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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談餘談] 노는 게 배우는 거다/박상숙 문화부 기자

    “댁의 아이는 뭘 가르치세요?” 아이가 이제 고작 다섯 살인데 이런 질문을 심심찮게 듣는다. 강남에 비해 사교육 바람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하는 강북에 살면서도 말이다. 아이는 집 근처 구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따라 기본 수준의 한글·영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집에서는 그 흔한 학습지도 안 시키고 있다. 일하는 엄마라 일일이 신경을 못쓰는 데다가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 엄마에게 이것저것 신경쓰게 만들고 싶지 않다. 취학 전이니 느긋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왜곡된 조기 교육 열풍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소신이다. 친구들은 “간 큰 엄마의 귀차니즘 때문”이라고 비꼬지만. 어쨌든. 내 대답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운동이라면 몰라도 공부를 위해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못 꿋꿋하게 말하면 “그건 내 아이만은 안 가르쳐도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믿음 때문인데, 그게 깨져봐야 정신을 차리지.”하는 경험자들의 충고가 돌아온다. 얼마 전 한 TV시사프로그램에서 조기 영어교육의 폐해를 방송했다.4살 아이는 영어 학원에 간 지 한 달도 안돼 짜증이 늘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엄마는 당장 학원을 그만뒀지만 집에서 틈틈이 아이에게 영어책을 보여주고 있었다.“아이가 혹시라도 뒤떨어지면 어쩔까 싶다.”는 게 이유였다. 아이들에겐 놀이가 곧 학습이다. 놀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터득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전두엽(의지, 참을성을 관장하는 부위)이 성숙되고, 전두엽이 잘 발달한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공부도 사회생활도 잘하게 된다. 요즘 ‘왕따’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놀이를 빼앗긴 요즘 아이들의 전두엽 성장 부진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TV에 자주 등장하는 한 대학병원의 소아정신과 교수는 예약이 2년치가 꽉 찼다고 한다. 부산에서 정신과 의사를 하는 남편 친구는 최근 서울에 올라와 소아정신과 쪽으로 더욱 전문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란다. 과도한 교육열로 인한 스트레스에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상숙 문화부 기자 alex@seoul.co.kr
  • 38회 한국법률문화상 수상자 선정 권성 前헌법재판소 재판관

    38회 한국법률문화상 수상자 선정 권성 前헌법재판소 재판관

    1980년 5월의 광주는 잉크가 아닌 피로 기록된 ‘현대사의 원죄’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원죄를 청산하기 위한 다양한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졌지만,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에 둘러싸여 있다.‘화려한 휴가’는 영화로 제작돼 상영 중이다. 지금보다 11년 앞서 이런 의문점들에 직면한 판사가 권성(66)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12·12와 5·18 사건의 항소심에서 재판장(서울고법 부장판사)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논란을 빚었던 이다. 그는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 법(항장불살·降將不殺)’이라는 판결문을 남겼다. 대한변협이 수여하는 ‘한국법률문화상’의 38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지난주 권 전 재판관을 만났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서 정년퇴임한 뒤 미국 댈러웨어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머물다 올 3월 귀국, 법무법인 ‘대륙’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37년의 법조인 생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법조계의 원로이지만 가장 먼저 떠올린 사건은 역시 12·12와 5·18 항소심 재판이다. 기록만 캐비넷 6개 분량에다, 검찰과 변호인측이 신청한 증인은 100명 가까이 됐다. 항소심에 들어가기에 앞서 계획표를 짜서 1주일에 두번씩 심리를 진행하는 강행군을 했다. 권 전 재판관은 법원 출두를 거부하는 고 최규하(지난해 작고) 전 대통령에게 구인장을 발부해 증인석에 세웠다. 전직 대통령 3명을 한 법정에 모으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최 전 대통령은 재임중 국정행위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권 전 재판관은 “최 전 대통령을 강제 구인까지 했는데 끝내 증언을 거부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배후를 좀 더 밝히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증언을 해주셨으면 참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법원의 판결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면서 법의 신뢰와 권위를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판결까지 이르는 재판 과정도 힘들었지만,300쪽이 넘는 판결문을 인쇄·제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판결 전날 법원 회의실에서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판결문 작성 작업이 벌어졌다.“타이핑을 잘하는 법원 직원 40명 정도가 밤새 판결문을 쳐서 프린터로 뽑았어요. 법원행정처 재직 시절에 알았던 인쇄소 사장에게 부탁해서 제본 기계도 회의실에 들여다놓고, 인쇄소 직원들을 동원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프린트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제본을 하게 했죠. 선고가 오전 10시였는데 아침 8시쯤 전화번호부 두께만 한 판결문 100여 부가 완성됐습니다. 판결 전에 내용이 새나가면 큰일나니까 직원들을 10시30분까지 꼼짝 말라고 회의실에 ‘연금’을 해놨죠.(웃음)” 권 전 재판관이 이 사건의 판결문에 인용한 ‘항장불살’이라는 표현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역사 바로세우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비난까지 받으며 감형을 결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처벌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피로써 피를 씻는 악순환을 계속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이미 광주에서 수없이 피를 흘렸는데 거기에 보태서 또 피를 흘려야 하겠느냐, 이건 어느 시점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장불살이란 표현은 국가적 관심이 쏠려 있는 사건인 만큼 감형 이유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다 보니 인용하게 됐습니다.” 그는 감형 판결을 내리면서도 거센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판결 다음날 광주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고 홍남순(지난해 작고)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용은 예상과 정 반대였다. “권 판사, 굉장히 용기있는 판결이었어요. 이쪽에서도 다소 불만 있고, 사형을 원하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굉장히 어려운 판결 내려줬어요.” 홍변호사의 이 전화는 권 전 재판관에게 큰 힘이 됐다. 판사실로 항의전화가 오지 않을까 크게 걱정했는데, 대여섯통에 불과했고 그 전화들도 의견이 반반씩 엇갈렸다. 하지만 판결 2년 만에 사면된 ‘피고’의 모습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당시의 기분을 묻자 권 전 재판관의 입술에 금세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사면뿐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정치인과 관련해 법원이 애써 해놓은 재판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사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재판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권 전 재판관과 대통령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이던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맡았다. 헌법재판소법상 탄핵 심판에서 소수의견 공개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그의 의견도 비공개됐지만,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에서 그는 아쉬움도 많이 갖고 있다. 퇴임 뒤 소장 공백 사태 등 진통을 겪은 ‘친정’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많았다고 한다. 탄핵심판과 행정수도법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헌재의 위상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는 그는 “헌법재판소 사건들은 정치인과 관련된 사안이 많은데, 여론 등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인들이 많다.”면서 “재판관으로서 이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 대해 “나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수상의 영광을 안게 돼 놀랍고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사진 김명국 기자 daunso@seoul.co.kr ■ 용어 클릭 ●한국법률문화상 대한변협이 법조 실무나 법률학 연구를 통해 인권옹호와 법률문화의 향상 등에 공로가 있는 법조인에게 수여하는 법조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1969년 첫 시상을 시작해 올해로 38회를 맞는다. 올해 시상식은 오는 27일 변호사대회에서 열린다. ■ 권성 前 재판관은 누구 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별명은 ‘Mr. 소수의견’이다. 헌재가 2001년과 2002년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다뤄 8대1,7대2로 합헌결정을 내렸을 당시에 권 전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간통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일 뿐이고, 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호주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때도 그는 합헌 쪽에 섰다. 신행정수도법에 대해 위헌 결정(8대1)을 내렸을 때는 위헌의견을 냈고, 헌재가 1년 뒤에 행정도시특별법 헌법 소원에 대해 7대2로 각하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합헌의견을 냈을 때도 그는 위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소신있는 법관의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Mr.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에 대한 그의 솔직한 심정은 어떨까. “만족 못하죠. 내가 밝힌 소수의견이 뒷날 다수의견이 된다면 당당하겠지만, 그 전까지야 어디까지나 소수의견일 뿐입니다.” 헌재에서 내린 판결들 때문에 보수 인사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그의 판결 성향을 보수 일변도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이던 1993년 고 박종철씨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신원권(伸寃權)’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 국가가 유족에게 1억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손해배상이 성립하려면 법률로 보호할 만한 이익이나 권리가 침해됐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하는데, 가족이 갑자기 죽었을 때 그 원인을 밝히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성정이고 권리”라면서 “신원을 못하게 막았으니 ‘신원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권성 전 헌재 재판관은 ▲1941년 충남 연기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8회 사법시험 합격(1967년) ▲부산지법 판사(1969년)·서울고법 부장판사(1991년)·서울 행정법원장(1999년)·헌법재판소 재판관(2000∼2006년)
  • 의사면허 가로채고 그 부인까지

    의사면허 가로채고 그 부인까지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병원조수로 어깨너머 환자를 살피던 한 중년사내가 죽은 의사부인을 유혹, 의사의 면허증과 부인까지 통째로 가로챈 뒤 병원을 개업했다. 그러나 「풍월」이 서툴러 들통이 나고 철창행 신세로 급전직하, 소름끼치는 「사기인술(仁術)」 도 끝장났다는 「어느 사기인생」 의 전모. 지난 20일- 전남(全南) 장흥(長興)군 장흥(長興)읍 기양리 14 김백권(金白權)씨(38)가 파리한 얼굴로 구속됐다. 보건당국의 적발로 광주(光州)지점에 송치된 김씨의 조목을 국민의료법 위반혐의. 허우대가 그럴싸하고 굵은 안경테에 훌렁 벗겨진 앞 이마가 어쨌건 의사의 외모로 골격을 갖춘 것같이 보이는 김씨. 물론 의사의 자격 요건에 겉모양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자못 의사적 분위기를 돋구어주는 용모임엔 틀림없다. 김씨는 지난 68년 12월 5일 기양리 14 소재 호생의원을 30만원에 전세들고 「연합의원」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는 이 의원의 원장이 되고, 조수로 김모씨(34)와 간호원으로 하(河)모양(22)을 채용, 2년동안 개업해왔었다. 김씨의 본적은 충남(忠南)아산(牙山)군 온양(溫陽)리. 1950년 예산(禮山)중을 졸업하고, 62년 예산출신의 공(孔)정덕 여인과 결혼했다. 그후부터 부여(夫餘)로 이사, 그곳 연합의원의 조수로 취직했다. 여기서 그의 「서당개 3년」식 의학공부가 시작된 것. 의사를 거들면서 각종의 수술, 진찰, 처방등을 익히게 됐고, 특히 부인과의 소파수술을 열심히 배워 부수입을 꽤 올렸다. 한때는 경기가 좋아 월수 7만원까지 올려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에 맛을 들였다. 그가 특히 자신을 얻은 것은 환자들이 그를 의사로 오인(誤認)하는 것. 시골 부녀자들의 순진한 눈빛에는 그의 그럴싸한 허우대가 몹시 의사스럽게 비친 것이다. 이지음 그는 경북안동(慶北安東)시 화성동 김재춘(金在春)씨(가명 44)가 Y대의과대학을 지난 1950년에 졸업, 68년 7월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충북 청주의 이모씨를 중간에 넣어 작고한 김의사의 미망인 송모씨(39)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송여인의 남편 사망후 고독한 처지인 것을 교묘히 이용, 결혼을 약속한 끝에 김의사의 의사면허증을 입수하기에 이르렀다. 면허번호는 7109번. 김씨는 자기의 본명이 김백권이며, 생년월일이 1933년 11월 12일생인데도 자신보다 7년이나 위인 김의사의 1924년생으로 대담하게 평가절상(平價切上). 또한 그는 본적이 전남 무안군이었으며 주민등록증은 장흥읍교촌리(번호181501/124019)이었으나 모든 기록을 일절 무시, 김의사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첨부하는 한편 의사면허증과 의원개설 신고필증에도 모조리 김의사로 자신을 뒤바꾸었다. 68년 7월에 사망한 김의사는 말하자면 돌팔이의사 김백권에 의해 되살아난 셈이된 것. 여기다가 김의사 미망인 송여인과도 동거, 병원을 개업하면서 부터는 일가합솔(一家合率)로 2명의 아내와 양가의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거느리게 됐다. 2년의 개업기간중 환자의 치료는 물론 모든 진단서를 발부했고, 이동안 합법적인 진단서 구실을 한게 모두 2천2백여통. 그러나 장흥읍내 8개 의원중 환자는 가장 적었다는 주민들의 얘기다. 주민들이 그의 의사자격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건 지난해 8월께. 송여인의 아들 김모군(22)이 병원을 찾아와 시비끝에 싸우게 되고, 김씨에게 맞자 『당신이 언제까지 의사행세를 하는가 두고보자. 곧 덜미가 잡히고 말거요』라고 고함을 친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가끔 읍내의사의 모임자리에서 김씨는 자신의 나이를 얘기한다는게 자기의 진짜 나이와 죽은 김의사 나이를 엇갈려 얘기해 가끔 틀렸고, 더욱 의심을 산건 Y대 출신이 자기학교의 교수는 물론 동창의 이름이나 현황도 전혀 모르고 있는 점에 동업의사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욱 「난센스」가 벌어졌다. 1년에 한번씩 윤번제로 의사회장을 하게 됐는데, 70연도 회장직이 지난 5월 5일부터 공석이 되자 자동적으로 김씨가 취임하게된 것. 그러나 이 의사회장 위임이 그의 꼬리가 드러나는 원인이 됐다. 경찰에서는 그의 신분을 은밀히 내사하기 시작한 것. 이동안 김씨는 갈수록 환자가 줄어 수입이 격감했다. 이로인해 70여만원이 부채와 본부인 유여인이 친정에서 개업 당시 빌어온 50만원등, 1백 20만원의 부채에 시달려 항상 피신해야 되었고,여기다가 유·송 두여인의 갈등으로 집안 싸움이 잦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겹치는 불안과 초조로 김씨는 밤이면 매일 만취, 맨발로 뛰어나가는 추태를 거듭했으며, 난잡한 여성관계로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이 병원을 찾아와 소동을 피우기 일쑤였다. 결국 해마다 제출하는 의사면허 경신신고와 그의 거주지 주민등록증을 대조해본 결과 그의 엄청난 사기행각이 들통이 나게 됐다. 어쨌든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귀중한 직업인 「의사」의 면허와 개업신고가 그렇게까지 허술하게 접수되고 처리되었으며, 그리고 2년이 지나도록까지도 전혀 발각나지 않았을까 하고 주민들은 보건 행정의 난맥을 나무라기도 한다. 다만 돈벌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남의 면허증을 가로채 개업한 돌팔이 의사의 악덕도 규탄을 받아야 하지만, 손쉽게 개업허가를 내주는 보건행정의 허점도 이에 못지 않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 현지의 여론이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사설] 제3지대 신당으로 국민 눈 가려지나

    열린우리당 의원 15명과 통합민주당의 의원 4명이 어제 동반 탈당했다. 이른바 ‘제3지대 대통합신당’을 만들기 위해 ‘미래창조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에 합류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이들 이외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등도 오늘 통합민주당을 탈당해 가세한다고 한다. 신당 창준위측은 이날 “어떠한 기득권도 없는 제3지대에서 대통합의 용광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시민사회 그룹을 제외한, 범여권 탈당파 의원들과 친정인 한나라당을 버린 손학규 전 경기지사 세력 등 참여인사들의 면면에서 대통합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미리 조를 짜놓고 차례로 당을 떠나는 듯한 범여권의 ‘기획탈당’ 대열을 지켜보는 것도 국민들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이다. 더욱이 통합민주당 내 김한길 공동대표 등은 당적을 보유한 채 신당 창준위에 참여한다고 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뻐꾸기처럼 ‘몸 따로, 마음 따로’상태에서 대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 편의주의적 발상도 문제이려니와 통합민주당내 파트너인 박상천 대표 등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닌가. 범여권 통합 논의가 ‘도로 열린우리당’이냐,‘도로 민주당’이냐의 정체성 논란에서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범여권이 대통합에 앞서 해야 할 일은 신당의 노선과 정체성부터 정하는 일이다. 그 바탕 위에서 범여권내 제정당 당원들의 대의를 물어 그 뜻을 좇는 게 원칙이다. 당의 간판을 바꾸고 가건물을 지어 아무나 모이라는 것은 책임정치와 거리가 멀다. 인기가 떨어진 참여정부와 책임을 나눠갖지 않겠다는 눈가림임을 국민이 먼저 안다. 소속당 당원의 의사를 묻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존중하지 않은 의원들만의 이합집산에 누가 감동하겠나.
  • [23일 TV 하이라이트]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소나무 작가’로 잘 알려진 중견작가 배병우. 영국의 팝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을 구입하는 등 세계 미술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본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담은 카메라 인생 40년,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있는 배병우가 오늘의 초대손님이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개방적인 문화 때문에 전세계 동성애자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용실이나 애견숍 등 동성애자를 위한 다양한 공간이 있는 시내 한복판에 게이 웨딩숍이 열렸다. 특별한 결혼 예복을 원하는 남성들이 주 고객이다. 예복뿐 아니라 신발, 보석, 액세서리도 준비돼 있다.   ●다큐 인(EBS 오후 9시20븐) 시원한 워터파크에 그가 떴다. 유창한 일본어로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의 휴식 시간을 지휘하는 클럽메이트 박건영.3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그는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괌 현지인인지 구분하기 힘든 국적불명의 사나이로 관광객 설문 조사 때마다 1등을 차지하는 최고의 인기 클럽메이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0분) 아내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남자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아내가 친정어머니 병간호로 집을 비운 사이 내연녀를 집으로 들였다. 바로 그때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남자는 불륜사실을 모두 들키고 말았다. 여자는 남편의 내연녀로부터 가정파탄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내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술에 취한 동건은 길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고, 지애는 은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은주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배달오토바이 한 대가 누워있는 동건의 팔 쪽으로 돌진힌다. 지애가 놀라 비명을 지르는 사이, 은주는 몸을 날려 동건을 보호한다. 그 사고로 동건은 다리를 다치고, 은주는 팔을 다치게 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얇은 껍질, 수분 가득한 단맛의 과즙, 단단한 씨를 가진 과일들이 있다. 바로 핵과류. 핵과류란 복숭아, 자두, 살구, 매실, 대추 등 단단한 씨앗을 가진 과일들을 말한다. 비타민 C와 무기질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 등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 맛있는 핵과류에 대해서 알아본다.
  • 최병현 고고학회장이 본 ‘매장문화재 조사 개선안’

    최병현 고고학회장이 본 ‘매장문화재 조사 개선안’

    고고학계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대외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매장문화재 조사 제도개선 방안’이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전국 30여개의 발굴조사 전문기관 대부분은 ‘조사원 중복투입’처럼 실정법에 어긋난 그동안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한국고고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병현(59·문화재위원) 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개인 비리가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비리가 발굴 제도 체제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어 빚어지는 문제라면 감사도 제도를 고쳐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이 중복발굴 권장 최 교수는 “대형발굴장 주변의 민원성 소형발굴에 대해 오히려 중복발굴을 권장했던 것이 문화재청이고, 나를 비롯한 문화재위원들”이라면서 “문화재청이 요청하는 중복발굴에 뛰어들었던 발굴기관들이 낭패를 당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만든 당사자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1973년부터 10년 남짓 당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소속으로 경주에서 천마총, 황남대총, 안압지, 황룡사를 발굴하며 현장경험을 쌓아 문화재청이 ‘친정’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현직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으로 ‘제도권’에 몸을 담고 있는 탓인지 그의 문화재청 비판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중복발굴이란 같은 조사원과 장비를 2곳 이상의 발굴현장에 투입하여 조사비를 더 많이 타내는 것. 지난봄, 한 발굴조사기관의 원장과 학예조사실장이 구속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 교수는 “법의 칼을 갖다대면 범죄지만 중복발굴을 하지 않으면 발굴조사기관은 운영이 되지 않고, 발굴 수요에 맞춰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발굴요원 일당 현장인부보다 적어 문화재청이 고시한 올해 ‘매장문화재 조사 용역 대가기준’은 대학을 졸업한 보조원이 하루 6만 4821원으로 7만 4000원인 현장인부보다도 적다. 그것도 중복발굴을 하지 않으면 인건비에서 기관운영비까지 일정부분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고학계가 반발하고 있는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제도개선 방안은 ▲사전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사업대상지를 3만㎡ 이상에서 10만㎡ 이상으로 늘리고 ▲발굴일수 100일 이상이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던 것은 200일 이상으로 늘리며 ▲1만㎡ 이하의 발굴허가권은 시·도로 넘기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고고학계는 수도권 신도시와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동시 추진으로 조사인력이 크게 부족하여 개발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고 있다. 최 교수는 “한해 1000건 남짓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것은 한달에 10∼20건 정도”라고 했다. 발굴 요건을 완화하면 사업자들이 발굴일수는 180∼190일로 조정하고, 발굴면적은 10만㎡ 이하로 쪼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는 개발사업은 사라지고 개발지역의 유적은 대부분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권한 지방이양시 민원에 밀릴 것 그는 또 “균형발전을 위한 권한의 지방이양은 이론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지만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재보호법과는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것”이라면서 “지역의 민원해결이 가장 중요한 역할인 시도지사가 당장 다음 선거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문화재 보호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당초 문화재청이 마련한 19개항 가운데는 ▲발굴조사 이후 보존 결정이 내려진 유적의 토지를 국가가 사주는 ‘토지매수청구권’과 ▲지표조사비와 발굴조사비의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등 글자 그대로의 개선안도 없지 않았지만, 기획예산처의 반대로 삭제된 것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처럼 개발수요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매장문화재 조사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문화재청이 개발에 따른 정부 일각의 압박에 굴복하여 문화재 파괴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전격 인사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 메모리 사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과 함께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의 인사와 조직을 전격 개편했다.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황 사장은 겸임했던 메모리사업부장 자리를 최근 조수인 부사장에게 넘겨줬다. 황 사장은 지난 2001년 메모리 사업부장을 맡았으며 2004년 반도체 총괄사장에 올랐다. 삼성이 사업연도 중간에 인사를 단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9100억원에 그쳐 5년여 만에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이번 인사는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의 실적이 부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총괄의 2분기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그쳐 2001년 4분기 이후 가장 나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부진과 직결됐다.D램 가격이 떨어진 게 주요인이었다.D램 부문은 적자를 면할 정도였다. 메모리 사업부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총괄을 대표하는 핵심 사업부다. 메모리 사업부장은 총괄 사장에 이어 사실상 2인자로 손꼽힌다. 비메모리 사업부장은 권오현 사장이 계속 맡는다. 조 부사장은 용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D램 전문가’로 불린다. 또 ‘제조 혁신전문가로 꼽힌다. 이런 까닭에 일각에선 ‘포스트 황’을 대비하는 세대교체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조 부사장이 맡았던 제조센터는 신임 변정우 전무가 맡게 됐다. 변 전무는 종전까지 제조센터의 D램 공장 중 15라인 팀장을 맡았다. 황 사장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조 부사장과 변 전무가 황 사장의 신임이 두터운 점을 감안, 황 사장 친정체제 강화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메모리 실적 악화에 대해 황 사장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LCD총괄은 또 HD디스플레이센터장에 장원기 부사장을, 모바일 LCD사업부장에 윤진혁 부사장을 각각 발령냈다.2분기 LCD 부문 영업이익은 2900억원으로 전분기(700억원)의 부진을 다소 씻었지만 이상완 LCD 총괄사장은 두 개의 사업부에서 손을 떼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업부별 책임경영과 함께 스피드 경영을 위해 일부 조직을 개편했다.”고 말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6)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6)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Ⅲ

    명 조정이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의 새 정권을 승인하기로 결정한 것은 분명 자신들이 처한 수세(守勢)를 염두에 둔 결단이었다. 명 조정은 마치 ‘모문룡의 은혜’ 때문에 인조를 책봉하는 것처럼 포장했다.‘자격이 되지 않는 인조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모문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함으로써 조선으로 하여금 모문룡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지원에 나서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後金과의 대결 열기가 고조되다 모문룡 또한 선수를 쳤다. 그는 1623년 4월, 서울로 사람을 보내 인조에게 망의(衣)와 옥대(玉帶)를 선물했다. 그것은 모두 국왕을 상징하는 물품이었다. 당시는 명 조정이 아직 인조를 책봉하기로 결정하기 한참 전이었다. 인조에게는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 고무되었던 것일까? 인조는 명나라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모문룡이 보낸 응시태(應時泰), 시가달(時家達)은 물론 명 조정이 파견한 맹양지(孟養志)를 접견했을 때, 후금에 대한 적개심을 피력하고 장차 있을 명의 정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신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은 ‘백성들이 군신(君臣)의 대의는 잘 몰라도 임진년에 명나라가 베푼 재조지은(再造之恩)에는 감격하고 있다.’면서 후금을 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반정공신 이귀(李貴)는 한술 더 떴다. 그는 “모문룡과 합세해야만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고 한 뒤, 자신이 직접 가도( 島)로 가겠다고 나섰다. 모문룡을 감동시키고 서울로 초청하여 인조와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친명(親明)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던 상황과 맞물려 후금에 대한 적개심과 자신감은 고조되었다. 인조는 서북변의 방어를 책임질 도원수(都元帥)에 무장 장만(張晩)을 임명했다. 그러면서 ‘유사시 장만은 선봉을 이끌고, 자신은 뒤에서 3군을 거느리고 후금에 대한 친정(親征)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1623년 4월24일, 도원수 장만이 임지인 안주(安州)를 향해 출발하는 날이었다. 인조는 모화관(慕華館)까지 거둥하여 그를 환송했다. 당시 인조는 융복(戎服) 차림이었다. 모화관에는 조정의 백관들과 종실(宗室)들까지 모두 도열해 있었다. 인조는 장만에게 상방검(尙方劍)을 하사했다.“명령을 어기는 자는 이것으로 처치하라.”는 주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명을 도와 후금을 정벌하겠다는 조선의 의지만큼은 결연했다. 이윽고 6월1일, 명의 등래순무(登萊巡撫) 손원화(孫元化)는 군사 원조를 요청하는 자문(咨文)을 보내 왔다. 비변사는 “우리는 지금 군사를 징발하고 양식을 마련해 군문(軍門)의 영을 기다리고 있다.”며 “모문룡과 합세해 요동을 회복하겠다.”는 내용으로 답신을 보냈다.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광해군이 취했던 애매한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이같은 조선의 태도에 고무되었는지 모문룡은 “조선과 합세해 요동을 정벌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흘리고 있었다. ●책봉례 주관 明환관 은 13만냥 뺏어 조선에서 후금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가고 있던 1625년 6월, 명의 태감(太監) 왕민정(王敏政)과 호양보(胡良輔)가 서울로 들어왔다. 명 조정이 인조를 조선 국왕으로 인정하는 공식적인 책봉례(冊封禮)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새 정권의 숙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모두 환관(宦官)이었던 왕민정과 호양보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조선에 왔다.1624년 2월, 명 조정이 인조를 책봉하기로 결정했을 무렵부터 명의 환관들은 입맛을 다셨다. 조선으로 서로 가겠다고 다투었다. 두 사람이 선발된 것은, 당시 명의 실권자나 마찬가지였던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수만 냥의 은을 뇌물로 바쳤기 때문이었다. 명의 천계(天啓) 황제는 두 사람에게 은 3000냥을 여비로 하사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은을 징색하여 원한을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본전을 뽑으려고’ 덤볐다. 왕민정 등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매일 1만 냥씩의 은을 달라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이 접대를 위해 준비한 한강 유람 등의 일정도 거부했다. 오로지 은이었다. 조정은 그들을 위해 양화진(楊花津) 등지에 선박을 미리 대기시켜 놓았다. 그들이 유람을 거부하자 배를 강제로 차출당했던 어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갔다. 이들이 은 5000냥으로 인삼 500근을 구입해 달라고 하자 호조판서 심열(沈悅)은 개성부(開城府)로 하여금 바꾸어 주게 하였다. 개성 유수(留守) 민성징(閔聖徵)은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가호(家戶)마다 강제로 징수했다. 제때 납입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체포되었고, 그 때문에 개성부의 옥이 가득 찼다. 독촉과 닦달 때문에 결국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왕민정 등은 인삼을 얻은 뒤에는 지불했던 은을 유유히 회수했다. 조선 조정은 접대를 위해 은 13만 냥을 준비했다. 조선 내부의 은만으로는 모자라 모문룡에게 빌린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13만 냥이란 액수는 광해군대 조선에 왔던 환관들이 수탈했던 양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무리인 줄을 알면서도 왕민정 등의 요구를 들어주었다.2년 가까이나 끌어왔던 책봉을 마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광해군대의 ‘과거’를 비판했지만 인조정권 역시 명의 태감들이 자행한 수탈을 피해 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지워지지 않은 ‘흔적’ 왕민정 등이 와서 책봉례를 거행함으로써 인조는 공식적으로 ‘조선 국왕’이 되었다. 인조와 새 정권은 이제 정통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명 조정 일각에서는 여전히 인조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했다.1627년(인조 5) 명의 예부상서는 북경에 왔던 조선 사신 일행에게 미묘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광해군의 생존 여부와 인조가 조선 팔도를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당황한 조선 사신 김지수(金地粹)는 인조가 조선 내에서 만인의 추대를 받았다는 것과 명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을 거듭 환기시켜야 했다. 인조반정을 삐딱하게 보는 명의 태도는 역사서 속에도 흔적을 남겼다.1623년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났음을 기록했던 명의 ‘희종실록(熹宗實錄)’과 사찬(私撰) 사서(史書)인 ‘양조종신록(兩朝從信錄)’에는 여전히 인조반정을 ‘찬탈’로 기록하고 있었다. 조선 조정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인지했다. 병자호란 직전 북경에 갔다가 우연히 ‘양조종신록’을 구입한 고용후(高用厚)는 ‘찬탈이라는 기사를 보는 순간 머리털이 거꾸로 서고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조선 조정은 명 조정을 상대로 교섭하여 ‘찬탈’이라는 용어를 제거하려 했으나 1644년 명이 멸망하면서 무산되었다. ‘찬탈’ 운운하는 기사를 고치는 것은 효종대 이후에도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인조의 뒤를 이은 역대 왕들은 전부 ‘난신적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찬탈’이라고 적어 놓은 당사자인 명은 사라지고 없었다. 조선 조정은 하는 수 없이 청(淸)을 상대로 교섭에 나섰다. 그런데 그것은 그다지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에도 조선은 여전히 청을 ‘오랑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오랑캐’에게 명나라 시절에 만들어진 ‘과거의 흔적’을 지워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청 또한 조선의 수정 요청에 그다지 기꺼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현종대 이후 역대 왕들은 대대로 청 조정에 변무사(辨誣使)를 보내 사정했고,‘양조종신록’ 기사의 수정 작업은 영조 대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하지만 ‘희종실록’의 기사는 끝내 고치지 못했다. 자신들의 전략적 필요 때문에 인조를 책봉하긴 했지만, 인조반정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명의 이중적 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현대유앤아이 대표이사에 이기승씨

    현대그룹은 2일 이기승(57) 그룹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을 정보기술(IT) 계열사인 현대유앤아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겸임 발령했다. 이로써 현정은 회장의 친정 체제가 더욱 확고해졌다. 이 부사장은 현 회장 취임 이후 영입된 전략·재무통이다. 외환은행 영업본부장 출신이다. 현대유앤아이는 매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룹내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현 회장의 맏딸인 지이씨가 전무로 근무중이다. 이 부사장은 두차례의 ‘경영권 분쟁’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그룹내 실세로 떠올랐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허걱! 결혼하고 보니 ‘신부’가 남자라구요”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있습니까.결혼하고 보니 ‘신부’가 남자라니요?” 중국 대륙에 한 20대 남성이 결혼을 하고보니 신부가 남자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발칵 뒤집혔다. 이같이 황당한 일을 당한 장본인은 중국 중북부 산시(陝西)성 쑤이더(綏德)현 전좡(田庄)진 황자구이촌에 살고 있는 장(張·22)모씨.집안 형편이 어려워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일찍 포크레인 운전기술을 배운 덕에 돈벌이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장씨는 지난달 26일 집안의 돈을 탈탈 터는 것도 모자라 빌린 돈 4만위안(약 480만원)을 들여 키꼴이 껑충한 신부를 맞아 결혼식을 올렸는데,알고보니 신부가 남자인 것으로 드러나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신화통신(新華通訊)이 29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신랑 장씨는 1개월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바오베이신얼(寶貝欣兒)’라는 ID를 가진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다.두 사람은 시간이 날때마다 채팅을 통해 밀어를 나누며 사랑을 속삭였다.뜨겁게 달아오른 남녀는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됐고 오는 9월 13일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을 하는 등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결혼을 앞두고 신부 얼굴을 보기 위해 장씨는 신부 집이 있는 산시성 위린(楡林)시 우부(吳堡)현으로 갔다.그곳에서 ‘바오베이신얼’이라는 ID의 장신씨를 만난 뒤 장씨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이들이 함께 돌아온 것을 본 장씨의 부모는 “장신씨가 키가 너무 크고 얼굴을 그리 예쁘지 않지만 며느리감으로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장씨의 부모는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여동생이 3명이나 있어 장씨가 하루 빨리 결혼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이때부터 장신씨는 장씨의 집에 그대로 눌러앉아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장씨 부모는 서둘러 장신씨에게 “친정 부모님에게 하루빨리 결혼식을 올리자고 연락하고…” 라며 재촉했다.양가는 결혼식 날짜를 6월 24일로 잡았다. 이에 장신씨의 부모도 예물 준비 값으로 4800위안(약 57만 6000원)을 보내왔다.예물 준비값을 받은 장씨의 부모는 결혼식 준비를 위해 돼지 1마리,양 1마리를 잡는 등 많은 음식을 준비했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23일 밤,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결혼식 준비에 힘들어하던 예비 신부 장신씨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예비 신랑 장씨는 집안의 뒷일을 마무리한 뒤 장신씨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이게 웬일인가.잠들어 있는 장신씨의 이불을 걷는 순간,장씨는 까무러칠뻔 했다. 장신씨가 남자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너무 황당해 우두망찰하던 장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온 장씨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상황을 설명하자,그녀는“어차피 일을 벌어진 것이니 할 수 없다.”며 “일단 내일 결혼식을 치른 뒤 ‘남자 신부’를 집으로 보내라.”고 말했다. 이튿날,이들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사진도 찍고,비디오도 촬영하고….하지만 이들의 결혼식 그 이튿날 파경을 맞았다.신랑 장씨는 ‘남자신부’ 장신씨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차비 300위안(약 3만 6000원)을 쥐어줬다.‘남자신부’ 장신씨가 떠난 뒤 조금 있다 신랑 장씨도 정처없이 집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공기업] 기획처 공공혁신본부 멤버 그들의 ‘장점 그리고 단점’

    [공기업] 기획처 공공혁신본부 멤버 그들의 ‘장점 그리고 단점’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는 공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럴 타워’다. 지난 4월 ‘공공기관 운영법’ 시행으로 공기업의 관리·감독권을 갖게 돼 ‘파워’부서로 떠올랐지만 공기업 감사들의 ‘이구아수 폭포’ 세미나 파문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뢰밭’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용걸(49·행시 23회) 공공혁신본부장은 빠른 판단력과 두뇌회전으로 의사 결정과 핵심 접근에 누구보다도 신속하고 정확하다는 평이다. 의견이 다른 후배들을 설득,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후배들로부터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몇 안되는 보스에 속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재정정책과장, 사회재정심의관, 재정정책운용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기획통’이다. 그러나 승진이 빨라 후배들의 애환에 다소 어둡다는 지적도 있다. 류성걸(49·23회) 공공정책관은 말수가 적고 점잖아 안동 양반으로 불린다. 업무에 깊숙이 파고 들어 일처리가 꼼꼼하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공공혁신본부의 전신인 정부개혁실의 공공1팀장을 맡아 포스코, 한국통신 등의 민영화를 주도했다. 고집이 세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뚝심의 사나이로 불리는 김용진(45·30회) 정책총괄팀장은 DJ정부 때 정부 개혁의 산파를 맡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복지·노동예산과장 시절 보건복지부 출신보다 업무를 더 꿰뚫어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돌파력, 성실함은 물론 운동도 잘하고 술도 잘 먹어 선후배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공기업 정책기획 및 조정, 총괄을 맡고 있는데 공기업의 혁신, 경영지침 수립도 이곳에서 한다. 진중한 성품의 위성백(46·32회) 제도혁신팀장은 사회간접자본(SOC)부문의 전문가다. 전국 도로명까지 기억해 건교부 직원들도 놀랄 정도다. 공기업 운영의 중장기 정책을 개발하고, 공기업의 경영진단기법 개발, 진단계획 수립을 맡고 있다. 이후명(40·34회) 평가분석팀장은 공공기관 운영법 제정을 사실상 주도했다. 프랑스 엘리트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ENA)출신으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의견도 서슴지 않고 제시한다. 공기업 성과관리 계획과 제도개선, 경영실적 평가가 주 업무다. 류용섭(51·비고시) 인재경영팀장은 업무능력과 성실함으로 능력을 인정 받은 케이스로 외환위기(IMF)때 실업대책을 세운 이후 인재경영의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공기업의 인사제도, 임금체계, 비상임이사·감사 및 감사위원에 대한 직무수행 실적 평가기준 수립을 한다. 한상록(42) 혁신관리팀장은 한국능률협회 경영전략본부장 등을 지내다 지난해 11월 개방직 공모로 왔다. 혁신 관련 아이디어가 많은 컨설팅 전문가다. 공기업 혁신진단·평가 계획을 수립하고 제도개선을 한다. 산업자원부 출신 이관섭(45·27회) 경영지원단장은 지난 4월 고위공무원단 공모 과정에서 예상을 뒤엎고 이 자리를 차지할 만큼 유능하다는 평이다. 친정인 산자부에서 기업의 산업정책 등을 펴면서 익힌 현장 감각으로 새로운 공직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타부처 출신인데도 빠르게 연착륙 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친화력도 갖췄다. 정규돈(44·31회) 경영지원 1팀장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함과 과묵함으로 유명하다. 자산운영 업무에 밝다. 시장형 공기업,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재정경제부, 농림부, 건교부, 해수부, 금융감독위 소관의 기타 공공기관을 담당한다. 윤병태(46·36회) 경영지원 2팀장은 사무관 시절 ‘맥가이버’로 불릴 만큼 재주가 많다.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예산총괄계장을 지냈다. 임종성(47·33회) 경영지원 3팀장은 DJ정부 때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를 처음 도입한 인물로 공공개혁 업무에 밝다.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과 교육부, 과기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소관 공공기관을 맡고 있다. 스타일리스트인 김성진(37·36회) 경영지원 4팀장은 기획처 내에서 보기 드물게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예산통’으로 분류된다.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과 국무조정실, 문광부, 정통부, 환경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문화재청, 청소년위원회 소관 공공기관을 챙기고 있다. 한완선(51) 기금제도기획관은 수원대 경영학부 교수 출신으로 지난해 말 개방직 공모때 기금 여유자금운영, 부담금 관리 등의 적임자로 평가돼 발탁됐다.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증권선물거래소 자문위원 등 기업 실무경력도 갖춘 자산기금 관리운영의 전문가다. 경제행정예산과장을 지낸 박성동(47·36회) 자산운용팀장은 재무부 출신으로 금융업무에 밝다.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기금 여유자금에 대한 운용·관리를 맡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때 2군행 등 수모… ‘집념의 결실’

    이승엽(31·요미우리)이 1일 마침내 일본 진출 3년6개월 만에 ‘100호 홈런’ 고지를 밟았다. 수차례의 어려움과 수모를 딛고 거둔 결과라 의미는 숫자 이상이다. 2003년 한국프로야구 삼성에서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을 작성한 이승엽은 “더 이상 한국에서 이룰 것이 없다.”며 이듬해 메이저리거의 꿈을 일단 접고 교두보로 일본프로야구(지바 롯데)에 데뷔했다.8경기 만에 역전 결승 투런포로 신고식도 화려하게 치렀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현미경 야구’에 부딪혀 온몸에 퍼런 멍이 들었다. 일본 투수들은 그의 약점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 ‘면도날 제구력’으로 공략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초조해진 이승엽은 타격감마저 무너졌다. 생애 첫 2군행이라는 수모도 겪었다. 그해 성적표는 타율 .240,14홈런 50타점으로 초라했다. 이승엽은 시범경기 부진으로 2005년 개막전을 2군에서 맞아야 했다. 곧 1군에 올라왔지만 이번엔 ‘플래툰 시스템’이란 덫에 걸렸다. 당시 지바 롯데의 보비 밸런타인 감독이 좌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좌타자 이승엽을 타석에서 빼곤 했다. 출장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그는 30홈런을 날려 외국인 타자로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롯데가 재팬시리즈를 제패하는 데도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승엽은 지난해 미프로야구 진출이 여의치 않자 친정팀을 버리고 금전적 손해를 감수한 채 요미우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제70대 요미우리 4번 타자’라는 명예를 안기며 보답했다. 하라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은 이승엽에겐 천군만마였다. 막판 무릎 부상에도 41홈런으로 타이론 우즈(주니치)에 6개차로 센트럴리그 홈런 2위에 올랐다.4년 계약의 대박을 터뜨린 올해는 개막전에서 2년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또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다. 어깨, 손가락 부상 등이 겹치며 3개월 동안 헤맸다. 자신감도 잃어 헛방망이질을 연발했다. 붙박이 4번 타자 자리도 포수 아베 신노스케에게 내주고 6번으로 강등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야후 신임 CEO에 제리양

    세계 2위의 검색엔진 업체 야후의 신임 CEO에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제리양(38)이 취임하게 됐다고 BBC 등 외신들이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야후의 실적이 계속 나빠지고 1위 업체 구글과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자 창업자가 경영일선에 나와 친정(親政)에 나선 것이다. 현 CEO를 맡고 있는 테리 세멜(64)은 CEO자리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는 인터넷 검색 시장의 26%를 차지하며 49%를 차지하는 구글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구글에 밀려 위축되는 상황이다.2007년 첫 3개월 동안에만 영업 이익이 16% 감소하고 야심차게 시작한 비디오 및 모바일 분야가 부진을 보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제리양은 타이완 출신으로 10살때 미국으로 건너와 스탠퍼드 대학시절 야후의 틀을 만들었다.1995년 데이비드 파일로와 함께 야후를 설립했다. 현재 그의 재산은 22억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女談餘談] 즐거운 상가/ 최광숙 정치부 차장

    며칠 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선배의 시어머니 상가에서다. 이 선배의 별명은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영화 ‘뽀빠이’의 연인 ‘올리브’다. 그래서 우리 모임은 언제부터인지 대장격인 이 선배의 별명인 ‘올리브’로 불린다.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해 왔다. 남들은 산책 코스로 여기는 우면산 등 야트막한 산들의 정상을 향해 우린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차 한 잔 놓고 이야기꽃을 피워야 등산 일정은 끝났다. 산 타는 시간보다 먹고 노닥거리는 시간이 늘 더 길었다.. ‘올리브’ 모임은 30대∼50대 여인 6명으로만 구성됐다. 나이로 치면 내가 ‘허리’격이라 총무를 맡았다. 총무의 부덕으로 몇 달을 그냥 보냈다. 그러던 중 이 선배가 상을 당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부랴부랴 회원들에게 연락, 밤 9시30분 상가에서 만났다. 정중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상주와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상가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의 공백에 대한 ‘책임 추궁’이 서로 이어졌다.“등산 안 가냐.”는 재촉의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데 대한 ‘죄의식’을 우린 그렇게 ‘남 탓’으로 몰며 낄낄댔다. 다양한 직업의 여인들이 쏟아내는 화제는 샘물 솟듯 쏟아졌다. 정치권에 나도는 각종 최신 설(說)에 대한 그럴듯한 검증 작업을 시작으로 낙마한 대권 후보들의 뒷얘기, 유력 대권 후보들의 가족 얘기, 설익은 휴가 계획 등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나왔다. 화제는 자연스레 재테크로 넘어갔다. 작전 세력이 들어간 주식을 샀다가 재미 좀 보는가 싶더니 결국 얼마가 물렸다는 하소연은 서곡에 불과. 며칠 사이 아이들 학비라도 벌겠다며 친정에서 빌린 거액을 사설 투자자에게 맡겼다가 반토막 났다는, 절절한 사연으로 이어졌다. 돈 잃고 날밤 새운 얘기도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듯 신났다. 박장대소하며 웃다가 뒤늦게 상가에 있음을 깨달았다. 고인도 만남의 장이 돼버린 ‘즐거운 상가’를 이해해 주시겠지…. 고인 덕분에 중단 위기의 ‘올리브’ 모임의 날짜가 다시 정해졌다. 최광숙 정치부 차장 bori@seoul.co.kr
  • “중국어 특기 살려 수사도 하고 싶어”

    “외사로 입문하지만 중국어 특기를 살려 나중에는 수사 일도 해보고 싶어요.” 8일 충북 충주의 중앙경찰학교 졸업 및 임용식.6개월 동안의 험난한 교육을 마치고 경장으로 임용된 신춘화(38·여)씨는 중국동포 출신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또박 또박한 발음으로 포부를 밝혔다. 중국 하얼빈의 과학기술대학에서 재무관리를 전공한 신 경장은 1995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귀화한 뒤 프리랜서로 통·번역사 일을 하면서 관광가이드로 일했다.2005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해 지난 2월 졸업했다. 신 경장이 경찰에 입문하게 된 것은 서울 서대문경찰서 외사계의 여인엽 경장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2004년 관광교육원에서 알게 된 여 경장의 소개로 서대문서 강력반에서 중국어 통역 지원을 하면서 경찰관의 꿈을 키우게 됐다.“그 전까지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귀화인이라 공직은 힘들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서대문서에서 중국인 피해자들을 돕다보니 늦게나마 한 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막내동생뻘 동기들과 훈련과 교육을 받다보니 힘든 순간도 많았다. 이번 임용자 가운데 최고령인 신 경장은 “나이 탓에 체력적으로도 달리고 공부하는 데도 힘들었죠. 하지만 동기들이 많이 도와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졸업식장을 찾은 남편이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라며 안아주는 순간 힘들었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고 한다.“하얼빈의 친정에서 돌봐주시는 아들이 못 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라면서 신 경장은 활짝 웃었다. 한편 이날 임용된 747명 가운데는 7급 상이군경인 이호일(31) 경장과 4급 지체장애인 김수미(31·여) 경장이 포함돼 주위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목발 짚고 돌아오는 선수들

    [한승원 토굴살이] 목발 짚고 돌아오는 선수들

    유럽 축구 시장으로 나갔던 박지성 선수가 목발을 짚고 돌아와 치료 중이고, 설기현 선수 또한 그렇고, 이영표 선수는 무릎 수술로 인한 불편한 몸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수출 상품이다. 유럽시장에 내다 판 상품. 벤치에 앉아 있다가, 감독이 기회를 주기가 무섭게 뛰어 나가서 사력을 다해 공을 빼앗아 차고 나가 골을 성공시켜 주지 않으면 가치가 단박 곤두박질쳐 버리는 인간상품. 그 상품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가. 월드컵 축구 4강 진출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 프로축구 시장에 나온 상품들은 결국 세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하여 사투한다. 나는 그들의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조이고 눈물겨워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살아가기는 한 찰나도 중단할 수 없는, 한 바탕 한 바탕의 거듭된 싸움이다. 영화배우나 감독이나 시인이나 소설가나 가수나 창녀나 디자이너들이나 다 하나하나의 인간상품들이다.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몇몇의 감독과 강수연을 비롯한 몇몇 배우들의 뒤를 이어, 이창동 감독과 한 여배우가 세계 시장에서 대단한 상품으로 인정받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한국영화 무너지는 소리가 꽈당꽈당 하는 판에, 그들이 만든 영화 ‘밀양’은 그 덕택에 바야흐로 국내시장에서 뜨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미국이나 유럽이나 아시아 각국의 시장에서 어떻게 얼마나 팔리게 될까. 얼마 전, 문화관광부에서는 달러를 억수로 퍼부으며, 한국문학을 유럽에 내다 팔려는 행사를 벌인 바 있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신문 방송의 기사만 보고, 거기에 두 차례나 참여한 바 있는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지금 이 이야기를 한다. 독일의 이 도시 저 도시의 크고 작은 서점들에서 별로 많지 않은 독자들을 상대로,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작품 한두 대목을 낭송하고, 독자와의 대화를 했다. 죄 없는 나의 아내도 거기에 동원되었다. 딸이 당시 네 살 난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낭송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니, 주최 측에서, 아기 봐줄 사람을 데리고 갈 경우, 왕복 여비와 숙식비를 부담하겠다고 하여 친정어머니인 내 아내가 따라갔던 것이다. 그 나라의 한두 도시에 한국문학주간을 만들어 전단지를 돌리고 광고지를 바람벽에 붙이고 한 그것은 결국 외국에서 팔리지 않은 한국문학을 세계시장에 알리고 팔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슬프고 안타까운 발버둥이었다. 축구선수로 치자면, 운동장에 나가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 한 채 벤치 신세만 지고 있다가 돌아온 것 아니었을까. 아니, 기회를 얻기는 얻었지만,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도 못한 채 공 몰고 가는 사람들 뒤만 쫓아다니다가 돌아온 것 아니었을까. 제대로 된 장편소설 한 편도 쓰지 않고, 단편소설집 서너 권 낸 작가가 한국의 대표 작가로 인정되고 있고, 문예진흥위원회가 단편소설 한 편에 수백만원씩을 지원해 주고, 단편소설 한 편에 몇 천만원의 상금을 주는 한국문학시장에서는 좋은 장편소설이 생산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외국말로의 번역은 훨씬 그 뒤의 문제이다. 모든 것은, 똥마려운 강아지가 울타리 꿰어가듯이 갑작스럽게 뚫고 나아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물품을 내다팔고 사들이는데 있어서 관세를 철폐하자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판국에, 나는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한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주고 받았다는 말을 화두로 들곤 한다. “자네는 언제 어떻게 술을 마시는가.”“술이 생기면 마시고 생기지 않으면 마시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먼저 건강하고 싱싱한 밀 씨앗부터 구해다가 좋은 밭에다가 심어 정성을 다해 가꾸고 수확을 한 다음 누룩을 만드네. 그리고 좋은 쌀로 만든 고두밥하고 섞어 담가 잘 익힌 다음 두고두고 즐기며 마시네.” 소설가
  • 잔인한 혼수전쟁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무리한 혼수 때문에 아예 혼사를 깨버리는 집안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거의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버린 우리의 흉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2003년 김수현 극본 추석특집 드라마 ‘혼수’의 기획 의도 중에서) 사랑만 있으면 살 것 같은 예비 부부들에게 ‘혼수’는 결혼이라는 산봉우리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걸림돌 구실을 한다. 결혼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집안간의 갈등 문제로 비화될 경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혼수’는 드라마의 주요 갈등 소재로 단골처럼 등장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들에게는 식상하기 짝이 없는 뻔한 설정으로 치부되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혼수로 인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 여성과 남성들한테서 혼수에 얽힌 속앓이를 들어봤다. ●‘과도한 혼수는 남자도 괴롭힌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과도한 혼수가 아니라 정성인데….” 중소기업에 다니는 결혼 4년차 김모(32)씨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원하지 않아 아직 아기가 없다. 어머니는 결혼 때부터 장남인 김씨 부부에게 손자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정작 김씨가 아내에게 아기를 갖자고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혼수를 너무 많이 받아서라고 한다. 아내는 고급 승용차에 밍크코트까지 혼수로 해왔다. 아기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할 때면 아내는 “내가 남들처럼 혼수를 적게 했느냐, 아니면 부모님 보약을 안 해 드렸냐.”며 따진다고 한다. 김씨는 “결혼 전에 어머니는 과도한 혼수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좋아서 덥석 받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전했다. 중소기업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양모(27)씨는 신부측에서 보내온 예단비 500만원 때문에 맘고생을 했다. 보통 예단비의 절반을 처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인데 처가에서 돈 액수에 대해 짝수가 아닌 홀수로 돌아오는 것이 관습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양씨 어머니는 가족이 많은 형편상 200만원 이상 보낼 수 없다고 하셨고, 속앓이를 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돈 100만원을 보탰다. 양씨는 “남자의 입장에서 처가에 우리집을 능력 있게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여자와 달리 남자는 혼수 문제에 대해 상담할 곳이 전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고시를 준비하다가 대기업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인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린 송모(33)씨는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믿으시는 어머니 때문에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내는 4년 고시준비기간 동안 늘 옆에서 힘이 돼 주고 실패해 좌절하던 자신에게 ‘다른 길이면 어떠냐.’며 취업 준비까지 도와준 둘도 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하지만 결혼 준비가 시작되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고시에서 떨어진 이유를 아내에게 돌리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고의 명문대를 나온 아들이 혼수도 많이 못 받고 결혼한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송씨는 “오히려 나와 결혼하기에는 아까운 여자라고 말해도 어머니께서는 도리어 네가 최고인데 무슨 소리냐며 역정을 내신다.”면서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혼수 문제 ‘사전 조율로 대처하라’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1)씨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장모님은 서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관계지만 사전 조율만 잘하면 혼수 문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씨는 평소 아버지의 완고함을 아는지라 결혼준비 중 혼수문제로 얼굴이 붉어질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돈 300만원으로 전자 제품의 일부를 사서 나중에 혼수로 가져오라며 처가에 드렸다. 그리고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본가 손님들을 위해 버스 대여 비용을 대줄 것을 부탁했다. 다음은 아버지를 뵙고, 처가에서 알아서 본가의 손님들을 대접한다고 하니 우리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자고 권했다. 그 결과 양쪽집이 알아서 서로를 배려하게 됐고, 결국 처가에서 결혼식 비용 일체를 지불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혼수는 알고 보면 돈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인 것 같다.”면서 “한번쯤 상대측이 우리 편을 대우해 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서로 더 많은 배려를 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이모(30)씨는 부부가 합의하여 모든 혼수 과정을 생략해 문제가 전혀 없었다. 연애를 하는 5년 동안 부모님께 계속 ‘서로 형편을 뻔히 아니 전세를 얻는 데 모든 돈을 넣고 싶다.’고 자신들의 뜻을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의아해하시던 부모님도 이곳 저곳 할인점 등을 돌아다니며 한푼 두푼 아끼는 자식을 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이씨는 “요즘 실속 있는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널리 퍼진 ‘트렌드’”라면서 “부모님께서 전셋집에 좋은 세간살이가 있어봤자 2년에 한번씩 이사하다가 망가지기 일쑤라며 우리를 이해해주셨다.”고 전했다. 또 “과도한 혼수로 인해 파경에 이르는 커플에 대한 소문은 있지만 주위에서 실제로 본 적은 없다.”면서 “내 주변에는 부부가 한 통장에 돈을 모아 함께 혼수를 장만하러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유학준비 중인 장모(30)씨는 오히려 처가에 예단비를 드렸다. 물론 부모의 허락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이 겪는 혼수 문제를 말씀드리면서 자신은 딸을 곱게 키워 보내주시는 장인·장모에게 오히려 옷 한 벌 해드리고 싶다고 졸랐다. 부모님은 결국 ‘형수들에게 예단은 받을 만큼 받았으니 4형제 중 막내아들 결혼은 다르게 해보자.’며 승낙하셨다. 장씨는 500만원을 마련해 처가에 보냈고, 처가에서는 그 중 300만원을 돌려보냈다. 장씨는 “예단이나 혼수를 굳어진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게 보면 배우자를 잘 길러 주셔서 감사하다는 표현이 예단이고, 같이 살 물건을 마련하는 것이 혼수”라면서 “감사의 뜻을 표현함에 남녀가 다를 것이 없고, 혼수를 마련하는 데는 힘을 합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무리한 요구에 스트레스 ‘팍팍’ 결혼 7년차 주부 경모(35)씨는 결혼 당시 시부모가 ‘1억원짜리 아파트를 사주겠다.’고 해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시부모는 아파트 한 채로 온갖 위세를 부렸다. 예단비로 1000만원을 요구했다. 보통 예단비에서 많게는 절반, 적게는 30∼40%를 돌려주는 게 관례다. 경씨도 시부모가 그렇게 할 줄 알았지만 시부모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친정이나 경씨는 1억원짜리 집을 사준다는 생각에 꾹 참고 넘어갔지만 알고 보니 5000만원은 남편 명의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경씨는 “시부모님이 이자만 내고 있으면 1년 있다 원금을 전부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우리 부부가 고스란히 갚았다.”면서 “시부모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과도한 혼수를 요구받았다는 생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면서 허탈해했다. 결혼 5년차인 양모(35)씨는 결혼할 당시 남편은 실직 상태였다. 결혼 자금이 한참 모자라 별 수 없이 결혼하면 시댁 옥탑방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양씨는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을 약속했다. 신접 살림을 차리려니 준비할 게 많았다. 시어머니와 의논해서 가전제품, 가구, 그릇 등을 모두 샀다. 그런데 양씨가 혼수로 사간 C그릇세트에 대해 시어머니 말씀이 양씨에게 두고 두고 상처를 줬다.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품위도 없는 이런 그릇을 사왔느냐.’며 대놓고 면박을 주더라고요. 당신 아들 능력 없어서 옥탑방에서 신혼살림 시작하는 형편은 생각 안 하고 그릇 가지고 그렇게 구박을 하시니 제 기분이 어떻겠어요.” 황모(34)씨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친구 덕분에 시부모에게 드릴 반상기 세트와 이불 세트를 유명회사 제품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안 드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특정 회사를 거론하면서 이불 세트와 반상기 세트를 그걸로 바꿔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예단이라는 건 양가가 서로 예의로 주고받는 선물 아닌가요. 친정에선 남편쪽 예물에 아무 말이 없는데 시어머니는 왜 이것저것 바라는 게 많은 걸까요.” 아들을 둔 황씨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나도 나중에 우리 아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 우리 시어머니처럼 될까.” 지난달 결혼한 새색시 장모(28)씨는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 시어머니에게 “이불이나 예단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면서 의견을 구했다. 시어머니는 대뜸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너 알아서 해와라.”고 말했고, 장씨는 그 얘길 듣고 젊은 시어머니라 역시 다르구나 싶어 친정 엄마에게 자랑까지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이불은 무슨 무슨 색으로 한다. 재료는 비단을 써야 한다. 반상기는 칠첩반상으로 해야 하고….” 장씨는 “친정 엄마가 그 얘길 듣고는 ‘어련히 다 알아서 할까.’라며 불쾌해하셨다.”면서 “처음엔 안 그럴 것처럼 그러시다가 나중에 달라지니까 더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남편’은 ‘남의 편’ 유모(40)씨는 “시어머니가 50만∼60만원 하는 열돈짜리 금팔찌, 유명 브랜드 이불세트 하는 식으로 이것저것 요구하니까 나도 자꾸 계산을 하게 됐다.”면서 “처음엔 예물을 조금만 하려 했지만 나중에는 ‘나도 남들 하는 만큼 예물을 받아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은 “당신은 항상 이렇게 계산적이냐. 결혼하는 데까지 이렇게 주판을 튕겨야겠느냐.”며 유씨를 몰아붙였다. “정작 자기 어머니가 장래 며느리될 사람에게 그렇게 주판알을 튕기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면서 나한테 그런 얘길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히더라고요.” 나모(34)씨는 혼수를 비롯해 결혼과 관련해 신부쪽에서 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다 자기가 결정해 친정부모에게 양해를 구했다. 친정 부모도 나씨 뜻을 다 받아줬다. 그런데 남편과 결정한 문제가 사사건건 시부모 간섭을 받았다. 남편은 나씨와 협의한 다음에는 시부모 허락을 받아놨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시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편과 자신이 결정한 것을 밥먹듯 뒤집어 버렸다. 나씨는 “사전에 혼수문제로 분란 생기지 않게 각자 자기집안을 잘 챙기기로 했는데 남편은 그걸 제대로 못해 사사건건 시어머니 간섭을 받게 됐다.”면서 “한마디로 혼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 잘난 남편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결혼 3년차 김모(34)씨는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다소 과장돼 보이는 ‘혼수’ 얘기가 여자들에겐 남 얘기가 아니다.”면서 “결혼 전에 혼수에 대해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등의 의견을 미리 들어 본 뒤 남편과 함께 원만한 해결 방법을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프로야구] 롯데 사직구장 악몽 ‘THE END’

    프로야구 LG의 박명환이 ‘친정’ 두산을 상대로 승리를 낚으며 김재박 감독에게 통산 800승을 선물했다. 롯데는 상대의 실책에 힘입어 사직구장 7연패를 끊어냈다. 지난해 말 두산에서 ‘서울 라이벌’ LG로 둥지를 옮긴 박명환은 1일 열린 잠실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11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친정 동료들을 향해 공을 뿌렸다. 박명환의 등판에 앞서 LG는 1회초 타자 11명이 나와 28분 동안 두산 선발 김명제를 두들겼다.6안타와 2볼넷을 묶어 7점을 뽑아낸 것. 기분 좋게 마운드에 나선 박명환은 시속 130㎞ 중반의 슬라이더와 허를 찌르는 몸쪽 직구 등으로 5회까지 삼진 7개를 뽑아내는 한편, 안타는 3개만 내주며 옛 동료들을 요리했다. 두산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6회 1사 뒤 3안타를 집중시켜 2점을 만회했고,7회에도 2사 뒤 연속 3안타로 1점을 추가하는 뒷심을 발휘하며 추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LG는 8회 2점을 더 달아나며 9-3으로 이겼다. 박명환은 7이닝 동안 9안타 1볼넷 3실점으로 시즌 7승(무패)째를 낚아 다니엘 리오스(두산) 등과 함께 다승 공동 1위에 나섰다. 김재박 LG 감독은 프로야구 사상 다섯 번째로 800승 고지를 밟는 기염을 토했다. 사상 최연소(53세 9일)이자 최단 시즌(12시즌) 기록. 롯데는 사직 7연패에서 벗어나며 홈팬들을 오랜만에 기쁘게 했다.1-1로 맞선 8회말 1사 2루에서 롯데 정보명이 굴린 땅볼을 KIA 2루수 김종국이 알을 까는 바람에 2루 주자 이승화가 홈까지 파고들어 결승점을 뽑았다. 롯데 마무리 호세 카브레라는 9회초 KIA 공격을 무안타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귀중한 승리를 지켜냈다. 롯데 팬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풍운아’ 최향남의 국내 복귀 첫 승전고가 또 다시 미뤄졌다는 것. 최향남은 이날 올해 9번째 선발 등판에서 7과3분의1이닝 동안 6안타(2볼넷) 1실점으로 역투했으나 팀 타선이 제때 터지지 않아 4패의 성적표를 그대로 유지했다. 삼성은 대전에서 안지만의 6이닝 노히트노런(무안타 2볼넷) 피칭을 시작으로 오승환까지 이어지는 철벽 계투를 앞세워 한화를 5-0으로 완파했다. 한화의 안타는 제이콥 크루즈의 2루타 2개에 불과했다.1-0으로 앞서던 삼성은 8회초 진갑용이 2점 홈런을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현대는 문학에서 올 최장 시간인 5시간10분,12회 연장 끝에 클리프 브룸바의 2타점 적시타에 힘입어 SK를 5-4로 꺾었다.SK는 4연패.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5) 교육 민주화 어디까지 왔나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다.´1986년 5월10일 동토(凍土)의 교육현장에 ‘교육민주화선언’이 울려퍼졌다.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 통치에 항거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교사·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참교육’을 향한 치열한 대장정을 예고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6월 항쟁 이후 그 움직임은 급속도로 커졌고, 마침내 87년 9월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된 데 이어 89년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참교육 쟁취라는 구호 아래 출범했다. 그로부터 20여년. 수많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이뤄낸 교육 민주화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최근 전교조에 대해 투쟁 일변도로 변했다거나 교사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됐다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합법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시절과 대중 조직으로서 교육 운동을 펼치는 현재의 전교조는 교육 민주화와 관련해 어떻게 다르며 앞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당시 교육 민주화의 산증인들과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로부터 교육민주화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군사주의 교육 잔재 여전 “교육 민주화라…,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7대 위원장을 지낸 김귀식(73 전 서울시교육위원회 의장)씨는 고개를 저었다. 교육 부문에서도 상당한 민주화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뿌리 깊은 고질병은 여전하다는 쓴소리였다.“군사정권 시대의 병영 문화 잔재가 아직도 학교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교육도 신자유주의에 오염돼 ‘1등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1999년 1월 ‘교원노조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던 그였다. 하지만 교육 민주화의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제도권 속에서 존재 이유를 상당부분 잃어버렸다. 그는 “학운위는 학교 민주화를 법제화한 엄청난 성과물로, 전교조가 그 도입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장의 독선을 합리화하는 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사학법 재개정은 학생보다 유권자 보고 결정” 사립학교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서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하자고 하는데, 학생 입장에서 내린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사학이라는 엄청난 유권자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면서 “아이들의 민주화 의식은 학교에서부터 길러지는데 아이들은 배제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에게는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교조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일부 보수 언론이 침소봉대해 마치 전교조가 정부의 정책 추진에 발목만 잡는 집단인 양 잘못된 편견을 조장해 왔다.”면서 “물론 전교조도 정치적 대응을 줄이고 교육현장에서 연구한 것들을 실천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회변화에 한걸음 앞서 실천을 제9대 전교조위원장을 지낸 이수호(58)씨도 전교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교조가 처음 교육 민주화를 이끌었듯 다시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었다.“사회 변화에 비해 교원노조 운동 내용이나 방식이 적절하게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정책 반대에만 머물렀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앞으로는 대안을 제시하고 한걸음 앞서 실천하는 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사학법 재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사립학교가 자금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실제 운영만 교장·이사장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면서 “보수세력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소외지역 공부방 지원사업 추진 교육 민주화 1세대인 이들이 전교조 합법화 등 제도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과 달리 2세대들은 교육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치적인 투쟁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대안과 대책을 실천하는 활동이다. 현 전교조 한만중 정책실장은 “앞으로 교육 양극화 때문에 소외받고 있는 농·어촌과 도시빈민 지역,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교육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다음달 초부터 전국지역공부방협의회와 공부방 지원사업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관료주의적 행정에 교육의 質 구멍” 지난 4월 어느날, 경기 A초등학교 김모(49) 교사가 한창 오전 수업을 하고 있을 때 교실 책상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시교육청에서 보내온 공문이 팝업창으로 뜬 것이었다. “재학생 과거 병력을 파악하고자 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씨는 날짜를 보았다. 바로 다음날까지 하라는 것이었다. 벌써 처리를 미뤄둔 공문만 5개나 되는 터에 또다시 공문이라니…. 김씨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현직에 있는 교사들은 이처럼 관료주의적이고 실적중심주의적인 교육행정으로는 진정한 학교 민주화를 꽃피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과정 연구와 학생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채 학교는 점점 행정중심 사회로 변질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갖가지 불필요한 공문을 남발하는 교육 당국도 문제지만 교육청 기관 평가에서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서, 혹은 근무평정에서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과다한 업무 처리를 마다하지 않는 교장·교감을 비롯한 교사 사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남 B초등학교 최모(57) 교사는 “학교는 국가교육과정이 우선돼야 함에도 실제적으로는 교장 명령이나 교육청의 시책 사업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의 질 향상은 구멍이 뚫려버리고, 학생들에 대한 교육 기능이 점점 학원으로 밀려나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또 “학교장의 사상이나 관점이 학교 경영을 실제적으로 좌우하느니만큼 민주적 리더십을 강화하는 교장 연수 프로그램이 보강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C초등학교 하모(47) 교사는 교사 성장 프로그램이 미미한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재의 연수제도는 승진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할 뿐, 진정으로 전문성을 기르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원 수급정책은 있지만, 교원 양성정책은 없다. 현재 교사는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양성하는 것밖에 더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D고등학교 이모(32·여) 교사는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씨는 “정년을 지키려는 기득권 교사들에 밀려 기간제 교사들은 재계약 불발, 정교사 임용 약속 불이행 등 갖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들에 대한 제도 개선 없이 학교민주화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새모델 ‘대안학교’는 “2000년 전교생 28명으로 폐교 직전에 이른 남한산초등학교를 교사 4명이 주축이 돼 살려냈습니다. 이때부터 공교육 틀 안에서 이른바 대안학교의 정신을 실현해나가는 교육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18일 경기 광주시 중부면 번천초등학교 서길원(47·전 전교조경기지부 정책실장)교사는 ‘공교육 혁명’ 활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작은학교 교육연대’와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사람들(schooldesign21)’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학교’라는 모델은 2001년 경기 광주시 남한산초교를 시작으로 이를 벤치마킹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2002년에는 충남 아산 거산초교,2003년에는 전북 완주 삼우초교,2004년에는 경북 상주 남부초교,2005년에는 부산 금성초교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국가교육체제 내의 학교교육 틀을 가지고 대안교육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교육과정 내용은 일반 공립학교와 다르지 않되 활동의 면면은 보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다. 예를 들어 남산초교 120여명의 전교생들은 여름과 가을에 일주일씩 열리는 계절학교에서 공예 등 문화체험활동, 예술활동 등을 펼친다. 다른 학교 역시 지역 대학생·문화예술인·귀농한 전문가 등이 자원봉사자로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학생 딸(12)과 초등학생 아들(9)을 대안학교에 보냈다는 전교조 참교육실장 진영호(48)씨도 “일반 학교는 입시위주 교육으로 아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아 주저없이 대안학교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길원 교사가 속한 작은학교 교육연대 모임은 앞으로 산촌유학·귀농모임과도 연대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서 교사는 “진정한 교육민주화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학교 운동은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교육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취재자유·알권리 침해 헌법소원 대상 된다”

    “취재자유·알권리 침해 헌법소원 대상 된다”

    정부가 기자실을 통폐합하기로 하고 전자대변인을 언론 접촉 창구로 제한하는 문제와 관련, 법조계에선 대체로 ‘언론의 취재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기자실운영 당연한 행정서비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내다 3월 퇴직한 서상홍 변호사는 22일 “행정부내 지침이라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알권리는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를 통해 구현되는데 그동안 기자실 운영과 공무원 접촉 등으로 누릴 수 있던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알권리 침해와도 직접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실 운영이 정부가 주는 시혜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국민 자체가 국가인 이상 행정서비스를 시혜로 볼 수 없다.”면서 “당연히 해야 할 행정서비스를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고 있던 것을 없애는 것도 문제다.”고 덧붙였다. 헌재 사무처장을 지낸 박용상 변호사 역시 “신문은 국민의 정보 소스이고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면서 “기자의 취재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석연 변호사는 “기자실은 정부부처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민의 이름으로 설치한 국민의 것이다.”면서 “자기 뜻에 안 맞는다며 기자실을 통폐합하는 건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며 기본권의 핵심인 보도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고 말했다. ●공공복리 위해 비밀공개 금지는 합헌적 반면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시윤 변호사는 “정부부처에 대한 자유로운 취재를 막는다는 점에서 언론통제지만 국가안전보장·공공복리·질서유지를 위해 직무상 비밀 공개를 금지한다고 본다면 제한이 합헌적일 수 있다.”면서 “정부의 세세한 조치에 따라 판단이 갈릴 수 있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변호사는 “단지 기자실이라는 공간의 자유로운 사용권을 놓고 따지는 문제라면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전자대변인 등으로 언론 접촉 창구를 제한하는 것은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홍성규 이재연기자 cool@seoul.co.kr ■ 시민·사회단체·학계 우려…“언론감시 거부하겠다는 것” 정부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확정발표한 데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는 일제히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 학자는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방안을 마련하면서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무시한 데다 해당 부처와의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은 ‘밀실행정’이라는 비난도 높았다.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문종대 교수는 “기존의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에 따른 폐단을 수정하는 것이 통폐합뿐이냐.”고 반문한 뒤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비쳐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정보가 잘 소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정보공개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사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내용이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무공간의 무단출입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정부 문건을 몰래 빼돌리는 등 법적으로 저촉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사무실 출입을 막아선 안 된다.”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각종 정책을 자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기자들이 대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김기태 교수 역시 “기자실 운영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방식의 하나로 기자들의 공적 취재원인 공무원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정책은 그 자체로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기자실 운영의 폐해를 고치겠다는 의도는 전해지지 않고,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한 비난만이 쇄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상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 친정부, 반정부를 떠나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면서 “열리고 참여한다는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정부라면서 홍보 효율성 차원에서 기자실이나 브리핑룸 등을 없애고 통폐합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나 공론 형성 없이 정부 입맛에 맞는 것만을 강요하는 민주주의의 전횡”이라면서 “몇몇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던져 주고 나머지는 가린다는 이야기인데 참여정부의 언론관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한창일 때 경찰 수뇌부는 ‘검찰과 달리 일선 경찰서에는 기자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숨길 게 없다. 어항 속처럼 투명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면서 “그런 경찰이 이제 와서 기자실을 폐쇄한다면 고문 수사를 하겠다는 건지 원래 어항 속처럼 투명한 조직이 아니었던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도 “경찰서에서 감시의 눈길이 없어지면 분명 인권 침해의 요소가 높아질 수 있다. 일선 경찰서의 인권침해가 많이 개선됐지만 지금도 폐쇄적인 공간인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박홍환 임일영 정서린 박창규기자 stinger@seoul.co.kr ■ 정부 브리핑 표정 이날 정부중앙청사 10층 브리핑실에는 신문·방송 등 국내 언론사 출입 기자들이 총출동했고, 외신기자도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창호 홍보처장도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는 듯 브리핑 내내 떨리는 목소리가 감지됐다. 한 기자가 “대선 예비후보들이 모두 반대하는 상황에서 예산 낭비가 아닌가?”라는 지적을 했다. 그러자 김 처장은 “그럴 리는 없다.”면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만큼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되받았다. 다른 한 기자가 “사무실 무단 출입이 문제가 된 사례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잠시 머뭇거린 김 처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사해 보고 만약에 있으면 한두 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처장이 “낡은 관행”이란 단어를 반복하자 한 기자가 “낡은 관행 속에서도 전문기자로 명성을 날린 분”이라고 쏘아붙이면서 미묘한 감정대립이 일어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도 신문기자 출신인 윤승용 홍보수석이 출입 기자들에게 설명하다 항의성 질문이 잇따르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출입 기자들은 “청와대 송고실인 춘추관은 참여정부의 개방형 브리핑제의 취지에 가장 근접하게 운영되고 있어 존치하기로 했다.”는 윤 수석의 설명에 대해 “취재원 접근이 막히고, 알권리도 차단당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기자는 “취재에 어려움이 많다. 비서관들이 전화도 받지 않고, 사실 확인도 안해 주고, 전화 걸었다는 메모를 남겨도 콜백이 안 온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박찬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전자브리핑 실효성 의문 정부가 브리핑실 통폐합과 함께 내놓은 취재 지원 서비스 강화 방안의 핵심은 전자브리핑제 도입과 정보공개법 개정 추진이다. 전자브리핑제는 프랑스 외교부가 실시중인 방식으로, 브리핑 참석이 어렵거나 신속한 답변을 원하는 기자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국정홍보처의 주장이다. 브리핑 내용을 동영상으로 실시간 온라인 송출하고, 속기로 풀어 텍스트로도 제공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잇단 질의·응답 힘들어 그러나 기자들은 물론 언론학자들도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낸다. 통상적으로 언론브리핑은 질의와 응답, 또 그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 꼬리를 물고 이루어지는데, 전자브리핑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한번에 응답이 끝날 수 있는 간단한 질문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질문에 대한 답변 속도와 질이 보장될지도 미지수. 언론 속성상 분초를 다툴 때가 많은데, 전화 혹은 대면을 통했을 때만큼 답변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만족스럽지 않은 답변을 올릴 경우 제대로 된 답변을 요구하기도 매우 어렵다. 답변 여력 때문에 기자별, 혹은 사별로 질문 수를 제한하겠다는 방침도 부작용이 예상된다. 홍보처 관계자는 “시스템 정착을 위해서는 기자들의 절제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을 경우 정부가 입맛에 맞는 질문에만 답변하는 폐단이 있을 수 있다. ●‘정보공개법 개정´ 구체내용 없어 정보공개법 개정 추진 방안은 정부가 ‘마지못해’ 내놓은 인상이 짙다. 개정 방향만 내놓았을 뿐 어떤 조항을, 언제까지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다.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 답변 시한(15일)이 너무 길고, 답변 예외 기준이 추상적이라는 점, 빠르고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언론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인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선 홍보처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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