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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문위원 칼럼] 一喜一悲의 통일뉴스

    국가의 정책은 단기간에 시급한 현안을 처리하기 위한 것과 장기적으로 구조를 변경시키고,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이중 장기적인 정책은 입안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곤란을 겪으면서 좌초되기도 하고,우여곡절을 겪지만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기도 한다.지금 당장 국민들에게 동의받기 어려울지라도 올바른 것이라면,과감하게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국가 정책중 대표적인 것으로 대북 통일정책을 들 수 있다.그러나 통일정책은 그동안 지나치게 정권의 변화와 주변의 환경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또한 북한 관련 뉴스나 남북관계를 다루는 뉴스들이 긴 안목을 바라보고 현재의 정책을 분석·설명하고 국민들에게 내용을 차분하게 알리기보다는,제기되는 현안에 대해 지나친일회용 기사이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뉴스가 만들어지고 전달됨으로써 정책의 지속성에 언론이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분단 이후의 역사 속에서 마치 하나의 불문율처럼 고착화돼 버린 보도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5개월 이상 중단됐던 남북대화의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합의 그리고 북측의 일방적인 연기와 남북간에 오고간 공방,결국에는 장관급 회담의 금강산개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신문의 보도는그야말로 사건 전달자로서의 사명은 비교적 충실하지만 내용의 깊이 있는 분석과 정권의 정책을 긴 안목으로 지지,비판,홍보,대안 제시 등의 문제에서는 서툴기 그지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장관급 회담의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연기,그 이후남북공방의 과정에서 드러난 신문의 보도는 지나친 감정의표출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방이라도 남북관계에획기적인 진전이 있는 듯이 보도했다가,곧 모든 일이 다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도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더구나 지난 50여년 이상 남북관계는 오늘의 사태보다 훨씬 더 큰 굴곡을 겪어오지 않았는가? 그럴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면,앞으로 남북관계를 대하는우리 국민의의식은 성장하기는커녕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혹은 사건 하나하나에 따라서 ‘일희일비하는 뉴스’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국민들의 감정으로 반영된다면,어떻게 통일에 대비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성장시키고,정부의 통일정책에 냉정한 감시자·비판자가 될수 있겠는가? 현재 대한매일은 공익정론지로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있다.공익정론지로의 변신은 신문의 편집 형식과 면수의 확대 혹은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우선에 두는 내용과 방향을 가지고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사전식 보도나 나열식 전달이 아니라,정책과 사건과 내용과 분석이 심화되고 국민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생각하는 뉴스가 만들어지고 보도돼야 할 것이다.북한·통일 관련보도도 마찬가지다. 정영철 동국대 강사
  • [기고] 韓·日 역사공동연구

    역사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꽁꽁 얼어버릴 것 같던 한·일 양국간의 관계가 미국 ‘테러사태'를 계기로 다시 정상화되는 것 같다.종래 일본의 우경적인 정치가들은 연례행사처럼 망령스런 말을 내뱉어 우리를 분노시켰다가 뒤로 빠지는 짓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치고 빠지는' 정치행태는 망언정치의 도식이었다.그런데이번 고이즈미 총리는 ‘확신범'인지 아니면 분위기가 그들의 뜻대로 무르익었는지,한국국민의 분노와 냉대에는 아랑곳없이 사과나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당당히' 한국을방문하고 돌아갔다.한국정부는 대인답게(?) 대국적 차원에서 그를 손님으로 반갑게 맞이하였고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발표하였다.그 성과 중의 하나가 한·일간에 역사 공동연구를 위한 기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한·일 역사공동연구는 과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망언 등으로 일본의 역사인식과 왜곡문제가 현안이 됐을 때마다 문화교류 등과 함께 단골메뉴로 등장하였고,이미 그에따라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는 기구나 프로젝트가 꽤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97년 7월 김영삼 정부 때에도 당시 하시모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의 합의로 한·일 역사공동연구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지금도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문제가 발생하면 생겨나는 정부차원·민간차원 관계없이 ‘공동연구'의실제 내용은 무엇인지,그동안 과연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성과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역사왜곡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지,이번 검인정 통과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과연성명서 한 장이라도 내놓아 입장표명이라도 하였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이번 ‘역사공동연구' 운운도 미봉책이 되지 않을까,또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작태는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이고 일본인의 역사인식이다.과연 일본정부가 일본사의 서술에 한국의 역사학자를 참가시킬 수 있을 것인가,양국정부의 입장이 다른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종래에 보면,공동연구하자고 하여마치 한국역사교과서도 현안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있었다. 이왕 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생산적이고 좋은 결실을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행정적이거나 미봉책의 장식적 기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구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일본을 제대로 알고 과학적으로 일본을분석할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갖추고 있는 일본문제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야 한다. 혹 일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친일성향'의 인사들이 관여하여 진지한 토론도 없이 ‘사교장’으로 변질되어 버리거나 일본의 역사학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 모여우리의 주장만 강변하여 논쟁만 일삼는 자리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역사공동연구 기구가 문제의 초점을 비켜가거나호도하기 위한 장식물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상호불신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강창일 배재대교수
  • ‘독립기자 1호’ 정지환씨

    권력과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한,이른바 ‘독립언론’에 이어 특정매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추구하는 ‘독립기자’가 곧 탄생할 전망이다.‘독립기자 1호’는 내달말쯤 이를 공식선언할 예정인 ‘월간 말’지 기자출신의 정지환(鄭址煥·36)씨.그는 “특정 언론사에 소속될 경우 고정적 보수,조직의 보호 등 장점이 있으나 일상적업무에 몸이 매이다 보면 특정 주제에 대해 지속적인 심층취재를 하기 어렵다”며 지난9월 7년째 다니던 월간말을 퇴사,현재 ‘무소속’이다. 그의 ‘독립기자론’은 기존 국내 자유기고가들과는 다르다.대부분의 자유기고가들이 여성지나 주간지의 ‘주문생산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그는 독자적으로 주제를 잡아자신의 호흡으로 ‘천천히 깊게’ 기사를 쓴다.그는 내년초부터 월간말과 비정규직 계약을 맺고 매월 100매 전후의 심층기사를 실을 계획.이에 앞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는 지난 9월 이후 이미 수시로 기사를 올리고 있다.두 매체와는 계약을 맺고 고정급으로 원고료를 받는 방식이다. ‘독립’을 선언한 이후 그의 글쓰기와 외부활동은 이전보다 훨씬 왕성해졌다.언론계 안팎에서 ‘안티조선 전문기자’로 알려진 그는 9월 한달동안 무려 12회에 걸쳐 안티조선 특강을 했으며 오마이뉴스를 통해 포천 다락터 사격장 현지취재,서정주의 ‘국화옆에서’의 친일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환희씨 인터뷰 등 이미 여러 건을 특종보도하기도 했다.특히 그는 잡지,인터넷신문에 이어 출판·영상매체를 통한 작업도 추진중이다. 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1기출신인 그는 “특정사 소속이 주는 장점을 포기하는 대신자유로운 글쓰기로 ‘행동하는 기자’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운현기자
  • 박정희기념관, 반대 VS 추모 행렬

    26일은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이 숨진 지 22년이 되는날.박 전 대통령을 보는 시각은 해가 갈수록 양극단으로치닫고 있다.과연 박 전 대통령은 친일 반민주 군사독재자인가,아니면 산업화의 기수인가.이날 열린 행사를 통해 박전 대통령의 두 얼굴을 살펴본다. ■반대. “민족의 성지에 일본군 장교가 쓴 현판이 웬말이냐.” 민족문제연구소 등 251개 단체로 구성된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소속 회원 70여명이 10·26 사건 22주년인 26일 서울 탑골공원의 ‘삼일문’ 현판을 기습적으로떼려다 경찰의 저지로 실패했다. 삼일문에는 애초에 서예가 김충현씨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지만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으로 교체됐다. 국민연대는 이날 ‘박정희기념관 완전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은 우리 민족이 세계만방에 민족자주독립을 선포한 겨레의 성지”라면서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현판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민족혼을 짓밟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대 이관복(李寬福)상임공동대표는“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이 마무리되는 11월 30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떼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철거가 무산되자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준비해온 달걀을 현판에 던졌다. 국민연대는 지난 2월13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매일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공동대표 金勝勳 신부)는 26일 고 김재규(金載圭) 전중앙정보부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정당하게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신군부에 의해 단죄된 10·26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 이창구기자 window2@. ■찬성.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22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부총재 등유족 및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됐다. 민족중흥회(회장 金振晩) 주관으로 열린 추도식에는 유족대표로한나라당 박 부총재와 서영(書永)·지만(志晩)씨등 박 전 대통령 3자녀,그리고 박준규(朴浚圭)전 국회의장,남덕우(南悳祐)전 총리,민관식(閔寬植)전 국회부의장 등3공 관련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 부총재는 인사말에서 “올해는 미국 테러 사건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경제상황,국가관을 혼란스럽게 하는 6·25와 월남전 논란 등 국내외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 때문에더욱 아버지가 생각난다”면서 “잘못된 것을 하나 하나바로 잡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는 조화를 보내 추도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 생가보존회와 구미시도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생가(상모동)에서 김관용 구미시장을 비롯, 1,000여명의 시민등이 참석한 가운데 22주기 추모제와 추도식을 가졌다. 추모제에서는 50여명의 제관이 제사를 올렸으며 추도식에는 고인의 녹음된 음성이 방송된 뒤 참석자들이 헌화,분향하는 순으로 진행됐다.또 박 전 대통령이 초등교사시절묵었던 하숙집인 문경읍 상리 청운각에서도 김학문 문경시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문경초등학교 제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구미 한찬규기자·홍원상기자 wshong@
  • [사설] 대정부질문제도 바꿔야

    국회 대정부질문이 무책임한 폭로와 무차별적인 정치공세,그리고 이에 따른 반발로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갈 뿐 아니라 국론분열과 정치불신을 심화시키는 등 그 폐해가 실로막대하다.특히 이번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은 여야간에 고성과 야유가 난무하고 악의적인 색깔론으로 이런 국회가 더이상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했다. 이른바 ‘이용호게이트’는 통일·외교,경제,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야당 의원들의 중복된 질문에 정부측이 같은 답변을 며칠씩 되풀이해야만 했다.그러다가 마침내 야당이 ‘이용호게이트’와 관련해 여권 실세의 실명을 거론하고,이에 여당이 야당 의원들을 고소·고발함에 따라 경찰이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사무실을압수 수색하고 야당이 크게 반발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있다.국내외적으로 숨가쁜 우리 현실에서 촌각을 다투는 국정현안이 ‘이용호게이트’밖에 없는지 국민들은 의아하게생각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저질 대정부질문은 ‘한건주의식폭로’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지난 16일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 본회의장은 여야 의원들이 서로 10·25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상대당 후보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퍼붓는 바람에 마치 혼탁한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어떤후보는 학력을 위조했고,어떤 후보는 부친이 친일파라는데장관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식이었다.형식은 대정부질문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당 후보에 대한 헐뜯기였다.오죽했으면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끄겠다”고 경고까지 했겠는가.일부 시민단체는 실효성 없는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을아예 폐지하고 관련 질의는 해당 상임위에서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정부질문이 끝난 것을 계기로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 등 여야 소장개혁파는 조만간모임을 갖고 현행 본회의 대정부질문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한다.정치공세성 질문이나 국정감사와 상임위에서 이미 거론된 사안을 재탕·삼탕하는 작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국회법상 상임위를 상시적으로열 수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국정에 관한 질의는 오히려 상임위에서 밀도있게 펼 수 있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그럼에도본회의 대정부질문을 고수하고 싶다면 현재의 상태로는 안된다는 게 국민들의 공감대일 것이다.일문일답식 진행방식이나 서면질문·구두답변의 활성화와,정도를 벗어난 질문에대한 국회의장의 규제권 강화도 검토해볼 때가 됐다고 본다. 또한 국회윤리위에 학계와 시민단체 대표들을 참여시켜 정쟁성 저질 발언을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한다.한마디로 말해,국민들의 요구는 어떤 형식으로든 대정부질문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 [김삼웅 칼럼] 연해주의 안중근·이상설 유허비

    순국 92주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이름앞에 옷깃이 여며지는 안중근의사와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에서 서거한 보재(溥齋) 이상설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연해주에세워졌다.러시아 땅에 처음 세워진 유허비다.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크라스키노 류하노프카(煙秋 下里)마을에서 안의사 유허비가 제막되었다.1909년 안의사 등 동지 12명이 왼쪽손 무명지를 잘라‘대한독립’이라 쓰고 조국독립을 다짐한 유서깊은 지역이다.정작 단지동맹을 했던 장소는 이웃마을인데 그곳은 황무지로 변해 인적이 끊겨서 대로변에 비를 세웠다. 광복회(회장 尹慶彬)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여 해외 독립전쟁의 본거지에 표지석을 세운 의미는 각별하다.광복회가지난 8월 중국에 ‘청산리 항일대첩비’를 세운 데 이어 두번째다. 연해주 한·러 국경지역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에 둥지를 튼 한인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다.1937년 스탈린이 이 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낸 이후 광대무변한 지역이 대부분 황무지로 변했다.안의사는이곳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국적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듣고 뜻을 같이한 우덕순과 권총 한자루씩을 준비하여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를 처단했다. 안의사의 거사 소식에 신규식(申圭植)은 이렇게 썼다.“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6대주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독립만세 세번 부르니 우리 조국 살았도다.” 보재선생 유허비는 18일 우스리스크 수이푼강 유역에서 제막되었다.발해의 남경(南京)이었던 이 지역 역시 항일지사들이 조국광복운동을 벌인 곳이다. 보재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을 대동하고 고종황제의 정사(正使)로 파견되었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에서는보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귀국을 단념하고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0년 연해주에 이르러 유인석·이범윤 등과 13도의군을 편성하여 일군과 싸우고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했다.이어 1914년 이동휘·이동녕 등과 중국·러시아령의동지를 규합,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취임했다.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신규식 등과 조직한 신한혁명단 본부장에 선임되어 조국광복투쟁에 앞장섰던 보재는 1917년 연해주의 니콜니스크(雙城子)에서 눈을 감았다.47세 때이다.보재의 유허비가 세워진 곳은 발해의 옛토성이 바라보이는 수이푼강 언덕이다.발해가 망할 때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이 강물에서 죽어 발해유민들이 ‘슬픈강’이라 불렀던 것이 수이푼강이란 이름의 사연이라 전한다. 안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던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란 유언을 남겼듯이,보재선생도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나는 광복을 못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동녕·조완구등이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뿌렸다. 안중근의사와 보재선생 유허비 제막식을 지켜보고,극동대학에서 안의사의거 92주년 한·러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고,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한반도의 넓이만한 연해주의 광활한 지역을 종단하면서 이국에서 숨진 순국선열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조국으로 반장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고 국내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활개친다. 심지어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세태가 되었다.안의사나 보재선생을 기리는 상은없어도 친일파를 기리는 상은 줄줄이 제정되고 시상되는 조국의 현실에서 동토에 잠든 순국 선열들의 영령 앞에 발걸음이 무겁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삼웅 주필 kimsu@
  • 동아·조선 ‘민족지 간판’ 내리나

    시인 미당 서정주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부친 등 특정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던 친일논쟁이 최근 언론으로 확산되고 있다.특히 이같은 논의가 재야사학계 차원을 넘어 국회로 번진 상황이어서 그동안 ‘민족지’로 불려온 동아·조선일보가 자칫 ‘민족지’ 간판을 내려야 할 형국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발단은 지난 16일 민주당 김태홍 의원(조선일보 기자출신)이 의정단상에서 ‘친일 언론’문제를 본격 거론하면서다. 김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중·고 교과서에 친일부역한 전력이 있는 신문들이 항일민족지로만 기술돼 있는 것은 민족정기를 뒤집어놓는 일”이라며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측면에서 항일민족지로서의 평가와 함께 친일협력했던 사실도 교과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일부 진보적 언론학자와 친일문제연구가들이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줄기차게 주장해온 내용이다.그러나이같은 목소리는 언론계와 관련학계의 의도적인 묵살로 별다른 사회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좀다른 것 같다.관련 연구자는 물론 여야 국회의원,교육부 당국마저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당일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최희선 교육부 차관은 답변을 통해 “일부 언론의 친일문제는 객관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반적 상식으로 통하면 교과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교육부 당국의 기존 입장에서 다소 진전을 보인 것으로,지난 5월 한완상 교육부총리가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의비슷한 질문에 대해 “내용을 엄선,친일인사들의 친일행적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한 대목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관계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섰다.우선 김원웅 한라나당 의원은 “해방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친일문제에 대해 정리가 안됐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언론의 친일행적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니 이제 교과서에실을지에 대한 판단만 남았다”고 지적했다.친일문제 전문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상범)의 김민철 연구실장은 “독립유공 포상자 가운데친일전력자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학계의 지적에 따라 보훈처는 96년 5명의 훈장을 박탈한 사례가 있다”며 “현재의 논의가 교과서 개정작업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온 언론학계에서도 잔잔한 파문이일고 있다.지난 4월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안티조선연대)대표 자격으로 교육부에 ‘중등학교 국사교과서 일제하 관련부분 수정요구서’를 제출했던 김동민 한일장신대 신방과 교수는 “교육부의 답변이 원론적인 수준이긴 하나 이 문제가 국회에서 거론된 데 대해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또 “동아·조선이 일제 식민통치에저항한 항일민족지였다는 평가가 ‘학계의 보편적 통설 또는 정설’이라는 교육부의 주장은 객관적 주장과 동떨어진,일부 소수의 주관적 의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익명을 요구한 중도적 입장의 한 언론학자 역시 “역사적 사실은 개별적 시각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언론학계 내부에서 이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현행 중·고교 국사교과서에는 동아·조선이 흠집없는 ‘민족지’로 나와 있다.중학교 국사교과서(하권,145쪽)에는 ‘민족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실력 양성운동에 앞장섰다.…’로,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하권,172쪽)에는 ‘이들(조선·동아)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등으로 나와 있다.그러나 이같은 내용은 역사의 한쪽 면만을 기록한 셈이다.1937년 중일전쟁 이후 동아·조선은 사주(김성수,방응모)개인의 친일행적은 물론 지면에서조차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친일보도를 한 사실이 지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국회 민족정기모임의 회장인 김희선 민주당 의원은 “당시 언론이 어떠한 보도를 했는지 사료를 토대로 있는 그대로 실어주면 학생들이 판단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의 왜곡도 바로잡지 않으면서 일본 교과서 왜곡을 문제삼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광장] 時여, 덧없음을 독점하세요

    “제가 겪어본 바로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기관을 거쳐 국가에 이르기까지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그런 사람들 때문에 더불어 겪는 괴로움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은 역사 지향적이고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는 반면 가령 시(예술)를 쓰는 사람은 시간 지향적이고 시간의 핵심인 덧없음에 민감합니다(그리고 역사가 비교적 용서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학은 또한 용서의 한 형식이기도 합니다).” 시인 정현종씨의 미당 문학상 수상소감이다.그는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과 ‘시를 쓰는 사람’을 대립시켜,권력욕은 더러운 것이며,시는 지고지순한 것이라 말한다.편리하나좀 촌스러운 이분법이다. 권력욕을 가진 자가 모두 ‘괴로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시를 쓴다고 남에게 ‘괴로움’을 안 주는 것도 아니다.훌륭한 정치가 있는가 하면,더러운 시도 있다.또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과 ‘시를 쓰는 사람’이 늘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권력욕에 아부하는 시인도 얼마든지 있다.가령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한 시인들이 있었다. 또 권력욕에서 수백 명을 학살하여 우리에게 잔혹한 ‘괴로움’을 준 독재자를 찬양한 시인도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두 가지를 다 한 시인도 있었다는 것.미당 서정주가 바로 그 사람이다.일제때 가미카제 결사대를 찬양하는 일본제 유미주의 시를 썼던 그는 ‘권력욕’을 가진어느 군부독재자의 용안이 “해처럼 빛나시더이다”라고 노래했다. 정현종씨의 말처럼 시가 늘 지고지순한 것은 아니다.종종이렇게 사회적 흉기가 되어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줄 수가 있다.시가 주는 이 고통은 정현종씨가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권력욕’에서 ‘역사를 독점’하고 싶은 자들의 역사학적 고통이 아니라,평균적 미감을 가진 시인이라면 누구나느껴야 할 미학적 고통이다.그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감성의 무딤이 오늘날 우리 문학이 겪고 있는 위기의본질이다. 촌스러운 19세기 데카당스의 퇴물,그것도 일본으로 건너가사무라이 미학으로 채색되어 다시 수입된 일본제 유미주의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것은 역사만이 아니다.‘문학’이 너그러이 ‘용서’해준 그 빌어먹을 역사를 몸으로 살아야하는 이들의 내면에서 왜곡되는 미감이다. 문학은 다 죽어 가는데,웬 놈의 문학상은 그렇게 승하는지. 새로운 권력욕의 현신 언론사들은 저마다 문학상을 만들어경쟁하고 있다.미당 문학상,동인문학상,인촌문학상.언론재벌이 주는 거액의 상금,언론의 권위가 부여해주는 거대한 ‘상징자본’의 찬사가 죽은 문학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어쩌면 언론사가 문학에 수여하는 그 상금과 찬사는 초상난 집의 조의금과 고인에 대한 덕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초상집의 상주에게 조의금을 내고 고인의 미덕에 관한 얘기를 들려줄 때,우리는 죽은 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리라.“그래서 저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역사를 독점하시오,나는 덧없음을 독점하겠습니다….역사는 이미 님들이 ‘독점’하고 있습니다.문학을 자신의 친일과 독재를 ‘용서하는 수단’으로 삼아 님들이 ‘독점’해 버린 그 빌어먹을 역사를 고쳐 쓰느라,민초들은 푼돈 모아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고 있고요.어쩌면 진짜 시는 시집 밖으로 걸어나와 이들 사이에 살아있는지도 모르지요.시여,‘덧없음’을 독점하세요.덧없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권력에 아부한 시를 기리는 문학상이겠지요.바니타스,바니타스,옴니아 바니타스.삶은 이렇게 무상한 것을,무슨 영광을 더보겠다고…”. 진중권 문화평론가
  • ‘작은 NGO’ 시민운동에 새바람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NGO속의 작은 모임’이 시민운동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에는 현재 10여개씩의 소모임이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국제소비자연맹이 정한 ‘화학조미료 안먹는 날’이었던지난 16일 서울 명동성당 앞.주부 10여명이 조미료 회사의광고를 흉내내며 화학조미료 안먹기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환경운동연합의 소모임인 ‘주부 환경지킴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부들이었다. 이들은 18일에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쓰레기 없는 월드컵을 치르자”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페스티벌’ 캠페인을 벌였다. 98년에 만들어진 이 소모임은 시민단체 소모임의 ‘원조’격으로 20여명이 ‘맹활약’하고 있다.3년전부터 꾸준하게 펼쳐온 1회용품 줄이기,장바구니 생활화운동은 큰 성과를 거둬 대표적인 소비자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주부들이 즐겨보는 방송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해 1회용비닐봉투를 사용하는 장면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시민단체들이 사용한 플래카드의 천을 수거해 장바구니를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구희숙 회장(52)은 “우리 소모임의주부들은 모두 환경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환경박사’들”이라면서 “집안 일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남편들도 이제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에는 이 모임말고도 야생동물 보호 소모임인 ‘하호’,어린이 소식지를 만드는 어린이 기자들의모임 ‘푸름이 기자단’, 노래패 ‘솔바람’, 등산 동호인들의 ‘산화’ 등이 있다. 14개 소모임이 활동하고 있는 참여연대에서는 답사 모임인 ‘우리땅’이 눈에 띈다. 매월 1번씩 테마여행을 떠나는 우리땅 회원들은 여행 전에 2차례 정도 만나 답사 예정지에 대해 토론한다.최근에는 공동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참여연대 발전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의 여행 주제를 ‘근현대사 기행’으로 정한 우리땅은 오는 21일 친일파 인사인 문명기와의병장 신돌석의 고향인 경북 영덕을 찾아 ‘근대사의 두얼굴’을공부할 예정이다. 회장 최근배씨(35)는 “우리땅 회원들은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라면서 “참여연대가 벌이는 운동에도 열심히 동참하고,끈끈한 우정도 쌓아가고 있다”고 자랑했다.최씨는 이 모임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도했다. 녹색연합에도 산을 찾아 환경보호활동을 하는 모임인 ‘녹색친구들’을 비롯해 ‘야생동물 소모임’,‘환경농장’,‘생태도시 모임’,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녹색다큐’,청년들의 모임인 ‘늘청모’,‘생명운동공부모임’등이 활동한다. 생명운동공부모임은 매월 조계사 등에 모여 요가,참선을배우고 생명사상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이 모임의 회장격인 ‘틀지기’ 조태경씨(30)는 “소모임 활동을 통해 회원들은 자신의 취미를 마음껏 즐기며 생활의 활력을 얻을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토론한다”고말했다. 왕성한 소모임 활동은 시민단체에 적지 않은 힘이 되고있다.소모임에 매력을 느껴 그 단체의 회원으로 정식 가입하는 사람도 많다.때문에 시민단체에서는 소모임 활동을크게반기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상근 간사들은 “소모임활동이 회원과 시민단체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고 시민운동이 시민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참여연대 시민사업국 김창엽 간사는 “전문가그룹, 상근자,회원 및 자원봉사자의 3바퀴로 굴러가는 시민운동에서 소모임의 활동은 바퀴를 회전시키는 엔진과 같다”고 평가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서울대에 아직도 일제 잔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창범(朴昌範·41) 교수는 15일개교 55주년을 맞아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민족대학을 목표로 하는 서울대에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동창회 홈페이지에서 1930년대의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호칭하는 점,94년까지 역대 동창회장이 모두 경성제대 졸업생인 점,지금도 경성제대 졸업생이 동창회의 명예회장과 고문으로 되어있는 점 등을 꼬집었다. 94년에는 경성제대의 일본인 동창회장의 개교 70주년 기념사가 동창회보에 실리기도 했다고 비판했다.현재의 학부제도 경성제대 시절의 법문학부,이공학부,의학부 등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의 교표는 서양의 몇몇 대학 교표들을 짜집기한 친일 활동 교수의 작품이며,그를 포함한친일화가를 언급한 한 미대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고밝혔다. 박 교수는 “일제 잔재는 1946년 개교한 서울대의 공식적역사와 경성제대에 뿌리를 둔 내면적 실상 사이의 이중성”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상징의 변질은 출발과 지향의 변질을 뜻한다”라고덧붙였다. 윤창수기자 geo@
  • 이회창 한나라총재 행보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의원의 ‘대통령 사퇴’ 파문 이후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원내 제1당 총재로서 국회 파행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데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국회 전략을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회동 이후 정치권지각변동 시나리오로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선 상태여서 이총재의 시름은 더욱 깊어 보인다. 특히 ‘이용호(李容湖)게이트’ 등 각종 정치공방 때마다본인이 ‘투쟁의 주역’으로 부각된 것에 부담을 느낀 이총재가 최근 공세 수위를 조절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있는 시점에 국회 파행사태가 빚어지자 내심 사태 진화에부심하고 있다는 전언(傳言)이다.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이 총재의 의중이 일선 원내 전략에서 제대로 먹히지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한나라당서울지역의 한 중진의원은 12일 “이번 파문으로 안 의원이 출신 지역(대구)에서는 인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당 전체나 이 총재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당의 전략 부재를 비판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민생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국회 파행은 이 총재의 정치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것”이라며 “특히 이 총재가 원고내용을 사전에 보고받지못했다 하더라도 영수회담 하루뒤 대통령을 공격한 것은 전략상의 실수”라고 지적했다.실제로 당 총무단이 안 의원의 원고내용을 미리 검토하고도 별다른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이 이 총재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서자 이 총재는 불편한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이 총재 부친이 지난 49년 국회 프락치사건 등에서 좌익검사로 음해를 받았지만 결백함이 밝혀져 석방됐다”며 설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등 ‘이 총재 흠집내기’에 엄중 대처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 ‘미당 문학상’ 정현종시인 대상 수상거부 촉구 1인시위 전개

    중앙일보사가 올해 제정한 ‘미당문학상’의 첫 수상자인정현종 시인(연세대 국문과 교수)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수상거부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펼쳐 귀추가 주목된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적 등을 이유로 ‘미당문학상’ 제정 자체를 반대해온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상범 동국대 교수)는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일제에 항거한 윤동주가 진정정 교수가 재직하는 연세대의 자랑이라면 ‘미당문학상’을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하고 “작년 동인문학상심사를 거부한 어느 소설가처럼 정 시인이 수상을 거부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소측은 이날부터 김용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을 시작으로 연세대 정문앞에서 정 시인의 수상거부를 촉구하는 1인시위에 돌입했으며,시상식 당일인 12일에는 시상식장인 중앙일보내 호암아트홀 입구에서도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 고당사업회 “日帝 매일신보 간부가 날조”

    일제말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게재된 고당 조만식(曺晩植) 선생 명의의 ‘학병권유’ 친일논설은 당시 매일신보 간부가 날조하여 게재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의 간디’로 불리는 고당은 그간 이 한 편의 논설로인해 일제말기 친일로 변절했다는 의혹을 받아오기도 했다. 고당기념사업회는 5 일 “매일신보 1943년 11월 16일자에게재된 고당 선생 명의의 ‘학도에게 고한다’는 당시 매일신보 평양지사의 고영한(高永翰) 지사장이 임의로 날조하여게재한 것”이라며 당시 매일신보 평양지사에 특파원으로근무했던 김진섭(金鎭燮·83)씨의 증언을 근거자료로 제시했다.김씨는 최근 대한언론인회보의 ‘그때 그시절…녹취한국 언론사(史)’코너와의 인터뷰에서 “하루는 고 지사장이 고당 선생을 취재해오라고 지시를 해 고당 선생을 찾아갔더니 선생이 함구로 일관,그냥 귀사해서 ‘안계시더라’고 허위보고를 했는데 며칠 뒤 고 지사장이 사진기자 한 명을 데리고 가서 취재했는데 사흘쯤 뒤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조작(造作)기사였다”며 “해방후 평양지사에 들렀다가 고 지사장의 자살소식을 그의 모친으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당시 그가 고당 선생의 인터뷰기사조작건으로 많이 자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해방당시 평양에서 고당의 측근으로 활약한 바 있는 월남작가 오영진(吳泳鎭)씨도 지난 1952년 출간한 ‘소(蘇)군정하의 북한-하나의 증언’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기록한바 있다.그는 “전(田)모씨가 매일신보 지국장을 지냈고 경방단(警防團)의 주요간부인 고영한과 같이 찾아와서는 고씨를 치안책임자로 적격이라고 추천하면서 그가 친일신문인으로 학도병 지원 때 조(曺)선생의 소감(所感)을 자의적으로날조하여 신문에 게재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들은 비록 ‘증언’이긴 하나 당시 관계 당사자들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평가할만 하다. 정운현기자
  • ‘신문고를 울려라’서울서 앵콜무대

    ‘언론개혁’을 대주제로 내걸고 9일 저녁 7시30분부터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마당극 ‘신문고를 울려라’가 펼쳐진다. 신문개혁 국민행동(본부장 성유보)과 전국언론노조(위원장최문순)가 공동주최하고 극단 ‘큰들문화센터’(대표 전민규)가 연출하는 이번 무대는 지난 7월 진주에서 열린 초연에 이어 앵콜로 마련됐다.언론개혁을 주제로 한 첫 마당극이며,전국 순회공연에 나선기도 처음있는 일이다. ‘언론개혁’을 풍자언어와 해학의 몸짓으로 꾸민 이 마당극은 모두 여섯마당. 첫째마당 ‘오욕의 역사’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일제에 빌붙어 친일에 앞장선 우리 신문의 뒤틀린역사를 보여주며,둘째마당 ‘구독경쟁’에서는 이사를 하는장봉수의 집에 치열한 배달경쟁이 펼쳐져 무가지와 경품살포 끝에 결국 ‘방가일보’가 선택된다. 세째마당 ‘출세기’는 언론인의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신문사에 입사한 한 신입기자가 변모해가는 모습을 통해 언론의 왜곡·편파보도 사례와 그 속에서 피폐화되어가는 서민들의 삶이 그려진다. 마지막 여섯째마당 ‘신문고를 울려라’에서는 국민의 힘으로 참언론을 이뤄내기 위해 관객과 출연진이 하나되는 대동의 한마당이 펼쳐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 공연에는 가수 강산에와 윤도현밴드가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서울공연에 이어 전주(14일),대전(25일),부산(26),강릉(11월 3일),인천(11월 4일)등 전국순회공연을 가질 예정이며,공연 수익금은 신문개혁 국민행동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 “족벌수구 조선일보는 회개하라”

    조선일보반대(안티조선)운동이 학계,노동계,종교계,시민단체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 단체들이 연대단체를 결성,언론개혁운동에 나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등 개신교 19개 단체는 2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광장에서 신문개혁 기독교연대(공동대표김광수 목사 등)발족식 및 ‘조선일보 회개 노상기도회’를 열고 조선일보의 반민족·반통일 보도를 규탄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파렴치한 탈법과 불법으로 사주들이 구속된 상황에서조차 진지한 반성의 모양새마저 찾아볼수 없다”고 지적하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자기책임을 망각하고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신문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어불성설의 현실은 더이상 지속돼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더이상 지금의 한국신문으로는 올바른 여론형성도,민주주의의 발전도,민족통일도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일 독재찬양 족벌신문을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수구 언론을 개혁하는데온 힘과 정성을 모을 것”이라고 밝히고 “조선,동아,국민일보 등의 탈세사주는 국민앞에 사과하고 경영일선에서 즉각 물러가라”고 요구했다. 정진우 기독교연대 집행위원장(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총무)은 “매주 목요일 낮12시 이곳에서 조선일보 회개촉구 기도회 및 구독거부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찬송·봉헌·축도 등 기독교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김 공동대표를 비롯해 정상시(기장 생명선교연대 대표)·이광일(기독학생총연맹 총무)·이해학(기장 평화통일 위원장) 목사 등 교계 인사,성유보 신문개혁 국민행동 본부장(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등 언론단체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3당대표 佛心잡기 ‘조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23일 부산에서 조우했다.세 사람은 부산해운대에서 열린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성공개최 기원 팔관회 법회’에 참석,국민통합과 위기극복을 위한 불교계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야 대표는 행사장 입장에 앞서 10여분 동안 자리를 함께 했으나 “오셨습니까”라는 간단한 인사와 악수만 나누고 대화를 하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이들 모두 영남권과 불교계 공략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총재의 일정은 강행군 그 자체였다.이총재는 이에 앞서 창원 성주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불교신도회 경남 대법회’에도 참가했으며,오전에는 충남 예산의 종가(宗家) 입주식에 들러 하루에 충청권까지 아우르려는 의욕을 과시했다. 이총재는 특히 종가 개축에 대한 비난 등을 의식,정치적의미 부여를 경계했다.전주 이씨 종친회도 이날 “이총재의 부친인 이홍규(李弘圭) 옹은 친일을 한 적이 없다”는보도자료를 내 이총재를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한광옥 대표는 부산 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미 테러참사 이후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국민과 경제를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야지 당리당략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면서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 등을 정치쟁점화하고 있는 야당측을은근히 꼬집었다. 이지운기자 jj@
  • 명계남씨등 영화인들 안티조선 선언 발표

    민주노총,전교조 등에 이어 영화인들도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나섰다. 영화배우 명계남씨와 영화감독 정지영씨,영화평론가 이효인씨 등 영화인 60여명과 ‘푸른영상’ 등 30여개 영화단체관계자들은 12일 오후 서울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조선일보 반대 영화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조선일보 등 언론권력들은 친일 행적이라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은 커녕,지금까지 탈세의 합리화와 만행에 가까운 왜곡보도를 일삼으며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를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에 대해 전면적 반대운동을 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 ▲조선일보에 대한 기고 및 인터뷰 거부 ▲언론개혁이 굴곡되거나 좌절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시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촉구 등을 행동지침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한국영화의 호황기인 요즘 경쟁적으로 과도한 광고비를 책정하여 신문사에 막대한 자금을 지불해왔다는 사실과,촌지·향응 등을 제공해 언론의 부패와 곡필을 조장해온 점에 대해모든 영화인들의 자성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반대 선언에는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감독,‘남부군’의 정지영 감독을 비롯,권해효,명계남씨 등 인기배우들도 참가해 힘을 보탰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황철민 감독(세종대 교수)이제작한 ‘안티조선 다큐멘터리 영화-옥천전투’를 상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黨·靑 개편 어떻게

    10·11일 단행될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민주당 주요 당직자 인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당] 김원기(金元基)최고위원 등 지명직 4명의 사표가반려됨에 따라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에 대한 ‘친일파’발언 파문으로 사퇴한 안동선(安東善)전 최고위원의 자리만 바뀔 전망이다.안 전 최고위원의 자리는 당 대표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이 맡게 된다. 사무총장은 기획력과 균형감을 갖춘 중량급이 기용될 전망이다.이해찬(李海瓚) 정책위의장이 “쉬고 싶다”며 고사하고 있지만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인 최재승(崔在昇) 의원도 거론되고 있다. 정책위의장에는 경제부총리를 지낸 홍재형(洪在馨) 의원,농림·환경부 장관을 지낸 강현욱(姜賢旭) 의원의 임명이점쳐진다.강운태(姜雲太) 제2정조위원장의 ‘파격 인사’도 제기된다. 선출직인 이상수(李相洙) 총무는 유임될 것으로 보이나원내 대책전략 부재론이 제기됨에 따라 사표 수리를 전제로 임채정(林采正) 의원 등이 거론된다.전용학(田溶鶴) 대변인도 유임 가능성이 크나 바뀔 경우 이낙연(李洛淵) 설훈(薛勳) 김민석(金民錫) 의원 등의 기용이 점쳐진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교체 폭은 크지 않을 것 같다. 주중대사에 내정된 김하중(金夏中) 외교안보수석을 비롯, 2∼3명 정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재임기간이 긴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과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도다.지난 3월 들어온 이태복(李泰馥) 복지노동수석은 10·25 구로을 재선거 출마여부가 변수다. 홍원상기자 wshong@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9)월북작가 김남천

    편지를 잡문 차원에서 본격적인 문학 토론의 마당으로 격조있게 끌어올린 사람은 김남천(金南天,본명 孝植·1911∼?)이다.평남 성천군청에 근무했던 아버지나,일본 유학중 결혼하게 된 첫 번째 부인의 아버지가 성천 군수였다는 사실은 김남천의 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육중한 몸매에 미남이기도 했던 그는 일본 호세이(法政)대 시절부터 좌익운동에 투신,당대 운동권의 주역 임화,최승희의 남편 안막 등과 도쿄에서 카프 활동을 전개하면서 일약 지도적 인물로 부상한다. 이후 그의 이름은 언제나 임화와 나란히 붙어 다니면서 카프 후반기를 제압하는 주역으로,비단 문학활동만이 아니라 평양고무공장 파업(1930년)에 참여하는 등 현장성 강한 운동으로 제1차 카프 검거(1931년 8월)때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1933년초 병보석으로 출옥하나 두 딸을 남겨둔 채 아내가죽어 조신하던 터라 이듬해 카프 제2차 검거 때는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1935년 평양에서 상경한 그는 임화,김기진과함께 경기도 경무부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하여,10년에 걸친한국문학사에서 카프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이 사실 때문에 이들 셋은 두고두고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여운형이 발행인이었던 조선중앙일보(1933년 2월 창간)에입사했던 그는 근대 민족언론사의 획을 그었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가 된다.베를린 올림픽(1936년 8월1일)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사진을 국내에 처음소개한 것은 8월 25일자 동아일보였고,이 사건으로 사회부장이었던 작가 현진건이 언론계를 떠난 이야기는 다 아는 사실이다.신문사 끼리의 경쟁심리 때문에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가슴에 새겨져 있는 일장기를 없애고는 그 위에다 희미한태극까지 부각시켜 자진 휴간(9월5일)을 거쳐 아예 폐간되었다.바로 김남천의 실직 사연인즉슨 이러하다.이즈음 그는 창작과 비평의 양수잡이로 맹활약하면서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이런 내막이 담겨있다. 그는 최정희의 소설 ‘흉가’에 대하여 월평 ‘여류작가의난관과 ‘흉가’ 검토의 중점’(조선일보 1937년 4월8일)에서 기대와 비판을 동시에 가하고 있다.당시 김남천의 태도에 대해서는 출옥후 이미 전향했다는 관점과,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고수했다는 주장이 다 있는데,이 편지로 미뤄볼 때 후자 쪽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문학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글이다.김남천의 비평활동에 불만을 품은 작가들은 많았는데,편지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한 건 극작가 김진수(金鎭壽.1909∼1966년)였다.평남 중화군 출신인 그는 릿교(立敎)대학 졸업 후 만주국 간도성 연길현(延吉縣) 용정가(龍井街) 은진(恩眞)국민고등학교에근무(1938∼45년)했다.1920년 캐나다인 부두일(富斗一)이 창립한 이 학교는 송몽규 문익환 윤동주가 다녔던,민족의식이강한 명문교인데 1946년 ‘룡정중학’으로 병합되어 오늘날중국 동북지역의 관광명소로 남아있다. 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지는 바로 이 학교 공문서 서식용지이며,내용은 김남천의 평문 ‘동시대인의 거리감-9월 창작평’을 화두로 삼는다.최정희의 ‘지맥(地脈)’을 언급한이 평문이 김진수에게는 무척 못 마땅했었던 것으로 썼지만속내는자신의 분풀이가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글을 쓴 날자가 9월28일,책방에서 ‘문장’지를 샀다면서 그는 김남천을 한껏 물어뜯는다.누가 읽어도 편견과 속좁음이 느껴지는 이 글을 왜 썼을까.김진수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황순원등과 학생예술좌를 창립(1935년),연극활동을 했는데,문단활동은 극예술연구회(1931년 김진섭 유치진 이헌구 등이 창립) 공모에서 장막극 ‘길’이 당선(1936년)되고서였다.그가 단막극 ‘향연’을 ‘조광’에 발표한 것은 1938년 11월호였는데,김남천은 발 빠르게 조선일보 창작평 ‘미성년의 문학-김진수와 권명수’(1938년 11월11일)에서 “극연(劇硏) 당선작가(불행히 나는 당선작을 읽지 못했다)김진수씨의 희곡 ‘향연’을 읽고 나서 나는 이 분이 미혼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는 서두로 시작하여 그리 탐탁찮은 평을 가해댔다. 김남천에 대한 유감은 아마 이때부터 똬리를 튼 것 같다. 불만은 또 있다.김진수는 애시당초 문학에서 사회니,민족이니 하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김진수의 울분 속에는 나름대로의 심미안이 탄탄하게 드러난다.작가 최명익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바로 김진수의 미학적 체질을 엿볼 수있는 대목이다.친일작가 장혁주와 최대의 친일평론가 김문집은 긍정하면서 김남천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비꼰 김진수가 8·15 후에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는 물으나마나다.“유치진과 더불어 해방 이후부터 50년대 희곡계의 주도적 세력이었던 보수주의적 극작가들의 보편적인 유형”(박명진 ‘한국희곡 이데올로기’)이었다는 게 정평이다. 김진수에게 그렇게도 못 마땅했던 김남천은 8·15 후 임화와 함께 화려하게 재기,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다가 월북,남로계의 몰락으로 남북한 문학사의 지평으로부터 사라져버린 별이 되었다.통일은 아마 이들의 복권과 더불어 다가 올것이다.역사는 어떤 탄압으로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니혼(日本)대학을 중퇴한 정비석(1911∼1991년)이 ‘성황당’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1937년)되어 상경을 꿈꾸다가 매일신보 기자가 된 것이 1941년 10월이니,그가 최정희의 소설 ‘인맥’(1940년 4월)을읽고 감동하여 보낸 편지는 이즈음의 것이다.그가 상경 직전 있었던 곳은 평북 용천군.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백천(白川)온천을경영하며 많은 문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했던 장만영(1914∼1975년)은 뭔가 최정희와 토라짐 같은 게 내비치는 사연을 담고 있다.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시라. 이렇게 한쪽에서는 싸우며 고뇌하는 다른 한쪽에서는 그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또 어느 다른 곳에서는 친일에 열을 올려 그 대가로 호사를 누리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는 유유자적 즐기고 있는 속에서 역사는 흐른다.이럴 때대체 남도출신 문학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냈을까.김동리(金東里,본명 始鍾·1913∼1995년)는 이 무렵 참담한 심경으로 경신학교에다 휴학계를 내고 형 범부(凡父,1897∼1966년)가 살던 부산으로 내려갔다.동양사상의 대가인 이 당대의 수재이자 기인인 범부가 어렵사리 꾸려가는 살림살이에 얹히게 된 동리는 영도다리에 떨어져 죽어 버릴까도 생각했으나,어찌 연이 닿아 형이 은신처로 삼았던 경남 사천군 다솔사(多率寺)로 거처를옮긴 게 1935년이었다.신춘문예 당선상금을 밑천 삼아 창작에 몰두하겠다는 결의였다. 김종직(金宗直)의 17대손인 이들 형제의 성공담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없지 않다.무오사화에 얽혀 부관참시형을 당한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은 그 화를 피하여 월성군 서면 계림골로 숨어들어 정쟁을 피하곤 했다.이런 문중일수록 풍수지리에 밝아 김동리의 할아버지도 선산을 보유했는데,한 권세가가 그 터에다 묘를 쓰자 그는 겁도 없이 그걸 파헤쳐 버렸다고 전한다.권세가는 할아버지를 귀양보냈는데 돌아와서는또 그 권세가의 무덤을 파헤쳐 다시 귀양,또 귀향하여 파헤치기를 세 번 되풀이하자 세도가의 기가 꺾여 포기했다는 전설 아닌 사실이 전한다.그 할아버지의 본댁은 이 와중에서자살해 버렸고 재혼하여 얻은 아들이 김동리의 아버지 김임수(壬守)이다.권력의 피해를 입으면 이를 피하거나 동경하거나 혹은 도전한다.아니면 이 세가지를 다 겸하기도 한다.김동리 일가가 지녔던 이런 가풍은 그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샤머니즘적 인습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로 입문한 것은 어머니였고,그녀의 영향으로 동리는 경주 제일교회 부속학교를나와 대구 계성학교에 다니다가 서울의 경신으로 전학했지만 중퇴했다. 다솔사에서 이내 해인사로 거처를 옮긴 김동리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약간은 들떠서 상경하나 이 시골뜨기 신인에게 인정을 베풀기에는 당시 경성(京城,현 서울)문단은 너무 재재다사(才才多士)에다 각박했다.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료인 서정주와 어울리면서 울분을달래던 그는 이듬해에 다솔사가 세운 광명학원 교사로 내려가게 된다.처음에는 다솔사에 기거하며 광명학원까지 걸어다니던 김동리는 그 지방의 몰락 토호집에 하숙하다가 그 집 딸 김월계와 결혼(1938년),학교 부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때 그는 쇠약과 우울증으로 수필 한 편도 쓸 수 없었던 지경인데도 선비의 후예다운 기개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큰 불평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신념이,일테면 천지의 정기(正氣)와 통하는 것이라고 철칙같이 믿고 있으니까,그른 것은 현실의 그것이요,그 그른 현실은 천지의약속에 따라 시정될 것이라고,이건 ‘만만디’식이라고 웃으실는지 모르지만 여기엔 조곰도 독기(毒氣)가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말하자면 결코 염세자(厭世者)도 아니겠습니다.”이 편지들은 대략 1940년부터 1943년 그가 징용을 피해 사천읍에서 양곡조합 촉탁이 되기 이전에 보낸 것들인데,입장이달랐던 선배에게 꺼내기 어려운 화두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만큼한 절조 위에서라야 순수문학은 제 자리를 찾을 수있을 터이다.그의 발신지 주소는 정확히 ‘사천군 곤명(昆明)면 원전(院田)' 이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화제의 학술신간 3권

    ●역사속의 대구,대구사람들(대구·경북역사연구회 지음,중심 펴냄)= 흔히 ‘TK정서’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대구·대구사람들은 오늘날에 와서 가장 보수적·배타적·폐쇄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그러나 조금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의외로 대구사람들이 진보적이었음을 알수 있다. 해방후 미군정의 한반도 분단정책과 친일경찰들의 횡포에항거에 ‘10·1항쟁’을 일으킨 곳이 바로 대구였으며,1956년 재3대 대통령선거에서 평화통일론을 내세운 진보당의조봉암 후보에게 72.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사람들역시 대구시민이었다.이처럼 대구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전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였다.한때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가 수구적 이미지로 바뀐 것은 5·16쿠데타 후 30년간 ‘영남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필자들은 진단한다.1만원●한국사의 근대성 연구(권희영 지음,백산서당 펴냄)= 한국역사학계의 대표적 논쟁 가운데 하나가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이다.근대화가 시작된 시기를 언제부터로 볼 것이며,근대화의 주체는? 또 근대화에 관한 해석은? 등이다. 우리역사의 근대성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는 이데올로기에감염된 프리즘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즉 남에서는 민족주의,북에서는 유물사관이라는 ‘대롱’을 통해 역사를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민족주의 사학이 한국역사를 보는데 기여한점도 있지만 이 시각만 가지고는 21세기 지구촌시대의 역사관으로 부적합하다며 국사학계를 꼬집고 있다. 근대성의 한 기점을 조선 중세 유교문명과 프랑스 근대문명의 ‘충돌’로부터 찾고 있는 저자는 병인양요,동학농민전쟁,일제강점기,3·1의거와 해외에서의 사회주의와의 만남 등을 통해서 실증하고 있다.1만3,000원●신화학 강의(안진태 지음,열린책들 펴냄)= 요즘 세상에신화(神話)를 믿는 사람은 없다.즉 근대 세계에서 신화라는 개념은 낡아빠진 것이 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에는 근대세계가 찾아낸 형이상학적지식이 신화를 더이상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외출판가에서는 신화와 관련된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또 종교,인류학,사회학,정신분석학,미술 등에서즐겨 응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이 책은 그간 신화연구의 불모지인 국내 학계에 독문학자인 저자가 처음으로학술적 정리한 성과물이다.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해 신화 전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 부족함이없다. 수 년전 학술진흥재단은 신화학 등 몇몇 분야의 학문을 ‘보호학문’으로 지정,연구를 지원해 오고 있다.신화의 이론,그리스 신화,천사의 신화,민담에서의 인간과 동물의 신화,여신 헤카테의 신화,점성술과 고대 플루토신화,신화의현대적 사상 등이 주요 내용이다.1만8,000원.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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