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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인뮤지스 은지·이샘 ‘졸업’…탈퇴가 아니라 졸업인 이유는?

    나인뮤지스 은지·이샘 ‘졸업’…탈퇴가 아니라 졸업인 이유는?

    섹시 콘셉트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멤버 은지, 이샘의 탈퇴 소식이 전해졌다. 은지와 이샘은 29일 나인뮤지스 공식팬카페에 친필 편지를 공개하며, 탈퇴하는 심경을 전헀다. 은지는 “다사다난하고 그렇기에 추억이 많은 나인뮤지스. 항상 ‘함께하자!’를 얘기하던 멤버들에게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라며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에 설 수 있어서 행복했고, 8명의 친구들 때문에 든든했고 200만 마인 덕분에 따뜻했습니다”라고 멤버들과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함께 탈퇴하는 이샘은 “저희 나인뮤지스가 앨범 ‘글루’의 마지막 음악방송과 팬미팅을 가졌어요. 저는 사실 그날 하루는 정말 마음이 싱숭생숭했구요. 그 팬미팅이 제가 나인뮤지스 멤버로서 여러분과 갖는 마지막 팬미팅이었거든요”고 밝혔다. 이어 “많이 아쉽고 지금의 헤어짐이 많이 슬프지만 이제는 나인뮤지스의 이샘이 아닌, 이현주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제가 추구하는 다음의 가치를 위해 지금의 아쉬움과 슬픔을 견뎌보려해요”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나인뮤지스 소속사인 스타제국은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멤버 이샘(본명 이현주), 은지(박은지)가 4년간 몸담았던 소속 그룹 ‘나인뮤지스’에서의 공식적인 졸업을 한다고 선언했다. 스타제국은 이샘과 은지는 보다 다양한 방면에서의 개인 활동을 원하는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졸업을 결정, 졸업 후에도 소속사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유지하며 활동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유, 공효진, 김민희, 류승범, 수애, 전도연 대한민국 톱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유, 공효진, 김민희, 류승범, 수애, 전도연 대한민국 톱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매니지먼트 숲 소속 배우들이 다가오는 2014년 구정을 맞이해 새해 인사를 전했다. 배우 공유, 공효진, 김민희, 류승범, 수애, 이천희, 전도연, 유민규, 이재준은 29일 매니지먼트 숲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친필로 작성한 새해 인사말과 사인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먼저, 영화 ‘도가니’에 이어 ‘용의자’까지 연속 400만을 돌파하며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배우 공유는 차기작 선택을 앞두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중에 이번 구정 연휴를 맞이해 ‘늘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는 새해 인사를 전해왔다. 드라마 ‘주군의 태양’ 종영 이후 각종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으며 광고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우 공효진은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라는 친필 메시지를 전해 왔다. 김민희는 현재 영화 ‘아저씨’ 이정범 감독의 차기작 ‘우는 남자’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새해 인사를 전했고, 류승범은 ‘올해 멋진 일들 많이 많이 만들어 가는 한 해 되세요. 곧 좋은 작품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수애 역시 ‘올해도 눈부시게 빛날 새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천희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각각 팬들에게 친필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 전 한국영화기자협회에서 뽑은 ‘제5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은 현재 전국 각지에서 영화 ‘협녀:칼의 기억’을 촬영 중에 있으며 ‘여러분 건강하시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전했다. 또한 MBC 일일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신인 유민규는 ‘2014년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빛나는 로맨스’ 파이팅!’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드라마 홍보도 잊지 않았으며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 촬영을 끝마친 신인 배우 이재준도 현재 독립영화 ‘생살’ 촬영 중에 새해인사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통일로 기념비’ 제모습 찾았다

    [서울신문 보도 그후] ‘통일로 기념비’ 제모습 찾았다

    서울시 SH공사가 은평뉴타운 중심상업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지 펜스 안 풀숲에 방치됐던 ‘통일로 기념비’를 바깥에서 보이게 하고 주변을 말끔히 단장한 사실이 24일 밝혀졌다. 기념비는 1971년 12월 서울 은평구 구파발~경기 파주시 임진각을 잇는 통일로(국도1호선) 준공을 기념해 가로 4m, 세로 3.2m로 만들어 은평구 진관동과 임진각 입구에 똑같은 모양으로 세워졌다. 40년 전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표지에도 나왔다. 국립현충원 현충탑을 만든 이일영 전 남산미술원장이 제작했고, 기념비에 새겨진 글씨 ‘통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이다. 2개 기념비 중 구파발역 앞에 자리했던 것은 2003년 주변 지역이 뉴타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임시 환승주차장에 위치하게 됐다. 서울시 주차계획과는 2008년 11월 환승주차장에 들어서면 주차면수 확보에 어려움을 준다며 SH공사, 은평구 도시계획과·고양시 건설과·서울시 도로관리과에 이전을 요청해 2010년 5월 300m 떨어진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그러나 이전 장소가 은평뉴타운 중심상업지 PF 부지 펜스 내부라서 외부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덩달아 관리까지 소홀해지면서 풀숲에 방치돼 왔다. 이 같은 서울신문 지적에 지난해 펜스를 뜯어 기념비 뒤로 옮기고 죽은 잔디 대신 보도블록을 깔아 말끔하게 새 단장을 끝냈다. 40여년 전 고양군 토목계장 신분으로 통일로 건설에 참여했던 이창우 전 파주부시장은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은 기념물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다시 선 모습을 보게 돼 반갑고 기쁘다”고 밝혔다.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박근혜 시계’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비화

    ‘박근혜 시계’가 오는 6월 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설을 앞두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친필 사인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1인당 남성용·여성용 5세트(10개)씩 전달했다. 논란의 소지가 생긴 것은 지난 21일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이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이 시계의 활용을 언급하면서다. 홍 사무총장은 이 선물에 대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저희가 가서 몇 번(부탁했다)…무지하게 어렵게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아무 데나 쓰지 마시고 좋은데 잘 쓰셔서 당협 운영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활용을 잘 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사무총장은 “6월 4일 잘 안 되면 우리 말마따나 개털이다. 이번에 잘 안 되면 어렵고 힘든 공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말고…”라며 6·4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당부했다. 그러자 민주당 김현 의원은 같은 날 ‘박근혜 시계’가 선거법 위반이 아닌지 판단을 해달라며 중앙선관위에 질의서를 냈다.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도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혈세로 만든 시계를 집권여당 선거운동용 금품으로 전락시킨 선거법 위반 사례다”면서 “선관위는 손목시계 제작 의도와 유포경로를 밝혀 위법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도 이런 논란을 우려한 듯 민주당의 질의에 앞서 20일 ‘선거구민이 아닌 자’ 등 시계를 제공할 수 있는 사례를 담은 안내문을 새누리당에 발송했다. 홍 사무총장은 이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의 선거법 위반 공세에 대해 “대통령께서 선물한 것까지 야당이 공세를 하느냐”면서 반발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의 선물로 드리거나 워낙 원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라면서 “일단 찔러보자는 식의 민주당의 대응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07년 윤치호 작’ 친필 美 에머리大 원고 소장 친일 논란 있더라도 원작 맞다면 대우해야

    ‘1907년 윤치호 작’ 친필 美 에머리大 원고 소장 친일 논란 있더라도 원작 맞다면 대우해야

    “(애국가 작사가가)윤치호든 안창호든 그게 뭐 중요합니까. 영원히 작자 미상으로 방치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겁니다. 광복 70주년인 내년까지 작사가 규명 문제를 매듭지을 각오입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41) 스님이 새해 벽두부터 또 일을 냈다.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주립박물관(LACMA)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를 돌려받자마자 다시 애국가 작사가 규명이란 지난한 여정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애국가제자리찾기’는 환수보다는 정체성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7일 각계 인사들로 위원회를 꾸린 스님은 이달 말 미국으로 날아가 오는 3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 도서관에서 윤치호의 친필 애국가 원본을 열람할 계획이다. 윤치호의 유족(딸)이 1990년대에 아버지 모교인 에머리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원고다. 1~4절까지 한글 붓글씨로 쓰여 있고, ‘1907년 윤치호 작’이란 서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는 “1945년 쓰인 친필 원본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든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무실에서 마주한 스님은 표정이 밝지 못했다. “왜 친일파(윤치호)를 옹호하려 드느냐”, “스님이 찬송가에서 비롯된 애국가 원본을 찾아 무엇에 쓰려느냐”는 쓴소리들 탓이다. 독립협회장을 지낸 윤치호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변절했다가 해방 직후 자결했다. 혜문 스님은 “친일 논란이 있는 안익태의 애국가 자필 악보도 근대문화재로 지정받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며 “윤치호 작사가 맞다면 원고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와 안창호, 김윤식 등 각기 다른 5명의 작사설을 놓고 표결 끝에 11대2로 윤치호 작사설에 힘을 실어 줬다. 작사가를 확정치 않았으나 당시 최남선 국사편찬위원장은 이 원고의 사본을 접한 뒤 “‘윤치호 작’이란 서명이 붙은 것이 확실하다면 윤치호가 가사를 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행방이 묘연해진 원고는 2009년 12월 뉴욕국립도서관을 방문한 혜문 스님에게 우연히 발견됐다. ‘Korean Anthem’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의 대한제국 애국가(뉴욕국립도서관)와 윤치호의 애국가(에머리대 도서관)가 동시에 떴다. 이후 도서관을 설득해 가까스로 열람 허가를 얻었다. 윤치호의 애국가 원본에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접근 제한’이 걸려 있다. 첫 열람을 앞두고 혜문 스님의 고민은 깊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고가 윤치호의 친필본인지부터 기증자와 기증 조건까지 모두 뒤질 계획입니다.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서 쉽게 되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유족의 기증 조건에 ‘윤치호가 국내에서 애국가 작사가로 인정받으면 내주라’는 단서가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혜문 스님은 문헌을 검토한 결과 안창호 작사설보다 윤치호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안창호가 1907년 선천예배당에서 7일간 금식기도를 마친 뒤 직접 작사했다’는 주장이 통용돼 왔다. 그는 “1907년 윤치호가 편찬한 ‘찬미가’의 14장, 19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1951년 서정주가 쓴 ‘이승만 박사’ 전기, 로스앤젤레스에서 편찬된 ‘세계명작가곡집’이 윤치호 작사설을 뒷받침한다”고 열거했다. 또 1904~1920년 사이 부른 미국 한인 찬송가 속에는 ‘윤선생 티호군 작사’로, 미국 적십자가 발간한 영문 책자 속에는 ‘Chiho Yun’으로 각각 표기됐다는 것이다. 6·25 전쟁 직후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발간한 한국 소개 책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애국가 후렴구는 윤치호가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성학교 교장인 안창호와 명예교장인 윤치호가 가까운 사이였던 만큼 의견을 나눴거나 여러 명의 공동 창작가가 시간을 두고 작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그는 “규명 작업을 거쳐 내년까지 국가상징위원회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최종적으로 애국가 작사가를 가려 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윤치호 작사 애국가 원본 환수 나섰다

    윤치호 작사 애국가 원본 환수 나섰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애국가 가사 원본을 국내로 환수하기 위한 운동을 벌인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17일 서울 조계사 불교문화대학에서 ‘애국가 제자리 찾기 100인 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미국 애틀랜타 에머리대에 보관된 윤치호의 자필 애국가 원본 환수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위원회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을 비롯해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혜문 스님은 오는 31일쯤 안 의원과 에머리대를 방문해 애국가 원본을 열람하고 진위 여부와 당시 유족의 기증 조건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윤치호가 1945년 자필로 애국가 가사를 적고 ‘1907년 윤치호 작’이라 명기한 이 친필본은 1997년 유족의 기증으로 윤치호의 모교인 에머리대에 보관 중이다. 이번 환수 운동은 학계에서 애국가 작사가를 놓고 격론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선 안창호의 애국가 작사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반면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증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발견됐다. 윤치호가 1907년 번역한 ‘찬미가’란 책의 14장에 애국가가 수록돼 있다. 또 1910년 9월 미 샌프란시스코 교민회인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애국가 작사가로 윤치호가 명기됐다. 신한민보는 미국에서 대한제국의 해외 기관지 역할을 했다. 또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심의에선 애국가 작사가로 윤치호와 안창호를 놓고 표결이 벌어졌는데 윤치호 작사설이 11대2로 우위를 차지했다. 혜문 스님은 “다양한 문헌·구전 자료를 볼 때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면서 “애국가 원본은 국가 중요 기록물이므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위해 반드시 한국으로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에머리대는 윤치호의 유가족에게서 원본을 기증받아 도서관에 보관해 왔으며 그동안 훼손을 우려해 한국인 방문객에게 사본만 열람하게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수현, 전지현 뒤에서 ‘와락’ 안은 이유

    김수현, 전지현 뒤에서 ‘와락’ 안은 이유

    9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극본 박지은, 연출 장태유) 8회에서 김수현이 전지현에게 백허그를 했다. 이날 도민준(김수현 분)의 집에 머물게 된 천송이(전지현 분)는 신세를 갚기 위해 집안일을 돕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을 옮기던 천송이는 실수로 이를 깼고 도민준은 사색이 됐다. 1693년 당대 최고의 장인에게 직접 받아온 이조백자로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그릇이었던 것. 이를 알 리 없는 천송이는 “괜찮아”라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고 도민준이 안절부절 못하자 “괜찮아. 나 청소 잘한다니까 볼래?”라며 청소기를 휘둘렀다. 이에 도자기가 깨졌고 도민준은 또다시 사색이 됐다. 이 도자기는 허균 선생의 친필이 들어간 이조백자였다. 천송이는 그런 도민준에게 “알았어. 내가 똑같은 걸로 사다 줄게. 에이 아니다. 더 비 싼 걸로 사다 줄게. 많아. 널렸어. 저기 이천 휴게소 같은데 가면. 일단 내가 청소부터 좀 하고”라고 말했다. 이에 도민준은 천송이를 뒤에서 껴안으며 “가만히 있어. 아무 것도 하지 말고”라고 말렸다. 이날 방송 말미에서는 도민준이 천송이에게 기습 키스를 하며 본격적인 로맨스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 = 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멕시코 마약조직, 주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멕시코 마약조직, 주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범죄조직이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멕시코의 국경도시에서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는 마약카르텔 ‘걸프’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잔인한 마약카르텔이 산타클로스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마약카르텔의 연말 선행(?)은 유튜브에 오른 동영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무대는 마약카르텔 ‘걸프’의 근거지이자 활동무대인 탐피코의 거리다. 탐피코는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으로 마약카르텔이 미국으로 마약을 공급하는 전진기지다. 조직원이 촬영해 올린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보면 마약카르텔이 몰고 간 트럭에는 선물이 가득 실려 있다. 트럭이 탐피코의 한 병원 앞에 멈추고 조직원들이 선물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주변에는 주민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봉지에 담아 깔끔하게 준비한 선물은 식품과 완구였다. 조직원들은 “안녕하세요. 걸프 마약카르텔이 드리는 선물입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라고 상냥하게 인사하며 선물을 나눠준다. 현지 언론은 “대낮에 마약카르텔이 길에서 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건 공권력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마약카르텔의 기세가 갈수록 등등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약카르텔 걸프는 지난해 어린이의 날에도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바 있다. 당시 조직의 우두머리는 잔악하기로 이름난 오시엘 카르데네스였다. 그는 선물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꾸준하고 규율적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친필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사진=클라린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자존심 지키는 멋진 어른이 되길” 성북구청장, 자선다이어리 참가

    “자존심 지키는 멋진 어른이 되길” 성북구청장, 자선다이어리 참가

    시설 퇴소 청소년을 돕는 사회 명사 다이어리 전시회에 서울시 기초지방자치단체장 25명 가운데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유일하게 참여해 눈길을 끈다. 7~26일 서울도서관 생각마루에서 ‘열여덟 어른의 자립정착 꿈’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열리는 ‘100인의 다이어리전’이다. 지난해 12월 교보문고 전시회가 자리를 옮겨 2차 전시회를 갖는 것. 아름다운재단 등이 부모가 없거나, 집안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보육원이나 공동생활 가정 등에서 보호받다가 18세가 돼 시설을 떠나게 된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마련했다. 시설 퇴소 청소년들은 자립 정착금으로 300만원을 지원받지만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단은 유명 캘리그래퍼 강병인씨가 재능기부로 ‘꿈 활짝 피어나다’라는 글씨를 새긴 다이어리를 제작, 일반에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시설 퇴소 청소년 자립을 돕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 소설가 조정래, 만화가 윤태호, 뮤지션 장기하 등 사회 각계각층 명사 100명의 친필 사인과 꿈에 대한 메시지를 새긴 다이어리를 1권씩 특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이 다이어리는 추첨을 통해 캠페인 참가자에게 기념품으로 제공된다. 김 구청장의 경우 공적 영역에서 진정성을 갖고 연대와 호혜의 가치를 펼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재단이 적극 섭외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저서 ‘동네 안에 국가 있다’도 함께 전시된다. 김 구청장은 피천득 시인의 ‘인연’을 인용하며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길 응원한다”고 적었다. 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박원순 서울시장도 전시회에 참여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오바마가 황당해…美대통령 연말 선물도 배달 사고

    오바마가 황당해…美대통령 연말 선물도 배달 사고

    미국은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축하하는 선물 등으로 우편 물량이 늘어나면서 배달이 지체되거나 잘못 배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당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등 가족들이 연말을 맞아 2013년 한 해 동안 찍은 개인적인 가족사진 등 선물을 가족들의 절친한 친구 앞으로 보냈으나. 이 우편물이 엉뚱하게도 시카고에 사는 한 가정에 배달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2일(현지시각)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엘린 처치와 그의 남편은 지난해 마지막 날 늦게 자신의 집으로 배달된 한 통의 상자를 발견했다. 처치는 집으로 배달된 선물 상자는 이미 일부가 뜯겨 있었으며 그 안에 있는 선물 겉표지에 보내는 사람으로 오바마와 미셀 그리고 딸들이라는 친필 사인이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고 밝혔다. 본의 아니게 오바마 대통령의 선물을 받은 처치는 지난 2일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믿기지 않았는데 상자 안에 오바마 대통령 가족의 사진첩으로 보이는 물건과 다른 선물들이 들어 있었다”고 당시의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녀는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배달된 물건들은 일절 개봉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수신인에게 2일 다시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론들의 확인 결과, 이 우편물은 오바마 가족의 절친한 친구이며 오바마 대통령 두 딸인 말리아(15), 사샤(12)의 대모인 마마 케이와 그의 남편에게 보내는 선물로 밝혀졌다. 미 백악관 관계자도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배달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며 “다시 선물이 올바른 수신자에게 전달될 수 있게끔 애쓴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배달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미국의 우편물 배달을 총괄하고 있는 ‘미국우정공사(USPS)’는 자세한 언급을 피한 채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배달 사고로 잘못 전해진 오바마 대통령의 선물 (미 NBC 방송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종교 플러스]

    청화 스님 법문 선서화 전시회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수행승으로 꼽히는 무주당 청화 스님(1924~2003)의 법문을 선서화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4∼27일 광주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인 서예가 고월 박경순씨의 ‘무주당 청화대종사 추모 선서화전’이 그것. 전시회에는 청화 스님의 법문과 열반송, 발원문, 관음찬 등을 그림과 오체(해서, 전서, 행서, 초서, 예서)로 표현한 30여 점과 청화 스님의 친필 3점이 전시된다. 박경순씨는 원광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대에 국전에 연입상, 연특선했고 현재 순천대 평생대학원에서 후진을 양성 중이다. 교회개혁연대 10주년 책 출간 교회개혁실천연대(교개연·공동대표 박종운 백종국 방인성)는 창립 1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교회개혁, 그 길을 걷는 사람들 10년의 발자취’를 출간했다. 400쪽 분량의 책은 한국 교회의 자정·개혁을 위해 주력했던 지난 역사와 사업을 소개한 게 특징. 한국 개신교계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비롯해 정관, 재정조례, 목회자 청빙가이드 등 교개연의 대표적인 연구물을 함께 묶었다. 특히 교개연이 지난 2003∼2011년 상담해 온 ‘교회상담’ 통계자료는 개신교 신도들이 교회와 관련해 겪고 있는 문제와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눈길을 끈다. 천주교 청소년국 홈피 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홈페이지 개편을 통해 온라인 청소년 사목자료 보급에 나섰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최근 홈페이지 상단에 검색창을 마련해 이용자들이 청소년 사목과 관련한 온라인 자료를 손쉽게 검색,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온라인 자료와는 달리 회원가입, 로그인 등 절차 없이 누구나 원문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서울대교구 측은 청소년 사목정보 교류의 장 확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홈페이지를 개발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서울대교구 측은 지난해까지 오프라인상 자료 대출을 중심으로 자료실 업무를 진행해 왔다.
  • 이봉원, ‘막말 논란’ 변서은 비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

    이봉원, ‘막말 논란’ 변서은 비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

    개그맨 이봉원이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한 후배 개그우먼 변서은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봉원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변 모라는 보도 듣도 못한 철딱서니 없는 인간이 현직 여성 대통령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을 지껄였다”면서 “바로 친필 사과문이니 어쩌니 끄적댔지만, 도저히 상식을 갖고 사는 인간이라면...내가 다 살이 떨린다”고 비난했다. 이봉원은 또 “말과 물은 뱉고 쏟아지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아무리 순간적인 실수라고 변명을 해도 참을 수 없는 언행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변서은은 지난 18일 민영화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페이스북로 올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몸이나 팔아”라는 막말을 해 파문에 휩싸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종친부와 미술관의 화해/서동철 논설위원

    경복궁 동쪽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안팎은 조선시대 소격서와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들어서 있던 관청 밀집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는 경성의전부속병원이 지어졌고, 해방 이후 이 건물은 수도육군병원으로 쓰였다. 서울 시내 중심부의 요지인 탓인지 병원 뒤편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차지했는데 얼토당토않게 1981년 테니스장을 짓겠다며 멀쩡한 종친부(宗親府) 건물을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 세운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직후 기무사의 위세를 당시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기무사 전신 국군보안사령부 시절이다. 미술인들의 소망대로 정부는 2010년 이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서울관 건립과 함께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 또한 당연한 조치처럼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군사정권에 훼손된 역사를 일부나마 되찾는 뜻깊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니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나마 미술인 사이에 나온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이 땅은 미술인들이 힘을 합쳐 쟁취한 일종의 ‘전리품’인데 문화재라는 ‘다른 장르’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반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은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과 동시에 추진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우여곡절을 겪은 종친부 건물의 이전복원 공사가 마침내 마무리돼 20일 현장에서 준공식을 갖는다고 한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10동 남짓한 규모였다고 하는데 남은 건물은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뿐이다. 미술관 착공과 동시에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건물 지하의 옛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해 그 자리에 복원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던 경근당과 옥첩당의 현판도 다시 걸었다. 경근당 현판은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종친부 복원이 반갑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서울관이 개관한 이후에도 종친부는 썰렁한 분위기 속에 공사 중이었다. 미술인들에게는 여전히 ‘눈엣가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관 기념전에 종친부 건물을 활용한 작품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늦었지만 준공식이 미술과 문화재가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술인들은 종친부 건물을 예술적 자원의 하나로 활용하고 문화재 관계자들은 종친부 건물이 역사적 의미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 자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경제민주화 지우고 경제활성화 그리고

    “서민 업종에 재벌 2~3세들이 뛰어들거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찾은 지난해 12월 26일과 17일 각각 언급한 내용으로, 발언의 방향성이 180도 달라졌다. 경제 행보의 무게중심이 ‘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로 옮아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앞서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만 해도 경제 행보의 초점이 민주화에 맞춰져 있었다. 경제인단체 중 중소기업중앙회를 가장 먼저 방문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고, 이어 소상공인단체연합회를 찾았다. 전경련은 후순위로 밀렸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전경련 방문 당시 “한참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 형태는 자제해야 한다”며 대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난 8월 28일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를 계기로 대기업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전경련을 찾은 것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징적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전경련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투자하고 도전한다면 정부는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기업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간담회에서 창조 융합 분야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LG의 연료전지,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그린카, 삼양사의 자동차 경량화 신소재, 코오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두산의 정보기술(IT) 활용 디젤엔진, 한화의 나노튜브 등이 소개됐다. 또 SK는 자사 보유 정보를 공개해 청년 창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의지도 나타냈다. 아울러 해외 플랜트·건설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 등 정부에 대한 건의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의 전경련 방문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경련의 인연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전경련 회관이 지어질 때 ‘創造’(창조), ‘協同’(협동), ‘繁榮’(번영)이라는 친필 휘호를 선물했고, 휘호가 새겨진 기념석은 이날 준공된 신축회관 앞에 그대로 놓였다. 박 대통령도 이날 준공식 축사에서 선친의 휘호를 인용하면서 “전경련이 미래 대한민국의 ‘창조’ 역량을 끌어올리면서 함께 땀 흘리는 ‘협동’의 중심에 서서 ‘번영’의 미래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정은, ‘숙청’ 사흘째 행보 공개…軍사업소 방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 처형 이후 사흘째 공개활동 행보를 이어갔다. 김정은은 군 제313군부대 산하 8월25일수산사업소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그는 지난 5월 27일에도 이곳을 방문해 어선 4척을 선물하며 “매 고깃배당 해마다 (물고기) 1천t은 잡아야 한다”며 이를 달성할 경우 자신에게 편지로 알려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이 수산사업소가 지난 6개월 동안 물고기 4천t을 잡았다는 편지를 접한 김정은은 지난 11일 친필로 격려 답장을 보낸 데 이어 이번에 다시 방문한 것이라고 중앙통신이 설명했다. 제313군부대는 강원도 동부전선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수산사업소 물고기 절임창고와 냉동저장실에서 물고기들을 보고 “포탄들이 차 있는 탄약창고 같다”며 기쁨을 표시했다. 이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수산사업소 지배인 윤용일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우고 사업소 전 종업원들에게 ‘감사’를 줬다. 또 종업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이들을 평양에 초청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이번 현지지도에는 황병서·마원춘 노동당 부부장이 동행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12일 장성택 처형 이후 인민군 설계연구소와 마식령 스키장 건설현장 등을 잇달아 방문하며 활발한 공개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통신은 김정은이 15일 김국태 노동당 검열위원장의 빈소도 방문해 애도했다고 16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김국태의 빈소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묵상하고 “당의 충직한 혁명전사를 잃은 비통한 심정”으로 빈소를 둘러봤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이어 김정은은 유족들을 만나 조의를 표시하고 위로했다. 김정은의 빈소 방문에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기남 당 비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평해 당 비서, 리재일 당 제1부부장, 황병서·마원춘 부부장이 동행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운동 동료 김책의 장남인 김국태는 지난 13일 급성심부전 및 호흡부전으로 89세의 나이로 숨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선중앙통신 특별군사재판 보도문 전문

    -천만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 만고역적 단호히 처단-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 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 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 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 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할 목적 밑에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높은 정치적 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 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 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 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 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 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 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 것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군령도 지반과 령군 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정권 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 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 타격을 받고 철직, 해임된 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 부문에 배겨 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 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나라 청년 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 뿐 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 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 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 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 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 경력에 문제가 있는자, 불평불만을 가진 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 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 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 청사 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 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 행위를 감행한 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 당의 방침도 뒤집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 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 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 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 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 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 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 성, 중앙기관과 도, 시, 군급 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 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 생활비 적용 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 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 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 체계를 헝클어 놓아 몇년 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 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 건설 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평양시 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 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 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 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 범죄 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 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 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놈은 심리 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 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 령도자 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 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 관계에 있는 군대 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 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 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 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 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 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 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 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 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장성택의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 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 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 아래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 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 음모 행위가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북한이 전날 특별군사재판을 열고 장성택에 사형을 판결한 뒤 즉시 집행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됐다”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밝혔다. 북한 형법 제60조는 국가전복음모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 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야심을 가지고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타격을 받고 철직, 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 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 경력에 문제가 있는자, 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지도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 당의 방침도 뒤집을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 성, 중앙기관과 도, 시, 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 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 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정치적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 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장성택의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북한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박정희 전 대통령 전시물 서울시는 못 구해서 ‘끙끙’ 구미시는 관리 못해 ‘끙끙’

    박정희 전 대통령 전시물 서울시는 못 구해서 ‘끙끙’ 구미시는 관리 못해 ‘끙끙’

    서울시가 지난해 말 복원 작업을 마친 중구 신당동 ‘박정희 가옥’(등록문화재 412호) 전시물 확보난으로 가옥 개방을 연거푸 연기<서울신문 12월 12일 자 29면>하는 등 애를 태우는 가운데 경북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의 넘치는 유품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구미에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12일 구미시 등에 따르면 시의 선산출장소 내 3층 사무실 3곳에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비롯해 재임 시 받은 선물과 액자 각각 1000여점, 각종 기념품 2000여점, 병풍 100여점, 축전 및 연하장 900여점 등 총 5670점이 보관돼 있다.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옛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이 2004년 8월 서울에 있던 유품을 보관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구미시에 임시 보관을 의뢰한 것들. 소유권은 유족들이 기념재단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이들 유품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사용한 책상과 의자, 세계 각국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 등 50여점을 올 1월부터 구미 상모동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주변에 준공한 민족중흥관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시는 유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항온항습기 설치, 유품 손상을 막기 위한 약품 처리, 초미립자 연무방제 등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시는 유품 도난과 화재 예방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기념재단이 추진해 오던 박 전 대통령 기념관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보관할 곳을 찾지 못해 30여년째 방치되고 있다. 기념재단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 전 대통령 기념관 대신 박정희 기념·도서관을 2011년 12월 준공하는 바람에 이들 유품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경북도와 구미시도 2015년까지 박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792억원(국비 396억원, 도비 119억원, 시비 227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건립할 예정이지만 박 전 대통령 관련 유물 전시 계획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유품을 관리할 별도의 수장고 등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예산이 많이 드는 관계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유품의 일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고물상 등으로 팔리거나 폐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안행부·통일부만 남아 1층엔 행정사료관 설치 내년 4월 여가부 입주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지였던 43년 역사의 정부서울청사는 그 위상을 이제 세종시에 내어 주게 됐다. 내년 말에 진행될 세종시 3단계 이전까지 완료되면 현재 청사에 있는 법제처, 소방방재청, 통일부, 안전행정부, 교육부 가운데 안행부와 통일부만 남게 된다. 교육부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여성가족부가 내년 4월 들어올 예정이다. 최근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청사를 꼼꼼히 둘러본 다음 실내장식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조 장관의 의견을 반영해 청사 1층의 실내장식이었던 물레방아와 대형 어항이 철거되고, 녹색 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국가기록원이 내용과 구성을 맡는 행정사료관도 청사 1층에 이달 말까지 설치된다. 100년 달력, 테마로 보는 행정의 역사, 타임캡슐 등을 전시해 대한민국 행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하 3층, 지상 19층의 대형 사각형 건물인 정부서울청사는 경기도 과천에 1982년 정부 제2청사가 일부 완공되기 전까지 정부종합청사로 불렸고, 이후 정부중앙청사로 불리다 세종청사의 개관과 함께 정부서울청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청사 현관에는 1970년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자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대형 친필 석조 부조가 걸려 있다. 내용은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오늘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노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다. 1967년은 정부서울청사가 착공한 시점으로 당시만 해도 대형 건축물 설계 경험 부족으로 한국 업체에서 미국 회사인 PAE인터내셔널로 설계업체가 바뀌었고, 시공은 풍전산업이 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대한민국 행정 1번지인 정부서울청사에 3개 부처만 남게 되면 안행부가 맹주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朴대통령 “예산 통과 안 되면 국민 고통 커져”

    朴대통령 “예산 통과 안 되면 국민 고통 커져”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서비스산업 전반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교육·관광·의료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체감효과도 크고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쉬운 과제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홍릉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제3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국내 시장만 볼 것이 아니라 넓은 세계 시장을 목표로 과감한 혁신과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비스 산업의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동력을 만들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이어 “내년도 예산안과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막 살아나고 있는 우리 경제에 타격이 되고 국민들의 고통도 커질 것”이라며 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KDI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대한 현장분석 등을 토대로 의료, 교육서비스 등의 ‘동아시아 허브 전략’을 제시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의 둔화는 상당 부분 서비스산업의 저성장에서 기인했으며 이념적 대립과 기존 이익집단의 반발 때문에 정책이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KDI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등을 둘러싼 논란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한편 이번 회의는 연말 세종시로 이전하게 돼 ‘홍릉시대’를 마감하는 KDI에서 열려 박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KDI는 박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71년 3월 설립됐다. 지금도 KDI 본관 로비에는 ‘번영을 향한 경제 설계’라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걸려 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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