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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동 鐘樓에서] KBS ‘왜곡 보도’와 인사청문회 감상법

    [이태동 鐘樓에서] KBS ‘왜곡 보도’와 인사청문회 감상법

    5년 단임제 대통령에게 1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큰 것이란 것은 새삼 밝힐 필요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인사문제의 덫에 걸려 황금과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로 인해 지금 대통령이 맞고 있는 위기가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으로까지 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야당과 일부 국민들의 주장처럼 낙마한 안대희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검증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절대적으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한편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정치적·문화적인 상황과 조건은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과연 옳은 태도일까. 객관적인 냉정한 시각으로 볼 때, 인사검증의 실패 원인은 일차적으로 청와대의 빈약한 인재 풀과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대통령의 ‘수첩인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비리 사실을 은폐하려는 공직 후보자의 부정직한 자세, 언론 매체의 왜곡된 검증 보도, 그리고 진영논리에 함몰된 정파 싸움이 또한 대통령의 좌절을 가져오는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은 인터넷만 검색해 보면 고위 공직자 검증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가 되는 후보자의 경우, 흠결이 기록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제보’라는 비열한 방식으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지난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 출석해 문창극 전 후보자의 교회 강연에 “KBS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말하며, “많은 후보의 사사로운 발언이나 강연 같은 것을 다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법률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공직 후보자가 숨기고 있던 결격 사유가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져 낙마할 경우, 1차적인 책임은 후보 당사자에게 있다. 공직을 맡아 일을 하기에 흠결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으로부터 공직자 자리에 대한 제의를 받았을 때 스스로 자기의 문제점을 고백하고 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번 죄를 짓게 되는 꼴이 된다. 흠결이 있는 사람이 정치적 이유로 공직에 오른다 하더라도, 누더기처럼 노출된 약점 때문에 공적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 전 후보의 낙마는 자신이 은폐하거나 숨겨놓은 도덕적 흠결 때문이 아니라 ‘제4의 권력’을 가진 공영방송 KBS가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휘둘러 ‘왜곡된’ 정보를 무책임하게 전파했기 때문이었다. KBS는 그의 70분 교회 강연 전체를 면밀히 검토하며 읽지 않고 일부만 짜깁기해 그를 식민사관을 지닌 반민족적 ‘친일파’로 몰아갔다. 그 결과 그는 월남한 실향민의 맏아들로 태어나 실력 있는 언론인으로 성장해 우리 사회의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위해 글을 쓰고 신채호와 함석헌같이 신앙고백을 했다는 이유로 무참히 인격적 살해를 당했다. KBS 저녁 9시 뉴스는 이미 공신력을 잃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염려했듯이 ‘자기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남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왜 방송위원회와 언론중재위는 KBS의 인권침해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이것뿐만 아니다.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場)으로 만드는 정치권 또한 인사검증의 실패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국회인사검증 당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두고 “캐도 캐도 미담만 나온다”고 했던 그들이 금년에는 조작된 여론으로 문 전 후보로 하여금 인사청문회장에 서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국가라면 청문회 방식도 바꿔야 한다. 개인적인 문제는 비공개로 하고 국회에서는 공직 수행 능력만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기 잘못은 탓하지 않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인 견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 “친일파가 아니면 매춘부라 말 못해” “매춘 단어는 위안부에 돈 지출 의미”

    “친일파가 아니면 매춘부라 말 못해” “매춘 단어는 위안부에 돈 지출 의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책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했다며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상대로 낸 도서출판 등 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리가 9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심리에는 신청인 이옥선, 강일출, 박옥선 할머니 등이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신청인 진술에서 “부모도 모르게 끌려가 우리가 왜 위안부가 돼야 했는지 너무 억울하다. 60년 만에 중국에서 돌아와 보니 부모, 형제 다 돌아가시고 국적도 없어졌더라”면서 “일본놈들은 아직도 ‘할머니들이 제 발로 돈 벌러 갔다’고 주장하는데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를 지켜보던 이용수 할머니는 출판사 대표를 향해 “이 같은 책을 내는 것은 친일이나 다름없다”면서 “책을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책을 쓴 박 교수는 심리에 나오지 않고 서면 답변서를 통해 “책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둘러싼 문제론을 쓴 것”이라면서 “이번 가처분 신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심각한 억압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매춘’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서는 “위안부와 관련해 돈이 지출됐다는 의미에서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했으며 ‘협력’이라는 단어는 “위안부들에게 강요됐던 봉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심리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산증인이 여기 있는데 (박 교수는) 친일파가 아니라면 감히 매춘부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다”면서 “일본의 망언을 막지는 못할망정 일본과 같은 논리의 책을 내고 돈을 벌어먹는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다음 심리는 9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북한 응원단, 선정기준은 ‘남한 미인형’? 북한 미녀 응원단 파견 노림수는?

    북한 응원단, 선정기준은 ‘남한 미인형’? 북한 미녀 응원단 파견 노림수는?

    ‘북한 응원단’ ‘북한 미녀 응원단’ 북한 응원단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7일 성명을 통해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응원단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전에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등에 응원단을 파견해왔다. 북한의 여성응원단은 ‘남남북녀’를 실감하게 하는 곱상한 외모에 조직적이고 독특한 응원 방식과 구호 등으로 항상 매스컴과 국민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어왔다. 심지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파견된 응원단 조명애씨는 단아하면서도 서구적인 외모로 인기가수 이효리씨와 함께 CF를 찍는 등 소위 ‘조명애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이 단순히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숨겨진 의도를 갖고 응원단을 파견하는 것일까. 북한소식 전문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북한의 응원단 파견의 목적과 선발과정 등을 상세히 분석한 글을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뉴포커스는 북한의 예술대학에서 응원단 선발과 관련한 업무를 관장한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응원단의 선발과정, 선발 후 훈련 그리고 남한으로 파견된 후의 활동들을 재구성해 북한응원단의 실체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응원단의 선발기준은 남한의 미스코리아 선발기준과는 견주지도 못할 만큼 까다롭다. 선발기준으로 첫째, 정치적 토대(집안환경)가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본다. 그 집안 가문에 친일 행적이 있어서는 안되며, 당시 월남을 한 기록과 중국으로 넘어가서 사는 친척들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남한으로 파견되는 만큼 해당 집안의 가문을 통해 변절에 대한 가능성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둘째, 외모가 당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본다. 제일 중요한 것은 키가 160cm이상(이 정도의 키는 북한에서는 상당히 큰 키로 여겨진다)이 되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얼굴을 본다. 북한응원단 외모의 기준은 북한의 미인형보다는 남한에서의 미인형에 맞추어 선발한다. 셋째, 평상시의 당에 대한 충실성이다. 북한에서는 모심사업에 얼마나 참가하고 활동했는지가 당에 대한 충실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모심사업이라고 하면 각 기업소나 대학에 있는 김씨 일가 혁명사적관, 전적관, 연구소 등에 가서 사상공부를 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반신상 등의 동상을 닦고 관리하는 등의 전반을 일컫는다. 이처럼 까다로운 기준을 토대로 우선 각 예술대학(북한의 예술대학은 각각 9개 도에 있다)에서 선발을 하게 된다. 1차적으로 예술대학에서 응원단을 선발하는 이유는 당이 제시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인원들이 가장 많은 곳이 예술대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대학에서 기준에 전부 부합하는 인원을 선발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머지 부족인원에 대하여 사범대학에서 선발을 한다. 예술대학교와 사범대학교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인원들은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가 실시하는 최종심사만을 앞두게 된다. 이렇게 선발을 해도 발생하는 나머지 부족인원에 대해서는 군에서 기준에 부합하는 인원들을 심사를 해서 선발하고 이들을 모아서 시에서 심사를 통해 선발을 한다. 이렇게 선발이 된 이들은 도에서 또 다시 심사를 통해 선발이 되면 예술대학교와 사범대학에서 선발된 인원들과 함께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에서 실시하는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응원단으로 선발되게 된다. 선발된 인원들은 고된 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 훈련은 최소 6개월 전부터 진행되며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다. 훈련방식은 오전에는 응원구호나 응원노래 등의 훈련을 받는다. 이전에 북한응원단이 와서 조직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보고 매스컴에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후훈련에는 참고사상교제를 통해 정치사상훈련을 받는다. 참고사상교제 내용은 북한체제를 올바르게 선전하는 법, 김씨 일가와 당에 대한 남한의 긍정적 여론 조성하는 법, 응원을 하러 나왔을 때 기자나 일반인들에게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거나 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모범답안들과 그들을 대하는 매너 그리고 남한에 있는 동안 생활할 때의 행동강령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있다. 이러한 훈련을 최소 6개월 이상 거치면 북한응원단 자격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한으로 파견되면 예상치 못한 변절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보위원들(보위원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응원단 ‘대열인솔자’, ‘생활위원회 지도원’등의 직책으로 활동을 한다고 남한에 거짓통보하여 들어온다)의 감시를 24시간 받게 된다. 북한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주일총화’를 하지만 남한에 파견된 응원단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위원들한테 제출을 하는 형식으로 ‘일일총화’를 하게 된다. 겉으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는 응원단이지만 이들은 고된 일정과 24시간 감시를 받는 힘든 강행군을 펼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응원단의 주된 목적은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 북한을 선전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전에 파견되었던 응원단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은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 덕분에 행복하게 산다’와 ‘당의 혜택 덕분에 북한은 지상낙원이다’등의 김씨 일가와 당의 긍정적 평가이다.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집중되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수단으로 하여 대외적으로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응원단을 순수하게 북한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응원단이 아니라 노동당에서 파견하여 일시적이지만 공식적으로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도로 훈련된 정치공작대인 것이라는 게 뉴포커스의 분석 내용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친일재산 국고 귀속 특별법 합헌 결정

    판례의 재구성 11회에서는 2011년 3월 친일파 후손 64명이 “친일재산이라도 당시 재산법제에 의해 취득한 재산을 다시 국가에 귀속하도록 한 특별법은 소급입법에 해당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2008헌바141)을 소개한다. 헌재 결정의 의미와 해설을 헌법 분야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듣는다. ‘친일재산 몰수 규정 합헌’ 결정은 헌재가 지난해 9월 창립 25주년을 맞아 ‘헌재 주요 결정 10선’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1554표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친일재산 국고 귀속 논란은 친일재산 환수 작업에 반발한 친일파 후손들이 헌법소원과 민사소송을 잇따라 내면서 촉발됐다. 1992~1997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씨가 “국가에 몰수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친일파 후손들의 반환 소송이 이어졌고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친일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2006년 7월 출범한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2010년 7월까지 활동하면서 친일행위자 168명의 재산 1000억여원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일병합에 기여해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민영휘의 후손 등 친일파 후손들이 2008~2010년 헌법소원을 내면서 헌재는 특별법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헌재는 2011년 3월 친일파 후손 64명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대 2(일부한정위헌)대 2(일부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해당 조항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의 재산 가운데 후손 스스로 경제적 활동을 통해 취득한 재산,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을 단지 선조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몰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좌제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특별법이 소급입법의 형식을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제헌헌법 부칙은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등 역사상 과거사 청산에 관한 다수 입법들에서 소급입법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용인돼 왔다”고 판시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에서도 전쟁이 끝나고 나치의 괴뢰정권 정부를 위해 복무한 자들을 소급적으로 처벌했다”며 “이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반성의 산물이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결의와 성찰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친일재산과 관련, ‘러일전쟁 개시 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파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어떤 재산이 친일재산인지 국가가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재산 취득자나 그 후손들은 경위와 내역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 이들에게 이를 입증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한정위헌 의견을 낸 이동흡·목영준 재판관은 “친일파 후손은 1904년 이전에 친일재산이 아니라 다른 경위로 토지를 취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시 사실관계를 입증할 서증이나 증인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며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해 친일재산과 무관한 재산까지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이강국 소장과 조대현 재판관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단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합치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해당 조항은 소급입법에 해당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일부위헌 의견을 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정의의 요청을 법적 안정성에 우선하는 것으로 평가, 친일반민족행위 불법성 심각… 시효인정 불가 판단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정의의 요청을 법적 안정성에 우선하는 것으로 평가, 친일반민족행위 불법성 심각… 시효인정 불가 판단

    법이론과 법실무의 핵심은 실정법 조항들의 해석과 적용이다. 헌법이론과 헌법실무 역시 실정헌법의 해석과 적용을 중심으로 하지만 헌법과 법률의 충돌이 문제될 경우의 헌법문제는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최고법인 헌법에 비추어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따지는 과정은 헌법의 해석과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의 유·무효를 결정하는 것이며 그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가 친일재산귀속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①‘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를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1호 가목, ②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하 친일재산)으로 추정하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 ③친일재산을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국가의 소유로 하도록 규정한 친일재산귀속법 제3조 제1항 본문(이하 귀속조항)에 대하여 모두 합헌결정을 내렸다. 친일재산의 환수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부터 이완용의 증손자, 송병준의 후손, 이근택의 조카손자 등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과 관련한 소송이 이어졌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05년 12월 친일재산의 국고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당시부터도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 금지(헌법 제13조 제2항)의 위반으로서 위헌이 아닌지 논란이 있었다. 그 밖에도 연좌제금지(헌법 제13조 제3항) 위배, 평등권(헌법 제11조) 침해 등이 쟁점으로 대두됐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헌법 조항들의 형식논리적 해석만으로 올바른 답을 내기는 어려우며,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의 이념이 이 문제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즉 친일재산의 환수라는 정의의 요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소급효 등으로 기존의 법질서를 흔들게 될 경우에 발생하는 법적 안정성의 문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양자의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대안의 마련 내지 어느 쪽을 더 비중 있게 고려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친일재산의 국고귀속조항이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함을 인정하면서 해당 조항의 정당성까지 인정한 것은 결국 정의의 요청을 소급효 금지라는 법적 안정성에 우선하는 것으로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다. 법이 정의라는 이념을 망각하고 현재에 안주할 경우에는 더 이상 진정한 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에서도 나타나듯이 진정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이 정당화되는 것은 헌법해석의 문언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친일재산의 국고귀속이 정의의 요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방식 내지 절차의 정당성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은,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이후의 소급입법들이 보여주듯이 경솔한 소급입법의 오·남용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친일재산의 국고귀속을 합헌으로 판단함에 있어서는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은 일반적으로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친일반민족행위가 행위시법으로 규율하기 힘든 곤란한 예외적 상황이었다는 점, 그 불법성의 정도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시효를 인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는 점, 친일재산의 문제도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헌법재판소도 연좌제 금지와 관련해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의 재산 중 그 후손 자신의 경제적 활동으로 취득하게 된 재산이라든가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을 단지 그 선조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연좌제금지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친일재산 환수의 과도한 확장을 경계하고 있으나, 진정소급입법의 예외는 더욱 한정적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과거 친일재산의 처리에 대해 혼선을 빚던 법원의 태도가 확실한 기준을 잡을 수 있었고, 정부의 입장 또한 확실해졌다는 점에서 이 판례의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해방 직후에 이러한 문제들이 법적·제도적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었다면 뒤늦게 이런 문제가 제기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미군정 시기뿐만 아니라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도 친일파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과거청산이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까지 친일재산의 환수 등에 관한 문제가 계속됐다. 이를 법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인 친일재산귀속법 제정과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의해 비로소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장영수 교수는 ▲고려대 법학사 ▲고려대 법학 석사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 박사 ▲헌법재판소 제도개선위원회 위원 ▲안전행정부 정보공개심사위원회 위원 ▲한국헌법학회 자문위원
  • 탕웨이 김태용,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탕웨이 영화보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탕웨이 김태용,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탕웨이 영화보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김태용 탕웨이’ ‘만추 감독’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으로 김태용 탕웨이 두 사람의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에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의 열애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012년 11월 한국에이전시를 통해 “김태용 감독과는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소문을 공식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추’를 찍은 지 5년만, 열애설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탕웨이는 마침내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김 감독은 한차례 이혼한 바 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세기의 러브스토리 같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영화 같은 사랑”,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아름다운 커플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추의 결혼

    만추의 결혼

    중국 여배우 탕웨이(35)와 영화감독 김태용(45)이 국경을 넘어 부부의 연을 맺는다. 김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탕웨이와 김 감독이 올가을 비공개로 결혼식을 치른다고 2일 밝혔다. 탕웨이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중화권 여배우로 꼽히는 데다 2년 전 열애설이 불거진 터라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한·중 양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영화사 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영화 ‘만추’(2011)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나 친구로 지내 오다 2013년 10월 탕웨이가 광고 촬영을 위해 내한했을 때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 왔다. ‘만추’ 이후 탕웨이와 현빈의 열애설이 잠시 돌았고 그가 경기도 분당에 땅을 매입한 사실까지 알려져 소문이 증폭됐다. 그러나 2012년 가을 탕웨이의 열애 상대가 김 감독이라는 소문이 불거졌다. 당시 탕웨이는 직접 “친구 사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서로의 어려운 모국어를 배워야 하지만 그 어려움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으며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탕웨이는 타이완 출신의 거장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2007)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1940년대 항일운동을 위해 스파이가 됐다가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장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왕치아즈 역을 맡아 열연했고 그해 중화권 최대 영화제 중 하나인 금마장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로 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에게 한국에서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2011년 영화 ‘만추’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고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개막식 진행을 맡았으며 화장품과 의류 광고를 찍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 감독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로 장편 영화에 입봉한 뒤 가족의 탄생(2006) 등의 장편과 다수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한국 네티즌들은 ‘탕 여신’이라 부르던 탕웨이의 결혼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김 감독과의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활동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단연 화제다. 현지 연예 매체들은 이날 둘의 결혼 소식을 일제히 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남편, 아내로 부르는 사이”, “과거 서울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탕웨이 김태용 결혼, 영화 제목 ‘만추’처럼 가을에…김태용-탕웨이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탕웨이 김태용 결혼, 영화 제목 ‘만추’처럼 가을에…김태용-탕웨이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김태용 탕웨이’ ‘만추 감독’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고, 탕웨이는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추’를 찍은 지 5년 만인 2014년 그는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축하드립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뜻밖이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멋진 커플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탕웨이 김태용 결혼,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탕웨이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탕웨이 김태용 결혼,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탕웨이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김태용 탕웨이’ ‘만추 감독’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의 열애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012년 11월 한국에이전시를 통해 “김 감독과는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소문을 공식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추’를 찍은 지 5년만, 열애설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탕웨이는 마침내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김 감독은 한차례 이혼한 바 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축하드립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뜻밖이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멋진 커플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탕웨이 김태용 결혼,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 탕웨이, 사랑도 영화처럼

    탕웨이 김태용 결혼, ‘만추’에서 결혼까지…김태용 탕웨이, 사랑도 영화처럼

    ‘김태용 탕웨이’ ‘만추 감독’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김태용 탕웨이 두 사람 간의 러브스토리에 한국과 중국의 영화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의 열애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012년 11월 한국에이전시를 통해 “김 감독과는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소문을 공식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추’를 찍은 지 5년만, 열애설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탕웨이는 마침내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김 감독은 한차례 이혼한 바 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두 사람 간 그런 사연이”,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영화계 경사났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탕웨이 한국영화 또 찍을 수도”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탕웨이·김태용 감독 “분당 땅 매입·열애 부인 새삼 화제” 만추 통한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탕웨이·김태용 감독 “분당 땅 매입·열애 부인 새삼 화제” 만추 통한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탕웨이·김태용 감독 “분당 땅 매입·열애 부인 새삼 화제” 만추 통한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으로 김태용 탕웨이 두 사람의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에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탕웨이가 분당에 주거용 땅을 매입했다는 소문까지 나와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의 열애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012년 11월 한국에이전시를 통해 “김태용 감독과는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소문을 공식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추’를 찍은 지 5년만, 열애설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탕웨이는 마침내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김 감독은 한차례 이혼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앞으로 행복하게 사세요. 응원합니다”,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예전에 그렇게 아니라고 해명하더니 결국 결혼하시네. 축하해요”.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정말 대박이다. 탕웨이가 김태용 감독과 결혼하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탕웨이·김태용 감독, 만추 뒤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분당거주용 땅은 무엇?”

    탕웨이·김태용 감독, 만추 뒤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분당거주용 땅은 무엇?”

    탕웨이·김태용 감독, 만추 뒤 영화같은 러브스토리 “분당거주용 땅은 무엇?”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으로 김태용 탕웨이 두 사람의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에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탕웨이가 분당에 주거용 땅을 매입했다는 소문까지 나와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과의 열애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2012년 11월 한국에이전시를 통해 “김태용 감독과는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소문을 공식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추’를 찍은 지 5년만, 열애설이 제기된 지 2년 만에 탕웨이는 마침내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김 감독은 한차례 이혼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멋있다”,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러브스토리 이제 결실을 맺게 됐네”. “만추 탕웨이 김태용 감독 행복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탕웨이 김태용 결혼, 영화 ‘만추’ 제목처럼 가을 결혼…“가오쯔치에 채림을 주고 탕웨이를 얻어왔다”

    탕웨이 김태용 결혼, 영화 ‘만추’ 제목처럼 가을 결혼…“가오쯔치에 채림을 주고 탕웨이를 얻어왔다”

    ‘김태용 탕웨이’ ‘만추 감독’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과 중국의 영화 팬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35)가 2010년 한국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용(45) 감독과 올가을 결혼한다. 김태용 감독의 소속사인 영화사 봄은 2일 이같이 밝히며 “연출자와 배우로 만나 삶의 동반자가 된 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의 결혼식은 올 가을,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의 축복 속에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사 봄은 “’만추’에서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10월 광고 촬영을 위해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이제 부부로 인연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공동 메시지를 통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어려운 서로의 모국어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어려움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소중한 인연이 다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2004년 데뷔한 탕웨이는 2007년 대만 출신 세계적 감독 리안이 연출하고, 홍콩 출신 스타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색, 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중국을 무대로 항일단체 여성 조직원과 상하이 친일정부 정보부대장의 격정 멜로를 그린 ‘색, 계’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로 무명이었던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색, 계’를 둘러싸고 선정적인 장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탕웨이는 2008년 3월 중국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의 ‘우수인재 영입 프로젝트’에 따라 같은 해 8월 홍콩 영주권을 획득, 중국으로 우회 진출을 모색하는 등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러던 중 2009년 11월 만난 한국영화 ‘만추’는 탕웨이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기회가 됐다. ’만추’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되고 특히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탕웨이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고, 탕웨이는 이때부터 자신의 재기를 도운 한국영화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됐다. ’만추’를 계기로 한국에서 광고도 찍게 된 탕웨이는 여세를 몰아 2012년 10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역대 최초 외국인 사회자로 나서며 ‘친한파 외국인 배우’의 대표로 떠올랐고, 그해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땅을 구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돌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현빈과 핑크빛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는 루머로 밝혀졌고, 사실은 그가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추’를 찍은 지 5년 만인 2014년 그는 김태용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한편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의 결혼 소식은 중국 배우 가오쯔치(33)가 한국 배우 채림(35)에게 청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 화제가 되고 있다. 가오쯔치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 번화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채림에게 공개 청혼한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주목받았다. 둘은 양가 상견례를 마쳤으며 오는 10월 결혼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채림을 중국에 주고 탕웨이를 얻어왔다”거나 “탕웨이 영입, 채림 이적” 등의 장난스러운 반응도 나오고 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축하드립니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뜻밖이다”, “만추 감독 김태용 탕웨이 결혼, 정말 멋진 커플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채림 가오쯔치 커플에게도 네티즌들은 “채림 가오쯔치, 축하해요”, “채림 가오쯔치, 행복하세요”, “채림 가오쯔치, 예쁜 사랑하세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재만 교수 탈북자 발언 관련 보도문

    본지는 지난해 11월 28일 “미주 탈북 한인들, ‘대구대 윤재만 교수 망언’ 규탄” 제하의 보도 등에서 윤재만 교수의 탈북자 발언 관련 보도를 하였으나 당시 SNS 대화방의 대화록을 확인한 결과 윤 교수는 대화방에 근무하듯이 상주하면서 지나친 욕설과 ‘도배’로 반민족적 친일과 독재, 공직선거법 위반행위 등을 옹호하는 일부 탈북자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을 뿐 종북적 발언이나 대한민국 전체 탈북자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열린세상] 일본의 역사 왜곡을 넘어서려면/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역사 왜곡을 넘어서려면/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를 시도하고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일부 칼럼과 교회 특강 내용이 반민족, 친일적 성격을 띠었는가에 대한 논란이 크게 확산된 상황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몇몇 국제관계의 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대두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갈등으로 특징지어질까.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이다. 아베 내각의 신사 참배, 집단 자위권 재해석, 독도 영유권 주장, 또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것이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또다시 패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고 지난 수십년간 수없이 반복되어 온 정형화된 패턴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또 이명박 정부 시기 모두 한·일 관계는 초기의 상호 우호적 정책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이 교과서 역사 왜곡 등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인해 관계 악화로 귀결됐다.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지정학적으로 얽혀 있는 양국 관계의 중심에 과거 역사와 독도 문제가 자리 잡고 있고, 미래 공통의 안보, 협력 과제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에 관한 한 두 나라 모두 물러서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또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 큰 문제는 없다. 그렇지만 일단 유사시 강대국 간 분쟁이 가시화되고 동아시아의 안보 구조에 큰 혼란이 오는 시점에 일본의 의도는 걷잡을 수 없이 노골화될 것이다. 역사 문제는 어떠한가. 이 경우는 한국이 엄청난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른다. 여말선초의 왜구 침입, 임진왜란, 그리고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한·일 합병을 거쳐 해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무수한 피해가 모두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넘어 일본을 능가하는 실력, 특히 군사력과 경제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19세기 일본 역시 미국 페리 제독의 함포 사격에 의한 강제 문호개방 후 산업혁명을 앞세운 서양 각국과 형사 재판권과 관세 자주권을 포기하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고, 그 과정에서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병, 근대화,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냉전시대의 일본이 미·일 안보협력의 토대 위에 신중상주의적 경제성장에 몰두한 것은 미·소 사이에서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제 냉전 이후 시대, 특히 고이즈미 총리 이후의 정책 변화는 급변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선제적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나토가 해체될 경우 서유럽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워싱턴의 견해, 재부상하는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 주장과 저돌적 행동, 그리고 국제규범과 국제기구의 역할 증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그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모두 그런 현실주의적 분석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흥망, 세력 균형, 약소국의 지위,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 그리고 국제정치에서의 외교, 군사, 경제의 역할에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대일 정책과 국제관계 전반에 대한 인식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한국이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유산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 반대하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세력균형에 유의하면서 군사, 경제력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한·일 간의 군사, 경제력 균형은 어떠한가. 우리의 힘이 증대해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는 날 우리의 아픈 상처는 희미한 기억으로 퇴색하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재해석 될 것이다. 이미 사퇴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생각도 다소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 가지 덧붙이면, 국제정치의 석학 한스 모겐소는 평화는 기득권 국가의 이데올로기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미국이나 한국은 모두 평화를 선호하는 국가로 이 명예로운 현실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하)

    ●한양도성은 어떻게 훼철(毁撤)됐나 한양도성은 일제 히로히토 황태자의 1907년 10월 서울 방문을 계기로 파괴되기 시작했다는 게 통설이다. 천황이 될 지엄한 몸이 보호국의 성문(숭례문) 아래를 지날 수 없다며 헐어냈다는 설이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자 히로히토를 보호한다고 호들갑을 피웠는데 숭례문 밖 남지(南池)를 전염병의 온상으로 몰아 메워 버렸다. 고니가 유유히 노닐던 연못은 이때 사라졌다. 일제는 사대문 중 산중에 있는 숙정문을 빼고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서대문)을 다 헐고자 했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대포를 쏴서 파괴하겠다고 하자 조선거류민단 단장 나카이 기타로가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점령한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각각 입성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전승 기념물이므로 후세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식민 통치가 무르익었던 1925년에는 히로히토 결혼 기념 행사를 치를 장소를 만든다면서 흥인지문 양쪽 성곽과 청계천 수계 오간수문과 이간수문, 훈련도감과 하도감을 허물어 땅에 파묻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동대문디자인플라자)으로 옷을 갈아입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이다. 이간수문과 성곽은 복원됐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들춰 보면 진위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등장한다. 1907년 3월 30일 참정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권중현이 “동대문과 남대문, 두 대문은…사람들이 붐비고 거마가 몰려듭니다. 게다가 전차가 문 가운데로 관통하는데 피하기가 어려워 매양 전차와 부딪히는 경우가 많으니…문루의 좌우 성첩(성가퀴·城堞)을 각각 8칸 허물어 전차가 출입하는 선로를 만들게 하고 원래 정해진 문은 백성이 왕래하는 곳으로만 쓴다면 매우 번잡한 폐단은 없을 듯합니다”라고 고종에게 아뢰었다는 내용이다. 한양도성 성곽의 훼철은 일제의 강압이 아니라 우리 정책인 것처럼 적혀 있다. 사실이라면 성곽 철거는 백성의 통행 불편과 사고 예방 차원에서 각부 대신이 연명으로 건의해 고종의 재가를 얻어 시행됐다고 볼 수 있지만 여느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식민 시기에 집필, 편찬된 고종실록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히로히토의 방한과 도성 훼손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완용이 총리대신에 취임한 이후인 ‘1907년 6월 24일 내부대신과 탁지부대신에게 동대문과 남대문의 성가퀴와 성벽 일부를 철거토록 통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를 맡을 ‘성벽처리위원회’가 7월 30일 내려진 ‘내각령 제1호’에 의해 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황태자’를 쓴 송우혜 작가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성벽이 실제 철거된 것은 1908년 3월 중순으로 황태자가 서울을 다녀간 지 5개월이 지난 뒤였다”고 주장했다. 실제 성곽 철거 기사는 황성신문 1908년 3월 10일자와 대한매일신보 1908년 3월 12일자에 각각 실렸다. 일제에 대한 증오심 유발용으로 일본 황태자 원인설을 조작, 유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① 한양도성 낙산 구간 흥인지문~혜화문 가는 길의 서울디자인지원센터에 자리 잡은 한양도성박물관의 전경. ②~④는 내부 전시공간. 서울시는 2015년까지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해 끊어진 전 구간을 연결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등 한양도성 복원 종합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제가 급조한 성벽처리위, 한양도성 훼철의 주범 비록 히로히토 방한 시기에 성곽이 손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제가 급조한 성벽처리위원회가 한양도성 훼철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부인 못 한다. 성벽처리위원회는 민간 전문가 조직이 아니라 정부의 차관급 인사로 구성됐는데 당시 각 부 차관 전원이 일본인 관리였다. 이들은 간선도로변의 성벽을 철거키로 하면서 교통 방해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다. 저의는 딴 데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도쿄나 교토와 비교할 수 없는 한양도성의 위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성벽처리’라는 사무적인 기구 명칭에서도 그들의 불순한 의도가 느껴진다. 쭉정이가 머리 드는 법이고, 어사는 가어사(假御使)가 더 무섭다고 했다. 백성을 위한다면서 전찻길을 따로 내자고 건의한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과 성벽처리위원회 설치를 명하는 내각령 1호를 발동한 이완용은 이근택과 함께 우리에게 ‘을사오적’으로 더 익숙한 매국노들이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이완용은 학부대신, 박제순은 외부대신, 이지용은 내부대신, 권중현은 농상공부 대신이었다. 백성을 팔아 일제의 환심을 사려는 사리사욕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성벽처리였다면 우연치곤 너무 고약하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일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10년 병탄에 앞서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는 도성의 해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들은 태조가 행했던 나라 세우기의 역순으로 와해를 꾀했다. 도성 성곽 해체가 식민지 건설의 첫 단추라고 본 것이다. 일제가 성곽을 거느린 위풍당당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문루만 덩그러니 남은 도심의 외딴섬으로 만든 까닭이다. ●도성 성곽의 해체는 국권 상실의 다른 말 도성 성곽의 해체는 왕조의 멸망과 외세의 지배를 백성에게 피부로 느끼게 했다. 무장해제된 도성문의 초라한 행색이 우편엽서로 만들어져 전국에 뿌려졌고 전국 각 읍성의 성곽도 뒤이어 철거됐다. 오백년 동안 익숙했던 도성 출입 시스템이 바뀌면서 생활상도 급변했다. 매일 새벽 4시와 밤 10시를 기해 도성문을 여닫으면서 통행금지 해제(인정·人定)와 통행금지(파루·罷漏)를 알리던 보신각 종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성 출입과 하루의 시작 및 끝을 알리던 전통적인 통제 장치가 사라지면서 일상이 무너졌다. 성곽이 없는 문은 의미를 상실했고 지엄한 권위도 힘을 잃었다. 도성 해체는 국권 상실을 뜻했다. 한양도성 성곽의 전체 둘레는 모두 18.627㎞이지만 남아 있는 산악 지역 성벽을 제외한 도심 구간 5.471㎞는 멸실됐다. 12.4㎞만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으로 지정돼 있다. 훼손이 가장 심한 구간은 돈의문~숭례문~흥인지문 구간이다. 일제와 친일파는 처음 숭례문 양쪽 성곽 8칸을 허물어 전찻길을 낸다고 했다가 야금야금 다 허물었다. 남산~숭례문 구간도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지형을 변형시켰다. 최근 회현지구 정비가 마무리돼 남산 자락 성곽이 위용을 드러냈고 옛 조선신궁터 복원이 진행 중인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창의문(자하문)~백악(북악)~숙정문~혜화문 구간은 대부분 복원됐지만 서울과학고와 경신고 사이 일부 구간은 성벽이 담장이나 축대로 쓰이는 형편이다. 숭례문은 화재 소실을 계기로 성첩 일부를 복원했지만 흉내에 그쳤다. 소덕문(서소문)~돈의문 구간에는 잔존 유구가 지하에 묻혀 있다. 정동구간 중 주한 러시아 대사관과 창덕여중 등에 성곽이 포함돼 복원 가능성이 희박하다. 강북삼성병원에서 사직터널에 이르는 돈의문~창의문 구간에는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았다. 흥인지문~광희문 구간은 운동장을 헐고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다행히 복원이 이뤄졌다. 광희문~남소문 구간 중 장충동과 신당동 경계 지역 성곽은 대부분이 주택가에 포함돼 복원까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이 구간은 박정희 정권 시절 타워호텔(반얀트리)과 자유센터를 짓도록 허가를 내 주면서 망가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알려진 김수근은 두 건물을 설계하면서 한양도성 성곽을 완전히 해체했으며 그 돌로 도로변 석축을 쌓는 만용을 부렸다. 일제에 못지않은 훼철을 저질렀다. 문루가 희생된 돈의문, 소덕문, 남소문은 큰 도로가 자리 잡아 원상회복이 어렵다. 청계천의 수문인 오간수문터는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소외돼 발굴 상태로 방치돼 있다. 혜화문과 광희문도 도로에 자리를 빼앗겨 한옆으로 밀려나 있다. 도시화에 밀려 엉거주춤한 상태인 한양도성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보수와 복원 그리고 재건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무너진 성곽을 원재료로 다시 쌓는다면 보수이며 발굴 등을 통해 드러난 기저부에 새 돌을 다시 쌓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린다면 복원이 될 것이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거나 없어진 부분이 기록과 고증에 의해 문화재적 가치를 되찾으면 재건이다. 홀랑 타 버려 다시 세운 숭례문을 재건했듯 돈의문, 소덕문, 남소문의 재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자리를 옮김으로써 역사 가치를 상실한 광희문과 혜화문은 원위치 이축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임기 내 청계천 복원 사업을 끝내고자 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서 버림받은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서 본디 자리로 돌아오고 오간수문도 제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처럼 순성길 이어져야 미국 보스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은 ‘프리덤 트레일’에 담겨 있다. 건국과 독립전쟁 유적지로 가는 4㎞의 길 위에 붉은색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줄만 따라가면 사적지를 만날 수 있는데 트레일은 보스턴 국립역사공원의 일부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한양도성 순성(巡城)길은 이어지지 않는다. 토막 나 있고, 흔적도 없다. 도성 길라잡이의 안내가 없다면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한양도성 복원과 재건은 서울의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 해 1000만명이 넘는 서울 방문 외국 관광객들은 빌딩숲과 아파트단지,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가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한강이나 남산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지목하는 사람도 많다.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2000년 고도 서울의 정체성 확립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정체성은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에서 흘러내려 사대문을 울타리처럼 감싼 한양도성 성곽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가파른 고갯길과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한옥 처마와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내사산과 그에 겹쳐진 고색창연한 성곽이 곧 서울이다. 내사산과 도성 성곽의 어울림이 서울을 상징하는 도시 경관의 결정체다. 한양도성 순성이 서울 관광의 알갱이라는 사실을 웬만한 외국인은 다 알고 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문창극 검증, 정파 안 치우치고 날카로워”

    “문창극 검증, 정파 안 치우치고 날카로워”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제66차 회의를 열어 전날 사퇴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자격 논란에 대한 보도를 점검했다. 독자권익위원들은 서울신문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인사시스템 개혁을 위한 꾸준한 보도를 당부했다. 김광태(온전한 커뮤니케이션 회장) 위원은 “진보 성향의 신문은 문 전 후보자를 친일파로 몰아가고 보수 신문은 인위적 해석을 덧붙이는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서울신문은 다른 언론과는 달리 정파적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준하(전 이화여대 학보사 편집장) 위원은 “후보자의 말실수에 집작하는 언론 보도가 많았는데 인사 문제 시스템 등 여러 측면에서 다뤘던 점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박 위원은 문 전 후보자 관련 최근 사설들에 대해 “초반에는 문 후보 스스로의 판단을 촉구한 데 비해 이후에는 청와대 책임론과 인사 검증시스템 문제에 무게를 뒀던 점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신문을 비롯해 언론들이 문 전 후보자의 친일발언 등에 대해 과도하게 다룬 측면이 있다면서 다각도로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해줄 것을 당부했다. 고진광(인간성 회복 운동 추진협의회 대표) 위원은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보다 문 전 후보자에 대한 보도가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여론몰이는 없었는지 언론의 태도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2기 내각 개각 문제 등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 부족했다”면서 “폭넓은 인사가 됐는지, 여성 장관 비율은 부족하지 않은지 등 다른 문제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자(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위원은 공직인사혁신안 대해부 시리즈로 인사행정 분야 전문가 35명의 의견을 취합한 서울신문 기사를 예로 들며 “이른바 관피아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면서 “앞으로도 공직자들은 어떤 윤리와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깊이 있게 다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은 “일부 언론은 후보자 검증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지만 서울신문은 생각이 다르다”면서 “세상이 달라진 만큼 앞으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철저한 검증 보도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유체이탈 화법/박상숙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유체이탈 화법/박상숙 산업부 차장

    ‘아큐주의’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큐가 수모와 굴욕을 당하고도 ‘나는 지지 않고 정신적으로 승리했다’고 믿는 허위의식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를 속이고 세상을 탓하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태를 의미한다. 100년 전 유행했던 중국의 아큐주의를 요즘 한국 사회 버전으로 바꾼다면 ‘유체이탈 화법’이 아닐까 한다. 신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유체 이탈 상태처럼 자신의 잘못을 남 이야기하듯 하는 걸 말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시사평론 팟캐스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유한 어법을 꼬집는 말로 등장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정부 쇄신 요구에 대해 “공무원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고 거꾸로 격노, 국민의 헛웃음을 샀다. “MB 정권에서 시작된 유체이탈 화법이 박근혜 정부에서 완성됐다”라고 한 자조적 댓글처럼 최근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라는 양반들은 공통으로 유체이탈 화법에 능하다. 역사관·친일논란으로 낙마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사퇴의 변에서 ‘국회 탓, 언론 탓’만 늘어놨다. 빈말이라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한마디가 있을 법한데도 오로지 ‘남탓’으로 일관, 국민을 끝까지 기막히게 했다. 게다가 일제강점을 하나님의 뜻으로 강변한 그가 국가보훈처가 초스피드로 인정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니 각본 없는 코미디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논문 표절은 기본으로 갖추고 몸과 정신이 따로 돌아가는 언행을 충실하게 일삼아 왔다. 한 언론에 의하면 김 후보자는 툭하면 강의시간을 잘라 먹고 빼먹기 일쑤였다. 그가 수장을 맡으면 ‘전교조의 조퇴 투쟁에 대해 학생의 학습권 침해이니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어떻게 정리될지 정말 궁금하다. 소름 돋는 자가당착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적반하장식 대응과 발언은 외국 언론에서도 화제였다. 거듭된 인사실패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대통령은 이번에도 “(문창극 후보가)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해 국민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윗물인 정치가 혼탁하니 아랫물인 경제, 사회도 흐릴 수밖에 없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서인지 재계 총수들 또한 자기 문제를 남 얘기하듯 하는데 도통하다. 최근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유체이탈 화법이 냉소를 자아냈다. 계열사인 롯데홈쇼핑 경영진이 기상천외한 ‘갑(甲)질’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는데도 남 말 하듯 “부정을 발본색원 하겠다”며 비분강개했다. 자신의 인사실패가 낳은 협력업체의 고통과 소비자 혼란에 대한 사과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비리의 뿌리를 뽑겠다고 선언한 그날도 그룹 최고 경영진 일가의 또 다른 비위가 언론에 터져 나와 그의 다짐은 더욱 무색해졌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유체이탈 화법이 점점 독해지고 스스럼없어지는 걸 볼 때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것인지 암담하게 느껴진다. 잘못을 인지해야 잘못을 고친다. 더 이상 구구절절한 변명과 억지를 듣고 싶지 않다. “다 내 탓이오”하며 깨끗하게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게 먼저다. 쿨하게 사과할 줄 아는 것도 리더의 덕목이다. alex@seoul.co.kr
  • 서경석 목사 “문창극 사퇴했어도 KBS 끝까지 고소하라”…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서경석 목사 “문창극 사퇴했어도 KBS 끝까지 고소하라”…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서경석 목사 문창극’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서경석 목사가 문창극 사퇴에 불만의 목소리를 낸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소식이 전해졌다.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 서경석 목사는 24일 인터넷 보수매체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문창극 전 총리 후보가 KBS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법적 대응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경석 목사는 “이 사태의 근본은 KBS가 동영상의 일부만 따서 친일 반민족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보도하고 그 보도가 다른 언론에 의해 그대로 일제히 받아들여져 국민 여론이 호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석 목사는 “국회의원들과 온 국민이 동영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면서 “그런 후에 자신의 입장대로 자유롭게 판단했으면 될 것 아니었나. KBS 등 지상파에 풀 동영상을 방영하라고 주장한 것도 그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동영상을 전부 방영하지 않으면 우리는 KBS를 공영방송으로 인정할 수도 없고, KBS는 문을 닫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문창극 전 후보자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앞서 KBS ‘9시 뉴스’는 11일 문창극 전 후보자의 “일제 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란 발언을 담은 2011년 온누리교회 강연 일부를 보도했다. 그 외에도 문창극 전 후보자는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고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 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낸 사의를 60일만에 반려하고, 유임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사의표명을 했던 총리가 유임조치되기는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성진 칼럼] 문제는 비뚤어진 사회다

    [손성진 칼럼] 문제는 비뚤어진 사회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결국 물러났다. 그에게서 불거진 논란들은 보색(補色)처럼 다른 속살을 품은 우리의 서글픈 현실을 또 드러내고 말았다. 후보자의 성향에 동조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편이 갈라졌다. 한쪽만 보는 외눈박이가 되었다. 객관적인 역사의식으로 바른 판단을 내리려는 노력은 게을리했다. 언론들은 세월호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후보자와 연관 있는 곳은 그를 옹호하기에 바빴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는 본질 파악은 덮어놓고 공격만 해댔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과연 그 반대였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하다. 두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 후보자는 독립지사를 할아버지로 두었다며 자신은 친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친일파 윤치호의 글을 인용한 것 자체가 할아버지에 대한 모독 아닌가. 둘째, 방송사의 ‘거두절미’식, ‘악마적’ 편집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점에서는 문 후보자의 강연도 덜하지 않다. 비숍 여사의 책 일부분만 인용한 것도 짜깁기 편집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그는 책 내용을 부연 설명하면서 책에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 덧붙이거나 과장했다. 물론 비숍은 우리나라의 불결함에 대해 썼지만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비숍은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라고도 썼다. 물론 ‘민족성의 DNA’ 운운하는 이야기는 비숍이나 윤치호의 일기에는 없는 후보자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일본이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친일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념 과잉 또한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뚤어진 현상이다. 후보자의 말이 틀리든, 옳든 이번에도 노정된 친일 논란과 이념 대립은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겪은 한국의 업보인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까지나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일까. 문 후보자 외에 그동안 낙마한 인사들의 사유를 살펴보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급속한 성장을 이루면서 얻은 사회적 부작용들이 많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검증 도중 낙마한 장차관급 인사는 문 후보자까지 모두 26명이다. 낙마 원인을 가장 많은 것부터 열거하면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전관예우, 논문 표절, 병역 면제, 성추문 등이다. 1940년대 이후에 태어나 중책을 맡을 나이에 이른 이들은 고도성장과 사회 급변기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서 고급 정보와 인맥으로 갖가지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 물론 모든 공직자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검증에서 터져 나오는 부도덕한 행위와 비리를 보면 결코 일부만이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이것이 지난 수십년 동안 공직과 법조계, 학계, 언론계에 몸담으며 지도층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실상인 것이다. 사회 전체가 이념 대립, 투기와 탈세, 병역기피, 표절에 휩쓸려 갈 때 저지해야 할 인물들이 도리어 앞장선 결과가 지금 인물난으로 나타났다. 황희 정승 같은 인물을 찾으려야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하고 총리감, 장관감을 쉽게 찾으려 했다가 몇 번이나 ‘딱지를 맞는’ 대통령들이 측은할 정도다. 검증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고치지 않고서는 십년, 수십년 후에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지 모른다. 비뚤어진 사회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전관예우나 탈세, 투기, 표절 등 나타난 문제들을 법과 제도를 통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는 일단 피하려 한다. 공직자윤리법에 전관예우 부분은 쏙 빼먹은 게 단적인 예다. 이래서는 미래의 총리, 장관 후보자도 검증 공세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세상은 사람이 바꾼다. 바른 세상을 위한 바른 사람을 기를 토양은 지금부터 가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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