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친일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음모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내성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몸집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 음주
    2026-06-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56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의 빛과 그늘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모든 계획을 완료한 이토히로부미는 “우리 일본인 300만명만 이주시키면 조선 반도는 영원히 일본이 지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리하여 그는 청년 안중근의 총탄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죽었으나 그가 세운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한반도를 병합했으며,곧바로 토지조사 사업을 시작했고,그 8년 동안에 이땅의 농지 45%를 강탈했다.조선 농민 절반 이상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킨 그 토지조사사업은 일본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데 필요한 농토 확보 방법이었다. 우리가 광복되었을 때 이땅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얼마였을까.대략 80만명 정도였다.그런데 거기에 기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얼마였을까.줄잡아 150만명이 넘었다.일본인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샅샅이 알게 해주었다.독립투사들이 만주 어느 지역에서 잡히든 이틀이면 신원 파악을 완료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조선총독부의 정보망도 결국 그 친일파들의 충성 덕분이었다.그런데,일본인 300만 이주를 계획했던 이토히로부미의 구상은 실패한 것일까.그렇지 않다.일본은 친일파 150여만명을 자기네 충복으로 거느림으로써 복잡한 이주책을 쓰지 않고도 그 계획을 달성한 것이었다.어느 시인은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의 변을 지치지도 않고 이렇게 되풀이했다.“일본이 200년을 갈 줄 알았다.인도에서 영국이 그랬듯이.” 그래서 평생 그늘에서 살다 죽을 수 없어 양지를 찾아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일본은 조선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었다.일본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친일파들은 늘어날 텐데 굳이 자기네 국민들에게 이주를 강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독립투사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식민지배 36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수는 미처 1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는 일본의 폭압이 두려워 집단적인 적극 저항을 하지 못한 비겁을 저질러 결국 36년 동안 400여만명이나 죽어가야 했다.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가 있었다.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다.의열단은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투쟁방법을 실행한,요즘 말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그래서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 중에 김원봉 선생이 김구 선생을 능가해 으뜸이었다.일본 ‘천황’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의열단은 그러나 해산되어야 했다.참 슬프고 어이없게도 활동자금의 고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원봉 선생의 뜻을 따라 10만명,아니 5만명만 뭉쳐서 전국 도처에서 날마다 일본인을 몇 십명,몇 백명씩 죽이고 우리 조선사람들도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5만명이 죽기 전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그랬으면 우리의 광복은 25년쯤은 더 빨리 왔을 것이고,우리 동포가 400만명씩이나 희생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그때 상황을 무시한 허황된 공리공론이라고 지탄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그런데,10여년 전에 남미 어느 나라의 군부독재 폭압을 그린 ‘로메로’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마지막 자막은 ‘그들은 뭉치지 못해 결국 7만명이나 죽어 갔다.’고 쓰고 있었다. 흔히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특히 우리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군위안부 비극도 그 중의 하나다.그 쓰라린 슬픔을 상업화하려다가 큰 말썽이 일어났다.그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진정성으로 군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그 누드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야한 장면들이 나왔더라도 전혀 말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실미도’ 못지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돈벌이에도 성공했을 것이다.그 사건을 향해 삽시간에 일어난 뜨거운 지탄은 역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진지성과 건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는 잊어도 좋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피흘리고 있는 현실이다.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솟아오르는 것은 그 좋은 반응이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한나라, 친일반민족·의문사규명 특별법 상정 막아

    정치권이 지역구 증원 등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하며 과거사 규명 및 민생 관련 법안을 또다시 뒷전으로 내몰았다.특히 일제 식민지 친일행위,군사정권시절 의문사 등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법안들은 한나라당의 거부로 법사위를 통과하고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었으나 지역구증원만 표결로 통과시켰을 뿐 이미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한국전쟁 민간인희생 진상규명법’ 등 4개 법안은 한나라당이 상정보류를 요청해 처리되지 못했다.‘개인채무자회생법안’과 ‘미아발생예방법률안’은 상임위 처리가 보류됐다.이날 국회에서는 민주당 전갑길 의원 등이 의사일정변경안을 제기해 애초 안건에 없던 ‘한국전쟁 민간인희생 진상규명법안’을 상정시켰으나,한나라당 의원들이 정회를 요청한 뒤 퇴장해 버려 통과되지 못했다.이와 함께 소방방재청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민생관련 법안 20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본회의는 의결 정족수 미달로 산회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중요한 민생법안들이 처리가 되지 않고 있는데 통과시킬 것은 통과시키며 당당하게 임해달라.”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의장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3월2일에도 이들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이 늦어지고,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법정 활동시한인 오는 6월을 끝으로 없어지게 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친일 반민족’ 실체 밝힌다

    국회 법사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27일 본회의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그러나 관련자나 후손들의 반발로 사회적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에 따르면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친일 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며,위원회는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사료를 편찬할 수 있도록 했다.위원회의 활동시한은 3년이다. 법안은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토벌하거나 토벌하도록 명령한 행위와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등을 친일 반민족행위로 규정했다.또한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고용돼 행한 밀정행위와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특히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중앙의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도 친일 반민족행위로 간주했다. 이와 함께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전국적 차원에서 돕기 위해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자발적으로 헌납한 행위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법사위는 당초 원안에 있었던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들의 극렬한 논란 끝에 ‘중좌 이상으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 수정해 통과시켰다.이 부분은 친일행위 여부와 관련,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조항이랄 수 있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당시 일본군대에서 중좌 이상의 계급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은 없었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한 자체는 친일 행적행위가 짙다.”고 반대했다. 이에 민주당 조재환 의원은 “민족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당리당략적 의도가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주자로 부상하니까 공격하기 위해 그렇게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법사위는 결국 ‘중좌 이상’을 놓고 표결을 한 끝에 찬성 5명(한나라당),반대 2명(열린우리당),기권 1명(조재환)으로 수정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친일인명사전 모금운동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국내외를 망라하고 열심히 자료를 챙기고 있습니다.기존의 백과사전 스타일로 20권짜리 친일인명사전을 2006년에 우선 선보일 예정입니다.최근 벌어진 이승연 누드파문도 친일청산이 안됐기 때문이지요.” 지난 연말 ‘2004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국회가 ‘친일인명사전편찬비용’을 전액 삭감하자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74) 이사장은 반신반의하면서 모금운동을 벌였다.혹 ‘친일’ 운운하면서 모금한다는 오해의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목표액(5억원) 달성 시점도 올 8월15일로 멀찌감치 잡았다. 그러나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10일 만에 5억원을 넘더니 두 달도 채 안 된 20일 현재 7억여원에 이르렀다.일반시민과 네티즌이 십시일반으로 모금운동에 적극 동참한 결과였다.모금운동에는 모두 3만여명이 참여했고 회원수도 1000여명에서 3000여명으로 3배나 늘었다. 조 이사장은 21일 오후 5시 들뜬 마음으로 이들과 첫 대면한다.장소는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다.모임 명칭이 ‘2004년 신년회 겸 회원총회’이지만 성공적인 모금운동에 대한 평가와 친일인명사전편찬을 위한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조 이사장의 감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남다르다. “부산에서 고교 선생님으로 계신 김호령(40)씨가 인터넷을 통해 모금운동에 불을 붙였습니다.친일사전 편찬에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요.” 당초보다 편찬사업을 앞당길 수 있어 의욕이 더욱 커졌다는 그는 “친일파와 그 자손들에 대해 피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편찬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문기자 km@
  • [14일 TV 하이라이트]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최충헌은 3년전 조원정에게 밀정혐의로 추포된 적이 있음을 고하며 이의민에게 목숨을 사정하고,지영과 지광 형제에게 모진 수모를 겪는다.최충수는 형이 치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이의민을 찾아간다.그러나 그 기개에 반한 이의민은 오히려 충성 맹세를 받은 뒤 최충수를 돌려보낸다. ●진주목걸이(오후 7시50분) 갑수에게 끌려가는 난주는 격렬히 저항하지만 역부족이고,난주를 찾아 춘천으로 달려온 기남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난주는 인숙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며 분노하고,인숙은 난주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춘천에서 돌아온 기남은 동생을 내놓으라며 인숙을 찾아간다. ●찾아라!맛있는 TV(오전 11시5분) ‘정원관의 기(氣)찬 요리’는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알아보고,‘음식 대 격돌 맛 7’은 영화 속의 맛집을 탐방한다.‘스타의 맛집’은 가수 박미경 부부의 단골집을 찾아간다.‘대동맛지도’는 경남 김해의 달팽이 요리와 갈치요리를 맛본다. ●발리에서 생긴 일(오후 10시30분) 재민은 수정과 연락이 되지 않자 갤러리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찾아가겠다며 끊는다.수정은 재민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한다.재민이 갤러리로 찾아와 수정을 데리고 나가는 순간 송여사와 마주친다.송여사는 수정에게 달려들고,재민이 막는 과정에서 송여사는 모욕감을 느낀다. ●성인가요 베스트 30(오후 10시20분) 이택림과 노래 ‘톡톡 쏘는 남자’의 강민주가 일일 MC로 나선다.‘영원한 애창곡’에서는 이수미,방주연이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여고시절’과 ‘자주색 가방’을 들려주고,김범룡 박상철 배일호 등 출연진들이 학창시절 잊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여론광장(오후 7시20분) 일제강점시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가 어려워짐에 따라 친일청산 작업을 벌여온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특별법은 무엇이 문제인지,또 친일청산을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지 논의해본다.더불어 독도 망언 등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0분) 로빈 섬은 아프리카의 세번째로 큰 펭귄 서식지이나 유조선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펭귄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기름에 무방비로 노출된 펭귄과 오염된 서식지를 복구하는 사람들.기름유출 사고로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아프리카 펭귄 구조작업 현장을 찾아간다. ˝
  • [12일 TV 하이라이트]

    ●찔레꽃(오전 8시5분) 전화를 받던 성희는 배명숙이란 이름을 듣고 의아해한다.명욱을 찾아가 배명숙을 아냐고 묻지만 명욱은 모른다고 한다.준서는 유경에게 마음을 접으라고 하지만 유경은 더욱 준서에 집착한다.준서와 수옥이 걱정돼 집을 찾은 민규는 다시 한번 수옥의 이별 결심을 듣는다. ●달려라 울 엄마(오후 9시20분)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영화사를 찾아간 석재는 사장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 이주노라는 사실에 놀란다.또 초호화 캐스팅을 약속하자 기대에 부푼다.하지만 갈수록 허술한 제작 여건으로 주인공은 신인으로 바뀌고,석재에게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사과나무(오후 7시20분) 독일,일본에 이어 이번엔 한국의 모유 수유 탐방에 나선다.방송가에선 이미 모유 수유 예찬가로 유명한 이다도시씨를 찾아가 모유 수유 체험기를 들어본다.또 대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어릴 때 집을 나간 누나를 찾는 이호윤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압구정 종갓집(오후 8시50분) 윤식은 말썽만 피우는 아들 켠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가족들은 켠을 달래며 윤식이 꼭 졸업식에 갈 거라고 위로한다.마침내 졸업식 날이 다가오고 윤식은 손님 때문에 바빠 졸업식을 잊는다.문희와 자옥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느라 켠의 졸업식을 잊는다. ●1050 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3명의 MC가 패션의 거리 동대문에서 구리 시민들을 만나 귀가를 빨리 하도록 권한다. 주변을 깨끗하게 해주는 부부 청소미화원과 참다운 봉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적십자회 봉사자의 사랑,경쾌한 커플 등 숱한 이야기들을 싣고 구리로 출발한다. ●PD리포트(오후 10시50분)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부평 미군기지 땅의 소유권 소송에 승소하자,친일파 가족들이 속속 재산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들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거금을 모금하고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데,법은 국민정서도 무시한 채 친일파의 손을 들어줬다. ●세계 세계인(오후 1시30분) 터키에서 카페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16세기 터키의 카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최근에 등장한 여성 전용 카페는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카페에서 친구와 게임을 즐기고 수다도 떨 수 있다.터키에서 인기를 끄는 여성만을 위한 카페를 찾아간다. ˝
  • [사회플러스] “친일파 재산환수법 국회제출”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10일 일제하에서 친일활동을 한 대가로 얻은 친일파 및 그 후손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여야 의원 40여명의 서명을 받아 11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법안은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일본정부로부터 훈작을 받았거나 을사보호조약 또는 정미7조약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공직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들이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했거나 상속·증여해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가난한 富國’ 일본속 외국인들

    “퇴직하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미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폴(60)은 자칭 ‘아시아를 사랑하는 미국인’이다.6년쯤 남은 정년 때까지 일하고,그후에는 동남아쯤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생각 중이다.청춘 때부터 맺은 아시아와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두 차례의 유학,대학교수 생활을 합쳐 25년간 일본에 체재중이지만 정년 이후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일본에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이 일본 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게 일본 속의 외국인들의 말이다.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인,일본 사회는 어떨까. |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marry04@˝
  • 네티즌 낙선·당선운동 제안 봇물

    오는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당선·낙선운동 대상자 명단발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에는 이에 대한 시민과 네티즌들의 다양한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9일 시민·사회단체들에 따르면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을 벌이는 양대 산맥인 ‘2004총선시민연대(총선연대·www.redcard2004.net)’와 ‘2004총선물갈이국민연대(물갈이연대·www.mulgari.com)’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 수백가지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낙선운동을 이렇게 하라는 ‘제안·주장형’에서부터 누구를 대상에서 넣거나 빼야 한다는 ‘민원·읍소형’,‘시민단체는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주장하는 ‘비난·항의형’ 등으로 크게 나뉜다. ●제안·주장형 시민단체의 당선·낙선 대상자 발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네티즌들의 주장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이 중에는 시민연대가 간과한 날카로운 지적들도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총선연대 게시판에 글을 쓴 ‘미국에서’라는 네티즌은 “총선연대의 활동을 지지하지만 대상자 선정에 있어 형평성을 잃었다.”면서 “당적 이탈 등 애매한 사유보다는 정치자금법 위반자 등을 철저하게 가려 대상자로 꼽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 ‘역사바로잡기’는 “친일잔재 청산법이 아직도 국회를 통과 못하고 있다.”면서 “그 내막을 가리고 친일파 후손 국회의원 후보 명단도 공개해 달라.”고 제안했다.‘한의견’은 “낙선 대상자를 시민단체가 지명하지 않으면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오만한 자세”라면서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정보만을 제공하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다. 이밖에 네티즌 ‘올바른’은 “정치청산을 위해서는 현재 의원의 3분의2 이상을 걸러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대찬성’은 “부패·무능,반인권,철새,반민주 인사들은 이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원·읍소형 물갈이연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우리 지역 P의원은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가난한 농촌을 변화시킨 분”이라면서 “무소속으로 어렵게 당선돼 핍박받고 있는데 시민단체들이 낙선대상자 명단에 올려 지역 주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하소연했다. 총선연대 홈페이지에 네티즌 ‘한심’은 “S의원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에서 각종 개혁을 위한 노력과 활동으로 인해 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사람”이라면서 “하루빨리 S의원의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명단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전사랑시민’은 “L의원은 전형적인 철새 정치인으로 다음번 낙선대상자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밝혔고,‘나그네’는 “S의원은 지난 대선 때 수억원의 수수의혹을 제기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빠졌다.”고 밝혔다.‘수호천사’는 “지난 2000년 5월17일 5·18전야제때 고급 술집에서 술 먹은 10여명의 386의원들도 낙선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난·항의형 낙선대상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화풀이성 글도 적지 않다. 물갈이연대에 글을 쓴 네티즌 ‘날개’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정권의 ‘홍위병’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총선연대의 네티즌 ‘낭만자객’은 “철새정치인중 특정 정당의 사람들만 낙선대상에 올린 것은 중립성을 잃은 것”이라면서 “특히 호주제 폐지에 반대했다고 낙선 대상에 올리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글을 올렸다. ‘막가파’는 “시민단체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 국회로 보내려는 의도는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over man’은 “총선연대는 시민 연대라는 이름하에 시민을 팔아서 여당편들기나 해서 뭔가 반대급부를 받기라도 할 것처럼 편파적인 기준을 의도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다.”면서 “선정 기준과 절차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물갈이연대 정대화 교수는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은 청산해야 할 인사들을 낙선시키고,보다 깨끗하고 능력있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운동”이라면서 “정치권이 시민·사회단체의 당연한 운동에 시비를 걸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연대 김기식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부 선정절차의 사소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며 결국 심판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면서 “1차 발표에 선정된 대상자 외에 보류된 숫자가 상당수 있는 만큼 앞으로 문제가 있는 의원들은 낙선 대상자에 포함시켜 계속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공천반대 병단발표]野 “정동영·이부영의원은 왜 빠졌나”

    ‘총선시민연대’가 5일 낙천·낙선운동 대상자를 발표하자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했다.특히 야 3당은 ‘형평성 시비’를 최대 반발논리로 활용했다. 한나라당은 “여당엔 솜방망이,야당엔 쇠몽둥이”라고 비난했다.배용수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첫째,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긴 ‘철새 정치인’들에게는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간 ‘독수리 5형제’를 사례로 들었다.이부영·이우재·김영춘·김부겸·안영근 의원 등이다.개혁당 출신의 김원웅 의원과 민주당 출신의 정장선 의원도 포함시켰다. 둘째,명백한 선거법 위반자도 열린우리당 인사는 제외됐다고 지적했다.유시민·이호웅 의원을 해당 인사로 꼽았다. 셋째,공작정치의 주역이나 부패 전력자도 눈감아줬다고 불만을 제기했다.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는 ‘권노갑 불법자금 수수’로,이해찬·신기남·천정배 의원과 민주당 설훈 의원 등은 ‘공작정치’로 범주를 정했다. 넷째,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망동을 자행한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부친 조병옥 박사에 대해 친일 주장을 한 김희선 의원과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이라고 한 유시민 의원을 적시했다. 민주당은 장전형 수석부대변인을 통해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15명이 추가로 발표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천정배 의원 등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주장과 같았다.김원웅·유시민·이부영·김부겸·김영춘·안영근·이우재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김원기·홍재형 의원,이미경 전 의원 등도 당적 변경대상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성호(의정활동 불성실·성추문사건)·이강래(예결위 욕설사건) 의원도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정 의장은 “다른 당에 비해 적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다.”면서 “당내 논의를 거쳐 봐야겠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씨줄날줄] 쥐불놀이

    농촌의 피폐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봉건주의시대엔 지주들이,일제시대엔 식민지 자본주의에 편승한 친일 지배세력이 각각 영세농들을 착취했다면,오늘날엔 물밀듯 밀려드는 수입자유화의 물결이 농촌의 활기를 앗아가고 있다.이 와중에 우리 농촌의 공동체 문화유산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반개울 마을 앞에서는 도깨비불 같은 불이 솟아나고 있다.새빨간 불이 어둠 속에서 총총히 번지고 있다.정초에 벌어지는 쥐불놀이다.돌쇠는 쥐불 싸움에 신나게 뛰어들었으나,쥐불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만다.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그것도 해마다 시들해진 것이다.” 민촌 이기영은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서화(鼠火)’에서 친일 자본가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가난의 수렁에 빠져드는 농촌의 피폐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쥐불놀이의 쇠퇴를 들었다. 쥐불은 원래 정월 첫째 쥐날(上子日)에 쥐를 잡던 일종의 농사일이었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쥐불은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마른 풀을 태워 쥐나 해충을 잡는 ‘쥐불놓이’와 이웃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불싸움을 하는 ‘쥐불싸움’으로 구분된다.쥐불놀이에는 무병 장수하고 액을 멀리 한다는 믿음과 함께 잡초를 태워 풍작을 기원하고,그 재는 거름으로 쓴다는 뜻이 담겨 있다.쥐불은 또 겨우내 언 땅을 녹여,씨앗이 대지를 뚫고 나오게 하는 일종의 농경기술이었다.쥐불싸움은 마을 축제로서 주민들은 싸움이 끝나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새워 놀곤 했다. 서화에서 주인공 돌쇠는 쥐불놀이가 시들해지자 ‘할 것이라곤 노름밖에 없다.’며 반쯤 바보인 친구 응삼이의 소 판 돈을 가로채는 등 노름판에 빠져든다.이기영은 쥐불놀이의 쇠퇴에서 농촌공동체의 파괴,개인주의·물신주의의 횡행 조짐을 읽어낸 것이다. 5일 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빈 깡통에 장작개비 등을 채우고 불을 붙여 빙빙 돌리는 사진이 신문지상을 장식한다.장소를 살펴보니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등이다.농경활동이란 당초의 취지는 사라진 채 놀이만이 남은 박제된 쥐불놀이다.하기야 수입자유화니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해서 가뜩이나 피폐해진 농촌에 쥐불놀이할 신명이 남아 있겠는가.그뿐인가.어린아이 울음소리 들어본 지 오래라니 어른들 눈치보며 쥐불놀이할 아이들도 없을 테고.보름달은 이제 저홀로 뜨고 지겠지. 김인철 논설위원
  • 정치플러스/법사위 ‘친일 반민족법’ 반려 논란

    국회 법사위는 2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논란이 되고 있는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에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김용균 제2법안심사소위원장은 “반민족행위 대상이 너무 광범위해 대한민국 국민 중 친일행위로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법체계에 문제가 있어 과거사특위에 반려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법사위의 결정과 상관없이 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 오는 9일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강조했다.
  • 뉴스플러스/친일 반민족행위특별법 반려 검토

    국회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용균 의원은 26일 법사위에서 심의중인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원초적인 결함이 있다.”며 “법사위 차원에서 반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이 법안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많은 문제와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친일문제를 정략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실태 고발/MBC PD수첩 ‘친일파는 살아있다’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을 전액 삭감했지만,네티즌이 나서서 5억여원을 모아 화제가 되고 있다.그만큼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친일 청산의 의지가 뜨겁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실태는 어떤 모습일까.그리고 그 해결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27일 오후 11시5분에 방송되는 MBC PD수첩 ‘친일파는 살아있다’(연출 조준묵 이동희)가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것 같다. 제작진은 친일파가 해방 이후 새로운 이익집단 속에서 이합집산을 반복하며,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부문에서 다시 득세하는 불합리가 이어져 왔다고 지적한다.특히 여야의원 154명이 공동 발의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7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반대의 뜻을 밝힌 현직 관료와 일부 국회의원이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또 국립묘지에 버젓이 안장된 친일파를 고발한다.사후 40년 만에 안두희에 의해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지목돼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은 전 특무부대장(현 기무사) 김창룡.제작진은 일본 관동군 헌병대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등 ‘친일 행각’에 앞장섰던 그가 지난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 이양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 국립묘지로 이장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배후를 추적한다. 제작진은 반환되는 부평의 한 미군기지에 대해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 친일파인 송병준의 후손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낸 것과 관련,법원의 판단방향도 가늠해 본다. 나아가 김활란상 제정과 홍난파 기념사업 등 친일혐의자에 대한 동상이나 기념관 건립,기념상 제정 등은 역사적인 평가가 이뤄질 때까지 유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표기자 tomcat@
  • [조정래의 세상보기]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국회인가

    ‘대한민국’이 하나의 나라이긴 나라인가? 정부는 친일과 반민족 행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고 나섰다.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또한,국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예산 전액을 삭감해 버렸다.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인가.정부도,국회도 이 모양 이 꼴이니 꼬박꼬박 세금 내고 있는 국민된 자 그 누구나 ‘대한민국이 나라이긴 나라인가?’하는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몇년 전에는 매국노 이완용의 땅을 되찾겠다고 나선 그 후손에게 법원은 승소 판결을 내려주었다.그리고,한 달 전에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땅의 반환운동을 성공시켜 놓았더니 친일파의 거두 송병준의 후손들이 그 땅을 되찾겠다고 나섰다.이렇듯 사법부까지도 그 기능을 역행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헌법 정신을 철저하게 위배하고 있는,나라 아닌 가짜 나라인 것이다.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적시되어있다.3·1운동은 무엇이고 임시정부의 법통은 무엇인가.그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일본을 물리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는 것 아닌가.그러므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 척결은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사업이었다. 그런데,해방이 곧 민족의 분단이 된 역사 현실 속에서 미 군정은 친일파들을 옹호하며 하수인으로 이용해 먹었고,그 토대 위에서 탄생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의 단죄를 위한 ‘반민특위’의 해산을 묵과함으로써 우리 현대사는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손으로 왜곡되고 또 왜곡되는 비참하고도 쓰라린 체험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러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끝없이 반복되어온 일본 장관들의 망언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그들이 비양심적이고 몰염치하기 때문인가? 꼭 그런 것만이 아니다.슬프게도 그 책임의 절반은 우리에게 있다.프랑스가 단행했던 것처럼 우리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을 단호하고 매섭게 처단하고 척결했다면 일본이 어찌 감히 그런 행투를 일삼을 수 있었겠는가.일본 육사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을 하고,만군 출신 정일권이 국무총리를 하는 대한민국을 일본 정객들은 얼마나 가소롭게 얕잡아보았을 것인가.그런데 참여정부의 행정자치부 차관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조사 대상자와 그 후손들이 반대하는 등 국민적 갈등이 우려된다.”는 정부 입장을 내세우며 특별법 제정을 반대한 것이다.참여정부는 박정희 정권에 다름이 없는 것인가. 나라를 잃자 맨 처음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선생을 비롯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산화해간 신채호 박은식 이동녕 김구 한용운 선생 같은 분들은 국권 상실의 식민지 상황을 일컬어 하나같이 ‘피를 토하고 죽을’ 것 같다고 그 심경을 표현했다.지금,우리 내부의 불신감에다,이젠 일본 장관이 아니라 총리가 직접 나서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현실을 응시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바로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을’ 것이다. 하나의 정권이 곧 나라는 아니다.어느 정권이든 그 수명은 시한부이며,그 나름의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오로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영원한 것은 민족밖에 없다.그러므로 민족 성원인 우리는 영원한 민족사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불씨가 되고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반민특위’의 재건이며,‘민족 법정의 개정’이다.우리 민족의 올바른 역사를 위하여,우리 민족의 참된 삶을 위하여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성스러운 의무이고 권한이다.이미 그 사전 발간을 위한 모금이 시작되었다.그 비용이 30억원쯤 예상되고 있는데 그 정도 돈은 거뜬하게 모아지리라 믿는다.수해의 피해가 크면 클수록,국란으로 불렸된 IMF사태를 맞고서 우리 사회의 모금은 그 전 해보다 훨씬 많았던 응집력을 보여주고는 했다.역사는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자각하는 자들이 현실 속에서 키워낸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행자부 ‘머리따로 몸따로’

    행정자치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가 공동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친일 인명사전 모금운동’에 오락가락하게 대응,말썽을 빚고 있다.위법이라며 모금중단을 요구했다가 장관이 모금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자 모금중단 공문을 취소하는 등 장관과 실무자의 손발이 안맞아 공신력 실추를 자초했다.행자부는 지난 15일 오후 6시쯤 오마이뉴스에 공문을 보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행위로 해석돼 즉시 모집을 중단하고,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를 것”을 요청했다.또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는 행자부 장관 또는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기사화하는 한편,지방출장 중인 허성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위여부를 확인했다.허 장관은 “나도 10만원을 냈다.네티즌들이 순수한 뜻에서 투명하게 모금하는 만큼 사후 신청을 하더라도 바로 허가해 줄 예정”이라고 했다.행자부는 네티즌의 항의가 잇따르고,장관마저 성금을 낸 것으로 알려지자 4시간 만인 이날 저녁 10시쯤 공문을 철회했다. 모금의 위법여부를 떠나,행자부의 처신은 부적절했다는 게 중론이다.10여일 전부터 모금이 진행됐는데 가만 있다가 뒤늦게 문제를 삼은 것이나,네티즌의 반발에 ‘실무자 판단’이라며 다시 취소한 것 자체가 문제다.법 집행의 주무부처 장관이 소속 기관에서 ‘절차상 위법’으로 분류한 사안에 참여한 것도 ‘순수한 의도’를 떠나 문제점이 적지 않다.더구나 장관의 행동이 법 집행에 영향을 줬다면 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덕현기자 hyoun@
  • 盧대통령 연두회견/핵심3개현안 입장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연두회견에서 핵심 현안 3가지에 대해 입장을 정리했다.4월 총선에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에 대해 ‘총동원령’을 발동할지와 열린우리당 입당시기,외교부 공무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단호한 조치,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에 대한 정부의 태도 등이다.노 대통령의 연두회견 모두발언 및 일문일답 전문은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 게재돼 있다. 4월 총선 노무현 대통령은 시기를 못박지 않았지만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두 차례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왜냐면”을 연발하며 입당 희망 배경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제가 지지하는 정당”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정치노선에 있어서 그분들과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즉 민주당의 ‘대통령을 만든 당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공격에 대해 반박하며,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각각 ‘개혁’과 ‘반(反)개혁’ 정당으로 규정한 것이다. 입당 시기를 늦추는 것과관련,“열린우리당의 개혁적 이미지에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 우리당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시했다. 4월 총선에서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총동원령’을 내릴 것이냐는 질문에 “총동원령을 내릴 생각이 없다.”고 부인했다.“다만 선거를 앞두고 정당(열린우리당)이 집요하게 영입노력을 하고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결심을 세운 사람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무리하게 만류하지 않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최근 “열린우리당의 새 지도부가 집요하게 출마를 요청할 경우 천하의 강금실 법무장관이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던 점을 감안하면,공직자 사퇴시한인 2월15일 직전 장관과 참모들의 ‘무더기 사퇴’가 예상된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총선과 재신임을 직접 연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파문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부 일부 공무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인사조치 하겠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노 대통령은 외교부 사태에 대해 질문을 받자 불쾌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함인 듯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단호한 표정으로 “공직자는 대통령의 정책과 또 정책노선을 존중하고 성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공직자의 생각이 대통령의 정책과 다르다 할지라도 존중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정책이 실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대미외교 과정에서 외교부 일부 공무원들이 저의 정책에 대해 오해가 있었거나 또는 이견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때때로 대통령의 정책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사전정보 유출이 있고,때로는 결정된 정책의 세부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보이는 정보유출이 있었다.”고 ‘부적절한 행위’의 내용도 공개했다. 청와대 민정실의 핵심관계자는 이날 “청와대의 외교부 직원 조사는 외교부장관이 허락한 사안”이라며 “문제가 폄하발언뿐이었다면 장관이 조사하라고 했겠느냐.”며 외교부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이에 따라 발설자인 조현동 북미3과장뿐만 아니라 주요 지휘라인의 인사조치도 불가피해 보인다. ‘독도' 대응 최근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인터넷 상에서 ‘사이버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등 한·일 국민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차분한 대응’을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독도 문제는 한국이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은 독도에 대해서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는데 한·일간에 옥신각신 논쟁을 많이 하는 것이 득될 것이 없고,우리가 우호적으로 협력하고 증진시켜 나가야 할 한·일 관계에도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아내론’을 인용하기도 했다.노 대통령은 “해양법 학자 한 분이 신문기고에서 ‘내 아내를 자꾸 내 아내다,내 아내다라고 거듭 반복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내 아내는 그냥 아무 말을 안 해도 내 아내다.남이 무슨 소리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독도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부가 의지가 박약하거나 우리 공무원들이 애국심이 없어서 분개하거나 규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면서 “냉정하고 실용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고 정부의 대응방향에 힘을 실어줬다. 노 대통령은 국회에서 ‘친일행위진상규명특별법’ 통과가 무산된 것에 대해 “친일행위 진상규명은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라면서 “조사대상과 과정 등을 잘 조절해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평가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백범암살 진실캐기는 아직 안끝났죠”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방문하는 권중희씨

    권중희(權重熙·67)씨.백범(白凡) 암살범 안두희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다.우리 현대사에서 그만큼 집요한 사람도 드물다.안두희를 추적하며 개인차원의 응징도 여러 차례 했다.그러나 암살 배후의 전모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고,안씨는 몇 년전 세상을 떴다. 권씨는 요즘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미국의 백범 암살 관련 여부를 캐기 위한 미국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권씨는 이달 말쯤 워싱턴 인근 칼리지파크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방문,미육군 정보 문서철 가운데 백범의 암살과 관련된 자료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권씨가 미국행을 결심한 것은 안두희로부터 백범 암살에 미국이 관련된 듯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생전의 안두희가 “미국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중령이 암살 2개월 전 찾아와 백범을 ‘블랙 타이거’로 지칭한 뒤 ‘국론분열자’‘제거되어야 할 인물’이라며 강한 살해암시를 주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이를 밝히기 위해 오래전에 방미 계획을 세웠으나 비용 때문에 진행시키지 못했다.그러다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매체에 이화여대 부고 박도(57) 교사의 ‘의를 좇는 사람들-권중희편’이라는 글이 실리면서 길이 열렸다.네티즌들의 모금이 3600만원에 달해 미국행이 성사된 것이다. 권씨는 그러나 고민이 많다.미국문서청에 보관된 파일이 455만개에 달하기 때문이다.백범 관련 자료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와 같다.이 때문에 영문과 도서관학 관련지식이 풍부한 동행자를 찾고 있으나 체류비외에는 보수가 없기 때문인지 마땅한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미국과의 외교문제도 조심스럽다.미국 개입에 대한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의 일을 밝히려다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권씨는 “미국이 관련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궁금증을 풀자는 차원으로 해석해 달라.”면서“그렇지만 성과가 없으면 국민 성금을 낭비한 꼴이라 무슨 낯으로 귀국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허름한 기원을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이곳의 수입으로 2남1녀를 가르치고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그러다 81년 우연히 신문에서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기도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이 기사는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스스로 ‘주제넘은 일’이라고 치부하는 일에 뛰어들게 된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선생을 흠모하기는 했지만,먹고살기도 바쁜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권씨는 일단 결심이 서자 안두희를 무섭도록 옭매었다.숨어 지내는 안두희를 수년간의 추적끝에 찾아내 87년 3월 서울 마포의 대로변에서 ‘민족반역자를 응징하며’라는 성명과 함께 몽둥이 찜질을 했고,이후에도 계속 거처를 옮기는 안두희를 귀신처럼 찾아내 수차례에 걸쳐 백범 암살과 관련된 귀중한 증언을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다소의 폭력을 행사해 두 차례나 옥살이를 하고 ‘강압에 의한 고백’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얻어낸 증언은 백범 암살 당시의 상황 및 관련자들의 진술과 일치돼 ‘백범 암살사’를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백범 살해 당시부터 떠돌던 장은산 포병사령관,김창룡 특무부대장,이승만 대통령 개입설을 안두희가 자신의 입으로 밝힌 최초의 증언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두희는 96년 10월 23일 권씨의 ‘제자격’인 박기서(57)씨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이때 권씨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그는 “안두희를 살려두고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다.”고 했다. 이후 본업(?)을 잃어버린 권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안두희를 추적할 때도 생활이 어려웠지만 부인 김영자(64)씨가 주방기기 외판업을 해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갔는데 부인마저 이 무렵 다단계판매에 손댔다가 사기를 당해 1억원의 빚을 지고 거리로 내몰렸다. 다행히 권씨를 따르는 유모(45)씨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을 내줘 거처를 옮겼다.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외곽순환도로 공사로 헐리자 2002년 6월부터 지인 김모(49)씨의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26평 아파트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다.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매월 받는 27만원이 권씨의 유일한 소득이다.할 일이 별로 없어 틈틈이 글을 쓰고 독립운동과 민족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소일해 왔다. 권씨는 이순(耳順)을 훨씬 넘겼음에도 아직도 꼬장꼬장하다.3년전 독립기념관 인근에 있는 천안시 목천면사무소에 민원서류를 떼기 위해 들렀을 때의 일이다.입구 조형물에 서정주의 시 ‘국화옆에서’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면장을 찾아가 “하필이면 독립기념관 옆에 친일문학가의 시를 전시한 이유가 뭔가.”라고 따져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첫째 기준은 친일 여부와 민족정기다.그래서 정치권 보수세력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표시한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은 일제 때는 친일,미국이 들어오자 친미,다시 군부독재에 빌붙은 전천후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의기가 드높을 때 보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서 “보수를 한답시고 트럭으로 수 백억원씩 강탈하는 무리들은 도적떼에 불과할 뿐”이라고 질타했다. 김학준기자 kimhj@
  • 히틀러 암살 꿈꾼 조선 청년들/신인 이헌 장편 ‘볼프’

    새해에 날아든 신인 작가 이헌(28)의 장편 ‘볼프’(갈무리 펴냄)는 참신한 발상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눈길을 끈다. 작가는 데뷔작인 이 장편에서 1940년대 조선의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비슷한 시대를 다룬 국내 작품으로는 드물게,작가의 시선은 독일로 가서 히틀러를 징검다리로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편다. 소설의 뼈대는 1940∼41년 베를린에 유학간 친일파의 아들 이현영과 윤덕한이 독일인 친구 3명과 함께 아돌프 히틀러의 사상에 매료됐다가 그 속에 폭력이 잠재되었음을 깨닫고 일본대사관으로 오는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발각돼 죽는다는 내용이다.그 과정에서 친일파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인간적 번뇌,한때 빠졌던 히틀러의 광기가 자신에게도 있음을 극복해가는 노력들을 살과 피로 붙였다. 황당한 상황 설정 같지만 실제로 일제 강점기 우리 젊은이들의 애독서 1위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었을 만큼 작품의 개연성은 높다.“당시 히틀러를 본받아 독립을 도모하며 나치식 전제주의 국가 설립을 꿈꾼 것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만이아니었을 것”(53면)이라는 당시 사회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위해 작가는 10개월 동안 관련 자료를 샅샅이 훑었다.덕분에 40년대 조선과 독일의 정경이 세밀하게 작품에 스며들면서 생동감을 더한다. 인물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자주 시도하는 시점 전환이 거꾸로 혼돈을 일으키는 결점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발상의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은 신인의 패기가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이종수기자
위로