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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달 모임들 어쩌나…” 올해 가족·지인모임서 3643명 확진

    “가정의달 모임들 어쩌나…” 올해 가족·지인모임서 3643명 확진

    가족·지인모임 관련 219건 집단감염 발생“5월 행사·모임 증가 예상” 추가 확산 우려학부모들, 어린이날 유치원 행사 걱정도 올해 들어 4개월간 총 219건의 가족·지인모임 관련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3643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역당국은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 등을 맞아 공휴일과 주말에 행사·모임 증가가 예상된다”며 추가 확산 가능성을 우려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1~4월 가족·지인모임 집단감염 사례를 집계한 결과 1월 57건 703명, 2월 52건 933명, 3월 52건 837명, 4월 58건 1170명으로 1월에 비해 4월 확진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4일 밝혔다. 주요 사례를 보면 광주 광산구의 한 가정에서 친척 모임을 통해 6명이 양성 판정을 받은 뒤 골프·여행 등 각종 모임을 거치며 추가 감염자가 나와 누적 확진자가 20명으로 늘었다. 방대본은 역학조사 결과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대화 및 반복 접촉, 식사 등으로 마스크 착용 미흡, 5인 이상 여행 모임 참석 등의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실제 최근 2주간 발생한 집단감염 17건을 보면 자택 등 주거지 모임 관련이 11건, 다중이용시설 모임 관련이 6건으로 파악됐다. 방대본은 “가족과 꼭 필요한 모임을 계획할 경우 동거 가족 범위(직계가족 8인까지) 안에서 인원을 정하고 실내보다는 가까운 야외에서, 한산한 시간대와 장소를 활용하며 기본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최근 기념 행사를 연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많아 일부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역 맘카페 등에는 “저희 아이는 어린이날 행사 안 보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만 확진자가 하루 수십명씩 나오는데 4살 아들 보내도 될지 고민입니다” 등의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30대 A씨는 “어린이날 전 외부로 견학을 가거나 ‘과자 파티’ 같은 행사를 하는 유치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이들이 단체 행사 중 마스크를 벗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측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취식 시 원아들 간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단체 활동 시 원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게 방역당국의 권고사항”이라며 “집단감염에 취약한 활동은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신발 버린 친구 ‘사실’ 아버지가 변호사 ‘거짓’ (종합2보)

    신발 버린 친구 ‘사실’ 아버지가 변호사 ‘거짓’ (종합2보)

    지난달 25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대학생 손정민(21)씨가 닷새 만인 지난달 30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족들은 시신의 머리 뒤쪽에 깊게 베인 상처 두 곳을 발견하고 경찰에 부검을 요청했다. 지난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을 했지만 시신의 부패가 진행돼 육안으로는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었다. 시료의 정밀 분석에 착수했고, 결과는 보름 뒤쯤 나온다. 경찰은 부검과 별개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잠든 정민씨가 숨진 경위를 밝히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전단을 돌렸던 아버지 손현(49)씨는 “아이 잃은 아빠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고 우리 아들에게 맹세했다”며 죽음의 이유를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했다. 신발은 버렸고, 휴대폰은 잃어버렸다 대학교 1학년인 정민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쯤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 한강공원에서 친구 A씨와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실종됐다. A씨는 오전 4시30분쯤 혼자 집으로 돌아갔고, 당시 정민씨가 보이지 않아 먼저 귀가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씨는 오전 3시30분쯤 자신의 부모와 한 통화에서 정민씨가 취해 잠들었는데 깨울 수가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정민씨의 갤럭시 휴대전화를 가지고 귀가했다. 정작 A씨의 아이폰은 찾지 못했다. 4일 오후 정민씨 아버지는 A씨의 휴대폰을 찾았지만 박살이 난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은 정민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지난달 25일 오전 3시를 전후해서 반포한강공원을 방문한 차량의 블랙박스를 조사하고 있다.정민씨의 아버지가 언론에 나선 이유 정민씨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아버지는 실종 당시부터 지금까지 경찰조사 과정에서 친구 A씨 측이 보인 행동에 의문점을 가지게 됐고, 언론에 나서서 그간의 일들을 세세하게 밝혔다. ● 오전 2시부터 4시30분 정민씨의 행적 친구 A씨가 오전 3시30분에 그의 부모에게 통화한 사실을 정민씨의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정민씨 아버지는 “새벽 2시부터 4시30분 사이에 무엇을 했냐고 물어봤는데 3명(A씨와 그의 가족) 모두 통화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 당일 신었던 신발을 버렸다. ‘달리다가 넘어진 정민이를 부축해 일으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옷과 신발이 더러워졌다’는 게 이유였다. 정민씨 아버지는 “그 아이(A씨) 아빠한테 신발이 좀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는데 ‘버렸다’고 즉답이 나왔다. 아들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바지와 옷이 더러워졌다고 강조했다. 그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 변호사를 대동했다. 최면 수사에서는 이렇다할 진술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민씨 아버지는 “최면은 당사자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정황을 들어보니 A씨는 숨기려 하기 때문에 최면이 안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적극적으로 조사받아야 하는 애가 변호사를 데리고 왔다는 건 자기 방어를 해야 된다는 거다. 그 한 시간동안 무슨 일이 생겨서 우리 아들이 한강에 갔는지만 알면 모든 원한이 풀린다”고 강조했다.● 정민씨의 부모에겐 연락하지 않은 친구 친구 A씨가 자신의 부모와 통화를 했던 3시30분쯤, 정작 정민씨의 아버지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정민씨의 아버지는 “5시가 넘어도 나와 아내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데에 대한 사과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씨의 친구는 4일 새벽 작은 아버지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가 마련된 지 닷새만이었다. 정민씨의 아버지에 따르면 A씨의 작은 아버지는 조카가 많이 힘들어한다며 새벽 1시30분 빈소를 찾았다. 정민씨의 아버지는 “아무도 없을 때 조문을 온 것 같다. 부모는 얼굴도 못 내밀고 친척을 앞세워 왔다. 늦었으니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의 집안배경 둘러싼 루머들 친구 A씨의 집안배경을 두고 여러 루머들이 나오고 있다. A씨의 아버지는 경찰 또는 변호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의 아들이란 소문도 있었지만 병원 측이 직접 “사실과 다르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민씨가 실종된 지난달 25일 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사건 현장 인근 서래섬에서 낚시하던 남성이 ‘인근에 경찰차 6대가 출동했다’고 올린 목격담은 정민씨의 실종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당시 한강변 식당 건물 주차장에서 차량 접촉사고가 발생해 출동했다고 밝혔다. 인근 편의점 폐쇄회로(CC)TV에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된 남성 3명은 조사결과 고교생 1명과 중학생 2명으로 동네 선후배 사이일뿐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실종 대학생 친구 닷새만에 조문…작은 아버지와 함께

    실종 대학생 친구 닷새만에 조문…작은 아버지와 함께

    지난달 25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대학생 손정민(21)씨가 닷새 만인 지난달 30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는 빈소가 차려진 지 닷새만인 4일 새벽 작은 아버지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손씨의 아버지 손현씨는 이날 뉴스1에 “4일 새벽 1시30분쯤 작은 아버지와 빈소를 찾았다. 작은 아버지가 조카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손씨 아버지는 “아무도 없을 때 조문을 온 것 같다. 부모는 얼굴도 못 내밀고 친척을 앞세워 왔다. 늦었으니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2차 최면조사 때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대동했고, 최면조사에서 이렇다할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손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에 나설 예정이지만 사고 당일 친구의 휴대전화는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친구가 귀가할 때 타고 간 택시 기사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경찰은 실종 당일인 4월25일 오전 3시 전후 반포한강공원을 방문한 차량의 블랙박스와 공원 일대 폐쇄회로(CC)TV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현재 자원봉사자들이 자체적으로 구역을 나눠 수심이 얕은 곳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경찰은 포렌식 등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뒤 친구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한강 실종 대학생 손 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날 기준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했다. 이 글을 쓴 청원인은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와 부모는 휴대전화 제출도 거부하고,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신고 있던 운동화도 버렸다고 하는데, 왜 경찰은 손씨의 친구는 조사하지 않고 목격자만 찾고 있는지 확실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5년 동안 주 100시간 일 시키고 한 푼도 안 준 백인 ‘노예 주인’

    5년 동안 주 100시간 일 시키고 한 푼도 안 준 백인 ‘노예 주인’

    정신지체 흑인 종업원에게 5년 동안 주 100시간의 중노동을 시키고도 한푼도 지급하지 않은 현대판 노예 주인에게 법원이 54만 6000달러(약 6억 1316만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항소심 재판부는 콘웨이 지역에서 ‘J&J 카페테리아’를 운영했던 바비 폴 에드워드(56)에게 존 크리스토퍼 스미스(43)의 5년치 임금 27만 3000달러의 곱절을 지급하라고 최근 명령했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재판부는 에드워드가 애초 임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고 여러 인종차별적 언행과 폭행을 가한 데 대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지급 금액을 높인 이유를 설명했다. 에드워드는 이미 2019년에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스미스는 열두 살이던 1990년 이 식당에 처음 취직했다. 당시는 에드워드의 친척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스미스에게 임금도 제때 챙겨주고 인간다운 대접을 해줬다. 스미스는 그 때를 회상하며 “일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2009년 9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스미스는 에드워드 밑에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노예처럼 중노동에 시달린 것은 물론, 신체적 폭력 및 위협, 협박 등 갖은 수모를 당했다. 에드워드는 스미스를 가족과 단절시키고 그에게 인종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채찍질까지 했다. 스미스가 굼뜨다며 금속 집게를 뜨거운 기름에 담근 뒤 그의 목에 지지기까지 했다. 스미스의 변호인은 에드워드가 바퀴벌레가 들끓는 아파트로 스미스를 강제로 이사시킨 사실을 전하며 “일하는 내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고 분노했다. 동료들까지 두려워 신고하기를 꺼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끝낼 수 있게 해 준 사람은 식당 여직원의 시어머니 지넨 케인스였다. 그녀는 2014년 10월 에드워드를 당국에 고발했고 스미스는 곧장 성인보호국으로 이송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에드워드는 2급 폭행과 인신매매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지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자식들도 문둥이 낙인 찍힐까봐… 지금도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요”

    “내 자식들만큼은 ‘문둥이’ 낙인이 안 찍혔으면 해서… 지금도 선뜻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지난달 19일 보상 청구에 나선 한센병력자(한센인)의 자녀인 김덕한(79·가명)씨는 지난달 30일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평생의 회한을 떠올렸다. “한센병 환자의 자식이라는 얘기를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는 김씨는 미감아(未感兒)다. 미감아는 한센인 부부에게서 태어나 건강한 아이를 말한다. 정부가 김씨 같은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별도로 분류·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다. 일본은 1930년대 제정한 ‘나병예방법’에 근거해 자국뿐 아니라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도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했다. 전염을 막겠다는 명목이었다. 한센병은 유전 질환이 아닌데도 당시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이러한 정책의 밑바탕이 됐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모였던 전남 고흥군 소록도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과 여수 애양원 두 곳에서는 단종(강제불임) 수술, 낙태, 강제노역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해방 전 소록도에 강제 수용됐던 인원은 약 6000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 조치를 199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 갔다. 그로 인해 생긴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완치 후에도 정착촌에서 계속 격리된 삶을 택하거나,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겨야 했다. 정착촌은 한센병이 완치된 뒤에도 후유증 등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센병 환자 또는 그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우리가 겪어 온 온갖 고초에 비하면 미약하다”며 80년에 가까운 한 서린 삶을 털어놨다. ●마취 없이 강제 불임수술한 건 고문 -일본을 상대로 보상 청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정부가 취약 노동자(일용직) 등에게 2주 자가격리하는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더라. 그걸 보면서 ‘한센병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은 정부 정책으로 평생 격리 아닌 격리 상태로 살아왔는데, 그에 대한 일본과 우리 정부의 사죄와 보상은 제대로 이뤄졌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 격리 조치 당시 다른 국민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수용됐다. 환자들 한 명, 한 명이 이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평생을 설움 속에 살았다. 환자들은 애양원 밖의 외출이 아예 불가능했다. ‘문둥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환자들을 경원시한 사회로부터 보상을 받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 애양원이 그나마 행복 -한센인 가족으로 살아온 삶은 어땠는지. “내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는 어디에 있는지 등 모든 걸 숨기며 살아왔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천형(天刑·하늘이 내리는 큰 벌)이라고 여겨져 왔다. 실제 내 호적은 만주 길림성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부모님이 만주로 강제 징용됐다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난 뒤 병에 걸리자 즉시 전남 여수 애양원으로 강제 이송됐다. 외부와의 출입은 차단됐지만, 내게는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어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애양원은 국립인 소록도 자혜의원과 달리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수용시설이다. 소록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 역시 인권침해가 있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단종수술이 처음 시작된 곳도 애양원이다. 마취제 하나 없이 그런 수술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고문 아닌가. 애양원 교회에서의 세력다툼에 휘말린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소록도 형무소로 끌려가면서 두살 터울의 여동생과 나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다른 섬으로 도망쳤다가 죽도록 맞았다고 하더라. 열 살 때쯤의 일이다. 보육원을 나오며 여동생과도 헤어지고 또 다른 보육원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헤어진 부모님의 생사는. “부모님은 내가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한센병 완치 후 대부분 환자들이 그렇듯 정착촌으로 옮겨 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실명하신 데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다. 한센병은 피부가 곪고 신경이 마비되는 병이라 완치가 되더라도 사지의 감각을 잃는 등의 신경 손상 후유증이 남는다. 어머니는 후유증이 거의 없으셔서 꽤 모시고 살았다.” ●평생 받은 괄시와 배척 보상받고 싶어 -차별과 편견으로 가장 상처가 된 기억은. “한센병 환자의 가족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받게 되는 괄시와 배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래서 부모님이 왜 안 계신지를 학교 다니면서 단 한번도 입밖에 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학교를 갔다. 면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아 엄청나게 맞았던 것 같다. 6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끝까지 부모님이 왜 못 오시는지 입을 다무니까 부모가 사상범이냐고 의심하더라.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다. 결혼할 때도 배우자에게 부모에 대한 얘기를 아무것도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아내가 사실을 알게 됐다. 달라진 아내의 눈빛에 내심 서럽고 상처받았다. 지금도 자식들에게 내 얘기를 숨기는 건 한센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마저 ‘문둥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차마 듣게 할 수는 없다. 한센병력자의 가족이란 걸 내 자식들 배우자와 그들의 집안이 알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전후 세대는 전부 어렵게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나 같은 사람들은 최악의 밑바닥 생활을 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책을 가까이 해 지금도 글을 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저 하늘의 별을 따라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십시오. 진실은 휘어질 수 있을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습니다.’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걸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안 그랬으면 진즉에 고꾸라졌을 것 같다. 보육원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친척 집을 전전해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 주변의 수군거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니, 운 좋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신학교에 진학했다. 학비 전액을 대줬다. 신학교 재학 중에 중매로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직장에 입사하는 기적도 찾아왔다. 이후 목회자로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남았지만 내 성장 과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양원에서 부모님 사진 보고도 말 못해 -시간이 흐른 뒤 애양원·소록도를 찾은 적이 있는지. “여러 차례 갔다. 애양원에서 선교 활동을 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라 다른 목사들과 함께 갔었다.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이란 말은 못했다. 한센병력자 가족이란 사실을 알면 ‘문둥이 자식’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까 모른 척했다. 아버지와 내 이름만 대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이들도 남아 있었지만 꾹 참았다. 어릴 때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했다. 애양원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이들과는 다행히 아직 연락이 닿는다. -한국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이 2, 3차 피해자 추가 발굴을 한다는데. “전국 100여곳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정착촌을 형성해 고립돼 살아간다. 한 곳에 10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곳도 있지만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면 1945년 해방 전 출생자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은 차별과 편견의 고통 속에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 안에서 구심점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공론화를 시키고 싶었지만 내가 겪은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가될까 두려웠다. 국내에서는 2011년 첫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된 지 5년여 만인 2017년에 정부로부터 강제로 단종·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병 환자 19명에 대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뒤늦게나마 한센병 환자의 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도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친누나 살해 동생 “시신 떠오를까봐 수시로 포털 검색”

    친누나 살해 동생 “시신 떠오를까봐 수시로 포털 검색”

    친누나를 살해한 뒤 강화도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동생이 시신이 발견될 것을 우려해 자주 인터넷 검색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인천경찰청 수사전담반에 따르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를 받는 A(27)씨가 범행 이후 시신이 농수로 물 위에 떠 오르는 것을 우려해 인터넷 검색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조사하던 중 그가 인터넷 포털에서 강화도 관련 사건 기사 등을 자주 검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께 새벽 시간대에 자택인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누나인 30대 B씨를 집에 있던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10일간 해당 아파트 옥상에 누나 시신을 놔뒀다가 같은 달 말 여행가방에 담은 상태로 렌터카로 운반해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의 한 농수로에 유기했다. B씨의 시신은 4개월여 만인 지난달 21일 오후 2시 13분 인근 주민에게 발견됐으며, 시신은 발견 당시 부풀어 있었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농수로에서는 B씨의 시신이 담겨 있었던 여행 가방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A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를 투입해 자세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에서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당일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와 범행 경위에 “겨울이라 인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강화 마을에 친척이 살아 연고가 있었다”며 “그렇게 심하게 찌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개인기에 총기와 마리화나 싣고 시칠리아 섬에, 간 큰 미국 남성

    개인기에 총기와 마리화나 싣고 시칠리아 섬에, 간 큰 미국 남성

    미국의 60대 남성이 개인 제트기를 몰아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도착했는데 무기와 마리화나를 잔뜩 싣고 온 것으로 드러나 구금됐다. 패트릭 조지프 호란(64)이 플로리다주를 떠나 친척을 방문한다는 명목으로 이 섬의 트라파니 비르기 공항에 안착했는데 세관원과 경찰이 기내를 수색한 결과 등록되지 않은 총기와 석궁, 1㎏의 마리화나가 실려 있었다고 현지 ANSA 통신을 인용해 영국 BBC가 1일 전했다. 두 자루의 권총과 소총 한 자루와 탄약들이 상자들에 담겨 있었으며 비닐봉지들과 물병 안에 마리화나 등이 담겨 있었다고 일간 라 리퍼블리카가 보도했다. 이 섬의 서쪽에 위치한 산타 닌파 마을의 농장 일들에 돈을 대는 부유한 동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호란은 경찰에 섬의 중심 도시 팔레르모에서 마리화나로 의료 시술을 할 계획이었다고 둘러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트라파니에 있는 피에트로 세룰리 교도소에 구금돼 경찰 심문을 받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친누나 살해하고 슬픈 척 영정사진 들어…끔찍한 4개월 행적

    친누나 살해하고 슬픈 척 영정사진 들어…끔찍한 4개월 행적

    친누나를 흉기로 25차례에 걸쳐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농수로에 유기한 범행이 4개월여만에 발각돼 경찰에 붙잡힌 20대 남성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2일 열린다. 인천지법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인천지법 영장실질심사장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를 받는 A씨(27)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다. A씨의 구속여부는 이날 오후 늦게 결정될 예정이다.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무렵 인천 남동구 한 아파트 주거지에서 30대 누나 B씨를 흉기로 25차례에 걸쳐 찔러 숨지게 하고 범행 10일 뒤 강화군 삼산면 한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4개월 여 뒤인 지난달 21일 오후 2시13분 인근 주민이 B씨의 시신을 발견해 112에 신고하면서 수사에 나선 경찰에 29일 붙잡혔다.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4개월간 범행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며칠 간격으로 시신 유기 장소인 ‘강화 석모도’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주기적으로 검색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검거 전까지 인천 남동공단 소재 직장을 다니면서 평소와 같은 일상 생활을 해왔다.이 기간 중 지난 2월14일에는 B씨의 가출신고를 한 부모를 속여 신고를 취소하도록 한 것으로도 확인했다. A씨는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B씨 행세를 하며 부모를 속였으며, 최근 열린 B씨의 장례식에 참석해 영정사진을 직접 들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서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범행 당일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와 범행 경위에 대해서는 “겨울이라 인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동네에) 친척이 살아 연고가 있었다”며 “그렇게 심하게 찌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을 투입해 또 다른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범행 발각될까 봐”...‘누나 살해’ 남동생, 사건 기사 수차례 검색

    “범행 발각될까 봐”...‘누나 살해’ 남동생, 사건 기사 수차례 검색

    “인터넷 포털서 강화도 사건 기사 등 자주 검색”집에 있던 누나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여행가방에 시신 담아 농수로에 유기약 4개월 만에 인근 주민에 의해 시신 발견“누나와 성격 안 맞아...말다툼 하다 우발적 범행” 진술 누나를 살해한 뒤 강화도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동생이 시신이 발견될까 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1일 인천경찰청 수사전담반은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를 받는 A(27)씨가 범행 이후 시신이 농수로 물 위에 떠 오르는 것을 우려해 인터넷 검색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조사하던 중 그가 인터넷 포털에서 강화도 관련 사건 기사 등을 자주 검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새벽 시간대에 자택인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누나인 30대 B씨를 집에 있던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10일동안 아파트 옥상에 B씨의 시신을 뒀다가 같은달 말쯤 여행가방에 담은 상태로 렌터카로 운반,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의 한 농수로에 유기했다. B씨의 시신은 약 4개월 만인 지난달 21일 오후 2시 13분쯤 인근 주민에게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농수로에서는 B씨의 시신이 담겼던 여행 가방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해당 여행 가방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B씨의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해당 여행 가방이 농수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어 약 4개월동안 주민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를 투입해 A씨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에서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범행 당일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와 범행 경위에 대해서는 “겨울이라 인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동네에) 친척이 살아 연고가 있었다”며 “그렇게 심하게 찌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범행 이후에도 A씨는 누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를 속여 지난 2월 14일에 접수한 가출 신고를 취소토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누나의 발인이 있었던 지난 25일에는 시신 운구 과정에서 영정사진을 직접 들기도 했으며, 검거 당시에는 경북 안동의 부모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다음 날 오후 2시께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누나 영정사진 들었는데…남동생이 범인, 가출신고 왜 없었나[이슈픽]

    누나 영정사진 들었는데…남동생이 범인, 가출신고 왜 없었나[이슈픽]

    작년 12월 중순 자택 아파트서 살해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옥상에 10일간 보관12월 말 농수로에 유기“실랑이 하다가 우발적 범행” 주장 누나를 살해한 뒤 강화도 농수로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동생에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30일 인천경찰청 수사전담반은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한 A(27)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자택인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누나인 30대 여성 B씨를 집에 있던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아파트 옥상에 10일간 B씨의 시신을 방치했다가 지난해 12월 말쯤 렌터카에 옮겨 싣고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에 있는 한 농수로로 가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누나 살해해 강화도 농수로에 버린 남동생, 범행시점은 4개월 전 B씨의 시신은 농수로에 버려진 지 4개월 만인 지난 21일 오후 2시 13분쯤 인근 주민에게 발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경찰에서 “누나와 성격이 안 맞았고, 평소 생활 태도와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범행 당일도) 늦게 들어왔다고 누나가 잔소리를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와 범행 경위에 대해 “겨울이라 인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동네에) 친척이 살아 연고가 있었다”며 “그렇게 심하게 찌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는 범행 이후 누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를 속여 지난 2월 14일에 접수한 가출 신고를 취소토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신고 당일 경찰관이 누나 휴대전화로 연락하자 누나인 척 ‘실종된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오해를 하신 것 같다’는 취지의 거짓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신고 이후 사흘 동안 자신이 누나 계정으로 접속해 주고받은 거짓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캡처해 수사관에게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A씨는 누나의 발인이 있었던 지난 25일에 시신 운구 과정에서 영정사진을 직접 들기도 했으며, 경찰 검거 당시 경북 안동의 부모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경찰은 A씨가 B씨의 계좌에서 일정 금액을 출금한 정황을 확인하고 살인 범행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 또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를 투입해 A씨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는 한편 사이코패스 검사 등 프로파일링(범죄심리분석)을 진행할 방침이다.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다음 날 오후 2시쯤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영상]한강 실종 대학생 내일 부검…유족 “뒤통수에 깊은 외상 있어”

    [영상]한강 실종 대학생 내일 부검…유족 “뒤통수에 깊은 외상 있어”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엿새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1)씨의 시신 후두부에 외상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규명하기 위해 부검에 동의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오는 5월 1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손씨의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25일 실종된 손씨는 이날 오후 3시 50분쯤 실종 지점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승강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씨의 아버지는 이날 오후 시신 검안이 진행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검안의로부터 아들의 뒤통수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에 5cm 정도 깊게 팬 외상 2개를 발견했다고 들었다”며 “부검을 통해 외상이 생긴 시점과 원인, 사망과의 연관성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손씨의 아버지는 “시신 검안이 끝난 후 경찰과 대화해 곧바로 시신 부검에 동의했다”면서 “검안의는 시신이 물에 불은 정도로 보면, 물에 빠진 시점이 실종 당일인 25일 오전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경찰은 뒤통수에 생긴 외상만으로는 타살 가능성을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에 있는 외상은 물에 있다보면 부딪혀 생길 수도 있는 상처”라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진행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부검이 끝난 뒤 1일 오후 4시부터 5일간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손씨의 어머니는 취재진에게 “저희 아들을 찾으려고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손씨는 지난 24일 오후 10시 30분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선 뒤 반포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이튿날 오전 실종됐다. 손씨와 함께 있었던 친구는 오전 4시 30분쯤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깨어났을 때 주변에 손씨가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장 인근 CCTV를 분석하면서 기동대·한강경찰대와 함께 헬기·드론·수색선 등을 동원해 엿새 동안 한강 일대를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손씨의 부모와 친척, 지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그를 찾는 글을 올리고 매일 한강공원에 나와 수색 상황을 지켜봤다. 이들은 전단지 수천 장을 인쇄해 공원 인근 아파트 단지 20곳에 배포했고, 현수막도 공원 곳곳에 걸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영상]한강 실종 대학생 유족 “뒤통수에 깊은 외상 있어”…국과수 1일 부검

    [영상]한강 실종 대학생 유족 “뒤통수에 깊은 외상 있어”…국과수 1일 부검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엿새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1)씨의 시신 후두부에 외상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규명하기 위해 부검에 동의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오는 5월 1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손씨의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25일 실종된 손씨는 이날 오후 3시 50분쯤 실종 지점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승강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씨의 아버지는 이날 오후 시신 검안이 진행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검안의로부터 아들의 뒤통수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에 5cm 정도 깊게 팬 외상 2개를 발견했다고 들었다”며 “부검을 통해 외상이 생긴 시점과 원인, 사망과의 연관성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손씨의 아버지는 “시신 검안이 끝난 후 경찰과 대화해 곧바로 시신 부검에 동의했다”면서 “검안의는 시신이 물에 불은 정도로 보면, 물에 빠진 시점이 실종 당일인 25일 오전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경찰은 뒤통수에 생긴 외상만으로는 타살 가능성을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에 있는 외상은 물에 있다보면 부딪혀 생길 수도 있는 상처”라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진행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부검이 끝난 뒤 1일 오후 4시부터 5일간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손씨의 어머니는 취재진에게 “저희 아들을 찾으려고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손씨는 지난 24일 오후 10시 30분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선 뒤 반포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이튿날 오전 실종됐다. 손씨와 함께 있었던 친구는 오전 4시 30분쯤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깨어났을 때 주변에 손씨가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장 인근 CCTV를 분석하면서 기동대·한강경찰대와 함께 헬기·드론·수색선 등을 동원해 엿새 동안 한강 일대를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손씨의 부모와 친척, 지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그를 찾는 글을 올리고 매일 한강공원에 나와 수색 상황을 지켜봤다. 이들은 전단지 수천 장을 인쇄해 공원 인근 아파트 단지 20곳에 배포했고, 현수막도 공원 곳곳에 걸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영상] “굴뚝이다!” 새까맣게 몰려든 철새 1000마리 美 가정집 점거

    [영상] “굴뚝이다!” 새까맣게 몰려든 철새 1000마리 美 가정집 점거

    철새 1000마리가 미국 가정집을 습격했다. 27일 미국 KTLA는 캘리포니아주 토런스시의 한 가정집이 철새떼의 침공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21일, 토런스시의 한 가정집에 철새떼가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리곤 차례로 굴뚝을 통과해 집 안으로 난입했다. 주인이 나간 사이 집을 점거한 새떼는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저녁 외식 후 돌아온 가족은 놀라 자빠졌다. 집주인은 “사방이 새까맸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관련 영상에는 지붕 주변으로 몰려든 새떼가 굴뚝으로 급강하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간 새떼는 천장과 창문 등 곳곳에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다. 습격을 감행한 철새의 수는 1000마리에 달했다. 집주인은 “800마리까지 세다 포기했다”고 밝혔다. 집주인 신고를 받은 지역 보안관실과 동물관리국은 일단 문을 열어두라는 조언을 내놨다. 하지만 새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집주인 가족을 도우러 온 친척은 “안방이며 화장실이며 집 전체가 새들 차지였다. 두건과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듯 퍼덕거리다가도 새들은 결국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새떼에게 집을 빼앗긴 집주인 가족은 결국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그 후로도 며칠간 새들의 침공은 계속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떼와의 동침을 택한 집주인은 둘째 날 밤 침실을 습격한 새떼의 날갯짓 소리에 놀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을 꼬박 새웠다는 전언이다. 사건 나흘만인 25일 현장으로 출동한 동물관리국과 소방국 관계자도 새떼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소방국 관계자는 “밤사이 새떼가 스스로 날아가기를 바랐지만, 다음 날 가보니 여전히 벽난로 위에 줄지어서 있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소방관들은 벽난로를 그물로 차단하고 활송장치(사람이나 물건을 미끄러뜨리듯 이동시키는 장치)를 동원하고서야 새들을 집 뒷문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집 안은 엄청난 양의 새똥과 깃털로 이미 엉망이 된 뒤였다.동물관리국은 가정집을 습격한 철새를 북미 칼새의 일종인 복스 칼새(Vaux’s swift)로 추정했다. 철새인 칼새는 봄마다 캘리포니아 남부를 거쳐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북쪽으로 날아간다. 떼를 지어 좁고 긴 통로 안으로 들어가는 습성이 있어, 해마다 굴뚝이 있는 가정집에 들이닥치곤 한다. 전문가들은 칼새의 침공을 피하고 싶다면 실내로 통하는 굴뚝과 벽난로 입구를 막아두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두산, 혹독한 구조조정 딛고 재기… 더 굳어진 ‘박정원 체제’

    두산, 혹독한 구조조정 딛고 재기… 더 굳어진 ‘박정원 체제’

    박정원 ‘믿음의 두산’ 경영철학 앞세워1년 만에 위기 탈출, 수소 사업에 집중지난해 두산중공업의 자금난으로 휘청거렸던 두산그룹이 제 살을 도려내는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두산가(家) 4세 박정원(59) 회장의 ‘오너십’과 ‘리더십’도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올해 1분기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주사 ㈜두산은 지난해 1분기 대비 403.6% 증가한 39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경영 위기의 주범이었던 두산중공업은 전년대비 558.6% 급증한 372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1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두산그룹이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구조조정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4월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 6000억원을 수혈받고 3조 2000억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어 클럽모우CC(1850억원)를 시작으로 동대문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두산 모트롤BG(453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를 속도감 있게 매각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그룹에 8500억원에 넘기는 절차만 마무리되면 두산그룹은 자구안 이행을 완수한다. 야구단 두산베어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박 회장의 각별한 야구사랑 덕에 그룹에 남게 됐다. 두산그룹이 1년 만에 경영 위기를 벗어나는 데는 박 회장과 두산의 경영 철학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구성원 간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의 두산’과 늘 지름길보다 정공법을 택해 온 박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잘 어우러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계열사 매각으로 쪼그라든 그룹 자산 규모를 미래 신사업을 통해 다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은 최근 수소시장 선점을 위해 그룹 차원의 ‘수소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수소 사업 역량 결집에 나섰다. 두산퓨얼셀은 수소연료전지 사업 확장을 본격화했고,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수소 드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두산그룹은 고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 회장과 동생 박지원(56) 부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이 이끌고 있다. 여기에 사촌 동생인 박진원(53) 두산메카텍 부회장, 박석원(50) ㈜두산 부사장, 박태원(52) 두산건설 부회장 등이 경영에 참여하며 ‘친척경영’ 체제를 갖췄다. ㈜두산 지분은 박 회장 7.41%, 박지원 부회장 4.94%, 박진원 부회장 3.64%, 박석원 부사장 2.98%. 박태원 부회장 2.70% 등 장자 순으로 서열화돼 있고, 박 회장 형제의 우애가 깊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차 떼고 포 떼고’ 벼랑 탈출한 두산… 더 단단해진 ‘박정원 체제’

    ‘차 떼고 포 떼고’ 벼랑 탈출한 두산… 더 단단해진 ‘박정원 체제’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자금난으로 휘청거렸던 두산그룹이 제 살을 도려내는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두산가(家) 4세 박정원(59) 회장의 ‘오너십’과 ‘리더십’도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올해 1분기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주사 ㈜두산은 지난해 1분기 대비 403.6% 증가한 39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경영 위기의 주범이었던 두산중공업은 전년대비 558.6% 급증한 372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1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두산그룹이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구조조정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4월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 6000억원을 수혈받고 3조 2000억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어 클럽모우CC(1850억원)를 시작으로 동대문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두산 모트롤BG(453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를 속도감 있게 매각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그룹에 8500억원에 넘기는 절차만 마무리되면 두산그룹은 자구안 이행을 완수한다. 야구단 두산베어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박 회장의 각별한 야구사랑 덕에 그룹에 남게 됐다. 두산그룹이 1년 만에 경영 위기를 벗어나는 데는 박 회장과 두산의 경영 철학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구성원 간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의 두산’과 늘 지름길보다 정공법을 택해 온 박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잘 어우러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계열사 매각으로 쪼그라든 그룹 자산 규모를 미래 신사업을 통해 다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은 최근 수소시장 선점을 위해 그룹 차원의 ‘수소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수소 사업 역량 결집에 나섰다. 두산퓨얼셀은 수소연료전지 사업 확장을 본격화했고,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수소 드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두산그룹은 고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 회장과 동생 박지원(56) 부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이 이끌고 있다. 여기에 사촌 동생인 박진원(53) 두산메카텍 부회장, 박석원(50) ㈜두산 부사장, 박태원(52) 두산건설 부회장 등이 경영에 참여하며 ‘친척경영’ 체제를 갖췄다. ㈜두산 지분은 박 회장 7.41%, 박지원 부회장 4.94%, 박진원 부회장 3.64%, 박석원 부사장 2.98%. 박태원 부회장 2.70% 등 장자 순으로 서열화돼 있고, 박 회장 형제의 우애가 깊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5전 6기’ 끝에 간호사 된 이주여성… “육아 도맡은 남편 응원 덕분”

    ‘5전 6기’ 끝에 간호사 된 이주여성… “육아 도맡은 남편 응원 덕분”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이 5전 6기 끝에 간호사 시험에 합격, 남원의료원 정규직으로 채용돼 27일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탁현진(오른쪽·36·전북 남원)씨. 탁씨는 2006년 5월 남원시 환경미화원 유영현(왼쪽·57)씨와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 먼저 온 친척 언니가 유씨에게 사진을 보여 주고 소개한 게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서툰 데다 음식과 기후 등 모든 게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오직 남편 한 사람만 믿고 의지해야 했지요.” 탁씨는 우선 남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부지런한 천성 덕에 곧바로 한국생활에 적응한 탁씨는 1남 1녀를 낳았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남편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를 뒤늦게라도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 베트남에서 중학교만 졸업한 탁씨는 만학도로 2012년 오수미래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전주비전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친동생이 어릴 때부터 천식과 감기로 고생해 의학과 간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남편이 아이들의 양육을 도맡아하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탁씨가 대학 기숙사에 머물렀기에 어린 자식들 키우는 게 오롯이 남편 몫이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었다. 탁씨의 낙방 요인이 실력이 아닌 언어장벽 때문이라는 것을 안 대학 동기와 마을 주민들도 한글을 가르쳐 주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탁씨는 지난해 2월 여섯 번째 도전한 끝에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지난달 남원의료원 간호사(보건직 8급)로 채용돼 코로나 병동에서 일한다. 결혼 이주여성이 간호사가 된 것은 전북에서 처음이고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알려졌다. 어느덧 한국 생활 16년차인 탁씨는 “한국말에 어려움을 겪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통역에도 힘쓰는 친절한 간호사가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발명가 꿈꿨던 소년, 교회법 권위자로

    발명가 꿈꿨던 소년, 교회법 권위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나흘만인 6일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읽으며 발명가의 꿈을 키우던 고인은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피신처에 떨어진 포탄은 눈앞에서 친척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과학자의 꿈은 멀어져갔다.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그는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책을 읽게 됐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 결국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다.고인은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만 39세 때인 1970년에는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서울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로 영웅시되던 2005년 6월, 그는 사제들에게 보낸 강론 자료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인간 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가톨릭계 생명운동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교황청이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지만 정 추기경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사목 표어도 주교 서품을 받으며 정했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관련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4대 강 사업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으로 내부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정 추기경은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고인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행복을 염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최근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행복하세요” 정진석 추기경 마지막 인사

    “행복하세요” 정진석 추기경 마지막 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나흘만인 6일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읽으며 발명가의 꿈을 키우던 고인은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피신처에 떨어진 포탄은 눈앞에서 친척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과학자의 꿈은 멀어져갔다.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그는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책을 읽게 됐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 결국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다. 고인은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만 39세 때인 1970년에는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서울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로 영웅시되던 2005년 6월, 그는 사제들에게 보낸 강론 자료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인간 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가톨릭계 생명운동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교황청이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지만 정 추기경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사목 표어도 주교 서품을 받으며 정했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관련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4대 강 사업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으로 내부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정 추기경은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고인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행복을 염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최근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5전 6기 끝에 간호사 꿈 이룬 베트남 이주여성

    5전 6기 끝에 간호사 꿈 이룬 베트남 이주여성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6번 도전한 끝에 간호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남원의료원 정규직으로 채용돼 화제다. 주인공은 베트남 호찌민이 고향인 탁현진(36·전북 남원시)씨. 탁씨는 2006년 5월 전북 남원시 환경미화원 유영현(57)씨와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 먼저 온 친척 언니가 유씨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소개한 것이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서툰데다 음식과 기후 등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오직 남편 한사람만 믿고 의지해야 했지요” 탁씨는 우선 남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머리도 좋은 탁씨는 곧바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1남 1녀를 낳았다.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남편 유씨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를 뒤늦게라도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 베트남에서 중학교만 졸업한 탁씨는 만학도로 2012년 오수미래고등학교를 졸업한데 이어 같은 해 전주비전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친동생이 어릴 때부터 천식과 감기로 고생하는 것을 의학과 간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남편 유씨는 아이들의 양육을 도맡아 하며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했다. 탁씨가 대학 기숙사에 머물며 학업에 열중했기에 어린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며 학교에 보내는 것은 오롯이 남편 몫이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었다. “간호사 국가시험에 5번이나 떨어져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마다 남편이 다시 도전해 보라고 격려해주어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탁씨의 낙방요인이 실력이 아닌 언어장벽 때문이라는 것을 안 대학동기와 마을 주민들도 한글을 가르쳐 주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탁씨는 지난해 2월 여섯번째 도전한 끝에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올 3월에는 남원의료원 간호사(보건직 8급) 채용돼 코로나병동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간호사가 된 것은 전북에서 첫 사례이고 전국에서 두번째다. 어느덧 한국생활 16년차인 탁씨는 “한국말에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정확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통역에도 힘쓰는 친절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군과 양

    [이경우의 언파만파] 군과 양

    “신랑 ○○○군과 신부 ○○○양.” 결혼식에서 주례나 사회자는 신랑은 ‘군’으로, 신부는 ‘양’으로 호칭한다. ‘군’과 ‘양’은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의 공식 호칭인 셈이다. 그렇지만 결혼식을 진행하는 도중의 주례와 사회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군’과 ‘양’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례와 사회자도 결혼식과 상관없이 신랑과 신부를 부를 때는 ‘군’과 ‘양’을 붙이지 않는다. 관계에 따라 이름만 부르기도, ‘씨’를 붙이기도 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를 ‘군’과 ‘양’으로 호칭하는 건 이들이 아직 ‘어리다’는 표시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형식적으로는 어른이 아니라는 표지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라는 이전 시대의 의식과 가치관이 녹아 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군’과 ‘양’으로 불리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들의 성명 뒤에는 똑같이 ‘씨’나 ‘님’ 혹은 직함이 붙는다. 공인된 ‘어른’이 된 이들은 이렇게 성별에 따른 차이도 사라진 호칭으로 불린다. 이름 뒤에 붙는 ‘군’은 격식을 갖춘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친근함을 나타냈다. “김군, 어디 가나?”, “철수군 이리 와 보게”라고 하는 사람은 주로 남성이었다. ‘김군’의 손윗사람이거나 ‘철수군’과 친구 관계여야 했다. 이렇게 불린 ‘군’은 미성년자라는 걸 뜻했고, 대접하는 말이라지만 위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호칭어로 ‘군’과 짝을 이루는 ‘양’도 격식을 갖추고 상대를 친근하게 대하는 말로 쓰였다. ‘군’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사람들이 사용했다. ‘군’과 달리 남녀 불문하고 ‘양’을 불러 왔다. ‘양’이라고 부른 상대는 자신의 나이가 많고 ‘양’으로 불린 여성은 어리다는 사실을 알렸다. 미성년자에게만 ‘양’을 붙인 건 아니었다. 성인이더라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한때 ‘양’으로 불렸었다. ‘양’은 나이에 따른 위계도, 성에 따른 위계도 있는 말이었다. 일상에서 밀려났지만 언론 매체에서도 ‘군’과 ‘양’을 쉽게 볼 수 있다. 선은 확실해서 미성년자에게는 반드시 성명 뒤에 ‘군’과 ‘양’을 붙이려고 한다. 언론 매체가 ‘군’과 ‘양’을 쓰는 건 오랜 관습이기도 하지만 이 말들을 존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데 이 말들은 ‘손아랫사람’을 일컫는다. 언론 매체가 ‘손윗사람’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성년 남녀를 ‘군’과 ‘양’으로 굳이 구별해 가리킬 일도 아니다. 이런 관행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호칭 방식을 찾는 게 좋겠다. w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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