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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이세기의 인물탐구:37)

    ◎민속춤 발굴을 평생의 업으로/30년동안 전국 돌며 잊혀져 가는 농악·굿 채록/진도 씻김굿 등 재현… 24개춤 문화재 선정 기여/양반춤 어깻짓도 일품… 요즘 「최승희무용」 재평가작업 몰두 상모달린 전립과 전복을 입고 세마치장단인 왼삼채와 덩더궁이로 농악패가 동네를 휘돌기 시작하면 온몸에 뜨거운 피가 솟구치면서 두둥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무용평론가 정병호씨는 어릴 때부터 농악대 리더인 열두발 채상돌리기 상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천하지대본의 기를 앞세우고 쇠꾼이 추는 부들상모놀이며 장고잡이들의 설장고춤,북을 멘 북잡이들의 설북놀이와 상모쓴 버꾸잡이들의 채상놀이,징과 꽹과리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빠지다보면 자신도 농악의 한 패거리가 되어 지치도록 신명을 낸 기분이다.실제로 그는 부모 몰래 옷자락 펄럭이며 추는 무동의 꽃사비춤을 출만큼 농악과 굿에 홀려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전국의 굿판이나 농악판에는 그가 나타나지 않는 자리가 없다. 전남 영광의 풍년굿인 칠월꽃대림굿·농사굿·메굿과 여수에서 한참 들어가는 여천 백초리 가장농악,진도 소포리 마을농악,부여에서만 볼 수 있는 은산별신제며 충북 옥천 마티(마치)마을 부락제,경기도 도당굿,통영 오구새남굿,진도 도깨비굿,강릉·양주·횡성·예천·남원등등 굽이굽이 누비고 다닌다. 민속춤을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현장조사를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지난 30년동안 최남단 도서지방에서 각도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춤이 있는 곳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예인 기질 타고나 현장에 가서 하나의 굿을 보고 유래를 더듬거나 채록하려면 춤꾼들에게 술을 대접하거나 사례비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춤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너름새가 크고 어깻짓이 일품인 그의 양반춤·한량춤은 그곳 토박이 춤꾼들을 한눈에 매혹하여 춤과 춤이 어우러져 흥청거리는 한밤을 지샌다. 평소에 점잖고 근엄하기만한 대학교수로서 그의 일면에 그런 한량기질·예인기질은 어쩌면 타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서민층에서만 추어지던 병신춤이며 곱사춤 발탈과 휘겡이춤도 냉대받고 천대받던 것을 그가 발굴해서 정립해놓은 춤이다. 농악이나 굿은 마을전체가 축제분위기로 어울리는 협동춤이라면 병신춤이나 곱사춤은 신분이 다른 계층에 대한 익살과 풍자,서민의 애환과 해학을 담아 지난날의 시대상과 지역의 풍습을 꾸밈없이 반영하고 있다. 병신춤만해도 처음은 허튼춤으로 시작하여 턱붙인 곱사춤,엉덩이 빠진 곱사춤,안팎 곱사춤,문둥이 곱사춤,절룸발이 곱사춤으로 이어지고 곰배팔이와 오리발 흉내등 명연기가 곁들여져 인간의 진한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도 바로 그가 발굴해낸 인기 연희자다. 78년4월 전라도 정읍에서 남의 집 잔치에 불려다니던 공옥진을 서울에 데려다가 처음엔 그녀가 묵고 있던 종로 청진여관 옥상에서 몇사람에게 병신춤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자그마한 공옥진은 손과 발을 오그려뜨린 괴상한 춤사위를 다양하게 선보였고 이 연희는 그가 회장으로 있던 전통무용연구회 주최로 공간사랑에서 한달간 공연되어 민속예술분야로서는 최장기록을 세울만큼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그다음은 울진·강릉·주문진·삼척등 주로 해안지역을 따라 오귀굿·용굿으로 대를 잇고 있는 김석출을 소개,이는 70여명의 무인을 배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세습무가로 지금도 30여명의 무인을 이끌고 풍어제를 위한 미포별신굿을 보존케 하고 있다. 그외에도 목포출신으로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며 정착치 못하고 있던 호남승무·살풀이춤의 이매방의 YMCA강당 공연을 주선,무형문화재 지정에 앞장섰고 밀양 백중놀이와 덧배기춤의 하보경옹,진도 씻김굿의 박병천,필봉농악 양승룡,이동안옹의 태평무와 발탈도 그가 발굴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케이스다. 조금도 늦추지 않고 민속춤에 대한 연구와 발굴에 정열을 쏟는 한편 마을춤의 복원과 대중화를 실천해나가면서 최근에는 몽골등 동북아 무용의 비교로 한국춤 원류찾기,친일파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 40여년간 어둠속에 묻혀버린 최승희의 삶과 예술에 손대고 있다. ○나주 부농의 종손 전남 나주 산정동 대지 3천평이 넘는 「산정밑에」로 유명한 대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는 집에서 피아노와 첼로·아코디언을 배울만큼 부족함이 없는 밝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피아노보다는 집안 머슴들과 이뤄진 농악팀에 합류하기를 즐겨 엄격한 부친에게 걸핏하면 매맞고 갇히기 일쑤,집안에서 쫓겨나기가 다반사였다. 부친 정홍봉씨는 호남지방에서 알아주는 토호의 종손에다 시대에 앞장서는 인텔리로 일찍이 서울에 유학하여 휘문고와 서울대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시인 이상과는 서울공대 동기동창생이다. 전남 제일의 방직회사인 종방 대표이사로 있다가 6·25후 광주공업고와 여수고 교장을 지낸 교육자. 그러고보니 4남2녀중 집안을 이어갈 장남이 춤과 꽹과리장단에 미친 모습은 가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어쩌다 저런 것이 우리 집안에 태어났나』 『엉뚱하게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느냐』는 노발대발이 그치지 않았고 어머니 김수순여사는 이런 아들을 부군에게 감추고 빌기 위해 한숨과 눈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부친에게 반발하는 기분으로 농악이며 굿판에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43년 광주극장에서 공연된 최승희의 무용발표회를 본 것이 춤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계기가 돼버렸다. 그때도 집에서 돈을 주지 않아 아끼던 아코디언을 전당포에 잡혀 무용발표회 입장권을 샀다. 『이세상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예인이 있었던가』 온통 넋을 빼앗긴 채 천하의 개인을 한번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고교를 졸업하자 서울에 뛰쳐올라왔고 지금 명동 YWCA자리에 있던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당시 현대무용의 선두주자이던 한귀봉씨에게 현재 극작가로 활약하는 차범석,「춤」지 발행인 조동화와 함께 춤을 배우면서 최승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서울음대에 입학 한편으로는 서울대음대에 적을 두고 전봉초씨에게 첼로를 배우다가 6·25후 고향에 내려가 다시 조선대를 졸업.춤추기보다 무용평론과 이론으로 돌게 된다. 그는 반짝이는 다재다능으로 악보 없이 쇼팽의 마주르카 원무곡을 칠 수 있는 피아노 솜씨를 지녔으나 고향의 머슴방에 드나들며 두들기던 꽹과리소리를 잊지 못했고 가슴을 후비듯 스치는 마을의 신들린 축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문예진흥원이 사라져가는 민속무용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는 그가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그때부터 전국을 누비며 징과 꽹과리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순간 움츠렸던 영혼이 잠을 깬듯 온몸에 활기와 생기가 솟구쳤다.어디선가 굿판이 벌어진다는 정보에 따라 좇아가기도 하지만 현장에 가서 소문을 듣고 즉흥적으로 탐사를 떠나기도 한다. 민속학자 임동권씨는 『아마 그가 하지 않았다면 농촌의 현대화 물결에 밀려 우리만의 독특한 민속·무속춤이 그대로 소멸될 뻔했다』고 할 정도다. ○청정한 성품 지녀 특히나 「멀고 아득한 땅」이란 인식 때문에 조선조 유배지로 유명한 진도 씻김굿과 동네번영을 위한 도깨비굿,사람의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승화시키는 다시래기는 이 지방 특유의 것으로 50∼60년전부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그가 채록하여 보충해서 재현시킨 「작품」이다. 지난해 30년동안 몸담았던 중앙대를 정년퇴직하면서 그는 그가 10대때 흠모해 마지않던 세계적 무희 최승희무용의 재평가작업에 본격적으로 집착하여 일제시대 최승희의 라이벌이었던 영화배우 이향란(지금은 야마구치 도시코로 개명),최승희평전을 쓴 가바시오 사부로(고도웅삼낭)등 인터뷰된 사람만도 90여명.최근에 집필에 들어갔다.가족은 부인 서정구여사(61)와 아들형제.근면성실하고 예술에 대한 청정한 일념이 성품이다. 그처럼이나 춤을 만류하던 부친의 뜻대로 그는 무대에서 춤추는 대신 부친처럼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춤의 아름다움은 은은하고 고요한 가운데 맺고 어르면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무동작의 여백일뿐,무수한 선들과 숨막히는 정지가 바로 그의 몸부림에 끊임없이 명멸하고 있음을 그만은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전남 나주출생 ▲1946년 광주농업고졸업 ▲1946년 서울대음대입학(첼로전공) ▲1947년 조선교육무용연구소(현대무용가 한귀봉사사) ▲1955년 조선대 문이대 체육과(무용전공)졸업 ▲1961년 서라벌예대 무용과강사,고대출강 ▲1962년 서울대 대학원입학,서울대 사대강사,단국대체육과조교수 ▲1963년 중앙대무용과교수 ▲1964년부터 민속무,무속무 발굴 위한 현장답사 ▲1974년 중앙대 대학원졸업 ▲1976년 문화예술진흥원 무용교원 심사위원 ▲1977∼85년 전통무용연구회회장 ▲1978∼현재 민속학회 상임이사 ▲ 〃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 상임위원 ▲1981년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 ▲1989년 홍콩화교대학서 명예문학박사 ▲1992년 중앙대 정년퇴임 중앙대 명예교수 이대 숙대 세종대 한양대학원출강 문체부 문화재위원 시문화재위원 국립극장운영위원·무용분과 레퍼토리위원 진도씻김굿 밀양백중놀이 필봉농락 호남승무 이동안 태평무와발탈 진도다시래기 평택,강릉,이리농락 통영검무 영산재 통영사도놀음 송파답교놀이 김숙자살풀이춤 이매방살풀이춤등 24개 문화재지정을 위한 발굴조사 보고서 외 논문 250편,평론 1백여편 발표 「창작무용」(교육무용협회 69년)「세계의 민속무용」(교육도서 71년)「민속춤」(청림사 74년)「춤사위」(문예진흥원 81년)「한국춤」(열화당 85년)「농락」(열화당 86년)「한국민속춤」(삼성출판사 91년)「민속기행」(눈빛사 92년)일본어판 「한국□민속무용」(동경백제사 93년)등 16권 전라남도 문화상,한국무용협회 학술분야 문화대상,한국출판협회「올해의 책」(「한국춤」「농악」)선정
  • 세례명 되찾은 안중근의사/나윤도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21일 안중근의사(1879∼1910)추모미사에서 김수환추기경이 안의사를 천주교도로 복권시키는 강론을 함으로써 안의사는 사후 83년만에 「종교적 단죄」를 벗어나 「안토머스」라는 세례명을 되찾은 천주교신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날 미사에 앞서 개최된 「안중근의사의 신앙과 민족운동」 주제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은 한결같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한 안의사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당시 조선대교구장 뮈텔주교의 「살인죄」 단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안의사에 대한 종교적 복권은 때마침 이달의 문화인물로 정해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한창인 때여서 시의적절한 생각도 든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왜,이제서야…』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안의사 의거당시 국제적 관계와 또 1백년 박해기를 지나 찾아온 조선선교 기회를 잃지않으려는 의도에서 프랑스인 뮈텔주교가 살인죄로 단죄했던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그는 주교의 뜻을 거역하고 몰래 여순감옥으로가 안의사에게 마지막 성사를 준 빌렘신부도 성무집행정지에처할 정도로 단호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종교적 정치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얻은지 반백년이 되는 이 시점까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의사가 종교적으로는 「살인자」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은 종교차원을 떠나 우리 모두가 역사와 민족에 대해 얼마나 소홀히 해왔으며 껍데기 삶을 살아왔는가를 자성케 해준다. 한편 만시지탄으로 보이는 안의사의 복권도 천주교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단에서만 가능했던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전임 교구장의 결정을 후임자가 번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동안 한국천주교는 비공식적인 안의사 탄생1백주년 추모미사 거행등 사실상으로는 그를 위대한 교인으로 떠받들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교인으로 인정못하는 이중적 가치에서 고민해온 것이 사실이다. 김수환추기경은 안의사 의거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면서 『교회가 잘못한 것은 민족사 앞에 반성해야 한다』며 일제시 교회가 호교론에 치우쳐 일제의 침략에 동조하거나 호응했던 친일사실을 진지하게 시인하고 연대책임으로 참회해야한다는 단안을 내렸다. 최근 「친일불교론」「다시 써야할 한국기독교사」등 출판물을 통해 전체 종교계가 오욕의 역사 청산으로 거듭나기를 모색하고 있다.결국 문제는 민족과 종교의 문제로 귀착된다.더욱이 21세기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될것으로 전망된다.늦었어도 종교가 민족적 기반위에 서는 일에 용기를 낼 때다.
  • 선구자의 후손들/김재룡 칼럼니스트·제일증권 전무(굄돌)

    지난주 조국의 광복이 있은지 반세기만에 유해로 환국한 임정지도자 다섯분의 민족혼을 맞으면서 우리는 또한번 통한의 역사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그것은 그분 선열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의 환국을 이제서야 실현한 죄스러움이 그 하나요,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신의 영화를 버렸던 그분들이나 그 자손들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했나하는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해마다 광복절을 맞으면 달동네 단칸 세방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독립선열 후손들의 오늘의 처지를 목도하고 비분강개한 사람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청춘을 바치고 심지어 목숨을 바친 선구자들의 후손치고 지금 버젓이 잘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독립운동 하는 사람이 처자식을 제대로 돌보았을리가 없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 자녀가 출세를 할 수가 없을 것이며 그 자손 역시 열악한 조건에서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이들이야 말로 개인적으로는 조상 한번 잘둔(?)탓으로 대를 잇는 가난과 소외의 삶을 형벌처럼 받고 산 셈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친일 부역의 자손들은 선대가 일구워 놓은 경제력과 출세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여 남 가지 못하는 유학 다녀오고 그 손자들은 박사학위 받아 이 사회의 지배계층을 형성했으니 역사에서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 볼 일이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달을 도모했던 그 무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했다.그것이 바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바로 이 대목이 저 사악한 김일성정권에 비하여도 정통성에서 꿀렸던 이승만정권의 죄과이다. 그렇다면 독립투사들의 후손 만이라도 받들어서 그들이 이땅의 평균치 이상의 삶은 살아가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도 순국선열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이란 건국 이후 군경 상이용사와 그 자녀등 일반 보훈대상자로서 극빈생활자 정도의 생계비지급과 취업시 약간의 배려 정도인데,어찌 이것으로 우리가 할 바를 다 했다고 하겠는가.부끄러운 일이다.
  • 혜봉스님,「친일 불교론」 상·하 2권 펴내

    ◎일제하 불교계 친일행위 고발/「승려의 도성 출입금지」해제후 본격화/징용권장 논설 발표·군용기 5대 헌납 일제 치하 조선불교계의 친일행각을 낱낱이 파헤친 「친일불교론」 상·하(민족사간)가 나왔다. 임혜봉스님(46)이 일제하 불교간행물과 신문등 각종사료를 토대로 2년동안의 노력끝에 펴낸 이 책은 불교계는 물론 종교계 전체에 자성의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다.1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일제의 조선침략이 시작된 1876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조선불교계의 친일종적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했다.이어 5장은 이회광 이종욱 권상로 김태흡 등 친일 거두 승려 4인의 행적을,6장은 불교계의 창씨개명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불교의 친일은 1895년 일본승려 사노(좌야전려)의 건의로 조선왕조의 「승려들의 도성출입금지」 규정이 해제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이후 조선총독부는 1911년 사찰령을 반포,조선사찰을 30본사로 분할해 불교계의 힘을 분산시키고 본사와 말사의 주지 임명권을 총독에게 부여함으로써 종무행정과 불교재산은 물론 교리까지 철저히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불교의 친일행각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본격화돼 1941년에서 1945년에 이른 태평양전쟁때 정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당시 불교계 인사 30여명은 황도불교라는 말을 들먹이며 징병을 권장하는 논설을 171 편이나 발표했다.또 1942년에는 군용기 5대를 「조선불교호」로 이름붙여 일본군에 헌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임혜봉스님은 『이 책을 쓴 것은 개인에 대한 단죄보다는 한국불교는 물론 한국민 모두가 이같은 모멸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되겠다는 뜻』이라고 집필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책을 낸 민족사측은 『지난해 7월 이책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인물들의 후손이나 관련 인사들의 격렬한 항의와 위협으로 업무가 마비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발간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 문민시대의 광복 마흔여덟돌(사설)

    광복절 아침이다.마흔여덟돌이다.상해 임시정부요인 다섯분 선열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신지 닷새만이다.서른두해만에 참다운 문민정부가 세워진지 반년만이다.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옛 총독부건물과 한때 청와대본관으로 불리던 그 총독관저를 헐어버리기로 대통령이 결단하고 국민들이 합의한게 바로 엊그제이다. 다시한번 챙겨보는 이 일련의 새로운 일들로 하여 광복 48돌 아침은 새삼 감개가 짙지않을 수없다. ○미완성의 광복 48년전의 광복은 글자그대로 우리에게 빛을 복원해줬다.질곡과 압박에서 해방되었고 감겼던 눈이 틔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미완의 것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아직도 그것은 미완의 장으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지상의 환희였다.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국토의 단절과 민족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이윽고는 동족전쟁의 시련과 비극으로 연결됐다.광복의 오늘이 아직도 미완인 것은 그로 인한 것이었다.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부수고 판문점을 열어 민족을 한 띠로 묶는 과업으로부터 「광복의 완성」을 시작해야한다. 하긴 이 역시 쉬운일이 아니다.서울에서 판문점,평양까지 통일기원 인간띠잇기운동이 제의됐어도 저쪽은 외면이다.그러니 이제 미완의 광복은 북쪽 당국자들의 인간성회복과 그쪽 동포들의 인권회복으로부터 비롯돼야 할 것이다. 다시 서른두해만의 문민정부를 얘기할지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를 새삼 새기지 않을 수없다.온통 권위주의색채의 군사문화가 지배한 지난 30여년은 정권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항상 의문의 대상이었고 그에따라 민족의 정체성마저 회의를 느낄 지경이었다.문민정부가 값지고 소중한 것은 그런 끊임없던 의문과 회의가 주권자의 판단과 선택으로 완전히 해소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돌아오신 선렬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는 고국에 돌아오신 다섯분 선열들이 말없이 증언한다.그러나 그 어른들은 못난 후손들을 책망하기보다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할 것이다.선열들을 안장하면서 후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교훈을 새겨야 했는가.비록 때늦은 봉환이었고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이역땅에 누워있지만 국민들은 이번 임정요인의 봉환을 통해 이렇게들 합의했을 것이다. 첫째 임시정부의 연면하고 정당한 법통을 새 문민정부가 실질적으로 승계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정신과 법통성계승을 확인검증한 첫 가시적조처였다고 할수있다. 둘째로 민족정기와 자긍심을 바로 세우는 획기적 계기였다는 사실이다.일제하 국내외 독립투쟁에서,특히 임정요인들의 활약상은 얼마나 우뚝하고 찬연한 것이었던가.앞으로 완성될 광복사는 나라가 쇠했을때 이를 구하고자 감연히 일어서 싸웠고 죽어서도 죽지않고 민족의 정기로 살아남은 이 어른들에 의해 더욱 빛날 것이다. 다음으로 선열의 봉환은 과거 친일의 잔재를 일소하는 계기도 되었다는 점이다.나라를 빼앗겼음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광복후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며 살게했다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였으나 이들은 일제하에서 쌓은 배경으로 흔들림이 없었다.일제잔재 청산의 대상들인 것이다. ○다시 쓰는 현대사 지금은 국립묘지에 편히 잠드신 선열 박은식선생은 그 명저 「한국통사」의 서문에서 『국혼은 살아있다』고 썼고 그것은 이제 그의 비명의 한 구절이 되어있다.말그대로 국혼은 살아있어 분단속에서도 민족은 살아숨쉬고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문민정부는 살아움직인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광복현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과거의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던가』를 밝히는 작업은 역사학자의 본령만은 아니다.그것은 전 민족의 몫이어야 한다.지나간 근 50년동안 타의에 의한 광복을 자의에 의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우리에겐 역사에 대한 강요된 논리나 주장을 감연히 거부할 용기도 부족했다.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지적한바 「제2의 광복운동」으로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역사탐색으로서 「있었던 그대로」,「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실상을 찾아내어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일에 나서야한다.그리하여 국사를 비롯한 모든 교과서에 광복현대사 굽이굽이마다 왜곡되고 굴절된 민감한 부분을 새로 쓰고 이 사실과 함께 문민시대의 의미와 미래지향의 정신을 넓고 깊게 투영시켜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고 완성하는 길은 이 시대의 정신이기도 한 변화와 개혁의 성공을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통일을 성취하는 일 이외의 다른것이 아니다.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때 애국선열들이 시작한 광복운동은 비로소 대단원을 이루게될 것이다. 모든일의 성취가 결국 사람에 달렸다면 국권상실과 민족분단의 지난 세기를 민족번영과 통일의 새로운 세기로 바꾸는 책임 역시 국민에게 있다.그런 점에서도 2년후에 맞을 광복 50주년은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역정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어야한다.
  • 문민정부 첫 광복절에 생각한다(특별대담)

    ◎친일세력 축출이 정기회복 지름길/관료사회서 온존… 국가기강 확립 걸림돌/총독부 청사 철거 현정권 임기중 실현을/임정선열 5위 봉환 역사적 쾌거/문제있는 독립유공자 재심 절실/정신대문제 등 일제만행 규명… 사죄 꼭 받아내야 15일로 광복 마흔여덟돌을 맞았다.특히 문민정부 출범 첫해에 맞이한 광복절은 여느때보다 뜻깊다.상해임정 선열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구조선총독부청사,총독관저가 철거되는 등 일제의 잔재를 일소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작업이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문민정부가 처음으로 맞는 8·15 광복절의 역사적인 의미와 우리 민족이 풀어나가야 할 향후 과제를 좌담으로 정리해본다.이날 좌담회에는 김승곤광복회회장과 신용하서울대교수가 참석했다. □참석자 김승곤 광복회 회장 신용하 서울대 교수 ▲김회장=광복을 맞아 12년동안 항일운동을 하며 떠돌던 중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놀랍게도 친일파들의 권세가 여전하더군요. 더구나 극심한 좌우익 투쟁을 교묘히 이용해 친일파들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습니다.51년 광주의 한 신문사에 입사할 때도 독립운동사실을 숨겨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남북분단의 비극이나 순국선열들이 지금껏 이역을 떠돌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껏 관료사회를 쥐고 있던 이들 친일파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습니다.독립운동가들이 그동안 제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그만큼 우리 사회의 친일세력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 임정선열 5위의 봉환은 친일파들때문에 퇴색해버린 민족정기를 되살릴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또한 이를 통해 국가기강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신교수=우리 헌법 전문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 정책을 시행하는데는 문제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임정 요인의 유해 5위를 공식적으로 국내에 봉환한 것은 매우 획기적입니다.즉 민족의 정기를 학립하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전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독립정신을 계승 발전해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돋움,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요. 김영삼대통령이 그동안 논란속에서 미루어 왔던 구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토록 지시한 것은 확실한 용단이라 생각합니다.옛 총독관저의 철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문제는 김대통령의 민족정기 앙양의지와는 달리 일부 세력과 관료들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김회장=총독부 청사의 건립의도부터 생각해봅시다.우리 임금이 살던 경복궁안에 짓지 않았습니까.우리 민족의 맥을 끊기 위한 것이지요.창경궁에 동물원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총독부 건물은 일제의 상징입니다.해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철거됐어야 합니다. 물론 이승만대통령때부터 역대 정권들이 철거를 고려했었지요.그러나 지금껏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이는 행정부에 있는 친일수구세력들의 방해때문입니다. ▲신교수=조선총독부를 지을당시 일본의 건축전문가들은 남산이나 서울시청자리를 주장했습니다.그러나 당시 데라우치총독이 영구 통치를선언하는 의미에서 조선왕궁의 정궁인 근정전을 헐고 짓도록 했습니다.즉 일제가 한국 식민통치의 상징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를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것입니다.5000년 역사를 일제의 식민통치 상징에 넣어놓았으니 민족적 열등감을 「배양」시키고 일본인에게는 우월감을 조장해 왔습니다.5공때는 철거계획이 한때 검토됐으나 무산됐고 6공때도 연구됐지요.그러나 경비문제를 들고 나온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쳐 철거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관료들이 대통령을 속인 것입니다.뜯어다가 복원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게 반대이유이지만 이 건물은 복원가치가 없습니다.우리 고유의 유물도 아닌데 뭣때문에 복원합니까.정 아쉽다면 모형을 하나 만들어 독립기념관의 일제침략관내에 전시하면 그만이지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박물관의 이전시기입니다.정부에서는 2000년까지 완공한다고 발표했는데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97년까지 마쳐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막강한 수구세력에 의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회장=그렇습니다.김대통령 임기안에 이전해야 합니다.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친일세력들이 남아있습니다.김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이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며 이전에 반대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화제를 돌려 정신대문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최근 일본 연립정부가 우리 한국인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가 위안부로 이용한 사실을 인정한데 대해 마치 대단한 의미가 담긴 양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본정부가 사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정신대문제에 대해 강제성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을 놓고 우리 외무부가 『외교적으로 정신대문제는 청산됐다』고 밝힌 것은 성급한 것입니다. ▲신교수=동감입니다.새로 들어선 일본의 연립정부는 정신대문제와 관련해 전후청산차원이라며 「강제성」만을 인정했습니다.범죄행위에 대해 배상이나 사죄는 없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으며 일본에 휘말리는 우리의 외교정책은 자주외교 대등외교가 아니라고 봅니다.독일은 패전후 즉시 사죄하고 배상금을 물었는데 일본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김회장=정신대문제를 포함해 일제 만행에 대해 전반적인 진상규명과 일본의 전적인 사죄가 있어야 합니다. 가을로 예정된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에서는 분명한 답변을 일본정부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신교수=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은 물론 국제화시대의 대처라는 측면에서도 친일파들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시급합니다.민족의식이 소멸되면 강대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지요.이완용이가 나라를 판 대가인 은사금으로 사들인 땅을 증손이 나타나 법원에 제소,여러건 승소판결을 받았지요.이는 제2의 이완용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김구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잡으러 다니던 친일파에게 암살당하고도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건국직후 친일파들을 몰아내지 못한 때문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보훈처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포상을 받은 경우라도 친일행각에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이 있으면 재심해야 합니다.그러나 그 기준은 엄격하고 과학적,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김회장=친일파에 대한 재조명이 역사적 과제임은 분명합니다.문제는 현실적으로 친일파를 어떤 기준으로 가려낼 것인가 하는 겁니다.정부로서도 친일파에 대한 역사재조명이 무척 어려울 줄 압니다.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작업을 벌여나간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해봅니다. ▲신교수=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최근 들어선 일본 연립내각의 핵심인 오자와 이치로는 PKO법안의 초안 배경이 된 「오자와특별조사위」를 이끌어온 인물입니다.이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앞으로 국제사회가 미주권 EC권 일본권 등 3개 블록화되므로 일본이 아시아지역의 통합과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한국은 일본의 아시아정책의 개편대상중의 하나이므로 자칫 말려들면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종속될 위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회장=일본은 한일관계를 영원한 동반자인양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6백90억달러의 무역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관계가 동반자일수 있습니까.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발전을이룩할 수 있었습니다.동북아시아의 전략거점으로 일본을 택한 미국이 각종 기술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 지원했기 때문에 일본의 성장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러나 일본은 겉으로는 동반자 운운하면서 우리나라에 기술지원을 꺼리고 있습니다.우리나라를 경제협력국이 아니라 시장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이런 상태에서 양국이 진정한 협조적 관계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은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그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김대통령의 가을 일본방문에서는 반드시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일본의 사죄를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이와함께 기술이전과 무역역조시정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실질적인 약속을 보장받아야 할 것입니다.
  • 「민족정기 회복운동」 확산/구총독부 철거 계기

    ◎4개단체서 캠페인·강연/학계서도 일제청산 연구 활발 박은식선생등 임정선열5위의 유해봉안과 구조선총독부건물 해체결정등을 계기로 민족정기를 바로잡기위한 각종민간운동이 활기를 띠고있다. 각종사회단체와 학계등에서는 세미나,강연회,출판사업에서 연극공연,순회계몽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등으로 일제때 왜곡됐던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위한 노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중근의사 숭모회는 문화체육부가 지정한 「안중근의 달」을 기념하기위해 17일과 20일 두차례에 걸쳐 안의사의 애국정신과 동양평화사상등을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광복절인 15일 아침 전국적으로 국기바르게달기 캠페인을 벌이는데 이어 지역별로 민족정기를 끊기위해 일제가 설치했던 각종 시설물,지역역사왜곡등의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국기독청년회,흥사단등 단체들도 선열들의 독립투쟁정신을 통일열기로 승화시키기위해 15일 「남북 인간띠 잇기대회」를 개최,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돼새길 예정이며 민족정기회복과 건강한 시민사회등의 주제로 각종 강연회등 기획행사도 준비중이다. 이와함께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기위한 학계 출판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외국어대 사학연구소 박창희교수는 일제때 일왕의 칙령에 따라 결정됐던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우리말인 「어린이학교」로 바꿔야한다며 최근 교육부에 건의문을 내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일제때 목숨을 걸고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전기나 과거 친일행각에도 불구,광복후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인물에대한 고발과 해방정국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등도 쏟아져 새로운 역사조명을 기대하는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 환국선열에 참배하는 마음들(사설)

    고국에 봉환된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가 안치된 국립묘지 영현 봉안관에 추모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일반인 참배가 시작된 첫날 6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정부기관장·정치인·사회단체인사들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실로 70년만에 유해로 환국한 선열들의 높고 거룩한 뜻을 기리며 참배했다.둘째날인 7일에도 주말을 이용하여 더 많은 참배객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와 분향을 했다.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광경이었다. 임정요인 다섯분의 선열앞에서 경건하게 머리숙인 시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먼저 조국광복을 위해 한 평생 투쟁하다가 이국땅에서 숨진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겼을 것이다.이역 망명지에서 기약없는 세월을 풍손로숙으로 보내며 오로지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애쓰시던 그분들에 대해 흠모의 염이 가슴을 메웠으리라.다음에는 너무나 늦은 환국에 대해 선열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른들,조국의 광복을 보지못하고 이국땅에서 순국하신지 근 70년이다.조국이 광복된 뒤로도반세기 가까운 연륜이 지나서야 꿈에 그리던 고국땅에 묻히게 된 것이다.상해만국공원묘지에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방치되었다 이제야 모시게 된 것을 우리 국민 모두는 깊은 회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때늦은 봉환이지만 임정요인의 고국 안장은 두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새 문민정부가 실질적으로 승계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상해임정에 있다」고 명기하고 있으나 그동안 선언적 의미에 그쳤을 따름이다.이번 유해 봉환은 법통성 계승의 가시적 첫 조처이며 이를 계기로 정부는 임정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각종 시책을 펴나가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둘째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일제치하에서 국내의 많은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혹은 협박·회유에 넘어가 변절하고 친일했던 경우에 비긴다면 임정요인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광복투쟁은 얼마나 찬연하고 우뚝한가.우리 역사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때감연히 일어서 나라를 구하는 선열들의 항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연면한 민족정기의 발현이다.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민족정기를 전수하는데 이번 행사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민족정기는 나라를 융성하게 하는 원동력이요,국력의 원천이다. 다섯분의 유해는 10일 국립묘지 임정요인묘역에 안장된다.시민들이 영현 봉안관에 참배할 기회는 오늘과 내일 이틀 뿐이다.방학중인 자녀들의 손을 잡고 엄숙한 역사의 현장에 나서 보자.순국선열의 영령앞에 옷깃 여미고 분향 올리며 그분들의 거룩한 뜻을 되새겨보자.
  • 임정선열 다섯분 봉환하며(사설)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바친 선열들이 광복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채 이국땅에 묻혀 계시다는 사실은 광복된 조국에 사는 국민으로서는 생각만해도 송구스럽고 죄만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한해 이태의 일도 아니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보낸 형편이고 보면 부끄러움과 아픔은 더욱더 커진다.반드시 정성이 모자랐다기 보다는 그동안 지구촌을 지배한 냉전기류에 연유했다는 것도 사실이다.비록 그렇다해도 우리의 마음이 평안할수는 없다.애국혼을 풍손로숙시키는 듯한 그런 애절함이 있다. 그분들중 우선 임시정부요인 다섯분­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의 유해가 오늘5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다.오전에 상하이(상해)만국공묘에서 천묘식을 가진다음 오후에는 김포공항에 도착,국립묘지의 영현봉안관에 안치되게 된다.이날부터 9일까지는 참배를 위해 일반인에 공개되며 10일에는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안장된다.유족들의 한만 풀리는게 아니다.모시는게 늦었다고는 해도 국민 모두의 가슴까지 후련하게 적셔주는 일이 아닐수 없다.그분들도 이제고국의 품에 안겨 비로소 편히 잠들게 된것이다. 이를 성사시킨것은 시대의 흐름이다.얼어붙어 있었던 중국이 개방의 물결을 타면서 우리와 국교를 맺은 일로부터 비롯된다.지난5월 방한한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애국선열 유해봉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전부장이 쾌히 응낙함으로써 급속한 진전을 보기에 이른것이다. 이번 유해봉환은 중국정부의 대한관을 읽을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도 뜻이 깊다.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정부로 계승되고 있음을 중국정부가 인정한 것이 유해봉환에의 협조라고 하겠기 때문이다.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는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묻혀야 할 당위성을 갖고있다.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이 다섯분의 유해와 영혼을 모셔들이면서 우리의 광복전후사가 다시 정리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더 해본다.항일과 친일을 분명히 가리지못한 상황속에서 순국선열과 그 후예가 외로워야했던 사실은 우리를 많이 부끄럽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이분들의 무언의 질타가 들리는양하다.또 이분들이 소망하는것은 허리잘린 조국이 아니다.통일에의 의지를 더 굳건히 할것을 촉구한다. 이분들의 「귀국」은 아직도 못돌아온 다른 87위의 독립유공자 유해와 영혼을 생각하게도 한다.그 봉환노력이 계속되어야겠고 행방을 모르는 66위에 대한 소재파악 노력도 뒤따라야 할것이다. 오늘 오후부터 9일까지의 참배기간동안 국립묘지를 찾아보도록 하자.10일의 안장식날은 잊지들 말고 조기를 달도록 하자.
  • “왜곡된 기독교원로 공과 재평가돼야”

    ◎「…한국기독교사」 펴낸 이선교목사 주장/“친일·어용행각 청산못해 기독교 부패”/「순교자」 「배신자」 이분법 분류는 위험 순교의 영광만 강조돼왔고 상대적으로 어용의 부끄러움은 축소되어온 1백년 한국기독교역사는 이제 새로 씌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진실된 기독교역사의 바탕위에서 왜곡된 기독교원로들의 공과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대한성결교 이선교목사(51·서울 백운교회)가 최근 펴낸 저서 「다시 써야 할 한국기독교사」에서 제기됐다.이목사의 친일·반민족적 기독교인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최근 일부 친일독립유공자에 대한 공적 재심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목사는 일제시대의 혹독한 고문과 공산치하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운 훌륭한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순교하였으나 신사참배를 하며 황국신민이 된 것을 감사해 하던 친일파 목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아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회개는커녕 교권싸움만 일삼아 교계의 분열을 가져오고 6·25등 민족을 숱한 고난의 길로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하고 사회가 타락한 원인은 친일·어용 자체보다도 그후 어용들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어용과 이기주의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으며 기독교를 부패케 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일본의 한국침략과 기독교박해,해방이후 분단상황에서의 기독교대립과 6·25전쟁,5·16이후 군부독재의 출현등 우리 현대사에 있어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분석했다.그리고 그 시대마다의 주요기독교인들을 「순교자」·「배신자」라는 다소 위험한 이분법적 구분으로 분류했다. 일제때 인물들은 주로 신사참배강요등 기독교박해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기준으로 나누었는데 순교자로 분류된 사람은 박봉진·이기풍·신석구·주기철·최봉석·허성도·박관준·한상동목사,정태희·조만식장로,유관순,안이숙등이다. ○한경식 양주삼 백낙준씨/신사참배 등 배신자 분류 반면에 배신자로 분류된 이는 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징병제와 태평양전쟁을 찬양한 사람들로 백낙준·전필순·정춘수·정인과·김인영·한원석·양주삼·윤일선·심명섭·최태용목사,윤치영장로등이 속해 있다.이밖에 이승만장로의 부패와 허세,한경직목사의 신사참배 사실도 지적했다. 그러나 백락준목사의 경우는 해방후 문교부장관과 연세대총장까지 지낸 인물로 이같은 구분은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목사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한 것은 어용들이 기독교의 사회참여가 비성서적이라며 침묵·망각·무관심을 강요했기 때문』이라며 『회개와 반성없이 우리의 참존재가 인식될 수 없으며 헌신과 용기,정직함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바로 잡아야 할 우리역사 37장면」 출간

    ◎왜곡된 역사의 진실규명에 초점/37개 주요사실 시기·쟁점별로 정리/일제·극우반공독재때의 오류 규명/친일파와 독립유공자가 뒤바뀐 사실등에 “눈길” 『친일파들이 독립유공 포상을 받게 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친일방송선전협의회간사와 경성배일동지회평의원,국민총력조선연맹참사 등으로 친일사회활동에서도 제1선에 섰던 서춘의 예를 보자.서춘이 대통령표창을 받은 19 63년 상훈심사위원중에는 4명의 친일파가 있었다.…역대 독립유공자 상훈심사에 참여했던 친일파는 19 62년 2명,19 64년 4명,19 68년에는 무려 8명에 이른다.…독립유공자가 제 손으로 공적을 써내고 제 손으로 포상을 신청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이 제도가 독립운동가사회를 질서도 예절도 없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락시켰다.이 제도는 또 너무도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왔고 다분히 산 사람에게 치우쳐 시행하다 보니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제치고 먼저 상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됐다』 「바로 잡아야 할 우리역사 37장면」(역사비평사간)은 이처럼 우리역사에서 잘못 알려져 왔거나 감추어졌던 역사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씌어졌다.두권으로 묶여진 이 책은 특히 가까운 과거인 일제 식민지하와 극우반공독재체제하에서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앞서 인용한 「독립유공자 다시 선정해야 한다」는 글도 최근 뒤바뀌어진 친일파와 독립유공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내는 계간「역사비평」에 연재된 「우리 역사 바로 알자」는 난을 통해 소개된 글들을 시기별 쟁점별로 한데 묶은 것이다.37편의 글은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학자 37명에 의해 씌어졌다. .역사문제연구소 측은 이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일본이 한국역사를 왜곡하는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크게 왜곡해 왔다면 더욱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의 문제를 은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한말·일제시기­애국인가 매국인가」,「상해임정­이승만정권을 바로 알자」,「해방전후­8·15 유엔 그리고 분단」,「친일파·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접 바뀌어야 한다」,「6·25를 다시 생각한다」,「19 60년대­4·19와 한일협정」,「한국문학의 거장 3인을 다시 읽는다」,「TV사극에 문제있다」,「우리의 반쪽,북한을 바로 알자」는 9개의 큰 타이틀로 엮어졌다.이 아래 다시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민족지였나」,「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한일협정에서의 청구권,배상인가 구걸인가」,「북한은 백두산을 중국에 팔아넘겼다」 등 각 시기마다 가장 잘못 알려졌거나 드러나지않은 37개의 역사적 사실이 쉽고 간결하게 정리됐다. 이책은 「역사상실증」에 빠진 요즈음 독자들에게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수 있는 교과서이자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직시하게 하는 교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친일미국인 스티븐슨 저격/전명운의사 유해 봉환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지난 1908년 발생한 친일파 미국 정치인 스티븐슨 저격사건의 주인공으로 애국지사 1호인 전명운의사(1884∼1947)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만에 LA의 묘소를 떠나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12일 LA총영사관에 따르면 정부가 95년 광복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해외독립유공자 유해봉환사업에 따라 총영사관이 유족들과 협의,전의사의 유해송환계획을 이미 통보했으며 정부의 이장시기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의사는 『일본의 한국통치는 한국국민들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한 당시의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1908년3월23일 샌프란시스코의 페리정거장에서 저격했으나 불발로 그치고 뒤이어 장인환의사가 스티븐슨을 저격했다. 전의사는 97일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뒤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살다 1929년 LA로 이주,1947년 63세를 일기로 숨졌으며 이스트LA 갈보리 천주교묘원에 안장돼왔다.
  • “벌목장 노역3년 TV한대 못사”(오늘의 북한)

    ◎시베리아 작업장 탈출 노동자가 폭로한 북한의 인권/정치범수용소 12곳… 「반당」 찍히면 직행/숙청인사들은 「특별구역」 설정 격리도/“인권문제는 자국의 실정맞게 보장”… 북대표 억지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중인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의 참상이 최근 외신을 통해 전해지면서 북한의 인권문제가 또 다시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하바로프스키주에 있는 북한 벌목사업장에서 모진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김호씨(34)가 최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킨 것도 그 하나의 사례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벌목장 노동자들은 3년을 벌어도 TV 한대 사기 힘든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김씨는 탄원서에서 『북조선에서 정치탄압이 없고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사랑하는 조국과 부모형제를 버리고 러시아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겠습니까』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인권회의에서 러시아대표가 북한의 인권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는등 올들어 국제인권기구와 주요국 언론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인권에 대한 범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6월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 백인준은 『인권문제가 다른 나라의 사회·정치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어선 안된다』며 북한사회의 인권문제에 관한 서방국들의 간섭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그는 『인권문제는 해당국가가 자기실정에 맞게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문제』라면서 『북한은 정치적 권리와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국제사면위원회도 지적했듯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물론 거주이전·직업선택·종교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자유조차 제한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주민들이 노동당의 1당독재,더 정확히 말해 김일성부자체제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북한에는 김부자체제를 보다 확고히 다지기 위해 북한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정치사상범을 수용하는 12개소 이상의 특별독재대상구역까지 설치되어 있다고 귀순자들은 증언하고 있다.북한 전역의 산간오지에 설치된 이 수용소들은 러시아의 벌목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인권의 완전한 사각지대로 알려져 있다. 이 특별독재대상구역에는 과거에는 지주·친일파·반혁명적인 종교인들과 그 가족들이 주류를 이뤘으나 근래에는 노동당의 간부나 당원으로 있다 밀려난 자들과 그 가족들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김일성부자 세습체제구축과정에서 밀려난 정치범들이 급증해 수용인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다.즉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는 3대혁명소조에 의해서 반당·관료주의자로 낙인찍힌 뒤 국가보위부나 법무생활지도위원회의 판정으로 숙청된 당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수용소에 일단 들어가면 외부와의 접촉이 일체금지된 채 매일 12시간이상씩의 강제노동과 2시간이상 자아비판을 위주로 한 사상개조학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이 하는작업은 주로 석탄과 광물을 캐는 갱도작업과 벌목및 개간작업등의 중노동이다.
  • 문학·문예 평론가 이어령씨(이세기의 인물탐구:32)

    ◎평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천부적 관찰력에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조율/약관 22세 데뷔… 예봉·직설로 기성문단에 파문/문학의 전장르 석권… 「흙속에…」이후 한국 재발견에 몰두 전후 한국문학의 기린아·총아 타이틀과 함께 독설적 직설,명쾌의 명문으로 이어령씨가 평단에 데뷔했을 때는 온 문단은 마치 「화약고」인듯 경계의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이나 서구의 누보로망 앵그리영맨처럼 한국의 뉴제너레이션이던 당시 22세의 그는 「집도 가족도,그리고 그 시원찮은 문명이란 것도 학식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분노와도 같은,자엽과도 같은 광기와 젊음뿐」이었으며 「생존하기 위하여 문관노릇을 하던 교수님들 밑에서 반세기전의 증권같은 실력없는 낡은 노트의 학설을 베끼며 인생을 배웠고」 「모든 울분과 공허를 자취방에 드나드는 늙은쥐를 두들겨 잡는 것으로나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하고 있는 몇몇 문단선배들을 만나보고 「기절할 정도로 실망」하여 그의 데뷔작품인 「우상의 파괴」에서 문단사에 남을 만한 중견문인들을 향해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 「영예의 우상」,이미 문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선 노대가들마저도 「현대의 신라인」으로 신랄하게 통박하여 문단을 온통 긴장시키기에 이르렀다.그때 그의 눈에 비친 작가·비평가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를 하는 한가한 문사」에 불과했으며 「불난 집에서 바둑을 두고 포탄이 터지는 전선에서 자장가를 노래하는 사람같아」 「파괴돼 마땅한 우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문학풍토에서 「한국작가는 세계의 고아」 「현대 문명의 외곽지대에서 서식하는 뿌리없는 버섯」,이런 「불모의 상황을 영구화하려는 듯한 기괴한 권위」를 젊은 그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우상의 파괴」로 비판 그러나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당연히 무례로 간주되었고 이 「맹랑한 문제아의 출현」을 놓고 문단은 한때 「일진광풍」이니 「일진청풍」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25전 한자어세대인 제1세대는 「식민지역사에 반항하여 망명이나 감옥으로 가든지,친일적인 식민지인으로 순응하든지」의 선택의 여지에 놓였던 것에 비해 전쟁직후의 20대,이른바 제2세대들은 일본어도 제나라 말도 서툴고 한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어중간한 허공에 매달린 역사의 기예 같은 존재」라고 또한번 꼬집었다 이제 문단은 더이상 그를 좌시하거나 간과하려 들지 않았다.일부 문인들은 그로 인해 어쩌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지고 문인으로서의 생명인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듯했다.그의 문재와 번득이는 지성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기성문단은 한결같이 그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심하게는 「전생에 그리스의 소피스트케이션」이나 견석백마의 곡론가로 매도하고 그의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 들었다.그때 빛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그의 적들을 향해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씨는 『나는 동족으로서,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이만한 사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런 재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거침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의 절친한 후배인 작가 최인호도 「문학이라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가는 손오공」,문학평론가 김현도 「단군이래 순발력과 기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여러글에서 밝히고 있다.「그는 과연 동서예술을 천의무봉으로 전개해나갔고 문학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이에 대해 이어령씨 자신은 「희극과도 같은 만용을 부려야 했던 성급한 과실들은 정말 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가」란 글에서 「나는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평론을 했다.그리고 논쟁할 때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흙이 묻고 코피가 흐르던 어린날의 그 주먹다짐을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그 아픈 상처자국을 통해서 나는 그 논쟁이 실은 하나의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의미를 확인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언어 연금술사” 찬사 그후 그는 어린시절의 추억을오늘의 문화에 비쳐본 에세이와 한국문화·문명에 눈을 돌려 「흙속에 저바람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같은 주옥의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문명비평가」로서 재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일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센세이셔널한 언어의 풍운을 몰고온 그를 보고 「놀라운 기지,번득이는 혀,해박하고 비상한 두뇌와 창의력」은 마치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에 못지 않다고 찬탄해마지 않아 그는 다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반짝거리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피해 신문사 캐비닛속에 숨어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흙속에…」는 1년만에 10만부,지금까지 60만부이상.한림출판사가 펴낸 영어판은 미컬럼비아대 동양학교재로 채택되는가 하면 대만 원성문화도서 공응사가 번역한 「사토사풍」표지에 쓴 영문이름자인 Lee o young으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문인들이 「이오양」을 찾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제로부터 거칠 것도 걸릴 것도없이 이어령문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자 그는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무익조」,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등 소설·희곡·시·수필에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해 나갔다. 그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다.신문에 연재되는 글 또는 강의·강연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초일목도 놓치지 않고 그속에 깃든 심오한 뜻과 사색의 깊이를 20 00년대를 향한 민족성 구성에 치밀하게 연결시켜 나간다.그의 천부적 관찰력은 하잘것없는 단서 하나에도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가해져 어느부분에서든지 문화의식의 실체와 만나게 되는 기쁨을 활짝 열어준다. 그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그 말속에는 그때마다 현목과 일총의 영롱함이 실려 있다. 그는 어떤 강연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준비자체가 불편한 걸림돌이다.다만 청중의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에서부터 결론을 예고해버린다. 이른바 「이어령문체」로 지칭되는 그의 글은 「말이 혹은 문체가 물이라면 또는 불이라면 또는 바람이라면 또는 화살」이라면 글속에서 「물은 위안과 씻김의 언어,불은 개혁과 새로운 건설의 언어,바람은 몽상과 생성의 언어」이고 「화살은 허무의 허공을 날아가서 마침내 사물의 핵심을 쏘아 떨구는 관통력 높은 사냥꾼의 언어」이며 「시정과 미사에 감싸인 지성의 광휘」로 그 명중률이 정확하다고 평받고 있다. ○「레인맨」 보고도 눈물 그의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손꼽힌다.88서울올림픽때의 「벽을 넘어서」와 텅빈 그라운드에 은빛 굴렁쇠장면은 여백과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긴장감 감도는 매화 한송이를 그리는 동양화 이미지를 살려 신아시아 미학추구의 극치로 찬사된 바 있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평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충격이후 그는 아사히,요미우리신문과 NHK방송이 주최하는 강연에 자주 초청되어 회장은 언제나 지성의 관객들로 넘치고 있다. 「독자를 시험하는 경구」 「서구에 치우친 일본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그의 강연은 재치와 기발한 장단점 지적,상상치도 못한 한국 습속과의 비교론으로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아산의 유교적인 지주집안에서 5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보타이에 양복,구두와 바스켓같은 가방을 들고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도련님으로 성장하면서 막내답게 장난이 심했고 얼굴엔 노상 상처투성이,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두자리이상의 보태기 빼기등 숫자놀음은 딱 질색,그러면서도 컴퓨터광이라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끝없는 원고청탁으로 하루 3∼4시간 컴퓨터앞에 앉아 실은 물흐르듯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처럼 어렵게,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정도다. 집필의 산실인 보고와도 같은 서재는 수천수만권의 서적,그가 좋아하는 CD·LD,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고 갑자기 쓰고 까다롭게 다듬는다. 냉기와 온기,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춰 남보기엔 지나치게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보이지만 그는 영화 「레인맨」을 보고 눈물짓고 수많은 넥타이중에서도 강의가 잘되던 넥타이를 다시 골라낼만큼 천진한 면이 천성이다.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는 그의 책 제목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처럼 바람불지 않아도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똑바로 달려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를 원치 않는다.자신의 푸른 생명을 증명하는 언어의 슬기,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언어탐색을 위해 그는 단지 쉬지 않고 여전히 똑바로 달려나갈 뿐이다. □연보 ▲1934년1월(음력19 33년11월15일) 충남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8∼60년 경기고교사 ▲1960∼66년 서울대강사 ▲1966∼67년 성균관대강사 ▲1960∼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 구미지역특파원 ▲1970∼71년 미국무성초청 도미 ▲1972∼73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1967∼89년 이화여대교수 ▲1972∼86년 월간「문학사상」주간 ▲1986∼89년 이대 기호학연구소장 ▲1987년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학위) 일외무성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교수(81∼82년) ▲1989년 일본대 국제문화연구원교수,환기재단초청 뉴욕체류 1982∼현재 일본생산성본부,일본문화디자인협회,NHK,일본대판JC,신일본제철,독매신문,아사히신문 초청 강연 수차 ▲19 90∼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56년 「비유법논고」「카타르시스 문학론」으로 월간 「문학예술」지등단.「현대문학의 위기와 출구」「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우상의 파괴」(한국일보)발표이래 「흙속에 저바람속에」(62년 경향신문연재) 「나르시스의 학살­이상의 시와 난해성」 「모래성을 밟지 마시오­문단 선배들에게 말한다」「조롱을 여시오­시인 서정주선생에게」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자유문학상을 향하여」 「잠자는 거인­뉴 제너레이션의 위치」등 화제의 비평 1백50여편. 「저항의 문학」(59년) 「지성의 오솔길」(60년) 「고독한 군중」(61년) 「오늘을 사는 세대」(63년) 「흙속에 저 바람속에」(63년) 「이어령에세이 옴니버스」(66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75년) 「이어령 신작집(12권)」(78년) 「이어령전집(20권)」(85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82년 일본 학생사)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국어판·영어판·불어판)(82년) 「배구□ 일본□ 독□」(PHP 일본)(83년) 「하이구(배구)문학의 연구」(한국어판 홍성사)(84년)문장대백과사전 강연집「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92년)소설집「둥지를 나는 새」 상하권(93년) 79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
  • “KBS 시청료 징수방법 재검토”/국회 상위 정부 답변

    ◎하반기 총통화 13∼17%선 운용/포철에 올들어 세금 730억 추징 국회는 9일 운영·재무·국방위등 14개상위와 대전세계박람회지원특위를 열고 소관부처에 대한 정책질의와 계류중인 법안·청원에 대한 심사를 계속했다. 국회는 10일하오 본회의를 열어 클린턴미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12일 상임위 활동을 마감한다. 이날 상임위에서 여야의원들은 ▲동화은행의 은행장 선임문제 ▲평화의 댐 건설문제 ▲친일혐의자 명단유출경위 ▲신경제 5개년계획의 문제점등을 집중 추궁했다. 국방위에서 김덕안기부장은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86년 당시 북한 금강산댐과 이에 대응하기위한 평화의댐 건설 타당성에 관한 당시 안기부의 정보평가 결과 정치적동기에 따른 과장이나 왜곡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평화의 댐 건설과 관련된 서면답변에서 『평화의 댐 공사는 중단된 것이 아니라 1단게 건설을 완공한 것이며 북한의 금강산댐의 공사진척도가 부진함에 따라 2단게 댐축조를 유보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혀 공사가 계속될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병태보훈처장은 『지난 5공출범전 국보위가 독립유공자 가운데 44명에 대해 두달동안 포상금 지급을 중단했다』면서 『현재 재심작업을 하고 있는 만큼 명단공개는 신중히 해야한다』고 답변했다. 이처장은 또 『독립유공자중 흠결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94년 1∼4월까지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7월중 심사결과를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재무위에서 이용성은행감독원장은 동화은행 비자금사건과 관련,『동화은행에 대해 곧 정기검사를 실시,결과에 따라 책임여부를 묻겠다』고 밝혔다. 김명호한국은행총재는 『올 하반기에도 물가안정을 위해 총통화율을 당초 계획대로 13∼17%로 운용하겠다』면서 『그러나 올 하반기의 통화공급규모는 상반기에 비해 약 4조원이 많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경기회복에 따른 자금수요 증가를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총재는 또 『외화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카지노환전상에 대해 일일 환전내용 점검체제를 도입하겠다』면서 『카지노에 대한 관계기관 조사결과 카지노환전과정에서 외화유출이 드러나면 해당환전상의 업무를 정지시키겠다』고 말했다. 상공자원위에서 조말수 포항제철사장은 『지난 2월부터 5월말까지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계열사를 포함해 7백30억원의 세금이 추징되게 됐다』고 말했다. 조사장은 또 『신정부 출범이후 6월말까지 기업내의 징계처분자는 면직 2명을 포함해 총 1백16명으로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답변했다. 문공위에서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KBS시청료 징수방법 개선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히고 『시청료 징수방법등 KBS 운영 재원 마련방안을 방송위원회내에 설치된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회에서 연구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재무·국방·문공·보사위 대정부질의 답변

    ◎“동화은행장 취임거부 이유 무언가”/“안기부의 대북한정책 입장 밝혀라”/질문/“대전엑스포 안전대비책 적극 강구”/답변 ▷재무위◁ ○…김명호 한은총재와 이용성 은행감독원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통화관리,금리자유화,새로운 은행장 선임방식,국내은행 해외점포 금융사고 방지대책등을 논의.이날 회의에서는 은행장추천위원회의 구성및 은행감독원의 동화은행 송한청전무의 은행장 취임 거부에 위원들의 관심이 특히 집중됐다. 홍영기의원(민주)은 『전무가 은행장의 극비리에 이루어진 비자금 조성까지 보좌해야 하나』라고 반문한뒤 『동화은행 송전무 은행장 취임 거부 이유를 납득할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 금진호의원(민자)도 기다렸다는 듯이 『감독기관이 은행의 결정을 번복하는데는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새정부의 금융개혁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대목인 은행장추천제도의 취지가 시작부터 퇴색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원장을 질타. 이에대해 이원장은 『동화은행은 사임한 안영모 은행장이 구속됐기 때문에 다른 은행과 모양이 상당히 다르다』며 『의원님들의 양해를 구한다』는 궁색한 답변으로 위기를 모면. 이원장은 각 은행별로 설치된 은행장 추천위원회의 구성방법에 자율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공의 업무를 수행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은행장에 선임되는 것이 자율』이라고 설명. ▷국방위◁ ○…국방위에서는 특히 평화의 댐 의혹이 민주당의원들의 집중 공략대상이 된 가운데 북한 핵문제,대전EXPO에 대비한 안전대책,군사기밀 유출사건등을 추궁. 임복진의원(민주)은 『평화의 댐은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려는 정권안보적 차원의 조작극』이라면서 『국가안보에 중차대한 사안을 안기부 주도하의 소수집단이 밀실에서 추진해온 이유를 밝히라』고 추궁. 강창성의원은 『안기부가 일후지TV 시노하라기자에 의해 군사기밀이 유출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한것은 언제인가』라고 물은뒤 『평화의 댐 건설계획을 입안했던 전두환전대통령,장세동 전안기부장,이학봉 전2차장을 조사해 진상을 밝히고 결과에 따라 엄정처벌해야 한다』고 주장. 김덕안기부장은 『평화의 댐 조기착공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수 없다』고 전제,『86년 11월 금강산댐 가배수터널공사가 착공되면 88년 우기전까지 3억t의 저수가 가능,자연홍수량 9·4t과 함께 우리측에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변. 김부장은 평화의 댐 공사의 정치적 조작의혹에 대해 『정치적 악용 가능성과 순수 안보차원의 2가지 추정이 가능하다』면서 『만일 당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저항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됐다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고 언급. 김부장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북한의 핵개발이 상당히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는 북한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북한 회담이 시간을 끌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으로 시한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 김부장은 이어 다음달 7일 개막되는 대전EXPO행사와 관련,『북한이 과거 서울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등 주요행사시 대남테러를 저지른 전력을 감안,안전대비책을 적극 강구하고 있다』고 강조. ▷문공위◁ ○…방송위원회 위원 임명과정에서의 공보처 개입문제를 둘러싸고 야당의원과 오린환공보처장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진 끝에 오장관이 『법규정대로 입법·사법부 추천위원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원들의 뜻을 명심하겠다』며 방송위의 독립성 보장을 약속. 민주당 박계동의원은 『방송위원은 국회의장,대법원장도 3명씩 추천하게 돼있는데 입법부 추천 케이스인 부위원장도 「첫 연락을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 방송 독립성의 현주소이고 공보처 폐지 주장의 소이가 되고 있다』며 공세. 이에대해 오장관은 『정치성 인사를 배제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했다』며 『공보처는 자료를 작성,참고사항으로 전달했을뿐』이라고 해명. 이를받아 박의원은 『국회의장등이 장관의 자문을 받으라는 규정도 없고 장관의 행위는 입법·사법부의 독립적 의지를 묵살하는 행위』라고 공박. ▷보사위◁ ○…국가유공자중 친일혐의자 명단 보도경위를 놓고 여당의원들의 문제제기로 이병대국가보훈처장이 답변에 진땀. 민자당의 강우혁·박주천·강삼재의원등은 『명단의 작성경위및 유출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한편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문서화,본인 및 유족들에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혔다』고 주장. 반면 민주당의 김병오의원은 『보훈처가 작성한 친일혐의자 8명은 혐의내용으로 볼 때 별로 하자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보훈처를 옹호한뒤 『앞으로 독립유공자 재심위원회를 구성할 때 친일어용학자를 포함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검증안된 명단 공개/명예훼손 유발 사과 ○…이처장은 답변에서 『독립유공자중 공적내용에 흠결이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에 대한 처리문제는 본인이나 후손들의 명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서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원전자료에 의거,객관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분들의 명단이 언론에 먼저 보도됨으로써 본인이나 후손들에게 누를 끼치게 된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시. 이처장은 그러나 『앞으로 독립유공자로서 공적에 흠결이 명백한 사람에 대하여는 그에 따른 적절하고 타당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피력.
  • 김성수·이은상·이갑성·윤익선씨등 8명/친일행적 논란…서훈취소 심의

    ◎보훈처 8일 국가보훈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부통령인 인촌 김성수씨(62년 대통령장)를 비롯한 8명의 독립유공자들이 친일행각 혐의를 받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김성수씨외에 3·1운동 당시 33인중 한명으로 광복회장을 지낸 이갑성씨(62년 대통령표창),시조시인 이은상씨(77년 애국장),그리고 윤익선(62년 독립장)·윤치영(82년 건국포장)·서춘(63년 대통령표창)·이종욱(77년 독립장)·전협씨(82년 애국장)등이다. 보훈처가 민주당의 김병오·이해찬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성수씨는 친일단체인 총력연맹이사로 재직하며 학병을 권유한 혐의를 받고있다. 또 시조시인 이은상씨는 친일지인 만선일보에 재직했으며 임시정부 구미위원회위원을 역임한 윤치영씨는 41년 미영타도간담회 연사로 참석,대동아공영권 논리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이갑성씨는 일제때 밀정혐의를 받고있으며 3·1운동을 주도,1년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윤익선씨는 친일단체인 서울 원서정 총대와 북부정회 총대회간사를 역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춘씨는 친일지인 매일신보주간을 지내면서 조선임정보국단에 간여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종욱씨는 총력연맹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전협씨(대동단 결성)는 일진회 평의원과 부평군수를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들의 친일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독립유공자 재심사위원회를 구성,상훈법등 관련법령을 개정해 친일독립유공자 서훈취소등의 근거조항을 신설해 처리할 방침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소명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내년 1·4분기까지 본인이나 유족들에게 소명자료를 제출토록할 계획이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이는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친일인사 14∼15명중 보훈처가 파악한 명단』이라고 밝혔다.
  • 창씨개명뒤 버젓이 일본의 밀정노릇/서훈취소 심의대상 8인의 행적

    ◎총독부 단체에 참여… 학병지원 권유/김성주/「2·8선언」후 변절… 전국서 친일강연/서춘/친일계 신문인 「만선일보」에 몸담아/이은상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각종 훈·포장을 받았던 김성수씨등 8명에 대해 정부가 친일 여부를 정식 조사하고 있어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 모두가 부통령·국회의원등 고위공직을 지냈거나 언론계·문학계등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친일혐의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전혀 아니다. 일부 학계인사와 사회단체등에서는 광복직후부터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꾸준히 그 행적을 추적해 왔다. 다만 이승만정부 수립이후 좌­우 이념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승만정부가 친일여부를 가리지않고 마구 등용하는 바람에「친일파를 가려내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뒷전으로 밀렸을 뿐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재평가에 나서 이들「거물」들을 조사대상에 올린 것은 뒤늦게나마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반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관련학자·단체들이 조사·공표한 이들 각자의 친일행각을 보면 제1공화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씨의 경우 1940년 10월27일 미나미 당시 조선총독이 결성한 총력동맹에 이사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매일신보」「경성일보」등지에 학생들의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글을 실었으며 시국강연반에 들어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다. 이갑성씨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초대 광복회장을 지낸 인물로 자유당정권에서 당의 최고위원과 국회의원을 지냈고 공화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상해에서 이와모토(암본)로 창씨개명한 뒤 일본의 밀정노릇을 했으며 미쓰비시사의 만주 신경출장소장,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촉탁으로 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윤치영씨는 초대내무부장관을 비롯,이후 역대정부에서 고위직을 누렸다. 윤씨는 그러나 독립운동을 한 시기로 인정받은 41년 12월20일 친일잡지「동양지광」이 주최한「미·영타도 좌담회」에 연사로 참석해『황국신민으로서 참전은 우리 어깨에 지워진 공정무사한 대사명』이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은상씨도 일제말 친일계 신문인「만선일보」에 재직한 사실이 있다. 이밖에 이번에 조사대상 8명에 포함된 서춘씨(매일신보 주필)는 이광수와 함께 2·8독립선언위원 가운데 친일파로 변절한 대표적 인물로 39년 7월 배영동지회 평의원,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낸 외에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고 승려인 이종욱씨는 총독부 지원으로 월정사 주지와 조선불교 종회의장을 지냈다. 윤익선씨는 서울 원서정 총대(현 동장)와 경성부 북부정회총대회 간사를 지냈으며 전협씨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신임을 얻어 그의 추천으로 부평군수를 지냈으며 일진회 평의장도 역임했다.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은『정부 차원에서 친일파 재조사작업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김기창화백,“친일행적 회개”/기념관건립 논란일자(조약돌)

    ○…운보 김기창화백은 1일 자신에 대한 친일 시비와 관련,『일제 말기 친일 활동을 한 사실이 있으며 이에대해 역사와 민족앞에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보는 이날 외아들 김완씨(46)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오는 10월 5권으로 발간할 예정인 「운보의 전작도록」에 회개의 글을 싣겠다』고 덧붙였다. 아들 김씨는 『아버지의 친일은 스승인 이당 김은호화백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운보가 청각장애자로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김씨는 이어 『사재를 모두 털어 장애인 복지사업과 문화예술사업에 힘써 민족과 국가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운보의 뜻을 전했다. 운보는 최근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충북 청원군 북일면 형동리에 기념관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지역 인사들은 그의 친일경력과 기념관건립 예정지 주변이 의병장 한봉수선생등 독립운동가의 유적지임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 이병태처장에 듣는 국가보훈대책/대담=김종일사회부장(국정탐방)

    ◎“범국민적 보훈의식 고취에 최선”/숭고한 애국정신 예우받는 풍토 조성/명예·긍지 갖도록 연중 각종행사 추진/정부수립후 최초로 17만명에 대통령명의 「유공자 증서」 수여 문민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은 이병대국가보훈처장은 요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17만 국가유공자들에게는 명예를 갖고 여생을 보내도록 하고 국민들에게는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심어주기 위해 각종행사에 참석하느라 공휴일도 없다. ○민족 정기 되살아나 이처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나라사랑에 대한 참뜻을 깨닫고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면서 『보훈의식의 범국민적 확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처장은 모든 국민들이 참다운 보훈의식을 가질때 민족의 정기는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부 출범후 첫번째 맞는 올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의미가 새롭고 각별하다고 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국민들에게 보훈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범국민적 행사를 추진코자 합니다.오늘날 우리가 번영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그 바탕이 된 것입니다.문민정부 출범이후 처음 맞는 호국보훈의 달에 정부수립후 최초로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 17만4천8백86명에게 대통령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해 긍지를 고취시키고 국민들로부터 진실로 예우받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한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이 혼돈돼 가는 상황입니다.이럴 때일수록 국가유공자에 대한 이미지제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이에대한 방안은 있으신지요. ▲먼저 국가유공자들을 예우하는 국민적 풍토가 조성돼야 할줄 압니다.정부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추앙의 뜻으로 국경일·기념일등 중요 행사시에 「의전상의 예우」를 하고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공훈과 희생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사망시에는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하고 비석및 묘지단장을 지원하며 공헌과 희생의 정도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등의 예우를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무엇보다 보훈이념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국민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이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해나갈 방침입니다° ­최근 각 기업에서 국가유공자 법정의무고용기준을 잘 지키지 않는등 대우가 소홀한듯한 인상인데 현황은 어떤지요. ○독립운동가들 포상 ▲그동안 기업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매년 1만여명의 보훈대상자들을 고용,올 4월말 현재 모두 7만7천9백60명이 취업하고 있습니다.취업자의 80%정도가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사무직등 우수직종에 취업을 알선하려는 보훈처와 생산·기능직종 취업을 요망하는 기업체측과 직종협의시 다소 마찰을 일으키는 사례는 있으나 기업채용의무고용인원이 18만여명이 남아있고 매년 취업을 희망하는 보훈대상자가 1만2천명 수준이어서 보훈가족 취업알선에는 문제가 없습니다.지난 5월1일부터는 기업의 고용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제조업체에 대한 의무고용기준을 대폭 완화시켰습니다.의무고용 제조업체를 종업원 16인이상업체에서 50인이상업체로 상향조정하고 제조업체의 고용비율을 5∼8%에서 4∼7%로 1%포인트 줄였습니다. 앞으로 전문대졸이상 고학력자에 대해서는 우수한 업체에 자력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채용시험가점(10%)취업을 적극 권장해 나가겠습니다. ­국가유공자들의 명예와 긍지를 높여주기 위한 행사가 연중 기획·추진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호국보훈의 달에만 하는 형식적인 행사에서 탈피,실질적인 행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만. ▲국가유공자들의 긍지를 높여준다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나 긍지를 높이기위한 행사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범국민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사회단체등에서도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올 8·15 광복절에 상해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돌아오는데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중국 상해 송경령능원에는 임시정부에서 활약하셨던 박은식 노백린선생등 5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이분들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계승한 정부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헌법전문에 명시된 헌법정신을 더욱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중국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시 유해봉환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실무차원의 협의가 남아있습니다.유족·광복회등 관계기관과 협의,세부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해외순국선열들의 유해봉환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의 전망은. ○유해 봉환사업 추진 ▲해외에 안장된 순국선열의 유해봉환사업은 46년부터 계속돼 온 사업으로서 그동안 13회에 걸쳐 23위의 유해를 봉환해 왔습니다.이번에 임시정부 5인의 요인 유해 봉환계획을 계기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해봉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가고 있습니다.앞으로도 러시아와 동남아시아등 해외에 안장된 유해가 확인되는대로 관계국과협의,봉환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오는 95년 2만여명의 국내외 독립유공자를 발굴,포상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유공자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심사했던 방법을 개선,정부에서 직접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독립운동가를 발굴 포상할 계획입니다.특히 중국·러시아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를 중점 발굴할 계획입니다.전체 포상심사대상 인원은 약2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올 광복절에는 3백명을 포상할 방침으로 심사중에 있습니다. ­친일 행적이 있는 유공자와 공적내용이 허위라는 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독립유공자의 공적내용 재심사에 착수,서훈취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4·19정신을 재조명 ▲현재 친일형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고 있습니다.친일기록에 대한 각종 원전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있으며 수집된 자료에 친일행위가 확인될 경우 이해관계자들에게 소명기회를 줄 예정입니다.그 결과를 별도 구성된 재심사위원회에 넘겨 신중하게 심의,오류가 없도록 철저를 기하겠습니다.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 4·19에는 김영삼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4·19묘역을 참배하고 4·19의 역사적 재평가를 지시한 바 있는데 어떻게 진전되고 있습니까. ▲4·19정신을 재조명하고 그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해 오는 7월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 근세사 전공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4·19 설명회와 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재정립된 4·19정신을 중·고교 교과서 등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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