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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친일재산 반납과 일왕의 과거 망각 우려

    과거의 성찰과 반성없이 화해와 통합의 장밋빛 미래를 운운함은 어불성설이다. 화해와 통합에는 잘못된 과거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가 긴요하다. 그제 친일행위자 후손이 물려받은 재산을 국가에 반납했다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 발표가 있었다. 전날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20년 기념회견서 일본인들이 전쟁역사를 잊어 걱정이라 했다. 과거사 직시와 반성 차원의 도드라진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친일행위자의 재산환수는 2006년 특별법 제정 이후 3년여 계속되고 있는 사안이다. 친일파 114명의 재산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이 내려졌지만 후손들은 모두 60여건에 달하는 반대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소송은 갈수록 늘어 올해만도 26건이나 된다. 그런 상황에서 1905년 을사조약 당시 중추원 고문을 지낸 고희경의 후손이 토지 매각대금 4억 8000만원을 반납했다. 법적 분쟁을 벌이지 않고 친일재산을 국고에 자진 납부한 첫 사례이다. 현실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씀씀이가 단연 돋보인다.아키히토 일왕의 과거사 발언도 크게 주목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 침략전쟁과 관련, 책임과 반성을 담아 ‘통석의 염’ ‘크나큰 고통’ ‘깊은 슬픔’의 말들을 남겨왔다. 일왕이 과거사의 직시를 거듭 당부한 것은 이런 언급의 연장선상이다.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의 과거사 청산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다. 일왕은 특히 전후 태어난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어두운 과거를 묻어둔 채 현실에 안주하면 더 큰 아픔과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대국적 이해와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고희경 후손의 용기 있는 결단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차원에서 수습해야 한다. 일왕의 예사롭지 않은 과거사 발언이 의미를 갖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는 말만의 청산이 아닌, 실천하는 청산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
  • 친일후손 재산 첫 자진반납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이 친일 재산 국가귀속결정에 불복해 잇따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후손들이 친일재산 매각대금을 국가에 자진 반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을사조약 당시 중추원 고문을 지낸 친일행위자 고희경의 후손들이 물려받은 땅의 매각대금을 지난 9월 국가에 반환했다고 12일 밝혔다. 친일재산조사위 활동 이후 국가에 재산을 자진반납한 첫 사례다. 고희경의 후손들은 2006년 2월에서 10월 사이 물려받은 땅 2만 4800㎡를 4억8000여만원에 매각했다. 친일재산조사위가 이 땅에 대해 2008년 11월 ‘친일재산 확인’ 결정을 내렸으나 이미 제3자에게 팔린 상태여서 절차에 따라 후손들 소유의 다른 부동산에 가압류 신청을 냈다. 이에 후손들은 친일재산조사위와 협의해 당시 매각대금을 국가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친일재산조사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재산의 정당성을 떠나 지키려고만 하는 다른 친일 후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과거사 청산을 통한 국민통합의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데뷔 20주년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면 세상은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민중가수보다 더 민중가수답다는 이야기를 듣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이 문화연대와 함께 라이브 무대를 꾸린다. 27~28일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연대 10주년, 블랙홀 20주년 기념 트리뷰트 공연 ‘깊은 밤의 서정곡’이다. 문화연대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어깨동무하는 음악인이 헤비메탈 밴드라는 점이 이채롭다. 마침 블랙홀도 앨범 발매 기준으로 20년의 나이를 먹은 시점. 1985년 결성 뒤 1989년 첫 앨범을 포함해 8장의 정규 앨범을 내는 동안 우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정신적 가치를 노래하고, 지금까지 20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치며 헤비메탈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는 밴드가 바로 블랙홀이다. ●창립 10주년 문화연대와 27~28일 라이브 무대 최준영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문화연대가 했던 주요 행사나 캠페인에 빠짐없이 참여한 팀이 바로 블랙홀”이라면서 “우리도 자료를 찾아보다가 놀랐을 만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팀”이라고 설명한다. 공연 연출을 맡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연대 활동과 관련해 섭외를 도맡아 왔다.”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탁월한 음악성과 연주력 때문에 블랙홀을 섭외했다.”고 강조한다. 이번 공연이 시대에 편승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대중음악에 획을 그었던 밴드의 음악적 의의를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크린쿼터 사수 문화제, 이라크 파병 반대 반전 콘서트, 촛불아 힘내라 콘서트,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자선 콘서트 등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밴드로 인식됐으나, 사실 블랙홀은 데뷔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을, 통일을, 우리 삶과 사회를 노래해 왔다. 내년에 발표할 9집에서는 잊혀져 가는 위안부 할머니, 3·1절, 친일파 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리더인 주상균(보컬·기타)는 “어떤 특정한 사회 참여적인 발언을 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우리가 어울리고 연주하는 목적이 서로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나만 잘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 줘야 행복할 수 있다고 노래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연주에 대해 만족하고, 서로 재미있어 하고,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블랙홀. 앞으로 활동이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감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적 약자들에 희망·사랑 전하고파” 주상균은 문화연대와 함께한 활동 가운데 2000년초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시민단체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망설여진 부분이 많았다.”면서 “우리가 노래로 하는 것을 문화연대는 몸으로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더니 바로 선입견이 무너졌고, 이후 연대 활동을 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돌이켰다. 당시 전국 7개 도시를 돌며 서명을 받았고, 공연 비용은 블랙홀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제목 그대로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아 바치는 헌정 공연이다. 국내 음악계에서는 드문 경우. 그것도 비주류에 속하는 헤비메탈 밴드가 주인공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블랙홀이 대중음악계에 깊은 발자국을 새기고 있다는 이야기. 주상균은 “우리 입장에서 헌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다른 때 같으면 안 한다고 했을 것”이라면서 “예전보다 음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대중음악 가운데 비주류인 헤비메탈 밴드 가운데 누군가는 이정표가 돼줘야 후배들에게 그래도 명예는 남길 수 있다는 용기를 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과감하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27일에는 크래쉬, 갤럭시익스프레스, 노브레인이, 28일에는 디아블로, 스트라이커스, 크라잉넛이 블랙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노개런티다. 각 팀마다 블랙홀의 대표곡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바꿔 1곡씩 부르며 25분 동안 연주할 예정이다. 인터미션에는 블랙홀의 활동을 담은 1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이번 공연은 HD화질의 실황 DVD로도 제작된다. 특히 한예종 재학생들이 내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블랙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후배들의 공연 뒤 블랙홀이 자신들의 20년 역사를 반추하는 무대를 약 70분 동안 꾸리게 된다. ●새달 5일부터 전국투어 콘서트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가 펼쳐진다. 다음달 5일 충남대 백마홀, 12일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무대에 서는 것. 역시 뉴크, 마하트마, 다운인어 홀 등 후배 밴드들이 함께한다. 내년 1월에는 부산, 대구, 광주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투어 이야기가 나오자 주상균이 한마디를 꺼낸다. “음악신이 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면, 군 단위에서도 투어를 해왔던 우리 입장에서는 ‘지방’은 차별적인 말이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 있을 뿐이다. 5~10년 된 각 지역의 베테랑 음악인들과 열정을 나누며 다시 볼 수 없는 공연을 선사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정병희(베이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소홀하게 공연한 적이 없다. 음악은 아직도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하루하루 변함 없이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원재(기타)는 “정말 공연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다. 앞으로는 이번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고대했다. 어느덧 관록의 밴드가 됐지만 요즘도 회사원이 출근하듯 연습실에 나와 끊임 없이 가다듬고 무대에 오른다고 하는 블랙홀. 이관욱(드럼)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최고 밴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대체가 절대 불가능한 팀”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일회담서 과거사청산 못한 건 반공논리 탓”

    “한·일회담서 과거사청산 못한 건 반공논리 탓”

    친한파인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정권 출범으로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내년에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제안하며 우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지 않고 양국간 진정한 우호관계의 형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다. 히로히토 일왕과 일본 역대 정권은 그동안 몇 차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했지만 핵심인 한일병합의 불법성에 관해선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문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끊임없이 대두돼 왔다. 14년 교섭끝에 타결된 한일회담은 경제개발이 시급했던 박정희 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현실론적 평가도 있지만 식민지 과거청산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권이 아니라 다른 정권이었다면 식민지 과거 청산이 가능했을까. 재일교포 2세인 장박진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은 신간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논형)에서 한일회담은 구조적으로 식민지 관계 청산이 불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식민지 관계 청산은 한일병합의 불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 책임에 따른 보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청구권 교섭에 밀려 과거사 청산이라는 본질은 흐지부지됐다. 기존 학계는 한일회담에서 식민지 과거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던 원인을 주로 미국의 대일 및 대한반도 정책, 일본 정부의 과거에 대한 무반성적인 자세, 그리고 한국 정권의 속성 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장 연구원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한다. 애초부터 한일회담의 성격 자체가 식민지 청산을 제기할 만한 구조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 한국 정부는 과거청산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능력이 없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족간의 대립은 반공을 국가 수호의 최우선 과제로 삼게 했고, 반공논리는 친일논리와 연결되면서 정부는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했다. 둘째, 일본내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세력들은 한일회담 자체를 반대했으므로 한일회담이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토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셋째, 한일회담의 법적 근거인 대일평화조약은 반공 논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조약을 이뤄낼 수 없었다. 장 연구원은 “결국 한국은 식민지 관계 청산이 불가능한 조건하에서 한일회담을 가졌던 셈”이라며 “한일회담을 무산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청산없는 한일회담은 이미 출발부터 예정된 결과”라고 말했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이 아닌 어떤 정권이라도 과거사 청산이 불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 면죄부를 주거나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면서 “근본적으로 민족간 대립과 갈등이 한일회담에서 과거사 청산의 기회를 소멸시켰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한일협정은 주권국가로서 마무리 지은 것이기 때문에 뒤집을 근거가 없다.”면서 앞으로 진행될 북한과 일본의 교섭에서 일본이 불법 지배를 인정하도록 북한과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피해보상 등 일본 정부의 부담을 감안해서 불법 지배를 인정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진정한 친일청산의 길을 생각할 때

    내일은 64돌 광복절이다. 8·15가 다가오면 친일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직도 친일파 응징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한탄이 나오고, 항일 유공자를 찾는 발걸음도 잦아진다. 광복에 즈음해 태어난 아기들이 환갑을 훨씬 넘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진정한 친일 청산이 무엇인지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친일파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파헤쳐 후손까지 망신을 주어야 한다는 견해가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민족정기를 모아야 한다. 친일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자긍심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특정인 헐뜯기를 넘어 생활 주변의 친일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현장이다. 전제주의에 맹목적 충성을 강요했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엄격한 두발·복장 단속, 거수경례, 구령에 맞춘 인사가 대표사례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긴 했으나 유치원 등의 용어는 남아 있다. 교육현장을 필두로 일제 잔재청산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 국민운동을 벌여야 한다.이와 함께 독립유공자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수원시 보훈복지타운에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는 5명뿐이라고 한다. 1세대 독립유공자들이 쓸쓸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유공자와 후손들을 정성껏 뒷바라지해야 애국심이 확산된다. 광복절을 앞두고 반짝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다. 종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 등 일제 피해자들을 챙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 생활 속의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일제에 핍박받은 이들을 대접할 때 우리는 일본을 향해 외칠 힘이 생긴다. “형식적이 아닌, 진정한 사과를 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일본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도록 국민적 일체감을 일구는 광복절이 되길 바란다.
  • 새 역사교과서 국가 정통성 강조

    새 역사교과서 국가 정통성 강조

    2011년부터 전국 중·고교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에는 이전보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한층 강조한 내용이 실릴 전망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근·현대사 기술의 객관성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최근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교과부 관계자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을 끝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준이 발표된 직후 학계는 이념 성향에 따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새로운 이념논쟁이 시작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이날 발표된 기준에는 교과서포럼 등 보수단체들의 주장이 대부분 반영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역사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문장도 포함했다. 그러나 농지개혁과 친일파 청산 노력과 관련해선 학계에서 논란이 분분한 상태다. 이승만 정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도록 했다. 현재 교과서에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독재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새 기준은 ‘이승만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와 관련한 비판적인 점을 모두 서술한다.’라고 했다. 6·25 전쟁에 대해선 북한의 남침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객관적’인 단어 선택을 하도록 했다. 현재 교과서에는 ‘장기집권에 따른 유신체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큰 시련에 직면했다.’로 돼 있지만 ‘두 차례 헌법개정으로 1인 장기집권 체제가 성립되었음을 다룬다.’로 명시했다. 당장 학계 반응은 둘로 갈렸다. 교과서포럼 박효종 공동대표는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좌우 시각을 잘 아우른 것으로 보인다. 논란과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 집필자 홍순권 동아대 교수는 “정부가 구체적 집필 기준을 제시한 건 집필자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오히려 우편향 시각의 교과서가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아픈 기억과 계속 대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양대 연구중심대학(WCU) 석학교수로 초빙받아 방한한 일상사 연구의 대가 알프 뤼트케 교수가 10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임지현 교수와 대담을 가졌다. 이날 ‘트랜스내셔널 일상사’라는 주제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가진 대담에서 두 학자는 “과거사 청산은 소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부터 독일 에르푸르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뤼트케 교수는 거대담론 위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일상사’ 분야에서 저명한 석학이다. ●독일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 →독일에서의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과 비교한다면. 뤼트케 과거사 청산은 파시즘이 무너진 후 20~30년에 걸쳐 이뤄졌다. 동독의 경우 “파시스트였던 적이 없다.”며 과거를 외면했지만 1970년대 들어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것은 많은 무명씨였다는 시각이 생겨났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유대인을 약탈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과거사 청산의 선구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옛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를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다. 임지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정통성을 내세우며 친일파가 청산됐다고 주장한다. 남한도 일제나 독재시대에 대해 소수의 권력자만 책임이 있을 뿐 나머지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독재시대에 대한 향수가 만연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가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와 싸우려면 인적 청산으론 안 된다. 일반인들이 그 시대의 가치와 대면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사 청산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위원회들이 통폐합될 처지다. 임지현 그런 위원회들이 없어지면 과거사 청산이 안 된다는 것인가. 과거와 대면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 성원들이 해야 하는 몫이다. 뤼트케 과거청산에서 중요한 것은 다원주의 원칙이다. 정부, 역사가, 소시민, 시민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 ‘역사 작업장’이라는 운동이 시작돼 독일로 옮겨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반성한다.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었다. ●시민들 스스로 역사 공부하고 반성을 →과거사 청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뤼트케 ‘네트워킹’이다. 모여서 공부하고, 과거와 대면해야 한다. 20세기의 슬로건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면 지금은 “만국의 노동자여 네트워킹하라.”다.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5] 장진호 “준국유화·NPO 은행 대안으로”

     ●어떤 점에서 지성의 위기인가.  역사의 관성일 수 있겠다고 보고 있다.조선시대에는 명나라와 청나라,일제시대에는 일본,해방 이후는 미국으로 엘리트 재생산의 근거를 두어왔다.자기 눈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권위를 동원할수록 우월한 지위를 얻는다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란 점에서 역사의 관성이다.  국내 학계가 미국 학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학위에 필요한 것만 얻지,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오는 경우가 많다.미국에서 공부했으니 미국을 잘 안다고 택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관료로 입신하는 데 미국에서 공부한 학위가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미국 입장에선 관료의 입지를 검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권위를 외부에서 찾는 게 단기간에 더욱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교조적으로 추구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무조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납작 엎드린다.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은행을 절대 외국인의 손에 넘길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우파지만 게임의 룰을 알고,만들어본 경험이 있어 두 팔을 쓴다.강만수 같은 이는 환율주권론을 얘기할 때 1980년대 미국에 가보니까 환율을 조작하더라,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도 환율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한국과 미국의 경제 규모가 다르고 국제경제적 위치가 다른데 국제적 자본시장이 통합된 과정에 80년대의 일차원적인 사고를 했다는 것이다.중심부 국가들은 3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데 우리만 1차원적으로 논다.우석훈 박사가 인문학의 위기,철학의 위기라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자기 시각이 없다.국제금융기구나 선진국 지배엘리트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란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는지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얼마나 복잡한 정치적 계산과 힘이 얽혀있는지를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고 교조적으로 따른다.  초국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이해관계가 닿는 것도 있다.97년 경제부처 수장들의 자제들이 초국적 금융 관련 컨설팅이나 회계법인 등에 영입된다.고위직 공무원이 GE 에너지부 부사장으로 갔다.추상적 개념 이상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데 우리 지배 엘리트의 문제가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윔블던화를 주장하던데.  윔블던 효과는 1986년 영국의 금융빅뱅 이후 외국계 은행들이 영국 금융시장의 안방을 차지하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영국에서 열리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고 우승 상금을 싹쓸어가는 현상이 금융시장에서 되풀이된다는 뜻이다.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시중 4,5대 은행에서 윔블던화가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은행 뿐아니라 블루칩 기업도 외국계 자본에 잠식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글로벌 금융위기에 동남아 어떤 나라보다 심하게 노출되게 된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공공적 관점에서 경제가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에 연동돼 금융이나 기업이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면서 대중의 겅제를 향상시키는 것보다 주식시장 참여자나 자산가들을 위한 경제구도로 가져가는 데 초국적 탈국적화가 영항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외환위기때 정부가 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했는데 부채는 국민경제적으로 줄지 않았다.기업 부채는 줄어드는 대신 정부와 가계 부채가 늘었다.이 과정에서 탈국적화된 은행은 이중의 이득을 봤다.  ●반전시킬 방법은 없나.  정부가 은행에 중기 지원을 많이 하라고 압박하지만 소용이 없다.정부 말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게 됐다.은행은 정부 지원은 받되 더 이상 공적인 역할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이익은 주주들이 가져가고 손실은 사회화,국민들이 메워주는 기형적 구조다.  과도한 민영화 비중을 낮추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산업은행마저 포스코처럼 됐다면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더 이상 은행 민영화를 막아야 할 뿐아니라 국유화된 은행을 만드는 노력까지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사실은 미국도 AIG를 대마불사시키고 있다.미국이나 유럽,일본은 두 가지 카드를 갖고 있는데 위기 시에는 현실주의 정책을,보수적인 정권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행한다.한국은 한 패만 고집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도 은행 국유화로 자본거래를 통제했다.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는 외환위기때 말레이시아의 은행 국유화를 엄청 때리다가 나중에 당시로선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제대로 하면 인정해주더라는 얘기다.우리는 너무 눈치를 본다.  ●금융위기의 충격이 어느 동아시아 국가보다 폭력적으로 나타나게 된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처리 방법과 분리될 수 없는데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돼 구조개혁이 방향을 잘못 잡았고 그 잘못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 위기가 터져나왔다.97년 위기의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은 정실자본주의 문제,잘못된 규제,국내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짚었는데 IMF가 주문한 내용에 재벌의 이해관계를 덧붙여 4대부문 구조조정을 실시했는데 이게 규제완화가 됐다.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시장 육성 명목으로 주식투자자가 저금을 빼내 유동성이 증가했는데 국내 자본시장을 세계경제와 밀착시켰다.외국자본이 시세차익을 얻어내고 탈출하려는 데 국가가 이들이 팔고 떠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일개 헤지펀드 투기세력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공매도하는 데 자금을 대준 기관투자가의 대표가 국민연금이었다.국민들이 노후 대비로 정부를 믿고 맡겨놓은 돈이 국민경제를 파괴하는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연금의 관리 주체가 펀드매니저 등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노무현 정부 때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대표가 참여했는데 그마저 없어졌다.  국민연금은 공매도 세력에 돈 빌려주고 수수료 더 받았는지 모르지만 환율급등을 불러왔다.  국민연금이 해외 사모펀드(블랙스톤)와 합작투자해 헐값으로 자산관리공사(켐코)가 했던 역할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불량채권을 우량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론스타에게 팔아먹는 데 급급했다.경제가 회복되면서 채권의 가치가 올라 어마어마한 횡재를 챙겨 다시 외환은행에 투자했다.  외환위기 때 가계 불량채권,중기 대출 채권을 다 팔아버리고 론스타는 잘라서 매각하는 방식으로 했다.국민경제적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 우려스럽다.국민연금을 공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이상할 만큼 논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은 조공이라 할만 하다.프랑스 경제학자는 ‘Imperial Tribute’라고 정의했다.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심부로 이전되는 잉여차익이나 노동가치를 적나라하게 짚은 것이다.  법무법인 김앤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보다 더 많은 납세 실적을 낼 만큼 돈을 벌고 있다.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돈을 벌 수 있도록 법적 일을 다 처리하면서 엘리트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누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다 알려줬다.그 대가로 지금의 부를 축적했다.일제시대 이완용이 뭐가 다른가.노무현 정부때 이런 일이 이뤄진 것을 보면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놓고 뒤에선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현재의 잘못은 되풀이되면서 역사는 청산되고 있다고 국민들을 속였다.  ●은행 소유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새로운 국책은행을 만드는 방안과 국민연금을 활용하면서 비영리(NPO)에 기반한 지역밀착형,사회연대형 은행을 사회운동 형태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시중은행들이 공공성과 거리가 멀거나 역행하기 때문에 그 빈자리는 남겨져 있는 것이다.지역은행조차 탈국적화에서 안전하지 않다.은행업에서 공공성 지향을 하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노력은 필요하다.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지 않느냐.  일방적으로 민영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건 일차원적이다.이상이 교수가 말한 토종 의료제도처럼 우수한 제도를 금융에서는 왜 만들지 못하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규제와 감독이 아니라 은행 소유와 통제 개혁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던 것 같다.한데 정권이 바뀌거나 국가발전 모델의 틀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안바뀔 수 있고,정권 내에서 방향이 바뀌면 틀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국민적 합의를 통해 의제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물론 정치세력의 관성은 지대하지만 정권교체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실행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인 대안을 진보진영이 보여야 한다.관료들도 납득할 수 있게 보고서를 만들어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대안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고민이 더 치열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제조업과 1차산업을 포괄하는 비금융업의 재편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최근 일본의 예에서 보듯 제조업의 기반이 건실해야 장기적으로 재생의 여지가 남아있다. 여기에 더해 선진국이 우리와 다른 것은 (정부 지원을 주면서까지)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고용흡수의 안전판이 존재하되 보다 다양화되는것도 중요하다.  ●미네르바의 경제전망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의 환율정책 등을 구체적 수치들을 가지고 비판하는 점에서는 경청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하지만 비판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시장원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이 없어 보인다.현 정권을 심하게 비판하는 것이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차원도 있는 것 같다.큰 그림은 맞는데 세밀한 부분에서 잘못된 부분도 있다.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한 대중적 글쓰기에 성공한 경우다.하지만 기준이 편의적이다.정부의 신자유주의 문제를 비판할 때는 공공성을 비판하고 다른 때는 시장의 원리를 근거로 비판하는 이중잣대가 없지 않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준에서 발빠른 데이터를 제시한 것은 공부 안하는 교수보다 훨씬 나았다고 본다. ●미네르바 박모 씨와 신동아 K가 확연히 갈리는 게 중국 경제의 전망에 대한 전망이었다.중국 경제는 어찌 될 것인지.  중국 경제는 미국의 경제상황과 분리되어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중국의 내수 성장 시도가 이뤄졌지만 차이메리카라 할 정도로 양국 경제는 연동돼 있다.경제적 운명 공동체로 보는 것 같다.1980년대 니치메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과 일본 경제는 한 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중국 자체만으로 승승장구하기는 어렵다.단기적으로 낙관하기 어렵다.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 폭이 지난해 엄청 커 충격적이었다.별도로 중국 경제가 잘 나가기는 어렵다.  우리 경제도 수출지향적으로 간다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내수를 진작시켜야 하겠다는 데는 절대적으로 찬성한다.위기에 처한 나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문제는 내수 진작에 대한 고민이 정부당국에도 있지만 대운하와 도로 건설이라는 견해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안정과 장기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데 비관적이다.  외환위기 10년 동안 내수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양극화에 있다.소득 재분배가 되어야 한다.미국도 양극화 문제가 심각했지만 증시 부양 등을 통해 자산 증식이 이뤄져 내수가 반짝 살아나고 대출로 내수를 떠받치고 금융기관 외채 발행 등으로 반짝 진작을 시켰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과가 없었다.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제를 확충하는 한편,교육과 사회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세로 인한 재정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다.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민영화나 소유 주식 지분을 매각하는 것인데 레이건 대처처럼 위기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 1차 충격요법과 얼마나 다르게 이명박 정부의 2차 충격요법이 나올지에 대해선.  1차 충격요법 당시에는 그래도 미국 경제가 한국의 수출을 흡수할 여지가 있었고, 정규직에서 퇴출된 이들의 퇴직금 등 여유가 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하지만 이제 자영업마저 위기에 봉착하면 전망이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정권을 교체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궤도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정권의 주체를 바꾸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보수와 진보개혁 세력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거나 무지. 단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맹종에서 벗어나야 한다.보수와 진보를 떠나 보다 정치경제의 작동방식에 천착하고 세계의 상황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보수정권은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의 보수와 달리 권위의 근원을 외부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수사와 달리 여기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끝)  ■ 장진호씨가 걸어온 길  장진호 연구원이 누구인가를 따로 정리하지 않고 오디오 파일을 올려놓습니다.인터뷰 전과 후에 다소 느슨해진 분위기에서 오간 얘기라 장 연구원이 경제사회학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공부하면서 느꼈던 고민,학계의 분위기 등에 대한 소감들이 솔직합니다.글자보다 오히려 더 정감있게 그와 고민을 공감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단 고위 인사의 실명이 나오는 점은 경칭을 붙여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냥 나가는 점 양해 바랍니다.  앞 대목이 조금 잘리면서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으실 것입니다.여러 인사들 이름부터 시작되는데 장 연구원이 번역한 책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구조조정’(신장섭 장하준 공저)을 출판사쪽이 이들 인사에 전달했다는 것을 얘기한 뒤 이어진 얘기란 점을 알려드립니다.
  • PD수첩 800회… ‘녹색 뉴딜’ 해부하다

    PD수첩 800회… ‘녹색 뉴딜’ 해부하다

    국내 ‘PD저널리즘’을 이끌어온 시사교양 프로그램 MBC TV ‘PD수첩’이 20일 방송 800회를 맞는다. 1990년 5월8일 첫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18년7개월 만에 800회를 돌파했다. 그동안 76명의 취재 PD들이 거쳐 갔고, 7명의 MC를 배출했다. 1995년 7월 200회부터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PD수첩’은 지난 2002년 미선이·효순이의 죽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SOFA, 미국 범죄의 면죄부인가’, 친일 청산의 문제를 다룬 ‘친일파 시리즈’ 등을 방송하며 우리 사회 곳곳의 성역을 깨트렸다. 특히 2006년에는 황우석 박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으로 ‘황우석 신화’의 허구를 파헤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관련 보도로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4월 이 프로그램의 보도로 국민적인 촛불 집회가 촉발되기도 했으나, 오역 문제 등이 지적되면서 8월 시청자에 대한 사과 방송을 하는 오점을 남겼다. 한편 ‘PD수첩’은 800회를 기념해 2009년 연중기획으로 ‘희망의 조건’ 시리즈를 2~3개월에 1편씩 5편을 내보낼 예정이다. 제작진은 “경제 위기 속에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과연 희망의 씨앗은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일 첫번째로 이명박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인 ‘녹색 뉴딜’ 사업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재추진되고 있는 경인 운하의 경제 효과는 타당한 것인지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미국 오바마 정부의 뉴딜 정책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는 뉴딜의 조건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1)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진보에 길을 묻다] (1)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 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 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대환 대표와는 세밑,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좌파 진영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회주의자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라고 주장한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주 대표는 “우리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다.”며 “이 둘을 모두 취한 현명하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한 이 땅의 민중들 마음을 깊이 살펴 자본주의를 넘어서네 마네 하는 허언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라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을 사회민주주의로 정립했다.”고 갈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을 쓴 동기를 설명한다면. -이제 나이도 많고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 가운데 먼저 가신 분도 있고 제 인생을 정리하면서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 잘못됐는가를 성찰해 새롭게 나갈 방향이라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좌파를 대표하는 이론가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다. 대중들은 얄밉도록 이기적이다. 그런 대중이 봤을 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건국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다. 당시 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라도 나눠 가졌다는 건 실로 엄청난 것이다. 국민들 몸 속의 ‘평등 유전자’가 지닌 가치와 힘을 발견해야 한다. →정치적인 토대는 어떠했나. -선진 민주주의 제도들, 법률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 처음부터 뿌리내린 건 아니지만 반파쇼 투쟁이 승리한 세계사적 기류를 타고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하는,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는 거다. →80년대 이후 사회운동은 건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런 얘기하면 ‘아직도 대한민국 부정하는 사람 있어?’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직하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몸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잘 살고 있는데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부정이 좌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가장 큰 결함으로 여겨왔고 콤플렉스가 됐다. 순수한 좌파라면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는 민주주의, 하나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일당독재를 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보다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이 우월하고, 토지개혁을 먼저 했지만 바로 몰수해 집단농장화했던 조선보다 전 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준 대한민국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두 가치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엄청난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아니다. 진정한 좌파의 길을 가려면 민족주의에 포획된, 민족주의의 포승줄을 끊어야 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는데 사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나눠 가진 정당이란 지적에 대해선. -진보진영으로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넘어서는 한편,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노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표가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NL과 PD는 민족주의에 포획된 좌파란 공통점이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사회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극복해 만나는 지점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닐까. →민주노동당 분당에 대해 평가한다면. -NL이든 PD든 양쪽에선 희망이 없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합치라고 얘기하지만 더 발전적으로 통합돼야 한다. 질도 높고 방향도 넓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 제3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믿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5년이든 10년이든 간다. 정권이 바뀌기 위해선 새로운 야당, 대안 야당이 나와야 한다. →좌파 진영에 현실적인 파워가 있는 건지. -15년 전부터 노동당을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종잣돈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려 했다. 이제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 그런 프로젝트는 더 이상 힘들어졌다. 해서 지식인 사회에 다시 호소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대안 야당에 힘을 보태자고.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대해서 지적한다면. -감세는 정말 잘못한 거다. 거의 도둑질 수준이다. 정권 잡았다고 종부세 폐지하고 약탈해 거저 나눠 가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가 연 10%씩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데 그것도 착각이다. 우리 경제는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률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기술 고도화로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는 단계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나면 7% 성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인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박정희 향수가 있고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아닌가. →본인이 주창하는 ‘뉴 레프트’의 요체를 정리한다면. -첫째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과 확실히 다른, 어중간하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 중도좌파,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둘째 대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게 아니라 대중의 뜻에 따르는 좌파, 셋째 국가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그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는 좌파가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리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 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주대환 ② “엄청난 평등의 나라”

     -엄청난 평등의 나라란 얘기시지요.  “정치적으로도 선진 민주주의 제도들,법률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했지요.처음부터 뿌리내린 건 아니지만,아닙니다만.당시 세계사적 분위기라는 게 반파쇼 투쟁이 승리한 직후라 굉장히 진보적인 민주주의 시기였지요.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거지요.처음부터 글자 그대로 실행된 건 아니지만 어쨋거나 방향을 잡았다는 건 중요하지요.대한민국이 60년동안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사회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조건을 만들었다, 전 그렇게 보고 있지요.”  -80년대 이후 사회운동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시각이 있었다고 지적하시는 것 같은데.  “이럴 겁니다.지금 제가 이런 얘기하면 아직도 대한민국 부정하는 사람 있어 이렇게 다를 말합니다.그런데 정직하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몸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잘 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거죠.그래서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이런 것이 좌파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런데 더더욱 큰 문제는 왜 그런가를 깊이 반성을 해보면 좌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나온 거거든요.친일파가 주도를 하고 어떤 말하자면 반민족행위가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다,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가장 큰 결함으로 생각해온 거지요.거기 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있는 정부로 볼 수 있다.이것이 우리의 콤플렉스가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좌파라면,순수한 좌파의 입장이라면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좌파의 관점은 하나는 민주주의 하나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민주주의 관점에서 일당독재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이 우월하고요,또 토지개혁을 먼저 하긴 했지만 바로 몰수해 집단농장화를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토지개혁을 해서 전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준 대한민국이 더욱 우월하다고 볼 수 있는,경제학적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요.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점,자유와 평등의 두 개의 가치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엄청난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아니었지요.민족주의,민족주의에 포획된 포승줄에 묶여 있던 좌파라고 생각합니다.진정한 좌파의 길을 가려면 민족주의의 포승줄을 끊어야 된다,벗어나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마음 속에 그런 게 있나 생각하는 건데요.  “세대에 따라 그 느낌과 감은 다를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제 어떻게 보면 저희 세대에 해당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70년대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많이 해당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견지해온 이들끼리 의견 차이로 충돌하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그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것 같은데 이를 타개할 방법은.  “그러니까 DJ와 MH를 넘어서야 한다고 누군가 했더군요.10년의 문제,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워낙 신자유주의에 치우친 정책을 했다고 보는 거지요.여기에 제가 깊이 생각했던 NL과 PD를 넘어서야 한다는,둘다 다르면서도 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NL과 PD는 민족주의에 포획된 좌파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고요.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같은 경우는 민주주의를 추구할지는 모르지만 사회경제 정책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문제가 있었지요.그런 문제를 극복하는,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그러니까 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을 본다면 그분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 결함이 될 것 같고요.노동운동이나 근본적 좌파 운동 세력에선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현실적으로 진보적인 생각과 비전,믿음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충격이었다.주 대표께선 분당 뒤 차라리 갈라서서 종북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이들이 민노당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오히려 통합을 위해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저를 보는 선입견과 달리 전 분당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분당을 주도하신 분들과 저하고 차이가 어떻게 나느냐 하면 일심회 사건때 저는 발언을 했고요,그분들은 침묵했습니다.그 다음에 분당할 때는 그분들이 앞장을 섰고요 전 반대했습니다.묘하지 않습니까.저는 말하자면 노동당을 만들려고 하면 당내에서 그런 문제를 극복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분들은 노동당 노선에 대한 인식이 얕았다고 생각하는데요.주사파 문제를 갖고 내내 일심회 사건처럼 명명백백하고 국민들에게 문제를 폭로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에도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친구들이 당을 깨고 나가고 말았어요.둘다 대중적이지 못하다.국민 대중과 노동자 대중은 당내 숫자만 가지고는 NL이 다수니까 RNR국민들이 다 보고 있는 거거든요.국민을 믿고 노동자 대중을 믿고 드러내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반드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거든요.그런데 그런 노력을 전혀 안하다가 매맞는 아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밝히고 법정에서 따지고 하지를 않고 그냥 참고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출해버린 거지요.그들의 정치적 판단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문제 해결이 썩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어쨌거나 두 개 다 지리멸렬하고 방향을 잃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양쪽에선 희망은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노동자들을 만나보면 분당할 때 예를 들면 부산에서 1000명의 노동자 당원 1000명이 탈당했는데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들은 100명밖에 안 됩니다.900명은 뭐냐.양 쪽 다 꼴 보기 싫다.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합치라고 얘기합니다.민주노총이 다시 합치라고 권고안도 내고 있고 그렇지요.그런데 그냥 합쳐지질 않거든요.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더 발전적으로 통합이 돼야 한다.질도 높고 방향도 넓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제3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기존의 민주노동당 바깥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거거든요.지식인이라든지 민주당에 실망한 분들이라든지 제가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그런 거지요.그런 세력에 의해 더 넓은,보다 현실적인 현실주의적인 좌파가 형성되어 그런 세력에 의해 어떻게 보면 더 넓은 통합,민주당 내에도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분명히 좀 있고요.현실 정치적인 이유로 불가피하게 몸담고 있는 분들이 있거든요..창조한국당 참여했던 분들까지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으로 가는 과정,불가피한 것 아닌가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건가.  “일전에 토지정의시민연대를 이태경 사무처장이 제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써놓았던데.저런 목소리 한두번 나와 될 얘기는 아니지요.엄청난 얘기니까요.왜 불가피하냐.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필요하고 불가피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대안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한나라당이 아무리 뭘 잘못해도 다음에 민주당이 집권하냐,그럴 수 없다는 거지요.5년이든 10년이든 간다는 겁니다.정권이 바뀌기 위해선 새로운 야당 대안 야당이 나와야 한다.그런 얘기들이 나온다.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이제는 최소한 지역주의는 벗어난,사회민주주의 루스벨트 오바마가 새로운 뉴딜 정책 그런 정도라도,사민당적인 내용을 가진,그런 정치철학에 기초한,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이름은 어떻든간에 사민당 현대적 정책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나라당 집권이 영원히 간다는 거지요.야권의 분열은 오래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그런 양상 자체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 일을 해낼 만한 현실적인 파워가 있다고 보는 건지.  “15년전부터 노동당을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종잣돈으로 밑천으로 해가지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보려는 거였는데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서 그런 프로젝트는 이상 힘들어진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전 지식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지식인 사회로 돌아온 거지요.노동운동의 힘만으로는 힘들다.지식인들이 힘을 보태야겠다.노동당을 강조하던 제가 사민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데 있는 것이다.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이 앞장을 서야 하는 것 아닌가.사회민주주의연대 단체의 역할도 그런 거고요.그런 힘이 있느냐.여건이 만들어지고 조건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글쎄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입니다.소선거구제에서 제일 큰 유혹은 지역주의 정당에 기대는 거거든요.진보적인 인사란 분들도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에 들어가서 국회의원이 되고 그래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그러다보니 결국 그 쪽에 몸을 의탁하다 보니까 그 속에서 활동을 추구하게 되고,본래의 자기 진보성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왔는데 여전히 어려운 문제지요.다들 그런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거거든요.그래서 저처럼 현실 정치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분들이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분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나이들 50대,60대 넘어섰으니까.오바마가 훨신 후배거든요.81학번,61년생이라고 했거든요.저보다 일곱살 젊은데 한국의 정치도 6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 주도할 때가 됐거든요.”  -조금 다른 얘기인데 책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지.  “80년대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그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다 비슷한 정조의 노래들이었죠.자기희생이라든지 사명감을 고취하는 운율의 노래들이었다.제 노래는 특별히 군대생활 할 때도 군가인데 ‘보병의 노래’일 겁니다.’그 누가 싸움을 좋아하려만 이름없이 죽어갈지라도 정의를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조의 노래였는데 우리 세대가 그런 정조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시대가 바뀌었으니 조금 바뀌어야죠.”  -소위 “빵잡이”인데 시위 후 바로 징집돼 군에 가셨는군요.엄청나게 힘들지 않으셨는지.  “그렇지 않았어요..전두환 70년대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군대에 지침 같은 게 없었고요.사찰 대상이긴 했겠지만 군대생활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혹시 그런 생각 하는 분이 있으면 로맨틱하게 받아들이라고 해주세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국가의 소외된 부문을 부축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기조에 비춰봐도 잘못된 거라 보이는데요.한국에서의 조세부문 개혁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다른 일은 모르겠지만 감세 이거는 정말 잘못한 겁니다.거의 도둑질 수준입니다.정권 잡았다고 종부세 정책은 약탈하고 거저 나눠가지는 종부세가지고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크게 심판받을 겁니다.노무현 정부가 잘하네 못하네 하지만 종부세는 제대로 한거거든요.미국을 기준으로 봐도 부동산 보유세가 현저히 낮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는 건데 그걸 환급까지 해주는 건 도둑질 수준이고.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몇년 가면 복지재원 엄청나게 소요되는데 세금은 감세해버리고 세수는 줄어들거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세 개혁의 여지는 여전히 많이 있지요.다 아는 얘기지만 간이과세제 폐지해 투명성을 높이면 지하경제로 돼있는 자영업자들의 세금 신고 안하고 누락하는 것을 잡으면 거둬들일 여지가 많고요,세원은 새로 상당히 많이 있다고 보고 부동산보유세의 내용을 현실적으로 높이고 그러면 세금을 앞으로도 많이 확보할 수가 있고 그걸 해가지고 단박에 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늘려 OECD 평균 수준 가려면 한참 멀었지만요.그렇게 가는 것이 기업에게도 좋습니다.공공부문에 의해 지탱이 돼줘야 사람을 필요에 으해 경기부침에 의해 함부로 새로 짜를 수도 있고 고용의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는 건데 이런 식으로 가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가 한참 막 연 10%씩 성장하는 단계가 아니거든요.중고등학교때 1년에 10㎝씩 자라던 학생이 성인 되서도 그만큼 자랄 수 없는 거거든요.상당한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률이 10%씩 될 수가 없거든요.기술이 고도화되고 해서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는 단계인데 유럽이나 선진국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국가예산이 많이 소요되고 그런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경제위기가 지나면 7% 성장이 될 것이라고 믿는지,그것이 인식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그 인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박정희 향수가 있고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거 아닌가.좋았던 과거,연 10%씩 성장하던 과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박정희·이승만 부정적 표현 완화·삭제

    박정희·이승만 부정적 표현 완화·삭제

    1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안을 살펴보면 정부 주문사항이 그대로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금성교과서 저자들이 반발하고 있어 교과서 파동은 계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수정안에 따르면 가장 논란이 된 금성 교과서의 경우 73건이 수정·보완됐다.필진 의사대로 수정된 것은 40건이었고 나머지 33건은 필진 의견과 관계없이 발행사가 정부 지시를 받고 수정한 것이었다.사실상 정부의 ‘직권수정’이다. 40건은 신미양요, 병인양요 관련 부분에서 프랑스,미국 함대의 ‘진로’라는 표현을 ‘침입로’로 수정한 것과 북한의 토지개혁을 소개한 322쪽에 ‘분배된 토지의 매매,소작,저당은 금지되었으며 생산된 양곡의 4분의1 정도를 현물세로 납부하였다.’는 대목을 추가한 내용 등이다. 필진 의견과 관계없이 고쳐진 33건을 살펴보면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256쪽)는 ‘자주 독립 국가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로 고쳐졌다. 친일파 청산 부진과 관련해서는 ‘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266쪽)는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친일파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나고 말았다.’로 수정됐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완화되거나 아예 삭제됐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한 262~263쪽의 내용 가운데 ‘통일 정부가 여의치 않으니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혹은 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부분은 삭제됐다.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새마을 운동은 겉으로는 민간의 자발적인 운동이었으나 실제로는 정부가 주도하였다.그 결과 박정희 정부의 독재와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334쪽)는 문구에서 ‘그 결과’라는 표현을 삭제,인과관계가 다소 느슨하게 보이도록 했다.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316쪽)는 ‘평화 통일을 위한 여건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금성 출판사를 상대로 저자들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법정 다툼은 물론 내년 신학기 수업차질로도 이어질 수 있어 주목된다.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 교과서로, 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 권한은 기본적으로 저자들에게 있고 수정하려면 저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역사교과서 수정] 정부 정통성·남북관계 집중… 보수색 뚜렷

    [역사교과서 수정] 정부 정통성·남북관계 집중… 보수색 뚜렷

    교육과학기술부가 30일 발표한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6종)에 대한 수정권고안은 교과서포럼이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보수진영의 의견을 상당부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 들어 ‘좌편향’ 논란이 제기되면서 예상된 것이지만, 현재 역사교과서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정부 차원의 판단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집필진 수정 102건은 그대로 수용키로 교과부는 교과서 수정에 대한 기본방침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는 내용이 담겨서는 안 되며 ▲교과용 도서 검정제도의 취지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넘겨받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교과부가 검토한 각계의 수정요구안은 모두 253개 항목이다. 이 가운데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한 부분 ▲남북관계를 평화통일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만 서술한 부분은 교과서 집필진이 ‘자체수정’(102건)하기로 결론을 냈다. 출판사측이 수정을 하겠다고 이미 통보해왔고, 교과부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정권고 55건중 금성출판사 38건 나머지 ▲8·15 광복과 연합군의 승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부분 ▲미·소 군정과 관련해 학습자를 오도한 부분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한 부분▲대한민국을 민족정신의 토대에서 출발하지 못한 국가로 기술한 부분 ▲북한정권의 실상과 판이하게 달리 서술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교과부가 집필진에 대해 ‘수정권고’(55건)를 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38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중앙교육진흥연구원 9건, 법문사·천재교육이 각각 4건씩이다. 구체적으로 ‘수출위주의 경제발전은 대외의존도를 크게 높였고, 제3세계 국가들과 대립을 불러일으켰다.’(금성·32쪽)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3세계의 관계를 대립일변도로 서술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고치라고 권고했다.8·15 광복과 관련,‘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금성·253쪽).’는 대목은 “분단의 원인을 외인론으로만 해석한 서술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삭제 혹은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좌편향´→‘가치중립´ 용어로 교체 요구 해방 이후 미·소군정을 설명하며 미군 포고령과 소련군 포고문을 나란히 실은 부분(금성·257쪽)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침인 포고령과 추상적인 포고문을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학습자 수준에 비해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으므로 자료교체가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금성·266쪽)는 항목도 “친일파 청산이 철저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민족정신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못을 박았다. 박정희 정권과 관련한 항목인 ‘박정희 정부 아래에서도 독재정치에 맞선 장준하의 민주화운동은 계속되었다.(중략)그 결과 1970년대에는 ‘재야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금성·289)는 부분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가 불충분하므로 삭제가 바람직하다.”고 선을 그었다. 남북관계와 관련,‘2000년 6월에 개최된(중략)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중앙교육진흥연구원·323쪽)는 “급변하는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고려하여 최근의 상황을 반영해 서술하라.”고 지적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교과서 개편’ 파장] 보수진영 수정요구 주요내용

    보수진영이 제기하고 있는 교과서 수정 요구는 주로 근현대사에 집중된다. 국방부의 수정 요구 의견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등을 옹호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독재정권을 유지하였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는 부분을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로 고쳐 달라고 주문했다.‘전두환 정부는…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했다.’(금성출판사)를 ‘전두환 정부는…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로 고쳐 달라고 했다. 같은 책의 각 단원 제목 가운데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시킨 이승만 대통령’,‘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 ‘민족의 근대화에 기여한 박정희 대통령’,‘전두환 정부의 강압정치와 저항’→‘전두환 정부의 공과와 민주화 세력의 성장’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1947년 제주도에서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시가행진을 하던 군중에 경찰이 발포했다…이 사건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이 일어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대한교과서)라는 구절도 수정대상이다.‘제주도에서 4월3일 발생한 대규모 좌익세력의 반란진압 과정에서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다수 희생된 사건’이라고 고쳐 달라는 것이다. 통일부의 수정의견은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천재교육)를 ‘김대중 정부는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면서’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의 ‘박정희 정부는 통일문제보다는 경제개발문제에 집착하였고’를 ‘박정희 정부는 통일문제보다는 경제개발에 우선순위를 두었고’로 개정하자는 의견이다. ‘북한군부내 강경파에 의한 대남도발이’(금성출판사)는 ‘북한에 의한 대남도발이’로 바꾸자고 했다. 범문사 교과서의 ‘북한체제의 고착화와 북한의 변화’는 ‘북한 유일지배체제와 북한의 변화’로 수정 요구했다. 상의는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대한교과서)를 ‘1950년 북한의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켰다.’로,‘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금성출판사)는 ‘새마을운동은 민간의 자발적 운동이었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 학습의 대상이 되고 있다.’로 수정의견을 냈다. ‘이승만 정부는…친일파청산 등 민중의 요구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금성출판사)에서는 ‘그러나 국가건설과 경제회복, 교육기회 확산을 위해서도 크게 노력했다.’를 추가하라고 요구했다.‘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 화해 협력시대를 열었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는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남북한의 군사력에 엄청난 불균형을 초래했다.’를 추가하라고 요구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역사의 뒤안에 묻힌 여성운동가의 일생

    역사의 뒤안에 묻힌 여성운동가의 일생

    차미리사(車美理士·1879∼1955). 이 낯선 이름은 두 개의 진실을 끌어안고 있다. 대중의 기억에 제대로 편입된 적이 없었던 이름이라는 표피적 진실이 하나이며, 한국 근대공간의 빛과 그림자가 그대로 투사된 이름이라는 실제적 진실이 또 하나이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한 사유로 근·현대 공간을 누빈 여성 사회운동가였고, 교육운동가였으며,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삶이 또렷이 발자국을 찍으며 대중 앞으로 걸어 나왔다.‘일제 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란 부제를 단 ‘차미리사 평전’(한상권 지음, 푸른역사 펴냄)은 역사의 기억 저 편에 함몰된 사회운동가의 꼿꼿했던 일생을 치밀하게 복원해낸 책이다. 1879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난 그는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섭섭이’라 불렸다.17세에 결혼해 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한 이후 그의 삶에는 파동이 멈춘 적이 없었다. 기꺼이 온몸으로 근대화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선각자를 자임했다. 사회 개화운동의 현장에는 그래서 늘 그가 있었다.‘미리사’란 이름은 그가 조선 여성의 비참한 처지에 눈 뜰 무렵, 교회에서 받은 세례명이다. 23세에 중국 유학길에 올라 고학하면서 지독한 열병을 앓은 뒤로는 평생 남의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치명적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았다.34세이던 1912년 미국 유학을 거쳐 귀국한 그가 헌신한 운동은 여성교육 사업.“조선사람들에게는 고등교육보다 보통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보통교육론’을 주창했다. 문맹을 떨칠 길이 없는 당시 여성들을 위해 그가 주장한 교육제도 개혁안이었다. 실업교육론을 현실화하는 데 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이 굴욕적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기술교육을 통한 경제자립뿐이라는 지론을 실현하는 데 교육운동의 초점을 맞췄다. 그런 그는 ‘잊혀진’ 덕성여대 설립자였다.1920년 전국순회 강연에서 모은 성금으로 청진동에 부인 야학강습소를 열었는데, 그 이름이 근화학원. 지금의 덕성여대 전신이다.1940년 총독부의 압력으로 교장직을 떠난 그의 뒤를 이어 취임한 이가 친일파로 알려진 송금선. 덕성여대 교수인 지은이는 2000년 ‘건학 80주년 기념 덕성여대 뿌리찾기 토론회’를 기점으로 차미리사의 삶에 주목했다. 책은 8년 만의 인물탐구 결실인 셈이다.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이기도 했던 차미리사의 면모를 소환해 내는 데도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귀국한 뒤 배화학당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불어 넣는 데 전력했던 그다.“온전한 독립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유한이로다.”라고 유언한, 잊혀진 독립운동가에게 정부는 2002년 뒤늦게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역사의 뒤안에 잠든 여성운동가를 새삼 기억해야 하는 작업에는 뚜렷한 당위가 있다. 지은이는 “과거 민족의 공기(公器)로 기능했던 사학의 제자리 찾기, 친일 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이라고 출간의미를 밝혔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MB “친일문제 공과 균형있게 봐야”

    MB “친일문제 공과 균형있게 봐야”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4776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공과(功過)를 균형있게 보아야 할 것 같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국내 7대 종단 대표들과 오찬을 갖는 자리에서 “지금 이런저런 과거청산 위원회 분들이 과거 정부에서 임명됐는데,(과거사위원회를) 정비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친일 논란에 휘말린 미당 서정주 선생의 생가를 후손들이 매각해 빌라를 짓겠다고 하자 이를 사들여 복원하도록 지시한 사례를 소개하면서,“(친일 인사이더라도)잘못은 잘못대로,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일본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단어 한 마디로 몇 달씩 (갈등을 빚고)조율했지만, 이번엔 ‘사과는 (일본)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맡겼다.”면서 “다만 국내에서는 모든 일을 정치적으로 내 편이냐 아니냐를 갖고 따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최근덕 성균관장이 “새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다 보니까 자칫 인성교육, 윤리도덕에 대한 강조가 덜 된 듯한 느낌”이라고 지적하자,“공교육을 살리고 강화하겠다는 것의 기본은 인성교육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새 정부가 가정복원 운동을 벌이려 하는데 종교계도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공기업 민영화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공기업 기관장이 연봉 9억∼10억 받는다고 하더라. 민간기업에서 받기 어려운데 그만큼 효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친일청산 기초 다진 재야 학자

    임종국 선생은 친일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매우 힘들었던 1960년대부터 친일문제에 몰두, 현 친일청산의 기초를 놓은 재야 학자다. 그의 작업은 ‘혼자 하는 반민특위’로 불렸다. 문학에 뜻을 둬 59년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지만,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방식에 충격을 받고 친일문제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66년 출간한 ‘친일문학론’은 문단 거목들의 친일행위를 낱낱이 고발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 폭을 한층 넓혀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군사·예술 등 사회 전반에 드리운 친일행적을 파헤쳤다. 그의 노력은 ‘일제 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 침략사’‘일제 하의 사상탄압’‘일본군의 조선침략사’ 등 14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국방헌금을 모집했던 부친 임문호의 친일사실을 스스로 공개한 일화로도 유명하다.2005년 10월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학계에서 말로만 회자되던 ‘친일문제 연구가’ 고 임종국 선생의 ‘친일파총서’ 발간계획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총서의 골격은 공동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던 김승태 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이 최근 자료정리 도중 선생과 함께 작성한 ‘공동연구협약서’를 찾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드러났다. ‘친일파총서’는 선생이 1989년 11월 폐기종으로 작고(당시 60세)하기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숙원사업이자,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친일파 연구의 집대성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총서의 이름은 선생의 사망 정황을 언급(“‘친일파총서’ 기획·집필 도중 세상을 떠났다”)할 때만 단편적으로 거론됐을 뿐, 총서의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선생이 발간 작업을 미처 시작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서 총서의 구상도 함께 묻혀 버린 까닭이다. 선생이 남긴 숙제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이란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연구소 또한 선생이 구상했던 발간계획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분야별 모두 10권·친일인명사전 포함 김 전 실장에 따르면,1988년 당시 독립기념관 자료과장이던 그는 기독교의 친일문제를 다룬 논문을 쓰면서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이듬해 2월 그는 투병 중이던 선생으로부터 총서 공동집필을 제안받았다. 김 전 실장은 “건강악화로 혼자서 작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생이 3월초 총서의 구상을 메모한 쪽지를 보여 줬고, 난 메모를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해 협약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작업의 방대함을 고려해 이명화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을 선생에게 소개했다. 협약서는 최종적으로 임종국, 김승태, 이명화 3인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협약서를 보면, 총서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됐다. 총론(서명:‘외세영합과 친일파’)을 비롯해, 사상(‘사상침략과 친일파’)과 정치(‘정치침략과 친일파’),1∼4공화국의 친일파(‘해방 이후의 친일파’) 부문을 선생이 맡고, 동·서양종교(‘종교침략과 친일파 1∼2’)와 사회교육(‘사회교육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김 전 실장이, 경제(‘자원침략과 친일파’)와 만주·중국(‘대륙침략과 친일파’) 및 문화(‘문화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이 연구원이 전담했다. 또 총서에서 인용한 친일논설의 원문만 모은 자료집을 각 권마다 한 권씩 제작해 총 10권의 ‘친일논설전집’을 만들고,1만∼2만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한 권 분량의 ‘친일인명·용어사전’ 편찬도 계획했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이미 사전편찬을 목적으로 1만 5000여개의 인명카드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면서 “그 중 300여개의 기독교 인물카드를 종교 분야 집필에 활용하라며 건네 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자신이 정리한 자료와 쓴 글을 근간으로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종교와 대륙침략 등 새로 연구해야 할 분야는 김승태·이명화 두 사람이 맡았다. 자료는 서로 공유하되, 집필은 각자의 책임 하에 단독으로 진행키로 했다. ●선생 타계로 편찬작업 전면 중단 하지만 선생의 타계로 작업은 전면 중단됐고, 총서의 구상을 담은 협약서마저 사라지거나 자료더미에 묻히면서 총서는 이름으로만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2∼3년 안에 한 권씩은 내자고 말했다.”면서 “다섯 권을 맡은 선생은 협약서 작성 당시만 해도 최소 10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생의 뜻을 좇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청산 작업을 한층 앞당겼을 ‘친일파총서’가 제대로 출간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소문만 무성하던 총서의 구체적 뼈대를 확인하게 돼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친일파총서’의 구상을 모른 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진행해 왔지만 둘의 내용은 큰 틀에서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선생의 작업에서 ‘친일인명·용어사전’은 마지막 단계에서 편찬되는데 비해, 연구소의 경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필두로 작업을 이어간다.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오는 8월 출간될 예정이다. 조 총장은 “연구소의 총서 작업이 선생의 총서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후배로서 무척 안도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친일청산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몸부림쳤던 선생의 진면목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부고]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별세

    [부고]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별세

    1945년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조문기(81)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5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조 이사장은 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관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2000여명을 규합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뒤 국내로 돌아와 유만수ㆍ강윤국 선생과 함께 애국청년단을 결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살아있는 애국지사 중 ‘의사’라는 호칭으로 불린 마지막 독립운동가인 조 이사장의 최대 투쟁 성과는 부민관 폭파의거다. 일제 패망 직전인 45년 7월 조 이사장은 일본 중의원까지 지낸 거물 친일파 박춘금이 대규모 친일집회를 열고 있던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동료들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집회를 무산시켰다. 이 사건은 당시 일제의 보도 통제로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경성 한복판에서 일제와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대표적인 쾌거로 손꼽힌다. 광복 이후 활발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던 조 이사장은 미 군정 당시 ‘이승만 암살 조작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조 이사장은 이후 은거에 들어갔으나 1980년대 뒤늦게 독립운동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99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조 이사장은 “광복이 됐지만 친일파들이 세력을 잡았으니 독립이 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독립운동가라고 연금만 받아먹을 수는 없다.”며 친일파 청산에 마지막 정력을 쏟았다고 연구소 측은 전했다. 조 이사장은 2006년 11월 골수종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경기도 수원의료원에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으나 많은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영심씨와 딸 조정화씨, 사위 김석화씨가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세계화’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 던지는가

    ‘세계화’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 던지는가

    최근 학계의 가장 첨예한 논쟁 가운데 하나는 민족주의 논쟁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논쟁 리스트 앞머리엔 늘 민족주의-탈민족주의 논쟁이 자리한다. 가속 페달을 밟는 지구화·세계화가 논쟁을 현재화·미래화하는 매개변수다. 세계화는 ‘친일´ 대 ‘반일´, ‘식민지근대화론´ 대 ‘자본주의맹아론´으로 대표되던 기존 민족주의 논쟁에 ‘배타적 민족주의´ 대 ‘국제적 탈민족주의´ 논쟁을 가세시켰다. 세계화는 ‘미완의 친일청산 완성론´ 대 ‘자학적 친일청산 비판론´이란 진보-보수간 논쟁구도에 ‘역사바로세우기´ 대 ‘생존 위한 선진화´란 논쟁을 껴입혔고, ‘저항적 민족주의 유효론´ 대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론´으로 진보진영 내부를 분화시켰다. 비판사회학회가 11,12일 ‘지구화시대-탈국가적 상상력’이란 주제로 숙명여대에서 여는 심포지엄은 세계화가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을 던지는지 잘 보여준다. 심포지엄은 단일 국가 경계 내에서 인식·실천론을 발전시켜 온 사회과학이 지구화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연구방법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가 하는 절박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세계화·지구화와 공명할 때 민족주의 논쟁은 더 이상 먹물들의 한가한 말다툼 차원을 넘어선다. 투자자-국가소송제 도입을 명문화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탈국가-탈민족적 협정’ 대 ‘국민국가 주권침해’라는 관점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심포지엄의 민족주의 논쟁엔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역사학자 중 한 명인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와 분단이 개인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선다. 임 교수 발표문(‘아래로부터의 지구화와 탈민족적 상상력’)에서 국경으로 상징되는 현 시기 민족주의는 분쟁의 상징이다. 한·일간 독도-다케시마 분쟁, 한·중간의 동북공정 분쟁, 중·일간의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분쟁, 러·일간 쿠릴열도 분쟁 등 국경을 전제로 한 국가 관계는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관념이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을 지배하는 한 민족주의라는 규율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구성해온 국사(國史) 해체’를 주장한다. 국사가 자국에만 유리한 기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정교과서와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는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나라의 일방적 국사 해체가 아니라 동시다발적 국사 해체를 통해 동아시아 차원의 상호비판과 자기성찰적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반면 김 교수 발표문(‘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중적 민족주의’)은 민족주의가 여전히 낡은 것일 수 없다는 입장에 선다. 그는 “민족주의는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면서 “지구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는 데 수많은 제약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사해동포주의를 갖도록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전술적 수준에서 민족주의는 활용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해외동포와 라이따이한,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등의 문제를 소수자 인권이 아닌 민족 문제와 결부해 풀 때 구체적 실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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