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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공중에 붕 뜬 길

    4차선이나 되는 길을 빈틈없이 메운 차 속에서 사람들이 몇 시간씩 이런 불안과 고립무원의 소외감에 떨고 있는데 저 지상에선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충청지방의 폭설 피해가 막심한 모양이다.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특히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고통은 공포감에 가까웠으리라고 짐작된다.엊그저께 서울에 내린 20㎝ 가까운 큰 눈도 집 밖에서 경험하니까 천지가 개벽하는 게 아닌가 싶게 불안했는데 50㎝나 되는 적설량은 어느 만한 것일까 잘 상상이 안 된다.서울에 큰 눈이 오던 밤에 나는 공중에 붕 뜬 순환도로 위에 있었다.큰댁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오는 길이었다.저녁식사를 겸한 이른 제사였다.그래도 큰댁을 떠날 때는 이미 발이 빠지게 눈이 온 뒤였고,계속해서 목화송이처럼 탐스러운 눈이 난분분하게 하늘 땅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자고 가라고 붙들었지만 부득부득 떠난 건 큰길에 차들이 잘 소통되는 게 보였고,설마 같은 서울시인데 집에 못 가랴 싶어서였다.걱정하며 붙드는 큰댁 식구들한테는 가다가 못 가면 찜질방에서 자고 갈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아주 농담만은 아니었다.한번도 그런데 가볼 기회가 없었던지라 어떻게 생긴 데일까 하는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차가 꼼짝을 안 하게 된 건 하필 공중에 붕 뜬 순환도로상에서였다.도시 외곽에는 무수한 도로들이 공중에 붕 떠서 차들이 신호에 안 걸리고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그 위에서 소통이 잘 돼 차가 쌩쌩 달릴 때는 땅 위에서 엉금엉금 기는 차들이 딱해 보였지만 그 위에서 몇 시간 얼어붙어 보니 어떡하면 저 밑의 땅을 밟아 볼 수 있을까 하며 땅 위를 기는 차나 인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찜질방도 호텔도 땅 위의 것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무서웠다.내가 탄 차뿐 아니라 내 전후좌우로 4차선이나 되는 길을 빈틈없이 메운 차 속에서 사람들이 몇 시간씩 이런 불안과 고립무원의 소외감에 떨고 있는데 저 지상에선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교통방송을 틀어 봐도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어떤 도로 어떤 구간에서 작은 접촉사고로 소통이 원활치 못하다는 것까지 일일이 친절하게 알려주던 방송이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수난에 대해선 이렇게 시침을 떼고 딴청만 부리고 있는 것일까.교통방송이 이러하니 다른 방송은 말할 것도 없었다.잡담조의 정치 경제 얘기 아니면 노래나 농지거리는 분통만 더 터지게 만들 뿐 아무런 위안이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공중의 길 위에서 자정이 지나고 새날을 맞았다.단언컨대 그 시간에 그 순환도로상은 차바퀴 밑이 미끄럽다기보다는 질척해서 비올 때를 방불케 했다.생각해 보니 차간 거리고 뭐고 없이 빽빽하게 차가 밀려 있었으니 차 지붕 위에 내려앉은 눈이 더 많지 바닥에 쌓일 새가 없었을 것이다.전방 어딘가에서 대형사고가 있지 않고는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렇다면 그걸 처리하기 위한 백차나 앰뷸런스 견인차 등 무언가 지상의 관심이 느껴져야 할 텐데 감감무소식이었다.만약 순환도로를 빠져나가는 출구쪽 내리막길이 미끄러워 통제를 하거나 통행이 불가능했다면 미리 진입을 막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여전히 불과 몇 미터 아래 지상에서는 쌩쌩까지는 아니라 해도 차들이 원활하게 잘 다니고 있었다. 그날 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40분 거리를 4시간 반이나 걸렸다는 것보다는 왜 그런지 영문을 몰랐다는 데 있었다.고립무원의 고독감 때문이었다.교통경찰이 길을 터주지는 못할망정 왜 막히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줄 수는 없었을까.하긴 그걸 알려줄 만한 교통경찰이었다면 진입을 막았을 것이다.우리가 통과한 진입로와 출구 사이는 그 순환도로상에서는 극히 짧은 구간이었는데도 출구와 입구 사이에 전혀 소통이 안 됐던 것이다.마침내 차가 조금씩 서행을 시작하면서 그 공중에 붕 뜬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빠져나오는 내리막길에서도 아무런 사고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왜 그랬는지 영 모르고 만 것이다.지상은 공중의 길보다 훨씬 더 미끄러워서 내가 탄 차의 운전자가 조심운전을 하니까 뒤차가 빵빵대며 신경질을 부려서 할 수 없이 지상의 흐름을 탔다.마침내 현실감이 돌아오고 간밤의 일은 비현실적인 악몽으로 남았다.˝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공중에 붕 뜬 길

    4차선이나 되는 길을 빈틈없이 메운 차 속에서 사람들이 몇 시간씩 이런 불안과 고립무원의 소외감에 떨고 있는데 저 지상에선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충청지방의 폭설 피해가 막심한 모양이다.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특히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고통은 공포감에 가까웠으리라고 짐작된다.엊그저께 서울에 내린 20㎝ 가까운 큰 눈도 집 밖에서 경험하니까 천지가 개벽하는 게 아닌가 싶게 불안했는데 50㎝나 되는 적설량은 어느 만한 것일까 잘 상상이 안 된다.서울에 큰 눈이 오던 밤에 나는 공중에 붕 뜬 순환도로 위에 있었다.큰댁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오는 길이었다.저녁식사를 겸한 이른 제사였다.그래도 큰댁을 떠날 때는 이미 발이 빠지게 눈이 온 뒤였고,계속해서 목화송이처럼 탐스러운 눈이 난분분하게 하늘 땅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자고 가라고 붙들었지만 부득부득 떠난 건 큰길에 차들이 잘 소통되는 게 보였고,설마 같은 서울시인데 집에 못 가랴 싶어서였다.걱정하며 붙드는 큰댁 식구들한테는 가다가 못 가면 찜질방에서 자고 갈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아주 농담만은 아니었다.한번도 그런데 가볼 기회가 없었던지라 어떻게 생긴 데일까 하는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차가 꼼짝을 안 하게 된 건 하필 공중에 붕 뜬 순환도로상에서였다.도시 외곽에는 무수한 도로들이 공중에 붕 떠서 차들이 신호에 안 걸리고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그 위에서 소통이 잘 돼 차가 쌩쌩 달릴 때는 땅 위에서 엉금엉금 기는 차들이 딱해 보였지만 그 위에서 몇 시간 얼어붙어 보니 어떡하면 저 밑의 땅을 밟아 볼 수 있을까 하며 땅 위를 기는 차나 인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찜질방도 호텔도 땅 위의 것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무서웠다.내가 탄 차뿐 아니라 내 전후좌우로 4차선이나 되는 길을 빈틈없이 메운 차 속에서 사람들이 몇 시간씩 이런 불안과 고립무원의 소외감에 떨고 있는데 저 지상에선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교통방송을 틀어 봐도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어떤 도로 어떤 구간에서 작은 접촉사고로 소통이 원활치 못하다는 것까지 일일이 친절하게 알려주던 방송이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수난에 대해선 이렇게 시침을 떼고 딴청만 부리고 있는 것일까.교통방송이 이러하니 다른 방송은 말할 것도 없었다.잡담조의 정치 경제 얘기 아니면 노래나 농지거리는 분통만 더 터지게 만들 뿐 아무런 위안이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공중의 길 위에서 자정이 지나고 새날을 맞았다.단언컨대 그 시간에 그 순환도로상은 차바퀴 밑이 미끄럽다기보다는 질척해서 비올 때를 방불케 했다.생각해 보니 차간 거리고 뭐고 없이 빽빽하게 차가 밀려 있었으니 차 지붕 위에 내려앉은 눈이 더 많지 바닥에 쌓일 새가 없었을 것이다.전방 어딘가에서 대형사고가 있지 않고는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렇다면 그걸 처리하기 위한 백차나 앰뷸런스 견인차 등 무언가 지상의 관심이 느껴져야 할 텐데 감감무소식이었다.만약 순환도로를 빠져나가는 출구쪽 내리막길이 미끄러워 통제를 하거나 통행이 불가능했다면 미리 진입을 막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여전히 불과 몇 미터 아래 지상에서는 쌩쌩까지는 아니라 해도 차들이 원활하게 잘 다니고 있었다. 그날 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40분 거리를 4시간 반이나 걸렸다는 것보다는 왜 그런지 영문을 몰랐다는 데 있었다.고립무원의 고독감 때문이었다.교통경찰이 길을 터주지는 못할망정 왜 막히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줄 수는 없었을까.하긴 그걸 알려줄 만한 교통경찰이었다면 진입을 막았을 것이다.우리가 통과한 진입로와 출구 사이는 그 순환도로상에서는 극히 짧은 구간이었는데도 출구와 입구 사이에 전혀 소통이 안 됐던 것이다.마침내 차가 조금씩 서행을 시작하면서 그 공중에 붕 뜬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빠져나오는 내리막길에서도 아무런 사고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왜 그랬는지 영 모르고 만 것이다.지상은 공중의 길보다 훨씬 더 미끄러워서 내가 탄 차의 운전자가 조심운전을 하니까 뒤차가 빵빵대며 신경질을 부려서 할 수 없이 지상의 흐름을 탔다.마침내 현실감이 돌아오고 간밤의 일은 비현실적인 악몽으로 남았다.
  • 요리조리 맛있는 세계여행/최향랑 글·그림

    요리하는 엄마 옆에서 뭐든지 따라하려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을 책이다.요리법이나 영양 위주의 기존 어린이 요리책과 달리,요리 자체보다는 음식에 담긴 세계 각국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함께 전하는 것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 일요일 오후,아빠가 소파에서 잠든 사이 엄마와 예린이는 인형만큼 작아져서 세계 여러 나라로 신기한 음식여행을 떠난다.처음 발길이 멈춘 곳은 ‘마파두부’를 해놓고 손자를 기다리는 중국 쓰촨성의 한 할머니네.할머니는 마파두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그리고 한국의 자장면과 베이징의 자장면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그리고 만리장성과 경극 등 중국의 유적과 예술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엄마와 예린이는터키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 등으로 여행을 하며 외국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맛본다.독특한 색감의 풍부한 그림들과 함께 엄마와 아이가 책에 소개된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자세한 요리법도 실려있다.6세 이상.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
  • [열린세상]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최광식 고려대 교수 박물관장

    2003년에 갔을 때는 아침에 두고 나온 팁 1달러가 저녁에 없어진 것을 보며,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2월24일부터 28일까지 평양에서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일제 약탈문화재 반환을 위한 남북 공동 학술토론회 및 자료전시회’를 갖고 남북 역사학자 협의회를 발족하기로 합의하였다.남과 북의 박물관이 공동으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더구나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협의회를 구성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이를 계기로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기를 바라며,통일부는 사회문화분과를 활성화시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북한 당국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남한 당국도 유연하게 대처해나가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북에서 또 하나 엄청난 이벤트는 북한 당국이 조건없이 덕흥리 무덤 벽화와 강서대묘 사신도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역사학자들이 이들 무덤 벽화를 내부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으며,방송용 촬영도 허락하여 주었다.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하여 즉자적으로 중국에 항의하는 방법 대신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남과 북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중국과의 외교 문제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대범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우 속이 상해있는 상황에서 매우 현실적인 방법을 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남과 북이 자료를 교환하고 공동으로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고구려의 문화 유산을 남한에서 전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2005년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들어설 새로운 박물관에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었다.한창규 조선미술박물관장과 김송현 조선중앙역사박물관장 모두 남한에서 고구려 전시회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었다. 외형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변화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평양 시내를 오가며 시내 풍경이 매우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참가자 모두가 공감하였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가게가 많이 생기고,(판)매대가 곳곳에 생겨 심지어 만경대에서도 물건을 팔고 있었다.그리고 ‘봉사소’라는 간판의 가게가 여러 군데 생긴 것이 또한 큰 변화라 하겠다.봉사시간(영업시간)도 늦게까지 연장이 되었으며,복무원에게 물으니 손님이 있으면 봉사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늦게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가게가 많아지게 되니 밤에 네온사인을 켜놓았으며,밤늦게까지 불을 켜놓은 건물들도 있어 평양의 야경이 2002년 처음 평양에 왔을 때와 비교하여 매우 다르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가 팁에 대한 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2002년 평양에 처음 갔을 때 호텔을 나오며 1달러를 팁으로 놓고 나왔으나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1달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그러나 그 다음 날도 1달러를 더 두고 나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대로 탁자에 놓여 있었다.그러다 복무원을 마주치게 되어 왜 팁을 가져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일 없습니다.’ 하며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에 갔을 때는 1달러를 두고 나오면 저녁에 없어진 것을 보며,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그런데 이번에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복무원이 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탁을 하라고까지 하였다.다음날 1달러를 팁으로 두고 나왔더니 그에 대한 대가인지 양말을 빨아 놓았으며,그 다음날 다시 1달러를 놓고 나왔더니 이번에는 와이셔츠를 빨아 놓았다.복무원을 마주치게 되어 빨래를 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려 하였더니 ‘일 없습니다.’라고 하여 그런 내가 머쓱하였다.그러나 일을 한 것에 적절한 대가만 받으려는 순박함과 자존심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상큼하게 느껴졌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 박물관장˝
  • [오늘의 눈] 초일류기업의 ‘주총유감’/류길상 산업부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43조 5820억원,순이익 5조 9590억원을 기록한 세계 초일류 기업이다.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가꿔가야 할 기업이다. 그런 삼성전자의 주주총회에서 일류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폭력사태’가 일어났다.삼성전자의 의뢰로 주총 진행을 책임진 에스원 직원들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됐다. 주총 내내 회사측과 신경전을 벌였던 참여연대 일행이 27일 오전 11시30분쯤 “주주의 발언을 막는 주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주총장을 빠져나왔다.취재진과 참여연대측이 주총장 밖에서 즉석 기자회견을 가지려는 순간,진행요원들이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이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측 이모(여)씨가 바닥에 쓰러져 다쳤다.진행요원들은 취재진과도 충돌을 빚었다.진행요원과 참여연대의 갈등은 주총장 내에서부터 시작됐다.안건마다 문제를 제기하는 참여연대와 주총 의장을 맡은 윤종용 부회장간에 설전이 오고가는 사이 진행요원들이 참여연대 인사들을 강제로 눌러 앉히고 플래카드를 빼앗는 등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는 윤 부회장의 지적처럼 주총 안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끈 참여연대에도 책임이 있다.주총장의 분위기도 참여연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삼성의 ‘성역’인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의 대선자금 제공 혐의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또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주주들도 일부 있는 만큼 충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이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많은 이익을 내고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도 시민단체와 여론의 끊임없는 지적을 받고,또 이같은 지적을 무시와 폭력으로 대응하는 기업이라면 삼성전자를 누가 진정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하겠는가. 류길상 산업부 기자 ukelvin@˝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5) 베트남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

    베트남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다.거리나 사람들의 모습에 아직 전통적인 것이 많이 남아있고,낡고 허름하지만 예쁜 색으로 페인트칠한 집들은 멋진 배경을 만들어 준다.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모양도 예쁘고,외부도 화려한 색으로 칠을 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한 마을에 같은 모양,같은 색 집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이 정면만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이다.베트남 집은 앞면이 좁고,주로 앞뒤로 길게 지어져서 옆면이 너무나 잘 보이는데도 그냥 회색 콘크리트 색깔 그대로이다.너무 궁금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페인트 살 돈이 없거나 칠할 시간이 없거나 혹은 그저 베트남의 스타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주택 형태를 비롯,가장 베트남적인 모습들을 많이 만난 곳은 하노이였다.특히 하노이의 항박 거리 주변의 아침 장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베트남은 아침이 무척 일찍 시작된다.학생들도 7시면 등교가 끝나고 아침 장은 그보다 훨씬 일찍 열린다.대다수 동남아 국가가 그렇듯 저녁 일찍 하루를 마감하고,다음날 아침에 해가 뜨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퍼’라고 하는 길거리 국숫집에서 아침을 해결한다.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고,그냥 길거리에 우리나라 목욕탕 의자랑 똑같이 생긴 의자들을 놓고 즉석에서 간단히 국수를 말아준다.우리도 어딜 가든 현지음식을 최대한 먹어보자는 여행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 아침,손님이 제일 많은 ‘퍼’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바닥에 닭,돼지 등 생고기를 널어놓고 잘라 파는 걸 보니 차마 고기넣고 끓인 국수가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조류 독감만 아니었어도 먹어봤을 텐데….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한창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 그런지,아니면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그래서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베트남에서 유독 많이 싸우게 된다고 한다.설령 사람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다 해도 베트남은 우리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나라였다.베트남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도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래서 신비로운 동양의 아름다운 나라로 남기를 바라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비엔티엔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리는 한국의 낡은 버스 안에서 꼬박 20시간을 보내며 현지인들과 섞여 자다깨다를 반복했다.동남아에 한창 조류독감이 번지고 있어서 라오스로 들어가는 여행자도 다른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좋은 길로 달렸으면 7∼8시간 만에 충분히 왔을 거리인데 길 사정도 안 좋은 데다가 동남아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운 성격 때문에 계속 지체되었다.저녁 7시에 출발하기로 되어있던 버스는 9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고,중간에는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아무런 말 없이 사라져서 1시간 뒤에 돌아오기도 했다.알고 보니 동네 아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고 한다.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들에 화나기 시작하면 즐거운 여행을 하기가 힘들다.그저 익숙해 지는 수밖에. ■ 하노이대 유학중인 김덕영씨 하노이국립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김덕영(22)씨는 베트남 전문가를 꿈꾸는 야심만만한 한국 젊은이다.베트남 유학생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유학을 오게 된 계기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할 때 아버지가 먼저 제안하셨어요.처음엔 조금 망설였는데 지금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이곳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한창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죠.일단은 베트남어를 능숙하게 하고,베트남에 대해 많이 아는 게 목표예요.우선은 통역 일을 하고,장기적으로 유망 사업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베트남 친구들을 소개한다면.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달라요.이를테면 누구에게 사과할 때 미안한 표정을 짓는게 아니라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실실 웃어요.처음엔 너무 화가 났는데 그게 이 사람들의 방식이래요. 베트남 여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해요.그래서 전 베트남 여자가 친구로는 좋지만 여자 친구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한국 유학생들의 생활은. -아직은 한국 학생들이 많지 않아요.물가는 한국보다 싸지만 학비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현지인들이 내는 학비랑 외국인 학비는 거의 20배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대부분 집을 렌트하거나 기숙사 등에서 생활하고요.보통은 밥도 해주고 빨래,청소를 도와주는 메이드를 둬요.시간도 절약되고,베트남은 인건비가 많이 싸서 큰 부담이 안 되거든요.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과 비교해서 어려운 점,좋은 점은. - 다른 나라로 유학가는 것보다 좋은 점은 우선 비용이 적게 들고요,또 베트남은 이제 막 발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기회가 있는 곳이기도 해요. ˝
  • [씨줄날줄] 패러디의 비극/강석진 논설위원

    헛기침 한번 크게 하고 모년 모월 치러질 대학입시 모의 논술문제를 제출한다.험험.‘패러디의 진화와 정치의 비극에 대해서 논하라.’ 문제를 받아든 수험생들은 경악한다.‘졸라’ 어렵다.패러디 하나 이야기 풀어나가는 것도 힘이 부치는데,정치의 비극까지 쓰라니.여기저기 불평이 난무하는데 전날 공부 안 하고 이 정당 저 정당 사이트 들락거린 ‘건달이’는 거침없이 써 내려간다.본 것만 다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정치 패러디 사이트에서 본 것도 무궁무진하다.‘정치본색’,‘내 이름은 무법자 노란 돼지’,‘실성도’,‘레이디 박 대안론’,‘대선자객’시리즈….이상은 가상현실이니 혼돈없기 바란다. 정말이지,우리나라는 사이버 선진국답다.사이버 공간의 패러디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했다.화면이 화끈하고 다양한 건 물론이고 스토리가 전개되는가 하면 음향효과 만점의 배경음악까지 깔렸다.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던가.한 정당의 패러디 방에는 네티즌들이 점수를 매기게 돼 있다.시간이 바쁘면 점수 높은 것들만 골라서 봐도 된다.재미있는 패러디만 모아놓은 친절한 사이트도 있다.죽여 준다. 패러디의 기원이 그리스에 미친다고 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음악 영화 광고 등 패러디가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다.사이버 공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패러디 전문 사이트가 오래 전부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 이문열씨가 말했던가.우리 사회의 네거티브 풍조가 패러디의 번성으로 나타났다고.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씨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풍자와 비판,유머가 번득이는 일방 웬 욕설이 그렇게 많은지.정치 패러디들 상당수는 인신공격적이고 편파적이다.그리고 잔인하다.그래서 청소년이 보면 오히려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런데 ‘졸라’ 웃기는 건 전문 사이트뿐 아니라 정당들마저 패러디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근거없는 후보 비방,흑색선전 등을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하겠다는 정당들이 패러디를 빌려 비방과 욕설의 대열에 훌쩍 뛰어든 것이다.공당의 말과 행동이 이토록 다르니 정치의 비극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아니 정치에 이용당하는 패러디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골치 아픈데 패러디 한편 보고나서 생각해야겠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교보생명·LG카드등 우정 어필 CF 인기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심란한 사회분위기 때문일까.‘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 등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주가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광고계에서도 ‘진한 우정’을 주제로 한 광고들이 심심찮게 선보이고 있다. 늦은 밤,서울 인사동의 한 골목에서 술을 마신 최민식과 친구가 터벅터벅 걸어간다.해고라도 당했을까.뭔가 괴로운 일이 있었던 듯 친구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어깨에 손이라도 올려 위로해 주고 싶지만 친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뭔가 결심한 듯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며 최민식이 느닷없이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라며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부른다.그제서야 친구도 씩 웃으며 한결 마음이 풀린 듯하다. ‘마음에 힘이 되는 친구의 노래처럼,교보생명’이라는 카피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장소 설정 자체가 30∼40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인사동이어서 촬영도 인사동에서 이뤄졌는데 행인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자정에 시작된 촬영이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됐다.촬영 도중 잠자리를 구하던 노숙자들이 현장을 찾아오기도 했는데 최민식은 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친절히 대하는 등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 제작진을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광고에서는 ‘젊은 그대’만 잠깐 부르지만 최민식은 ‘어떤 이의 꿈’‘사노라면’‘해야’ 등 10여곡 이상의 다양한 노래를 불렀는데,선호도가 가장 높은 ‘젊은 그대’로 최종 결정됐다. 교보생명은 현재 TV뿐 아니라 신문과 잡지,지하철과 버스 전광판,극장광고에서도 다양한 시와 노래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광고 제작사인 웰콤 관계자는 “어려울 때 힘이 돼주는 친구의 우정과 ‘시와 노래’를 통해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살이에 희망을 주자는 의도”라고 밝혔다. 동원증권의 ‘트루 프렌드’는 상품명에서 ‘진정한 친구’를 내세울 정도다.돈을 보고 이것저것 접근하는 친구 말고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는 시리즈 광고가 화제가 됐었다. 요즘도 케이블TV 등에서 가끔 볼 수 있는 LG카드 광고 역시 친구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전지현이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받고 의기소침해진 동료를 인형극으로 위로하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제안한다.“너,나만한 친구 있어?”라며 활짝 웃는 전지현을 보고 ‘나도 저런 (여자)친구 하나 있었으면‘하는 소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밖에 KTF의 ‘친구따라 KTF가자.’와 전통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애용해 온 맥주광고에서도 ‘우정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광고대행사 관계자들은 “남녀의 사랑이나 가족애 등이 광고의 단골 소재인 반면 우정은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 면이 있다.”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인간관계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시대여서 든든한 친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광고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운수 안 좋은 날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원로배우 백성희의 사진이 크게 난 것을 보았다.표정은 기사에서 밝히고 있는 연세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품위 있고 당당해 보였지만 손은 보통의 할머니처럼 거칠고 늙어보였다.나는 그 사진으로 그의 전체를 본 것처럼 느꼈고 존경하는 마음과 친밀감으로 흐뭇해졌다.인상적인 손 때문이었을까,달포도 넘게 전에 전철 안에서 당한 일이 생각났다.너무 창피해서 내 자식들한테도 안 하고 묻어 두었던 얘기다. 노약자 석에 앉아 있는 내 옆자리에 어린이를 손잡고 탄 엄마가 앉았다.네댓살 가량 돼 보이는 귀여운 아이가 내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내 손만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다가 마침내 말을 걸어왔다.‘할머니 손엔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당돌한 질문이지만 귀엽기도 해서 성의 있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넌 내가 할머니인 걸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주름이 많으니까.’ ‘그래 맞았어.오래 살면 남들이 할머니라는 걸 알아보라고 주름이 생긴 거야.아줌마나 언니들하고 헷갈리지 말라고.’ 아이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다음에는 손등에 푸르게 내비치는 힘줄에 대해서 물었다.‘이건 힘줄인데 네 몸에도 있지만 예쁜 살 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거야.주사 맞을 때나 필요한 건데 아이들은 주사 맞기 싫어하잖아.그래서 꼭꼭 숨어 있는데 늙으면 주사 맞을 일도 자주 생기고,주사 맞는 걸 좋아하니까 자꾸 겉으로 나오나봐.’ 말대꾸를 해주니까 아이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묻고 또 물었다.나도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우리는 어느 틈에 서로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느끼고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쯤 되자 아이는 나하고 충분히 친해졌다고 믿은 것 같다.다시 내 손에 관심을 보이더니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의 알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이 반지 나 주면 안돼? 하고 물었다.나는 웃으면서 반지를 빼려고 했다.물론 반지를 그 아이에게 주려고 그런 건 아니다.그런 어리광을 부려도 될 만큼 그 반지는 아이 눈에도 만만해 보이는 반지였고,실제로도 비싼 반지가 아니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깃든 소중한 건데 아무리 귀엽더라도 오다가다 만난 아이에게 빼주겠는가.나는 일단 아이 손가락에 끼어보게 할 작정이었다.끼어보면 보나마나 헐렁할 테고 그러면 이건 네 손가락에 안 맞으니까 네 것이 아니잖니? 하면서 도로 빼 가지면 알아들을 아이지 그래도 막무가내 떼를 쓸 아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서로 알아볼 만큼 우리는 친해져 있었다.또 그 반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지라는 걸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손녀도 어렸을 때 그 반지만 보면 할머니 그 반지 얼마짜리 뽑기에서 뽑았어?라고 물어보곤 했더랬다.그때만 해도 동네 문방구 앞에는 100원짜리나 500원짜리를 넣고 돌리면 내용물이 빙글빙글 돌다가 동그란 게 하나 굴러 떨어지는데,까보면 사탕이나 반지나 열쇠고리 같은 싸구려 장난감이 들어있곤 했다.그걸 뽑기라고 했다.그만큼 아이 눈에 만만해 보이는 반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끼어보게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아이 엄마가 아이 팔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정거장도 아닌데 출입문 쪽으로 아이를 끌고 가면서 중얼거렸다.보자보자 하니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다음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나잇살이나 처 먹어가지고였는지도 모르겠다.모욕감 때문에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전동차가 멎자 모자는 황급히 내렸다.아이가 나를 자꾸 돌아보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웃는 얼굴로 배웅할 수 없었다.그 역은 실은 내가 내릴 역이었지만 내리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뿐 아니라 식성,취미 등에도 U턴 현상 같은 게 일어나 옛날 것만 다 좋은 것 같고 마음이 통하는 것도 우리가 길러낸 30,40대보다는 어린이가 편하다.특히 오늘의 주역인 30,40대의 본데없음과 상상력 결핍은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길렀기에 저 모양이 되었나,죄책감마저 들게 한다.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 [쌍심지 켠 선거사범 단속] 특진 아른아른…‘한방’ 벼르는 경찰

    요즘 경찰들이 모두 바쁘다.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알아서 뛴다. 베갯머리와 밥상머리에서 부부간의 대화가 부쩍 늘면서 금실이 좋아졌다.아파트 부녀회나 계모임,동네 미장원과 슈퍼마켓에서 귀동냥 한 알토란 같은 소식으로 내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걸핏하면 “술과 친구밖에 모르느냐.”는 핀잔으로 고개 숙였던 일부 고참 형사들도 다져논 끈끈한 인간관계로 얼굴에 화색이 돈다.이번에 홈런 ‘한방’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처럼 일선 경찰관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는 것은 1계급 특진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경찰청 심사를 거치지만 후보자 구속이나 당선무효 또는 이 같은 첩보제공이면 경위·경감으로,후보자 가족이나 일반사범을 2∼3명 구속하면 경장이나 경사가 된다. ●정보망 백태 지난 16일부터 시·군 경찰서에서는 정보·수사·형사과 직원들로 선거사범 수사전담반과 선거 상황실이 간판을 달았다.직원들은 대개 지역 토박이여서 정보수집 자원이 풍부하다.초·중·고 등 학연,가족과 친·인척 등 혈연,면 단위 고향 등 지연을 망라한 이른바 ‘망원’들이 형사 개인당 20∼50명이다. 전남 순천경찰서 김모(45) 경사는 지난해 말 학교 후배가 해준 전화로 상대 입후보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날렸던 선거운동원을 붙잡았다.목포경찰서 이모(43) 경사는 지난달 부인의 전화를 받고 한 건 올렸다.“아파트 부녀회에서 그냥 식사한다고 해서 친구가 갔는 데 입후 보자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고 지지를 호소 하더라.”고 알려왔다. 또 전남 A경찰서 수사전담반 윤모(41) 경사는 “이번 특진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술값이 좀 들어도 집에서 인정한다고 했다.“친·인척과 선·후배 등 30여명으로 망원을 운영한다.정당 쪽에도 믿을 만한 선·후배와 선을 대 유리알처럼 들여다 보고 있다.”고 전했다.B경찰서 박모(50) 경사는 “정보과 형사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은 범위에서 정당 쪽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입후보자의 활동 동향을 파악한다.”고 말했다. 광주서부서 수사과의 한 직원은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나오는 참고인이나 민원실에 오는 민간인들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친절을 베풀면서 신고 전화를 주도록 은근히 유도한다.”고 자신만의 방법을 소개했다.후보자가 7명이나 난립한 광주 북구을 모 정당의 이모(57) 사무국장은 “전화통화 감으로 (정보탐지)의심할 만한 전화를 가끔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일선서보다 얼굴이 덜 팔린 지방경찰청 직원들은 퇴근 뒤 인근 지역으로 원정을 간다.경남 진주시 신안동에서 주점을 하는 최모(46·여)씨는 “요즘들어 낯선 사람들이 2∼3명씩 함께 와 별다른 애기도 없이 맥주를 시켜놓고 옆자리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고 귀띔했다. 특히 대구시내 일선경찰들은 수성구 들안길 일대 음식점 밀집지역에서 단체 예약을 점검하고 사우나와 찜질방 등에서 무료 입장권 배부 등에 대해 첩보를 수집한다.대구 달서구에 출마 할 박모(45)씨는 “당선도 중요하지만 선거법에 걸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며 “아무도 믿을 수 없어 가족과 친척,친구만으로 선거캠프를 차리는 후보도 있다.”고 말했다. ●기동수사반 24시간 감시체제 선거사범 수사 전담반을 지휘하는 전남지방경찰청 김진희(51) 수사 2계장은 “선거와 관련해 첩보 수준이나 신병처리를 두고 하루에 2∼3번 청장에게 보고할 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지방청에는 수사전담반과 선거 과열지구만을 전담하는 기동수사반이 2교대로,지방청과 일선 경찰서에는 선거상황실이 24시간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 이번주부터 일선경찰서에서 1주일에 한 번 이상 지역을 바꿔가며 교차단속에 나선다.집단적인 향응제공이나 유인물,명함 배부 등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전북지방경찰청 김모(45) 경사는 “이번에 잘만하면 특진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동료들이 선거사범 단속에 혈안이 돼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지역구마다 정당별 경선으로 잡음이 적잖다.특정회사에 수십개의 전화를 설치해 수당을 주고 고용한 도우미를 활용하는 교묘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또 전화 여론조사를 빙자해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그래서 통신이나 온라인을 이용한 홍보나 비방전에 대비해 사이버 수사대는 눈코 뜰새가 없다. 광주동부경찰서는 관내 114개 PC방을 파악해 상대방에 대한 비방글이 뜨는 즉시 추적에 나선다.이 경찰서는 관내 선거구가 과열되면서 지금껏 경쟁 상대방이 제공하는 정보로 3건을 단속했다. 대전중부경찰서도 인터넷 사이트 검색활동에 주력하고 있다.충남경찰청 강종식 정보 3계장은 “경찰 등 감시 눈초리가 강화되면서 선거운동원들이 2∼3명씩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추세”라고 밝혔다. 전국 정리 남기창기자 kcnam@˝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운수 안 좋은 날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원로배우 백성희의 사진이 크게 난 것을 보았다.표정은 기사에서 밝히고 있는 연세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품위 있고 당당해 보였지만 손은 보통의 할머니처럼 거칠고 늙어보였다.나는 그 사진으로 그의 전체를 본 것처럼 느꼈고 존경하는 마음과 친밀감으로 흐뭇해졌다.인상적인 손 때문이었을까,달포도 넘게 전에 전철 안에서 당한 일이 생각났다.너무 창피해서 내 자식들한테도 안 하고 묻어 두었던 얘기다. 노약자 석에 앉아 있는 내 옆자리에 어린이를 손잡고 탄 엄마가 앉았다.네댓살 가량 돼 보이는 귀여운 아이가 내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내 손만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다가 마침내 말을 걸어왔다.‘할머니 손엔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당돌한 질문이지만 귀엽기도 해서 성의 있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넌 내가 할머니인 걸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주름이 많으니까.’ ‘그래 맞았어.오래 살면 남들이 할머니라는 걸 알아보라고 주름이 생긴 거야.아줌마나 언니들하고 헷갈리지 말라고.’ 아이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다음에는 손등에 푸르게 내비치는 힘줄에 대해서 물었다.‘이건 힘줄인데 네 몸에도 있지만 예쁜 살 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거야.주사 맞을 때나 필요한 건데 아이들은 주사 맞기 싫어하잖아.그래서 꼭꼭 숨어 있는데 늙으면 주사 맞을 일도 자주 생기고,주사 맞는 걸 좋아하니까 자꾸 겉으로 나오나봐.’ 말대꾸를 해주니까 아이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묻고 또 물었다.나도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우리는 어느 틈에 서로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느끼고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쯤 되자 아이는 나하고 충분히 친해졌다고 믿은 것 같다.다시 내 손에 관심을 보이더니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의 알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이 반지 나 주면 안돼? 하고 물었다.나는 웃으면서 반지를 빼려고 했다.물론 반지를 그 아이에게 주려고 그런 건 아니다.그런 어리광을 부려도 될 만큼 그 반지는 아이 눈에도 만만해 보이는 반지였고,실제로도 비싼 반지가 아니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깃든 소중한 건데 아무리 귀엽더라도 오다가다 만난 아이에게 빼주겠는가.나는 일단 아이 손가락에 끼어보게 할 작정이었다.끼어보면 보나마나 헐렁할 테고 그러면 이건 네 손가락에 안 맞으니까 네 것이 아니잖니? 하면서 도로 빼 가지면 알아들을 아이지 그래도 막무가내 떼를 쓸 아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서로 알아볼 만큼 우리는 친해져 있었다.또 그 반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지라는 걸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손녀도 어렸을 때 그 반지만 보면 할머니 그 반지 얼마짜리 뽑기에서 뽑았어?라고 물어보곤 했더랬다.그때만 해도 동네 문방구 앞에는 100원짜리나 500원짜리를 넣고 돌리면 내용물이 빙글빙글 돌다가 동그란 게 하나 굴러 떨어지는데,까보면 사탕이나 반지나 열쇠고리 같은 싸구려 장난감이 들어있곤 했다.그걸 뽑기라고 했다.그만큼 아이 눈에 만만해 보이는 반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끼어보게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아이 엄마가 아이 팔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정거장도 아닌데 출입문 쪽으로 아이를 끌고 가면서 중얼거렸다.보자보자 하니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다음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나잇살이나 처 먹어가지고였는지도 모르겠다.모욕감 때문에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전동차가 멎자 모자는 황급히 내렸다.아이가 나를 자꾸 돌아보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웃는 얼굴로 배웅할 수 없었다.그 역은 실은 내가 내릴 역이었지만 내리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뿐 아니라 식성,취미 등에도 U턴 현상 같은 게 일어나 옛날 것만 다 좋은 것 같고 마음이 통하는 것도 우리가 길러낸 30,40대보다는 어린이가 편하다.특히 오늘의 주역인 30,40대의 본데없음과 상상력 결핍은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길렀기에 저 모양이 되었나,죄책감마저 들게 한다.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존중,친절,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 [’장애인 외출길’ 동행 르포] 장애인 이동권연대 대표 박경석씨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44·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공동대표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83년 대학 2학년 때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된 박씨는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 발족 때부터 공동대표를 맡아왔다.그는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나 버스를 점거하는 등 과격한 시위 방법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우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시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조차 몰랐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지하철 역무원이나 버스·택시 기사의 불친절에 대해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는 상태에서 무조건 도움을 구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장애인 도우미를 따로 배치하는 등 제도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택동기자
  • [열린세상] 걷고픈 도시, 녹색 서울을/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요즘 걷기 열풍이 뜨겁다.건강과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삼 걷기의 효용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규칙적으로 걸으면,비만은 물론이거니와 고혈압,당뇨,골다공증 등의 병을 예방 혹은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카페도 여러 개인데,그 중에는 회원 수가 수천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지방자치단체나 민간 기업들이 잇달아 걷기 대회를 개최하고,‘국제 걷기 대회’와 ‘세계 걷기의 날’이 있는 것을 보니 걷기 붐은 이제 세계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고,하루 2㎞ 이상을 걷고,3층 이하는 걸어 다니자는 소위 ‘123 운동’이 유행이라고 한다.운동부족과 각종 성인병의 위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걷기를 즐겨서 출퇴근 때 한두 정거장을 걷곤 한다.걷다 보면 세상을 여유있게 바라보게 되는데,느낀 점이 두어가지 있다.하나는 사람이 20∼30분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꽤 된다는 점이고,또 다른 하나는 길에 사람보다 차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도시인들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차를 이용하는 경향이 크다.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꺼림칙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도시 공간이 전혀 걷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짧은 보행자 신호는 안전을 위협하고,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과 정체 중인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은 걷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이 ‘서울에서 걷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1995년에서 2000년까지 6년 동안 서울의 미세먼지 오염 추세를 분석한 한국 대기환경학회지 게재 논문이 눈길을 끈다.이 논문에 따르면 자동차의 통행량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다.특히 오전 7시부터 높아져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최고치가 된다고 한다.출근 길 걷기는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이다. 경기개발연구원이 발표한 다른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 악화로 매년 약 1만명이 수도권에서 사망하고,경제적 손실이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1989년 이후 대기의 질을 측정한 결과,미세먼지 농도의 급격한 증가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다.측정 기간 중 미세먼지 농도의 최저치는 18.0㎍/㎥이었는데,최근 그 농도는 서울 71.0㎍/㎥,경기도 67.0㎍/㎥,그리고 인천은 52.0㎍/㎥에 달했다.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 청년층의 잔여 수명이 1년 가까이 감소한다니,걷는 것이 오히려 목숨을 갉아 먹는 꼴이다. 서울은 정말 척박한 도시이다.개발과 건설의 열병 속에 생명이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버렸다.청계천 복원 사업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이 추진 중인 지금이야말로 서울을 녹색과 생명의 도시로 살릴 수 있는 기회이다.서울을 자동차의 도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정부와 서울시에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대중 교통망의 개선,청정연료 사용 의무화,고유황 디젤유 자동차 규제 등을 통해 대기 질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둘째,도로변에 형식적으로 심어진 가로수 간의 간격을 줄이고,낮은 키의 나무를 심어 보행자들을 자동차의 오염과 소음에서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림을 만들기 바란다. 셋째,동부 간선도로,올림픽대로 등의 자동차 전용 도로와 강변의 둔치나 자전거 도로 사이에 작은 숲을 조성하여 서울 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넷째,각급 학교에 나무를 심고,숲을 만드는 사업을 통해 도시공간 내 녹지 면적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녹색의 도시를 걷는 일은 정말로 우리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공원 도시 서울’을 만드는 것이 결코 헛된 꿈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 [성인우화] 외로운 두더지

    두더지는 혼자였어.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기억도 가물가물한 아주 오래 전에,두더지도 낯선 동물과 맞닥뜨린 적이 있기는 했었어.하지만…. 맨 처음에 만난 동물은 토끼였지.토끼는 아무 스스럼없이 두더지에게 깡충깡충 뛰어 왔어.그리고는 불쑥 앞발을 내밀었지. “만나서 반갑다.우리 친구 할래?” 그러나 두더지는 얼른 뒤로 물러났어. “넌 나랑 너무 많이 다르게 생겼어.몸은 너무 하얗고,눈알은 또 너무 빨갛잖아!” 토끼는 무안했어.그래서 말없이 숲 속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찌르륵찌르륵 멧새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지. “아,참 고운 목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두더지는 갈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꽁지를 달싹이고 있는 멧새를 발견했어. ‘저런 새와 친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고운 노래를 들을 수도 있고 저 먼 세상 얘기도 해 줄 텐데….’ 두더지는 가슴이 벅차올랐어.그렇지만 다음 순간 중얼거렸지. “치,저 새는 나를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 거야.난 노래도 못하고 날 줄도 모르잖아? 어쩌면 날 멍청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두더지는 공연히 돌멩이를 걷어찼어.그 바람에 멧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쓸쓸해진 두더지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 “아,배고파! 지렁이 녀석들은 다 어디 갔어?” 두더지는 먹이를 찾기 위해 땅바닥에 고개를 킁킁거렸어.그때 멧돼지가 나타나 뿔을 내밀었지.뿔에 걸려있던 통통한 지렁이가 흔들거렸어. “야,이거 너 먹을래?” 두더지는 멧돼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 “넌 참,친절하구나.그렇지만 왜지? 어째서 내게 따뜻하게 구는 거야?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구?” 기가 막혔어.멧돼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꿈벅거렸지. 그 다음에 만난 동물은 고슴…,그래 고슴도치라고 했지.온몸을 뾰족한 침으로 둘러 쓴 그 동물은,보기보다 무척 싹싹했어. “나랑 같이 놀자.난 참 심심해.” 고슴도치는 한발 바짝 다가섰어. “왜 이래?” 두더지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풀쩍 물러났지. “너랑 안놀아.네 가시에 찔리면 어떻게 해?” 고슴도치가 원래 다정한 성품이라든가,침을 창처럼 세우는 경우는 공격을 당할 때뿐이라는 것을,두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거야.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고슴도치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두더지는 오래도록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었어.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재잘거리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지.두더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 “안녕하세요!” “안녕!” “아저씨 안녕!” 꼬마 땃쥐들이었어.여섯 마리나 되는 꼬마 땃쥐들이 엄마 땃쥐의 허리에 한 줄로 줄줄이 매달린 채 저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친 거야.이렇게 밝고,쾌활하고,거리낌없는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으응,그,그래…” 엉거주춤 땃쥐 가족의 인사를 받은 두더지는 허둥대기 시작했어.이 반가운 마음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망설이던 두더지는 기껏 이렇게 물었어. “너희들은 그렇게 희한한 꼴로 어딜 가는 거냐?” 사실,앞선 녀석의 허리 언저리를 꼭 물고 한 줄로 졸졸 움직이는 땃쥐 가족의 모습은 조금 우습기도 하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희한한 꼴이라니! 아니나 다를까,멋쩍어진 꼬마 땃쥐들은 공연히 찍찍 수선을 떨고 엄마 땃쥐는 샐쭉 삐쳐버렸어. ‘무례한 두더지 같으니라구! ’ 엄마 땃쥐는 콧등을 움찔거리며 흥,콧방귀를 뀌었지.그리고는 찬바람 소리가 나게 휙,돌아섰어.엄마 등에 줄줄이 매달려있던 새끼들이 으악,으악,소리를 질러댔지.땃쥐 가족은 두더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어. 밤이 되었지.두더지는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지.하늘엔 별이 가득했어. ‘아,나는 혼자야!’ 두더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지.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어.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고.두더지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어.외로움을 잊으려면 차라리 몸이라도 바삐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그래서 두더지는 밤새 일을 하기로 했어.느릿느릿 지렁이를 잡기 시작했지. 한 마리,두 마리,세 마리…. 두더지는 굴을 파고 지렁이를 차곡차곡 쌓아 놓았어. 삼십마리,사십마리,오십마리…. 이제는 정말 아무도 두더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어.두더지는 점점 더 외로움을 탔지.몰래 땅을 파고 들어가 혼자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눈이 침침해지도록 밤마다 울기도 하면서. 지금도 두더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어.아무도 없는 땅속에서 하루종일 애꿎은 지렁이만 잡아대면서. 파랑새 어린이의 ‘외톨이 두더지’에서 ●작가의 말 이렇게 지렁이를 잡아다 쌓아놓곤 하는 두더지가 꽤 많다고 합니다.그 자료를 읽으면서 저축을 하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교훈 대신,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벌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아무래도 제가 친구와 사귀는데 서툰 두더지와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구청휴직자 자리’ 취업 노려라

    “주부님들 구청 대체인력 모집에 관심을 가져 보세요.” 송파구 민원실에 근무하는 최연미(37·여·송파구 잠실동)씨는 요즘 일이 마음에 들고 공익에 한몫한다는 보람으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구가 시행 중인 ‘육아휴직 대체인력 공모제’ 덕분이다. 최씨는 결혼·출산과 함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P사를 떠났다.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송파구 일용직 공채에 응시,지난해 2월부터 1년째 자동차 취득·등록세 고지서 발급 민원업무를 맡고 있다. 주부 정혜자(43·송파구 삼전동)씨도 비슷한 예다.1999년 관내 사업체 현황 기초조사요원으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대체인력으로 채용돼 올해 초 개설된 여권과 민원접수창구를 담당하고 있다. 지역마다 일정은 약간씩 다르지만 송파구처럼 이런 대체인력 채용 기회를 잘 활용하면 결코 정규직 못잖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다.파트타임에 참가하는 것도 경력이 쌓여 일용직·계약직 공채 때 큰 보탬이 된다. 고용 및 의료보험에다 국민연금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월 급여도 80만∼85만원이나 된다.나름대로 고유 업무를 맡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다.게다가 행정경험을 인정받아 재임용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친절하면서 업무를 꼼꼼하게 챙기는 장점을 살리려고 공직사회의 경우 갈수록 여성을 배려하는 추세다. 게다가 여성인력 비율이 평균 30%대에 이르러 출산휴직(1년) 등으로 인한 여직원의 공백을 가능한 한 여성으로 채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도 주부 등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송파구는 행정 대체인력 채용을 위해 올해 1억 7000여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20여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이같은 여성인력의 활용도를 감안,상·하반기 1000명씩 시 산하기관과 복지시설,민간단체 등에서 2개월간 파트타임제로 취업시키는 ‘여성취업 적응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시 여성발전센터 5곳과 여성인력개발센터 15곳에서 전산회계·웹디자인 등 7개 전문기술 및 직업교육을 마친 수료생을 우선 선발한다. 송파구 문홍범(53) 총무과장은 “주민들의 생활 현장을 잘 아는 주부 등을 대체인력으로 채용함으로써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고용창출도 이루어져 1석2조”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경쟁사 '고객감동’ 서비스에 탄복

    포스코건설의 조용경 부사장이 개인 홈페이지(www.ilovehansong.co.kr)에 경쟁업체의 임원을 극찬하는 글을 올려 재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조 부사장은 최근 이란을 방문했다가 삼성물산의 최윤광 테헤란지점장(상무보)이 베푼 친절에 큰 감명을 받고 회사원들이 추구할 ‘고객감동’ 사례로 소개한 것. 그는 최 지점장의 ‘프로 정신’을 칭찬하며 삼성물산 정우택 사장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내용도 함께 공개했다.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 업계에서 기업체 임원이 다른 회사의 임직원을 공개적으로 격려하기는 극히 드문 사례로 꼽힌다. 조 부사장은 지난 연말 4박5일간 일정으로 철강공장 건설공사 수주를 위해 이란 중부지역의 이스파한을 다녀왔다.22시간의 기나긴 비행으로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12월26일 새벽 6시30분쯤 테헤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공항의 VIP룸에 자리를 잡고 현지 직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에 삼성물산 최 지점장이 나타난 것.조 부사장은 수주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는 있지만 공동계약자도 아닌 삼성물산 간부가 직접 영접나오자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실토했다. 더욱이 최 지점장이 풀어헤친 큼지막한 보따리에 담긴 찬합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최 지점장 부인이 자신을 위해 새벽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김밥과 된장국,볶은 김치,과일 등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 부사장은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먹으며 ‘잠재적 고객’을 위해 노력하는 최 지점장의 마음 씀씀이에 탄복했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의 글은 자연스럽게 일부 포스코건설 직원들에게 알려졌고,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세를 갖추려면 전 직원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주문으로 이어져 공개되기에 이르렀다.조 부사장은 특히 아직 공기업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일부 직원들이 이를 본받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로 고객을 대하는 정신무장을 할 것을 촉구했다.조 부사장의 글은 포스코건설 사보에 실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락기자˝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가난한 富國’ 일본속 외국인들

    “퇴직하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미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폴(60)은 자칭 ‘아시아를 사랑하는 미국인’이다.6년쯤 남은 정년 때까지 일하고,그후에는 동남아쯤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생각 중이다.청춘 때부터 맺은 아시아와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두 차례의 유학,대학교수 생활을 합쳐 25년간 일본에 체재중이지만 정년 이후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일본에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이 일본 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게 일본 속의 외국인들의 말이다.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인,일본 사회는 어떨까. |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marry04@˝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노망을 빙자한 한마디/박완서 소설가

    열흘가량 여행을 다녀왔다.여러 번 갔던 나라를 또 가니까 이왕이면 안 가본 나라를 가지 뭣 하러 가본 데를 자꾸 가냐고,식구들도 친지들도 의아해했다.하긴 그랬다.호기심 없이 떠나는 여행은 설레지 않는다.그건 여행의 기쁨의 절반쯤은 미리 잃고 떠나는 셈이니 굉장한 손해다.아무데나 여기 아닌 딴 곳에서 멍청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차에 마침 나에게 적당한 일정과 편안한 일행을 만나게 되었으니 행선지는 어디라도 상관 없었나 보다.그러나 막상 집을 떠나보면 쉬고 싶어 어디를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이 세상에 내 집처럼 편한 쉼터가 어디 있겠는가.늙어갈수록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적당히 따습고 적당히 딱딱한 내 집 잠자리에 다리 뻗고 눕는 것만큼 완벽한 휴식은 없다.현지의 일기는 불순했고 일행에게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은 객기까지 가세해 나에게는 고단한 여행이었다.겉으로는 재미있어하는 척하면서도 밤이면 친척집에 맡겨진 어린애처럼 우리 집에 갈 날이 몇 밤 남았나,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려 보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무리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밖에 없다는 진부한 감회와 안도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뭣 하러 텔레비전은 틀었던지.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마침 뉴스시간이었다.뉴스시간에 제일 먼저 등장해 지지고 볶고 고함치고 삿대질하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정치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저 사람들을 안 보는 게 얼마나 달콤한 휴식이었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다만 며칠이라도 저 사람들을 안 볼 수 있었으니 여행은 역시 좋은 거였다.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아니 달라진 게 있을 수도 있었다.돌을 던지던 사람이 돌을 맞는 사람이 돼 있을 수도,돌을 맞던 사람이 기사회생 돌을 던지는 사람이 돼 있는지도 모른다.내가 눈이 침침하여 그것을 분간 못할 뿐.나는 이제 눈 어둡고 정신도 예전만큼 명징치 못해 누가 옳은 사람이고 누가 옳지 못한 사람인지,누가 거짓말쟁이고 누가 정직한 사람인지,누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못 믿을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한다.그들 스스로는 알까.워낙 서로 진흙탕을 많이 처발라서 내가 누군지 상대방이 누군지도 분간 못하는 게 아닐까.‘저 꼴 보기 싫어 못살겠다.’라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게 그들의 이전투구는 정말이지 넌더리가 났다. 이나이까지 통과해온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회상해보면 빈곤도 빈곤이지만 정치판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개판인 적도 많았다.오죽해야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구호가 만백성에게 회자되었을까.그러나 못살겠으면 갈아보면 된다고 믿을 수 있었던 때는 행복한 시대였다.갈아치운다는 건 요샛말로 하면 개혁이 아니었을까.개혁정부가 들어서고 개혁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국민의 표까지 조작하고 도둑질하던 더러운 시대에도 국민들은 선거에 의해 부패한 정권을 갈아보려는 착하고 정결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매번 좌절하고도 꿈을 버리지 않았고 다음 선거를 기다리곤 했다.정치가들이 저렇게 이합집산과 서로 흠집 내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선거철이 가깝긴 가까운 것 같은데 저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 맞이하고 싶은 새얼굴이 도대체 떠오르지 않으니 어떡하나. 나처럼 희망을 잃거나 분별력이 시원찮은 사람이 선거에 불참하거나 표를 잘못 찍을까봐 염려해서 누구는 좋은 사람이고 누구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가려주겠다는 친절한 단체까지 생겨나고 있다.고마운 노릇이지만 하도 정치가 혐오스럽다 보니 누가 단체를 만든다고 하면 정치적이 될까봐 경계하는 마음부터 갖게 된다.정치하고는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모임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만 생겼다 하면 정해진 수순처럼 정치적으로 변질하고,기어코 진흙탕까지 묻히고 마는 걸 어디 한 두 번 보았나. 그러고 보니 이 난을 맡으면서도 정치얘기는 하지 말자 작심하고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아무리 더러워도 피할 수 없는 그 놈의 정치라는 것,그건 이 시대의 질병인가 악몽인가.산뜻하게 깨어날 수 있는 주문 어디 없을까. 소설가˝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노망을 빙자한 한마디/박완서 소설가

    열흘가량 여행을 다녀왔다.여러 번 갔던 나라를 또 가니까 이왕이면 안 가본 나라를 가지 뭣 하러 가본 데를 자꾸 가냐고,식구들도 친지들도 의아해했다.하긴 그랬다.호기심 없이 떠나는 여행은 설레지 않는다.그건 여행의 기쁨의 절반쯤은 미리 잃고 떠나는 셈이니 굉장한 손해다.아무데나 여기 아닌 딴 곳에서 멍청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차에 마침 나에게 적당한 일정과 편안한 일행을 만나게 되었으니 행선지는 어디라도 상관 없었나 보다.그러나 막상 집을 떠나보면 쉬고 싶어 어디를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이 세상에 내 집처럼 편한 쉼터가 어디 있겠는가.늙어갈수록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적당히 따습고 적당히 딱딱한 내 집 잠자리에 다리 뻗고 눕는 것만큼 완벽한 휴식은 없다.현지의 일기는 불순했고 일행에게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은 객기까지 가세해 나에게는 고단한 여행이었다.겉으로는 재미있어하는 척하면서도 밤이면 친척집에 맡겨진 어린애처럼 우리 집에 갈 날이 몇 밤 남았나,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려 보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무리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밖에 없다는 진부한 감회와 안도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뭣 하러 텔레비전은 틀었던지.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마침 뉴스시간이었다.뉴스시간에 제일 먼저 등장해 지지고 볶고 고함치고 삿대질하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정치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저 사람들을 안 보는 게 얼마나 달콤한 휴식이었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다만 며칠이라도 저 사람들을 안 볼 수 있었으니 여행은 역시 좋은 거였다.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아니 달라진 게 있을 수도 있었다.돌을 던지던 사람이 돌을 맞는 사람이 돼 있을 수도,돌을 맞던 사람이 기사회생 돌을 던지는 사람이 돼 있는지도 모른다.내가 눈이 침침하여 그것을 분간 못할 뿐.나는 이제 눈 어둡고 정신도 예전만큼 명징치 못해 누가 옳은 사람이고 누가 옳지 못한 사람인지,누가 거짓말쟁이고 누가 정직한 사람인지,누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못 믿을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한다.그들 스스로는 알까.워낙 서로 진흙탕을 많이 처발라서 내가 누군지 상대방이 누군지도 분간 못하는 게 아닐까.‘저 꼴 보기 싫어 못살겠다.’라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게 그들의 이전투구는 정말이지 넌더리가 났다. 이나이까지 통과해온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회상해보면 빈곤도 빈곤이지만 정치판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개판인 적도 많았다.오죽해야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구호가 만백성에게 회자되었을까.그러나 못살겠으면 갈아보면 된다고 믿을 수 있었던 때는 행복한 시대였다.갈아치운다는 건 요샛말로 하면 개혁이 아니었을까.개혁정부가 들어서고 개혁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국민의 표까지 조작하고 도둑질하던 더러운 시대에도 국민들은 선거에 의해 부패한 정권을 갈아보려는 착하고 정결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매번 좌절하고도 꿈을 버리지 않았고 다음 선거를 기다리곤 했다.정치가들이 저렇게 이합집산과 서로 흠집 내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선거철이 가깝긴 가까운 것 같은데 저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 맞이하고 싶은 새얼굴이 도대체 떠오르지 않으니 어떡하나. 나처럼 희망을 잃거나 분별력이 시원찮은 사람이 선거에 불참하거나 표를 잘못 찍을까봐 염려해서 누구는 좋은 사람이고 누구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가려주겠다는 친절한 단체까지 생겨나고 있다.고마운 노릇이지만 하도 정치가 혐오스럽다 보니 누가 단체를 만든다고 하면 정치적이 될까봐 경계하는 마음부터 갖게 된다.정치하고는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모임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만 생겼다 하면 정해진 수순처럼 정치적으로 변질하고,기어코 진흙탕까지 묻히고 마는 걸 어디 한 두 번 보았나. 그러고 보니 이 난을 맡으면서도 정치얘기는 하지 말자 작심하고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아무리 더러워도 피할 수 없는 그 놈의 정치라는 것,그건 이 시대의 질병인가 악몽인가.산뜻하게 깨어날 수 있는 주문 어디 없을까. 소설가
  • 설연휴 유용한 사이트/귀성길 교통상황·차례상 차리기·세시풍속 인터넷 클릭하면 ‘OK’

    설 연휴를 더욱 알차고 편안하게 즐기려면 인터넷을 뒤져보자.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많다. ●귀성길 도와주는 사이트 고향 가는 길,무엇보다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꼬리를 무는 귀성 차량의 행렬이다.하지만 미리 준비만 하면 한결 여유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출발 전 인터넷에서 도로상황을 미리 체크하고 지름길과 주유소 정보 등을 꼼꼼히 적어두자. 한국도로공사에서 제작한 로드플러스(www.roadplus.co.kr)에서는 실시간으로 고속도로 소통정보를 권역별 구간으로 나눠 제공하고 소요시간 등을 분석해 준다.요일과 시간대별로 정체통계와 인터체인지(IC)간 접근법까지 알 수 있다.이를 참고해 출발시간을 정한다면 최악의 정체는 피할 수 있다.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무작정 떠나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교통정보를 체크하고 떠나면 서울∼부산 기준 최소 4시간 정도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막힌다면 돌아가는 길을 알아두면 편리하다.자동차 정보사이트 오토클릭(autoclick.co.kr)에서는 각 지역과 도로의 우회도로와 지름길을 소개해 준다.사이트에 들어가 자동차 생활→전국 우회도로 안내를 클릭하면 권역별로 나눠 정체를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사이트에는 먼길을 떠나기 전 필수인 ‘자동차 점검’코너도 마련돼 있다.고향에 있는 부모에게 선물사기도 빡빡한 회사원에게는 고향 가는 기름값도 만만치 않다.이럴 때는 전국의 저렴한 주유소를 알 수 있는 오일프라이스워치(www.oilpricewatch.com)를 뒤져보자.고속도로든 국도든 자기가 가는 길 주변의 최저가 주유소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름값 바가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휴대전화를 통해서도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더라도 정보검색이 가능하다. ●새댁을 위한 차례상 사이트 차례상은 어떻게 차려야 하고,음식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새내기 주부들은 기독넷의 설날코너(newyear.kidok.net/food/food_guk.html)를 클릭해 보자.이 코너에선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떡국부터 고참 주부도 어려워한다는 한과까지 30여종의 명절음식 만드는 법을 사진과 곁들여 꼼꼼하게 소개하고있다. 재료의 양은 물론 만드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순서대로 설명해 준다.값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과일과 고기 등을 구하고 싶다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www.naqs.go.kr)이나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유통정보(www.kamis.co.kr)사이트를 둘러보자.이들 사이트에서는 쇠고기와 사과,배 등의 원산지를 구분하는 방법과 품목별 자세한 가격정보를 제시해준다.유통공사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일일 가격동향 등을 무료로 메일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 ●설날 상식 사이트 ‘명절이야기’(myhome.shinbiro.com/∼guswodud/sul.htm)에서는 자칫 세뱃돈 받는 날로 아이들에게 잘못 인식될 수 있는 설날의 의미를 되짚어준다.사이트에선 ‘설’의 ‘어원적인 유래’,‘세시풍속’ 등을 소개하고 차분하고 진정한 설의 의미를 일러준다. ‘설날 이야기’(myhome.hanafos.com/∼7121sky)에는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에서부터 세배하는 법,남녀별로 설빔을 입는 요령 등 소소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가득 차있다.또 윷놀이·연날리기·팽이치기·널뛰기 등 전통적인 놀이를 소개,컴퓨터 게임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조상들의 놀이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장택동 유영규기자 who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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