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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한반도… 선택지는 ‘화친’뿐, ‘척화’란 없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한반도… 선택지는 ‘화친’뿐, ‘척화’란 없다

    오늘은 음력 1월 17일이다. 1637년 오늘 청태종은 이런 조서를 보냈다. 엿새 전 조선의 인조가 보낸 상서에 대한 답이었다. “운명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는데도 오히려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헛소리만 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이제 네가 살고자 하느냐. 마땅히 빨리 성에서 나와 항복하라. 아니면 싸우고자 하느냐. 그러면 빨리 나와서 한 번 싸워 보자.” 이 치욕적인 내용 앞에서 인조는 그저 안절부절, 목숨 부지에 골몰했다. “(너희는) 왕왕 우리 군사를 오랑캐 도적이라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나를 잡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느냐.” “양의 바탕에 호랑이 껍질이라는 속담이 참으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더냐.” 청태종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청을 오랑캐라고 욕하고, 정묘조약을 파기하고, 오랑캐 정벌을 공언한 것도 척화파가 장악한 조정이었고 인조였다. 이튿날(음력 1월 18일) 인조는 항복의 뜻을 밝히되 다만 ‘출성 요구를 거두어 달라’고 애걸하는 내용의 국서를 쓰도록 했다. 출성은 곧 포로라고 여긴 인조는 두려웠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국서를 쓰자, 예조판서 김상헌이 찢었고, 최명길은 다시 붙였다. 그 모습을 본 병조판서 이성구는 분노했다. “화의를 배척하여 나랏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대감이 적에게 가시오.” 김상헌은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해 2월(음력 1월)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 남한산성에선 병사와 백성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고 성 밖에선 수십만 백성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조선은 삶은 닭 털 뽑히듯 산 채로 벗겨지고 있었다. 1637년 2월 24일(음력 1월 30일·산성 도피 47일째) 인조가 땅바닥에 엎드려 항복의식을 한 뒤 도성으로 갈 때였다. 포로가 된 1만여 백성이 울부짖었다.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절규를 외면한 채 돌아온 한양 도성은 “시체가 길거리에 이리저리 널려 있”(인조실록 음력 1637년 2월 1일 자)는 거대한 무덤이었다.“경성에 사는 백성이 가장 혹독하게 화를 당해 남아 있는 자라고는 단지 10세 미만의 어린이와 나이 70이 넘은 사람들뿐인데, 대부분 굶주리고 얼어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2월 3일 호조의 보고였다. 한성부는 이렇게 요청했다. “백골(白骨)을 묻어 주는 일이야말로 왕정(王政)의 급선무입니다. 적에게 죽은 도성 백성들이 길가에 버려져 있는데, 참혹해서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남정(男丁)을 징발해서 시체를 매장하게 하소서.” 병자호란의 참화는 미물조차 일찍이 예감했던 것이었다. 2월 인조 비인 인열왕후 상에 조문 사절로 찾아온 청의 사신을 사실상 내쫓고, 오랑캐 토벌을 공식화한 뒤였다. 당시 사헌부 장령 홍익한은 “황제를 참칭한 청의 사신을 참수하고 문서를 불살라 버리라”고 요구하고, 청과의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 등의 목을 베라”고 상소했다. 그 서슬에 마부태와 용골대 등 청 사신은 말을 훔쳐 타고 야반도주했다. 청은 이를 갈았다. “…부평 안산의 돌이 옮겨져 놓이고, 영남과 관서지방에서는 물오리가 서로 싸우고, 대구에서는 황새가 진을 치고, 죽령에서는 두꺼비가 행렬을 지어 나가고, 예안의 강물이 끊어졌다. 능에 벼락이 떨어지고, 서울의 땅이 붉게 변했으며, 하루 스물일곱 곳이 벼락을 맞았고, 큰물이 들이닥쳐 동대문이 막혔다.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별이 변괴를 일으켰다.” 인조는 불안했다. 그래도 ‘전쟁 불사’를 외치던 자존심은 남아, 직급 낮은 역관을 청에 보내 분위기를 탐색했다. 청태종이 그를 통해 보내온 것은 최후통첩. “지금 척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유학자들인데 그들의 붓끝이 어찌 나의 군사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11월 25일(음력)까지 왕자와 대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하지 않으면 조선을 칠 것이다.”청태종은 병자년 11월 말 환구단에 고한 뒤 군사를 이끌고 남진했다. 마부태가 이끄는 선발대가 압록강을 건넌 것은 12월 9일(양력 1637년 1월 4일)이었다. 불과 나흘 뒤 선발대는 한양 초입인 홍제원까지 밀고 내려왔다. 조선 조정은 14일(양력 1637년 1월 9일) 강화도로 피하려다 길이 차단된 걸 알고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도주했다. 산성에 갇혀서도 ‘척화파’는 연일 ‘화친’을 죽이려 했다. 남한산성 도피 5일째였다. “한 사람의 목을 베어 화의를 끊고, 백성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심광길) “그게 누구냐.”(인조) “최명길입니다.” 21일째 인조실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도 김상헌은 화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김상헌을 따르는 사간 이명웅, 교리 윤집, 정언 김중일, 수찬 이상형 등이 상소했다. “최명길의 죄를 다스려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윤집은 “최명길이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속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남한산성의 조정은 독 안에 든 쥐였다. 11일째 겨울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져 병사들이 얼어 죽었다. 왕은 대전 뜰에서 헤픈 눈물을 뿌렸다. “죄를 주려거든 병사들이 아니라 저에게 주십시오.” 17일째였다. 왕의 수라상에 닭다리 하나가 올라왔다. “처음 산성엔 새벽닭 우는 소리가 제법 들렸는데, 요즘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니 이게 마지막인가.” 정약용은 훗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먹을 것도 땔감도 떨어져 곤궁하기 이를 데 없다. 남은 소와 말도 굶주림이 심해 서로 꼬리를 물어뜯어 먹을 지경이었다.” “장수와 군사들이 추위에 얼어붙어 얼굴빛이 푸르고 검어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살갗이 찢어지고 동상에 걸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시 조정은 식량 배급량을 병졸 하루 3홉으로 줄였다. 맥주컵 한 잔 분량이다. 입으로만 결사항전을 하던 대신들에게는 5홉이 배급됐다.35일째 사실상 항복을 결정하고도 청이 요구한 척화 주동자 압송 문제로 조정은 뭉그적거렸다. 40일째 참다못한 병사들이 무장한 채 행궁 앞에서 시위했다. 그래도 주저하자 43일째 대전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던 자들은 등골이 서늘했다. 서둘러 ‘주동자의 자수’를 받았다. 김상헌·정온 등 우두머리는 빠지고 자청한 윤집(36), 오달제(28)가 선택됐다. 47일째(양력 1637년 2월 24일) 인조는 곤룡포를 벗고 신하의 복장인 남색 옷을 입고, 죄인이 드나드는 서문을 빠져나와 삼전도의 수항단으로 향했다. 인조는 훗날 김상헌과 척화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기란 쉽다.” 그러나 오늘의 사서는 그들의 충절을 한결같이 칭송한다. 불과 40여년 전 임진왜란의 참화도 망각하고, 9년 전 정묘호란의 치욕도 잊고, 대책은 없이 대륙의 패자에 대한 정벌을 부르짖다가 사직의 유린을 자초했다. 참극은 예견됐고, 피해자는 백성이었다. 호란 이후 그들은 ‘숭명’(존주대의)과 ‘복수설치’를 이념화했다. 자신의 무능과 죄과를 숨기고 권력을 유지하며, 착취구조를 온존하려는 것이었다. 승객을 죽인 만취운전자의 만용과 무지를 용기요 절의라 칭송할 순 없는 일이다. 통상 2월이면 한반도는 긴장 속으로 빠진다. 2월 말부터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맞섰다. 북미와 남북은 경쟁적으로 비난하며 군사적 대치를 강화했다. 이런 악순환은 불과 2년 전에야 잠복했다. 통일연구원은 그런 한반도 리스크가 올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북핵 문제를 순전히 선거용으로 이용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대선 판세에 따라 어떤 돌출 카드를 내밀지 알 수 없다. 국내에서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척화’의 목소리가 기승을 부린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기대, ‘친북’의 외연을 ‘친중’으로 확대하고 여론을 ‘친미인가, 친중인가’의 택일로 끌고 가려 한다.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곤경에 처한 이웃을 조롱하고 배척하는 부도덕과 파렴치가 놀랍다. 저 참혹했던 ‘겨울 전쟁’의 기억까지 지우는 만용은 더 놀랍다. 경쟁하는 초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우리에게 선택지란 없다. ‘화친’뿐이다. ‘척화’란 없다. 미국과도 중국과도, 북한과도 러시아, 일본과도 화친해야 한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홍콩서 훠궈먹다 가족 9명 신종코로나 감염

    홍콩서 훠궈먹다 가족 9명 신종코로나 감염

    홍콩서 가족들이 함께 훠궈를 먹다 19명 가운데 9명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0일 보도했다. 지난달 19일 저녁 함께 훠궈를 먹은 가족들의 나이대는 22살에서 68살로 조부모, 두 명의 고모와 세 명의 조카들 등이 감염됐다. 홍콩 의료진은 신종코로나 초기 증상이 가벼운 감기와 비슷해서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홍콩 의사 촹슉콴은 SCMP를 통해 “회식을 하지 말고, 만약 필요하다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며 같이 젓가락을 쓰지 말라고 호소했다. 훠궈는 뜨거운 국물에 고기나 야채를 익혀 함께 나눠 먹는 요리로 탕에서 재료를 꺼낼 때 젓가락을 함께 쓰는 경우가 있다. 감염병 전문가인 의사 조셉 탕카이얀은 “홍콩은 마카오처럼 중국과의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감염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훠궈를 나눠먹다 집단감염된 가족들 가운데 일부는 최근 중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조셉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모두 건강에 유의하고 사회적 접촉을 줄이며 개인위생에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카오에서는 신종코로나가 발병한 중국 후베이성을 지난 14일간 방문한 사람들은 증상이 없다는 의료 진단서가 있어야만 입국할 수 있는 국경 정책을 실시 중이다. 현재 홍콩의 신종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36명이며 사망자도 1명 발생했다. 마카오는 확진자 10명, 대만은 18명이다.한편 홍콩에서도 정부가 격리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한 지역의 주민들이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약 12명의 격리시설 설치 반대 주민 시위대를 파란 깃발을 흔들어 해산시켰다. 홍콩인들의 친중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달 초에는 의료인들 9000명이 5일 연속으로 파업에 들어갔는데 이는 홍콩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에 대한 항의로 반정부 시위도 또 다른 양상으로 바꿔놓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 이전 8개월간 이어지던 홍콩 반정부 시위에 홍콩 경찰은 최루가스에 폭력까지 동원하다 2020년 새해 들어서는 시위 진압 전략을 바꿨다. 시위가 시작하면 재빨리 현장으로 뛰어들어 주동자를 체포해서 단숨에 제압하는 방식을 통해 폭력 논란을 최소화한 것이다. 비록 홍콩의 반정부 시위도 신종코로나로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최 측은 거리시위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일부일 뿐이라며 계속 집회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국민 죽어나가는데… “시진핑은 어디에 있나, 물러나라”

    국민 죽어나가는데… “시진핑은 어디에 있나, 물러나라”

    “초기 대응 실패는 언론자유 없기 때문” 中 교수·저명 지식인 이례적 공개 비판 親中 성향 WHO 내부서도 불만 표출중국 내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의 최고 책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CNN 방송도 “시 주석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며 공산당 지도부를 작심하고 질타했다. 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칭화대 법학 교수인 쉬장룬은 최근 해외 웹사이트에 게재한 논문 등을 통해 “신종 코로나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쉬 교수는 신종 코로나 확산 초기에 (의사 리원량 등에게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당국이 이를 억누른 것을 지적하며 “공론장이 열릴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돼 더이상 조기 경보를 울릴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관료의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성과를 낼 역량이 없는 이들만 넘쳐난다”고 일갈했다. 앞서 쉬 교수는 2018년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해 개헌에 나서자 이를 비판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저명 지식인인 쉬즈융도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무역전쟁, 홍콩 시위, 신종 코로나 확산 등 주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시 주석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신(시 주석)은 악당은 아니지만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라면서 “당신에게 물러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쉬즈융은 중국 당국의 탄압을 피해 지난해 말부터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노골적 친중 성향으로 눈총을 받던 세계보건기구(WHO) 내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불만이 감지된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WHO 자문기구인 긴급위원회의 일원인 호주 커튼 대학의 존 매켄지 명예교수는 중국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신속하게 감염사례를 보고하지 않은 점에 대해 “비난받을 행위”라고 언급했다. 매켄지 교수의 발언은 그간 중국의 대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온 WHO의 공식 입장과 매우 다르다고 더타임스는 평했다. CNN은 ‘중국은 시진핑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지휘한다 말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 주석은 최근 며칠간 인민일보 첫 페이지나 중국 중앙(CC)TV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야 함에도 그가 사라진 것을 두고 ‘기이하다’고 표현했다. 주민들의 반감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CNN은 추측했다. 그러자 인민일보는 곧바로 6일 자 1면 톱기사에 시 주석이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만나는 사진을 게재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신종 코로나 특효약 사례금” 청룽, 1억 7000만원 걸었다

    “신종 코로나 특효약 사례금” 청룽, 1억 7000만원 걸었다

    홍콩 출신 영화배우 청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특효약 개발자에게 100만 위안(약 1억 7000만원)의 사례금을 내걸었다. 청룽은 5일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질병과 싸워 이기려면 과학기술의 지지가 필요하다. 조속히 특효약이 나와 병에 걸린 동포들의 생명을 구하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동포들이 병에 걸려 영원히 이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중국인이 드높은 기세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청룽이 2003년 사스 사태 때도 150만 위안을 기부했다”고 소개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는 1000만 위안, 2010년 칭하이성 지진 때도 300만 위안을 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 친중파 연예인인 청룽은 지난해 홍콩 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국기(오성홍기)의 수호자”라며 베이징 당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화제가 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신종 코로나 특효약 사례금” 청룽, 1억 7000만원 걸었다

    “신종 코로나 특효약 사례금” 청룽, 1억 7000만원 걸었다

     홍콩 출신 영화배우 청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특효약 개발자에게 100만 위안(약 1억 7000만원)의 사례금을 내걸었다.  청룽은 5일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질병과 싸워 이기려면 과학기술의 지지가 필요하다. 조속히 특효약이 나와 병에 걸린 동포들의 생명을 구하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동포들이 병에 걸려 영원히 이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중국인이 드높은 기세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청룽이 2003년 사스 사태 때도 150만 위안을 기부했다”고 소개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는 1000만 위안, 2010년 칭하이성 지진 때도 300만 위안을 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 친중파 연예인인 청룽은 지난해 홍콩 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국기(오성홍기)의 수호자”라며 베이징 당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화제가 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성룡 “신종 코로나 특효약 개발하면 1억 7000만원 사례금”

    성룡 “신종 코로나 특효약 개발하면 1억 7000만원 사례금”

    영화배우 성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특효약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100만 위안(약 1억 7000만원)의 사례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성룡은 5일 자신의 웨이보 계정을 통해 “질병과 싸워 이기려면 과학기술의 지지가 필요하다. 조속히 특효약이 연구돼 병에 걸린 동포들의 생명을 구하기 바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동포들이 병에 걸려 영원히 이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중국인이 드높은 기세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가 전역으로 퍼지면서 현재까지 2만 4000여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이 중 492명이 사망한 가운데 아직 뚜렷한 치료약이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성룡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때에도 150만 위안(약 2억 5000만원)을 기부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성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 확산되던 지난달 말에는 10분 간격으로 연예인이 등장해 질병 대응을 응원하는 방식의 릴레이 영상 제작을 주도하고, 관련 노래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관찰자망은 전했다. 성룡은 홍콩 출신이지만 대표적인 친중파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홍콩의 반중 시위 때에는 “나는 국기(오성홍기)의 수호자”라고 강조하는 등 중국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중국 접경 전면 봉쇄하라” 홍콩 의료계 파업 돌입

    “중국 접경 전면 봉쇄하라” 홍콩 의료계 파업 돌입

    홍콩 정부 “본토발 입경인 90%가 홍콩 현지인…본토 내 직장·사업 포기 않는 한 전면봉쇄 불가능”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에서 급속히 확산, 수그러들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홍콩 의료계가 중국과의 접경 지역을 전면 봉쇄할 것을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공공의료 노조는 전날 요구했던 캐리 람 행정장관과의 면담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날부터 파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야우마테이 지역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 폭푸람 지역의 퀸 메리 병원 등 홍콩 곳곳의 공공병원에서는 아침부터 공공의료 노조원들이 출근하는 의사, 간호사 등에게서 파업 동참 서명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공의료 노조는 이날 정오까지 24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파업 참여 규모가 3000여명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중국과의 접경 지역이 전면적으로 봉쇄되지 않으면 신종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해 홍콩 내 의료 시설과 인력마저 부족해질 수 있다”면서 홍콩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이날 파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홍콩 내 공공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공공의료 노조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날 오후 6시까지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4일부터는 파업 참여 인원을 9000여명으로 늘리고 응급실 근무 의료진 등도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정부는 의료계가 총파업을 벌이면 예정된 수술의 절반이 연기되는 등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라며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최근 홍콩 정부는 후베이성 거주자나 최근 14일간 후베이에 머무른 적이 있는 사람의 입경을 불허한 데 이어 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또 중국 본토인 개인 관광객의 홍콩 입경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홍콩을 방문한 중국 본토인 수는 지난주부터 크게 줄고 있다.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중국 본토인의 홍콩 방문이 계속될 경우 신종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며 중국과의 접경을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홍콩 내 후베이인을 본토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홍콩에서는 중국과의 접경 지역을 전면적으로 봉쇄할 것을 주장하면서 사제폭탄을 터뜨리거나 경찰서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전날에도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시와 가까운 로우 전철역 내 차량에서 사제폭탄 2개가 발견됐다. 폭탄 한 개에 불이 붙었지만 곧바로 진화됐고, 다른 한 개는 출동한 경찰이 해제했다. 지난 27일에는 홍콩 충사완 지역에 있는 카리타스 메디컬 센터 내 화장실에서도 사제폭탄이 터졌다.폭발 후 하얀 연기가 치솟고 작은 불이 났으나, 곧바로 진화됐다. 28일에는 선전만 검문소에서 경비원이 쓰레기통에서 사제폭탄을 발견했다. 홍콩대 호팍렁 교수는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접경지역을 전면 봉쇄하는 것만이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친중파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홍콩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규모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의 게리 찬 부주석은 “홍콩인을 제외한 중국 본토인이 홍콩 내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에서 돌아오는 홍콩인도 14일 동안 자가 격리 조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건련은 마스크, 세정제 등을 ‘비축 물자’로 지정해 정부가 판매 수량과 가격, 공급망 등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중국 본토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90%가 홍콩 현지인이라며 이들이 중국 본토 내 직장과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중국과의 접경 지역을 전면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코로나 청정국 포함 20여개국 ‘중국 봉쇄령’

    코로나 청정국 포함 20여개국 ‘중국 봉쇄령’

    타이완·필리핀·북한 中 주변 고립국 빠른 결정미국·호주 등 큰 나라들도 중국발 입국자 금지그리스·뉴질랜드 등 청정국도 사전조치로 동참2차 감염자에 실효성 의문, 경제 타격 우려도애플 등 中서 문닫고 주요국 증시 3000조 증발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 죽는다” 중국 지지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중국인 여행객 제한 권고’는 빼놓았지만 20개 이상의 주요국이 사실상 ‘대중국 봉쇄령’을 선포했다.  필리핀, 타이완 등 방역에 취약한 섬나라들이 시작한 중국인 관광객 입국 금지 조치에 미국, 호주 등 대국이 가세했고 그리스, 뉴질랜드 등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없는 청정국들도 동참하고 있다.  2일 그릭시티타임스에 따르면 그리스는 중국 내 비자센터를 오는 9일까지만 운영하고 폐쇄한다고 여행사들에 알렸다. 뉴질랜드도 이날부터 중국을 떠나거나 경유한 외국인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했고, 러시아는 중국의 무비자 단체 관광을 중단하면서 중국인 취업비자 발급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31일부터 직전 2주간(신종 코로나 최대 잠복기) 중국을 다녀온 외국 국적자의 입국을 잠정 금지했다. 우한이 소재한 중국 후베이성에서 귀국하는 미국 시민은 2주간 의무 격리된다. 이들을 수용하려 최대 1000명이 들어가는 군사시설도 확보했다. 이튿날인 2월 1일 호주 정부도 중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빠르고 강한 조치를 한 곳은 북한이었다. 지난달 22일 중국 여행객 입국을 금지했고, 북한 내 중국인을 특정 장소에서 1개월간 격리해 관찰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사흘 후인 25일 중국인 관광객의 송환을 결정했고, 타이완은 28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송환을 완료했다. 중국 인근 고립 지역들은 방역의 어려움을 감안해 빠른 결단을 내렸다.  외신 보도를 취합하면 이날까지 정부 차원에서 중국인 비자 제한, 중국 항공기 이착륙 금지, 국경 폐쇄 등 강도 높은 대중국 봉쇄 조치를 단행한 국가는 24곳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공항 체온측정 등 낮은 수준의 조치까지 포함하면 62곳이 대중국 제한 조치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각국은 바이러스 유입을 막으며 국내 확진자를 관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지만 이미 2차 감염자가 나온 국가들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경제 악영향도 우려된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20일부터 열흘간 3000조원(2.86%)이 사라졌다. 이케아, 스타벅스, 맥도날드에 이어 애플도 오는 9일까지 중국 매장 42개 전체와 사무실 문을 닫는다고 공지했다.  한편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중국 항공노선 운항을 중단하면)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경제를 죽일 것”이라며 중국을 지지했다. 또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공공병원 임직원 단체인 ‘의관국원공진선’이 3일부터 5일간 파업한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친중 성향인 홍콩 정부에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접경을 전면적으로 봉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신종 코로나, 中 생화학무기 실험실서 유출”… 음모론까지 확산

    “신종 코로나, 中 생화학무기 실험실서 유출”… 음모론까지 확산

    의학지 “첫 감염자 화난시장 방문 안 해” 외신도 우한병독연구소 등 2곳 연루 의혹 “中, 은폐하려 발원지로 화난시장 지정” 연구진 “첫 감염자 타인에게서 전염된 듯” 거론된 2곳도 잘 알려진 곳… 신빙성 부족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가운데 ‘이번 사태의 근원지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생화학 무기 개발 시설에서 유출된 바이러스가 이번 전염병 확산의 ‘주범’이라는 음모론이다. 지난 27일 중국 보건당국이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수산물도매시장을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로 확인한 것과 배치돼 관심을 모은다. 2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우한 진인탄 병원 연구진은 지난 24일 영국의 의학지 ‘랜셋’에 신종 코로나 환자 41명의 임상 특징을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첫 번째 신종 코로나 감염 환자는 화난시장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초 발원지가 화난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즈음 여러 가설이 나왔다. 워싱턴타임스는 24일 신종 코로나가 2015년 1월 설립된 중국과학원 우한병독연구소(WIV)에서 퍼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소에서 빠져나온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을 숙주 삼아 인간에게 감염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이스라엘군 정보관 대니 쇼햄은 “현재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두 곳의 (불법적인) 생화학 실험실을 운영한다. 신종 코로나를 촉발시킨 바이러스도 여기서 유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화교매체 ‘신탕런’은 “중국과학원 우한국가생물안전실험실(NBL)에서 치명적인 세균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 연구소가 신종 코로나와 연관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곳은 2018년 1월 국제사회로부터 최고 등급인 4단계 생물안전체계를 인증받은 ‘P4 실험실’이다. P4 실험실은 사스와 에볼라 등 인류에게 큰 해를 끼친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 있다.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5일 “중국이 우한에 이들 시설을 세울 때부터 전 세계 과학자들은 ‘연구소 밖으로 바이러스가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가 발발해 전 세계로 퍼지자 중국 정부가 이들 연구소의 실수를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화난시장을 진원지로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런 주장은 과거 중국이 각종 사건 사고를 은폐한 의혹과 더해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여과 없이 퍼지고 있다. 다만 이들 매체의 보도는 ‘의혹 제기’ 수준에 불과해 신빙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외신이 지목한 두 연구소(WIV·NBL)는 중국 정부가 2002~2003년 사스 사태를 겪은 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고’ 만든 시설이다. 중국 홍보 영화 등에서 ‘가장 선진적인 연구기관’으로 소개되곤 한다. 정말로 여기서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비밀 연구를 진행했다면 중국 당국이 과연 이곳을 자랑했겠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랜셋 연구진도 첫 확진자가 다른 사람에게서 감염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둘 뿐 연구소 등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현재 인터넷상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친중 성향) 에티오피아 출신이어서 중국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 사태를 잠재우고자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유포했다’는 등 다양한 괴담이 떠돌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하나의 中’ 거부한 프라하, 보란듯 타이베이와 자매결연

    ‘하나의 中’ 거부한 프라하, 보란듯 타이베이와 자매결연

    차이잉원 총통 회동 등 대만 교류 확대 친중 성향 체코 정부는 경제 피해 우려전 세계의 시선이 ‘중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체코의 젊은 시장에게 쏠렸다. 중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대만과의 교류를 늘리고 있어서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즈데네크 흐르지프(39) 프라하 시장은 프라하에서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과 자매결연 협약에 서명했다. 흐르지프 시장은 “민주적 가치와 인권, 문화적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과 자매 결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티베트와 대만의 독립에 반대하는 베이징과의 자매도시 협약을 억지로 지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981년생인 흐르지프 시장은 프라하대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2005년 교환학생으로 대만에서 공부했다. 이후 의사 등으로 활동하다 2012년 환자의 권리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고 2013년 해적당에 가입하며 사회 참여를 본격화했다. 해적당은 카피레프트(저작권 공유)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등을 주장하는 좌파 정당이다. 그는 2014년 프라하 시의회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2018년 재도전해 당선됐다. 이때 해적당은 시의회 65석 가운데 13석을 얻어 2위를 차지했는데, 3·4위 당과 연합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시장 자리를 가져왔다. 그해 말 체코 주재 외교관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중국대사가 “대만 대표를 추방해 달라”고 요청하자 흐르지프 시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해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해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을 만났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를 프라하에 초청했다. 지난해 말에는 자유, 민주주의, 관용 등 가치를 지키자는 취지로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등과 ‘자유도시 조약’을 맺기도 했다. 그의 돌발행동에 친중 성향의 체코 정부는 난감한 처지다. ‘차이나 머니’를 활용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다. 지난해 중국은 흐르지프 시장에 대한 항의 표시로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중국 순회경연을 취소했다. 최근에는 체코산 항공기 구매 취소도 검토 중이다. 14일 체코 현지매체 블레스크는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중국의 행보에 실망해 오는 4월 베이징에서 중국과 중·동유럽 국가 정상이 만나는 ‘17+1’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경제보다 주권 택한 대만… 차이 총통, 역대 최다표로 재선 성공

    경제보다 주권 택한 대만… 차이 총통, 역대 최다표로 재선 성공

    투표율 74.9%… 817만표 얻어 지지율 57% 젊은층 지지·홍콩 시위 사태가 승리 요인 총선도 동시 실시… 與 민진당 과반 유지 차이 “결코 中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 中 “대만의 독립·분열 시도 결연히 반대”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 11일 치러진 제15대 중화민국 총통(한국의 대통령 격)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은 지난해부터 거세진 중국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수용 요구와 홍콩 시위 사태 격화로 반중 정서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다수의 대만 유권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반발로 반중 성향의 차이 총통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보다는 주권’이라는 논리가 공감대를 얻었다는 것이다. 12일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 총통은 817만 231표(57.1%)를 얻어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552만 2119표·38.6%) 가오슝 시장을 264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3위인 친민당 쑹추위 후보는 60만 8590표(4.3%)를 모았다. 차이 총통은 1996년 대만에서 총통 직선제가 도입된 뒤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지지율도 4년 전 총통 선거 때 얻은 56.1%보다 더 높아졌다. 한 시장은 막판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가오슝에서도 패하는 등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유권자 1931만명 가운데 1446만명이 투표해 74.9%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역대 최저였던 2016년 대선 때의 66.3%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그간 투표에 소극적이던 젊은층이 차이 총통을 지지하고자 대거 투표장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차이 총통은 11일 밤 타이베이 민진당 중앙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결코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더욱 큰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대만을 대등한 상대로 여기고 평화적으로 대한다면 양안 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여당인 민진당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무난히 과반 의석을 유지했다. 민진당은 전체 113석(지역구 79석, 비례대표 34석) 가운데 61석을 차지해 국민당(38석)을 압도했다. 역대 최다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차이 총통은 민진당의 총선 승리에 힘입어 두 번째 임기(2020~2024)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차이 총통은 1956년 타이베이의 부유한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만대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각각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으로 돌아와 국립정치대 등에서 법학 교수로 일했다. 1988년 대만 총통이 된 국민당 리덩후이는 임기 말 중국 본토와 대만이 별개의 나라임을 정립하는 ‘양국론’ 개념을 준비했는데, 당시 이 계획을 책임진 것이 당시 교수였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00년 총통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가 당선된 뒤 양안 관계 최고 책임자로 발탁돼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천수이볜이 부패 추문 등으로 2008년 선거에서 국민당에 정권을 내주자 차이 총통은 해체 직전의 민진당을 맡아 당의 재건에 앞장섰다. 2012년 대선에서 최초의 여성 후보로 출마했지만 패배를 맛봤다. 당 주석직을 내려놓고 ‘야인’이 됐다가 2014년 90%가 넘는 당원들의 지지로 당 주석에 복귀한 뒤 2016년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 후보를 꺾고 첫 여성 총통에 올랐다. 집권 1기 차이 총통은 당선 직후부터 중국과의 갈등과 정치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만은 전 세계에서 중국 본토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 이 때문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과 차이 총통에게는 ‘비현실적’, ‘급진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최근까지도 대만의 주된 정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가장 뒤처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2018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국민당에 참패했다. 차이 총통은 첫 임기만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군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차이 총통의 이미지가 재조명된 것이다. 특히 같은 해 6월 시작된 홍콩 시위 사태가 대선 판세를 가르는 결정타가 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친중 성향의 한 시장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홍콩 사태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던 8월부터 지지율 1위에 오르며 이변을 연출했다. ‘중국의 지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으니 주권만큼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마샤오광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이날 대만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만 정책은 명확하다. 평화통일과 일국양제 기본 방침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면서 “어떠한 형식의 대만 독립과 분열 시도에 대해서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 당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만독립 성향 차이잉원 총통 재선 성공

    대만독립 성향 차이잉원 총통 재선 성공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11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막바지 개표 작업이 진행 중인 이날 오후 8시 54분(현지시간) 현재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 총통이 801만5014표를 얻어 539만6602표를 얻은 친중국 성향의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261만여표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은 지지자들에게 “차이잉원 총통에게 방금 당선 축하 전화를 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올해 대만 대선은 작년부터 거세진 중국의 일국양제 수용 압박과 홍콩 시위의 영향으로 대만에서도 반중 정서가 크게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최근 치러진 홍콩의 지방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데 이어 대만 유권자들까지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의 재선을 선택함에 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中, 홍콩책임자 시진핑 최측근으로 교체… 대응 전략 바뀌나

    中, 홍콩책임자 시진핑 최측근으로 교체… 대응 전략 바뀌나

    “추진력 강한 뤄후이닝, 소방수로 투입” 일각 “실질 총괄 람 행정장관은 면죄부”중국이 홍콩 반정부 시위 사태의 책임을 물어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주임을 전격 경질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6월 홍콩에서 반정부·반중 시위가 시작된 이후 중국 정부의 홍콩 업무를 다루는 고위급 관리를 교체한 것은 처음이다. 5일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국무원은 지난 4일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왕즈민(王志民) 주임을 뤄후이닝(駱惠寧·65) 전 산시(山西)성 당서기로 교체했다. 국무원은 이번 인사 교체의 배경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에 주재하는 중국 정부의 최고 책임자를 바꾼 것이어서 사실상 홍콩 시위 사태를 진압하지 못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해석된다. 뤄 주임은 2016년 6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산시성 당서기를 맡아 시진핑 국가주석을 당중앙의 ‘핵심’으로 옹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 작업을 펼치며 ‘시진핑 1인 체제’ 강화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따라서 시진핑 지도부가 올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홍콩 시위 문제 해결을 위해 충성심이 강하고 추진력이 뛰어난 뤄 주임을 ‘소방수’로 긴급 투입한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일반적 견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뤄 주임은 불과 1주일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재정금융경제위원회 부주임으로 임명됐다”며 “따라서 그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주임으로 임명된 것은 의외의 일”이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친중파가 참패하자 왕 주임의 경질설이 돌았다. 당시 중국 정부가 왕 주임에게 시위 발생 후 초기 진압에 실패한 책임을 물을 거란 관측도 나왔다. 통상적으로 베이징과 홍콩 사이의 연락은 홍콩에 있는 중국 정부 연락판공실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지난해 홍콩 시위 조기 진압에 실패한 데다 홍콩 구의원 선거마저 친중파가 참패하는 바람에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에 대한 문책론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홍콩 문제를 총괄하는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인 한정(韓正) 국무원 부총리와 캐리 람 홍콩 특구 행정장관은 면죄부를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남중국해는 중국 앞 바다가 아니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남중국해는 중국 앞 바다가 아니다”

    청(淸)나라 북양함대 창립일인 지난달 17일. 중국 첫 자국산 항공모함인 ‘산둥(山東)함’이 남부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의 군항에서 취역식을 갖고 인민해방군 해군에 인도됐다. 이날 행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부대원과 항모 건설 인원 등 5000여명이 항구에 도열한 채 축제의 분위기 속에 열렸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힘차게 게양되고 국가인 의용군(義勇軍)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 주석은 직접 산둥함에 올려 의장대를 사열하고 각종 장비와 함재기 조종사의 상황도 둘러본 뒤 항해 일지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당과 인민을 위해 새로운 공을 세웠다”고 항모부대 장병과 항모 건설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인도식에는 딩쉐샹(丁薛祥) 당중앙판공청 주임, 류허(劉鶴) 부총리,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 등이 참석해 행사의 무게감을 더했다. 2012년 취역한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은 옛소련 미완성 항모 바리야그를 사들여 개조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중국 국내 기술로 완성한 첫 ‘메이드 인 차이나’ 항모가 바로 산둥함이다. 랴오닝함보다 전투능력과 구조, 적재량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평가받지만 연료 탑재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기 탑재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래식 디젤엔진으로 가동되는만큼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모보다 작전 거리도 훨씬 짧을 수밖에 없다. 최대 속도가 31노트로 랴오닝함의 32노트에 비해서도 다소 느린 산둥함은 길이 315m에 만재배수량(배에 물건을 가득 채웠을 때 배 무게 때문에 밀려나는 물의 양)이 7만t급인 구형 중형 항모이다. 중국이 러시아의 수호이(SU)-33을 복제해 개발한 중국산 함재기 젠(殲·J)-15를 36대 실을 수 있다. 젠-15의 수를 줄이고 대잠수함 능력을 갖춘 최신예 Z-18 헬기 등을 적재하면 44대까지 실을 수 있는 까닭에 랴오닝함에 비해 공격력이 앞선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협객도(俠客島)는 “산둥함이 이끄는 항모 전단은 남중국해에 투입돼 외국 군함과 직접 맞서게 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공중과 해상을 지배하게 도울 것”이라고 야심찬 청사진을 내보였다.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남아 국가들이 들끓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군사기지 건설하고 항모 배치를 서두르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석유와 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는 데다 해상 물동량이 연간 5조 달러(약 5775조원)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해상 에너지 수송로인 까닭에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들이 자원 영유권과 어업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하는 해역이다. 동남아 국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 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가 참가한 가운데 중국 해군이 두 번째 항모이자 첫 독자 기술로 건조한 산둥함을 하이난성 싼야의 해군기지에 인도하는 성대한 행사를 열면서 촉발됐다. 산둥함이 남중국해 앞의 싼야에 배치되면서 앞으로 남중국해와 대만 해역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南沙群島,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의 피어리크로스 암초(永暑礁) 등 7곳을 인공섬으로 조성해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계속 설치함으로써 남중국해를 중국의 군사기지화한다는 주변국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산둥함이 남중국해에 배치할 것이라는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반중(反中) 분위기를 부채질한 것이다.이에 따라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구단선’ 주장에 대해 “남중국해 전체가 중국에 속한다는 중국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구단선’(九段線)은 중국이 1940∼1950년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으로, 중국은 이를 근거로 남중국해 수역의 90%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사이푸딘 장관은 최근 유엔에 제출한 남중국해 관련 제안서를 옹호하면서 “누군가 우리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레이는 남중국해에 접한 자국 해안에서 200해리 수역을 넘는 대륙붕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SC)에 낸 바 있다. 말레이가 이 지역에 존재하는 해저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 제안서는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말레이와 같은 연안 국가들은 대륙붕 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200해리를 초과하더라도 지형이나 지질 등이 충족되면 대륙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말레이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침해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유엔이 말레이의 주장을 검토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발간한 국방백서를 통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를 비판했다. 베트남 국방부는 남중국해의 중국군 동향을 거론하고 “우리는 우리의 독립, 주권, 영토 및 정치 체제를 해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제법 위반’, ‘일방 행동’, ‘베트남 주권 및 관할권 침해’ 등 사용 가능한 외교적 용어를 활용해 베트남 입장을 분명히 표현했다. 베트남은 지난 7월 이후 연이은 중국 석유탐사선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활동에 강력히 항의하며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도 되받아쳤다. 중국군은 남중국해에서의 ‘돌발적 대치 상황’을 대비한 공세적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해군 항공대는 10종 이상의 적 무선신호를 식별하는 정찰 훈련을 벌였다. 기존 방어 개념에서 예방적 개념으로 전환된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친중국정책’을 펴는 필리핀도 해안 경비대를 대폭 강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올해 4000명, 내년에 6000명을 증강하는 등 2025년까지 해안경비대 2만 5000명을 증강해 갈수록 남중국해에서 위협적인 중국 해안경비대와 어선들에 맞선다는 방침이다.동남아 국가들이 남중국해를 싸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는 2021년 타결 시한이 다가오는 ‘남중국해 행동준칙(COC)’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아세안(ASEAN)은 2002년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선언(DOC)’을 채택하고, 구속력 있는 이행 방안을 담은 행동준칙을 2021년까지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콜린 코 싱가포르 난양(南洋)이공대 교수는 “남중국해 주변국들이 최근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2021년 COC 타결을 위한 협상에서 발언권을 키우고,COC 타결 전에 최대한 남중국해 내 지분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COC는 DOC의 구속력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미국도 가세해 동남아 국가들을 측면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남중국해 COC 타결을 앞두고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강화하며 영유권 분쟁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남중국해 군사시설을 세우고 비행 훈련 등을 하며 이 해역을 실효지배 전략을 펴는 중국에 맞서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이곳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는 얘기다. 콜린 코 교수는 “미국은 설사 COC가 타결되더라도 ‘항행의 자유’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남중국해 주변국들에 상기시키기 위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계속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홍콩경찰, 기자신분증 고의 노출 의혹… 언론단체 항의

    홍콩경찰, 기자신분증 고의 노출 의혹… 언론단체 항의

    홍콩 경찰이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는 현지 기자들의 신분증을 일부러 대중에 노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홍콩기자협회와 홍콩카메라기자협회는 이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7일 보도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6일 오후 시위를 취재하던 홍콩매체 스탠드뉴스의 론손 찬 등의 신분증을 의도적으로 생중계되는 카메라에 약 40초간 노출시켰다. 시내 쇼핑몰의 시위 현장을 촬영하던 그에게 경찰이 다가가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 경찰이 찬을 검문하는 동안 다른 경찰은 카메라 가까이 그의 이름과 생년월일, 신분증 번호가 분명하게 보이는 신분증을 노출했다.이 신분증은 당시 온라인에서만 약 1만명이 본 것으로 전해진다. 찬은 앞서 홍콩 시위를 취재하며 경찰의 시위 진압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단체는 이같은 경찰의 행동이 “신상털기나 다름없다” 주장했다. 개인정보를 노출시켜 친중국파 시민들의 표적으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의미다. 그동안 홍콩에서는 시위 취재 기자들이 경찰에 체포·연행되는 등 언론통제 비판이 일었다. 피해를 입은 찬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이번 사건을 시 관련 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홍콩은 민주화 시위가 격화된 이후 관련 기업이나 단체, 유명인사들이 시위에 대한 찬반 입장에 따라 여론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월 홍콩 최대항공사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존 슬로사 회장은 직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동참한 뒤 파문이 확산되자 사임하기도 했다.한편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부터 사흘 동안 있었던 이번 시위에서는 310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SCMP가 보도했다. 홍콩 민주화운동 시위대는 사흘 동안 침사추이의 하버시티, 코즈웨이베이의 타임스 스퀘어 등 도심 주요 쇼핑몰에서 시위를 벌였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장쩌민·후진타오 前주석도 리카싱 중시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앞두고 리카싱, 시의 친중 후보 지원 요청 거부 올 홍콩 시위 땐 자제 요구로 눈엣가시 1993년 1월 뺨이 통통하고 머리숱이 많은 39세의 중국공산당 간부가 홍콩을 찾아갔다. ‘아시아의 상신(商神)’으로 불리던 리카싱에게 중국 남동부 푸저우시에 투자해 줄 것을 읍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여파로 경제가 극도로 부진했다. 리카싱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해 8월 푸저우를 방문했다. 마을 곳곳에 리카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는 푸저우의 발전과 자신의 출세가 보장됐다고 느낀 듯 환히 웃으며 리카싱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묘사한 시 주석과 리카싱의 특별한 인연이다. 시 주석에게 있어서 리카싱은 지금의 권좌에 오르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은인’이지만 홍콩 시위 사태가 7개월째 이어지면서 둘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이제 시 주석은 91살의 리카싱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가 홍콩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베이징의 비난을 경청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25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1939년 일제가 이 지역을 침략하자 이듬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피신했다.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고자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50년 전 재산을 투자해 자신의 회사를 차려 초고속 성장을 거뒀다. 최근 알리바바 설립자 마윈과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년간 ‘아시아 최대 부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덩샤오핑(1904~1997)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중국 투자를 단행해 ‘모범 기업인’으로 칭송받았다. 장쩌민·후진타오 전주석도 리카싱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시 주석이 국가 전면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당시 부주석이던 그가 리카싱에게 렁춘잉 후보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리카싱이 이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리카싱은 시 주석이 집권한 뒤로 중국 투자 비중을 크게 줄였다. 이에 중국 정부는 보란듯 지난해 발표한 ‘중국 개혁개방에 공을 세운 100인’에서 리카싱을 제외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그를 ‘기득권자의 전형’으로 비난하며 조리돌림하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공산당은 홍콩 기업인들이 시위 사태에 적극적으로 맞서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공평하게 양측(시위대·홍콩정부)의 자제를 요구하는 데 그쳐 중국 당국을 화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 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 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푸저우시 간부때 리카싱에게 투자 부탁 시, 권좌 오를 때까지 크고 작은 도움받아 장쩌민·후진타오 前주석도 리카싱 중시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앞두고 리카싱, 시의 친중 후보 지원 요청 거부 올 홍콩 시위 땐 자제 요구로 눈엣가시1993년 1월 뺨이 통통하고 머리숱이 많은 39세의 중국공산당 간부가 홍콩을 찾아갔다. ‘아시아의 상신(商神)’으로 불리던 리카싱에게 중국 남동부 푸저우시에 투자해 줄 것을 읍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여파로 경제가 극도로 부진했다. 리카싱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해 8월 푸저우를 방문했다. 마을 곳곳에 리카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는 푸저우의 발전과 자신의 출세가 보장됐다고 느낀 듯 환히 웃으며 리카싱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묘사한 시 주석과 리카싱의 특별한 인연이다. 시 주석에게 있어서 리카싱은 지금의 권좌에 오르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은인’이지만 홍콩 시위 사태가 7개월째 이어지면서 둘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이제 시 주석은 91살의 리카싱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가 홍콩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베이징의 비난을 경청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25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1939년 일제가 이 지역을 침략하자 이듬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피신했다.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고자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50년 전 재산을 투자해 자신의 회사를 차려 초고속 성장을 거뒀다. 최근 알리바바 설립자 마윈과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년간 ‘아시아 최대 부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덩샤오핑(1904~1997)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중국 투자를 단행해 ‘모범 기업인’으로 칭송받았다. 장쩌민·후진타오 주석도 리카싱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시 주석이 국가 전면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당시 부주석이던 그가 리카싱에게 렁춘잉 후보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리카싱이 이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리카싱은 시 주석이 집권한 뒤로 중국 투자 비중을 크게 줄였다. 이에 중국 정부는 보란듯 지난해 발표한 ‘중국 개혁개방에 공을 세운 100인’에서 리카싱을 제외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그를 ‘기득권자의 전형’으로 비난하며 조리돌림하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공산당은 홍콩 기업인들이 시위 사태에 적극적으로 맞서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공평하게 양측(시위대·홍콩정부)의 자제를 요구하는 데 그쳐 중국 당국을 화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홍콩 혼란의 도화선이 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이 자산 압류 수단으로 활용되면 리카싱도 시진핑의 반부패운동 명분하에 본토 자산을 몰수당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마카오 보듬고 홍콩 때리는 시진핑 “외부세력 개입 안된다”

    마카오 보듬고 홍콩 때리는 시진핑 “외부세력 개입 안된다”

    마카오 간 시 주석, 일국양제 실천 찬사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도 해당행사 참석카지노로 소득 높아진 마카오, 사정 달라신임 마카오 행정장관, 시 주석에 선서도홍콩은 반중정서로 신년 불꽃놀이 취소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외부세력의 홍콩 및 마카오 개입에 대해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두 지역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마카오가 모범생으로 칭찬을 받는다면, 홍콩은 문제아 취급을 받는 식이다. 시 주석은 20일 마카오 반환 2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해 “홍콩과 마카오 특구의 일은 완전히 중국 내정으로 어떤 외부세력도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다”며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과 마카오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정부와 인민은 국가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을 수호할 의지가 반석처럼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어 마카오가 20년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성공적으로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국’이 ‘양제’의 전제이자 기초”라면서 “특별행정구의 행정·입법·사법 기관은 중앙의 특구에 대한 전면 통치권과 특구의 고도 자치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일국’의 원칙을 지키며 중앙 권력과 기본법의 권위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이 마카오를 치켜세우며 외부세력 개입을 경고한 것은 대정부 시위가 지속되는 홍콩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힌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홍콩은 마카오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마카오 정부는 시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오는 22일 밤 초대형 불꽃놀이를 준비했지만 홍콩은 극심한 반중 정서로 신년 불꽃놀이도 취소했다.경제적으로 마카오는 중국 정부의 카지노 허용으로 급성장하면서 홍콩의 절반도 안 되던 소득이 지금은 홍콩의 2배 가까이로 올랐다. 가파른 소득 성장에 홍콩과 같이 중국에 항명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다. 홍콩 시민들이 높은 집값과 생활비로 고통을 받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마카오의 친중 정서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날 호얏셍 신임 마카오 행정장관은 시진핑 주석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마카오의 관리들도 함께 했는데 사실상의 충성 맹세로 읽힌다. 호얏셍 장관은 일국양제 방침을 전면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 주석이 외부세력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에 대해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의회는 홍콩 시위와 신장 자치구 내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놓고 중국을 압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티베트의 종교적 자유와 인권 확대를 지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지속적으로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중국 정서’ 너무 다른 홍콩-마카오, 왜?

    ‘중국 정서’ 너무 다른 홍콩-마카오, 왜?

    반환 20주년 방문 시진핑 “자랑스러워” 위안화 거래센터 등 금융허브 육성할 듯 마카오, 반환 전부터 친중 영향력 인정 中 카지노 허용에 GDP 10배 성장도중국이 20일로 반환 20주년을 맞는 마카오 선전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실천의 모범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6개월 넘게 이어진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문하는 홍콩과 180도 다른 태도다. 홍콩과 마카오는 각각 1997년과 1999년 중국에 반환돼 50년간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일국양제가 적용되고 있다. 나란히 서방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거리도 불과 65㎞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정서’가 이토록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날 마카오를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카오가 반환 이후 20년간 거둔 성과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일 교체되는 추이스안 마카오 행정장관에게도 “마카오가 그간 일국양제 방침을 정확히 따르고 헌법과 기본법에 근거해 사무를 처리했다”고 칭찬했다. 지난 16일 베이징에서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국양제에 기반해 법에 따른 통치를 했다”고 다소 무겁게 언급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일국양제 ‘모범생’ 마카오를 칭찬하면서 내심 ‘문제아’ 홍콩을 질책한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글로벌타임스는 “시 주석이 금융 부문을 강화하고자 마카오에 유리한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밝힌 대로 마카오에 역외 증권시장과 위안화 거래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의 금융 허브 육성 계획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접한 홍콩에서 6개월 넘게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에 휩쓸리지 않은 데 대한 보상이라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카오 정부는 중국 반환 20주년과 시 주석 방문을 기념해 오는 22일 밤 초대형 불꽃놀이를 준비했다. 홍콩 정부가 극심한 반중 정서를 감안해 신년 불꽃놀이를 취소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서로 역사적 배경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1967년 홍콩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폭동을 일으키자 홍콩 정부는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을 발동해 이들을 일망타진했다. 이때부터 홍콩과 중국 정부는 서로를 적대시했다. 반면 마카오 정부는 같은 해 벌어진 공산주의 시위 진압에 실패했다. 포르투갈은 중국과의 합의를 통해 공산주의·친중 단체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사태를 봉합했다. 반환 이전부터 마카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마카오는 중국 반환 이후 정부가 카지노를 허용하면서 급성장했다. 1999년 마카오의 국내총생산(GDP)은 61억 달러(약 7조원)였으나 지난해에는 55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커졌다. 같은 기간 1인당 GDP도 1999년 1만 5000달러에서 지난해 8만 1500달러로 치솟았다. 반환 당시만 해도 홍콩인의 절반도 안 되던 소득이 이제 홍콩을 두 배 가까이 앞선다.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준 중국에 항명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광장] 美中 디커플 시대, 대한민국 생존법/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美中 디커플 시대, 대한민국 생존법/오일만 논설위원

    미중 무역전쟁이 21개월 만에 1단계 합의라는 이름으로 봉합됐다. 서로 승리를 말하지만 현재로선 의미가 없다. 이번 합의는 장기전을 향한 탐색전이자 전초전에 불과하다. 미중은 현재 구조적 갈등을 넘어 패권전쟁의 단계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지속됐던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가 막을 내리고 오로지 ‘죽여야 사는’ 제로섬 게임에 접어든 것이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향후 미중 협상은 해법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혼(decouple) 수속을 밟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40년 동안 대중 포용정책에 지지를 보냈던 미 학계와 친중 노선의 핵심이었던 비즈니스 그룹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승인했던 워싱턴 주류들도 이제 윈윈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대중 압박정책이 지속될 것이란 의미다.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 기류가 감지됐다. 학계를 중심으로 중국 위협론이 퍼져나갔다.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오래전부터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추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위협론은 대다수 미국인에게 하나의 상식이 됐다.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은 내공이 있다. 먼저 잠재적 도전국을 면밀히 살핀다. 그 기준은 대략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0% 수준이다. 1970~80년대 욱일승천하던 일본에 일격을 가한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이 그랬다. 미국 내에서 먼저 재팬 배싱(일본 때리기)이 광풍처럼 번졌고 일부 전문가들은 ‘제2차 태평양전쟁’ 가능성까지 운운했다. 1989년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2018년 기준 일본의 GDP는 4조 9709억달러로 미국(20조 4941억 달러)의 24%로 떨어졌다. 소련의 경우 1980년대 초반 미 GDP의 40%까지 쫓아왔지만, 결국 1989년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 이런 미국도 실수(?)를 했다. 중국이 미국 GDP 40% 근처에 도달한 시점은 대략 2008년 금융위기 전후였다. 경제살리기에 바쁜 미국이 한눈파는 사이 중국 경제는 2010년 G2로 우뚝 섰다. 2018년 중국의 명목GDP는 미국의 66%에 달했다. 실질구매력으로 따지면 수년 내 제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3월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배경이다. 2011년 미국이 아시아 회귀전략(대중 포위전략)을 선언한 이유다.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은 현 상황을 ‘냉전 2.0’이라고 명명했다. 5G시대도 미중 사이에 전면전을 예고하는 변수다. 승자독식인 기술전쟁의 속성상 한 번 뒤처지면 만회가 어렵다. 미국이 총력전을 통해 ‘화웨이 죽이기’에 나서는 이유다. 문제는 무역전쟁이 체제·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비화될 것이란 예측이다. 미 국방부는 이미 중국을 주적으로 삼았고 미 의회는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으로 명시했다. 이념이 개입되면 싸움의 스케일은 커진다. 국가 존망이 걸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 역사가 많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센카쿠, 남중국해, 대만 해협 등을 둘러싸고 벌써 화약냄새를 풍기며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 미중 패권전쟁은 갈등과 봉합이 반복되는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현재로선 경험이 풍부한 미국이 우세하지만 중국도 반전을 노리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을 통해 ‘상상하기도 힘든 위험’(難以想象的驚濤駭浪)이라고 했다.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전략 속에 다양한 지구전에 착수했다. 공산당 체제 강화를 통해 내부 단속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희토류 등의 광물자원 무기화와 기술 자주화 등을 통해 미국의 분리정책에 대응할 것이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 미중 패권전쟁까지 겹쳤다. 우리로선 아찔한 상황이다. 한국전쟁 이후 초유의 사태가 분명하다. 과거의 사고틀은 모두 버려야 한다. 미중 모두에게 ‘명확하고 단호하게’ 할 말을 해야 한다. 어설픈 모호성은 미중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방기될 위험성이 크다. 고정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판단에 정착하지 않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이 센터장의 지적대로 ‘생각의 노마드화’(Nomadization of thinking)’가 절실한 시기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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