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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국립묘지

    남극 세종기지에서 조난을 당해 사망한 젊은 과학도 고 전재규 대원은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는가,없는가.유족의 국립묘지 안장 요청에 대해 정부가 일단 자격 없음을 통보한 것을 계기로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대종을 이루는 내용은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세종기지의 1차적 임무는 과학 연구지만 궁극적 목표는 자원 확보와 국가 영역의 확장 등 국익에 있는 만큼 임무 중 희생된 사람은 전사자 못지않게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또 고인은 조난당한 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가 스스로 죽음을 맞은 숭고한 희생자라는 시각,국가를 대표해 파견된 과학자의 죽음을 경시한다면 그 누가 다시 같은 길에 나서겠느냐는 과학자 사기론 등도 힘을 받고 있다.이에 반해 안장 불가론은 현재의 법 규정 요건에 맞지 않는다,현재도 이 법 규정 때문에 안장 혜택을 못 받고 있는 119대원 등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 등을 내세운다.개중에는 고인을 묻을 자리가 없다면 친일파와 정치군인 자리를 파내라거나,한때의인기영합주의로 법과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강경 발언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도 뜯어보면 국가 유공자나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자는 국가의 이름으로 기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문제는 법 규정과 이의 해석,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만한 정부의 의지와 능력인 것이다.현행 국립묘지령은 안장 대상으로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사람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할 수 있고(3조5항),묘역의 종류로 외국인 묘역과 함께 일반묘역을 설치하도록(6조) 규정해 융통성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다만 선례가 없을 뿐이다. 이번 일을 우리의 국립묘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국립묘지가 국군묘지에서부터 출발하긴 했지만 국가 유공자가 어찌 군인,애국지사,정치인뿐이겠는가.과학기술자,예술가,체육인들도 뚜렷한 국가적 업적이 있다면 후손들이 기리고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과학자들을 비롯해 탐험가,권투선수,야구 고안자 등 많은 민간인들의 묘가케네디 대통령 묘와 똑같은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를 더 이상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신연숙 논설위원
  • 현대경영권 분쟁 전면전

    현대경영권 분쟁이 ‘진실게임’을 넘어선 전면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과 KCC는 석명서와 사내 이메일,공식 기자 회견,보도자료,신문광고 등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서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전면전으로 맞서고 있다.경영권 다툼의 ‘승패’를 좌우할 법원의 KCC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을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일부 네티즌은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가계의 친일경력까지 들고 나왔다. 현 회장측은 8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석명서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라는 제목의 반박문에서 “KCC측은 처음부터 현대그룹 탈취를 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였다.”며 정 명예회장이 지난 3일과 8일 신문광고 등을 통해 발표한 석명서를 정면 비판했다. 이어 “정 명예회장은 90억원 추가 담보 제공 당시 정몽헌 회장 소유의 자택과 김문희씨 소유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주의 담보 제공을 요청했다.”며 “당시 정몽헌 회장은 용인의 임야를 제공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측은 “정 명예회장이 확보한 290억원의 자금(담보분)은 유가족이 상속을 포기하면 정몽헌 회장의 차입금을 대신 갚고 구상권을 행사해 엘리베이터 주식 70만주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KCC측은 현대 경영권 확보를 위해 담보권 실행을 서둘러줄 것을 해당 금융기관에 요청했었다.”고 덧붙였다.반박문은 “김문희씨가 유가족 상속 확약서까지 작성했는데 지분의 즉각 증여를 요구한 것은 증여세 부과(약 50%)로 현 회장의 지분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정 명예회장은 지난 2일 무려 13장 짜리 석명서를 발표한데 이어 8일부터 같은 내용을 담은 일간지 광고를 게재했다. 한편 현 회장과 정상영 명예회장이 극한 대립 상태를 보일 때 정몽준 의원 소유의 현대중공업측이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을 통해 지난달 20∼25일 KCC 지분 1.16%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또 같은달 12∼24일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고 몽필씨의 두 딸도 KCC 지분 1.02%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취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던 범 현대가의 일부가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와중에 급락한 KCC의 주식을 사들여 주가 방어에 도움을 주면서 이들이 KCC 편에 선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 등은 주가 급락을 막아 달라는 KCC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것일 뿐 형제들 사이의 편 서기 등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주 청약 공모가격이 3만 2800원으로 결정됐다.무상증자 배정 비율을 감안하면 1주당 실제 평균 공모가는 2만 5600원이 될 전망이다. 김성곤 김미경기자 sunggone@
  • 이 주일의 어린이 책/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전2권)

    린다 수 박 글 / 이형진 그림 권영미 옮김 / 서울문화사 펴냄 2001년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뉴베리상을 받아 주목받은 재미교포 2세 작가 린다 수 박이 새 책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를 펴냈다.이번에 작가가 시선을 돌린 시대는 일제 강점기 말이다.열살 난 소녀 순희 남매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이름을 뺏기고도 꿋꿋하게 시련을 이겨내는 성장동화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순희는 뜬금없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일제의 법령이 선포되자 어리둥절하다.하루아침에 자신의 이름은 교코로,세살 위인 태열 오빠는 노부오로 바뀌게 됐으니.설상가상으로 순희 가족은 점점 어이없는 일에 휘말린다.태극기와 무궁화까지 철저히 말살하려는 일제를 누구보다 미워하건만 순희는 동네아이들에게 오히려 친일파라는 오해를 산다.그뿐이 아니다.태열 오빠는 그토록 아끼던 자전거를 일본 군인들에게 빼앗기고,일제에 맞서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하던 삼촌은 일본군에 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책은 순희와 태열이 번갈아 쓴 일기 형식으로 구성됐다.같은 상황을 놓고 남매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전개방식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히 그려낸 묘사력이다.뻥튀기를 사먹는 장면,순희가 실뜨기 놀이를 하는 장면 등은 시대극처럼 사실감 넘친다.교코는 창씨개명을 직접 겪은 작가 어머니의 일본식 이름.한국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작가는 어머니의 추억담에서 이야기의 씨앗을 주웠다.초등학생용.각권 7500원. 황수정기자
  • 일제시대 세 젊은이의 사랑과 비극/ MBC 창사특집 ‘사막의 샘’

    MBC 창사특집극 3부작 ‘사막의 샘’(극본 선경희,연출 이은규)이 17일부터 19일까지 오후 9시55분에 연속방영된다. 광복 전후 혼란기를 배경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친일행각을 벌이는 인물과 이에 희생당하는 인물들간의 갈등을 통해 친일청산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3·1절,광복절 특집극 등에서 익히 보아온 주제이긴 하나 일제 치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초창기 방송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기현과 인희,그리고 승모 등 세 젊은이.라디오 방송국 색소폰주자인 기현과 아나운서 인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총독부 관리로 방송국을 감독하는 승모는 인희를 짝사랑한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부모세대의 악연과 맞물려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는다. 친일파인 승모의 아버지 영진은 몰래 독립군 자금을 대는 인희의 아버지를 검거하려다 실수로 기현의 아버지를 죽인 과거를 갖고 있다.극은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기현과 영진의 갈등을 주축으로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을 극적으로 조명한다. 주인공 기현은 탤런트 김을동의 아들인 송일국이 맡았고,당찬 신세대 여성 인희는 장신영이 열연한다.MBC 공채탤런트 출신인 송일국은 그동안 ‘인생화보’‘장희빈’‘보디가드’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원래 미술을 전공하려다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탤런트 유동근의 권유로 우연찮게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일일극 ‘귀여운 여인’에서 밉지 않은 ‘꽃뱀’역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장신영은 ‘죽도록 사랑해’에 이은 두번째 시대극 출연이다. 이정길 윤주상 임현식 등 중견 탤런트들이 부모세대로 출연해 묵직한 연기를 선보이고,강재형 아나운서가 극중 카메오로 등장한다. 이은규 프로듀서는 “일제폭압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주인공을 통해 가해자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평생 조국에 헌신… 이젠 편히 쉬소서/100세로 타계한 최고령 독립운동가 이강훈 선생

    최고령 독립운동가인 이강훈(李康勳) 선생이 100세를 일기로 12일 오전 별세했다.선생은 2000년 직장암 판정을 받고 서울보훈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타계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오는 16일 오전 9시 발인한 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관 앞에서 영결식을 갖고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다. 1903년 6월13일 강원 김화에서 태어났으며,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고,1920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업을 도왔다.이어 1924년 신민부에 가입해 활동했고,1926년에는 김좌진 장군의 지시를 받아 백두산 근처의 신창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젊은이들에게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1933년에는 일제의 주중(駐中) 공사 유길명이 친일파 중국 정치인들을 매수해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고 ‘흑색공포단' 을 조직,유길명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그러나 유길명을 살해하기 직전 일본 경찰에 체포돼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도쿄로 이송돼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조국 광복으로 출소했다. 선생은 광복 이후 재일한국거류민단 부단장으로 일하다 1960년 귀국,한국사회당 총무위원으로 활동했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상을 의심받아 또다시 2년간 옥고를 치렀다.이후 선생은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1977년 독립운동유공자 공적심의위원으로 활동하다 그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고,1988년부터 5년동안 제10·11대 광복회 회장을 역임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이병환(58)씨와 아들 승재(30)씨가 있다.(02)2225-1258. 조승진기자 redtrain@
  • “이장하라 · 배고픔 아느냐”/박前대통령 묘역 시민단체 ·추도객 충돌

    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10·26’ 24주기를 맞은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묘 이장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추도객 사이에 고함이 오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국민연대(공동대표 홍근수),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 등 회원 3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현충원 정문 앞 인도에서 1시간 동안 ‘왜군장교 박정희 묘 국립묘지 추방 궐기대회’를 열고 “친일 반역의 상징이자 군사쿠데타 원흉의 묘를 현충원에서 옮겨야 역사와 민족정기가 바로 선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각 민족중흥회(회장 김진만) 주최로 현충원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추도식을 찾은 시민 가운데 5∼6명은 “너희가 배고픈 것을 알기나 하냐.”며 거세게 항의,시민단체 회원과 말싸움을 벌였으나 경찰의 제지로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국회의원 등 유족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남덕우 전 총리 등 박 정권 당시 인사,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두걸기자
  • 민족문제연구소장에 임헌영 교수

    임헌영(62·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이 24일 민족문제연구소 제3대 소장에 취임했다.지난 1991년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잔재 청산 등 주로 친일문제와 관련된 연구와 활동을 수행해 왔다.
  • 최승희 뮤지컬로 춤으로 34년만에 되살아나다

    춤 하나로 살면서 온갖 영욕을 누렸고 죽어서는 신화가 된 인물,최승희.‘전설의 무희’로 불리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조명한 공연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26일∼10월12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재일교포 무용가 백향주의 무용공연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24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뮤지컬과 춤 공연에서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52)와 무용가 백향주(27)를 만나 공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뮤지컬 ‘최승희’- 인간 최승희의 삶과 예술 포스터용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듯한 이목구비며,기품있는 포즈가 영락없는 자료사진 속 최승희다.“전부터 ‘최승희 닮았다.’는 말을 적잖이 들었어요.언젠가는 최승희 역을 맡으리라 기대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루었네요.” 밝히길 쑥스러워했지만,김성녀는 이 작품을 위해 무려 7㎏을 감량하는 열의를 보였다.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 연출가와 김성녀 부부가 최승희 소재의 작품을 구상한 것은 14년 전.1988년 월북 예술가에 대한 정부의 해금 조치 이후 최승희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었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차근차근 작품을 준비해왔다. “최승희의 삶 자체가 아주 드라마틱하잖아요.‘천재무용가’ 칭송을 받을 만큼 탁월한 춤꾼이었지만 이념과 사상에 휩쓸려 친일무용가의 오명을 썼고,결국엔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불운의 인물이지요.” 뮤지컬은 최승희에 덧씌워진 전설과 환상의 베일을 벗겨내고 오직 춤만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의 숙명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다.역사적인 인물을 형상화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미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최승희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측면도 묘사한다.뮤지컬이지만 음악 비중을 줄이고,무대를 최소화한 대신 풍부한 영상활용으로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그는 “연습을 할수록 최승희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예술가로서 가정보다 일을 앞세우고,제자에게 엄격한 모습 등 삶의 방식과 성격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무용가가 아닌 인간 최승희에 조명을 맞추더라도 극중 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하지만 그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아무리 노력한들 최승희의 춤을 어떻게 똑같이 해내겠어요.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보여줄 생각입니다.” 극중 최승희의 대표작 ‘보살춤’ ‘노사공’ ‘에아라노야’ 등 핵심 부분만 선보일 계획이다. “마지막 부분에 최승희가 육성으로 남긴 자작곡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최승희의 체취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배우 김성녀의 얼굴에 최승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02)747-5161. ●무용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 춤으로 재현한 최승희 지난 봄 백향주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무용계에 화제가 됐다.두살 때부터 무용가인 아버지 백홍천으로부터 클래식 발레와 조선민족무용을 배우기 시작해 25년 넘게 춤을 췄고,‘최승희의 환생’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그가 뒤늦게 배움의 길로다시 들어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저에겐 당연한 선택이에요.지금으로선 남북한의 춤을 체계적으로 비교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한국무용을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재일동포인 백향주는 9살 때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공부를 시작했고,11살 때는 김일성 주석 앞에서 단독공연을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이듬해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해 무용가 엘리트 양성과정을 밟다가 16살 때 국비장학생으로 중국 유학을 떠났다.1991년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가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배운 뒤 ‘최승희의 부활’이란 격찬을 받았다.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춤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번 공연은 네번째 한국 무대이자 2년만의 단독 공연.‘최승희의 신화를 넘어’라는 부제는,그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제 춤을 오로지 최승희의 재현으로만 대하는 분들을 보면 섭섭해요.물론 칭찬이란 걸 알지만 제 춤은 어디까지나 저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지,누구를 흉내내는 건 아니니까요.” 최승희의 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위에 백향주의 색깔과 느낌이 묻어나는 그만의 춤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이다.그는 또 특정 국가나 민족을 대변하는 예술가로 머물기를 거부한다.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를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만만치 않다.이번 공연에는 우조춤,무당춤,관음보살무와 영춘장고춤,중국 태족춤인 공작새춤 등 독무 5개를 선보인다.한층 깊어진 그의 내면이 최승희의 춤사위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최승희 연구가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터는 그에게선,최승희의 그림자 대신 무용가 백향주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다.(02)3464-4998. 글 이순녀기자 coral@ 사진 이언탁기자 utl@
  • 뉴스 플러스 / 여야 154명 ‘親日 진상규명법’ 제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14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김희선)’을 중심으로 한 여야 의원 154명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대통령 직속기구로 5년 시한의 규명위원회를 설치,친일혐의자 선정과 조사,보고서 및 사료 편찬을 수행토록 했다.
  • 서정주詩 ‘국정교과서 삭제’ 논쟁

    미당 서정주의 시가 국정 교과서에서 빠진 것과 관련해 찬반 논쟁이 재연됐다.전장(戰場)은 시인들이 만드는 시 전문 계간지 ‘시경’. 교사 출신 시인 배창환씨는 가을호에 ‘서정주와 국정 교과서 진짜 문제’라는 기고에서 경주대 손진은 교수가 여름호의 ‘서정주가 빠진 국어 교과서’를 통해 서정주의 시를 뺀 것을 비판한 글을 다시 비판했다. 손교수는 여름호에서 “서정주의 시를 뺀 채 한국 시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중·고 국어교과서(7차 교육과정)에서 서정주의 작품이 빠진 것은 국어 교육의 근시안에서 생긴 오류의 극명한 예”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배씨는 “서정주의 작품이 국정교과서에서 빠진 것은 일제의 ‘문필보국’에 호응해 적극적인 친일을 한 것으로 판명된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반박했다.배씨는 손교수에게 “정말로 ‘우리 자녀들’에게 서정주를 빼고는 우리 시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아이들이 ‘그 시대에는 친일 시인밖에 없었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씨는 국정교과서에 수록되는 것을 시인에 대한 당대의 객관적 평가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그는 “국정교과서는 일제와 역대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 교육의 유제였고 교사들의 투쟁으로 검인정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며 “국정교과서에서 서정주가 빠졌다고(고교 검인정 문학교과서 18종 가운데 10종에나 들어 있음에도!) 교과서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시대착오적 구태”라고 주장했다.배씨는 “그가 국정 교과서 이야기를 ‘불쑥’ 꺼낸 것은 서정주 시인을 너무 ‘흠모한’ 나머지 고심을 거듭하던 끝에 뱉어낸 ‘실언’이었거나,대학에 재직중이라 지금 중·고등학교의 국어교육의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믿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종수기자 vielee@
  • SBS FM ‘친일가요’ 특집

    SBS 러브 FM은 8·15 특집 다큐멘터리 ‘친일 가요를 말한다’를 10일과 17일 오전 8시 방송한다. 제1부 ‘황국식민의 노래’(10일)에서는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을 둘러싼 친일논쟁을 살펴보고,2부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17일)서는 현제명,홍난파 등 친일 의혹을 받는 음악인을 소개한다. 제작진은 “우리가 즐겨부르는 노래 가운데 상당수가 일제 치하에서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면서 “이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 [길섶에서] 선운사 가는길

    선운사 가는 길은 평이했다.절 마당은 휑하니 넓었지만,대웅전 뒤 그 유명한 동백숲은 한 여름엔 그저 무미건조한 초록이었다.돌아오는 길,그나마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준 건 경내를 가로 지르는 도솔천이었다.송사리보다는 몸집이 굵은 민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노니는 실개천은 이 곳이 살생이 금지된 절마당임을 일깨웠다. 하지만 절집 경계를 넘자 ‘풍천장어’ 음식점이 한집 건너 두집꼴로 발에 차인다.모른 채 외면하고 바닷가로 내처 달리니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시문학관은 질마재마을 시인의 생가 옆 선운초등학교 폐건물을 리모델링해 꾸며졌다.4층 전망대에 오르니 스물세 해 동안 시인을 키웠다는 고창의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싼다.돌아와 아내 곁에 누운 시인은 어린시절 어른들이 일 나간 뒤 집에 홀로 남아 들었던 뻐꾹새 소리를 다시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던 시인은 그 무슨 꽃을 피우려 친일,독재옹호라는 과오를 무릅썼을까.위대한 시인의 슬픈 뒤안길이 너무도안타까운 여행길이었다. 김인철 논설위원
  • “未堂의 詩 - 행적 따로 평가 받아야죠”/36년만에 교정 떠나는 서울대교수·시인 황동규 씨

    이사를 앞둔 탓이었을까.이번 여름을 끝으로 36년 만에 교정을 떠나는 서울대 황동규(黃東奎·65) 영문과 교수의 연구실은 좀 어수선하게 느껴졌다.하지만 베토벤 현악 4중주의 바이올린 선율과 오래된 책 냄새가 떠도는 방에서 따뜻하면서도 형형한 눈빛을 한 황 교수는 ‘시인마을 촌장’의 품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만해(萬海)와 소월(素月),그리고 미당(未堂)의 궤적을 잇는 한국 서정시가의 ‘적자(嫡子)’ 황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정시의 기본이 바로 ‘사랑 노래’죠” 황 교수 작품의 스펙트럼은 40여년 시작(詩作)의 세월 만큼 다양하다.‘즐거운 편지’,‘조그만 사랑노래’ 등의 사랑시부터 시작,‘계엄령 속의 눈’,‘삼남에 내리는 눈’ 등 암울한 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한 참여시의 경지까지 나아갔다.80년대 이후로는 ‘풍장’ 연작시와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몇년 전 영화 ‘편지’로 널리 알려진 황 교수의 ‘즐거운 편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대중적이면서도 평론계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즐거운 편지’는 고려가요 ‘가시리’로부터 내려오는 ‘기다림’이라는 한국 사랑노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면서도 “6·25 전쟁 직후 풍미하던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자세가 나타났다.”고 자평했다.사랑 역시 시간의 흐름에 소멸한다는,자연 법칙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말이었다. 왜 결국 사라지고 마는 사랑과 죽음에 줄곧 매달렸을까.황 교수는 “‘사랑과 죽음’은 삶의 앞뒷면을 보여준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그는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의미 있는 법”이라면서 “고통을 받아들여야 결핍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 시의 핵심 개념은 ‘홀로움’.황 교수는 “외로움은 수동적으로 혼자 남겨진 상태지만 홀로움은 선택에 의해 혼자 있는 것”이라면서 “홀로움은 결국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회망의 기초가 된다.”고 말했다.홀로움이 개인성의 극대화로 해석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미당에게 무언의 시위를 했다” “고은 선생의 미당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미묘한 질문을 던졌다.황 교수가 미당의 추천으로 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을 뿐 아니라 평소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미당을 손꼽아 왔기 때문이다.지난해에는 모 신문사에서 제정한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친일 행각은 접어두더라도 80년대 초 군사독재 정권에 아부하던 미당의 행적은 용납하기 어려웠다.”면서 “당시 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과 매년 다니던 세배를 2,3년동안 다니지 않는 등 미당에게 무언의 시위를 했다.”고 회상했다.황 교수는 그러나 “시인의 삶에 문제가 있다고 시가 엉터리라고 하는 것이나,시가 좋으니까 과거의 것을 일절 묻지 말자고 하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친은 제 문학의 표본입니다” 황 교수의 아버지는 ‘소나기’와 ‘목넘이 마을의 개’를 지은 소설가이자 오랫동안 경희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고(故) 황순원 선생이다.보기 드문 ‘부자 문학가’인 셈이다. 인터뷰 내내 황 교수는 선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선친의 그늘에서부터 헤어나오기 위해 나름대로 싸워왔기 때문이다.“선친은 소설 외에는 다른 글을 쓰지 않은 깨끗한 선비 같은 분”이었다고 황 교수는 떠올렸다.수필 등 체취가 묻어 나오는 ‘잡문’을 써 온 것도 문학적 스타일을 세우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선친에 대한 존경심 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황 교수는 “대학 시절 회현동 2층 집에서 새벽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1층에 내려갔을 때 서재에서 불을 밝힌 채 창작에 매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면서 “선친은 예술인의 엄격함을 보여준,내 문학적 인생의 무시할 수 없는 표본”이라고 떠올렸다. ●“젊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은 쉽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법.슬쩍 ‘즐거운 편지’의 대상이 됐던 분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황 교수는 “선친이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동료 선생님의 딸”이었다고 들려줬다.“결혼한뒤로 미국에 이민 간 그분을 한국에서 몇 번 만나 술도 마셨지만 예전의 감정이 안 오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황 교수는 올해는 아무것도 안 할 계획이다.“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게 이유다.문단에서 꼽히는 ‘여행광’이지만 무작정 떠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시도 억지로는 안 쓸 참이다. 황 교수는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교수님’이지만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점잖으면서도 멋있다는 게 그 이유다.종종 이메일로 ‘팬레터’까지 받을 정도다.황 교수는 “언제나 젊어지려고 노력한다.”면서 “학생들에게 너무 논리에만 얽매이지 않고 감수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49년‘국회프락치사건’ 대표적 왜곡사건이지”/오늘 55주년 제헌절맞는 제헌의원 김인식 옹

    209명 가운데 단 둘만 남았다.제헌절 55돌을 맞는 제헌국회 의원은 김인식(金仁植)·정준(鄭濬) 옹뿐이다.그나마 17일 국회에서 열리는 제헌절 행사에는 김옹만 참석한다.정옹은 요즘 당뇨 증세 등으로 거동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국회에서 만난 김옹은 참으로 정정했다.1913년생이니 올해 만 90세다.160㎝ 가량의 땅땅한 체구였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이를 가늠키 어려웠다. “감회가 어떠십니까.”하고 물으니 세상을 뜰 걱정을 먼저 했다.“죽고나서가 걱정이지.다들 돌아가시고….한 분은 병석에 있지.나마저 가면 어찌되나 몰라.또 어떤 왜곡된 말들이 나올지 말야.살아있어도 이렇게 말들이 많은데…” ●“어떤 일들이 왜곡될지…” 김옹은 ‘왜곡’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을 꼽았다.“반공주의자 아니면 당선이 안 되던 시절이야.그런데 무슨 빨갱이라고 몰아붙여.당시 한민당에서 무소속이나 다른 당 의원들이 말을 안 들으니까 만들어낸 사건이야.” 김옹도 이에 연루될 뻔했다고 한다.“나중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만하자고 해서 흐지부지됐더랬지.나도 문턱까지 가지 않았드랬어.내래 황해도 해주 출신인데 무슨…” 그러고 보니 거센 이북 사투리가 더욱 강하게 들린다.“고향 땅에서 공산당들이 하는 짓거리를 두 눈으로 다 봤지 않았겠어.그래서 월남한 거이지.남로당 조종을 받았다는 게 말이 되나.” 그는 지금도 월북한 의원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했다.모두 납북됐다는 주장이다. 제헌 국회의 총 의석수는 300석이었다.이 가운데 실제 선거가 치러진 곳은 198곳.북한 몫으로 100석을 남겨 놓았고,제주는 4·3사건으로 인해 3개 선거구 가운데 2곳에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이후 제주와 기타 보궐선거 등으로 11명의 의원이 추가로 선출돼 209명을 제헌의원이라고 했다.공식적으로는 6·25 때 10명이 학살당하고,51명이 납북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 국회 프락치 사건을 통해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가 와해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소장파 전성시대’로 불린 제헌 국회에서 소장의원들은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통일운동과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으나 이 사건으로 소장세력이 무력화하고 친일파가 득세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발의 김옹은 국가보안법을 발의한 주인공이다.“정권을 절대로 공산당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국보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없애면 안돼.햇볕정책? 김정일은 말을 듣지 않아.김대중 정권부터 북한에 말려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질 않아.불안해.” 김옹은 여러차례 이 말을 강조했다.인터뷰 도중 제헌절을 앞두고 문안 인사차 찾아온 김두관 행자부장관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제를 돌렸다.“요즘 정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그랬더니 “오늘날 정치인들 물질 만능에 휩싸여서…”라고 했다.아마도 최근 여권의 대선자금 파문을 지칭하는 듯했다. ●적산가옥,국회 결의로 거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헌의원들 집이 없어 되겠느냐고 했다는 거라.적산가옥을 하나씩 주라고 했어.국회 사무총장이 보고하더라고.그런데 우리가 반대했지.아,국민이 먼저 잘 살아야지.국회에서 결의해서 안 받았어.국방장관이 의원 개개인에 지프차를 준다고 했어도 그거 안 받고 걸어다녔어.제헌의원들은 그렇게 살았어.” 그가 소개한 제헌 국회의 또다른 사례.“제헌 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잖아.그런데 5·10선거에 당선된 뒤 연장하자는 주장이 있었거든.그러나 ‘그래서야 되겠느냐.헌법 만들고는 물러나야 한다.’고들 했지.(의원을)정 또 하고 싶으면 선거해서 다시 들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정치 행태로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도 금방 눈에 띄었다.“그 때도 한민당에서 다른 의원들 불러다 입당하라면서 술대접도 하고 춤도 추고 그랬다.”는 것이나,김옹 자신도 “고향사람에게서 5만환이라는 ‘거금’을 받아들고 선거를 치렀다.”는 사실이 그랬다.40년대 말에도 돈 없이 선거 치르기 어렵고,정치판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마지막 제헌동지회장 국회수첩 뒷부분에 보면 ‘국회 유관단체’란에 ‘제헌동지회’가 등재돼 있다.김인식 옹이 회장이고,정준 옹이 감사로 돼 있다.이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제헌동지회는 아마 사라질 것이다.19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옹은 이제 임기가 끝나면 20대 임기를 ‘무기한’으로 할 계획이다.더 맡을 사람이 없어서다. 김옹은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귀향한 뒤 45년 대동청년단 서북사무처장을 맡았고 인천 옹진을에서 당선됐다.와병 중인 정옹은 1915년 생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으며,김포에서 당선된 뒤 3·4·5회 4선을 지낸 데 이어 MRA(세계도덕재무장)세계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지운기자 jj@
  • 7월의 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

    국가보훈처는 1일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인 소몽 채기중(사진·1873∼1921)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13년 풍기 광복단을 조직해 영·호남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다.이후 대한광복단 경상도지부 책임을 맡아 회원과 군자금 모집 활동에 전력을 기울여 대한광복단을 전국적인 조직으로 키웠으며 주요 인물들을 단원으로 가입시켰다. 또 자금지원 약속을 어긴 경북 칠곡의 한 친일 부호를 직접 처단하고 거사의 대의를 밝힌 경고문을 남겨 친일세력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상진,김한종 선생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1921년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독립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관련 자료와 사진이 7월 한달간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형무소에서 전시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대한매일신보 창간정신 오늘에 되새기며…/ 어제 배설선생 94주기 추도식

    “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 구한말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設·영국명 베델)선생이 일제의 탄압으로 건강이 악화돼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을 안타까워한 고종 황제의 조문(弔文)이다.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배설선생 서거 94주년 기념대회’가 24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묘지공원에서 열렸다.배설선생기념사업회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주최하고 민족정기수호중앙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대회장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대회사와 찰리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의 기념사,선생의 생애와 활동보고 순서로 이어졌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대회에서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외국인의 몸으로 자기의 전부를 던져 한국을 위해 헌신한 배설선생의 정신에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며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각자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험프리 대사는 기념사에서 “한·영 우호·통상·항해 조약이 체결된 지 120주년을 맞아 양국의 우호적 협력관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인 배설 선생을 추모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유족을 비롯,200여명이 참가했다.김유전 광복회장,박기정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등도 참배했다. 1872년 영국 남부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배설선생은 고향에서 소년기를 보낸 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완구점과 무역업을 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돼 한국으로 건너왔다.일제의 방화로 경운궁이 불탄 뒤 보낸 ‘대한제국 궁중의 폐허화’란 제목의 첫 기사가 친일 성향의 크로니클지와 맞지 않자 사직서를 낸 선생은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등 민족진영의 논객들과 뜻을 모아 같은 해 7월18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요구를 신랄하게 비판한 창간호 사설을 비롯 ‘을사조약 무효주장’ 등 항일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배설선생은 계속되는 항일 논조로 두차례 재판에 회부되는 등 일제의 위협에 시달렸다. 동방의 조용한 나라의 주권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벽안의 이방인을 기리는 행사는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 속에 대한독립국가 선양회 합창단이 ‘독립군가’와 ‘용진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행됐다.대한매일은 내년에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 “교과서 친일파 행적 기술 소홀”대한매일 후원 ‘친일파 교과서 기술’ 토론회

    현행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항일독립운동사에 비해 친일 인사의 행적을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한·일 역사교과서협의회’를 만들어 양국의 교과서를 공동으로 연구,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인규)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대표 김희선)이 주최하고 대한매일이 후원,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친일파 행적 역사교과서 기술문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같이 주장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이만열 위원장은 ‘친일파의 개념과 범주’라는 발제를 통해 “친일파 문제는 법률적 처단이나 정치적 해결의 차원보다 역사 청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친일파는 단지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만이 아닌,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조하고 우리 민족에게 신체적·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힌 행위자”라고 규정했다. 이 위원장은 친일파의 대상을 한반도 영역 안이나 물리적 탄압을 행사한사람들만으로 한정하지 말고 각종 친일사상과 논문,작품,교육영역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순국선열유족회는 현행 역사교과서 4종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에서 친일행적을 기록한 단원이 거의 없는 교과서가 있고,이를 다루더라도 친일파의 재산과 친일 문인·기업가 등에 국한된 지극히 적은 분량만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회는 또 “교육인적자원부가 고교 2,3학년 과정에서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한 것은 파행적인 역사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한운석 연구원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파동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꼬집었다. 그는 “2차세계대전과 나치 지배로 갈등이 심화된 독일과 폴란드는 양국의 역사교과서 내용의 권고안을 만들고 미진한 부분은 학술연구를 통해 공동의 교사 안내서까지 작성했다.”며 한·일 양국의 쌍무적 협의를 통한 교과서 개선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교과서연구소 창립 ▲도쿄에 한·일 역사가 교류협력을 위한 한국역사연구소 설립 ▲한·일 역사교과서협의회를 통한 양국 교과서 수정방향 모색 등을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토론 내용을 교육부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 등에게 제안,역사교과서 재편방향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친일파 행적 역사교과서 기술’ 논의

    사단법인 대한민국 순국선열 유족회(회장 이인규)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대표 김희선)은 16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강당에서 친일파 행적 역사교사서 기술문제를 주제로 좌담회를 갖는다.
  • 한국인 아내·프랑스인 남편 함께 노래한 ‘아리랑’

    최근 대하소설 ‘아리랑’이 프랑스어로 완역된 것은 두가지 면에서 뜻깊다.유럽에서 한국 대하소설이 완역된 것이 처음이란 것과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한·일 관계의 진실을 알릴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주인공은 7년 동안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번역에 매달린 전 파리7대학 교수 조르주 지겔메이어(65)와 한국인 부인 변정원(53)씨.작가 조정래도 “방대한 분량에다 사투리도 많아 아주 힘든 작업을 꼼꼼히 마쳐 원작을 쓰는 것 못지않은 중요한 일을 했다.”며 사의를 표했다.그들이 묵고 있는 서울 플라자 호텔을 찾아 ‘아리랑’ 번역에 얽힌 얘기와 그들의 삶을 들어보았다. “24년 전 외국인과의 결혼을 고심 끝에 허락하신 어머니가 ‘한국과 프랑스를 위해 좋은 다리가 되라.’고 당부하셨는데 ‘아리랑’ 완역으로 보답한 심정입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마뜩찮게 바라보던 시절,오빠들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할 때 지겔메이어를 만나보고 ‘사람이 진국’이라며 결혼을 허락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恨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말이 유창한 지겔메이어는 “이 번역으로 36년 동안 나치 탄압 못지않은 수탈을 당했던 한국인의 생활상과 ‘한(恨)’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선물로 받은 ‘아리랑’을 보고 감동한 변씨가 번역에 착수한 것은 96년.그해에 조정래씨,해냄출판사와 논의한 뒤 프랑스의 아르마탕 출판사와 계약까지 마쳤다.부인이 1차로 번역하고,남편이 재번역하는 등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면서 7년을 내리 ‘아리랑 곡조’에 젖어 살았다. 이들의 결혼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7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 변씨는 생면부지의 땅에 도착한 뒤 지겔메이어에게 편지를 보냈다.고교 시절 그에게 불어 그룹과외를 받은 기억을 더듬어 이름만으로 수소문해 주소를 알아낸 것.그러나 지겔메이어는 2년 뒤에야 그 편지를 받았다.편지를 받은 부모가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아들에게 깜빡 잊고 전해주지 못한 것이다. ●과외교사와 학생… 결혼도 극적으로 2년 뒤 서랍에서 편지를 발견한 지겔메이어는 ‘한번 만나자.’고 아주 늦은 답장을 보냈다.이후 1년 정도 연정을 키워오다 지겔메이어의 청혼으로 79년 10월 결혼했다. “66년부터 73년까지 경북 문경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받은 한국 이미지가 너무 좋아 프랑스 여성과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정원은 호기심 많고 매사에 열심이어서 한 여성이 아니라 ‘한국 이미지’와 겹쳐 보였습니다.”(지겔메이어) “서양이 오히려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어요.특히 ‘한국은 가톨릭의 가르침 없어도 인간답게 잘 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겸손하고 순박한 모습에 감동받았죠.”(변정원) 지겔메이어의 한국 생활 7년은 삶의 전환기였다.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모습은 신에 귀의한 자신의 선택을 흔들었다.그는 귀국한 뒤 사제생활을 접고 속세로 돌아왔다.한국을 더 배우고자 파리7대학에서 ‘일본 강점기 시대의 한국 경제사’를 주제로 박사과정(DEA) 학위를 받고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그는 당시 경험한 인상적인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업시간에 백제시대 과학자·기술자가 일본에 건너가 문물을 전했다고 강의하자 일본인 학생 몇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일본이 침략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그들이 받은 교육과 정반대여서 그랬나봐요.” 이런 기억이 있는 그에게 ‘아리랑’은 한·일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깨달음을 주었다.“신라시대 불교부터 6·25까지 공부한 그였지만 일제 강점기는 빠져 있었다.”는 그는 “작품을 읽은 뒤 일본의 만행이 나치보다 더 심했다는 걸 알았다.”며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사과하고 한국이 받아들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아리랑’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잊어서는 안될 민족의 상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는 ‘아리랑’의 또 하나의 미덕은 한민족의 특성과 개성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동화되어 사는 모습,비록 못살더라도 이웃과 궂은 일을 함께하는 정겨움 등은 서양인이 배울 점”이라고 평가했다.소나무를 이용하는 세시풍속에 대한 것만 2쪽이나 나올 정도로 한국 농경문화를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한국인들 소중한 전통 쉽게 잊는 듯 이래저래 이들 부부의 ‘한국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지난 2000년 2월 영화감독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가 파리의 ‘시테 유니베르시테르(국제대학생기숙사촌)’ 등에서 상영될 때는 프랑스어 자막을 무료로 번역해주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30여년 전 한국의 모습을 잘 아는 벽안의 이방인이 현대의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한국 문화가 너무 빨리 바뀐다.바뀌는 건 좋은데 머리에 물들이기 등 서양문화의 겉모습만 흉내내는 것 같다.그러면서 소중한 전통문화를 너무 쉽게 망각하는 건 아닌지….또 하나의 의문은 친일파 문제다.한국은,프랑스에서 나치 협력자에게 ‘반인류범죄’를 적용해 엄벌에 처한 것처럼 왜 친일파를 응징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 이두용 감독 아리랑 / 흑백화면 가득 눈물과 해학 질펀

    내용보다 형식을 먼저 따지게 되는 영화가 있다.23일 개봉하는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제작 시오리엔터테인먼트)이 그렇다.일반 관객을 노린 상업영화이면서 거의 대부분을 흑백처리한 화면부터 무척 낯설다.변사가 경어체로 일일이 해설을 다는 신파조의 대사방식 또한 요즘 관객에겐 큰 ‘실험’이다. 그러나 스타일이 구식이라고 해서 감상의 묘미를 지레 속단해선 안된다.편견을 걷고 극장 문턱을 넘기만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한(恨)과 해학의 전통정서를 질펀하게 펼친 영화에서는 비장미와 유쾌함이 엮는 씨줄날줄이 기대 이상이다. 원작은 1926년 춘사 나운규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 ‘아리랑’.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민중의 설움을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구성지게 그려간다.경성제대에 다니던 영진(노익현)이 일본 경찰에 고문을 당해 미쳐서 낙향하자 가족의 꿈도 함께 산산조각이 난다.술로 현실을 잊어보려는 아버지,방안에 짐승처럼 묶여지내는 오빠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는 여동생 영희(황신정)가 신파의 농도를 더하는 캐릭터들. 영화는 반일과 친일이라는 두개의 울타리 속에 등장인물들을 나눈 다음,선악의 개념을 뚜렷이 대비시킨다.영진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친구 현구를 비롯한 동네사람들과,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며 호시탐탐 영희를 노리는 천씨 부자(父子)의 맞대결로 드라마는 살을 붙여간다.바로 이 대목에서 신·구세대 관객의 감상평이 엇갈릴만하다.순진하리만큼 단순한 설정에 기성세대 관객들은 긴장을 풀겠지만,신세대쪽은 심심해질 수도 있을 듯하다. 1920년대의 시골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촬영지는 전남 순천 낙안마을.덕분에 전통미학의 결이 화면에 제대로 살아났다.인물 동작이 구한말의 자료화면을 보는 듯 뚝뚝 끊기는 느낌이 나는 것은 18프레임(보통영화는 24프레임)으로 찍은 촬영기법 때문이다.주연배우들은 모두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은 신인.‘피막’‘물레야 물레야’‘뽕’ 등의 화제작으로 관록을 쌓은 노장감독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황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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