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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대선 대해부] 이회창→경륜 노무현→개혁 정몽준→참신

    ■세 후보 지지 이유 뭔가 유권자들이 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가의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알아낼 수 있는 직·간접적인 통로가 된다.아울러 각 후보의 정치적 강점과 약점을 짚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권자들에게 “000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개방형으로 질문하였다.개방형 질문의 장점은 응답자들이 비교적 편한 심리적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회창:검증된 경륜있는 지도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인 11.6%가 지지 이유로 “이회창 후보는 검증된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소위 병풍(兵風)이 검찰의 사건종료 선언으로 잦아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후보는 97년 대선 이후 줄곧 야당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고 그동안 수많은 스캔들을 겪었다.예컨대 병풍,호화빌라,부친의 친일여부 등 많은 의혹들이 이 후보를 괴롭혀왔다. 그러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는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제1당의 대통령후보로서 현 선거 정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각종 의혹들이 향후 TV토론 등에서 다시 재론될 지는 몰라도 이 후보는 당분간 스캔들로부터 다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검증 문제 외에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들은 여론,소속정당,정치적 경륜 등의 순서로 나타난다.이 후보 지지자의 6.8%는 주위 여론이 이 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 후보 지지자의 6.6%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실정에 대해 비판과 견제 역할을 담당했던 한나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 후보를 지지하며,6.5%는 이 후보가 오랜기간 큰 과오 없이 한나라당을 이끈 지도자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밝혔다. ◆노무현:참신하고 서민적인 지도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지지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노 후보의 참신성을 지적하고 있다(10.1%). 이는 노 후보가 아직 젊고,비교적 3김(金)식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 있으며,당내 경선 과정을통해 보여준 개혁적인 마인드 등을 반영하는 결과이다. 한국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국민들이 정치적 불신과 냉소주의에 젖어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노 후보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많은 국민들에게는 참신하게 비쳐졌을 것이다.그 결과 노 후보는 경선 후 한동안 엄청난 국민적 인기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국민적 인기가 왜 갑자기 냉각돼 버렸을까를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첫째 검증되지 않은 일시적 인기는 검증 과정에서 얼마든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당내 경선이라는 일시적인 정치적 이벤트에 의해 촉발된 인기는 본선에서 그대로 유지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당 내의 파벌싸움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소위 ‘반창(反昌)연대’를 기치로 하여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간의 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사실상 노 후보의 인기를 냉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셋째 노 후보가 당내 여러 세력들을 통합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다른 이유들로는 신뢰성(8.1%),인상이 좋아서(7.6%),소속정당(6.4%),검증된 후보(6%),서민적이기 때문에(5.1%)의 순으로 나타났다.참신성,인상 등은 소위 유권자가 후보자에게서 느끼는 이미지이다.이러한 결과는 노 후보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다소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뢰성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당내 불협화음과 의원탈당 사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후보로서의 행보를 지속해나가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노 후보의 서민지향적 정책성향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노 후보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정몽준: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지도자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지지자 중 압도적인 다수가 지지 이유로 참신성과 깨끗함을 들고 있다.정 후보가 참신하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무려 34.4%이다.이런 결과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스포츠 지도자의 이미지가 정치 영역으로 전도된 것으로 노 후보의 참신성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스포츠 지도자의 이미지를 정치 영역으로 과연얼마나 견고하게 연결하느냐가 정 후보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정 후보를 지지하는 다음 이유는 깨끗한 이미지로 나타났다(12.8%). 유권자들의 비난 대상인 소위 3김(金)식 정치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주로 정 후보의 과거 행보가 경제계와 스포츠계에 집중적으로 관계돼 왔기 때문에 비교적 정치적으로는 깨끗한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끗한 이미지가 정 후보의 정치적 행보가 진행되면서 과연 그대로 유지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정 후보는 정당기반이 취약하다.한국의 정당정치가 아무리 비판을 받더라도 선거에 있어서 발로 뛰는 정당조직의 활동은 아직 유효하다.급조된 정당조직을 기반으로 얼마나 유권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나가느냐에 정 후보의 경쟁력이 달려 있는 것이다. ■왜 다른 조사와 다른가/ 전화 응답률 60%로 높여… 정확성에 심혈 이번 KSDC 조사는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타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결과와 몇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KSDC 조사는 기간이 길더라도 가구당 최소 6번 이상전화를 걸어 응답률을 60%로 올려 정확도를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또 인위적으로 성별,연령에 대해 할당표집을 하지 않고,통계적 원칙을 지킨 확률표집을 고수하고 있다. 첫째,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다자대결 구도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상승,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하락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KSDC 조사에서는 정 후보의 하락세는 동일한 현상이지만 이 후보와 노 후보의 경우도 미세하게 하락하는 등 전반적으로 모든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부동층의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둘째,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정 후보의 지지자 이탈표가 이 후보 또는 노 후보에게 쏠림으로써 이 후보와 노 후보의 지지도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KSDC 조사는 정 후보의 지지표가 바로 이 후보 또는 노 후보 쪽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부동층으로 선회한다고 해석하는 점에서 다르다. 유권자들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일종의 과정이 필요하다.지지 후보를 바꿀 경우에는보통 처음에 지지한 후보를 철회한 다음 일정 기간을 두고 다른 후보들을 비교한 다음에 새로운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일부 여론조사는 정 후보의 하락세가 지역적으로는 충청과 호남,그리고 연령별로는 20대층에서의 이탈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 조사(10월31일∼11월2일)에서 정 후보의 하락세는 연령별로 20대(9월13일 38.6%→10월31일 30.2%)의 이탈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KSDC 조사에서는 정 후보의 20대 지지율이 10월 초 30.7%에서 11월초 32.2%로 오히려 증가했다.정 후보의 전체 지지율 하락은 20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여론주도층을 형성하는 40대와 50대에서의 급락이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TN소프레스와 SBS는 지난 9월 이 후보가 대전·충청권에서 정 후보에게 6%포인트 뒤졌지만,지난달 30일 조사에서는 24.2% 포인트 차로 크게 역전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호남에서 노 후보의 지지율이 57.2%로 지난 9월 조사에 비해 20% 포인트 정도 올랐고,정 후보의 지지도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KSDC 조사에서는 충청 지역에서 정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에서 이 후보를 앞서고 있고,호남 지역에서도 정 후보의 지지가 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특정 지역의 후보별 지지도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북문제와 유권자 성향/ 55% “지지후보 결정때 北核고려” ‘지지후보 결정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자가 5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대북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후보’로는 21.5%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꼽았고,다음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17.5%),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11.4%) 순이었다. 또 유권자의 약 72%는 대북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즉 대북문제를 잘 해결할 후보로 이 후보를 지목한 유권자의 76.9%가 이 후보 지지의사를 밝혔다.노 후보와 정 후보의 경우에는 이러한 유권자가 각각 72.2%와 66.3%였다. 물론 먼저 특정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 후보의 대북문제 해결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대북문제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북한의 핵문제가 중요한 변수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대북문제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북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열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을 뿐아니라 지역적 균열구조마저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영남 지역 유권자의 약 30%가 이 후보의 대북문제 해결능력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 호남에서는 유권자의 3.3%만이 이 후보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아울러 세대간의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이슈 또한 대북문제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또한 반(反)DJ와 반창(反昌)을 외치는 정치세력도 대북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결국 대북문제가 대선 과정에서 집중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대선 과정에서 대북문제의 영향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큰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DJ정책·후보지지 관계/ “햇볕정책 잘못” 유권자 51%가 이회창후보 지지 일반적으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과 대선후보 지지 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즉 정부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 여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며,반대로 정부정책으로 인해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면 오히려 야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 4년 반 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추진한 일 가운데 가장 잘못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27.1%가 의약분업을 지적했다.그 다음으로는 실업문제(14.3%),햇볕정책(11.3%),지역편중 인사(7.3%),공교육 문제(5.3%),복지문제(5.0%) 순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과 대선후보 지지도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햇볕정책과 지역편중 인사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 중에서 51.3%와 39.2%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반면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는 실업문제와 공교육 문제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로부터 각각 35.2%와 33.3%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공교육 문제와 복지문제의 잘못을 지적한 층에서 가장 높은 38.9%와 32.0%의 지지를 얻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일 가운데 가장 잘못된 것으로 의약분업을 지적한 사람들은 이 후보에 27.5%,정 후보에 25.1%로 비슷한 지지를 보냈다.노 후보에 대해서는 19.9%만 지지했다. 공교육 문제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은 노 후보(38.9%)와 정 후보(35.2%)에게 비슷한 지지를 보낸 반면 원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후보에 대한 지지는 11.1%에 불과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어느 후보가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표심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투표율 전망/ 부동층중 “꼭 투표” 5.5%P 증가 이번 조사 응답자의 88.6%(‘꼭 투표하겠다.’ 75.9% + ‘아마 투표할 것이다.’ 12.7%)가 투표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지난달 조사에 비해 4.8%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꼭 투표하겠다.’는 ‘적극적 투표 의사층’의 수치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아마 투표할 것이다.’라는 ‘소극적 투표 의사층’은 약 4.5% 포인트 증가했다. 적극적 투표 의사층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 67.8%,30대 75.1%,40대 79.5%,50대 이상 82.1%로 노고소저(老高少低) 현상이 여전히 뚜렷했다.20대 저연령층과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에서 적극적 투표 의사층의 비율은 지난달과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없었지만 30대와 40대에서는 각각 3.0% 포인트,3.8%포인트 증가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적극적 투표 의사층을 지역별로 살펴보면,대전·충청 지역에서의 비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 특징이다.지난달 조사에서는 68.1%만이 적극적 투표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그 규모가 82.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한편 영남 지역에서의 비율은 지난달에 비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대구·경북 지역은 6.2% 포인트(81.6%→75.4%),부산·울산·경남은 7.5%포인트(82.0%→74.5%) 감소했다.이회창(李會昌) 대세론이 자리를 잡으면서 영남 지역에서 투표 참여 강도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원 지역은 이번 조사에서도 66.6%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한편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경우는 지난 조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호남 지역에서는 약 6% 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후보 지지자별로 적극적 투표 의사층을 살펴보면 이 후보 지지층의 85.0%가 적극 투표 의사를 밝힌 반면,노 후보의 지지층은 77.2%,정 후보의 지지층은 81.1%로 나타났다.지난달 조사와 비교해 볼 때,이-노 후보의 경우 투표 강도에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정 후보 지지층에서는 적극적 투표 의사층의 비율이 3.2% 포인트 증가한 것이 특이하다. 적극적 투표 의사층만을 상대로 후보별 지지도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를 상대로 한 조사와 차이를 보인다. 적극적 투표 의사층에서 이 후보는 32.1%의 지지를 얻어 정 후보(23.2%)와노 후보(17.7%)보다 각각 8.9% 포인트,14.4% 포인트 앞서고 있다. 다자대결 구도시 대선후보 지지와관련해 ‘모름·무응답’이라고 응답한 부동층 중에서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밝힌 계층의 비율이 10월 초에는 58.4%였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5.5% 포인트 증가한 63.9%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는 부동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지지 후보를 갖고 있는 이른바 ‘은폐형 부동층’의 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추론된다. ‘적극적 투표의사 부동층’에는 여성(61.8%),50대 이상 고연령층(43.4%),월소득 150만∼300만원의 중산층(35.8%),가정주부(39.6%),인천·경기 지역거주자(26.5%)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 SBS ‘야인시대’ 15일 시청률 51.5%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의 시청률이 드디어 50%를 돌파했다. 종로 패권을 둘러싸고 김두한(안재모)과 구마적(이원종)의 격투신이 방영된 15일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51.5%를 기록했다.TNS가 조사한 시청률은 45.5%로 나타났다. 초반 구마적에 당하면서 수세에 몰리던 김두한이 막판에 분투,구마적을 제압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유발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두한은 종로의 새 두목으로 등극했고,구마적은 만주로 떠나 이 드라마에서 스타가 된 이원종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야인시대’는 앞으로 김두한이 서대문·마포 등 각 지역패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박진감있는 액션이 펼쳐지는 한편 기생 설향,하야시 처제 나미코,친일파의 딸 박인애 등과 엇갈린 사랑이 시작될 예정이어서 드라마의 인기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 이기훈 역사문제 연구원 논문 “박정희 파시즘적 민족의식 일제사범교육서 비롯됐다”

    박정희의 파시즘적 민족의식은 대구사범학교 때 형성돼 이후 민주주의 이념과 공존하기 어려웠으며,그의 파쇼적 통치권 행사의 배경으로 사범학교 교육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역사문제연구소가 최근 주최한 ‘식민지 경험과 박정희 시대’를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에서 이기훈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일제하 식민지 사범교육-대구사범학교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박정희의 경우 사범대에서의 일본식 교육과 이후 일본육사∼만주군관학교∼직업군인 등을 거치면서 일사불란한 군사적 질서체계가 몸에 배어 파쇼적 성향을 체질화하게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찍부터 탐독한 나폴레옹 전기와,일본식 강담(講談)형식으로 서술한 친일문인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도 그의 파쇼적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됐다.이 연구원의 강연 요지를 정리한다. 사범학교 시절 박정희의 성적은 3학년부터 급락해 4∼5학년 때에는 거의 꼴찌였다.(3학년-67/74,4-73/73,5-69/70)그러나 교련이나 군사학 성적은 빼어났다.그의 군사적 규율이나 질서 적응력은 이때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많은 사범학교 졸업생들이 자신의 ‘정신적 골격이 재학중 거의 형성됐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이는 그가 만주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과 내무생활은 물론 학과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수시로 비서관이나 아들 방을 점검,정리정돈이 되지 않았으면 호되게 꾸짖곤 했다.모든 면에서 그는 군사적 규율과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선호했다.이런 집요한 군사적 근대성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오랜 직업군인 생활의 결과이겠지만,그 기초에 사범학교 시절의 교육경험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박정희가 꿈꾼 군인의 첫 모델은 나폴레옹이었다.본인도 보통학교 때부터 이광수의 ‘이순신’과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 군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사범학교 입학후 이런 영웅숭배와 모방욕은 더욱 강렬해졌다.특히 나폴레옹에 집착해 사범학교 시절에는 자신과 나폴레옹을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을숭배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족의 영웅’을 숭배한 그가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당시 만연한 영웅숭배적 시류와 입신양명의 욕망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박정희는 사범학교에서부터 ‘제국의 체제 내에서 입신출세한다.’는 야망을 키워간 인물이다.이런 그에게 이광수가 각색한 ‘이순신’은 매우 유효한 모델이 됐을 것이다.‘이순신’은 역사적 인물을 이광수가 자기식으로 해석한 일본식 강담에 가까웠다.그가 “우주는 힘이고,전쟁은 민족의 힘의 발현이나,우리에게는 힘이 없으므로 청년학생들은 사욕을 버리고 영웅적 지도자가 돼야 한다.”며 ‘열등한 민족을 개조할 영웅’으로 둔갑시킨 인물이 바로 이순신인 것이다. 결국 이광수의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체제 내에서 유기적인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정치적 단위였으며,박정희도 이런 망상에 빠져들었다. 박정희의 민족 관념은 반제국주의적인 모티브가 아니라,체제 내에서 경쟁의식으로 전화한 대표적 사례였다.그가 문경보통학교 훈도 직을 그만두고 만주로 갈 때,민족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이런 박정희의 사고 형성에는,철저한 ‘황도주의자’로,일본 패망 직전까지도 “조선 독립의 망상을 품지 말라.”고 학생들을 몰아친 사범학교 역사담당 교사 사쿠마(佐久間)의 영향이 컸다. 결국 당시 사범학교 교육은 병영 같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충량한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했으며,박정희도 이런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규율과 질서,그리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파시즘적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갔다.이런 그에게 민족의식이란 일제의 파시즘적 지배구조를 실천하는 소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기고] 이봉창의사 순국 70주기를 맞으며

    “우리 2000만 한민족을 괴롭히고 억압하여 못살게 한 자는 일본천황이다.이 자를 내가 처단해야 빼앗긴 나라가 독립할 수 있다.” 이말은 1931년 초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도자 석오 이동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가 일왕의 폭살을 자원했던 이봉창 의사(1901~32)의 절규요 한민족의 대변이었다.31세의 그는 스스로 원해서 일본침략의 최고 지휘자를 처단코자 했으므로 지도받은 다른 의열사보다 가치가 매우 높다. 그는 1932년 1월8일 오전11시를 지나 폭살 시도 3번째 지점인 도쿄 중심 경시청 앞에서 일왕이 연병장으로부터 궁성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폭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그러나 그 자리에서 당당히 “나 여기 있어 잡아가!”라고 소리치며 의연하게 연행되어 갔다.일제는 속전속결로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그를 사형에 처했다.지금으로부터 70년전의 일이다. 뜻깊은 고희의 추모연륜을 맞아 호남형의 미혼청년 이봉창 의사로부터 무엇을 배울까.첫째,그는 식민지 상황에서의 최고의 가치는 독립임을 자기 희생으로 보여주었다.그는 일본인으로부터 극심한 차별과 나라없는 슬픔을 동시에 느끼면서 국가와 민족이 세계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에 조금만 협력해도 호의호식할 수 있어 친일파가 양산되는 분위기였으나 그는 이를 결연히 거부했다.식민지 상황에서 못살고 고통을 받는다 해도 대한민국이 독립된 후 내나라의 떳떳한 주인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이봉창으로부터 애국의식의 투철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둘째,그에게는 남다른 인내심과 용기가 넘쳐 흘렀다.일본인의 극심한 차별대우에도 그는 뒷날을 위해 은근과 끈기로 참았다.그는 효창동 자택에서 청년애국단을 조직하고 동지를 모아 ‘큰 사업(독립운동)’을 일으키려 했다.그러나 여의치 않아 집안의 도움을 받아 ‘호랑이를 잡으러 굴’에 가듯 일본행을 결심했다.일본에서 5·6년정도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기회를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일본정보원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창가를 기웃거리고 도박장을 드나드는 위장을 하기도했다.마침내 그는 교토(京都)일대에서 일왕의 거동을 보고 제거의 결심을 굳혔다.그러나 자금과 작전이 필요했다.이를 달성하기 위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갔다.임시정부 지도자들도 그의 용기와 용의주도한 행동에 감동했다.인내심과 용기는 그를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남게했다. 셋째.자유·정의·권리를 위해 일신의 안위를 따지지 않았다.토인비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알 리 없었겠으나 그는 이를 실천한 것이다.정의를 쟁취하려면 큰 희생이 뒤따른다고 믿었다.일왕이란 ‘신(神)’같은 존재를 넘어뜨리는 것을 그는 정의로운 공공의 이익취득 수단이라고 믿었다.이동녕 선생과 김구 선생앞에서 선서할 때 “지난 31년간 쾌락을 맛보았는데 이제 뭐가 아쉽겠습니까.웃으며 저를 보내 주세요.”라고 당당히 외치던 그의 음성은 곧 질곡으로부터 권리를 찾으려는 한국 젊은이의 정의로운 몸부림이었다.이봉창 의사가 서거한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바람직한 한국 청년의 건강하고 싱싱한 참모습의 모델로 남아 있다.현실의 쾌락과 자신만의 이익을 우선하는 오늘날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 한국사학 명예논설위원
  • 불온통신 단속조항 지난6월 위헌 결정, 유해사이트 급증 관리 ‘속수무책’

    건전한 사회정서를 해치는 인터넷 사이트의 단속 근거가 됐던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 단속’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유해사이트가 급속히 늘고 있다.당국은 근거 규정이 없다며 적극적인 단속을 하지 않고 있어 후속 법규 마련이 시급하다. 7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헌재 결정 이후 유해 사이트가 크게 늘어나 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사이트가 9월 말 현재 3092개에 이른다고 밝혔다.지난해 807개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관리 대상의 40.2%인 1243개가 폐쇄됐으나 지난 6월 헌재 결정 이후에는 폐쇄 건수가 크게 감소했다.지난해에는 관리 대상의 56.3%인 455개가 폐쇄됐었다.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과 ‘프리챌’에는 가출을 부추기는 사이트가 100여개나 된다.‘서울 75∼87년생,좋은 만남,가출·계약커플·자취동거’ 사이트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윤락 방법을 소개하고 계약동거를 제의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 있다.가출 소녀를 전화방과 술집으로 유인하는 ‘인터넷 포주’도 이 사이트에 몰려든다. 윤락업소 취업을 소개하는 사이트도 새로 등장했으며,스와핑(부부교환),가학·피학증을 담은 변태사이트,스너프 필름(실제 살인장면을 찍은 필름) 사이트도 늘고 있다.7일 사귀던 여성을 살해하고 2000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김모(35)씨도 범죄사이트의 ‘전과자 대화방’에서 공범과 범행을 모의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7월 ‘다음’에 개설된 친일사이트 ‘한국 망해라’의 회원수는 2만여명에 이른다.사이트 첫머리에는 ‘대일본 제국이여 영원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이완용을 고독한 애국자로 묘사하는 등 역사를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있다.친미사이트인 ‘미군 전차에 깔린 여중생 안티카페’에 가입한 네티즌들은 “한국인이 아무 잘못없는 미군을 살인범으로 몰고 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경찰은 “헌재 결정 이전에는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친일 사이트 등에 경고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이트 관리업체에 권고해 자진 폐쇄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불온통신’ 문구를 ‘불법통신’으로 고치고,‘불법통신’에 해당하는 9개 항목을 규정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검열 반대운동을 펴고 있어 법이 개정되더라도 유해사이트 단속은 계속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온통신 단속’이라는 모호한 규정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과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고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창구 유영규기자 window2@
  • ‘야인시대’ 역사왜곡·고증소홀 논란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몰이가 한창인 가운데 이 드라마의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네티즌과 시청자들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 ‘야인시대’는 TNS 등 각종 시청률조사기관 집계에서 2∼3주째 연속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주인공 김두한이 ‘쌍칼’의 조직을 넘겨받은 지난 24일 방송분은 43.6%라는 파격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야인시대’와 관련한 카페 개설열풍도 상당해 30일 현재 다음커뮤니티(www.daum.net)에는 드라마 ‘야인시대’를 직접적으로 다룬 카페가 100여개에 달하고 있고 관련된 카페까지 합친다면 300여개를 넘는다.의송 김두한 홈페이지(www.doohani.com)는 쇄도하는 젊은 네티즌들 덕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 그러나 이같은 성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야인시대’가 고증을 소홀히 하거나,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자 이성원씨는 ‘야인시대’게시판에서 “친일파인 인촌 김성수를 미화하는 야인시대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강성구씨는 “야인시대는 친일파들을 합리화하려는 드라마”라면서 “작가나 PD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박승훈씨도 “온가족이 보는 드라마에서 친일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김성수)은 조심하자.”고 권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시청자 황미정씨는 “인촌은 근대사의 탁월한 경세가로서 민족의 가슴에 빛날 것”이라고 주장했다.다른 네티즌들은 “인촌 김성수는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전개했고 6·10만세운동에도 참여해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인촌은 일제하에서 부득이하게 각종 행사에 이름이 인용된 것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소수의 네티즌들은 “인촌은 중앙학교·보성전문학교 등 교육과,경성방직등 기업활동으로 민족에 크게 기여했다.”면서도 “같은 시기에 흥아보국단과 임전보국단 준비위원 등을 맡아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는 논설을 발표하는 등 일도양단식의 평가가 쉽지는 않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역사적 고증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도눈에 띈다.다음카페 ‘가까이 있는 역사’는 ‘재미없는 야인시대’라는 글에서 “드마마에서 최기자는 1917년 전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다닌 것으로 돼있는데,이 시기에 경성제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또 “1891년생 김성수는 50대 중년신사로 나오는데 반해 한살 아래인 나석주가 젊은 청년으로 등장함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야인시대’는 일제시대라는 우리의 민감한 ‘과거’를 생생한 현실이미지로 재가공해냈다.그리고 실제 현실과는 조금 다른 그 현실이미지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제작진들은 “지식인의 변절 등,아픈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과거를 솔직하게 그려내 시대극의 묘미를 살린다.”고 제작의도를 밝힌 바 있다.그러나 ‘야인시대’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역사적 사실의 단면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경우,제작진들은 자신들의 무서우리만치 효과적인 현실재가공능력을 자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새달 3일 개봉 YMCA야구단/ 갓쓰고 한복입고 ‘스윙’ 조선 최초야구 ‘폭소 홈런’

    새달 3일 개봉하는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 ‘YMCA야구단’(제작 명필름)은 특화한 장점이 뚜렷한 코미디 영화다.무엇보다 작품의 소재.100여년전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야기라니! 귀밝은 관객이라면 진작에 꿰고 있을 주인공들의 면면도 기대치를 훌쩍 끌어올린다.송강호가 도포자락 휘날리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김혜수는 조신한 신여성 옷차림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을 이끄는 감독이다. 역시나,영화는 송강호의 별쭝난 캐릭터로 단단히 점수를 벌고 들어간다.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을 버선발로 이리저리 굴리는 익살맞은 모습은 관객들을 덮어놓고 ‘무장해제’시킨다.그의 극중 역은 글공부보다는 운동이 더좋은 젊은 선비 이호창.YMCA회관에서 선교사들과 야구를 하는 신여성 민정림(김혜수)을 본 그날부터 ‘베쓰뽈’(베이스볼)을 향한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다. 극의 무대는 을사조약 체결로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던 1905년의 황성(서울).그즈음의 종로거리,동서양의 문물이 혼재하는 풍속을 재현한 오픈세트 자체가 대단한 볼거리다.호창은난생 처음 보는 야구공도 신기하거니와 야구의 매력을 또랑또랑 설파하는 정림에게도 꼼짝없이 맘을 빼앗긴다.“지금 베이스볼을 하게 되면 조선 최초의 야구선수가 됩니다.”라는 정림의 설득에 빠져 서당을 맡으라는 아버지(신구)의 분부는 귓등으로 흘려듣는 판이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야구가 좋아 한데 뭉친 조선 최초 YMCA야구단.모자 대신 갓,유니폼 대신 헐렁한 한복을 입은 선수들이 폭소를 연발케 한다.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말끝마다 “∼한답니다.”식의 경어체를 구사하는 정림,친일파 아버지를 둔 호창의 단짝친구 광태(황정민)가 호창과 함께 이야기의 틀거리를 세우는 인물들이다.정림과 호창이 은근한 로맨스를 엮는 것도 극의 재미를 돋우는 큰 흐름. 자칫 코믹 상황극으로 들뜰 영화를 균형 잡아주는 소재는 항일(抗日)이다.정림의 애인이자 동경유학생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해온 야구단의 투수 대현(김주혁)이 그 몫을 구현하는 캐릭터.일제에 맞서 정림의 아버지가 자결하자 대현은 정림과 함께 친일파 테러를 벌인다.YMCA야구단이 일본군 클럽팀과 자존심을 걸고 대결하는 장면들도 항일 메시지를 돋을새김하는 데 주효했다. 보기 드문 코믹 시대극은 내내 입가에 미소를 물게 만든다.시나리오(감독이 직접 썼다.)의 재치를 감지할 수 있는 대사들도 감미료 노릇을 톡톡히 했다.‘스트라이크’가 ‘수투락’(秀投樂·빼어나게 잘 던지니 즐겁다)으로 둔갑하고,아버지 상을 당한 정림 앞에 뜬금없이 조문 대신 호창의 연애편지가 읽히는 장면 등은 객석을 요란스레 뒤집어놓을 만하다. 그러나 미덕만큼이나 아쉬운 대목들도 눈에 띈다.뭔가 허전하다 싶은 뒷맛은,지나치게 흐릿한 선악 개념과 촘촘하지 못한 갈등구도 탓.대현이 광태의 아버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둘 사이에 고개든 갈등이 ‘술에 물탄 듯’어물쩍 넘어간 것도 관객을 뜨악하게 만들 성싶다. 황수정기자 sjh@
  • 정치권 납북자관련 공방

    북·일 정상회담으로 불거진 납북자 문제로 정치권이 들썩이기 시작했다.한나라당은 “햇볕정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파상공세에 나섰고,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공세야말로 친일 사대주의”라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부친의 ‘친일의혹’을 들어 역공을 폈다. 한나라당은 19일 선거전략회의와 기자간담회,대변인 논평 등을 통해 전방위 공세를 폈다. 선거전략회의에서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북측의 사과를 받아냈는데 우리는 김정일의 눈치나 보다 고이즈미 총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정부를 성토했다.이어 “국내 납북자 가족들이 일본 후쿠다 관방장관을 찾아가 생사문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라며“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납북자문제와 KAL기사건,아웅산사태 등에 대해 북측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6·15정상회담이 얼마나 허구에 찬 쇼인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그렇게 퍼주기를 하고도 단 한번 북측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며“정부가 얼마나 직무를 태만히 했는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일본인들의 분노로 재일교포들이 불안에 떨고있는 데도 김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들의 안위문제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에 민주당 이용범(李鎔範) 부대변인은 “북·일 정상회담은 6·15남북정상회담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대북포용정책의 결실”이라며 “한나라당의 공세는 친일사대주의”라고 반박했다.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조선총독부의 1940년 직원록과 42년 직원록을 대조한 표를 내보이며 “40년에는 이 후보 부친이 이홍규로 돼 있었으나 42년에는 ‘마루야마 아키오’로 돼 있다.”고 창씨 개명 의혹을 제기했다.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이 후보 부친은 오늘로 치면 공안검사 밑의 서기로 활동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진경호 김재천기자 jade@
  • 한 “北과 손잡고 야당 죽이기”

    한나라당은 16일 “노동당 2중대 정권 수립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민주당을 공격했다.조총련계 신문인 ‘조선신보’가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한 뒤 민주당이 가세하자,역공을 한 셈이다.대선까지 ‘친일 문제’와 ‘신북풍(新北風)’논란이 간단치 않을 듯하다. 이 후보는 이날 처음으로 열린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모략과 중상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더러운 정쟁에는 휘말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북한의 노골적인 야당후보 음해공작에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이 거들고 나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북한과 손잡고 야당후보 죽이기 공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그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목포상고 때 창씨개명한 도요타(豊田)라는 일본 이름을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일본을 방문할 때 밝혀왔다.”면서 “도요타 친일정권이 북한과 짜고 반 민족적 행위를 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국민들은 노동당 2중대 수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이 후보와 관련된 어떤 문제에도 관여하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친일논쟁은 그쪽(정치권)의 일이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의 일부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이 김 대통령의 사저신축과 관련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연일 공세의 수위를 높이자 “한나라당이 혹세무민하고 있다.”“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국감 하이라이트/ 국방위 “경기지역 미확인 北땅굴 3군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 때문에 관심을 끌었던 16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에 대한 첫날 국정감사는 예상보다는 차분하게 진행됐다.병풍공세의 고삐를 쥔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당내 신당문제 등으로 미처 꼼꼼한 사전조사를 하지 못한데다 한나라당측도 재삼 ‘병풍=정치공작’이라는 등식을 각인시킬 필요성을 못 느낀 까닭으로 풀이된다. 이날 군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던 고석(高奭)대령 등이 배석,군 내사 여부 등을 집중 추궁받았다. 공세의 첫 포문은 민주당 대변인 이낙연(李洛淵)의원이 열었다.이 의원은 “차남 수연(秀淵)씨가 1990년 1월 군 부대로부터 받은 귀향증은 방위병 전용이 아닌 현역병 전용 양식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는 94년 이후 방위병 소집제도가 폐지된 뒤 방위병 전용양식이 없어져 누군가 현역병 양식에 병역면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또 “수연씨가 1월8일 부대입소 당일 귀향했다고 지난 12일 한나라당 김정훈 법률특보가 밝혔으나 97년이회창 후보는 TV토론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일주일만에 돌아왔다.’고 말했다.”면서 “누구 말이 맞냐.”고 물었다.이 의원은 허준평(許準坪) 의무사령관에게 세가지 답안을 예로 들며 되물었으나 허 사령관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같은 당 박양수(朴洋洙) 의원은 “장남 정연(正淵)씨가 91년 2월11일 102보충대에서 입영신검을 받은 당일 정연씨와 같은 그룹에서 신검을 받은 A씨의 병적기록표 사본”이라면서 문서를 내보이며 “두 병적기록표의 필체가 다른 것은 어찌 된 일이냐.”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세환(朴世煥) 의원도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혹은 97년 대선 전 국감에서 걸러진 사항이고 문제점은 병무행정의 관리부실”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하순봉(河舜鳳)의원은 민주당의 병풍 공세를 신북풍(新北風)의혹으로 맞받아쳤다.하 의원은 “최근 조총련 기관지가 우리 대통령 후보의 부친이 일제 치하에서 친일 활동을 했다는 보도는 황당무계한 흑색선전”이라며“언제부터 북한이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관여하게 됐느냐.”고 되물었다. 한편 한나라당 박세환(朴世煥)의원이 “경기 지역에 A급 미확인 땅굴이 적어도 3군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점을 제기하자,합동참모본부는 “군이 파악한 땅굴 20여곳중 3곳은 A급인데,북한이 땅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김경운기자 kkwoon@
  • 이후보 부친 친일공방/ 한나라””북한발 신북풍””비난, 민주당””진실 밝히는게 순서””

    정치권은 15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부친 이홍규(李弘圭)옹의 친일 의혹을 제기한 것을 놓고 ‘신(新)북풍’공방을 벌였다.특히 한나라당은 ‘북한발(發) 신북풍’이라고 발끈하고 나선 반면,민주당은 ‘진실 규명’에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 당은 몇 달 전 민주당과 정부기관의 모 인사가 북한에 가서 조작된 이 후보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다.”며 “민주당과 북한이 손을 잡고 대통령 선거판을 정치공작의 장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남한에 대한 정치개입이 현재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임을 명심하고,허위 날조된 신북풍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이번 보도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이 옹의 친일의혹 행적을 추적해 왔다.”고 전제,“조선신보의 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수용하거나 배척하지 않고,냉정히 검토할것”이라고 강조했다.김현미(金賢美) 부대변인은 “일제시대 검사서기의 역할이 친일이 아니라면 독립운동이었겠느냐.”며 “한나라당은 무조건 비난하기 이전에 진실부터 밝히는 게 순서”라고 꼬집었다. 앞서 조선신보는 12일 ‘역적의 아들이 대통령후보란 말입니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식민지시대를 같이 살았던 북한 노인들이 이 옹을 ‘숱한 반일조직성원들과 애국자들을 처형한 악질 친일 주구(走狗)’로 기억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옹은 사상범만 취급하는 사상계 검사서기였다.”고 주장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前서울대교수 김민수씨 디자인비평서 발간/“정치꾼 디자이너가 우리 디자인 망쳤죠”

    “나는 고상하게 말해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비아냥거렸던 ‘성서를 위배한 바보’이자,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서울대공화국 교수의 특혜와 기득권’도 얌전히 챙겨먹지 못한 쪼다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6년 서울대 미대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비판한 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디자인문화비평’편집주간.표면적인 탈락 이유는 ‘연구실적 미비’였지만 원로교수들의 친일행각을 비판한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반론이 거셌다.그후 4년의 세월.서울 미대 교수 복직투쟁을 벌여온 그는 한층 원숙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지평을 넘나들며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김민수의 문화디자인’(다우 펴냄)은 그 치열한 시간의 기록이자 디자인·시각문화 비평집으로 우리 사회에 산재한 디자인의 여러 맥락들을 쉽고 정확하게 짚어준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혹자는 디자인을 미적 장치,혹은 잔재간으로 치부한다.경제가치를 극대화하는 부가적 수단,즉 문화상품으로 오해하기도 한다.디자인은 또 ‘예술’이라고 불린다.저자는 이같은 ‘박제된’인식을 던져버리라고 말한다.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상품을 더 잘 팔기 위한 도구적 수단도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언어적 사고’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디자인 개념을 단순한 도안산업이나 소비문화 차원으로 좁혀 보지 말 것을 주문한다.디자인을 그저 미술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관행’에도 제동을 건다.그렇게 한정시켜 보면 볼수록 디자인은 저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중국의 혁명가 루쉰까지 당대로 호출해 디자인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그에 따르면 루쉰은 손색없는 ‘디자인 사상가’다.20세기 초 중국 근대사회에서 루쉰은 민중계몽을 위한 문학적 실천과 더불어 디자인에서도 ‘심미적 정체성’을 찾게 한 정신적 지주였다.루쉰은 1920년대의 서구 취향과 허식적 도시감각에서 파생한 이른바 ‘상하이 스타일’에 맞서 중국 고유문화에 따른 심미적 언어를 강조했다.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은 바로그 문화적 연속성과 정체성이다. “한국 현대디자인의 역사에는 유감스럽게도 루쉰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한명도 없다.”고 아쉬워하는 저자는 “일제 식민미학의 잔재를 신주 모시듯 받들고 이것을 해방 후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에 끼워맞춰온 디자이너들만 있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디자인 정치학의 측면에서 재해석한다.“그동안 한국 디자인은 최소한의 공공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술수를 구사하는 ‘정치꾼 디자이너’들의 사적인 먹이채집에 불과했다.”며 디자인계 내부의 비민주적 관행에 쐐기를 박는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 오피니언 중계석/ 친일청산 방법론 논란-안병직·최갑수·박찬승교수 다른 견해 피력

    기존의 친일청산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한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연구발표를 둘러싸고 학계의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진다.안 교수는 지난달 18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2 역사학 국제회의’에서 ‘과거청산과 역사서술’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친일세력 청산은 아직 때가 이르며,이를 정치적·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된다.”는 견해를 밝혔다.주제발표와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반대토론,박찬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의 반박문(8월31일자 한겨레신문)을 요약해 싣는다. 안 교수는 독일의 나치집권기(1933∼1945)와 한국의 일제강점기(1910∼1945)를 ‘일상사’시각에서 비교 분석했다.그는 “독일과 한국이 각각 나치와 일본의 지배를 경험한 공통점이 있지만 독일이 지난 수십년간 나치즘을 연구한 것과 달리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에 수반된 억압과 수탈 통제에 따른 고통과 희생의 면면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춰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만 부각시켰다.”고 지적했다.또 “적어도 전쟁 이전 나치집권기에 대다수 국민의 일상은 평온하고정상적인 것”이었으며 “그들은 노동과 여가의 일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정치적 통제와 억압,감시와 테러라는 비정상적 행위들은 묵인했다.”고 밝혔다.일제시대 연구도 “(한국인들에게)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역사는 과거를 정치적으로 심판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좇은 ‘매국노’라는 인물상도 사실행위의 복합적 측면을 단순화한 결과”라는 시각을 드러냈다.그의 주장대로라면 “다분히 정치적·도덕적 잣대로 이뤄진 친일파 명단공개는 일제시대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과거청산이 “국가가 정통성과 통치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인데,“제대로 된 국민국가의 설정이란 각도에서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묻는 것을 일상사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을 폈다.“역사에는 심급이 있어 국가·민족의 문제와 개인의 실존적 문제는 차원이다른 것”이며,“과거청산은 범죄행위에 대해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에 가깝다.”는 주장이다.그에 따르면 안 교수가 말하는 일상사는 ‘밑의 역사’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역사’는 아니다. 박 교수는 기고문에서 “안병직 교수는 3·1운동 이후 이렇다할 저항이 없어 일제 지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고 전제,“하지만3·1운동 직후 경찰비는 총독부 예산의 26%를 차지했고,이후에도 2∼7%(군사비 제외)로 교육비보다 항상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보안법 외에도 치안유지법·제령 등 각종 악법과 제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그렇게 볼 때 “체제유지의 위기는 상시화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친일파 명단 발표에 대해 그는 그런 방법이 꼭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를 현실에서 청산되지 못한 문제를 역사 속에서라도 청산하자는 의미,친일파들의 변신과 변명이 더 힘을 발휘해온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겠느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역사는 선악포폄을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안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역사학이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지만 근대 역사학의 목표인 ‘인과관계의 구명’외에 전통적 역사학의 목표인 ‘과거에 대한 평가’작업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식민지시대에서 과연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수 있을까.그는 안 교수가 한예로 신작로를 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체포된 의병과 힘없는 농민들에 의해 건설됐으며,그 길을 통해 쌀과 면화들이 일본으로 실려 나간 ‘신음’의 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또 총독부는 황국신민을 육성하려고 보통학교는 늘려 갔지만 중등학교 수준인 고등보통학교는 ‘1도 1교’밖에 두지 않았으며,총독부에서 만든 병원에는 한국인 의사가 거의 없어 한국인들은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웠다는 사실도 밝힌다.요컨대 식민지시대에 대한 ‘향수’는 ‘왜곡된 의식’이 내재화한 결과인데,그것을 식민지시대도 그런대로 살기 좋았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리 김종면기자 jmkim@
  • 책/ 조선침략의 원흉 베일 벗기다, 이토 히보부미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실체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구한말 한국통감으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했다는 정도가 고작일지 모른다.그것은 무엇보다 국내 학계가 그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한국통감으로서 3년6개월 동안 사실상 한국을 통치한 인물이라는 점만으로도 이토는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하지만 강단사학자들은 이토 연구를 빈칸으로 남겨두었는데 한 재야사학자가 이를 메워 관심을 모은다.언론인 출신인 정일성(61)씨가 주인공.그가 최근 내놓은 ‘이토 히로부미’(지식산업사 펴냄)는 한국인 시각에서 한국말로 쓴 첫 이토 히로부미 평전이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더욱이 국치일(8월29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한·일양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미 ‘황국사관의 실체’‘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등의 저작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 근대화의 본질을 파헤친 전문가.‘이토 히로부미’에서는 이토라는 역사 인물을 집중 조명,한민족을 탄압한 그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한다.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곁들여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토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안중근 의사가 재판과정에서 그를 사살한 이유로 내세운 죄목만도 열다섯 가지.저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것으로 ‘민족성 왜곡’을 꼽는다.그는 한민족지도층을 위협하고 금품으로 매수하거나 스파이를 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민족 이간을 노렸다.저자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가 넘도록 민족분열과 친일문제 등을 청산하지 못한 것은 이토의 한민족 분열공작에 그뿌리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토는 우리 민족에게는 ‘공적(公敵)1호’이지만 일본 쪽에서 보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정치가이다.마흔네 살에 초대 내각 총리에 올라 메이지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추밀원 의장 자리도 그가 테이프를 끊었다.총리를 네번이나 지내면서 헌법을 제정하고국회를 개설했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하급무사 가문인 이토가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메이지유신의 중심세력인 조슈번(長州藩)출신이란 점과무관하지 않다.실제로 메이지 정부는 조슈와 사쓰마(薩摩)의 정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이곳 출신들이 정부와 군의 요직을 독점했다.조슈번 출신들과 조선의 악연은 한일합병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이토의 정치적 성공은,유연하고 신중하며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팔방미인주의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그러나 저자는 ‘평범한 일로는 공을 세울 수 없다.’는 소신을 지닌 이토야말로 호전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의 전형,기방(妓房)유희가 유일한 취미인 인면수심의 호색한으로 규정한다.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은 명성황후 시해(1895년 10월8일).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변함이 없다.전후 일본은 조작된 기록과 황국사관에 젖은 역사학자들을 동원해 명성황후 시해를 조선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소행이라고 강변해 왔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조금만 되짚어 보면 이토 정권이 총체적으로 관여했음을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이토가 비서관을 통해 거액의 돈을 주고 ‘뉴욕 헤럴드’기자를 매수,유리한 기사를 주문한 사건은 그 한 단서다.저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청일전쟁으로 국내 정치위기를 넘긴 이토 정권이 조선경영의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꾸민 살인극”이라 결론짓는다. 이 책은 두 가지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이토가 막부의 정신적 기둥이던 고메이(孝明)왕을 죽이고 부하를 메이지텐노(明治天皇·명치천황)로 삼았다.’는 설과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암살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이 그것.일본학계는 고메이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시 발표대로 ‘병사’로 받아들이지만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엔 풀어야 할 의혹이 너무 많다.이에 대해 저자는 “메이지왕에 관한 수수께끼는,일본 궁내성이 기록을 완전 공개해야 풀릴것”이라고 전망한다. 안중근이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은 이토의 수행원인 무로다 요시후미(室田義文)귀족원 의원의 발언으로 부풀려졌다.망명 한국인 단독으로는 결코 대 정치가의 암살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그러면 무로다의 ‘범인 복수설’의 진의는 무얼까.저자는 일본 역사학계의 이같은 논란 역시 자국중심의 황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힌다. 한국인에게는 ‘악’의 상징,그러나 일본에서는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딘 흥륭(興隆)일본,그 자체’로 칭송되는 이토 히로부미.이 엄청난 인식의 괴리 앞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고,일본인의 역사적 심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저자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일본 근대화 바로보기 작업은 이러한 일본의 ‘역사왜곡벽’을 시정해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김종면기자 jmkim@
  • [열린세상] 역사는 정방향으로 흐른다

    군사독재정권이 신임 교수들을 일주일씩 정신문화연구원에 집어넣고 정신교육을 시키던 1987년 여름의 일이다.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상황에서 정신교육에 들어간 내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북에서 갓 내려온 김만철씨와의 대화였다.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도 아랑곳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방적으로 남쪽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거꾸로 북의 장점과 남의 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김만철씨가 이제까지와 달리 머리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편 채 자랑하듯 말을 꺼냈다. “북은 친일을 빨리 청산했습니다.그리고 남은 극장 간판에 보이는 것처럼 너무도 부도덕해 보입니다.”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해방 직후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북과 달리 남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실패로 끝났다.미군정은 행정 공백과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친일 반민족 세력을 다시 내세웠고,이승만 또한 자신의 집권을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그 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하였고 ‘건국의 공로자’로까지 올라섰다.일본 장교 출신 대통령을 비롯하여 친일 인사 7명이 9번이나 국무총리를 지냈고,18명이 22번 장관을 지낸 내무부와 13명이 16번을 거친 법무부,10명이 11번을 지낸 상공부에서 보듯 중앙 부처 대부분을 그들이 장악하였다.또한 서울,경기,전북,경북은 4번씩이나 친일 경력 도지사를 배출하였으며,군부는 더욱 심해서 12명이 13번에 걸쳐 국방부장관을 지냈고,육군참모총장은 초대부터 21대까지,합동참모회의의장은 초대부터 14대까지 일본 장교 출신들로 도배하였다.어디 그뿐인가.각 대학 총장들을 비롯하여 언론계,문화계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인사들이 원로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정부지원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감추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또한 1995년에는 이완용의 손자가 할아비의 땅을 되찾아 땅 값 20억 원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으며,재작년에는 서울대학교 김민수 교수가 미술계 원로들의 친일 행각을 비판하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바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했던가? 올해 3·1절 전날 비록 국회 차원의 활동은 아니었지만 여야 소장 의원들이 만든 ‘민족정기를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708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그리고 광복절 즈음인 지난 13일 학술단체협의회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14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학단체들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특히 참여 숫자도 숫자지만 어느 분야보다 후대의 가슴에 아픈 못질을 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낱낱이 적시하면서 이날 후배 문인들은 당사자 선배들을 대신해 국민들 앞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그리고 ‘친일인명사전’편찬 작업과 소장파 의원들에 의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법’추진이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은 지금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 일은 죄 없는 후손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이야말로 민족을 위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논리까지 다양하다.하지만 친일 청산운동은 과거 개인의 잘못을 일일이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며,민족을 분열시키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정당한 역사적 심판을 거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운동이다.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같은 불공정협약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것처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일 수 없는 것이다.한편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철학
  • 통일플라자/ 한평생 독립·통일운동 구익균翁 ‘한반도 영세중립’ 꿈꾸는 老사상가

    “백범이 존경하는 사람은 도산뿐이었어요.상하이 임시정부의 정책,활동 방향,경제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도산 선생이 있었죠.”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비서실장으로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具益均·95)옹은 20일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도산 선생이 ‘온건한 계몽주의자’ 정도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구옹은 “이상 사회를 꿈꿨던 혁명가 도산 선생은 민족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민주주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테러리스트까지 포괄했던 큰 인품을 갖춘 지도자”라고 말했다. 도산의 사상을 고스란히 체현한 ‘95세의 노(老) 독립운동가’ 구옹이 요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활동은 바로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이다. 지난 83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91년 뉴욕에서 ‘코리아 영세중립화 추진본부’를 꾸린 뒤 국제사회에 한반도 영세중립국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영세중립통일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을벌이고 있다. 현재 스위스·벨기에·오스트리아 등이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한반도 영세중립화는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또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구옹은 이에 앞서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이념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세중립화가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외국의 도움이나 개입없이 통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구옹은 이어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면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외교와 국방은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주의자도,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니다.그저 같은 민족의 북쪽에 사회주의가 있고,남쪽에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남북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지내며 전쟁과 대결을 거부하기를 바라는 평화주의자일 뿐이다.이와 더불어 지구상 어디에서도 대결과 전쟁도 없이 평화롭게 어울려지내야 한다는 확신과 철학을 지닌 순수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은 도산 선생의 사상과 맥이 맞닿았다고 주장한다. “도산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서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대공주의(大公主義)라고 불렀는데 이건 중국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처럼혼돈된 나라에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상이었어요.” 구옹은 “혁명가로서 도산 선생의 사상이 한국내 흥사단의 친일이나 제자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적 등에 의해 왜곡된 점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혁명적 이상사회를 꿈꾸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사상가이자 모든 사람들을 독립운동의 대열에 세우려 노력했던 품이 넓은 혁명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벌써 잊은 듯 그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외침에도 별울림이 없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요즘도 그는 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영세중립화밖에 없어요.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반도를 어느 특정 외세가 주도한다면 한반도는 항상 분열과 전쟁의 장으로 전락할 위협에 놓이는 거지요.” 박록삼기자 youngtan@ ■구익균옹은 누구 구익균옹은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을 생생히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다.구옹은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1928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시절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는 ‘신의주고보 학생사건’을 주도했고,일제의 검거령이 떨어지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일제에 검거되기 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모시는 등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두 차례나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렀다.또한 중국 광둥 중산(中山)대학에서 조교수를 하며 민족에 힘이 되는 인재를 양성했다. 구옹은 1945년 해방이 된 뒤 1947년 서울로 들어와 남북이통일될 수 있는현실적 방안을 추구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념과 다른 체제로 갈라진 한반도 현실에서 구옹은 ‘이방인이자 범법자’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 영세중립화 통일 및 평화를 주된 가치로 하는 혁신정당 운동에 힘쓰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다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 미사여구 분칠한 ‘친일문인 행적’, 민족작가회의 참회의 고백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印)씨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중략)/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같은 미국군함/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같은 병정을 싣고/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미당 서정주가 카미가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청년을 위해 썼다는 ‘송정오장송가(松井伍長頌歌)’를 읽으며 시방 우리는 슬프다.고운 시심으로 ‘질마재 신화’를 빚어낸 미당이,자살특공대로 나섰다가 산화한 조선 청년 ‘마쓰이 오장’의 죽음을 찬양한 이 시를 읽으며 문학사에 커다란 여백 하나를 남겨야 하는 일 때문에 참으로 슬프다.그러나 그의 재능이 아무리 준절하고 시심이 아름다워도 그를 ‘아름다운 시인’이라고찬양할 수는 없다. 이렇게 민족의 아픔을 등지고 입신양명의 길을 내달은 친일문인들의 반민족행위가 최근 공개됐다.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선배 문인들의 훼절과 반민족적 문학행각을 반성하는 참회와 함께 공개한 친일문학의 실체는 광복후반세기를 넘긴 지금에도 새삼 낯뜨겁다 친일단체 일진회의 수령을 지낸 송병준이 일개 일본군 참모에게 보낸 ‘삼가 재배하고 아뢴다.’는 편지글이나중추원 고문 출신인 윤치호의 ‘반도학도 출진독려문’은 오히려 가소롭다. 우리에게 신체시로 잘 알려진 최남선은 ‘보람있게 죽자’는 글을 통해 ‘오늘날 대동아인으로서 이 성전에 참가함은 대운 중의 대운임이 다시 의심없다.(중략)순정의 청년들아,공론을 집어치우고 대운에 들어서서 신선하게 역사적 임무를 담착하여 보세나.’라며,내놓고 조선인들의 참전을 독촉했다.소설가 김동인은 문인들에게 “스스로 내 손으로 총을 잡지 못하고 대포를 잡지 못하였다고 퇴축(退縮)치 말고 이 전쟁을 좌우할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 우리의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있게 이용할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카프(KAPF)결성에도 참여한 팔봉 김기진은 ‘신전에 맹세하네 무엇부터 맹세할까/열가지 백가지를 한목 용서 못하리라/천황께 이 한몸 바쳐 뒷일 걱정 안하오.’라며 차마 못할 부끄러움까지 고백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친일 아첨 행각은 대구 출신 김문집이란 자의‘조선민족 발전적 해소론 서설’에서 극치를 이룬다.그는 “내선의 민족적일원화는 분수식으로 ‘A+c(조선민족)/A+b(대화민족)=1’로 표현된다.”며“1은 대화(大和)민족이나 조선민족이 아니라 양 민족의 우생학적 합명제,즉 한만(漢滿)남양(南洋)등의 외래 혈액을 약간 조미한 동근적(同根的)내선고대민족(內鮮古代民族)의 일대 재창조”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끌어대기까지 했다.그는 결국 일본에 귀화했다. ‘사나운 국경에도/험준한 산협에도/네가 날아가는 곳엔/꽃은 웃으리 잎은춤추리라’라고 한 모윤숙의 시가 장산곶매를 노래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에게는 불의의 시대에 맞설 지조가 없었다.그래서 광강소년항공장(廣岡少年航空兵)에게란 제목의 이 몹쓸 글을 남긴 것이다.민족문학작가회의는 “선배문인들의 역사적·문학적 과오에 대해 후진들이 속죄하고 자성하는 ‘과거사에 대한 문단의 고해성사’”라고 이번의 친일작가 선정과 그에 따른 참회선언문 발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심재억기자
  • 명성황후 시해 옹호 친일성향 작가 기소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책을 펴낸 작가가 사법처리됐다. 서울지검 형사9부(부장 辛南奎)는 14일 인터넷을 통해 명성황후를 비방하고 시해를 옹호하는 글을 올린 작가 김모(39)씨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달 중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친일(親日)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미친 불여우민비를 한국인들은 무슨 자주 독립의 순교자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이런 나쁜 X을 조용히 없애버린 일본의 처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라는 등 친일파를 찬양하는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올해 초 민씨 종친회의 고소에 따라 수사에 들어간 뒤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외환유치혐의(외국과 내통해 한국에 대항한 혐의)를 적용할 방안까지 검토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이경형 칼럼] 다시 광복절을 생각한다

    광복 57주년,대한민국 수립 54주년의 아침이다.광복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먼 것 같다.선열들의 광복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원인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우리 안에 있다.이것이 큰 문제이며,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지난 세기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어 미군정을 거쳐 건국을 이뤘지만 동족상잔으로 엄청난 분단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독재정권과 냉전의 유산으로 고통도 받았다.이제 우리는 21세기 새로운 민족 진운(進運)을 개척하려는 출발선에 서있다.그런데 현 상황은 어떤가. 오늘 서울에서는 8·15 남북 민족통일대회가 남남 갈등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다.행사를 주최하는 진보단체들과 ‘행사 반대’를 천명한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 서로 감시의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어제는 9개월만에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박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이달부터 있을 각종 후속 회담이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마련할 것으로기대되지만,과거처럼 면피용 이벤트식 후속회담만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라 안 사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두고 정치권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싸고 정략적인 공방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차기 정권이 담당해야 할 국가적 의제에 관해 논쟁을 할 때다.아니면 적어도 대통령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하거나,차기 정권이 결정되기 전에 부패의 소지를 없애고 권력의 집중을 막는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어느 한 구석에도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하다.8·8 재보선 이후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은 병역비리 의혹방어에 매달려 있고,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싸고 ‘친노(親盧)반노(反盧)’하며 4분5열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임기말의 현 정부는 행정부처를 장악하기도 힘들어 하고,공직기강 해이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문제만이라도 어느 정도 마무리지어 차기 정부에 물려주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워할 뿐이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과거 식민지 망령의 일본도 아니고,해방 후 군정을 했던 미국도 아니다.남한과 늘 대치해온 북한 때문도 물론 아니다.그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그것도 이 나라를 움직여 온지도층에 있다. 불과 한달반전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와 광장에 넘친 함성이 보여준 비전과 자긍심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태극기 물결과‘대∼한민국’을 외치는 감흥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는다.그렇다면 ‘붉은악마’들의 에너지는 소멸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이 나라 지도층의 무능과 도덕성 결핍,역사관의 부재가 그 에너지의 불을 꺼뜨려 버렸기 때문이다.지도층 중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실종,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되고있는 한심한 안목이 그 에너지를 식게한 것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는 또 있다.역사의 정직성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진정한 친일청산을외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반향은 미미하다.친일의 청산도 후손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내일의 거울로 삼자는 것이다.“과거에 눈을 감으면 현재의 장님이 된다.”(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충고다. 광복절 아침, 우리 사회를 이끌고,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지도층 인사들은 선열들 앞에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내일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이경형 논설위원실장 khlee@
  • 광복절 특집/ 기고/“일제때 고위관리 존경받는 시대”

    한국의 근대적 법제도는 우리가 자주적 근대국가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제가 주도권을 장악할 당시부터 그들이 침략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근대적 개혁을 하자는 것이었다.그 이후 1905년 한국이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들어갔을 때부터 일제 법령제도를 모방하고 1910년 이후부터는 일본 식민지제로 일본의 주변부로 전락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미국과 소련 양국이 군정을 시행했을 당시,남쪽은 미 군정이 일제법령을 시행하고 1948년 정부수립시에도 제헌헌법 100조에 의해 미 군정 법령과 함께 일제법령의 효력을 지속시켰다.그 이유는 사·소유권제도 유지와 기존질서의 안정을 꾀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법조계의 일제 잔재 문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민주주의에 반하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파시즘과 군국주의의 잔재도 온갖 악의 씨로 싹을 키웠다. 이 악의 씨를 싹틔워 충직하게 가꾼 뒤 이 나라의 실세로 군림한 것은 친일 관료이고 그 중에는 사법관료가 있다.일제지배 하에서 법원이나 검찰청의 서기와 통역생으로 있던 무리가 하루 아침에 판사와 검사가 되었다.고등경찰의 보조원과 밀정 및 헌병 보조원이 서장,장관,대장이 된 것이나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일제하의 관료주의 법학이 우리 법조 양성의 자양분이 되어 독을 뿜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사법관료 제도를 운영하면서 생긴 고문과 가혹 행위의 악습,피의자나 참고인에 대한 범죄인 취급,사법 과정에서 관료성과 비밀폐쇄주의,재판을 나랏님이란 절대자의 대변으로 여기는 반민주적 재판의식이 그대로 답습되었다. 법률 운영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의식한 것이기보다는 권력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되었다. 관리가 서민을 앞에 두고 “법대로 하겠다.”는 말은 혼내준다는 협박이 되었다. 그러한 법이란 국민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문제되어온 전관예우의 폐풍이 무엇인가? 관료 특권의 별명이고 그 찌꺼기가 아닌가? 더욱이 이승만 정권의 엘리트는 제국대학 출신과 고등문관시험 합격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그들이 다녔던 제국대학 풍토는 1920년대의 치안유지법과 대륙침략에서 1941년 세계전쟁으로 이어지는 파시즘이 극성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속에 자유주의는 이미 대학에서 압살된 분위기였다.1945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30대 이후의 세대가 잔뼈가 굵은 사회적 배경이 바로 그러했다. 그래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의 법조계에는 일제잔재의 각종 추악한 모습을 본다.일류라는 착각의 교만성과 반민주적 특권의식,법적정의에 무감각한 출세지향의 속물근성,법의 운영을 관료의 입장에서 하는 것 등 많다. 그 중에도 인적 잔재문제는 친일파와 그 아류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한가지 예를 들어 J씨는 김구(金九) 선생 암살사건 당시에 헌병총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안두희를 비호하였다.그는 일제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로서 제국대학 출신의 인텔리다. 그는 그 후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각종 명예로운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영화를 누렸다.지금도 미국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아직도 천수를 누리고 있다.한국의 많은법학도는 그를 존경하고 그처럼 되길 동경하는 눈치다. 법적 정의가 없고 출세만능과 강자의 지배라는 정글의 세계이니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굴까.기막힌 세상이다.법조계 일제잔재의 인적요소인 친일파 부류,그들이 바로 역대 독재자의 법기술자의 원조가 아닌가?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 의문사진상규명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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