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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선엽 장군이 극우논객 지만원에 90도 인사? 주목받는 과거 인연

    백선엽 장군이 극우논객 지만원에 90도 인사? 주목받는 과거 인연

    지씨, 백 장군이 ‘존경표했다’ 주장“5·18 시각에 100% 동감한다”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둘러싼 사후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과거 백 장군이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며 ‘90도로 인사를 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확인돼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지씨는 2013년 12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 ‘백선엽 대장님께 감히 건의 드립니다’라는 제목을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2003년 6월 서울 삼각지 육군회관에서 열린 장군 친목모임에 참석해 백 장군을 만났다며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 얼굴이 그 유명하신 백선엽 대장님 얼굴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회고했다. 당시 테이블에는 백 장군과 지씨를 포함해 8명이 앉았고 동석했던 박경석 장군(예비역 준장)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소개했다고 한다. 지씨는 글에 “저를 소개하는 순간 백선엽 장군의 눈빛이 빛났습니다. ‘잠깐, 저기 저분이 지만원 박사요?’ 했습니다. 박경석 장군이 ‘예 제가 가장 사랑하는 지만원 박사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백선엽 대장께서 갑자기 일어서시더니, 제게 허리를 90도 굽히셨습니다”라고 썼다. 지씨에 따르면 백 장군은 이 자리에서 “지 박사님, 당신을 존경합니다. 지 박사님의 5.18 시각에 대해 저는 100% 동감입니다. 그런데 저는 용기가 없었고, 지박사님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지씨는 5·18민주화운동을 ‘북한특수군 소행’이라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인터넷 칼럼과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5·18 40주년인 지난 18일에는 국립현충원에서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폭동이다. 누가 일으켰느냐. 김대중 졸개하고 북한 간첩하고 함께 해서 일으켰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씨 주장대로 백 장군이 “5·18 시각에 대해 저는 100% 동감”이라고 말했다면 백 장군은 ‘북한군 소행설’, ‘폭동설’ 등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된다.그러나 지씨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씨의 글에서 자신을 백 장군에게 소개했다는 박 장군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씨가 자꾸 5·18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해 소리를 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육사 2기인 박 장군은 육사 22기인 지씨와는 선후배 관계로 만나왔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지씨가 5·18 북한군 소행설을 주장하자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박 장군은 5·18 직후 전두환 정권의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했다가 군복을 벗은 인물이다. 백 장군은 5·18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한편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여권 일각에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을 거론하며 사후 서울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회고와 반성’ 세미나에서 백 장군이 “낙동강 전선 방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면서 “그분의 공적을 따질 것 같으면, 대한민국 존립을 위해서 참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것 같으면, 그와 같은 (장지) 논란은 참 부질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박원순 “전단 살포, 北 좋아할 리 있나…더 큰 평화 해쳐”

    박원순 “전단 살포, 北 좋아할 리 있나…더 큰 평화 해쳐”

    백선엽 논란엔 “친일, 확실하게 청산해야”“이재명과 협력하고 있는데 싸움 부추겨”박원순 서울시장은 9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전단 살포를 막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라면 그런 행태(전단 살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박 시장은 “북한 인권 문제 지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이 판에 전단을 살포한다면 북한 정권 당국 입장에서 좋아할 리가 있겠나”라며 “남북관계 평화라는 더 큰 것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독일이나 핀란드-러시아 관계에서 보면 국가 이익을 위해서 언론이나 국민이 자제한 사례가 많다”라고도 했다. 박 시장은 “남북관계는 산이 아니라 산맥을 넘는 일”이라며 “새 질서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최근 여러 작은 이슈로 어려운 상황이다.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고 꾸준히 서로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독립군을 토벌한 만주군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과 6·25전쟁 수훈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문제에 대해서는 “친일은 확실하게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친일 요소가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독립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가를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전 국민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는 잘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여권 대선 후보 간 경쟁’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라며 “깊이 있는 토론과 논의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 경쟁과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도 “이 지사와는 코로나19 내내 수도권 방역 파트너로 손발을 맞춰 협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협력해야 하는데 자꾸 싸움을 부추기시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지사가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자 박 시장은 그보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필요하며 더 정의롭다고 반박하고 나선 상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씨줄날줄] 비운의 홍범도 장군/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운의 홍범도 장군/오일만 논설위원

    1919년 8월 대한독립군이 처음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1910년 일제 병탄 후 절치부심하던 항일 무장세력의 첫 국내 진공작전으로 기록됐다. 대한독립군은 갑산과 혜산진 등 국경에 주둔한 일본군을 타격했고 그해 10월엔 압록강 너머 만포진과 강계까지 진출했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장군은 이듬해 6월 7일 중국 지린성 봉오동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 정규군을 섬멸했다. ‘하늘을 나는 장군’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홍범도 평전’의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 중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김원봉, 셋째가 김구”라고 기술했다.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많이 싸우고 또 가장 많이 이긴 독립투사가 바로 홍범도다’. 도올 김용옥도 “독립무장투쟁 당시 일본을 떨게 만든 이순신과 같은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포수 출신인 그는 구한말인 1895년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07년 정미의병으로 유인석 휘하에서 본격적으로 항일전에 가담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음에도 ‘홍범도’란 이름 석 자가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친일파를 등용했던 이승만 정권은 물론 연장선상에 있던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에서도 그를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이나 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처럼 러시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라는 것이 이유였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에 가려 무시당했고, 남한에서는 반공의 잣대로 폄훼됐다. 장군은 말년에도 비참했다. 1922년 일제의 막후공작으로 소련 지역의 항일무장 투쟁단체가 해산되면서 연해주로 쫓겨갔다가 75세에 카자흐스탄의 극장 경비원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가족사는 더 비극적이다. 첫 아내(이옥구)는 홍 장군의 행방을 좇던 일본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장남 홍양순은 아버지와 함께 싸웠던 정평배기 전투에서 전사했다. 차남 홍용환도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결핵으로 죽었다. 당시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은 이런 고초 끝에 생을 마쳤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간도 토벌대에 가담해 홍범도 같은 독립군들을 체포, 살해했던 친일파들이 대대손손 떵떵거리고 사는 작금의 현실이 비통하기도 하다. 지난 7일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이번은 반드시 성사시켜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세워지길 기대한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읽으며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읽으며

    지난 주말 내내 초여름 더위를 견디며 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읽었다. 작품에 흠뻑 몰입하다가도, 때때로 깊은 상념에 빠져 몇 번이나 우두커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이 땅의 현대사를 통과한 인간 군상, 그들의 의기, 저항, 헌신, 일상, 마음, 굴종, 배신, 죽음, 상처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의 현안과 지나간 시대의 역사를 주도면밀하게 탐사하는 노작가 황석영의 문학을 향한 남다른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도원 삼대’를 탐독하면서 소설이 당대의 중대한 의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지나온 역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주요한 수단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가 단지 계몽적 차원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결국 조직이란 모든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였다”는 표현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이일철·이이철 형제-이지산-이진오로 이어지는 사대에 이르는 가족사의 애환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철도의 근대적 이식 과정, 철도원과 그 가족의 일상, 경성 콤그룹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시대의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 그에 이어진 해방 직후 영등포 지역의 노동운동, 독서회 조직, 밀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진행된다. 이 땅의 근현대, 그 무수한 학살과 죽음, 탄압과 고문의 역사는 여전히 형상화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철도원 삼대’는 여실히 보여 준다. 그 상처와 비극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스토리텔러의 집요한 정념과 의지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꾸준한 역사 공부, 현대사를 통과한 다양한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이 신선한 주제의 소설을 낳는 계기임을 환기한다. 가령 철도원을 주요 인물로 배치한 이야기 구성도 흥미롭거니와 밀정을 둘러싼 스토리는 역사와 연계된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민감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식민지 시절 내내 묵묵히 철도원 업무에만 전념하던 일철이 해방 후 영등포 철도노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역사의 한복판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 가을에는 KBS에 의해 밀정 혐의자 900여명의 명단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가의 다양한 마음만큼이나 갖가지 사연과 행적을 담은 수많은 밀정 스토리도 가능하겠다. 단지 밀정을 단죄하는 구도에서 더 나아가, 그들의 내면과 음산한 욕망까지도 치밀하게 형상화하는 서사가 필요하다. 역사 연구의 진전만큼 문학도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철도원 삼대’에서 다뤄진 밀정과 친일 경찰에 대한 묘사는 작가 황석영이 이 땅의 현대사에 던지는 뼈아픈 질문과 진단의 소산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한 ‘철도원 삼대’에는 작가 사인이 인쇄돼 있다.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줌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노동운동가 진오는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라고 되묻는다. 소설에는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고 적혀 있다. 이즈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주제들, 가령 진보적 운동단체의 성과와 한계, 밀정을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그늘, 일본과의 관계 설정 등의 민감한 논점을 마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와 작품의 전언대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 앞으로 계속될 삶을 위해 지식사회가 이런 의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야 한다. ‘철도원 삼대’는 그런 부탁을 하는 작가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소설이자 역사와 정치를 품은 문학의 고유한 힘을 느끼게 만든 문제작이다. 모처럼 마음의 근육을 긴장하게 만든 독서였다.
  • 文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 여권 일각 ‘진영논리’와는 시각차 드러내

    文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 여권 일각 ‘진영논리’와는 시각차 드러내

    사태 방관 비판 속 사회적 갈등 우려 위안부 운동 ‘흠집’ 시도에도 경고“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고, 제가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하며, 숭고한 뜻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지난달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공론화된 뒤 입장을 밝히지 않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 달여 만에 침묵을 깬 배경에는 이번 논란이 진영대결 구도로 빨려들면서 이 할머니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의연) 양측을 향한 혐오·증오의 폭발로 이어지는 데 대한 깊은 우려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청와대는 사태를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불필요하게 논란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하지만 최근 정의연 마포쉼터(평화의 우리집) 소장이 목숨을 끊는 등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30년 위안부 운동의 진실은 다층적임에도 정치권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 할머니와 정의연 중 일방을 옹호하는 프레임 속에 폭로와 음모가 난무하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면서도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라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행태를 되돌아볼 계기’로 규정하고, 시민단체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정의연과 윤 의원에 대한 비판을 친일세력과 등치시키며 방어에 나선 여권 일각의 진영논리와는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다. 그간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의 상징인 이 할머니가 ‘2차 가해’를 당하고 운동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운동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에 대한 경고와 함께 시민단체의 변화를 촉구하고, 제도적으로도 강제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안철수 “여권, 자신만의 색깔로 ‘미래’ 색칠…5년짜리 역사 쓰나”

    안철수 “여권, 자신만의 색깔로 ‘미래’ 색칠…5년짜리 역사 쓰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8일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의 현충원 안장 논란에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합당한 예우를 주장했다. 총선 이후 수적 우세에 있는 슈퍼여당을 견제하기 위한 주요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보수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행보로 읽힌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백선엽 장군과 홍범도 장군을 거론하며 “홍 장군이 일제와 맞서 싸운 영웅이라면 백 장군도 공산세력과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이라며 “역사를 정치투쟁의 도구나 미래를 독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대표는 “여권 일부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그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하고, 그런 왜곡된 평가를 바탕으로 미래를 자신들만의 색깔로 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에 맞춰 어떤 경우는 공만 남기고 과는 없애고, 어떤 경우는 공은 없애고 과만 남긴 역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5년짜리 역사, 아니 2년 후에 번복될 역사를 쓰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특히 ‘친일파 파묘 법안’ 제정을 추진하는 김병기·이수진 의원을 겨냥해 “현대사를 자신의 주관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면 국민 화합의 기제가 아니라, 갈등의 씨앗이 된다”고도 말했다. 또한 정부가 지난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 참석자에 천안함 폭침과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도발 관련 유족과 생존자를 제외했다가 뒤늦게 포함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두고는 “보훈처의 실수인지, 청와대의 지시인지를 가리기 전에 그런 상식 이하의 일이 현 정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21대 국회에서 6·25 전쟁 참전 용사들과 참전 국가들에 대해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감사결의안을 모든 원내 정당들이 함께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안 대표는 이날 6월 호국보훈의달을 맞아 강원 화천 서오지리 208고지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지를 방문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서울광장] 뉴라이트와 일본 극우세력/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뉴라이트와 일본 극우세력/오일만 논설위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파문 이후 숨죽이던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군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심지어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뉴라이트의 핵심이자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 전 교수 등을 비롯한 다양한 친일 단체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위안부업은 기존 공창제에서 비롯됐고 여인들의 의지와 선택에 따른 소영업”이라는 주장을 폈다. 한 술 더 떠 ‘일본군에 의해서 통제된 위안소라는 점은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일본 극우의 주장까지 답습한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교학사 교과서, 국정 교과서 등을 주도했지만 지나친 친일·독재 미화와 함량 미달로 폐기처분됐다. 학문적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뉴라이트 세력이 고개를 드는 근본적 이유는 식민사관에 있다. 해방 후 식민사관을 청산하지 못한 업보인 셈이다.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등용은 경찰·관료·군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역사학계도 식민사관의 제조기였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다. 이들은 교육부 장관·학술원장 등의 권력을 통해 소위 ‘이병도·신석호 사단’을 만들어 냈고 현재까지 역사학계 주류세력의 뿌리가 됐다. 식민사관은 주지하다시피 일본 군국주의의 조선 침략과 영구 지배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역사의 날조다. 쓰다 소기치 등 어용학자들이 한민족의 공간과 시간을 축소해 타율성과 정체성의 굴레를 씌웠다. 한마디로 ‘식민지배를 받아 마땅한 민족’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런 식민사관은 현재까지도 고대사를 중심으로 횡행한다. 존 카터 코벨(1910∼1996) 박사의 좌절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태생으로 서양인 최초로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하와이 주립대에서 동양 미술사를 가르쳤던 인물이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혔던 그녀는 연구 도중 일본에서 발굴되는 고대 유물 대부분이 한국에 뿌리를 뒀다는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됐다. 1978년부터 10여년간 한국에서 직접 현지답사를 하며 연구에 매진했고 이를 토대로 일제의 ‘임나일본부설’을 뒤집는 학설을 발표했다. 바로 “가야 부여족이 서기 369년 일본으로 건너가 왜를 정벌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내용이다. 일본 학계가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코벨 박사의 주장이 허구라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그들이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임나=가야’의 기본 전제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역사학은 본질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새롭게 발전하는 학문임에도 다른 학설을 가차없이 사이비와 이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겠다는, 위험한 시각이다. 코벨 박사는 다수의 저서를 남겼는데 “일본이 한국에 가한 최악의 잘못은 한국문화를 말살해서 한국인 스스로 과거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든 것”이라고 기록했다. 한 가지 더 “한국 학자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 코벨 박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재도 식민사관 2.0 버전이 버젓이 활개를 친다. 식민사관이 실증주의 사학이란 명패만 바꿔 단 것이다. 식민사관을 매개로 한일 극우세력들의 연대가 강화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아베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 직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제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표를 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가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 후지키 ?이치의 금전적 지원(항공비와 체류비)을 받고 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증언은 섬뜩하다. 그는 ‘신친일파’란 저서를 통해 “일본 극우세력은 신친일파를 양성하고 있고, 그들의 입을 빌려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증언은 더 구체적이다. “극우단체인 사사카와재단 등은 한국의 학자들에게 고액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어떤 한국 학자는 일본 정부나 공안, 보수단체의 초청으로 1년에 30번 정도 일본을 가는데 사례비로 한 회당 500만~1000만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역사는 민족의 뿌리이자 혼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극우의 역사 분식이 자행되는 이 시점에도 식민사관의 잔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친일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임무는 막중하다.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굴욕의 역사를 가르쳐선 안 될 일이다. oilman@seoul.co.kr
  • 군인권센터 “현충원에 친일군인 56명”…명단엔 박정희도

    군인권센터 “현충원에 친일군인 56명”…명단엔 박정희도

    해방 후 국군에 임관… 46명 장군 진급“강제징용 아닌 적극 복무 파묘·이장해야” 군 관련 인권단체인 군인권센터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에 친일 군인 56명이 묻혀 있다”며 파묘와 이장을 요구했다. 4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은 총 56명으로, 이 가운데 일본군 영관급 중역만 11명이다. 영관급 11명 중 국군의 대령에 해당하는 대좌, 상교까지 오른 자도 3명이나 된다.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해 군인권센터가 이날 발표한 친일 군인 56명의 명단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정렬·정일권 전 국무총리, 신태영·유재흥·이종찬·임충식 전 국방부장관 등이 포함됐다.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 56명 중 32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24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이들 중 20명은 일본군, 36명은 만주군이며 만주군 중 14명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들 56명은 해방 후 모두 국군에 임관됐다. 이들 가운데 육군이 46명, 공군이 5명, 해병대가 5명으로 56명 중 46명이 최종적으로 장군까지 진급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일본과 만주국에서 정식으로 군사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군인권센터는 “이들이 일본에서 받은 훈장이 7개, 만주국에서 받은 훈장·기장이 16개인 것으로 미뤄보아 이들은 식민지 조선인으로 일본에 끌려가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에 복무한 사람들”이라면서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이른 시일 안에 이들 묘지를 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목포문화연대, 일제 잔재 단죄비 건립 추진

    목포문화연대, 일제 잔재 단죄비 건립 추진

    목포문화연대가 광복 75주년을 맞아 목포의 일제 잔재 단죄비 건립를 추진한다. 목포의 유달동과 만호동은 일제의 수탈과 착취, 만행, 민족의 고통 현장이라 할 만큼 친일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역사의 대표적 현장들은 교육기관으로는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국가등록문화재 제30호), 정신적 착취인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국가등록문화재 제340호)과 목포 정광 정혜원(국가등록문화재 제696호) 등이 있다. 경제적 수탈 기관인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 일본인 권익보호와 외교의 심장부인 구 목포 일본영사관(사적 제289호), 적산가옥 300여채 등이 즐비하다.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목포역사관 2관), 1900년에 건립한 구 일본영사관(목포역사관 1관), 적산가옥 등의 일본 잔재가 주 핵심 관광지로 개발돼 목포의 상징적 근대문화유산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목포문화연대는 “목포사람들의 저항정신과 역사는 소외된 채 일본 수탈의 현장들이 대표 관광자원으로 부각되고, 친일 잔재에 대한 청산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같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더 이상 간과 할 수 없어 단죄비를 건립하기로 했다”며 “단죄문도 점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목포문화연대는 ‘친일 청산 단죄비 건립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이 수탈한 치욕의 현장 답사(다크 투어리즘) 등의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공동대표는 “역사를 잊은 목포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시는 일본 잔재에 대한 전면적인 전수조사와 친일잔재 청산 및 활용 방안에 대해 단계적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한국 수학사 확립 일등공신 김용운 교수 별세

    한국 수학사 확립 일등공신 김용운 교수 별세

    한국 수학사 확립의 일등 공신이자 역사, 문명 비평 등 광범위한 학문 활동을 펼친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가 지난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2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김 전 교수는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미국 어번대 대학원, 캐나다 앨버타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1969년 한양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1993년까지 후학을 길렀다. 1983년 한국수학사학회를 만들어 국내 수학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약 150권에 이르는 저서를 남겼다. 1977년 간행된 ‘한국 수학사’는 무수한 판형 변화를 거듭해 현재까지 출간되는 고전으로 꼽힌다. 일본어로 펴낸 책도 20여권이다. ‘중국 수학사’, ‘나라의 힘은 수학 수준에 비례한다’ 등 수학 서적은 물론 1994년 학습지 브랜드 웅진씽크빅의 출발이 된 학습지 ‘웅진용운수학’을 개발하기도 했다. 철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어 세계 문명사를 다룬 ‘역사의 역습’과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한국인과 일본인’, ‘풍수화’ 등 한중일 문명 비평서를 여러 권 냈다. 특히 1989년 펴낸 ‘일본의 몰락’은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를 예측해 큰 파장을 낳았다. 그러나 2015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실리 외교를 주장하며 “위안부 소녀상이 부끄럽다”고 발언해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인은 일본어를 비롯해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를 쓴 그는 지난 25일 나온 마지막 저서를 받아 본 뒤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유족으로는 김호중 한양대 의대 명예교수와 김영숙 청주대 명예교수, 일본에 사는 한의사 김희중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일 오전 7시 30분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사설] 민주당, ‘과거사 올인’ 말고 노동현장 살펴라

    더불어민주당 중진의원인 설훈 최고위원이 그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상조사가 미진한 게 너무 많다”며 KAL858기 폭파사건 재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1987년 11월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건은 이미 여러 차례의 수사 및 조사, 진상조사 등을 통해 북한 공작원인 김현희씨 소행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가정보원 진실조사위원회도 강도 높은 조사 끝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설 최고위원은 ‘전두환 정권의 파워가 작용했을 것’이라며 2007년 진상조사 결과까지 부정하고 있다. 여권은 최근 ‘한만호 비망록’의 언론 보도를 계기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 재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민주당 이수진 당선자는 친일파들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파묘(破墓)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에서 177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슈퍼여당이 힘의 논리로 그동안 못마땅했던 과거 수사와 재판을 모두 뒤집겠다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눈에는 여당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 대신 정치적으로 지지세력의 응집력을 키우는 과거사에 올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총선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코로나19 극복과 경제위기 타개에 매진하라는 일종의 ‘주마가편’ 성격이 짙다. 과거의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정치적 한풀이’에 나서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일에는 경중이 있으니 우선순위를 가려야 한다.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이나 KAL858기 희생자 유족들의 해원, 친일파 청산 등은 중요한 일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타개 등과 같은 국난극복보다 앞선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현재 재난은 모두가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인식할 때만이 극복할 수 있는 ‘잔인한 바이러스’가 목표이다. 여론이 갈라진다면 효과적인 방역은 불가하다. ‘위험의 외주화’ 종식을 위해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20대 젊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산재사망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같은 엄혹한 노동현장의 개선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난 22일에도 경기 용인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했고, 같은 날 경기 광주 하남산업단지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26세 노동자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숨졌다. 매년 산재로 1500명 넘게 사망한다. 정부여당이 코로나 방역을 하듯 산재예방에 나선다면 제2, 제3의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의 사망을 막을 수 있다. 민주당은 슈퍼여당의 막강한 힘을 좀더 효과적으로 쓰길 바란다. 내일은 ‘구의역 김군’이 산재사망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 [책 속 한줄]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유산/이순녀 선임기자

    [책 속 한줄]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유산/이순녀 선임기자

    1930년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친일파는 계속 늘어났다. 심지어는 3·1 만세 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까지 친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전형필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족의 문화를 지키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독립운동이라는 생각을 다잡았다.(218쪽) 스물네 살 청년이 물려받은 재산은 막대했다. 800만평 논에서 나오는 한 해 수입이 기와집 150채 값이었다. 일제 강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시대. 전형필은 스승 고희동과 위창 오세창, 외종 형 월탄 박종화의 조언에 따라 민족의 예술혼이 응집된 문화재 수집에 전 재산을 바쳤다. 문화독립운동 유산은 그의 호를 딴 간송미술관에 오롯이 남았다. 수천점 간송 컬렉션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금동불상 2점이 오늘(27일)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는다. 재정난 때문이라니 안타깝다. 이충렬이 쓴 ‘간송 전형필’(김영사)을 다시 읽는다. coral@seoul.co.kr
  • 경기도의회 친일잔재청산 특위 일제잔재 청산추진 정담회 개최

    경기도의회 친일잔재청산 특위 일제잔재 청산추진 정담회 개최

    경기도의회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위원장 김경호)는 26일 지속적인 일제잔재의 청산 추진을 위해 관계기관 정담회를 개최했다. 정담회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수행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 연구용역’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도 문화종무과와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의 일제잔재 청산 추진경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민 일상생활과 경기도 내 학교 내에 잔존하고 있는 일제잔재 청산의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는 정담회를 통해 향후 청소년, 교직원 등 도민의 공감대 속에서 일상 속의 일제잔재를 발굴·청산하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며 도와 도교육청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일제잔재의 청산은 사실의 기록과 기억에서 출발한다”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문제인 일제잔재 청산작업이 지속적인 실천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민과 소통하며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는 도내에 남아있는 친일잔재 청산의 방향과 범위를 설정하고 원활한 청산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9년 11월 5일 구성됐으며 올해 11월 4일까지 활동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서울포토]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

    [서울포토]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

    24일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최,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주제로 열린 현충원 탐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5.24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우리, 자격을 갖고 있나/최여경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우리, 자격을 갖고 있나/최여경 문화부장

    프랑스에 사는 사촌언니는 현지 친구들에게 필자를 소개할 때마다 유독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10대에 파리에 정착한 언니는 프랑스 공인교사로 현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친다. 대단한 이력을 가진 언니가, 기자 동생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건 프랑스에서 기자는 정부와 사회가 권위를 인정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인기관 중엔 기자증발급위원회(CCIJP)가 있다. 1936년에 발족한 기관은 1~2년마다 기자 심사를 한다. 심사를 받으려면 언론사 재직서류, 월급명세서 1년치, 최근 3개월간 쓴 기사 등 준비할 서류도 많다. 정부 비판 기사를 썼다고 심사에서 떨어지진 않는다. 심각한 오보를 냈거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면 당연히 자격 박탈이다. 2019년 현재 3만 2000여명이 기자증을 갖고 있다. 이러니 기자와 기사에 대한 신뢰도 높다. 서너 살 아이들이 가는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이용 신문과 잡지를 교육 교재로 쓴다. 초등학교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신문 논조를 분석하는 리터러시(Literacy) 수업이 있다. 온라인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중이 높아지지만 여전히 가판대에는 신문·잡지가 그득하다. 2015년 1월 파리에서 일어난 만평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취재했다. 현장에 아이들과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데려온 이유를 묻자 한결같이 말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다.” 우린 그만 한 책임감을 갖고 있나.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나. 적어도 부끄럽지는 말자고 다짐하지만, 씁쓸한 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올해 창간 100년을 맞은 한 일간지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과거 오보를 바로잡으면서 갖은 생색을 내고 있다. “최대한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지만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고 고백하면서. 이해 못할 대목은 아니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에 확인 즉시 ‘바로잡는다’는 공지를 내고 정정보도까지 한다. 그런데 그 신문이 보도한 1986년 11월 17일 ‘김일성 총 맞아 피살’, 2004년 1월 12일 “검찰 두 번은 갈아마셨겠지만”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 2013년 8월 29일 ‘김정은 연인 현송월 공개 총살’ 등을 언급한다면? 많은 이들은 ‘실수’보다는 ‘의도’를 읽는다. 그 신문은 최근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낸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를 두고 “‘문빠’ 지지층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처럼 “진보 지식인의 ‘진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원래 책은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강조한다. 3장에서 ‘어용 지식인 유시민’, 진보 성향 신문의 절독 운동 등을 꼬집는다. 책을 읽었다면 강 교수의 말이 다소 불편하긴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일부만 발췌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책이 왜곡된 데 답답증을 느낀 출판사 편집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조목조목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기사의 생명은 객관적인 정보다. 의도를 주입하거나 가르치려는 오만을 부려서는 안 된다. 건설적인 비판을 두고 진영 분열이나 와해 프레임에 가두는 것도 옳지 않다. 정의기억연대, 나눔의집 등의 논란 역시 반일·친일,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평안을 중심에 두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 스토니브룩대 리터러시 센터장인 하워드 슈나이더의 말로 갈음한다. “언론인인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의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해서 주장이나 의견을 제공한다. 정보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단순 의견인지,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인생에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cyk@seoul.co.kr
  • [문소영 칼럼] 윤미향 의혹, 진영 논리로 돌파해선 안 된다

    [문소영 칼럼] 윤미향 의혹, 진영 논리로 돌파해선 안 된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둘러싼 의혹이 4급 태풍 수준으로 몰아친다. 사건이 시작되면서 ‘주변인들과 또 불화하겠구나’ 하고 예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공세”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윤미향 구하기’에 나섰다. 시비를 가리기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진영의 정서가 여전히 만연한 탓이다. 일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인권 운동가가 지난 7일 대구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전 이사장이었던 윤 당선자에게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면서 “성금을 할머니들에게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을 때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순간 ‘치매인가’ 우려를 속으로 삭였는데, 놀랍게도 이 우려를 입 밖으로 낸 사람은 윤 당선자였다. 그는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며 발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정대협의 후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해명은 구체적 서류로 증명하기를 원하는 이에게는 늘 하나 마나 한 것이었다. 초기 의혹은 단순한 회계의 부적절성이나 윤 당선자 딸의 미국 유학자금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횡령과 배임, 불법적 행위 의혹으로 확대됐다. 특히 국고보조금 13억원 중 8억원이 공시에서 누락됐고 사회적기업 마리몬드가 위안부 배지를 팔아 기부한 6억여원 중 약 5억원이 공시에서 누락됐으니, 정의연은 모두 13억원 이상의 행방을 밝혀야 한다. 쉼터들도 논란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2012년 8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자며 10억원을 지정기탁해 ‘안성쉼터’가 마련됐다. 문제는 ‘안성쉼터’의 매입가격이 당시 시세보다 2~3배 비쌌고 팔 때는 더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고급으로 지어져 비싸게 산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높은 가격에 거래한 것처럼 ‘업계약서’를 썼을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온다. 무엇보다 ‘안성쉼터’의 주인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 시설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윤 당선자의 아버지를 관리인으로 앉혔다니 ‘NGO 족벌경영’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왜 안성쉼터였을까’ 하는 의문은 명성교회가 2012년 1월 15억원의 기부약정을 했다는 사실로 일부 해소된다. 현대중공업보다 7개월 앞서 서울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정대협이 2011년 개관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으니 할머니들의 접근성도 좋은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최근 이용수 활동가는 ‘안성쉼터’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쉼터의 건립과 운영·관리에서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아예 소외시켰나 싶다. 윤 당선자는 1990년부터 실무자로 정신대 인권 회복에 천착한 활동가이지만, 이용수를 포함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역시 정대협의 열렬한 활동가다. ‘할머니’라 부르며 그들이 인권 운동가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은 아닌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고발하지 않았다면,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에 그들이 없었더라면, 정대협의 세 확산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 일각에서 일제의 반인권적인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정대협의 30년 활동을 마치 윤 당선자만의 공로인 양 부각한다면 부적절하다. 대구발 고발로 16년 전인 2004년 1월 심미자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이 제기한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라는 성명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성명은 “정대협이 성금을 거두지만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할머니를 앵벌이로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했다. 그때 주목했더라면, 2020년 5월 윤 당선자를 둘러싼 수십억원대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혹의 증폭 속에 이용수 할머니와 윤 당선자가 지난 19일 대구서 만났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이 현재 불거진 의혹을 어설프게 봉합하는 계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밝힐 건 밝혀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용수는 인권 운동가에,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이다. 그러니 “기억이 달라졌다”며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고발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시민단체 등은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 감사를 받지 않았다. 감사를 빌미로 한 탄압이라고 주장해 온 탓이다. 시대가 바뀌어 진보진영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여당의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으로 발탁되는 시대다. 탄압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깔끔하게 감사를 받고, 대의적 활동을 하길 바란다. 개인계좌로 기부금을 받는 관행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symun@seoul.co.kr
  •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52% “피해자 문제 해결 중요역할 못해” “수요집회, 계속될 필요 없다” 48% 응답 기존 시위 방식 사회적 논의 필요 방증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더불어 누구도 함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성역’에 해당했다.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참사는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있는데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체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고발’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된 까닭이다. 20일 서울신문이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 우리리서치와 공동 진행한 정의연 논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당 이슈에 대해 28.9%는 ‘매우 잘 안다’, 52.8%는 ‘조금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81.6%가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표명한 셈이다. 여성(77.5%)보다는 남성(85.8%)이, 연령별로는 40대(87.7%)와 50대(86.6%)가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권역별로는 서울(89.3%) 거주자의 인지도가 평균을 웃돌았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85.0%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43.4%는 ‘외부 수사기관의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정의연의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정의연 성금 사용처와 관련해 절반이 넘는 52.5%는 ‘생존한 위한부 할머니의 복지에 주로 사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생존자 복지와 인권운동 병행’ 방식에 대해서는 30.6%만이 동의했다. 인권운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답변은 16.1%에 그쳤다.이날 144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48.4%는 ‘더 이상 시위 형태로 계속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에 조금 못 미친 43.8%였다. 수요집회 등 기존 위안부 피해자 운동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논란을 반영하듯 정의연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았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의 활동에 대해 절반을 조금 넘는 51.9%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8.9%,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3.0%였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응답은 40.4%였다. 정의연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진보와 보수 등 이념 문제와 친일, 민족 문제로 다뤄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56.7%는 ‘부정적’, 23.6%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관련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연 논란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60.0%는 ‘신뢰한다’, 34.2%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진영의 공격’이라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정의연 전 이사장)의 주장에 국민 여론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가 마녀사냥식 ‘묻지마 보도’를 이어가는 일부 언론을 겨냥해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편가르기 등이 우리를 위해 기여할 것은 없다’고 지적한 데 대해 77.5%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3.4%에 불과했다. 후원금 유용과 회계 부정 등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은 해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75.3%가 ‘공익법인을 통합 관리할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도 비슷한 취지로 읽힌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어떻게 조사됐나 이번 조사는 전국 20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설문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5% 포인트다. 서울신문과 설문을 공동 기획한 공공의 창은 이번 조사를 수행한 우리리서치 외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회사가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론조사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2016년에 만들어졌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52% “피해자 문제 해결 중요역할 못해” “수요집회, 계속될 필요 없다” 48% 응답 기존 시위 방식 사회적 논의 필요 방증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더불어 누구도 함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성역’에 해당했다.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참사는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있는데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체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고발’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된 까닭이다. 20일 서울신문이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 우리리서치와 공동 진행한 정의연 논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당 이슈에 대해 28.9%는 ‘매우 잘 안다’, 52.8%는 ‘조금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81.6%가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표명한 셈이다. 여성(77.5%)보다는 남성(85.8%)이, 연령별로는 40대(87.7%)와 50대(86.6%)가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권역별로는 서울(89.3%) 거주자의 인지도가 평균을 웃돌았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85.0%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43.4%는 ‘외부 수사기관의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정의연의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정의연 성금 사용처와 관련해 절반이 넘는 52.5%는 ‘생존한 위한부 할머니의 복지에 주로 사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생존자 복지와 인권운동 병행’ 방식에 대해서는 30.6%만이 동의했다. 인권운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답변은 16.1%에 그쳤다.이날 144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48.4%는 ‘더 이상 시위 형태로 계속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에 조금 못 미친 43.8%였다. 수요집회 등 기존 위안부 피해자 운동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논란을 반영하듯 정의연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았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의 활동에 대해 절반을 조금 넘는 51.9%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8.9%,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3.0%였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응답은 40.4%였다. 정의연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진보와 보수 등 이념 문제와 친일, 민족 문제로 다뤄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56.7%는 ‘부정적’, 23.6%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관련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연 논란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60.0%는 ‘신뢰한다’, 34.2%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진영의 공격’이라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정의연 전 이사장)의 주장에 국민 여론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가 마녀사냥식 ‘묻지마 보도’를 이어가는 일부 언론을 겨냥해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편가르기 등이 우리를 위해 기여할 것은 없다’고 지적한 데 대해 77.5%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3.4%에 불과했다. 후원금 유용과 회계 부정 등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은 해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75.3%가 ‘공익법인을 통합 관리할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도 비슷한 취지로 읽힌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어떻게 조사됐나 이번 조사는 전국 20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설문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5% 포인트다. 서울신문과 설문을 공동 기획한 공공의창은 리서치뷰·리얼미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한국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소상공인연구소·DP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회사가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론조사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2016년에 만들어졌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 박지원 “윤미향, 말 바꿔 의혹 증폭…민주 오늘·내일 결단할 듯”

    박지원 “윤미향, 말 바꿔 의혹 증폭…민주 오늘·내일 결단할 듯”

    “이용수 할머니 자체가 친일은 아니지 않나”“‘이낙연, 엄중하게 보고 있다’…방향 잡혀”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19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의혹과 관련해 “윤 당선인이 자꾸 언론에 나와 이 말 저 말 변명하며 말을 바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용수 할머니 자체가 친일은 아니지 않나. 문제의 발단은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이기 때문에 사실을 투명하게 밝힐 수 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들도 처음에는 30년의 노력과 봉사에 대해서 높이 평가를 하고 같은 동료 의원으로서 옹호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도 했다. 박 의원은 “당내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오늘이나 내일 사이 결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낙연 전 총리가 어제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미 방향이 잡혔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검찰에서 사실을 밝히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이 스스로 사퇴해야 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본인이 사퇴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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