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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신기·소녀시대 ‘스타컬렉션 카드’ 판매 불티

    동방신기·소녀시대 ‘스타컬렉션 카드’ 판매 불티

    국내 대표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스타컬렉션 카드’ 예약판매가 1주일 만에 10만을 돌파했다.지난 15일부터 G마켓(www.gmarket.co.kr)을 통해 예약판매 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스타컬렉션 카드’는 이들의 미공개 이미지 컷이 프린트 된 카드제품이다. 총 100장이 각각 다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스타컬렉션 카드에는 스타 친필사인 카드 및 스타가 실제 착용한 의류 조각이 동봉된 피스카드, 그리고 온도변화, 홀로, 스크래치 카드 등 희소성 높은 레어카드가 포함되어 있어 팬들의 큰 호응을 얻고있다.12월에 스타컬렉션 카드를 구입한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30명에게는 소녀시대 싸인CD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다.이번 스타컬렉션 카드를 기획한 SBS콘텐츠허브 관계자는 “동방신기와 소녀시대의 팬들에게 특별한 소장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물론, 애장품으로 간직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며 “예약판매 만으로 이렇게 큰 반응은 대단한 일이며, 추후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스타컬렉션 카드도 출시 예정” 이라고 말했다.동방신기와 소녀시대의 ‘스타컬렉션 카드’는 현재 G마켓을 통해 온라인 단독 판매 되고 있으며, 조만간 전국 온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구입할 수 있을 예정이다.사진 = SBS콘텐츠허브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금융사기꾼 매도프 ‘교도소 스타’로

    금융사기꾼 매도프 ‘교도소 스타’로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소도시 버트너의 연방교도소. 얼룩덜룩한 진녹색의 죄수복을 입은 ‘수감번호 61727-054’는 주방에서 접시와 냄비를 닦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에 풍채가 좋아 보이는 그는 희대의 금융사기꾼 버나드 매도프(71)였다. 이날은 매도프가 뉴욕 맨해튼의 고급 펜트하우스에서 미 연방수사국 요원에 붙잡힌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유인한 뒤 투자자의 원금을 이전 투자자의 수익으로 지급하는 다단계 수법인 ‘폰지 사기’로 지난해 신용위기로 휘청대던 월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때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을 역임했던 매도프는 폰지사기로 최소 500억달러(약 58조원)를 벌어들이고 투자자에게 194억달러(약 23조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지난 6월 1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섯 달째 복역중인 매도프는 앞으로 1795개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 사실상 종신형인 셈이지만 교도소에서 스타로 군림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횡령, 은행강도, 간첩 혐의 등으로 복역 중인 교도소 동료들이 매도프를 금융사기계의 대부로 떠받들기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매도프의 친필사인을 받아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내놓겠다는 죄수들이 있는가 하면, 그가 천문학적 비자금을 숨겨뒀을 것으로 믿고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환심을 사려고 갖은 애를 쓰는 죄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지난 여름 매도프를 면회한 변호사 낸시 파인먼은 “매도프는 교도소에서 유명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악명높은 범죄조직 ‘콜롬보’의 보스 카민 퍼시코와 이스라엘 간첩 조나단 폴라드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매도프는 오전 6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주방보조 등으로 의무 노동을 하고 시간당 0.12~1.15달러(약 140~1300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오자와 11일 내한… 조훈현9단과 대국

    조훈현 9단이 일본 민주당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郞) 간사장과 대국을 펼친다. 한국기원은 “오는 11일 방한하는 오자와 간사장과 조 국수가 12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웨스턴 조선호텔 특별대국실에서 대국할 예정”이라며 “평소 바둑에 관심이 많은 오자와 간사장이 일본 기원을 통해 친선대국을 요청하자 조 국수가 한·일 교류와 친선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7일 밝혔다.바둑사랑이 일본 정계에 자자한 오자와 간사장은 일본기원 공인 아마 6단. 조훈현 9단은 대국이 끝나면 친필 휘호를 한 대국판을 선물할 예정이다.오자와 간사장은 13선의 중의원으로, 10일 한국방문에 앞서 민주당 전체 중의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40여명과 기업인 등 모두 600여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실력자들과 회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자와 간사장은 12일 오전 국민대에서 강연한 뒤 저녁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찬이 예정돼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재일 한국인 등 영주 외국인 참정권 문제에 적극적인 만큼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사임당 진품 산수도 2점 첫 공개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의 진품 산수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됐다.강릉 MBC는 2년에 걸쳐 제작한 HD 다큐멘터리 ‘사임당, 두 개의 초상’ 시사회를 통해 사임당의 진품 산수도를 26일 공개했다.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장진원 프로듀서는 “2008년 사임당의 후손인 덕수 이씨 문중인 서울대 이창용(현재 G20 기획조정단장) 교수가 기증한 사임당의 유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산수화 두 폭을 주목하고 과학적 검증과 역사 기록 등을 통해 사임당의 진작임을 밝혀냈다.”고 밝혔다.이날 공개된 한 폭의 산수도는 먹의 묽기를 통해 원근으로 그려낸 산과 2층 누각, 소나무, 다리를 지나는 스님이 그려져 있는데 당대의 학자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그림을 극찬한 친필의 발문이 있다. 훼손이 상대적으로 심한 또 한 폭의 산수도에는 산과 폭포가 희미한 상태로 남아 있다.2점의 산수화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화폭의 여백에 그림과 관계된 내용을 담은 절구(또는 율시)를 시로 표현한 제화시(題畵詩)가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어 진품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산수화는 비단의 훼손이나 마모가 매우 심한 상태여서 전문적인 문화재 보존처리를 할 예정이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조조, 게 섯거라!”… ‘삼국지 온라인’ 일반 공개

    “조조, 게 섯거라!”… ‘삼국지 온라인’ 일반 공개

    코에이 ‘삼국지 게임’의 온라인판이 국내시장에서 일반 공개에 나섰다.엔트리브소프트와 SK텔레콤은 일본 코에이가 개발한 MMORPG(온라인모험성장게임) ‘삼국지 온라인’의 공개 시범 서비스를 24일 시작한다.‘삼국지 온라인’은 이용자를 삼국지 세계 장수로 등장시켜 모험, 생산, 공개전투 등을 온라인 환경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삼국지 게임’으로 잘 알려진 일본 코에이가 개발해 무협 게임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을 비롯해 20~30대 남성 이용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이번 공개 시범 서비스는 형주 방어전, 강화 시스템, 소합전 시스템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게임 콘텐츠를 선보인다.이중 ‘형주 방어전’은 한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 코에이가 한국 버전에 추가한 게임 콘텐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한국 MMORPG 이용자들에게는 친숙하지만 일본 버전에는 없었던 ‘강화 시스템’도 선을 보인다. 몬스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강화석’을 사용하면 무기 및 방어구의 성능이 강화된다. 500대 500의 대규모 전투인 ‘합전’을 자주 이용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이용자들을 위해 ‘소합전 시스템’도 추가된다.이 시스템은 50대 50 혹은 100대 100의 소규모 전투를 칭하는 것으로 국지전이라고도 부른다.한편 회사 측은 ‘삼국지 온라인’의 공개 시범 서비스를 기념해 황석영 작가의 친필 싸인이 담긴 ‘삼국지 전집’을 선물로 제공하는 행사를 실시한다.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화성 홍사용문학관 새달개관

    화성 홍사용문학관 새달개관

    일제 강점기 민족의 한이 담긴 동인지 ‘백조’를 창간했던 노작 홍사용(1900~1947) 선생을 기리는 문학관이 다음달 그의 고향인 경기 화성시에서 문을 연다. 화성시는 12월중 동탄신도시내 노작공원에 노작 홍사용 문학관을 개관한다고 17일 밝혔다. 연면적 866㎡, 2층 규모로 지어지는 문학관에는 ‘청산백운’(1919년작), 시조모음집 ‘청구가곡’(1920년작) 등 노작의 친필로 쓰인 작품집과 토월회 활동 당시 사진 등 84점의 유품이 전시된다. 또 문학관에는 세미나실, 도서관, 북카페, 휴게실 등이 마련되며 시민을 대상으로 문예창작교실도 운영한다. 화성시와 노작 종친회는 2007년 8월부터 동탄신도시 홍사용 묘역(향토유적 제13호)을 중심으로 그의 일대기와 문학활동을 기리는 노작공원을 조성하고 노작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추모사업을 추진해 왔다. 문인 독립운동가 노작은 1922년 나도향, 현진건 등과 함께 동인지 ‘백조’를 창간했으며 ‘나는 왕이로소이다’,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등의 작품을 통해 일제 치하의 한을 표출했다. 최영근 화성시장은 “화성이 낳은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노작의 업적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업”이라며 “문학관은 단지 유품 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다양한 문학 활동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복합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10주년’ 이수영, 팬들에 친필 감사편지…‘뭉클’

    ‘10주년’ 이수영, 팬들에 친필 감사편지…‘뭉클’

    가수 이수영(본명 이지연·30)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팬들에게 직접 친필로 쓴 편지가 입수됐다. 이수영의 공식 팬클럽 ‘크리스탈’은 서울신문NTN에 지난 12일 곰TV ‘온리4유’(Only 4 You)를 통해 방영돼 화제가 됐던 편지를 투고했다. 당시 이수영은 10주년 팬미팅 말미, 팬들에게 이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쏟았던 바 있다. 편지글 서문에서 이수영은 “난 팬들에게 익숙하기 보단 관객에게 익숙한 가수라 이런 자리가 항시 어색하고 두려워. 사람들이 안 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라며 여린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어디 숨어있다 다들 나타나는지 일당백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너희들, 나보다 훨씬 어린 팬이 있다는게 늘 신기하고 감사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부분은 다음 단락이었다. 이수영은 “요즘 (내가) 예전같지 않음에 다들 분해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단걸 알아. 근데 난 그 마음이 너무 예쁘더라 ^^. 이젠 일희일비 않고 담담히 내 길을 걸어갈꺼야. “라며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데 대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글을 보낸 김모 팬은 이 부분과 관련 “사실 저번 8집 앨범부터 기대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언니도 속상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그런데 막상 언니의 솔직한 글을 보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언니 스스로 본인이 부족해 그런게 아닌가… 하며 팬들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을 봤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수영은 충분히 멋지고 감동적인 가수”라고 힘을 싣어줬다. 또 “언니가 평소 팬들에게 표현을 아껴두는 편인데, 이 편지로 10년을 함께 한 모든 팬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터뷰를 가진 이수영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는 “데뷔 10주년이 되던 날, 9집 컴백을 하게 됐다.”며 “팬들로 부터 지난 10년을 빼곡히 넣은 MP3 선물을 받았는데, 그 영상을 보며 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감사의 뜻을 거듭 되새겼다. 한편 1999년 ‘I Believe’(1집)로 데뷔한 후 ‘Never Again’(2집) ‘그리고 사랑해’(3집), ‘라라라’(4집), ‘덩그러니’(5집), ‘휠릴리’(6집), ‘그레이스’(7집), ‘단발머리’(8집)에 이어 이번 앨범 ‘내 이름 부르지마’(9집)에 이르기까지 216만장 이상의 앨범 누계 판매량을 기록한 이수영은 명실공히 한 시대를 풍미한 발라드 여가수로서 꾸준한 활동을 펼쳐 사랑받아 왔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민관식 컬렉션’ 1만3000여점 수원시 기증

    한국 체육계의 원로였던 고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스포츠, 정치, 행정분야 유품이 경기 수원시에 기증됐다. 수원시는 고인이 소장하고 있던 1만 3000여점의 자료를 유가족에게서 최근 기증받았다고 12일 밝혔다. 시는 수원박물관에서 분류와 촬영, 목록작성을 거쳐 내년에 공식 기증식과 함께 특별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소장품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서 고인이 수집한 기념품과 사진, 역대 대통령의 선물, 정치관련 자료, 일상 소품 등 한국 체육사와 근대사 자료들이 망라돼 있다. 이 중에는 고인이 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과 88서울올림픽 성화봉, 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의 친필 사인이 담긴 라켓이 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은철 선수의 메달과 당시 사용했던 소구경권총도 있으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기념주화 등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수집한 작은 기념품과 사진들을 꼼꼼히 모아둔 액자도 있다. 닐 암스트롱의 친필 사인이 있는 달 착륙 발자국 사진과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벽돌조각, 도자기와 그림도 기증됐다. 고인이 모은 소장품들은 그동안 부인 김영호(84) 여사가 서울 한남동 자택 지하에 ‘민관식 컬렉션’을 꾸며 보관해 왔다. 수원박물관은 고인의 호를 따 박물관에 ‘소강사료관’을 꾸미는 것을 검토 중이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7~8일 해남서 김남주 문학제

    고 김남주 시인을 기리는 ‘김남주 문학제’가 7일부터 이틀간 생가가 있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친필원고 및 사진 전시회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 김남주 시 엽서 쓰기, 김희수(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시인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와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의 사인회도 마련된다. 김남주 시인은 1945년 삼산면 봉학리에서 출생,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 수감돼 10여년 동안 옥중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얻은 지병인 췌장암으로 1994년 생을 마쳤다. 시집 ‘진혼가’와 ‘나의칼 나의피’, ‘조국은 하나다’ 등 1980년대 민족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들을 남겼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도봉서원/노주석 논설위원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은 고려의 사원(寺院)을 대신할 서원(書院)을 장려했다. 본래 유교의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사(詞)와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를 합한 사설기관이었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경상도 순흥에 고려학자 안향(1243~1306)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백운동서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공식적인 첫 서원이다. 1550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퇴계의 건의로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라는 액자를 내렸다. 사액(賜額)서원의 시초다. 향촌의 문중 결집, 나아가 정치적 붕당으로 역기능이 생겼다. 명종 이전에 29곳에 불과하던 것이 선조대 124곳, 정조대에는 650곳에 이르렀다. 역사학자 이이화가 쓴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김영사 간)에는 서원의 세도가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서원의 상징이 찍힌 묵패를 관아나 부호에게 돌렸다. 경비명세가 적혀 있었고, 경비를 내지 않으면 수령은 언제 모가지가 날아갈지 몰랐다. 부호는 부모 제사에 소홀하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못 시켰다, 관가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원 뜰에 무릎을 꿇렸다. 매를 때리거나 관아에 가두게 했다. 서원의 통보가 없으면 풀려날 수 없었다.’ 서원은 두고두고 왕권의 두통거리가 됐다. 영조·정조가 정비에 애썼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1000여곳을 헐어 버리고 47곳만 남기면서 권세는 막을 내렸다. 서울시가 도봉구 도봉서원 터를 시 문화재로 지정예고했다. 도봉서원은 조선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우암 송시열(1607~1689)을 모신 서원이다. 도읍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표적 사액서원으로 영조가 현판을 썼고, 정조가 찾아와 제문을 내렸다. 비록 서원철폐령의 된서리를 맞아 훼철됐지만 서원이 자리잡은 터와 도봉계곡은 시인 재사들이 ‘경치가 아름답기로 경기 안에서 으뜸’이라고 치켜세운 곳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도봉서원도’와 우암이 쓴 ‘도봉동문(道峯洞門)’ 등 14개의 각석(刻石)이 운치를 더한다. 도봉서원 문화재 지정 소식이 짙어 가는 가을 향취를 전해 주는 듯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고종때 영의정 이유원이 淸 실권자 리훙장에 보낸 편지 9통 발견

    고종때 영의정 이유원이 淸 실권자 리훙장에 보낸 편지 9통 발견

    국가의 명운은 들판에 놓인 촛불 신세였다. 1875년 고종은 영의정 이유원(1814~1888년)을 사신으로 청나라에 보낸다. 공식 방문 목적은 명성왕후가 낳은 원자(이후 순종)를 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목적은 당시 청의 실권자인 직예총독(直隸總督) 리훙장(李鴻章·1823~1901년)을 통해 신식군대 양성, 신무기 도입 등 실질적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 그 이후 1880년까지 61세의 노()대신은 무려 67매 분량으로 9통의 편지를 보내고,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 공세를 퍼붓는다. 리훙장 역시 8통의 편지로 꼬박꼬박 정성껏 답하지만 조선의 정치 현실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것만큼은 꺼려했다. 리훙장은 1882년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도 이유원에게 “서양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어서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권유할 뿐, 실질적 도움은 외면했다. 고종이 지푸라기를 잡듯 의지했던 조-청의 비밀외교채널은 사실상 무위에 그치고 만 셈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8일 “이유원의 친필 편지 모음이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동양예술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립전주박물관 이재정 학예연구관이 지난달 20일부터 열흘 동안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의 한국실 전시 자문 업무를 수행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그동안 중국 유물로 분류돼 왔는데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해외박물관 한국 전시실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그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들 편지는 1통을 제외하고는 이유원의 문집과 리훙장의 문집 등에 수록됐지만, 그 실물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1875년 12월13일 보낸 두 쪽 짜리의 첫 번째 편지는 ‘조선의 처지에 관심을 보내달라.’는 의례적 인사와 함께 ‘백삼 1근, 청심원 20환, 소합원 100환’ 등 ‘3종 미물’을 보냈음을 확인시켜준다. 1880년 11월11일 보낸 마지막 편지 역시 6장 본문 내용을 통해 조선의 병기 제조와 군사 훈련 등 무비자강(武備自强)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뜻을 담고, 함께 보내는 선물 목록을 적었다.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9통의 편지에 고종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리훙장의 답장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듯이 형식은 이유원의 사적 편지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고종의 뜻이 담긴 것”이라면서 “19세기말 한중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편지를 소장한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은 1918년 10월 개관한 구소련 내 유일한 동양미술품 전문 박물관으로 500여 점에 이르는 한국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실은 1990년 개설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진박, 장나라에 친필편지 “‘하늘과바다’ 공감”

    유진박, 장나라에 친필편지 “‘하늘과바다’ 공감”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장나라에게 친필 응원 편지를 보냈다. 장나라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유진박은 서툴지만 정성을 다한 한글 솜씨로 장나라의 이름과 축하 메시지를 직접 적었다. 편지를 통해 장나라의 스크린 컴백작 ‘하늘과 바다’의 개봉을 축하한 유진박은 특히 “장나라가 영화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좋았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유진 박은 ‘하늘과 바다’의 예고편을 본 후 자신처럼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이는 하늘(장나라 분)에게 공감을 느껴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 한편 ‘하늘과 바다’는 서번트 증후군으로 6살 지능을 가진 하늘이 친구인 바다(쥬니 분)와 진구(유아인 분)를 만나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감동 스토리를 담고 있다. 장나라는 바이올린 천재 하늘 역을 소화하기 위해 4개월 간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등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 제이앤디베르티스망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진박 “추카함니다” 귀여운 편지글

    유진박 “추카함니다” 귀여운 편지글

    ”정기(전기)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추카함니다.(축하합니다)”  ’감금 폭행설’에 휘말려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의 ‘귀여운 친필 편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어와 한글이 섞인 이 글은 바이올린에 생명을 불어넣는 유진박의 섬세한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삐뚤빼뚤하다.한국 말에 서툰 까닭에 맞춤법도 엉망이다.하지만 평상시 유순하면서도 선한 그의 인상과 글이 제법 잘 어울린다.  유진박은 장나라의 새 영화 ‘하늘과 바다’의 흥행을 기원하기 위해 메시지를 작성했다.그는 개봉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장나라가 영화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보기 좋았다고 전했다.유진박은 현재 미국에서 휴식 중이다.  이 작품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바이올린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 하늘이(장나라)의 성장을 다룬 영화다.장나라는 이번 영화로 제 46회 대종상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명성황후 “살아 있음이 죽음만 같다…”

    명성황후 “살아 있음이 죽음만 같다…”

    “살아 있음 죽음만 같다. 상감마마 제절 울화로 느루 깨끗지 못하시고 동궁마마 제절도 정충이 긴 하시니 동동하고 나는 모질어 이때 겨우 생불여사로 지낸다.” 명성황후(1851~1895)의 한글 서첩이 경매에 부쳐진다. 서울옥션은 새달 7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리는 ‘제2회 아트쇼핑’ 기획경매에 명성황후의 한글 친필 편지 10통을 묶은 서첩을 포함해 모두 194점의 미술품을 내놓는다고 27일 밝혔다. 경매 출품작 가운데 명성황후의 한글 친필 서첩은 1894년 음력 7월부터 9월4일 사이에 측근에게 보낸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격동기를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명성황후는 한 편지에서 “망극 긴말 못하며 창황 중 어찌 피신하였느냐. 국운이 어찌하여 이런 망극지경을 당한지 망극하고 불행 중 정궁 옥체 면환하시고 너이들 살아난 일 창천이 도우심 축수한다.”고 썼다. 또 “작일 내가 대원을 보고 너와 혜당을 뒷일까지 잘 보아달라 애걸하여 허락받고 네게와 혜당께 명첩까지 보내니 급한 화는 없을 듯하니 숨어 아직 있는 것이 좋다.”고 쓰며 대원군과의 권력 다툼에 대한 내용을 담기도 했다. 서첩은 고종 때 예조판서를 지내고 임오군란 때 자택을 명성황후의 피신처로 제공했던 민응식의 아들 민병승씨가 묶고 주석을 달았으며, 1974년 문학잡지 ‘문학사상’에서 그 내용이 소개됐으나 일반 공개는 처음이라고 서울옥션은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10·26 30주년] 역사에 묻힌 궁정동 안가

    [10·26 30주년] 역사에 묻힌 궁정동 안가

    ‘서울 종로구 궁정동 55의3번지’ 그때 그 사건, 10·26 사태의 현장인 청와대 궁정동 안가(안전가옥)는 3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문민정부는 지난 1993년 7월 궁정동 안가를 역사에 묻었다. 대신 그 자리에 무궁화 동산이라는 공원을 만들었다. 어두운 정치의 현장에서 시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한 것이다. 곳곳에 산책 나온 시민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무궁화 동산은 청와대를 정면으로 볼 때 왼쪽에 위치해 있다. 당시 안가 다섯 채를 헐어 조성한 것으로 1만 560㎡(3200평) 규모다. 무궁화 동산 정문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후문은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자하문) 쪽으로 나 있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친필로 새긴 ‘무궁화 동산’이란 기명석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 가운데에는 중앙광장이 있다. 중앙광장 바닥에는 빨강과 파랑의 화강암으로 태극무늬을 만들었다. 중앙광장 가운데에는 궁정동을 의미하는 ‘정(井)’자(字) 모양의 우물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았던 자리인 안가 ‘나’동 대연회장 자리에는 길이 30m, 높이 3m의 성곽 모양으로 된 돌담이 들어서 있다. 1993년 당시 서울시가 만든 것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안중근의사 민권운동 사료 발견

    독립투사로만 부각됐던 안중근 의사가 민권운동에도 앞장섰음을 보여주는 사료가 발견됐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25일 안 의사가 지방관리의 횡포를 시정해 달라며 황해도에 제출한 행정소송 소장을 공개했다. 모두 14쪽인 소장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발견됐다. 소장의 제출자는 ‘황해도 신천군 두라방민 안중근’으로 명시돼 있다. 고종 광무 9년(1905) 7월에 제출된 이 소장은 안 의사를 포함한 서민들이 신천군에 개척기를 일궈 논밭을 경작하고 있는데 지역 감관(중앙정부 대신 특정업무를 수행하는 지방관리) 왕처삼 등이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을 시정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 의사는 소장에서 “감관이 농토 정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서민 경작지의 물길을 딴 곳으로 옮기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적었다. 기념사업회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안 의사는 2살 때 신천군으로 이주해 1905년까지 살았다.”면서 “필적 감정을 해 봐야겠지만 안 의사의 친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하얼빈·뤼순 박홍환특파원│지난 22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성도 하얼빈(哈爾濱)의 늦가을 밤은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북방에서부터 몰아치고 있었다. 100년 전인 1909년 이날 ‘대한국인’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다는 큰 뜻을 품고 열차를 이용해 이곳 하얼빈 땅을 찾았다. 사정없이 북풍이 몰아치는 하얼빈역 플랫폼을 밟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흘 뒤인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뤼순(旅順)에서부터 장장 40여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두꺼운 코트로 감싼 몸을 하얼빈역 플랫폼에 내려놓은 이토는 안중근이 발사한 브라우닝 권총 3발을 맞고 20분만에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 짧은 순간 이토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에는 작은 ‘암호’ 2개만 그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하얼빈역 제1플랫폼 바닥에 새겨진 세모와 네모 표시이다. 가로·세로 50㎝의 붉은 색 보도블록 안에 하얀색으로 세모와 네모를 그려넣었다. 세모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장소이고, 그보다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려진 네모는 이토가 서 있던 곳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역무원이 귀띔했다. ‘암호’로 시작된 하얼빈에서의 안 의사 흔적찾기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시내 자오린(兆麟)공원 한편에는 안 의사의 상징인 붉은색 단지 인장과 안 의사 친필 유묵인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유해를 이곳에 묻었다가 국권회복 뒤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미 국권이 회복된 지 오래됐지만 유해는 뤼순 감옥 뒤편 어딘가에서 아직도 발굴조차 못하고 있다. 현지 자료는 빈약했다. 그나마 조선족 동포들의 노력으로 작은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하얼빈시 안성제(安升街) 85호 조선민족예술관 2층. 하얼빈시의 재정 지원으로 2006년 개관한 이곳은 의거 장면을 재현한 미니어처 등 400여점의 관련 자료를 통해 안 의사의 넋과 얼을 전승하고 있다.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허태열(80) 할아버지는 “안 의사의 순국정신이 민족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질 것”이라고 직원들을 격려하며 꼬깃꼬깃하게 접은 100위안(약 1만 7000원)짜리 지폐를 헌금함에 넣었다. 안 의사 의거 100주년에 대해 중국 측은 드러내놓고 기념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현지 사회과학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 안내문에서도 ‘안중근’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취재도 어렵게 이뤄졌다. 안 의사가 주창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동양평화’는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이토를 사살한 안 의사는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서 5일간 조사를 받은 뒤 이토가 거슬러 올라왔던 전장 945㎞의 ‘하얼빈~다롄(大連) 철로’를 통해 뤼순감옥으로 이송됐다. 압송되던 안 의사는 이틀동안 만주 벌판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조국의 위기를 걱정했겠지만 잠깐 잠자고 깨보니 벌써 다롄이다. 압송길은 10시간으로 단축돼 있었다. 창춘(長春), 선양(瀋陽)을 거쳐 다롄의 끝자락 뤼순에 도착한 안 의사는 국사범으로 분류돼 간수부장실 옆 독방에 감금됐다. 뤼순감옥에는 안 의사를 비롯해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 그 곳에 투옥됐던 우리 독립열사들의 자료들을 따로 모아 국제항일열사기념관이 마련돼 있고, 안 의사가 재판받은 관동법원에도 안 의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뤼순 관동법원 유적전시관의 정춘매(38) 주임은 “하루 20~30명이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찾아온다.”며 “안 의사 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시인 신석정 옛집 문학공간으로

    신석정 시인(1907~1974년)이 기거했던 전북 전주시 남노송동 ‘비사벌 초사’가 복원돼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전주시는 9억 5000만원을 들여 고택과 인근부지 1647㎡를 매입해 서재·전시실·소공원·잔디주차장 등을 갖춘 문학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가 시인이 열정적으로 시작 활동을 했던 이곳을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시켜 관광자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비사벌 초사는 석정 시인이 1952년부터 1974년까지 22년여간 기거했던 한옥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시집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를 집필했다. 또 유고 수필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과 유고 시집인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이 이곳에서 쓰여졌다. 전북문학연구원 허소라 대표는 “비사벌 초사가 복원되면 작가정신과 해후로 뜨거운 감동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석정 선생이 전북 문인들과 주고받은 친필 서찰, 사진, 원본작품 등을 전시하고 내실 있는 콘텐츠를 담아내야 제대로 된 문학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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