마지막에 “현재 속편(8편)제작은 하고 있지 않지만 줄거리만으로도 매우 재밌다.”는 글을 남겼다. 해리포터 신작 줄거리를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해리포터 시리즈가 탄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상태다. 그 이유는 롤링이 지난해 말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편의 제작을 배제한 것은 아니나 (만약 제작한다면)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라고 말해 가까운 시일 내에 시리즈를 이어가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거리가 공개됨에 따라 8편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황조롱이, 남생이와 함께 가는 길

    황조롱이, 남생이와 함께 가는 길

    다큐멘터리로 생명의 의미 일깨우는 황윤 감독 “작년에 집에서 처음 소쩍새 소리를 들었어요. 숲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말이죠.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뻔했어요. 철새인 그 아이는 왜 하필 이곳을 선택해 애써 날아왔을까요?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몰라요.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는데도.” 고라니나 새끼 호랑이를 떠올리게 하는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그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 잘 듣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했다. <작별><침묵의 숲><어느 날 그 길에서> 등 환경 다큐멘터리를 잇달아 만들어온 황윤 감독(37세)은 관객과의 대화,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로드 킬’(야생동물 교통사고)에 관한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극장에서 장기 상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제 영화는 하나같이 다 ‘행복’에 관한 영화예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가 행복이라 믿는 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그렇게 ‘행복’에 관한 물음을 담고 있어요.” 그는 행복을 감지하는 남다른 감각을 지닌 듯 보였다. 뒤집어 말하면, 불행을 감지하는 촉수 또한 예민한 사람이었다.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삵과 황조롱이와 남생이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은 삵의 행복, 황조롱이의 행복, 남생이의 행복과 서로 이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의 영화가 들려주는 ‘환경과 생명’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에는 두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멀쩡한 직장에 다니다 영화, 그것도 독립영화를 찍겠다며 뛰쳐나온 일이고, 또 하나는 8년 전 어느 화창한 봄날 동물원에서 어떤 풍경과 맞닥뜨린 일이다. “북극곰 우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곰이 머리를 쉬지 않고 아래위로 흔들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곰이 춤춘다’며 박수를 치더군요. 알고 보니 그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동물들이 보이는 ‘정형행동’이었어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북극곰과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관람객들, 평화로운 휴일의 동물원에서 벌어진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지요.” 그 일을 계기로 그는 동물원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별>을 만들게 된다. <작별>은 그의 인생에서도 각별한 영화다. 영화감독으로서 가야 할 길을 그때 확신했고, 일과 삶에 영감을 주는 든든한 동반자 ‘야생동물소모임’을 이 영화를 찍는 동안 알게 되었으며, 그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영화 때문에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오직 영화의 내용에 공감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오는 것. ‘…당신을 격려하고 아낍니다. 앞의로의 행로에 우리가 함께할 것입니다. 애정이 담긴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친필 편지를 받고 그는 만남과 인연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이미 배우 조재현, 코미디언 김미화 씨가 영화 예고편의 내레이션을 자청한 터였다. 일단 나가라. 너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 처음 영화 일을 시작하고 환경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독일 녹색당의 창립자인 페트라 켈리의 이 말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처음 이 길에 나섰을 때 제가 지닌 것은 불확실한 꿈과 열정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많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우리가 거리낌 없이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이 실은 어떤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가 강요한 행복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적게 가지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인간과 야생동물을 포함한 모든 대지의 거주자들에게 겸손한 시선을 보낸다. 이미 준비에 들어간 다음 영화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상영 중인 영화를 홍보하랴, 새 영화를 준비하랴 무척이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바쁜 하루 중 짬을 내 그는 직접 요리를 한다. 파랗고 빨간 채소들을 보고 있으면 참 즐겁고 신기해요. 햇볕과 공기와 물과 흙만 가지고 어떻게 이런 예쁜 색깔이 나올 수 있죠. 이런 소박한 삶의 태도가 그의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황윤 감독은...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작별, 2004년 침묵의 숲, 2006년 어느 날 그 길에서 등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연출. 2005년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환경문화상 ‘환경예술인상’ 대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터리분과 운영위원. 녹색연합, 야생동물소모임, 아무르 표범 보호 만원계 회원.
  • [열린세상] 진품과 위작,그 경계 넘어서기/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열린세상] 진품과 위작,그 경계 넘어서기/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서예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구나 왕희지(王羲之)라는 이름 석자는 안다. 제대로 알든 모르든 서예라면 왕희지 이름부터 말한다. 사실 맞기는 맞다. 동양의 서예 또는 서법에서 왕희지를 서성(書聖)으로 부르는 데는 의견이 일치되어 있다. 글씨라면 왕희지는 성인 또는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왕희지는 4세기 중국의 육조시대에 동진(東晋)의 사람이다. 아직 서법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때이지만 그의 작품은 신품(神品)에 다다른 것이고, 역대 중국의 황제들은 이를 자기 손에 넣으려고 모두 안달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왕희지 글씨를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천하 제1행서´라고 불리는 ‘난정서(蘭亭序)´다. 획의 시작이 불꽃같이 시작하여 거침없고 필법과 구성에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으며 속됨이 없어 누가 봐도 아름답고 완벽하고 소쇄(瀟灑)하다. 그 내용은 오늘날 소흥(紹興)에 있는 난정이라는 정자에 현인들이 모여 모임을 결성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시회를 가졌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난정서´는 왕희지의 친필이 아니다. 오늘날 ‘난정서´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글씨는 후대 명필이 왕희지의 글씨를 보고 베껴 쓴 임본(臨本)이다.‘난정서´의 대표적인 임본으로 전해 오는 것은 5가지가 있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있는 우세남(虞世南)의 임본, 저수량(遂良)의 모본(摹本), 풍승소(馮承素)의 모본, 황견본(黃絹本), 비석 탁본인 정무본(定武本)이 있다. 우세남의 것이 가장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고 평하지만 어쨌든 모두 베껴 쓴 것이다. 유명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왕희지 글씨를 모아 돌에 새긴 것이다. 그 외 왕희지 글씨로 유명한 ‘초월첩(初月帖)´,‘원환첩(遠宦帖)´,‘평안첩(平安帖)´,‘상란첩(喪亂帖)´,‘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등도 모조리 다른 사람이 옮겨 쓴 것이다. 옆에다 대고 베낀 것도 있고, 세필로 정교하게 윤곽을 그리고 가운데를 먹으로 채운 쌍구전묵(雙鉤塡墨)의 복사본도 있다. 보통 사람이 보면 깜쪽같이 친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오늘날 전해오는 왕희지의 글씨는 모두 후세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왕희지가 진짜 실존인물인가 하는 문제까지 제기되었는데, 학계에서는 생몰연대는 정확히 고증하기 어려우나 실존인물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나는 이 난(4월26일자)을 통하여, 우리나라 그림과 글씨 감정에 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하고 그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번에 이 분야의 전문가인 이동천씨가 ‘진상´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고미술감정의 심각한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1000원짜리 지폐 뒷면의 정선의 ‘계상정거도´도 위작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학계와 고미술계는 이런 주장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법이 개입하기 전에 제대로 연구한 사람들이 나서서 올바른 논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덮어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겸재이건, 추사이건 오원이건 당대 유명한 그림이나 글씨는 그 시대에 이미 서예가나 화가 등에 의해 옮겨 놓은 작품도 많을 것이고, 위작도 많이 제작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그 작품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든 억대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든 아니면 어떤 학자에 의하여 진품이라고 선언되었든 다시 과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재감정하는 작업이 행해져야 한다. 진품이라는 것이 가품으로 밝혀지면 박물관 진열에서 배제되고 소장자에게 수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진짜와 가짜를 제대로 밝히는 작업이 이 분야의 학문과 전문가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YMCA맨’ 전택부 선생이 말하는 스승 스코필드 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YMCA맨’ 전택부 선생이 말하는 스승 스코필드 박사

    ‘아, 스코필드 박사님/호랑이 할아버지 사모합니다./병상에 누워계실 때 찾아가 문안 드리면 ‘난 호랑이가 아니요, 고양이요’/임종이 가까워져서 찾아가 문안드리면/‘난 고양이가 아니요, 참새요.’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호랑이 할아버지, 지금도 할아버지를 사모합니다.’ 올해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38년 전에 떠난 스승을 그리워하며 쓴 추모시 중 일부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Schofield)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의료, 선교, 독립운동 보도 등의 활동을 한 영국 출생의 캐나다인이다. 한국의 3·1운동을 적극 지지해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렸고,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지난달 10일, 주한 캐나다대사관 1층 로비에서 스코필드 박사를 기리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스코필드 박사가 1970년 4월12일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봤던 오리 전택부(93) 선생은 이날 행사장에서 ‘호랑이 할아버지,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다시 한번 읊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이날은 또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회장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발족식도 함께 열려 캐나다 대사관 신축건물 1층을 ‘스코필드 홀’로 명명했다. 행사에는 데이비드 피터슨 캐나다 토론토대 총장, 김국주 광복회 회장, 김한중 연세대 총장 등의 인사가 참석했다.‘호랑이 스코필드’는 한국명 ‘석호필(石虎弼)’의 ‘호(虎)’와 그의 강직한 성품을 기리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영원한 YMCA맨’으로 불리는 오리 전택부 선생. 그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스승 스코필드 박사와의 각별한 사제지간의 정이 그 첫번째. 그리고 ‘스승의 은혜’의 노랫말을 지은 아동문학가 강소천이다. 소천과는 한 고향에서 태어나 학교를 같이 다녔다. 함흥 영생고보 시절, 소천은 일본인 교사의 조선학생 차별대우에 항의해 동맹휴학을 주동했다가 퇴학당한 친구 오리 전택부를 통해 항일사상을 길렀다. 둘은 6·25전쟁으로 헤어졌다가 휴전 직후 서울에서 다시 만났는데, 오리는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잡지 ‘새벗’의 주간으로 있었다.1955년 오리가 ‘사상계’로 옮길 때 소천을 새벗의 주간으로 추천할 정도로 절친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서 노년을 보내는 오리를 만났다. 그의 아호는 ‘전택부’의 오리 ‘부(鳧)’에서 따왔다. 어린 시절 오리의 부모가 귀엽다는 이유로 “오리야, 오리야!”라고도 불렀다. 한자로는 ‘나의 동리’라는 뜻에서 ‘오리(吾里)’로 적는다. 그의 집에 들어서자, 맨 먼저 벽에 걸린 김동리 선생의 친필 ‘낙도안덕(樂道安德)’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 하자 오리는 “1975년 YMCA총무를 퇴임하면서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을 때 동리가 축사한 뒤 직접 써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코필드 박사는 우리보다 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아꼈다며 스승을 회상했다. “2001년 4월20일, 주한 캐나다 대사관 주최로 스코필드 박사의 유품 전시회가 있었지요. 이때 보관해왔던 유서원문과 유품을 기증했습니다. 나더러 조사(弔詞)를 하라고 하기에 (앞에 언급된)‘호랑이 할아버지 사모합니다.’라고 읊었더니 그걸 전시장에 액자를 만들어 내걸더군요.”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은 오리가 서울YMCA총무를 맡았을 때였다. 당시 전택보 YMCA 이사장이 빈털터리나 다름없는데다 소아마비로 다리까지 불편해 절뚝거리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승용차를 선뜻 선물했다. 이때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YMCA를 왕래했고 오리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3·1운동 때 스코필드 박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그 분이 1916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3·1만세 때 죽거나 다친 많은 시민들을 위해 구호활동에 앞장섰습니다. 당시에는 세브란스병원 의과대학 교수였지요. 특히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 사건 때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했지요. 오늘 새로 밝힐 것도 있습니다. 그해 4월15일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병사들이 제암리 외에 화성군 수촌마을까지 급습했습니다. 교회당과 집집마다 사람을 가둬놓고 불을 질렀지요. 무차별 총질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불도 못 끄고 마을의 42가구 중 40가구의 식구들이 대부분 불에 타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 박사는 자전거로 수촌마을을 오고가며 부상자들을 치료했지요. 이로 인해 스코필드 박사는 국외로 추방됐는데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써서 한민족의 의거를 세계만방에 알렸지요. 광복 이후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오리는 이같은 스코필드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6년 4월19일 수촌마을에 3·1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이때 직접 비문을 지었다.‘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생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더니, 여기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와 의좋게 오래 살며, 길이 길이 낙원을 이루리라.’ ▶스코필드 박사는 동물도 무척 아꼈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하루는 침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내 동생이 죽었어.’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동생소식이 왔나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아니야, 내 동생이 창경원에 있잖아. 창경원에 문제 많아요, 그래서 내 동생이 죽었어.’라고 해요. 그날 아침 신문에 호랑이 한 마리가 죽었다는 신문을 보고 슬퍼했던 것입니다.” ▶유서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나요. “모 고아원에 돈 얼마 주고,YMCA에는 얼마 주고, 누구누구에게는 얼마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갑을 열어봤더니 미화로 2500달러밖에 없었는데 주라는 돈은 400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더 보태 유서대로 했지요.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분은 많은 학생들과 고아들에게 돈을 주면서 ‘돈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라고 하셨지요.” 스코필드 박사는 월남 이상재 선생을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게일(G.S.Gale·연동교회 창설자)과 에비슨(O.R.Avison·세브란스의전 창설자) 등이 토론토대학의 선배이자 한국 YMCA창설자였기 때문에 오리에게 YMCA회관 재건에 쓰라며 30달러,50달러씩 돈을 자주 주었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은 서울대 관사에서 혼자 사셨지요. 자식 얘기가 나오면 ‘한국에 아들과 딸들이 많이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연금과 지지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여생을 보냈지만 1년 내내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그 돈을 모았다가 불우 이웃을 위해 썼습니다.” 오리는 스코필드 박사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몇번 되뇌었다. 오리는 서울에서 살다가 두 달 전에 도곡리로 이사를 왔다. 서울여대 교수로 있는 아들이 새로 집을 지어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 오리는 “아들이 어릴 적 우리 고향집처럼 지었어.”라면서 “나는 일제때 공산주의자였지…, 문익환, 장준하 등도 다 내 친구이고 후배였는데 먼저 갔어.”라고 덧없는 세월을 잠시 떠올린다. 그는 최근 ‘에세이문학’ 봄호에 자신의 마지막 글 ‘상사화의 비밀’이라는 수필을 썼다고 했다.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라고 하자 “(인심)쓰는 김에 넉넉하게 200살로 하면 안 되겠나.”며 웃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당까지 배웅나온 오리는 “참, 스승의 날이라고 했지, 독립운동가였던 여천 이용설(1895∼1993) 선생 있잖아. 그분도 스코필드 박사를 스승으로 무척 존경했다고 꼭 좀 써줘.3·1운동으로 일본 경찰에 쫓길 때 스코필드 박사가 많이 도와주셨거든.”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기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기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눈 덮인 들녘을 걸어가는 동안/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자/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근혜 누님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거듭나던 무렵 제가 모 일간지를 통해 누님께 드렸던 서신에 담았던 서산대사의 자작시 한 구절입니다. 이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하여 지인들에게 친필휘호로 많이 선물한 바 있음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유수 같은 세월 속에서 누님은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부친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고통을 받은 국민들을 향한 사과 선언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등 정치적 위상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부친을 대신한 대국민 사과는 지난번 부족한 제가 용기 내어 요청드린 바 있어 남다른 감회를 받았었지요.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군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음은 물론 4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누님의 소속 정당이 아닌 ‘친박연대’라는 세계 정당사에 없는 정치집단이 배출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총선 이후 현재까지 누님과 관련된 뉴스의 초점은 오직 ‘친박연대의 한나라당 복당 여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이상기류를 편하게 관조하고 있는 정치권과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수년 만에 부족한 제가 누님께 다시 고언의 편지를 다시 쓰기로 하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창곡 중 하나로 알려진 ‘짝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에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라는 구절이 있지요. 유수 같은 세월과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역정에 대한 회한을 담은 노래라 할 수 있는데, 지나칠 수 없는 비범성이 내재된 가사가 아닐까요? 세월이란 것이 촌각의 연장이라 할 때 “지금 한순간을 잘못 관리하면 평생의 통한으로 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이 시점에서 누님이 ‘복당 화두’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라, 진정으로 검토하고 실행에 옮겨 볼 만한 민족사적 대업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현 후 급속하게 냉각되고 헝클어진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역할을 지금 누님이 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실용주의 경제내각’으로 특징되어 지는 현 정부는 ‘남북관계야말로 최고의 경제 기반’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가 평화국면과 긴장국면 간에 외국 자본의 한반도 투자나 국제수지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공식 통계자료로 확인 가능합니다. 불필요한 말실수로 국력을 소모하는 우를 범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고, 대북 관계자들이 북측의 심장을 뒤집어 놓는 발언을 남발하기보다는 명실상부한 ‘실용적 남북관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맹목적 퍼주기’도 비판 받아야 하지만 ‘맹목적 퍼붓기’도 민족적 공익에 반하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현 시점은 누님이 방북하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다시 만나 남북 모두의 ‘윈윈 전략’을 탄생시켜 볼 절묘한 기회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1인 헌법기관’임을 직시하시고 평양에서의 ‘제2차 김·박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뒤, 신록으로 물들고 있을 묘향산을 돌아보고 와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스위스형 사회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제3의 헌법 이념을 추구해온 바 있는 백범은 “벼랑에서 살아남고자 나무뿌리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것도 용기이나, 잡고 있던 나무뿌리를 놓아 버리는 것 또한 진정한 용기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 시점 최고의 화두인 ‘복당’이라는 나무뿌리를 과감하게 놓아 버리고 북행에서 돌아온 뒤야말로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 존 레논 직접 쓴 ‘가사 종이’ 20만弗에 경매

    존 레논 직접 쓴 ‘가사 종이’ 20만弗에 경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Give Peace A Chance’의 가사를 처음 쓴 친필 종이가 경매에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30일 “존 레논의 친필 가사 종이가 7월 10일 런던 크리스티 옥션에서 경매된다.”고 보도했다. 경매 관계자들은 이 노래가 당시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반전 노래로 널리 사용되었던 가치로 볼 때 입찰가가 최소 20만달러 (약 4억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ive Peace A Chance’는 1969년 존 레논이 오노 요코와 함께 몬트리알의 호텔에서 ‘bed-in 시위’(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8일간 침대에 누워있던 평화시위)를 하며 만든 곡으로 당시 함께 있던 팬 게일 르나드(Gail Renard)가 가사를 쓴 종이를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16살의 학생이었던 르나드는 “존 레논이 호텔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들어가 레논을 만났다.”고 밝혔다. 르나드는 “대화를 하며 친해진 레논이 종이를 나에게 주며 ‘언젠가 가치 있는 종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진=왼쪽부터 존 레논, 오노 요코, 르나드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작가 쉬바이췬·샤롄성 부부 윤봉길의사 추모 붓글씨 전달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76주년을 맞아 중국의 유명작가 부부가 윤 의사의 뜻을 기리는 친필 붓글씨를 유족에게 선물했다. 상하이 의거 기념일을 하루 앞둔 28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중국의 문학가 쉬바이췬·샤롄성(여)부부는 27일 중국 항저우에서 윤 의사의 조카인 윤주 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만나 ‘壯烈千秋(장렬천추)’라고 적힌 붓글씨를 전달했다. 이 글씨는 쉬바이췬이 직접 쓴 것으로 윤 의사의 숭고한 뜻을 존경하고 영원히 기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제스 전 타이완 총통이 1967년 윤 의사 유족에게 전달한 친필 글씨와 같은 문구다. 이들은 “윤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중국에 와 놀랍다. 이런 정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29일 상하이 루쉰(당시 훙커우) 공원에서는 윤 의사의 의거 76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한편 상하이를 방문한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28일 윤 의사가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직접 쓴 동가(洞歌)를 공개했다. 기념사업회 윤주 부회장은 “윤 의사가 고향에 있을 때 농촌운동에 진력한 선구적 농민운동가로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농민의 실력을 배양하고 농촌 경제를 일궈 조국독립을 이룩하려 애썼다.”고 밝혔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시조집 청구영언 원 편찬자는 홍만종?

    조선 영조 때 가인(歌人)인 남파(南坡) 김천택(연대미상)이 고려 말엽부터 영조 즉위 초까지 지어진 시조를 모아 1728년 펴낸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원 편찬자가 수필집 ‘순오지’의 저자인 현묵자(玄默子) 홍만종(1643∼1725)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굴됐다. 고증 결과가 사실로 확정될 경우 기존의 교과서 서술이 크게 수정돼야 할 판이다. 편찬 연대도 더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김영호 영산대 교수는 최근 발간된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의 학술기관지 ‘대동문화연구’에 ‘현묵자 홍만종의 청구영언 편찬에 관하여’란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홍만종이 ‘청구영언’ 편찬 완료 시점에 서문으로 쓴 친필 원고를 공개했다. 김 교수는 “십수년 전에 소장하게 된 ‘부부고’란 제목의 홍만종 친필 필사본을 최근 검토하던 중 ‘청구영언’ 서문 격인 ‘청구영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청구영언서’를 홍만종 친필로 판단한 근거로 제목의 ‘영언’을 지목했다.‘영언’에 대한 개념 규정이 김천택 편집본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데 비해,‘청구영언서’엔 매우 명료하게 제시돼 있다는 것이다. 김천택 편집본 곳곳에 수록된 작품평이 홍만종의 또 다른 저서 ‘소화시평’(小華詩評)에 나오는 구절과 동일하다는 점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현전 ‘청구영언’은 김천택이 홍만종 원고를 표절한 결과물로 보인다.”면서 “다만 김천택이 홍만종의 미발표 원고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대동문화연구’의 연구이사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청구영언’ 편찬자가 김천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은 학계에서 적지 않게 제기됐다.”면서 “김 교수의 논문을 토대로 판단해 볼 때 ‘청구영언’은 홍만종 작품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릴케·샤갈 친필편지의 향취 느껴보세요”

    “릴케·샤갈 친필편지의 향취 느껴보세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필체는 작품만큼이나 섬세했을까.100여년도 더 지난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알퐁스 도데의 편지에서는 어떤 서정이 묻어날까. JS씨어터와 서울에이전시는 10일부터 30일까지 ‘세계 예술가 친필 편지전’을 서울 논현동 워터게이트 컨벤션홀에서 연다. 중앙부산저축은행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에는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의 친필편지, 사진, 소장품 등 모두 100여점이 전시된다. 만날 수 있는 작가는 로댕, 샤갈, 슈바이처, 귄터 그라스,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토마스 만, 구상, 조병화 등 30여명이 넘는다. 이 전시품들은 올여름 제주도에 건립될 예정인 ‘문학박물관’의 건립추진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영씨의 개인소장품. 이 대표는 “이번에 전시하는 친필편지 등은 국내 편지박물관 건립을 위해 모아 두었던 것”이라면서 “세계적인 작가들이 남겨 놓은 희귀한 유품들이며 비싼 미술품 못지않게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전시회 준비를 맡은 표재순 JS씨어터 대표도 “예술가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엽서 한 장, 편지 한 장을 통해 그들이 지향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필편지전은 지난 2월 피카소 포스터전으로 시작한 JS씨어터 ‘이야기가 있는 전시’ 시리즈의 하나. 개막일인 10일에는 이순재, 최불암, 손숙, 박정자 등 유명인사들이 직접 편지를 들려주는 낭송회가 마련된다. 입장료는 없다.(02)540-2310.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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