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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정신 기억하자”… 강북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헌법정신 기억하자”… 강북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시민 기금으로 백범 조형물 설립 박원순 시장 “규모 확대 지원할 것” 땅속에 묻혀 있던 역사가 17일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이날 열린 개관식은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할 예정인 국정교과서 반대운동 의지를 다지는 장이기도 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서울시가 예산 39억원을 투자해 북한산 둘레길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소박한 규모의 건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연간 2억 8000만원의 운영비로 기념관을 운영하게 된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제헌헌법 전문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어 ‘사람은 하늘이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혁명의 정신을 소개하고, 3·1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운동 과정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봉황각에 모인 민족대표들이 3·1운동을 벌이는 상황이 영화로 상영되며, 광복군이 돼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됐다. 기념관의 마무리는 4·19혁명이 맡았다. 기념관 앞에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한 3000만원의 기금으로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 선생 조형물을 세운다. 조형물 제작은 전국 각지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가 맡는다. 강북구는 동학부터 4·19혁명까지 근현대사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 잠든 곳이다. 특히 근현대사기념관 뒤로 북한산 둘레길 가운데 하나인 초대길이 바로 이어진다. 초대길은 이시영 부통령, 김병로 대법원장, 이준 열사, 신익희 제헌국회 부의장 등 초대로 국가직을 맡은 이들이 잠든 묘가 이어진 길이다. 이준 열사는 대한민국 초대 검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며 “전시물이 부족해 기념관으로 시작하지만 근현대사박물관을 지원할 용의도 있다”며 역사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근현대사기념관을 통해 강북구를 청소년, 시민, 외국인이 찾아 한국의 역사를 체험하는 역사문화관광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개관식에 참석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박용진 국회의원 당선자와 천준호 더민주 지역위원장 등은 “역사를 거스르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편찬을 비판했다. 특히 임 소장은 “미국에서도 조지 워싱턴 1명이 아니라 5대 대통령까지를 국부라 부른다”며 “대한민국의 국부는 상하이임시정부에서 일한 이들”이라고 이승만 국부론을 비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근현대사기념관 개관식 여는 강북구, 역사문화관광도시로 도약

    땅속에 묻혀 있던 역사가 17일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이날 열린 개관식은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할 예정인 국정교과서 반대운동 의지를 다지는 장이기도 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서울시가 예산 39억원을 투자해 북한산 둘레길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세운 소박한 규모의 건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연간 2억 8000만원의 운영비로 기념관을 운영하게 된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제헌헌법 전문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어 ‘사람은 하늘이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혁명의 정신을 소개하고, 3·1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운동 과정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봉황각에 모인 민족대표들이 3·1운동을 벌이는 상황이 영화로 상영되며, 광복군이 돼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됐다. 기념관의 마무리는 4·19혁명이 맡았다. 기념관 앞에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한 3000만원의 기금으로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 조형물을 세운다. 조형물 제작은 전국 각지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가 맡는다. 강북구는 동학부터 4·19혁명까지 근현대사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 잠든 곳이다. 특히 근현대사기념관 뒤로 북한산 둘레길 가운데 하나인 초대길이 바로 이어진다. 초대길은 이시영 부통령, 김병로 대법원장, 이준 열사, 신익희 제헌국회 부의장 등 초대로 국가직을 맡은 이들이 잠든 묘가 이어진 길이다. 이준 열사는 대한민국 초대 검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며 “전시물이 부족해 기념관으로 시작하지만, 근현대사박물관을 지원할 용의도 있다”며 역사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근현대사기념관을 통해 강북구를 청소년, 시민, 외국인이 찾아 한국의 역사를 체험하는 역사문화관광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개관식에 참석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박용진 국회의원 당선자와 천준호 더민주 지역위원장 등은 “역사를 거스르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편찬을 비판했다. 특히 임 소장은 “미국에서도 조지 워싱턴 1명이 아니라 5대 대통령까지를 국부라 부른다”며 “대한민국의 국부는 상해임시정부에서 일한 이들”이라고 이승만 국부론을 비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이슈&이슈] 반야월 셋째 딸 “가사 무단사용” vs 사천시 “제막식 참석은 사용 허락”

    [이슈&이슈] 반야월 셋째 딸 “가사 무단사용” vs 사천시 “제막식 참석은 사용 허락”

    “반야월이 지은 가사를 노래비에 허락 없이 사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로 손해 배상해야 한다.”(반야월 셋째딸) “반야월이 노래비 제막식에 참석한 것은 가사 사용을 허락한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노래비는 반야월 명예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경남 사천시) 우리나라 대표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1917~2012)의 유족이 반야월이 지은 가사의 노래비를 세운 지방자치단체와 기관 등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동시에 제기해 주목된다. 15일 사천시와 반야월 유족 측에 따르면 반야월 셋째딸 박희라씨가 사천시와 충남 태안군, 충북 제천시, 서울 금천·성북구, 한국수자원공사 등 6개 기관을 상대로 어문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2월 29일 소장이 접수된 뒤 사천시 등 피고 기관에서 답변서와 준비서면을 내는 등 재판을 준비하는 가운데 법원이 지난달 22일 조정회부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이달 조정이 열릴 예정이지만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씨는 사천시에 6750만원, 나머지 5개 기관에 1500만원씩을 청구했다. 박씨는 소송대리인을 통해 낸 소장에서 사천시 등 6개 기관이 반야월이 작사한 노래비를 만들어 세우면서 노랫말과 제목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박씨는 해당 기관은 노래비 건립 공사비의 15%를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박씨는 반야월이 작사한 모든 저작물의 재산권과 사용료에 관한 권리를 2010년 아버지에게서 유언 공증서를 통해 단독 승계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법원도 반야월의 자녀(2남 4녀)들이 재산상속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박씨 측은 저작권법 제46조 저작물의 이용 허락에 따라 저작재산권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할 수 있으며 이용 허락을 받는 자는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만 그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어문저작물 이용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사용한 행위는 어문저작물을 침해한 것으로 손해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씨 측은 손해배상청구 금액은 앞서 있었던 유사한 형태의 저작물 이용 및 계약에 따라 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와 소송대리인 측은 경북 영덕군이 2010년 6월 영덕군 영덕읍 남석리 삼각주공원 안에 ‘외나무다리 노래비’를 건립할 당시 노래비 공사비 1억원의 15%를 반야월에게 가사 저작권 사용료로 준 사례가 있어 이를 따랐다고 했다. 박씨 측이 손해배상 청구를 한 시설물은 사천시에 2곳이 있다. 서금동 노산공원 앞 바닷가에 2011년 11월 건립한 ‘삼천포 아가씨상’과 대방동 삼천포 대교 기념공원에 2005년 5월 세운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만리포 해수욕장의 ‘만리포 사랑 노래비’와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박달로 박달재 공원에 1988년 11월 만든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 2001년 10월 서울 금천구 독산로 금천체육공원에 세운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 등도 소송에 포함됐다. 금천구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른 가수 박재홍이 태어난 곳을 알리기 위해 노래비를 건립했다. 또 성북구 동소문로 177 미아리 고개 정상에 있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노래비’와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소양강댐 정상에 한국수자원공사가 건립한 ‘소양강 처녀상’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사천시 등은 답변서에서 어문저작물을 이용해 영리를 취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반야월이 제막식에 참석한 것은 어문저작물 사용을 허락한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아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천시는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와 삼천포 아가씨상이 노래 위상과 가치를 높이고 인기를 얻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반야월의 명예를 크게 높였다고 주장했다. 또 비영리 자치단체가 저작물을 이용해 영리를 취하지 않았고 저작자 이익을 해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관련 문화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사천시는 삼천포항과 사천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삼천포 아가씨 가요제’도 해마다 개최한다. 사천시는 반야월이 먼저 사천시에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 설치를 건의한 적이 있고 제막식 때도 참석하는 등 어문저작물 사용을 포괄적으로 허락했다고 강조했다. 박씨 측이 뒤늦게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제천시는 답변서에서 박달재 노래비는 제천중앙라이온스클럽이 1988년 11월 건립해 시에 기증, 시에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역시 반야월이 제막식 행사에 참석,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다른 곳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다. 반야월은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 농산고를 수료한 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1938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활동했다. 해방 뒤에는 반야월이란 이름으로 작사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가 가사를 쓴 노래가 5000여곡이 넘는다. 1940년 새 노래를 취입하기 위해 태평레코드사 본사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모친이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고 가슴을 치며 비통한 심정으로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러 대히트를 쳤다. ‘삼천포 아가씨’ 가사는 1960년대 부산·마산·통영·여수 등을 오가는 연안여객선을 보며 임을 기다리는 아가씨의 마음과 삼천포항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오지 못해 배를 곯아 숨진 세 살 된 딸에 대한 애절함을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표현했다. ‘산장의 여인’은 1957년 가을 마산국립결핵요양소에 위문공연을 갔을 때 객석에서 소복을 입고 흐느끼며 자신의 노래를 듣는 한 여인을 보고 노랫말을 썼다. 반야월이 지은 노랫말은 이처럼 구구절절 애절한 사연을 담아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가수로 활동하면서 친일 군국가요를 부른 것을 후회한다며 2010년 사과하기도 했다. 사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부모 욕하는 ‘일베 부모인명사전’에 日도 깜짝…국제 망신

    부모 욕하는 ‘일베 부모인명사전’에 日도 깜짝…국제 망신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가 일본에까지 악명을 떨치고 있는 듯하다. 일본 매체 일간 사이조는 12일 “‘유교의 나라’ 한국에서는 상사나 부모를 공경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정신이 사회 전체에 깊이 뿌리내린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정신도 상당히 약해진 것 같다”면서 “왜냐하면 ‘한국판 2채널’(일본 극우성향 네티즌들의 커뮤니티)로 불리는 ‘일베’에 등장한 ‘부모인명사전’이라는 기록이 불효의 극치로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일베 사용자들이 작성한 부모인명사전은 그들 부모의 품행과 언행 등이 실명과 함께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면서 “그 대부분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것 같은 이야깃거리일뿐더러 ‘부모에 대해 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등록된 것은 30명 미만이지만, ‘자신의 부모도 등록해 달라’고 추가를 원하는 사용자가 많아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또 이 매체는 일베에 공개된 부모인명사전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공개하고 있다.  ○○○(어머니의 본명)  · 고졸  · 남편이 번 돈으로 얼굴에 보톡스 주사 · 남편이 귀가해도 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TV 보면서 자수에만 열중 · 4수 중인 아들에게 줄 돈은 없지만, 쇼핑몰에서 러닝머신을 살 돈은 있다  ○○○(아버지의 본명)  · 대머리  · 아들이 중3 때 꽃뱀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빚투성이로 만들어 · 7살 아래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재혼까지 해  · 사업은 완전히 망해 · 택시 운전사 주제에 아들에게 잘난 체하는 말을 한다 이와 같은 식으로 부모를 헐뜯고 있다고 이 매체는 소개했다. 이와 함께 이 매체는 ‘일베’에 대해 “종종 한국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켜온 문제 사이트”라고 소개하면서 “이번에는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깎아내리다니 심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 매체는 “단지, 언뜻 보면 일방적으로 부모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바보 같은 아들이 있다’, ‘이런 바보 같은 부모를 가진 나’라는 식으로, 작성자의 자학 소재로도 쓰인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나를 낳은 부모는 쓰레기라는 것’이라는 식으로 자신은 문제 삼지 않고 부모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 매체는 “부모인명사전은 ‘친일인명사전’을 본떠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해서는 “일본 강점기(일제 시대라고 표현함)에 친일 활동을 한 인물의 이름이 이어지는 2009년에 출판된 전 3권의 명단집”이라면서 “4389명의 친일파 한국인에 관한 주요 행동과 행적이 점철된 이른바 ‘전범 블랙리스트’”라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이런 ‘친일인명사전’을 참고로 부모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낸 한국의 젊은이들. 실제 자녀가 여기까지 바보가 돼 있다는 것을 알면 부모는 어떤 얼굴을 하는 것일까?”라면서 “게다가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 매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성 혐오, 남성 혐오에 이어 이번에는 부모 혐오로 내달리는 한국. 혐오와 증오가 점점 심각해지고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사진=라이브도어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설현 지민, 안중근 논란과 비교되는 ‘역사의 神’ 김종민 과거 ‘소름’

    설현 지민, 안중근 논란과 비교되는 ‘역사의 神’ 김종민 과거 ‘소름’

    AOA 설현과 지민이 역사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과거 예능에서 ‘역사의 신’으로 등극한 가수 김종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oa 지민 설현과 비교되는 김종민”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설현과 지민은 지난 10일 온스타일 ‘채널AOA’에 출연해 역사적 위인들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추는 미션을 수행했다. 당시 제시된 사진은 이순신, 신사임당, 안중근, 김구, 링컨, 스티브 잡스 등 비교적 쉽게 맞힐 수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설현과 지민은 ‘안중근 의사’를 맞추지 못했고, 보다 못한 제작진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힌트를 제시했으나 지민은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며 되물어 시청자를 경악케 했다.   결국 설현이 스마트폰 검색으로 해당 문제를 맞췄지만,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무지한 역사 의식과 경솔한 행동에 공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2일 설현과 지민은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반성과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런데 과거 가수 김종민이 보여줬던 놀라운 역사 인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20일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거사를 계획하고 실행하기까지의 발자취를 함께 밟아보는 여행을 기획했다.   당시 김종민은 안중근 의사의 아명(아이 때 이름) ‘안응칠’,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 ‘만 30세’를 정확하게 맞춰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는 안중근 의사의 생년월일 역시 정확하게 맞췄다. 또 김종민은 ’하얼빈 의거’ 직전 직전 안중근 의사의 심경을 정확하게 짐작해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종민은 안중근 의사 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의 명언과 친일파 이완용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 맞히는 등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해 ‘역사의 신’에 등극했다.   한편 설현·지민과 김종민의 극명하게 대조되는 행보에 네티즌들은 “김종민 멋지다”, “기본을 넘어선 지식인데 존경스럽다”, “설현, 지민은 보고 배워라”, , “나도 역사 공부 해야겠다”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어버이연합, 유병재·이상훈 이어 네티즌도 추가 고소 “일베 회원도 포함”

    어버이연합, 유병재·이상훈 이어 네티즌도 추가 고소 “일베 회원도 포함”

    극우 보수단체 어버이연합(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방송인 유병재와 개그맨 이상훈에 이어 네티즌 2명을 추가로 고소했다. 12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어버이연합 측은 “유병재·이상훈 외에도 어버이연합을 폄하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을 고소했고 앞으로도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은 지난해 8월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욱일승천기’가 걸려있다는 내용의 허위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렸다”며 지난 4일 한 네티즌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이와 관련, 어버이연합 측은 “해당 사진에 담긴 욱일승천기 자리에는 실제로 태극기가 걸려 있다”면서 “어버이연합은 평소 욱일승천기 화형식 등 반일시위를 자주 개최해 온 단체인데, 네티즌이 조작된 사진을 근거로 어버이연합을 친일파로 비방했다”고 설명했다. 또 극우 보수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도 지난달 27일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베 회원이 어버이연합을 ‘테러리스트 단체’라며 비방했다는 이유에서다. 어버이연합은 “앞으로도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수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00년 전 문제적 작가들, 그 경계에 대하여

    100년 전 문제적 작가들, 그 경계에 대하여

    서정시의 거두로 불리지만 사회 현실에 적극 소리를 냈던 박두진, 친일 행적으로 문학사에선 지워졌지만 전방위적 글쓰기로 일본에서 더 주목하는 시인 김종한, 스스로 ‘최후의 분대장’으로 불리길 원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인 김학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에는 이렇게 ‘문제적 작가들’이 대거 태어났다.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 분단 등 극단의 시기를 통과해 온 이들은 저마다 다른 경계에서 분투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201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이들의 문학 세계와 삶을 재조명한다. ‘해방과 분단, 경계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문학제의 주인공은 박두진, 김종한, 김학철, 설창수, 안룡만, 이영도, 최금동, 최태응 등 8명이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3일 간담회에서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름은 박두진 시인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학사적으로나 문학적 작업 면에서 놀랍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지평을 이룬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평론가, 출판기획자 등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김종한은 국내에서는 친일 작가로 찍히며 배제됐지만 김수영 시인이 모더니즘의 기수로 높이 평가한 작가다. 일본에선 2005년 우리보다 먼저 전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관심이 크다. 소설가 김학철은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혁명적인 작가다. 독립 투쟁을 하며 남북한, 만주, 일본 등 동아시아를 아우른 정치 망명자이자 디아스포라 작가로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가 대표작이다. 이영도는 청마 유치환과 주고받은 5000여통의 연서와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로 잘 알려진 여성 시조 시인이다. 유치환과의 사랑을 통해 전통적 윤리와 현대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며 새로운 시적 주체를 탄생시켰다. 오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는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13일 연희문학창착촌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마임, 낭송, 영상, 무용 등의 공연으로 펼치는 ‘문학의 밤’이 마련된다. 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경기 용인 포은아트갤러리에서는 화가 8명이 청록집 수록 시 39편을 그림으로 옮긴 시그림전이 열린다. (02)721-320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박두진, 김학철, 김종한… 1916년이 낳은 ‘문제적 작가들’ 을 조명하다

    박두진, 김학철, 김종한… 1916년이 낳은 ‘문제적 작가들’ 을 조명하다

     서정시의 거점으로 불리지만 사회 현실에 적극 소리를 냈던 박두진, 친일 행적으로 문학사에선 지워졌지만 전방위적 글쓰기로 일본에서 더 주목하는 시인 김종한, 스스로 ‘최후의 분대장’으로 불리길 원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인 김학철(사진)?.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에는 이렇게 ‘문제적 작가들’이 많았다.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 분단 등 극단의 시기를 통과해 온 이들은 저마다 다른 경계에서 분투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201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이들의 문학 세계와 삶을 재조명한다. ‘해방과 분단, 경계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문학제의 주인공은 박두진, 김종한, 김학철, 설창수, 안룡만, 이영도, 최금동, 최태응 등 8명이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3일 간담회에서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름은 박두진 시인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학사적으로나 문학적 작업 면에서 놀랍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지평을 이룬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평론가, 출판기획자 등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김종한은 국내에서는 친일 작가로 찍히며 배제됐지만 김수영 시인이 모더니즘의 기수로 높이 평가한 작가다. 일본에선 2005년 우리보다 먼저 전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관심이 크다. 소설가 김학철은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혁명적인 작가다. 독립 투쟁을 하며 남북한, 만주, 일본 등 동아시아를 아우른 정치 망명자이자 디아스포라 작가로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가 대표작이다. 이영도는 청마 유치환과 주고받은 5000여통의 연서와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로 잘 알려진 여성 시조 시인이다. 유치환과의 사랑을 통해 전통적 윤리와 현대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며 새로운 시적 주체를 탄생시켰다.  오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는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13일 연희문학창착촌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마임, 낭송, 영상, 무용 등의 공연으로 펼치는 ‘문학의 밤’이 마련된다. 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경기 용인 포은아트갤러리에서는 화가 8명이 청록집 수록 시 39편을 그림으로 옮긴 시그림전이 열린다. (02)721-320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60년대 압축 성장 밑바탕에 만주국 있다

    60년대 압축 성장 밑바탕에 만주국 있다

    만주 모던/한석정 지음/문학과지성사/518쪽/2만 8000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학교 조회 시간마다 암송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이 만들어지고, 충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가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고,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이 민족정신의 화신으로 떠오른 시기는 1960년대다. 모두 경제 성장의 기틀을 닦기 위해 도입된 교육 이념, 사상들이다. 국민 소득 100달러 수준의 절대 빈곤 시대에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정신들을 바탕으로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며 압축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데 저자는 1960년대 우리 체제의 뿌리를 만주국에서 찾는다. 철도 건설을 명분으로 일본 관동군이 남만주에 세운 괴뢰 정부(1932~1945)다. 만주국은 권위주의 체제와 불도저식 건설을 토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적 정책을 수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선근, 정일권, 유석창, 신기석, 김성태, 이인기 등 많은 지도층이 만주 인맥이라는 점에서 만주국 체제가 모방·차용·변형되며 이식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국토 개발, 반공대회, 대량 전단 살포, 표어 제작, 주민 점호 등 1960~70년대 우리 일상들이 만주국 유산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1960년대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저자는 친일 대 민족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만주국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요컨대 식민 경험이 오로지 고난의 시기였던 것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후일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옛 식민자를 능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100년 전 ‘간호 교과서’ 문화재로 등록

    100년 전 ‘간호 교과서’ 문화재로 등록

    100여년 전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발간된 간호교과서가 정식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여성 선교사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가 1908년 상권과 1910년 하권으로 제작한 ‘간호교과서’를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서울 중구 정동 보구여관(保救女館)에 설립된 간호사양성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됐다. 에드먼즈는 간호사양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간호원장으로 활동했다. 문화재청은 “상권과 하권이 잘 보존돼 희소 가치가 있다”면서 “20세기 초반의 의학 역사는 물론 한글로 번역된 의학 용어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했다. 현재 서울 장로회신학대에 보관돼 있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후기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의 겉옷인 ‘의병장 유인석 심의(深衣)’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유인석은 강화도조약이 체결됐을 때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갑오개혁 후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1896년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충북 제천의병전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유인석이 평상시 입은 심의 1점, 허리띠 역할을 하는 대대(大帶) 1점, 머리에 쓰는 복건(幅巾) 1점으로 구성돼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 조선통신사 외교의 징검다리였던 섬, 일제강점기의 한恨이 서린 섬, 조선 마지막 황녀의 흔적이 남은 섬. 대마도를 여행한 시간은,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이었다. 그 섬을 찾는 이유 부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닿는다. 일본에서는 쓰시마つしま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겐 대마도로 더 익숙한 섬이다.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데, 거리로는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여서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그래선지 여권을 들고 출국심사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영 얼떨떨하다. 그래도 외국은 외국이라 면세 쇼핑의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엔 양손에 바리바리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뱃삯만 내면 되니 부산 사람들은 면세 쇼핑을 위한 당일치기 대마도 여행을 자주 한단다. 멀미약을 입에 털어 넣고 꾸벅꾸벅 졸았더니 금세 도착이다. 배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이 민망할 정도로 금방이다. 거리 분위기는 영락없는 일본 시골마을인데, 가는 곳마다 온통 한국어 표지판이라 한국 같기도 하다. 식당과 호텔 직원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한국말을 구사하고, 주요 관광지마다 있는 조그마한 커피트럭에서는 한국 돈으로 값을 치를 수 있을 정도다. 알고 보니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마도를 찾는 여행객의 95%가 한국인이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한 해 대마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은 10만명 이상. 사실 오늘날 대마도가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로 개발된 것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도발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의 대마도 전공 박사이기도 한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대마도 여행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독도 앞바다에 찾아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운동을 수십 번 하다가, 그냥 놔둬도 우리 땅인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독도를 사수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1997년,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한국 땅’이란 슬로건을 들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 14명과 대마도로 갔다. 당시엔 부산-대마도 뱃길이 없었기 때문에 후쿠오카를 경유해 가야 했다. 4박 5일 일정 동안 배를 탄 시간만 왕복 42시간. 첫 순례 이후 부산의 선사들을 찾아가 부산-대마도 직항 운항을 적극 권유했고 마침내 1999년 부산-대마도 뱃길이 생겼다. 지금은 발해투어 말고도 많은 여행사들이 대마도 여행 상품을 팔고 있고, 낚시·캠핑·등산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번 여행에선 대마도 여행길을 처음 열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황백현 박사와 함께 대마도에 남겨진 우리 역사의 흔적을 훑었다. 대마도는 실제로 우리 땅이었다 솔직히 대마도를 가기 전까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말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관심했고 무지해서였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우리 조상들이 대마도에 남긴 수많은 흔적들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황백현 박사는 그의 저서 <대마도 통치사統治史>와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문화재>를 통해 대마도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기록들을 세세히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일본 천태종 승려 현진이 1197년에 집필한 <산가요약기>에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며,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듬해인 1420년 대마도 8대 도주島主가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대마도 사람들을 조선에 의탁한다”는 문서와 함께 대마도를 조선에 바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켰으니 앞으로 모든 보고와 문의는 반드시 경상도를 통해 하도록 하라”는 답서를 보냈고 그때부터 대마도는 공식적인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황 박사는 ‘대마도’와 ‘쓰시마’라는 이름도 우리말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에 말馬이 없었던 2세기에 ‘말 마馬’자가 들어가는 ‘대마도對馬島·말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섬’라는 지명이 생길 수 있었던 건, 고대부터 말을 키우던 우리나라에서 붙여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쓰시마’라는 이름 또한 ‘두 섬Tu-Sem’이라는 한국어 발음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대마도에서 1,500년 전 백제 사람이 심은 은행나무를 만났다. 나이로는 일본에서 첫 번째, 크기(높이 23m, 둘레 12.5m)로는 두 번째다. 본래는 ‘백제 은행나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몇 해 전 일본이 그중 ‘백제’라는 말을 삭제했다고 한다. 일본은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쓴 안내판도 새로 설치했다. 이 은행나무는 1789년 벼락을 맞아 나무속이 불타기도 했고, 1950년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은행나무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 역사를 잊지 말자.’ 대마도의 생명줄이었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200년 동안 겨우 12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한 번 일본을 오가는 데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렸고, 매번 300~5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였다는 걸 생각하면 적은 횟수가 아니다. 이 조선통신사의 길을 연 것이 대마도다. 평지가 없고 땅이 척박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공급 받아 먹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조선과 교역이 끊기자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됐다. 당시 대마도 도주였던 소宗 요시토시義智는 국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일본 막부와 조선 왕실의 외교 회복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렇게 성사된 조선통신사는, 말하자면 대마도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였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치는 기항지였다. 한양에서 출발한 일행은 부산을 거쳐 대마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수로와 육로를 이용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갔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조선 왕실에서는 통신사의 출발일이 결정되면 관리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궁으로 불러 어사주를 내렸고, 그날 밤에는 영의정이 남대문 밖에서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출발 전날엔 마포나루터에 통신사 일행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송별연을 가졌고, 부산에 도착하면 무사왕복 기원제를 올렸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그 숙소에는 조선의 학문과 예술을 전수받으려는 일본 문인들과 유학도들이 몰려들었다. 조선 선비들의 한시漢詩 한 수를 보물처럼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한류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 대마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다.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이즈하라에는 지금도 그 역사를 기억하는 ‘조선국통신사의 비朝鮮國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다. 그 앞의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는 길이 16.58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소장되어 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마쓰리’ 축제도 개최된다. 친일의 기록과 항일의 흔적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어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과거 이즈하라에는 한국어 학교가 두 개나 있었다. 먼저 1727년 세워진 한어사韓語司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던 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던 곳이다. 3년 동안 하루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듣고 매달 월말고사를 치렀던, 속된 말로 ‘빡센’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일본인들은 조선 선비들보다 한글을 더 잘 썼다는데, 당시 조선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하며 잘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어사 건물은 지금도 개인주택으로 대마도에 남아 있다. 한어사에서 불과 200m 거리에 1872년 세워진 한어학소韓語學所는 설립 취지가 불순했다.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한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통역비서로 일했다. 고쿠분 쇼타로는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과 한일 합병문 초안을 작성하는 일까지 맡았고, 조선총독부 인사국장을 거쳐 내부차관까지 지냈다. 그런 사람이 죽자 통탄해 하면서 묘비명을 쓴 사람이 바로 매국노 이완용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꼽혔던 이완용은 그 묘비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쓰다侯爵 李完用 書’라고 자랑스레 새겼다. 스스로가 매국노라는 증명을 길이길이 남긴 셈이다. 이 묘비를 황백현 박사가 대마도에서 2007년 발굴했고 3년 동안 다수의 서예가들과 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이완용의 필체임을 밝혀냈다. 한국에는 없는 이완용의 매국 증거물이 대마도 땅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런 친일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대마도에는 항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즈하라의 절 ‘슈젠지修善寺’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선봉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과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선생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대마도 감금 3년 형을 받고 이송당하면서도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며 양쪽 짚신 바닥에 고국의 흙을 한줌씩 담아 신고 갔다고 한다. 결국 “원수가 주는 끼니로 몸과 입을 더럽힐 수 없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대마도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슈젠지는 최익현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장례를 치른 곳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부산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전망대다. 일제강점기 대마도에 잡혀 온 우리 선조들은 명절만 되면 이곳에 올라 바다 건너 고향땅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설움을 달랬다 한다. 그 자리에 1997년 한국에서 공수한 자재를 이용해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을 본뜬 모양으로 이 전망대를 지은 것이다. 찬 바닷바람이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는 한국전망대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되겠다고. *이토 히로부미 |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죽었다. 조선 마지막 황녀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기울어 가는 국가의 왕녀로 태어나 불운한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대마도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마도에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있다. ‘결혼 봉축’이라고 하니 축복받은 결혼인 건가 싶었는데, 그 반대였다. 덕혜옹주는 19살이던 193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인 ‘소宗 다케유키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시댁이 대마도였던 셈인데, 결혼식은 도쿄에서 올렸고 덕혜옹주가 대마도를 찾은 건 결혼한 해에 단 한 번 인사차 방문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연고로 대마도에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세워지게 됐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61세 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으려 7살 때 약혼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은 덕혜옹주를 13살 때 도쿄로 강제 유학을 보내 고종황제와 떼어 놓았다. 덕혜옹주는 식민지의 공주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질환까지 얻게 됐다. 일본은 그런 덕혜옹주를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완전히 하나의 국가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조선 통치 정책’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과 결혼시켰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 역시 갖은 차별 대우와 따돌림을 당하다 어머니처럼 정신질환을 얻었다. 결국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써 놓고 실종되었다. 그 일 이후 덕혜옹주의 우울증과 몽유병은 날로 더 악화되었다. 1955년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이혼했고,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외롭게 수감되었다. 그 사실을 조선일보 기자가 폭로해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귀국시킴으로써 마침내 덕혜옹주는 고국에 돌아왔다. 7년간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宗伯爵家結婚奉祝記念碑’라고 쓰여 덩그러니 놓인 회색 비석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맺혔다. 탄생부터 결혼, 출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축복받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의 인생. 그와 너무나 상반되는 ‘결혼 봉축’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 삶을 더 기구하게 비추는 듯했다. 때마침 흩날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꼭 덕혜옹주의 눈물 같아 더 속상했다. *대마도 도주島主 | 오랜 세월 대마도를 지배했던 ‘소宗’가家는 에도시대 이전까지 도주였고, 이후에는 번주藩主가 되어 대마도의 모든 것을 통치한 지방 토착세력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조선의 교류 재개에 노력을 기울여 조선통신사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를 영접하는 등의 임무도 수행함으로써 당시 일본 막부와 조선 모두에게 공을 인정받았다. ▶travel info 대마도 FERRY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대마도 히타카츠항, 이즈하라항을 연결하는 쾌속선이 매일 운항된다. 히타카츠까지는 1시간 10분,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다수의 페리회사가 부산-대마도 노선을 하루에도 수차례 운항하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Shopping대마도 대형마트 티아라 쇼핑몰 대마도 이즈하라에는 대형마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티아라 쇼핑몰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는 큼지막한 한국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마트에는 일본 본토에서 만날 수 있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이 모두 들어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PLACE5,000엔 화폐 속 여인의 사랑 나카라이 도스이 기념관 대마도 이즈하라 태생 소설가이자 기자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기념관이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5,000엔 화폐 속 인물인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문학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한국말에 능통했고,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뒤에는 <춘향전>을 번역해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히구치 이치요는 1891년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를 찾아가 소설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히구치 이치요는 20살, 나카라이 도스이는 32살이었다. 히구치 이치요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키재기>, 창부들의 삶을 그린 <흐린 강>,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나 때문에> <매미> 등 작품들을 쏟아내고 25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도스이를 연모한 그녀의 마음은 사후 발표된 일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마도판 하롱베이 에보시다케 전망대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는 아소만의 수많은 섬이 펼쳐진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7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들쑥날쑥한 해양 지형이 특징인 아소만은 진주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전망대는 석양과 일출이 아름다워 연말연시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오키나와를 닮은 해변 미우다 해수욕장‘일본 해수욕장 100선’에 속하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마치 오키나와의 해변인 듯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낸다. 물이 맑아 물고기, 성게 등 해양 생물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하기 좋다. 근처엔 캠핑장도 있어 여름철엔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캠핑과 해수욕을 하러 찾아온다. Food대마도 도주가 좋아했던 간식 카스마키‘대마도 명물’이란 별명이 붙은 카스마키는 달콤한 팥소를 카스테라로 돌돌 만 것이다. 대마도 도주가 특히 좋아했던 간식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리로 유명한 일본답게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대마도 여행 중 간식으로 먹거나 선물용으로 사 가기에 좋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발해투어 051-253-588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공기업 사람들 정부법무공단] 정부법무공단 누가 이끄나

    [공기업 사람들 정부법무공단] 정부법무공단 누가 이끄나

    고영석 실장, 판사 출신 변호사실 중추 최상철 실장, 검사 출신의 조세 전문가 서규영-행정법, 길진오-국방 ‘에이스’ 정부법무공단은 국가가 소송을 벌일 때 이를 지원, 국가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8년 2월 설립됐다. 구체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등으로부터 위임받은 각종 국가·행정·민사소송을 수행하고 조정과 중재에도 나선다. 또 국가기관에 대한 법률 자문과 입법 지원, 각종 계약체결 지원 등을 수행한다. 국가 등으로부터 의뢰받은 연구용역이나 국가송무제도에 대한 조사·연구도 도맡아 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전용 ‘로펌’인 셈이다. 정부법무공단이 수행한 소송사건은 2008년 377건에서 2015년 2072건으로 5배 이상 늘었다. 그동안 친일재산 환수, 약가 인하 사건 등에서 승소하는 등 정부 주요 정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도왔다. 금지금 부가가치세 면탈 사건에서 승소, 약 3조원의 국고 손실을 막기도 했다. 론스타펀드의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사건, 교통감시 카메라 입찰 담합 업체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 위스키 수입업체의 5000억원대 관세 부과 취소 사건 등도 대표적인 승소 사례로 꼽힌다. 박청수 이사장 산하에 변호사실과 기획홍보실, 경영지원국 등으로 이뤄져 있는 정부법무공단의 주요 간부들은 법원과 검찰의 ‘에이스’ 출신 변호사들이다. 정부법무공단의 핵심인 변호사실을 이끄는 고영석(56·연수원 16기) 실장은 서울고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인천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이후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를 맡다가 2014년부터 변호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상철(52·19기) 기획홍보실장은 변호사실 변호사 7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법무연수원 기획부 교수와 수원지검·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을 거쳐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를 역임했다. 조세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조민현(53·17기) 경영지원국장도 변호사 4팀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전주지법과 인천지법, 서울지법 등에서 판사로 일했다. 변호사1팀을 이끌고 있는 서규영(55·18기) 팀장은 서울지법 북부지원과 전주지법 등 판사를 거쳤다. 행정법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길진오(49·법무 10기) 변호사2팀장은 국방 분야 전문가다. 조달본부 주미군수무관실 법무담당관을 거쳐 육군 법무감실 법제과장,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 총괄법무관 등을 지냈다. 변호사3팀장인 이재형(46·37기) 변호사는 한국장기신용은행에서 근무한 ‘금융통’이다. 김경미(43·33기) 변호사5팀장은 건설교통부 법무지원팀 근무 경력도 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월드피플+] 2년 간 함께 일한 직장동료 알고 보니 친모

    무려 2년 동안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가 알고 보니 오랫동안 찾아 헤맨 친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 여성의 기막힌 사연이 이목을 끌고 있다. 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가족 찾기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여성 제니 토마스(40)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토마스가 출연한 미국 방송사 TLC의 TV 프로그램 ‘롱 로스트 패밀리’는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시리즈 기획물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토마스는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무려 15년간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만으로 어머니의 소재를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고, 끝내 TV 방송의 힘을 빌려 그녀를 찾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기다림 끝에 제작진이 건네준 어머니의 사진을 직접 본 토마스는 그러나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에는 약 10년 전 무려 2년 동안이나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 주 로체스터 병원에 시간제 간병인으로 취직했던 토마스는 환자 이송 담당자였던 니타 발데즈와 하루에도 수 시간에 걸쳐 함께 일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모친일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토마스는 당시 발데즈와 업무적으로는 밀접한 관계를 잘 유지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친일 수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토마스에게 있어 발데즈는 그저 ‘내 농담에 항상 웃어주는’ 친절한 동료에 불과했다. “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저 사람이 왜 날 쳐다볼까? 혹시 저 사람이 우리 어머니인 것일까?’라는 생각에 수없이 빠졌었다”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지난 세월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제작진이 건넨) 사진을 봤을 땐 말 그대로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며 비로소 어머니의 정체를 알게 됐던 순간의 심정을 전했다. 발데즈의 아버지, 즉 토마스의 외할아버지는 딸이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수치로 여겼고, 발데즈가 출산을 한 뒤에도 전혀 양육을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발데즈는 혼자의 힘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에 부쳐 그녀를 복지시설에 넘기고 말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는 6일 방송을 통해 더욱 상세히 소개될 예정이다. 사진=ⓒTLC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조희연 “친일인명사전 구매 강요 안 해”

    서울 297개 중·고 “자율권 침해” 반발市교육청 “예산 반납하면 수용할 것”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두고 사립학교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사전을 구매하지 않은 학교가 예산을 반납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당초 구매를 거부한 학교에 대해 감사 계획까지 내비쳤던 것과 비교하면 한발 물러난 셈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4일 “조희연 교육감이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거부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굳이 구매를 강요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 지침에 따라 사업예산을 돌려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침에 따르면 목적 사업예산 중 집행 잔액이 10만원 미만이면 반납하지 않고 학교운영비로 사용하고, 10만원 이상이면 시교육청에 반납해야 한다. 시교육청은 서울시의회가 편성한 친일인명사전 구매 예산을 지난달 초 서울시내 583개 중·고교에 학교당 30만원씩 내려보냈다. 시교육청의 태도 변화는 친일인명사전을 두고 교육부가 “심의 절차를 준수했는지 확인하라”고 재차 명령을 한 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사립학교가 집단 반발을 하고 나선 데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사립중고교장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학교를 더는 이념 논란의 장으로 만들지 말고 사전의 구매와 이용에 관한 결정을 학교의 자율에 맡겨 달라”고 요구했다. 성명에는 서울시내 312개 사립 중·고교의 95%인 297개교가 참여했다. 서울디지텍고를 비롯해 현재까지 모두 4개 사립학교가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방침을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거부한 교장을 소환하려던 시의회 역시 시교육청을 통해 반납 학교에 대한 소명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독립운동가 고문한 노덕술 다룬 ‘대한민국 악인열전’ 나와

    독립운동가 고문한 노덕술 다룬 ‘대한민국 악인열전’ 나와

    한국 현대사에서 악행을 저지른 인물에 대한 역사책 ‘대한민국 악인열전’이 출간됐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해 진행한 뉴스펀딩 기획‘ 광복 70년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기초로 기자 임종금씨가 엮은 책이다. 책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노덕술씨, 일본 국회의원이 된 깡패 출신 친일파 박춘금, 어린학생을 고문한 친일헌병 신상묵 등 9명를 써내려갔다. 저자 임종금 씨는 “한국근현대사는 무수한 사람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단죄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며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친일과 학살, 고문 등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씨는 “상상을 뛰어넘는 악행을 역사의 법정에 세운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1981년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서 태어난 저자는 2011년부터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께 일했던 그녀가 그토록 찾아헤맨 엄마라니…

    함께 일했던 그녀가 그토록 찾아헤맨 엄마라니…

    함께 일했던 동료가 알고보니 그토록 찾아 헤맨 어머니였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 한 여성이 공개돼 화제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30일(현지시간) 가족 찾기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인 여성 제니 토마스(40)의 사연을 소개했다. 토마스가 출연한 미 방송사 TLC의 TV 프로그램 ‘롱 로스트 패밀리’는 오래 전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기획 시리즈.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토마스는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본인의 능력만으로 어머니의 소재를 알아낼 수 없었고, 끝내 방송의 힘을 빌려 찾으려 했던 것이다. 토마스는 기다림 끝에 제작진이 건네준 어머니 사진을 직접 보자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에는 10년 전쯤 무려 2년 동안이나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 당시 뉴욕주(州) 로체스터병원에 시간제 간병인으로 취직했던 토마스는 환자 이송 담당자였던 니타 발데즈와 하루에도 수시간에 걸쳐 함께 일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친일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토마스는 당시 발데즈와 업무적으로는 밀접한 관계를 잘 유지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친일 수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토마스에게 있어 발데즈는 그저 ‘내 농담에 항상 웃어주는’ 친절한 동료에 불과했다. 그녀는 “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저 사람이 왜 날 쳐다볼까? 혹시 저 사람이 우리 어머니인 것일까?’라는 생각에 수없이 빠졌었다”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지난 세월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제작진이 건넨) 사진을 봤을 땐 말 그대로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며 비로소 어머니의 정체를 알게 됐던 순간의 심정을 전했다. 발데즈의 아버지, 즉 토마스의 외할아버지는 딸이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수치로 여겼고, 발데즈가 출산을 한 뒤에도 전혀 양육을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발데즈는 혼자의 힘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에 부쳐 그녀를 복지시설에 넘기고 말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TLC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사립학교법이 비리 사학 지나치게 보호”

    “사립학교법이 비리 사학 지나치게 보호”

    “내부 고발 없으면 적발 어려워” …9월까지 135곳 전면 실태조사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월 감사 지적 사항을 시정하지 않은 학교법인 동구학원에 대해 8억 9675만원의 시설사업비 지원을 유보했다. 하지만 동구학원은 여전히 지적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소방·화재 관련 시설 등 긴급 시설사업비 3500만원만 지급된 채 1년째 지원금이 묶여 있다. 동구학원에서는 올 1월 1억 5000만원의 횡령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동구학원의 비리가 드러난 것은 내부 비리를 고발한 안종훈 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 교사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취소 결정으로 학교에 복귀했지만 동구학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직위 해제를 당했다. 시교육청이 올 하반기부터 사학법인에 대한 상시 운영평가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것은 동구학원의 사례처럼 내부 고발자가 아니면 사학법인의 비리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평가를 해 상시 감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시교육청은 오는 7~9월 전체 137개 사학법인 중 학교 미설치 법인 2개를 제외한 135개 법인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도 할 예정이다. 시교육청 차원에서 법인 전체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시교육청은 ▲재산 운용 ▲부채 규모 ▲법정부담금 납부 현황 ▲법인 운영 등 4가지 항목을 우선 서면으로 조사한다. 이 결과를 본 뒤 필요하면 현장 조사와 행정지도를 하기로 했다. 사학법인에 대한 운영 평가와 전체 실태 조사 등 시교육청이 사학법인에 대한 ‘강공’을 펼치는 이유는 지금의 사립학교법이 비리 사학법인까지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동구학원, 영훈학원, 충암학원, 숭실학원 등 일부 사학법인의 행태는 도가 지나친 측면이 있다”며 “사학법인이 사학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은 방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올 초 오륜교회에 법인이 인수된 영훈중의 경우 해당 사학법인인 영훈학원이 보유한 수익용 기본재산은 모두 29억원이었다. 여기에서 학교 설립으로 발생한 부채 10억원과 미납금 14억원을 제외하면 재산이 5억원에 불과했다. 시교육청이 정한 사학의 수익용 기본재산 기준액 95억 6000만원의 5%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운영평가제 도입에 대해 최근 친일인명사전 예산 집행을 거부한 서울디지텍고와 자율형사립고 평가 등을 놓고 시교육청과 맞서 온 사학법인 등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된다. 한 사학법인 관계자는 “시교육청이 사학법인의 자율성을 해치고 부당한 요구나 간섭을 할 때는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단독] 친일인명사전 거부 학교 서울시교육청 감사 검토

    서울디지텍고가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거부한 데 이어 다른 10개 중·고교도 친일인명사전 구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서울시교육청이 이 학교들에 대해 감사를 검토 중이다. 서울시의회도 해당학교 교장에 대해 의회 출석을 요구키로 하는 등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29일 “친일인명사전 예산은 서울시의회가 편성해 사용하도록 한 특수목적 경비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지시불이행에 해당될 수 있다”면서 “경위를 따져 학교의 소명이 미흡하면 감사를 통해서라도 거부 경위 등이 적절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이날 친일인명사전 구매 예산 교부는 시의회가 예산을 편성한 특수목적성 사업으로, 일반 도서 구매와 달라 학교도서관진흥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교육부에 보냈다. 앞서 지난 11일 교육부는 “친일인명사전은 특정 단체에서 발간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다”며 “학교에 예산을 지급한 부분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법령에 근거한 절차를 준수했는지 조사해 29일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시교육청에 보낸 바 있다. 시교육청이 ‘감사’라는 강수를 검토하는 것은 친일인명사전 구매 거부 의사를 밝힌 학교가 갈수록 늘어나는 등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지난 2일 583개 관내 중·고교에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3권짜리 한 질을 사도록 각각 30만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서울디지텍고가 이 예산을 시교육청에 반납하기로 한 데 이어 10개 중·고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예산을 편성한 서울시의회는 해당 학교장들에 대한 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시의회 김문수 교육위원장은 “여야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결한 목적사업비를 집행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보겠다”며 “국·공립학교 교장은 공무원 신분으로 의회가 출석요구를 하면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에서 도서를 구입할 경우 학교도서관진흥법에 따라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등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단독] 친일인명사전 거부 학교 서울시교육청 감사 검토

    서울디지텍고가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거부한 데 이어 다른 10개 중·고교도 친일인명사전 구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서울시교육청이 이 학교들에 대해 감사를 검토 중이다. 서울시의회도 해당학교 교장에 대해 의회 출석을 요구키로 하는 등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29일 “친일인명사전 예산은 서울시의회가 편성해 사용하도록 한 특수목적 경비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지시불이행에 해당될 수 있다”면서 “경위를 따져 학교의 소명이 미흡하면 감사를 통해서라도 거부 경위 등이 적절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이날 친일인명사전 구매 예산 교부는 시의회가 예산을 편성한 특수목적성 사업으로, 일반 도서 구매와 달라 학교도서관진흥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교육부에 보냈다. 앞서 지난 11일 교육부는 “친일인명사전은 특정 단체에서 발간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다”며 “학교에 예산을 지급한 부분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법령에 근거한 절차를 준수했는지 조사해 29일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시교육청에 보낸 바 있다. 시교육청이 ‘감사’라는 강수를 검토하는 것은 친일인명사전 구매 거부 의사를 밝힌 학교가 갈수록 늘어나는 등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지난 2일 583개 관내 중·고교에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3권짜리 한 질을 사도록 각각 30만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서울디지텍고가 이 예산을 시교육청에 반납하기로 한 데 이어 10개 중·고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예산을 편성한 서울시의회는 해당 학교장들에 대한 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시의회 김문수 교육위원장은 “여야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결한 목적사업비를 집행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보겠다”며 “국·공립학교 교장은 공무원 신분으로 의회가 출석요구를 하면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에서 도서를 구입할 경우 학교도서관진흥법에 따라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등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전개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전개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교육위원장 김문수)는 2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를 개최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1994년부터 작업하여 2009년 11월 출간한 인명사전으로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찬양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한국인들을 정리・분류하여 수록한 책이다. 이 사전에는 1905년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의 주요 행적이 담겨 있다. 이날 행사와 관련하여 김문수 교육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북2)은 “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취지는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며 가슴깊이 기억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 2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심의관이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고, 위안부는 조작된 것이며 위안부가 20만명에 달한다는 것도 착각에 따른 오류이고,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개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일본이 아직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필요성이 큼을 역설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에는 조약체결 등 매국 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 등의 민족반역자(반민족행위자)와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서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된 자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지식인 문화예술인과 같은 부일협력자가 수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시민들께 바로 알림으로써 국권침탈시기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고, 최근 위안부 졸속 합의의 문제점 등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고취시켜 일본의 참된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이번 범국민운동을 3.1절부터 8.15 광복절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누구나 1인 1명씩 4,389명이 참여하는 친일인명사전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에 국민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참여방법과 관련해, 김문수 교육위원장은 4,389명의 참여자와 대상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김문수 교육위원장 블로그(blog.daum.net/soomoonjang2, log.naver.com/soomoonjang2)와 SNS, 이메일(soomoonjang2@naver.com ), 팩스(02-3705-1451~2), 우편(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15 서울특별시의회 의원회관 6층 교육전문위원실)로 신청을 받고 이름을 게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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