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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젤은 내안에 있는 또 다른 나”

    “로젤은 내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초가을 밤 클래식 기타 선율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기타계의 왕족으로 불리는 스페인 로메로가(家)의 페페 로메로와 앙헬 로메로의 콘서트와 미국 출신의 천재 기타리스트 크리스토퍼 파크닝의 연주회가 이달 잇달아 열린다. 이들의 감미로우면서도 정열적이고 힘 넘치는 연주는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클래식 기타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카푸치노로 주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 메뉴를 보며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주문하더니 말끝을 흐린다.“요즘 통 잠이 안 와서요. 카페인 마시면 백발백중인데…”. 연기 인생 30년을 앞둔 관록의 배우 김지숙. 지금까지 한번도 공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없다는 그녀를 이렇듯 긴장하게 만든 작품은 16일 서울 우림청담시어터에서 막올리는 모노드라마 ‘로젤’이다.‘로젤’은 1991년 초연 이후 10년 간 3100회 공연,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그녀의 대표작. 분신과도 같은 연극인데 새삼 뭐가 두려울까. “그러게 말이에요. 내안에 또다른 내가 있나봐요.(웃음)사실 두렵다기보다는 무척 설레요.‘로젤’은 관객이 절반을 채워주는 작품인데 이번 공연에선 어떤 관객들과 호흡을 맞출까 하는 기대가 큽니다.” 독일 작가 하롤트 뮐러의 1인극 ‘로젤’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여성이 고교시절 친구들에게 자신의 불행한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 억압적인 아버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던 로젤은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 계획적으로 접근한 연하남의 배신 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탈출한 뒤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들을 찾아다닌다. “초연때는 사회의 약자이자 소외계층인 여성을 대변한다는 심정으로 ‘독립운동’하듯 맹렬하게 연기했어요. 그런데 연기할수록 ‘여성 수난사’보다는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고통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더군요.”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가슴속 이야기를 친구에게 시시콜콜 털어놓은 로젤은 “친구야, 나에겐 너같은 친구가 필요했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어떤 기막힌 상황을 얘기할 때도 침착하던 김지숙은 매번 이 대목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한다고 했다. 1시간20분 동안 혼자 무대에 서지만 연극을 완성하는 건 혼자가 아니다. 로젤은 수시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극에 몰입한 관객은 마치 친구처럼 로젤을 위로한다. 교도소 무료공연때는 여자 재소자들이 ‘우리도 사는데 힘내’라며 격려하고, 오지마을 공연때는 할머니들이 ‘아이구, 어쩌냐’며 친자식 일인 양 마음 아파한다고. 그녀는 “로젤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공연을 피하고 싶다가도 각계각층의 절절한 반응을 접하면 어느새 또 무대에 서게 된다.”며 웃었다. 그녀는 이번 공연을 찾는 관객도 오래 못 만났던 고교 친구를 만나는 심정으로 극장에 와주길 바랐다. 평생 타인에게 휘둘려 살아온 나약한 ‘로젤’과 달리 김지숙은 연기 이외에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성폭력상담소, 주한미군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참여연대 기금마련 공연, 어린이공부방 모금공연 등 소외된 계층에 남다른 애정을 기울였다. 최근 2∼3년간 기초예술연대 공동상임위원장과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느라 2002년 ‘두 여자’이후 연극에도 출연하지 못했다.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 6명을 초청한 PMC프로덕션의 ‘여배우 시리즈’중 네번째 무대. 윤석화, 김성녀, 손숙 등 이미 공연을 끝냈거나 진행중인 다른 배우들과의 경쟁이 부담스럽지 않을까.“연기자는 누구나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을 거예요. 저도 물론 그렇고요.(웃음)배우마다 개성과 향기가 다르니까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각자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11월13일까지.3만∼5만원.(02)569-069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마지막 여름 잡으러 숲으로

    마지막 여름 잡으러 숲으로

    숲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이 아늑한 휴식을 제공한다. 울창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모를 풀들의 춤사위,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편안하게 한다. 지치고 힘들 때 조용히 숲을 걸어보자. 몸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나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풀들의 몸짓을 느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늦여름, 초가을의 문턱에서 세상 모든 일을잠시 잊고 숲속의 생명들과 호흡한다면 진정한 휴(休)가 되지 않을까.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다섯살배기를 데리고 강원도 인제의 한계령에 있는 장수대숲으로. 이 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별장을 지었다는 곳이다. ●호랑이가 있을까 떠나기에 앞서 어린이용 동·식물도감을 펼쳤다.“성주 이리와, 내일 숲에 가면 뭘 만날 수 있을까….”“숲, 숲이 뭐야.”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이건 소나무, 저건 전나무야.” “사마귀, 딱정벌레, 나비, 잠자리…” “그런데 아빠 그럼 사자도 있어요?”아이가 한술 더 뜬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자, 아이는 “난 안가. 무서워. 아빠 혼자갔다와.”라며 벌떡 일어나 가버린다.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지, 숲에는 없다고 설명해줬다. 아이는 “왜 거짓말해. 선생님한테이른다!”며 점잖게 타이르고(?)다짐까지 받고서야 다시 숲 공부를 계속했다. ●생명이 가득한 곳으로 강원도 한계령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장수대. 서울에서 길이 시원하게 나있다. 홍천까지는 거의 고속도로. 홍천부터 인제까지는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에서 3시간이 채 안돼 도착했다. 상쾌한 공기의 향기가 느껴진다.“다람쥐다, 다람쥐!” 사람들을 자주봐서인지 사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다람쥐는 아이가 손을 뻗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 순간 몸을 숨긴다. 다람쥐를 놓친아이의 웃음이 울려퍼진다. 소나무가 볼 만하다.300년이 넘은 소나무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심은 가느다란 소나무가 어우러져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생명력이 넘쳐 보인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장수대숲의 자랑은 가로지르며 흐르는 계곡.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맑아 마셔도 괜찮을 듯싶을 정도다. “아빠 우리도 계곡에 들어가자.”신발을 신은 채 계곡물로 그냥 들어간다. 조심하란 잔소리에 그제서야 아이는 “아빠 난 물이 없는 줄알았어. 물이 잘 안보여.”라고 소리쳤다. 맑고 투명한 계곡에 발을 담근다.“얼음물 같아. 너무 차가워…” 숲에서는 모든 것이신선하고 맑고 깨끗했다. ●숲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참을 걸었다. 아이가 “아빠 정말 호랑이 없지.”라고 묻는다. 인적도 드물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무서운 생각이 드는가 보다.마침 노부부를 만났다.“여기 오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몸도 건강해지거든. 이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 이걸 어디서 느낄 수있겠어.”라고 말하는 김주환(78)씨는 팔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한달가량을 지낸다는 이씨 부부는“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지 아나.”라는 선문답을 남겨 놓고는 내려간다. 그 뒷모습이 20대의 연인들보다 더 아름답고여유가 느껴진다. 이번엔 물장난을 치는 대학생을 만났다. 김명득(20·명지대)군과 친구들은 계곡에서 옷이 흠뻑 젖었지만 그얼굴에서 젊음이 빛난다.“이렇게 나무가 많은 곳은 처음이에요. 몸도 마음도 한결 튼튼해지는 것이 느껴져요.”친구김신(20·경원대)군의 얼굴도 투명하다. 아, 행복하다. ●숲과 같은 아이가 되라 “성주야 너는 이담에 커서 숲과 같은 사람이 돼야해.”아비의 말에 아이는 “에이 아빠는…. 내가 어떻게 숲이 돼요?”라고 이해 못하겠다는 듯 되묻는다. 숲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자기 품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있다. 저 구석에 힘없이 피어있는 꽃부터 여기저기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벌레들까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것이 숲 아닌가.“성주야, 너도 숲처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란 뜻이야.”아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끄덕인다. 아쉬웠다.4시간 정도 머무르고 떠나는 것이. 잠깐이나마 좋은 공기, 깨끗한 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몸도 마음도가벼워졌다. ●장수대숲은 장수대숲은 해발 450∼1000m지역에위치하고 있으며 한계산성, 한계사지 등 문화재와 대승폭포,12선녀탕, 한계령 등 관광지가 주변에 널려 있다. 또한 한계령에서내려오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많고 300년생 안팎의 소나무와 신갈나무, 박달나무 등이 울창하다. 입구에는이승만대통령이 별장으로 썼다는 기와집이 아직 남아 있다. 여름철에는 민박도 할 수 있다. ■ 늦여름이 놓지못하는 숲 Best 6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지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가볼 만한 아름다운 숲이 많다. 생명의숲운동본부에서 추천한 가볼 만한 숲을 소개한다. (1) 관방제림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동자정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된 숲으로 200년 이상된 노거수림이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다. 수해와 토사방지를 위해 조성된 이 풍치림은 1628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방 아래로 흐르는 관방천을 중심으로 약 2㎞에 이른다. 천연의 자연이 아니라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이 인위적인 수림에서는200년 이상된 팽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음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숲이너무 울창하고 아름다워 천연기념물(제366호)로 지정됐다. 담양군청 문화관광과(061-380-3140). (2) 돈내코숲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일대에 있는 숲으로 계곡이 깊고 아름답다. 돈내코 계곡은 한라산 1300m 이상의 고지에서 시작되며 양쪽계곡에는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 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이루고 있다. 또한 다양한 동물과 곤충류가 서식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지대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가 있다. 이곳은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상 흐르는 곳으로 음력 7월 보름백중날에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 하여 ‘물맞이’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서귀포시 환경녹지과(064-735-3421). (3) 소광리 소나무숲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에 형성된 숲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토수종이라고 불리는 금강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일반 소나무보다 생장이 빠르고 나무줄기가 곧은 것이 특징인데 유독 소광리에서 잘 자라는 이유는 오지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4) 장성편백림 전남 장성군 서삼면에 위치한 숲으로 임종국씨가 1956년부터 44년 동안 90만평에 나무를 심어 친자식처럼 정성껏 관리한 조림지로유명하다. 삼나무와 편백 등 상록수림대의 특유한 향과 신선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잘 가꾸어진수림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 사이에 난 임도를 통해 갈 수 있는 모암산촌마을에는 산림휴양관 통나무집과 생태산림욕장이조성되어 있다.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 촬영지인 영화민속촌 금곡마을의 특이한 경관도 즐길 수 있어 가족나들이를하기에 제격이다. (5)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숲으로 조선 제6대왕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 뒤편은 병풍을 두른 듯 절벽이 솟아있고 주위는 강으로 둘러싸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있어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청령포는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은 수령600여년, 높이 3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다.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다고 해서관음송이라 불린다. 또한 청령포에는 단종이 유배당시에 세운 금표비와 1726년(영조 2년)에 세운 단묘유적비, 단종이 한양에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직접 쌓았다는 망향탑이 문화 유적으로 남아있다. 영월군청 산림환경과(033-370-2422). (6) 상림숲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숲으로 천연 기념물 제154호. 면적이 20만 5000여㎡ 로 길이가 1.6㎞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숲은 120여종 2000여 그루의낙엽활엽수림으로 조성되어 있고, 옆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 흐른다. 이곳에는 이온리 석불(유형문화재 제32호)과함화루(유형문화재 제258호) 및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문화재 자료 제 75호), 척화비(문화재 자료 제264호), 초선정 등정자와 만세기념비, 독립 투사들의 기념비 등 문화재들이 많다. 숲속에는 3000여평의 잔디밭과 야외 공연장인 다별당이 있다.
  • [인간시대] 주청노 성유물산 사장

    [인간시대] 주청노 성유물산 사장

    “(루디아의 집)어머니들께 김치를 드리면서 오히려 제가 행복했습니다. 손수 김치통을 들고 찾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1일 송파구 가락동 ㈜성유물산 사무실에 들어섰다.10평 남짓한 사무실 한쪽에는 뜻밖에도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날에는 맥주가 최고죠.” 알싸한 맛이 혀 끝에 닿자 온 몸의 갈증이 한 순간에 달아났다. 주한미군에 김치를 공급하는 유일한 사업자이자 불우 이웃들에게 ‘김치 공양’을 하고 있는 성유물산 사장 주청노(64·오금동)씨는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CEO’였다. ●주한 미군에 김치등 독점 공급 주씨가 김치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청춘을 바쳐 몸담았던 미8군을 상대로 한 한 용역업체가 IMF 환란으로 문을 닫은 뒤였다. 평생을 상대했던 미군이었지만 물건을 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정직과 실력을 무기로 그해 미 국방부 식품위생검사를 통과해 주한미군에 ‘반딧불 김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김치 공급의 이면에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전북 무주군 안성농공단지에 있는 공장은 언제나 ‘비상’ 상태다. 주한미군 의무사령부의 불시 검사가 언제 떨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질 검사, 기계 위생 검사 등 하나도 간단한 게 없어요. 하나만 잘못돼도 검사 도중 그냥 가버려요. 공장에 파리 한 마리 있어도 ‘아웃’이지요. 그래서 저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공장을 불시에 방문합니다.” 올해 초에는 쟁쟁한 대기업도 검사에서 탈락했다. 덕분에 주씨는 연간 김치 200여t을 비롯해 야채와 김, 두부, 된장, 쌈장, 고추장 등을 주한미군에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반딧불김치의 명성은 현해탄과 태평양을 넘었다. 일본 오키나와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까지 수출한다. 직원 20여명의 식품회사지만 연매출 30억여원을 올리고 있다. ●영국등 외국에 수출… 성공 비결은 정직 주씨의 성공 비결은 정직이다. 김치 가격도 대기업보다 싼 ㎏당 4000원만 받는다. 주씨는 “양심적인 회사로 인정받으니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반딧불 김치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씨의 또 다른 본업은 ‘김치 봉사’다. 동사무소에 갔다가 ‘이웃 사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매달 20∼40㎏의 김치를 들고 시각장애 할머니들이 사는 오금동 ‘루디아의 집’과 지체장애인 시설인 ‘소망의 집’을 찾는다.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그것도 손수 운전해서 갖다준다. 명절 때 떡과 한과 등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어느새 한 가족이 됐다. 문정동 등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도 몇 년째 김치를 주고 있다. “여러해 동안 할머니들을 보다보니 이제는 어머니 같고, 아이들은 친자식 같다.”면서 “김치를 건네면서 코 끝이 찡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침엔 성내천 쓰레기 청소 2년 전부터는 집 근처 성내천 청소부로 나섰다. 오전 6시30분부터 8시까지 성내교∼올림픽선수촌아파트 구간 왕복 4㎞를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치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창피해하던 부인 김영숙(56)씨도 요즘엔 함께 나선다. 봉사 활동은 헐벗은 다른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삶의 철학에서 비롯됐다.“내가 갑자기 죽어도 김치 봉사는 계속하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할 정도다. 주씨는 “소외된 이들을 돕고 먹이는 것은 사지 멀쩡한 사람들의 의무”라면서 “욕심을 버릴수록 마음의 행복은 더욱 커진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목소리의 마술사’가 있다. 반세기 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목소리’ 하나로 관통했다. 질곡의 50년 세월속에 가느다란 성대의 떨림으로 감동과 추억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연출했다. 타고난 ‘천(千)의 목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암울했던 1960∼70년대, 라디오의 ‘연속방송극’과 ‘추억의 영화’ 등 무려 1000여편에 출연했다. 엄앵란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도맡아 ‘얼굴없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주변에서 이꼴저꼴 다 보면서 연설과 다큐멘터리 대역(代役) 등을 해 흥미진진한 야화도 간직하고 있다. ●‘여자의용군 예술대’ 자원입대 고은정(70)씨.1954년 12월 KBS 성우 공채 1기로 출발,50년 ‘목소리 인생’을 걸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단막극을 직접 쓰고 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호텔 정원에서 만났다. 먼저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닌 6·25에 참전했던 것.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0년 11월 어느날. 수도여중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고은정은 친구들과 모여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대열에 합류하는데 우리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고은정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막사는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현 극동빌딩 자리). 때마침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가칭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됐다. 고은정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이때 가족들이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외출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귀대했다. 그런데 동료 3분의1가량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어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별도의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당도했다.(관련자료에 따르면 50년 9월 여군교육대가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군부대와 병원 등의 위문을 위해 군악 및 예술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군번 0995862 육군 제대 부산에 도착한 예술대원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때 고은정은 면회 온 목사의 도움으로 십수권의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한 데다 병원위문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앞에 ‘소공녀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던 51년 2월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오란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지난번 도움을 받은 목사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때마침 목사는 제주도의 피란민들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은정도 목사와 함께 떠났다. 도착했더니 돌아올 여객선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부대복귀를 하지 못했다. 고은정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전한 뒤 그해 2월 제주 오현중에 설치된 피란민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고씨는 “얼마전 육군에 확인해 보니 군번도 있고 제대처리돼 있었다.”면서 당시 입대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눈다고 귀띔했다. # 에피소드 1. 74년 8월14일이었다. 영화 ‘맹물로 가는 자동차’ 더빙을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초청했다. 고씨는 의사 동생과 함께 갔다. 육 여사는 진작 보고 싶었다며 “조국을 위해 고생이 많은데 부탁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서울신문에 다니던 오빠가 필화사건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고씨는 육 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단골로 등장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이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TV 전원이 꺼졌다.8·15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사건’이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육 여사 다큐멘터리에 더욱 많이 출연하게 됐다. 박근혜씨가 영부인 역할을 맡을 때 방송국으로 찾아왔다. 박씨는 “아버지는 고 선생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뒤 연말마다 청와대에서 금시계를 보내왔다. ●대통령 부인들과 자주 만나 # 에피소드 2. 5·16 직후였다. 동아방송에서 ‘천일야화’라는 대담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김종필(JP)씨를 초청했다. 시간이 됐는데도 그가 오지 않아 찾아나섰다. 점퍼차람의 한 사람이 방송실 입구에서 “나를 찾는 겁니까.”하고 말했다. 인사를 하자 JP는 “고 선생은 골라쓰는 단어가 아주 달라요.”라고 했다. 인연이 돼 나중에는 JP자택에서 부인과 자주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반 민정당 창당대회 때 권정달씨의 부탁으로 봉두완씨와 사회를 같이 보게 됐지요.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정치 언저리에 맴돌게 된 것 같아요. 여성계 대표라는 명분으로 종종 청와대에서 이순자·김옥숙 여사와 식사도 했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마침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노태우 후보측에서 63빌딩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이종찬씨도 함께 있었다. 노 후보는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노씨는 “고 선생, 어떻게 하면 목을 살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종찬씨는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씨는 “소염제를 먹고 당분간 필담으로 대화할 것”을 주문한 뒤 연설 때 5만,10만 관중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자신 앞에 있는 마이크를 상대로 감동을 시킬 것을 권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오히려 장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어 노 후보가 여성정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자 “이제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들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까지 애처가라는 소문만 잔뜩 퍼뜨릴 것”을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득력은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현대적 감각에는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0분 동안 113개의 언어가 틀릴 정도였는데 대통령에 당선돼 ‘우리나라에선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발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씨는 “스피치는 공인의 덕목 가운데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출강에 여전히 방송활동 고씨는 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고흥숙.‘흥’자 돌림이다. 막내동생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흥길(성남시 분당갑)씨. 오빠 고흥욱(72)씨는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기자출신으로 현재 LA에 산다. 얼마전 국제전화를 걸어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뜬금없이 물어 “아냐, 길은정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겠지.”하고 대답했단다. 어머니는 5남매를 남겨놓고 30대 나이에 요절했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도 54년 교통사고로 일찍 명을 달리했다. 새어머니는 5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현재 94세로 분당 아들집에서 산다. 고씨 자신은 59년에 결혼,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자식 넷을 낳았다. 함께 지내는 둘째딸(44)을 제외하곤 다들 결혼했다. 고씨는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고비를 맞았지만 요즘은 서울예대 장로신학대 출강과 극동방송에서 매일 10분짜리 방송 등을 하며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쓰고 있어요. 여름방학 때는 밀린 대본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일생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36년 서울 출생 ▲ 51년 제주 피란민학교에서 수도여자중학 졸업 ▲ 54년 수도여고 졸업,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KBS 성우공채 1기 ▲ 56년 최초 연속방송극 ‘청실홍실’ 성우 ▲ 58년 연속방송극 ‘산너머 바다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역을 맡아 주목받음. ▲ 이후 ‘장희빈’‘고운정 미운정’‘왕비열전’‘대동강은 알고 있다.’‘불꽃의 소리’‘113수사본부’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1000여편 출연. ▲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당선으로 방송작가 데뷔. ▲ 97년 고은정언어예술원 개원 ▲ 9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 방송극본 가을에 온 손님, 불모의 수령, 저녁노을, 사랑의 계절, 두고온 언니에게 등. ■ 소설작품 고운정 미운정, 위험한 체험 등. ■ 상훈 국민훈장동백장(2000년)
  • “가슴으로 낳은 두딸… 저 쏙 빼닮았죠?”

    첫째딸 하영(7)이와 선천성 기형인 무뇌증을 앓고 있는 둘째딸 아영이(5)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부부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순걸(43)·신주련(43)씨 부부로 전씨는 입양부모 모임인 ‘한사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전씨 부부는 5년전 입양한 아영이가 뇌의 3분의1이 부족한 선천성 기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포기하고 건강한 아이로 다시 입양하라.”라고 만류했다. 담당 의사조차 “앞으로 모든 장애를 다 갖게 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전씨 부부는 5년째 혼자힘으로 배변도 못하는 아영이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몸이 굳지 않도록 하루종일 마사지를 해줘야 하며 1주일에 병원 2∼3곳을 돌며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첫째 딸 하영이도 구김살 없이 잘 자라 하루종일 누워있는 동생 아영이에게 피아노도 쳐주고 먹을 것도 주며 잘 돌봐준다. 하영이는 11일 국내 대표적인 입양기관들이 입양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공동 주최한 ‘입양인의 날’ 제정 기념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전씨 부부는 친자식이 많을 경우 입양 아이에 대한 신경을 쓰지 못할 것같아 고등학생인 아들을 낳은 후 더 자식을 가지는 것도 포기했다. 전씨는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아원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이라며 “하영이와 아영이가 나중에 입양 사실에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6년째 노인·이주노동자에 비빔밥 봉사 임영길씨

    6년째 노인·이주노동자에 비빔밥 봉사 임영길씨

    ‘양푼비빔밥에 사랑을 싣고’ 6년째 어르신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사랑이 담긴 양푼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는 임영길(63·송파구 석촌동)씨. 그는 언제부터인가 ‘양푼 사장’으로 불리고 있다. 임씨의 주 활동무대는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마천동 마천복지관과 거여동 송파복지관. 임씨는 1주일에 2∼3회 큰 양푼에 400명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마련해 찾아간다. 쇠고기와 계란은 물론, 도라지, 취나물 등이 들어간 양푼비빔밥은 인기 만점이다. 임씨의 사랑은 국경도 넘었다. 성남, 신도림, 안산 등의 외국인 노동자의 집도 임씨의 ‘단골무대’다.6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 두번씩은 꼭 ‘순회 봉사’를 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피부색과 핏줄의 차이를 넘어 ‘친자식’이나 다름없다. 지난해부터는 전에 다니던 직장인 롯데호텔의 자원봉사단도 함께 하고 있다. 사실 그의 ‘이웃사랑’은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롯데호텔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임씨는 매달 세 명의 소년·소녀가장을 꾸준히 도왔다. 이후 임씨는 퇴직 뒤 잠실 롯데백화점 스낵코너에서 양푼비빔밥 가게를 냈다. 매장을 2개로 늘릴 정도로 성공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이 ‘봉사’인 탓에 재산은 연립주택 하나뿐이다. 임씨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행사도 준비했다. 6일과 9일 석촌동 식당을 빌려 꽃 하나 꽂아줄 자식이 없는 200여명의 독거노인들과 지역 어르신들에게 양푼비빔밥을 대접한다. 고기와 떡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송파구 민속예술단원 김응삼씨도 구성진 창으로 흥을 돋울 예정이다. 임씨는 “홀로 5남매를 키운 뒤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맘 때면 그립지만 이젠 수백명의 부모님이 생겼다.”면서 “힘이 닿는 한 먹을거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TV소설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재규는 약혼반지를 하러 가는 정님을 불러 미혜와 형주 몰래 돈 봉투를 건네준다. 미혜는 금은방에서 은근히 정님을 의식해서 굳이 다이아반지를 하자며 허세를 부리는데 정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러자며 돈을 꺼내놓는다. 한편 진우는 영실에게 피복 공장을 맡겨 보자고 명희에게 제안한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인천에서 활동하는 여성 5인조 밴드 ‘샤인’. 이들 멤버는 모두 40대가 넘는 주부들로 구성되었다.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하자는 뜻을 담고 있는 여성 5인조 밴드 ‘샤인’을 초대해 꿈과 행복을 노래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언론과의 대화(YTN 오후 3시15분) 열린우리당이 새로운 당 의장인 문희상 의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문희상 의장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여야가 그 어느 때보다 상생의 분위기라고 한다.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해장국 정치를 하겠다는 문희상 의장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남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워주는 수양부모협회.1998년 협회가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협회가 위탁받은 아이들은 500여명이 넘는다. 한 아이가 입양 부모를 만날 때까지, 아이들을 맡아 키워 주는 수양부모를 직접 찾아가 그들이 겪는 특별한 가족애를 들어본다.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집안 분위기가 이상함을 눈치 챈 장박은 영옥에게 이유를 묻는다. 한편 샴푸 테스트 통과를 위해 혼자 연습하던 금순은 태완에게 헤어모델이 돼 달라고 부탁한다. 금순의 월급에서 15만원을 받기로 하고 오미자네 미용실로 따라간 태완은 샴푸를 해주는 금순의 손길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 밤 12시15분) 재치있는 입담과 좋은 노래들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윤종신의 컴백 스페셜 무대. 결혼 후 TV에 첫 출연함과 동시에 멋진 신보로 우리 곁에 찾아온 조규찬 등을 만나본다.‘김제동의 리플해 주세요’에서는 ‘가씨 성으로 멋진 이름 짓기’를 함께 해본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0)전국의 길지 (상)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0)전국의 길지 (상)

    ●정북창의 십승지론 지난 호를 읽은 정감록 산책의 독자들이 인터넷상에서 한바탕 격론을 벌였다. 어느 독자는 전라도의 십승지는 지리산 하나가 아닐 거라며 항의성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해 누구는 전라도에 길지가 여럿인 것은 사실이지만 십승지는 지리산 하나뿐이라고 못 박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감록에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수십 개의 길지가 일일이 언급돼 있고, 전라도에도 길지가 물론 여러 군데 있다. 그런데 십승지란 최상의 조건을 갖춘 열 곳의 길지를 말하는 것이며 그 대부분은 경상도에 위치한다. 충청, 강원, 전라도에도 몇 개의 십승지가 있지만 전라도 몫은 지리산 하나다. 어떤 독자는 난리가 일어날 때 십승지로 피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정감록에 딸린 ‘북창비결’을 언급해가며 십승지 무용론을 폈다. 북창비결은 흔히 북창 정렴(1506∼1549)의 저술로 본다. 유·불·선에 두루 능통했다고 하는 정렴이 과연 북창비결의 저자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십승지에 관한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았다. “십승지지(十勝之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쓸데가 있기도 하고 쓸데가 없기도 하다.” 설사 십승지에 들어가더라도 효과가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북창은 “내 자손들은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에 들어가지 말 지어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십승지를 총체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한다. 하지만 북창은 “양쪽으로 끊어진 산맥, 물이 깊은 곳 섬에 숨어라.”고도 했다. 요컨대 북창비결은 길지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았으나 정감록의 십승지론을 근원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궁기’가 있다 열째 십승지는 태백산(1567m)이다.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 경계에 우뚝 솟은 태백산.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정상에 우뚝한 영산이다. 태백산은 소백산과 더불어 십승지의 자궁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남사고 역시 내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정감록을 보면 이심은 이렇게 말했지. 곡식 종자는 삼풍(三豊)에서 구하고 인종(人種)은 양백(兩白)에서 구한단 거야. 양백이란 태백산과 소백산이지.‘남격암’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랬지. 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라고 말이야. 장차 금강산 서쪽,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되고,9년간의 수해와 12년간의 병화가 있다고 보았을 때 오대산 남쪽에서 길지를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남격암’에서도 북쪽의 땅들은 좋지 못하다 했고, 정북창도 충청도와 강원도는 살 수가 없고, 경기도 동쪽에서는 어육(魚肉)이 난다고 말했거든. 바로 그런 위기의 시절에 태백산과 소백산이 사람을 살린단 말씀이야.‘경주이선생가장결’을 보더라도 비슷한 말이 있고,‘토정가장결’에도 역시 똑같이 돼 있어. 달리 말해 정진인(鄭眞人)의 백성은 소백산과 태백산 밑에서 나온단 예언이야. 두 말할 나위 없이 십승지(十勝地) 중에서도 특히 2산의 기운을 직접 받는 곳이 단연 으뜸이지. 신기하게도 ‘택리지’에도 비슷한 설명이 나와.2산은 고래로 3재(수재, 화재 및 풍재)가 없기로 이름나서 국가에서 사고(史庫)를 두었다고 했거든. 태·소백산은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살기라곤 전혀 없거든. 난 특히 소백산을 사모했지. 소백산 아래 말을 내려 절을 올리며 이렇게 인사를 드렸었지.‘이 산은 정녕 사람을 살리는 산이옵니다(此活人山也).’ 글 가운데서도 난 태·소백산이 피난에 제일가는 땅이라고 밝혀두었어.‘정감록’을 읽어보면 태·소백 사이에 예전에 행세하던 양반들이 복고한다, 후세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면 2산 사이에 자손을 숨겨야 한다고 했는데 모두 내 말에서 비롯된 걸 거야.” 남사고의 편지를 읽고 헤아려보니 ‘정감록’이란 비결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태백산과 소백산에 얽힌 신화와 전설, 남사고를 비롯한 예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점차 수렴되어 정감록이란 예언서를 일궈낸 게 틀림없다. 얼핏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남사고의 편지글은 쉴 새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정감은 이런 말을 했어. 이 난세를 당하여 궁궁(弓弓)이 가장 이롭도다. 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시겠나? ‘경주이선생’에 보면 그 답이 있네. 지도(地道)를 얻어 병진(丙辰)에 금강산(金剛山)에서부터 기운을 바라보고 근원을 찾아 헤매다 어느 새 삼척부(三陟府)에 도착한다고 했어. 거기서 신(辛)·술(戌)의 방위를 따라 오십천우이(五十川牛耳) 사이를 향했더니 태백산(太白山)이란 거야. 태백산에서 백여 리 바깥을 바라보면 깊은 숲 속에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크고 작은 궁기(弓基)란 걸세.‘토정가장결’에도 역시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네. 이 어찌 실없는 말이겠는가? 모름지기 인간 세상에서 몸을 피하는 데는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다고 정감록은 말하네. 오로지 양궁(兩弓), 궁궁 또는 활활이 가장 좋다는 거야. 바로 그 궁기가 태백산 아래 백여 리 지점에 있다 하네. 이 아니 좋을손가?” ●강원도의 길지 최고의 길지인 궁기는 태백산에 가까운 곳에 있다! ‘남격암’은 태백산 밑 강원도 영월 정동 방향의 상류를 가리켜 어지러운 일이 생겼을 때 종적을 숨길 만하다고 했다. 그 곳이 혹시 궁기란 말인가? 이상한 일이지만 영월의 정동 상류는 수염 없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면 소용없다고 했다. 방향이 정동인데다 상류라면 양기가 극히 성한 곳이다. 남성에게 적합한 길지란 말인데 ‘수염 없는 사람’이란 승려, 환관, 아이, 또는 여자라 부적절하단 말이다. 한편 ‘피장처’에선 정선을 길지로 지목하기도 한다. 정선은 높은 산에 파묻힌 모습이 무릉도원과도 같다고 했다. 한편 정선은 지형이 험준해 방어에 유리한 곳이라고도 한다. 남자 한 사람이 관문을 충분히 지킬 만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감록이 말하는 길지는 피난지다. 그러나 정선의 경우는 천연의 요새란 점에서 이채롭다. ‘남격암’엔 백두대간의 본류에 해당하는 강원도 산간의 길지가 두어 개 더 있다. 명산 오대산(五臺山,1563m)과 상원산(上元山)이 그렇다. 상원산은 비교적 덜 유명한데, 정선군 북면과 북평면에 걸쳐 있으며 적설량이 무척 많은 곳이다. 금강산에서 태백산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또 몇 군데 길지가 있다.‘남격암’은 “평평(平平) 울울(蔚蔚)”이 가장 길하다고 했다. 북평, 평해, 울진, 울산 등을 가리킨 것 같다.‘피장처’에도 강릉, 삼척, 평해, 울진이 숨기에 좋다 한다. 이밖에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보미산(補彌山)과 유량산(有良山)도 길지로 거론됐다. 이쯤에서 다시 남사고의 편지를 계속 읽어 보자.“과연 ‘두사총비결’에도 태백산의 지맥들이 길지로 언급돼 있네. 홍천군에 가면 약수산이 있지. 삼봉약수로 꽤 유명한 곳이야. 양구군 동면의 대아산은 또 어떻고? ‘피장처’에선 낭천읍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대미촌과 소미촌이 있다고 했네. 깊고 궁벽한 곳인데 경치가 아주 그만일세. 그 부근에서 오시동, 칠천동, 흑어연, 청하산을 찾아도 좋네. 숨어 살 만한 곳이지. 그밖에 양평과 철원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에 또 하나의 길지가 있어.‘피장처’에선 어영창 동쪽 기슭에서 물길 따라 30리를 들어가면 된다고 했어. 대개 두 물이 모여드는 곳에 길지가 많지.‘화악노정기’에선 낭천에 있는 광현에서 남쪽으로 물길 따라 15리를 내려가면 산이 머리를 돌이키는 곳이 있는데 손씨 6형제가 피난할 곳이라고도 했어. 이렇듯 오대산 쪽에서 서울을 향해 서쪽으로 나오다가 어느덧 춘천에 이르게 되지. 춘천에서도 기린곡은 가장 깊고 궁벽해 난을 피할 만 하네. 춘천과 낭천이 만나는 곳에 불곡이란 곳도 있어. 역시 한 세상의 풍파를 피하기에 최고라네. ●동굴로 연결된 신선세계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신선세계도 있다는 군.‘북두류노정기(北頭流路程記)’에 자세히 나와 있지. 강원도 평강읍(平康邑)으로 흘러드는 구곡천(九谷川)이 있지 않나. 물길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청화산(靑華山)이 나오지. 거기서 태산 골짜기 40리를 휘감아 들어가게. 그러면 눈앞에 천장폭(千丈瀑)이 버티고 있네. 폭포수에 뛰어들어 머리로 물길을 뒤집어쓰고 두어 걸음만 들어가 보게. 한 석굴(石窟)이 나올 걸세. 그 석굴은 길이가 10리라네. 이 석굴을 걸어 지나면 드디어 명랑한 한 세계가 펼쳐지네. 동네 입구엔 5장이나 되는 높은 비석이 위용을 뽐내고 있지. 신선계는 상대(上臺)와 중대(中臺) 그리고 하대(下臺)로 나뉘는데 170여 호가 여기 산다네. 모두 6개 마을이야. 예부터 조선의 숱한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동경해온 이상세계라네. 한 때 나도 그 곳을 찾아 나섰으나 아쉽게도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네. ‘피장처’에도 흡사한 이야기가 있어. 들어보겠나? 소양강 물길을 거슬러 얼마를 올라가면 한줄기 물길이 골짜기 입구에 있는 어느 바위 벽 사이에서 용솟음쳐 쏟아지는 곳이 있네. 재빨리 나무 사다리를 구해 바위틈으로 기어들어가게.20리쯤 바위 밑을 꾸불꾸불 파고들면 마침내 눈앞이 트이고 한 동리가 나온대. 이 마을엔 생선과 소금이 귀해 속세의 사람들은 살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긴 해. 태백산 아래 있다는 궁기나 물밑 동굴로 이어지는 신선세상은 좀체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아주 난점이야. 정말 그런 이상세계가 있기나 한지, 솔직히 말해 나도 모르겠어. 오죽이나 세상살이에 지쳤으면 백성들은 그런 위안거리를 만들어냈을까. 생각할수록 백성들이 가엾기도 하고 영특하게도 생각되네.” ●영남의 길지들 “소백산에서 힘차게 뻗어 내린 몇 개의 산줄기는 다시 영남에 수많은 길지를 만들어 놓았다네.‘남격암’은 우선 조령(鳥嶺,548m)부터 말하고 있네. 조령이라면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가 아니겠나. 새재라고도 하고 문경새재라고도 부르지. 요새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남이라는 이름도 실은 조령과 큰 관련이 있네. 소백산의 아들에 해당하는 죽령(竹嶺,689m)과 조령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영남 아닌가. 영남은 상고 적에 신라 1천년의 중심이었지. 그밖에 ‘남격암’은 영천을 길지라 말했는데 일리가 있어. 영천은 한민족의 영산인 소백산에 가까워. 북쪽엔 보현산(1124m), 서쪽엔 팔공산(1193m), 동쪽의 운주산(806m)이 에워싸며 높이 솟아 있고, 남쪽엔 금박산(432m), 구룡산(675m), 사룡산(685m) 등이 버텨 있어 포근히 감싸인 분지라, 과연 영천은 명당이로고. ‘남격암’은 수산(首山)을 길지라 말하기도 하네. 영양군에 있는 수산 말일세. 있잖은가? 저 유명한 17세기 조선 여성계의 거인 안동장씨부인의 남편 이시명도 바로 그 수산(首山)에 숨어 살았다고 하지 않나. 이 수산(首山)을 요샌 수비산(首比山)이라 부른다며? 선비가 숨어 살며 힘을 기를 만한 곳이 또 있네. 역시 ‘남격암’에 적혀 있지만 금오산(金烏山)이 아주 그만일세. 영남 팔경의 하나인 이 산 아래 유명한 채미정이 있다네. 이 정자야 물론 영조 때 후학들이 건립했다고 하지만 본디는 야은 길재 선생이 숨어 살며 제자들을 길러낸 곳이지. 금오산이 있는 선산군은 인재의 보고라네.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서 나온다 하고 다시 그 절반이 선산에서 출생한다 하지 않던가. 아직도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역시 금오산 기슭에 서 있다네. 말을 하면 끝이 없네. 남쪽으로 뚝 떨어져 오늘날 경상남도 산청군에도 길지가 있어. 조선시대 단성현 북면과 동양면 등은 경치가 절승하고 산골이면서도 남강을 거슬러 생선과 소금이 모여드는 곳이라 사람이 살 만한 아름다운 곳이라네.” ●충청도의 길지 남사고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국의 길지는 태백산 또는 소백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지의 절반 이상은 2산에서 사방 200리 이내에 집중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경상도 단성이나 강원도 춘천처럼 2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길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은 멀리 2산에 연원을 두되 각기 제 나름으로 명산의 칭호를 누릴 만큼 위엄을 충분히 갖춘 경우다. 남사고는 그 점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그럼, 그러하고 말고! 길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바로 그런 것이네. 우선 충주의 월악산을 보게나. 이 산은 ‘피장처’에도 기록된 곳이지만 소백산의 친자식이나 다름없네. 제법 가까이에 있단 말씀이야.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단양에 걸쳐 있는 월악산은 신령스럽기 한이 없다네. 임진왜란 때 왜병이 가까이 오자 번개가 일고 천둥이 쳤어. 그 바람에 산 아래 송재, 덕산 등 마을엔 왜병이 전혀 침입하질 못했어. 이렇게 땅의 기운이란 대단한 걸세. 속리산(1058m)도 꽤 영험하지. 이 산은 소백산에서 서남쪽으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미 그 자체가 명산이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괴산군(槐山郡)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市)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을 광명산이라고도 하고 소금강산이라고도 하지 않나.‘남격암’에선 뭐라 했던가? 보은(報恩)의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 부근은 난리를 당할 때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땅이라고 했어. 하지만 대대로 보존할 땅은 아니라고 했거든. 왜냐? 일조량이 적어 농사가 어렵기 때문이야. 그런가 하면 ‘남격암’은 속리산과 더불어 계룡산을 손꼽았지. 계룡산이 명산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알려져 있고 백소장이 이미 설명한 바라 나로선 말을 아끼고 싶네. 속리산이나 계룡산은 말이지. 이미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참 멀리 떨어진 곳이야. 거기서 서남쪽으로 계속 치닫다 보면 산세가 매우 엷어져 지맥이 끊어지다 시피하게 돼. 약해진 용맥은 충청도 바닷가에 이르러 다시 부활하네.‘남격암’이 일컬은 내포(內浦)의 비인(庇仁)과 남포(藍浦)가 그런 곳이야. 내포는 들이 넓고 산이 야트막해 정다운데다 바다가 가까워 물산이 풍부해. 진정 살기 좋은 곳일세. 이러한 길지는 자손만대 영구히 머물 만한 참으로 귀한 땅이야. 속리산과는 사뭇 다른 곳이라네.” 남사고의 안내를 받아 ‘정감록’의 길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니 곳곳에 명당이요, 명당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곳 아니면 절대 안 될 곳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호남과 경기지방의 길지 순례는 다음 호에서 계속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생계형 ‘자궁임대’ 성행] 국내 법조항·해외사례

    [생계형 ‘자궁임대’ 성행] 국내 법조항·해외사례

    현행 법으로 돈을 받고 대리출산을 해주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법은 물론이고 올해부터 새로 시행된 생명윤리법에도 대리모에 대한 조항은 없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김헌주 과장은 “대리모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데다 법조항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송용욱 수사과장은 “대리모 관련 법규정이 없기 때문에 브로커가 개입해 금전 거래를 하더라도 단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브로커 개입해도 단속 못해 대리모는 통상 임신이 확인되는 즉시 친권포기 각서를 쓴다. 하지만 대리모와 의뢰한 부부 사이의 친권문제는 아직 명확한 정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돈을 목적으로 한 대리모 계약이 유효한지도 법적 논란이 분분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한쪽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美선 의뢰인에 佛선 대리모에 친권 외국에서는 대리모 계약의 유효성과 친권 인정에 각각 다른 판례를 남기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1993년 1만달러를 받고 대리모로 나선 여성이 출산한 뒤 마음을 바꿔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자,“자기가 키우겠다는 의도로 아이를 태어나게 한 여성이 진짜 어머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프랑스 법원은 대리모가 당초 계약을 어기고 의뢰 부부에게 아이를 인도하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권리’를 인정했다. 독일에서는 대리모 계약을 양속(良俗)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효로 본다. 일본도 대리모 출산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영리 목적의 대리모 계약은 금지하면서도 대리모 본인의 의지로 계약을 맺었다면 영리적 목적이 아니라고 해석한다.1990년 친권자 논란이 일었을 때 “아이를 분만한 대리모가 어머니”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여성과 자궁을 상품화하여 돈을 받고 대리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은 아기 매매나 다름없기 때문에 대리모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견해가 있다. 반면 “현행 가족법에서 친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기르도록 양도하는 입양제도를 인정하고 있고, 계약 자체가 대리모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지 암거래나 매매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계약 일방파기땐 해결방법없어 아주대 법학부 조미경 교수는 “민법에는 ‘출산한 자’가 어머니로 되어 있지만, 대리모처럼 ‘자궁의 모(母)’와 ‘난자의 모(母)’가 다를 때 친권자에 대한 법 규정이 없다.”면서 “소송이 제기되면 친권포기각서 등 계약관계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친권문제가 불거지면 아이는 아버지의 ‘혼외자(婚外子)’로밖에는 호적에 올릴 수 없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나눔 세상] 치매할머니의 손발 ‘천사부부’

    [나눔 세상] 치매할머니의 손발 ‘천사부부’

    “말할 것도 없어요. 친자식보다 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창신시장 안. 폭이 1m에 불과한 쪽마루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고 낡은 창틀에선 찬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두 평 남짓한 냉방의 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깔고 앉은 백옥진(80) 할머니는 “오늘은 좀 어떠시냐.”고 묻는 차경남(43)·김혜영(40)부부의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한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동생 이강진(79) 할머니는 어렵사리 고개를 돌리는 듯하더니 이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새 자식 얻은 것 같다” 눈물흘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지난해 2월 관할 동대문경찰서 창신파출소 조동국(54) 경사가 순찰근무를 하다 우연히 방문하면서 알려졌다. 조 경사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보일러가 망가진 냉방에서 종일 누워 있어 등이 짓무른 이 할머니가 눈만 껌뻑이고 있고 백 할머니는 하루 한 끼 식사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조 경사는 주위에 이같은 사연을 알리기 시작했다. 석달 뒤 사연을 전해들은, 창신시장에서 가내봉제공장을 하는 차씨 부부가 선뜻 두팔을 걷고 나섰다. 차씨는 “할머니들을 뵈니 2003년 8월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면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백 할머니 자매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것은 30여년전. 친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동생 이 할머니만 새 아버지 성을 따라 자매는 성이 다르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힘겨운 삶을 이어오면서도 관절염과 신경통으로 몸이 불편한 언니를 정성스레 보살폈다. ●의사 왕진 주선… 이웃들도 감동 이 할머니가 갑자기 중풍과 치매로 쓰러진 것은 2003년 9월 초. 연탄 갈 사람도, 밥할 사람도 없었다. 한 달 뒤엔 백 할머니의 며느리가 이 할머니 소유로 되어 있던 이 집의 명의까지 옮겨가버리고는 별 도움도 주지 않아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보일러 놔드리는 것이 작은 소망 차씨 부부는 할머니들의 집을 찾자마자 가스배관부터 손보고 가스레인지를 놓은 뒤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도록 온수기와 씽크대도 설치했다. 먹을 것을 들여놓고는 직접 할머니의 몸을 씻겨드리고 빨래도 했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줄 몰랐던 이 할머니를 대신해 동사무소에 자격 신청을 했고, 평소 안면이 있던 근처 병원 의사에게 매주 왕진을 와주도록 부탁도 했다. 요즘도 부부는 매일 번갈아가며 들러 할머니들의 건강을 챙기고 말동무가 되어준다. 차씨 부부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다른 이웃들도 두 할머니에게 반찬을 갖다 드리는 등 도움의 손길을 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 이 할머니의 표정은 부쩍 밝아졌고, 백 할머니도 관절염과 신경통이 많이 나아졌다. 백 할머니는 “이웃들이 ‘할머니가 인복이 있어 새로 자식을 얻은 것 같다.’고 말해줄 때는 몸도 훨씬 가벼워진다.”며 이빨이 다 빠져버려 오무라든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부인 김씨는 “돈이 넉넉지 않지만 겨울이 지나기 전에 할머니들 방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일러를 놔드리는 것이 우리 부부의 작은 소망”이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 [스포츠 라운지] 혼합복식 韓中커플 김승환·궈팡팡

    [스포츠 라운지] 혼합복식 韓中커플 김승환·궈팡팡

    한국 첫 탁구 혼합복식 커플 김승환(26·포스데이타)-궈팡팡(25·KRA)은 4월에 있을 ‘릴레이 결혼식’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괜히 얼굴까지 붉어진다. 한국에서 먼저 혼례를 치른 뒤 바로 중국으로 날아가 궈팡팡의 고향인 쉬저우에서 한번 더 올리는 것. 지난 2003년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궈팡팡이 국내 무대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결혼식을 미뤄 왔다. 주중엔 소속 팀에서 숙소생활을 하다가 주말에만 양평 부모 집에서 합치는 ‘주말부부’답게 요즘도 눈빛만 마주치면 깨가 쏟아진다. 양평에 머물 땐 한 주 사이 못 다한 얘기를 나누느라 방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김승환은 “연애 시절에는 이메일과 전화로만 사랑을 확인했는데 주말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쑥쓰러운 듯 털어놨다. ●김승환 첫눈에 ‘뿅’… 중국어 배워 프러포즈 김승환과 궈팡팡이 처음 눈이 맞은 것은 지난 2000년. 상무 소속으로 베트남오픈에 참가한 김승환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 슈에링(싱가포르) 곁에 있던 자그마한 여인이 눈에 쏙 들어왔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상큼한 미소와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차분함이 왠지 좋았다. 궈팡팡도 김승환의 선한 얼굴과 성실함에 호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으로 급진전되지 못했지만, 흑심(?)을 품은 김승환은 중국어를 파고들었고,2001년 코리아오픈에서 사랑을 고백했다. 프러포즈를 은근히 기다렸던지 궈팡팡도 단박에 “하오(중국어로 좋다는 의미).”라면서 수줍게 응락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한국 남자들은 부인을 때린다더라.’라면서 반대했던 궈팡팡의 어머니는 막상 김승환을 만나고 나서는 친자식처럼 좋아했다.‘소황제 세대’로 곱게 자라 버릇없는 또래 중국 남자들과 달리 어른들을 깍듯이 대하는 모습에 반했던 것. 무뚝뚝한 사내만 셋을 키운 김승환의 부모도 “빠바(아빠)!빠바!”라며 애교를 부리는 궈팡팡을 늦둥이 딸을 본 듯 귀여워했다. ●사흘 손발 맞추고 혼복우승 ‘역시 찰떡궁합’ 김-궈 커플은 처음으로 동반출전한 지난달 종합선수권 혼복에서 딱 3일동안 손발을 맞추고도 ‘찰떡궁합’으로 우승을 일궈 탁구계를 놀라게 했다. 안재형(40·한국체대 감독)-자오즈민(41)에 이은 ‘제2의 한·중 커플’로 주목을 받다가 실력으로 얻어낸 스포트라이트였기에 더욱 뿌듯했다. 궈팡팡을 1년 넘게 지도해 온 현정화 KRA 코치는 “둘의 실력만 놓고 보면 우승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부부였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귀화한 선수는 3년간 다른 국가를 대표할 수 없다.’는 국제탁구연맹(ITTF) 규정에 따라 2003년까지 홍콩대표였던 궈팡팡은 아직 선발전에 나설 수 없다. 궈팡팡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2006년부터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비록 종합선수권 우승을 했지만 올림픽 동반출전을 하려면 갈 길이 멀다. 혼복 선수를 따로 뽑지 않기 때문에 각각 대표팀에 합류하는 게 급선무. 세계랭킹 67위 궈팡팡(국내 8위)은 가능성이 높지만, 고질적인 척추측만증으로 슬럼프를 겪은 김승환(세계 165위·국내 23위)이 대표선발전을 뚫기엔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다. ●2세 계획 은퇴뒤로… 2008년 올림픽 ‘올인’ 궈팡팡이 “승환은 재능이 충분한데 파워가 부족해요.”라면서 은근히 다그치자 승환은 “팡팡이 먼저 대표팀에 들어가면 좋겠고 저도 따라가야죠.”라며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2세 계획’도 은퇴 뒤로 미룰 만큼 베이징올림픽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핑퐁 커플’의 해맑은 눈빛에서 3년 뒤 금빛 호흡을 기대해 본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궈팡팡은… ▲1980년 2월6일 쉬저우 출생 ▲펜홀더 전형 전진속공 ▲세계 랭킹 67위 ▲궈지룽(51) 장민즈(49)씨의 무남독녀 ●김승환은… ▲1979년 1월1일 출생 ▲부산 영선초-대광중-시온고, 실업팀 동아증권-상무-포스데이타 ▲펜홀더 전형 이면타법 ▲세계 랭킹 165위 ▲김동수(56) 박형순(54)씨의 3남 중 막내
  • 儒林(261)-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61)-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이처럼 공자의 제자들은 하나씩 둘씩 공자의 곁을 떠나 정치일선으로 나아간다. 사기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이들 말고도 다른 제자들의 활약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하(子夏)는 거보의 읍재가 되었으며, 자화(子華)는 노나라의 사신으로 제나라에 나갔었고, 재여는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는 공자의 수제자 중 대부분이 학문의 길을 버리고 정치의 길로 나선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기에는 ‘공자는 시·서·예·악을 가지고 가르쳤는데, 제자는 대략 3000명이나 되었으며, 육예(六藝)에 통달한 사람들만도 72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3000명이라는 숫자는 공자에게 한번이라도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의 총 숫자일 것이며, 실제로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던 제자는 70여명이었을 것이다. 공자 자신은 논어에서 자기 제자들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덕행에는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있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 공자 스스로가 열명의 제자들을 거론하였다 해서 흔히 이들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부르고 ‘덕행’,‘언어’,‘정사(政事)’,‘문학’을 공문사과(孔門四科)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공문십철 중 염백우는 나환자가 되어 학문의 길에서 탈락되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제자들은 이처럼 학문을 버리고 정치로 나아갔던 것이다. 끝까지 스승을 좇아 공문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안회, 민자건(閔子蹇), 자하 등 서너 사람에 불과하였다. 그중 공자가 가장 사랑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던 안회가 공자보다 3년이나 앞서 단명하여 죽었다. 자신보다 30여세나 적었던 안회를 공자는 특히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공자 스스로 평한 공문십철 가운데에서도 첫 번째로 꼽힐 정도로 덕행이 뛰어났던 안회에 대해서 공자는 ‘안회는 그의 마음이 석 달을 두고 인을 어기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따름이다.’라고까지 극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학문의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던 안회가 자기보다 먼저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天喪予 天喪予)’하고 두 번이나 탄식하면서 성대하게 장사를 치러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공자는 안회의 장사를 치를 때 자기 친자식 이상으로 장사를 치르는 태도로 임하였는데, 논어에는 이 장면이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안회가 죽자 문인들이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고자 하였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 된다.’ 그러나 문인들은 성대하게 장사를 치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나를 친아버지처럼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고 너희들 때문이다.’” 공자의 이 말은 안회가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섬기고 있어 자신도 안회를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싶었지만 어느 한사람만 편애하는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차마 보여줄 수 없어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어주느라 각별한 애정을 주지 못하였다는 인간적인 탄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문십철 중에 공자의 뒤를 좇아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은 오직 민자건과 자하뿐이었다. 물론 민자건에게도 정계로부터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민자건은 이름이 민손(閔損)으로 공자보다 15살 아래의 제자였는데 특히 효행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월드컵축구대회가 ‘중반 열기’를 뿜던 2002년 6월15일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축구 변방국인 한국에 본선 첫 2라운드 진출의 영광을 안긴 뒤 던진 이 말은, 그 뒤에도 많은 이들이 베껴먹은 ‘명언’으로 남았다. 히딩크는 ‘승리’와 ‘우승’에 배가 고팠지만 우리의 많은 이웃들은 사랑과 그리움에 배고품을 느끼고 있다. 지난 11일 만난 스티브 모리슨(48·한국명 최석춘·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워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다리를 저는 장애 소년으로 미국 양부모에 입양된 모리슨, 아니 최씨는 1999년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MPAK·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를 설립,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우주항공연구소(The Aerospace Corporation)에서 14년째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적용한 인공위성을 2012년 발사하는 게 1차 목표다. ●묵호 움막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는 이역만리 미국의 한 낯선 가정에 맡겨졌지만 양부모에게 한국에서는 그토록 목말라 하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도 난 사랑에 배가 고프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람 좋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워낙 오래된 일인데다 구절양장(九折羊腸)과도 같은 삶속에서 네살 때인지, 다섯살 때인지 기억도 아련하다. 가난이라는 표현도 사치스러운, 집도 절도 없던 시절이었다. 강원도 묵호역 근처 ‘굴다리’ 밑 움막이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움막생활도 그에겐 큰 아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최씨는 “사랑만 있었어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날의 사건만 없었다면, 늘 술에 찌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주먹을 휘두르지만 않았다면, 지금껏 피붙이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그의 뇌리를 맴돌고 있다. 1960년 어느 날 어머니가 가출했다. 곧바로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경찰서에 붙들려갔다. 낯선 아주머니가 찾아와 두살 아래였던 동생을 데려갔다. 자신은 한 신사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으로 갔다가 62년 당시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용서한 지 오래입니다. 꼭 뵙고 싶어요. 단 한번이라도…. 그러나 솔직히 동생 대천이가 더 그리워요. 너무 어렸던 녀석이라 어떻게 자라났는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랑을 준 ‘푸른 눈’의 아버지 14살 때인 1970년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인 양부모에 입양된 것이다. 친자식 1남 2녀를 둔 양부모는 지금 80세,79세 됐다. 최씨는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남동생 둘을 뒀다. 바로 아랫 동생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핏줄을 지닌 혼혈 입양아. 그가 털어놓은 새아버지에게 얽힌 에피소드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가족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준다. 그는 세계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배출한 인디애나주 퍼듀(Purdue) 공대를 나온 뒤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어 남가주대학원(USC) 우주항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장학금을 약속한 항공업체 휴스(Hughes)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새 삶을 일궈준 양아버지가 심장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술할 날 졸업 시험이 있었지 뭡니까.‘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찾아뵙지 않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후 졸업장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 갔다. 아버지는 졸업장에 쓰인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며 눈물을 글썽였다. 양부모가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학자금을 댔다는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최근 우연찮게 들었다. ●입양아 70%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디 제 정신이고서야 나같은 사람을 입양할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그는 한창 사춘기 무렵이어서 예민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14세, 그것도 장애인인 자신을 거둬들인 지금의 부모를 생각하면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의 저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움막집에서 지낼 때 다리를 다쳤고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인이 됐다. 얼른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한국에 대해 묻자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생산력이 엄청나며, 높은 교육열 등 장점이 많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정보통신(IT) 강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몇 안되는 나라라지만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이다. 그가 1999년 11월 한국입양홍보회를 만든 계기는 우리나라의 입양실태와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수많은 사연 속에 버려지는 어린이는 해마다 1만 20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다른 나라의 새로운 부모에게 안겨지는 숫자는 2400여명이다. 그 중에서도 70% 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돌아간다. 반면 생각이 비슷하고 환경이 같은 우리 국민에게 새 둥지를 트는 아이는 180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해외 입양 자체를 반대하고, 국내 입양이 꼭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88서울올림픽 무렵 ‘고아 수출국’이라는 혐오스러운 말이 언론을 통해 지구촌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뒤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무섭게 번졌죠. 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고아 수출국’이라는 말로 해외 입양까지 막으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영원한 정신적 기둥’ 홀트 어머니, 누나의 일을 본받아 우리나라 안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피부색깔도 다른 나라의 사람이 받아들이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들은 물론 한인(韓人)과 한국을 위해서라도 이를 고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1995년부터 미국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입양홍보 활동을 하다가 보다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겠다는 뜻에서 홍보회를 만들었다. 그는 “정작 나 자신이 입양아이면서도 미국 홀트국제아동복지회 이사로 일하며 현실을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83년부터 16년 동안 이사로 활동한 경험으로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데 온힘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일 서울에서 열린 입양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했다. 입양아들에게 친부모를 공개해야하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제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길러준 사람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고 일찍 알려줘야만 충격을 견뎌내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말도 보탰다. 현재 국내 500여개 입양가정이 가입한 입양홍보회의 취지도 공개입양 절차와 가정끼리의 모임으로 건전한 인식을 심는 데 있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힘으로 버림받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지난 14일 “벌써부터 아들 일곱살배기 조지프(한국명 오해성·2000년 입양)과 같은 일곱살인 큰 딸, 다섯살 된 막내딸이 보고 싶어지네요.”라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최석춘씨는 1956년 강원도 묵호 출생 1962년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소 1970년 미국으로 입양 1979년 퍼듀대 우주항공과 졸업 1981년 남가주대학원 석사 1981년 미국 우주항공연 입사 1983∼1999년 국제홀트회 이사 1999년 한국 입양홍보회 창설 2000년 한국인 오해성(3)입양
  • ‘왕꽃선녀님’ 입양아 비하 물의

    ‘왕꽃선녀님’ 입양아 비하 물의

    MBC 일일 연속극 ‘왕꽃 선녀님’(극본 임성한 연출 이진영)이 또 한번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이번엔 입양아를 비하한 대사가 말썽이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18일 방송분에서 여주인공 윤초원의 예비 시어머니가 초원이 입양아임을 알게 된 후 초원의 어머니에게 노발대발하며 따지는 장면.여기서 그는 입양인과 그 부모를 마치 죄인 취급하는 자극적인 대사를 마구 쏟아냈다.초원에 대해 “근본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또 “‘개구멍받이’를 내 며느리로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친자식이 아닌 걸 숨겼으니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 방송이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시청자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들이 멈추지 않고 있다.일부 시청자들은 임성한 작가의 공개 사과까지 요구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김명희씨는 “입양에 대한 작가의 무지가 문제”라면서 “작가의 불성실함이 수많은 가정에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입양 기관에서 근무한다는 강영님씨는 “우리 사회에서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드라마 한편이 그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입양문화를 퇴보시키고 있다.”며 “정말 숨이 차고 눈물이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입양 부모와 입양 관련 기관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이들은 26일 오전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왕꽃선녀님’의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김영희 이혼클리닉] 자녀들이 새엄마라고 미워해요

    세살 된 아들을 전 남편에게 빼앗기고 2년 전 재혼한 33세 여성입니다.42세인 지금 남편은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네에서 가정의학과를 개업하고 있습니다.초등학교 6년생 딸과 중2년생 아들이 있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딸아이는 아무리 잘해줘도 저를 미워하고,툭하면 남편 병원으로 달려가 웁니다.가까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쫓아와 저에게 심한 말을 하고요.두고 온 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진심으로 잘하고 있는데….재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하지만 또다시 실패할 수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강정은- 강정은씨, 초혼보다 몇 배가 어려운 게 재혼이라고 합니다.재혼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다 보니 전에 받았던 배신과 불신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 새로운 배우자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며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고 합니다.또다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염려로 마음에 긴장을 풀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상대에게 완전한 마음을 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정은씨, 전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하면서 세 살배기 아들까지도 남편이 키우고 있다면 여자로서,어머니로서,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 마음이 있기에,재혼한 자식 둘을 친자식같이 잘 키우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당신 마음을 몰라주어 불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가까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달려와 아이들 역성을 들며 당신에게 모진소리를 해대는 데다,딸아이는 툭하면 아빠한테 달려가 울고불고 매달리고,속상한 남편은 당신에게 화를 내고….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재혼가정에서 가장 많이 생기고 있는 문제점이긴 합니다만,당신 혼자서 참고 견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재혼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자녀문제라고 하는데,부모의 이혼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던 아이들은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은 데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을 아빠,엄마로 부르며 함께 산다는 사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당신의 경우 중 2년생 아들과 초등학교 6년생인 딸이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갑자기 잃어 충격이 컸을 것이며 친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낯선 사람을 새엄마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정은씨, 당신 가정은 남편이 중심을 못 잡고 있어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딸아이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오면 응석을 받아주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고,시어머니가 단걸음에 쫓아와 당신에게 심한 말을 하는 것을 못하게 했어야지요.더구나 아이들 앞에서 시어머니가 당신에게 수모를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였습니다.물론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측은하고 가엾은 마음으로 그랬겠지만….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부모의 태도입니다.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선 부모의 자녀교육 방침이 같아야 하는데도,많은 가정에서는 아버지 따로,어머니 따로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게 되면 어린 자녀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판단치 못하게 되어 무조건 자신을 감싸주는 부모만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한 쪽 부모를 싫어하게 된답니다. 재혼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과 불화가 생기고 있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 큽니다.당신 혼자서 아무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그 사랑을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남편과 시댁의 적극적인 협조와 격려 없이는 아이들과 당신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가까워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은씨, 더 늦기 전에 오늘이라도 남편에게 당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아버지로서,남편으로서 중심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당신 또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남지 않는 법입니다.정은씨, 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삶을 사십시오.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자녀들이 새엄마라고 미워해요

    세살 된 아들을 전 남편에게 빼앗기고 2년 전 재혼한 33세 여성입니다.42세인 지금 남편은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네에서 가정의학과를 개업하고 있습니다.초등학교 6년생 딸과 중2년생 아들이 있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딸아이는 아무리 잘해줘도 저를 미워하고,툭하면 남편 병원으로 달려가 웁니다.가까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쫓아와 저에게 심한 말을 하고요.두고 온 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진심으로 잘하고 있는데….재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하지만 또다시 실패할 수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강정은- 강정은씨, 초혼보다 몇 배가 어려운 게 재혼이라고 합니다.재혼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다 보니 전에 받았던 배신과 불신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 새로운 배우자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며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고 합니다.또다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염려로 마음에 긴장을 풀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상대에게 완전한 마음을 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정은씨, 전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하면서 세 살배기 아들까지도 남편이 키우고 있다면 여자로서,어머니로서,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 마음이 있기에,재혼한 자식 둘을 친자식같이 잘 키우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당신 마음을 몰라주어 불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가까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달려와 아이들 역성을 들며 당신에게 모진소리를 해대는 데다,딸아이는 툭하면 아빠한테 달려가 울고불고 매달리고,속상한 남편은 당신에게 화를 내고….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재혼가정에서 가장 많이 생기고 있는 문제점이긴 합니다만,당신 혼자서 참고 견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재혼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자녀문제라고 하는데,부모의 이혼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던 아이들은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은 데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을 아빠,엄마로 부르며 함께 산다는 사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당신의 경우 중 2년생 아들과 초등학교 6년생인 딸이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갑자기 잃어 충격이 컸을 것이며 친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낯선 사람을 새엄마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정은씨, 당신 가정은 남편이 중심을 못 잡고 있어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딸아이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오면 응석을 받아주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고,시어머니가 단걸음에 쫓아와 당신에게 심한 말을 하는 것을 못하게 했어야지요.더구나 아이들 앞에서 시어머니가 당신에게 수모를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였습니다.물론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측은하고 가엾은 마음으로 그랬겠지만….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부모의 태도입니다.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선 부모의 자녀교육 방침이 같아야 하는데도,많은 가정에서는 아버지 따로,어머니 따로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게 되면 어린 자녀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판단치 못하게 되어 무조건 자신을 감싸주는 부모만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한 쪽 부모를 싫어하게 된답니다. 재혼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과 불화가 생기고 있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 큽니다.당신 혼자서 아무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그 사랑을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남편과 시댁의 적극적인 협조와 격려 없이는 아이들과 당신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가까워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은씨, 더 늦기 전에 오늘이라도 남편에게 당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아버지로서,남편으로서 중심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당신 또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남지 않는 법입니다.정은씨, 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삶을 사십시오.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DNA검사로 15세 소년 10년만에 엄마품에

    “건아.엄마야.엄마가 왔어.엄마 얼굴 몰라보겠니.” 1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1층 미아찾기센터.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강건(15)군에게는 10년 전 헤어진 어머니 김희종(55)씨의 얼굴을 기억하는 게 무리였나보다.다시 찾은 아들을 한번이라도 꼭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모정(母情)을 아는지 모르는지,건이는 어색한 듯 연신 얼굴을 돌려대고 손길을 뿌리쳤다. 10년 동안 아들을 홀로 남겨둔 어머니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 안쓰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연신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해.엄마가 늦게 왔어.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었다. 건이가 5살 때인 1994년 10월.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병원에 입원하면서 비극은 발생했다.노원구 상계동 집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염색체 이상으로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는 건이를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친척이 없어 건이는 이웃 주민들에 의해 서초구 내곡동 시립아동병원으로 보내졌다.아버지는 4년뒤 숨을 거뒀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던 어머니는 2003년 5월 상태가 호전되자 구청과 동사무소 등으로 아들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하지만 쉽지 않았다.가스폭발 당시 동네에 살던 이웃들은 거의 모두 이사를 가 버렸고,‘무연고 아동’으로 신고된 아들의 행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1년 동안 손발이 닳도록 아들을 찾아 헤맨 어머니는 우연히 경찰청 미아찾기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 8일 경찰청사를 찾았다.어머니는 경찰의 도움을 얻어 경찰 전산망에 입력된 이름과 나이 등 신상 자료를 검색한 끝에 도봉구 쉼터요양원에서 아들로 보이는 ‘소년’을 찾아냈다.그 길로 요양원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소년’의 손톱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아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소년’은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에 비해 유난히 뭉툭하고 넓었던 건이의 손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하지만 어머니의 ‘직감’만으로 법적인 친자식이 될 수는 없었다.경찰은 9일 친자 확인을 위해 어머니의 DNA를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미아찾기센터의 시설보호아동 DB에 보관중인 건이의 DNA와 대조 작업을 벌였다. 지난 10년보다 더 길고 가슴 졸인 만 하루가 흐른 뒤 어머니는 비로소 아들을 되찾았다.“이제 다시는 아들을 놓지 않을 겁니다.”어머니는 뿌연 눈길로 아들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지난 달 27일 문을 연 경찰청 미아찾기센터는 전국 보호시설의 무연고아동 및 정신지체장애인 8815명과 자녀가 실종된 부모 109명의 DNA를 보관하고 있다.건이와 어머니의 상봉은 센터 개소 이후 첫 케이스다.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전국적인 시설보호아동 DB가 좀더 빨리 갖춰졌다면,모자 상봉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발가락도 안 닮았다 했더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결혼한 20대 여성이 결혼 취소는 물론 위자료 5000만원을 물게 됐다. 1998년 6월 A(29)씨는 대학 후배 소개로 아내 B(26)씨를 만났다.만난 지 2개월 만에 첫 성관계를 가진 뒤 4년 동안 연애했다. B씨는 대학 졸업식에서 시부모에게 인사했고,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그러나 A씨는 줄곧 피임도구를 사용,별 문제가 없었다. 2002년 2월 B씨는 A씨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다.피임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A씨는 양가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받고 B씨와 동거에 들어갔다.같은 해 11월 B씨는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기가 자랄수록 A씨와 닮은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주위에서도 “아이가 아빠를 전혀 닮지 않았다.”고 말하곤 했다.이상하게 여긴 남편 A씨는 아내 몰래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친아버지일 확률은 0%로 나타났다.이 사실을 아내와 부모에게 알렸다.가족들은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바뀐 것으로 결론지었다. 산부인과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 위해 B씨도 유전자 검사를 받기로 했다.지방에 살던 부부는 지난해 10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검사 받기 직전에야 비로소 B씨는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털어놨다. 충격을 받은 남편 A씨는 “결혼은 무효이며 아이도 친자식이 아님을 확인해 달라.”고 서울가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 홍중표)는 31일 “아내 B씨는 결혼 전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했고,이를 남편 A씨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혼인을 취소하고,B씨는 A씨에게 위자료 4000만원,시부모에게 5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이어 “B씨가 낳은 아이도 A씨의 친생자가 아님을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극단 미추 ‘허삼관매혈기’

    극단 미추의 ‘허삼관매혈기’(극본 배삼식,연출 강대홍)가 릴레이 연극시리즈 ‘연극열전’ 여덟번째 작품으로 오는 4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허삼관매혈기’는 지난 96년 출간된 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작품.지난해 4월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돼 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베스트7’,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우수연극3’,동아연극상 작품상·연기상,히서 연극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960년대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피를 팔아 연명하는 가난한 노동자 허삼관 가족의 일대기가 중심축이다.허삼관은 피를 판 돈으로 아내 허옥란을 얻고,일락·이락·삼락 세 아들을 낳아 기른다.큰 아들이 아내가 결혼전 사귄 남자의 아이란 사실을 알고도 병원비를 대기 위해 피를 파는 허삼관의 모습은 무뚝뚝하면서도 속정깊은 동양의 아버지상을 대변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언뜻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일 것 같지만 작품 곳곳에 해학넘치는 대사들이 포진해있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등장 인물은 하나같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때문에 그들의 좌충우돌이 빚어내는 웃음은 금방 가슴 아릿한 슬픔으로 변한다. 극단 미추가 자랑하는 앙상블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초연 당시 친자식이 아닌 아들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허삼관역을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잘 표현해 주목을 끈 이기봉과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으로 열연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서이숙이 다시 한번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이밖에 지난달 서울연극제에서 ‘빵집’으로 연기상을 받은 김동영을 비롯해 송태영,정태화,서상희 등이 개성있는 캐릭터를 선보인다.7월4일까지(02)747-516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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