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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한말 어린이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구한말 어린이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한국 미술계에 참 별난 인물이 있다. 초지일관 미술자료 수집에 정열을 바친 김달진(60) 씨다. 45년간 모은 자료를 이고 지고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에서 전·월세 생활을 해야 했던 그가 서울 종로구 홍지동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281.28㎡ 규모의 버젓한 사옥을 마련하고 오는 12일부터 재개관 기념전을 연다. 고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부터 미술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그는 2001년 평창동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한 데 이어 2008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자료 전문박물관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만들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전용공간임차지원사업’ 지원으로 창전동에서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운영해오다 지난해 9월 정부 지원 중단으로 평생 모은 자료 가운데 2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 고민하던 끝에 그는 그동안 모은 돈과 은행 융자를 받아 건물을 샀다. 낡은 건물은 건축가인 김원 광장건축환경연구소 김원 소장의 재능기부로 새롭게 단장됐다. 이번 개관전 ‘아카이브 스토리: 김달진과 미술자료’전에선 그동안 축적한 자료 중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단행본, 화집, 정기간행물, 리플릿, 작품 등 주요 소장품 250여점을 전시한다. 김 관장은 “한국미술 아카이브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주요 자료 카테고리로 정리했다”며 “아카이브가 역사적 자료를 수집 보존하는 저장소의 의미를 넘어 박물관이라는 기관이 수행하는 다양한 연관 콘텐츠, 아카이브 활용이 이뤄내는 지형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구한말 조선 어린이들의 놀이와 풍속을 다룬 이시이 단지의 ‘조선아동화담’(1891) 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미술단체인 서화협회의 협회보 창간호(1921)와 종간호(1922),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조선미술전람회 3회 도록(1924)과 5회 도록(1926), 우리나라 최초의 원색도판 화집 ‘오지호·김주경 화집’(1938), 김환기 친필 엽서와 백남준 친필 연하장 등 다양하다. 또 캐나다인 제임스 게일이 1909년 저술한 ‘전환기의 한국’, 영국 빅토리아앤알버트 뮤지엄에서 동양도자기 전시 중 최초로 한국도자기 전시를 열면서 펴낸 ‘르블랑 한국도자기 컬렉션도록’(1918), 베네딕트수도회 신부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가 지은 ‘한국미술사’(1929) 등 근현대 한국학관련 자료도 소개된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02)730-6216.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미당의 시어(詩語) 논란/정기홍 논설위원

    올해는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달 모교인 동국대에서 시 낭송회가 열린 데 이어 연말까지 크고 작은 행사에서 주옥같은 토속 시어(詩語)를 구사한 그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미당이 옛 한자말은 물론 숨어 있던 사투리 등 고풍스런 시어를 발굴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당의 시와 산문 등을 묶은 스무 권짜리 완결판 전집도 올해 나온다. 문단에선 벌써 미당의 시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의 시 ‘선운사 동구’의 ‘상기’는 대표적인 예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안 했고/막걸릿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이 시는 오래전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른 선운사 근처 주막집 여인의 목쉰 육자배기를 훗날 다시 떠올려 시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여기서의 ‘상기’는 ‘아직’이란 뜻의 고어로 경북과 함경, 평안 방언이다. 시를 처음 발표한 예술원보(1967년)에선 ‘상기도’가 아닌 ‘아직도’로 표기했었다. 1년 뒤 간행된 시집 ‘동천’에서 ‘오히려’로 고쳐졌고, 1972년에 낸 서정주 문학전집에서는 ‘시방도’로 바뀌었다. 모두가 미당이 직접 고친 것으로 전해진다. 1974년 선운사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울 때는 미당이 친필로 ‘상기도’를 써 주었다. 이때 ‘고랑’을 ‘골째기’로, ‘않았고’를 ‘안 했고’로 바꾸었다. 천하의 미당도 이전의 시어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이후 민음사에서 세 번의 서정주 시전집을 간행하면서 ‘동천’의 것을 따와 ‘오히려’로 표기하면서 일반적으로 동천의 표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다. 일부 평론가가 시어가 바뀐 시기 등을 달리 내면서 언론 등에서 인용하는 등 혼재의 상태다. 대체로 ‘상기도’가 적절한 표현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부활’의 ‘순아’ 표기도 논란이다. 첫 발표(1939년)때 ‘순아’로 썼지만 화사집(1941년)에 수록하면서 ‘유나’(臾娜)로 바뀌어 ‘순아’와 ‘유나’, ‘수나’가 혼재돼 있다. 미당의 절친으로 내막을 잘 아는 김동리는 ‘귀촉도’의 발문에서 ‘수나’(叟那)로 썼다. 미당의 수제자인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화사집에 한자어가 많은데 순아를 수나란 한자로 바꿔쓰면서 문선공이 유나로 오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당은 작고 전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한다. 이 말고도 ‘화사’에서의 ‘배암’이 ‘베암’인지 등 논란의 시어는 수없이 많다. 5월쯤에 문학 전집 가운데 시전집 다섯 권이 먼저 나온다. 출판사는 아직 시어 선택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최종본이 없어 논란이 이어졌다”면서 “오류들은 소릿값을 잘 전달하는 시어를 택해 고칠 것이고 각주로 설명을 곁들일 것”이라고 했다. ‘완성되지 못한 집’이란 미당의 호(號) 풀이처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그의 시구처럼 오류로 인한 그동안의 혼란을 불식할 완성본을 기대해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18년만에 드러난 ‘미켈란젤로 문서’ 도난사건

    로마 교황청이 도난당한 미켈란젤로의 문서 2건의 반환 대가로 10만 유로(약 1억 2000여만원)를 요구받았지만 거절했다고 8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교황청은 18년 전 발생한 문서 도난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괴한의 제안을 계기로 언론에 공개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1997년 바티칸 문서고에서 미켈란젤로와 관련된 해당 문서들이 없어졌지만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을 바티칸 전직 직원이라고 소개한 괴한으로부터 금품 요구 전화를 받은 성 베드로 성당 소속 추기경은 도난품이란 이유로 금품 제공 및 협상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문서 2건 중 하나는 미켈란젤로가 친필로 쓴 편지이고, 다른 문서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기 피에타상과 다비드상,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천장화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주로 조수들에게 받아쓰게 해 문서를 만든 뒤 사인만 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전문을 쓴 편지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교황청은 설명했다. 교황청 경찰과 이탈리아 경찰은 협박범을 찾기 위해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아인슈타인이 이탈리아어로 쓴 ‘친필 편지’ 경매

    아인슈타인이 이탈리아어로 쓴 ‘친필 편지’ 경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이탈리아어로 쓴 친필 편지가 경매에 나와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공개된 편지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25년 이탈리아의 유명 물리학자인 지오바니 조르지에게 쓴 것으로, 조르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영향을 준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편지에서 조르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한편, 신을 믿지 않음에도 신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밖에도 당시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데이튼 클라렌스 밀러의 이론과 자신의 이론 등을 언급, 학술적인 내용을 상당부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편지는 아인슈타인이 1980년대 중반부터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머물면서 배운 이탈리아 어로 쓴 것인데, 전문가들은 아인슈타인의 이탈리아어 실력이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편지의 경매를 맡은 미국 보스턴의 한 경매업체 측은 “이 편지에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매 문장마다 아인슈타인의 업적과 생활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편지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다는 것 역시 매우 큰 특징이다. 그의 가족은 189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수 년을 그곳에서 지냈는데, 이탈리아어로 남긴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편지는 그런 의미에서 희소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보스턴에서 경매에 부쳐진 이 편지는 약 84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개인 수집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진관사·선교장 태극기, 은평에 걸린다

    진관사·선교장 태극기, 은평에 걸린다

    광복 70주년에 맞는 3·1절에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은평 지역 천년고찰인 진관사와 한국 최대 한옥인 강릉 선교장에서 발견된 태극기가 전시되는 등 나라와 태극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은평구는 오는 25일부터 4월 30일까지 은평뉴타운의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광복 70년! 미래 천년! 진관사·강릉 선교장의 독립운동 태극기’ 전시회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09년 발굴돼 근대문화재(제458호)로 등록된 ‘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항일독립신문’과 2014년 발견돼 문화재 등록을 준비 중인 ‘강릉 선교장 태극기’, 김구 선생의 휘호를 전시하는 특별전이다.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진관사 칠성각(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3호) 해체 복원 조사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됐다. 특히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日章旗) 위에 덧그려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일장기를 거부하고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고종이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강릉 선교장의 태극기도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이 태극기는 1908년 강릉 선교장 내 동진학교에서 사용되던 2개의 태극기 중 하나로 일제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후 광복 될 때까지 땅속에 숨겨서 보존했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이 강릉 선교장에 내린 휘호 ‘天君泰然’(천군태연)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후 처음 공개된다. 안익태의 ‘코리아 심포니’ 친필 악보 등도 볼 수 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 주민과 청소년 등이 광복 70년과 독립운동, 태극기의 참모습과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은평 주민들에게 지역 역사를 알리고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되살린 ‘소설가’ 채플린

    되살린 ‘소설가’ 채플린

    채플린의 풋라이트 찰리 채플린, 데이비드 로빈슨 지음/이종인 옮김/시공사/524쪽/2만 8000원 잘나가는 코미디언이었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된 칼베로는 자살을 기도했던 젊은 발레리나 테리를 구해 정성껏 간호한다. 병 때문에 춤을 출 수 없었던 테리는 칼베로의 보살핌을 받아 희망을 되찾는다. 몇 년 뒤 발레리나로 성공한 테리는 떠돌이 악사가 된 칼베로를 만나 그를 위한 춤을 춘다. 환호와 갈채를 뒤로한 채 칼베로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찰리 채플린의 후기 명작 ‘라임라이트’(1952)는 노년에 접어든 그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지운 맨 얼굴로 삶과 죽음, 예술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영화다. 라임라이트는 19세기 말 무대 위 배우를 비추던 강렬한 백색광 조명을 이르는 말이다. 20세기 초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는 자신을 향하던 라임라이트가 꺼진 뒤의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배우였다. 채플린은 영화 ‘라임라이트’를 제작하기에 앞서 중편 소설 ‘풋라이트’를 집필했다.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그를 마주한 뒤 평생을 채플린 연구에 매진해 온 데이비드 로빈슨이 유가족의 도움으로 채플린의 유일한 소설 ‘풋라이트’를 되살렸다. ‘채플린의 풋라이트’는 소설 ‘풋라이트’의 전편은 물론 그가 ‘풋라이트’를 집필하게 된 계기에서 시작해 영화 ‘라임라이트’로 완성되는 과정까지를 충실한 해설과 함께 담았다. 로빈슨에 따르면 ‘풋라이트’ 서사는 채플린이 젊은 시절 교감을 나눴던 무용수 니진스키에서 출발한다.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정신질환으로 날개가 꺾여 버린 그를 보면서 한 무용수의 매혹과 비극을 한데 엮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과 설정만 바꾼 채 집필과 수정을 거듭하던 원고들은 중편 소설 ‘풋라이트’로 완성됐다. 칼베로와 테리의 교감 속에 가난한 예인(藝人)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았다. ‘풋라이트’는 또다시 수정과 가감을 거쳐 대본 ‘라임라이트’로, 다시 영화 ‘라임라이트’로 옮겨진다. 로빈슨은 치밀한 자료 조사와 취재를 통해 ‘라임라이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되살렸다. 유족과 동료들의 생생한 증언, 친필로 수정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미공개 원고, 150여장의 희귀 사진을 통해 채플린을 비추던 화려한 라임라이트가 꺼진 뒤에도 예술혼을 불태우던 노년의 채플린을 마주하게 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靑·내각 정책조정회의] 정책조율 빨간불에… 빨간날 열린 긴급 수뇌회의

    정부와 청와대가 휴일인 1일 긴급하게 ‘수뇌 회의’를 연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전 정부 차원의 ‘정책조정협의회’라는 전에 없던 회의체의 첫 모임이어서 더욱 그렇다. 정책과 관련이 없는 민정 및 인사 수석과 외교안보 분야 등의 장관·수석을 제외하고는 정부와 청와대의 정책결정 최고 책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소동과 건강보험료 개선 백지화 논란 등으로 인해 드러난 정부의 정책조율 기능 부족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첫 회의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정책의 수립-집행-변경-발표 과정에서 조율·조정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를 줄이고 정책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당·정 협의조차 최대한 조용하게 열어왔던 박근혜 정부의 기존 분위기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청와대는 정책조율은 내각이 앞장서야 한다는 원칙 아래 최근 국정기획수석실에서 개편된 정책조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내각의 활동을 선제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 국무조정실장 주재 현안점검회의 등 기존 회의체와 협의 채널 등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켜 활성화하기로 했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채널의 중복 문제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여러 채널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에 따라 청와대가 정책의 큰 틀에서 방향을 정립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전 정부적 회의체’의 운영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정부와 청와대는 2일 새누리당의 새 원내대표가 선출된 이후 당과도 더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수장인 비서실장의 교체가 예고돼 있는 청와대 비서실로서는 앞으로 일정 기간 어수선함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2일 박근혜 대통령의 63번째 생일을 맞으면서도 별다른 자축 행사를 갖지 않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2일 내부적으로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보낼 예정”이라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친필 축하 서한을 보내왔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윤이상·유치환 친필 교가 악보 공개

    경남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1917~1995)과 시인 유치환(1908~1967)이 친필로 작성한 통영시 충렬초등학교 교가 악보가 일반에 공개된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8일 충렬초등학교가 윤이상·유치환 선생이 작곡·작사해 함께 만든 ‘충렬초등학교 교가’ 악보 원본을 재단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이 악보는 윤이상이 만든 교가 악보 원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됐다. 윤이상은 통영 지역 초등학교 10여곳을 비롯해 마산고, 부산고, 고려대 등 전국적으로 학교 30여곳의 교가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기증받은 악보 원본은 윤이상기념공원(도천테마파크) 수장고에 보관하고 원본을 복사한 자료를 윤이상기념공원과 통영국제음악당에 전시할 계획이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나만 위해 우는 팍팍한 세상… 아픈 이 치유하는 ‘작은 선물’

    나만 위해 우는 팍팍한 세상… 아픈 이 치유하는 ‘작은 선물’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죽음을 묵상하는 게 삶을 아름답고 간절하고 뜨겁게 하는 계기가 된다.” 2008년 대장암을 이겨 내고 새 삶을 얻은 이해인(70) 수녀는 매일 ‘작은 죽음’을 연습한다. 이해받지 못하거나 오해로 마음이 아플 때도, 화가 날 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내려놓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내려놓는 삶’이 역설적으로 사랑과 위안으로 가득한 시를 낳는 힘이 되는 듯하다. 항암 투병기를 담은 2010년 ‘희망은 깨어 있네’ 이후 4년 만에 나온 신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마음산책)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따뜻하게 감싸 준다. 이 수녀도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아픔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작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시집엔 시 100편과 시에 덧붙이는 메모 성격의 일기 100편이 실렸다. 곳곳에 아픔과 치유가 녹아 있다. ‘마음이 아플 땐 누구를 원망하면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가만히 내가 나를 다독이며 기다리다 보면 조금씩 치유가 되고’(마음이 아플 때),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다.’(나무가 나에게) 이 수녀는 ‘젊어서는 나를 위해 많이 울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남을 위해 더 많이 우는 나를 본다’(눈물 예찬)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아픈 얘기를 많이 듣고 도와주려 하다 보니 나를 위해 울 시간이 없었다. 교황께서도 이 시대는 무자비해서 남을 위해 우는 법을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공감이 간다. 다들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를 위해 울지 남을 위해 울지 않아 세상이 메마르고 팍팍해진 것 같다.”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에 그가 말하는 사랑과 용서는 심금을 울린다. ‘사랑과 용서는/어쩌다 마음 내키면 하는/그런 것이 아니야//아침에 눈을 뜨고/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하루의 모든 순간에//사랑이 필요하고/용서가 필요하고/화해가 필요하다.’(매일의 다짐) 사선을 넘나들어서였을까. 한 줌의 햇볕도 고맙기만 하다. ‘해 뜨기 전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들면 벌써부터 가슴이 마구 뛰고’(해 뜰 무렵·해를 보는 기쁨), ‘오늘도 한 줄기 햇빛이 고맙고 고마운 위로가 된다.’(햇빛 일기) 그는 “암환자라 추위를 많이 타는 것도 있지만 한 줄기 햇빛이 주는 따뜻한 고마움을 전에 없이 많이 느낀다”고 했다. 이 수녀는 ‘한 송이 꽃이 돼 하느님의 나라에 도착하고 싶다’(마지막 편지)는 편지도 썼고, 지난해 12월엔 ‘엄숙하게 친필로 꾹꾹 눌러’(유언장을 쓰며) 유언장도 썼다. “수녀들 중에 갑자기 쓰러져 아무 준비도 없이 가는 분이 있다. 나도 언제 예측불허의 상황이 닥칠지 몰라 의식이 있을 때 정리해 놓는 게 좋겠다 싶어 법원 공증을 받아 썼다.” 유언장엔 지금껏 나온 출판물이나 사후 나올 미발표 작품들, 재출간 작품들 등의 소유권을 공동체에 귀속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처럼 수도원 관습대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 수녀는 요즘 미열도 자주 나고 아프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 생의 끝에서 동백꽃을 만났다. ‘반세기를 동고동락하며 이젠 한 송이 동백꽃이 돼 행복하고’(동백꽃과 함께), ‘새해에는 동백꽃처럼 더 밝게 더 싱싱하게 더 새롭게 환한 웃음을 꽃피우겠다’(새해에는 동백꽃처럼)고 다짐도 한다. “필 때도 질 때도 아름답고 고운 동백꽃처럼 살다 가고 싶다. 너무 고통스러워 동백꽃과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미련 없이 깨끗하게 선종하고 싶다. 한결같은 평상심으로 살면서 그 평범함 속에 하늘빛의 평화와 기쁨이 피어나는 날들을 보내다 여생을 마치고 싶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유희열이 샤워 후 바르는 것은? ‘갖고 싶은 남자’ 유희열 완전 정복 퀴즈 대회

    유희열이 샤워 후 바르는 것은? ‘갖고 싶은 남자’ 유희열 완전 정복 퀴즈 대회

    소셜 음악감상서비스 카카오뮤직이 뮤지션 유희열의 원맨 프로젝트 토이 정규 7집 앨범 발매를 기념해 카카오뮤직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전국민 음악퀴즈’를 진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카카오뮤직은 지난 24일부터 토이 정규 7집 발매를 기념해 토이, 유희열을 주제로 한 5번째 ‘카카오뮤직 전국민 음악퀴즈’를 진행 중이다. ‘카카오뮤직 전국민 음악퀴즈’는 카카오톡에서 카카오뮤직을 플러스친구로 추가한 후 전달되는 메시지를 통해 응모가 가능하다. 총 10단계의 음악퀴즈를 통과한 이용자들에게는 추첨을 통해 유희열의 육성 인사 음성파일, 유희열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토이 7집CD, 카카오뮤직 5곡 이용권이 상품으로 주어진다. 이 중 1등 상품인 유희열의 육성 인사 음성 파일에는, 비주얼 가수를 뛰어 넘어 연예계에서 맹활약 중인 유희열의 소유하고 싶은 달콤한 목소리가 담겨 있어 팬들에게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음성 파일은 벨소리, 알람 등 당첨자가 원하는 용도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카카오뮤직 관계자에 따르면 유희열 특유의 ‘변태감성’이 담긴 멘트가 음성파일로 특별 제작될 예정이며, 이는 시중에서 구매가 어려운 만큼 팬들에게는 소장가치 200%의 의미를 갖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희열, 토이의 음악퀴즈는 재기발랄한 10개 문항으로 구성돼 선물 당첨과 함께 문제를 푸는 즐거움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진짜 팬들만 알고 있을 법한 ‘유희열을 지칭하는 별명이 아닌 것은?’, ‘유희열이 밤마다 샤워 후에 바른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토이7집 타이틀 ‘다 카포(Da Capo)’의 뜻은?’ 등의 마니아적인 퀴즈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신상과 관련한 사소한 정보부터, 7집 앨범 ‘다 카포’에 관한 풍부한 음악적 지식이 요구되는 문항까지 다양한 난이도로 만들어졌다. 당첨자 및 정답은 오는 26일 오후 5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에 개설된 ‘카카오뮤직, 오늘 뭐 듣지?’ 공식 계정을 통해 발표된다. 한편 카카오뮤직에서는 유희열 토이의 전국민 음악퀴즈에 앞서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1990년대 활동했던 1세대 아이돌, 가을을 주제로 한 발라드 등을 주제로 음악퀴즈를 진행한 바 있다. 2주에 한 번씩 진행 중인 음악퀴즈는 매 회 1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응모에 참여하며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퀴즈로 출제된 문제들이 주요 온라인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내릴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열풍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사진=안테나뮤직, 카카오뮤직 제공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글박물관, 정조 친필 한글편지 16점 최초 공개

    한글박물관, 정조 친필 한글편지 16점 최초 공개

    조선 정조가 어린아이였던 원손 시절부터 재위 22년까지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정조어필(正祖御筆) 한글편지첩 전체 16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정조어필 한글편지첩과 곤전어필(坤殿御筆), 김씨부인한글상언 등 18세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 3종을 현대어로 풀어쓴 ‘소장자료총서’를 오는 21일 발간한다고 19일 밝혔다. 정조어필 한글편지첩은 지금까지 16점 가운데 3점만 알려졌으나 이번에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시대 한글 편지 가운데 어린이의 필체로 쓰인 편지가 드물 뿐 아니라 필자가 정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건이다. 연령대에 따른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조선 후기 왕실 편지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어 국어사 연구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처음 일반에 소개되는 곤전어필은 정조의 비 효의왕후 김씨가 한문으로 쓰인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조카 김종선에게 우리말로 번역하게 하고 이를 옮겨 쓴 책이다. 조선 후기 왕비가 쓴 한글 필사본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김씨부인한글상언은 1722년 신임사화 때 죽음을 맞은 문신 이이명의 부인 김씨가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구하고자 영조에게 올린 한글 탄원서다. 김씨는 서포 김만중의 딸이기도 하다. 가로 160㎝, 세로 81.5㎝에 달하는 크기에 정자로 정성 들여 쓴 글에서는 정치적 격변기 집안의 위기를 맞은 사대부 여성의 절박함이 생생히 드러난다. 박물관은 총서 발간과 관련, 이달 21일과 28일 오후 2시 박물관 강의실에서 ‘조선 후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의 한글문화사적 해석’을 주제로 학술모임도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객의 귀환…故 김광석 4집 앨범 리마스터링 LP로 한정판매

    가객의 귀환…故 김광석 4집 앨범 리마스터링 LP로 한정판매

    ‘영원한 가객(歌客)’ 고 김광석의 음악이 20년 만에 리마스터링 앨범으로 돌아온다. CJ E&M은 1994년 발표된 김광석 4집 ‘네 번째’ 앨범을 리마스터링한 LP 앨범을 3000장 한정 판매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리마스터링 LP는 올해가 고 김광석 탄생 50주년이자 그의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4집 앨범이 나온 지 20주년 되는 해인 것을 기념해 발매된다. 김광석 4집 ‘네 번째에’는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대중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은 대표곡이 대거 수록돼 있으며 2007년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김광석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면서 최근 중고 LP 가격이 50만원대까지 치솟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록곡 10곡은 모두 과거에 녹음된 원본 멀티테이프를 복원해 믹싱, 마스터링을 새롭게 진행했다. 조준성 엔지니어가 믹싱을 맡았으며 독일에서 프레스 공정을 거친다. LP에는 김광석의 자작곡인 ‘일어나’의 친필 악보가 포함돼 있으며 CD를 선호하는 음악팬들을 위해 리마스터링 CD도 함께 판매된다. 17일부터 예약을 받으며 다음달 16일 발매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명인 사인은?…1위 제임스 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명인 사인은?…1위 제임스 딘

    세계 각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친필 사인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사인은 누가 남긴 것일까? 최근 영국의 유명인과 관련된 수집품 사이트를 운영하는 '폴 프레이저 컬렉티블스'가 '2014년판 사인(autograph) 지수'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있다. 주로 영미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명인의 사인을 대상으로 집계된 이번 조사는 사망자까지 포함돼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조사에서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인은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친필 사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임스 딘의 사인은 1만 8000파운드(약 3100만원)로 조사됐으며 그 이유는 희귀성 때문이다. 제임스 딘은 그의 나이 24세 때인 지난 1955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 현재 남아있는 사인이 별로 없다. 2위는 홍콩 영화배우 이소룡이 차지했다. 지난 1973년 사망한 이소룡의 사인은 시장에서 1만 1000파운드(약 1900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영국 넬슨 제독의 사인(약 1800만원)이 올랐다. 이와 반대로 현재 생존자들 중 가장 사인 가격이 비싼 사람은 누굴까? 1위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의 사인으로 3750파운드(약 650만원)로 평가받았다. 그의 사인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암살 위협 때문에 아무나 쉽게 접근해 사인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비틀스 멤버 폴 매카티니의 사인(약 430만원)과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의 사인(약 390만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 특별한 사인의 시장 가격도 눈에 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상륙한 우주인 닐 암스트롱의 사인은 우리 돈으로 100만원에 거래되다 사후 1500만원 정도로 껑충 가격이 뛰어 올랐다. 조사를 발표한 단 웨이드는 "제임스 딘의 사인이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희귀성 때문" 이라면서 "너무 일찍 사망해 사인할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단 6점 남아 박물관과 대학에 보관 중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사인은 시장에 한번도 나오지 않아 이번 조사에서 배제됐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성북동 ‘살아있는 조선 박물관’

    성북동 ‘살아있는 조선 박물관’

    “성북동 자체가 박물관이 되도록 하는 게 궁극적 목표예요. 예술제와 선잠제향 등을 열고 마을카페, 북카페, 마을공방 등 마을기업과도 연계해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27일 “간송미술관, 가구박물관, 성락원, 길상사를 중심으로 성북구에 조선생활사특화거리를 조성하겠다”며 이렇게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미 난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성북동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밑그림을 끝냈다. 이를 바탕으로 성북동에 박물관 트러스트(여러 개가 한데 모여 거대한 효과를 내는 것)를 구축할 것”이라면서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하는 다른 곳과 달리 민간 주도라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는 길상사, 성락원 등 민간이 가꾼 문화시설에 선잠단지, 한양도성 등 문화재가 시너지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이날 찾은 성락원은 아직 송석정의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기는 했지만 시멘트 도로포장을 없앤 자리로 기암괴석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온전히 제 모습을 찾은 듯했다. 대한제국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쓴 곳으로 서울에 유일하게 보존된 조선시대 민가의 정원이다. 개인 소유자가 빌라로 개발하는 대신 명승(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 문화재)으로 지정받으면서 제 모습을 찾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작품들을 전시 중이었던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통상 5월과 10월 두 차례만 전시회를 연다. 구 관계자는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급 문화재가 많은 곳으로 상설전시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박물관은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펑리위안 내외가 만찬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2000여점의 조선시대 전통가구를 전시하고 있다. 한옥의 곳곳에 자연스레 가구들을 배치해 놓은 게 특징이다. 특히 순종비인 순정효황후가 살던 집을 옮겨 놓았다. 바닥에 앉아 창으로 보는 성북동과 한양도성의 풍광이 일품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부근에 실크박물관을 짓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가구, 민화, 비단옷 등 작가의 이름은 없지만 조선 생활예술을 오롯이 새긴 것들을 계승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구는 앵두, 도화(복숭아꽃), 선잠마을 등 역사문화 마을을 조성하는 한편 전통한옥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글 사진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현장 행정] 윤극영 선생 생가 27일 개장식

    [현장 행정] 윤극영 선생 생가 27일 개장식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지난 17일 찾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윤극영(1903~1988) 선생 생가에는 그의 대표작 ‘반달’이 걸려 있었다. 강북구 추천으로 서울시의 ‘미래유산 보존사업’ 대상에 포함된 집이다. 지난달 리모델링을 끝냈다. 개장식은 오는 27일 열린다. 대지 205㎡(약 62평), 건축면적 99.8㎡(약 30평)에 예산 8억 7500만원을 썼다. 선생이 1977년부터 작고 때까지 살던 곳이다. 서재에 걸린 달력은 작고 다음날인 1988년 11월 16일에 멈췄다. 거실엔 친필 원고가 전시돼 있다. ‘가을의 情(정)’이 눈에 확 띄었다. ‘너와 같이 걷던 길/ 단풍잎 나부끼며 떨어지던 길/ 소리 눅여 한없이 속삭이던 길/ 다가오는 사랑에 하마 나는 두근거린다/…/ 정이길래 그랬다/ 정이길래 그랬다’ 안방으로 쓰던 큰방은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이용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매주 수요일 초등생 대상 ‘윤극영 문학 속으로’ 강연을 마련한다. 매주 화요일엔 자유롭게 들러 영화를 보고 차를 나눌 수 있다. 시낭송, 동화구연 교실도 꾸린다. 윤 선생은 일본 유학 중 만난 방정환(1899~1931), 마해송(1905~1966), 이헌구(1905~1982) 등과 ‘색동회’에서 활동했다. 설날, 따오기, 고기잡이, 고드름, 엄마야 누나야 등 동요 100여곡을 작곡하는 등 어린이 문화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반달문화원 안효경 간사는 “동네 어르신들에 따르면 윤 선생은 아이들을 좋아해 늘 집으로 불러들여 친필로 글을 써 주곤 하셨다”고 말했다. 구는 선생의 생가 복원에 맞춰 올해부터 서울지역 어린이 동요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15일까지 192개팀이 신청했다. 30개팀이 다음달 4일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본선을 치른다. 박겸수 구청장은 “생가 복원으로 끝까지 친일을 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미래를 노래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윤극영 선생의 행적이 재조명되길 바란다”면서 “또 그의 생가는 근현대사기념관, 4·19민주묘지, 3·1운동 발상지인 봉황각, 고려 청자가마터 등과 함께 지역 역사·문화 벨트 조성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길섶에서] 손 편지/구본영 논설위원

    며칠 전 어느 기업이 고객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로 감성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경제 기사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요즘처럼 속도지상주의 시대에 아직도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낸다니….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세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대학 도서관들도 공간이 모자라 연간 수천 권씩 찾지 않는, 오래된 책을 폐기 처분하는 세상이 아닌가.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인 양 여기는 세태에 육필의 감성이 여전히 통한다는 게 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월가의 족집게’로 알려진 투자전략가 바이런 윈 블랙스턴 어드바이저리 파트너 부회장의 인생 20훈(訓) 리스트를 보라. “큰 신세 진 이에게 손 편지를 써라”가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문득 얼마 전 한 인생 선배로부터 받은 책 선물이 생각난다. 책을 보내준 고마움 못잖게, 속표지 다음의 여백에 정성을 담아 쓴 듯한 그의 친필 인사와 서명에 살짝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래도 이제라도 그에게 감사의 손 편지라도 보내야 도리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상)

    한국전쟁 최대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서울사수’를 외치던 이승만 정부가 전쟁발발 이틀 만에 서울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면서 한강 다리마저 폭파해 150만 서울시민을 적지에 버린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전에 머물면서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라는 녹음방송을 내보내 국민을 속였다. 국회가 서울 사수 결의를 전달코자 했을 때 대통령은 경무대에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그때 한강 다리를 넘지 못한 서울 사람들의 원한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오늘의 강남 아파트공화국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몽진(蒙塵)의 역사는 길다. ‘서울 사수’는 한국전쟁 때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고려 이후로 역사를 좁혀도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도읍 송악(개성)이 함락돼 현종이 나주로 몸을 피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일어났다. 조선 선조와 인조, 고종 등 3명의 왕이 5차례에 걸쳐 의주와 강화, 남한산성, 러시아공사관으로 각각 몸을 피했다. 인조는 강화, 남한산성에 이어 ‘이괄의 난’ 때 공주까지 도피한 비운의 ‘몽진 3관왕’이었다. 그 이전에 4명의 고려 왕(현종·고종·충렬왕·공양왕)이 거란과 몽골을 피해 강화, 안동 등을 30년 가까이 전전했다.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몽진이나, ‘도성을 떠나 딴 곳으로 간다’는 파천(播遷) 같은 왕에게만 쓰는 고상한 용어로 헛갈리게 하지만 이승만식 야반도주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도성수성론 대 서울사수론 1751년에 나온 영조의 ‘수성윤음’(守城綸音)은 봉건 전제군주의 폭탄선언이었다. 이제는 도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도성수성론’(都城守城論)이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 거론된 것이다. 인조가 1637년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한 지 114년 만이고,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기 145년 전의 일이다. 사실 도성과 도성민은 방어의 대상이 아니었다. 외적이 침입해 도성에 접근하면 왕은 신속하게 피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 결과 임진왜란 때 왜군은 부산상륙 18일 만에, 병자호란 때 청군은 압록강을 건넌 지 5일 만에 한양도성을 손에 넣었다. 유사시 왕의 안전을 담보하고자 별도의 보장처(피신장소)를 여러 곳에 마련해 두는 것을 동양 병법의 전통으로 여겼다. 보호해야 할 대상은 오직 왕뿐이었다. 개성, 강화, 화성, 광주 등 4곳에 유수부(留守府)를 두어 중앙관서로 삼았다. 왕이 도성 밖 행차할 때 머물던 행궁이자 피신처였다. 이 중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강화도, 수원 화성과 더불어 외침에 대비한 농성 장소였다. 1712년 북한산성 축성공사를 끝낸 숙종은 북한산성에 올라 “내 어찌 도성을 지키는 백성을 버릴 수 있으리”라는 기념시를 지었다. 외침이 있으면 이곳에 들어와 백성과 더불어 성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이때 19살이던 연잉군(영조)은 부왕을 부축해 산성에 올랐다. 도성민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결코 인심을 얻을 수 없다는 도성 사수 의지가 가슴에 깃든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수성윤음이 무색하게 200년이 지난 한국전쟁 때 인민군 남하 3일 만에 대통령은 서울을 버렸다. 영조가 도성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진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도성 방어 전략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17세기 말, 18세기 초엽 서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상은 임진년과 병자년의 양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도성의 인구가 30만명에 육박했고, 상공업의 발달로 서울은 거대한 소비도시가 됐다. 중세 유럽의 대도시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선비들의 낙향문화는 사라지고, 경화사족(京華士族)의 벼슬길 독점이 극심했다. 서울은 조선에서 유일무이한 대도시였고, 서울을 떠난 왕은 존재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서울을 버릴 수 없는 속사정과 함께 이제는 중국과 일본을 향해 큰소리칠 때가 왔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숙종 이후 영조에 걸쳐 삼군부를 중심으로 도성 방어 군사체제를 정비하면서 이들 병력을 동원해 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했다. 더불어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쌓으면서 도성 방어체제가 비로소 갖춰졌다고 본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서울 사수 방송은 대국민 사기극이었지만 영조가 직접 지어 반포한 도성 수성 의지는 탄탄한 국력의 과시이자 거듭된 환난에 고생한 대국민용 위로였다. ●북한산과 남한산,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조선 개국 이후 서울의 정식 명칭은 한성(漢城)이었다. 백성은 한양(漢陽)이라는 별칭을 즐겨 썼다. 삼국시대 이래 지역명 한주(漢州), 한산(漢山)의 맥을 이어받은 지명이다. 기원전 18년 한성백제가 터 잡은 이후 한강(漢江) 아래쪽 지금의 강남 땅이 중심이었지만 1392년 조선이 백악 아래 오늘의 사대문에 도읍을 정하면서 한강 이북으로 중심지가 북상했다.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산은 북한산(北漢山)이요, 산성은 북한산성(北漢山城)이다. 삼각산은 세 개의 뿔(백운대·만경봉·인수봉)을 이르는 신령스런 산이름이지만 한강 북쪽 산은 모두 북한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본래 산이름이 희미해졌다. 한강 남쪽 산은 남한산(南漢山)이요, 성은 남한산성(南漢山城)인 점도 자연스럽다. 남한산성은 세계 최강 10만 청군의 공격을 45일간 버틴 금성탕지(城湯池)이자 난공불락의 철옹성(鐵甕城)이었다. 남한산성은 함락된 것이 아니다. 강화도 함락과 주사파와 주화파의 분열 그리고 식량이 떨어지자 왕이 스스로 걸어서 내려온 것이다. ‘성곽의 증축과 수리는 사전에 허락을 받을 것’이 6번째 항복조건일 정도였다. 남한산(522m)이 최고봉이고 산성은 일장산과 주장산 두 산 사이에 걸쳐 쌓았다. 우리에게 북한산은 산의 개념이 강하지만 남한산은 산성이라는 인식이 더 세다. 서울의 성곽축조 역사는 한성백제, 삼국의 한강 쟁패, 고려의 남경, 조선의 한양도성 등 크게 네 개의 시기로 나뉜다. 지금의 서울은 한성백제의 위례성, 고려의 남경, 조선의 한성 등 2000년 세월 동안 여러 왕조의 도읍지였기에 궁궐과 내성, 산성의 3중 체제를 두루 갖추고 있다. 한강 남쪽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강을 따라 중곡동·옥수동·삼성동·암사동 토성과 대모산성, 양천고성 등이 외곽방어 진지 역할을 했다. 아차산성·이성산성·금암산성·남한산성 또한 백제왕성의 방어기지로 파악된다. 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은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각축지였다. 한강권에서는 주장성, 이성산성, 아차산 고구려 보루성, 대모산성, 행주산성 등이 뺏고 빼기는 삼국의 격전지였다. 진흥왕이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를 세워 이곳이 신라 영토임을 알린 까닭이다. 임진강권에도 칠중성·호로고루·고모리산성·당포성·아미성·계양산성 등이 산재했다. 고려시대 성곽의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연흥전이라는 남경별궁을 세웠고, 최영 장군이 북한산성 자리에 중흥산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오녀산성이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졸본성이었다.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 북쪽 해발 820m의 솟아오른 암벽 위 조촐한 산성이 기원전 37년 고구려의 첫 둥지였다. 이처럼 우리의 왕성(도성)은 산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국시대 초기 산성과 왕성의 이원적 구조가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사비성에서 나타났지만, 후기 들어 산성과 왕성의 일체화가 정립되었다. 고려 송악에 이어 조선 한양 도성에도 이 같은 전통이 이어졌다. 중국에는 한국형 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성은 자생적 문화유산이다. 평지의 도성과 산지의 산성이 짝을 이루는 조합은 고대 삼국 이후 한반도 도성 축조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성은 산등성이와 산기슭을 타고 쌓았다. 자연지형의 최고 경계점에 성곽을 쌓아 지형의 높낮이를 성곽으로 이용한 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축조 기법과 다르다. ●홍지문과 탕춘대성 창의문을 나서 부암동 가는 산등성이가 내려가는 곳에 백석동천이 있고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세검정과 탕춘대 터가 있다. 도성 밖 북쪽을 지키는 군대(총융청)가 새로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신영동(新營洞)이다. 탕춘대 터에는 세검정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지만 본래 신라시대 장의사(藏義寺)라는 절터였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파랑과 장춘랑 등 두 화랑을 기리는 사찰이었으나 연산군이 이를 허물고 연희장으로 만들어 ‘질퍽하게’ 놀았다고 해서 탕춘대라고 이름 붙었다. 장의사 당간지주가 세검정초등학교 교정 한 귀퉁이에서 1400년의 역사를 뒤집어쓰고 서 있다. 장의사는 비록 사라졌지만 이름은 장의동으로 남았고, 서울의 북소문인 창의문을 장의동에 있는 문이라고 하여 장의문이라고도 불렀다. 인조반정 때 반군이 홍제원에 집결하여 세검정을 거쳐 창의문을 통해 들어와 반정에 성공하였으므로 창의문이 개선문인 셈이다. 풍수 최양선이 숙정문~창의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은 곳이니 길을 내어 지맥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여 태종 때부터 폐쇄한 문을 인조반정 이후 열어 놓았다. 영조는 반정공신들의 이름을 창의문 현판에 새겼다. 안동 김씨 중 이곳에 사는 권문세족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다. 김정호의 경조 오부도 중 백악과 인왕산 사이에 그려진 성곽과 ‘서성(西城) 한북문(漢北門)’이라는 기록이 곧 오늘의 탕춘대성과 홍지문이다. 서성은 한양도성의 인왕산과 북한산 비봉을 연결하는 4㎞ 길이의 산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처음에는 한성의 북쪽에 있는 문이라고 하여 한북문이라고 불렸으나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이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 공식 명칭이 되었다. 탕춘대성 안에 전시 식량을 비축하는 곳간을 만들어 평창(平倉)이라고 하였는 데 평창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서울은 도성을 중심으로 3개의 산성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북한산성, 남쪽에는 남한산성이 있고,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서쪽 산성이 탕춘대성이다. 원래 도읍은 궁궐과 내성 그리고 외성 등 삼중구조를 갖춰야 하지만 조선은 궁궐과 해자도 없는 도성만으로 버텼다. 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양란을 호되게 겪고서야 도성의 군사적 방어체계를 고쳤다. 이를 본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한양도성을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고 찬탄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이병헌 다희 협박사건에 “이민정에 상처줬다, 평생 노력할 것”

    이병헌 다희 협박사건에 “이민정에 상처줬다, 평생 노력할 것”

    이병헌 다희, 글램 다희 이병헌이 최근 불거진 글램 다희 동영상 관련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병헌은 5일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는 공식 홈페이지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친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친필 사과문에서 이벙현은 “이번 일로 인해 느끼셨을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알기에 나 역시 머리도 마음도 그 역할을 못할만큼 그저 숨만 쉬며 지내고 있다”며 “계획적인 일이었건, 협박을 당했건, 그것을 탓하기 이전에 빌미는 덕이 부족한 저의 경솔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깊은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병헌은 “이번 일로 내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줬다”며 “내 옆을 지켜주는 아내(이민정)와 가족에게 더 이상의 실망을 주는 일이 없도록 평생을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이병헌의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달 28일 이병헌 씨는 본인의 개인 자료를 공개하겠다며 수 십 억원을 요구하는 협박을 당했다. 즉시 소속사에 해당 사실을 전달하고 즉각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걸그룹 글램 멤버 다희와 모델출신 이지연은 이병헌과 술을 마시며 신체접촉과 관련된 음담패설을 나눈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50억원을 주지 않으면 인터넷상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두 사람은 협박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며, 이병헌이 세계적인 스타라는 사실에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두 사람에게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히틀러 친필서명 담긴 희귀 독사진, 가격은?

    히틀러 친필서명 담긴 희귀 독사진, 가격은?

    독일 나치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서명이 담긴 희귀 독사진이 경매에 등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BBC뉴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윌리엄 포레스트가 수집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서명이 담긴 독사진이 경매에 등장할 예정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단정한 양복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히틀러의 상반신이 담긴 해당 사진 구석에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친필서명과 함께 ‘란츠베르크(Landsberg) 1925’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히틀러는 1921년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나치스)의 당수가 돼 1차 세계대전 보상금 지급문제로 가난에 허덕였던 민중들을 대상으로 강한 독일의 재건, 사회정책의 확장, 베르사유조약 타파, 민주공화제의 타도 등을 역설,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나갔다. 이에 힘입은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정권장악을 위한 쿠데타를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독일 작센안할트 주(州)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투옥된다. 이곳에서 유명 저서인 ‘나의 투쟁’을 집필하기도 했던 히틀러는 1925년 출옥하게 되는데, 해당 사진은 4년 후인 1929년 이를 기념하며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히틀러의 친필서명이 담긴 흔치 않은 역사적 사진을 얻어낸 사람은 영국 뉴스크로니클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윌리엄 포레스트로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한 베를린 벙커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냈다. 참고로 윌리엄 포레스트는 1937년 독일, 이탈리아의 스페인 게르니카 침공,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직접 현장 취재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종군기자로 평가받는다. 한편, 해당 사진은 오는 13일 영국 체셔 카운티(Cheshire county) 렁컨(Runcorn) 경매장에 등장할 예정이다. 해당 사진은 1만 2,000파운드(약 2027만원)에서 1만8,000파운드(약 3038만원) 사이에 경매 초기 가격이 형성될 예정인데, “역사적 가치가 무척 높은만큼 최종 낙찰 가격은 상당한 고가에 형성될 것”이라고 경매장 측은 밝혔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백범 친필 도난 52년 만에 제자리로

    백범 친필 도난 52년 만에 제자리로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년) 선생이 강릉 선교장(중요민속자료 제5호)으로 보낸 친필 ‘天君泰然’(천군태연)이 도난당한 지 52년 만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선비의 의연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글씨는 백범 선생이 환국 후 73세 되던 1948년 봄에 서울의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에서 직접 써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도와준 감사의 뜻으로 당시의 선교장 주인 이돈의 선생에게 보냈던 것으로, 1962년 도둑맞은 뒤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최근 이 글씨를 수집한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한국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27일 파주출판단지 열화당 사옥에서 이기웅 대표에게 이를 기증했다. 이 대표는 선교장 이강백 관장의 당숙이며 선교장 열화당 건립 200주년을 맞는 내년에 정본 백범일지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선교장과 오랜 시간 깊은 인연을 맺어 온 김 관장은 “해방 후 중국 상하이에서 귀국한 김구 선생이 조국 광복을 후원한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대표의 조부님(이돈의 선생)께 주신 글”이라면서 “선교장을 찾는 분들께 백범 선생과 선교장의 관계를 보여주는 공공재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면서 기증한다”고 말했다. 백범 선생은 ‘天君泰然’ 외에 또 다른 글씨인 ‘天下爲公’(천하위공)과 ‘백범일지’ 한 권을 함께 선교장으로 보냈다고 전해진다. ‘天下爲公’은 서교장의 활래정(活來亭)에 걸어 두었는데 역시 1970년대에 망실돼 아직까지 소재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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