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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크 대통령 오늘 북경방문 의미

    ◎“다핵세계질서 구축” 중·불 악수/항공기 합작생산 등 겉으론 경제행보/속으론 미 견제 전방위 공동전선 탐색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오늘부터 4일간 중국을 방문한다.83년 미테랑 대통령의 방문이후 14년만에 이루어지는 프랑스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견제를 모색하는 두 강대국 정상의 만남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양국정상회담은 특히 대만에 대한 미라주 전투기판매,천안문사건,인권문제등의 걸림돌을 극복하고 두나라가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향해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번 방문에서 시라크는 강택민과 정상회담을 갖게되며 두나라는 공동성명을 채택,「전방위적 협력관계」(GLOBAL PARTNERSHIP)를 선언할 예정이다.냉전종식후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반대하고 다극화 체제를 추구하는 중국과 프랑스 두나라의 공통된 경제·정치적 이해관계가 배경에 깔려있다.다극화된 경제·정치질서 확립을 위해 프랑스는 「중국카드」를,중국은 「프랑스 및 러시아카드」를 쓰고 있으며 이번 방문은 60년대 드골시대와 같은프랑스의 독자적 외교행보와 중국·프랑스의 전략적 밀월시대 개막을 알린다는 점에서 향후 발전방향이 주목된다. 이번 방문은 외형상 경제방문으로 여겨질 정도로 푸짐한 보따리들이 있다.그간 미국이 독점하던 시장의 상당부분이 프랑스몫으로 돌려졌다는데 의미가 있다.프랑스로선 국제무대에서 친중국적인 색채를 가지면서 중국시장의 이권을 챙겼다.중국은 12억달러상당의 에어버스사 항공기 30대분의 구매협정을 맺을 예정이다.보잉 등 미국항공사를 제치고 프랑스 주축의 유럽합작기업인 에어버스제품을 사기로 한것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력공세에 대한 반격이란게 일반적 견해다. 중형여객기 합작생산 협정,프랑스의 원전기술 및 농업기술의 이전 등도 논의된다.중국시장진출에 있어 미국과 경쟁적 관계인 프랑스는 원전및 은행·보험회사의 진출,천연가스 개발사업,삼협댐 공사수주 등 프랑스기업의 진출 요청을 할 계획이다.이때문에 시에테제네랄등 프랑스 5대 은행장 전부와 60개 대기업 수뇌들이 시라크를 수행하고 중국으로 몰려온다.지난달 유엔인권회의와 유엔의 개혁,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동진문제 등 적잖은 사안에 걸쳐 미국과 부딪치고 있는 프랑스와 중국이 어떤 관계를 정립해 나갈지 지난 91년 파리시장으로서 북경을 방문한 바 있는 시라크의 이번 중국방문이 주목된다.
  • “다음달 맞대응 상륙”/홍콩 민간단체 발표

    【홍콩 AFP 연합】 홍콩의 한 친중국단체가 5월중 조어도에 상륙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혀 일본인들과의 대결 가능성을 불러 일으켰다. 『조어도 보호위원회』란 이름의 이 단체는 홍콩 입법국 원내 제1당인 민주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결성됐으며 민주당의 창 킨 싱 의원은 40여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요원들이 대북에 집결,대만 및 미국에서 온 1백여명의 사람들과 합류하여 오는 5월 18일 섬에 상륙한후 4∼5일동안 캠프를 치고 그곳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 선거자금 중 정부 돈 유입”/뉴스위크

    ◎인니사업가 통해 25만불 기부 【워싱턴 AP 연합】 중국본토로부터 미 캘리포니아주 일부 은행으로 입금된 수십만달러의 유입 경로를 추적하고 있는 미 연방 수사당국은 이 돈이 중국정부로부터 직접 보내져 부분적으로 캘리포니아주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뉴스위크지가 보도했다. 21일 발행된 28일자 뉴스위크는 현재 수사의 핵심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업가 테드 시옹이라고 밝히고 그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자금조달의 핵심인물인 친구 존 황의 요청으로 DNC에 25만달러를 기부했다고 전했다. 시옹은 또한 캘리포니아주 출납국장이며 공화당원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할 매트 퐁에게도 5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옹은 호텔 2개와 상가,중국어신문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신문은 친대만계였으나 지난해 시옹이 사들인이후 친중국계로 성격이 변했다.그는 또한 특정 중국담배의 미국내 독점판매권을 확보하고 있는 등 중국과 사업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중국정부가시옹에게 이 신문을 매입하도록 부추겼으며 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문제의 자금이 94년말에서 95년초 중국으로부터 중국영사관이 구좌를 개설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아시아계 은행으로 송금된 뒤 그 일부가 곧바로 시옹이 부분적으로 소유한 또다른 아시아계 은행으로 보내져 시옹 소유의 「할리우드 메트로폴리탄 호텔」 구좌로 입금됐다고 밝혔다.
  • 등 유골 일부 홍콩 앞바다에 뿌릴듯/등소평 사망­중국 표정

    ◎시신 이틀뒤 해부… 자택으로 이송된듯/천안문광장 관광객 북적… 평상시 모습 ○…중국당국은 타계한 최고 지도자 등소평이 생전에 홍콩의 중국 반환을 두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24일에 화장한 후 나온 등의 유골 일부를 홍콩에 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정부 소식통이 22일 말했다. 이 소식통은 『홍콩 반환후 등이 직접 홍콩땅을 밟아보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중앙 당국은 오는 7월1일 이후 등의 유해일부를 홍콩 주변 바다에 나눠 뿌리는 문제를 고려중』이라고 설명했다.홍콩내 친중 정당,단체들은 즉각 이에 대한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홍콩 친중단체 환영의사 ○…등소평의 유체는 고인의 뜻에 따라 사망한지 이틀 뒤 해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도쿄신문은 22일 등소평의 유체가 안치돼 있던 북경 301병원 소식통을 인용해 사망한지 이틀 뒤인 21일 북경의 한 병원에서 해부됐다고 전했다. 등씨의 가족이 강택민 국가주석 등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등소평은 생전부터 「각막을 제공하며 의학연구를 위해 유체를 해부하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보는 21일자에서 등소평의 사망전후 사정을 자세히 전했다.이에 따르면 등소평은 19일 하오 6시쯤부터 이전에 수술을 받았던 후두부가 기능부전을 일으키고 폐의 감염증도 병발해 3시간에 걸쳐 긴급치료를 행했으나 결국 하오 9시넘어 불귀의 객이 됐다는 것. 등소평은 지난달 6일 하오 당의 장로들이 이용하는 인민해방군 301병원의 「원수루」에 입원.입원 당일에는 의식도 또렷하고 작은 목소리지만 말도 할수 있었다는 것.그러나 이달초 들어 파킨슨씨병이 악화되면서 당중앙지도부는 부고의 기초와 유물의 정리에 착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사망전 3시간동안 수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등소평의 유체가 21일 북경시내의 자택에 돌아온 것 같다고 22일 보도. 등소평의 사망장소와 유체의 안치장소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21일 상오 해방군의 번호판이 붙은 하얀 마이크로 버스가 북경시내 중심부의 고궁 뒤편의 자택에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는 것. 또 등이 사거한 것으로 보이는 병원의 경비가 이날부터 완화된 반면 자택의 경비가 강화된 것으로 보아 자택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설명. 등소평의 자택에는 문과 도로에 면한 담벽의 수개소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반기로 게양돼 있으며 자택 앞의 작은 길은 통행을 규제하는 등 경비가 삼엄하게 실시되고 있다는 것.반면 문은 굳게 닫혀져 있으며 내부는 정적에 싸여 있다고 자택의 분위기를 전언. ○…등소평 사망 3일째를 맞은 22일 북경시내는 등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도 서서히 일상적인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이날 북경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천안문광장에는 등의 추모 분위기보다는 관광객을 비롯,주말을 맞아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평상시와 같은 모습. ○사진제공자 홍콩서 탈출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타계직전 눈가의 혈관 파열흔이 뚜렷한 그의 모습을 문틈으로 찍은 사진을 홍콩의 한 신문에 팔았던 제공자가 중국으로부터 국가기밀 누설혐의로 소추위협에 직면,홍콩을 비밀리에 떠났다고 소식통들이 22일 말했다. 이 사진 제공자는 지난해 12월 찍은 것으로 알려진 등의 사진을 한 보좌관으로부터 입수,홍콩의 빈과일보에 20만 홍콩달러(약 2천만원)에 되팔아 21일자로 보도되자 중국당국의 격분으로 형사소추등 신변의 위협이 제기되자 홍콩을 탈출,제3국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북 엑서더스 기폭제… 민족사의 대사건/황장엽 망명­전문가 좌담

    ◎군부 입김 강화… 「붉은기 철학」 등 사상통제 수정/김정일에 치명타… 친중 제3권력 등장 가능성 □참석자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 ·유창렬 외교안보연 교수 ·김종일 서울신문 국제전략연 소장 김정일 측근이자 북한의 주체사상 대부인 당비서 황장엽의 예상치못한 망명은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황이 왜 망명했는지,그의 망명이 북한은 물론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북한문제전문가인 김창순 이사장(북한연구소),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와 김종일 소장(본사 국제전략연구소)과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김종일 소장=북한의 거물인 황장엽의 망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입니다.북한이 황의 망명에 대해 즉각 「불가능한 일」이고 납치라고 억지를 부리는데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 준 충격과 당혹감은 이루말할수 없을 것입니다.그동안 김정일의 각별한 보살핌과 북한에서 특혜를 받아오던 황장엽이 왜 북한을 등지고 한국에로의 망명의 길을 택했는지,먼저 탈북동기부터 짚어볼까요. ○망명 의도 오래된 듯 ▲유석렬 교수=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직접적인 동기는 일본 방문목적이 실패한 것에서 찾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번에 일본을 방문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주체사상연구소의 초청에 참석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식량난과 대일관계의 돌파구를 뚫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북한은 식량지원때문에 황의 방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이게 무산된 것이고 빈손으로 돌아가게된 황은 면목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두번째로 김정일의 통치방식에 황이 동의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폐쇄적으로 나가지 말고 개혁과 개방을 해야한다는 것이 황의 생각인데 이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및 사상과는 다른 것이죠.또 주체사상의 수령론은 황장엽의 체계적인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만 김정일이 여기에서 일부 필요한 것은 뽑아쓰고 주체사상을 변질시킴으로써 주체사상이 결과적으로 점점 약화되어갔고 황이 중심세력에서 멀어져 간 것도 그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세번째로 북한사회에 더이상의 희망이나 전망이 없다는 생각도 큰 작용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암담한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상당기간 망명을 생각했을 것으로 봅니다. ▲김창순 이사장=그렇습니다.황장엽은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을 것으로 보입니다.황은 북한에서 혁명1세대도 아니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이죠.김일성시대에 만들어진 이론가인데 지식인인만큼 통치이념면에서 남다른 고민을 해왔을 것입니다.이념정치가이기 때문에 탈냉전시대를 맞아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세계 어떤 민족주의든간에 세계사방향에서 일탈한 민족주의가 살아남은 일이 없으니까 황장엽은 주체사상이 탈냉전시대에 살아남을수 있겠느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시대가 바뀌는 등 모든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념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이란 이념적 토대를 구축했던 그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느낀 갈등은 대단했을 것입니다.심각한 이념적 갈등을 겪어온 것이 본질적인 탈북동기라고 봅니다. ▲김소장=자세한 망명동기는 그가 한국에 와서 본인의 입을 통해밝힐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두분이 공통적으로 지적하신대로 이념적 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황장엽의 망명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정일식 사상 준비 ▲유교수=첫째 주체사상을 체계화했던 사람이 망명을 했으니까 주체사상이란 이념의 존재이유가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념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지요.그런데 현재 김정일에게는 주체사상보다 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게 됐습니다.김일성이 죽은지 3년이 지난 마당에 아버지와 다른,차별화된 이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고난의 행군정신,붉은사상,붉은기 철학입니다.이런 측면에서 황장엽의 입지를 오히려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실제로 작년에 황장엽을 겨냥,주체사상의 권위와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논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그런만큼 황장엽의 망명은 주체사상보다는 새로운 이념을 끌고가려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두번째로 특권지도층에 이념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켰을 것입니다. ▲김이사장=황장엽의 망명은남북한관계나 우리민족사에서 중대한 사건입니다.유교수께서 이념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만 북한에서 김일성시대에 입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는 작업은 90년부터 시작됐습니다.91년 6월 노동신문에 등장한 민족제일주의를 읽어보면 「민족」이란 말이 220번 나옵니다.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이란 것도 낡은 것이 돼서 붉은기사상이란 것이 나왔는데 이는 주체사상과는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됐지요. ▲김소장=「믿었던 도끼에 찍힌 격」이 된 황장엽의 망명은 김정일과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을 게 분명합니다.어떤 면에 어느정도의 타격을 주게 될까요. ▲유교수=그동안 김일성부자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고 북한에서 특혜를 누려온 황이 망명한 것은 지도층을 동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그래서 김정일은 앞으로 측근들까지도 충성도를 챙기고 북한 주민들을 더욱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김이사장=현재 북한에서 인텔리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약 1백70여만명이 됩니다.북한체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인텔리계층이이념의 대부인 황장엽마저 떠난 것을 보고는 얼마나 충격을 받고 동요를 하겠습니까. ▲김소장=북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말씀이군요. ▲유교수=그렇습니다.권력지도층이 흔들리면 주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그동안 북한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대탈북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본격화된 붕괴 조짐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은 북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게 분명합니다.그 충격이 큰 만큼 황의 망명은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당장 16일 김의 55회생일행사가 어떻게 치러질지 궁금합니다. ▲유교수=생일행사야 그런대로 치러지겠지만 과연 승계를 하게 될는지는 두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당초 계획됐던대로 일이 되어간다면 10월쯤 총비서에 취임하겠지만 총체적인 난국이 심화될 경우는 승계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이사장=승계준비는 하겠지만 「정치적 대공황」이라고 할 정도로 그 파장이 너무 큰 만큼 승계를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제2의 황장엽이 나오지 않도록 통제를 강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김소장=이번 황장엽의 망명은 경제붕괴에서 이념파괴로,그리고 앞으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이를 북한붕괴의 전주곡으로 봐도 되는지요. ▲유교수=일단 김정일정권의 붕괴조짐이 본격화했다고 봅니다.김정일은 인민무력부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계엄체제로 국가를 끌어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권력을 승계하려면 계엄체제를 풀어야 하는데 계엄을 풀 경우 분출할 사회 전반의 일탈이 두려워 계엄을 풀지 못하고 있고 권력승계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황장엽같은 고위층이 망명을 결행한 것은 북한체제가 더이상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같은 민심이반은 결국 김정일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김이사장=당장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붕괴한다면 북한정권이 아니라 김정일정권이 무너질 것입니다.그러나 현재처럼 북한을 돌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북한정권은 살아남을것이고 김정일정권이 무너진다면 친중국성향의 제3의 권력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주체사상의 대부인 황장엽이 망명한 이후 주체사상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유교수=워낙 오랜 세월동안 유지돼왔기 때문에 황장엽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당장 없어지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현재 김정일은 소위 「붉은 기 철학」과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점차적으로 퇴색시키고 앞서의 두가지 이념을 자신의 새로운 혁명이념으로 수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황장엽의 망명이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유교수=기왕에도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국면으로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황장엽이 서울로 오게 될 경우 북한은 아마도 이 사실을 왜곡,대남 비난에 더욱 열을 올릴 것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통미봉남 정책을 써온 터여서 더 악화될 것도 없다고 봅니다.하지만 대북 식량지원이나 경제협력같은 것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봅니다. ○테러 감행 가능성도 ▲김이사장=북한이 황장엽의 망명을 왜곡시킬 것은 자명하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가 더 껄끄러워질 질 것 또한 분명합니다.더 나아가 황장엽의 망명이 북한체제유지를 어렵게 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경우 「안되겠다」는 심산에서 DMZ 이남에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특히 북한의 뒤를 봐주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전면전은 어렵다고 봅니다. ▲김소장=황장엽망명 이후 북한의 대내정책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유교수=주민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사상교육이 실시되고 동시에 제2의 황장엽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의 고삐를 더욱 옥죌 것이 분명합니다.특히 군부로 대변되는 북한 강경파의 대남 적대가 강화될 것이며 더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함께 언제든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는 강경발언으로 우리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심복 중심으로 통치 ▲김이사장=군부의 입김이더욱 강화될 것이며 노동당서열에서 황장엽에 앞서는 원로들의 행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그렇잖아도 혁명1세대를 버거워하던 김정일로 하여금 그들을 멀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준 셈이죠.김정일로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심복들을 중심으로 북한을 꾸려나갈 것으로 봅니다. ▲유교수=사실 김정일은 김일성 세대에 부담을 느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형식적으로 예우는 하되 권력측면에선 거세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죠.이에따른 혁명 1세대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황장엽도 김정일에게서 느끼는 소외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망명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됐을 가능성이 많습니다.〈정리=장수근·유은걸 서울신문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진방안생 홍콩행정총리/반환이후에도 유임될 듯

    ◎동 행정장관 제의 수락 【홍콩 DPA UPI 연합】 18만 홍콩 공무원의 수장인 안손 찬(진방안생·56)행정총리가 동건화 초대행정장관 임명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내년 7월1일 홍콩주권 반환 이후에도 계속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친중국 노선을 취하고 있는 동 행정장관 임명자는 이날 찬 여사를 만나 홍콩반환 이후에도 안정과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계속 행정총리 자리를 맡아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 찬 여사가 수락했다.
  • 영 통치 벗어나 「항인치항」 진입/홍콩 행정장관 선출 의미

    ◎친중인사 뽑혀 중국과 긴밀한 관계 예고/과도기 50년간 일국양제 기틀마련 과제 해운재벌 동건화의 초대 홍콩행정장관 선출은 150여년에 걸친 영국의 홍콩식민지지배가 막을 내리고 이른바 「항인치항」(홍콩인이 홍콩을 통치)시대가 임박해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이제 오는21일 의회격인 입법국을 대체할 임시 입법회 의원 선출과 행정장관의 주요 고위공직자 임명이 주요 후속조치로 남게됐다. 특별행정구 최고책임자로 동씨를 선출한 것은 내년7월 출범될 홍콩특별행정구(SAR)의 자치실험이 북경당국과 긴밀한 협조아래 진행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홍콩경제계를 대표하는 친중인사의 행정장관직 선출은 미래 홍콩진로를 상징한다.11일 400명의 선거인 가운데 320표란 압도적 표를 얻은 것도 홍콩경제계와 상류사회의 중국과의 협조를 통한 안정 및 홍콩경제 번영유지의 희망으로 풀이된다. 특별행정구의 첫 최고책임자는 정치적 개혁보다 경제적 번영을 통한 안정유지에 최우선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동건화는 과도기의 안정유지와 앞으로 50년동안 유지될 중국의 「일국양제」제도의 기틀마련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높아지는 민주화 열기속에 일반 홍콩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도 동씨의 당면과제다.「체육관에서 선출된 중국의 파견총독」이 아닌 홍콩인들을 대변하는 자치정부의 대표란 입지를 중국정부와의 밀월속에서 어떻게 확보할지도 홍콩 자치실현과 관련,주목받고 있다.입법국 해산,기본권법 개정,인민해방군의 재판관할권,형법개정을 강행할 중국측과 홍콩내 민주세력의 정치자유확대 및 민주법제 유지 요구라는 상반된 주장속에서 동씨가 어떻게 운신의 폭을 확대할지도 주목된다.
  • 홍콩 초대행정장관 동건화(뉴스의 인물)

    ◎친중국 해운재벌 출신… 둘째 며느리가 한국계/미·영·대만 국가원수들과도 교분 “국제 마당발” 초대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동건화 당선자(59)는 홍콩의 세계적 해운회사 동방해외그룹을 경영해온 친중국계 기업인.중국 정협 의원과 홍콩반환 인수기구인 주비위 부주임을 맡아온 그는 올초 주비위 발족때 유일하게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눌만큼 중국의 신망도 두터운 데다 지난달 실시된 400명의 추선위 1차투표에서 206표를 얻어 이미 당선이 예견됐던 인물이다. 부친 동호운씨가 중국 상해에서 사업기반을 잡은 지난 37년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리버풀대학을 졸업한 뒤 79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사업을 물려 받았다.중국과 영국이 홍콩반환을 합의한 1년뒤인 85년 해운경기의 불황으로 고전할때 중국으로부터 1억2천만달러의 재정지원을 받아 중국이 초대 행정장관으로 「낙점」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았다.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는 물론 홍콩·미국 경협위원장,홍콩·일본 재계 협력위원등을 거쳐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등휘 대만총통과도인연이 깊다.특히 부친 동씨가 49년 공산화후 사업터전을 대만으로 옮긴데다 매형 팽음강이 대만 굴지의 기업대표여서 대만과도 줄이 닿는다. 부인 조홍빙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둔 동당선자는 이건희 삼성회장·김우중 대우회장과도 사업상 교류가 활발한데다 안사돈이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그의 둘째며느리 임빙난씨가 홍콩인 임문덕씨와 한국인 방혜자씨 사이의 딸이다. 지난 67년 이화여대 교육학과 4학년 때 사업차 한국에 머물던 홍콩의 청년 사업가 임문덕씨(55·AIA보험회사사장)와 1년 교제 끝에 결혼한 후 홍콩에 살고 있는 방씨는 『동당선자가 홍콩의 한국인 국제학교에 기부를 하는 등 며느리와 안사돈의 나라인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다』고 밝혔다.
  • 새달 11일 홍콩행정장관 선출/친중 동건화에 친영 양철량 도전

    ◎중 추선위 일정 확정/선거인단 4백명 확정… 친중국계 일색/홍콩 첫 대의방식 행정수반 선출에 의미 내년 7월1일 출범할 홍콩 특별행정구(SAR)의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 선거인단 및 선출일정이 확정됐다. 2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폐막된 SAR 주비위원회(위원장 전기침 부총리겸 외교부장) 6차회의는 선거인단(제1기 홍콩정부 추선위원회·SC)400명을 확정하고 오는 12월11일 첫 행정장관 선출을 결정했다.또 기존의 홍콩 의회를 해산하는 대신 SC에서 12월21일 이를 대치할 임시 입법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중국정부의 홍콩주권 접수를 위한 홍콩지역의 최고책임자 선출이 몇달 지연됐지만 사실상 중국의 의도대로 마무리됐다.선거단의 대다수가 친중국 색채의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또 행정장관 및 국회의원선거가 올해내 모두 끝남에 따라 97년부터는 중국의 홍콩내 영국총독 정부의 권력 인수작업이 본격화되고 기존 크리스 패턴 총독 정부의 권력누수현상도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확정된 선거인단 400명 가운데 340명은 홍콩의 공·상업계및 금융계의 실업인 100명,노동·종교 등에서 100명,전문직 종사자 100명,전직 정치인 40명 등으로 구성됐고 나머지 60명은 홍콩지역 중국 정치협상회의 위원 및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으로 구성됐다. 이같은 선거인단 선출은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선거」 「부자 클럽모임」 「친중국 인사들로 구성된 잔치」라는 홍콩내 일부 비판에도 불구,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행정수반을 임명이 아닌 대의방법으로 뽑는다는 의미를 지닌다.12월 행정장관이 선출되면 행정장관 선출자는 곧 내년7월 출범될 특구 정부의 각 행정부문 고위관리들을 임명,그림자내각(섀도 캐비닛)의 구성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정권 인수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현재 행정장관 경선은 홍콩의 해운왕으로 불리는 실업가 동건화와 지난주 행정장관 출마를 위해 홍콩의 대법원장격인 수석 대법관직을 사임한 양철양의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동은 현재 동방해외국제 그룹의 회장이며 중국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특구주비위 부의장,정협의원,중국정부의 홍콩사무고문 등의 감투를 마다하지 않으며 중국정부를 도와왔다.이에비해 양철양은 런던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친영국성향의 인사로 알려져 있다.한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오는 12월12일 홍콩 특별행정구 주비위원회 전체회의를 심천에서 개최한다면서 「일국양제」 및 「홍콩에 대한 고도자치」를 다시한번 강조했다.행정장관을 선출한뒤 영국정부와의 정권인수와 관련된 현안문제를 협의해 나가겠다는 것이다.중국의 홍콩인수를 앞두고 정치자유화 폭을 넓히고 각종 예산사업을 벌여 마찰을 일으켜오던 영국정부가 이같은 결정에 어떤식으로 협조할지 정권인수 초읽기에 접근하면서 관심이 모이고 있다.
  • 한국기업/중 심천특구 최대 투자자로/홍콩 대공보 보도

    ◎삼성 등 500여개 기업을 올 4억8천만달러 기록 【홍콩 UPI 연합】 한국기업들이 중국의 날로 번창하는 남방경제특구인 심천에서 올들어 최대투자자로 부상했다고 친중국계 대공보가 8일 보도했다. 삼성 등 한국기업들이 금년들어 지난 8월까지 모두 4억8천5백만달러를 투자해 이웃 홍콩의 투자를 앞지르고 1위를 차지했다.한국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기업들이 그간 중국 북부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으나 지금은 남부 지역을 포함한 중국의 기타지역으로 투자를 다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고 심천이 특별한 매력을 끄는 이유는 이미 500개 한국기업이 진출한 홍콩이 이웃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 첫 8개월간 심천에 대한 전체 외국투자는 11억2천만달러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6%가 늘어난 것이다.
  • 미 대선과 이라크와 한반도(박화진 칼럼)

    이라크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분통 터질 일」일 것이다.쿠웨이트 침공의 잘못된 과거가 있긴 하지만 이라크도 주권국가다.국내 쿠르드족 공격이 미국과의 약속위반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군사개입까지 하고나설 문제는 못된다고 할수있다.「강대국의 횡포」란 비판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영국을 제외한 많은 다른 나라들과 국제여론이 지지유보 내지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후세인의 약속위반 및 도전에 대한 응징명분의 연이은 이라크공격을 감행하고 있다.일차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물론 이라크요 후세인이다.그리고 탈냉전이후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된 미국은 점점더 자국이기주의에 철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하다.그러나 옛소련 붕괴후 어느 나라도 도전할 수 없는 세계유일의 초강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선거때가 아니었더라면 클린턴도 이라크 군사공격을 이처럼 신속하고 단호하게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국가의 의사 및행동 결정에는 특히 투표에 의해 정권의 행방이 결정되는 자유민주국가의 경우 국익은 물론 정권이익이 우선되는 경우도 흔히 본다.미국은,냉전시대의 대소관계나 월남전의 경우에서 흔히 보았듯이,그 대표적인 국가의 하나라 할수있다.지금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2개월 앞둔 시점이다.현직의 클린턴은 대북핵협상의 경우등 외교에서 나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후세인은 미국 국민전체의 공적으로 인식되고 있다.클린턴에게 있어 후세인 이라크 공격은 잃을 것은 적고 잘되면 적지않은 득표를 올릴 기회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 공격에서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국가의사 결정패턴을 우리도 그냥 건성으로 보아 넘기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91년 걸프전 당시 우리는 그것이 북한에 대해 「무모한 국가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일깨우는 교훈이자 경고이기를 기대했었다.물론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그러나 교훈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나라는 북한뿐인가.우리도 눈여겨보고 교훈으로 삼아야할 대목은 많다.미국의 대북정책도 클린턴의 재선과연결되어 있지않는가.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와 미국의 국익은 상당한 상충을 드러내고 있다.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된 미국은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부유하고 관대하던 이웃아저씨 「엉클 샘」역을 그만둔지 오래이기도 하다. 탈냉전이후 우리의 국제환경은 큰 변모를 보이고 있다.이른바 주변4강의 국익환경변화 때문이다.교역면에서 옛날같지 않아진 미국이 대북 정책면에서도 점점더 우리의 국익을 초월하는 미국익 중심의 행동을 고집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느낀다.세계는 물론 북한의 공산 종주국이었던 옛소련이 붕괴된 이상 공산북한의 계속적인 존재같은것은 이제 한국에는 몰라도 미국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임을 느끼게 될 때도 많다. 얼마전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평을 듣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북한 붕괴 이후」란 제하의 기사에서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의 근본적인 변화는 통일을 초래할수 있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붕괴라고 전제,통일한국은 중국과 제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의 경계심을 드러낸 기사라 할 수 있다.일본과의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지배적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있어 강력하고 반일적이며 중립 내지 친중국적일수 있는 통일한국의 출현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상황일지 모른다. 때마침 일본군함이 일본제국 해군의 상징으로,떠오르는 해를 상징하는,섬득한 기억의 욱일승천기를 당당히 휘날리며 패전 51년만에 처음으로 부산항에 입항함으로써 미묘한 우리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기도 하다.본지에 기고하고 있는 러시아아카데미 부원장 바자노프는 「통일된 강한 한국이 중·일을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러시아야말로 진실로 한반도통일을 바라는 유일 강국일지 모른다.미국은 한국민들의 분열이 끝나면 주둔병력의 철수를 요구받을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세기말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국제환경은 세기초의 구한말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서구제국들의 아시아 식민지진출 홍수에 압도당하지 않고 유일하게 국권을 지킨 경우로 자주 인용되는 태국외교의 비결을 상기하고 중·소분쟁의 틈바구니를 활용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북한외교까지도 참고로 삼아야할 오늘의 우리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클린턴의 이라크공격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지혜롭고 현명한 주도적 통일·안보·외교정책의 개발과 추진노력이 절실한 시대상황임을 실감하게 된다면 지나친 과민이겠는가.
  • 중 공군조종사 목표/공격 위주로 수정/교육시간도 70% 늘려

    중국 인민해방군은 공군 조종사 양성에 있어서 훈련 목표를 기존의 영공 방어 및 지상군과의 합동작전 개념에서 탈피,공격과 대육·해군 합동작전에 주안점을 주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있다고 홍콩의 친중국계 일간 대공보가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공군사관학교장 지아리 부원장의 말을 인용,공군 당국의 전략 재검토와 함께 하이테크전 수행 능력이 기존의 훈련 개념에 변화를 촉발시켰다고 논평했다. 신문은 이어 공군사관학교가 최근 조종사 양성 훈련에 있어서 육해공 합동작전교육 시간을 이전보다 50∼70% 늘려왔다고 전했다.
  • 경제전망(홍콩반환 앞으로 1년:4·끝)

    ◎“아주 무역중심 4∼5년은 유지”/첵납콕 신공항 등 SOC 대규모 투자/외국사 진출 증가세… 중 독립보장 관건 홍콩섬의 중심가 센트럴지역서부터 구룡반도와 란타우섬 등 홍콩전역은 새로운 건설공사로 부산하다.제3터널공사,신부두 건설,지하철 연장공사,매립지 확장 등등….특히 94년11월 시작된 첵납콕 신공항건설사업은 국제무역,교통의 중심지로서 홍콩의 미래를 상징한다.란타우섬의 매립지에 건설되는 첵납콕 신공항이 1단계로 완공되는 98년4월 이후면 홍콩은 추가로 연 3천5백만명의 승객과 1백50만t의 화물처리 능력을 확보하고 전장 3.8㎞의 활주로를 갖게 된다. 2백2억달러 규모의 신공항 건설사업 뿐아니라 8·9·10호 컨테이너 추가건설사업도 세계 1위인 컨테이너 수송능력(연 1천2백80만TEU)을 한단계 끌어올릴 전망이다.중심지 센트럴에서 신터널­구룡반도­첵납콕까지 이어질 신철도 건설도 한창이다. 이같은 기간시설의 대대적 확충은 교통과 금융·무역의 국제중심지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킨다.홍콩에는 40여개국에서 5백49개 금융기관과 사무소가 나와 있다.하루 9백10억달러의 외환이 거래되고 3천36억달러 상당의 증권이 상장돼 있다.각각 세계 5위,6위 규모다.금 교역규모도 세계 4위고 대외자산도 5백17억달러로 세계 4위다.중국 귀속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교역·금융창구로서의 위치는 오히려 상승세다.반환을 앞두고 한국의 제2금융권,리스회사들을 비롯,외국기업들이 신규진출을 시도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가 단일지역중 홍콩에서 가장 많은 중장기외채를 얻어다 쓰고 있다는 사실과 이같은 비중은 당분간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홍콩총영사관 신호주재무관 설명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95년 중장기외채 1백14억달러 가운데 유럽은 31%인 36억달러,홍콩은 27%로 31억달러였다.삼성·대우 등 국내 대기업이 주로 외국돈을 빌려 쓰는 곳도 역시 이곳이다.국내기업 지역본부 16곳과 3백50여개사가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 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의 장점은 외환거래와 자본의 철저한 자유,회사설립의 자유 등 정부의 최소간섭 등이다.중국정부는 97년7월1일 이후도 이를 지속시킬 것임을 누차 천명해 왔다.홍콩주재 외국기업들도 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홍콩 위치가 최소 4∼5년간은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일본무역진흥회(JETRO) 마사루 이노우에 홍콩지사장은 『7백40개 홍콩상주 일본기업 관계자에 대한 최근 예비조사 결과 85% 이상이 주권반환 이후에도 기업환경과 홍콩의 위치가 변하지 않을 것이란 결과를 얻어냈다』고 밝혔다.JETRO는 지난해 조사에서도 역시 같은 결과를 얻었었다.캐피털 차이나그룹의 하종태회장은 『경제제도는 변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중국과 무역관계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기본법에 따라 홍콩은 재정독립,조세권,별도의 관세지역을 보유하게 된다.지금과 변할게 없다고 중국정부는 누누히 강조한다.그러나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홍콩 최고의 부동산 재벌이며 친중적인 이가성의 장강실업조차 주식 20%를 외국으로 옮겼으며 대표적 재벌 자딘그룹,허치슨그룹,스와이어그룹들도 모회사를 홍콩서 철수시켰거나 철수를 준비중이다.미래에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자는 뜻이다. 마사루 이노우에JETRO소장은 『법과 규칙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홍콩경제에 정실 등 중국특색의 인간적 요소가 개입한다든지 정책적 의지가 반영될 경우 무역과 금융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위치는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홍콩유한공사의 이학인이사도 『중국관리들의 부정부패,경제운영에서의 정실개입이 우려되고 있다』면서 『투명성의 확보·유지가 홍콩경제의 사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홍콩의 경제전망은 희망적이다.삼성홍콩유한공사의 이상경부장은 『아시아에서 홍콩을 대신할 금융·무역중심은 없는 상태』라며 『중국무역의 창구격인 홍콩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란 배경을 업고 당분간 무역과 금융,교통의 중심지로서 자리를 유지할 것이란게 홍콩상주 외국기업 관계자들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본사=이석우 특파원 현지르포〉
  • 언론의 변화(홍콩반환 앞으로 1년:2)

    ◎신문·방송 대부분 신중국 선회/자기검열 통해 비판적 기능 둔화시켜/자유보장 의문 커 젊은 기자 이민 많아 홍콩 거리곳곳엔 「입법의회 해산을 반대한다」,「민주영웅은 영원하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있다.예전엔 경제도시 홍콩에서 정치 이슈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그러나 내년 7월1일 홍콩반환을 눈앞에 두고 중·영간 정치갈등이 노골화되면서 정치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중국은 84년 중·영협정과 90년대초 제정된 「홍콩기본법」에 규정된 민주화일정을 지켜나가겠다는 계획이다.양국 합의없이 지난해 9월 치러진 입법의회를 해산하고 너무 앞서간 법률은 개정,84년 반환협정 수준으로 되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의회해산과 함께 언론의 자유보장에 대한 의문도 커가고 있다.이미 중국은 홍콩언론인을 국가기밀 누설 등을 이유로 간첩 혐의를 걸어 구속한 예들이 있어 언론인의 행동은 벌써부터 위축되고 있다.친영국계인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한 중견간부는 『젊은 기자 사이엔 이민 또는 전직 붐이 일고 있다』고 위축된 분위기를 설명했다.중문대 정치행정과의 옹송연교수는 『대부분 기업인이 소유하고 있는 홍콩언론은 이미 자기 검열을 통해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둔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어신문 가운데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명보는 94년말 경영권이 싱가포르 화교기업인에게 넘어간 뒤 친중적으로 돌아섰고 친대만적이던 동방일보와 성도일보는 각각 중도와 친중적으로 논조가 바뀌었다.반중적이던 연합보는 지난해 12월 폐간됐다.홍콩언론의 친중화 경향은 이미 두드러진 현상이다. 홍콩은 중국어신문 46개,영어일간지 4개 등 신문 64개,공중파 TV 4개 채널,유선방송 20개 채널,라디오 15개 채널,잡지 6백3개 등이 있는 언론천국이다.외신만도 방송 35개소 등 1백29개사가 주재하고 있다.7개 채널을 갖고 있는 홍콩정부소유 RHTK는 특구정부에 귀속되는 방안과 공영체제 유지 방안을 놓고 내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TVB의 기자 곽방씨는 방송의 구조변화가 예상된다고 지적한다. 언론자유의 침해 우려에 대해 특구주비위원이며 유력한 행정장관후보인 로탁싱(라덕승)씨는 『홍콩의 자유스런 정보와 자본 흐름,선진적 시장경제는 언론의 자유를 유지시킬 것』이라고 반박한다.중국정부에 대한 홍콩문제 자문단 일원인 그는 『중국은 홍콩 여론을 면밀하게 관찰,수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영국정부의 로살린 로우헌제사 부국장은 『중국은 아직 이견을 표현하는 홍콩인의 다양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과연 중국이 어느 수준까지 홍콩인의 이견을 표현하도록 허용할 것인지,중국에 반대하는 거리의 슬로건과 플래카드가 남아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홍콩=이석우 특파원〉
  • 신문사 간부 2명 인터뷰

    ◎공보 편집국장 증덕성/“반환뒤 보도자유 지속될것”/등 약속대로 정책·지도자 비판 가능 『언론의 표현 및 보도자유는 지속될 것이다』 중국계 신문 대공보의 증덕성 부사장겸 편집국장(47)은 홍콩언론의 미래를 낙관했다.증부사장은 이달초 홍콩언론 대표들의 북경방문중 이붕총리로부터 「주권반환 후 중앙은 언론자유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음을 상기시켰다. ­반환후 중국비판 보도가 가능한가. ▲등소평의 약속대로 공산당을 비롯,중국의 정책 및 주요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계속할 수 있다.강택민주석이 『97년 이후 홍콩은 49년의 상해와 다를 것이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이는 상해를 공산군이 점령했을 때처럼 홍콩을 중국이 장악하려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홍콩언론의 추측보도에 대해 제한하지 않을 것인가.군사보도에 대해서는 어떤가. ▲자유 남용의 대가는 독자가 판단한다.간섭할 필요도 없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군사문제와 관련,비합법적 수단으로 국가기밀을 누출했을 때는 문제가 될 것이다.중요한 것은 누구를 통해 그 사실을 들었냐는 것이다. ­반환이후 홍콩발전의 최대관건은. ▲경제가 발전관건이다.언론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홍콩이 정치 도시가 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공보는 1904년 설립,중국어신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친중국계 신문이다.증부사장의 형은 친중국정당인 증옥성민주건항연맹의 당수다. ◎홍콩스탠더드지 부국장 정위명/“언론활동 일부 제약 불가피”/대만독립 옹호·군사문제보도 불가능 홍콩의 중도적 영자신문인 홍콩스탠더드지의 편집부국장 정위명씨는 『97년7월 반환 이후 중국측은 과거 영국이 언론을 제약하던 법률 등을 일부 회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중국국무원의 대만·홍콩판공실주임인 노평의 말대로 대만독립을 옹호하거나 군사문제 보도는 이제 어렵게 되는 등 일부 언론활동의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자유·고도자치 약속을 안믿나. ▲고도자치란 완전한 자치를 뜻하지 않는다.홍콩언론은 대상인들에게 소유돼 있어 독립성이 취약하다.광고나 취재원에대한 압력을 통해 언론을 쉽게 통제할 수 있어 언론자유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홍콩언론의 최근 보도성향은. ▲몇년사이 홍콩언론의 보도성향은 상당히 친중국적으로 돌아섰다.중국관련보도,중국정부의 입장을 소개하고 반영하는 면이 상당히 많아졌다.이전에는 대공보와 문회보 정도만이 중국당국의 시각을 반영했었다. ­중국 내부의 변화에 따라 홍콩언론의 자유확대를 예상치 않는가.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다.중국이 전제주의적 국가에서 권위주의적 국가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그러나 홍콩의 미래와 관련,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은 국가의 통일 유지와 당의 권위 유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하겠다.전체적으로 홍콩의 장래는 낙관하고 싶다.
  • 홍콩(중국반환 앞으로 1년:1)

    ◎“예측못할 미래” 낙관·불안 혼재/중국과의 경제통합 가속화… 무역중심지 자부심/주민 대부분 대륙출신… 체제·인권문제엔 회의적 세계적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 홍콩은 여전히 역동적이다.침사초이와 몽콕등 홍콩의 중심가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밤 11시가 넘도록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불안도 함께 증폭되고 있다.내년7월1일로 예정된 중국반환이 1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홍콩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불안이 혼재하고 있다.홍콩의 반환은 단순히 홍콩이라는 영국식민지의 반환을 의미하지 않는다.19세기 제국주의 잔재의 청산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목이라는 세기적 실험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중국은 홍콩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귀속시키며 발전의 기회와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홍콩에는 실업률이 3.5%에 이르고 물가도 6.5%선을 넘어서는등 경제적 우려와 함께 반환후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다.하지만 94년 폭등이후 내리막길이던 부동산값이 올들어 4∼5%가량 오르고 있고 연간 1천만명을 넘어선 여행객과 외국출장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는등 미래에 대한 낙관도 건재하고 있다.신공항 건설사업,지하철 확장,부두 확장,간척사업,대형 건물 신규건설등….대형 토목사업이 제주도의 5분의 3만한 크기에 인구6백30만명의 복잡한 도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 TV채널인 TVB 기자 곽방씨(28·여)는 『지난 84년12월 중·영 공동성명을 통해 반환이 발표된뒤 10여년간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거쳐 비교적 담담한 상태』라고 소개했다.80년대초 부모따라 북경서 이주해온 곽씨는 『달라질 것이 없다.경제 통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지금도 매일 1백여명의 대륙인들이 중·영 합의에 따라 홍콩이주를 계속하고 있다. 부동산 및 건설업,금융등의 업체를 갖고 있는 캐피털 차이나그룹의 매니저 마이클 탕씨(40세)도 『홍콩과 중국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상태』라며 『오히려 홍콩 통합은 무역활동에 도움이 되고 경제발전에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주재 미국상공인회와 일본상공인회도 지난해말 조사결과,경제적으로 장래를 낙관한다는 결과를 얻었으며 이같은 관점은 여전하다고 일본무역진흥회(JETRO) 마사루 이노우에 홍콩소장은 지적한다.이런 낙관론뒤에는 금융과 무역경제지로서의 장래에 대한 자신과 낙관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정부의 유화적 태도와 설득도 친중파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확산시키고 있다.중국지도층은 향후 50년간 자본주의제도를 유지시킬 것이라는 1국 2체제 방침,홍콩은 홍콩인들에 의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할 것이라는 향인향치원칙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그러한 약속을 지킬지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강하다.홍콩인들의 불안은 80년대초 해마다 2만명가량되던 해외이민자수가 87년 3만명으로 늘더니 반환이 임박한 92년엔 6만6천명,93년 6만2천명,95년 4만3천명으로 급증하는 데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떠나간 사람의 절반가량이 고학력 전문직이거나 부유층이란 사실도 홍콩사회에 타격이 되고 있다.대부분의 홍콩인들이 49년 대륙공산화와 함께 광동과 상해에서탈출해왔거나 62·63년 문화대혁명초기에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보면 이들의 불안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지척거리인 광주의 중산현이 고향이라는 택시운전자 황철일씨는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같은 서민들에겐 더이상 갈곳이 없다.오직 잘되길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색은 않지만 대륙에서 살려고 넘어온 사람들』이라면서 『정치개혁을 하지않는 중국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홍콩의 상위계층 6분의1가량이 다른나라 여권과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래에 대한 강한 불안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이들은 캐나다나 호주,영국등에 집이 있고 아이들도 이곳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집 살림」을 하는 예가 대부분이다.홍콩에선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계속 머물러 있지만 언제고 사태가 악화되면 훌훌털고 떠나겠다는 입장이다.경제에 대한 안정된 전망에도 불구,이런 불안은 인권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정치권리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친중계 신문 대공보의 부사장겸 편집국장인 증덕성씨(47)는 『홍콩인 스스로가 홍콩을 관리하게됐으며 서구 식민지를 청산하게 됐다는 민족적 자부심의 회복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 가치관과 국가운영방법의 차이로 인해 두체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감정이 적잖은 것 같다』고 반환을 1년앞둔 홍콩인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홍콩은 중국표준어인 보통화(북경어)로는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중국과는 이질적 요소가 적지않다.홍콩은 국민소득이 중국의 46배인 2만3천달러며 대외교역은 세계8위인 자유무역의 도시다.1백50년동안의 식민지로 영국식으로 길들여져온 홍콩과 홍콩 차이니즈들이 어떻게 1국2체제의 실험속에서 자유와 번영의 꽃을 피울수 있을지….평화적 주권이양과 1국2체제 실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잇단 정치개혁… 중­영 갈등 불씨로/“민주개혁 명분의 중국견제용,친중파 비난 홍콩 구룡역에서 출발하는 심천행 전철은 40분이면 심천 나호세관 입구에 도착한다.나호세관 쪽으로 이어진 10m 남짓한 다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세관건물 벽에 설치된 반환시계가 눈에 띈다.남은 반환일을 일수와 초로 나타내는 이 전자시계는 북경 천안문광장옆 역사기념박물관의 대형 반환시계와 같은 것이다.최근 홍콩에선 신화사,대공보,중국계 기업들이 이 시계의 축소모형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돌리면서 반환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반환이 임박하면서 중국정부의 주권접수 준비도 가속화하고 있다.주해의 특구 주비위(PC)는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8월 전체회의를 다시 열어 추천위(SC)의 구성방법을 최종결정하기로 했다.4백명으로 구성될 추천위는 홍콩특구의 첫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임하고 현행 국회를 해산하는 대신 잠정 입법의회를 선출하는 문제를 결정한다.추천위 구성원의 색깔에 따라 홍콩특구의 모습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신화사 홍콩분사 관계자들은 95년 11월 이후 12차례에 걸쳐 홍콩정청 국장급 이상 관계자들로부터 관련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홍콩경영 준비에 대비하고 있다.그러나 정치분야에서의 중·영대립은 첨예하다.중국은 영국이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다가반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뒤에야 민주개혁이다 직접참여 확대다 법석을 떠는 것은 여론조정과 반대파 육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처사라고 불만이다. 91년 6월 기본권법 제정,92년10월 각급선거에서의 연령 인하(18세 선거권 부여)와 직접참여 확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 등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또 지난해 9월 치러진 입법의회(국회) 선거에 대해선 중국측과 합의되지 못한 사항임을 들어 97년7월 이후 해산을 선언했다.총건설비 2백2억달러 가량이 소요될 첵납콕 신공항건설 등 대형토목사업에 대해서도 중국은 재정을 바닥내고 이익은 영국계회사들이 챙기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다.그럼에도 중국은 반환 시간표대로 홍콩접수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홍콩내 친중파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다. ◎약사 ▲1841.1=영국,1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섬 점령 ▲1842.8=남경조약 체결로 홍콩섬,영국에 영구할양됨 ▲1898.7.9=북경조약에 따라 신계를 영국에 99년간 조차 ▲1941∼45=일본,홍콩점령 ▲1979.3=등소평,홍콩총독과 만나 홍콩반환문제 첫 논의 ▲1979.4=등,97년 홍콩반환후 현체제 유지의사 표명 ▲1983.7=중·영,홍콩반환회담 개시 ▲1984.4=하우 영국외무,97년이후 홍콩통치는 「비현실적」선언 ▲1984.5=등,97년이후 인민해방군의 홍콩주둔방침 천명 ▲1984.12=중·영,홍콩반환협정 조인(영국은 97년7월1일 0시를 기해 홍콩을 반환하고 중국은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체제 유지 약속) ▲1990.4=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홍콩기본법 비준 ▲1992.10=패튼홍콩총독,입법국 직선의원확대등 민주개혁안 발표 ▲1993.7=중,홍콩반환에 대비할 예비운영위원회(PWC)설립 ▲1994.8=중,홍콩기본법에 따르지 않고 구성된 입법국 해체경고 ▲1994.9=홍콩입법국선거서 반중국 민주당 압승 ▲1996.1=중,PWC를 대신할 홍콩특별행정구주비위 발족 ▲1996.3=홍콩정청,홍콩인들에 대한 영국여권 발급 마감
  • 「일의 중국정책 변하고 있다」/마이클 그린·폴 니츠(해외논단)

    ◎일의 중국정책 냉전이후 강경선회/중 팽창정책 경계… 미와 안보위협 강화 등 적극대응/양국관계 악화땐 아태안보 중대위험 초래 가능성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악화로 자칫 아태전역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지역분쟁에 적극개입을 다짐하는등 최근 지역안보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주목적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미국방위분석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선임연구원과 존스 홉킨스대 부설 국제연구소의 폴 니츠교수가 공동집필해 미시사계간 「서바이벌」 여름호에 기고한 「일본의 중국정책이 변하고 있다」를 요약소개한다. 지난 40여년의 냉전기간에 일본의 중국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화적이고 저자세적인 것이었다.그런데 냉전시대가 마감되자 일본의 중국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일본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탈바꿈해 팽창정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가능한 한 중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1960년대 들어 일본은 중국의 최대교역국이었고 72년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다.89년 천안문사태이후 제일 먼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재개한 나라도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변화의 첫번째 기점은 냉전종식이다.최근에 중국이 감행한 일련의 핵실험,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영유권분쟁이 있는 일부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등을 보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예전과 다르다.60년대 중·소분쟁이후 미·일·중국은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정책을 저지하자는 일종의 공감대를 갖게 됐다.그래서 일본은 72년 국교정상화,79년의 평화우호조약체결 때 중국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명백히 소련을 지칭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명문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우선대상을 소련 대신 남북한문제,지역영유권분쟁등 지역문제로 바뀌게 만들었다.미국도 일본에 대해 지역분쟁에 보다 큰 역할을 해주도록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76년에체택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NDPO)이 수정됐다.새 방위계획대강은 냉전이후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일협조관계를 한층 더 강조했다. 일본의 방위담당자들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한반도의 돌발사태였다.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수 및 봉쇄조치를 계획했을 때 일본의 효과적인 지원태세미비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한 미·일공조가 대만해협 긴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중국은 미·일안보동맹의 강화를 자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생각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인 전역미사일체제(TMD)구축에 동참하라고 일본측에 요청한 것이다.일본도 이를 필요하다고 판단했다.92년 북한이 노동1호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자 일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미·일의 합동미사일체제가 중국의 핵억지력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나섰다.일본 역시 무기현대화·핵실험·영토문제등과 관련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드높였다. 일본 국내정치의 판도변화도 영향을 미쳤다.일본정계의 세대교체는 다나카 전 총리 같은 친중국인사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사회당과 일부 언론등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친중국여론층도 일제히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과거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새 세대 정치인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이 정도 선에서 중국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더이상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이다.경제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적지 않다.예를 들어 95년도 일본의 대중국 무역적자액은 1백40억달러에 달했다.적자액이 누적될 경우 자칫 중국이 일본국민감정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사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주일미군의 계속주둔등 미·일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은 물론 집단자위권발동을 추진한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제한적인 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일본은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안보대화를 확대하고 중국이 지지해온 미얀마에도 원조를 재개했다.아울러 금년 3월 이케다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등 러시아를 지렛대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혼자서 중국을 억제하기는 힘겨우니 미국과 러시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일본이 지향하는 바는 다자간안보체제다. 미국·중국,그리고 아세안국가등 모든 이해당사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적절한 완충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 두 나라가 정면충돌해 적대관계로 돌아설 경우 이는 아태국가 모두에게 손실이기 때문이다.〈미 방위분석연 연구원·우드로 윌슨연 교수/정리=이기동 기자〉
  • 이붕 총리/네덜란드 방문 취소/대대만 잠수함 판매 움직임에 항의

    ◎네덜란드 “판매계획 없다” 【홍콩·헤이그 AFP 연합】 중국은 대만에 대한 네덜란드의 잠수함 판매 움직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달 중순으로 예정돼 있던 이붕총리의 네덜란드 공식방문계획을 취소시켰다고 홍콩의 친중국계 일간지 명보가 6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경 소식통들을 인용,네덜란드가 대대만 잠수함판매와 관련해 매우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중국이 불쾌해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19일로 예정된 이총리의 네덜란드 방문계획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총리의 네덜란드방문 취소결정이 얼마전 발생한 헤이그 주재 중국대사관 직원의 망명사건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네덜란드 외무부는 이날 네덜란드가 대만에 잠수함을 판매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 중,대만에 정상회담 제의/양국 긴장완화 조짐

    ◎대만은 “대중 평화협정 검토 용의” 【대북·홍콩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중국과 대만이 대만총통선거후 양측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24일 대만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심국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문회보와의 회견에서 『우리쪽의 문호는 항상 열려있다.양측은 정상회담을 실현시켜야한다』며 이같이 제의했다.그러나 그는 『정상회담의 장애는 대만 당국쪽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만지도자들은 독립기도를 포기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대변인은 『우리가 먼저 양측간 문화·무역 유대 강화를 주장했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대만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전 대만행정원장(총리)은 이날 중국과의 평화협정을 진지하게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이등휘 총통의 측근인 집권 국민당의 고위관계자는 『대만은 중국과 「하나의 중국」문제를 협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류태영 국민당 재정책임자는 대만은「하나의 중국,2개의 대등한 정치실체」라는 구조속에서 중국과 「하나의 중국」문제 해결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등휘 직선총통 당선/대만선거/「국민대표」국민당 1백83석 차지

    【대북=이기동 특파원】 대만 집권 국민당의 이등휘후보가 지난 2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압승,총통 연임에 성공했다. 대만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최종 개표결과 이후보가 53.99%로 1위,20.9%를 기록한 민주진보당의 팽명민후보가 2위,무소속의 임양항후보와 진리안후보는 각각 14.7%와 9.87%의 득표에 그쳤다. 국민당은 또 이날 총통직선과 함께 실시된 3백34석의 국민대회 대표선거에서 과반수를 훨씬 넘는 1백83석을 차지했다. 이번 국민대회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은 99석,친중국계인 신당은 46석을 각각 차지했다. 이로써 이총통은 보다 안정되고 강력한 입장에서 총통선거를 앞두고 일련의 군사훈련으로 대만에 무력위협을 계속해온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에 있는 국민당 중앙당사에서는 이후보가 이날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러닝메이트인 연전 행정원장과 함께 장내에 들어서자 당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두 사람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 총통 당선자는 이날 당사에서 지지자와 보도진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민주주의의 문이 활짝 열렸다』면서 『우리 2천1백만의 대만국민은 대만의 40년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기록하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번 총통선거는 대만정권 수립후 40년만에 처음으로 직접선거로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줄기찬 경고와 무력시위에도 불구,전체유권자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투표에 참가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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