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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EFA챔피언스리그] 스타군단 마드리드, 모나코에 1-3 역전패 4강 좌절

    ‘모리엔테스,친정팀에 복수하다.’ 지난달 25일 스페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AS모나코(프랑스)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마드리드는 전반 42분 모나코의 세바스티앙 스킬라치에게 먼저 일격을 당했지만,후반 지네딘 지단(1골 1어시스트) 루이스 피구(2골) 호나우두의 연속골로 전세를 뒤집었다.승리감에 도취한 마드리드의 홈팬들은 모나코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후반 38분 강력한 헤딩슛을 뽑아내자 오히려 박수갈채를 보냈다. ‘반지의 제왕’ 라울 곤살레스와 함께 스페인 국가대표 투톱으로 뛰는 모리엔테스는 올시즌 마드리드가 모나코에 임대한 선수.세계적인 스타들의 총집합으로 뛸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6개월여 만에 친정에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아낌없는 환호가 쏟아졌다.그러나 그의 골이 이변의 씨앗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AS모나코는 7일 홈구장 루이Ⅱ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8강 2차전에서 루도비치 지울리(2골)와 모리엔테스의 연속골로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3-1로 격침하고 4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프리메라리가 FA컵인 스페인국왕배(코파 델레이) 결승에서도 레알 사라고사에 일격을 당한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도 좌절돼,초호화군단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원정경기에서 2-4로 패한 모나코는 종합전적 1승1패에 골득실(0-0)도 동률을 이뤘지만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1·2차전 연속골로 친정팀을 울린 모리엔테스는 이번 대회 7골을 기록,득점 단독선두로 뛰어올랐다.‘외계인’ 콜리나가 주심을 본 이날 경기에서 선제골은 마드리드 몫이었다.마드리드는 전반 35분 라울이 왼발슛,4강 샴페인을 터뜨릴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모나코는 전반 인저리 타임에 마드리드 수비수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몸에 맞고 흐르는 공을 루도비치 지울리가 20m짜리 발리슛으로 연결,동점을 만들었다.이어 후반 3분 모리엔테스가 파트리스 에브라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정확하게 머리로 받아 넣어 친정팀의 골문에 역전의 비수를 꽂았다. 공세를 늦추지 않은 모나코는 8분뒤 우고 이바라의 센터링을 지울리가 쐐기골로 연결,결국 ‘대어’를 낚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프타임] 모비스 사령탑에 유재학씨 내정

    03∼04프로농구에서 전자랜드를 창단 첫 4강으로 이끈 유재학(41) 감독이 친정팀인 모비스의 새 사령탑으로 내정됐다. 모비스는 30일 “전자랜드가 계약만료 확인서를 발급하는 대로 3년간 역대 최고 연봉인 2억 3000만원(총액 6억 9000만원)에 정식으로 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모비스는 지난해 12월3일 최희암(49) 전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장일 감독 대행체제로 시즌을 운영했다.
  • “中·日 달리는데 한국은 터널속에”

    “중국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일본은 긴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는데,한국은 컴컴한 터널로 들어서고 있다.기업에 투자나 출자를 못하게 하면 나가서 뭘 갖고 싸우란 말이냐.” 전국경제인연합회 현명관 부회장이 29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과 30대 주요그룹 투자담당자간의 간담회에 참석,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고속도로에 비유하며 작심한 듯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10년뒤 후손들 천덕꾸러기 될까 걱정 그는 “요즘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말문을 연 뒤 “도무지 앞이 안보인다.지금은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가 벌어놓은 것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만,10년 뒤 후손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꼬집었다.현 부회장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계기로 최근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에게 한국 투자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한국의 노사문제와 출자총액제한 제도 때문에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며 노사문제와 정부규제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출자총액제한과 관련,“투자는 기업의 무기”라면서 “투자를 위해 출자총액규제를 없애달라고 회의 때마다 요청해도 반응이 없다.”고 덧붙였다. ●기업투자 왜 지연되는지 생각해야 참여정부의 기업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세액공제,특소세 및 법인세 인하 등의 접근 방식으로는 안 된다.”라고 못박았다.이어 “올해 대기업은 지난해보다 17%가 늘어난 45조원 가량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지만 1·4분기까지 7조 4000억원원밖에(16%) 투자되지 않았다.”며 “투자가 지연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정부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몰아붙였다. 현 부회장은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산자부는 기업의 친정이어서 다른 부처와 달리 속내를 드러내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을 돌렸다. 박건승기자 ksp@˝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Anycall프로농구 파이널]TG양경민- KCC조성원 29일격돌

    ‘너를 막아야 내가 산다.’ 프로농구 최고의 두 ‘킬러’가 상대를 정조준하고 있다.TG삼보의 양경민(32·193㎝)과 KCC의 조성원(33·180㎝).29일 막을 올리는 03∼04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에서 물러설 수 없는 3점포 전쟁을 벌인다. 프로 6년차인 양경민은 그동안 대표적인 ‘저평가주’였다.수비가 뛰어나고 야투가 정확했지만 위기에서 곧잘 무너져 강한 인상을 심지 못했다.지난 시즌 생애 처음으로 챔피언 반지를 낄 때에도 주포인 자신보다는 식스맨 신종석에게 더 많은 갈채가 뒤따랐다.그러나 올 시즌 확실하게 변신했다.1∼3쿼터에서 부진하다가도 승부처인 4쿼터에서 쐐기포를 날린 적이 많다.TG 전창진 감독이 “승리의 보증수표”라고 칭찬할 정도. 특히 팀은 상대전적에서 2승4패로 뒤지지만 양경민 만큼은 KCC를 만나면 유독 강했다.지난해 말 네번째 대결에서 두 팀을 합쳐 최다인 32점을 넣었다.8개의 3점슛을 쏘아 올려 견고함을 뽐내던 KCC의 조직력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조성원은 ‘어게인 97∼98시즌’을 꿈꾸고 있다.당시 KCC의 전신 현대 소속이었던 조성원은 허재(TG)가 이끈 기아와의 챔프전 마지막 7차전 4쿼터에서 역대 챔프전 가운데 가장 짜릿한 역전 3점포를 터뜨려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5시즌 만에 정상탈환을 노리는 KCC는 지난해 12월 ‘한물 갔다.’는 조성원을 전희철을 내주고서 SK에서 데려왔다.현대를 떠난 뒤 잇단 트레이드로 방황하던 조성원은 친정에 돌아오자마자 전성기 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특히 지난 23일 LG와의 4강전 2차전에서는 3쿼터 막판부터 5개의 3점포를 터뜨려 변함없는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다. KCC 신선우 감독은 “진정한 슈터는 위기에서 3점포를 두 방 이상 터뜨리는 선수”라면서 “바로 조성원”이라고 말했다. 양경민과 조성원은 공교롭게도 매치업 상대다.따라서 수비에서는 상대방을 꽁꽁 묶어야 하고,공격에 나서서는 상대의 밀착수비를 따돌리고 슛을 쏴야 한다. 한 명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결투를 준비중인 두 킬러의 손에 투혼의 힘이 실리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2004 K-리그수퍼컵] 전북 ‘수퍼컵’ 끌어안다

    프로축구 2004시즌이 ‘이변’으로 출발했다.전북이 프로축구 시즌 개막을 알리는 ‘왕중왕’ 대결에서 강호 성남을 물리쳤다. 지난시즌 FA컵 우승팀 전북은 21일 성남 제2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4 K-리그 수퍼컵’에서 남궁도와 에드밀손의 연속골로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 성남을 2-0으로 완파했다.지난해까지 성남에서 뛰다 주전경쟁에서 밀려 올해 전북으로 이적한 윤정환은 전반 33분 에드밀손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주는 송곳패스를 성공시키는 등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하며 ‘친정팀’ 격파의 선봉에 섰다. 전북은 대회 첫 우승과 함께 상금 2000만원을 받았다.준우승 상금은 1000만원.지난해 도움왕 출신으로 이날 화려한 개인기와 함께 쐐기골을 뽑아낸 전북 에드밀손은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수퍼컵에선 정규리그 우승팀이 이긴다는 ‘전통’도 깨졌다.지난해까지 열린 4차례의 수퍼컵에서 모두 리그 우승팀이 승리했지만 올해는 FA컵 우승팀이 승리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대회 2연패와 함께 통산 3회 우승을 도전한 성남은 지난달 열린 한·중·일 프로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A3닛산챔피언스컵’에서도 우승하면서 상승세를 탔지만 전북에 일격을 당해 주춤했다.올시즌 유고출신 스트라이커 샤샤와 김대의 등 주전 선수들을 대거 내보낸 성남은 전력누수의 조짐을 드러냈다. 주도권은 성남이 잡았지만 승리는 전북에 돌아갔다.성남의 파상공세에 고전하던 전북은 전반 20분 김현수가 상대진영 왼쪽 측면에서 센터링한 공을 남궁도가 쇄도하면서 정확하게 헤딩으로 연결,성남의 골문을 갈랐다.후반 들어 전북은 수비 숫자를 늘리면서 성남의 총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역습을 노렸다.에드밀손은 후반 44분 찾아온 득점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다. 성남은 ‘귀화스타’ 이성남과 콜롬비아 출신 하리의 좌우 측면공격으로 상대골문을 두드렸지만 전북의 밀집수비에 막혀 애를 먹었다. 지난해 득점왕으로 A3닛산챔피언스컵에서도 2골 2어시스트로 MVP에 오른 김도훈도 몇차례 득점기회를 맞았지만 골로 연결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성남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방송3社, 한나라 경선토론 중계

    “우리는 아직도 방송사에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TV토론을 해주기를 간절히…,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정말 부탁합니다.” 한나라당이 19일 이런 눈물겨운 통사정 끝에 간신히 TV토론 ‘생중계권’을 상당부분 따냈다.MBC는 한나라당 대표경선 하루 전인 22일 오후 2시 경선주자간 토론회를 생중계할 수 있다는 의사를 당에 전해왔다.‘형평성’을 들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던 KBS도 이날 저녁 21일 오후 11시 ‘100인 토론’프로그램에서 경선 후보자간 토론을 방송할 수 있음을 알려왔다.다른 방송사의 중계여부를 살피던 SBS도 22일 오전 토론회 중계를 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파국으로 치닫던 야당과 방송사간의 관계는 일단 한나라당의 읍소로 화해의 단초는 마련한 셈이다. ●한밤 방송비상대책위 한나라당은 주요 방송사들의 TV토론 거부 사태와 관련,오후 10시 여의도 당사에서 ‘편파방송규탄 비상대책위’를 열었으나 KBS와 MBC의 TV토론 수용 방침을 전해듣고 이를 환영했다.이날 비대위는 밤 늦은 시간임에도 대표경선 후보 5명을 비롯해 수도권 공천자 100여명,중앙당·지구당 사무처 관계자 150여명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의원은 경선주자 5명을 대표해 “방송사들은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의 대표경선 후보자들의 토론회를 생중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TV토론을 거부하려 했는데 그런 이유라면 지난 대선 때 선거일을 한달도 안 남기고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를 방송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방송사들이 뒤늦게라도 TV토론 요구를 수용한데 대해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송사 방문,토론중계 요청 이상득 사무총장 등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앞서 KBS를 방문한 자리에서 더욱 눈물겨운 애원을 쏟아냈다. 안동수 부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 총장은 “이제 우리는 예의를 지킬 만한 정신조차 없소.정말 한번 살려주소.”라고 하소연했다.주요 방송사가 후보간 합동토론회 중계 요청을 거부한데 대해서도 “긴 말로 옳다 그르다 말 않겠소.그냥 한번 좀 봐 주소.”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안 부사장이 “총선을 앞두고 민감한 방송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히자,전여옥 대변인이 ‘친정’에 대고 목청을 높였다.전 대변인은 “방송 중계를 안하기로 했다면 어떤 회의에서 어떻게 결정이 내린 것인지 알고 싶다.”고 따졌다.그러나 “남의 회사 회의과정을 세세히 묻는 것은 실례 아니냐.”며 면박만 당했다. 나중에는 ‘KBS 노조원’ 10여명이 회의실 앞에 도열해 ‘차떼기당 한나라당은 방송탄압을 중단하라.’ ‘거대야당은 편집권 압박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일부 노조원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경영진이 한시간 동안 회의를 못하고 있다.빨리 말 마치고 돌아가라”고 소리쳤다.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 의원이 “우리가 난동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부사장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냐.나도 강성노조를 해봤지만 이렇게는 하지 않았다.”고 달랬다.노조원들은 “대통령을 탄핵한 당이 왔는데 그게 압력이 아니냐.”고 물러서지 않았다. 전광삼 박지연기자 hisam@˝
  • [길섶에서] 아버지의 케이크/신연숙 논설위원

    아이의 생일을 맞아 친정에서 기별이 왔다.온라인으로 돈을 부쳤으니 아이에게 주라는 것이다.친구들하고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 하나쯤 살 수 있는 액수다.전화를 받고 말을 전하는 아이의 표정이 밝다. 하지만 전언을 듣는 쪽은 그렇지 못하다.친정 아버지가 집에 못 오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친정아버지는 자식이나 손자들의 생일 때마다 손수 케이크를 들고 집에 오시곤 했다.왕복 최장 세 시간이 넘는 거리도 멀다 않고 오셔서 어김없이 생일 촛불을 함께 켰다.그만큼 살가운 축하였다. 그런데 근래 전화로 대신 축하하시는 경우가 늘어난다.그럴 때마다 한편으론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연로해지신 것일까,아프던 발목 관절염이 도지기라도 한 것일까.속절없는 내리사랑에 지치신 것은 아니겠지.그래도 다음 생일엔 꼭 케이크를 사 오실 거라고 기대해 본다.자식은 이렇게 부모에게 염치없이 바라기만 하는 존재인가 보다. 신연숙 논설위원˝
  • 건교·환경부 ‘어깨동무’

    개발과 보전을 놓고 앙숙 관계였던 건설교통부와 환경부간에 봄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14일 건교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두 부처는 15일 정부과천청사 인근 식당에서 장·차관을 포함해 주요 간부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합동 오찬을 갖는다.오찬에는 대부분의 실·국장과 최근 인사를 교류한 과장 및 서기관 등 12명씩 총 24명이 자리한다. 중앙부처 차원의 국장급 인사교류와 두 부처가 ‘물관리정책협의체’를 구성한 데 이어 대규모 오찬까지 마련해 옛날의 ‘견원지간’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모임은 곽결호 환경부 장관이 ‘친정’격인 건교부를 인사차 방문한 자리에서 제의,자연스럽게 성사됐다. 서로 파견나간 직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위로도 하고,‘개발’과 ‘환경’이라는 명제를 놓고 사사건건 갈등과 반목을 빚어온 좋지 않은 관계를 청산하자는 뜻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결과다. 건교부 정덕모 총무과장은 “특별한 의제는 없다.만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다 보면 두 부처간 앙금이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두 부처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과장급 상호 파견근무제 실시를 합의하면서부터.두 부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건교부 국토정책국 입지계획과장과 환경부 수질보전국 산업폐수과장,건교부 주택도시국 도시정책과 서기관과 환경부 환경정책국 환경평가과 서기관 등이 서로 맞바꿔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1월 정부의 국장급 맞교환 인사방침에 따라 건교부 수자원국장과 환경부 상하수도국장이 자리를 맞바꾼데 이어 두 국을 중심으로 ‘물관리정책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물관리정책협의체 첫 회의에선 오는 22일 예정된 ‘제12회 세계 물의 날’ 행사를 두 부처가 공동 개최키로 합의하는 등 화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환경부 관계자는 “상대 부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부처간 모임을 자주 갖겠다.”고 화답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깔깔깔] 며느리 헌장

    ●며느리 헌장 나는 대한민국의 며느리로서 이 땅에 태어났다.밖으로는 남편의 출세에 신경을 쓰고 안으로는 남편 몰래 적금통장을 마련한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아름다운 몸매와 교활한 애교를 바탕으로 바가지 긁는 법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고집을 없애며 우리의 처지를 약한 여성의 발판으로 삼아 관능미 넘치는 몸매와 경국지색의 예쁜 각선미를 갖춘다.친정과 시가를 오가며 시부모와 남편을 숭상하고 시댁의 뼈대있는 전통을 이어 받아 에누리없는 주체의식을 북돋운다. 나아가 투기의 큰손으로 행운과 복을 잡는 것이 우리의 삶의 길이요, 횡재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방대한 부동산과 빛나는 자가용을 마련하고 근면과 검소를 가훈으로 오늘도 남편과 나의 정열을 바탕으로 옥동자 생산에 주력할 것이며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여 아들을 나라의 우량아, 딸은 미스 유니버시아드를 만들 의무를 가지고 충실히 본연의 임무를 실행해 나아간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재산을 위하여 오늘도 새 역사를 창조하자.˝
  • [김영희 이혼클리닉]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

    33살 가정주부입니다.회사원인 남편과 5살,3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외아들이라 따로 살고 계신 홀시어머니께 달마다 생활비 30만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늘 ‘부족하다.’며 불평불만이십니다.시누이들은 모른 척하고,남편은 시어머니 편만 듭니다.힘들어서 더 이상 못 살겠습니다.-성희 엄마- 성희 엄마.얼마 전 매스컴에서 어느 초등학생 어머니가 사교육비로 월 70만∼80만원씩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개인의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자식들 기죽이지 않고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결혼해서 지금까지 시어머니께 달마다 30만원씩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도 불평불만을 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이 잦고,속이 상한 성희 엄마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것 같은데,그 심정 이해갑니다.남편 월급으로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어 앞날을 위한 저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인데도,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더 드리자는 남편이 밉고 야속하겠지만,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남편 마음도 무척 괴로울 것입니다.친구들과 어울려 여행 다니길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충분한 용돈을 드리고 싶고,집안형편은 뻔하고….이래저래 자신에게 화가 난 남편은,가까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속으론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자기를 낳아 길러준 나이 많은 부모님을 길에다 버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식’들도 있는 세상인데,홀어머님께 잘해 드리려는 남편은 효성이 깊은 아들인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수입이 전혀 없으시다면,현실적으로 월 30만원은 생활하기에 부족한 액수지요.성희네 형편으로 더 이상 생활비를 드릴 수 없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시어머니와 함께 살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좋은 점도 있을 겁니다.옛날에 어느 집에 초상이 나서,돌아가신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큰며느리는 땅을 치며 구슬피 우는데,멀리 떨어져 자주 뵙지 못했던 둘째·셋째 며느리는 큰며느리 같지가 않더랍니다.부딪치며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깊은 정’이 되나 봅니다.부모들을 보고 자란 성희씨네 아이들은,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될 것입니다. 성희 엄마.시누이들도 참석케 하여 가족회의를 하십시오.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형편이 어려우니 같이 살자고 말씀드리지 말고 “저희들,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며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시어머니께 다가가십시오.한 집에 살다보면 시어머니께서 아들네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게 되면서,이제까지 자신이 몰랐던 점을 많이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함께 사신다면 너무 잘해 드리려 신경쓰지 말고 친정어머니 같이 스스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 드리는 게,훨씬 진실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지요. 제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의 박 대리는 언제 봐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상냥해서 “박 대리와 결혼할 사람은 참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어요.”라며 시어머니께서 애를 맡아 길러주시니,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그는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준 분이고,친정어머니는 저를 낳아준 분인데,두 분 어머니께서 다 생존해 계셔서 행복해요.승진해서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성희 엄마.“예쁨도,미움도,제 할 탓이다.” “여우하고는 살아도,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노년이 되면 외롭고 불안해진답니다.‘젊어서는 남편에게,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애들 낳고 사는 부부가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 해서 이혼을 한다면,결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지요.예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당신의 미래인 아이들을 보며,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은 당신에게 ‘깊은 사랑’을 보답할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김영희 이혼클리닉]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

    33살 가정주부입니다.회사원인 남편과 5살,3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외아들이라 따로 살고 계신 홀시어머니께 달마다 생활비 30만원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늘 ‘부족하다.’며 불평불만이십니다.시누이들은 모른 척하고,남편은 시어머니 편만 듭니다.힘들어서 더 이상 못 살겠습니다.-성희 엄마- 성희 엄마.얼마 전 매스컴에서 어느 초등학생 어머니가 사교육비로 월 70만∼80만원씩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개인의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자식들 기죽이지 않고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결혼해서 지금까지 시어머니께 달마다 30만원씩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도 불평불만을 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이 잦고,속이 상한 성희 엄마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것 같은데,그 심정 이해갑니다.남편 월급으로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어 앞날을 위한 저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인데도,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더 드리자는 남편이 밉고 야속하겠지만,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남편 마음도 무척 괴로울 것입니다.친구들과 어울려 여행 다니길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충분한 용돈을 드리고 싶고,집안형편은 뻔하고….이래저래 자신에게 화가 난 남편은,가까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속으론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득할 것입니다.자기를 낳아 길러준 나이 많은 부모님을 길에다 버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식’들도 있는 세상인데,홀어머님께 잘해 드리려는 남편은 효성이 깊은 아들인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수입이 전혀 없으시다면,현실적으로 월 30만원은 생활하기에 부족한 액수지요.성희네 형편으로 더 이상 생활비를 드릴 수 없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시어머니와 함께 살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좋은 점도 있을 겁니다.옛날에 어느 집에 초상이 나서,돌아가신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큰며느리는 땅을 치며 구슬피 우는데,멀리 떨어져 자주 뵙지 못했던 둘째·셋째 며느리는 큰며느리 같지가 않더랍니다.부딪치며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깊은 정’이 되나 봅니다.부모들을 보고 자란 성희씨네 아이들은,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될 것입니다. 성희 엄마.시누이들도 참석케 하여 가족회의를 하십시오.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형편이 어려우니 같이 살자고 말씀드리지 말고 “저희들,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며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시어머니께 다가가십시오.한 집에 살다보면 시어머니께서 아들네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게 되면서,이제까지 자신이 몰랐던 점을 많이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함께 사신다면 너무 잘해 드리려 신경쓰지 말고 친정어머니 같이 스스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 드리는 게,훨씬 진실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사람은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지요. 제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의 박 대리는 언제 봐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상냥해서 “박 대리와 결혼할 사람은 참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저 결혼해서 두 아이가 있어요.”라며 시어머니께서 애를 맡아 길러주시니,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그는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준 분이고,친정어머니는 저를 낳아준 분인데,두 분 어머니께서 다 생존해 계셔서 행복해요.승진해서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성희 엄마.“예쁨도,미움도,제 할 탓이다.” “여우하고는 살아도,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노년이 되면 외롭고 불안해진답니다.‘젊어서는 남편에게,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고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애들 낳고 사는 부부가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 해서 이혼을 한다면,결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지요.예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당신의 미래인 아이들을 보며,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은 당신에게 ‘깊은 사랑’을 보답할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儒林(4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김식의 비유는 적확하였다. 쏟아버린 술은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쏟아버린 술’과 ‘엎질러진 물’ 같은 죄인이 되었으므로 다시 상감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으니 쓸데없이 미련을 갖지 말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김식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 역시 강태공에서 비롯된 고사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강태공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주군을 만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노령에 이르러 있었다.마침내 문왕을 만나 국사가 되었으나 이처럼 늦게 출세하였기에 그전까지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한 선비였었다.젊은 시절 그는 책만 읽으며 생계를 잇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아내 마씨는 일찌감치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훗날 강태공이 제후에 봉해졌다는 말을 듣고 마씨는 집에 돌아와 다시 아내로 맞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강태공은 잠자코 있다가 마씨에게 물 한 동이를 떠오라고 이른 다음 아내가 가져오자 그것을 마당에 쏟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 저 물을 주워 그릇에 담아보시오.” 마씨는 엎질러진 물을 담으려 하였으나 진흙만 손에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당황해하는 마씨에게 강태공은 이렇게 말하였다. “한번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고,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한번 헤어진 부부는 결코 재결합할 수 없음을 말한 것으로,무슨 일이든 한번 저지른 일은 원상복귀할 수 없다는 강태공의 말에서 그 유명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은 김식의 행동은 조광조가 읊은 시조에 나오는 강태공을 빗대어서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대감,옛말에 이르기를 파경재부조(破鏡再不照)라 하여서 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출 수가 없다고 하였소이다.” 김식은 다시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켜면서 말을 하였다. 일행들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마침 하늘을 가렸던 먹구름이 물러가고 뜨락에는 달빛이 하늘 가득하였다.김식은 단숨에 술을 들이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또한 옛말에 이르기를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소이다.우리 모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깨어진 거울이며,떨어진 꽃이외다.그러므로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신의를 위해 죽을 것을 맹세하십시다.”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갈 수 없다(落花不返枝)’는 말 역시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던 것이다.이 말을 듣고 있던 우참찬 이자가 말을 이었다. “대사성의 말이 맞소이다.이미 모든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 되었소이다.이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를 지키며 당당하게 죽는 일만 남았소이다.옛말에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이자의 말에 일동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끄덕였다.‘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이자의 말이야말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 儒林(43)-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김식의 비유는 적확하였다. 쏟아버린 술은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쏟아버린 술’과 ‘엎질러진 물’ 같은 죄인이 되었으므로 다시 상감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으니 쓸데없이 미련을 갖지 말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김식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 역시 강태공에서 비롯된 고사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강태공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주군을 만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노령에 이르러 있었다.마침내 문왕을 만나 국사가 되었으나 이처럼 늦게 출세하였기에 그전까지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한 선비였었다.젊은 시절 그는 책만 읽으며 생계를 잇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아내 마씨는 일찌감치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훗날 강태공이 제후에 봉해졌다는 말을 듣고 마씨는 집에 돌아와 다시 아내로 맞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강태공은 잠자코 있다가 마씨에게 물 한 동이를 떠오라고 이른 다음 아내가 가져오자 그것을 마당에 쏟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 저 물을 주워 그릇에 담아보시오.” 마씨는 엎질러진 물을 담으려 하였으나 진흙만 손에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당황해하는 마씨에게 강태공은 이렇게 말하였다. “한번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고,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한번 헤어진 부부는 결코 재결합할 수 없음을 말한 것으로,무슨 일이든 한번 저지른 일은 원상복귀할 수 없다는 강태공의 말에서 그 유명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은 김식의 행동은 조광조가 읊은 시조에 나오는 강태공을 빗대어서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대감,옛말에 이르기를 파경재부조(破鏡再不照)라 하여서 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출 수가 없다고 하였소이다.” 김식은 다시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켜면서 말을 하였다. 일행들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마침 하늘을 가렸던 먹구름이 물러가고 뜨락에는 달빛이 하늘 가득하였다.김식은 단숨에 술을 들이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또한 옛말에 이르기를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소이다.우리 모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깨어진 거울이며,떨어진 꽃이외다.그러므로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신의를 위해 죽을 것을 맹세하십시다.”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갈 수 없다(落花不返枝)’는 말 역시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던 것이다.이 말을 듣고 있던 우참찬 이자가 말을 이었다. “대사성의 말이 맞소이다.이미 모든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 되었소이다.이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를 지키며 당당하게 죽는 일만 남았소이다.옛말에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이자의 말에 일동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끄덕였다.‘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이자의 말이야말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 개그콘서트 신설코너 ‘개그대국’ 인기

    진부한 소재와 선정적·가학적인 개그로 억지 웃음을 이끈다는 비판 속에 옛 명성을 잃고 있는 KBS 간판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그러나 최근 참신한 소재와 개성있는 연기자들로 무장한 새 코너를 선보이면서 다시 인기몰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진원지는 바로 ‘개그대국’.지난 1월말 신설된 이 코너는 현재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 중 최고의 코너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방영 한달 만에 시청자들로부터 ‘개그콘서트를 되살릴 마지막 희망’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반향이 좋다.이에 제작진은 이 코너를 개그콘서트의 ‘중심’으로 키우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그대국’은 전형적인 ‘말빨(말 빨리하기)개그’.SBS ‘웃찾사’로 옮겼다가 1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한 박성호와 ‘낙지’윤석주가 각각 해설자와 사회자로 나와 장동혁과 허동환이 주고받는 개그를 바둑중계 형식으로 패러디한다.하지만 기존의 ‘연변총각’ 강성범과 ‘갈갈이’ 박준형처럼 따발총처럼 말을 난사해 시청자들을 정신없게 만드는 ‘수다 형식’이 아니다.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단어들을 교묘하게 조합하는 ‘퓨전 형식’으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언어유희를 선보인다. 매회 ‘도시이름’‘가수이름’ 등 시제를 정해 놓고 관련 단어가 자연스레 녹아든 말 한마디씩을 주고받는 것.예컨대 “내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간 뒤 안부를 안 전해 오길래 내가 한소리 했어요.야!너 안 ‘부 안’보낼 거냐?”이런식이다.특히 무명생활 13년 만에 처음 주목을 끌기 시작한 ‘허둥 9단’허동환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인다. 개그콘서트는 올들어 ‘개그대국’이외에 ‘개그J특공대’도 신설했다.김영식(42)프로듀서는 “1년반 동안 똑같은 개그맨들이 똑같은 코너를 진행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었다.”면서 “박성호 등 4명이 ‘개그대국’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와 새 바람을 일으키듯이 앞으로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코너와 개그맨은 쉽게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아이티반군, 권력장악 선언

    아이티 반군지도자 기 필립(36) 전 경찰서장이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 축출 이틀 만인 2일 권력장악을 사실상 선언했다.미국은 반군세력의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나서 반군과 다국적군간 충돌도 우려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일시 머물고 있는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의 거취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전날 “미국에 의해 납치됐다.”고 주장했던 아리스티드는 중아공 대통령궁에 머물고 있지만 모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국으로 최종 망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 지도자 기 필립 전 카프아이시앵 경찰서장은 2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 나라는 내 손안에 있다.”면서 “내가 새 군사령관이다.”고 선언했다.그러면서 아리스티드의 측근인 이봉 넵튄 총리를 부패혐의로 체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은 또 경찰고위간부 20여명을 체포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가운데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 임시대통령 보니파스 알렉상드르 대법원장의 지시를 따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일단 무장을 해제하지 않겠다며 미국 등의 압력에 맞섰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반군과 친정부군간 총격전이 벌어졌고 곳곳에서 산발적 약탈 행위도 계속됐다.아이티에서는 지난달 무장봉기 이후 현재까지 최소 13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반군 지도부가 수도 입성 후 바로 권력장악 기도 움직임을 보이자 즉각 “반군은 향후 정치적 과정에는 역할이 없다.무장을 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로저 노리에가 국무부 중남미담당 차관보도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다국적군 배치가 강화되면 필립 자신도 아이티 상황에서 슬쩍 빠져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프랑스 군대는 이날 아이티의 질서회복 활동에 돌입했다.카리브해 지역 15개 국가들은 자메이카에 대표자들이 모여 평화유지군 전개문제 등에 대해 논의에 들어갔다. 이춘규기자 외신 taein@
  • [하프타임] 고종수 친정팀 수원 복귀

    일본프로축구(J리그)에 진출했다가 중도 하차한 고종수(26)가 친정 팀 수원에 복귀,올 시즌 K-리그에 다시 서게 됐다.수원은 2일 고종수와 2년간 계약했다며 4일부터 팀 훈련에 합류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원은 선수측 요청으로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연봉은 4억원 안팎으로 전해졌다.고종수는 지난해 초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으나 13경기에서 1골에 그쳐 9월 퇴출됐다.˝
  • [여자가 본 여자] (상)일상에서

    “쯧쯧,여자들이란….” 남성들의 이 말 속에는 비하와 비난이 그득하다.여성들도 말한다.“저 여자,왜 저래?”,“저 여자 정말 (꼴보기)싫어!”.이는 남자들이 “저 남자 싫다.”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왜 여자가 싫을까.남성들이야 자신과 달라 이해할 수 없어서 경원시할 수도 있다고해도,여성이 여성이란 사실을 콕 찍어 비난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물론 여성들도 여성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여자 팔자가 다 그렇지.”라는 여성 비하를 담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일상에서,직장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여성들 사이를 흐르는 거리감의 정체를 상,하로 나눠 해부해 본다. ‘시샘이나 하는 소인’이란 여성에 대한 편견은 유교에 뿌리하고 있는 것같다.칠거지악·씨받이·남아선호 등 여성을 억압하는 갖가지 풍습은 결국 이 땅의 여성들을 무능하게 만들었다.늘 약자는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본 편견의 말을 거리낌없이 여성들은 차용하면서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보고 건너편 여성을 경멸한다. ●고부 갈등은 삼각 관계인가 여자가 싫은,싫을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는 고부 갈등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시어머니의 ‘심술’.이는 결혼생활을 ‘매운 시집살이’로 바꿔놓는다.20대 여성들이 모이면 주제는 ‘시집 흉’이고,30대는 ‘과외’라든가. 결혼을 하고나면 “나도 친정에서는 귀한 딸이었다.”는 넋두리가 연습이라도 한 양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바로 며느리로서 받게 되는 불평등 때문이다.그 불평등은 남성인 남편보다는 여성인 시어머니로부터 시작되게 마련이다. 김성자(68·서울 도봉구 수유6동)씨는 호된 시집살이를 이야기하면 지금도 어젯일인 양 넋두리가 나온다.“가난한 집안의 큰딸이라 7살부터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도 하고,동생도 키워 웬만한 고생엔 이골이 났지.그래도 17살에 시집 가서는 시어머니의 구박 때문에 못 살겠지 뭐야.이혼이나 가출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고 몇 차례나 아이를 들춰업고 목 맬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그때마다 아이의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살았지.새벽같이 일어나 일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보리밥 한덩이를 아까워하는 시어머니를 내가 45년이나 모셨어.돌아가시면서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시더만.나는 시집와서 웃음을 아예 잃어 버렸어요.요즘같은 세상이었으면,나…안 살았어.” ‘시어머니 노릇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김씨,그러나 그의 며느리 윤자혜(47)씨도 시어머니는 여전히 어렵다.“시할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유난했던 것은 저도 알아요.그래서 나는 우리 시어머니가 안됐고,잘 해드리고 싶어요.하지만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세요.‘무거운 것,아비에게 들게 하지 마라.’는 등 아들을 남편마냥 섬기시지요.나는 아들을 내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 생각이에요.그게 마음대로 될지….” 고부 갈등은 여전히 부부 갈등의 중요한 요소이자,이혼의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상담소의 이혼통계 가운데 가장 많은 이혼 사유가 되는 6호 사유(민법 제840조 6호)를 보면,고부갈등은 4.1%정도이지만 여기에 시가와의 갈등(2.6%),생활양식차이(0.9%),혼수시비(0.2%),마마보이(0.1%) 등을 합치면 8%에 이르는 내용들이 시가와 연결돼 있다.여기서도 시어머니로 대표되는 시가와의 갈등관계가 부부갈등의 중요한 원인임을 확인하게 된다.”고 일러줬다.한 남성을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가히 ‘삼각 관계’라 할 만하다. ●남자가 되고 싶어 프로이트에 따르면 3∼5세의 여자 아이들은 자신에게는 오빠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성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남성을 부러워 하는 한편 자신에게 남성 성기를 주지 않은 어머니를 원망한다고 한다.그래서 딸은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이 생긴다는데,이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한다. 정신분석학자 이론의 틀에 우리를 가둘 필요는 없겠다.그러나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느낀 여성은 자신만은 여성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이기심을 갖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나는 여자로 살기 싫어.”라는 외침과 “여자가 싫다.”는 말은 어쩌면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폭력 가정에서 자랐던 김순진(가명·42)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어머니를 늘 구박했던 폭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김씨.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먼저 떠오른단다.“아버지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엄마가 불쌍하기도 했고….그러나 내 속마음은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싫었어요.고교시절까지 사회적으로 문제없는 아버지가 유독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만은 이렇게 이상하게 된 것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 탓이란 생각을 했고,어머니의 태도가 못마땅했어요.지나고 보니 폭력에 의해 어머니는 판단 능력을 잃었던 것인데….그래서 난 내가 여자인 것도 싫었고,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그는 결혼생활이 10년이 넘으면서,이제야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자신은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해도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던 지난 시대의 내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지 조금은 알겠어요.” 사춘기의 딸들이 어머니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낼 때면,어머니들은 말했다.“너도 살아봐라.”.어머니의 말씀처럼 ‘(결혼해서)살아본’ 딸들은 이제사 여성의 지난했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해란 ‘여자의,어머니의 희생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것 일뿐,여성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더욱이 성숙해졌다고 지난 시대의 여성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의 딸들은 어머니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경제력을 갖지 못한 채 살았던 어머니의 딸들은 “절대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반면 일하는 어머니 때문에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딸들은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그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어머니와 다른’ 삶을 택한다.반항하듯. 이혜정(4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는 결혼 후 병치레가 심한 아이를 위해 교사생활을 접었다.“아플 때,엄마가 내 곁에 없었던 외로움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없이 직장을 떠났어요.엄마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겁니다.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제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열심히 사신 내 어머니에 대해 왜 나는 긍지를 가질 수 없었을까,이제 돌이켜 보면 내 겉은 여자이지만 속은 남자인 채 살아온 것 같아요.”이씨는 중2 딸이 “나는 직장을 가진 멋진 엄마가 더 좋은데 1등만 했다는 엄마가 왜 직장도 없느냐?”고 물으며,자신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한단다.“내 삶이 ‘전면 부인’해야 할 만큼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딸에게 보여주는 것,그것이 딸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동서,따지고 보면 남인데… 결혼한 여성들이 겪는 갈등 중 하나는 동서와의 갈등이다.어떤 의미에서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보다 더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부유한 집 출신으로 결혼할 때 시어머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동서가 시집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김진숙(38·서울 서초구 서초동)씨,그는 “‘동서’가 가족이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동서는 남이지 않아요? 전통 사회에서야 시집가면 친정 식구와는 모두 떨어졌고,한 울타리에서 설움받는 존재였던 동서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일 뿐,현대 사회에서 동서지간을 가족으로 묶는 것은 우스운 것이죠.그러니 이 정도 떨어져서 서로 좋게 지내면 되는 것이지,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곤란한 것 같아요.” 4남매의 장남과 결혼해 동생들을 모두 결혼시킨 정유선(51·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씨는 아직도 큰아들네에서 얻어서 동생들에게 주려고 애쓰는 시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남편이 어렵게 자랐지만,사회에 나와 빨리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움 없이 우리는 집사고,재산불리고 살았어요.그래서 동생들에게도 잘 하려는 남편 마음에 맞춰 왔어요.하지만 이젠 동생들도 40대에 들어서면서 자리잡았는데도 여전히 시어머니는 내게 ‘뜯어서’ 동생들에게 갖다주는 게 낙이죠.그러면서 늘 나더러 욕심 많다고 흉보고….나 이렇게 말하면 나쁘지요? 하지만 제 속마음이에요.” 부모에게는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자식’이지만,엄연히 며느리에게는 ‘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알고 있다.다만 입에 올리면 나빠지기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할 뿐.이 역시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서와 친자매 이상 가깝게 지낸다는 여성들도 있긴 했지만,이들도 ‘새로 만난 친구’정도라는 개념일 뿐,그것을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부정의 뜻을 밝혔다. ●남성의 눈으로 보면 “여자는 참 이상해” ‘공자가 죽은’ 이 시대에 여전히 우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신봉하고 있다.남성들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정작 여성들의 시각 역시 남성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철저하게 남성의 눈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이에 대해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명쾌한 답을 한다.“내가 여성학을 배운 39살 이전에는 내 주위에는 온통 ‘이상한 여자’투성이었다.그러나 내가 여성을 알고,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들은 온통 당당하고,겸손하고,자신만만하면서도 결코 오만하지 않은 여성들이었다.그 여성들을 알게 된 것이 행복하다.여성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을 보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허남주기자 hhj@˝
  • [술따라 맛따라] 제주 오메기술·고소리술

    ‘못 먹는 오메기술,권하지나 맙서예,달이 동동 밝거들랑,날 만나러 옵서예’남제주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민요가창의 한 구절이다.오메기술이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의 생활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노래다.논이 귀한 제주에선 각 가정에서 쌀 대신 좁쌀로 술을 빚어마셨는데,그 대표적인 것이 좁쌀 막걸리인 오메기술,그리고 오메기술을 증류해 만든 소주 고소리술이다.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민속마을로 가서 오메기술 및 고소리술 기능 보유자(제주 문화재 11호)인 김을정(78)씨를 만났다. “취재할 게 뭐 있다고.그냥 남들보다 오래 오메기를 빚었다고 문화재로 지정까지 해주네.맛이야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어릴 때는 친정 어머니와,출가후엔 시어머니와 함께 오메기술을 빚었다는 김씨는 천상 시골 할머니 모습 그대로다.60년 넘게 술을 빚었다.김 할머니도 여느 술도가집과 마찬가지로 좋은 술맛의 첫째 조건으로 누룩을 꼽는다. 오메기술은 보리와 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한 누룩을 쓴다. “망태기에 반죽한 누룩을 짚풀과 함께 넣어 한 달쯤 띄우면 곰팡이 꽃이 피어요.노랑이나 빨강꽃이 피면 제대로 띄운 거예요.검은 꽃이 피면 썩는 중이고요.” 그런데 좋은 누룩을 띄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누룩 반죽도 매일 뒤집거나 위치를 바꾸어줘야 한다.바람이나 습기를 골고루 받게 해야 누룩이 썩지 않고 곱게 뜨기 때문.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여름이나 겨울보다는 봄·가을에 띄워야 좋은 누룩이 나온다고. “제대로 띄운 누룩으로 오메기술을 빚으면 시큼하면서도 달고 구수한 맛이 나요.잘 익은 토종 참외의 맛과 비슷해요.누룩이 안 좋으면 감칠맛은 없고 시금털털한 맛만 나고요.” 오메기술은 이렇게 띄운 누룩가루에 차좁쌀을 갈아 반죽한 떡으로 빚는다.이 차좁쌀떡이 바로 오메기다.오메기떡은 제주에서 전통적인 요깃거리였다. 오메기를 잘게 부수어 누룩가루와 섞어 술독에 담그면 오메기술 빚기는 끝난다.봄·가을의 경우 1주일 정도 익히면 15도 정도의 탁주가 나온다.요즘 같은 겨울엔 보름 정도 발효시켜야 한다.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증류한 소주다.주도는 30도 남짓.맛과 향이 중국 고량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강약의 차이랄까.향이 고량주처럼 코끝을 찌르는 대신 부드러움이 느껴지고,목으로 넘어갈 때는 순한 청주처럼 편하다.고량주에 비해 단맛도 약간 덜한 느낌이다. 김 할머니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주조 기능을 보유한 인간문화재지만,정작 판매를 위한 주조허가는 받지 못했다.제주에서 유통되는 오메기술은 모두 다른 업자들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주조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아직도 집안에 솥단지와 맷돌,술독,소줏고리 등을 갖춰놓고 전통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다.차조와 보리 농사도 인근 밭에서 직접 지으니,술의 모든 재료를 자급하는 셈. 유통업체에 술을 판매하지는 않지만 김 할머니 집을 직접 찾아오는 이들에겐 술을 한두 병씩 판다.공장술은 제맛이 안 난다며 제대로 된 오메기술을 맛보러 오는 사람들이다.이럴 때마다 김 할머니는 꼭 쌀뜨물처럼 멀건 막걸리를 오메기술이라며 파는 사람들이 영 못마땅하다.오메기술은 1.5ℓ 1병에 1만원,고소리술은 1병에 1만 5000원. “오메기술은 신 김치를,고소리술은 흑돼지 구이를 곁들여 마셔야 제맛이 야.”자리에서 일어서는 기자에게 술 한 병을 들려주며 이야기하는 김 할머니의 얼굴에 손자를 챙기는 듯한 자상함이 묻어 있다.(064)787-1360. 글 남제주 임창용기자 sdragon@ ■ 이렇게 빚어요 재료:차조,누룩(보리·밀을 빻아 만든 것). 1.차조를 곱게 간다. 2.끓는 물을 부어 반죽을 한 후 도넛 모양의 떡을 만든다.(샛노란 좁쌀보다 색깔이 흐린 것이 찰기가 많아 좋다.) 3.펄펄 끓는 물에 떡을 넣고 20∼30분 삶는다.(떡이 익으면 물 위로 떠오른다.) 4.떡을 건져낸 후 식기 전에 손으로 으깬 뒤 다시 물을 넣어 끈끈한 묽은 죽상태로 만든다.(삶은 떡을 그대로 두면 오메기떡이 된다.) 5.죽 상태의 오메기에 누룩가루를 버무려 술독에 담는다.(좁쌀과 누룩의 비율은 4대1 정도.물은 좁쌀 1말의 경우 3되 정도 넣는다.) 6.겨울엔 10∼15일,봄·가을엔 일주일 정도 발효되면 주정이 포말을 일으키며 터지는 술익는 소리가 난다. 7.침전물 위로 뽀얀 좁쌀 청주가 고이면 잘 저어 좁쌀 탁주인 오메기술을 완성한다. 8.오메기술을 증류기에 놓고 증기로 만들어 식히면서 액체를 받아내면 고소리술이 완성된다.(좁쌀 1말 기준으로 오메기술은 1말,고소리술은 석되 정도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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